팔레스타인 인민을 방어하자!

유태인과 아랍인의 대립이 아니라 계급 대 계급의 대립 전선을!

 

프랑스 혁명의 중요한 업적 가운데 하나는 유태인 해방이었다. 1791년 국민의회는 긴 토론 후에 유태인이 앞으로는 완전한 법적 평등을 누릴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후 10년 간 프랑스 군대의 계속된 승리는 유럽의 대부분에서 유태인의 열등 지위를 철폐했다. "자유, 평등, 박애"를 옹호한 프랑스 혁명의 지도자들은 "천부인권"이 인종이나 신념에 달려 있다는 생각을 거부했다. 이들은 모든 시민들이 법 앞에서 평등을 누리는 국가를 수립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창시자들은 전혀 다른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유태인이 독점적 지배를 행사하는 국가를 꿈꾸었다. 현재 이스라엘에는 모든 시민들이 동등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유태인은 특권을 누리면서 교육, 고용, 주택, 토지 소유 그리고 기타  의 영역에서 월등한 대우를 받고 있다. 반면 1947년과 1948년에 고향에서 쫓겨나지 않고 지금도 팔레스타인 지역의 이스라엘에서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인민은 열등 시민이 되었다.

펜실베니아 대학의 에드워드 허먼은 이렇게 말했다: 유태인 소수민족을 이스라엘의 유태인이 이스라엘에서 아랍인들을 취급하는 것과 똑같이 취급하는 국가가 있다면, 그 국가는 전 세계적으로 비난을 받을 것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가 국내 땅 90%에서 유태인의 주택 임대, 토지 구매, 창업 등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치자. 그리고 유태인들의 군 복무를 금지하고 이들에 대한 다양한 정부 지원을 박탈한다고 치자. 또는 프랑스 경찰이 유태인 출신 구금자에게만 일상적으로 고문을 가한다고 치자. 이럴 경우 프랑스는 당연히 극악한 유태인 박해국으로 비난받을 것이고 이 비난은 정당하다. 그런데 바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인민을 그렇게 취급하고 있다.

이미 오랫동안 시온주의 지배계급은 팔레스타인 인민을 점령지 대부분 지역에서 누적적으로 "인종청소"를 자행해왔다. 시온주의 정치인, 학자, 보안 관계 관리 등이 참여하는 헤르즐리야 연례회의에서는 이스라엘 내 아랍인 소수민족이 유태인보다 출산율이 더 높은 현상 때문에 제기되는 "인구증가 위협"이 공공연히 논의되고 있다. 팔레스타인 인민의 출산율을 낮추거나 이들을 추방하거나 이들에 대한 대대적인 이주정책을 추진하는 등의 다양한 인종주의 "해결책"이 제시되어왔다.

20년 전에는 메어 카하네의 파시스트 카하당이 유일하게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 인민의 강제 추방 즉 좀더 미화된 표현으로 "이주 정책"을 떠벌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스라엘의 인종주의 정책 옹호자들은 다음과 같은 역사적 사실을 부인해왔다: 1947년과 1948년에 이스라엘을 떠난 75만 명의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은 테러에 의해 밀려났다. 그런데 지금 "이 작업을 마무리하는 것"이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시온주의 좌파와 우파 모두가 공공연히 떠벌리고 있다. 이스라엘 건국 시조들의 팔레스타인 인민에 대한 범죄를 폭로해온 "새로운 역사가"인 베니 모리스는 "포괄적이며 최종적인 선이 가혹하고 잔인한 행위들을 정당화"시키면서 이러한 만행이 자행되었다고 인정하고 있다. 이 병적인 사고방식은 "인종청소를 자행하는 자들"의 공통적 특징이다.

 

<<<이하의 글은 2003년 10월 4일 토론토에서 탐 라일리가 행한 강연 내용을 약간 편집한 것이다>>>

지금부터 100년에 붕괴되고 있던 오스만 투르크 제국은 아직도 중동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때 성지에서는 유태인과 아랍인 사이의 주기적 유혈 충돌은 아직 없었다. 소규모의 유태인 사회는 인구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회교도들 사이에서 최소한 지난 1천5백년 간 평화롭게 공존했다. 중동지역의 거의 모든 아랍 도시에는 유태인 사회가 번성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매우 달라졌다. 상황이 이렇게 달라진 이유, 그리고 중동의 모든 인민들이 정당하고 동등한 "평화"를 성취할 수 있는 방안을 나는 오늘 이 시간에 논의하고자 한다.

중동은 오직 하나의 이유 때문에 국제정치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이 이유는 바로 석유의 존재이다. 노움 촘스키의 말에 따르면 1945년에 미국 국무부 문서는 중동의 유전을 "전략적 영향력의 엄청난 원천이며 세계역사상 가장 거대한 노획물의 하나이다."라고 표현했다.  지난 세기에 페르시아만의 역사는 제국주의 강대국들이 이 노획물을 차지하려는 투쟁에 의해 결정되었다. 이 상황은 바뀔 것 같지 않다. 어느 정통한 평론가는 최근 이렇게 말했다:

"지금 페르시아만의 전략적 중요성은 상당하다. 그러나 이 중요성은 향후 20년에 걸쳐 기하급수적으로 증대할 것이다. 전 세계에 매장된 석유 세 드럼 가운데 거의 한 드럼은 사우디아라비아(2590억 드럼의 매장량)와 이라크(1120억 드럼의 매장량)에서 나온다. 그러나 미국 정부의 추산에 따르면 이 수치는 대체로 탐사되지 않은 채 매장되어 있는 4320억 드럼을 계산하지 않은 것이다.

특히 미국과 북해 등 다른 지역들의 석유가 거의 고갈된 상황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라크의 석유는 더욱 중요하다. 이 사실은 백악관 실무팀이 2001년 발표한 미 행정부의 국가에너지 정책에 합당하게 부각되어 있다. 2020년이 되면 페르시아만은 세계 원유 공급량의 54%에서 67%를 충당할 것이며 미국의 이해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이 문서는 말했다."--- 라버트 드라이퍼스 "30년의 가려움증", 잡지 [마더 조운스]의 2003년 3월/4월호에서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의 최초의 대전이었던 제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터키 등 주축국은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연합국에 대항했다. 이때 중동은 세계 지배를 위한 투쟁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영국은 터키의 지배에 대한 아랍인의 반란을 부추기려는 노력을 했다. (이것은 피터 오 투울이 주연한 1962년 아카데미상 수상작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주제였다.) 영국은 아랍인들에게 터키를 무찌르면 전쟁이 끝난 후 자치권을 부여하겠다고 약속했다.

 

영국의 배신

그런데 전쟁 와중에 갑자기 1917년 2월 러시아 혁명이 터져 짜르가 타도되었다. 그리고 공화파, 자유주의자, "온건 사회주의자" 등이 차례로 권력을 잡았다. 러시아가 일방적으로 전쟁에서 철수하여 독일 총사령부가 모든 군대를 서부 전선에 집중시키지 않을까 영국의 지배자들은 걱정했다. 영국 외무부는 러시아 사회주의 운동의 모든 분파에서 유태인들이 출중한 역할을 맡고 있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제국주의 전쟁 수행을 지지하는 케렌스키의 "사회주의" 정권이 무책임한 볼세비키들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을 실어주기 위해 영국의 외무장관 발포어는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태인 국가를 창설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발포어 선언" 5일 만에 케렌스키 정권은 타도되었다. 볼세비키당의 혁명 정부가 취한 첫 조치는 러시아를 전쟁에서 철수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연합국은 결국 승리했고 영국은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중동 영토 대부분을 차지했다. 다만 시리아와 레바논은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다.

영국은 유럽 유태인들의 팔레스타인 이주를 환영했다. 시온주의 정착자들이 수에즈 운하를 비롯한 제국주의 점령지를 방어하는데 동맹자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1918년과 1932년 사이 팔레스타인의 유태인 수는 6만5천에서 18만으로 거의 세배나 늘어났다. 1933년 나찌당이 독일에서 정권을 잡은 후 유태인 이주민의 수는 훨씬 더 증가했다. 영국, 캐나다, 미국 등 소위 위대한 "민주국가들"의 이민 정책은 모두 유태인을 배척했다. 이 때문에 이 나라들에 이주한 유태인 난민의 수는 극히 적었다. 팔레스타인은 독일의 유태인들이 갈 수 있는 몇 개 되지 않는 지역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에 1940년에 이곳의 유태인 인구는 45만 명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유태인의 대대적 인구 유입은 토착 아랍인들을 긴장시켰다. 주로 이 때문에 영국의 지배에 대항하여 아랍인들은 1936년에서 1939년까지 봉기를 일으켰다. 결국 이 봉기는 시온주의자들의 도움까지 받은 영국에 의해 진압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런던의 제국주의 정책 결정자들을 놀라게 했다. 독일과의 전쟁이 임박했기 때문에 영국 정부는 유태인들이 히틀러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 후 아랍인들과의 관계 개선에 나섰다. 1939년 5월에 발표된 정책 백서는 팔레스타인 지역을 아랍인 지역과 유태인 지역으로 분할하는 방안을 기각했다. 대신 10년 내에 팔레스타인 독립국을 수립하고 유태인 유입을 막아 유태인의 수가 나라 전체 인구의 3분의 1을 넘지 않도록 조치하겠다고 약속했다.

토니 클리프는 소련과 서방 제국주의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는다는 소위 "제 3 진영" 노선으로 유명한 국제사회주의 경향을 창립했다. 그는 1938년에 미국의 트로츠키주의 이론지에 당시의 상황에 대해 이렇게 논평했다:

"유태인 유입에 대한 아랍인들의 반대가 이들의 반(反)제국주의 투쟁을 어떻게 왜곡시키는 지를 설명하기는 어렵지 않다. 팔레스타인에는 소문이 나돌았다: 영국 정부가 곧 유태인의 팔레스타인 이주를 중지시킬 것이다. 그러자 아랍인들은 환호하며 시위에 나섰는데 이 때의 구호는 이러했다: '챔벌린 수상 만세!', '영국 만세!', '영국 정부는 우리편이다!'"---"팔레스타인의 계급적 노선", [새로운 인터내셔널] 1938년 6월

그러나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마자 팔레스타인으로 유태인들이 다시 대규모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히틀러의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난민들"로 대부분 미국이나 영국에 정착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서방 민주주의 국가들은 이들을 거부했다. 어빙 아벨라의 저서 [단 한 명도 많다]는 유태인 이민에 대한 캐나다 정부의 당시 태도를 요약하고 있다. 1948년 8월 30일자 [뉴욕 타임즈] 지는 이렇게 주장했다:

"독일의 이민 절차를 관찰한 난민 전문가들은 거의 한결 같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미국의 영사관들은 독일보다 난민의 이민을 훨씬 어렵게 만들고 있다."

유태인을 학살한 나치당 인사들이 미국과 캐나다에 이민하는 것은 이들의 만행에 고통을 당한 유태인들보다 훨씬 쉬웠다. 왜냐하면 이들은 반공주의자로서 정치적으로 믿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태인 유입을 규제하려는 영국 정부의 시도는 시온주의 정착자들의 반발을 샀다. 이들은 영국의 식민지 정부에 대항하여 테러를 자행했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거의 파산상태가 된 영국의 지배계급은 식민지의 대부분을 포기하고 있었다. 이들은 1948년 5월 팔레스타인 통치도 포기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신설된 유엔은 소수민족인 유태인에게 팔레스타인 영토의 대다수를 넘겨주는 영토 분할안을 제안했고 이 범죄적 제안은 미국과 소련의 지지를 받았다. 소련의 스탈린은 이 정책을 통해 단기적인 외교적 이익을 노렸다. 실제로 소련은 최초로 이스라엘 국가를 공식 인정했다.

한편 트로츠키주의자들은 팔레스타인 영토 분할안을 반대하면서 시온주의자들에 의한 유태인 단일 국가 창설을 반동적 조치라고 비난했다. 이들은 옳았다. 수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팔레스타인에서 트로츠키주의 조직은 유태인과 아랍인을 모두 회원으로 포괄했다. 이들 중 4분의 1은 아랍인이었고 4분의 3은 유태인이었다. 1948년에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 이들은 양쪽 모두의 패배에 의한 사회주의 혁명 승리를 주창했다. 이 당시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은 모두 유엔이 팔레스타인 인민에게 할당한 영토를 빼앗는데 서로 협조했다. 시온주의자들에게 "전쟁"은 곧 팔레스타인 인민을 잔인하게 학살하는 것이었다. 이 학살의 가장 악명 높은 예는 1948년 4월 메나헴 베긴의 이르군 군대가 데이르 야신 마을의 민간인 250명을 사살한 사건이었다. 1980년에 이스라엘 수상으로서 베긴은 이 마을의 남아있는 부분을 불도저로 밀어내고 대신 유태인 정착촌을 건설하면서 30년 전 자신이 저지른 만행을 기념했다. 그리고 정착촌 거리들의 이름은 학살을 자행한 이르군 군대 소속 부대들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1948년 전쟁에서 전체 팔레스타인 인민의 약 절반인 70만 명이 시온주의자들에 의해 고향에서 쫓겨나 난민이 되었다.

1948 전쟁에 의해 팔레스타인 인민이 겪은 참상에는 비극적인 측면이 하나 있다. "인종 청소"를 자행한 다수의 시온주의 학살자들은 유럽 유태인들을 잔인하게 학살한 나치 만행의 생존자들이었다. 이들은 역사상 가장 끔찍한 범죄행위의 희생자였으면서 이와 버금가는 만행을 타민족에게 저질렀다. 사실 전 세계에 흩어진 채 인종 차별을 당해온 유태인들은 그들이 살고 있던 사회 내에서 가장 국제적이었고 교육을 잘 받았으며 정치적으로도 대단히 수준이 높았다. 북미나 유럽에서와 마찬가지로 유태인 혁명 투사들은 아랍 세계의 사회주의 운동에서도 수적 소수에 걸맞지 않게 비중 있는 역할을 담당했다. 예를 들어 1940년대에 이집트공산당의 중심적 지도자였던 앙리 뀌리엘도 유태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 세계 유태인 대다수는 팔레스타인 인민을 억압하는 이데올로기인 시온주의에 오염되어 있다.

1967년과 1973년에 각각 벌어진 전쟁도 1948년 전쟁과 마찬가지로 아랍 부르주아 국가와 시온주의 부르주아 국가들 사이의 전쟁이었으며 근본적으로 반동적이었다. 당연히 혁명가들은 양쪽의 패배를 주창하는 혁명적 패배주의 노선을 견지했다. 1967년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1948년 요르단이 팔레스타인 국가로부터 빼앗은 요르단강 서안지구를 차지했으며 이집트로부터는 가자지구와 시나이반도를 시리아로부터는 골란고원을 빼앗았다. 이때 개량주의자들과 중도주의자들 대부분은 소위 "반(反)제국주의적" 아랍 국가들을 지지했다. 만델과 히일리 같은 사이비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신좌익(New Left) 및 스탈린주의자들과 동조하여 소위 "아랍 혁명"에 환호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아랍 인민들을 억압하는 족장, 대령, 보나파르트 독재자 등은 "객관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혁명운동의 주체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랍 정권들이 국제통화기금의 "구조조정" 앞잡이가 된 지금은 이런 환상을 갖기가 불가능하다.

중동은 엄청난 천연자원을 보유한 지역이지만 제국주의 체제 하에서는 이 지역 지배계급에게 돌아가는 약간의 떡고물을 제외하면 모든 자원이 외국 자본가들을 부유하게 만들기 위해 사용된다. 야세르 아라파트의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는 한때 자신을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혁명"운동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지금은 자기 인민을 착취하려는 열망에 사로잡힌 소부르주아 민족주의 집단이라고 널리 인식되고 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팔레스타인해방기구는 항공기를 납치하고 가끔 소규모 게릴라 공격을 이스라엘 내부에서 감행하면서 소위 "무장투쟁"을 수행했다. 그러나 이것은 시온주의 국가인 이스라엘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못했다. 이 행위를 통해 해방기구 지도자들은 팔레스타인 인민의 고통에 국제적 관심을 끌고 아랍 지도자들이 더 많은 지원을 하도록 압박을 가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아랍 부르주아 계급은 팔레스타인 인민의 곤경을 이용하여 자기 내부의 분노를 외국의 적 이스라엘에게 돌렸을 뿐이었다. 아랍 정권들이나 이스라엘 정권이나 팔레스타인 및 아랍 인민들의 적에 불과하다.

1970년 요르단의 국왕 후세인은 악명 높은 "검은 9월" 학살을 통해 만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인민을 살해하고 자국 내에 기지를 둔 팔레스타인 해방기구를 레바논으로 몰아내 버렸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해방기구를 영원히 전멸시키기 위해 1982년에 레바논을 대대적으로 침공했다(작전명 "갈릴리해의 평화"). 이 잔인한 시온주의자들의 공격과 직후 벌어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동부의 팔레스타인해방기구 포위작전에서 최소한 17,000명의 민간인이 살해되었다.

이때 해방기구 의장 아라파트는 팔레스타인 난민의 보호를 위해 제국주의 유엔군의 파병을 요구했다. 좌익의 개량주의자들과 중도주의자들 거의 모두 이것을 유일한 "현실적" 대안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미국 주도의 유엔 "평화유지군"은 레바논에 진주한 즉시 해방기구 전사들을 무장 해제시키고 이들을 튀니지로 추방해 버렸다. 그러자 당시 이스라엘의 "국방"장관이었으며 지금은 수상인 아리엘 샤론은 사브라와 샤틸라 난민수용소에서 스스로를 방어할 무기도 없는 팔레스타인 난민 2,000명을 손쉽게 학살했다.

해방기구 전사들이 추방된 후 레바논에 남아 있던 유엔군 소속 미국 군대는 레바논 내전에 개입하여 이스라엘이 지지한 기독교 팔랑헤당 정부를 편들었다. 1983년 10월 회교 성전 전사들의 폭탄 트럭이 미국 해병대 본부와 프랑스 공수부대 주둔지를 동시에 폭파시켰다. 이 결과 300명에 가까운 미 해병대 병력과 다수의 프랑스 공수부대원들이 현장에서 폭사했다. 미국 대통령 레이건은 이 사건 직후 미국은 절대 이 지역에서 도망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두 달이 지나자 즉시 군대를 철수시켰다. 사회주의 혁명가들은 제국주의 군대를 몰아낸 회교 광신도들에게 정치적 지지를 보내지 않으면서도 이들의 군사적 공격을 방어했다. 이 노선은 지금 우리가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점령하고 공격하는 시온주의 이스라엘 군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진주한 제국주의 "연합"군 등에 대한 토착 무장세력의 모든 공격을 우리가 군사적으로 방어하는 것과 동일하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과 점령에 대해 당시 이스라엘 내부에는 상당한 저항이 있었다. 월남에서 제국주의 전쟁을 치르던 미군 병사들과 같이 이스라엘 징집군 다수는 팔레스타인 민간인에 대한 시온주의자들의 전쟁 범죄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 레바논 침공에 참여했던 이스라엘 보안군 내의 신체적 사상자 가운데 "정신병적" 사상자의 비율은 정상 수준의 두 배에 달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오슬로 평화 조약: 팔레스타인 인민의 권리를 배신하다

튀니지에 추방당한 팔레스타인해방기구는 이스라엘 점령지에 대한 영향력을 서서히 상실해갔다. 1987년 처음으로 팔레스타인 인민이 이스라엘에 대항해 인민봉기를 일으켰을 때 해방기구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 회교 과격파들의 영향력이 증대하였으며 동시에 아랍 국가들의 지원이 급격히 삭감되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중요한 정치적 버팀대였던 소련과 동구의 붕괴로 해방기구의 입지는 더욱 타격을 입었다. 1980년대 말이 되자 아라파트는 완전히 궁지에 몰려 어떤 타협도 불사할 처지에 놓였다. 이 결과 1993년 8월에 오슬로 평화조약이 체결되었다.

이 조약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이스라엘이 1967년 전쟁으로 빼앗은 팔레스타인 국가 영토의 78%를 이스라엘 영토로 인정한다; 대신 팔레스타인해방기구는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 흩어져 있는 팔레스타인 영토를 통치할 권한을 갖는다. 이 독약은 이스라엘 점령지 일부에서 소규모의 팔레스타인 국가를 언젠가는 허용해 주겠다는 애매한 말로 사탕발림이 되었다. 실제로 해방기구는 이스라엘 점령 당국의 하수인이 되겠다는 계약을 체결한 셈이었다. 1993년 9월 우리는 이렇게 말한 바 있었다: "몇 주전에 체결된 소위 '평화조약'은 정의를 비웃고 있으며 팔레스타인 인민의 민족적 권리를 새로 배신하고 있을 뿐이다"([1917] 제 13호). 영토를 계속 확대하기 위해 최근 이스라엘은 서안지구 팔레스타인 인민을 소규모의 다수 수용소로 가두는 엄청난 규모의 콘크리트 벽을 세우고 있다.

타냐 라인하트는 그녀의 최근 저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1948년 전쟁을 종식시키는 방안]에서 이렇게 전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인민에 대한 이스라엘의 조치들을 "1948년 전쟁의 후반부, 즉 토착 아랍인들을 팔레스타인 영토에서 완전히 제거하려는 시도"라고 샤론은 묘사했다. "평화 정착의 과정" 전체는 거대한 사기극에 불과하며 이 사기극에서 팔레스타인 인민은 "평화를 위한 영토"를 제안 받았으나 실제로는 겉껍데기에 불과한 약속 밖에 얻은 것이 없다. 오슬로 평화조약은 시온주의 정착촌 건설을 동결시켰다. 그러나 1993년 9월 이 조약이 체결된 이후 팔레스타인 점령지 유태인 정착촌 주민의 숫자는 두 배로 증가했다.

이스라엘 군대의 만행으로 이미 수백 명의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살해되었으며 수천 명은 중상을 입었다. 북미의 상업 언론은 이스라엘 전쟁기구에 의해 자행된 팔레스타인 인민에 대한 파괴공작을 팔레스타인 인민의 테러에 대한 이스라엘의 유감스럽지만 필요한 자기방어 행위라고 일반적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이 거짓말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 의해 쉽게 그 정체가 폭로된다: 이스라엘 점령 당국은 서안지구 전역에서 팔레스타인 인민의 주택, 병원, 상하수도 시설 등을 불도저로 밀어내고 있을 뿐 아니라 교육 및 의료 기록 등 행정의 도구들을 체계적으로 파괴해왔다. 샤론 정권의 전략은 단순하다: 생활을 너무 고통스럽게 만들어 다수의 팔레스타인 인민 특히 청년들이 점령지를 떠나게 만들자. 만약 팔레스타인 인민 "문제"에 대한 이스라엘의 이러한 범죄적 조치들이 다른 곳에서 시행될 경우 "인종 청소"라는 딱지가 붙을 것이다.

아라파트를 비롯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최상층의 노골적인 타락은 팔레스타인 인민에 대한 하마스나 지하드 등의 영향력을 증대시켜왔다. 이 조직들은 회교 공화국을 주창하며 여성에 대한 억압을 정당화하고 동성애자와 유태인을 박해하는 반동적 운동이다. 사실 팔레스타인 인민은 과거에는 아랍세계에서 종교의 정치 개입을 가장 강력히 거부하고 교육수준이 가장 높으며 가장 국제적 다양성을 보유한 민족에 속했었다. 아라파트는 현재 라말라에 소재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청사의 무너진 건물 더미에 갇힌 포로 신세이다. 최근 샤론은 그를 살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이것이 지혜로운 행동인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지금 중동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따라서 샤론의 계획은 최소한 지금은 시행에 옮길 수 없게 되었다.

서안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정책은 정상적인 생활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든 지 오래되었다. 1983년 이스라엘 군 당국은 허가서 없이는 팔레스타인 인들이 나무 또는 심지어는 채소도 심을 수 없게 만들었다. 가지나 토마토를 불법으로 심다가 걸리면 1년까지 징역형에 처할 수 있었다. 촘스키는 서안지구의 생활을 이렇게 집약했다:

"한줌 밖에 되지 않는 이스라엘인들은 수영장을 갖춘 호화판 호텔을 운영하고 물을 집중 투여하는 농업을 통해 이익을 창출한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인민은 경제의 붕괴 때문에 마실 물과 식량도 부족하다. 그런데 이들과 달리 극소수 팔레스타인 부자들은 제 3 세계의 기준으로 보면 잘 지내고 있다."--- [운명의 삼각지대]

좁은 빈민굴에 불과한 가자지구는 상황이 더 나쁘다. 지구 전체 면적의 3분의 1은 6천 명의 유태인과 이들을 지키는 이스라엘 주둔군이 차지하고 있는 반면 나머지 3분의 2에서는 백만 명의 팔레스타인 인민이 좁은 공간에 갇혀 어렵게 지내고 있다.

일반적으로 암울한 상황에서 그나마 밝은 면이 있다면 팔레스타인 인민 개개인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국제연대운동(ISM) 청년들의 개입이다. 워싱턴 주 출신인 미국인 학생 레이철 코리는 2003년 초에 팔레스타인 주민의 주택을 허물려고 돌진한 이스라엘 불도저에 깔려 살해되었다. 이것은 의도적으로 계획된 이스라엘 군대의 만행이었다. 역시 이 단체 소속의 톰 헌들은 맨체스터 출신의 영국 청년으로 이스라엘 보안군 저격수에 의해 머리에 총상을 입고 현재 뇌사 상태에 있다. 시온주의 인종 청소부들의 잔혹성을 폭로하려는 이 청년들의 용기와 결의에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탱크 앞에서 몸을 눕히는 용감한 행위도 중동의 역관계를 결정적으로 바꿀 수는 없다.

이스라엘 군대와 시온주의 정착자들에 억압당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인민을 우리는 군사적으로 지지한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인민이 이스라엘 보안군에 맞서 군사적으로 승리할 수 없다는 점도 인정한다. 이 때문에 하마스는 좀더 약한 목표물인 학교, 쇼핑몰, 댄스 홀 등을 겨냥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자살 폭탄 청년의 심리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들의 삶은 파괴되었으며 주택은 불도저로 철거되었고 이들의 미래는 도둑 맞았다. 그리고 이들의 부모와 형제들은 구타당하고 고문당하고 살해되었다. 이들은 복수를 원하며 시온주의자들이 조성한 생지옥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한다. 그러나 맑스주의자들은 파시스트 정착자들과 이스라엘 보안군에 대한 공격과는 달리 이스라엘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은 인정할 수 없다.

이스라엘 군대와 정착민 무장 세력에 대한 공격은 점령에 대한 공격이다. 그러나 버스를 타고 있거나 영화관에 가는 사람들을 폭사시키는 것은 노동운동의 관점에서 범죄적 행위일 뿐 아니라 이스라엘 노동자들을 지배자들에게 더욱 밀착시키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는 대단히 어리석은 행위이기도 하다. 9월 11일 테러 이후, 무분별한 외국인 혐오증이 미국을 휩쓴 것을 보면 테러의 부작용을 쉽게 읽어낼 수 있다. 목숨이 걸려 있다고 생각하면 보통 이스라엘인들은 팔레스타인 인민에 대한 잔인한 억압을 더욱 지지할 것이다. 팔레스타인 인민의 해방을 위한 유일한 길은 시온주의 국가를 파괴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민족주의 전략으로는 성취될 수 없다.

 

시온주의 철옹성 내부의 분열

유태인 국가가 존재할 권리가 없다고 참주 선동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이 선동을 실천하려는 자들은 철벽과도 같은 회피할 수 없는 사실에 직면한다. 시온주의 지도자들은 주로 미국의 지원금으로 철저히 무장되어 있다.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우려는 시온주의자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들은 원하기만 하면 모든 아랍 도시들을 쉽게 재로 만들 수 있는 수백 개의 원자폭탄 탄두를 보유하고 있다. "유태인들을 바다로 쳐 넣는다"는 전망은 반동적일 뿐 아니라 망상에 불과하다. 시온주의 철옹성은 내부로부터 붕괴되어야한다. 이것은 최소한 유태인 노동계급의 일부를 중동 지역 아랍 노동자들을 비롯해 팔레스타인 노동자들과 연합시키는 공동 계급투쟁의 전망으로 획득할 때에만 가능하다. 그리고 이것은 대단히 힘든 일이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작년에 점령지에서 복무하기를 거부한 수백 명의 이스라엘 보안군 예비군들이 있었다는 사실에서 이 전망의 실현 가능성이 입증되고 있다. 지난 주 이들은 27명의 공군 조종사들을 동지로 맞이했다.

이스라엘 노동자들의 객관적 이해는 이스라엘 지배자들의 이해와 충돌한다. 이 점은 작년에 허다하게 입증되었다. 사회를 지배하는 경상비용을 줄이기 위해 그리고 기술 관련 주식 거품의 붕괴와 관광산업 붕괴가 동시에 초래한 경기 침체를 소생시키기 위해 샤론 정부는 일자리, 사회 보장 혜택, 봉급 등을 감축해왔다. 2003년 3월 50만 명의 이스라엘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하여 전직 수상이었으며 현재 재무장관인 벤야민 네탄야후의 특히 악독한 긴축 조치를 최소한 일시적으로나마 저지시켰다. 이로써 시온주의 국수주의와 영토 확장이 이스라엘 지배계급과 노동계급 사이의 깊은 골을 제거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확연히 드러났다.

유럽 출신의 유태인들과 아랍 출신 유태인 사이의 갈등도 존재한다. 거무스름한 피부의 세르파디 유태인들은 여당인 우익 리쿠드당의 대중적 기반이 되고 있는데 교육 수준도 비교적 낮고 임금이 싼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에 의해 직접적으로 위협받고 있는 저임금 직종에 종사하고 있다. 이들은 진정 불만이 높다. 그러나 이들의 불만은 대체로 아랍인에 대한 증오심으로 발산되어왔다. 마치 미국의 가난한 백인이 케이케이케이 단의 대중적 기초인 것과 같다.

샤스, 민족종교당 그리고 기타 유태교 근본주의 조직들은 이스라엘 의회 내부의 역관계를 결정해왔다. 그러나 이들은 회교 근본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여성에 대한 억압을 당연시하고 있으며 동성애자들의 동등한 권리를 단호히 거부할 뿐 아니라 남녀공학과 여성의 낙태 권리를 반대한다. 이들은 유태인 여성들이 가능한 한 많이 아기를 낳아서 "에레츠 이스라엘"을 차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성경에 나오는 지도에 따르면 이 지역은 나일강에서 유프라테스강까지 즉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의 상당 부분 그리고 쿠웨이트, 요르단, 시리아의 전체를 포괄하고 있다.

유태교 광신도가 대부분인 팔레스타인 점령지 정착자들은 매년 평균 1만 달러의 지원금을 정부로부터 받는다. 이 때문에 근본주의자가 아닌 보통 이스라엘인 납세자들은 크게 분노하고 있다. 종교와 무관한 이스라엘인들은 근본주의 소수가 다수인 자신들에게 유태교를 강요하는 것을 역겨워하고 있다.

 

유태인과 아랍인의 대립이 아니라 계급 대 계급의 대립 전선을!

팔레스타인 아랍인들과 이스라엘 유태인들은 좁은 땅덩어리를 서로 자기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이 문제의 근원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없애야 진정으로 자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시온주의자들의 자유주의 분파와 좌익의 개량주의자들은 이렇게 주장해왔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서 철수만 하면 팔레스타인 인민은 두 쪽으로 나뉘진 아주 작은 자기 영토에서 "자결권"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지배계급은 노동당 분파든 리코드당 분파든 이렇게 할 의사가 전혀 없다. 팔레스타인 인민 6백만과 유태인 4백5십만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소수인 유태인들에게 영토의 5분의 4가 주어지고 다수인 팔레스타인 인민에게 척박하고 가난한 나머지 부분이 주어진다고 문제가 장기적으로 하나라도 해결되겠는가! 이스라엘인들은 팔레스타인 인민으로부터 도둑질한 영토를 계속 보유할 권리가 없다. 그러나 맑스주의자들은 유태인의 이스라엘도 민족국가로 존재할 불가침의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사민주의 좌파인 국제사회주의자들을 비롯한 다수의 좌익 조직들은 노동자 혁명이 머나먼 전망이므로 좀더 실제적인 접근을 하여 자본주의 체제에서 이 문제가 공정하게 해결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캐나다에서 발행되는 국제사회주의자 신문인 [사회주의 노동자]의 2002년 8월 14일 기사는 이렇게 주장한다:

"진정한 평화안의 목표는 단 하나의 민주적 세속 국가이다. 여기에서 모든 종교와 문화는 자유롭게 표현되고 정치는 공정하고 공개적인 선거에 기초하여 운영될 수 있다."

아주 그럴싸하게 들린다. 모든 것이 공정하고 확실한 "민주적 세속적 (자본주의) 정부"만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주의가 무슨 필요가 있는가? 캐나다의 신민주당이든 국제사회주의자들이든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사악한 제국주의자들에게 충분히 압력을 가하여 이들이 공정하게 게임을 하고 친구가 되게 만들면 자본주의 체제의 비이성적 질서가 극복될 수 있다고 상상한다. 제국주의 국가들은 왜 서로 경쟁하는가? 계급투쟁은 왜 존재하는가? 사자와 어린양들이 같이 풀밭에 누워서 잘 지내면 더 좋지 않은가? 그러나 자본주의는 서로를 잡아먹는 체제이다. 지난 500년 동안의 역사는 자본주의 강도들 사이에서 세계가 분할되고 재분할된 끊임없는 투쟁의 역사였다. 1848년 [공산당 선언]을 통해 맑스와 엥겔스는 자본주의의 핵심적 성격들을 아주 명확하게 제시했다.

쿠르드족의 민족자결권, 여성해방, 완전고용, 모두가 누리는 의료 서비스 등 모든 좋은 것들을 위한 전제조건은 중동지역에서 제국주의 세력을 뿌리째 뽑고 중동사회주의연방을 수립하는 것이다. 서로 경쟁하는 부르주아 계급들과는 달리 모든 나라의 노동계급은 평등주의를 증진하고 민족 갈등을 해소해야 하는 객관적 이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연속혁명의 강령에 기초하여 인종주의적인 이스라엘의 시온주의 지배자 뿐 아니라 아랍세계의 회교 반동들, 왕당파, 보나파르트 독재자 등에 대해서도 비타협적으로 투쟁하는 레닌주의-트로츠키주의 정당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정당의 지도를 받을 때에만 노동계급은 국가권력을 장악할 수 있다.

이 정당을 건설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불가능하지도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깃발에 "유태인과 아랍인의 대결이 아니라 계급 대 계급의 대립 전선을!"이라는 구호를 새긴 정당만이 진보적 방식으로 도저히 해결될 것 같아 보이지 않는 중동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

[1917] No. 26: Defend the Palestinia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