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와 인종주의

 

현대 사회에 만연한 인종적 편견과 갈등은 인간사회에 영원히 존재해온 특징이 아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인종”이라는 개념 자체와 인종주의 이데올로기/행위는 비교적 현대에 등장했다.

이데올로기로서 인종주의는 생물적 결정론의 한 형태이다. 이것은 각기 다른 인구(“인종”)가 유전적 구성이 다르기 때문에 능력도 다르다는 사고를 전제하고 있다. 이렇게 특정 인구집단을 범주화하는 이유는 사회의 위계질서를 정당화시키기 위해서 이다.

인간 내부에 “인종”을 구분하는 사고는 신체적 특징과 무관한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지난 50년에 걸쳐 생물학자들은 이렇게 결론 내렸다: 인간을 “인종”으로 범주화시킬 수 있는 과학적 수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소위 유럽 인종, 아프리카 인종, 아시아 인종이라는 것은 사실은 피부색이나 기타 부차적인 신체적 특징을 가지고 인간을 자의적으로 구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인간은 유전자의 75%를 공유한다는 것이 유전학자들의 결론이다. 유전적 차이를 나타내는 나머지 25%의 유전자 가운데:

“85%는 같은 지역민, 부족, 민족 내부의 개인들 사이에 존재한다. 그리고 8%는 주요 ‘인종집단’ 내부의 부족이나 민족 사이에 존재한다. 이것들을 제외한 나머지 7%만이 주요 ‘인종집단’ 사이에 존재한다. 이것은 스페인 사람들  내부 또는 마사이족 사람들 내부의 유전적 차이가 인간의 모든 유전적 차이의 85%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우리의 유전자 안에는 없다], 스티븐 로우즈 외 공저  

우리 사회에서 외국인 혐오증이나 인종주의는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들은 순전히 사회적으로 조성된 것이다. 밴 아켈은 이렇게 적고 있다:

“유전과 인종주의는 서로 배치된다. 예를 들어 파란색 눈동자와 금발은 퇴행적 특성을 살리려는 자연도태의 결과일 뿐이다. 따라서 북유럽 인종이라는 개념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햇빛이 부족한 지역에서는 영양공급이 부족할 경우 피부색이 짙은 사람일수록 구루병에 걸릴 위험성이 커진다. 이 병에 걸리면 여성은 골반 뼈가 뒤틀려 애를 낳을 수 없다. 따라서 북유럽 사람들이 피부색이 흰 것은 진화에 의한 우연한 변화가 자연스럽게 살아남은 현상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것은 다른 유전적 특성들을 전혀 변화시키지 않는다. 유전적으로 결정된 동일 혈액형 집단이나 벤젠을 맛볼 수 있는 능력 등은 피부색이나 머리털 모양처럼 인종을 분류할 수 있는 좋은 기준이 될 수 있다. 다만 이렇게 될 경우 인류의 ‘인종적’ 분포도는 근본적으로 바뀔 것이다.” --- [인종주의와 식민주의], 로버트 로스 외

 

인종: 사회적 현실

한 “인종”을 다른 인종과 구분시킬 과학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인종이라는 개념 자체는 무의미하다. 그러나 생물학적으로 인종 개념을 부인하더라도 인종차별이라는 사회 현실은 그대로 존재한다. 미국의 고참 트로츠키주의자 리처드 프레이저는 1950년대에 쓴 논문 “흑인의 투쟁과 노동계급 혁명”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생물학은 인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러나 착취의 근간인 인종은 현실로 존재한다. 인종은 사회적 관계이며 사회적 현실일 뿐이다.”

인종주의는 세계체제인 자본주의의 발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인종주의는 수백 년에 걸쳐 유산계급들의 사회 지배에 유용하며 신축성 있는 도구가 되어왔다. 이것은 유럽의 식민지 제국들을 확립시킨 잔인한 정복 전쟁과 인종학살을 정당화시켰다. 또한 산업혁명에 필요한 자본의 본원적 축적을 위해 노예무역을 합리화시켰다.

오늘날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인종주의는 자본주의 지배계급의 중요한 이데올로기적 지주이다. 이것은 소수인종들에 대한 야만적 억압의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인종주의는 미국의 흑인들이 지금까지 계속해서 “아메리칸 드림”을 성취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한다”. 또한 일본의 자본가들이 유럽과 북미의 자본가들보다 더 성공하는 이유들을 “설명하는”데 사용된다. 룸펜 스킨헤드의 정신병자 같은 헛소리부터 하버드 대학교 교수의 사이비 과학에 입각한 연구에 이르기까지 인종주의자들의 주장들은 대중의 분노를 쇠퇴하고 있는 비합리적 자본주의가 아니라 “이방인” 집단에 향하도록 만든다.

인종주의는 여러 가지 이유로 자본주의 사회의 적절한 기능을 위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우선 인종주의는 노동계급을 분열시키는 주요한 중심축의 하나이다. 노동계급의 일정 부위가 자신을 착취하는 지배계급과 같은 이해를 가지고 있다는 환상을 갖도록 하기 위해 인종주의가 동원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대중의 계급의식이 발전을 저지 당하고 이들이 자본주의 계급 지배에 도전하는데 필요한 계급적 단결이 침식당한다.

모든 제국주의 국가들의 노동계급은 국수주의와 인종주의로 찌들어서 “정상적인” 시기에 자신의 이해가 타국 노동자들의 이해가 아니라 “자신의” 착취자들의 이해와 같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노동운동 내부의 친(親)자본주의 관료 지도부에 의해 증진되었다.

둘째로 생물 결정론의 다른 형태들과 공통으로 인종주의는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핵심적으로 가지고 있다. 부르주아 계급은 “자유, 평등, 박애”의 깃발 아래 사회의 지배계급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수억의 인민들에게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일상적 현실은 고통, 억압, 빈곤의 연속이다. 심지어 소위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에서도 선거제도에 대한 냉소가 커지고 있다. 성인들 대부분은 투표함에서의 “평등”은 시장의 “평등”과 다를 바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즉 돈을 많이 가진 자들이 모든 권력과 부를 휘두른다는 사실이 자명해지고 있다. 인종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사회가 평등하다는 점을 증명해야할 부담이 없다. 대신 이들은 계급 사회의 불평등은 타고난 특성 즉 인종에 따라 정해진다고 공공연히 주장한다.

 

인종주의의 역사

인종주의의 기원은 하나가 아니다. 역사 발전의 여러 갈래들이 결합하여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 인종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발전했기 때문이다. 인종주의는 기존의 문화적 민족적 편견들, 자연과 위계질서에 대한 전(前)자본주의적 사고들을 끌어들여 새로운 경제적 사회적 현실에 서서히 적용시켰다.

고대 지중해 문명은 “색을 구별하지 않았다”는 의견이 널리 존재해왔다: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은 노란 머리카락이나 파란 눈동자 등이 지리적 우연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피부색이 더 검은 민족들의 열등성에 대한 특별한 인종주의 이론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현대인은 과거와는 달리 인종에 집착하고 있다’고 샤피로는 주목한다. 그리고 초기 사회에서 명백한 신체적 차이는 ‘엄격한 기준 내에서 인간관계를 정교하게 규정’하지 않았다고 그는 지적한다.”--- 프랭크 스노우든 주니어 저 [고대의 흑인들], 1970년

고대 노예제 사회는 억압적이었으며 종종 외국인을 혐오했다. 그러나 지금 일반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인종” 개념은 이들에게 이질적이었다. 이 사회에서 노예는 피부색이 아니라 주로 군사적 운에 의해 정해졌다. 정복당한 인민들은 노예로 전락했다.

중세 유럽의 통치자들도 대체로 “피부색을 구별하지 않았다.” 이 시대에는 종교가 모든 것의 기준이 되었다. 십자군 전쟁은 아랍인들이 아니라 이교도들에게 가해졌다. “이교도들”과 이단자들에 대한 이와 비슷한 전쟁들이 유럽 전역에서 벌어졌다. 예를 들어 13세기에서 15세기까지 튜튼족 기사들은 기독교를 믿지 않는 슬라브족 계열인 발트해의 프로이센인들을 공격했으며 교황 이노센트 3세는 종교개혁을 주창한 남프랑스의 알비파를 정벌했다.

 

유태인 박해: 인종주의의 선구

인종주의의 선구 격인 유태인 박해는 중세 사회 내에서 태동하고 있던 자본가 계급의 경제적 이해를 표현한 이데올로기였다. 봉건제 유럽의 초기에 국제무역은 대체로 근동과 상업적 관계들을 유지하고 있던 유태인들의 독무대였다. 그러나 12세기가 되면 유태인 상인들은 기독교 상인들에 의해 밀려나서 대금업과 여타 주변적인 활동에 종사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고리대금”이란 말은 기독교 상인들이 맘대로 끌어 쓸 수 없는 돈을 쥔 유태인들에 대한 비방이었다. 나치의 유태인 학살 기간에 사망한 벨기에의 청년 트로츠키주의 투사 애브럼 레온은 유태인 박해가 중세 봉건사회 내에서 자본주의 경제가 성장하면서 일어난 현상임을 주목했다:

“영국에서는 13세기말, 프랑스에서는 14세기말, 스페인에서는 15세기말에 유태인들은 철저히 추방당했다. 시간대의 차이는 각 나라의 경제발전 속도를 반영한다....

봉건체제는 빠른 속도로 상품교환의 경제체제로 이행한다. 이 결과 유태인의 고리대금업의 영역은 끊임없이 축소된다. 이 활동의 필요성이 더욱 적어짐에 따라 이것은 더욱 인정할 수 없게 된다. (....)

유태인들은 서구 국가들로부터 급격히 추방당하고 있었다. 선진 서구에서 후진 동구로 유태인은 대대적으로 이동했다. 봉건체제의 혼란에 깊이 빠져있던 폴란드가 다른 나라들에서 추방당한 유태인들의 가장 중심적 피난처가 되었다.”--- 애브럼 레온 저, [유태인 문제: 맑스주의적 해석]

인종주의의 지속적 형태가 된 유태인 박해는 이후의 거의 모든 인종주의 형태들을 배양했으며 이것들에 의해 배양되기도 했다. 이로써 유럽의 식민지 팽창 시대에 일반화된 세계관인 인종주의가 진화를 거듭했다.

엘리자베스 1세 치하의 영국에서 인종주의는 부분적으로만 발전했다. 인종에 대한 셰익스피어의 애매한 태도에 이것이 반영되고 있다. [베니스의 상인]에서 유태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악당으로 나온다. 흑인 무어족 오델로는 명확성, 지성, 성찰력을 가진 인간으로 호의적으로 묘사된다. 오델로의 몰락이 열정적이며 급변하는 무어족의 성격 탓이라는 암시가 있다. 그러나 이 암시는 그의 좀더 복잡한 성격 묘사와 균형을 이루고 있다:

“이 불행한 행위들을 전할 때

나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시오; 정상을 참작하지도 말고,

악의로 비방하지도 마시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요.

오델로는 지혜롭게 사랑한 것이 아니라 너무 과도하게 사랑했소;

쉽게 시기심에 사로잡히지는 않았으나 일단 한번 시기하면

극단적으로 시기한 인간이었소; 그의 손은 자기 부족의 모든

재산보다 값비싼 진주를 천한 인도인처럼 내던져 버렸소....“

--- [오델로], 제 5막 제 2장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작가라면 오델로와 같은 복잡한 성격의 흑인을 창조할 수 없었다. 판에 박힌 성격 묘사들은 극단적으로 비하하는 내용을 담고 있거나 아량을 베풀 경우 상대적으로 동정적이었다. 그러나 이것들은 한결 같이 “인종”이나 개인이나 생물적 특성이 운명을 결정한다고 가정했다.

 

자본주의와 노예제도

19세기 중반이 되면 공공연한 인종주의는 주류 학계의 정설이 되었다. 유럽에서 인종주의 사고는 식민지의 팽창과 식민지 대농장을 위한 값싼 노동력에 대한 요구와 함께 일어났다. 신세계의 자원들을 착취하기 위해 부활한 노예제도는 미국의 경우 19세기 한참 뒤까지 지속되었다. 신세계에서 반(半)노예가 된 몇몇 유럽인들은 가벼운 범죄에 대한 징벌을 받으면서 시민권을 잃었다. 식민지 모국의 노동력이 노예노동의 수요를 충족시킬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이렇게 할 경우 사회적 갈등이 폭발할지도 모른다고 지배계급이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이 결과 유럽 농민들의 잉여 인구는 결국 임금 노예가 되었다. 대신 지울 수 없는 검은 피부색을 가진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신세계의 노동력 부족을 채웠다.

노예제도는 당연히 이데올로기로 정당화되어야 했다. 왜냐하면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자선의 의무 그리고 시장과 계몽주의 선전가들의 “천부인권”설은 노예제도와 양립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노예들은 경제적으로 열등한 지위에 있었다. 노예를 소유한 백인사회가 서서히 인종적 벽을 세웠다. 경멸을 당한 것은 노예 생산양식이 아니라 노예 자신이었다. 검은 피부색이 노예의 표상이 된 이유는 이것이 우선 열등한 인간의 표상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노예제도의 계급적 문제는 흑백 문제에 의해 복잡해졌고 혼란스러워졌다. 지배집단의 일그러진 사고에 의하면 노예들은 착취당하는 사회계급임과 동시에 열등 인종이었다.”--- 리처드 프레이저 저, [흑인의 투쟁과 노동계급 혁명]

이 새로운 인종주의 이데올로기가 등장한 정확한 날짜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16세기초부터 이런 사고들이 폭발적으로 증대했다는 것은 명백하다. 애슐리 만테규는 자신의 저서 [인간의 가장 위험한 미신: 인종에 대한 오류]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18세기까지 영국과 미국의 노예무역 상인들의 문서들을 연구하면 이 완고하고 빈틈없는 인간들은 자신들의 탐욕에 희생되고 있는 노예들이 자신들과 지적 수준이 동등하거나 모국의 많은 사람들보다 우수한 인간들이라는 믿음을 기록했다.

노예무역이 비인간적이라는 비난이 커지면서 영향력 있는 인물들과 조직들이 노예무역을 반대하고 나섰다. 이 때가 되어서야 노예제도 지지자들은 이에 대한 방어책으로 반대자들의 위험한 주장을 논박할 새로운 이유들을 찾아내야 했다.”

이 “이유들”의 영향력, 명료함, 정교함은 이후 몇 세기에 걸쳐 증대했다. 19세기가 되면 “인종”은 인간 역사의 핵심적 결정 요인으로 널리 인식되었다. 유럽 제국주의의 식민지 팽창은 신의 승인 또는 다윈의 어휘를 빌어 “자연법칙에 의한 선택”으로 설명되었다. 이렇게 하여 제국의 선전가들은 식민주의자들에게 자신감과 도덕적 확신을 심어주었다. 동시에 선교사들은 복음서의 말을 동원하여 흑인들에게 정복자들과 노예 사냥꾼들에게 “다른 쪽 뺨도 내주어라”고 주문했다. 이렇게 하여 흑인들의 저항의지는 제거되었다.

봉건 영주는 피부색이나 모발 모양으로 농노들을 구분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거대한 세계적 제국의 시대에 인종 구분은 세계를 논리적으로 해석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인종적 동질성과 순수성 그리고 미개 인종에 대한 백인의 임무는 고립되고 수도 훨씬 적은 백인 식민주의자들에게 “개척자 심성”을 제공하는 아주 중요한 개념이었다. 예를 들어 1890년에 3억이나 되는 인도인들은 겨우 7만 영국군의 호위를 받은 6천명의 영국인에 의해 통치를 받았다.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하면 인간적이며 용감하고 근면한 동시에 똑똑한 식민주의자들은 사악하고 겁이 많으며 게으르고 어리석은 것으로 묘사된 미개인들에게 현대문명의 혜택을 베풀었다. 가끔 긍정적으로 묘사되는 비(非)유럽인도 치명적인 약점과 선천적 결함을 필연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미국이 필리핀을 정복한 사건에 경의를 표하면서 루드야드 키플링은 자신의 유명한 1899년의 시에서 미국이 영국과 함께 행동할 것을 주문했다:

“백인의 무거운 임무를 지고

최상의 분자들을 세계로 내보내

우리의 아들들이 유형지로 나가

우리가 잡은 포로들의 필요를 충족시켜야 한다;

무거운 마구를 진 우리는 안절부절못하는 야생의 족속들을 시중든다

새로 잡힌 우리의 포로들은 반은 악마이고 반은 어린애 같은 말없는 자들이다.” 

 

1800년대의 ‘과학적’ 인종주의

19세기말에 “인간의 생물적 특성이 운명을 결정한다”는 명제는 과학적 정설이 되었다. 루이스 아가시즈, 새뮤얼 모튼, 로버트 낙스, 허버트 스펜서, 에른스트 헥켈 등은 인종의 위계 질서를 수립하는데 바빴다. 이들의 체계에 따르면 “유럽인” 또는 좀더 구체적으로 영국인, 독일인, 미국인 등 “앵글로-색슨족”이 최고로 우월한 인종이며 기타 “열등” 인종들이 피라미드의 아래쪽에 위치했다. 19세기 미국의 최고 동물학자인 하버드 대학교 교수 아가시즈는 이렇게 주장했다: “흑인의 뇌는 백인의 자궁에 있는 7개월 된 태아의 불완전한 뇌와 같다.” 골상학이나 두개골 측정법과 같은 사이비 과학이 판을 치면서 인종과 개인들 사이의 차이를 측정하고 계량화시켰다.

19세기 내내 인류의 기원과 생성에 대한 수많은 토론들이 가열되었다. 이 세기의 초반과 중반에 인류의 조상이 같다는 설과 “인종”에 따라 다르다는 설이 서로 충돌했다. 1926년까지만 해도 농촌의 해충으로 분류되어 전멸된 호주의 원주민 등 일부 인종들을 인간으로 분류할 수 있는 지에 대한 토론도 박식한 학회들에 의해 진행되었다. 이 세기의 말엽이 되면 토론의 관심은 딴 곳으로 흘렀다. “적자생존”이 판치는 자본주의의 이전투구식 생활양식이 어떻게 인류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지에 대한 사회진화론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었다.

호텐토트족에 대한 다음의 묘사는 1862년 경 “과학”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호텐토트라는 인종은 단순하고 허약한 족속이다. 이들은 소규모 그룹으로 아니 거의 가족을 이루고 살면서 꼬리가 뚱뚱한 양들을 돌보면서 꿈꾸듯이 삶을 보내고 있다. 지저분한 노란색을 피부로 가지고 있는 이들은 중국인과 약간 닮았지만 확실히 혈통은 다르다. 얼굴은 비비(baboon)를 닮았고 두개골은 작지만 성능은 좋다. 턱은 아주 크고 손발은 작다. 눈은 일자형이고 아주 힘이 있다. 대체로 잘생긴 얼굴이다. 그러나 결코 아름답지는 않고 나이가 들면 흉해 보인다. 아일랜드 여자들보다 더 게으르다. 그러나 이것은 잘 얘기해서 그렇다. 그리고 나머지 인류 전체와는 혈통이 다르고 전혀 별개의 족속이다.” --- 로버트 낙스 저, [인종들: 인종이 나라의 운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역사적 연구]

위에서 인용된 글 가운데 드러난 편견의 위계가 흥미롭다. 일반적으로 “백인”으로 간주되는 아일랜드 여성은 게으름의 기준이 되어 호텐토트족과 비교된다. 백인들 가운데에도 “인종”의 명확한 순위가 정해졌는데 일반적으로 “살결이 더 흰 인종들”은 “살결이 더 검은 인종들”을 지배하고 대체할 운명이라고 생각되었다: “이 하잘 것 없고 조그마한 불쌍한 인종인 호텐토트족이 진취적인 네덜란드인보다 지구상에서 먼저 사라질 것이라는 것은 자명했다....” 낙스 그리고 그와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인종이 역사의 결정적 요인인 것은 일종의 공리였다.

“인종적 우월성”의 위계와 “열등” 인종들의 운명인 멸종, 괴멸, 노예 상태, 동화 등에 대해 몇 세대에 걸쳐 과학계가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그러나 이 논쟁은 일부 극단적 광신 집단이 아니라 과학계 주류의 본업이었다. 공공연한 인종주의 사고가 문학, 예술, 철학, 역사 등 모든 지적 활동에 만연했다. 심지어는 가장 전투적인 노동운동의 부위도 이에 오염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의 다른 이데올로기와 마찬가지로 인종주의는 사회의 억압과 착취를 반영하면서도 그 원인과 결과를 거꾸로 제시한다. 이것은 역사적 기원이나 사회적 기능의 측면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만 존재한다. 그리고 자유시장 체제에서 필연일 수밖에 없는 고통과 불평등을 합리화시킨다. 노예가 되고 정복되고 박탈당한 인종주의의 희생자들은 비이성적 사회질서가 아니라 생물적으로 결정된 요인에 의해서 이런 운명을 겪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적 사회적 위계 질서를 이데올로기적으로 “동화시키는” 핵심적 수단 가운데 하나가 인종주의이다. 피라미드의 정점에는 통치에 가장 적합한 백인 자본가들이 아래를 굽어보고 있다. 여성, 흑인, 아시아인, 백인 남성 노동자 등은 이들이 거느리는 자식들에 해당한다. 인종주의와 남성 우월주의 사이에는 언제나 밀접한 관계가 존재해 왔다. 1869년에 인류학자 맥그리거 앨런은 이렇게 말했다: “여성의 해골 모양은 많은 측면에서 아기나 열등 인종들의 그것과 유사하다.” 이러한 태도들이 만연한 하나의 예로 [우리의 유전자 안에는 없다]의 저자들은 19세기의 가장 위대한 과학자 다윈의 말을 인용한다: “여성들이 뚜렷이 가지고 있는 특징들의 최소한 일부는 열등 인종들의 것이다.” 자유주의자들은 이러한 황당한 태도를 이 당시 과학의 후진성을 드러내는 증거라고 보고 지금은 이러한 극도의 무지가 극복되었다고 자위한다. 그러나 이들은 발전 단계마다 과학이 기존 사회질서의 편견들에 의해 규정된다는 사실을 보지 못한다.

 

...그리고 지금은

독일 나치의 잔악한 인종학살을 목격한 전세계 수백만 인구는 인종적 우월주의를 조금도 인정할 수 없다. 오늘날 주류 과학계는 인종을 사회적 편의에 의해 창조된 개념으로 보는 편이다. 지식인 사회에서 인종주의 주장을 “과학”으로 내세우는 자들은 동료들에 의해서 철저히 반박 당하고 있다. 조야한 인종주의 학자들이 수십 년 동안 학계의 주변부로 밀려났음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근거 없는 “이론들”이 정기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다.

1969년 [하버드 교육평론]지에 “지능지수와 학력 성취도를 얼마나 향상시킬 수 있는가”라는 제목의 논문을 아서 젠슨 교수가 기고했다. 이 글에서 그는 흑인들의 낮은 지능지수가 이들의 유전적 열등성의 증거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이 나온 직후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인 리처드 헌스타인은 이렇게 “발견했다”: 노동계급 전부는 지능지수가 낮다. 물론 그의 결론은 하버드 대학교 이사회에 참석하는 거대 자본가들과 백만장자들에게 기분이 좋은 소식이 되었다:

“과거의 특권계급들은 피억압 대중보다 생물적으로 그리 월등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때문에 혁명은 성공할 확률이 컸다. 계급들 사이의 인위적 장벽을 제거하는 대신 사회는 생물적 장벽을 조장했다. 일반 대중이 사회에서 자기들에게 합당한 지위를 차지할 수 있으면 상층 계급들로 정의된 세력은 하층 계급들보다 월등한 능력을 갖게 될 것이다.” --- [지능지수와 능력에 기초한 사회], 1973년

젠슨이나 헌스타인과 같은 논지를 편 영국의 심리학자 한스 아이세닉은 아시아인과 흑인들은 백인들보다 지능이 열등하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을 영국의 파시스트 정당 민족전선은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그리고 비(非)백인 이민자들에 대한 자신들의 캠페인이 “과학성”을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사회 생물학”은 이와 똑같은 인종주의적 미신을 대부분 재활용하고 있다. 다만 좀더 면밀하게 조작된 “객관적” 외피로 치장한 채 학계에서 널리 인정받고 있을 뿐이다.

 

누구에게 이익인가?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인종주의가 끈질기게 살아남는 주요한 이유는 이것이 자본주의 질서를 보존하고 합리화시키기 때문이다. 인종주의는 평등한 기회를 주장하는 민주적 이데올로기와 체계적인 차별, 편견, 억압이 온존하는 현실 사이의 노골적인 격차를 합리화한다. 비(非)백인 노동자, 이민 노동자, 여성 노동자 등에게 기준 이하의 임금을 지불하면서 개별 자본가들은 직접적으로 이익을 본다. 이러한 차별 행위를 생물적 결정론자들은 평등하지는 않지만 명백히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인정한다.

노동자들을 인종과 성으로 분열시키면서 자본가들은 백인 남성 노동자들이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환상을 유포한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보더라도 이 “특권”을 누리기 위해 백인 남성 노동자들이 치러야 하는  대가는 훨씬 크다. 노동계급이 분열되면서 임금이 전체적으로 하락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만연하면서 노동계급을 오염시키는 인종주의는 “자연스러운” 현상도 아니고 무지나 낮은 교육의 결과도 아니다. 동성연애자 박해, 성차별, 민족주의 등 차별적 태도는 부르주아 사회의 교육과 이데올로기 공세 등 온갖 수단들을 통해 노동계급 내부를 오염시키고 있다. 그리고 노동조합과 기타 노동자 대중 조직 내에서 기생하는 계급협조주의 배신자들은 열성적으로 인종주의를 주창하지 않을 경우에는 이것을 수동적으로 인정한다.

언젠가 맑스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흑인 노동이 족쇄에 채워지고 있는 이상 백인 노동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자신의 이해를 전진시키기 위해 노동계급은 모든 피억압 계층의 대의를 옹호해야한다. 흑인, 여성, 이민자 등이 자기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억압받기 때문에 자신이 이익을 본다고 상상하는 노동자들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셈이다.

또한 인종주의와 민족주의는 새로운 군사적 모험을 준비하면서 노동계급을 전쟁터의 총알밥 대포밥으로 내몬다.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의 긴장이 높아지면서 인종주의 편견들은 더욱 조장된다. 노동계급을 지도해야할 공식 지도자들이 “자국” 지배계급과 손을 잡아 외국의 경쟁자들에 대항하게 되면서 전세계적으로 외국인 배척운동이 상승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의 대중매체들은 조야하고 명백한 방식으로 일본을 인종주의적 편견으로 공격한다. 일본 노동자들은 아무 생각이 없는 로봇이 되어 삶의 즐거움을 망각하고 회사에 불쌍할 정도로 충성하고 있다고 묘사되고 있다. 한편 일본 자본가들은 북미 노동자들을 게으르고 궁핍하다고 묘사한다. 그리고 미국 자본주의가 쇠퇴하는 이유는 인종이 잡다하게 섞여있기 때문이라고 인종주의적으로 해석한다.

인종주의의 어리석음과 사악함을 폭로하는 것은 중요하고도 필요하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논의나 교육만으로 인종주의가 없어지지는 않는다. 인종주의는 자본주의 착취체제의 역사에서 분리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종주의에 대한 투쟁은 이것을 탄생시키고 유지시켜온 자본주의체제를 뿌리 뽑고 경쟁이 아니라 협동이 사회 규범이 되는 평등한 사회주의 세계질서를 수립하는 혁명투쟁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모두의 기본적 필요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합리적 계획경제체제에 기초한 이런 사회에서만 인종, 성, 국적과 무관하게 모든 인류가 자신의 잠재력을 완전히 발휘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사회주의 체제를 통해서만 인종적 편견과 차별은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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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pitalism & Racism]([1917] No.12,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