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전쟁에 대하여

(19379)

 

친애하는 디에고 리베라 동지

지난 며칠 동안 나는 중일전쟁과 스페인 내전에 대한 올러[Hugo Oehler (1903~1983) 미국 공산주의자. 1934년 제임스 캐넌, 맥스 색트먼 등과 미국사회주의노동자당을 창립했으나 사회당 입당전술에 종파주의적으로 반대하다가 출당됨]주의자들과 아이펠[Paul Eiffel 독일 망명 정치인. 올러와 함께 출당했다가 다시 분립함]주의자들(그런 정파가 있어요!)의 노작을 읽었습니다. 레닌은 이런 분들의 사상을 소아병이라고 불렀지요[레닌의 1920년 저작 공산주의 좌파 소아병]. 병든 어린아이는 동정을 표할 겁니다. 그러나 그 후로 20년이 흘렀습니다. 그 어린아이는 수염이 났고 머리도 벗겨질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소아병적 옹알이를 그치지 않는군요. 그와 반대로 그들은 더 많은 잘못을 하고 바보 같은 짓을 10배로 늘렸으며 치욕적인 모습을 더했습니다. 그들은 아장아장 우리를 뒤쫓습니다. 우리의 분석내용 일부를 빌립니다. 그들은 그 일부를 한정 없이 비틀고 그것을 나머지 내용들에 맞세웁니다. 그들은 우리를 교정하려 듭니다. 우리가 사람을 그리면 그들은 그것을 비틀어 기형으로 만듭니다. 여자를 그리면 그 여자의 얼굴에 짙은 수염을 그려 넣습니다. 수탉을 그리면 그들은 그 아래에 달걀을 그려 넣습니다. 그러고선 우스꽝스러운 그것을 맑스주의이고 레닌주의라고 부릅니다.

이 편지에서 나는 중일전쟁만을 다루고자 합니다. 부르주아 언론에 실린 선언에서, 나는 중국의 모든 노동조직들의 임무는 일본에 맞선 지금의 전쟁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단 한 순간도 그들의 강령과 독립적 활동을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이펠주의자들은 그것은 사회애국주의이다!”라고 외칩니다. “그것은 장개석에 대한 굴복이다. 볼셰비키주의는 제국주의 전쟁에서 혁명적 패배주의를 주창했다.”라고 외칩니다. 지금 벌어지는 스페인 전쟁과 중일전쟁은 모두 제국주의 전쟁입니다. “중국의 전쟁에서 우리 입장은 같다. 중국 노동자 농민을 구원할 유일한 길은 독립적으로 두 군대와 맞서 싸우는 것이다. 중국군에 맞서 싸우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일본군에 맞서 싸워야 한다.” 1937910일 아이펠주의자의 글에서 따온 이 문장들만 보더라도 그들은 진정한 배신자이거나 아니면 완전한 멍청이들이다.’라고 말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런데 멍청한 정도가 심하면 그것은 배신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는 모든 전쟁들을 똑같이 다루지 않고 그런 적도 없습니다. 맑스와 엥겔스는 대영제국에 맞선 아일랜드의 혁명 투쟁과 차르 러시아에 맞선 폴란드의 투쟁을, 두 민족주의 전쟁의 지도자들 대부분 부르주아지들이고 심지어 어느 경우엔 봉건 귀족이거나 가톨릭 반동들인 것에 개의치 않고, 지지했습니다. 압델 크림[Abd el-Krim (1881~1963) 리피안 정치군사 지도자. 프랑스와 스페인 제국주의 침략자들에 맞서 북 모로크 지역에서 게릴라투쟁을 펼침.]이 프랑스에 맞섰을 때, 민주당과 사회민주당은 민주주의에 대항하는 야만적 폭군의 투쟁에 대한 혐오를 드러냈습니다. 레옹 블룸[André Léon Blum (1872~1950) 프랑스 사회당 당수. 1936 수립된 인민전선 내각의 수상.]의 당은 이러한 관점을 지지합니다. 그러나 맑스주의자이자 볼셰비키인 우리는 프랑스 제국주의 지배에 맞선 리프족[Riffian, 북아프리카 나일유역 서쪽에 거주하는 원주민.]의 투쟁을 진보적 전쟁이라고 규정합니다. 제국주의 나라와 인류 절대다수를 이루는 식민지/()식민지 국가들을 구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레닌은 수백 페이지를 썼습니다. 착취자와 피착취 국가들을 구별하지 않고 혁명적 패배주의를 일반화하는 것은 볼셰비키주의를 심각하게 희화화하는 것이고 그러한 희화화를 통해 제국주의의 시중을 드는 것입니다.

극동에서 우리는 전형적 사례를 봅니다. 중국은, 바로 우리들이 뻔히 지켜보는 가운데, 일본이 자신의 식민지로 만들려고 하는 반식민지 나라입니다. 일본의 전쟁은 제국주의적이고 반동적입니다. 중국의 전쟁은 해방을 위한 것이고 진보적입니다.

그러나 장개석은? 맑스와 엥겔스가 아일랜드와 폴란드 지배계급에 어떠한 환상도 가지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장개석과 그의 당 또는 중국 지배계급 전체에 대해 어떠한 환상도 가져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오늘 그는, 스스로의 의지와 무관하게, 남은 중국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 일본과의 싸움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아마도 내일 배신할지 모릅니다. 가능성이 있으며 아마 그럴 겁니다. 심지어 필연적입니다. 그러나 그는 오늘 싸우고 있습니다. 오직 겁쟁이나 무뢰한 또는 완전한 멍청이들만이 이 싸움에 참여하기를 거부할 수 있습니다.

그 문제를 분명히 하기 위해 파업을 예로 들어봅시다. 우리는 파업이라고 해서 모든 파업을 지지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흑인, 중국인 또는 일본인 노동자를 공장에서 배제하자고 주장하는 파업이라면, 우리는 그 파업에 반대합니다. 그러나 만약 그 파업이 노동조건의 개선을 위한 것이라면 우리는 그 지도부가 누구냐에 상관없이 제일 먼저 그 파업에 참가할 것입니다. 대부분의 파업에서 그 지도자들은 개량주의자이거나 직업적 배신자이거나 자본의 하수인입니다. 그들은 모든 파업을 반대합니다. 그러나 가끔은 대중의 압력으로 인해 또는 객관적 상황에 떠밀려 투쟁의 길에 나서기도 합니다.

노동자가 자기 스스로 나는 지도부가 자본의 하수인이므로 파업에 참가하지 않을거야.”라고 말했다고 상상해 봅시다. 파업 파괴자, 이것이 이 극좌적 멍청이의 정책에 붙여줄 진짜 이름입니다. 중일전쟁의 경우도 완전히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이 제국주의 국가이고 중국이 제국주의 희생자인 상황에서 우리는 중국을 지지합니다. 일본의 애국주의는 세계를 상대로 한 강도행각을 감추는 가면에 지나지 않습니다. 중국 애국주의는 정당하고 진보적입니다. 그 둘을 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리고 사회애국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레닌을 단 한 줄도 읽지 않은 자들이나 할 소리입니다. 제국주의 전쟁에서 볼셰비키들이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 그리고 맑스주의의 가르침을 값싸게 팔아치우거나 타협하려는 자들이나 할 소리입니다. 사회애국주의자들이 국제주의자들을 적의 하수인이라고 규정한다고 들어온 아이펠주의자들은 우리에게 당신들은 같은 짓을 하고 있어.”라고 말합니다. 두 제국주의 나라 사이의 전쟁에서 민주주의냐 또는 국가의 독립이냐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후진적인 비제국주의 인민들을 억압할 권리를 둘러싼 전쟁입니다. 그와 같은 전쟁에서 두 나라는 같은 역사적 이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본의 승리는 중국의 노예화와 중국 경제와 사회 발전의 종료를 의미합니다. 그와 반대로 중국의 승리는 일본의 사회혁명을 낳을 것입니다. 또한 중국 계급투쟁이 외부 압력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발전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장개석이 승리를 보장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싸움을 시작하고 그것을 지금 이끄는 자는 그입니다. 그를 끌어내리기 위해 프롤레타리아와 군대 내에서 결정적 영향력을 끌어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허공에 떠도는 부유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투쟁의 한 가운데로 뛰어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외세 침략에 맞선 군사투쟁 속에서 명망과 영향력을 얻어내어야 합니다. 약점과 부족한 점 그리고 내부 배신에 맞선 정치투쟁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미리 정할 수 없는 어떤 지점에서는, 이 정치반대파는 무장투쟁에 뛰어들어야 하고 그럴 수밖에 없을 때가 있습니다. 내전은 전쟁 일반과 마찬가지로 정치투쟁의 연장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치적 반대를 언제 어떻게 무장 봉기로 전환할지를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1925~27년 중국 혁명 동안 우리는 코민테른의 정책을 비판했습니다. 왜였나요? 그 이유를 잘 알아야 합니다. 불쌍한 어떤 친구들은 1925~27년 동안의 우리의 노선을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제국주의 외세의 하수인인 북부 군벌들에 맞선 남부 부르주아지와 소부르주아의 전쟁에 공산당이 참여할 의무를 우리는 전혀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공산당과 국민당의 군사동맹 필요성을 전혀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그와 반대로 우리는 제일 먼저 그것을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공산당의 정치적이고 조직적인 독립 유지를 요구했습니다. , 제국주의 외세에 맞선 민족전쟁에서처럼, 제국주의 국내 하수인에 맞선 내전 동안 노동계급은, 한편으로 군사투쟁 전선에 참여하면서, 동시에 부르주아지의 타도를 정치적으로 준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같은 정책을 고수합니다. 우리 노선은 조금치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한편 올러주의자와 아이펠주의자는 1925~27 시기나 오늘이나 우리 노선을 단 한치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도쿄와 난징[장개석이 수립한 중국정부. 1949년 내전에서 공산당에 패배하기까지 지속] 사이의 최근 갈등이 시작될 때 부르주아 언론에 실린 선언에서, 나는 무엇보다도 혁명적 노동자들이 제국주의 압제자들에 맞선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무엇보다도 그것은 맑스주의 관점에서 옳기 때문이고, 두 번째로 중국에 있는 우리 동지들 안전의 관점에서도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스페인에서는 네그린[(1892~1956) 스페인 내전시기 인민전선 정부의 수상]과 손잡고 있고) 중국에선 국민당과 손잡고 있는 게페우는 내일이면 우리의 중국 동지들이 일본의 하수인 그리고 패배주의자들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진독수[천두슈 (1879~1942) : 중국 공산당의 창건 주도. 1927년 상해 봉기 시기에 모스크바의 무장해제 지시에 반대하였으나 결국 굴복하였다. 그 결과 상해의 노동자들과 공산당 투사들은 국민당 군대에 의해 학살당하였으며, 이 재앙적 결과에 대한 책임은 진독수를 비롯한 중국 공산당 지도부에게 전가되었으며, 결국 진독수는 당에서 축출되었다. 이후 좌익반대파와 접촉하면서 1927년 중국 혁명의 실패 원인을 올바르게 규명한 트로츠키주의로 획득되었다. 중국 트로츠키주의 운동의 지도적인 인물로 활동하였으나, 이후 소련을 노동자국가로 규정하기를 거부하고 소련 방어도 거부하면서 트로츠키주의 운동에서 이탈하였다.]를 위시한 그들 중 최상분자는 위태해지고 살해당할 것입니다. 4인터내셔널이 일본에 맞서 중국 편에 선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 강령과 독립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도 추가해야 합니다.

아이펠주의 멍청이들은 이러한 정책을 조롱하려 듭니다. “트로츠키주의자는 말로는 프롤레타리아에 복무한다고 하면서 행동으로는 장개석에 충성한다.”라고 그들은 말합니다. 적극적이고 의식적으로 전쟁에 참여하는 것은 장개석에 충성하는것이 아닙니다. 장개석에도 불구하고, 식민지의 독립에 복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국민당에 반대하는 선전은 장개석 타도를 교육하는 방편입니다. 불행하게도 그가 독립 전쟁의 지휘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장개석의 지휘 아래 참가하는 군사투쟁 속에서 장개석의 타도를 정치적으로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유일한 혁명 노선입니다. 아이펠주의자들은 계급투쟁노선에 민족주의적이고 사회 애국주의적노선을 맞세웁니다. 레닌은 이 추상적이고 아무 쓸모없는 반대에 맞서 한평생을 싸웠습니다. 그에게 세계 노동계급의 이해는 제국주의에 맞선 민족적이고 애국적 전쟁에 나선 피억압인민을 원조하는 것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세계대전 이후 4반세기가 흐르고 10월 혁명이 일어난 지 20년이 지났음에도 아직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은 혁명 전위에 의해 최악의 적으로 가차 없이 내쳐져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아이펠과 그 부류에 정확히 해당되는 것입니다!

레온 트로츠키

원문: https://www.marxists.org/archive/trotsky/1937/10/sino.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