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츠키의 반파시즘 투쟁

<차례>

패스파인더 출판사 편집자의 서문

1. 코민테른의 전술 전환과 독일의 상황 (1930 9 26 )

2. 텔만과 " 인민혁명 "(1931 4 )

3. 노동계급에 의한 생산의 통제 (1931 8 20 )

4. 공장위원회 그리고 노동계급에 의한 생산의 통제 (1931 9 12 )

5. 민족주의적 공산주의에 대항하며 (" 적색 주민투표 " 의 교훈 )(1931 8 25 )

6. 독일 , 국제정세의 열쇠 (1931 11 26 )

7. 반파시즘 노동자 공동전선을 위하여 (1931 12 8 )

8. 다음에는 무슨 행동을 할 것인가 : 독일 노동계급의 운명이 걸린 문제들 (1932 1 27 )

서문

1. 사민당

2. 민주주의와 파시즘

3. 관료적 최후통첩

4. 공동전선 문제에 대한 스탈린의 좌충우돌

5. 공동전선에 대한 역사적 검토

6. 러시아의 경험이 남긴 교훈

7. 이탈리아의 경험이 남긴 교훈

8. 공동전선을 통해 -- 공동전선의 최고기관인 소비에트로

9. 독일사회주의노동자당 (SAP)

10. " 일반적인 " 중도주의와 스탈린 관료집단의 중도주의

11. 소련의 경제 성공과 체제 관료화 사이의 모순

12. 브란틀러 그룹과 스탈린주의 관료집단

13. 파업 전략

14. 노동자에 의한 생산의 통제와 소련과의 경제 협력

15. 가망이 없는 것일까?

결론

 

편집자 서문

제 1차 세계대전은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성공으로 그리고 1년 후 독일 혁명의 실패로 이어졌다. 이 두 혁명의 결과와 상호관계를 해명하면 1930년부터 1933년까지 독일의 상황 뿐 아니라 이 시기 트로츠키의 저작들 역시 좀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러시아 혁명의 성공에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었다. 그러나 레닌과 트로츠키가 주도한 볼셰비키당이 혁명을 지도하지 못했다면 혁명은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와 정반대의 경우가 독일 혁명이다. 1918년 11월 독일 혁명이 일어났을 때 카알 리이프크네히트와 로자 룩셈부르크가 주도한 스파르타쿠스동맹은 혁명정당의 기초를 건설하고 있을 뿐이었다.

러시아 혁명은 자본주의를 타도하고 노동자국가를 수립했다. 그리고 볼셰비키당의 주도로 제 3 인터내셔널(약칭 코민테른)이 수립되어 전세계에서 자본주의 타도 투쟁을 조직했다. 그리고 1914년 자국 자본가 계급의 제국주의 전쟁을 지지하여 세계 노동계급을 배신한 제 2 인터내셔널 정당들에 대한 투쟁을 지도했다.

독일 혁명은 독일사회민주당(SPD) 때문에 패배했다. 제 2 인터내셔널의 중심적 지부인 이 부르조아 노동자 정당은 자본가 계급 및 군대와 결탁하여 자유대(Freikorps)와 여타 반동 테러집단이 혁명세력을 도살하도록 앞장섰다. 국가사회주의당 즉 나찌당의 간부들은 사민당 지도자들이 지원한 이들 반동 테러집단 출신이었다.

독일 왕정은 1919년 붕괴되고 바이마르 공화국 체제가 들어섰다. 공화국 헌법은 노동계급에게 민주주의와 복지 등에서 양보 조치들을 허용했으나 자본주의와 군국주의 세력을 온존시켰다. 전쟁 전에 야당이었던 사민당은 전쟁 후에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여당이 되었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첫 내각은 사민당 주도로 카톨릭중앙당과 독일민주당이 결합한 연립내각이었다. 이 내각의 수상은 사민당 지도자 필립 샤이데만 이었다.

당시 러시아 볼셰비키당의 혁명 전망은 국제주의에 입각해 있었다. 즉 혁명이 유럽 여러 나라 특히 선진공업국 독일 등에서 성공하지 않으면 러시아의 노동자국가의 생존이 결국에는 불가능한 것으로 전망되었다. 따라서 1924년 레닌 사후 정권을 장악한 뒤 스탈린이 제창한 일국사회주의 이론은 맑스주의와는 전혀 무관한 소부르조아 민족주의 사상의 변종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 독일 정세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1919년 제국의회(Reichstag) 선거에서 유권자의 45%는 자칭 맑스주의 정당들에게 표를 던졌다. 그러나 1918년 전쟁이 끝난 후 1921년까지 여러 번 기회가 있었으나 혁명은 성공하지 못했다. 이 결과 러시아 소비에트공화국은 내전과 제국주의 간섭전쟁 등을 겪으면서 국제적으로 고립되었으며 경제는 붕괴되었다. 이제 러시아 노동계급은 극도의 탈진상태에 빠졌으며 혁명 전위는 전멸되었다.

1921년이 지나면서 혁명의 국제적 확산은 비교적 먼 미래의 과제로 인정될 수밖에 없었다. 경제를 소생시키고 시간을 벌기 위해 러시아 소비에트 지도자들은 신경제정책(NEP)으로 후퇴했다. 그리고 코민테른은 공동전선 전술을 주창했다. 사민당보다 공산당의 세력이 약한 곳 특히 독일에서 공산당은 역량을 강화시키면서 미래 혁명의 상승을 준비해야 했다. 공동전선이 이 당시 트로츠키 저작의 중심 주제가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한편 레닌의 최후 몇 년간 볼셰비키당의 보수적 분파가 당과 국가의 관료기구 주위로 결집하기 시작했다. 레닌은 1924년 1월 사망하기 직전 관료집단의 형성에 놀라 경고를 발하였다. 그리고 트로츠키에게 관료집단에 대항하는 투쟁에 동참할 것을 호소했다. 그리고 관료화의 주요 인물인 스탈린의 당 총서기직 해임을 촉구했다. 그러나 이미 1923년 가을 트로츠키는 관료집단에 대한 투쟁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는 좌익반대파(볼셰비키-레닌주의자)를 결성하여 내전 기간을 통해 약화된 당내 민주주의의 회복을 촉구하였다. 그리고 소비에트의 공업과 농업을 조정할 국가적 차원의 경제 계획을 주창했다.

이 역사적 투쟁은 국내 정책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1923년 독일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태들은 볼셰비키당 지도부 내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좌익반대파의 투쟁은 국제적 차원의 투쟁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독일의 경제적 사회적 위기는 독일 자본주의의 뿌리를 뒤흔들었고 혁명적 상황이 뒤이어 조성되었다. 이 정세 하에서 독일공산당(KPD)은 정권을 장악할 수도 있었다. 1922년 독일 정부는 베르사이유 조약이 명시한 전쟁 배상금 지불을 이행할 수 없었다. 그러자 프랑스 정부는 군대를 보내 1923년 독일 루르 지방을 점령하였다. 이 결과 경제위기가 격화되고 사상 유례없는 인플레는 중산층을 파탄시켰다. 현실에 대한 절망감, 루르를 비롯한 주요 산업중심지에서 발생한 거대한 파업, 정치불안, 정부에 대한 불신감, 나찌당을 비롯한 극우조직들의 급성장 등이 이 시기의 특징이었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특징이 하나 더 있었다. 공산당은 이 위기를 혁명적 방식으로 해결할 정당으로 부상하여 노동자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스탈린 휘하 소련 관료집단의 지령에 의해 움직인 독일공산당은 동요와 실책을 거듭하면서 기회를 놓쳤다. 독일 자본주의는 위기를 넘겼다. 미국의 원조로 독일 정부는 1924년 경제를 안정시키고 정치적 권위를 회복했다. 1924년 연방의회 선거에서 자칭 맑스주의 정당들의 투표율은 33%로 떨어졌다. 그리고 일년만에 나찌당의 지지율은 더 폭락했다.

한편 스탈린 관료집단은 좌익반대파를 제압하는데 성공했다. 트로츠키는 1927년 당에서 제명되었다. 다음 해 그는 중앙아시아로 추방당했으며 1929년 터어키의 프린키포 섬으로 망명했다. 이후 스탈린은 부하린의 우익반대파까지 제거하면서 1930년 경 코민테른과 각국 공산당을 완전히 장악했다. 따라서 아주 중요한 독일 정세를 책임질 독일공산당 지도부는 스탈린의 뜻에 따라 임명되고 제거되었다.

1925년에서 1929년까지 바이마르 공화국은 경제적 정치적으로 상당한 안정을 누렸다. 연방의회에서 사민당은 여전히 최대 정당이었다. 그러나 바이마르 체제에 반대하는 국수주의자, 극우세력 등은 왕당파 장군 힌덴부르크를 지지하고 있었다. 그는 사민당의 지지를 받은 빌헬름 맑스(카톨릭중앙당)와 독일공산당의 에른스트 텔만을 결선투표에서 누르고 1925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힌덴부르크 14,655,000표. 맑스 13,751,000표. 텔만 1,931,000표)

당시 사민당은 연방의회 최대 정당이었으며 동시에 최대 노동자 정당이었다. 바이마르 공화국 수호의 목표로 조직된 대중 방어조직 제국대(Reichsbanner)와 강력한 노동조합 조직도 장악하고 있었다. 바이마르공화국 14년의 3분의 1 동안 사민당은 연방정부의 여당 내지 연립내각 참여 정당이었다. 그리고 야당으로 내각 불신임안을 거부하여 여당을 지지한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 그리고 1920년부터 1932년까지 프로이센 주 정부를 거의 모든 기간 장악했고 거대한 경찰조직을 통솔했다. 베를린이 포함된 프로이센 주는 당시 독일 전체 인구의 3분의 2를 포괄하였다.

1928년 선거로 사민당은 4년간의 공백 끝에 다시 연방정부를 장악했다. 이 선거에서 공산당은 사민당 득표치의 3분의 1을 약간 상회하였으며 나찌당은 사민당의 10분의 1을 밑도는 득표를 했다. 이때 사민당은 더욱 우경화하여 부르조아 인민당을 내각에 포함시켜 소위 거대내각(the Great Coalition)을 구성했다. 이 내각은 헤르만 뮐러가 수상을 맡았으며 21개월을 지속했다.

독일에게 1928년은 또 다른 의미에서 운명의 한해였다. 코민테른이 “제 3기”와 “사회파시즘” 이론을 제창했다. 자본주의 위기와 혁명 상승기인 “제 1기”(1917년-1924년), 자본주의 안정기인 “제 2기”(1925년-1928년)에 이어 자본주의의 위기와 노동계급의 혁명의 시기인 제 3기가 도래했다는 것이었다. “제 2기”에는 무비판적으로 사민당에게 추파를 던지다가 이제 제 3기에는 사민당이 파시즘의 일파인 “사회파시즘 세력”이므로 노동계급 조직으로 그리고 노동자 공동투쟁의 당사자로 인정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즉 독일에서 반파시즘 공동전선 전술이 스탈린에 의해 거부되었다. 1930년 2월 공산당 지도자 텔만은 이렇게 말했다: “(사민당) 뮐러 내각의 등장으로 파시즘이 이제 독일을 지배하고 있다.”

1929년 말에 시작된 세계 대공황으로 바이마르 체제는 무너졌다. 실업자는 1930년 3백만에서 1931년 4백만 이상으로 급증했다. 거대은행들은 파산하고 중소기업들은 전멸했다. 외국의 차관이 중단되면서 경제는 악화될 뿐이었다. 전체 사회가 급진화되어 정치안정은 사라졌다. 독자적 적색노동조합 조직 등 자살적인 전술에도 불구하고 공산당의 당원 수는 증가했다.

그러나 나찌당 역시 당원 수가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다. 파시즘에대한 대자본가 계급의 지지와 자금지원이 재개되었고 테러집단인 돌격대도 규모가 증대되었다. 1930년 말 돌격대의 규모는 10만에 달했다.

거대내각은 심화되는 공황에 대처할 경제정책에 내부 이견을 노출시키더니 1930년 3월 사임을 발표했다. 의회의 다수파에 기초한 최후의 바이마르 내각이 그 생명을 다했다. 힌덴부르크 대통령은 카톨릭중앙당의 하인리히 브뤼닝을 수상으로 임명하고 그가 좀더 우익적인 내각을 구성하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브뤼닝은 의회에서 다수의 지지를 확보할 수 없었다. 따라서 그는 바이마르 헌법 제 48조가 명시한 바에 따라 “긴급조치”를 통해 나라를 통치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해 7월 브뤼닝의 긴급 예산안이 사민당, 공산당, 나찌당 등의 반대로 가결되지 못했다. 그러자 힌덴부르크는 연방 연방의회를 해산하고 1930년 9월 14일을 선거 실시일로 선언했다. 새 선거에서 나찌당은 700%의 득표율 상승을 기록하면서 제 2당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공산당은 선거 승리를 주장하며 나찌당의 몰락이 시작되었다고 떠벌렸다. 코민테른은 독일공산당의 정세인식에 맞장구를 쳤다. 본 서는 공산당의 주장에 대한 트로츠키의 반박과 대안 제시로 시작된다.

당시 트로츠키와 좌익반대파는 당에서 제명 당했으나 여전히 코민테른과 공산당의 분파로 활동했다. 히틀러가 집권할 때까지 이들은 코민테른과 독일공산당 개혁을 위해 계속 노력했다. 이 당시 이들은 새로운 정당과 인터내셔널 창립을 강력히 반대하고 있었다. 제 1차 세계 제국주의 전쟁 발발 당시 제 2 인터내셔널이 저지른 정치적 파산상태에 코민테른이 아직 도달하지 않았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트로츠키는 아직도 독일공산당을 파시즘을 저지하고 혁명을 주도할 유일한 정당으로 보았다. 따라서 그의 저작 독자층도 독일공산당과 코민테른의 공산주의자들이었다. 그는 공산당과 코민테른의 재앙적 정책을 반대할 당원들을 향해 그의 글을 썼다.

나찌당의 선거 약진에 겁을 먹은 사민당은 1930년 10월 18일 브뤼닝 정부를 “차선책”으로 “인정”하기로 결정했다. 이 결과 브뤼닝은 의회 소수파의 지지와 대통령 긴급조치로 정치생명을 근근히 유지하면서 대중의 불만을 크게 사고 있었으나 26개월 동안이나 수상 자리에 앉아있을 수 있었다. 한편 나찌당은 브뤼닝 정권의 지지 상실에 힘입어 계속 당세를 확장했다. 그리고 더욱 많은 대기업의 지지를 받으면서 더욱 대담하게 노동계급 조직에 대한 테러공세를 감행했다.

브뤼닝 정권을 축출할 수단을 상실하자 1931년 나찌당은 프로이센의 주의회로 관심을 돌렸다. 프로이센 주의회는 사민당의 아성으로서 당시 주 연립정부는 사민당의 오토 브라운과 카알 세버링에 의해 주도되고 있었다. 주 의회선거를 통해 프로이센 정부와 경찰력 장악을 노리면서 나찌당은 우익 국민당과 결탁하였다. 그리고 바이마르 헌법의 조항을 활용하여 프로이센주 연립정부 축출을 위한 주민투표 운동을 개시했다.

이에 대해 독일공산당은 주민투표 반대를 선언했다. 그러나 1931년 7월 21일 기존의 “사회파시즘” 노선에서 갑자기 선회하여 브라운과 세버링에게 최후통첩을 보냈다: “공산당과 즉시 공동전선을 체결하지 않으면 나찌당과 손을 잡겠다.” 프로이센 사민당이 이 최후통첩안을 거부하자 공산당은 입장을 뒤집어 주민투표 운동을 지지했다. 이름하여 “적색 주민투표”였다. 결국 나찌당과 공산당이 손을 잡고 사민당 정부를 타도하는 우울한 현상을 독일노동자들은 목격하게 되었다. 사민당 정부의 타도는 파시즘에게만 유리했으며 심지어 나찌당이 정권을 장악할 수도 있었다. 8월 9일 주민투표는 980만 유권자의 지지를 받았으나 과반수인 1천3백만 표에 미달하여 나찌당과 공산당의 패배로 끝났다. 1931년 후반기의 두 정치 사건들은 반파시즘 투쟁에서 사민당의 중심적 위치를 보여주었다. 연방의회의 좌파 사민주의 의원인 막스 자이더위츠와 쿠르트 로전펠트는 사민당의 브뤼닝 지지에 반대하였고 반파시즘 공동전선을 지지했다. 그러자 사민당은 이 두 의원을 제명시켜 버렸다. 이 두 의원에 동조하는 의원들의 사임과 이들에 대한 제명이 잇따랐다. 10월 사민당 청년 당원 가운데 평화주의자들과 브란틀러의 공산당 반대파 그룹이 사민당에서 축출된 좌파 사민주의자들과 결합하여 사회주의노동자당을 창당했다. 이들 가운데 6명은 연방의회 의원이었다. 트로츠키는 신당에 대해 긍정적이었다. 지도부의 중도주의를 평당원들이 극복할 것이라고 희망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회주의노동자당 지도부는 명확한 혁명강령을 제창하지도 않았고 노동계급 정치에 이렇다할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1932년 7월 선거에서 신당 후보들은 0.2%의 득표율을 보이면서 6개 의석을 전부 상실했다. 이로부터 5개월 후 선거에서는 0.1% 밖에 득표하지 못했다. 이로써 사민당 평당원들이 쉽게 탈당하지 않는다는 교훈이 도출되었다. 이들을 혁명적 행동으로 획득하려는 시도는 이 교훈을 염두에 두어야 했다.

그러나 사민당 평당원들은 파시즘에 대항하기를 원했다. 따라서 1931년 12월 사민당 지도부는 “반파시즘 무쇠전선”을 수립했다. 이것은 바이마르 체제를 목적에 둔 대중적 방어기구인 제국대, 사민당 청년당원, 기타 노동 및 자유주의 그룹들로 구성된 대중조직이었다. 사민당 평당원들은 무쇠전선에 열렬히 호응하면서 대중시위를 조직하고 거리에서 파시스트들과 싸웠다. 일부는 무장까지 하였다. 물론 사민당 지도부는 진짜 반파시즘 투쟁전선을 원할 리가 없었다. 이들에게 무쇠전선은 사민당 노동자들의 분노를 분출시키는 안전판에 지나지 않았으며 자신들의 계급협조주의 노선의 지지기구에 불과했다. 물론 사민당 노동자들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했고 이들이 경험을 통해 사민당 지도부의 본심을 깨닫도록 하는 것이 혁명가들의 임무였다. 그러나 공산당은 이 역할을 해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적색 주민투표”와 같은 무원칙한 술수로 사민당 평당원들을 사민당 지도부에 더욱 유착시켰을 뿐이었다.

본서의 첫 논문 [코민테른의 노선 전환과 독일의 상황]은 1930년 11월-12월에 좌익반대파 러시아어 신문 제 17-18호에 처음 실렸다. 그리고 모리스 르윗의 번역으로 같은 해 미국공산주의자동맹에 의해 영어로 출간되었다.

[텔만과 ‘인민혁명’]은 어느 스페인 동지에게 보낸 편지였다. 당시 스페인에서는 왕정이 붕괴하고 공화국이 막 성립할 시점이었다. 이 편지는 1931년 7월 11일 투사지(The Militant)에 처음 실렸다.

[노동자에 의한 생산의 통제]는 독일의 좌익반대파 그룹에게 보낸 편지였다. 1931년 9월 좌익반대파 신문 제 24호에 처음 실렸으며 같은 해 10월 17일과 24일자 투사지에 영어로 번역되어 실렸다.

[공장위원회와 노동자에 의한 생산의 통제]는 위 편지의 계속 편으로 1931년 11월 21일 투사지에 번역되어 실렸다. 이 편지의 원 제목은 “노동자에 의한 생산의 통제 구호에 반대하는 자들에 대항하여”였다.

[민족주의적 공산주의에 대항하여]는 1931년 9월 31일 좌익반대파 신문에 처음 실렸으며 같은 해 9월 19일과 26일 투사지에 영어로 번역되어 실렸다.

[독일, 국제정세의 열쇠] 역시 1931년 11월 12월 좌익반대파 신문 제 25-26호에 실렸으며 1932년 초 모리스 르윗에 의해 영어로 번역되어 파이오니어 출판사에 의해 팜플렛으로 나왔다.

[반파시즘 노동자 공동전선을 위하여]는 1932년 3월 좌익반대파 신문 제 27호에 실렸고 같은 해 1월 9일 투사지에 영어로 번역되어 실렸다. 원제목은 “독일공산당의 지금 정책은 어디가 잘못되었는가?”였다.

[다음에는 무슨 행동을 할 것인가? 독일 노동계급의 사활이 걸린 문제들]은 1932년 베를린에서 러시아어로 처음 출간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3월부터 6월 사이에 투사지에 연재되었다. 같은 해 9월에는 파이오니어 출판사에 의해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번역자는 잔 라이트였으며 팜플렛 출간을 위해 트로츠키가 붙인 원 제목은 “독일 혁명과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이었다.

 

1. 코민테른의 전술 전환과 독일의 상황   (1930년 9월 26일)

1. 전술 전환의 원인

자본주의가 위기 중의 위기를 맞고 있는 지금 전술 전환은 그 정도가 아무리 급격해도 불가피하다. 객관적 상황이 돌변했기 때문이다. 대단히 불안한 국제관계, 급격하고 불규칙한 정세 변화, 정치에 그대로 반영되는 경제 불안, 무력감에 사로잡힌 대중의 충동적 행동 등이 객관적 상황이다. 봉건 제도를 철폐하며 생산력을 발전시킨 “유기적” 자본주의가 제 1차 세계대전 전에 존재했다. 안정적이었던 이 진보적 자본주의보다 생산력이 정체하고 있는 지금 제국주의 자본주의에서는 객관적 정세 변화를 면밀하게 관찰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면서도 그만큼 더 어렵다. 현재 독일공산당 지도부는 산 위의 험한 길 위로 자동차를 몰고 있는 운전사와 같다. 엉뚱한 순간에 핸들을 돌리거나 속도조절이 잘못될 경우 차와 승객 모두에게 커다란 위험이 닥칠 것이며 최악의 경우 운전사를 포함하여 승객 모두가 몰살할 것이다.

최근 몇 년간 코민테른 지도부는 아주 급격하게 전술을 전환해왔다. 최근의 전환은 몇 개월 전에 시작되었다. 레닌의 사후 왜 코민테른은 이렇게 급격하게 전술을 전환하고 있는가? 객관적 상황의 변화 때문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1923년부터 코민테른은 상황을 올바로 평가하면서 적시에 전술을 전환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간의 전술 전환은 코민테른 지도부의 노선과 객관적 상황이 참을 수 없이 날카롭게 모순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에 나타났다. 최근의 전술 전환도 마찬가지 경우이다.

1928년 2월, 1929년 7월, 1928년 7월에 각각 열린 코민테른 집행위원회 제 9차 특히 제 10차 총회 그리고 제 6차 코민테른 세계대회는 소위 “제 3기(the third period)”라는 급격하고 임박한 혁명의 고양기를 예상하면서 전술을 급격히 전환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예상은 전혀 근거가 없었다. 영국의 총파업과 중국혁명은 실패로 끝났고 전세계에서 공산당은 약화되고 있었으며 특히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은 상업과 공업 분야에서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따라서 1928년 2월에 시작된 일련의 전술 전환은 객관적 상황의 변화와 완전히 모순되고 있었다. 모험주의 노선의 출현, 당의 대중적 영향력 약화와 심화된 고립 등은 바로 이런 모순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들이 당의 존폐를 위협할 상황이 되어서야 코민테른 지도부는 1930년 2월 다시 전술을 전환하였다. 즉 “제 3기” 전술로부터 후퇴하여 우편향으로 나아갔다.

코민테른의 전술 전환은 객관적 상황의 변화 순서에 따라 정확히 뒤이어 일어났다. 이것은 모든 대세추종주의자들에게 가해지는 가혹한 운명의 장난이다. 역사상 유례없는 격심한 국제자본주의의 위기는 의심할 여지없이 대중의 급진화와 사회 혼란을 예고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세가 혁명을 향해 가속화되도록 대담하게 좌로 전술을 전환할 수 있었으며 그렇게 해야 했다. 만약에 코민테른 지도부가 지난 3년의 경기 회복기과 혁명 퇴조기를 이용하여 대중조직 특히 노동조합에서 응당 그래야 했듯이 당의 지위를 강화시켰을 경우 지금의 노선은 무조건 올바르며 필요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운전사 양반은 1930년에 기어를 2단에서 3단으로 바꿀 수 있었으며 사실 그래야 했다. 아니면 최소한 가까운 미래에 이러한 변화가 있을 것에 대비하여 준비할 수 있었으며 해야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사태는 이와 완전히 반대로 진행되었다. 절벽으로 추락하지 않기 위해 운전사 양반은 성급하게 속도를 올린 것을 후회하고 2단으로 기어를 바꾸어 속도를 줄였다. 언제? 가속도를 붙여야 했을 바로 그 시점에 말이다.

전술적 필요와 전략적 전망 사이에 이렇게 모순이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다. 현재 코민테른 지부인 각국 공산당은 지도부의 오류가 빚어낸 논리에 의해 이런 모순에 처해 있다.

이 모순은 독일에서 가장 뚜렷하고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다.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에는 두 번의 체제 안정기가 있었고 코민테른 지도부가 오류를 저지른 시기가 세 번 있었다. 이 결과 지난 몇 번의 선거에서 대단히 기이한 계급 역관계가 조성되었다.

2. 혁명적 임무의 관점에서 바라본 공산당의 선거 승리

현재 코민테른의 공식 언론은 공산당의 선거 승리를 공산주의운동의 유례없는 대승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독일 소비에트 수립 구호가 일정에 올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관료주의에 안주하는 낙관주의자들은 선거 통계의 이면에 드러나고 있는 역관계의 의미를 검토할 생각이 없다. 이들은 상황이 제기한 혁명적 임무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만들어낸 장애물들은 고려하지 않은 채 득표수만 계산하고 있다.

공산당은 1928년 선거의 3백3십만 표보다 더 많은 약 4백6십만 표를 얻었다. “정상적” 의회선거의 관점에서 보면 유권자의 수적 증가에도 불구하고 1백3십만 표의 득표 상승은 상당한 약진이다. 그러나 8십만 표에서 6백4십만 표로 증가한 파시스트들의 득표 상승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사민당이 상당히 후퇴했으나 지지 기반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공산당보다 훨씬 더 많은 노동자 표를 얻었다는 사실도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한편 국제정세와 독일 정세가 어떻게 결합해야 노동계급이 더욱 빨리 공산주의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현재 독일 정세야말로 최상의 조건을 제공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영의 올가미(Young's noose), 경제위기, 통치자들의 분열, 의회제도의 위기, 대중이 확인한 집권 사민당의 정치적 성격 등 더 없이 좋은 조건이 마련되었다. 이러한 구체적인 역사적 조건들을 고려하면 선거에서 1백3십만 표의 증가도 독일 공산당의 사회적 영향력 축소를 상쇄하지 못한다.

그러나 코민테른의 정책 및 조직운영과 밀접히 연관된 공산주의운동의 허약함은 공산당의 사회적 영향력과 현재 역사적 상황이 공산당에게 요구하는 구체적이고 미룰 수 없는 임무와 비교하면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공산당이 선거에서 약진을 기대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사실도 오류와 패배의 늪에 빠진 공산당 지도부가 원대한 목표와 전망을 가질 수 없었던 상황을 증명할 뿐이다. 어제 자신의 가능성들을 과소평가 했다면 오늘은 자신이 처한 난관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하나의 위험은 다른 위험에 의해 증폭되고 있다.

진정한 혁명정당의 첫 번째 특징은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다.

3. 대자본가의 동요

역사의 전환과 사회 위기 때마다 현대 사회의 세 계급 즉 금융자본에 의해 주도되는 자본가 계급, 양대 계급 사이에서 동요하는 소자본가 계급 그리고 노동계급 등의 상호관계를 다시 또다시 검토해야 한다.

전체 국민의 사소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 대자본가는 과거의 유물인 도시와 농촌의 소자본가 계급 그리고 신 중간계급의 지지 없이는 권력을 차지할 수 없다. 지금 시기에 이 지지는 정치적으로 서로 적대적이면서 역사적으로 상호 보완적인 사회민주주의와 파시즘으로 표현되고 있다. 사회민주주의 노선의 소자본가 계급은 금융자본을 추종하면서 동시에 수백만 노동자를 거느리고 있다.

현재 독일 대자본가들은 동요와 분열에 시달리고 있다. 사회 위기를 치유할 두 가지 방법 가운데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 하나로 이들은 분열되어 있다. 사회민주주의라는 개량주의 노선은 그 결과가 확실치 않고 세금, 사회입법, 임금 등과 관련해서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자본가 계급 일 분파는 이 노선을 싫어하고 있다. 대수술이라고 할 수 있는 파시즘 노선은 상황에 맞지 않을 뿐더러 너무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에 또 다른 분파가 싫어하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전체적으로 금융자본가들은 현 상황의 평가를 둘러싸고 동요하고 있다. 자기 나름의 “제 3기” 공세를 선포하여 자기 이해를 위해 봉사했던 사회민주주의 세력을 무조건 괴멸시키고 이것을 파시즘으로 대체할 것인지에 대해서 아직 충분한 근거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자기 계급 정당들이 대중적 영향력을 상실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이 사회민주주의와 파시즘을 놓고 동요하고 있는 현상은 준혁명적(pre-revolutionary) 상황이 도래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징후이다. 진짜 혁명적 상황이 도래하면 당연히 이 동요는 금방 사라질 것이다.

4. 소자본가 계급과 파시즘

사회 위기가 노동자 혁명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소자본가 계급이 노동계급 쪽으로 확고히 넘어와야 한다. 이 경우 노동계급은 온 국민의 선두에 서서 지도적 역할을 담당할 기회를 부여받을 것이다.

그런데 지난 번 선거는 소자본가 계급이 이와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음을 드러내었다. 이 사실은 선거의 주요한 징후였기 때문에 중요하다. 위기의 영향을 받아 소자본가 계급은 노동자 혁명이 아니라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제국주의적 반동으로 급선회하면서 자기 휘하에 거느린 노동계급의 상당한 부분을 함께 끌어들고 갔다.

나찌즘의 거대한 약진은 두 가지 요인의 표현이다. 즉 소자본가 계급을 휘청거리게 만든 골이 깊은 사회 위기 그리고 혁명적 지도자로 대중에 의해 인정될 노동계급 혁명정당의 부재가 바로 이 두 요인이다. 공산당이 혁명적 희망의 정당이라면 파시즘은 반혁명적 절망의 정당이다. 혁명적 희망이 노동계급 전체를 사로잡을 경우 소자본가 계급의 상당한 부위는 점점 혁명의 길로 이끌린다. 그런데 이번 선거는 정반대의 경향을 보여주었다. 즉 반혁명적 절망이 엄청난 힘으로 소자본가 계급을 사로잡은 나머지 이 계급은 노동계급의 많은 부분을 함께 끌고 들어갔다.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과거 우리는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파시즘의 급상승 현상을 목격했다. 이렇게 파시즘이 승리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위협 세력이 된 이유는 혁명적 위기가 혁명의 실패로 끝난 데에 있었다. 이를 통해 노동계급의 전위는 국민의 선두에 서서 소자본가 계급을 포함하여 모든 계급들의 운명을 변화시키지 못한 무능력을 드러내었다. 특히 이탈리아에서 파시즘이 특유의 영향력을 행사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현재 독일의 경우 혁명적 위기가 결말에 이른 것이 아니라 막 다가오고 있는 시점에 이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문제이다. 이로부터 공산당의 주요 관료들 즉 당 요직을 장악한 낙관주의자들은 파시즘이 “너무 늦게” 등장했으므로 불가피하게 즉시 패배할 운명에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독일공산당 일간지 [적기(赤旗)]) 이 사람들은 도대체 사물로부터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 파시즘은 오랜 혁명적 위기에는 “너무 늦게” 등장하지만 새로운 혁명적 위기에는 너무 일찍 그것도 새벽에 등장한다. 혁명적 시기가 끝난 순간이 아니라 그 전야에 파시즘이 강력히 출발할 가능성을 얻은 현상은 파시즘의 약점이 아니라 공산주의운동의 약점을 보여주고 있다. 결과적으로 자기 운명을 개선하려는 소자본가 계급은 공산당의 능력에 대해 새로이 실망할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이 계급은 과거의 경험에 의존한다. 1923년의 교훈, 마슬로우-텔만(Maslow-Thaelmann)의 변덕스러운 초좌익적 비약, 텔만의 기회주의적 무기력, “제 3기”의 불협화음 등을 이 계급은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러나 가장 중요한 사항이 있다. 이 계급이 노동자 혁명에 대해 신념을 결여하고 있는 것은 수백만 사회민주주의 노동자들이 공산당에 대해 신념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황에 의해 완전히 보수화 되었어도 이 계급은 대다수 노동계급의 공감이 사회혁명에 있을 경우 혁명의 편에 설 수 있다. 바로 이 가장 중요한 조건이 독일에는 결여되어 있으며 이 상황은 우연히 조성되지 않았다.

선거 전 독일공산당의 강령은 전적으로 그리고 배타적으로 파시즘을 주적(主敵)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파시즘은 선거에서 승리하여 수백만의 반(半)노동계급과 수십만의 공업노동자들을 획득했다. 이것은 공산당의 선거 승리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노동자 혁명의 심각한 선거 패배를 의미한다. 물론 이 패배는 결정적이기보다는 사전적이며 경고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러나 만약 공산당이 전체적으로 혁명운동 패배의 “사전” 특징과 관련하여 자신의 부분적인 선거 승리를 평가하고 이로부터 필요한 결론들을 이끌어낼 능력이 없다면 이 혁명운동의 패배는 결정적이 될 것이다.

부르조아 체제의 무기력, 이 체제 유지에 기여하는 사회민주주의의 보수적 역할, 이 체제를 분쇄할 능력이 공산당에게 없다는 축적된 무기력감 등의 현상을 날카롭게 표현하고 있는 독일 파시즘은 이제 진정한 위험세력이 되었다. 이 사실을 부인하는 자는 모두 맹인이거나 떠버리에 불과하다.

1923년 브란틀러(Brandler)는 우리의 모든 경고에도 불구하고 파시즘의 역량을 지독하게 과장하였다. 역관계를 이렇게 잘못 평가하는 것을 통해 주저하고 회피하고 방어적이며 비겁한 정책이 나왔다. 이것이 혁명을 파괴시켰다. 이러한 사건들은 모든 계급의 의식 속에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 공산당 지도부가 파시즘의 위력을 과대평가하면서 파시즘이 더욱 강화되는 조건을 조성했다. 이와 반대의 오류로 현재 공산당 지도부가 이렇게 파시즘의 역량을 과소평가할 경우 앞으로 많은 세월 동안 혁명운동을 심각하게 파괴하는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

사태 전개의 템포 문제와 관련지어 보면 이 위험은 특히 더 심각하다. 그런데 템포는 우리에게만 달려있지 않다. 선거로 드러난 정치적 격동의 곡선은 말라리아 열병에 걸린 것과 같다. 이것은 사회 위기의 전개 템포가 아주 빨라질 것임을 예감하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아주 가까운 미래에 지금 사태는 새로운 역사적 차원에서 혁명적 상황의 성숙성, 혁명정당의 나약성, 전략적 무기력증 사이의 비극적인 모순을 독일에 소생시킬지 모른다. 이 사실은 명확히 공개적으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 때에 말해야만 한다.

5. 공산당과 노동계급

1917년 4월 레닌은 러시아에 도착한 후 권력장악을 처음으로 준비하고 있었다. 이때 당원은 8만명이 채 되지 않았고 심지어 뻬쩨르부르그에도 노동자의 겨우 3분의 1 그리고 훨씬 적은 수의 병사들이 볼셰비키당의 지도를 받고 있었다. 이 사실을 위로로 삼는다면 이것은 심대한 오류가 될 것이다. 당시 러시아 상황은 지금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그때는 3월이 되어서야 겨우 혁명정당들이 지하활동을 청산하고 공개활동을 시작했다. 더욱이 전쟁 전의 숨막히는 억압된 정치활동마저 이때는 거의 3년 동안 중단되어 있었다. 전쟁 기간동안 노동계급의 약 40%는 세대 교체되었다. 노동계급의 절대 다수는 볼셰비키당을 몰랐고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다. 3월에서 6월까지 이들이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에 표를 던진 행위는 이들이 혁명적 각성을 거친 후 혁명의 길에 주저하며 내디딘 첫걸음의 표현에 불과했다. 이 투표 행위는 볼셰비키당에 대한 실망감이나 누적된 불신임의 결과가 전혀 아니었다. 이런 종류의 결과는 대중이 당의 오류를 경험으로 확인했을 경우에만 나타날 수 있다. 당시 상황은 이와 정반대였다. 1917년 동안 매일 매일의 혁명 경험을 통해 대중은 화해주의자로부터 멀어져만 갔고 볼셰비키당 곁으로만 모여들었다. 이로부터 당 대오는 순식간에 폭풍이 몰아치듯 사정없이 불어났으며 이와 함께 특히 당의 정치적 영향력도 마찬가지로 증대되었다.

다른 측면은 물론이고 이 측면에서도 독일의 상황은 1917년 러시아의 상황과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 독일공산당은 어제나 그제에 등장하지 않았다. 이미 1923년에 당은 공개적이든 반공개적이든 노동계급 대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영향력이 쇠퇴기에 접어들었던 1924년에도 당은 노동계급으로부터 3백6십만 표를 얻었다. 백분율로 따지면 지금보다 더 높은 숫자였다. 따라서 이번에 나찌당에 표를 던지거나 사민당에 당적을 그대로 두고있는 노동자들은 단순히 무지하거나 어제에야 계급적 각성을 했거나 공산당이 무엇인지를 알 기회가 없어서 이런 행동을 보인 것이 아니다. 최근 몇 년의 경험을 통해 공산당에 대해 신념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모습을 보인 것이다.

그리고 1928년 2월 코민테른 집행위원회 제 9차 전원회의가 “사회파시즘”(주 7)에 대해 과열된 특별한 비타협적 투쟁을 하라고 각국 공산당에 신호를 보낸 사실을 잊어버리면 안된다. 독일사민당은 거의 모든 시기에 집권당이었고 매 순간마다 대중에게 자신의 범죄적이며 부끄러운 역할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격심한 경제위기에 의해 자본가 계급의 하수인이라는 이 역할은 더욱 노골적으로 대중에게 인식되었다. 따라서 사민당의 당세 약화를 위해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을 조성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민당은 여전히 계급 배신적인 자신의 정책을 그대로 계속했다. 이 놀라운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대답은 단 하나이다. 공산당 지도부가 자신의 정책 하나 하나를 통해 좌에서 사민당을 돕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사민당에 표를 던졌기 때문에 5백만 내지 6백만 노동자들이 사민당을 완전히 무제한적으로 신뢰하고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사민당 소속 노동자들은 맹목적인 대중이 아니다. 이들은 자신의 지도자들에 대해서 순진하게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지는 않는다. 다만 주어진 상황에서 다른 길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배신적인 지도자들을 여전히 지지했을 뿐이다. 물론 우리는 노동귀족이나 노동관료들이 아니라 노동자 대중을 말하고 있다. 공산당의 정책은 이들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공산당이 혁명정당이기 때문이 아니라 혁명을 성취할 능력이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마당에 공산당에 쓸데없이 목을 맬 필요가 없는 것이다. 마지못해 사민당에 표를 던지면서 이 노동자들은 사민당에 신뢰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공산당에 신뢰를 보내지 않고 있는 것이다. 현재 독일공산당과 1917년 볼셰비키당의 커다란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것도 요인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공산당원들과 지지자 내지 공산당에 표를 던진 노동자들은 당 지도부에 대해 막연한 의구심을 크게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대중에 대한 당의 (나름의) 영향력과 당원의 (미미한) 숫자 특히 노동조합에서 당의 (미미한) 역할 사이에 소위 “차이”가 존재하고 있다. 이 차이는 의심의 여지없이 실재하고 있다. 이 차이에 대한 당의 공식입장은 간단하다. 당의 영향력을 조직적으로 “강화시키지” 못해 왔다는 것이다. 이 설명에 의하면 대중은 순전히 수동적인 물질에 지나지 않는다. 즉 당서기들이 노동자들의 목을 하나 하나 잡고 끌고 들어오는가 아닌가에 따라 이들의 입당이 결정된다는 식이다. 노동자들이 나름의 생각, 경험, 의지 그리고 당에 대한 적극적 또는 소극적 노선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당 관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노동자는 당, 당의 깃발, 10월 혁명, 자신의 미래인 혁명을 위해 표를 던진다. 그러나 입당을 거부하거나 당의 노동조합 투쟁을 지지하지 않는 것을 통해 노동자는 당의 일상적 정책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결국 이 “차이”를 최종적으로 분석하면 코민테른 현 지도부에 대해 대중이 신뢰를 보내고 있지 않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그리고 이 불신임은 그간 당이 1923년부터 1930사이에 보인 오류, 패배, 거짓 그리고 대중에 대한 노골적인 사기행각에 의해 조성되고 강화되어 왔다. 이것이 노동자 혁명의 승리를 가로막는 가장 커다란 장애물 가운데 하나이다.

당원들의 신뢰를 상실한 당은 계급 대중을 지도할 수 없다. 노동대중을 지도할 수 없으면 소자본가 대중을 파시즘의 영향력으로부터 떼어낼 수 없다. 이 둘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6. 다시 “제 2기”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다시 한 번 “제 3기”를 향해 나아갈 것인가?

중도주의 스탈린 관료집단이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용어를 빌면 문제는 이렇게 표현될 수 있다: “제 2기” 즉 부르조아 계급이 안정되고 혁명운동이 쇠퇴하는 시기인 1928년에 코민테른 지도부는 “제 3기” 즉 임박한 혁명적 분출 시기에 적절한 전술을 각국 지부들에게 하달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 1930년의 전술 전환은 “제 3기”의 전술을 기각하고 “제 2기”의 전술을 채택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이 전술 전환은 “제 3기”가 어쨌든 독일에서 정말 도래하고 있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주는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하던 바로 그 순간에 코민테른 관료기구에 의해서 시행에 옮겨졌다. 그렇다면 지금의 새로운 전술 전환은 그간의 상황에 의해서 필연적으로 요구되고 있는가? 즉 바로 이전에 포기되었던 “제 3기”의 전술로 다시 복귀할 전술 전환이 결국 필요하다는 말인가?

중도주의 스탈린 관료집단의 방법론과 용어에 찌든 운동 진영이 지금의 문제를 좀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는 위와 같이 문제를  표현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용어들을 채택할 의도가 전혀 없다. 이 용어들은 스탈린주의 관료집단과 부하린의 형이상학이 결합된 것이기 때문이다. “제 3기”라는 용어 역시 우리는 거부한다. 스탈린 관료집단은 마치 성서의 묵시록처럼 “제 3기”를 혁명운동의 최종적 시기라고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계급이 승리를 거둘 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기들이 존재할 지는 계급 역관계와 정세변화에 달려있다. 오직 행동을 통해서만 계급 역관계와 정세가 결정된다. 이렇게 자의적으로 숫자를 붙여 무슨 시기이다 아니다 라고 하는 것은 전략적 도식주의를 드러낼 뿐이다. 당연히 이러한 사고방식을 우리는 거부한다. “제 2”기와 “제 3”기를 위해 미리 확립된 추상적 전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무장봉기가 없이는 노동계급이 승리하여 권력을 장악할 수 없다고 모두 알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들을 통해 무장봉기를 성공시킬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떤 템포를 가지고 대중을 추동시킬 것인가? 이 모든 것은 전체적인 객관적 상황 뿐 아니라 사회 위기에 직면한 노동계급의 정치 발전 수준, 당과 대중의 관계, 노동계급과 소자본가계급의 관계 등에 의해 결정된다. 한편 “제 3기”에 임박한 노동계급의 정치 발전수준은 이 시기 직전에 당이 채용한 전술에 의해 결정된다.

지금 독일의 급변하는 상황에 맞는 정상적이며 자연스러운 전술 전환의 내용은 투쟁의 속도를 가속화하고 구호와 투쟁방식을 상황에 맞추어 정교하게 다듬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어제의 투쟁 속도와 구호가 지금 이전 시기의 상황에 부합했을 경우에만 새로운 전술 전환은 정상적이며 자연스러울 것이다. “제 3기”의 초좌익 노선과 안정화된 부르조아 질서 사이의 급격한 불일치, 바로 이것 때문에 전술 전환이 필요하다. 그러나 어떤 결과가 나왔는가?  정치세력들 사이의 합종연횡이 일반적으로 혁명운동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객관적 상황이 급변하였다. 이 결과 공산당이 선거에서 커다란 이득을 본 바로 그 순간에 공산당은 과거 어느 때보다 전략적 전술적으로 더욱 혼란에 빠지고 동요하고 있다.

현재 독일공산당은 코민테른의 다른 지부들과 마찬가지로 모순에 빠져있다. 다만 그 정도가 다른 지부들에 비해서 훨씬 더 심할 뿐이다. 이 모순의 정도를 좀더 정확하게 밝히기 위해 간단한 비유를 들어보자. 장애물을 넘기 위해서는 멀리서 뛰어와야 한다. 장애물이 높을수록 제 때에 달리기를 시작하여 아주 정확한 순간에 힘을 비축하여 뛰어 올라야 한다. 그런데 1928년 2월 특히 1929년 7월 이후 독일공산당은 한참 멀리 떨어져 있는 장애물을 향해 질주만 해왔다. 따라서 지금 장애물이 바로 앞에 서 있는데 당은 숨을 헐떡거리고 발을 땅에 질질 끌고 있다. 당연하다. 결국 코민테른은 “천천히!”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숨 가쁜 당이 좀더 정상적인 보폭으로 속도를 죽이기 시작하자마자 당 앞에 진짜 장애물이 나타났다. 혁명적 점프를 해야할 때가 바로 눈앞에 온 것이다. 새로 질주를 하면서 점프를 할 수 있는 힘을 발휘할 충분한 거리가 있을까? 새로운 전술 전환을 거부하고 반대 전술을 사용해야 할까? 독일공산당 앞에 지극히 날카롭게 제기되고 있는 전략적 전술적 문제의 성격이 바로 이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당의 지도적 중핵들이 올바른 해답을 찾으려면 이번 선거에 드러난 바대로 과거 수년동안의 전략 그리고 그 결과들과 연관시켜 다음 단계를 판단할 기회를 가져야한다. 만약 이와 반대로 관료집단이 승리의 함성을 지르면서 당내 자기비판의 목소리를 죽인다면 1923년의 독일 혁명 실패보다 더 끔찍한 재앙이 필연적으로 노동계급을 기다리게 될 것이다.

7. 이후 사태 발전의 가능한 시나리오들

혁명적 상황에서 노동계급은 국가권력을 즉시 장악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으며 서로를 조건지우는 객관적 주관적 요인들로 이 상황은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 요인들의 상호의존성은 상대적이다. 불균등발전 법칙은 혁명의 요인들에도 완전히 적용된다. 이런 요인들 중의 하나가 충분히 발전하지 못하면 혁명적 상황이 폭발하지 않거나 사그러들 수도 있으며 폭발하더라도 혁명적 노동계급의 패배로 끝날 수가 있다. 그렇다면 이 점과 관련하여 독일의 상황은 어떠한가?

ㄱ. 경제와 국제관계에서 이 나라는 깊은 위기를 맞고 있음이 틀림없다. 부르조아 의회체제는 이 위기를 해결할 방도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ㄴ. 지배계급과 정부가 정치적 위기에 처해 있다. 이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지금의 위기는 의회체제의 위기가 아니라 계급지배의 위기이다.

ㄷ. 그러나 혁명 계급은 내부의 모순들로 인해 깊이 분열되어 있다. 개량주의 세력을 무력화시키고 혁명세력이 세력을 강화하는 작업은 아직도 초기단계에 머물고 있으며 그 속도도 위기의 깊이와 함께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ㄹ. 위기가 시작되자마자 소자본가 계급은 현재 자본주의 지배체제에 적대감을 보였으나 동시에 노동자 혁명에 대해서도 적대감을 보이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노동자 혁명의 객관적 조건과 혁명의 정치적 조건 중의 하나인 지배계급의 상태는 구비되어 있다. 노동자 계급의 발전 수준이라는 또 다른 정치적 조건은 바로 직전에 혁명의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과거의 유물로 인해 이것은 급격히 바뀔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혁명의 세 번째 정치적 조건인 소자본가 계급의 상태는 노동자 혁명이 아니라 부르조아 반혁명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런데 노동계급의 상태가 급격히 변하지 않는다면 즉 사회민주주의 세력의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혁명의 마지막 정치적 조건은 유리하게 변할 수 없다.

따라서 현재 독일은 대단히 모순적인 상황에 직면해 있다. 혁명의 일부 요인들은 노동자 혁명을 일정에 올려놓고 있다. 그러나 다른 요인들은 다음 시기에 정치적 계급 역관계의 급격한 변화가 없이는 노동자 혁명의 승리 가능성을 배제시키고 있다.

이론적으로 말하면 공산당의 행동, 노동계급의 적들의 정책 등 객관적 요인들의 변화 여부에 따라 앞으로의 사태는 여러 가지 방향으로 변화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ㄱ. 스스로 채택한 “제 3기” 전술에 놀라자빠진 공산당은 대단히 조심하면서 앞으로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다. 그러나 위험한 행동을 자제하고 싸움을 회피하면서 혁명적 상황을 활용하지 못한 채 시기를 놓치고 있다. 이것은 1921년부터 1923년까지 브란틀러가 취했던 정책이 형태만 바뀐 재판(再版)에 지나지 않는다. 당 내외의 브란틀러파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압력을 의식하여 계속 이런 우유부단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ㄷ. 정반대로 선거의 승리에 고무받아 당은 좌로 급선회하여 직접 권력 장악의 길로 나아갈 수도 있다. 그리고 의회 내에서 적극적인 소수파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파멸적인 패배를 당할 수가 있다. 당을 이 방향으로 몰아가는 요인은 두가지가 있다. 첫째 전혀 사태를 판단하지도 않으며 대중을 일깨우기보다 무지몽매한 상태로 몰아가는 소리만 요란하고 멍청한 파시스트 진영이 한 요인이다. 둘째 노동계급의 일부 특히 실업상태에 있는 청년층의 절망과 조급성이 두 번째 요인이다.

ㄷ. 더욱이 당 지도부가 어느 것도 거부하지 않으면서 위의 두 가지 사태 발전의 위험성 사이에서 실용적으로 중간 노선을 취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새로운 오류들을 연속해서 저지르면서 대체로 노동계급과 반(半)노동계급 대중의 신뢰를 저버려 결국 객관적 상황이 혁명에게 불리한 쪽으로 바뀌고 자본주의 체제가 새로 안정되는 상황을 이끌 수도 있다. 소련의 스탈린 일당이 독일공산당을 이끌고 있는 방향은 바로 이 세 번째 절충주의 노선이다. 이것은 일반적인 의미의 대세추종주의를 그리고 특정 상황에서는 모험주의를 결합시키는 노선이다. 그리고 스탈린 일당은 명확한 노선을 취하기를 꺼리면서 미리 자신에게 알리바이를 만들고 나서 나중에 상황이 악화되면 결과에 따라 당내 좌파 내지 우파에게 실패의 책임을 전가할 가능성을 준비하고 있다.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이러한 기회주의 노선은 노동계급의 국제적 역사적 이해를 희생시키면서 관료집단 우두머리들의 “권위”를 유지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9월 16일자 프라우다지는 이 정책을 이미 암시했다. 

ㄹ. 마지막으로 가장 상서로운 아니 좀더 정확하게 말해서 유일한 상서로운 가능성이 존재한다. 즉 공산당이 최상의 그리고 가장 의식적인 분자들의 노력으로 현재 모순적인 상황을 면밀하게 파악하는 경우이다. 정확하고 대담하고 융통성 있는 정책을 통해 당이 현재의 상황에 기초하여 노동계급의 대다수를 단결시켜 반노동계급과 소자본가 계급 대중의 가장 억압받는 부위들을 혁명의 길로 반전시키는 것이다. 피억압 대중의 지도자인 노동계급의 전위가 혁명을 승리로 이끈다. 이런 결과를 위해 당의 정책을 바꾸도록 돕는 것이 볼셰비키-레닌주의자(좌익반대파)의 임무이다.

지금까지 제시한 시나리오들 가운데 어느 것이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이 더 많을 지에 대해서 추측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이 문제는 추측이 아니라 투쟁을 통해서 결정될 뿐이다.

지금 필요한 것 중의 하나는 코민테른 지도부의 중도주의에 대항하여 비타협적인 사상투쟁을 전개하는 것이다. 어제의 오류들을 은폐하고 노선의 새로운 승리에 대한 거짓 고함소리를 통해 내일의 오류들을 준비하는 관료주의적 권위의 정책이 이미 모스크바에 의해 실행되고 있다. 당의 승리를 기괴하게 과장하고 투쟁의 난관들을 기괴하게 과소평가 하면서 당은 파시즘의 성공이 노동자 혁명의 긍정적인 요인이라고까지 해석하고 있다. 프라우다지는 여기에 사소한 단서 조항을 달고 있다: “당의 성공으로 현기증을 일으켜서는 안된다.” 스탈린 일당의 배신적인 정책은 여기서도 그 진면목이 드러난다. 즉 무비판적인 초좌익주의 정신에 입각하여 상황을 분석하고 있다. 따라서 당은 의도적으로 모험주의 노선을 추구하도록 강요되고 있다. 동시에 스탈린은 “현기증”에 대한 의례적인 말을 통해 미리 자기 알리바이를 준비하고 있다. 독일 혁명을 파멸로 이끌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근시안적이고 비양심적인 정책이다.

8. 돌파구는 어디에?

지금까지 우리는 혁명의 정치적 주관적 영역 전체에서 제기되는 난관들과 위험들을 덮어버리거나 치장함이 없이 있는 그대로 제시했다. 이 난관들과 위험들은 아류 지도부인 스탈린 일당의 오류와 범죄행위로부터 나왔으며 지금 바로 눈앞에서 전개되고 있는 새로운 혁명적 상황을 파괴시킬 위협을 분명히 가하고 있다. 이들 당관료들은 우리의 분석 내용에 눈을 감거나 새로 우리에 대한 비방들을 고안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전혀 개선의 가망이 없는 당관료들이 아니라 독일 노동계급의 운명이다. 사태를 관찰하고 자기머리로 사고하여 내일의 날카로운 상황 하에서 배가된 치열함으로 올바른 투쟁방식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동지들이 당과 당기구에 상당히 존재한다. 우리의 분석과 결론들은 바로 이들의 관심을 끌고자 한다.

모든 결정적인 상황은 많은 불확실성을 안고 있다. 적대적이고 우호적인 분위기, 견해, 세력 등은 위기의 과정 자체에서 형성된다. 이것들은 수학적으로 예견될 수 없으며 투쟁과정에서 투쟁을 통해 측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생생한 측정들을 통해 정책들을 수정해야 한다.

사민당 노동자들의 혁명에 반대하는 보수적 저항력이 사전에 계산될 수 있는가? 아니다, 없다. 지난 몇 년의 사건들을 보건데 이 저항력은 거대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공산당의 잘못된 정책을 통해 이들 대부분은 사민당으로 결집했다. 이것은 진실이다. 황당한 사회파시즘 노선은 공산당의 잘못된 정책을 가장 높은 수준에서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민당 노동자들의 진정한 혁명 반대 저항력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공산당의 올바른 전술이라는 다른 척도가 필요하다. 이 결코 작지 않은 조건이 주어졌을 경우 사민당의 내적 부식 정도가 비교적 짧은 기간 안에 측정될 수 있다.

지금까지 말한 내용은 형태만 달리할 뿐 파시즘에 대해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파시즘은 다른 조건들과 함께 지노비에프-스탈린의 전략이 동요하면서 등장했다. 파시즘의 공격력, 안정도는 어떤 수준에 도달했는가? 당의 낙관주의자들이 말하고 있듯이 파시즘이 이미 절정에 도달했는가? 아니면 사다리를 이제 올라서기 시작한 것에 지나지 않는가? 이 질문은 기계적으로 예측할 수 없으며 오직 행동을 통해서만 결정될 수 있다. 파시즘은 적의 손에 든 면도날이라고 할 수 있다. 정확히 파시즘과 관련된 코민테른의 잘못된 정책은 짧은 시기 내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한편 올바른 정책은 사실 그렇게 짧은 시기 내에는 아닐지라도 파시즘의 입지를 침식할 수 있다.

체제의 위기 상황에서 혁명정당은 의회체제 내부에서보다 대중투쟁에서 더 강력한 힘을 보인다. 그러나 이것도 하나의 조건이 필요하다. 즉 상황을 올바로 이해하고 실천을 통해 대중의 필수적인 요구조건들을 권력 장악의 임무와 연결시킬 수 있을 경우에만 그렇다. 모든 것이 여기에 귀착된다.

따라서 독일의 현 상황에서 혁명의 난관과 위험만을 보는 것은 가장 커다란 오류가 될 것이다. 지금 상황은 명확하고 철저하게 이해되고 올바로 활용된다면 엄청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이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1).상황이 좌로 급선회하고 있을 때 강제적으로 우선회 정책을 취할 경우 상황의 모든 요인들이 더욱 변화될 것에 대비하여 특히 면밀하고 정직하고 기술적으로 사태를 관찰해야 한다.

제 2기와 제 3기의 투쟁 방식을 결코 추상적으로 대비시켜서는 안된다. 상황은 온갖 모순과 살아 움직이는 발전 동력을 지니고 있다. 이것들을 고려하는 가운데 상황을 있는 그대로 파악해야 한다. 상황의 진정한 변화들을 면밀히 주시하고 사태의 진정한 발전 방향에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 이것은 몰로토프나 쿠지넨의 방법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특정 상황에서 갈 곳을 파악하고 있는 것 -- 이것이야말로 문제의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부분이다. 이것은 관료적 방식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통계는 그 자체로 중요하지만 이 목적을 위해서는 불충분하다. 노동계급과 근로인민 일반의 폐부를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가장 핵심적이고 적절한 구호를 제출해야 한다. 이것 뿐이 아니다. 이 구호들이 대중들을 사로잡는 정도를 추적해야 한다. 모든 곳에서 수 만개의 촉수를 두면서 대중의 증언을 모으고 모든 문제들을 심사숙고하고 대중의 집단적 견해를 적극적으로 파악하는 적극적인 당을 통해서만 이 임무는 달성될 수 있다.

(2).당 운영의 문제는 이 임무의 수행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당원 전체의 신뢰와 무관하게 모스크바에 의해 임명된 관료들은 혁명을 지도할 능력이 없다. 현재 당 운영이 인위적일수록 결정적 순간에 당의 위기는 더욱 증폭될 것이다. 모든 전술 “전환”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전환은 당 운영의 전환이다. 이것은 삶과 죽음의 문제이다.

(3). 당 운영의 변화는 노선의 변화 그리고 동시에 투쟁 결과의 변화에 필요한 전제조건이다. 전자는 후자없이 생각될 수 없다. 혁명 전통을 가장하는 거짓 분위기, 진짜 문제를 묵살하는 분위기, 거짓 가치를 미화하는 분위기 즉 스탈린주의 행태로부터 절연해야 한다. 이 행태는 사상적이고 정치적인 영향력이 아니라 당기구의 조야한 물질적 의존상황과 여기에 기반한 명령방식들을 통해 온존된다.

당을 관료적 굴레에서 해방시키는 필요조건들 가운데 하나는 1923년 아니 1921년 3월 시기부터 독일당 지도부가 내건 “총노선”을 전체적으로 검토하는 것이다. 여러  문건과 이론작업들을 통해 좌익반대파는 코민테른의 불행한 공식 정책의 모든 단계들을 평가했다. 이 비판은 당의 자산이 되어야한다. 이 비판을 피하거나 이 비판에 대해서 침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신의 현재를 과거에 의거하여 자유롭게 평가하지 않는다면 당은 자신에게 맡겨진 위대한 임무를 달성하는 수준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4).지극히 유리한 상황이 주어졌으나 공산당이 “사회파시즘” 노선으로 사민당의 입지를 심각하게 흔들 능력이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을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진짜 파시즘이 소위 급진주의라는 말이 아니라 폭탄으로 사민당의 입지를 위협하게 될 것이다. 사민당이 파시즘의 개화를 준비한 만큼이나 파시즘은 주로 사민당에게 치명적인 위협을 가할 것이다. 현재 사민당의 강력한 위용은 의회적-민주적-평화주의적 통치 방식 및 형식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결정적인 순간에 사민당 지도자들이 노동계급의 혁명적 독재보다 파시즘의 승리를 더 선호할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바로 이 선택을 할 경우 사민당 지도자들은 휘하 노동자 대중의 저항에 직면하여 엄청난 난관에 봉착할 것이다. 파시즘에 대항하는 노동자 공동전선(united front of the workers) 정책은 바로 이 전체적인 상황으로부터 도출된다. 이 정책은 공산당에게 엄청난 가능성을 열어준다. 그러나 이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사회파시즘” 이론과 실천을 거부해야 한다. 지금 상황에서 이 황당한 노선의 해악은 우리에게 확실한 위협이 될 것이다.

사회 위기는 사민당 내부에 불가피하게 깊은 분열을 가져올 것이다. 사민당 노동자들이 사민당을 탈퇴하기 오래 전부터 대중의 급진화는 이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리는 사민당 내 다양한 조직, 분파들과 반파시즘 투쟁에 관한 합의들을 반드시 이끌어 내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대중들이 훤히 알 수 있는 명확한 조건들을 사민당의 기회주의적 지도자들에게 제시해야 한다. 어제 퍼쓸, 쿡, 장개석, 왕정위 등과 동맹했던 겁먹은 기회주의자들은 이러한 합의에 대항하여 사전에 공식 약속을 통해 자신들의 행동을 제약할 수도 있다. 공동전선에 대한 당관료들의 공문구에서 벗어나 1917년 레닌이 입안하고 볼셰비키들에 의해서 실천된 진정한 공동전선 정책으로 복귀해야 한다.

(5).실업 문제는 정치 위기의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자본주의 경영합리화에 대항하여 7시간 노동일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 이제 완전히 일정에 올라있다. 그러나 소련과의 광범위한 계획적인 협조 구호만이 이 투쟁을 혁명적 임무의 높은 수준까지 끌어 올릴 수 있다. 선거강령을 선포하면서 독일공산당 중앙위원회는 권력을 장악한 이후 공산주의자들이 소련과 경제협력을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의심의 여지없는 문제이다. 그러나 역사적 전망은 당일의 정치적 임무와 대치될 수 없다. 노동자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실업자들은 지금 바로 소비에트 공화국과의 광범위한 경제협력 구호 아래 투쟁으로 추동되어야 한다. 소련의 국가계획위원회는 독일 공산주의자, 노동조합원들의 도움을 받아 경제 협력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현재의 실업상황을 출발점으로 삼아 이 계획은 경제의 모든 부문들을 포괄하는 협력관계로 발전될 것이다. 문제는 권력을 장악한 후 경제를 재건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에 있지 않다. 바로 권력을 장악하는 것에 있다. 문제는 소련이 독일 소비에트와 협력 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에 있지 않다. 지금 이 협력을 위해 노동 대중을 획득하고 이 협력을 체제 위기와 실업 문제와 밀접히 연결시키고 이것을 양국의 사회주의적 재건을 위한 거대한 계획으로 확대-발전시키는 것이다.

(6).독일의 정치 위기는 유럽 베르사이유 체제의 효용을 의심하게 만들고 있다. 권력을 장악한 후 독일 노동계급은 베르사이유 조약을 폐기하겠다고 독일공산당 중앙위원회가 선언했다. 베르사이유 조약의 폐기를 노동자 혁명의 가장 높은 성취로 간주하다니! 그렇다면 이 조약을 대신할 것은 무엇인가? 이 점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이렇게 부정적인 측면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나찌와 엇비슷하다. 유럽 소비에트합중국 --- 이것이야말로 유럽의 분할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하게 올바른 구호이다. 유럽의 분할은 독일 뿐 아니라 유럽 전체를 완전히 경제적 문화적으로 쇠퇴시킬 것이다.

노동계급에 의한 유럽 통일 구호는 구역질나는 파시즘의 국수주의, 유럽국가들의 프랑스 괴롭힘 등에 대항하는 아주 중요한 투쟁의 무기이다. 가장 잘못된 가장 위험한 정책은 자신을 적과 같이 보이도록 색칠한 후 적에게 수동적으로 적응하려는 정책이다. 민족주의적 절망과 광기의 구호들에 대해 국제주의적 해방의 구호들로 대항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당은 국가사회주의를 청산해야 한다. 일국사회주의 이론은 국가사회주의의 주요한 요소이다.

지금까지 위에서 말한 바 전부를 하나의 간단한 식으로 정리하기 위해 문제를 이렇게 제기해보자: 당면한 시기에 독일공산당은 공격이나 방어 전술 중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하는가? 답은 방어 전술이다.

만약 공격의 결과 충돌이 일어난다면 노동계급 전위는 독일 국가권력과 파시즘의 동맹에 의해 머리가 박살날 것이다. 노동계급의 대다수는 놀라고 당황한 나머지 중립을 지킬 것이고 소자본가 계급의 대다수는 직접 파시즘을 지지할 것이다.

방어 전술은 독일 노동계급 대다수의 대오를 정비하고 파시즘의 위협에 대항하여 사민당 소속 노동자들을 비롯하여 여타 노동자들과 함께 공동전선을 수립하는 것을 의미한다.

파시즘의 위협을 부인하거나 과소평가 하거나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오늘날 독일 노동계급에 대한 가장 커다란 범죄행위이다.

공산당은 무엇을 “방어”할 것인가? 바이마르 공화국의 헌법을 방어할 것인가? 아니다. 이 일은 브란틀러에게 남겨두자. 공산당은 독일에서 노동계급이 획득한 물질적 도덕적 입지를 방어할 것을 촉구해야 한다. 이것은 노동자들의 정치조직, 노동조합, 신문, 인쇄소, 클럽, 도서관 등의 운명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공산당 소속 노동자들은 사민당 소속 노동자들에게 이렇게 말해야 한다: “공산당과 사민당의 정책은 화해할 수 없이 서로 대립하고 있다. 그러나 파시스트들이 당신들 조직의 건물을 파괴하기 위해 오늘밤 침입한다면 우리는 손에 무기를 들고 당신들을 돕기 위해 달려갈 것이다. 우리가 같은 경우를 당할 경우 똑같이 행동할 것을 약속하겠소?”  이것이 지금 시기 우리 정책의 핵심이다. 모든 선동은 이렇게 조율되어야 한다.

우는 소리를 내거나 허풍을 떨 경우 노동자들은 금방 지겨워 한다. 선동을 더욱 일관되고 진지하고 사려깊이 수행할수록 그리고 모든 공장, 모든 노동계급 지구와 동네에서 진지한 방어조치들을 더 많이 제안하면 할수록 파시스트들의 공격이 우리를 기습하는 위험은 더 적어질 것이고 이러한 공격이 노동자 대오를 강화시킬 확률은 그만큼 더 클 것이다.

자신들의 현란한 성공과 조급하며 규율이 없는 소자본가적 특성 때문에 파시스트들은 가까운 미래에 저돌적으로 공세를 취할 가능성이 크다. 이들에 대항하여 우리도 공세로 나올 경우 성공 가망성이 없을 뿐 아니라 치명적인 위험에 처하게 된다. 이와 반대로 파시스트들이 사민당 노동자들과 일반 근로대중의 눈에 도발세력으로 보이면 보일수록 이들의 공세를 물리치고 우리가 공세를 취할 능력은 그만큼 더 커진다. 방어태세는 경계를 엄하게 하며 적극적이며 대담해야 한다. 우리측 사령부는 전장 전체를 조망하고 모든 변화들을 관찰하여 총공세 신호가 요구되는 결정적 순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상황이 어떻든 언제나 방어태세만 취하는 전략가들이 있다. 브란틀러와 그의 추종자들이 바로 이들이다. 이들도 지금 방어 전술을 주창한다. 그러나 이들의 정체를 혼동하는 것은 순전한 유치함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은 언제나 이렇게 행동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사민당 대변자들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의 입지를 방어하기 위해 사민당 노동자들과 화해를 한 후 이들을 결정적인 공세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이다. 브란틀러와 그의 추종자들은 이렇게 할 능력이 전혀 없다. 계급 역관계가 노동자 혁명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급선회하는 순간 이들은 혁명의 방해물이 될 것이다. 방어 전술은 사민당 노동자들과의 화해에 기초하고 있지만 이것이 브란틀러 진영에 대한 우리의 반대를 늦추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들의 배후에는 대중운동이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계급 간의 관계와 노동자 전위의 임무에 대해 지금까지 언급한 것과 연관시켜 말할 것이 있다. 독일과 다른 나라에서 볼셰비키-레닌주의자들에 대해 스탈린 관료일당이 휘두르는 폭력은 특히 커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사민당 경찰과 파시스트 돌격대에게 이들이 직접 봉사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혁명적 노동자 운동의 전통과 근본적으로 위배되는 이러한 폭력은 소자본가적 관료들의 분위기와 전에 없이 일치한다. 이들은 위에서 내려오는 보장된 급료를 받으며 자리를 차고 앉아 당내 민주주의의 공세가 자신들의 특권을 박탈하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다. 스탈린주의자들의 파렴치한 행위를 광범위하게 설명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당기구의 아무 쓸모없는 관료들의 역할을 폭로하는 작업과 같이 가능한 한 구체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소련과 다른 나라의 경험에 의하면 좌익반대파에 대해 가장 맹렬하게 나오는 신사양반들은 바로 자신들의 범죄행위 즉 공금 유용, 직위 남용, 아니면 단순히 자신들의 완전한 무용성 등을 최고 지도부로부터 숨겨야 하는 바로 그런 자들이다. 지금까지 언급한 임무에 기초하여 대중에 대한 선동을 확대하면 할수록 볼셰비키-레닌주의자에 대한 스탈린 당관료들의 강압적인 폭거를 그만큼 더 잘 폭로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은 너무도 명백하다.

우리는 지금까지 독일의 상황과 관련하여 코민테른의 전술 전환 문제에 대해서만 검토하였다. 그 이유는 이렇다. 우선 독일의 위기는 세계 노동계급 전위의 관심을 다시 한 번 독일공산당에게 집중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독일의 위기로 인해 혁명의 모든 문제들이 가장 뚜렷하게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말한 것들이 어느 정도 다른 나라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프랑스의 경우 전후 계급투쟁의 모든 형태들은 독일과 비교할 수 없이 그 성격이 무디고 부차적이다. 그러나 프랑스의 운명이 독일의 운명과 직접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리고 양국의 사태 발전의 일반적 경향도 동일하다. 어쨌든 코민테른의 전술 전환은 보편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미 1928년에 몰로토프에 의해서 권력을 제일 먼저 장악하게 될 것이라고 선언되었던 프랑스 공산당은 지난 2년간 완전히 자살적인 정책을 수행해 왔다. 특히 이 당은 경제 위기를 간과했다. 위기가 경기회복을 대체하기 시작한 그 순간에 경기회복기 및 자본주의 안정기에 필요한 전술이 선언되었다. 따라서 독일과 관련하여 우리가 말하고 있는 모순, 난관, 임무 등이 역시 프랑스에서도 일정에 올라 있다.

상황의 돌변과 함께 선언된 코민테른의 전술 전환은 좌익반대파에게 새로우며 특히 중요한 임무를 부여하고 있다. 좌익반대파의 세력은 왜소하다. 그러나 모든 정치 경향들은 자신들의 임무 증대와 함께 조직적인 성장을 보인다. 이 사실을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 곧 미래의 승리를 가장 잘 보장할 것이다.       

2. 텔만과 “인민혁명” (1931년 4월)

텔만의 연설 가운데 “인민”혁명 부분을 인용한 것에 감사드립니다. 이 부분을 한 번 읽어보았습니다. 이보다 문제를 더 황당하고 악의적으로 혼동되게 제기한 방식은 상상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의 구호로서 그리고 레닌까지 언급해 가면서 “인민혁명”을 제기하다니 참으로 한심합니다. 파시스트 슈트라써는 자신이 발행하는 신문 매호마다 맑스주의 구호인 계급혁명에 대비시켜 인민혁명을 들먹이고 있습니다.

바로 이 문제와 관련하여 코민테른의 구호들이 변천한 것을 살펴보면 아주 의미심장합니다. 코민테른 제 3차 세계대회 이후 “(노동자) 계급 대 (자본가) 계급” 구호는 노동자 공동전선 정책의 대중적 표현이 되었습니다. 이 구호는 아주 적절합니다. 자본가 계급에 대항하여 모든 노동자들은 단결해야 합니다. 이후 이 구호는 스탈린 일당에 의해 노동자들의 이해에 반하여 개량주의 노동관료들과 동맹하는 정책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영국 총파업). 나중에 이들은 이제 정반대의 극단으로 치달았습니다. 개량주의자들과는 절대로 합의할 수 없다. “계급 대 계급”이라는 것입니다. 사민당 노동자들을 공산당 노동자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도록 사용되어야 했을 바로 이 구호가 “제 3기”에는 마치 사민당 노동자들이 다른 계급인 것처럼 이들에 대항해 투쟁해야 한다는 의미로 변질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또 의미가 바뀌었습니다. 노동자 혁명에 대신하여 인민혁명이 주창되고 있습니다. 텔만과 같은 한심한 혁명가들은 진짜 적과 마주하면 자신을 적과 똑같이 변장시키고 혁명 투쟁이 아니라 똑똑한 수작으로 대중을 획득할 방법을 제일 먼저 생각합니다. 정말이지 부끄러운 문제 제기 방식입니다! 만약 허약한 스페인 공산주의자들이 이 방식을 채택한다면 결국 이들은 스페인 노동자 계급에 대항하여 스페인판 국민당 지지 정책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3. 노동계급에 의한 생산의 통제 (1931년 8월 20일)

동지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통해 노동계급에 의한 생산의 통제 구호에 관하여 몇 가지 일반적 생각들을 적어내려 가겠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있을 의견 교환에 필요한 사전작업이 될 것입니다.

이 주제와 관련하여 떠오르는 첫 번째 질문은 이렇습니다: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겠지만 아주 오래 존속할 안정적인 체제로서 노동계급에 의한 생산의 통제 체제를 상상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이 체제의 계급적 성격을 좀더 명확히 규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체제에서는 생산의 통제력은 노동계급의 손에 있으나 생산수단의 소유권과 처분권은 자본가에게 있습니다. 따라서 이 체제는 모순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종의 경제적 지배의 공백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동자들은 무슨 관념적인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고용주의 생산 및 상거래 행위에 실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생산 통제권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통제권이 어떤 형태로든 특정 한도 내에서 직접적인 경영권으로 전환되지 않으면 이 목적은 달성될 수 없습니다. 충분히 발전될 경우 노동계급에 의한 생산의 통제는 공장, 은행, 기업 등에서 일종의 경제적 이중권력을 형성합니다.  

생산의 경영 행위에 노동자들이 참여하는 체제가 지속적이고 안정적이며 “정상적인” 것이 되려면 이 체제는 계급투쟁이 아니라 계급협조에 기초해야 합니다. 그런데 계급협조는 노동조합의 상층관료층과 자본가 협회를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습니다. 독일의 “경제 민주주의”, 영국의 “몬드주의” 등과 같은 적지 않은 실험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노동계급에 의한 자본 통제가 아니었으며 노동관료들이 자본에 굴종하는 현상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 굴종은 노동계급이 인내할 경우 오래 지속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 동안의 경험이 보여주었습니다.

공장이나 현장 등 생산지점에 가까울수록 이러한 체제는 존재 가능성이 그만큼 더 희박합니다. 노동자들의 직접적이고 핵심적인 이해관계와 맞물려 있으며 생산과정 전체가 노동자의 눈앞에서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공장위원회를 통한 노동자의 통제력 행사는 계급협조가 아니라 격렬한 계급투쟁의 기초 하에서만 가능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기업, 트러스트, 모든 공업 분야, 경제 전체에서 이중권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노동계급에 의한 생산의 통제 체제는 어떤 국가체제와 일치하겠습니까? 이 경우 권력은 아직도 노동계급에 손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노동계급이 국가권력을 장악했을 경우는 노동계급에 의한 생산의 통제가 아니라 노동자국가에 의한 생산의 통제가 시행될 것입니다. 후자는 국유화에 기초하여 국가가 생산을 장악하는 체제입니다. 우리가 지금 얘기하고 있는 것은 부르조아 국가권력 하에서 노동계급이 생산을 통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권력을 확고히 장악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자본가 권력은 기업 내에 결코 이중권력을 허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노동계급에 의한 생산의 통제는 계급 역관계가 부르조아 계급과 국가에게 불리할 정도로 급격히 변화된 상황에서만 가능합니다. 장차 자본가 계급으로부터 국가권력을 빼앗고 생산수단의 소유권까지 장악하게 될 노동계급이기 때문에 자본가 계급에 대해 생산의 통제권을 강제로 행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핵심 성격상 이 체제는 일시적이며 이행기적 입니다. 즉 부르조아 국가가 급격히 동요하고 노동계급이 공세에 나서면서 자본가 계급이 후퇴하는 시기 즉 말 그대로 노동계급 혁명기에나 존재할 수 있습니다.

자본가가 자기 공장에서 주인노릇을 제대로 할 수 없다면 자기 국가의 주인노릇도 제대로 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즉 공장 내의 이중권력 상황은 국가의 이중권력 상황과 같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이 현상은 기계적으로 이해되어서는 안됩니다. 공장의 이중권력 상황과 국가의 이중권력 상황이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존재한다는 의미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노동자 혁명의 가능성이 매우 높은 정도까지 이중권력 상황이 진전된다 하더라도 나라마다 사정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각기 다른 요인들에 의해서 그 방식이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격심한 경제위기가 장기간 계속되고 기업 내 노동자조직이 강력하지만 혁명정당이 상대적으로 약하고 국가권력이 비교적 강력하여 파시즘을 억제할 수 있는 나라가 있다고 합시다. 이 경우는 노동계급에 의한 생산의 통제 체제가 정치적 이중권력으로 진전되기 한참 앞서 등장할 수 있습니다. 

지금 개괄적으로 예를 든 조건은 특히 독일의 경우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이 나라에서 이중권력 상황은 바로 공장에서 노동계급이 생산을 통제하기 시작하면서 등장할 수 있습니다. 코민테른의 사이비 지도자들은 소비에트 형태를 우상화하고 있는데 이러한 잘못된 사고를 배격하기 위해서라도 이 사실을 유념해야 합니다.

현재 공산당의 정책을 지배하고 있는 코민테른의 공식 견해에 따르면 노동자 혁명은 소비에트를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소비에트는 특히 무장봉기를 위해서 수립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투적 사고는 전혀 쓸모가 없습니다. 소비에트는 조직 형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문제는 정책의 형식이 아니라 정책의 계급적 내용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독일의 경우 에버트-샤이데만의 소비에트가 있었습니다. 1917년 7월 러시아에서는 화해주의자들이 주도한 소비에트가 노동자와 병사들을 공격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 레닌은 소비에트가 아니라 공장위원회에 기초하여 무장봉기를 성공시킬 생각을 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이후 사태 발전에 의해 기각되었습니다. 무장봉기가 있기 6주 내지 8주 전 중요한 소비에트들은 대부분 우리편으로 획득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예는 당시 소비에트를 만병통치약으로 간주할 의향이 우리에게 조금도 없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923년 가을 스탈린과 그의 동맹자들에 대항하여 본인은 혁명적 공세로 나서야 할 필요성을 옹호하는 투쟁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이때 소련의 지령에 따라 독일에서 소비에트가 수립되어 기존의 공장위원회와 함께 투쟁의 구심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습니다. 본인은 이 황당한 주장에 대항해서도 동시에 투쟁한 바 있습니다. 당시 공장위원회는 실제로 소비에트의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지금과 같은 혁명적 격동기에도 독일에서 공장위원회는 특정 단계로 발전하면 소비에트를 대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이 점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습니다. 1917년 2월과 3월 러시아에서 그리고 1918년 11월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소비에트가 수립된 상황을 분석한 결과 본인은 이 주장의 근거를 확보했습니다. 당시에는 모두 멘셰비키들과 사민주의자들이 소비에트를 수립했습니다. 이들은 전시 상황에서 “민주주의” 혁명이 발발하자 이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후 러시아에서 볼셰비키들은 소비에트를 화해주의자들의 영향력으로부터 떼어내고 획득했습니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독일에서 소비에트가 자취를 감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1931년 현재 “소비에트”라는 말은 1917-18년의 경우와 그 어조가 아주 달라졌습니다. 소비에트는 지금 볼셰비키 독재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민주의자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독일 사민주의자들은 소비에트 수립의 기회가 다시 등장할 경우 주도권을 행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소비에트 수립을 끝까지 반대할 것입니다. 부르조아 국가에게 그리고 특히 이 국가의 파시스트 근위대에게는 공산주의자들의 소비에트 수립은 곧 노동계급에 의한 내전 선언을 의미할 것입니다. 따라서 공산당이 소비에트 수립의 필요성을 인정하기 전에 결정적인 싸움을 걸 것입니다.

그래서 독일의 경우 봉기와 권력 장악 전에 노동자의 대다수를 포괄할 소비에트가 수립될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차라리 혁명이 승리한 직후 직접적 권력기관으로 소비에트가 수립될 가능성이 더 큽니다.

그러나 공장위원회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공장위원회는 지금 존재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자 사민주의자 모두 이 조직을 건설하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공장위원회는 노동자 공동전선의 실현체입니다. 이 조직은 혁명적 물결이 높아짐에 따라 그 역할을 더욱 확대, 심화시킬 것입니다. 이 조직의 역할 및 공장, 도시, 공업분야, 지역, 국가에의 개입 정도는 커질 것입니다. 공장위원회의 지역 및 전국 단위 총회는 소비에트 즉 이중권력 기관의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공장위원회라는 매개를 통해 사민당 노동자들을 획득하는 일이 특정 시점에 직접 소비에트를 수립하라고 촉구하는 일보다 훨씬 쉬울 것입니다.

도시 공장위원회들의 중앙기구는 도시 소비에트의 역할을 철저하게 담당할 수 있습니다. 1923년 독일에서 이 예상이 현실로 목격되었습니다. 자신의 기능을 확대하고 더 대담한 임무를 스스로 설정하고 연방기구를 수립하면서 공장위원회는 소비에트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사민당 및 공산당 소속 노동자들을 확실하게 단결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공장위원회는 봉기의 조직 기반이 될 수 있습니다. 노동계급이 승리한 후 공장위원회/소비에트는 원래 의미의 공장위원회와 노동계급 독재의 기관인 소비에트로 자연스럽게 분리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노동계급의 승리 전에 소비에트 수립이 불가능하다는 의미는 전혀 아닙니다. 가능한 현상을 모두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노동자 혁명 전에 부르조아 국가체제가 붕괴하거나 노동자 봉기 전에 파시즘이 분쇄될 경우 권력장악을 위한 투쟁기관으로서 소비에트가 수립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경우 공산주의자들은 상황을 미리 파악하여 제때에 소비에트 수립 구호를 제출해야 합니다. 이 경우 봉기의 최상 조건이 마련될 것이며 우리는 이 상황을 최대한 활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상황을 미리 예상하여 준비할 수는 결코 없습니다. 아직도 강력한 부르조아 국가기구가 존재하고 있으며 파시즘이라는 예비군이 그 뒤에 버티고 있습니다. 따라서 소비에트가 아니라 공장위원회를 통해서 혁명이 발전할 개연성이 더 큽니다.

스탈린 일당은 노동계급에 의한 생산의 통제 역시 혁명적 상황에서나 가능하다는 순전히 기계적 사고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편견을 명확한 논리로 표현한다면 이렇게 될 것입니다: 일종의 경제적 이중권력 상태인 노동계급에 의한 생산의 통제는 전국 차원의 정치적 이중권력 상태가 조성되지 않고서는 생각할 수 없다; 그리고 이 상황은 소비에트가 부르조아 국가권력에 대항하지 않고서는 생각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노동계급에 의한 생산의 통제 구호는 소비에트 수립 구호와 동시에 제출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말한 바에 비추어 보면 이러한 논리는 크게 잘못되었으며 도식적이고 무미 건조하다는 사실이 명확해 집니다. 실제로 이러한 논리는 다음과 같이 당이 노동자들에게 최후통첩을 제출하는 것과 같습니다: 소비에트 수립을 인정할 경우에만 생산의 통제권 장악 투쟁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과정이 반드시 동시에 전개될 필요는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문제의 핵심입니다. 경제위기, 만연한 실업, 자본가들의 약탈적인 책략 하에서 노동계급 대다수는 혁명적으로 국가권력을 장악할 필요성을 이해하기 전에 기업비밀의 철폐 및 은행, 상업, 생산에 대한 통제권을 장악하기 위해 투쟁할 지도 모릅니다.

생산의 통제권 장악을 위한 투쟁을 시작한 후 노동계급은 불가피하게 권력 및 생산수단 장악을 위한 투쟁에 나서게 될 것입니다. 신용대부, 원자재, 시장 등의 문제는 즉시 개인기업의 한계를 벗어나서 전국 차원에서 이것들에 대한 통제권을 확립하는 문제로 즉시 확대될 것입니다. 독일처럼 공업이 고도로 발전한 나라에서 수출입의 문제는 즉시 다음 과제를 제기합니다: 전국 차원에서 노동계급이 경제 통제권을 장악해야 한다; 생산의 중앙 통제기관을 부르조아 국가기구와 대항시켜야 한다. 노동계급에 의한 생산의 통제 체제는 부르조아 국가와 화해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이 체제는 활동 범위와 임무가 확대되면서 불가피하게 부르조아 국가와 참을 수 없는 모순을 일으킬 것입니다. 이 모순을 해결하는 길은 노동계급이 정권을 장악하거나(러시아) 자본의 악랄한 독재를 가져올 파시스트 독재(이탈리아)가 성립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독일은 노동계급에 의한 생산의 통제 투쟁이 혁명적 노동자 공동전선의 첫 단계가 될 가능성이 가장 많은 나라입니다. 사민당이 아직도 강력한 대중적 세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노동자 공동전선은 권력장악을 위한 공공연한 투쟁이 시작되기 전에 수립될 것입니다. 

그러나 노동계급에 의한 생산의 통제 구호가 즉시 제출될 수 있을까요? 이 구호에 걸맞게 혁명적 상황이 충분히 무르익었습니까? 투쟁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해답을 내리기는 어렵습니다. 혁명적 상황의 온도를 즉시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온도계는 없습니다. 다만 투쟁하면서 가장 다양한 측정기들의 도움을 받는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상황 속에서 활용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측정기 중의 하나가 바로 노동계급에 의한 생산의 통제 구호입니다.

이 구호에 기초하여 사민당, 카톨릭 중앙당 그리고 무당파 노동자들이 공산당 노동자들과 공동전선을 수립하도록 준비할 수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이 구호의 의의가 있습니다. 특히 사민당 노동자들의 태도는 결정적입니다. 공산당과 사민당 노동자들의 혁명적 공동전선은 아직 성립되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직접적 혁명투쟁의 장애물이며 바로 이것이 독일의 정치상황을 가장 근본적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강력한 파시즘의 존재는 물론 노동계급 승리의 중대한 걸림돌입니다. 그러나 노동계급이 분열되어 독일 인민을 혁명승리의 길로 이끌 가능성이 지금 당장 없기 때문에 파시즘이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입니다. 노동계급의 혁명적 공동전선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이미 파시즘에 대한 치명적인 정치적 타격이 됩니다.

바로 이 때문에 주민투표에 대한 독일공산당 지도부의 정책은 범죄행위 그 자체인 것입니다. 말이 나온 김에 이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노동계급의 가장 악랄한 적도 사민당 노동자들을 공산당과 이간질시켜 혁명적 공동전선이 수립되는 것을 막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없을 것입니다.

이제 이 오류는 교정되어야 합니다. 노동계급에 의한 생산의 통제 구호는 이 점에서 대단히 유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구호는 올바로 사용되어야 합니다. 마치 관료들이 명령하듯 필요한 준비작업도 없이 제출될 경우 이 구호는 공포탄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공산당에게 표를 던지는 노동자들의 신뢰를 갉아먹어서 당의 입지를 약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이 결정적인 구호를 공식적으로 제출하기 전에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여 필요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작업을 공장 현장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이 구호는 특정 공업, 은행, 상업 분야 등을 대표하는 전형적인 기업의 상황에 맞추어 확인되고 적용되어야 합니다. 특히 투기, 은밀한 공장폐쇄, 임금을 낮추기 위한 이윤 축소 보고 및 생산비용 과대 계산 등 명확한 사례들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러한 자본가들의 책략에 속은 노동 대중 특히 사민당 노동자들의 분위기가 공산당 노동자들을 통해 잘 감지되어야 합니다. 이들이 기업비밀을 철폐하고 노동계급에 의한 생산의 통제를 확립하는 일에 어느 정도 호응할 지를 알아야 합니다. 특히 명확한 개별 사례들을 이용하여 이 문제들을 직접 드러내면서 선전작업을 줄기차게 전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방법을 통해 사민당 노동자들의 보수성을 파악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혁명적 상황의 성숙도를 파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대중의 분위기를 미리 파악한 후 이에 기초하여 당의 필요성을 이론적이고 선전적으로 동시에 해명해야 합니다. 그리고 선진노동자 특히 공장위원회 소속 노동자 그리고 저명한 노동조합 활동가 등에게 진지하고 객관적으로 상황을 전달하고 필요한 행동지침을 내려야 합니다. 이러한 준비작업이 성공해야 당이 선전활동을 선동활동으로 전환하고 노동계급에 의한 생산의 통제 구호로 직접 행동에 나설 시점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좌익반대파의 정책은 최소한 핵심적으로 지금까지 설명한 내용으로부터 명확히 도출됩니다. 우선 이 문제를 올바로 원칙에 입각하여 선전하며 동시에 이 구호를 위해 투쟁할 구체적인 상황을 연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좌익반대파는 역량에 걸맞게 소규모로 위에서 말한 준비작업을 당면한 임무로 설정하고 행동에 들어가야 합니다. 이 임무에 기초하여 좌익반대파는 공장위원회와 노동조합의 공산당 당원들과 연락을 유지하며 이들에게 상황을 전체적으로 설명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들로부터 혁명의 올바른 견해가 어떻게 공장과 현장의 구체적 상황에 적용될 수 있는 지를 배워야 합니다.

후기

이상으로 끝내려 했으나 스탈린주의자들이 다음과 같이 반박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몇자 더 적습니다: 당신들은 독일에서 소비에트 수립 구호를 “기각할” 준비가 되어 있소; 그러나 당신들은 한때 우리가 중국에서 소비에트 수립 구호를 반대했다고 격렬하게 비난하였소. 실제로 이러한 “반박”은 가장 저열한 궤변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궤변은 계급투쟁의 핵심내용을 조직 형식과 동일시하고 있으며 동시에 조직 형태 우상화에 빠져 있습니다. 만약 스탈린주의자들이 소비에트 형태를 중국에 적용하는 것을 방해하는 이유들이 존재한다고 선언하고 중국 상황에 적합한 다른 형태의 혁명적 공동전선을 권유했다면 우리는 당연히 이 제안에 대해서 큰 관심을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소비에트 대신에 국민당을 선택할 것을 즉 노동자들을 자본가들에게 종속시키는 전술을 채택하라고 권유했습니다. 이 논쟁은 조직의 계급적 내용에 관한 것이었으며 조직 “기술”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스탈린의 동맹자였던 장개석과 왕정위의 의식이 아니라 대중의 의식을 고려해보면, 중국에 소비에트 수립을 방해할 주관적인 장애물은 전혀 없었습니다. 이 사실을 덧붙이고자 합니다. 중국 노동자들에게는 사민주의적 보수주의적 전통이 없습니다. 소련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열성은 정말 보편적이었습니다. 심지어는 현재 중국 농민운동조차 소비에트를 수립하려고 투쟁하고 있습니다. 1915-27년 중국혁명기에 소비에트 수립을 향한 대중들의 열망은 지금보다 더욱 보편적이었습니다.

 

4. 공장위원회 그리고 노동계급에 의한 생산의 통제 (1931년 9월 12일)

동지들,

여러분들은 대체로 노동계급에 의한 생산의 통제 구호와 특히 공장위원회를 통해 이것을 성취하려는 시도를 전부 기각하고 있습니다. 기각의 주요한 이유는 “합법적” 공장위원회가 이 목적에 부적합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인이 “합법적” 공장위원회를 언급한 부분은 어느 글에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만이 아닙니다. 대중의 투쟁 압력이 열화와 같아서 공장과 전국에서 이중권력 상황이 부분적으로 준비되었고 이미 일부 정착되었다는 전제하에서만 공장위원회가 노동계급에 의한 생산의 통제를 담당하는 기관이 될 수 있다고 명확히 지적했습니다. 혁명이 바이마르 헌법의 틀 내에서 발생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노동계급에 의한 생산의 통제는 공장위원회에 대한 현 법률의 틀 내에서 불가능하다는 점은 명확합니다.

그리고 무정부주의자들만이 이 사실로부터 비약하여 바이마르 헌법이나 공장위원회 법률을 활용하는 것이 인정될 수 없다고 결론 내릴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혁명적 방식으로 활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공장위원회는 법률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만드는 바에 따라 그 성격이 정해집니다. 특정 단계에서 노동자들은 법률의 틀을 “무너뜨리거나” 아주 무시해 버립니다. 바로 이런 가운데에서만 혁명적 상황으로 이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상황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의 일이므로 준비해 나가야 합니다.

공장위원회에 출세주의자, 파시스트, 사민주의자들이 득실거린다는 사실은 공장위원회 활용을 반대하는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은 혁명정당의 허약함을 증명할 뿐입니다. 노동자들이 이런 공장위원들을 인정하는 한 혁명을 일으킬 수 없습니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그렇다 치고 혁명정당이 더욱 강력하게 성장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노동자들의 가장 중요한 활동 무대는 공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독일에는 수 천명의 실업자가 있다고 동지들은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본인도 이 사실을 간과한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로부터 어떤 결론을 도출할 수 있습니까? 현업 노동자들을 완전히 무시하고 모든 희망을 실업 노동자들에게 걸라는 것입니까? 그러나 이것은 순전히 무정부주의적 전술에 불과합니다. 물론 실업 노동자들은 강력한 혁명적 요인이며 특히 독일에서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독립된 노동자군대가 아니라 이러한 군대의 좌익을 구성하는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노동계급의 주요한 핵심은 언제나 공장에 있습니다. 공장위원회 문제가 계속해서 대단히 민감한 사안이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더욱이 개별 기업과 생산과정 전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는 실업자들에게도 꽤나 중요한 문제입니다. 실업자들도 생산을 통제하는 작업에 아무 제한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되어야 합니다. 특히 실제 투쟁 과정에서 투쟁에 필요한 조직 형태는 생겨날 것입니다. 물론 이 모든 일들은 현 법률의 틀 내에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실업자는 물론이고 현업 노동자들까지 포괄하는 조직 형태들은 생겨날 것입니다. 그러나 실업자들의 존재를 들먹이면서 스스로의 약점과 수동적인 태도를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브란틀러 일당도 생산에 대한 통제와 공장위원회 건설에 찬성한다고 동지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본인은 시간 부족으로 이들의 신문을 분석하는 작업을 오래 전에 그만두었습니다. 이들이 이 문제들을 어떤 방식으로 제기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이들이 기회주의와 속물주의를 벗어 던지지 못했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의미에서조차 이들의 입장이 우리에게 결정적인 중요성을 가질 수 있을까요? 이들은 코민테른 제 3차 세계대회로부터 뭔가를 배웠습니다. 이들은 대중을 획득하기 위한 볼셰비키식 투쟁 방법들을 왜곡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러한 방법들을 정말 포기해야 합니까?

동지들의 편지를 보면 동지들은 노동조합 내부에서의 활동과 의회 활용 역시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동지들과 본인의 노선 차이는 너무 큽니다. 본인은 맑스주의자이지 바쿠닌주의자가 아닙니다. 자본주의 사회를 타도할 세력과 지렛대를 찾기 위해 자본주의 사회의 현실 위에 서 있을 뿐입니다.

동지들은 공장위원회, 노동조합, 의회를 소비에트와 대비시킵니다. 이러한 논리와 관련하여 독일인들은 아주 멋진 격언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말이지 비단모자는 아주 좋다; 다만 그것이 내 것이라면 말이다. 동지들은 소비에트를 수립하고 장악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소비에트 수립에 필요한 교량은 물론이고 자동차 도로와 오솔길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행동지(紙)[Die Aktion]는 소비에트를 우상, 초사회적 유령, 종교적 신화로 돌변시켰습니다. 신화는 사람의 약점을 은폐하거나 아니면 기껏해야 위안의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죽음 앞에 무기력하기만 할 뿐이며 공장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므로 ... 이에 대한 보상으로 우리는 높은 곳에 거할 것이며 소비에트가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서 하늘에서 떨어질지어다.” 이것이야말로 독일 초좌익 철학의 진면목입니다.

아닙니다. 이 노선은 본인과는 전혀 무관합니다. 우리의 견해 차이는 독일 공장위원회 법률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노동자 혁명의 맑스주의 법칙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5. 민족주의적 공산주의에 대항하며 (“적색 주민투표”의 교훈) (1931년 8월 25일)

이 글이 독자들에게 읽힐 때는 이미 상황이 바뀌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 글의 내용 가운데 일부가 사태의 발전에 뒤처져 있을 것이다. 스탈린 국가기구의 방해 노력과 이에 대한 모든 부르조아 정부들의 우호적인 협력 때문에 필자는 몇 주일이 지난 후에야 이미 일어난 사태들에 대해 반응을 보일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결코 완전하다고 할 수 없는 정보에 의존하여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조건 역시 덧붙이지 않을 수 없다. 독자들은 이 점을 양해해 주기 바란다. 그러나 지극히 불리한 상황에서도 최소한 약간의 이익이라도 건져내려고 노력해야 한다. 사건들에 대해 매일 매일 가장 구체적으로 반응할 수 없기에 필자는 근본적인 측면들과 중심적인 문제들에 관심을 집중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이 글은 나름의 의의를 갖게 될 것이다.

만사가 거꾸로 뒤집힌 이유

프로이센 주민투표(州民投票)를 통해 저질러진 독일공산당의 오류는 시간이 경과하면서 그 성격이 좀더 확실하게 밝혀질 것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결코 범해서 안될 오류로 혁명전략 교과서에 기록될 것이다.

독일공산당 중앙위원회는 모든 문제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정세 판단도 오류이며 단기적 투쟁목표도 잘못 제기되었으며 이것을 성취할 수단도 잘못 선택되었다. 정책 집행 과정에서 당 지도부는 최근 몇 년간 자기 입으로 주창했던 모든 “원칙들”을 뒤집어 버렸다.

7월 21일 중앙위원회는 프로이센의 사민당 정부에 대해 민주적 사회적 양보조치들을 취할 것을 요구했다.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주민투표 실시 운동에 나서겠다고 위협까지 했다. 그러면서 한편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의 하수인인 공산당은 특정 조건들을 수락할 경우 파시즘에 대항하는 공동전선을 수립할 용의가 있다고 사민당 상층부에 제안했다. 사민당이 이 제안을 거부하자 스탈린주의자들은 사민당 정권에 대항하여 파시즘 세력과 공동전선을 형성했다. 결국 이들은 “아래로부터의” 공동전선 뿐 아니라 “위로부터의” 공동전선까지 시도했다. 이것은 히틀러 깡패집단의 공격으로부터 민주주의와 사회 입법을 공동으로 방어하자는 제안을 “공개서한”을 통해서 브라운과 세버링(주 1)에게 제출하는 것이 텔만에게 허용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방식으로 공산당 지도부는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르는 채 “오직 아래로부터의” 공동전선이라는 형이상학을 던져버리고 가장 어리석고 가장 경악스러운 “오직 위로부터의” 공동전선을 실험했다. 이 실험을 노동자 대중은 예상하지 못했으며 물론 지지하지도 않았다.      

기존 노선을 고수한다면 사회파시스트들과 공동으로 민주주의를 방어하자고 공식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가? 그런데 일단 주민투표 투쟁으로 나서자 공산당 관료들은 나찌당에 대해 어떠한 조건도 요구하지 않았다. 이유는 무엇인가? 사민당과 나찌당이 모두 파시즘 세력이라면 사민당에 대해서는 조건을 걸고 나찌당에 대해서는 아무 조건도 걸지 않을 수 있는가? 아니면 이 두 파시즘 “종류들”의 사회적 기반과 대중기만술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질적인 차이가 있는가? 그렇다면 이들을 싸잡아 파시스트라고 부르면 안된다. 정치에서 명칭은 모든 것을 하나의 더미로 던져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 구분시키기 위해 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텔만이 히틀러와 공동전선을 체결했다는 것이 정말인가? 공산당 관료들은 히틀러의 흑색 또는 갈색 주민투표 공세에 대비해서 텔만의 주민투표 투쟁을 “적색” 주민투표라고 불렀다. 서로에게 철천지 원수인 두 세력이 공동전선을 체결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그 동안 자행되었던 사민당의 온갖 거짓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은 공산당의 이 엄연한 배신행위를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엄연히 사실이다: 스탈린 관료집단은 사민당에 대항하는 공동전선을 나찌당과 결성하는 과정에서 혁명적 노동자들을 끌어들였다. 당의 대중적 지지도를 투표로 확인하겠다고 결정하더라도 주민투표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정치적 의미가 너무도 빈약하다. 그러나 이 결정에는 나름의 정당성이 있다.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파악하고 스스로를 파시즘 세력과 분리시킬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일 “민주주의”에 의하면 주민투표에서 유권자들은 지지정당을 표명할 권리가 없다. 결국 유권자 모두는 하나의 집단이 되어 명시된 사안에 찬성이나 반대의 견해만을 나타낼 뿐이다. 결국 주민투표의 한계 내에서 보면 독일공산당은 파시즘과 공동전선을 확실히 체결했다.

이렇게 해서 밤 12시와 먼동이 틀 사이에 모든 것은 거꾸로 뒤집힌 것처럼 보였다. 

“공동전선”, 그러나 누구와 함께?

그렇다면 180도 전술 전환을 통해 공산당 지도부가 달성하고자 했던 정치적 목표는 무엇이었는가? 지도자들이 발표한 공식 문서와 연설문을 읽으면 읽을수록 이 목표는 더 이해가 가지 않는다. 프로이센의 사민당 정부가 파시즘에게 정권 장악의 길을 터주고 있다고 이들은 말한다. 이것은 전적으로 옳은 말이다. 그리고 이들이 이렇게 덧붙인다: 브뤼닝(주 2) 연방정부는 최근 독일공화국을 파시즘 체제로 변모시켜 왔으며 이 방향으로 많은 성과를 올렸다. 이 말도 확실히 옳다. 또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프로이센의 브라운이 없다면 연방정부의 브뤼닝 역시 정권을 유지할 수가 없다.” 이 말도 옳다. 여기까지 우리는 완전히 견해를 같이한다. 그러나 이 옳은 견해로부터 도출되는 정치적 결론은 무엇인가? 브라운 정부를 지지해서 이 정부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조금이라도 질 근거는 없다. 또한 브뤼닝 연방정부와 그 프로이센 하수인에 지나지 않는 브라운 정부에 대항하는 투쟁을 조금이라도 늦출 근거 역시 전혀 없다. 더욱이 파시스트들이 브뤼닝-브라운 정부를 전복시키고 스스로 정권을 장악하도록 도움을 줄 근거 역시 없다. 사민당이 파시스트들에게 정권 장악의 길을 터주고 있다고 비난하는 것은 백 번 옳다. 그러나 이 길을 짧게 하는 것은 우리의 임무가 결코 아니다.

산하 모든 조직에게 보내는 독일공산당 중앙위원회 명의의 7월 27일자 회람서한은 이 문제에 대한 지도부의 집단적 산물이다. 따라서 이것은 지도부의 일관되지 못한 정책을 가장 가차없이 드러내고 있다. 혼란과 모순에 가득찬 이 편지는 이렇게 요약될 수 있다: 최종적으로 분석하면 사민당과 나찌당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 다시 말해서 노동자들을 속이고 배신하며 이들의 참을성을 이용해 먹는 사민당과 아예 노동자들을 전부 쓸어 없애버리고자 하는 나찌당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점이 없다. 그런데 이  주장의 어리석음을 알아차리자 이 회람서한의 작성자들은 갑자기 돌변하여 적색 주민투표를 “사민당, 기독교 정당, 무소속 노동자들에 대해 적용하는 아래로부터의(!) 공동전선”이라고 선언한다. 사민당과 중앙당(주 3)에 반대하여 파시스트들과 손잡고 주민투표에 개입하는 것이 어떻게 사민당 및 기독교 정당 노동자들에 대한 공동전선 정책이 될 수 있는가? 노동계급의 시각을 가진 어느 누구도 이것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 사민당 노동자란 탈당하여 주민투표에 참가한 노동자들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노동자들의 숫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공동전선이라고 말하려면 최소한 사민당을 떠난 노동자가 아니라 사민당에 남아있는 노동자와 공동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불행하게도 아직 사민당에 남아있는 노동자의 수는 대단히 많다.

계급 역관계의 문제

7월 24일 텔만이 행한 연설 가운데 전술 전환을 결정한 진지한 동기가 엿보이는 말이 딱 하나 있다: “적색 주민투표는 합법적 의회주의적 대중 행동을 활용한다. 따라서 이것은 비합법적 비의회주의적 대중 행동을 향한 전진을 의미한다.” 이 말에 의미가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의회체제의 틀 내에서 진행되는 투표행위를 전체적인 혁명적 공세의 출발점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적색 주민투표는 사민당 그리고 사민당과 연합한 중도주의 정당들의 정부를 합법적 방법으로 타도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후 혁명적 대중의 압력을 통해 파시즘을 타도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나찌당은 지금 사민당을 계승하여 정권을 잡으려고 한다. 이 말을 다르게 표현하면 이렇다: 프로이센 주민투표는 혁명적 도약을 위한 발판일 뿐이다. 좋다, 발판이라면 주민투표는 충분히 그 정당성을 획득했을 것이다. 노동계급이 압력을 가하여 파시스트들을 타도하고 정권을 장악하는 마당에 파시스트들이 과거 공산당과 보조를 맞추어 투표를 했거나 말거나는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발판으로 쓰기 위해서는 주민투표 뿐만 아니라 무엇이든지 이용할 수 있다. 다만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제 도약을 할 가능성이 존재해야 한다. 결국 문제는 계급 역관계로 환원된다. 계급 역관계에 의하면 브뤼닝-브라운 정부가 히틀러-후건베르크(주 4) 정부로 대체될 가능성 밖에 없는 순간에 “브뤼닝-브라운 정부 타도!”의 구호를 외치며 거리로 나서는 것은 완전히 모험주의 노선이다. 그러나 이 구호가 정권장악을 위해 노동계급이 직접 나서는 도입 단계의 구호가 되었을 경우에는 전혀 의미가 다르다. 전자의 경우에는 공산주의자들이 대중의 눈에 반동세력의 동반자로 인식될 것이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는 노동계급에 의해 박살나기 전에 파시스트들이 어떤 식으로 투표를 하건 아무래도 좋다.

결국 공산당과 나찌당의 우연한 공동 투표 행위는 추상적인 원칙이 아닌 권력장악을 위한 실제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그리고 특정 투쟁 단계에서 조성된 계급 역관계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러시아의 경험을 돌이켜보자

노동계급 봉기의 순간에는 사민당 관료집단과 파시스트 집단 사이의 차이는 당연히 별 의미가 없다. 10월 혁명 당시 러시아의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은 입헌민주당, 코르닐로프파, 왕당파 등과 손을 잡고 노동계급에게 대항했다. 10월에 볼셰비키당은 의회를 거부하고 대중에게 무장봉기를 촉구하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만약 볼셰비키당과 동시에 왕당파 세력이 의회를 거부했더라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부르조아 민주주의자들과 함께 왕당파도 봉기의 성공으로 타도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0월 봉기에 이르기까지 볼셰비키당은 일련의 투쟁 단계를 거쳤다. 1917년 4월 데모 당시 볼셰비키당의 일 분파는 “임시정부 타도!”의 구호를 들고 나왔다. 이에 대해 당중앙위원회는 즉시 이 초좌익 분파를 교정시켰다. 물론 임시정부 타도의 필요성을 대중들에게 널리 알릴 필요는 있었다. 그러나 이 구호는 대중을 거리로 추동할 수 없었다. 당시 볼셰비키당은 노동계급 내의 소수파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이때 임시정부를 타도했더라도 우리는 정권을 장악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임시정부 타도 구호는 반혁명 세력을 돕는 구호에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임시정부를 타도하고 정권을 장악할 시기가 올 때까지 참을성 있게 대중에게 임시정부의 반인민적 성격을 설명해야 했다. 이것이 당시 당의 입장이었다.

그리고 다음 시기에 당의 구호는 “자본가 장관 타도!”였다. 즉 사민주의자들에게 부르조아 계급과의 동맹을 청산할 것을 요구했다. 7월에는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에게!”라는 구호로 노동자 병사 중심의 데모를 주도했다. 이 구호는 모든 권력이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에게 집중되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이때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은 백위군(주 6)과 함께 우리를 탄압했다.

그러나 이로부터 2개월 후 코르닐로프가 임시정부 전복을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다. 코르닐로프에 대항하는 투쟁에 볼셰비키는 맨 앞장을 섰다. 당시 레닌은 피신하고 있었다. 수천명의 볼셰비키들은 감옥에 있었다. 노동자, 병사, 수병들은 자신들의 지도자와 볼셰비키 지도자들을 석방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임시정부는 이 요구를 무시했다. 이에 대해 볼셰비키당 중앙위원회가 즉시 볼셰비키들을 석방하고 볼셰비키들이 독일 호엔쫄런 왕조(주 8)의 앞잡이라는 비난을 철회하라고 케렌스키(주 7) 정부에게 최후통첩을 보내야 했는가? 그리고 케렌스키가 이 최후통첩을 무시했을 때 코르닐로프에 대한 공격을 중지해야 했는가? 텔만-레멜러-노이만(주 9) 등 현 독일공산당 지도부라면 아마 이렇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볼셰비키당 중앙위원회의 정책은 달랐다. 당시 레닌은 글을 통해 이렇게 밝혔다: “사회혁명당과 멘셰비키가 볼셰비키 탄압을 지지하고 노동자들의 무장해제를 시도하고 전선에서 암살을 자행하는 것에 대한 ‘복수’로 혁명적 노동계급이 반혁명에 직면하여 이들에 대한 지지를 ‘거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이것이야말로 가장 치명적인 오류였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런 식으로 문제를 설정하는 것은 소자본가적 도덕관념을 노동계급에게 뒤집어 씌우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대의를 위해서는 노동계급은 동요하는 소자본가 뿐 아니라 대자본가조차 지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이런 노선은 ‘도덕을 들먹거리는 것’을 통해 문제의 정치적 핵심을 흐리는 소자본가적 시도였을 것이다. 이 점이야말로 가장 핵심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만약 우리가 8월에 코르닐로프를 패퇴시키지 않아서 그의 승리를 촉진시켰더라면 그는 맨 먼저 노동계급의 최상 부위를 날려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이 결과 두 달 후 화해주의자들에게 승리하여 이들의 역사적 범죄행위들에 대해 말이 아닌 행동으로 단죄할 기회를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텔만과 그의 동료들이 자신들의 전술 전환을 합리화하면서 사민당 지도부의 수많은 만행을 열거하는 것이야말로 정확히 “소자본가의 도덕적 설교”이다.

꺼진 등불을 들고

역사상의 유비는 유비에 지나지 않는다. 똑같은 상황과 똑같은 임무는 반복되지 않는다. 그러나 유비라는 상대적 언어를 통해 우리는 이렇게 질문할 수 있다: 독일의 주민투표는 노동계급이 코르닐로프식 반혁명에 대항하여 혁명을 방어하는 문제였는가 아니면 부르조아 질서 자체를 타도하는 문제였는가? 그러나 이 문제는 앙상한 원칙이나 논쟁이 아니라 바로 계급 역관계에 의해 해결될 것이다. 볼셰비키들이 얼마나 면밀하게 혁명의 단계마다 계급 역관계를 연구하고 평가했던가! 독일공산당 지도부는 미리 계급 역관계를 평가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는가? 공식 문서나 연설문 어디에도 이런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러시아의 스승 스탈린과 똑같이 독일의 제자들은 꺼진 등불을 들고 길 앞에 무엇이 있는 지도 모른 채 더듬거리고 있다.

계급 역관계라는 결정적인 문제에 대한 텔만의 고심은 지극히 일반적인 두 세 마디에 압축되어 있다. 그는 보고서에서 이렇게 말한다: “지금은 1923년이 아니다. 현재 공산당은 수백만의 지지자를 보유한 정당이며 맹렬한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이것이 전부란 말인가! 이 말은 1923년과 1931년의 상황이 다르다는 것을 그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아주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1923년 당시 사민당은 산산이 조각나고 있었으며 사민당과 결별하지 못했던 노동자들도 희망을 가지고 공산당에게 관심을 갖고 있었다. 당시 파시즘은 심각한 정치 현실이라기보다 부르조아 계급이 가꾸고 있는 정원의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노동조합과 공장위원회에서 공산당의 영향력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했다. 당시 공장위원회는 실질적으로 소비에트의 기본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노동조합 내에서 사민당 관료집단은 하루하루 지지 기반을 상실하고 있었다.

코민테른의 기회주의 지도부와 독일공산당은 1923년 당시의 상황을 활용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아직도 대중과 당의 의식과 상호관계 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 텔만에 의하면 공산당은 수백만의 지지자를 거느리고 있는 정당이다. 이 사실은 아주 기쁜 일이며 우리는 이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사민당이 아직도 수백만을 거느리고 있는 정당이라는 사실도 우리는 잊지 않고 있다. 1923년부터 1931년까지 공산당의 사이비 지도자들은 처참하게도 오류에 오류를 거듭했다. 이 결과 현재 사민당은 1923년 당시보다 혁명에 대해 훨씬 더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 사실도 우리는 잊지 않고 있다. 사민당 지도부의 배신과 스탈린주의 공산당 관료들의 오류를 틈타 세력을 키운 파시즘이 지금 노동계급의 정치권력 장악에 엄청난 난관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도 우리는 잊을 수 없다. 공산당은 수백만 당원을 거느리고 있다. 그러나 관료적 어리석음이 집중된 시기였던 과거 “제 3기”의 전략 때문에 노동조합과 공장위원회에서 공산당의 영향력은 대단히 약화되어 있다. 권력장악을 향한 투쟁은 단순히 주민투표의 득표율에만 기댈 수는 없다. 공장, 노동조합, 공장위원회 등에서 지지를 받아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잊고 있는 텔만은 상황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은 채 과격한 말에만 의존하고 있다. 

부르조아 사회를 대표하는 사민당과 나찌당이 공산당 옆에서 버티고 있는 형국이 1931년 7월-8월의 상황이다. 그런데도 독일공산당이 대단히 강력하여 부르조아 체제에 대해 공공연히 도전하는 투쟁에 나설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달나라에서 살다온 사람일 것이다. 물론 당 관료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혹시 이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그 이유는 파시즘의 주민투표 전술이 실패한 덕분에 공산당이 더 힘든 시련에 처해있지 않기 때문이다. 모험주의는 스탈린주의적 중도주의의 1/2을 차지하고 있는데 무책임성, 맹목성, 결과에 대한 비양심적 집착이 바로 이것이다!

노동자 혁명 대신 “인민혁명”

언뜻 보면 7월 21일에 발표된 “급작스런” 전술 전환은 마른 하늘의 날벼락인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지난 시기의 노선에 의해 이미 예비되어 있었다. 독일공산당은 파시스트들을 타도하고 대중을 이들의 영향력으로부터 떼어내려는 진실하고도 불타는 열망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스탈린 관료집단은 파시즘 타도 투쟁에서 파시즘이 애용하는 무기와 정치색으로 무장한 채 대중의 애국심에 호소하려고 더욱 애쓰고 있다. 이것이 문제이다. 이것은 원칙에 입각한 계급정치가 아니라 소자본가적 경쟁심에 입각한 술수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은 노동자 혁명의 구호를 인민혁명의 구호로 대체했다. 이보다 더 부끄러운 원칙상의 투항은 상상하기 어렵다. 이것은 파시스트들의 약장수 술책을 모방하기 위해 맑스주의 원칙을 배신한 것에 불과하다. 어떠한 간교한 술책이나 인용문의 나열이나 역사적 사실의 조작도 이 진실을 바꿀 수 없을 것이다. 여러 달 전 이 문제에 대해 말했던 것을 지금 반복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위대한 혁명은 인민 또는 일국 혁명이라고 이해되고 있다. 혁명 계급 주위로 한 나라의 모든 강력하고 창조적인 세력들이 단합하여 사회를 재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구호가 아니라 혁명에 대한 사회학적 설명이다. 더욱이 이 설명에는 정확하고 구체적인 용어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 하나의 구호로 등장할 경우 인민혁명은 공허한 약장수 술책이며 파시스트들과 경쟁하는 수작에 불과하다. 그리고 노동자들에게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다....파시스트 슈트라써는 이렇게 말한다: 인민의 95%는 혁명에 관심이 있으므로 이 혁명은 계급혁명이 아니라 바로 인민혁명이다. 그리고 이제 독일공산당 지도자 텔만은 이 파시스트의 장단에 맞장구를 치고 있다. 노동자 공산주의자는 노동자 파시스트에게 이렇게 말해야 한다: 물론 인구의 98%까지는 아니라도 95%는 금융자본에 의해 착취당하고 있다; 그러나 이 착취는 체계적으로 진행된다; 착취자, 반착취자, 반의반 착취자 등이 있다. 이 체계를 통해서만 수퍼 착취자인 금융자본은 대다수 인민을 지배한다. 나라가 진정으로 새로운 계급 주위로 결집하여 재건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이데올로기적 재건이 필요하다. 그리고 노동계급이 스스로를 “인민”이나 “국민”으로 해소시키지 않고 자신의 노동자 혁명 강령을 개발하여 소자본가 계급에게 자본가 국가 아니면 노동자 국가의 양자택일을 강요할 경우에만 이 재건이 가능하다. 인민혁명 구호는 광범위한 노동자들 뿐 아니라 소자본가 대중의 의식을 무디게 한다. 이 결과 이들이 “인민”으로 구성된 부르조아 체제 속에 자신들을 적응시켜 자신들의 해방을 지연시키도록 만든다. 독일의 지금 상황에서 “인민혁명” 구호는 맑스주의와 파시즘의 경계를 없애버리고 노동자와 소자본가 계급 일부를 파시즘 이데올로기 속에 해소시킨다. 그래서 이들이 파시즘과 노동자 혁명의 양자택일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누가 집권하든 결국 인민혁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민족해방”의 방법이 되어버린 “인민혁명”

사상은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있다. 이제 인민혁명은 “(독일)민족해방”의 하위수단으로 제시되고 있다. 문제를 이런 식으로 정식화하면서 당은 순전히 국수주의적 경향으로 나아갔다. 절망에 빠진 애국자들이 소자본가 국수주의 진영에서 노동계급 정당에 접근하는 것 자체는 나쁜 일이 아니다. 각기 다른 분자들이 각기 다른 경로를 통해 공산주의자가 되기 때문이다. 골수 출세주의자들, 비양심적인 인생파탄자들과 함께 진지하고 정직한 분자들도 물론 백위군과 검은 100인조 깡패집단(주 10)의 장교 대오에 존재한다. 그러나 이들은 최근 몇 달 전부터 공산주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물론 당은 이러한 개인들의 정치적 변화를 파시즘 진영의 사기침체를 위한 부차적인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의 범죄행위는 정말이지 노골적이다. 이들 반동분자들과 연대하여 이들의 목소리를 당의 목소리로 만들고 이들의 민족주의적 군국주의적 경향들을 폭로하기를 거부하면서 쉐링어(주 11)의 철저히 소자본가적 반동적-유토피아적 국수주의적 팜플렛을 혁명적 노동계급의 신약성서로 변모시켰다. 이렇게 비열하게 파시즘과 경쟁하면서 7월 21일 갑자기 다음과 같은 결정이 내려졌다: 너희들이 인민혁명을 주창하므로 우리도 그렇게 한다; 너희들이 민족해방을 최고의 목표로 삼았으므로 우리도 그렇게 한다; 너희들이 서방자본주의 국가들과 전쟁을 하므로 우리도 똑같은 것을 약속한다; 너희들이 주민투표를 주창하므로 우리도 마찬가지로 주민투표 그것도 철저히 “적색” 주민투표를 주창한다.

과거 혁명적 노동자였던 텔만은 지금 안간힘을 다하여 슈텐복-퍼모 백작(주 12) 앞에서 망신을 당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텔만은 당 일꾼 회의에서 “맑스주의의 깃발 아래”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걸고 주민투표 전술을 선언했다. 이 회의의 내용은 당 기관지 적기에 실려있다. 연설의 가장 중요한 결론 부분에서 그는 “현재 독일이 연합국의 손에 놓여진 공”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주요한 과제는 민족해방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는 프랑스, 이탈리아, 심지어 영국조차 미국의 손에 놓인 “공”이다. 미국에 대한 유럽의 의존 정도는 후버 안(주 13)에 의해 더욱 확연하게 드러났다. 그리고 앞으로 이 의존도는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이다. 이 사실은 연합국에 대한 독일의 종속 상태보다 유럽 혁명의 전망에 훨씬 의미심장하다. “베르사이유 평화조약 폐기”라는 무의미한 구호보다 소비에트 유럽 합중국 구호가 유럽의 혼란에 대한 노동계급의 진정한 대안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은 모두 부차적이다. 독일이 연합국의 “공”이라는 사실이 아니라 분열, 무기력, 억압에 빠져있는 독일 노동계급이 독일 부르조아 계급의 공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정책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노동계급 최대의 적은 바로 국내에 있다”고 카알 리이프크네히트는 우리에게 가르쳤다. 혹시 동지 여러분들은 이 말을 벌써 잊어버렸는가? 이 가르침은 더 이상 소용이 없는 것인가? 그러나 텔만에게는 확실히 이 가르침이 구식이 되어버렸다. 리이프크네히트가 쉐링어로 교체되었다. “맑스주의의 깃발 아래”라는 타이틀이 쓰디쓴 아이러니를 풍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투항 집단이 된 관료적 중도주의 집단

“진정으로 러시아적인” 일국사회주의 이론은 여타 코민테른 지부에서는 사회애국주의 경향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다. 몇 년 전에 좌익반대파는 이미 이렇게 경고했다. 당시 이 경고는 환상, 악의에 찬 거짓, “비방”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사상은 나름의 논리 뿐 아니라 폭발력도 가지고 있다. 결국 짧은 시간 안에 독일공산당은 바로 우리 눈앞에서 사회애국주의 진영으로 끌려 들어갔다. 바로 이 진영에 대해 목숨을 걸고 투쟁하기 위해서 코민테른이 창립되었다. 그렇다면 이 현상은 놀랍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 일국사회주의 이론이 내포한 민족주의적 애국주의적 경향의 자연스러운 결과일 뿐이다!

적대 세력이나 계급의 이데올로기를 모방하는 것은 볼셰비키주의 이론과 심리에 철저하게 모순된다. 이 행태는 무원칙, 비일관성, 무이념이라는 중도주의의 정수로부터 유기적으로 도출된다. 수년간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은 자기 기반을 침식하는 어리석은 테르미도르 반동정책을 수행했다. 좌익반대파에 대한 공포심 때문에 이들은 좌파 강령을 하나 하나 모방하기 시작했다. 영국 노동자들을 노동조합주의의 지배로부터 떼어낸다고 하면서 이들은 맑스주의 정책 대신 노동조합주의 정책을 폈다. 중국 노동자와 농민들의 독자적 정치노선 추구에 도움을 준다고 하면서 스탈린주의자들은 이들을 부르조아 국민당의 손아귀에 몰아넣었다. 이러한 만행에는 끝이 없다. 크고 작은 문제에서 적을 끊임없이 모방하려는 경향을 드러냈다. 자기 무기도 없이 적의 무기고에서 도둑질이나 일삼고 있다.

지금도 당은 이전과 다름없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당 기구의 절대주의는 코민테른 지도적 부위의 사기를 저하시키며 선진노동자들에게 모욕을 주어 이들의 개성을 박탈하고 이들의 혁명적 특성을 파괴하고 왜곡시킨다. 이것은 적 앞에서 노동계급 전위를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 이 사실을 우리는 두 번 이상 언급한 바 있다. 상부의 모든 명령에 머리를 조아리는 자는 누구든 결코 혁명투사가 될 수 없다!

중도주의 관료들은 지노비에프 밑에서는 지노비에프주의자, 부하린 밑에서는 부하린주의자가 되었으며 스탈린과 몰로토프의 시대가 왔을 때는 이들을 추종했다. 심지어 이들은 마누일스키, 쿠지넨, 로조프스키 앞에서도 머리를 조아렸다. 한 시기가 지나갈 때마다 이들은 다음 “지도자”의 말, 어조, 동작을 반복했다. 명령에 따라 이들은 어제 맹세한 것을 오늘 거부했다. 그리고 어제까지 팔에 올려놓아 모시고 다녔던 은퇴한 지도자에게 경멸의 휘바람을 불었다. 이러한 재앙적인 체제 하에서 혁명적 용기는 거세되고, 이론 의식은 파괴되고, 줏대는 사라진다. 지노비에프-스탈린의 학교를 거친 관료들만이 손쉽게 노동자혁명을 인민혁명으로 대체할 수 있다. 그리고 볼셰비키-레닌주의자들을 배신자라고 선언한 후 쉐링어 같은 국수주의자들을 자기의 어깨에 올려 놓아 모실 수 있다.

“혁명 전쟁”과 평화주의 노선

쉐링어와 슈텐복-퍼모 같은 자들은 공산당이 호언쫄런 왕가의 정복전쟁을 직접 계승하고 있다고 제멋대로 생각한다. 이들에게는 잔악한 제국주의적 살육의 희생자들이 독일 인민의 자유를 위해 죽은 영웅이다. 그리고 알사스-로렌과 동부 프로이센을 얻기 위한 새로운 전쟁을 이들은 기꺼이 “혁명” 전쟁이라고 부른다. 노동자들을 자기들의 “혁명” 전쟁에 동원시킬 수 있다면 이들은 “인민혁명”을 받아들인다. 당분간 말로만이라도 말이다. 이들의 강령 내용은 복수(revenge) 그 자체이다. 만약 당장 내일이라도 같은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다른 노선이 있을 경우 이들은 혁명적 노동자들을 배신한다. 이 사실은 대충 넘길 것이 아니라 철저히 폭로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의 만행에 대한 노동자들의 경각심은 마비될 것이 아니라 일깨워져야 한다. 그런데 지금 당의 행동은 어떠한가?

적색 주민투표을 열렬히 선동하는 가운데 공산당의 팡파레(Fanfare)지(紙) 8월 1일자는 쉐링어의 사진과 함께 그의 새로운 계시적 메시지를 싣고 있다. 그가 쓴 글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보자: “자유 독일을 위해 세계대전에서 목숨을 바친 영령들의 대의는 계승되어야 한다. 그런데 인민의 혁명과 해방을 위한 혁명전쟁을 반대하는 자들은 모두 이 대의를 배신하고 있다.” 공산주의를 자처하는 집단의 신문에서 이 내용을 접하다니 도저히 믿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언사가 리이프크네히트와 레닌의 이름으로 치장되어 있다! 이런 종류의 공산주의에 대해 레닌이 살아있다면 얼마나 긴 채찍으로 논박을 가했을까. 그리고 그는 반박문을 쓰는 것에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썩어 문드러진 국수주의를 노동계급 전위의 대오에서 가차없이 제거하기 위해 그는 임시 국제대회 소집을 서둘러 추진할 것이다.

텔만, 레멜러 같은 작자들은 이렇게 자랑스럽게 보고한다: “우리는 평화주의자가 아니다. 원칙상 혁명전쟁을 주창한다.”  어떤 무식한 “공산주의자 교수”는 모스크바에서 이들을 위해 맑스와 레닌 저작의 일부를 인용한다. 그러면 이들은 이것을 자신들의 주장에 대한 근거로 기꺼이 제시한다. 결국 맑스와 레닌이 노동자혁명이 아니라 민족주의 전쟁의 대변인인 것처럼 인식될 것이 아닌가! 그리고 혁명전쟁에 대한 맑스와 레닌의 생각이 파시스트 장교들과 중도주의 졸병들의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와 관련이 있는 것처럼 비추어질 것이 아닌가. 혁명전쟁이라는 헐값의 용어를 동원하여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은 수 십명의 모험주의자들을 당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대가로 수십 수백만의 사민당, 기독교당, 비당파 노동자들을 배척하고 있다.

이 새로운 노선을 특히 심오하게 이론화하는 자가 이렇게 반대할 것이다: “그렇다면 사민당의 평화주의를 모방하라고 권하는 것입니까?” 물론 그렇지 않다. 우리는 노동계급의 정서조차도 모방할 의도가 전혀 없다. 그러나 노동계급의 정서를 고려해야 한다. 노동계급 대중의 광범위한 정서를 올바르게 파악해야 이들을 혁명으로 인도할 수 있다. 그러나 관료집단은 소자본가 민족주의자들의 문구를 모방하면서 노동자들의 실제 정서를 무시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전쟁을 원하지 않으며 원할 수도 없다. 이들은 텔만, 쉐링어, 슈텐복-페르모 백작, 하인츠 노이만 등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회사의 군국주의 팡파레에 대해 진절머리를 치고 있다.

노동계급이 국가권력을 장악할 경우 맑스주의자는 물론 혁명전쟁의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국가권력을 장악하지도 않은 가운데 혁명전쟁을 정치 구호로 돌변시키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노동계급의 승리에 의해 불가피하게 제기되는 혁명전쟁과 스탈린주의식 혁명전쟁의 수단인 “인민”혁명은 전혀 별개의 것이며 차라리 완전히 정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혁명전쟁을 원칙으로 인정하면서도 소비에트 러시아 정부는 잘 알려져 있듯이 가장 큰 부담이 되는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주 19)을 체결했다. 왜 그랬는가? 소수의 선진분자들을 제외한 노동자와 농민들이 전쟁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나중에 이들 노동자와 농민들은 수없이 많은 적들로부터 소비에트 혁명을 영웅적으로 지켜내었다. 필수스키(주 20)에 의해 강요된 가혹한 방어전쟁을 공격전쟁으로 전환시키려다 우리는 패배를 맛보았다. 계급 역관계를 잘못 파악함으로서 빚어진 이 오류는 혁명의 발전에 아주 커다란 해를 끼쳤다.  

적군이 창설된 지 이제 14년이 되었다. “우리는 평화주의자가 아니다.” 그런데 왜 소련정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평화주의 정책을 선언하고 있는가? 왜 군비축소를 제안하고 불가침 조약을 체결하는가? 왜 적군을 세계 노동자혁명의 무기로 사용하지 않는가? 원칙상 혁명전쟁을 주창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머리를 써서 정세, 계급 역관계, 대중의 정서 등을 파악해야만 한다.

강제력을 지닌 강력한 국가기구를 장악하고 있는 노동자 정부가 반드시 대중의 정서를 고려해야 한다면 강제력이 아니라 설득력 밖에 동원할 수 없는 혁명정당은 더욱 면밀하고 사려깊게 대중의 정서를 고려해야 한다. 우리에게 혁명은 서방에 대한 전쟁의 하위 수단이 아니라 모든 전쟁을 한꺼번에 끝장내기 위한 즉 전쟁을 피하는 수단이다. 모든 근로인민의 평화에 대한 욕구를 사민당이 충족시킬 경우 우리는 사민당을 경멸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사민당의 평화주의 노선을 경멸할 뿐이다. 왜냐하면 사민당이 매일 구출하고 있는 자본주의는 전쟁 없이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독일의 “민족해방”은 서방에 대한 전쟁이 아니라 노동자혁명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이 혁명은 서구 뿐 아니라 동구에도 번져서 동구와 서구를 소비에트 유럽합중국으로 결합시킬 것이다. 전쟁과 민족해방에 대한 이 노선만이 노동계급을 단결시키고 절망에 빠진 소자본가 대중을 노동계급 주위로 결집시킬 수 있다. 노동계급이 현대사회의 지도력을 행사할 수 있기 위해서 노동자 정당은 민족간의 복수가 아니라 국제혁명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당당하게 나서야 한다.

맑스주의자는 이렇게 사고해야 한다

적색 주민투표 운동은 극악무도한 모험주의적 오류로서 우연한 현상이 아니다. 당의 이데올로기가 대단히 퇴보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일 뿐이다. 주민투표는 국가권력 장악을 위한 혁명 투쟁의 출발점이 결코 되지 못했으며 그저 부차적인 의회주의 전술에 불과했다. 이 오류로 당은 이중 삼중의 패배를 자초했다. 사민당의 입지를 강화시켜주었으며 이 결과 브뤼닝 정부를 강화시켰다. 파시즘의 패배를 은폐시켰으며 사민당 노동자들 상당수에게 공산당에 대한 혐오감을 심어 주었다. 이로 인해 공산당은 지지기반을 상당히 유실시켰다. 결과적으로 당은 주민투표로 인해 상당히 약화되었다. 독일 및 세계 자본주의를 위해 이보다 더 좋은 짓을 하기는 불가능했다.

자본주의 체제는 특히 독일에서 지난 15년 동안 여러 번 붕괴 직전의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매번 재앙의 위기에서 벗어났다. 경제적 사회적 조건만으로는 혁명이 일어날 수 없다. 정치적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혁명의 승리가 미리 보장된 경우는 역사상 한 번도 없었다. 따라서 최소한 혁명이 성취 가능할 정도로 계급 역관계가 조성되어야 한다. 이 조건이 주어졌을 경우 혁명의 가능성은 이후 혁명정당의 전술적 계산, 대담성, 단호함 등을 통해 현실로 변모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전략도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할 수는 없다.

위기의 심화니 “변화되고 있는 상황”이니 하는 일반적 상투어 대신 당 중앙위원회는 현재 독일 노동계급, 노동조합, 공장위원회 등의 계급 역관계 그리고 당과 농업노동자와의 관계 등을 정확히 지적할 의무가 있었다. 이러한 데이터는 정확히 조사할 일이지 비밀에 부칠 일이 아니다. 텔만이 공개적으로 정세의 모든 요소들을 평가할 용기가 있다면 그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엄청난 위기와 지난 시기 공산당의 상당한 성장에도 불구하고 혁명적 상황을 조성하기에는 아직도 공산당이 너무 허약하다. 반대로 이러한 목적을 추구하는 자들은 바로 파시스트들이다. 사민당을 포함하여 모든 부르조아 정당들은 이들을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 왜냐하면 이들은 파시스트들보다 공산당을 더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로이센 주민투표를 계기로 나찌당은 지극히 불안정한 정국의 붕괴를 재촉하고 있다. 노동자들을 피로 심판하는 날에 동요하는 소자본가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파시스트들을 돕다니 얼마나 멍청한 짓인가. 파시스트들이 주도하는 주민투표를 거부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텔만이 조금이라도 맑스주의적 양심을 가지고 있다면 그의 보고서는 이와 같은 결론을 내려야 했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한 후 그는 최대한 광범위하고 공개적인 토론회를 주최해야 했다. 하인츠 노이만이나 레멜러같은 조금의 오류도 범하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지도자들조차 상황이 바뀔 때마다 대중의 목소리를 주의깊게 들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가끔 있는 공산당원의 공식성 발언 뿐 아니라 저변에 숨겨져 있는 좀더 많은 사람들의 좀더 깊은 생각을 듣는 것이 필요하다. 노동자들에게 명령만 내리지 말고 이들로부터 배우는 능력이 필요하다.

만약 토론이 공개적인 것이었다면 참석자들 중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상황이 변한 것은 틀림없지만 불리한 계급 역관계 때문에 우리가 혁명적 상황을 조성할 수는 없다고 텔만은 주장한다. 그는 옳다. 그러나 다 알고 있듯이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우리의 가장 단호한 적들은 돌발사태를 유도하고 있다. 따라서 우선 계급 역관계를 변화시켜야 한다. 노동계급의 주요 대중들이 사민당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 절망하는 소자본가 하층이 파시즘에 등을 돌리고 노동계급에게 향해야 한다. 이 작업을 위해 필요한 시간을 벌어야 한다. 이것은 가능한가? 상황이 이렇게만 된다면 아주 좋다. 그러나 우리의 의지에 반해서 파시스트들이 가까운 미래에 봉기를 일으킨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또다시 노동자들이 혁명의 심각한 패배를 운명처럼 감수해야 하는가?”

이에 대해 텔만이 맑스주의자였다면 대략 이렇게 답변했을 것이다: “물론 결정적인 투쟁의 순간은 우리가 아니라 적들이 결정할 것이다. 적들의 봉기 기도를 어렵게 하는 것이 현재 우리의 전략적 임무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모두 전적으로 의견이 같을 것이다. 그러나 적들이 전쟁을 선포한다면 우리는 이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투쟁도 하지 않고 거대한 역사적 고지들을 적에게 내어 주는 것만큼 더 심각하고, 더 파괴적이며, 더 사기를 침체시키는 패배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파시스트들이 공격을 개시했다고 대중들이 확실히 인식할 경우 지금 상황이라면 광범위한 대중이 우리 편으로 넘어올 것이다. 이것은 파시스트들이 자초한 일이다. 이때 대중의 참여 없이 대중의 뜻에 반해서 혁명을 이룰 생각이 조금도 없음을 수백만 근로인민에게 더욱 명확하게 증명할 경우 그만큼 우리의 승리 가능성은 커진다. 따라서 우리는 사민당, 기독교정당, 무당파 노동자들에게 이렇게 공개적으로 말해야 한다: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 파시스트들이 권력을 잡기 위해 현 정부를 타도하려고 한다. 우리 공산주의자들은 현 정권이 노동계급의 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정부는 여러분들의 신임과 표로 버티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여러분들의 뜻에 반해서 파시스트들과 동맹을 맺지는 않는다. 대신 여러분과의 동맹을 통해 이 정부를 타도하고자 한다. 만약 파시스트들이 봉기를 기도할 경우 우리 공산주의자들은 여러분과 함께 마지막 피 한방울까지 투쟁할 것이다. 이를 통해 브라운-브뤼닝 정부가 아니라 바로 노동계급이 목졸리고 전멸당하는 것을 막고자 한다. 노동자 조직과 우리 공산당의 신문 뿐 아니라 여러분 사민당의 신문 등 노동자 신문들을 파멸에서 구하고자 한다. 우리는 여러분들과 함께 파시스트들의 공격에 대항하여 모든 노동자 가정과 신문 인쇄소를 방어할 준비가 되어 있다. 만약 우리 조직이 위협을 받을 경우 여러분도 우리를 돕기 위해 일어나겠다고 맹세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파시스트들에 대항하는 노동자 공동전선을 제안한다. 이 정책을 우리가 확고하고 지속적으로 수행하여 모든 문제에 대해 이 정책을 적용하면 할수록 파시스트들이 우리를 기습하여 공개적인 투쟁에서 우리를 패배시킬 가능성은 더욱 적을 것이다.” 이렇게 가상의 텔만은 대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 위대한 생각들로 가득찬 하인츠 노이만이 발언대에 올라서서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어쨌든 그런 정책은 아무 소용도 없을 것이다. 사민당 지도자들은 소속 노동자들에게, ‘공산주의자들을 믿지 말아라. 그들은 노동자 조직의 방어에 대해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그들은 권력 장악에만 관심이 있다. 그들은 우리를 사회파시스트라고 생각하며 나찌당원들과 구별하지 않는다.’고 말할 것이다. 지금 제시한 텔만의 정책은 사민당 노동자들 앞에서 우리를 바보로 만들 것이다.”

이에 대해 우리의 텔만은 이렇게 대답해야 했다: “사민당을 사회파시스트라고 낙인찍는 것은 모든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더욱이 우리가 사민당 노동자에게 다가갈 길을 막는 어리석은 짓이 틀림없다. 어리석음을 버리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올바른 행동이다. 노동계급과 노동자 조직을 방어한다는 구실 하에 우리가 오직 권력 장악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는 비난에 대해서 우리는 사민당 노동자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좋습니다, 우리는 권력을 장악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위해서 우리는 무조건 노동대중 다수의 지지를 얻어야 합니다. 소수의 지지로 권력을 장악하려는 것은 우리와 전혀 무관한 모험주의에 불과합니다. 노동자 대다수가 우리를 따르라고 강요할 수 없습니다. 오직 이들을 설득하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만약 파시스트들이 노동계급을 패배시키면 공산주의자들은 결코 권력을 장악할 수 없습니다. 노동계급과 노동자 조직을 파시스트들로부터 방어해야 노동계급을 설득하고 우리의 지도력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본주의 내부에 존재하는 노동자 민주주의의 모든 요소들을 필요하면 무기를 들고서라고 방어해야 권력을 장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텔만은 이렇게 덧붙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노동자 대다수의 확고부동한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이들의 눈에 흙을 뿌리고 우리의 힘을 과대포장하거나 현실에 대해 눈을 감고 현실을 왜곡하는 일을 절대 해서는 안됩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적들을 속이지 못할 것입니다. 이들은 우리의 말을 확인할 수 있는 허다한 수단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노동자를 속이는 것은 곧 우리를 속이는 것입니다. 아주 강력한 체 하는 동안 우리는 스스로를 약화시킬 뿐입니다. 동지들, ‘의구심’이나 ‘비관주의’는 있을 수 없습니다. 왜 우리가 비관해야 합니까? 우리 앞에는 거대한 가능성들이 놓여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한없는 미래가 놓여있습니다. 독일, 유럽, 아니 인류 모두의 운명이 우리에게 달려있습니다. 그리고 혁명의 미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환상은 필요 없습니다. 맑스주의적 현실 인식은 혁명적 낙관의 전제조건입니다.”

텔만이 맑스주의자라면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는 맑스주의자가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다.

왜 당은 침묵했는가?

그러나 도대체 당이 어떻게 침묵으로 일관할 수 있었을까? 텔만의 보고서는 주민투표 문제에 대한 180도의 전술 전환을 의미했는데도 아무 토론도 없이 받아들여졌다. 전술 전환의 제안은 상부에서 나왔다. 그러나 제안은 곧 명령을 의미했다. 적기(赤旗)의 모든 기사는 당의 각급 회의에서 주민투표 찬성 제안이 “만장일치로” 지지받았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 만장일치는 당의 결집력이 특히 강력함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해석되었다. 혁명운동의 역사에 이러한 머저리 “전체주의”가 있었던가? 볼셰비키주의 역사는 치열한 내부투쟁의 역사이다. 이를 통해 당은 자신의 강령과 노선을 확립하고 투쟁방식을 고안해 내었다. 당 역사의 가장 위대한 해인 1917년은 권력장악 후 첫 5년과 마찬가지로 치열한 내부투쟁의 역사였다. 그러나 이때에도 조직 분리 또는 정치적 동기에 의한 주요한 제명 조치는 단 한 건도 없었다. 그러나 당시 볼셰비키당의 선두에는 텔만, 레멜러, 노이만 등과는 그 성격과 권위가 판이하게 다른 지도자들이 버티고 있었다. 그러면 불행한 지도자들의 전술 전환 하나 하나를 거대한 정당의 절대적 법칙으로 변모시킨 이 끔찍한 “전체주의”와 이 파괴적인 만장일치 현상은 도대체 어디서 유래하는 것일까?

“토론은 필요없다!” 왜냐하면 적기가 설명하고 있듯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말이 아니라 행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혐오스러운 위선이 아닐 수 없다! “행동”은 해야하지만 사전 토론은 거부해야 한다니. 그러면 지금 우리는 어떤 행동을 말하고 있는가? 공식문서의 네모 칸에 조그만 십자표시를 긋는 투표행위일 뿐이다. 그런데 노동자들이 그어 놓은 조그마한 십자표시를 세더라도 이것들이 파시스트들을 지지하는 십자표시가 아닌 지를 확인할 방법은 전혀 없다. 의심의 여지없이 조금의 고려도 없이 조금의 걱정도 없이 신의 뜻에 의해서 지명된 지도자들의 새로운 황당한 모험주의를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배신자요 반혁명분자이다! 이것이 바로 국제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이 혁명투사들의 정수리에 권총을 대고 해대는 최후통첩이다.

겉으로는 대중이 이러한 전체주의 당 운영을 감수하고 있으며 모든 것이 잘 되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대중은 원하는 대로 모양을 만들 수 있는 진흙 덩어리가 아니다. 이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천천히 그러나 아주 인상적으로 지도부의 오류와 황당무계함에 대해 반응한다. 이들은 “공산주의자의 날” 행사를 수도 없이 거부하면서 나름의 방식으로 “제 3기” 이론을 거부하고 있다. 이들은 로조프스키-몽무쏘(주 21)의 실험에 대해 정상적인 방법으로 반대할 수 없을 때에는 적색 노조에 가입하지 않는 것을 통해 자신의 반대의사를 표현한다. 적색 주민투표 찬성의 “노선”을 받아들일 수 없으므로 수십만 노동자들은 투표장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중도주의 관료집단의 범죄행위에 대한 보복행위이다. 이에 대해 중도주의 관료집단은 계급의 적들의 행동을 비열하게 모방하고 자기 당의 목을 꼭 틀어쥐는 것으로 복수하고 있다.               

스탈린은 무엇을 말하고 있나?

그렇다면 스탈린은 이 좌충우돌적 전술 전환을 사전에 승인했는가? 스페인 혁명에 대한 그의 견해을 알 수 없듯이 어느 누구도 이 사실을 알 수 없다. 스탈린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레닌을 위시해서 좀더 겸손한 지도자들은 동지 정당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를 원할 때는 연설이나 글을 이용했다. 즉 이들이 뭔가를 말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런데 스탈린은 아무 것도 할 말이 없다. 그는 개인에 대해서 술책을 쓰는 것과 똑같이 역사 과정에 대해서도 똑같은 술책을 쓰고 있다. 그는 독일이나 스페인 노동자들이 어떻게 한발 전진할 것인가를 고려하지는 않고 자신의 정치적 후퇴를 어떻게 스스로 보장할 것인지에 대해서 고심하고 있다.

세계 혁명에 대한 스탈린의 이중성을 가장 확연하게 보여 주는 예는 1923년 독일 사태에 대한 그의 태도이다. 그가 1923년 8월 지노비에프와 부하린에게 보낸 글의 한 대목이다: “지금 단계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사민당 없이 권력 장악을 시도해야 하는가? 이렇게 할 정도로 공산주의자들이 충분히 성숙했는가? 내 생각으로는 이것이 문제이다. 러시아에서 권력을 장악할 때 우리는 (1) 평화 (2) 농민의 토지소유 (3) 절대다수 노동계급의 지지 (4) 농민의 공감 등을 무기로 확보하고 있었다. 그런데 현재 독일 노동계급은 그렇지 못하다. 이들이 우리와는 달리 노동자국가인 소련을 이웃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우리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만약 지금 독일 정권이 붕괴하여 공산당이 권력을 장악한다 하더라도 즉시 이 권력은 붕괴하고 말 것이다. ‘가장 좋은 상황’에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최악의 경우에는 공산주의 운동은 산산조각 나면서 급격히 후퇴할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독일 노동계급을 고무시킬 것이 아니라 억제시켜야 한다.” 이로서 스탈린은 심지어 브란틀러보다 더 우로 기울고 있었다. 브란틀러는 정반대로 1923년 8월-9월 독일에서 권력 장악은 어떠한 난관에도 봉착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으며 난관은 권력장악 이후에 제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1923년 가을 브란틀러와 그의 추종자들이 지극히 유리한 혁명적 상황을 그냥 흘려버렸다는 것이 현재 코민테른의 공식 입장이다. 그런데 브란틀러를 이렇게 몰아세우는 장본인은 다름이 아니라 ... 스탈린이다. 도대체 그 자신은 1923년의 자기 생각을 코민테른에게 설명했는가? 아니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 코민테른 지부인 각국 공산당들이 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금지시키는 것으로 충분하다.

주민투표에 대해서도 스탈린은 당연히 같은 방식으로 장난을 칠 것이다. 텔만(저자 주: 텔만 자신이 전술 전환에 대해서 반대했으나 모스크바의 지지를 받고 있는 레멜러와 노이만의 뜻에 따랐다는 문제는 여기서 중요하지 않다. 전적으로 개인적이며 일회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조직의 운영방식에 있다. 텔만은 감히 당에 이 문제를 제기할 엄두를 내지 못했으며 결과적으로 이 사태에 대해서 전적인 책임을 지고 있다.)은 스탈린의 수작을 폭로할 생각을 했어도 그 뜻을 실행에 옮길 수 없었다. 스탈린은 독일공산당 중앙위원회에 앞잡이를 심어놓고 애매하게 뒤로 물러나 있었다. 새로운 노선이 승리할 경우 마누일스키와 레멜러 등은 스탈린이 새로운 노선을 주창했다고 선언했을 것이다. 패배할 경우 스탈린은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을 완벽한 위치에 있었다. 바로 여기에 그의 전술 핵심이 있다. 술수의 분야에서 그는 막강하다.

프라우다지(紙)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그러면 코민테른의 지도적 당인 소련공산당의 주요 기관지 프라우다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이 신문은 독일의 상황에 대한 진지한 논설이나 분석을 단 한 번도 실을 수 없었다. 다만 텔만의 기다란 강령적 연설로부터 부끄럽게 대여섯개의 뻔한 언사를 소개하고 있을 뿐이다. 사실 관료집단에게 굴종하며 모순으로 뒤엉킨 채 머리도 없고 줏대도 없는 프라우다가 무엇을 말할 수 있겠는가? 스탈린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데 프라우다가 감히 무엇을 말할 수 있겠는가?

7월 24일 프라우다는 다음과 같이 독일공산당의 전술 전환을 설명하고 있다: “공산당의 기존 노선인 주민투표 거부는 반동적 의회에 대한 지지 표현이다.” 문제 전체는 여기서 단순히 불신임 투표의 문제로 환원되고 있다. 그렇다면 왜 공산당은 주민투표 국면에서 주도권을 행사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왜 여러 달에 걸쳐 파시즘의 주민투표 전술을 반대했는가? 그리고 왜 7월 21일 갑자기 파시즘의 전술에 무릎을 꿇었는가? 답은 간단하다: 프라우다의 주장은 자신의 의회 백치병을 늦게나마 표명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8월 11일 주민투표가 끝난 후 프라우다는 다시 논조를 바꾸었다: “주민투표 참여는 의회 밖에서 대중을 투쟁으로 추동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8월 1일(주 22)은 바로 이것을 위해 정해진 날이 아니었던가? 달력의 “공산주의자의 날”을 비판하기 위해서 지금 지면을 할애하지는 않겠다. 그런데 8월 1일 공산당은 자신의 구호와 지도하에 대중들을 동원했다. 그런데 왜 이로부터 일주일 후에 주민투표를 지지하면서 대중을 새로 동원할 필요가 있었는가? 그리고 이때 동원된 대중은 자신의 세력을 계산할 수도 없었고 누가 적이고 누가 동지인 지도 알 수 없게 되었다. 이 가운데에는 파시즘을 지지하는 대중도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다음날 8월 12일자에서 프라우다는 “투표의 결과는 노동계급이 사민당에게 안겨줄 수 있는 가장 커다란 타격을 의미했다.”라고 단도직입적으로 선언하고 있다. 여기서 주민투표의 수치를 제시하지는 않겠다. 프라우다의 독자들을 제외하고는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수치는 프라우다의 바보 같고 뻔뻔스러운 허세를 곧바로 반박하고 있다. 프라우다의 주필들은 노동자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이들의 눈에 흙을 던지는 것이 지금의 임무라고 생각하고 있다.

공식 레닌주의는 관료적 사이비 지도자들의 발 밑에서 짓이겨졌다. 그러나 비공식 레닌주의는 살아있다. 안하무인격의 관료들이 자신들의 죄악이 아무 벌을 받지 않고 그냥 얼버무려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도록 해서는 안된다. 과학에 기초한 노동자 혁명 사상은 조직보다 더 강력하며 어떤 액수의 돈보다 더 강력하며 가장 지독한 탄압보다도 더 강력하다. 조직, 돈, 탄압의 측면에서는 우리 계급의 적들이 현재 스탈린 관료집단보다 비교할 수 없이 더 우월하다. 그러나 러시아 영토에서는 우리가 승리했다. 이들을 정복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증명했다. 모든 곳에서 혁명적 노동계급은 이들을 정복할 것이다. 이것을 위해서는 올바른 정책이 필요하다. 스탈린주의 조직에 대항하는 것을 통해 노동계급의 전위당은 맑스와 레닌의 노선을 실천에 옮길 권리를 획득할 것이다.      

 

6. 독일, 국제정세의 열쇠 (1931년 11월 26일)

최소한 개괄적이나마 현 세계정세의 구성요소들을 밝히는 것이 이 팜플렛의 목적이다. 격심한 상업적 공업적 금융적 위기 때문에 쇠퇴하는 자본주의의 근본 모순들이 복잡해지고 날카로와졌다. 그리고 이 모순들이 현 세계정세의 구성요소를 이루고 있다. 급하게 스케치한 아래의 단상(短想)들은 모든 나라와 모든 문제들을 결코 포괄할 수 없다. 따라서 이후 진행될 진지하고 깊은 집단적 분석의 기초자료가 되어야 한다.

1. 스페인 혁명(주 1)은 노동계급이 즉시 정치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일반적 정치적 조건들을 만들었다. 그런데 스페인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주의 전통이 당면한 혁명의 최대 장애물 중의 하나임이 드러났다. 그리고 코민테른은 전개되는 사건들을 예측하지 못한 채 허둥거렸다. 혁명의 시작 단계부터 완전히 무기력했던 공산당은 모든 근본 문제들에 대해서도 그릇된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스페인 혁명의 경험은 현재 코민테른 지도부가 선진노동자들의 혁명의식을 혼란시키는 주범이라는 점을 명백히 폭로했다. 이 점을 다시 한 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사건의 전개를 예측하지 못한 채 질질 끌려가기만 한 노동계급 전위당의 엄청난 지체행위, 근로 대중이 전개한 영웅적 투쟁의 분산적 성격, 무정부주의적 노동조합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실질적 상호협력 --- 바로 이것들이 현재의 근본 정세를 구성하고 있다. 이 결과 공화파 부르조아들은 사회민주주의자들과 동맹하여 억압 체제를 수립한 후 봉기에 나선 대중들을 차례차례 격파하였다. 이 결과 정권은 상당한 위력을 과시할 수 있었다.

이 실제 예는 한가지 사실을 명백하게 보여주었다: 파시즘은 부르조아 계급이 혁명 대중에 대해서 사용하는 유일한 방법이 결코 아니다. 현재 스페인의 정권은 케렌스키 임시정부와 아주 비슷하다. 즉 마지막 (또는 “마지막에서 두 번째”) “좌익” 정부로서 부르조아 계급이 혁명에 대항해서만 수립할 수 있는 정부이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정부가 반드시 나약하거나 무기력한 것만은 아니다. 노동계급의 강력한 혁명정당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런 정부가 반 쪽짜리 개혁, 좌익적 언사, 좀더 좌익적 몸짓, 혁명에 대한 보복조치 등을 결합시킨다고 해보자. 부르조아 계급에게는 이런 정부가 파시즘보다 훨씬 더 쓸모가 있을 수 있다.

말할 나위 없이 스페인 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농민문제, 교회문제, 민족 문제 등 가장 기본 문제들을 이 혁명은 아직 해결하지 못했다. 그리고 대중의 혁명적 잠재력을 결코 온전히 활용하지 못했다. 부르조아 혁명은 자신이 이미 성취한 것 이상을 결코 성취할 수 없을 것이다. 현재 스페인은 노동자 혁명의 관점에서 보면 준혁명적 상황에 놓여있다. 그러나 이 이상은 아니다. 공세적 성격을 띤 이 혁명은 어느 정도 시일을 끌지도 모른다. 이렇게 해서 역사는 스페인 공산주의 운동에게 소위 신용대출을 해주고 있는 셈이다.

2. 여러 해에 걸쳐 투쟁의 부분적 상승과 퇴조가 지속된 후 준혁명적 상황은 혁명적 상황으로 바뀔 수 있다. 이 점에 동의한다면 영국 역시 준혁명적 상황에 있다고 보는 것이 어느 정도 타당하다. 영국의 경제 상황은 지극히 심각해졌다. 그러나 이 초(超)보수적인 나라의 정치적 상부구조는 경제적 하부구조의 변화에 비해 극히 뒤처지고 있다. 새로운 정치 형태와 방법을 사용하기 전에 영국의 모든 계급들은 다시 또다시 선조들의 옷을 꼼꼼히 뒤집어서 예전의 형태와 방법들을 반복해서 사용하고 있다. 나라의 형편이 지극히 쇠퇴한 것에 비하면 영국에는 아직도 의미있는 혁명정당이나 파시스트 정당이 없다. 덕분에 영국의 부르조아 계급은 인민의 다수를 모든 구호들 가운데 가장 공허한 “민족적” 깃발 아래 동원시켰다. 준혁명적 상황에서도 가장 둔탁한 보수주의가 정치적으로 대단한 헤게모니를 행사하고 있다. 이 나라의 정치적 상부구조가 경제적 그리고 국제적 상황에 적응하려면 한달 이상 아니 일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민족주의” 연합(주 2)은 곧 붕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이 곧바로 노동자혁명이나 “파시즘”의 승리로 이어진다고 가정할 근거는 없다. 사실 노동자 혁명 이외에 다른 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이 영국에는 없다. 이와 반대로 혁명의 과정에서 로이드 조오지나 노동당 부류의 급진적 민주주의 또는 사회평화주의 참주선동이 장기간 판칠 가능성은 많다. 따라서 영국 공산주의운동은 혁명을 맞기 전에 노동계급의 진정한 정당을 건설할 여유를 충분히 갖게 될 것이다. 이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재앙을 초래할 실험과 중도주의적 좌충우돌로 계속 시간을 허비할 여유가 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지금의 세계 정세에서 시간은 가장 소중한 자원이다.

3. 일년 반 또는 이년 전에 코민테른의 사이비 지도자들은 프랑스가 “혁명적 격동의 최전선”에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실제로 이 나라는 유럽 뿐 아니라 아마 전세계에서 가장 보수적인 나라일 것이다. 프랑스 자본주의의 상대적 안정성은 크게 보면 이 나라 농촌의 후진성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다른 나라에 비해 이 나라는 위기의 영향을 더 적게 받고 있다. 금융 분야에서 빠리는 심지어 뉴욕과 경쟁하려고 애쓰고 있을 정도이다. 현재 프랑스 부르조아 계급이 누리고 있는 재정적 “번영”은 베르사이유 조약의 강도 짓에 직접 연유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 조약은 프랑스 공화국 체제에 주요한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다. 프랑스의 인구 규모, 생산력 수준, 국민소득 등과 현재 프랑스의 국제적 지위 사이에는 커다란 모순이 있으며 결국 이 모순은 폭발할 수밖에 없다. 단명한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해 프랑스 급진사회주의자들과 “민족주의 세력”은 전세계의 가장 반동적인 세력, 가장 오래된 착취 형태, 혐오스러운 루마니아의 지배 파벌, 퇴폐적인 필수스키 정권, 유고슬라비아의 군사 독재체제 등의 지지에 기대지 않을 수 없다. 이를 통해 독일과 오스트리아로 독일민족의 분할을 고착화 시키고 동부 프로이센의 폴란드 회랑 지대를 방어하고 일본의 만주 개입을 원조하고 일본의 군부가 소련과 대립하도록 고무하고 식민지 민족 해방운동의 주요한 적으로 나서고 있다. 세계 경제에서 프랑스의 부차적 지위와 세계 정치에서 프랑스의 엄청난 특권과 허세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은 한달 한달 지날수록 더욱 뚜렷해질 것이며 위험에 위험을 더하여 프랑스의 안정을 해칠 것이며 대중들의 조바심과 불만을 증폭시킬 것이며 더욱 깊은 정치 불안을 조성할 것이다. 이 과정들은 곧바로 다음 선거에서 그 모습을 확실히 드러낼 것이다.

그러나 독일 혁명의 승리나 정반대로 독일 파시즘의 승리 등과 같은 거대한 사건들이 국외에서 일어나지 않는다면 다음 시기에 프랑스 내부의 계급 역관계는 상대적으로 “정상적인” 과정을 밟을 것이다. 이것은 준혁명적 또는 혁명적 상황의 도래에 대비하여 공산주의 운동이 스스로를 강화시킬 상당한 여유기간을 제공할 것이다.

4. 자본주의 최강국 미국에서 현재의 위기는 무서운 사회 모순들을 확연히 드러내었다. 수백만 수십억 달러의 불꽃놀이가 세계를 놀라게 했던 유례없는 번영기 이후 미국은 갑자기 수백만의 실업자를 양산하고 근로인민에게 가장 가혹한 육체적 고통을 가하는 시기로 급작스럽게 들어섰다. 이 거대한 사회적 격동은 정치에 그 상처를 남기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근로 대중이 상당수 급진화한 사실을 멀리서 확신하기는 어렵다. 어쩌면 대중 자신이 재앙과도 같은 경제 위기에 놀라고 실업 또는 실업의 공포에 의해 얼을 잃거나 압도당해서 자기에게 떨어진 재앙에 대해 가장 기초적인 정치적 결론마저 아직 내리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시간이 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결국 이들은 결론을 내릴 것이다. 사회 위기의 성격을 띤 엄청난 경제 위기는 불가피하게 미국 노동계급의 정치의식의 위기로 전환될 것이다. 광범위한 노동계급 대중은 가장 깊은 경제 위기의 시기가 아니라 경제 회생기와 상승기에 혁명적으로 급진화될 가능성이 많다. 어느 경우든 현재의 위기는 미국 노동계급과 인민 전체의 생활에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이다. 지배계급 정당들 간에 심각한 이합집산과 충돌 그리고 제 3의 정당 창당의 시도 등이 예상된다. 경기 회복의 첫 징후와 함께 노동조합운동은 혐오스러운 미노동총연맹(AFL)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야 할 필요성을 실감할 것이다. 동시에 무제한의 기회가 공산주의 운동에게 주어질 것이다.

과거 미국에는 두 번 이상 폭풍과도 같은 혁명적 또는 준혁명적 대중운동이 폭발했다. 그러나 모두 재빨리 소멸되었다. 미국경제가 경기회복의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거나 운동이 조야한 경험주의와 이론적 무능력의 포로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두 요인들은 이미 과거지사가 되었다. 새로운 경기회복기는 국내의 “균형”이 아니라 세계경제의 혼란에 기초할 수밖에 없다. 미국 자본주의는 거대한 제국주의, 무제한적 군비 확장, 세계 전역에 대한 개입, 군사적 충돌과 격동 등을 특징으로 하는 시대에 진입하고 있다. 반면 미국 노동계급은 공산주의자들의 올바른 정책을 통해 경험주의, 신비주의, 돌팔이주의의 짬뽕에 포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와 반대로 어떤 사건에도 대응할 수 있는 과학적 이론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근본적인 변화들로 인해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다음과 같이 예측할 수 있다: 미국 노동계급의 불가피한 그리고 상대적으로 급속한 혁명적 변모는 과거처럼 쉽게 꺼질 수 있는 “모닥불”이 아니라 진정한 혁명적 대화재를 가져올 것이다. 미국에서 공산주의운동은 자신있게 위대한 미래를 맞이할 것이다.

5. 짜르의 만주 모험으로 러일전쟁과 1905년 혁명이 촉발되었다. 현재 일본의 만주 모험은 일본 혁명을 촉발할지도 모른다.

이 세기 초 봉건적-군국주의적 체제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는 어린 자본주의를 성장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 25년 동안의 자본주의 발전으로 사회적 정치적 구체제는 거의 해체되었다. 이때 이후 일본은 두 번 이상 혁명 직전의 상황까지 몰렸다. 그러나 객관적 상황에 의해 부여된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강력한 노동계급이 없었다. 만주 모험은 일본 체제의 혁명적 재앙을 가속화시킬지도 모른다.

국민당의 독재로 국력이 쇠잔했으나 현재 중국은 유럽 열강과 뒤이어 일본이 이 나라를 약탈하던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이 나라는 일본 원정군을 몰아낼 힘이 없다. 그러나 중국인민의 민족의식과 활동은 크게 성장했다. 수십만 수백만의 중국인들이 군사 훈련을 거쳤다. 그리고 새로운 군대를 더 많이 보유할 것이다. 이 결과 일본은 자신이 포위되어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건설된 철도는 경제적 목적보다 전쟁을 위해 더욱 소용이 있을 것이다. 점점 더 많은 군대들이 수송되어야 할 것이다. 확대일로에 있는 만주 원정은 일본의 경제체제를 탈진시키기 시작하고 국내에 불만과 모순들을 격화시키고 이 결과 혁명적 위기를 재촉할 것이다.

6. 중국의 경우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결연한 투쟁의 필요성이 국내 정치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것이다. 스탈린 관료집단의 지원을 받은 부르조아 군국주의자들이 대중의 혁명운동을 이용하고 압살한 결과 국민당 정권이 탄생했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현 국민당 정권은 정치적 기반이 허약할 뿐 아니라 온갖 모순에 시달리고 있다. 따라서 이 정권은 혁명전쟁을 주도할 능력이 없다. 일본의 침략에 대해 조국을 방어할 필요성은 국민당 정권에게 갈수록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며 대중은 급진화될 것이다. 이 상황에서 노동계급의 전위당은 올바른 정책을 펼 경우 1924년부터 1927년까지 비극적으로 잃은 모든 것들을 만회할 수 있을 것이다.

7. 동중철도(Chinese Eastern Railroad)를 소련이 중국에게 되돌려줄 것을 요구한 신사 양반들의 사고가 얼마나 단순한 것인지는 그간의 만주 사태들이 증명했다. 소련의 철도 반환은 곧 일본의 철도 접수를 의미했을 것이며 이 철도는 소련 뿐 아니라 중국을 위협하는 무기가 되었을 것이다. 동중철도가 소련의 손에 있기 때문에 그나마 일본은 만주 개입을 자제하면서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있다.(주 4)

8. 그러나 일본의 만주 모험은 소련과의 전쟁으로 비화되지 않을까? 소련 정부가 아무리 지혜롭고 조심스러운 정책을 취해도 이 가능성은 당연히 배제될 수 없다. 봉건적 자본주의 체제인 일본의 내부 모순은 확실히 일본 정권을 위협하고 있다. 프랑스를 비롯한 많은 나라들은 이 모순을 부추기고 있다. 그리고 짜르의 극동정책을 보더라도 위태로운 군국주의적-관료적 왕정이 어떤 어리석은 짓을 할 지 예상할 수 있다.

물론 극동 분쟁은 철도가 아니라 중국 전체의 운명을 둘러싸고 전개되고 있다. 이 거대한 역사적 싸움에서 소련정부는 중립을 지킬 수 없으며 중국과 일본에 대해 똑같은 입장을 가져서도 안된다. 소련은 완전히 중국인민의 편에 설 의무가 있다. 조금의 동요도 없이 피억압 민족의 해방투쟁을 지지해야 소련 극동지역은 일본, 영국, 프랑스, 미국 등 강대국으로부터 보호될 수 있다.

앞으로 소련이 중국인민의 투쟁을 지지하는 방식은 구체적인 상황에 달려있다. 동중철도를 일본에 자발적으로 내주는 것이 어리석은 짓인 것과 똑같이 극동정책을 동중철도에 종속시키는 정책은 어리석은 짓일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일본 군국주의 집단은 의식적으로 다른 나라들을 자극하고 있다. 이 점을 증명하는 사실은 많다. 일본의 행동을 직접 부추기는 세력은 프랑스의 지배자들이다. 프랑스는 이를 통해 소련을 동양에 묶어두고자 한다. 따라서 소련 정부는 더욱 단호한 모습을 보이면서 시야를 더욱 넓게 가질 필요가 있다.

넓은 영토, 수많은 인구, 경제적 후진성 등이 동양의 근본 특징이다. 따라서 이 지역에서는 모든 것이 느리고 지루하게 진행되고 있다. 어쨌든 극동은 소련의 존립을 당장 심각하게 위협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치적으로 중요한 사건들은 유럽에서 터질 것이다. 극동은 거대한 기회와 위험을 동시에 제시하고 있다. 현재 극동에 자신의 행동을 묶어두고 있는 나라는 일본 뿐이다. 소련은 당분간 이곳에 손발이 묶이면 곤란하다.

9. 전혀 평화롭지 않은 세계 정세 속에서 독일의 상황이 날카롭게 부각되고 있다. 독일의 경제적 정치적 모순은 유례없이 격심하다. 그러나 모순의 해결이 가까워지고 있다. 준혁명적 상황은 혁명적 또는 반혁명적 상황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상당한 기간 독일의 운명은 이 위기가 해결되는 방향에 달려있다. 이 점만으로도 독일의 상황은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 만이 아니다. 앞으로 상당한 기간 유럽, 그리고 전세계의 운명이 독일의 상황에 달려있다. 소련의 사회주의 건설, 스페인 혁명의 경로, 영국의 준혁명적 상황 전개, 프랑스 제국주의의 미래, 중국과 인도 혁명운동의 미래 등 모든 것이 다음 몇 달 동안 독일에서 누가 승리하느냐에 직접적으로 달려있다. 공산주의와 파시즘, 어느 쪽이 승리할 것인가?

10. 지난 해 9월에 실시된 의회선거 후 독일공산당 지도부는 이렇게 선언했다: 파시즘은 절정에 달했으므로 앞으로는 급격히 해체되어 노동자 혁명에 길을 열어줄 것이다. 이에 대해 당시 볼셰비키-레닌주의 좌익반대파는 이 현기증 나는 낙관론을 비웃었다. 파시즘은 두 조건 즉 날카로운 사회 위기와 혁명적 노동계급의 약세의 산물이다. 한편 독일 노동계급의 약세는 두 요인에 기인한다. 노동계급 내 부르조아 계급의 앞잡이인 사회민주주의 세력의 강대함, 혁명의 깃발로 노동계급을 결집시키지 못하는 중도주의 공산당 지도부의 무능력이 바로 이 두 요인이다.

공산당은 주관적 요인이며 사민당은 쓸어버려야 할 객관적 장애물이다. 공산당이 노동계급을 결집시켜 이 계급을 모든 피억압 인민의 강력한 혁명적 자석으로 변모시킬 경우 파시즘은 산산조각 날 것이다. 그러나 의회선거 이후 공산당의 정책은 더욱더 일관성을 상실했다. 즉 공허한 “사회파시즘”론, 국수주의 세력과의 불장난, 파시즘과의 치졸한 경쟁을 위한 파시즘 정책의 모방, “적색 주민투표”의 범죄적 모험주의 등 모든 정책을 통해 공산당은 노동계급과 인민의 지도자 역할을 철저히 상실했다. 이러한 공산당의 실책에 힘입어 정치적 재앙을 맞았던 사민당은 정치적 기반을 대부분 그대로 유지하였다. 그래서 상당한 정치적 손실도 여전히 부수적인 손실에 그쳤다. 최근 텔만, 레멜러 등의 허세에도 불구하고 볼셰비키-레닌주의 그룹의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파시즘 세력은 의회선거 이후 크게 약진했다. 공산당 지도부는 이 결과를 예상하지도 못했고 미리 막지도 못했다. 그저 앉아서 자신의 패배를 기록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공산당의 결의문과 기타 문서들은 사태의 꽁무니만 쫓고 있다.

11. 결정적인 순간이 아주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나 코민테른은 세계정세의 실체를 설명하기를 원치 않을 뿐 아니라 두려워한다. 코민테른 최고회의는 아무 의미도 없는 허풍 선동으로 이 상황을 어물쩍 넘기고 있다. 코민테른의 지도 정당인 소련공산당은 어떠한 입장도 취하지 않았다. “세계 노동계급의 지도자들”이 엿을 입안에 가득 처넣고 있는 것 같다. 이들은 계속해서 침묵을 지키며 꼼짝달싹도 하지 않을 작정을 했다. 이들은 그저 현 상황이 종료되기만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레닌의 정책 대신에 ... 타조의 정책을 택했다. 거대하지만 여전히 “부분적인” 일련의 오류들을 반복한 후 코민테른은 창립 첫 5년 동안 축적해온 정치적 기반을 약화시키고 뒤흔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가장 커다란 치명적 오류를 범할 위험에 처해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미래의 역사적 시기 전체에 자신의 혁명성을 박멸시켜 정치무대에서 자신을 영원히 매장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장님들과 겁장이들은 이 사실을 부인해도 좋다. 비방을 일삼는 자들과 끄나풀 기자들은 말한다: 우리가 반혁명 세력과 동맹을 맺었다. 그러나 이들이 얘기하는 반혁명 세력이란 세계 제국주의를 강화시키는 세력이 아니라 공산당 관료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세력이라는 사실은 너무도 잘 알려져 있다! 비방과 중상은 볼셰비키-레닌주의자들을 위협할 수도 없고 이들의 혁명적 임무 완수를 저지할 수도 없다. 어떤 사실도 숨기거나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될 수 없다. 우리는 선진노동자들에게 이렇게 큰소리로 똑똑히 말해야 한다: 모험주의와 허풍의 “제 3기”가 끝나고 이제는 공포와 항복의 “제 4기”가 시작되었다.

12. 지금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침묵을 지키며 “우리를 제발 가만히 내버려두시오!”라고 말한다. 소련 내부의 난관은 아주 크다. 가라앉힐 수 없는 경제적 사회적 모순들은 더욱 격화되고 있다. 당 기구의 사기침체는 과두제 정권의 불가피한 산물이다. 다만 이것이 이제는 위험수위에 도달했을 뿐이다. 정치적 관계들 특히 당내의 관계, 사기가 침체한 당기구와 뿔뿔히 흩어진 대중 사이의 관계 등은 팽팽한 밧줄처럼 긴장되어 있다. 관료들의 지혜는 오직 기다리고 지연시키는 데에 있다. 지금 독일의 상황은 당연히 격동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은 바로 이 격동을 무엇보다 두려워하고 있다.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시오! 대단히 격심한 내부 모순들로부터 해방된 후 ... 그때 가서 봅시다.” 이것이 스탈린 일당 상층부의 분위기이다. 명확히 그리고 확실히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가장 기초적인 혁명적 의무인 바로 이 상황에서 “지도자들”의 황당한 침묵 뒤에 감추어진 것은 바로 이러한 정서이다.

13. 소련 지도부의 배신적인 침묵은 독일 지도부의 공포감을 나타내는 척도이다. 이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결정적인 투쟁에서 대중을 지도할 준비가 필요한 지금 상황에서 독일공산당 지도자들은 혼란에 빠지고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이며 온갖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이런 양반들은 스스로 책임지는 데에 익숙하지 않다. 무엇보다도 “맑스-레닌주의”가 투쟁 회피를 요구한다는 사실을 증명할 방법을 이들은 꿈꾸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에 관한 한 이들은 아직도 완벽한 이론을 수립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이론은 이미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이 입에서 저 입으로 전해지면서 글과 연설에 등장하고 있다. 이 이론의 요지는 이렇다: 파시즘은 제지받지 않은 채 급성장하고 있다; 어떤 경우에도 파시즘의 승리는 불가피하다; 맹목적으로 투쟁에 몸을 던져 짓이겨지느니 조심스레 후퇴하여 파시즘이 권력을 잡게 하고 이후 이들이 스스로 타협하도록 하는 것이 더 낫다. 그리고 나서는 ---  우리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정치심리학의 원리에 따르면 모험주의와 경박스러움은 무기력과 굴복에 길을 내주게 되어 있다. 일년 전만 하더라도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던 파시즘의 승리는 이제 확실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라데크 부류에 의해 영감을 받은 쿠지넨 부류의 인간들은 스탈린이 다음과 같이 멋진 전략을 발표하는데 길을 열어주고 있다: 혁명 군대를 적의 총탄에서 벗어나도록 일치감치 후퇴시킨 후 ... 국가권력을 장악한 파시즘에게 덫을 놓아라.

만약 이 이론이 독일공산당의 당론이 되어 이후 몇 달 동안 정책을 지배하게 될 경우 이것은 1914년 8월 4일 독일 사민당의 배신 못지 않은 역사적 의의를 지닐 것이며 그 결과는 훨씬 더 끔찍할 것이다.

따라서 경고를 발하는 것이 좌익반대파의 의무이다. 코민테른 지도부는 독일 노동계급을 대대적인 재앙으로 인도하고 있다! 이 정책의 핵심은 공포에 질려 파시즘 앞에서 굴복하는 것이다!

14. 나찌당이 집권할 경우 무엇보다도 독일 노동계급의 최상 부위가 전멸하여 그 조직이 괴멸될 것이며 그 신념과 미래 자체가 분쇄될 것이다. 독일의 훨씬 깊고 격심한 위기를 보아 이탈리아 파시즘의 끔찍한 조치들은 독일 파시즘의 조치들과 비교하면 빛이 바랠 것이며 거의 인도주의 실험처럼 보일 것이다.

어제만 해도 “제 3기” 예언자였던 당신들이 후퇴하라고 외치고 있는가? 지도자들과 조직들은 후퇴할 수 있다. 개인들은 숨을 수 있다. 그러나 파시즘의 파괴에 직면한 노동계급은 후퇴하거나 숨을 곳이 없다. 당이 투쟁을 회피하고 노동계급을 철천지 원수에게 넘겨주는 기괴하고 믿을 수 없는 일이 실제 일어날 경우 그 결과는 오직 하나일 뿐이다: 무시무시한 싸움은 파시즘이 정권을 잡기 전이 아니라 후에 벌어질 것이다. 즉 파시즘은 지금보다 열 배나 유리한 상황에서 노동계급과 싸우게 될 것이다. 노동계급은 자기 지도부에게 배신당한 후 놀라고 혼란된 채 절망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투쟁은 일련의 공포와 피에 젖은 부질없는 경련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독일의 주인을 결정하는 순간이 임박했다. 바로 이 때에 파시즘 앞에서 후퇴하는 것은 10차례의 봉기가 연이어 실패하여 패배에 패배가 연속되는 것보다 더 커다란 재앙을 독일 노동계급에게 가져올 것이다.

15. 파시즘은 아직 권력을 잡지 않았다. 권력으로 가는 대로는 이들 앞에 아직 건설되지 않았다. 파시즘 지도자들은 권력 장악을 위해 목숨 거는 것을 아직도 두려워하고 있다. 너무도 많은 것이 걸려있으며 모가지가 위태롭다는 사실을 이들은 실감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산당 지도자들이 굴복할 낌새를 보일 경우 파시즘은 아주 쉽게 권력을 장악할 것이다.

현재 부르조아 계급의 지배 분파들은 격동이나 장기간의 가혹한 내전을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바로 이 이유 때문에 파시즘 체제를 도입할 생각이 없다. 그런데 바로 이 상황에서 공산당이 공식적으로 굴복하여 파시즘에게 권력의 길을 내어줄 경우 노동계급 자체의 상당 부분 뿐 아니라 중간계급 그리고 아직도 동요하고 있는 소자본가 분파들을 완전히 파시즘 편으로 넘어가게 만들 것이다.

파시즘은 한 순간 승리하더라도 사회의 객관적 모순과 자신의 무능력으로 인해 언젠가는 파산할 것이다. 이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러나 이후 10년에서 20년간 독일 파시즘이 승리할 경우 혁명운동은 단절되고 코민테른은 붕괴할 것이며 가장 극악무도하고 피비린내 나는 형태의 세계 제국주의가 승리할 것이다.

16. 독일 파시즘이 승리할 경우 소련은 파시즘과의 전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독일 나찌당이 권력 장악 직후 프랑스나 심지어 폴란드에게 전쟁을 걸 것이라고 믿는다면 이것은 정말 정치적 우둔함 그 자체일 것이다. 독일 노동계급에 대한 피할 수 없는 내전으로 파시즘의 집권 초기 대외정책은 손발이 묶일 것이다. 필수스키에게 히틀러가 필요한 것과 똑같이 히틀러에게도 필수스키가 필요할 것이다. 이들은 모두 프랑스의 도구가 될 것이다. 현재 프랑스 부르조아 계급은 독일 파시즘의 권력 장악을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는 일처럼 두려워하고 있다. 그러나 급진당과 “민족주의” 프랑스 반동세력은 히틀러가 승리하는 순간 모든 운명을 파시즘에게 맡길 것이다.

“정상적인” 부르조아 의회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어느 나라도 지금 소련과 전쟁을 할 여유가 없다. 전쟁이 벌어지는 즉시 엄청난 내부 모순들이 증폭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히틀러가 권력을 잡아 독일 노동계급의 전위를 압살하고 노동계급 전체를 분쇄할 경우 이 파시스트 정부는 소련에게 전쟁을 선포할 수 있는 유일한 정부가 될 것이다. 당연히 이 정부는 폴란드, 루마니아를 비롯하여 국경을 이웃한 나라들과 공동전선을 구축하고 극동의 일본과도 손을 잡을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히틀러 정권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유일한 집행기구가 될 것이다. 클레망쏘, 밀레랑, 로이드 조오지, 윌슨 등은 소련에게 직접 전쟁을 선포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3년 정도 지나면 콜착, 랑겔, 데니킨 등 백위군 세력을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권력을 잡을 경우 히틀러는 세계 부르조아 계급의 수퍼(超)-랑겔이 될 것이다.

이 거대한 전쟁의 결말을 지금 예상하는 것은 필요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다. 그러나 만약 독일에서 파시즘이 정권을 장악한 후 세계 부르조아 계급이 소련에 전쟁을 선포할 경우 소련은 가장 어렵고 위험한 상황에서 무섭게 고립되어 죽음을 건 싸움을 벌여야 할 것이다. 이것은 너무도 명확하다. 파시즘에 의해 독일 노동계급이 압살당할 경우 소비에트 공화국은 최소한 반은 이미 붕괴한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17. 그러나 이 문제는 유럽 전체의 문제가 되기 전에 먼저 독일에서 결정되어야 한다. 독일이 세계정세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면 열쇠는 누구 손에 있는가? 아직도 공산당의 손에 있다. 아직도 공산당은 열쇠를 잃어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잃어버릴 지도 모른다. 현 지도부가 이 방향으로 일을 몰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전략적 후퇴” 즉 항복을 설교하는 모든 자들 그리고 이러한 설교를 너그러이 경청하는 자들은 모두 배신자들이다. 파시즘 앞에서 싸우지 않고 후퇴할 것을 선전하는 자들은 노동계급 내부에 존재하는 무의식적인 적의 첩자로 규정되어야 한다. 가장 기본적인 혁명적 의무를 완수할 생각이 있다면 공산당은 이렇게 말해야 한다: 파시즘이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가차없이 파멸적인 내전을 독일 노동계급과 끝까지 치러야한다. 무엇보다도 이 사실을 노동자 공산당원, 사민당 노동자, 비당파 노동자 등이 알아야 한다. 모든 노동계급이 알아야 한다. 국제 노동계급 전부가 알아야 한다. 그리고 적군(Red Army)도 미리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

18. 그러나 정말이지 투쟁이 승리할 가망은 없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1923년 브란틀러는 파시즘의 힘을 엄청나게 과대평가한 후 이런 질문으로 항복 의사를 은폐했다. 국제 노동계급은 아직도 이 항복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 1923년 독일공산당과 코민테른의 역사적 항복은 이후 파시즘 약진의 기초가 되었다. 현재 독일 파시즘은 8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이 강대한 세력이 되었다. 우리는 계속해서 파시즘의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행위에 대해 경고해 왔다. 그리고 지금도 파시즘의 존재를 부인해서는 안된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우리는 지금 독일의 혁명적 노동자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으며 말해야 한다: 당신의 지도자들은 또다시 한쪽 극단에서 다른 쪽 극단으로 미끄러져 가고 있다.

한편 파시즘의 주요한 힘은 쪽수에 있다. 그렇다. 이들은 선거에서 많은 표를 얻었다. 그러나 사회 투쟁의 장에서 표는 결정적인 요소가 아니다. 파시즘의 주요 부대는 아직도 소자본가와 신 중간계급으로 이루어져 있다: 도시의 소규모 수공업자와 상점주인, 하급 관리, 종업원, 기술자, 지식인, 궁핍한 농민 등이 바로 이들이다. 선거통계의 저울에서는 파시스트들의 천 표나 공산당의 천 표나 무게가 같다. 그러나 혁명 투쟁의 저울에서는 대공장의 노동자 천명이 하급 관리, 점원, 이들의 부인, 이들의 장모들 천명보다 100배나 더 큰 힘을 발휘한다. 파시스트들의 대다수는 인간 모래에 지나지 않는다.

러시아 혁명 당시 사회혁명당은 모든 정당 가운데 규모가 가장 컸다. 혁명의 제 1단계에서는 의식적으로 무장된 부르조아나 노동자가 아닐 경우 모두 사회혁명당에게 표를 던졌다. 10월 혁명이 승리한 후 제헌의회에서도 사회혁명당이 다수를 차지했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들이 거대한 국민 정당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정당은 이후 거대한 빵점 정당이었음이 밝혀졌다.

그렇다고 러시아의 사회혁명당과 독일 나찌당을 등급에 놓고 비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지금 논의하고 있는 문제를 명확히 하는 데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유사성이 두 정당 사이에 확실히 존재할 뿐이다. 사회혁명당은 인민의 애매한 희망을 표현한 정당이었다. 나찌당은 인민의 절망을 표현하고 있는 정당이다. 소자본가 계급은 언제나 희망에서 절망으로 곤두박질하는 속성을 과시해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노동계급의 일부도 절망의 늪으로 끌고 들어갔다. 나찌당을 구성하는 대다수는 사회혁명당과 마찬가지로 인간 모래에 지나지 않는다.

19. 공포에 사로잡힌 코민테른 전략가들은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가장 중요한 사항 즉 노동계급의 거대한 사회적 투쟁적 강점을 잊어먹고 있다. 노동계급의 힘은 아직 소진되지 않았다. 투쟁할 능력 뿐 아니라 승리할 능력도 갖추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공장에서 노동자들의 사기가 낮다는 이야기는 관찰자들의 낮은 사기 즉 이성을 잃은 당 관료들의 낮은 사기를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 복잡한 상황과 지도자들 사이의 혼란이 노동자들의 경계심을 일으킨다는 사실 역시 고려해야 한다. 거대한 싸움에서는 확고한 지도부가 필요하다. 이 점을 노동자들은 이해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파시즘의 힘이나 가차없는 투쟁 필요성 때문에 겁을 먹고 있지는 않다. 다만 결정적인 순간 지도부가 보일 동요와 주저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을 뿐이다. 당이 확고하게, 명확하게, 자신있게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는 순간 공장 현장의 사기침체나 의기소침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20. 파시스트들은 진지한 투쟁 중핵과 경험이 풍부한 돌격대를 확실히 보유하고 있다. 이 점을 경시해서는 안된다. 내전에 돌입한 군대에서 “장교”는 커다란 역할을 한다. 그러나 대세를 결정하는 것은 장교가 아니라 사병들이다. 히틀러 군대의 사병들보다 노동자군대의 사병들이 비교할 수 없이 우월하다. 그리고 비교할 수 없이 믿음직스럽고 굳건하다.

권력 장악 이후 파시즘은 사병들을 쉽게 모집할 수 있다. 국가기구의 도움을 받아 부르조아 계급과 지식인의 자식, 점원, 기죽은 노동자, 룸펜노동자 등으로 구성된 군대는 쉽게 편성된다. 이탈리아 파시즘을 예로 들어보자. 물론 이탈리아 파시즘의 민병대는 자신의 전투능력을 심각한 역사의 시험대에 올려본 적이 아직 없다. 그러나 독일 파시즘은 아직 권력도 잡지 않았다. 노동계급과 싸워서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이 남아있다. 공산당이 파시즘보다 더 열악한 군대를 가지고 싸움에 돌입할 것인가? 독일 노동자들은 강력한 생산수단과 수송수단을 장악하고 있으며 노동조건에 의해 철, 석탄, 철도, 전선 등으로 함께 묶인 부대이다. 그런데 이들이 히틀러의 인간 모래들보다 결정적인 싸움에서 비교할 바 없이 월등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 한 순간이나마 생각할 수 있겠는가?

정당이나 계급의 힘을 구성하는 또 하나 중요한 요소는 역관계에 대해서 정당이나 계급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다. 모든 전쟁에서 각자는 상대가 자기 힘을 과대평가하도록 만들려고 애쓴다. 나폴레옹이 구사한 전략의 비결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면 히틀러도 나폴레옹 못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이 그의 말을 믿기 시작할 때가 되어야 그의 허풍은 군사적 요인이 된다. 무엇보다도 세력에 대한 현실적인 파악이 즉시 필요하다. 공장, 철도, 군대 등에서 나찌당의 세력은 어느 정도인가? 조직되고 무장된 장교들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가? 두 진영의 구성원에 대한 명확한 사회적 분석, 이들이 보유한 힘을 끊임없이 그리고 경계심을 늦추지 않은 채 계산하는 것 --- 이것이야말로 혁명적 낙관주의의 흔들리지 않는 원천이다.

현재 나찌당의 힘은 그 자체로는 별 것 아니다. 다만 철천지 원수인 노동계급 군대의 분열에 큰 힘을 얻고 있을 뿐이다. 파시즘의 위험성에 대한 현실적인 감, 이 위험의 증대와 임박성, 이 위험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한다는 필요성 인식 등이 노동자 계급의 자기방어적 단결을 강제하고 있다. 이 과정의 중심축인 공산당이 믿음직하다고 인식될수록 노동자 세력은 더 빨리 그리고 더 잘 결집될 것이다. 상황의 열쇠는 아직도 공산당 지도부의 손에 쥐어져 있다. 이 열쇠를 놓친다면 이들은 저주받을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코민테른 관료들은 소련을 위협하는 전쟁이 임박했다고 시도 때도 없이 그리고 종종 근거도 없이 외쳐왔다. 현재 이 위협은 현실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다가와 있다. 독일에서 파시스트들이 정권 장악을 시도할 경우 즉시 적군 동원령이 내려져야 한다. 이 사실을 모든 혁명적 노동자들은 격언으로 알고 있어야 한다. 노동자국가에게 이것은 가장 직접적인 의미에서 혁명적 자기방어의 문제이다. 독일은 단순히 독일이 아니다. 유럽의 심장부이다. 히틀러는 단순히 히틀러가 아니다. 수퍼(超)-랑겔을 꿈꾸는 자이다. 그렇다고 해서 적군이 단순한 적군이 아닌 것도 분명하다. 적군은 노동자 세계혁명의 군대이다.

후기

필자의 팜플렛에 담긴 글 [민족주의적 공산주의에 대항하며(Against National Communism)]는 여러 사회민주주의 그리고 민주주의 신문에 일부 애매한 내용의 찬사를 불러 일으켰다. 독일 파시즘이 독일 공산당의 가장 심각한 오류들을 잘도 이용하고 있는 때에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이 오류들을 공개적으로 날카롭게 비판하지 않는다면 이상할 뿐만 아니라 비정상적인 일이 될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베를린 뿐 아니라 모스크바의 스탈린 관료집단은 필자의 글에 대한 이들 사회민주주의자 및 민주주의자들의 논평을 신문에서 찾으려고 법석을 떨었다. 마치 이 논평들이 무슨 귀중한 선물이나 되는 모양이다. 마침내 이들은 우리가 사회민주주의자 그리고 부르조아 계급과 공동전선을 맺은 진짜 “증거”를 발견했다. 장개석과 손을 잡고 중국혁명을 말아먹고 퍼쓸, 씨트린, 쿡 등과 손을 잡고 영국 총파업을 말아먹은 장본인들이 신문에 실린 논쟁을 즐겁게 탐닉하고 있다. 중국혁명과 영국 총파업은 논쟁의 문제가 아니라 거대한 역사적 사건이었는데도 시큰둥했던 이들이 한갖 신문에 실린 논쟁에 대해 이렇게 호들갑 떨고 있다.(주 8) 그러나 이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를 비난하는 자들을 우리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건에 대해 반성하고 분석하는 일이 필요할 뿐 게거품을 흘리며 소리칠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이렇게 묻고자 한다: 파시스트들이 주도한 주민투표에서 독일 공산당이 황당하고 범죄적으로 참여하는 바람에 이익을 본 자들은 누구인가? 사실들은 이 질문에 대해 이미 반박의 여지가 없는 답을 내리고 있다: 오직 파시스트들만이 이익을 보았다. 바로 이 때문에 이 범죄적 모험을 입안한 자들은 자신의 친권을 포기했다: 책임있는 당 관료들 앞에게 행한 모스크바의 연설에서 스탈린은 주민투표의 참여를 옹호했다; 그리고 이 행위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이 탄로나자 이 연설문의 신문 게재를 금지했을 뿐 아니라 아예 연설 자체가 신문에 언급되는 것도 철저히 금지시켰다.

전진지(Vorwaerts), 베를린 일간지(Berliner Tageblatt), 비인 노동자신문(Wiener Arbeitzerzeitung) 모두가 그렇지만 특히 후자는 우리 팜플렛을 가장 부정직하게 인용하고 있다. 그리고 부르조아와 소자본가 신문이 노동자 혁명에 대한 우리의 생각들을 정직하게 알릴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을까?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왜곡들을 무시하고 스탈린주의 관료들의 비난에 응수할 용의가 있다. 파시즘 승리에 대한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두려움은 파시즘에 대한 노동자들의 경계심을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파시즘에게 엄청난 봉사를 한 스탈린주의자들에 대한 우리의 비판을 이들이 이용하는 것에는 어떤 객관적인 권리가 있다. 이 점은 인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의 “권리”의 근거는 우리 팜플렛이 아니라 당신들의 정책에 있소이다, 이 지혜로운 전술가 양반들아! 우리가 웰스, 세버링 등과 “공동전선”을 맺고 있음을 우리 스스로 보여주었다고 그대들은 말하는가? (주 9) 당신들은 히틀러 그리고 흑백인조 폭력배들과 공동전선을 맺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폭로했다. 바로 이 사실적 근거와 한도 내에서는 당신들의 주장이 옳다. 그리고 이런 차이가 있다: 당신들은 계급의 적과 실제로 공동 행동을 수행했다; 우리의 경우는 우리의 적인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우리 주장을 아전인수식으로 애매하게 인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을 알라”고 소크라테스가 철학원칙을 천명했을 때 그는 의심의 여지없이 텔만, 노이만, 그리고 심지어는 레멜러를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이다.                    

 

7. 반파시즘 노동자 공동전선을 위하여 (1931년 12월 8일)

현재 독일은 최대의 역사적 순간의 하나를 통과하고 있다. 앞으로 수십 년간 독일 인민, 유럽 그리고 상당한 정도로 인류 전체의 운명이 지금 이 순간에 달려있다. 피라미드 꼭대기에 공을 올리면 약간만 건드려도 공은 우측 또는 좌측으로 구른다. 현재 매시간 독일이 직면하고 있는 상황이 바로 이 경우와 같다. 공이 오른쪽으로 굴러 내려가 노동계급의 등을 부러뜨리기를 원하는 세력이 있다. 공이 그대로 꼭대기에 머물러 있기를 원하는 세력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망상에 불과하다. 피라미드 꼭대기에 공이 마냥 머무를 수 있는가. 공산주의자들은 공이 왼쪽으로 굴러 내려가 자본주의의 등을 부러뜨리기를 원한다. 그러나 단순한 소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소망을 달성할 방법을 알아야 한다. 다시 한 번 조용히 반성해보자: 현재 독일공산당 중앙위원회가 내놓은 정책은 올바른가 아니면 잘못 되었는가?

히틀러는 무엇을 원하는가?

파시즘은 현재 급격히 세를 불리고 있다. 공산당도 세가 늘고는 있지만 그 속도가 훨씬 느리다. 이 두 양극단 정치세력의 성장은 공이 피라미드 꼭대기에 그대로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파시즘의 급격한 성장은 이 공이 오른쪽으로 굴러 떨어질지도 모를 위험을 나타낸다. 바로 여기에 큰 재앙이 도사리고 있다.

히틀러 자신은 쿠데타에 반대한다고 말한다. 민주주의를 영원히 목조르기 위해 그는 민주주의 방식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싶어한다. 그의 말을 진지하게 믿을 수 있겠는가?

물론 평화적으로 다음 선거에서 절대 다수를 획득할 수 있다면 아마 파시스트들은 이 길을 선호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 이 길은  생각할 수 없다. 지금처럼 나찌당이 순조롭게 성장하는 시기가 무제한 계속될 것이라고 믿는 것은 어리석기 때문이다. 조만간 이들은 자신의 사회적 잠재력을 소진할 것이다. 파시즘은 자기 대오 내에 너무도 엄청난 모순들을 불러들였기 때문에 밀물이 썰물로 변하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이 순간은 이들이 결집 가능한 대중을 반 정도 결집하기 한참 전에 올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그대로 멈추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상황에서는 더 이상 바라볼 것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은 쿠데타 같은 전복행위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인정하더라도 파시스트들은 이미 민주적 경로를 차단당했다. 정치적 모순의 엄청난 증대, 노골적인 강도들이나 사용하는 파시스트들의 선동 등을 통해 파시스트들이 다수를 획득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러나 이 시점이 가까이 다가오면 올수록 상황은 더욱 가열되어 모순과 투쟁은 어쩔 수 없이 더욱 광범위하게 일반화될 것이다. 전망이 이렇다면 내전은 절대 피할 수 없다. 결국 파시즘의 권력장악 문제는 표가 아니라 내전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그리고 이 내전을 파시스트들은 이미 준비하고 있으며 이들은 이 순간이 빨리 다가오도록 노동계급을 자극하고 있다.

히틀러와 그의 부관들이 이런 때를 예상치 못하고 있다고 우리가 한순간이라도 생각할 수 있을까? 혹시 그렇다면 이것은 우리가 이들을 돌대가리들로 보고 있는 격이다. 그러나 이들은 돌대가리가 아니다. 강력한 적이 어리석은 행동을 할 것을 기대하는 것만큼 커다란 정치적 범죄행위는 없다. 대단히 끔찍한 내전을 거쳐야 권력을 장악할 수 있다고 히틀러는 확신하고 있다. 따라서 평화적 민주적 길에 대한 그의 연설은 술책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눈을 똑바로 뜨고 있어야 한다.

히틀러의 술책 뒤에는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가?

그의 계산은 아주 간단명료하다. 그는 적들이 졸고 있을 때 기습하여 제때에 치명타를 가하려고 한다. 그래서 나찌당이 의회를 통해 세를 확대하겠다는 장기적 전망을 가지고 있다고 떠벌리면서 적들을 안심시키고 있다. 민주적 의회에 대한 히틀러의 공손한 언사는 아주 가까운 시일 내에 일종의 연립정부 수립을 촉진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될 경우 파시스트들은 가장 중요한 직책들을 차지하여 쿠데타 기도에 이것들을 이용할 것이다. 중도정당과 나찌당의 연립정부는 사태의 “민주적” 해결 단계가 아니다. 파시스트들이 가장 좋은 조건 속에서 쿠데타를 시도할 순간이 한발 더 가까이 왔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이 점은 너무도 당연하다.

우리는 단기적 전망에 따라 계획을 세워야 한다

이 모든 것은 파시스트 총사령부의 소망과는 독자적으로 몇 주 후 아니면 몇 달 후에 권력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 점은 올바른 정책을 수립하는데 아주 중요하다. 만약 2개월 혹은 3개월 후에 파시즘이 권력을 장악한다면 이들에 대한 투쟁은 올해보다 내년이 훨씬 더 힘들 것이다. 파시스트들이 2개월, 3개월, 5개월 후에 권력을 장악한다면 2년, 3년, 혹은 5년 앞을 미리 내다본 모든 혁명적 계획은 한심하고 치욕스러운 잡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혁명 정치에서 시간 계산은 전시에 군사작전을 수행할 때만큼 결정적이다.

필자의 생각을 설명하기 위해 좀더 동떨어진 예를 제시해 보겠다. “좌파 공산주의자”를 자칭하는 후고 우르반스(주 1)는 독일공산당의 파산과 정치적 사망을 선포하고 신당 창당을 제안했다. 그가 옳다면 파시즘의 승리는 확실할 것이다. 왜냐하면 신당 창당에는 몇 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사실 우르반스의 당이 텔만의 당보다 더 낫다는 것을 증명할 근거는 전혀 없었다. 우르반스가 당수였을 때도 지금처럼 많은 오류를 범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파시즘의 권력 장악은 공산당의 물리적 파괴 뿐 아니라 진정한 정치적 파산을 의미할 것이다. 인간 쓰레기들과의 투쟁에서 치욕스럽게 패배할 경우 수백만의 독일 노동자들은 코민테른과 독일공산당을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파시즘의 권력 장악은 새로운 혁명정당과 새로운 인터내셔널의 창립을 요구할 것이며 무서운 역사적 재앙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결말이 불가피하다고 가정하면서 투쟁에 직면하여 투쟁 한번 하지 않고 공허한 언사를 가리개로 사용하면서 겁장이처럼 서둘러 항복하는 자들은 진정한 청산주의자들일 것이다. 이들은 스탈린주의자들이 “트로츠키주의자”라고 부르는 우리 볼셰비키-레닌주의자들과 아무 공통점도 없다.

파시즘이 권력을 장악하고 5년, 10년, 20년 지난 후가 아니라 앞으로 몇 달 또는 몇 주 후에도 파시즘 세력을 제압할 수 있다. 이 점을 우리는 흔들림 없이 확신하고 있다.

텔만은 파시즘의 승리를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승리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정책이 필요하다. 즉 파시즘의 권력장악부터 1년, 2년, 3년 후에 전개될 상황이 아니라 현재의 상황과 역관계에 적합한 정책이 필요하다. 독일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책은 일부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파시즘 승리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는 데에서 출발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 모든 불행의 근원이 있다. 1931년 11월 29일 발표한 “적색 공동전선(Red United Front)” 수립 호소문에서 독일공산당 중앙위원회는 먼저 사민당을 패배시키지 않고는 파시즘을 패배시킬 수 없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이와 똑같은 생각이 다양한 편차를 보이면서 텔만의 글에 반복되고 있다. 이 생각은 맞는가? 역사라는 긴 세월에 비추어보면 이 생각은 무조건 옳다. 그러나 이 사고를 단순 반복하는 것은 당장의 문제 해결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체로 혁명 전략의 관점에서 올바른 사고는 전술 의 언어로 번역되지 않을 경우 거짓말 그것도 반동적 거짓말로 변화된다. 실업과 같은 비참한 고통을 없애기 위해서는 우선 자본주의를 없애는 것이 필요하다. 이 생각은 올바르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고통을 증대시키고 있는 자본주의의 구체적 조치들에 대해 모든 힘을 다해 지금 싸울 필요가 없다고 결론 내리는 자는 상(上)돌대가리일 것이다.    

몇 달 내로 공산당이 사민당과 파시즘을 모두 패배시킬 수 있을까? 글을 읽고 계산을 할 줄 아는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도 감히 이렇게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치적으로 문제는 이렇게 표현된다: 사민당은 크게 약화되기는 했으나 불행하게도 아직 매우 강력하다; 이런 상황에서 몇 달 내로 우리가 파시즘을 패배시킬 수 있는가? 중앙위원회는 이에 대해서 부정적인 답을 내리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텔만은 파시즘의 승리를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다시 한 번 러시아의 경험에 대해

필자의 생각을 가능한 한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코르닐로프 봉기의 경험으로 돌아가보자. 1917년 8월 26일(구력) 코르닐로프 장군은 뻬쩨르부르그에 자기 휘하의 코사크 부대와 일개 비정규 사단을 동원시켰다. 당시 정부 수반은 부르조아 계급의 하수인이며 4분의 3은 코르닐로프에 동조하는 케렌스키였다. 독일 왕조의 앞잡이라는 비난 때문에 레닌은 아직도 몸을 숨기고 있었다. 같은 비난을 받고 필자는 당시 크레스티 감옥에서 독방 신세를 지고 있었다. 그러면 당시 볼셰비키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접근했는가? 이들도 이렇게 말할 권리가 있었다: “코르닐로프 일당을 패배시키기 위해서는 --- 먼저 케렌스키 일당을 패배시켜야 한다.” 이들은 이 말을 두 번 이상 반복했다. 왜냐하면 이후의 모든 선전에 이용할 수 있는 올바르며 필요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말은 8월 26일 우리가 코르닐로프에 대항할 때 그리고 이후 그가 뻬쩨르부르그 노동자들을 살육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에는 완전히 부적절한 말이었다. 바로 이 때문에 볼셰비키들은 노동자 병사들에게 화해주의자들과 결별하고 볼셰비키들의 적색 공동전선을 지지하라고 호소하지 않았다. 아니다. 볼셰비키들은 멘셰비키들과 사회혁명당에게 공동전선을 제안했고 이들과 함께 공동투쟁조직을 결성했다. 이 전술은 옳았는가 틀렸는가? 텔만은 대답하라. 공동전선이 어떠했는 지를 좀더 생생하게 보여주기 위해 다음 사건을 인용하겠다: 노동조합이 보석금을 마련해서 필자는 감옥에서 풀려났다; 그러자 필자는 곧바로 국방위원회에 갔다; 그리고 여기서 필자를 감옥에 넣은 케렌스키의 동맹자 단(멘셰비키) 그리고 고츠(사회혁명당)와 함께 반코르닐로프 투쟁에 대해 토론하였고 필요한 결정들을 내렸다. 이것은 올바른 행동이었는가 틀린 행동이었는가? 레멜러는 대답하라.

브뤼닝은 “차선책”인가?

사민당은 브뤼닝을 지지하여 그에게 표를 던지고 대중 앞에서 그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진다. 브뤼닝 정부가 “차선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적기지(紙)는 필자가 사민당과 똑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비방한다. 그리고 히틀러가 주도한 주민투표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어리석고 부끄럽게 동참했다는 사실을 내가 비판한 점을 근거로 들고 있다. 그러나 독일 좌익반대파와 특히 필자가 브뤼닝 정부에게 표를 던져 지지하라고 공산당에게 요구한 적이 있었는가? 우리 맑스주의자들은 브라운, 브뤼닝, 히틀러를 똑같이 자본주의 지배체제의 일부로 간주한다. 이들 가운데 누가 “차선책”인가는 아무의미도 없다. 왜냐하면 자본주의에게 이들 모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지금 잠시 서로 싸우고 있으며 노동계급 정당은 혁명의 이해를 위해 이들의 싸움을 이용해야 한다.

음계에는 7개의 조가 있다. 그러나 어떤 조가 “더 좋은가” 라는 질문은 성립되지 않는다. 다만 연주자는 언제 어떤 조를 연주할 지 알아야 한다. 브뤼닝과 히틀러 가운데 누가 차선책인가 라는 추상적인 질문 역시 성립할 수 없다. 이들 가운데 혁명의 이해를 위해 누구를 연주해야 하는 지를 알아야 한다. 이제 명료해졌는가? 아둔한 자들을 위해 예를 하나 더 들기로 하자. 적들 가운데 한 놈이 내가 매일 강제로 복용해야 할 소량의 독을 내 앞에 놓고 있다. 그리고 두 번째 놈은 나에게 곧바로 권총을 발사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우선 두 번째 적의 손을 쳐서 권총을 떨어뜨려야 한다. 그래야 첫 번째 적을 처치할 기회가 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독이 권총에 비해 “차선책”인 것은 결코 아니다.

독일공산당 지도자들의 논리는 사민당 지도자들과 똑같다. 바로 여기에 불행이 있다. 다만 순서가 정반대일 뿐이다. 사민당은 브뤼닝이 차선책이므로 그에게 표를 던진다. 반면에 공산당은 어떤 식으로든 브라운과 브뤼닝을 신뢰하지 않으려 한다. 이것은 절대로 옳다. 그러나 거리로 나가서 히틀러의 주민투표를 지지한다. 즉 브뤼닝 정부를 타도하려는 파시스트들의 행동을 지지한다. 이 행동을 통해 공산당은 히틀러가 차선책이라고 인정했다. 왜냐하면 주민투표가 승리했다면 노동계급이 아니라 히틀러가 권좌에 올랐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아주 기초적인 문제를 가지고 논쟁해야 한다는 사실이 고통스러울 뿐이다. 레멜러같은 연주자가 음조를 구별하지 않은 채 건반 위를 장화발로 밟고 다닌다면 진정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사민당을 떠난 노동자가 아니라 아직도 남아있는 노동자가 문제이다

수백만의 노스케, 웰스, 힐퍼딩들은 궁극적으로 분석하면 공산주의보다 파시즘을 선호한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이들을 노동자들로부터 차단시켜야 한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여의치 못하다. 다만 사민당은 전체적으로 온갖 내부 모순들에 시달리면서 파시스트들과 날카롭게 대립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이다. 이 싸움을 이용하면서 이 두 적들이 단결하여 우리를 공격하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제 우리의 투쟁은 파시즘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반파시즘 공동전선은 전체 노동계급을 포괄해야 한다. 그리고 이 공동전선은 같은 위력으로 사민당을 측면에서 공격해야 한다.

사민당이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반파시즘 동맹을 수립하겠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일 필요가 있다. 사민당 소속 노동자들에게, “사민당 지도부를 걷어차고 우리의 ‘비당파’ 공동전선에 참여하자”고 단순히 권유해서는 결코 안된다. 사민당 지도자들로부터 노동자들을 실제로 떼어낼 방법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 현실은 반파시즘 투쟁을 요구하고 있다. 사민당 노동자들의 일부는 사민당 조직의 요구와 관계없이 또는 요구에 반대하여 공산당 노동자들과 손을 잡고 싸울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이런 선진적인 노동자들과 가능한 한 가장 밀접하게 접촉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러나 현재 이런 노동자들의 수는 많지 않다. 독일 노동자는 조직과 규율의 기풍 속에 성장해 왔는데 이 경향은 약점 뿐 아니라 장점도 가지고 있다. 사민당 노동자 절대 다수는 반파시즘 투쟁에 동참하고자 한다. 그러나 최소한 지금 이들은 사민당 조직을 통해 투쟁하려고 할 것이다. 이 단계는 생략될 수 없다. 노동자들의 생사가 걸린 이 새롭고 특별한 상황에서 사민당 노동자들이 행동을 통해 자기 조직과 지도자들을 시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반파시즘 투쟁에 사민당의 참여를 강제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공산당 중앙위원회에는 겁에 질린 기회주의자들이 많다. 기회주의는 동맹을 좋아한다는 말을 이들은 알고 있다. 이들이 사민당과의 동맹을 반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예를 들어 의회 내의 동맹과 파업투쟁 시기의 소박한 동맹 그리고 파시스트 깡패들에 대항해서 노동자 조직의 인쇄소를 방어하는 동맹의 차이를 이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혁명정당과 사민당의 선거 동맹, 의회 내의 타협 등은 일반적으로 사민당에게 이익이 된다. 대중투쟁을 위한 동맹은 언제나 혁명정당에게 유리하다. 영러 노동조합 위원회(Anglo-Russian Trade Union Committee)는 애매하고 사기성이 농후하며 구속력이 전혀 없는 공동의 강령 위에 체결된 인정할 수 없는 동맹이었다. 영국에서 총파업이 벌어지면서 영국노동총연맹(TUC)은 파업을 분쇄하였다. 이때 파업을 파괴한 노동조합 관료들과 이 동맹을 그대로 유지한 스탈린주의자들은 노동계급을 배신했다.(주 4) 사민당 또는 독일 노동조합 지도자들과의 공동 강령, 공동 출판물, 공동 깃발, 공동 플래카드는 결코 안된다! 행진은 따로 하되 공동으로 적에게 타격을 가해야 한다! 타격의 방법, 대상, 시기에 대해서만 동의해야 한다! 이러한 동맹은 악마 자신, 악마의 할머니, 심지어는 노스케, 그레진스키와도 체결할 수 있다.(주 5) 단 하나의 조건이 있다. 우리의 손발을 묶지 않아야 한다.  

지체없이 실제 조치들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공산주의자들 앞에 사민당을 단순히 “폭로하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진짜 반파시즘 투쟁에 목적이 있다. 공장 방어 조직, 공장위원회의 방해받지 않는 행동, 노동자 조직의 불가침성, 파시스트들이 장악할지도 모르는 무기고, 비상사태에 취할 조치들, 투쟁에서 사민당과 공산당의 행동 조정 등의 문제들을 이 강령에서 다루어야 한다.

반파시즘 투쟁에서 공장위원회는 대단히 중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특히 정확한 행동강령이 필요하다. 모든 공장은 지휘관과 대대를 보유한 반파시스트 요새가 되어야 한다. 모든 도시와 지구는 파시스트들의 막사와 진지들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파시스트들은 혁명세력의 진지를 포위하려 한다. 그러나 노동계급이 이들을 포위해야 한다. 이 목적을 위해서는 사민당 및 노동조합 조직과의 동맹은 인정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의무이다. 관료적 어리석음 또는 더 나쁜 것은 비겁함 때문에 “원칙”을 들먹이면서 동맹을 거부하는 것은 파시즘을 곧바로 직접 돕는 것과 같다.  

우리는 15개월 전인 1930년 9월 사민당 노동자들에게 실제 동맹강령에 합의할 것을 이미 제안한 바 있다([코민테른의 전술 전환과 독일의 정세]). 그렇다면 공산당 지도부는 이런 방식으로 일을 추진했는가? 거의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자신의 직접적인 임무를 방기했다. 소중하며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 얼마나 많이 허비되었던가! 사실 시간이 별로 없다. 행동강령은 엄격히 실제적이며, 엄격히 객관적이며, 목적에 부합해야 하며, 어떠한 인위적인 “주장들”도 없어야 하며, 유보조건들도 없어야 한다. 보통 사민당 노동자들이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공산당의 제안 내용은 반파시즘 투쟁에 반드시 필요하다. 이 제안을 바탕으로 우리는 모범을 통해 사민당 노동자들을 끌어들여야 하며 불가피하게 걸림돌이 되는 이들의 지도자들을 비판해야 한다. 이 방법만이 우리에게 승리를 가져다 줄 수 있다.

적절히 인용된 레닌의 글

현재 레닌의 제자임을 자처하고 있는 철저하게 썩어빠진 스탈린주의 사이비 집단은 레닌의 글을 종종 완전히 부적절하게 인용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가능한 모든 경우에 자신들의 약점들을 은폐하기를 좋아한다. 맑스주의자에게 문제는 인용이 아니라 올바른 방법을 통해 해결된다. 올바른 방법으로 인도될 경우 적절한 인용구를 찾는 일은 어렵지도 않다. 코르닐로프 봉기에 대해 비유한 후 필자는 이렇게 말했다: 반코르닐로프 투쟁과정에서 화해주의자들과의 동맹을 이론적으로 해명한 레닌의 글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 러시아어판 레닌 전집 제 14권 후반부에서 필자는 레닌이 1917년 9월 초 중앙위원회에 보낸 편지를 찾아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케렌스키 정부를 지지해야 할 의무는 없다. 지지한다면 원칙을 저버리는 행위가 될 것이다. 동지들은 묻는다: 그렇다면 코르닐로프에 대항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물론 대항한다. 그러나 이것은 케렌스키 정부를 지지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매사에는 한도가 있다. ‘화해주의’에 빠져서 사태에 휩쓸려 들어가고 있는 많은 볼셰비키들은 이 한도를 넘어서고 있다.

우리는 싸울 것이며 코르닐로프에 대항해서 지금도 싸우고 있다. 그러나 케렌스키를 지지하지 않으며 그의 약점을 폭로한다. 이 차이는 매우 미묘하지만 아주 중요하므로 절대로 잊어서는 안된다.

코르닐로프 반란 이후 전술에는 어떤 변화가 있는가?

케렌스키에 대한 투쟁 형태에 변화가 있다. 그에 대한 적대감을 조금도 누그러뜨리지 않은 채, 그에 대해 우리가 한 말들을 조금도 철회하지 않은 채, 케렌스키를 타도하는 임무를 포기하지 않은 채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순간을 잘 포착해야 한다; 지금 케렌스키를 타도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에 대한 투쟁의 문제를 다르게 접근한다: 케렌스키에 대항해서 싸우는 인민들에게 케렌스키의 약점과 동요를 설명한다.”    

우리가 제안하는 바도 레닌의 의도와 전혀 다르지 않다. 공산당 조직과 신문의 완전한 독립, 비판의 완전한 자유, 사민당과 노동조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경멸스러운 기회주의자들만이 중국혁명 당시 중국국민당에 대한 입당전술로 공산당의 자유를 봉쇄한 정책을 그대로 반복할 것이다. 우리는 이들과 종류가 다르다. 

사민당에 대한 우리의 비판을 철회하지 않는다. 그 동안 사민당이 저지른 일을 조금도 잊을 수 없다. 멘셰비키들과 사회혁명당이 자행한 탄압, 비방, 투옥, 노동자-농민-병사의 살해 등에 대해 볼셰비키들이 전부 셈을 한 것과 똑같이 카알 리이프크네히트, 로자 룩셈부르크의 살해 등을 포함해 역사적으로 사민당이 저지른 죄상 전부에 대해 적절한 때에 셈을 할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에서 우리는 파시스트들을 더욱 확실하게 축출하기 위해서 “민주주의자” 케렌스키와 파시스트 코르닐로프 사이의 차이를 이용한 후 2달 후에 이들 전부에게 셈을 해주었다. 이런 상황에서만 우리는 승리할 수 있었다.

독일공산당 중앙위원회가 위에서 인용된 레닌의 입장을 채택한다면 사민당 대중과 노동조합 조직에 대한 입장 전체가 즉시 바뀔 것이다: 이미 우리에게 넘어온 대중에게만 설득력이 있는 글과 연설을 싣는 대신 선동가들은 수십만 수백만의 새로운 노동자들과 생각이 통할 공통의 언어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사민당 내부의 분열은 속도를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파시스트들은 자신의 임무가 단순히 브뤼닝, 브라운, 웰스 등 뿐 아니라 노동계급 전부에 대한 공개적인 싸움을 시작하는 것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은 파시즘 내부의 깊은 분열을 불가피하게 불러올 것이다. 오직 이 길을 통해서만 우리는 승리할 수 있다.

그러나 우선 이 승리를 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산당 관료들 가운데에는 비겁한 출세주의자들과 사기꾼들이 적지 않다. 이들에게는 조그만 직책, 소득, 그리고 무엇보다도 목숨은 아주 중요하다. 이 작자들은 형편없고 경멸할만한 숙명론을 감추기 위해 초급진적인 언사들을 내뱉는다. 이 형편없는 혁명가들은, “사민당에게 승리하지 않고서는 파시즘과 대결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이 이유 때문에 ... 국외로 도망가는데 필요한 여권을 준비하고 있다.

공산당 노동자 여러분, 여러분들은 수십만 수백만명이나 된다. 어디로도 도망갈 곳이 없다. 여권의 수는 턱없이 모자라 여러분에게 차례가 돌아올 수 없다. 파시스트들이 권력을 장악하면 무시무시한 탱크처럼 여러분의 두개골과 척추를 짓이길 것이다. 오직 가차없는 투쟁을 통해서만 여러분들은 구원받을 수 있다. 그리고 사민당 노동자들과 공동으로 투쟁할 때만 승리는 여러분들의 것이 될 것이다. 공산주의 노동자 여러분, 서둘러야 한다. 시간이 거의 남지 않았다! 


8 . 다음에는 무슨 행동을 할 것인가: 독일 노동계급의 운명이 걸린 문제들 (1932년 1월 27일)

서문

러시아는 지극히 후진적인 나라였다. 이 때문에 러시아 자본주의는 제국주의 사슬의 가장 약한 고리라는 것이 러시아 혁명을 통해 증명되었다. 지금 위기를 겪고 있는 독일 자본주의 역시 가장 약한 고리임이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의 경우와는 정반대로 유럽의 일등 자본주의 경제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산력과 역동성이 더욱 높아질수록 독일은 유럽의 국가질서에 의해 더욱 목이 졸리고 있다. 가난한 지방 동물원의 “우리”에 놓여진 맹수와 같은 꼴이다. 위기의 국면마다 독일 자본주의는 자신이 전쟁을 통해 해결하려고 했던 바로 그런 문제들에 부딪쳤다. 호엔쫄런 정부를 통해 독일 자본가 계급은 “유럽을 정비한다”고 부산을 떨었다. 브뤼닝-쿠어티우스(주 1) 정권을 통해 이들은 오스트리아와 ... 겨우 관세동맹이나 체결하려 했을 뿐이다. 독일 자본가 계급의 문제, 가능성, 전망은 바로 이런 애처로운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관세동맹도 성사되지 못했다. 동화에 나오는 마녀의 집처럼 유럽 전체는 암탉의 두 다리로 지탱되고 있을 뿐이다. 인구 몇백만에 불과한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통합된다면 위대하며 건강한 프랑스의 헤게모니는 상실될 위험에 처할 것이다.

유럽 전체 특히 독일은 자본주의를 통해서는 전진할 수가 없다. 노동자들의 시체를 딛고 자본주의 체제의 자동적인 상호작용으로  지금 위기가 일시적으로 해결된다 치자. 그러나 다음 단계에는 더욱 날카롭고 응축된 형태로 온갖 모순들이 부활할 수밖에 없다.

세계경제에서 유럽의 비중은 감소할 수밖에 없다. 이미 유럽의 이마에는 도오즈 계획(Dawes Plan), 영 계획(Young Plan), 후버의 전쟁 배상금 유예(Hoover's moratorium) 등 미국인 이름이 지울 수 없이 새겨져 있다. 유럽은 미국이 제공하는 배급에만 의존하며 근근히 목숨을 연장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쇠퇴는 사회적 문화적 붕괴를 초래하고 있다. 사회의  정상적인 계급분화가 지체되고 있다. 중간계급의 축소 위에 노동계급이 더욱 성장하는 길도 막히고 있다. 위기가 연장될수록 소자본가는 더욱 빈곤에 빠질 것이며 노동계급의 더욱 많은 부분이 룸펜노동자(lumpenproletariat)로 추락할 수밖에 없다. 바로 이러한 형태의 위협이 선진 자본주의 독일의 목을 조르고 있다.

냄새가 진동하며 썩어 들어가고 있는 유럽 자본주의의 가장 썩은 부위는 사민당 관료들이다. 이들은 맑스와 엥겔스의 깃발을 들고 역사의 도정에 올랐으며 부르조아 계급지배의 타도를 목표로 삼았다. 자본주의의 강력한 상승은 이들을 끌어 올렸다. 그리고 개혁의 이름 하에 이들은 처음에는 행동으로 그리고 나중에는 말로 혁명을 배신했다. 카우츠키는 오랫동안 혁명적 어구를 옹호하더니 결국 이것을 개량주의의 시녀로 만들었다. 이와 반대로 베른슈타인은 혁명의 포기를 요구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위기와 전쟁 없이 평화롭게 발전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진정 모범적인 예언자였다! 겉으로는 카우츠키와 베른슈타인 사이에 화해할 수 없는 차이가 있는 듯 했다. 그러나 실제로 이들은 개량주의의 왼쪽 장화와 오른쪽 장화가 되어 서로를 조화롭게 보완했을 뿐이었다.(주 2)

그리고 전쟁이 터졌다. 사민주의자들은 미래의 번영을 기치로 전쟁을 지지했다. 그러나 번영 대신 쇠퇴가 왔다. 자본주의의 결함으로부터 혁명의 필요성을 유추하거나 개량을 통해 노동자들을 자본주의와 화해시키는 것도 이제는 이들의 임무가 아니었다. 이들의 새로운 임무는 개량을 희생시키면서 부르조아 계급에게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조차 개량주의자들의 쇠퇴 마지막 단계는 아니었다. 자본주의를 뒤흔들고 있는 현재의 위기에 직면하자 이들은 장기간의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이 이룩한 성과를 희생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독일 노동계급의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의 생활수준으로 현재 노동계급의 생활수준을 끌어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이 이룩한 성과와 희망이 모두 파괴된 폐허 위에서 개량주의는 악취를 풍기며 썩어들어가고 있다. 이만큼 더 비극적이며 동시에 더 혐오스러운 역사적 광경은 없다. 현대화를 추진하느라 별의별 애를 쓰는 사민주의는 광견병에 걸린 것처럼 미쳐 날뛰고 있다. 이들이 현대극 가운데 가장 현대적인 하우프트만의 [직조공](The Weavers)을 더욱 자주 공연하도록 내버려두자.(주 3) 그리고 극장 앞좌석에 사민주의 지도자들이 앉도록 연극 감독에게 좌석 예약을 꼭 주지시키자.

그러나 이 지도자들은 현재 연극을 즐기고 있을 처지가 아니다. 이들의 적응능력은 한계에 도달했다. 독일 노동계급이 무턱대고 오랫동안 생활수준의 하락을 감수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더욱이 부르조아 체제는 이 한계를 인정할 분위기가 아니다. 자기 생존에 급급하기 때문이다. 브뤼닝의 긴급 포고령은 부르조아 계급이 자신의 위기 관리능력을 알아보는 첫 조치에 지나지 않는다. 브뤼닝 정권은 사민주의 관료들의 노동계급 배신행위 덕분에 근근히 버티고 있다. 그리고 사민주의 관료들은 노동계급 일부의 내키지 않는 암묵적인 지지를 통해 버티고 있다. 관료적 포고령에 기초한 현 정권은 일시적이며 불안정한 정권일 뿐이다. 자본주의는 좀더 단호한 정책을 원하고 있다. 사민주의자들은 자신을 지지하는 노동자들을 근심스럽게 주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정도의 지지는 자본주의 체제의 유지에 미흡할 뿐만 아니라 이미 성가신 것이 되어버렸다. 반쪽자리 조치로 연명할 시기는 이미 지났다. 탈출구를 찾기 위해 부르조아 계급은 노동자 조직의 압력을 무조건 제거해야 한다. 노동자 조직은 파괴되고 완전히 짓이겨져야 한다.

이 시점에서 파시즘의 역사적 역할이 시작된다. 소자본가 계급은 노동계급의 바로 위에 있으면서 노동계급 대오로 하락하는 것을 끊임없이 두려워한다. 파시즘은 이들을 분기시킨다. 그리고 국가기구의 비호를 받으며 금융자본의 돈으로 이들을 조직하고 무장시킨다. 그리고 이들이 가장 혁명적인 부위부터 가장 보수적인 부위까지 모든 노동자 조직을 제거하도록 지도한다.

파시즘은 단순히 보복, 노골적 폭력, 경찰 테러의 체제가 아니다. 부르조아 사회 내에서 노동자 민주주의 요소들을 근절시킨 기초 위에 수립되는 특수한 지배체제이다. 파시즘의 임무는 공산주의 전위 뿐 아니라 노동계급 전체의 단결을 강제로 파괴하는 것이다. 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노동계급의 가장 혁명적 부위를 전멸시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독립적이고 자발적인 모든 조직을 분쇄하고 노동계급의 방어적 진지들을 모두 제거하고 사민당과 노동조합에 의해서 지난 75년 동안 이룩된 모든 성과들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최종적으로 분석하면 노동계급의 전위인 공산당 역시 이러한 성과들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민당은 파시즘의 승리에 필요한 모든 조건들을 준비해 왔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자신의 정치 생명을 청산하는 단계 역시 준비해 왔다. 임박한 파시즘의 야만적인 위험 뿐 아니라 브뤼닝 정권의 비상입법 조치에 대한 책임을 모두 사민당에게 묻는 것은 무조건 옳다. 그러나 사민당을 파시즘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완벽한 허튼 소리이다.

1848년 혁명 당시 자유부르조아지는 혁명을 두려워하며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다 반혁명의 승리를 자초했다. 그런데 반혁명은 이에 대한 보답으로 자유부르조아지를 거세시켰다. 맑스와 엥겔스는 라쌀레 만큼이나 날카롭게 독일 자유부르조아지를 비판했으며 비판의 내용은 더 깊이가 있었다. 그러나 라쌀레와 그의 추종자들이 자유부르조아지를 봉건 반혁명 세력과 동일한 “반혁명 세력”으로 규정했을 때 맑스와 엥겔스는 이들의 잘못된 초좌익적 시각에 격노하였다. 이것은 당연했다. 라쌀레 그룹의 활동은 일반적으로 진보적이었으며 자유주의자들의 업적보다 한없이 더 소중하며 그 영향력도 지대했다. 그러나 자유부르조아지에 대한 잘못된 입장 때문에 이들은 여러 경우에 무의식적으로 반동 왕정을 도왔다.

“사회파시즘”론은 라쌀레가 저지른 오류의 재판이다. 나찌당과 사민당을 동일한 파시즘 세력이라고 규정한 후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은 히틀러의 프로이센 주민투표 운동을 지지하는 쪽으로 돌진했다. 공산당의 주민투표 운동 참여는 라쌀레가 비스마르크와 동맹을 맺은 행위와 비교해서 하나도 나은 점이 없다.

지금 상황에서 독일공산당은 사민당에 대한 투쟁을 다음과 같은 두 별개의 사실에 기초하여 전개해야 한다: (ㄱ) 파시즘의 성장에 대한 사민당의 정치적 책임; (ㄴ) 사민당의 대중기반인 노동자 조직들과 파시즘과의 절대적인 화해 불가능성. 현재 독일 자본주의는 극한상황에 도달하여 폭발을 피할 수 없다. 자본주의 체제의 적응 능력이 한계에 도달하여 사민당은 이제 전멸할 상황에 놓여있다.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의 오류는 한계에 도달하여 재앙을 피할 수 없다. 지금은 모두가 살얼음판 위를 걷고 있다.

거의 일주일이나 늦게 도착하는 신문을 통해 필자는 독일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원고가 콘스탄티노플로부터 베를린에 도착하는데 일주일이 더 걸린다. 더욱이 일반에게 팜플렛이 읽혀지는데 몇 주일이 더 걸린다. 이런 상황에서 필자 자신은, “모든 것이 너무 늦지 않을까?”라고 무의식적으로 묻게 된다. 그러나 이때마다 이렇게 스스로 대답한다: 아니다! 싸움을 하기 위해 전열을 가다듬고 있는 양대 계급 군대의 규모는 너무 거대해서 싸움이 번개와 같이 빨리 종결될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아직도 독일 노동계급의 힘은 소진되지 않았으며 그 역량도 충분히 발휘되지 않았다. 사실의 논리는 하루하루가 지나갈 때마다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이다. 따라서 몇 주 즉 역사의 한 시기 정도 늦을지라도 발언하고자 하는 필자의 시도는 정당하다.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은 필자가 프린키포에 갇혀있을 경우 자신들의 일을 더 순조롭게 끝낼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사민당의 헤르만 뮐러 정권으로부터 ... “멘셰비키”인 필자의 비자 발급을 거부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이 경우에는 조금의 주저도 없이 공동전선이 체결되었다. 오늘 소련의 관변 언론은 다음과 같은 소식을 퍼뜨리고 있다: 필자의 독일 입국 허용을 주선하는 대가로 사민당과 필자가 모종의 합의를 체결했다; 이 합의의 내용은 필자가 브뤼닝 정권을 “옹호”하는 것이다. 이런 사악한 모략에 대해서 필자는 격노하는 대신 그 어리석은 행위에 미소를 지을 뿐이다. 그러나  계속 웃을 수는 없다.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이다.

사태의 전개는 우리 입장의 올바름을 반드시 입증할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어떻게 우리의 올바름을 증거할 것인가: 스탈린 집단의 재앙을 통해서 아니면 맑스주의 노선의 승리를 통해서?

바로 여기에 모든 문제의 핵심이 있다. 이 문제에 독일의 운명이 걸려 있으나 독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 팜플렛이 분석하는 문제들은 어제와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9년 동안 코민테른 지도부는 소위 “총노선”에 전부 포괄되는 전술적 좌충우돌들을 통해 기존의 혁명적 가치들을 변질시키고 국제노동계급의 전위들을 혼란에 빠뜨려 왔다. 러시아 좌익반대파(볼셰비키-레닌주의자)는 러시아 문제 뿐 아니라 국제적 차원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조직되었다. 이 가운데 독일 혁명의 문제는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대립은 192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 이후 필자는 이 논란에 대해 두 번 이상 글을 썼으며 상당수는 독일어로 출판되었다. 한편 이 팜플렛은 좌익반대파의 이론적 정치적 작업의 일부분이다. 지나치면서 언급되는 많은 문제들은 이미 과거에 세밀하게 분석된 바 있다. 따라서 자세히 이러한 문제들을 이해하기 위해 독자 여러분은 [레닌 사후의 제 3 인터내셔널](The Third International After Lenin), [연속혁명론](The Permanent Revolution) 등 필자의 저술들을 참고하기 바란다. 이러한 논쟁들이 거대한 역사적 문제로 우리 앞에 다가설 때 이 논쟁들의 시초는 훨씬 올바르고 깊게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연구는 진지한 혁명가, 진정한 맑스주의자에게 절대 필요하다. 절충주의자들은 개개 사건들의 여파로 발생하는 일회적인 생각과 임시변통으로 연명한다. 그러나 노동자 혁명을 지도할 맑스주의 중핵들은 문제와 논쟁을 끊임없이 연구하는 것을 통해서만 훈련된다.

1. 사민당

인민의 지지를 완전히 상실했으며 자신감이 완전히 결여된 무기력한 부르조아 “공화파” 그룹들과 규모를 자랑하는 사민주의 노동조합 사이에 체결된 동맹이 “무쇠 전선(Iron Front)”이다. 시체는 투쟁할 때는 가치가 없으나 산 자들의 투쟁을 막는 데에는 아주 쓸모가 있다. 부르조아 동맹자들은 노동자 조직의 목을 죄는 올가미가 되어 사민주의 지도자들에게 봉사한다. 우리는 싸워야 한다! 우리는 싸워야 한다! ... 그러나 이것은 빈말에 불과하다. 신의 도움을 받아 결국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만사는 해결될 것이다. 파시스트들이 말장난을 그만두고 본격적인 행동에 나설 수 있을까? 그러나 사민주의자들은 한 번도 이렇게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해롭지는 않다.

실제 위험이 닥칠 경우 사민당은 “무쇠 전선”이 아니라 프로이센 경찰에 기댄다. 떡을 줄 사람은 생각도 안하고 있는데 김치 국물부터 마시고 있는 격이다! 경찰관이 사민당 노동자들로부터 다수 모집되었다는 사실도 이 경우에는 전혀 의미가 없다. 의식은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 부르조아 국가의 경찰이 된 노동자는 노동자 경찰관이 아니라 부르조아 경찰관이다. 최근 경찰은 나찌당 학생보다는 혁명적 노동자들과 훨씬 많은 싸움을 해야했다. 이러한 훈련은 반드시 그 영향을 남기게 마련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권은 바뀌더라도 경찰관은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사실을 모든 경찰관들은 알고 있다.

사민당 이론지 [자유언(自由言, Das Freie Wort)]은 참으로 한심한 잡지이다. 신년호에 이 잡지는 가장 높은 의미의 “관용”정책이 설파된 기사를 싣고 있다. 이 기사에 의하면 히틀러는 경찰과 군대에 대항할 경우 결코 정권을 잡을 수 없을 것 같다. 헌법에 의하면 군대는 공화국 대통령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 따라서 헌법을 수호하는 대통령이 정부의 수반인 이상 파시즘은 위험하지 않다는 것이다. 대통령 선거 전까지는 브뤼닝 정권을 지지해야 한다. 이 결과 의회 내 부르조아 세력의 연합으로 대통령이 선출될 것이며 히틀러의 정권 장악은 앞으로 7년간 봉쇄될 것이다. 이것이 이 기사의 내용이다.(저자 주: 이 기사는 E.H.라는 겸허한 이름 첫 글자로 서명되어 있다. 이 이름은 후세를 위해 바위에 새겨져야 한다. 노동자들의 노고는 헛되지 않았다. 모든 위대한 혁명 사상가와 투사들은 반드시 자신의 자취를 남겨놓았다. E.H.는 살아서 자기 일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독일노동자들의 앞길을 가리키고 있다. E.H.는 E. 하일만과 가까운 친척이라고 입이 비뚤어진 사람들이 말하고 있다. 하일만은 가장 치졸한 국수주의로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자신의 이름을 더럽힌 바 있다. 그럴 리가! 이렇게 논리가 명쾌한 사람이 하일만이라니?) 주춧돌마저 흔들리고 있는 오늘의 독일에서 어느 계급이 정권을 잡을 것인가의 문제는 독일 노동계급의 투쟁력이나 파시즘 돌격대 심지어는 군대의 인사배치와는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필요한 양의 장뇌, 나프탈렌과 함께 바이마르 헌법의 순수한 정신이 대통령궁에 안치되기만 하면 민주주의는 수호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수백만 대중을 (사회주의로!) 인도하고 있다는 대중정당의 주장이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는 바이마르의 정신이 베트만-홀베크(주 8)와 함께, “필요에는 법이 따로 필요 없다(무력이 제일이다).”고 주장한다 치자. 그러면 어떻게 하나? 또는 장뇌와 나프탈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패할 수 있는 바이마르 정신의 실체 즉 바이마르 정신을 수호하는 인물이 가장 애매한 때에 산산이 조각나면 어떻게 한다? 그리고 만약에 ... 그러나 이러한 질문은 끝도 없이 할 수 있다.

능수능란한 모사꾼, 출세주의자, 의회와 내각의 전문 술수주의자인 개량주의 정치가들은 사태 전개로 인해 자신들이 노는 물 바깥으로 던져지자마자 그리고 중대한 위기상황에 직면하자마자 완전한 바보임을 스스로 드러낸다. 이것보다 더 온건한 표현은 찾기 힘들다.

대통령에게 의존하는 것은 “국가”에 의존하는 것과 같다! 독일인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계급을 한편으로 하고 파시즘 세력을 구성하고 있는 소자본가 계급을 또 한편으로 해서 격렬한 싸움이 임박하자 사민당 일간지 전진지(紙)의  맑스주의자들은 야경꾼에게 도와달라고 애처롭게 부르짖고 있다. 이들은 국가에게, “도와주오! 개입해주오!”라고 말한다. 이것은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다: “브뤼닝씨, 노동자 조직의 힘으로 우리가 자기방어에 나서도록 만들지 말아주세요. 왜냐하면 이렇게 할 경우 노동계급 전체를 분기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 운동은 우리 당 지도부의 대머리 위로 올라서서 반파시스트 운동을 일으키고 공산주의 운동으로 옮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요청에 대해 브뤼닝은 침묵을 원치 않는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하고 싶어도 경찰력으로는 파시즘을 통제할 수가 없소이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어도 애써서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군대를 동원할 경우 군대가 우리에게 공격을 가하거나 스스로 분열되거나 둘 중의 하나가 될 것이요.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이 있소이다. 국가관료기구를 파시즘에 대항시키면 노동자들이 완전한 행동의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당신네 사민주의자들이 너무도 두려워하고 나 자신은 당신들보다 두배나 더 두려워 하는 사태가 발생할 것입니다.”

사민당의 호소는 국가기구, 사법부, 군대, 경찰에 사민당의 원래 의도와는 정반대 되는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가장 “충성스럽고” “중립적인” 그리고 사민당과 가장 무관한 관료라면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수백만 대중이 사민당 뒤에 버티고 있다; 신문, 의회, 지방자치단체 등 엄청난 자원이 사민당 수중에 있다; 파시즘과의 싸움에 자신들의 운명이 걸려 있으므로 이들은 사민당을 지지하지 않을 수 없다; 사민당이 반파시즘 투쟁을 전개할 경우 공산당은 사민당을 무조건 지지할 것이다; 그런데도 이 막강한 사민당 신사양반들은 일개 관료에 지나지 않는 나에게 수백만을 거느린 나찌당의 공격으로부터 자기들을 구해달라고 간청하고 있다; 사실 나찌당의 지도자들이 미래에 나의 보스가 될 지도 모른다; 아마 사민당 신사양반들의 사정이 아주 나쁜 모양이야, 어쩌면 이들은 생존할 가망이 없을지도 몰라 ... 이제는 내 목숨을 생각할 때야.” 이 결과 어제만 해도 동요했던 “충성스럽고” “중립적인” 관료는 자기 미래를 보장받기 위해 나찌당에 붙을 것이다. 이미 자기 명줄을 다하고도 계속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개량주의자들은 이렇게 정부관료들을 동원해 파시스트들에게 봉사하고 있다.

사민당은 부르조아 계급에 빌붙어 사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데올로기에서도 한심스럽게 빌붙는 팔자를 고칠 수 없다. 한순간은 부르조아 경제학자들의 생각을 수용하고 다음 순간에는 맑스주의의 부스러기를 이용하고자 한다. 히틀러가 주도하는 프로이센 주민투표 운동에 공산당이 동참하면 안되는 이유를 필자의 팜플렛에서 인용한 후 힐퍼딩은 이렇게 결론을 맺는다: “브뤼닝 정권에 대한 사민당의 전술을 설명하는 데에는 이 팜플렛의 글귀에 덧붙일 것이 정말이지 단 한자도 없다.” 이에 대해 레멜러와 탈하이머(주 9)가 나선다: “주목하세요. 힐퍼딩이 트로츠키의 논거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뒤이어 파시즘의 신문이 나선다: “트로츠키는 비자 발급을 약속받고 이 일을 했다.” 다음으로 스탈린주의 기자 한 명이 나서서 파시즘 신문의 내용을 모스크바에 타전한다. 한편 최고소비에트의 일간지 [뉴스](Izvestia)지(紙) 편집진에는 불운한 라데크가 소속되어 있다. 그런데 그를 포함한 편집진은 이 전보를 한자도 수정하지 않은 채 그대로 실었다. 이런 일들은 언급만으로 만족하고 그냥 지나가기로 하자.

다시 좀더 심각한 문제들로 돌아가자. 히틀러 자신이 브뤼닝 정권에 대항할 수 있는 여유를 누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부르조아 체제가 전체적으로 이 정권을 지지하고 있으며 사민주의자 힐퍼딩과 그의 동료들이 지도하고 있는 노동계급의 반수가 이 정권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사민당이 계급 배신 정책을 취하지 않았다면 히틀러는 지금과 같은 영향력을 결코 누릴 수 없을 것이며 부르조아 체제의 생명을 지탱시키는 닻의 역할을 하고 있는 브뤼닝 정권에 찰싹 기대고 있었을 것이다. 만약 사민당과 연합하여 공산당이 브뤼닝 정권을 타도했을 경우 정치적 파장은 엄청났을 것이다. 어떤 경우든 사민당 지도자들이 통제할 수 없는 폭발적 상황이 전개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힐퍼딩은 공산당에 대한 우리의 비판을 이용하여 자신의 배신행위를 정당화하고 있다. 따라서 공산당은 힐퍼딩의 배신행위를 기정사실로 계산해 넣어야 한다.

힐퍼딩이 필자의 말에 “덧붙일 것이 없다”고 했지만 실제로 그는 뭔가를 덧붙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현재의 계급 역관계 때문에 사민당과 공산당이 공동전선을 체결하더라도 “싸움을 강요하여 적을 타도하고 정권을 잡을”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다. 어떤 증거도 없이 슬쩍 표명한 그의 견해에 바로 문제의 핵심이 있다. 그의 견해를 다시 한 번 들어보자. 노동계급이 인구의 다수를 점하고 있고 사회의 결정적인 생산력을 담당하고 있는데 사민당과 공산당의 공동전선은 노동계급에게 권력을 가져다 줄 수 없다? 그렇다면 권력이 노동계급의 손에 들어올 정확한 순간은 언제인가? 제 1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자본주의가 자동적으로 성장하고 노동계급과 사민주의도 똑같이 성장한다는 전망이 있었다. 그러나 이 전망은 전쟁에 의해서 그 싹이 잘렸고 세상의 어떤 힘도 이 전망을 회복시킬 수 없을 것이다. 권력의 문제는 현존하는 생산력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 자본주의의 쇠퇴는 바로 이것을 웅변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고통이 연장되면 경제는 더욱 쇠퇴할 것이며 노동계급은 해체될 것이고 사회는 계속 부패할 것이다. 사민당이 가져다 줄 것은 이것 밖에 없다. 이와 다른 어떤 전망도 존재하지 않는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쁠 것이다; 모래는 내일보다 더 나쁠 것이다. 그러나 사민당 지도자들은 무서워서 미래를 내다볼 용기가 없다. 지배계급의 모든 해악은 멸망할 운명을 지니고 있다. 사민당 지도자들의 미래 역시 다를 바 없다. 이들은 생각이 가벼우며 의지는 마비되었다. 그리고 전개되는 사태를 전혀 예상도 못한 채 징징 눈물이나 짜면서 기적이 일어나기만을 바란다. 생각해 보자. 타노우(주 10)의 경제 연구는 러시아의 라스푸친이 짜르를 위로하기 위해 환상을 연출한 것과 똑같은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공산당과 연합해도 사민당은 권력을 잡을 수 없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러나 그의 모습을 보라. 속물에다 식자에다 소자본가에다 철저한 겁장이에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대중에 대한 불신과 경멸로 찌들은 인간이 아닌가. 사민당의 배신과 공산당의 오류로 인해 수백만 대중이 정치 무관심에 빠져있고 심지어는 나찌당에 합류했다. 그러나 아직도 사민당과 공산당은 합쳐서 40%의 득표율을 보이고 있다. 이 두 정당이 공동행동을 통해 대중에게 새로운 전망을 보이면 노동계급의 힘은 비교할 수 없이 증대될 것이다. 좋다. 우리의 득표율이 40% 밖에 안된다고 치자. 그러면 브뤼닝이나 히틀러는 더 많은 지지를 누리고 있는가? 현재 독일을 통치할 수 있는 세력은 노동계급, 중앙당(the Center Party), 파시스트들 밖에 없다. 그러나 교육을 받았다는 소자본가의 머리 속에는 다음과 같은 생각이 깊이 박혀있다: 자본의 대표들은 20%의 지지율로도 통치할 수 있다; 왜냐하면 부르조아 계급은 은행, 트러스트, 신디케이트, 철도 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맞다. 그래서 우리 교육받은 소자본가들은 이것들을 이미 12년 전에 “사회화” 하려고 했다. 그러나 충분한 것도 이미 너무 지나치다! 사회화 프로그램은 좋으나 자본가에 대한 몰수는 안된다고 했다. 된다고 한다면 사민당은 볼셰비키당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의회의 단면을 통해 계급 역관계를 계산했다. 그러나 이것도 속임수 거울이다. 의회 대표제는 피억압 계급의 힘을 실제 역량보다 훨씬 과소평가하는 반면 지배계급의 힘을 과대평가한다. 부르조아 체제가 붕괴하기 하루 전에도 부르조아 계급은 생각보다 한껏 부풀려진 역량을 가지고 의석을 차지하기 마련이다. 오직 혁명투쟁만이 실제 계급 역관계를 은폐하고 있는 가림막을 벗겨낸다. 내부의 사보타지에 의해, 오스트리아-맑스주의자들에 의해, 기타 다른 형태의 배신행위에 의해 마비되지 않는다면 노동계급은 권력 장악의 직접적이고 임박한 투쟁에서 의회대표제로 드러난 힘보다 비교할 수 없이 엄청난 실제 역량을 발휘한다. 다시 한 번 역사의 귀중한 교훈들을 상기하자. 볼셰비키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확고하게 권력을 강화시킨 후에도 제헌의회에서는 3분의 1도 안되는 표를 얻었다. 그리고 사회혁명당 좌파의 표까지 합쳐도 40%를 채 얻지 못했다. 그러나 끔찍한 경제파탄, 전쟁, 유럽 특히 독일 사민주의자들의 배신, 전후 대중의 피곤에 따른 혁명에 대한 거부감, 테르미도르 경향의 증대 등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역사상 첫 노동자국가는 14년 동안 자신을 지탱하고 있다. 그렇다면 독일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공산당 노동자와 함께 사민당 노동자들이 들고 일어나 권력을 장악하는 순간 그 과업은 이미 10분의 9는 완성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힐퍼딩은 이렇게 말한다: 만약 사민당이 브뤼닝 정권을 타도했을 경우 파시스트들이 반드시 권력을 장악했을 것이다. 의회의 차원에서 보면 그럴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의회의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혁명투쟁의 길에 나서겠다고 작정할 경우에만 사민당은 브뤼닝 정권을 반대할 수 있다. 브뤼닝을 지지하던가 노동계급의 독재로 나서던가 하나 밖에 길은 없다. 브뤼닝 정권에 대한 반대를 통해 사민당은 즉시 계급 역관계를 변화시킬 것이다. 이 계급 역관계는 놀랍게도 장기판 밑에 말들이 숨겨져 있는 의회의 속임수 장기판이 아니라 혁명투쟁의 대결장에서 그 참모습을 드러낸다. 이렇게 상황이 급변하면 노동계급의 역량은 2배가 아니라 10배로 증대될 것이다. 왜냐하면 특히 거대한 역사적 격동의 시기에는 도덕적 요인이 계급투쟁에서 결코 최소 요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도덕적 힘의 영향을 받아 인민대중은 한 부위 한 부위마다 최고의 강도로 떨쳐 일어날 것이다. 자신만이 이 위대한 나라의 삶에 다른 그리고 더 높은 방향을 부여하기 위해 부름을 받았다고 노동계급은 확신을 가지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인 싸움이 있기도 전에 히틀러의 군대는 붕괴되고 해체되기 시작할 것이다. 물론 싸움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승리에 대한 확고한 결의와 대담한 공격을 통해 승리는 가장 낙관적인 혁명가가 지금 상상하는 것보다도 한없이 더 쉽게 달성될 수 있다.

이런 일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조그마한 요인만 있으면 된다. 즉 사민당이 방향을 180도 바꿔 혁명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1914년부터 1922년까지 이들이 보인 행동을 보건데 이들 지도자들이 자발적으로 방향을 바꾸리라고 희망하는 것은 가장 우스꽝스러운 환상일 것이다. 그러나 사민당 노동자 다수의 경우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들은 방향을 전환할 수 있으며 할 것이다. 이들을 돕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방향을 전환할 경우 사민당 노동자들은 부르조아 정부 뿐 아니라 자기 당의 상층 지도부에도 대항할 것이다.

이때 필자의 말에 “덧붙일 것이 하나도 없다”던 오스트리아-맑스주의자 힐퍼딩은 다시 우리의 책을 인용해서 우리의 주장을 반박하려고 할 것이다: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의 정책은 오류의 연속이라고 우리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않았던가?; 히틀러의 프로이센 주민투표 운동에 대한 공산당의 참여를 우리가 비난하지 않았던가? 그렇다. 우리가 코민테른의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에 대해 투쟁하는 이유는 오직 한가지이다: 사민당 대중을 지도부로부터 분리시켜 역사의 기관차를 녹슬은 브레이크로부터 분리시킬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좌충우돌, 오류, 관료적 최후통첩 등을 통해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은 사민당을 유지시키고 있으며 사민당이 대중기반을 계속 장악하게 만들고 있다.

비록 잘못 인도되고 있지만 공산당은 노동자 정당이며 반(反)부르조아 정당이다. 반면 사민당은 노동자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전적으로 부르조아 정당이다. 이 정당은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부르조아 계급의 관점에 따라 아주 정교하게 운영된다. 그러나 사회위기의 상황에서는 전혀 쓸모가 없다. 사민당 지도자들은 마지못해 당의 부르조아적 성격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위기와 실업에 대해서 타노우는 “자본주의 문명의 치욕”에 대한 썩어빠진 말이나 내뱉을 뿐이다. 마치 부의 죄악에 대해서 설교하는 개신교 목사와 같다. 죽은 후 천당에서 구원받는다고 개신교 목사가 말하듯이 그도 먼 미래에나 있을까 말까한 사회주의를 얘기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또 다른 투로 말한다: “1930년 9월 14일 실업의 망령이 투표함을 배회하지 않았던들 이 날은 독일의 역사에 달리 쓰여졌을 것이다.”(라이프찌히 대회 보고서) 자본주의가 위기를 맞이하여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사민당은 표와 의석을 잃었다. 위기는 “사회주의” 정당을 강화시키지 않았다. 이와 반대로 무역규모, 은행의 자원, 후버와 포드의 확신, 모나코공(公)의 이익 등과 마찬가지로 이 정당을 약화시키고 위축시켰을 뿐이다. 현재 이 위기에 대한 가장 낙관적인 전망은 부르조아 신문이 아니라 바로 사민당 신문에 등장한다. 이 정당의 부르조아적 성격을 이보다 더 잘 드러낼 증거가 또 있을까? 자본주의의 쇠약이 사민당의 쇠약을 가져온다면 자본주의의 임박한 죽음은 사민당의 때 이른 죽음을 의미한다. 계급투쟁이 가장 격화되는 시기에는 노동자에게 기대면서 결국 부르조아 계급의 이익에 봉사하는 정당은 자기를 기다리는 무덤의 냄새를 맡을 수밖에 없다.

2. 민주주의와 파시즘

코민테른 집행위원회 제 11차 총회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파시즘, 부르조아 민주주의, 노골적인 파시즘적 형태 사이의 모순들을 자유롭게 해석하는 것”에서 시작된 오류들을 종식시키는 것이 아주 시급하다. 이 스탈린주의 철학의 핵심은 아주 명확하다: 맑스주의가 절대모순의 존재를 부정하므로 모순 심지어는 상대적 모순을 일반적으로 부정한다. 이러한 오류는 속류 급진주의에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왜냐하면 만약 부르조아 계급 지배의 형태에 있어서도 민주주의와 파시즘 사이에 조금의 모순도 없다면 이 두 지배형태는 당연히 동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논리라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온다: 사민주의는 파시즘과 동일하다. 그러나 스탈린주의자들은 사민주의를 사회파시즘(social fascism)이라고 한다. 그리고  “사회(social)”라는 수식어는 왜 붙었는지 아직까지도 설명이 없다.

(저자 주: 변증법적으로 사고하지 못하는 형이상학자들은 똑같은 추상어에 종종 서로 직접 모순되는 2개 이상의 명칭을 붙인다. 그래서 “민주주의” 일반과 “파시즘” 일반은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 구별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이유로 인해 중국, 인도, 스페인 등지에 “노동자 농민의 독재”가 수립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동자 독재가 아닙니까? 아니다. 자본가 독재는 혹시 아닙니까? 아니다. 그러면 무엇이 있습니까? 민주적 독재가 있다! 우주 어느 구석에 완전히 무계급 민주주의 사회가 존재하는 것 같다. 그러나 코민테른 집행위원회 제 11차 총회의 결정에 의하면 민주주의는 파시즘과 전혀 다르지 않다. 그러면 “민주적 독재”는 왜 ... 파시스트 독재와 다른가?

오직 순수하게 순진한 사람만이 이 기본적인 문제에 대해 스탈린주의자들이 진지하고 정직한 해답을 내릴 것을 기대할 것이다. 스탈린주의자들은 몇 개 더되는 고르고 고른 수식어를 제시할 것이다 --- 그리고 이것이 전부이다. 그런데 동양 혁명의 운명은 바로 이 문제에 달려있다.)

그러나 코민테른 집행위원회 총회의 결정에 따라 사물의 성격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와 파시즘 사이에는 정말이지 모순이 있다. 이 모순이 “절대적인” 것은 결코 아니다. 또는 맑스주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이 두 체제는 서로 화해할 수 없는 계급들의 지배를 의미하지도  않는다. 다만 똑같은 계급 즉 부르조아 계급의 상이한 지배방식일 뿐이다. 의회민주주의 방식과 파시즘 방식을 지지하는 피억압 피착취 계급은 각각 다르다. 그리고 이 두 방식은 서로 날카롭게 충돌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의회-부르조아 체제를 주로 대표하는 사민당은 노동자들의 지지를 얻고 있다. 반면 파시즘은 소자본가 계급의 지지를 얻고 있다. 노동자 대중조직의 지지 없이는 사민당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노동자 조직을 전멸시키지 않을 경우 파시즘은 자기 권력을 공고히 할 수 없다. 의회는 사민당의 주요 활동무대이다. 파시즘은 의회 체제가 분쇄된 후 성립한다. 의회 체제와 파시즘 체제는 각기 다른 지배방식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독점부르조아 계급은 역사적 상황에 따라 둘 중 어느 한가지에 의존하여 사회를 지배한다. 그러나 사민당이나 파시스트들에게는 지배계급의 지배방식 선택이 중요하다. 아니 이것 이상이다. 이들에게 이 선택은 정치적 생명과 죽음의 문제이다.

지금 부르조아 독재의 “정상적인” 경찰력과 군대는 의회라는 연막술을 가지고도 사회질서를 제대로 유지할 수 없는 상태에 있다 --- 이제 파시즘 체제를 선택할 때가 된 것이다. 파시즘이라는 대리인을 통해 자본주의는 얼이 빠진 소자본가 대중과 탈계급적이고 사기가 침체된 룸펜노동자 계급 그리고 금융자본에 의해 절망과 광증에 빠진 수많은 인민이 들고 일어나게 만든다. 부르조아 계급은 파시즘에게 소임을 철저하게 수행할 것을 요구한다. 일단 내전이라는 방식을 택한 이상 독점부르조아 계급은 내전 이후 상당 기간 계급 평화가 유지되기를 원한다. 이제 파시즘은 소자본가 계급을 자신의 주요 공격무기로 활용하여 반대세력을 제압하면서 철저히 일을 수행한다. 파시즘이 승리한 후 금융자본은 강철 바이스처럼 직접 그리고 즉시 모든 주권기관, 집행-행정-교육에 관한 모든 국가행정력, 군대-지방자치단체-대학-학교-언론-노동조합-협동조합 등을 장악한다. 파시즘 체제가 도래하면 무쏠리니가 정한 유형에 따라 통치 형태와 방법이 변한다. 그러나 이 변화는 궁극적으로는 사소하다. 정말 중요한 파시즘 체제의 특징은 이것이다: (ㄱ) 노동자 조직이 괴멸된다; (ㄴ) 노동계급은 파편화 된다; (ㄷ) 노동계급의 독립적인 조직 형성을 막는 행정체제가 대중 깊숙히 침투한다.

그러나 민주주의 체제와 파시즘 체제 사이에 과도기가 존재할 수도 있다. 이 과도기는 전자와 후자의 특징을 결합한다. 바로 이것이 서로 상극인 사회체제가 뒤바뀔 때 나타나는 과도기의 일반 법칙이다. 심지어는 부르조아 계급이 사민당과 파시즘 모두에게 의지하는 시기도 있다. 케렌스키 임시정부의 마지막 몇 달이 어떤 의미에서는 이런 경우에 속한다. 당시 케렌스키는 부분적으로 소비에트에 의존하면서도 한편으로 코르닐로프와 음모를 꾸몄다. 현재 독일의 브뤼닝 정권도 이런 경우에 속한다. 이 정권은 두 화해할 수 없는 진영 사이에서 외줄타기 곡예를 하고 있는 중이다. 다만 기다란 작대기 대신 긴급 포고령으로 균형을 유지할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본질적으로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사민당은 자신의 역할을 소진하기 직전에 있으며 공산당이나 파시즘 가운데 어느 쪽도 정권을 장악할 태세에 있지 않다. 브뤼닝 정권은 이러한 과도기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이탈리아 공산주의자들은 오랫동안 파시즘에 대해 연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들은 파시즘의 근본 개념들이 널리 남용되는 현상에 대해 여러 차례 항의한 바 있다. 코민테른 제 6차 대회 때에 에르콜리(주 13)는 지금 “트로츠키주의적”이라고 낙인찍힌 바로 그 견해를 파시즘 이론으로 완성하고 있었다. 당시 에르콜리는 파시즘을 가장 철저하고 비타협적인 반동으로 규정하였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이 체제는 테러행위의 잔혹함, 다수 노동자와 농민의 살해, 다양한 형태의 잔인한 고문의 대대적 자행, 법정의 가혹한 판결 등에 의존하지 않는다. 모든 형태의 독립적 대중조직을 체계적으로 괴멸시키는 것에 의존한다.” 이 점에 있어서 에르콜리는 절대적으로 옳다. 파시즘의 핵심 성격과 임무는 모든 노동자조직을 철저히 탄압하고 이들 조직의 부활을 저지하는 데에 있다. 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이 목적이 경찰력으로만 달성되지 않는다. 오직 한가지 방법이 있다: 노동계급이 약화될 때 절망하고 있는 소자본가 계급을 이용하여 노동계급을 억누른다. 파시즘의 이름으로 역사무대에 등장한 것은 바로 이 특수한 자본주의 반동체제이다.

에르콜리는 자신의 글에서 이렇게 밝혔다: “파시즘과 사민당의 관계에 대한 모든 문제들은 파시즘과 노동자 조직의 존재가 양립 불가능하다는 명제 속에 전부 들어있다. 지금까지 현대 자본주의 세계에 존재한 다른 모든 반동체제와 파시즘을 명확히 구별시키는 것은 바로 이 관계이다. 파시즘은 사민당과의 모든 타협을 거부하며 사민당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며 사민당의 모든 합법적 존재수단을 박탈하며 사민당 인사들의 국외 망명을 강요한다.”

이것은 코민테른의 주요 기관지에 발표된 그의 논문 내용이다! 이 글이 발표된 직후 마누일스키는 몰로토프의 귀에 거창한 “제 3기” 사상을 주입시켰다. 그리고 프랑스, 독일, 폴란드는 “혁명적 공세의 선두”에 배치되었다. 권력장악이 임박한 임무로 선포되었다. 그리고 노동계급의 봉기에 직면하면 공산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들은 반혁명 세력이므로 파시즘과 사민당을 구별할 필요가 더 이상 없다고 주장되었다. 사회파시즘론이 제창되었다. 그러자 코민테른의 관료들은 다시 줄을 서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에르콜리는 진리가 아무리 귀중해도 몰로토프가 더 귀중하다는 사실을 서둘러 입증했다. 그리고 ... 에르콜리는 사회파시즘론을 옹호하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는 1930년 2월 이렇게 선언했다: “이탈리아 사민당은 즉시 파시스트 일당으로 변모한다.” 공산주의 관료들만큼 빨리 아첨꾼이 되기도 힘들 것이다.

예상한 바와 같이 “제 3기” 이론과 이 이론의 적용에 대한 우리의 비판은 반혁명 작태라고 선언되었다. 그러나 노동계급 전위를 값비싸게 희생시킨 잔혹한 경험들은 이 영역에서도 180도 전환을 강요했다. “제 3기” 이론과 몰로토프 자신은 코민테른에서 연금을 받고 은퇴했다. 그러나 사회파시즘론은 제 3기의 유일하게 잘익은 과실로 뒤에 남았다. 이 이론은 변경될 수가 없었다. 몰로토프만이 제 3기 이론에 묶여있었다. 그러나 스탈린 자신은 사회파시즘론이라는 그물에 걸려들어 완전히 포박되었다.

적기지(紙)는 스탈린의 다음과 같은 말을 시작으로 사회파시즘론을 연구하기 시작한다: “파시즘은 사민당의 적극적인 지지에 의존하는 부르조아 계급의 군사조직이다. 객관적으로 말하면 사민당은 파시즘의 온건한 분파이다.” 일반화를 시도할 때 스탈린은 두 번째 문장으로 첫 번째 문장을 반박하고 첫 번째 문장에서 전혀 도출되지 않는 두 번째 문장을 결론으로 삼는다. 부르조아 계급이 사민당에 기대고 파시즘이 이 계급의 군사조직이라는 사실은 너무도 당연하다. 여기서 나오는 유일한 결론은 파시즘 뿐 아니라 사민당도 대부르조아 계급의 도구라는 사실이다. 사민당이 어떻게 파시즘의 “분파”가 될 수 있는 지는 이해할 수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심오한 것은 역시 스탈린의 다음과 같은 말이다: 파시즘과 사민당은 적이 아니라 쌍둥이다. 그러나 쌍둥이들도 가장 처절한 적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동맹 세력들이 반드시 같은 날 같은 부모에게서 날 필요는 없다. 스탈린의 사상은 변증법은 고사하고 형식논리마저 결여하고 있다. 그의 사상이 갖는 힘은 아무도 감히 그의 사상에 도전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있을 뿐이다.

스탈린을 그대로 모방하여 베르너 허쉬(주 14)는 이런 내용으로 강연한다: “‘계급적 내용’으로 보아서는 민주주의와 파시즘은 차이가 없다.”([인터내셔널] 1932년 1월) 민주주의에서 파시즘으로의 이행은 “유기적 과정” 즉 “서서히” 그리고 “피를 흘리지 않고” 진행되는 지도 모른다. 이러한 논리는 모든 사람을 황당하게 한다. 그러나 이들 사이비 지도자들은 황당함에 익숙하도록 우리를 길들여 놓은 지 이미 오래되었다.

민주주의와 파시즘 사이에는 “계급적 차이”가 없다. 당연히 이 말은 파시즘은 물론이고 민주주의도 부르조아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1932년 1월 이전에 이 정도는 이미 추측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배계급은 진공 속에 존재하지 않으며 다른 계급들과의 명확한 관계 속에 존재한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민주적” 체제가 존속되는 동안 부르조아 계급은 주로 노동계급의 지지를 얻는다. 노동계급은 개량주의자들에 의해서 족쇄가 채워진다. 이러한 체제는 영국 보수당 뿐 아니라 노동당 정권 하에서도 가장 완성된 형태를 띤다. 파시즘의 최소한 첫 단계에서 자본은 소자본가 계급의 지지를 구한다. 소자본가 계급은 노동계급의 조직을 파괴한다. 이탈리아의 예를 들어보자! 두 체제는 “계급적 내용”에서 차이가 있는가? 이 질문이 지배계급에 대해서만 제기된다면 차이는 없다. 만약 노동계급의 시각에서 모든 계급들의 입장과 상호관계를 고려한다면 차이는 대단히 엄청나다.

수십 년에 걸쳐 노동자 계급은 부르조아 민주주의를 활용하고 이에 대항하면서 자신의 아성과 노동자 민주주의의 기지 즉 노동조합, 정당, 교육-스포츠 클럽, 협동조합 등을 건설했다. 노동계급은 부르조아 민주주의의 한계 내에서가 아니라 오직 혁명의 길을 통해서만 권력을 장악할 수 있다. 이 사실은 이론과 경험에 의해서 이미 증명되었다. 그리고 부르조아 국가 내의 이러한 노동자 민주주의 요새는 혁명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제 2 인터내셔널의 업적은 자신이 여전히 진보적인 역사적 임무를 수행한 시대에 바로 이러한 요새들을 건설한 것에 있다.(주 15)

파시즘의 기본적이고 유일한 임무는 노동자 민주주의의 모든 기관들을 그 기초까지 깡그리 파괴하는 데에 있다. 그렇다면 이것이 노동계급에게 “계급적 내용”이 있는가 없는가? 고상한 이론가들은 이 문제를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파시즘이 부르조아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사실을 선언한 후 허쉬는 자기 주인인 스탈린주의자들과 똑같이 자기도 한가지 사소한 일을 간과하고 있다: 파시즘에서 노동계급의 지위. 역사적 과정 대신 이들은 공허하고 추상적인  사회학 개념을 대체하고 있다. 그러나 계급 전쟁은 사회학이라는 성층권이 아니라 역사라는 토양 위에서 전개된다. 파시즘에 대한 투쟁의 출발점은 추상적 민주국가가 아니라 살아있는 노동자 조직이다. 노동자 조직은 노동계급의 과거 투쟁 경험을 전부 응축하고 있으며 노동계급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민주주의에서 파시즘으로의 이행은 “유기적인” 그리고 “점진적인” 성격을 띨 수 있다는 말에는 오직 한가지 의미 밖에 없다: 조금의 소동이나 싸움도 없이 노동계급은 자신의 모든 물질적 성과들 즉 주어진 생활수준, 사회입법, 시민적 정치적 권리들 뿐 아니라 이것들이 성취된 기본적 무기 즉 노동자 조직도 박탈당할 수 있다. 파시즘으로의 “피를 흘리지 않는” 이행은 생각할 수 있는 한 가장 무서운 노동계급의 굴복을 의미할 뿐이다.

베르너 허쉬의 이론은 우연한 현상이 아니다. 이것은 스탈린의 이론을 더욱 발전시키는 데에 기여할 뿐 아니라 공산당의 선동 내용 전체를 일반화시키는 데에도 이용된다. 브뤼닝 정권과 히틀러 정권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사실 하나만을 증명하기 위해 공산당의 주요한 자원들이 소진되고 있는 것이다. 텔만과 레멜러는 허쉬의 이론이 볼셰비키 정책의 정수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 문제가 독일에만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파시즘이 승리해도 별 차이가 없다는 사고는 코민테른의 지부인 각국 공산당 내부에서 열렬히 선전되고 있다. 프랑스의 정기간행물 [볼셰비즘 노트](Cahiers du Bolshevisme)는 이렇게 말한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실제로는 브라이트샤이트처럼 행동하고 있다; 이들은 그 유명한 사민주의 이론인 ‘차선책’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브뤼닝은 히틀러만큼 나쁘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히틀러보다 브뤼닝 치하에서 굶주리는 것은 그리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프리크(주 16)보다는 그뢰너에 의해 총살되는 것이 한없이 더 좋다는 것이다.” 이 글은 제대로 평가하자면 꽤 어리석은 문구이지만 가장 어리석은 문구는 아니다. 다만 불행하게도 코민테른 지도자들의 정치철학의 핵심을 표현하고 있다.

사실을 말하자면 스탈린주의자들은 히틀러와 브뤼닝 두 정권을 속류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비교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브뤼닝 정권을 “형식적” 민주주의의 조건으로 바라본다면 논쟁의 여지없이 이런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자랑스러운 바이마르 헌법에서 남아있는 것은 뼈다귀와 껍데기 뿐이다. 그러나 우리의 문제와 관련해서 이 사실은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우리가 처한 문제는 노동자 민주주의의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리고 이 조건 만이 쇠퇴하는 자본주의에서 반동세력의 “정상적인” 경찰력이 언제 어디서 파시즘으로 대체될 지를 파악할 수 있는 믿을만한 유일한 조건이다.

브뤼닝이 히틀러보다 “더 나은”지(어쩌면 더 나아 보이는 지)는 우리에게 전혀 관심사항이 아니다. 파시즘이 아직도 독일을 정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주장하려면 현존하는 노동자 조직들의 명단만 보면 된다. 파시즘이 승리하기에는 아직도 거대한 장애물과 세력이 남아 있다.

현 브뤼닝 정권은 관료적 독재체제 또는 좀더 확정적으로 말하자면 군대와 경찰력으로 유지되는 부르조아 독재체제이다. 노동계급 조직과 파시즘에 붙은 소자본가 계급 조직은 서로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 노동자들이 소비에트로 단결되고 공장위원회가 생산을 통제하기 위해서 투쟁하고 있다면 현 상황을 이중권력(dual power)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계급이 분열되어 있으며 노동계급 전위의 전술이 무기력한 상황이므로 이중권력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특정 상황에서 압도적인 힘으로 파시즘을 격퇴시킬 능력이 있는 강력한 노동계급이 버티고 있기 때문에 히틀러는 정권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으며 관료적 국가기구는 나름의 “독자성”을 유지하고 있다.

브뤼닝의 독재체제는 보나파르트 체제(주 17)의 우스꽝스러운 형태이다. 그의 정권은 불안정하고 일시적인 체제일 뿐이다. 그리고 사회의 새로운 안정의 시작이 아니라 낡은 안정의 때 이른 붕괴를 상징한다. 극소수 부르조아 계급의 직접적 지지만을 받고 있으며 노동계급의 의지와 무관하게 사민당에 의해 관용되고 있으며 파시즘의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이므로 브뤼닝은 종이쪽지 위에 포고령을 천둥처럼 선언할 뿐 진짜 천둥을 내릴 수 없다. 그는 의회의 동의를 얻어야 의회를 해산할 수 있으며 노동계급의 이해에 반하는 몇몇의 포고령을 발표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성탄절 휴전을 선언하고 이때를 틈타 몇몇 수작을 부릴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백 개 정도의 모임을 해산시키고 열댓 개의 신문을 폐간시키고 농촌의 약사에 걸맞게 히틀러와 편지를 주고 받을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이 전부이다. 그러나 이 이상 큰일을 벌이기에는 그의 팔이 너무 짧다.

현재 브뤼닝은 노동자 조직을 허용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까지 권력을 히틀러에게 넘겨줄 결정을 하지 않았으며 독자적으로 노동자 조직을 싹쓸이할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동계급의 승리를 지독히 두려워하고 있는 한에서만 그는 파시스트들을 용인하고 감싸안고 있다. 그의 정권은 이행기의 단명한 정권으로 커다란 재앙의 전조이다. 주요 진영들이 아직 자신들의 힘을 실험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의 정권은 여전히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것이다. 진짜 본격적인 싸움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공공연한 싸움이 시작되기 전에 관료적 무기력의 독재가 공백을 메우고 있을 뿐이다.

“브뤼닝과 히틀러의” 차이를 모르겠다고 자랑을 늘어놓는 현명한 신사 양반들은 사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셈이다: 노동자 조직이 존재하든 파괴되든 차이가 없다. 이 급진적인 체하는 허풍 밑에는 가장 지저분한 수동성이 숨어있다: 어쨌든 패배는 피할 수 없다! 프랑스 스탈린주의자들의 정기간행물이 필자의 글을 인용한 부분을 조심스럽게 읽어 보라. 이들은 이 문제를 히틀러나 브뤼닝 가운데 누구 밑에서 굶어 죽는 것이 나은 가하는 문제로 환원시키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문제는 어떻게 싸워서 어떻게 이길 것인가에 있다. 우리는 이렇게 결론 내린다: 관료적 독재체제가 파시즘 체제로 대체되기 전 즉 노동자조직이 괴멸되기 전에 진짜 싸움이 개시되어야 한다. 계급 투쟁을 시작하고 격화시키고 확대하는 것을 통해서 전면전이 준비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전망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한참동안 치러야할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적의 승리를 미리 선언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바로 여기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 바로 여기에 전략적 열쇠가 있다; 바로 여기에 싸움을 준비할 작전기지가 있다. 생각을 할 줄 아는 모든 노동자 더욱이 모든 공산주의자는 브뤼닝과 히틀러가 같다는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의 공허하고 썩어빠진 허풍을 간파해야 한다. 우리는 이렇게 대답한다. 네놈들은 혼란 그 자체이다! 앞에 놓여있는 커다란 난관이 두려워서 네놈들은 우아하게 혼란을 조장하고 있다. 네놈들은 싸움이 시작되기도 전에 수건을 던져 기권한다. 그리고 우리가 이미 패배했다고 선언한다. 네놈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노동계급은 분열되어 있으며 개량주의자들에 의해 약화되어 있으며 전위의 동요로 혼란에 빠져있다. 그러나 아직도 괴멸되지 않았으며 그 역량도 아직 소진되지 않았다. 아니다. 독일 노동계급은 강력하다. 이들의 혁명적 에너지가 투쟁의 결전장으로 나아갈 때는 가장 낙관적인 예상도 한없이 능가하는 전과를 올릴 것이다.

브뤼닝 정권은 미래를 준비하는 정권이다. 즉 파시즘의 승리 아니면 노동계급의 승리를 준비하는 정권이다. 이 양대 진영이 싸움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브뤼닝 정권은 준비기의 정권이다. 브뤼닝과 히틀러를 동일시하는 것은 싸움이 있기 전의 상황과 패배 후의 상황을 동일시하는 것과 같다. 즉 미리 패배를 인정하는 것과 같다. 싸움 한 번도 하지 않고 항복할 것을 호소하는 것과 같다.

노동자들 특히 공산주의자들의 압도적 다수는 이것을 원치 않는다. 물론 스탈린주의 관료집단 역시 이것을 원치 않는다. 그러나 이들의 좋은 의도를 판단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다. 히틀러는 좋은 의도를 가지고 지옥으로 가는 길을 닦을 것이다. 우리는 정책의 객관적 의미, 방향, 경향을 가지고 판단해야 한다. 스탈린-마누일스키-텔만-레멜러의 정책은 수동적이며 겁에 질려있으며 주저하고 있으며 굴복하고 있으며 무기력하게 항의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해야 한다. 상황의 열쇠는 공산당의 손에 있으나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은 이 열쇠를 혁명적 행동으로 나아가는 대문을 잠그기 위해서 사용하려고 한다. 이 점을 혁명적 노동자들에게 확실히 주지시켜야 한다.

3. 관료적 최후통첩

새로 창당된 사회주의노동자당(SAP)(주 18)의 신문은 사민당과 공산당의 “당 이기주의”를 비판하고 나섰다. 자이데위츠 자신은 “당의 이해보다 계급의 이해가 앞선다.”고 확언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정치 감상주의(political sentimentalism)에 빠져있을 뿐이다. 그리고 더 나쁜 것이 있다. 이들은 이 감상적 언사를 통해 자기 당의 이해를 은폐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반동세력이 “나라”의 이해를 계급의 이해보다 앞에 놓기를 요구할 때 맑스주의자들은 “전체”의 이해를 허울로 해서 반동세력이 착취계급의 이해를 추구한다고 폭로한다. 나라의 이해는 지배계급 또는 주권을 빙자하는 계급의 관점에서만 표현될 수 있다. 그러나 계급의 이해는 강령을 통해서만 표현될 수 있다. 강령은 당을 건설하는 것을 통해서만  옹호될 수 있다.

계급은 그 자체로는 착취의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노동계급은 즉자적(in itself) 사회계급에서 대자적(for itself) 정치계급으로 변모되는 순간에만 독자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이 정치적 변모는 당이라는 매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당은 계급 대중이 계급의식을 획득하는 역사적 기관이다. “계급이 당보다 더 우위에 선다”고 말하는 것은 즉자적 계급이 계급의식 획득과정에 있는 계급보다 더 우위에 선다는 것을 말한다. 이 말은 틀릴 뿐만 아니라 반동적이다. 이런 오만하며 천박한 이론은 공동전선의 필요성을 선전하는 데에는 조금도 쓸모가 없다.

계급 대중이 계급의식을 획득하는 과정 즉 장차 노동계급을 지도할 혁명정당의 건설 과정은 복잡하고 모순에 가득 차 있다. 계급 자체가 동질성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계급 내부의 개개 부문들은 각기 다른 경로를 거쳐 각기 다른 시차를 두고 계급의식을 획득한다. 그리고 부르조아 계급도 이 과정에 적극 개입한다. 노동계급의 각 부문들을 서로 이간질시키기 위해 노동계급 내에 자기 조직을 수립하거나 이미 존재하고 있는 조직들을 활용한다. 노동계급 내부에는 여러 정당들이 동시에 활동한다. 따라서 대개의 경우 노동계급은 정치적으로 분열되어 있다. 특정 시기에 대단히 날카롭게 등장하는 공동전선의 문제는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노동계급의 역사적 이해는 공산당에 의해 표현된다. 다만 하나의 조건이 있다. 공산당의 정책이 올바라야 한다. 공산당의 임무는 노동계급 다수를 계급의식으로 획득하는 데에 있다. 그리고 이 임무가 성공할 때에만 사회주의 혁명도 성공할 수 있다. 노동계급 내부와 외부에 존재하는 다른 정당과 조직들로부터 정치적 조직적 독립성을 완전히 그리고 무조건 보존해야 공산당은 자신의 임무를 달성할 수 있다. 이 기본적인 맑스주의 원칙을 위반하는 것은 곧 노동계급에 대한 가장 가증스러운 범죄행위에 해당된다. 스탈린과 부하린이 주도한 코민테른이 중국공산당에게 중국 부르조아 계급의 정당인 국민당에 들어가서 이 정당의 규율에 복종하도록 강요했기 때문에 1925년과 1927년 사이에 중국혁명은 분쇄되었다. 국민당에 대한 이 스탈린주의 정책의 결과는 어떻게 혁명이 혁명 지도부에 의해 분쇄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예로서 영원히 역사에 남을 것이다. 동양의 “노동자 농민 계급 정당”에 대한 스탈린의 이론은 중국국민당에 대한 정책을 일반화하고 인가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이론이 일본, 인도, 인도네시아, 조선에 적용되면서 코민테른의 권위는 약화되었고 오랜 세월에 걸쳐 혁명운동을 후퇴시켰다. 이 배신적 정책은 중국의 경우처럼 그렇게 냉소적으로는 아닐지라도 1928년까지 미국, 영국, 유럽의 모든 나라에 적용되었다.

모든 역사적 상황 속에서 그리고 노동계급의 모든 발전단계에서 좌익반대파는 공산당과 그 정책의 완전하고도 무조건적인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투쟁해왔다. 이 투쟁은 스탈린 분파가 장개석, 왕정위, 퍼쓸,  라디치, 라폴레트(주 20) 등과 동맹한 기간에 좌익반대파와 스탈린 분파의 결별을 가져올 정도까지 격화되었다. 이 시기에 브란틀러, 탈하이머는 물론이요 텔만과 레멜러도 볼셰비키-레닌주의자들에 대항하여 완전히 스탈린과 한패가 되었다. 이 사실은 다시 회상할 필요도 없다. 따라서 우리는 공산당 정책의 독립성에 대해서 스탈린과 텔만의 교육을 받을 필요가 전혀 없다.

그러나 노동계급은 학년이 높아지는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중단을 혐오하는 계급투쟁을 통해서 혁명의식으로 나아간다. 투쟁하기 위해서 노동계급은 단결해야 한다. 이것은 파시즘을 격퇴하는 “전국적인” 정치투쟁의 경우 뿐 아니라 하나의 공장 담벼락 안에서 부분적인 경제투쟁을 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공동전선 전술은 우연적이거나 인위적인 속임수가 결코 아니다. 이 전술은 순전히 노동계급의 발전을 규정하는 객관적 상황에서 나온다. 공산주의자는 노동계급의 이해를 저버려서는 안되며 노동계급 전체와 다른 별개의 이해를 갖지 않는다고 [공산당 선언]은 말하고 있다. 즉 계급의 다수를 획득하고자 하는 당의 투쟁은 투쟁 가운데에서 단결해야 하는 노동자들의 요구와 어떤 경우에도 충돌해서는 안된다.

“계급의 이해는 당의 이해에 우선한다.”는 주장을 비난하는[적기]지는 완전히 옳다. 실제로는 올바로 이해된 계급의 이해는 올바로 표현된 당의 문제와 동일하다. 논의가 이러한 역사적-철학적 주장에 제한된다면 [적기]지의 입장은 비난받을 수 없다. 그러나 적기지가 이 주장으로부터 유추하는 정치적 결론은 맑스주의를 우스개 거리로 만드는데 부족함이 없다.

노동계급의 이해와 공산당의 정치적 목적은 원칙적으로 같다. 그러나 지금 노동계급이 전체적으로 자신의 계급적 이해를 의식하고 있거나 모든 상황에서 당이 노동계급의 이해를 올바르게 표현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노동계급이 자신의 역사적 이해를 본성적으로 이해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당이 필요하다. 투쟁경험을 통해 노동계급에게 자신의 지도력을 입증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당의 임무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은 코민테른의 도장이 찍힌 당원증의 힘만으로 노동계급의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적기]지는 이렇게 되풀이하고 있다: 공산당의 지도를 우선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모든 공동전선은 노동계급의 이해에 반대된다. 공산당의 지도력을 인정하는 않는 자는 모두 “반혁명 분자”이다. 노동자는 사전에 맹세코 공산당 조직을 신뢰해야 한다. 당의 목적과 계급의 목적을 원칙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 당 관료는 계급 대중에게 법령을 하달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깃발 아래 노동계급의 절대 다수를 단결시켜야 한다는 공산당의 역사적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 문제는 관료에 의해 최후통첩이 되어 노동계급의 정수리를 겨누는 권총이 되었다. 형식적, 행정적, 관료적 사고가 변증법을 대신하고 있다.

해결되어야 할 역사적 문제가 이미 해결되었다고 선언되고 있다. 노동계급으로부터 얻어야 할 신뢰가 이미 얻어진 것으로 선언되고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손쉬운 해결책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는 얻어지는 것이 거의 없다. 정치는 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소망하는 바 또는 최종적으로 얻어질 결과에서 출발해서는 안된다. 스탈린 관료집단이 결론으로 내린 입장은 사실 당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 노동계급이 미리 텔만과 레멜러의 지도력을 인정해야 한다면 당이 역사를 통해 지도력을 획득하기 위해 바쳐야 할 모든 노고는 다 무슨 소용인가?

공산당 가입을 희망하는 노동자에게 당은 이렇게 요구할 권리가 있다: 당의 강령, 규율, 선출된 기구의 권위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명확한 투쟁 목표를 위해 공동행동의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이와 똑같은 선험적인 요구를 노동자 조직 대중들에게 제시하는 것은 비합리적일 뿐만 아니라 범죄행위에 해당된다. 이런 식으로 나가면 당의 기초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 왜냐하면 당은 계급 대중과 올바른 관계를 맺어야 자기 임무를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에게 분노와 모욕감을 주는 일방적인 최후통첩 대신 당은 공동행동을 위한 명확한 프로그램을 제출해야 한다. 이것이 실제로 지도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최후통첩은 노동계급을 설득하지 못하자 강간을 시도하는 것과 같다: 텔만-레멜러-노이만의 지도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공동전선을 허용하지 않겠다. 계급의 가장 철천지 원수도 현재 당 지도부가 제시하는 이 엉터리 정책보다 더한 것을 고안해낼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멸망으로 가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독일공산당 지도부는 다음과 같은 궤변을 구사하여 더욱 날카롭게 자신의 최후통첩을 강조하고 있다: “여러분이 미리 공산당의 견해를 받아들이라고 우리는 요구하지 않는다.” 이것은 오만한 정책이 마치 용서를 구하는 것처럼 공허하게 들린다. 당은 다른 조직들과 어떤 종류의 협상에도 응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사민당과 결별하기를 원하지만 아직도 공산당에 가입을 거부하는 사민당 노동자들에게는 지도력을 행사하겠다고 나선다. 이것이 순수한 의미의 최후통첩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러면서 당의 견해를 받아들이라고 요구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은 완전히 웃기는 얘기이다. 지금 사민당과 결별하여 공산당의 지도하에 투쟁할 준비가 되어있는 노동자는 자기를 공산당원이라고 불러도 전혀 개의치 않을 것이다. 외교적인 언사와 명칭으로 장난치는 것은 노동자에게 낯선 짓이다. 그는 노선과 조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공산당 지도부를 신뢰하지 않는 이상 그는 계속 사민당에 남아있을 것이다. 아직까지 사민당에 남아있는 노동자의 다수는 개량주의 지도부를 신뢰해서가 아니라 공산당 지도부를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사민당에 남아있다. 그러나 지금도 파시즘에 대항해서 싸우기를 진정 원하고 있다. 공동행동의 첫발을 누가 모범적으로 내디디면 자신의 조직도 같은 행동을 할 것을 요구할 것이다. 이때 자기 조직이 머뭇거리면 이들은 조직과 결별할 지도 모른다.

사민당 노동자들이 경험을 통해 올바른 투쟁의 길을 찾도록 돕는 대신 공산당 중앙집행위는 사민당 지도부가 소속노동자들을 혼란에 빠뜨리도록 돕고 있다. 웰스와 힐퍼딩 같은 자들은 공산당이 공동투쟁에 참여하기를 혐오하는 것을 지적하면서 자신들의 투쟁 혐오증과 투쟁을 지도할 수 없는 무능력을 성공리에 위장할 수 있다. 지금 상황에서 공산당이 공동전선 정책을 완고하고 어리석고 뻔뻔스럽게 거부하는 것은 사민당에게 가장 중요한 정치적 무기를 제공하는 것과 같다. 본성 상 기생충인 사민당이 스탈린-텔만의 최후통첩에 대한 우리의 비판을 꿀꺽 삼키면서 이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코민테른의 지도자들은 심오한 체하며 당의 이론 수준을 높이고 “볼셰비키주의의 역사”를 연구할 필요성을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이 “수준”은 끊임없이 하락하고 있으며 볼셰비키주의의 교훈은 잊혀지고 왜곡되고 발 밑에 짓이겨지고 있다. 독일 중앙집행위 정책의 선구자 격을 러시아당의 역사에서 찾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는 바로 최후통첩의 창시자 고(故)보그다노프이다. 이미 1905년에 그는 뻬쩨르부르그 소비에트가 볼셰비키당의 지도력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 이 소비에트에 참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보그다노프의 영향을 받아 뻬쩨르부르그 중앙집행국(볼셰비키)은 1905년 10월 다음과 같은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뻬쩨르부르그 소비에트가 당의 지도력을 인정할 것을 요구하는 제안서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소비에트에 불참한다. 당시 중앙집행국(볼셰비키) 위원이며 젊은 변호사였던 크라시코프가 이 최후통첩안을 소비에트 총회에서 낭독했다. 볼셰비키들을 포함한 노동자 대의원들은 놀란 표정을 지은 채 예정된 일들을 진행시켰다. 어느 한 사람도 소비에트 회기에 불참하지 않았다. 레닌은 망명지에서 돌아오자마자 가차없이 최후통첩파를 비판했다. 그는 이들에게 이렇게 설파했다: “동지들 뿐 아니라 어느 누구도 최후통첩으로는 대중의 정치의식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킬 수 없다.”

그러나 보그다노프는 자신의 방법론을 고집하더니 결국 “최후통첩파(Otzovists)”라는 완전한 분파를 구성했다. 이들은 “우리의 지도력을 먼저 인정하라”는 위로부터의 최후통첩을 거부하는 모든 조직으로부터 볼셰비키들이 일어나 나가도록(get up and get out) 촉구했기 때문에 “일어나 나가는 파(up and outers)”라고 불리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정책을 소비에트 뿐 아니라 의회와 노동조합에도 적용했다. 즉 노동계급의 모든 합법 반합법 조직들에게 이 정책을 적용했다.

최후통첩파에 대한 레닌의 투쟁은 당과 계급 사이의 올바른 상호관계를 위한 투쟁이었다. 당시 볼셰비키당의 최후통첩파는 대중에게 영향력을 전혀 행사하지 못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볼셰비키의 승리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볼셰비키주의의 강점은 계급에 대한 각성된 그리고 섬세한 관계에 있었다. 레닌은 최고지도자가 되었을 때에도 최후통첩파에 대한 투쟁을 계속했다. 특히 노동조합에 대한 태도에서는 더욱 그랬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러시아와 연합국의 부르조아 계급에 대해 유례없는 승리를 2년 반 동안이나 구가했다. 이런 승리 후에 러시아 노동조합에 대해 ‘당의 독재를 인정하는’ 조건으로 볼셰비키당에 가입하도록 제안한다면 이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며 대중에 대한 우리의 영향력에 해를 끼치고 멘셰비키들을 돕는 일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공산주의자의 임무는 후진 대중을 설득하고 이들 사이에서 작업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허구의 유치한 ‘좌파’ 구호로 이들과 우리 사이에 장벽을 설치해 스스로를 고립시키지 않는 데에 있다”(좌파 공산주의: 소아병). 레닌의 이 말은 서방 공산당에게 더욱 절실하게 해당된다. 이들은 노동계급의 소수만을 획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몇 년동안 소련의 상황은 근본적으로 변했다. 공산당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전위당과 계급 사이에는 새로운 상호관계가 도입되었다. 즉 강제력이라는 요소가 이 관계에 새로이 추가되었다. 당과 관료집단에 대한 레닌의 투쟁의 핵심은 기구의 잘못된 조직운영이나 기구간의 형식성과 비효율성에 대한 투쟁이 아니었다. 당기구가 계급 대중에게 법률을 하달하려는 경향에 대한 투쟁이 핵심이었다. 그리고 당관료기구가 새로운 “지배”파벌로 변모하는 경향에 대해 투쟁했다. 레닌은 임종시에 중앙집행위원회로부터 독립된 노동자통제위원회가 설립되고 스탈린과 그의 분파가 당기구에서 배제되어야 한다고 유언했다. 이것은 당의 관료적 퇴보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지면을 빌어 소개할 수 없는 여러 이유들 때문에 당은 그의 유언을 무시했다. 최근 몇 년간 당의 관료적 퇴보는 극단적인 한계에 도달했다. 스탈린의 당기구는 단순히 법을 강요한다. 명령의 언어는 최후통첩의 언어이다. 모든 노동자는 무조건 즉시 중앙집행위원회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결정들을 오류가 없는 것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정책의 오류가 드러나면 날수록 무오류에 대한 허세는 도를 더했다.

코민테른의 기구를 장악한 후 스탈린 분파는 자연스럽게 각국의 공산당인 코민테른 지부에게 같은 방법을 이식했다. 독일 지도부의 정책은 소련 지도부의 정책과 일치한다. 스탈린이 자신의 무오류를 인정하지 않는 모두를 반혁명 분자라고 비난하면서 지배를 공고히 하는 작태를 텔만은 주시하고 있다. 그러면 어떤 측면에서 텔만은 스탈린보다 더 지독한가? 노동계급이 자신의 지도력을 기꺼이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노동계급이 반혁명 세력이기 때문이다. 최후통첩의 해악을 지적하는 자들은 이중적으로 반혁명 세력이다. 레닌 전집은 가장 반혁명적 출판물이 된다. 특히 이 전집이 외국어로 번역된 경우 스탈린이 엄격한 검열을 실시한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어떤 경우에도 최후통첩은 커다란 해악을 가져온다. 이 해악이 소련에서 당의 도덕적 자산을 증발시킨다면 서방 공산당들에게는 이중의 재앙을 가져다준다. 서방의 당들은 도덕적 자산을 축적해야 하기 때문에 이 해악은 더욱 심각하다. 최소한 소련 내에서는 승리한 혁명이 억압기구의 모습으로 관료적 최후통첩의 물질적 근거를 제공하였다. 반면에 독일을 포함한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최후통첩은 무기력한 우스꽝스러운 모조품으로 전락하고 있으며 공산당의 권력 장악을 방해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텔만-레멜러의 최후통첩은 황당하기 그지없다. 특히 황당한 작태는 혁명정당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영국의 경우 공산당은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의 파멸적인 오류때문에 노동계급의 극소수만을 획득하고 있다. 공산당이 주도하지 않는 모든 공동전선이 “반혁명적”이라면 공산당이 전면에 등장하기 전까지 영국의 노동계급은 혁명투쟁을 연기해야 한다. 그러나 공산당은 스스로 혁명투쟁에 나서지 않으면 계급의 전면에 등장할 수 없다. 그리고 수백만 대중을 투쟁으로 인도하지 않고서는 공산당의 투쟁경험은 어떤 방식으로든 혁명적일 수 없다. 그러나 공산당에 소속되지 않은 조직 노동자들일수록 공동전선 정책 이외의 방식으로는 투쟁으로 인도될 수 없다. 우리는 악순환에 놓여있다. 관료적 최후통첩은 이 악순환을 타개할  수 없다. 그러나 혁명적 변증법은 이미 오래 전에 타개책을 제시했으며 다양한 영역에서 수많은 모범을 통해 이것을 입증했다. 즉 권력장악을 위한 투쟁을 개량적 투쟁과 연관시켰고 노동조합의 단결을 유지하는 가운데 당의 완전한 독립성을 유지했다. 부르조아 체제에 대항하면서 이 체제 내의 제도들을 활용하였고 동시에 의회에서 의회주의를 가차없이 비판했다. 개량주의에 대해 가차없이 투쟁했으며 동시에 부분적 투쟁에서 개량주의자들과 실제적인 합의에 도달했다.   

영국공산당의 극단적인 허약함은 최후통첩의 무능력을 뚜렷이 부각시켰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당의 상당한 수적 역량과 이 역량의 증대로 인해 최후통첩의 해악이 어느 정도 은폐되고 있다. 그러나 독일공산당의 성장은 지도부의 정책 때문이 아니라 상황의 압력 때문에 가능하다. 최후통첩 때문이 아니라 최후통첩에도 불구하고 공산당이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당의 수적 성장은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사태를 결정하는 것은 당과 대중 사이의 정치적 상호관계이다. 이 기본적인 측면에서는 상황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독일공산당은 자신과 계급 대중 사이에 최후통첩이라는 가시 울타리를 쳐놓았기 때문이다. 

4. 공동전선 문제에 대한 스탈린의 좌충우돌

뒤셀도르프 출신 사민주의자 토호스트(Torhorst)는 공산당으로 전향했다. 그리고 프랑크푸르트에서 1월 중순 공산당의 이름으로 연설을 했다. 자신의 공식 보고서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사민당 지도부의 정치 성향은 충분히 폭로되었다. 이제 양당 지도부 사이에 단결이 이루어졌으므로 사민당 지도자들의 정치 성향을 계속 폭로하는 것은 순전히 에너지 낭비일 뿐이다.” 이 인용문은 프랑크푸르트 공산당 신문에 소개되어 높이 찬양되고 있다. “사민당 지도부의 정치 성향은 충분히 폭로되었다.” 사민당에서 공산당으로 명예롭게 전향한 이 여성 대변인에게는 물론 충분히 폭로된 모양이다. 그러나 사민당에게 표를 던지며 노동조합의 개량주의 관료들을 참아 넘기고 있는 수백만 노동자들에게는 아직 충분히 폭로되지 않았다.

그러나 보고서를 하나만 인용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다. 필자가 접한 1932년 1월 28일자 [적기]지는 다시 한 번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사민당 지도자들에 반대하는 것을 통해서만 그리고 이들이 배제되어야 공동전선이 체결될 수 있다. 증거: “지난 18년 동안 이 ‘지도자들’의 정치적 작태를 체험한 어느 누구도 이들을 믿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묻는다: 정치 경험이 18년 미만 심지어는 18개월 미만인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하나? 전쟁이 발발한 이래 여러 세대들이 정치적으로 성숙해졌다. 그러나 이들은 훨씬 적은 시간 내에 구세대의 정치 경험을 축약해서 이해해야 한다. 레닌은 초좌익 분자들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우리에게 낡아 쓸모 없는 일은 무엇이든 계급 대중에게도 그렇다고 가정해서는 안된다.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더욱이 18년 동안 실제로 정치를 경험한 구세대조차 자신의 배신적 지도자들과 전혀 결별하지 않았다. 이와 반대로 사민당은 오랜 전통에 매인 많은 “구세대들”을 여전히 당원으로 보유하고 있다. 물론 대중이 천천히 교훈을 체득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러나 개량주의의 범죄적 성격을 폭로할 능력을 확실히 겸비하지 못한 공산당 “선생님들”이야말로 철저히 비난받아 마땅하다. 지금 상황을 활용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이다. 그리고 치명적인 위험에 직면하여 대중의 관심이 최고조에 달한 바로 이때 개량주의자들이 새로이 그리고 이번에는 정말로 결정적인 시험대에 올라야 한다. 우리는 최소한 이 작업만이라도 해내야 한다.

사민당 지도자들에 대한 우리의 견해를 조금도 숨기거나 완화하지 않은 채 우리는 사민당 노동자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으며 말해야 한다: “여러분들은 한편으로는 우리와 함께 기꺼이 싸우고자 하며 또 한편으로는 여러분의 지도자들과 결별하기를 원치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실제적인 목적을 위해 수행하는 공동투쟁에서 여러분의 지도자들이 동참하도록 강제하십시오. 우리 공산주의자들은 싸울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이것보다 더 간단하며 더 손에 잡히기 쉬우며 더 설득력이 있는 제안이 있을 수 있는가?

바로 이런 의미에서 돌대가리들의 진정한 공포와 돌팔이들의 거짓 분노를 분기시키려는 의도로 필자는 이렇게 썼다: 반파시즘 전쟁에서 우리는 악마와 악마의 할머니 심지어는 노스케(Noske)와 쬐어기벌(주 21)과 실제적인 군사동맹을 체결할 준비가 끝났다.(저자 주: 스탈린주의자들의 신문 가운데 가장 황당하고 무식한 프랑스어 정기간행물 [볼셰비즘 노트]는 악마의 할머니에 대한 필자의 말을 게걸스럽게 비판했다. 물론 이 신문은 악마의 할머니가 맑스주의 신문에 오랫동안 등장한 사실을 전혀 몰랐다. 혁명적 노동자들이 이 무지하고 비양심적인 선생님들이 악마의 할머니 밑에서 도제수업을 받게 만들 날이 곧 오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공산당은 스스로 선언한 정책을 시행 단계마다 거부하고 있다. 즉 (자신과의) “적색 공동전선”을 호소하면서 언제나 “노동계급 신문들의 무조건적인 자유 그리고 시위, 집회, 조직의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이 구호의 내용은 대단히 명확하다. 그러나 공산당이 자신 뿐 아니라 노동계급 신문, 모임 등을 말하는 이상 실제로는 노동자 신문을 발행하고 모임을 소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는 바로 그 사민당과 공동전선을 체결하자는 구호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사민당과의 공동전선을 포함하고 있는 정치구호를 내세우면서 이 구호의 실현을 위한 투쟁을 실제로는 거부하는 것 --- 이것은 황당무계의 극치이다.

뮌젠베르크(주 22)의 실무적 상식은 가끔 스탈린의 “총노선”과 충돌하였다. 그는 자신이 발행한 이론지 [공산주의 건설(Der Rote Aufbau)]지(紙) 11월호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찌즘이 독일 파시즘 내에서 가장 반동적이며 가장 국수주의적이며 가장 잔인한  분파인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모든 진정한 좌익 조직들(!)은 이 독일 파시즘 일 분파의 영향력과 세력 증대를 저지하는데 아주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히틀러의 당이 “가장 반동적이며 가장 잔인한” 분파라면 브뤼닝 정권은 최소한 이보다 잔인하며 반동적이다. 여기서 뮌젠베르크는 “차선책” 이론과 은밀히 불장난하고 있다. 공산당 공식노선에 겉으로나마 순종하기 위해 그는 여러 종류의 파시즘을 구분하고 있다: 온건파, 중간파, 강경파가 이것인데 터어키 담배를 구분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만약 모든 “좌익 조직들”(이들의 이름은 없는가?)이 파시즘 제압에 관심이 있다면 이들 “좌익 조직들”을 진짜 시험대에 올리는 것이 시급한 임무가 아닌가?

브라이트샤이트의 외교적이며 애매모호한 제안을 쌍수를 들어 환영하는 한편 반파시즘 공동투쟁의 구체적이고 면밀하게 명시한 행동 강령을 제출하고 자유노조 집행부가 배석하는 양당의 합동회의를 개최할 것을 요구해야 했다. 이것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 아닌가? 동시에 이 강령을 양당의 각급 조직과 대중들에게 정력적으로 선전해야 했다. 그리고 공동투쟁을 위한 협상은 모든 인민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이루어져야 했다. 왜곡이나 황당한 날조가 없이 협상의 매일 매일 상황이 신문에 실려야 했다. 이렇게 단도직입적이며 단호한 선동은 “사회 파시즘”에 대한 끊임없는 굉음보다 노동자들에게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민당은 “무쇠전선”이라는 자신만의 투쟁 전선을 고수한다는 허풍 뒤에서 단 하루도 숨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모두 [좌파 공산주의 -- 소아병]을 읽어야 한다. 이 저작은 지금 읽어야 할 책들 중에서도 가장 시기 적절한 책이다. 레닌은 바로 지금 독일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이 팜플렛을 썼다. 그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겠다: “노동계급의 전위이자 노동계급의 계급의식을 보유하고 있는 공산당이 다양한 전술을 구사하여 노동계급 내 여러 부위들, 노동자 및 소자본가 정당들과 합의하고 타협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 노동계급의 의식수준, 혁명적 기상, 투쟁력 등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높이기 위해 이 전술들을 적용시켜야 한다. 모든 것은 여기에 달려있다.”

그렇다면 현재 공산당은 어떤 길을 걷고 있는가? 날이면 날마다 자신의 신문을 통해 자신이 인정할 유일한 공동전선은 “브뤼닝, 세버링, 라이파트(주 23), 히틀러 등에 대항하는 공동전선뿐이다”라고 되풀이 말하고 있다. 볼셰비키 10월 봉기에 대항하여 사회혁명당, 멘셰비키들은 입헌민주당, 코르닐로프와 동맹하였다; 케렌스키는 뻬쩨르부르그 소비에트에 대항하여 크라스노프 장군의 코사크 군대와 흑백인조(Black Hundreds)를 앞세웠다; 멘셰비키는 케렌스키와 크라스노프를 지원하였다; 사회혁명당은 왕당파 장교들이 주도한 사관생도 봉기를 기도했다.

그러나 이것이 브뤼닝, 세버링, 라이파트, 히틀러가 언제나 모든 조건 속에서 같은 편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현재 이들의 이해는 엇갈리고 있다. 지금 순간 사민당의 과제는 노동자 혁명에 대항해서 자본주의의 기초를 방어하는 것보다는 파시즘에 대항해서 반(半)의회주의적 부르조아 체제를 방어하는 것이다. 이 적대관계를 활용하지 않는 것은 지독히 바보 같은 짓이다.

레닌은 [좌파 공산주의--소아병]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제 자본가계급을 타도할 목적으로 전쟁을 수행하고 아무리 일시적일지라도 적대 진영 내부의 적대관계를 활용하기를 거부하는 것; 아무리 일시적이고 동요하고 우연적일지라도 동맹이 가능한 세력과의 합의와 타협을 회피하는 것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리석은 행위가 아닌가?”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더 강한 적을 자신의 힘을 최대한 집중시켜 제압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리고 아무리 작더라도 적들 간의 모든 ‘분열’을 가장 애써서 면밀하게 조심스럽게 기술적으로 반드시 활용해야 한다.” 그러나 마누일스키의 지도를 받으며 텔만과 레멜러가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 모든 힘을 다해서 이들은 사회 파시즘 이론과 공동전선 사보타지를 통해 사민당과 파시즘의 커다란 분열을 공고한 단결로 변모시키려고 애쓰고 있다.   

“아무리 일시적이고 동요하고 우연할지라도 대중적 동맹자를 얻을 수 있는 모든 기회”를 활용할 것을 레닌은 명령하고 있다. “이것을 이해할 수 없는 자는 맑스주의와 현대의 과학적 사회주의 일반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레닌은 말했다. 스탈린주의 일당의 새로운 예언자들이여, 귀를 기울여라: 당신들이 맑스주의를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이 너무 명백하게 드러나 버렸다. 레닌이 말한 자들이란 바로 당신들이다. 당신들의 답변을 듣고 싶다.

그러나 사민당에 대한 승리 없이는 파시즘에 대한 승리는 불가능하다고 스탈린주의자들은 대답하고 있다. 이것은 사실인가? 어떤 의미에서는 그렇다. 그러나 이의 역 또한 사실이다: 이탈리아 파시즘에 대한 승리 없이는 이탈리아 사민당에 대한 승리는 불가능하다. 파시즘과 사민당은 모두 부르조아 계급이 보유하고 있는 도구이다. 자본주의 지배가 계속되는 한, 파시즘과 사민주의는 다양한 조합을 이루면서 존재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모든 문제들은 같은 공통분모로 환원된다: 노동계급은 부르조아 체제를 타도해야 한다.

그러나 바로 지금 이 체제가 흔들거리고 있는 상황에서 파시즘이 이 체제를 방어하기 위해서 나서고 있다. 이 체제 수호자를 때려눕히기 위해 사민당을 먼저 끝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이들은 말한다. ... 결국 우리는 죽은 청어 같은 무미건조한 도식주의에 의해 악순환에 빠져든다. 이 악순환을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행동뿐이다. 그리고 이 행동의 성격은 추상적인 범주들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역사적 세력들 간의 실제 상호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이들 관료들은 계속 지껄여댄다: “아니야! 우리는 ‘먼저’ 사민당을 청산할 것이야. 어떻게? 아주 간단하다. 적당한 시간을 골라 10만 명의 당원을 새로 조직하라고 당 산하조직들에게 명령할 것이다.” 정치투쟁 대신 단순히 선전이, 변증법적 전략 대신 당기구의 계획이 제시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실제 계급투쟁의 전개 결과 반파시즘 투쟁이 노동계급의 죽고 사는 문제가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계급이 이 문제를 무시하도록 해야한다; 반파시즘 투쟁의 임무는 부차적인 임무라고 노동계급이 확신하고 안심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 임무는 기다리면 저절로 해결된다고 확신시켜야 한다; 실제로 파시즘은 이미 우리를 지배하고 있으며 히틀러는 하나도 새로울 것이 없다; 히틀러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히틀러는 공산당의 정권 장악에 길을 열어줄 것이다.

혹시 내가 과장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다, 공산당 지도자들의 논리는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자기 논리를 끝까지 추구하지 않는다. 대중과 만나면 이들은 최종적인 결론을 회피한다; 그리고 여러 정책을 잡탕처럼 제시하면서 자신과 노동자들을 혼란시킨다; 그러나 수지를 맞추려고 애쓸 때마다 이들은 파시즘의 승리가 불가피하다고 가정한다.

1931년 10월 14일 공산당의 3인 공식 지도자 가운데 하나인 레멜러는 의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브뤼닝씨는 사태를 아주 명백하게 표현했다: 파시즘이 정권을 잡을 경우 노동계급의 공동전선이 수립되어 모든 것을 다 쓸어버릴 것이다.(공산당 소속 의원들의 열화와 같은 박수갈채)” 브뤼닝은 이 전망을 제시하면서 부르조아 계급과 사민당을 두려움에 떨도록 만들고 있다 -- 이 점은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이를 통해 자기 권력을 확고히 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레멜러는 이 전망을 제시하면서 노동계급을 위로하고 있다. 노동계급이 결국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에 차서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수치스러운 짓이다. 결국 그는 이 행위를 통해 히틀러의 권력 장악에 길을 내주고 있다. 왜냐하면 이 전망은 처음부터 끝까지 잘못되었으며 대중의 심리와 혁명투쟁의 변증법을 철저히 오해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독일 노동계급은 지금 전개되고 있는 상황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파시즘의 권력장악을 허용하면서 아주 치명적인 맹목성과 수동성을 보인다고 하자. 그러면 파시스트들이 권력을 장악한 바로 이 노동계급이 자신의 수동성을 훨훨 벗어 던지고 “모든 것을 쓸어버릴 것”인가? 이렇게 가정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이런 일은 예를 들어 이탈리아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레멜러는 19세기 프랑스의 소자본 공언가(空言家)들과 완전히 생각을 같이하고 있다. 이들은 대중 지도력 부재를 스스로 증명했는데 루이 보나빠르트(주 24)가 공화국을 누르고 군림할 경우 인민이 즉시 들고일어나 자신들을 지켜줄 것이며 “모든 것을 쓸어버릴 것”이라고 확신한 바 있다. 그러나 모험가 루이 보나빠르트의 권력 장악을 허용한 인민은 이후에도 그를 쓸어버릴 능력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증명했다. 그리고 이 일이 있기 전에 주요 사건들, 역사적 격동, 그리고 전쟁 등이 차례로 벌어졌다.

레멜러는 말한다: 히틀러의 권력 장악 이후에나 노동계급 공동전선이 수립될 수 있다. 자신의 무기력을 이보다 더 애처롭게 고백할 수 있을까? 레멜러와 그의 동료들은 노동계급을 단결시킬 능력이 없으므로 이 임무의 짐을 히틀러의 어깨 위에 올려놓고 있다. 히틀러가 우리 대신 노동계급을 단결시키고 나면 우리의 진면목을 보일 것이다. 레멜러는 이렇게 허풍을 늘어놓고 있다: “우리는 가까운 미래에 승리할 것이다. 누가 누구를 무찌를 것인가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이미 나왔다. (공산당 소속 의원들의 박수갈채) 이제 문제는, ‘어느 순간에 부르조아 계급을 타도할 것인가?’ 이다. 정말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러시아 속담으로 말하자면, 손가락으로 하늘을 찌르는 것과 같다. 우리는 가까운 미래에 승리할 것이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공동전선뿐이다. 히틀러씨가 곧 권력을 장악하면 이것을 우리에게 선사할 것이다. 그러나 이 가정은 가까운 미래의 승리자는 레멜러가 아니라 히틀러라고 말하고 있다. 이 사실을 코에 새겨놓는 것이 나을 것이다. 공산당이 승리하는 순간은 그리 일찍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레멜러는 자신의 낙관적 전망의 근거가 약간 빈약하다고 느꼈던지 근거를 보강하려 한다. “우리는 파시스트들이 두렵지 않다. 이들은 어떤 정권보다도 빨리 축출될 것이다.(공산당 소속 의원들의 ‘옳소!’)” 그는 자기 주장의 근거를 이렇게 제시한다: 파시스트들은 지폐를 남발하여 인플레를 유발시키고 싶어한다, 그러면 대중들이 파멸한다; 이 결과 모든 일은 가장 좋게 풀릴 것이다. 이 결과 레멜러의 말 인플레는 독일 노동자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이것이 공산당 공식지도자의 강령적 내용이 담긴 연설이다. 이 연설문은 엄청난 숫자가 인쇄되어 공산당 당원 배가 캠페인에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 연설문에는 입당원서가 공란으로 남겨져 있다. 그런데 바로 이 연설은 전적으로 파시즘에 대한 투항 노선에 기초하고 있다. 히틀러의 집권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것은 비겁함을 뒤집어 놓은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히틀러의 집권을 막을 능력이 없다. 더 나쁜 것은 이들 관료들은 히틀러에 대한 저항을 진지하게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타락했다. 따라서 “우리는 두렵지 않다.” 히틀러에 대항해서 싸우는 것이 두렵지 않다고? 아니요! ... 히틀러의 승리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투쟁 회피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비겁을 고백하는 것이 두렵지 않습니다. 얼마나 창피한 일인가!

필자는 전에 작성했던 팜플렛에서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이 히틀러에서 덫을 놓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이 덫은 바로 권력 장악이다. 뮌젠베르크, 울슈타인, 모써(주 25)에서 다시 뮌젠베르크로 거처를 옮겨 다니는 공산당 소속 글쟁이들은 “트로츠키가 공산당을 비방하고 있다.”고 즉시 선언했다. 공산주의에 대한 혐오감과 독일 노동계급에 대한 증오감과 독일 자본주의를 구하겠다는 열정에 사로잡힌 트로츠키, 바로 그가 스탈린 관료집단에게 파시즘에 항복하는 계획을 은근히 제시하고 있는 것이 자명하지 않은가! 그러나 필자는 레멜러가 행한 강령적 연설과 텔만의 이론에 대해 간략하게 소견을 정리했을 뿐이다. 정말 누가 누구를 비방하고 있는가?

더욱이 텔만과 레멜러는 스탈린의 복음에 집요하게 달라붙고 있다. 1923년 가을은 지금처럼 독일의 모든 것이 날카로운 칼날 위에 놓여 있는 것처럼 기로에 놓여 있었다. 이때 스탈린이 선언한 바를 다시 한 번 회상해보자. 그는 지노비에프와 부하린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 상황에서 사민당의 참여 없이 공산당이 단독으로 정권을 장악하려고 시도해야 하는가? 정권을 잡을 정도로 공산당이 정치적으로 성숙해 있는가? 내가 보기에는 이것이 문제이다. ... 이 순간 독일의 정권이 소위 붕괴한다면 그리고 공산당이 이것을 잡으려고 한다면 공산당 역시 추락하고 말 것이다. 이것도 상황을 ‘가장 좋게’ 본 경우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공산당이 산산이 조각나면서 패퇴할 것이다. ... 물론 파시스트들이 잠만 자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들이 먼저 정권을 잡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우리 목적에 더 부합한다. 파시스트들이 권력을 장악하면 공산당 주위로 노동계급 대중 전부가 결집할 것이다. ... 내 견해로는 독일공산당을 제지해야 한다. 이들이 정권을 잡도록 부추겨서는 안된다.”

랑그너(Langner)는 자신의 팜플렛 [대중파업]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1923년 10월에 투쟁했을 경우 ‘결정적인 패배’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브란틀러는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기회주의적 오류와 싸움 한번 안하고 이 기회주의적 투항 행위를 미화하려는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주장은 무조건 옳다. “싸움 한 번 안하고 기회주의적으로 투항”을 사주한 자는 누구였던가? “부추기는” 대신 “제지한” 자는 도대체 누구였던가? 1931년 지금 스탈린은 1923년의 정책을 확대하고 있을 뿐이다: 파시스트들이 정권을 잡게 내버려두면 우리에게도 정권 장악의 기회가 올 것이다. 따라서 스탈린보다는 브란틀러를 공격하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다. 랑그너 같은 작자들은 이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

사실 지난 두달 동안 좌익의 항의성 목소리가 높아지자 변화가 일어났다: 히틀러의 최후를 앞당기기 위해 그가 정권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을 공산당은 더 이상 늘어놓지 않는다. 이제 공산당의 주장은 정반대가 되었다: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할 때까지 기다리면 안된다; 파시즘에 대한 공격을 늦춰서는 안된다; 브뤼닝의 포고령에 노동자들이 저항하도록 부추기고 경제와 정치 영역에서 투쟁을 심화 확대시켜야 한다. 이 주장은 무조건 옳다. 이제 공산당 지도자들의 말은 조금도 부정되어서는 안된다. 더 이상 이견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직도 가장 중요한 문제가 남아있다: 말을 어떻게 실천으로 옮길 것인가?

우리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공산당 지도부의 상당 부분은 진정으로 싸움을 원하고 있다. 그리고 평당원 절대 다수도 싸움을 원하고 있다. 그러나 조금도 사실을 숨겨서는 안된다. 어디에서도 투쟁은 전개되지 않고 있으며 투쟁의 낌새도 없다. 브뤼닝의 포고령은 쏜살같이 통과되었다. 성탄절 휴전은 깨지지 않았다. 공산당 자신의 설명으로 판단하더라도 부문별로 그리고 즉흥적으로 파업을 단행하자고 촉구한 정책은 지금까지 어떤 성공도 거두지 못했다. 노동자들은 이것을 알고 있다. 고함을 질러대는 것만으로는 노동자들을 확신시킬 수 없다.

대중의 수동성은 사민당 때문이라고 공산당은 주장하고 있다.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너무도 맞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학자가 아니라 혁명정치가이다. 우리의 임무는 역사 연구가 아니라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한편 사회주의노동자당은 창당 초기에 특히 로전펠트(주 26)와 자이더위츠의 논문을 통해 반파시즘 투쟁 문제를 공식 제기하였다. 그리고 히틀러의 집권에 맞추어 반격하는 발전된 모습을 보였다. 궁핍과 경찰 탄압에 대한 노동자들의 투쟁을 즉시 추동하여 즉시 파시즘을 격퇴하자고 이 당의 신문은 지금 요구하고 있다. 이 당의 정책 변화가 공산당의 비판 때문이었다는 점을 우리는 기꺼이 인정한다. 중도주의의 이중적 경향을 비판하면서 중도주의자들을 앞으로 밀어내는 것이 바로 공산당의 임무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이것만 가지고는 안된다. 말을 행동으로 옮길 것을 사회주의노동자당에 제안하여 비판의 성과를 정치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이 당을 만인의 눈앞에서 시험해야 한다. 이 당의 발언을 고립해서 인용한 후 분석하는 것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적에 대해 구체적인 조치들을 취하도록 합의를 이끌어 내어야 한다. 이 당의 무능력이 폭로될 경우 공산당의 권위는 더 높아질 것이고 중도주의 조직은 더 빨리 청산될 것이다.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사회주의노동자당이 투쟁에 대해서 진지하지 못하다고 보는 것은 잘못이다. 이 당의 내부에는 다양한 경향들이 존재한다. 공동전선을 촉구하는 추상적인 선전만을 일삼을 경우 이 당의 내부 모순은 계속 잠복되어 있을 것이다. 투쟁이 시작되면 이 모순은 점점 겉으로 드러날 것이다. 이런 상황은 공산당에게만 이익이 될 것이다.

그러나 사민당에 관한 한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직 남아있다. 실천적 제안들을 사회주의노동자당이 받아들이는 반면 사민당이 거부할 경우 새로운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중도주의자들은 공산당에 대해 먼저 불평하고 다음에 사민당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는 것을 통해 양당을 희생시키면서 자신의 힘을 강화시키고자 한다. 이것이 우르반스의 정치철학이다. 따라서 이 당은 공산당과 사민당에 양다리를 걸치려고 한다. 그런데 사민당이 혁명투쟁을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이 곧 명백해질 경우 우르반스의 계책이 무위로 돌아갈 것이다. 이것은 공산당에게 중요한 소득이 아닌가? 사회주의노동자당 노동자들은 이때부터 확실히 공산당 쪽으로 기울 것이다.

더욱이 공동투쟁 제안을 사회주의노동자당이 받아들이고 사민당 지도부인 웰스와 그 일당이 거부할 경우 사민당도 온전하지는 못할 것이다. 사민당 기관지 [전진]지(紙)는 공산당의 수동성에 대해 불평할 기회를 즉시 박탈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사민당 노동자들은 공동전선에 대해 즉시 호의를 보일 것이다. 즉 이들이 공산당에 호의를 보이는 셈이다. 너무나 명백한 사태전개가 아닌가?

이런 상황이 전개될 때마다 공산당은 새로운 정치적 자원을 얻게 될 것이다. 똑같은 청중 앞에서 똑같은 주문을 단조롭게 반복하는 대신 공산당은 새로운 계층을 추동하고 실제 경험을 통해 이들을 교육시키고 단련시키며 결국 노동계급 내에서 자신의 헤게모니를 강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파업, 시위, 정치투쟁에서 공산당이 독립적 지도력을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은 즉시 집어치워야 한다. 현재 공산당은 완전히 자유로운 몸이다. 기다릴 필요가 없다. 새로운 행동에 들어갈 경우 이것에 기초하여 다른 노동자 조직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정치전술을 구사할 수 있다. 그리고 노동자들 사이의 보수적인 장벽을 허물 수 있다. 그리고 개량주의와 중도주의의 모순을 만천하에 드러낼 수 있다. 이 결과 노동계급의 혁명적 단결은 재촉될 수 있다.

5. 공동전선에 대한 역사적 검토

공동전선 이론은 계급 대 계급의 투쟁이라는 기본적이고도 피할 수 없는 절박한 현실에서 나왔다. 여기서 계급 대 계급의 투쟁은 관료들이 사용하는 의미가 아니라 진정으로 맑스주의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이 이 이론을 반박하는 내용을 접하면 부끄러울 뿐 아니라 분노가 치민다. 이 가장 기본적인 사상을 가장 후진적이며 몽매한 노동자와 농민에게 매일 설명하더라도 피곤을 못 느낄 수는 있다. 노동계급의 새로운 부위를 혁명적으로 계몽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료들의 황당한 논리에 의해 두뇌가 무디어진 사람들에게 이 기본적인 사상을 설명하고 증명하는 사람은 정말 불행하다! 논리적으로 주장을 펼칠 능력이 없어서 국제라는 형용사가 붙은 용어들을 모은 소책자를 가지고 자신의 논리를 대신하는 “지도자들”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이들은 맑스주의의 기본원칙들을 판에 박힌 “반(反)혁명”이라는 형용사를 써가면서 반박하고 있다. 반혁명이라는 단어는 혁명 능력을 아직 입증해 보인 적이 없는 사람들에 의해 지나치게 헐값에 유포되고 있다. 그러면 코민테른 첫 4차 세계대회에서 통과된 결정사항들은 어떤가?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은 이것들을 인정하는가 하지 않는가?

코민테른 문서들은 아직도 남아있으며 지금까지 그 원래의 의미들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이 문서들 가운데 제 3차와 제 4차 대회 사이에 필자가 작성한 테제들을 보자. 이것들은 당시 프랑스 공산당과 관련되어 있다. 이 테제들은 소련공산당 정치국과 코민테른 집행위원회의 승인을 받았으며 각국 공산당에 의해 출판되었다. 공동전선 정책을 자세하게 표현하고 옹호하고 있는 이 테제들을 아래에 그대로 인용하겠다:

“혁명을 준비하는 이 시기에 노동대중의 계급적 삶은 정지되어 있지 않다. 이 점은 너무도 명백하다. 어느 편이 주도하든 노동계급을 한편으로 하고 자본가, 국가권력을 한편으로 하는 격돌은 자기 과정을 밟고 있다.”

“이 격돌이 노동계급 전체, 다수 또는 특정 부문과 밀접한 이해를 갖는 이상 노동대중은 행동 통일의 필요성을 감지하고 있다. ... 이러한 이해에 기계적으로 반대하는 어느 당도 노동자들에게 반드시 비난받는다. ...”

이 시기에 노동대중에 기반을 둔 여러 정치조직들 사이의 분열은 불가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자본주의 투쟁에서 노동계급은 공동전선을 긴급히 추구할 필요가 있다. 바로 여기에서 공동전선 문제가 제기된다.”

“이 필요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에게 당은 대중행동을 추동하는 조직이 아니라 선전그룹에 지나지 않는다. ...”

“만약 단호하게 사민당과 결렬하지 않았다면 공산당은 노동자 혁명정당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

“사민당 등 비공산당 계열 소속 노동대중과 공산당이 필요한 때마다 공동투쟁을 하지 않았다고 치자. 그러면 공산당은 대중행동에 기초하여 노동계급 다수를 획득하는 능력이 없음을 스스로 폭로한 셈이 되었을 것이다. ...”

“개량주의에서 공산주의로 넘어온 새로운 당원들을 당 규율로만 통합시키는 것은 불충분하다. 노동계급 생존 투쟁의 모든 영역에서 노동계급의 집단행동을 지도할 줄 알아야 진정한 공산주의자가 될 수 있다.”

“공동전선은 공산주의 근본 원리의 두 번째에 해당된다.”

“공동전선은 노동대중 뿐 아니라 기회주의 지도자들도 포괄해야 하는가?”

“문제를 이런 식으로 제기하는 것 자체가 오해의 산물이다.”

“우리의 깃발 주위로 노동 대중을 단결시킬 수 있다면 그리고 당이든 노동조합이든 개량주의 조직들을 건너 뛸 수 있다면 물론 가장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럴 경우 공동전선 문제는 지금과 같은 형태를 띠지 않을 것이다. ...”

“투쟁하는 대중 앞에 개량주의자들의 정체를 폭로하는 일이 우리의 주된 목표이다. 올바른 전술에 입각한 공동전선은 우리에게 소득만을 가져다 줄 것이다. 이것을 의심하거나 두려워하는 공산주의자는 최선의 수영법을 알면서도 물에 감히 뛰어들지 못하는 사람과 같다....”

“다른 조직과의 합의를 위해 우리는 당연히 행동과 관련된 공동규율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이 규율의 성격은 절대적일 수 없다. 개량주의자들이 투쟁에 제동을 걸어 운동에 명백한 해를 끼치고 대중의 상황과 분위기에 역행하는 행동을 취할 경우 독자 조직인 우리는 공동전선을 끝까지 유지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일시적인 동맹세력의 유무와 무관하게 이 조치를 취할 수 있다. ...”

“기자 양반들은 공동전선 정책을 개량주의와의 화해조치로 해석할 것이다. 이들은 편집실 문 밖을 나서지 않은 채 의례적인 비판을 통해 개량주의를 공격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들은 대중이 공산주의자와 개량주의자를 대중투쟁이라는 공동의 장에서 평가할까 두려워한다. 이들이 짐짓 혁명적인 체하면서 ‘화해’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혁명에 대해 수동적이기 때문이다. 공산당과 사민당이 각자 집회의 청중, 신문, 엄격히 경계가 그어진 세력권 등을 유지하는 현 상황을 이들은 영원히 유지하고자 한다. 그러면서도 이들의 수동성은 자신들이 진지하게 정치투쟁을 수행하고 있다는 환상을 만들어 낸다. ...”

“공동전선 문제에서도 이와 같은 수동성과 우유부단성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이 경향은 말만의 혁명적 고고함으로 그 정체가 위장되어 있다. 그러나 이 경향은 곧 모순에 빠지고 만다. 즉 중도주의적 평화주의 경향의 우파는 공동전선에 반대하는 세력의 앞장을 서고 있다. 이와 반대로 가장 어려운 시기에 제 3 인터내셔널의 혁명 노선을 견지했던 세력들은 오늘날 공동전선을 지지하고 있다.”

“사실 혁명에 수동적이고 혁명 과업을 지체시키는 바로 그 세력들이 지금 혁명적 전투성의 가식으로 자신의 정체를 위장하고 있다.”

(트로츠키 저, [코민테른의 첫 5년간], 제 2권, 1953년간, 91-96쪽, 127-128쪽)

지금 인용한 글들이 스탈린, 마누일스키, 텔만, 노이만 등을 겨냥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사실 이 글들은 10년 전에 프로싸르, 까솅, 샤를르 라포포르, 다니엘 르누, 그리고 기타 프랑스의 기회주의자들을 겨냥해 쓰여진 것들이다. 이들은 초좌익 노선으로 자기 정체를 위장했었다. 필자가 인용한 이 테제들은 곧 레닌 이하 러시아 공산당 정치국과 코민테른의 정책이었다. 그렇다면 그 당시에도 이 테제들은 “반혁명성”을 내포하고 있었는가?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은 답하라.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고 말하지 말 것을 경고한다. 문제는 상황이 아니라 테제 자체가 표현하고 있듯이 맑스주의 근본 원리이다.

그렇다면 계속하자. 10년 전에 코민테른은 공동전선의 핵심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 바 있다: 투쟁 목표가 노동계급의 역사적 발전과 일치하는 한 대중과 함께 투쟁하겠다는 결의를 대중과 대중 조직에게 증명해 보인다; 투쟁하는 대중의 실제 상태를 고려한다; 대중 뿐 아니라 대중이 인정하는 조직들에 대해서도 주의를 집중한다; 대중이 보는 앞에서 계급투쟁의 실제 문제들을 가지고 개량주의 조직과 대면한다. 공산당이 아니라 사민당 지도자들의 의식적인 방해로 인해 공동투쟁이 피해를 입고 있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내어 노동계급의 혁명적 발전을 가속화시킨다. 공동전선과 관련된 이러한 개념들은 결코 케케묵지 않았다. 이 점은 너무도 확실하다.

그렇다면 코민테른이 현재 공동전선 정책을 거부하고 있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설명은 간단하다. 과거 이 정책이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기 때문이다. 사실 실패의 원인은 정책 자체보다는 이 정책을 수행한 정치인들에게 있었다. 따라서 과거의 실패들이 충분히 검토 분석된다면 독일공산당은 현 상황에서 훌륭한 전략과 전술을 제대로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은 우화의 근시 원숭이처럼 행동하기로 결정했다. 원숭이는 꼬리로 안경을 잡고 잘 보이도록 안경알을 핥았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결국 안경이 아무 소용없다고 생각한 원숭이는 이것을 바위에 내리쳐 버렸다. 코에 걸건 입에 걸건 안경은 아무 잘못도 없지 않은가.

공동전선의 실패에는 크게 두 유형이 있다. 대부분의 경우 공산당 주요 기구들은 상황과 무관하여 대중의 반응을 전혀 끌어내지 못할 급진적인 구호들을 내세워 개량주의자들에게 공동투쟁을 제안했다. 이러한 제안들은 공포탄에 그치고 말았다. 대중은 이러한 제안에 시큰둥했으며 개량주의 지도자들은 공산당이 사민당 파괴공작에 나섰다고 생각했다. 어느 경우든 공동전선은 지극히 형식적이고 선언적으로만 적용되었다. 사실 성격상 공동전선은 정세와 대중의 상태를 현실성 있게 평가해야 성과를 올릴 수 있다. “공개서한”이라는 무기는 그 동안 개량주의 지도자들에게 너무 자주 제시되었으므로 그 효력을 발휘할 수가 없었다. 결국 이 무기는 누더기가 되어 폐기될 수밖에 없었다.

실패의 두 번째 유형은 그 성격상 훨씬 더 치명적이었다.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은 당의 독자성을 희생시키고 공동전선에 참여한 조직들의 꽁무니를 쫓아갔다. 소련 당국의 지지를 받은 나머지 자신들을 전능한 존재라고 생각한 코민테른 관료들은 계급대중 앞에 법칙을 제시하고 이들의 앞길을 미리 정할 능력이 있다고 자못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중국의 농민운동과 노동자 파업을 제지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것만이 아니었다. 코민테른의 독자적 정책을 희생시키면서 장개석을 동맹 세력으로 매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제국주의 영국의 주요한 버팀대 역할을 하고 있는 노동조합 관료집단을 런던의 연회 테이블이나 코카서스의 휴양지에서 재교육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라디치와 같은 유형의 크로아티아 부르조아들을 공산주의자로 변모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물론 이 모든 일들은 좋은 의도들을 가지고 진행되었다. 대중의 미성숙 때문에 이들 대신 혁명투쟁을 수행하여 혁명을 가속화시키는 것이 이들의 의도였다. 특히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코민테른 관료들은 공산주의로 가는 다리를 놓기 위해 인위적으로 사민주의 “좌파” 조직을 만들려고 하였다. 이 어리석은 정책 역시 실패만 거듭했다. 당연히 이런 식의 실험과 방해공작은 재앙을 가지고 왔다. 이 결과 전세계 혁명운동은 수많은 세월을 후퇴하였다.

이런 참담한 결과가 연속되자 마누일스키는 이 가관(佳觀)들을 더 이상 연출할 수가 없다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쿠지넨은 더 이상의 오류를 피하기 위해서 자신과 자기 똘마니들을 제외해 놓고는 모두가 다 파시스트라고 선언했다. 이제 이 문제는 단순 명료해졌다. 더 이상의 오류는 범할 수 없게 되었다. 나찌당에 대항해 “사회 파시스트들”과 어떤 종류의 공동전선을 수립할 수 있겠는가? 아니면 “사회 파시스트 좌파들”과 어떤 종류의 공동전선을 체결하여 “우익들”에게 대항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노선을 180도 선회하자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은 첫 4차 코민테른 세계대회의 결정사항들을 반혁명 노선이라고 선언할 수밖에 없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6. 러시아의 경험이 남긴 교훈

초기에 출판한 팜플렛에서 우리는 코르닐로프 반동 쿠데타에 대항한 볼셰비키당의 경험을 언급했다. 그러자 코민테른 관료들은 고함을 지르며 이  팜플렛의 내용들을 부정했다. 스탈린 일파가 과거로부터 어떻게 교훈을 끌어내는 지를 좀더 명확히 보여주기 위해 다시 한 번 문제의 핵심을 확인하겠다.

1917년 7월과 8월에 당시 임시정부 수반이었던 케렌스키는 군총사령관이었던 코르닐로프의 정치노선을 사실상 현실에 옮기고 있었다. 그는 전선에서 군법회의와 사형제도 등을 부활시켰다. 그리고 올바른 절차를 통해 선출된 소비에트가 임시정부의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권한을 박탈하였다. 농민 억압 정책을 폈으며 국가가 식량판매의 독점권을 행사하면서 빵 가격을 배로 인상시켰다. 혁명적 성향을 지녔던 뻬쩨르부르그 수비대를 전선으로 재배치할 준비를 했다. 코르닐로프의 동의를 얻어 반혁명 군대를 수도로 이동시켰다. 그리고 전선에서 새로운 공세를 시작하겠다고 연합국들에게 약속했다, 등등. 당시 정세는 이러했다.

그러나 케렌스키가 자신의 정책을 따르지 않고 동요를 보이자 8월 26일 코르닐로프는 그와의 동맹관계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자기 군대를 뻬쩨르부르그로 진주시켰다. 이때 볼셰비키당은 반합법 상태에 있었다. 레닌 이하 당 지도부는 지하로 피신하고 있거나 독일 총사령부의 첩자라는 이유로 기소되어 감옥에 갇혀 있었다. 당 신문은 탄압 받고 있었다. 케렌스키 임시정부의 이 탄압 정책은 사회혁명당 및 멘셰비키 출신 소비에트 대의원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볼셰비키당은 어떤 정책을 펴야했는가? 당을 탄압하고 있던 케렌스키, 쩨레텔리, 단 등과 잠시의 주저도 없이 실질적 연대를 조직하여 코르닐로프에 대항했다. 모든 곳에서 혁명방어위원회들이 수립되었으며 볼셰비키당은 소수파로 위원회에 참여하였다. 물론 당은 위원회 활동을 주도했다. 혁명적 대중행동을 위한 어떠한 합의도 철저하고 대담한 혁명정당에게 항상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볼셰비키 당원들은 이 투쟁의 선두에 서서 멘셰비키 노동자들 특히 사회혁명당 병사들과 자신들 사이의 장애물들을 박살내고 이들을 이끌었다.

혹시 사태의 전개에 당황하여 볼셰비키당이 이런 행동을 취한 것은 아니었을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기 이미 몇 달 전부터 당은 결집하고 있는 반혁명 세력에 대항하여 공동투쟁에 나서자고 수십 번 수백 번이나 멘셰비키에게 요구한 바 있었다. 이미 5월 27일 쩨레텔리는 볼셰비키 병사 탄압에 광분하고 있었다. 바로 이때 뻬쩨르부르그 소비에트 회의에서 트로츠키는 이렇게 선언했다: “때가 되어 반혁명 장군이 혁명의 목에 올가미를 던지려고 할 때 부르조아 입헌민주당은 올가미에 기름칠을 하느라고 바쁠 것이다. 그러나 크론슈타트의 수병들은 함께 싸우면서 우리와 운명을 같이 할 것이다.” 이 예언은 적중했다. 코르닐로프 쿠데타 와중에서 케렌스키는 오로라 순양함의 수병들에게 동궁 방어를 애원했다. 물론 이 수병들은 모두 볼셰비키당 소속이었다. 이들은 케렌스키를 증오했다. 그러나 동궁을 확고히 방어하였다. 이들의 대표들은 당시 크레스티 감옥에 갇힌 트로츠키를 면회하면서 이렇게 물었다: “케렌스키를 체포하는 것이 어떨까요?” 그러나 이들은 반 농담조였다. 우선 코르닐로프를 박살내고 나서 케렌스키에게 본때를 보여야 한다는 점을 이들은 이해하고 있었다. 올바른 정치 지도력 덕분에 오로라 순항함 수병들은 텔만이 지휘하는 독일공산당 중앙위원회보다 더 많은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독일공산당 기관지 [적기]는 1917년에 대한 우리의 평가를 “조작”이라고 규정한다. 왜 그런가? 물론 쓸데없는 질문이다. 이런 인간들로부터 이성에 입각한 반박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이들은 모스크바의 지령에 따라 행동한다. 이것을 거부하면 쫓겨날 것이다. 그러므로 트로츠키라는 이름만 들어도 으르렁거린다. 이들은 최선을 다해 명령에 복종한다. 이들의 말에 의하면 트로츠키는 “사실을 날조하여 사건들을 비교했다”. 즉 코르닐로프 반동 쿠데타에 대한 볼셰비키당의 투쟁, 격심한 혁명적 상황 바로 전이었던 1917년 9월 초순 소비에트 다수파 획득을 위한 볼셰비키당의 멘셰비키들에 대한 투쟁, 코르닐로프에 대한 무장항전 당시 케렌스키에 대한 볼셰비키당의 측면공격 등과 히틀러에 “대항하는” 브뤼닝의 현재 “투쟁”을 비교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트로츠키는 우리의 브뤼닝 및 프로이센 정부 지지를 ‘차선책(lesser-evilism)’ 정책으로 묘사하고 있다” ([적기], 1931년 12월 22일자) 이런 비난 공세를 반박하는 것은 참으로 힘겨운 일이다. 코르닐로프에 대한 볼셰비키당의 투쟁을 히틀러에 대한 브뤼닝의 투쟁과 필자가 비교하고 있다고 이들은 허세를 부린다. 물론 필자는 [적기] 편집진의 지능을 과대평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양반들은 필자가 의미한 바를 이해하지 못할 만큼 그렇게 어리석지는 않다. 히틀러에 대한 브뤼닝의 투쟁을 필자는 코르닐로프에 대한 케렌스키의 투쟁과 비교했다. 그리고 코르닐로프에 대한 볼셰비키당의 투쟁을 히틀러에 대한 독일공산당의 투쟁과 비교했다. 도대체 이 비교가 어느 부분에서 “날조”되었는가? [적기]지에 의하면 당시 볼셰비키당은 소비에트 다수파가 되기 위해 멘셰비키들과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이 당시 러시아는 “격심한 혁명적 상황”이었다. 확실히 맞는 말이다! 그러나 만약 볼셰비키당이 1917년 8월에 텔만의 정책을 견지했다면 혁명적 상황 대신 반혁명적 상황이 도래했을 것이다.

8월 말 코르닐로프 반동 쿠데타는 진압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볼셰비키당의 무장력이 아니라 대중의 집요함으로 가능했다. 쿠데타가 진압된 9월 3일 다음날 레닌은 신문을 통해 사회혁명당, 멘셰비키들과 타협을 제안했다. 즉 이들에게 소비에트 다수파가 되어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부르조아 계급에 대항할 것을 제안했다.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볼셰비키당의 완전한 선동의 자유를 요구했다. 그러니 레닌은 참으로 지독한 기회주의자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반(反)부르조아 공동전선을 수립하자는 레닌의 새로운 제안을 사회혁명당과 멘셰비키들은 거부했다. 그러나 이들의 거부는 볼셰비키당에 의해 강력한 무기로 전화되어 무장봉기 준비에 긴요히 이용되었다. 이들의 공동전선 거부 결과 6주 내로 이들은 자멸했다.

세계 역사상 승리한 노동자혁명은 지금까지 단 한번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승리의 과정에서 우리가 오류를 단 한번도 범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당시 러시아의 경험이 지금 독일공산당의 정책에 반영될 가치가 있다고 주장할 뿐이다. 바로 이 때문에 지금 상황과 가장 관계가 깊은 역사적 경험을 비유로 삼았을 뿐이다. 그런데 독일공산당 지도자들은 여기에 대해 지극히 한심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다만 초좌익 그룹인 [붉은 투사]만이 박식을 완벽히 동원하며 필자의 비유를 “진지하게” 반박하려고 할뿐이다. 이 그룹은 당시 1917년 8월에 볼셰비키당이 올바르게 행동했다고 주장한다: “코르닐로프는 짜르 반동의 기수였다. 그는 부르조아 혁명에 반대하는 봉건 반동의 편을 들었다. 이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부르조아계급과 이 계급의 하수인인 사회혁명당-멘셰비키들과 함께 전술적으로 연합한 것은 옳았을 뿐 아니라 불가피했다. 봉건 반동을 제압하는 일에 두 계급의 이해가 일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그룹은 이렇게 주장한다: 히틀러는 봉건 반동이 아니라 부르조아 반동을 대표하고 있으므로 부르조아 계급을 지지하는 사민당은 히틀러에 대항해서는 안된다; 독일에서 공동전선이 성립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으며 트로츠키의 비유가 틀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주 그럴듯한 주장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진짜 사실들을 확인하면 이 주장의 어느 부분도 맞는 것이 없다. 1917년 8월 당시 러시아 부르조아 계급은 봉건 반동에 전혀 대항하지 않았다. 당시 지주들은 모두 입헌민주당을 지지하였고 이 당은 지주 토지 몰수 정책에 저항하고 있었다. 코르닐로프는 자신을 공화주의자, “농민의 아들”, 토지개혁과 제헌의회의 지지자라고 선언했다. 즉 부르조아 계급은 일치단결하여 코르닐로프를 지지하고 있었다. 볼셰비키당이 사회혁명당 및 멘셰비키들과 연합한 것은 이들 화해주의자들이 일시적으로 부르조아 계급과 단절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즉 코르닐로프가 두려운 나머지 이들은 다른 방법이 없었다. 코르닐로프가 승리하는 순간 자신들은 부르조아 계급에게 필요 없는 존재가 될 것이고 결국 코르닐로프에 의해 전멸될 것이 명백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한계 내에서 사민당과 파시즘의 상호관계에 대한 비유는 완벽하게 성립된다.

[붉은 투사] 그룹의 이론가들은 당시 러시아와 지금 독일 상황의 차이를 잘못 보고 있다. 러시아에서 소자본가 대중 특히 농민은 우가 아니라 좌로 기울었다. 코르닐로프는 소자본가 대중의 지지를 받지 않았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그는 파시즘의 선봉이 아니었다. 장군들과 음모를 꾸민 반혁명 운동은 봉건 반동이 아니라 부르조아 반동이었다. 바로 여기에 이 운동의 약점이 있었다. 코르닐로프는 부르조아 계급 전체의 도덕적 지지와 젊은 부르조아 세대인 장교와 사관생도들의 군사적 지지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지지만으로는 반혁명을 성공시킬 수 없음이 드러났다. 그러나 볼셰비키당의 정책이 잘못되었다면 코르닐로프가 승리할 가능성은 충분했다.

[붉은 투사] 그룹의 이론가들은 당시 러시아나 지금 독일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서 독일의 공동전선을 반대하고 있다.(저자 주: 이 그룹이 표방하는 다른 모든 견해들 역시 같은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스탈린 관료집단의 심대한 오류들을 다시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다만 초좌익적 결함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을 뿐이다. 파시즘은 이미 승리했다; 히틀러에게는 이렇다할 약점이 없다; 더욱이 노동자들은 반파시즘 투쟁을 원치 않는다 등등. 상황이 이렇다면 그리고 아직 시간이 많다면 [붉은 투사] 이론가들은 여가를 활용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리고 수준 낮은 글들을 끄적거리는 대신 좋은 책이나 몇 권 읽는 것이 나을 것이다. 무지가 어느 누구에게 도움이 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오래 전에 맑스가 바이틀링에게 말한 바 있다.)

한편 [적기]지는 러시아 역사에 대해 자신감이 없어서 문제를 정반대 방향에서 해결하려고 애쓴다. “트로츠키에게는 나찌당만이 파시즘이다. 국가 비상사태 선포, 강압적인 임금 삭감, 실질적인 파업 금지조치 ... 이 모든 것들은 파시즘과 무관하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런데 그는 유독 우리 공산당이 이 모든 것들을 참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양반들은 도무지 쓸개가 없다. 불쌍할 지경이다. 언제 브뤼닝 정권에 대해 “참아야 한다”고 필자가 제안한 적이 있었는가? 그리고 “참아야 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이것이 브뤼닝 정권을 의회나 그밖의 수단으로 지지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공산주의자로서 이런 주제를 토론에 올리는 것조차 부끄러워해야 한다. 그러나 좀더 넓은 역사적 시야에서 보면 시끄럽게 불평하고 있는 그대들은 브뤼닝 정권에 대해 “참을” 수밖에 없다. 이 정권을 타도할 용기와 힘이 없기 때문이다.

독일 상황과 관련된 [적기]지의 필자에 대한 모든 반박은 1917년 볼셰비키당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코르닐로프 반동의 시발은 코르닐로프 자신이다. 그러나 케렌스키 역시 코르닐로프와 같은 족속이 아닌가? 그 역시 혁명을 압살하지 않았는가? 원정군을 보내 농민 봉기를 진압하지 않았는가? 공장도 폐쇄하지 않았는가? 레닌은 지하에 숨어 있어야 하지 않았는가? 이 모든 것을 우리가 참아야 한다니?” [적기]지는 이렇게 주장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자의 기억으로는 이렇게 주장할 만큼 성급한 볼셰비키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혹시 그런 볼셰비키가 있었다면 그는 이런 답을 들었을 것이다: “코르닐로프의 정권 장악을 케렌스키가 준비하고 촉진하고 있다고 우리는 비난한다. 그러나 코르닐로프 반동 쿠데타를 격퇴시켜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없는 것일까? 수위가 강도에게 문을 열어주는 것을 우리는 비난한다. 그렇다고 문이 열린 채 그대로 있게 방치해야 하는가?” 사민당의 묵인 때문에 브뤼닝 정권은 노동계급을 파시즘 앞에 무릎 꿇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파시즘 앞에 노동계급이 머리를 조아리고 죽도록 만들 것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약간이라도 차이가 있다. 수렁에 무릎이 빠진 자는 빠져나올 수 있다. 그러나 머리까지 푹빠진 자는 다시 빠져나올 수 없다.

레닌은 초좌익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이들은 우리에게 많은 찬사를 보낸다. 가끔은 이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은 느낌이 들 정도이다, ‘제발 조금만 덜 칭찬해 주시오. 그리고 볼셰비키들의 전술에 대해 조금만 더 노력해서 연구해 보고 잘 이해하세요.’”       

7. 이탈리아의 경험이 남긴 교훈

이탈리아 파시즘은 이탈리아 노동계급의 봉기를 개량주의자들이 배신한 즉각적인 결과였다. 제 1차 제국주의 세계 전쟁이 끝나자마자 이탈리아 혁명운동은 상승하고 있었다. 그리고 1920년 9월 노동자들은 공장을 점거하고 산업시설을 장악해 버렸다. 노동계급의 독재가 현실로 나타났다. 이 상황을 제대로 조직하고 이로부터 국가권력 장악이라는 필요한 결론만 내리면 되었다. 이때 사민당은 겁에 질려 뒷걸음질 쳤다. 대담하고 영웅적인 투쟁이 끝난 후 사민당의 기권으로 노동계급은 권력의 공백상황을 목격하게 되었다. 이렇게 혁명운동이 머뭇거린 상황이야말로 파시즘이 성장한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 9월이 되자 혁명의 전진은 멈추었다. 11월이 되자 이미 파시스트들이 대대적으로 데모에 나서고 이들에 의해 볼로냐가 점령당했다.

그러나 노동계급은 9월의 대재앙 이후에도 방어적 싸움을 수행할 능력이 있었다. 그러나 사민당은 한가지 일에만 관심이 있었다: 총탄이 쏟아지는 가운데에서 노동자들이 차지한 진지를 하나 하나씩 적에게 넘겨주는 것이었다. 노동자들의 공손한 행동으로 부르조아 계급의 “여론”이 파시즘의 등장을 좋지 않게 보기를 사민당은 기대했다. 더욱이 이 개량주의자들은 빅토르 에마누엘 3세(주 30)의 도움을 크게 기대했다. 최후의 순간까지 이들은 노동자들이 무쏠리니의 깡패들과 싸우는 것을 있는 힘을 다해 막았다. 그러나 이것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부르조아 계급의 상층부와 함께 국왕은 파시즘의 편으로 붙어버렸다. 순종으로는 파시즘이 제지될 수 없음을 마지막 순간에야 실감한 사민당은 노동자들에게 총파업을 촉구했다. 그러나 총파업은 대실패로 끝났다. 화약이 폭발할까 두려워 물을 너무 많이 너무 오래 끼얹은 것이었다. 마침내 떨리는 손으로 불을 당겼으나 화약은 폭발하지 않았다.

등장한 지 2년만에 파시즘은 권력을 장악했다. 그리고 1921년과 1922년의 불황에 뒤이은 호경기 덕분에 이들은 권좌에 오르자마자 권력을 공고히 했다. 파시스트들은 후퇴하는 노동계급을 소자본가 계급의 공격력을 이용하여 압살시켰다. 그러나 단 한순간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니었다. 정권을 장악한 직후 무쏠리니는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과거의 모범 사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첫 2년간 헌법은 그대로 존속되었다. 파시스트 정권은 연립정부의 성격을 띠었다. 한편 파시스트 깡패들은 곤봉, 단도, 권총 등을 가지고 학살을 자행하기에 바빴다. 이렇게 서서히 모든 독자적 대중조직들을 완전히 파괴하는 파시스트 정권이 탄생했다.

무쏠리니는 권력을 공고히 한 대가로 파시스트 당 자체를 관료화시켰다. 소자본가 계급의 끓어오르는 힘을 활용한 후 파시즘은 부르조아 국가의 강제력으로 이 계급마저 압살시켰다. 그로서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가 단결시켰던 소자본가 대중이 변화하지 않은 현실에 대해 실망하면서 무쏠리니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가장 즉시 현실화될 수 있는 위험 요인이었다. 관료화된 파시즘은 군사 독재와 경찰 독재의 다른 형태로 밀접히 다가간다. 그리고 더 이상 과거에 누렸던 사회적 지지를 받지 못한다. 파시즘의 가장 주요한 정치적 기반인 소자본가 계급은 이미 소진되었다. 역사적 관성으로만 파시스트 정부는 노동계급을 계속 분열과 무기력 상태로 묶어 놓을 수 있다. 따라서 계급 역관계는 자동적으로 노동계급에게 유리하게 변한다. 이 변화는 필연적으로 혁명을 부르기 마련이다. 파시즘의 몰락은 유럽 역사의 가장 재앙적인 사건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그러나 사실들이 증명하고 있듯이 이러한 과정들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미 파시스트 정권은 10년간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그렇다면 얼마나 더 오래 자신을 지탱할 수 있을 것인가? 날짜를 맞추는 내기를 걸어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다. 다만 독일에서 히틀러가 승리할 경우 무쏠리니는 자기 정권의 생명력을 새로 오랫동안 연장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히틀러의 몰락은 무쏠리니의 패망의 시작을 의미할 것이다.

히틀러에 대한 정책에서 독일사민당은 이탈리아 사민당에 비해 조금도 나은 것이 없었다. 이탈리아 개량주의자들이 들떠서 행한 오류들을 하나도 빼지 않은 채 굼뜨게 반복했을 뿐이다. 이탈리아 사민당은 파시즘을 전후의 정신병이라고 설명했으며 독일 사민당은 “베르사이유” 또는 위기 상황의 정신병으로 본다. 어느 경우이든 개량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체제의 붕괴과정에서 등장하는 대중운동인 파시즘의 유기적 성격에 눈을 감고 있다.

노동자들의 혁명적 진출에 겁을 집어먹고 이탈리아 개량주의자들은 “국가”에 희망을 걸었다. 이들의 구호는, “빅또르 에마누엘! 도와주세요! 개입해 주세요!”였다. 그러나 독일사민당은 헌법에 충성하는 왕과 같은 민주적 버팀목을 갖지 못했다. 그래서 대통령으로 만족해야 한다. “힌덴부르크!(주 31) 도와주세요! 개입해 주세요!”

무쏠리니와의 싸움에서 뒤꽁무니를 치면서 뚜라띠(주 32)는 “남자다운 데가 있어야 겁장이가 될 수 있다”는 놀라운 격언을 발명했다. 독일 개량주의자들은 구호를 제출하는데 있어서 이탈리아 개량주의자들보다는 활기가 부족하다. 이들은 외친다, “대중의 인기를 누리지 못해도 용감해야 한다.” 그러나 결국 내용은 마찬가지이다. 적과 비겁하게 영합해서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같은 노선은 같은 결과를 낳게 마련이다. 사민당 지도부에 의해서 사태가 결정된다면 히틀러의 명줄은 보장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경험에서 배운 것이 하나도 없기는 독일공산당도 마찬가지라고 인정해야한다.

이탈리아공산당은 파시즘과 거의 동시에 탄생했다. 그러나 파시스트들을 권좌에 앉힌 혁명의 썰물은 공산당의 발전을 지체시켰다. 공산당은 파시즘의 치명적 위험성을 파악하지 못한 채 혁명에 대한 환상에 젖어있었다. 그리고 공동전선에 대해 화해할 수 없는 적대감을 보였다. 간단히 말하면 모든 종류의 소아병에 걸려있었다.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태어난 지 2년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공산당의 눈에는 파시즘이 “자본주의 반동”으로만 보였다. 노동계급에 대항하여 소자본가 대중을 동원하는 파시즘의 특수성을 공산당은 인식할 수 없었다. 그람시(주 33)를 제외하고 공산당 지도부는 파시즘의 권력 장악 가능성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이탈리아 동지들이 필자에게 말한 바 있다. 노동자 혁명이 실패하고 자본주의 체제가 생명을 부지하고 반혁명이 성공한 마당에 반혁명 공세가 더 있을 수 있겠는가? 부르조아 계급이 자신에 대해 반란을 일으킬 수는 없지 않은가! 이것이 이탈리아공산당 노선의 정수였다. 더욱이 이탈리아 파시즘은 당시 새로운 현상이었으며 형성 단계에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하면 안된다. 좀더 경험이 풍부한 공산당이라 할지라도 이탈리아 파시즘의 특수한 성격을 그리 쉽게 판별해 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현재 독일공산당 지도부의 노선은 이탈리아 공산당의 출범 노선과 단 한자도 틀리지 않는다. 파시즘은 자본주의 반동에 지나지 않는다; 노동계급이 다양한 유형의 자본주의 반동을 구별하는 것은 의미없는 일이다. 이러한 속류 급진주의는 독일공산당이 이탈리아 공산당보다 더 오래되었기 때문에 변명할 여지가 더 적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비극적 경험으로 맑스주의가 풍부한 자양분을 제공받지 않았던가. 파시즘의 승리를 기정사실화 하는 것과 파시즘의 권력 장악 가능성을 부인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마찬가지이다. 파시즘의 특수성을 무시하면 파시즘에 대한 투쟁 의지는 마비될 수밖에 없다.        물론 비난의 대부분은 전적으로 코민테른 지도부의 몫이다. 다른 누구보다 이탈리아 공산주의자들은 경고의 목소리를 높일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마누일스키와 함께 스탈린은 이들에게 강요했다: 당신들의 파멸이 남긴 가장 중요한 교훈들을 무시하시오. 톨리아티가 사회파시즘론으로 얼마나 재빨리 전향했는지를 우리는 이미 보았다.

볼셰비키주의는 후진국 현상이라고 치부하면서 꽤 오랫동안 국제사민주의는 자신을 위로했다. 파시즘에 대해서도 똑같은 피난처를 찾았다. 이제 독일사민당은 이 편안한 생각이 틀렸음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자신을 지지했던 소자본가 대중은 파시즘으로 넘어갔거나 가고 있는 중이다. 노동자들은 공산당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다. 현재 독일에서는 파시즘과 볼셰비키주의 만이 성장하고 있다. 비록 러시아와 이탈리아가 독일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후진적이지만 이 두 나라는 제국주의 단계에서 자본주의에 고유한 정치적 격전장이 되었다. 선진국 독일은 러시아와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과정들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독일 정세가 제기하는 근본 문제는 이렇게 표현될 수 있다: 해결책은 어디에 있는가? --- 러시아식인가 아니면 이탈리아식인가?

고도로 발전한 사회구조가 볼셰비키주의나 파시즘으로 이행하는 데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이탈리아는 독일에 비해 소자본가와 농민 계층이 더 많다. 독일의 경우 농업과 임업에 종사하고 있는 980만 인구에 비해 공업과 상업에 종사하는 인구는 1,850만이나 된다. 즉 거의 두 배나 된다. 반면 이탈리아에서는 그 인구가 각각 1,030만과 640만이다. 그러나 이 단순한 총계는 독일 국민의 일상생활에서 노동계급이 차지하는 상대적 비중을 결코 반영하지 못한다. 심지어 독일에서 실업자의 엄청난 숫자는 독일 노동계급의 사회적 힘을 역으로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이 사회적 힘을 어떻게 혁명정치의 언어로 번역할 것인가 ---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이탈리아의 9월 패배와 같은 역사적 사건은 독일공산당의 경우 1923년에 일어났다. 이로부터 8년 이상이 지난 지금 패배의 상처는 대부분 아물었다. 그리고 노동계급의 새로운 세대가 성장했다. 1922년의 이탈리아 공산당보다 지금의 독일공산당은 비교할 수 없이 강력하다. 노동계급의 막강한 상대적 비중, 마지막 패배로부터 지나간 상당한 시간, 공산당의 상당한 힘 --- 이 3가지 장점은 현 정치상황을 파악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자신의 최대 장점들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이 장점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것이 결여되어 있다. 1932년 텔만의 입장은 1922년 보르디가(주 34)의 입장을 재생하고 있다. 이것은 특히 위험한 징조이다. 그러나 이점에서도 10년 전에는 없었던 보충적인 장점이 있다. 독일의 혁명운동 내에는 지난 10년의 경험에 의거하고 있는 맑스주의 반대파가 존재한다. 이 반대파는 수적으로는 열세이지만 사태의 전개로 인해 대단한 영향력을 발산하고 있다. 특정 상황에서는 아주 약한 충격도 눈사태를 일으킬 수 있다. 좌익반대파의 비판적 충격은 노동계급 전위의 정치에 시기 적절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임무이다!

8. 공동전선을 통해 -- 공동전선의 최고기관인 소비에트로

소비에트에 대한 말로만의 찬사는 소비에트의 역사적 역할에 대한 잘못된 생각만큼이나 “좌익”에 유행을 이루고 있다. 대개의 경우 소비에트는 국가권력 쟁취 기관, 봉기 기관, 노동계급 독재 기관으로 규정되고 있다. 형식적으로는 이러한 규정들이 올바르다. 그러나 이 규정들이 소비에트의 역사적 역할들을 전부 다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우선 이 규정들은 국가권력 쟁취 투쟁에서 왜 소비에트가 필요한 지를 설명하지 않는다. 노동조합이 경제투쟁의 기본적 공동전선 형태인 것과 똑같이 노동계급의 권력 장악 투쟁의 시기에 소비에트는 공동전선의 가장 수준 높은 형태이다. 이것이 올바른 설명이다.

소비에트는 그 자체만으로는 혁명 승리의 기적을 이룰 수 없다. 다만 노동계급의 장점과 단점을 다 포괄하는 계급적 표현일 뿐이다. 바로 이 때문에 그리고 오직 이 때문에 소비에트는 국가권력 쟁취를 위한 혁명적 투쟁 상황에서 모든 정치적 경향의 노동자들을 단결시키는 조직적 기회를 제공한다. 지금 준혁명적 상황에서 공동전선 기관인 소비에트의 역사적 역할을 가장 선진적인 독일 노동자들은 아주 명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혁명 준비기에 공산당이 다른 모든 정당들을 물리치고 자신의 깃발 아래 절대다수의 노동자들을 결집시킬 수 있다면 소비에트는 전혀 필요 없을 것이다. 후진국과 선진국에서 공히 노동계급의 국가권력 장악 직전에 공산당이 노동자 대다수를 결집시킬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고 역사는 대답하고 있다.

현재 최선진국 독일에서 노동계급은 국가권력 쟁취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러나 공산당은 노동계급을 전혀 단결시키지 못하고 있다. 정치적 의미에서 혁명적 상황이란 무엇인가? 노동계급의 모든 부위 아니면 최소한 절대 다수가 체제전복을 위해 모든 노력을 통일시키려는 강한 욕구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가 바로 혁명적 상황이다. 물론 노동자들이 이 강한 욕구를 실현시킬 방법을 모두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정당과 절연하고 공산당에 합류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미는 더욱 아니다. 노동계급의 정치의식은 그렇게 질서정연하고 단일한 방식으로 성숙되지는 않는다. 모든 정치 과정들이 급속히 전개되는 혁명적 시기에도 노동계급 내부는 깊이 분열되어있다. 그러나 동시에 정당을 초월해서 계급 전체를 포괄할 조직의 필요성은 절박해진다. 이러한 필요를 조직으로 현실화시키는 것 --- 바로 이것이 소비에트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소비에트의 거대한 역할이다. 혁명적 상황에서 노동계급 단결의 가장 높은 조직적 표현으로 소비에트가 등장한다. 텔만, 노이만, 레멜러는 미래 “소비에트 독일”에 대해서 계속 글도 쓰고 연설도 한다. 그러나 현재 이들의 정책은 소비에트의 탄생을 가로막고 있다.

실제 투쟁 현장에서 떨어져 대중의 정서와 맥박을 직접 느끼지 못한 가운데 독일 소비에트 탄생으로 인도할 가교적 투쟁 형태를 예측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와 관련해서 공장위원회의 확대된 형태로 독일 소비에트가 탄생될 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필자가 한때 제시한 바 있다. 이 가설은 1923년 경험에 주로 의거했다. 물론 이것이 유일한 가능성은 아니다. 궁핍과 실업의 압력과 더불어 파시즘의 공세에 직면하여 혁명적 단결의 필요성이 소비에트 형태로 즉시 현실화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공장위원회 형태는 생략될 것이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 등장하든 소비에트는 노동계급의 장단점, 내적 모순, 이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전체적인 강한 욕구 등의 조직적 표현이 될 수밖에 없다. 간단히 말해서 공동전선 기관이 될 수밖에 없다.

사민당과 공산당은 현재 노동계급에 대한 영향력을 반씩 나누어 갖고 있다. 사민당 지도부는 자기 당으로부터 노동자들을 쫓아내는 일을 제일 잘하고 있다. 반면 공산당 지도부는 온 힘을 다해 노동자들의 유입을 막고 있다. 이 결과 제 3의 정당이 형성되었고 공산당에게 유리한 쪽으로 천천히 상황이 변하고 있다. 공산당의 정책이 전부 옳아도 노동계급의 혁명적 단결의 필요성은 공산당의 영향력보다 비교할 수 없이 더 빨리 커질 것이다. 따라서 소비에트 수립의 필요성은 지금 더할 수 없이 크다.

그러나 소비에트 수립에는 전제조건이 있다. 공장에서 시작하여 노동계급 정당과 조직들이 소비에트의 절박한 필요성과 소비에트 수립의 시간과 방법에 대해 합의해야 한다. 즉 소비에트가 혁명적 시기에 가장 높은 수준의 공동전선 구현체이므로 혁명 준비기에 소비에트 수립을 준비할 공동전선 정책이 있어야 한다.

1917년의 6개월 동안 러시아 소비에트는 화해주의자들인 사회혁명당과 멘셰비키들에 의해 장악되어 있었다. 이 점은 다시 상기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다. 당으로서 혁명적 독자성을 단 한순간도 버리지 않은 채 볼셰비키당은 소비에트 내에서 소수파로서 규율을 준수했다. 독일의 경우 소비에트 수립 바로 그 순간부터 독일공산당은 1917년 3월 러시아 소비에트에서 볼셰비키당이 차지했던 지위보다 더 큰 지위를 점할 것이다. 이 점은 추호도 의심할 수 없다. 그리고 공산당이 금방 소비에트 다수파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상황은 공동전선 기관인 소비에트의 의의를 조금도 손상시킬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소수를 점하고 있는 사민당, 카톨릭 정당, 무소속 노동자들은 여전히 수백만에 이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처럼 많은 대중을 보유한 소수 정당들을 뛰어 넘으려는 것은 가장 혁명적 상황에서조차 자살행위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정은 아직 즐거운 상상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 공산당은 노동계급 내에서 소수당이다. 이 사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물론 소비에트 수립의 확실한 수단이 웰스, 힐퍼딩, 브라이트샤이트 등 개량주의자들과의 사전 합의에 있다는 것은 아니다. 1918년 힐퍼딩은 바이마르 헌법의 정신을 조금도 손상시키지 않은 채 헌법 속에 소비에트를 포함시키는 방법을 짜내느라 골머리를 앓았다. 그렇다면 지금 그의 머리는 사민당의 개량주의 정신을 손상시키지 않은 채 바이마르 헌법에 파시스트 깡패들의 숙소를 포함시키느라 골머리를 앓을 것이다. ... 노동계급의 일반적 조건이 소비에트 수립을 허용하는 순간 소비에트를 수립해야 한다. 사민당 지도부의 의지는 전혀 고려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일반적 조건을 성숙시키려면 사민당 대중을 지도부와 분리시켜야 한다. 그러나 이 작업은 작업이 이미 끝났다고 가장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반동적인 지도자들로부터 수백만의 사민당 대중들을 분리시키기 위해서는 이런 “지도자들”과도 소비에트를 수립할 용의가 있음을 우선 대중에게 보여야 한다.

그러나 1918년과 1919년에 걸쳐 에버트, 샤이데만, 하저 등이 꾸몄던 흉계를 반복하기 위해 현재 사민당 지도부는 소비에트라는 뜨거운 용광로 속으로 다시 한 번 들어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가능성을 미리 배제해서는 안된다. 사태의 결과는 이 신사양반들의 검은 마음보다는 역사가 이들을 꼼짝못하게 만드는 정도와 방법에 달려있다.

공산당과 사민당 노동자들이 집단적 조직으로 수립하는 최초의 중요한 지방 소비에트의 탄생은 전체 독일 노동계급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사민당 및 무소속 노동자 뿐 아니라 카톨릭 및 자유당 노동자도 소비에트 수립의 구심력을 오래 뿌리치지 못할 것이다. 마치 자석 양끝에 쇳가루가 모이는 것처럼 조직활동에 가장 익숙해 있는 독일 노동계급의 모든 부위가 소비에트로 모일 것이다. 소비에트 내부에서 공산당은 노동계급 혁명의 지도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새로우면서 대단히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게 될 것이다. 사민당 지도부가 대중의 압력을 마비시키는 일에 공산당 지도부가 열정적으로 도움을 주지만 않았더라도 지금쯤 사민당의 절대 다수 노동자들과 사민당 당기구의 상당 부분이 소비에트에 참여하고 있을 것이다. 이 점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사민당, 노동조합, 기타 조직들과 명확한 실제적 과업을 수행할 것을 명시한 합의를 공산당은 수락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사민당과는 소비에트를 수립할 수 없다는 의도를 너무 명백히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공산당만의 소비에트는 존재할 수도 없으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다른 노동계급 정당들과 합의를 도출하고 공동행동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것은 소비에트 수립을 거부하겠다는 뜻이 아니고 무엇이랴.

이러한 추론에 대해 [적기]지는 온갖 비난을 퍼부으며 대응할 것이고 2 곱하기 2가 4이듯이 필자가 브뤼닝의 앞잡이이며 웰스의 비밀동맹자라고 증명하려 들것이다. 물론 필자는 이러한 비난을 모두 감수할 용의가 있다. 다만 하나의 조건이 있다: 다른 노동계급 조직들과 공동전선 수립을 위한 합의에 도달하지 않고 어떻게 독일에서 소비에트가 수립될 수 있는 지를 [적기]지는 독일 노동계급에게 설명해야 한다.

소비에트가 공동전선 기관이라는 점을 좀더 명확히 해명하기 위해 할러-메르서부르크의 지방 공산당 신문 [계급투쟁]에 실린 견해를 소개하겠다. 대단히 유용하기 때문이다. 이 신문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모든 노동자 조직들은 모든 단점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반파시즘 방어동맹으로 결합되어야 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장황한 이론적 설명은 필요없다. 역사가 이미 독일 노동계급에게 이 문제에 대한 준엄한 선생이 되었다. 형태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모든 노동자들이 참여한 잡탕 공동전선 때문에 독일 노동계급은 1918년 1919년 혁명에서 패배했다.” 이것은 정말이지 피상적인 말장난의 모범적인 예가 아닌가!

1918년 1919년 당시 공동전선은 주로 소비에트를 통해 구현되었다. 이때 스파르타쿠스 동맹(주 36)의 소비에트 참여는 옳았는가? 위에서 인용한 신문의 정확한 논조에 의하면 틀렸다. 그러나 당시 스파르타쿠스 동맹은 노동계급의 극히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았고 사민당이 주도한 소비에트를 자신의 소비에트로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었다. 따라서 소비에트 불참은 이 조직을 혁명으로부터 고립시켰을 것이다. 당시 소비에트라는 공동전선이 형태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고 잡탕이었다면 이것은 소비에트의 잘못이 아니었다. 당시 노동계급 내부의 정치상황이 문제였다. 즉 사민당의 위세에 비해 스파르타쿠스 동맹은 너무 허약했다. 공동전선은 강력한 혁명정당을 결코 대신할 수 없다. 다만 후자가 더 강력해지도록 도울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은 소비에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엄청나게 좋은 기회를 놓칠까 두려워서 허약한 스파르타쿠스 동맹은 초좌익 노선을 폈으며 때 이른 시위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스파르타쿠스 동맹이 공동전선 즉 소비에트에 불참했다면 동맹의 약점들은 더욱 두드러졌을 것이다.

이 양반들이 1918년 1919년 경험으로부터 아무 것도 배우지 않았다니 이것이 가능한 일인가? 최소한 레닌의 [좌파 공산주의 -- 소아병]은 읽었는가? 스탈린 정권은 공포의 지적 파멸을 초래했다. 소련의 소비에트를 관료화시킨 후 이 사이비 혁명가들은 소비에트를 당기구의 도구 정도로만 보고 있다. 소비에트는 노동자 의회로 창설되었으며 정치적 차이와는 무관하게 모든 노동계급을 하나로 단결시키는 가능성을 제공했기에 대중들을 결집시켰다. 그리고 바로 이 사실로 인해 소비에트의 거대한 교육적 혁명적 힘이 있었다. 이 중요한 의의는 지금 잊혀진지 오래되었다. 모든 것은 망각의 늪으로 빠졌고 모든 것은 뒤죽박죽이 되어 왜곡되었다. 몇 번이나 천벌을 받아도 싼 관료집단이다!

당과 소비에트의 상호관계는 혁명 정치에서 결정적이다. 현재 공산당 노선은 당이 소비에트를 대신하는 것이다. 그리고 혼돈을 더욱 부추길 기회를 놓치기 싫어서 후고 우르반스는 소비에트로 당을 대신할 준비를 하고 있다. [사회주의 노동자 신문] 타전 보도에 따르면 노동계급을 지도력하고 있다는 공산당의 허세에 반박하여 우르반스는 1월 어느 베를린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지도부는 소비에트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유일한 당의 의지나 판단이 아니라 대중 자신들에 의해서 당지도부가 선출되어야 한다.(열렬한 박수갈채.)” 공산당이 노동자들에게 최후통첩을 보내 이들의 화를 돋구고 있는 사실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관료적 위세에 대한 모든 항거는 박수갈채를 받는다. 그러나 우르반스의 견해는 맑스주의와는 공통점이 전혀 없다. 노동자들이 “스스로” 소비에트를 선출해야 하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누구를 선출하느냐이다. 다른 조직들이 “가진 모든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들과 함께 우리는 소비에트에 참여해야 한다. 그러나 소비에트가 “스스로” 노동계급의 권력 장악 투쟁을 지도할 능력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소비에트에 대한 조잡한 숭배사상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소비에트를 지도하는 당에 달려있다. 따라서 우르반스와는 정반대로 볼셰비키-레닌주의자는 소비에트를 지도할 수 있는 공산당의 권리를 결코 부정하지 않는다. 이와 반대로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오직 공동전선의 토대를 가지고, 오직 대중조직들을 통해서만 독일공산당은 이후 소비에트 내에서 지도적 위치를 장악하여 노동계급을 국가권력 장악의 길로 인도할 수 있다.”

 

9. 독일사회주의노동자당(SAP)

과대망상증에 빠진 관료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어리석은 앵무새들만이 뜻도 모르는 수식어를 반복한다. 오직 이들만이 독일사회주의노동자당을 “사회파시즘” 또는 “반혁명” 정당이라고 부를 수 있다. 독일사회주의노동자당 지도부는 공산주의보다 개량주의에 더 가깝다. 그리고 사민당과 결별한 후에도 여전히 개량주의와 공산주의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있다. 이런 조직에게 미리 신뢰를 보내는 것은 경박할 뿐 아니라 값싼 낙관주의이다. 따라서 좌익 반대파는 이 정당의 지도자 우르반스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조금도 지지 않는다.

사회주의노동자당에게는 강령이 없다. 강령적 내용을 담고 있는 공식 문서가 강령인 것은 아니다. 당의 혁명투쟁 경험 그리고 중핵들의 피와 살이 된 투쟁 교훈들과 결합되어 있을 경우에만 공식 문서는 강령의 의미가 있다. 사회주의노동자당에는 이런 것이 없다. 러시아 혁명, 이 혁명의 단계들, 혁명과정에서 발생한 분파 투쟁, 1923년 독일의 위기, 불가리아 내전(주 37), 중국 혁명, 1926년 영국 총파업, 스페인의 혁명적 위기 등은 정치투쟁의 앞길을 밝혀주는 등불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사회주의노동자당 중핵들에게는 이러한 투쟁들이 피와 살이 되지 못했다. 그저 신문 스크랩의 희미한 기억일 뿐이다.

노동자 정당은 공동전선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공동전선은 나름의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경험이 풍부하고 투쟁으로 단련된 혁명정당만이 공동전선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다. 어쨌든 공동전선 자체가 혁명정당의 강령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독일사회주의노동자당은 이 정책에 목을 매고 있다. 이 결과 공동전선 정책은 이 당을 압도하면서 당 내부에 존재하는 다양한 조류들 사이의 갈등을 얼버무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중도주의의 역할이 바로 이 갈등 얼버무리기이다.

이 당의 일간지는 50대 50의 정신으로 물들어 있다. 스트뢰벨(주 38)이 당을 나갔지만 이 신문은 여전히 반(半)평화주의 노선을 걷고 있으며 맑스주의와는 무관하다. 이 신문에 간간이 실리는 혁명적 내용의 기사들은 이 신문의 노선을 변화시키기보다 더욱 강화시킬 뿐이다. 이 신문은 브뤼닝 앞으로 보낸 쿠에스터(주 39)의 군국주의 편지에 열광하고 있다. 이 편지는 사실 무미건조할 뿐 아니라 철저히 소자본가적이다. 장관을 역임한 덴마크의 어느 “사회주의자”는 너무 모욕적인 조건으로는 정부 파견단의 일원이 될 수 없음을 천명했다. 이 편지는 이 행동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중도주의는 사소한 일에서 만족을 구한다. 그러나 혁명은 이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혁명은 모든 것, 절대적으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독일사회주의노동자당은 공산당의 노동조합 정책 즉 노동조합을 분열시켜 혁명적 노동조합(주 40)을 건설하는 정책을 비난한다. 물론 공산당의 노동조합 정책은 대단히 많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 로조프스키의 지도력은 국제 노동계급 전위에게 많은 희생을 가져왔다. 그러나 독일사회주의노동자당의 정책 역시 오류로 가득하다. 공산당의 오류는 노동계급 대오를 “분열”시키고 사민당 노동조합을 “약화”시킨 것에 있지 않다. 현재 노동조합 지도부는 노동계급이 아니라 자본가 계급에게 봉사하고 있기 때문에 사민당 노동조합의 약화는 부르조아 계급의 약화를 의미한다. 문제는 공산당이 사민주의자 라이파트의 조직이 아니라 자기 조직을 “약화”시키는 데에 있다. 바로 이것이 노동계급에 대한 공산당의 범죄행위이다. 단결이라는 추상적인 원칙 때문이 아니라 자본의 하수인들을 노동조합에서 몰아내야 하는 구체적인 필요 때문에 공산당은 반동적 노동조합에서 활동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독일사회주의노동자당에 의해 이 정책의 혁명적이며 공격적인 측면은 개량주의 노동조합들의 단결이라는 원칙에 종속되고 있다.

이 정당은 공산당이 폭동주의(putschism)로 기울고 있다고 비난한다. 이 비난은 공산당의 활동방식과 실제 사실에 의해서 올바른 것으로 입증되었다. 그러나 비난의 권리를 가지려면 우선 행동을 통해 노동자 혁명의 기본 문제들에 대해 자기 태도를 분명히 해야한다. 멘셰비키들은 언제나 볼셰비키당의 노선을 소수봉기주의(Blanquism)와 모험주의 즉 폭동주의라고 비난해 왔다. 그러나 레닌주의 전략은 폭동주의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러나 레닌은 노동계급의 투쟁과정에서 “봉기라는 기예”의 의의를 이해했으며 남들도 이해하도록 가르쳤다.

이런 점에서 독일사회주의노동자당의 비판은 파울 레비(주 42)의 권위에 기대면 기댈수록 더욱 의심스러워진다. 레비는 공산당의 소아병에 겁을 집어먹고 세련되었지만 노쇠한 사민당을 선택했다. 독일의 1921년 3월 봉기와 관련하여 긴밀한 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레닌은 레비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이 양반은 완전히 제정신을 잃었군.” 그리고 재치있게 이렇게 덧붙였다: “최소한 이 양반은 잃을 것이 있었다. 그러나 다른 양반들은 잃을 것조차 없었다.” “다른” 양반들이란 벨라 쿤(주 43), 탈하이머 등이었다. 파울 레비에게 두뇌가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이성을 잃고 공산당에서 사민당으로 점프를 한 사람이 노동계급 정당의 지도자가 될 자격은 없다. 정신이상 상태에서 창문 밖으로 뛰어내려 자살한 레비의 최후는 그의 정치적 궤적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대중에게 중도주의는 한 정치적 단계에서 다음 정치적 단계로 넘어가는 과도적 노선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개별 정치가에게는 중도주의가 제 2의 천성이 될 수 있다. 독일사회주의노동자당 지도부는 사민당에 대해 절망하여 이 당을 나온 관료, 변호사, 기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나이로 보아 정치교육이 더 이상 필요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절망한 사민주의자가 혁명가가 되지는 않는다.

이런 경향의 가장 훌륭한 예는 게오르크 레데부어(주 44)이다. 얼마 전에 필자는 1919년에 있었던 그의 재판 보도문을 우연히 읽을 기회가 있었다. 이 글을 읽으면서 필자는 두 번 이상 속으로 이 늙은 투사의 성실성, 열정, 고상한 천성에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이 레데부어 역시 중도주의로부터 한발도 벗어나지 못했다. 계급투쟁의 가장 높은 형태인 대중 행동, 이것의 준비, 이 투쟁에 대한 당의 전적인 지도 책임 등의 사안이 제기될 때마다 레데부어는 중도주의의 가장 훌륭한 대표가 되었다. 이 때문에 그는 리이프크네히트, 룩셈부르크, 우리와는 정치노선이 다르다.

독일사민당의 급진파가 피억압 민족의 투쟁에 대해 수동적이라고 스탈린이 비난한 바 있다. 그러자 레데부어는 화를 내며 바로 이 민족문제에 대해서 자신이 커다란 주도력을 행사했음을 주지시켰다. 개인적으로 그는 독일사민당의 국수주의를 언제나 맹렬히 반대했다. 그러나 이를 통해 그는 자신의 강력한 민족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었다. 그는 언제나 러시아, 폴란드, 그 밖의 나라 출신 망명 혁명가들에게 가장 좋은 친구였다. 그리고 이들은 노혁명가인 그에 대해 소중한 추억들을 간직하고 있다. 사민당 관료들은 그를 “레데부로프” 또는 “레데부르스키” 등으로 부르면서 그가 이들의 친구인 사실을 빈정거렸다.

스탈린은 당시의 상황이나 저작들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지만 이 문제에서는 옳았다. 레닌의 일반적 견해를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레닌의 견해를 반박하는 것을 통해 레데부어는 레닌의 올바름을 입증했을 뿐이다. 자신이 논문들을 통해 민족문제에 대한 제 2 인터내셔널 정당들의 자기만족감에 대해 분노를 표현했다고 그는 주장한다. 예를 들어 램지 맥도널드(주 45)는 폭격기를 동원하여 인도의 민족문제를 해결하고 있었다. 이 제국주의적 폭력에 대해 그는 분노하고 항의했다. 이를 통해 그는 자신이 힐퍼딩이나 웰스는 물론이고 오토 바우어(주 46)와도 종류가 다르다는 사실을 의심의 여지없이 명예롭게 확인시켰다. 이들 독일 사민주의자들도 인도와 같은 식민지가 있었을 경우 민주적 폭격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민족문제에 대한 레베두어의 노선도 중도주의를 넘어서지는 못하고 있다. 그는 요구한다: 식민지 억압에 대해 투쟁해야 한다; 의회에서 식민지 공채에 반대하는 표를 던질 준비가 되어있다; 분쇄된 식민지 봉기의 희생자들을 두려움 없이 방어할 준비가 되어 있다 등등. 그러나 그는 식민지 봉기 준비에는 가담하지 않으려 한다. 이런 일은 그에게는 폭동주의, 모험주의, 볼셰비키주의일 뿐이다. 그의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볼셰비키주의는 아무리 후진적인 피억압 민족도 정치의 주체로 간주한다. 이들의 민족자결권을 인정하고 이 권리의 억압을 의회에서 항의한다. 그러나 이것만이 아니다. 피억압 민족들의 투쟁에 개입해 제국주의 억압자에 대한 이들의 투쟁을 고취시킨다. 이들의 투쟁을 노동계급의 투쟁과 연계시킨다. 중국, 인도, 아랍 등의 피억압 민족들에게 봉기의 기예를 가르친다. 그리고 문화민족임을 자처하는 제국주의자들 앞에서 이러한 정치 행동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진다. 바로 이 점에서 볼셰비키주의는 혁명적 맑스주의를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유일한 주체이다. 그러나 중도주의는 그렇지 않다.

민족문제만으로 노동자 정당의 정책이 평가될 수는 없다. 민족문제에 대한 올바른 입장은 맑스주의자에게 하나의 원칙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독일사회주의노동자당이 국제적으로 관계를 맺고 동조하는 세력들은 누구인가? 노르웨이, 스웨덴, 네덜란드 등의 중도주의 조직, 그룹 또는 개인들이다. 수동적이며 폐쇄적인 성격 때문에 이들은 개량주의와 공산주의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 바로 이들이 독일사회주의노동자당의 가장 친한 친구들이다. 이중 안젤리카 발라바노프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는 지금도 자신이 새로이 창립한 당을 2.5 인터내셔널과 통합시키려고 바삐 움직이고 있다.(주 47)

레옹 블룸은 전쟁배상금 지불에 찬성하고 우스티릭(주 48)이라는 은행가를 후원하는 사회주의자이다. 그런데 그가 자이데위츠의 신문에서는 “동지”로 불리고 있다.  이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레옹 블룸에 대한 존경의 표시인가? 아니다. 원칙의 결여, 성격의 결여, 지조의 결여이다. 관료들은 이것을 “치사한 비난”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이러한 사소한 행동들은 소비에트를 추상적으로 그리고 말로만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뚜렷하게 정치적 성향을 드러낸다. 왜냐하면 소비에트를 인정한다고 골백번 말한들 혁명에 의해서 검증되지 않는 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블룸을 파시스트라고 규정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바보로 규정하는 꼴이 될 것이다. 그러나 블룸과 같은 자들에 대해 증오심과 혐오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혁명가가 아니다.

독일사회주의노동자당은 막스 아들러(주 49)와 같은 정도로 오토 바우어 “동지”와 거리를 두고 있다. 로전펠트와 자이데위츠에게 바우어는 이론적인 적수 그것도 일시적인 적수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우리에게 그는 오스트리아 노동계급을 죽음의 늪으로 인도한 화해할 수 없는 적이다.

막스 아들러는 중도주의를 아주 예민하게 보여주는 온도계이다. 이런 온도계의 유용함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온도계는 날씨의 변화는 기록할 수 있지만 날씨 자체를 변화시킬 수는 없다. 이것을 명심해야 한다. 자본주의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상황에서 막스 아들러는 철학적인 슬픔을 느끼며 다시 한 번 혁명의 불가피성을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을 인정한다고 할 수 있을까. 한숨을 쉬면서 이 불가피성을 의심하고 있지 않은가. 제 2와 제 3 인터내셔널이 통합이 되면 아주 좋겠다고 그는 생각한다. 민주적 방식으로 사회주의가 수립되면 가장 좋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그러나 슬프게도 이 방법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야만국가 뿐만 아니라 문명국가에서도 아 이런! 노동자들이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니! 그러나 혁명을 슬픈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글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혁명은 오는 것이 아니라 투쟁을 통해 만들어 가야 한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라고 막스 아들러가 생각할 혁명적 상황은 있어본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아들러와 같은 양반은 과거의 혁명을 정당화하고 미래 혁명의 불가피성을 인정할 능력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지금 이 순간 결코 혁명을 촉구할 수가 없다. 제국주의 전쟁이나 러시아 혁명도 이들 늙어빠진 사민주의 좌파를 변화시키지 못했다. 이들은 가망이 없다. 이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온도계는 될 수 있지만 혁명 지도자는 결코 될 수 없다.

9월 말 독일사회주의노동자당은 모든 노동자 조직들에게 다음과 같이 호소하였다: 전국에서 집회가 개최되어 모든 경향의 연설가들이 똑같은 시간을 할애 받아 연설한다. 이런 식으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이것은 명백하다. 공산당과 사민당이 브란틀러와 우르반스 그리고 영향력이 미미한 다른 조직들의 대표들과 연단을 똑같이 나누어 갖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공동전선의 목적은 공산당과 사민당 대중의 단결이다. 대중기반이 없는 다른 정치조직들과의 합의가 아니다.

로전펠트-브란틀러-우르반스 연합은 공동전선을 위한 선전연합(propaganda bloc)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러나 연합이 불가능한 것은 바로 선전 영역이다. 선전은 명확한 원칙과 강령에 기초해야 한다. 행진은 따로 하되 목표물에 대한 타격은 함께 하는 것이 공동전선이다. 연합은 실제적인 대중행동을 위해서만 필요하다. 원칙의 기반도 공유하지 않은 채 지도부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합의 즉 선전연합은 혼란만 가중시킨다.

노동자 공동전선이 대통령 후보를 지명한다는 생각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 후보는 명확한 강령을 전제로 해서만 지명될 수 있다. 당은 선거기간이라고 해서 지지자들을 추동시키고 그 역량을 모을 권리를 포기할 수 없다. 당의 후보는 투쟁의 직접적 목표를 위해 다른 조직들과 맺은 합의를 어떤 경우에도 거스를 수 없다. 당의 정식 회원이든 아니든 모든 공산주의자들은 텔만 후보를 최대한 지지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문제는 텔만이 아니라 공산주의 깃발이다. 우리는 모든 정당에 대항해서 공산주의의 정치적 목표를 방어할 것이다.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에 의해서 공산당 평당원들에게 유포된 편견을 분쇄하면서 좌익반대파는 대중의 대자적 계급의식을 고취시킬 것이다.(저자 주: 불행하게도 [연속혁명]지에 사설은 아니지만 공산당, 사민당 등의 연합에 의한 노동자 단일 후보를 주창하는 내용의 글이 실렸다. 독일의 볼셰비키-레닌주의자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이 입장을 비난해야 한다.)

개량주의 좌파나 중도주의에서 공산주의로 나아간 노동자 조직에 대해 볼셰비키당은 어떤 정책을 취했는가?

1917년 뻬쩨르부르그에서는 약 4천명의 노동자를 포괄하는 지구간 조직이 존재했다. 당시 뻬쩨르부르그의 볼셰비키 조직은 수만명의 노동자들을 포괄하고 있었다. 그러나 볼셰비키당의 뻬쩨르부르그 위원회는 이 지구간 조직과 모든 문제에 대해서 합의를 도출하기 시작했고 이 조직의 모든 계획에 대해 조언했다. 이를 통해 완전한 조직 통합이 속도를 붙였다.

물론 이 조직의 노동자들이 정치적으로 볼셰비키당과 가까왔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조직에만 이런 일이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멘셰비키-국제주의자들 (마르토프 그룹)이 사회애국주의자들과 결렬했을 때 볼셰비키당은 전자와 공동행동을 조직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했다. 그리고 이것이 불가능했을 때 그 책임은 대부분의 경우 마르토프 그룹에게 있었다. 사실을 덧붙이자면 이 그룹은 쩨레텔리, 단 등과 행보를 같이하면서 공식적으로는 멘셰비키 진영에 남았다.

그리고 훨씬 넓은 범위에서 이 전술은 사회혁명당 좌파에게도 적용되었다. 심지어 볼셰비키당은 봉기기관인 혁명전쟁위원회에 사회혁명당 좌파의 일부를 끌어들이기까지 하였다. 물론 당시 사회혁명당 좌파는 여전히 케렌스키 당에 속해 있었다. 혁명전쟁위원회의 목적은 케렌스키 당을 전복시키는 데에 있었다. 따라서 이 위원회에 들어가는 것은 사회혁명당 좌파의 정치 논리에 부합되지 않았다. 이 사실을 보더라도 사회혁명당 좌파가 모든 문제에서 논리정연하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명쾌한 논리를 갖출 때까지 기다렸다면 지구상에서 혁명은 승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후 볼셰비키당은 사회혁명당 좌파와 함께 정부를 구성하는 연합을 체결했다. 지금 독일공산당이 쓰는 말로 하면 “코르닐로프주의자” 좌파 또는 “파시스트” 좌파와 연합한 셈이었다. 이 연합은 이 경향이 혁명정부에 대항해 봉기를 일으키기 전까지 몇 달 동안 지속되었다.

좌로 기우는 중도주의자들에 대한 볼셰비키당의 경험을 레닌은 이렇게 요약하였다. “공산주의자들의 올바른 전술은 중도주의자들의 동요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활용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들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양보조치들이 필요하다. 그래서 노동계급 쪽으로 기우는 분자들과 결합하여 자본가계급 쪽으로 기우는 분자들에 대해 투쟁할 때는 언제나 이런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 ‘어떤 타협도 무조건 거부하며 우리의 진로를 수정하지 않겠다’는 단정은 혁명적 노동계급을 강화시키는 데 해가 될 뿐이다. ...” 이 문제에서도 볼셰비키당의 전술은 독일공산당의 관료적 최후통첩과는 아무런 공통점도 없었다.

텔만과 레멜러가 새로 창당된 독자 정당인 공산당에 들어온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이들이 기억을 되찾으려고 애쓴다면 사민당과 결별하고 공산당에 들어와 이 정당을 좌로 기울도록 애쓸 당시 자신들의 정치적 감수성을 회상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이들에게 “왕당파 반동 세력의 좌파”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하자. 아마 이들은 자신들을 이렇게 비난하는 자가 술에 취했거나 미쳤다고 결론 내리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이들이 독일사회주의노동자당을 규정하는 방식이 바로 이러하다!

레닌의 독자 정당 탄생에 대한 생각을 돌이켜 보자: “1917년 러시아의 경우와 같이 노동자들이 우에서 좌로 선회했는데도 독일에서는 공산주의 세력이 즉시 강화되지 못하고 ‘독립사민당’이라는 중도정당이 먼저 탄생했다. 그 이유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 물론 독일공산주의자들의 잘못된 전술에 하나의 원인이 있다.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오류를 정직하고 두려움 없이 인정하고 이것을 교정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 이들의 오류는 공공연히 생기는 ‘좌파’ 소아병의 온갖 증상에 해당된다. 이 병이 더 잘 그리고 더 빨리 치유되면 될수록 조직에게 이로울 것이다.” 이 글은 바로 지금 상황에 딱 들어맞는다!

지금 독일공산당은 당시 스파르타쿠스동맹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만약 중도 독자 정당이 다시 탄생한다면 이 현상에 대한 책임은 공산당에게 더욱 크게 돌아갈 것이다.

독일사회주의노동자당은 모순적인 현상이다. 물론 사민당 노동자들이 바로 공산당에 합류하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되려면 공산당의 정책과 지도부가 과거와 달라야 한다. 사회주의노동자당을 평가하는 기준은 이상적 수준의 공산당이 아니라 지금의 공산당이 되어야 한다. 관료적 최후통첩이나 휘두르는 공산당이 존재하는 한 사민당의 붕괴는 그만큼 저지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사회주의노동자당의 탄생은 불가피하며 진보적인 현상일 뿐이다.

그러나 이 진보적인 현상은 이 정당의 중도주의 지도부에 의해서 지극히 약화되어있다. 이 지도부가 당을 철저히 장악할 경우 이 당은 몰락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진보적인 성격을 일부 지니고 있다고 해서 중도주의와 화해하는 것은 이 정당의 진보적 역할을 청산하는 행위가 될 것이다.

이 정당을 주도하고 있는 화해주의 및 타협주의 분자들은 술수에 능한 자들이고 당내의 갈등들을 적절히 봉합하고 위기상황을 지연시킬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술수는 사태가 정말 심각해지기 전까지만 효과를 발휘한다. 혁명적 위기가 폭발하는 바로 그 순간 당은 위기에 빠질 것이고 이때 노동계급 분자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마비상태에 빠질 것이다.

이 당의 노동자들이 당내 중도주의 경향을 제거하도록 적시에 조언하는 것이 공산주의자의 임무이다. 이 임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비판을 자제하면 안된다. 중도주의자들의 좋은 의도를 올바른 행동으로 인정하지 않아야 하며 모든 사물의 이름을 제대로 부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다른 언사로 대체하지 말고 반드시 제대로 이름을 불러야 한다. 그리고 비방할 것이 아니라 비판해야 한다. 공동행동의 길을 찾아야 하며 주먹을 쥐고 결별할 차비를 하면 안된다.

중도 정당의 좌파에 대해 레닌은 이렇게 말했다: “이들과의 타협을 두려워하는 것은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이와 반대로 이들과 타협할 적절한 방식을 찾는 것이 공산주의자의 의무이다. 즉 이들과의 불가피한 최종적 통합을 촉진할 뿐 아니라 이 정당의 우파에 대한 공산주의자의 사상적-정치적 투쟁을 방해하지 않을 그런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레닌이 이 명언을 던진 이래로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러나 지금도 이 명언에 추가할 것은 전혀 없다.

독일사회주의노동자당 좌파에게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혁명가는 파업과 거리투쟁 뿐 아니라 당내에서 올바른 정책을 추구하기 위한 투쟁 한가운데에서 단련된다. 코민테른 창립 당시 가입 조건으로 작성된 ‘21개조’를 보자. 지난 8년의 정치 상황에 ‘21개조’가 적용된 좌익반대파의 정치활동을 보자. 이것에 기초하여 대오 내의 중도주의 경향을 계획적으로 공격해야 한다. 그리고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당신들은 중도주의의 좌파적 외피로만 머무는 전혀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을 맞을 것이다.”

그리고 또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공산당으로 관심을 돌려야 한다. 혁명가들은 로전펠트와 자이데위츠 식으로 사민당과 공산당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지는 않는다. 사민당 지도부는 노동계급 내부에 존재하는 자본가 계급의 첩자들이다. 비록 혼란에 빠져있고 서투르고 능력이 없더라도 공산당 지도부는 올바른 길로 인도된 혁명가 또는 반(半)혁명가들이다. 사민당은 파괴되어야 하며 공산당은 교정되어야 한다.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가? 그렇다면 진지하게 시도해 본 적은 있는가?

현재의 정치상황은 공산당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이때 우리는 비판을 통해 사태를 역전시켜야 한다. 우리는 “제 3” 정당의 창당을 시도하지 않는다. 공산당이 노동계급의 진정한 지도세력이 되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이것을 공산당 노동자들이 더 빨리 확신할수록 이들은 우리의 말에 더욱 귀기울일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 임무를 다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파시즘의 승리가 확실하다. 그러나 혁명가들은 거대한 투쟁을 앞에 두고 실패를 생각하지 않는다. 성공으로 이끌 방법을 찾을 뿐이다. 우리는 성공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10. “일반적인” 중도주의와 스탈린 관료집단의 중도주의

코민테른 지도부 그리고 결과적으로 독일공산당의 오류는 레닌의 친숙한 용어를 빌자면 “초좌익적 어리석음”의 범주에 해당된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특히 젊을 경우는 어리석은 행동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하이네가 충고했듯이 이 특권은 남용되어서는 안된다. 그런데 어리석은 정치 행동이 상당한 기간동안 특히 가장 중요한 문제들에서 체계적으로 반복될 경우 이런 어리석은 행동은 경향으로 자리잡는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떤 종류의 경향일까? 이 경향은 어떤 역사적 필요에 부응하는가? 이 경향의 사회적 뿌리는 무엇인가?

초좌익 경향은 나라와 시기마다 그 사회적 기초가 다르다. 이 경향은 무정부주의와 블랑키주의, 그리고 이 둘이 다양하게 결합하여 최근에 등장한 무정부주의적 조합주의(주 51)에서 가장 철저하게 표현되었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 주로 만연한 이 경향의 사회적 토양은 빠리의 오래된 전형적인 소규모 공업이었다. 이 경향은 오래 지속되면서 프랑스 초급진주의에 의심의 여지없는 중요성을 부여했다. 그리고 프랑스 초급진주의는 다른 나라의 노동운동에 어느 정도 사상적 영향을 미쳤다. 프랑스의 대공업 발전, 전쟁, 러시아 혁명은 무정부주의적 조합주의의 척추를 부러뜨렸다. 급격히 후퇴하면서 이 경향은 타락한 기회주의로 변모했다. 이 두 단계에서 주오(주 52)는 이 경향의 유일무이한 대표이다. 시간은 흘러가고 우리도 이와 함께 변한다.

스페인의 무정부주의적 조합주의는 정치적 침체기에만 겉으로 혁명성을 보존했다. 모든 문제를 명백하게 제기하는 혁명기에 이 경향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초급진주의 가면을 벗어 던지고 기회주의 성향을 드러냈다. 스페인 혁명은 이 나라에 끝까지 남아있는 조합주의 편향을 몰아낼 것이다.

무정부주의와 블랑키주의 분자들은 모든 종류의 여타 초좌익 경향들과 합류한다. 거대한 혁명운동의 주변에는 언제나 폭동주의와 모험주의 증상들이 나타난다. 이 증상들의 기수는 노동계급 후진층, 반(半)수공업 계층, 이들의 동료 지식인들에서 나온다. 그러나 이런 초좌익 경향들은 독자적인 역사적 의의를 갖지 못한 채 대부분의 경우 일시적인 현상으로 그친다.

역사 발전이 늦은 후진국은 어엿하게 성장한 세계 노동운동의 시대에도 부르조아 혁명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나라에서는 좌익 인텔리 계층이 종종 가장 극단적인 구호와 투쟁방법을 소자본가 대중이 장악하고 있는 반(半)초보적 운동에 도입한다. 폭동주의와 개인적 테러주의 등을 특징으로 한 러시아 사회혁명당이 바로 이런 유형의 소자본가 정당이다. 서구에서는 공산당이 대중운동에 뿌리를 내린 덕분에 독자적 모험주의 그룹들은 러시아 사회혁명당 만큼의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그러나 바로 이 점 때문에 서구의 젊은 공산당 내부에는 모험주의 경향이 나타날 수 있다. 러시아 사회혁명당은 부르조아 사회의 진화과정에 영향을 받아 제국주의적 소자본가 정당으로 변모했고 10월 혁명에 반대했다.

그러나 현재 코민테른의 초좌익 노선은 위에서 제시한 어느 역사적 유형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코민테른의 우두머리인 소련공산당은 잘 알고 있듯이 공업노동자 계급에 기초해 있으며 좋든 나쁘든 볼셰비키주의 전통에서 나왔다. 코민테른의 각국 지부들도 대부분 노동계급 조직이다. 각국 공산당의 초좌익 정책은 각 나라의 각기 다른 조건 속에서도 동시에 같은 수준으로 등장하고 있다. 각자가 처한 조건들의 차이는 공산당의 초좌익 노선이 공통의 사회적 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물론 중국과 영국에서 동일한 “원칙적” 성격을 가진 사안과 관련하여 초좌익 노선이 등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새로운 초좌익 경향의 열쇠는 어디에 있는가?

문제는 복잡하다. 그러나 동시에 대단히 중요한 상황이 결부되어 있다. 즉 초좌익 노선은 현재 코민테른 지도부의 한결같은 또는 기본적인 특징이 아니다. 이 사실 때문에 이 문제는 명료해진다. 코민테른의 현 지도부는 1928년까지 공공연히 기회주의 정책을 폈다. 그리고 대단히 중요한 많은 문제에 대해서 멘셰비키주의 편으로 완전히 넘어가 버렸다. 1924년에서 1927년까지 개량주의자들과의 합의는 의무로 간주되었을 뿐 아니라 당이 자신의 독자성, 비판의 자유, 심지어는 노동계급의 토대를 포기하는  선까지 인정되었다. (저자 주: 몇 년간 지속된 코민테른의 기회주의에 대해서는 필자의 저서 [레닌 이후의 제 3 인터내셔널], [연속혁명론], [현재 누가 코민테른을 주도하고 있는가?] 등의 저작에 자세히 분석되어 있다.) 따라서 지금 우리의 논의는 특정의 초좌익 경향이 아니다. 과거 격심한 초우익적 좌충우돌을 보였던 코민테른이 이제 오랫동안 초좌익적 좌충우돌을 보이고 있다. 이 사실이 논의의 초점이 되어야 한다. 코민테른의 이런 외적인 증상들까지도 중도주의가 지금 이 논의의 주제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중도주의는 개량주의와 맑스주의 사이에 위치하며 개량주의에서 맑스주의 또는 맑스주의에서 개량주의로 진화하는 모든 단계들을 종종 의미한다. 이것이 중도주의의 형식적 묘사적 측면이다. 그러나 맑스주의와 개량주의는 모두 탄탄한 사회적 지지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맑스주의는 노동계급의 역사적 이해관계를 표현하고 있으며 개량주의는 자본주의 국가 내에서 노동계급 관료와 노동귀족층의 특권적 지위를 대변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 경험에 의하면 중도주의는 독자적인 사회적 토대가 없었으며 있을 수도 없었다. 노동계급 내부의 다양한 계층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각기 다른 시기에 혁명의 길로 나아간다. 장기간의 산업부흥기나 패배 후 정치적 퇴조기에 노동계급은 좌에서 우로 기운다. 그리고 좌로 기울기 시작하는 부위들과 충돌한다. 정치그룹들은 진화과정에서 여러 단계 발전이 지연되면서 이 와중에 일시적인 지도부를 찾아내고 나름의 강령과 조직을 갖는다. 그렇다면 이 다양한 경향들이 “중도주의”라는 개념에 포괄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유래, 사회적 구성, 진화의 방향 등이 각기 다른 이 정치그룹들은 서로 가장 잔혹하게 투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도 중도주의의 다양한 정치적 성격은 그대로 유지된다.

일반적으로 중도주의는 개량주의의 좌파적 가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특정 중도주의 경향이 개량주의나 맑스주의의 어느 진영에 속하는 지는 기존의 공식으로 금방 알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바로 이 때문에 특정 그룹의 구체적 구성요소와 내적 경향을 매번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로자 룩셈부르크의 정치적 오류 가운데 일부는 중도주의 좌파적 성향이라고 정당하게 규정할 수 있다. 한술 더떠서 정치적으로 로자 룩셈부르크와 레닌 사이에 존재한 다양한 경향들의 대다수는 좀더 강하거나 좀더 약한 중도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코민테른 관료집단 내의 백치들, 무식쟁이들, 돌팔이들만이 로자 룩셈부르크를 중도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다. 맨 위의 스탈린부터 그 이하까지 현재 코민테른 “지도자들”은 정치적으로 이론적으로 도덕적으로 이 위대한 여성 혁명가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문제의 핵심을 모르는 자들은 필자가 “중도주의”를 두 번 이상 남용하여 노동계급 운동 내의 너무 많은 그룹과 경향들을 이 범주에 포괄시키고 있다고 비난한 바 있다. 사실 중도주의 유형의 다종다양함은 이미 말한 바 있듯이 현상 그 자체의 본질일 뿐 용어의 남용은 결코 아니다. 소자본가 계급이 아주 다양하고 모순적인 현상들을 보인다고 맑스주의자들은 분석해 왔다. 그리고 이 분석 때문에 이들은 빈번히 비난받았다. 이 점을 상기하면 중도주의의 다양성이 더 잘 이해될 것이다. 사실 “소자본가”라는 범주에는 처음 보기에는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실, 사고, 경향들이 포괄된다. 소자본가 성향은 농민운동과 도시 개량주의의 급진적 경향을 의미한다. 프랑스 자꼬뱅파와 러시아 나로드니끼는 모두 소자본가 경향이다. 프루동주의자들과 블랑키주의자들도 소자본가 경향이다. 현 시기의 사민주의와 파시즘도 소자본가 경향이다. 프랑스의 무정부주의적 조합주의자들, “구세군”, 인도의 간디주의 등등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철학과 예술 분야로 들어가면 더욱 더 다양한 양상이 전개된다. 그렇다고 맑스주의가 말장난에 탐닉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소자본가 계급이 그 사회 성격 상 대단히 이질적인 요소들을 많이 포괄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이 계급의 맨 밑바닥은 노동계급과 겹쳐지면서 룸펜노동자 계층까지 포괄한다. 이 계급의 맨 꼭대기는 자본가 계급과 겹친다. 오랜 생산형태에 기초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현대적인 산업에 그 기초를 급격히 확대하고 있다(신“중간계급”). 이 계급이 사상적으로 무지개 색조를 보이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어떤 의미에서 노동운동 내부의 중도주의는 부르조아 사회의 소자본가 이데올로기와 같은 기능을 한다. 중도주의는 노동계급의 진화, 노동계급에 대한 다른 계급들의 압력, 노동계급의 혁명적 후퇴와 정치적 성장 등을 반영한다. 따라서 중도주의의 팔레트가 온갖 색깔로 화려한 것은 당연하다! 중도주의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분석을 통해 모든 중도주의의 진정한 성격을 탐구해야 한다.

한편 코민테른 지도 분파는 “일반적인 의미”의 중도주의가 아니라 중도주의의 아주 뚜렷한 역사적 구체적 형태일 뿐이다. 그리고 최근에 등장했지만 강력한 사회적 뿌리를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문제는 소련의 관료집단이다. 스탈린주의 이론가들의 글에는 사회계층이 존재하지 않는다. “레닌주의”, 구체적으로 현실화되지 않은 지도력, 사상적 전통, 볼셰비키주의의 정신, 이해하기 힘든 “총노선” 등만 등장한다. 그리고 소방수가 호스를 다루듯이 총노선을 휘두르면서도 살아 움직이는 관료집단에 대해서는 아무 얘기도 하지 않는다.

한편 이 관료집단은 육신이 없는 귀신과는 전혀 다르다. 먹고 마시고 자식을 기르고 육중해 보이는 똥배를 가지고 있다. 낭랑한 목소리로 법을 제정하며 자기에게 충성하는 자들을 직접 뽑고 상관에게 충성을 바치며 자신에 대한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총노선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관료들은 몇백만을 헤아린다. 몇백만이라! 이 숫자는 10월 혁명 당시 공업노동자의 숫자보다 더 많다. 이 관료들의 대다수는 희생, 자기부정, 위험 등을 수반하는 계급투쟁에 참여해 본 적이 없다. 이 상당한 숫자의 인간들은 지도층의 일부로서 정치경력을 시작했다. 이들은 국가권력에 의해서 뒷받침되고 있다. 이로 인해 이들은 생계를 보장받으며 주위의 대중보다 상당히 높은 곳에 위치한다. 차려 자세를 취하고 서있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실업의 위험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전혀 없다. 필요한 순간에 희생양이 되어 직속상관의 책임을 면해주기만 하면 가장 엄청난 오류조차 용서받는다. 그렇다면 수백만에 이르는 이 지도층은 사회적 비중과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가?

노동관료와 노동귀족이 기회주의의 사회적 기초라고 우리는 옛날 책에서 읽어 알고 있다. 그런데 러시아에서 이 현상은 새로운 형태를 띠고 있다. 자본주의 세계에 의해 포위된 후진국 러시아가 노동계급 독재체제를 구축했다. 이 토대 위에 사상 처음 강력한 관료기구가 노동계급 상층부에 형성되었다. 관료집단은 대중 위에 군림하여 법을 하달한다. 엄청난 자원을 손에 쥐고 있으며 내적인 상호책임에 의해 결속되어 있다. 노동자 정부의 정책에 자신의 이해관계, 방법, 법규 등을 끼워 넣는다.

우리는 무정부주의자가 아니다. 노동자 정부가 필요하며 따라서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기에 관료집단이 불가피하게 존재한다는 점을 이해한다. 그리고 특히 후진적이며 고립된 나라에서 이 점이 내포하고 있는 위험성을 이해하고 있다. 소련 관료집단에 대한 숭배는 맑스주의자의 가장 부끄러운 오류이다. 레닌은 당을 자율적인 노동계급 전위로 만들려고 모든 노력을 다했다. 그리고 이 당이 국가기구 위에 군림하여 이것을 통제하고 제어하고 지휘하고 숙정하게 만들려고 애썼다. 이를 통해 일국적 차원 뿐만 아니라 국제적 차원에서 노동계급의 이해를 관료집단의 이해보다 더 높은 곳에 두려고 했다. 당의 국가기구 통제를 가능하게 할 첫 번째 조건으로 레닌은 당원 대중의 당기구 통제를 처방으로 제시했다. 소비에트 시기 특히 서거 2년 전 그의 논문, 연설, 편지 등을 주의 깊게 읽어보면 얼마나 대단한 경각심을 가지고 그가 이 시급한 문제에 마음을 쏟았는지를 주목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가 서거한 후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혁명과 내전을 통틀어 당과 정부를 주도했던 지배층 전체가 일시에 교체되고 제거되고 전멸되었다. 이들 대신 이름도 없는 관료들이 대신 등장했다. 레닌 생전에 관료집단은 강보에 싼 갓난아기였다. 그러나 관료주의에 대한 그의 투쟁은 대단히 격렬했다. 그러나 지금 관료기구는 하늘을 찌르는 기세를 얻었고 관료주의에 대한 투쟁은 완전히 소멸되었다.

그렇다면 진정 누가 이 투쟁을 수행할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자율을 행사하는 노동계급의 전위로서의 당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당기구는 국가행정기구와 융합되어 버렸다. 당내에서 총노선을 관철시키는 가장 중요한 도구는 비밀경찰이다. 관료집단은 당원 대중의 지도부 비판 뿐 아니라 자기 휘하 이론가들의 자신에 대한 발언과 연구마저 금지시켜 버렸다. 좌익반대파는 관료집단의 특수한 역할 및 이해관계에 대해서 공공연히 말한다. 그리고 노동계급과는 전혀 이질적인 새로운 지배층의 육신과 총노선이 분리될 수 없다는 비밀을 폭로한다. 무엇보다도 이 때문에 좌익반대파는 이들의 미칠듯한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노동자 국가의 지배집단이므로 자신들은 오류를 범할 수 없다고 관료집단은 결론내린다. 이들은 묻는다: 노동자 국가의 관료집단이 어떻게 퇴보할 수 있는가? 이들은 국가와 관료집단을 역사적 과정이 아니라 영구불변의 범주로 간주한다. 성스러운 교회와 신에 의해 영감을 받은 사제들이 죄를 지을 수 있는가? 자본주의 세계에서 투쟁하면서 노동계급 위에 군림하게 된 노동자 관료집단이 노스케, 샤이데만, 에버트, 웰스 등의 개량주의 사민당으로 퇴보할 수 있다면 노동자 관료집단이 혁명에서 승리한 노동계급 위에 군림하면서 왜 퇴보할 수 없는가?

소련 관료집단의 지배적이며 통제될 수 없는 지위는 노동계급 혁명가의 심리상태와 많은 측면에서 직접 충돌한다. 국내외 정치에서 자신들의 목적과 결속은 대중의 혁명교육보다 더 우선하며 국제혁명의 임무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부농, 엔지니어, 행정관료, 중국의 부르조아 지식인, 영국의 노동조합 관료 등의 이해관계와 심리상태는 비숙련 노동자, 빈농, 중국의 봉기 대중, 영국 파업 노동자 등의 심리상태나 요구에 비해 자신들에게 훨씬 가까우며 이해하기가 더 쉽다. 스탈린주의 분파는 이 사실을 수년간 증명해 왔다.

그렇다면 왜 스탈린주의 분파는 일국적 기회주의 노선을 끝까지 추구하지 않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이 노동자 국가의 관료집단이기 때문이다. 국제 사민주의 세력은 부르조아 권력의 토대를 옹호한다. 반면에 소련 관료집단은 10월 혁명에 의해 결정된 사회적 토대에 적응하지 않을 수 없다. 이로부터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의 이중적 심리와 정책이 나온다. 이들의 정치적 성향은 중도주의이다. 그러나 노동자 국가라는 토대 위에 군림하는 중도주의이다. 이들이 추구하는 정책의 이중성은 이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중도주의 그룹들은 대개의 경우 일시적이거나 과도기적이다. 특정 노동자 부위의 우 또는 좌로의 진화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비에트 공화국이라는 조건 속에서 중도주의는 수백만의 관료집단이라는 형태로 훨씬 더 견고하고 조직화된 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기회주의 또는 일국주의를 대변하면서도 소련 관료집단은 부농과의 헤게모니 싸움에서 자신의 토대를 유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세계적 차원의 운동에서 자신의 “볼셰비키적” 전통과 명성에 대해서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 정신적으로 자신과 아주 가까운 중국 국민당과 암스테르담 관료(주 54)들의 꽁무니를 쫓은 후 소련 관료집단은 사민주의 세력과 매번 날카로이 대립하였다. 이 대립은 세계 자본가 계급의 소련에 대한 적대감을 반영하고 있다. 소련 관료집단의 좌편향 좌충우돌의 근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소련 관료집단은 자신들이 기회주의와 일국주의에 특별히 면역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때로는 사민주의 세력과 날카로이 대립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아전인수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은 철두철미한 일국적 개량주의를 따를 수 없기 때문에 맑스주의와 일국적 개량주의 사이에서 좌충우돌할 수밖에 없다. 자신들의 권력, 자신들이 휘두르는 자원, 자신들의 지위가 내포하는 격심한 모순 등을 그대로 반영하는 이 관료적 중도주의의 동요현상은 유례가 없는 광범위한 정치적 좌충우돌을 가져왔다. 즉 불가리아와 에스토니아에서의 초좌익 모험주의(주 55)에서 장개석, 라디치, 퍼쓸 등과의 동맹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영국 파업파괴자들과의 부끄러운 연대에서 대중조직들과의 공동전선을 완전히 부정하는 데에 이르기까지 이 좌충우돌은 극과 극을 달렸다.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은 자신의 정치 방식과 좌충우돌을 다른 나라에 수출한다. 당기구를 통해 코민테른을 주도할 뿐만 아니라 지령을 하달하기 때문이다. 스탈린이 중국 국민당을 지지하자 텔만도 똑같이 행동했다. 1926년 가을 코민테른 집행위원회 제 7차 전원회의에서 국민당 대표이자 장개석의 대사인 샤오리치는 텔만, 세마르, 레멜러 등과 “트로츠키주의”에 대항하여 동맹을 맺었다. 샤오리치 “동지”는 이렇게 말했다: “코민테른의 지도를 받아 중국 국민당이 자신의 역사적 임무를 완수할 것이라고 우리 모두는 확신하는 바입니다.” (제 7차 전원회의 회의록) 그가 한 말은 허구가 아니다. 역사의 기록으로 남아있다!

1926년판 [적기]지에는 파업파괴자인 영국 노동조합 관료들과 결별할 것을 트로츠키가 요구함으로서 자신의 멘셰비키주의를 증명했다는 내용의 글들이 합창이라도 하듯이 다수 실려있다. 레닌의 주도하에 코민테른 제 3차 그리고 제 4차 세계대회는 텔만, 탈하이머, 벨라 쿤, 프로싸르 등에 대항하여 혁명적 정책들을 정식화했다. 그런데 이 정책들을 실천에 옮겨 대중조직들과의 공동전선을 옹호하는 것이 이제는 “멘셰비키주의”가 되었다.

당원 대중의 통제에서 벗어난 자립적 관료집단이 각국 공산당을 장악하지 않았다면 극과 극을 달리는 이러한 좌충우돌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바로 여기에 모든 악의 근원이 있다!

혁명정당의 힘은 당 전위의 독립성에 있다. 당 전위는 중핵들을 통제하고 선택하고 자신의 지도자들을 교육시키면서 이들을 지지하여 서서히 지도부의 위치로 끌어올린다. 이로서 중핵과 대중, 지도부와 중핵 사이에 연관이 확립되고 이로서 지도부 전체는 내적 자신감을 갖게 된다. 현재 각국 공산당에는 이런 것이 없다. 당 지도부는 임명되고 또한 이들은 자기 부관들을 직접 임명한다. 당원 대중은 임명된 지도부를 인정하도록 강요받는다. 임명된 지도부는 인위적으로 자신들의 공식성을 선전한다. 당의 중핵들은 당을 받치고 있는 대중이 아니라 임명된 지도부에 목을 맨다. 결과적으로 자신들의 생계와 영향력의 근원을 상당한 정도 당원 대중 외부에서 찾는다. 이들은 정치 구호들을 투쟁 경험이 아니라 소련의 전보를 통해 조달받는다. 한편 스탈린은 긴급 상황에 대비하여 자신의 지령을 그대로 따르는 각국 당지도부의 숙청 문서들을 미리 준비하고 있다. 어느 순간에 바람에 날리는 깃털처럼 자신들이 축출될 것이라는 사실을 각국 당지도부는 알고 있다.

이렇게 해서 코민테른 전체에는 폐쇄 관료층이 형성되어 중도주의라는 이름의 박테리아를 길러내는 배양물이 된다. 소련 관료집단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조직적으로는 대단히 안정되어 있고 견고하지만 텔만, 레멜러 등의 중도주의는 정치적 관계가 대단히 불안하다. 대중과의 유기적인 결합을 통해서만 형성되는 정치적 확신이 없기 때문에 무오류의 공산당 집행위원회는 엄청난 좌충우돌을 범하고 있다. 진지한 사상투쟁이 불가능하면 할수록 비방, 암시, 중상을 더욱 남발한다. “성격이 거칠고 당에 대한 충심이 결여되어 있다”고 레닌은 스탈린을 평가한 바 있다. 이 평가는 관료집단 전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관료적 중도주의에 대한 지금까지의 분석에 기초하여 좌익반대파는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에 대한 정책을 결정한다. 즉 소비에트 공화국의 영토와 10월 혁명의 사회적 토대를 이들이 방어하는 한 우리는 이들을 완전히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지지한다. 국가행정기구를 휘두르며 관료적 좌충우돌을 통해 혁명과 사회주의 건설을 방해할 때 우리는 공개적으로 이들을 비판한다. 관료적 강압을 통해 국제 노동계급의 투쟁을 교란시키는 한 우리는 이들에 대해 비타협적으로 투쟁한다.

11. 소련의 경제 성공과 체제 관료화 사이의 모순

“일국 차원에서는” 혁명 정치의 토대를 마련할 수 없다. 현재 독일 혁명의 문제는 소련의 정치 지도력 문제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이 연관은 철저히 이해되어야 한다.

노동계급의 독재(dictatorship of the proletariat)는 유산계급의 저항에 대한 대답이다. 자유의 제한은 혁명의 군사적 상황 즉 계급전쟁의 조건 속에서 나온다. 이 관점에서 소비에트 공화국의 내부 안정, 경제 성장, 부르조아 계급의 저항 분쇄 특히 최후의 자본가 계급인 부농 “청산” 등의 성공은 당, 노동조합, 소비에트 등의 민주주의를 소생시킬 것이다.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은 결코 지겨워하지 않은 채 다음과 같이 반복해서 말한다: “우리는 이미 사회주의 체제로 들어섰다”; 현재의 집단화는 부농 계급을 청산하는 일 그 자체이다; 차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이 과정의 마무리 작업이 될 것이다, 등등. 그렇다면 왜 이 과정에서 관료기구는 당, 노동조합, 소비에트를 완벽히 억압했는가? 그리고 왜 관료기구는 국민투표를 통해 집권하는 관료적 군사적 보나파르트 정권을 수립시켰는가? 이와 반대로 혁명 직후 기근과 내전에 시달리던 때에 왜 당의 정치생활은 민주주의를 완전히 꽃피웠는가? 레닌과 중앙집행위원회를 비판할 권리를 당연시 여긴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지금은 왜 스탈린과 견해를 조금만 달리해도 당에서 쫓겨나고 행정적 탄압을 받아야 하는가?

제국주의 국가들의 소련 침략 위협은 관료 독재체제의 성장을 설명할 수 없으며 더욱이 정당화할 수도 없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계급들이 어느 정도 청산되었다면 이것은 국가 사멸의 시작을 의미할 것이다. 이 나라는 관료화나 노동계급 독재가 아닌 오직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으로 외부의 적들을 당당히 물리칠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필자는 노동계급 독재의 해체를 주장하지 않는다. 그러기에는 시기가 너무 이르며 우리는 아직도 “사회주의 체제로 진입하지”도 않았다. 지금 우리는 이와는 전혀 다른 주제를 논하고 있다: 노동계급 독재의 관료적 퇴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현재 소련에는 국가 및 당기구에 의존하여 지배계급인 노동계급의 목을 조르는 개인 독재체제가 수립되어 있다. 그런데 이 체제는 사회주의 건설에 성공했다고 주장한다. 이 두 사실 사이에 존재하는 당당하고 엄청나며 살인적인 모순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가? 경제는 발전하면서 정치는 왜곡되는 이 기형적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소련의 경제적 성과는 대단하다. 경제적 측면으로 보면 10월 혁명은 지금쯤 정당화되고도 남는다. 경제성장 관련 계수들의 높은 수치는 생산의 문제에서도 자본주의 방식보다 사회주의 방식이 비교할 수 없이 우월하다는 것을 논란의 여지없이 증명했다. 만약 후진국 러시아가 아닌 선진국에서 사회주의 경제가 시도된다면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은 얼마나 더 확연할 것인가!

그러나 10월 혁명이 제기한 문제는 개괄적으로나마 아직도 충분히 해명되지 못했다.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은 소련 경제의 근본 원리와 경향만 가지고 이것을 “사회주의”경제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이것들만으로는 안된다. 소련 경제의 성공은 여전히 낮은 경제 토대 위에서 진행되고 있다. 국유 산업은 최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이 이미 졸업한 단계에 이제서야 진입했을 뿐이다. 배급품 상점에서 줄을 서고 있는 근로여성은 그녀 나름대로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관료들이 경멸적으로 부르는 이 “소비자”의 기준이야말로 결정적이다. 근로여성과 관료들 사이의 이견에 대해 좌익 반대파는 근로여성의 견해를 지지한다. 관료들은 성과를 과장하고 모순들을 어물쩍 넘겨버리고는 근로여성의 비판을 막기 위해 그녀의 목을 조르고 있다.

작년에 관료집단은 기존의 평등 임금체계에서 차등적 도급체계로 정책을 갑자기 바꾸었다. 현재 소련의 생산력과 전반적 문화 수준은 대단히 낮다. 따라서 노동에 대해 평등하게 임금을 지급할 수는 없다. 이 점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사회주의 건설의 문제는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 형태로만 해결되지는 않는다. 사회의 일정한 기술력을 전제로 한다. 현재 소련은 낮은 기술력 때문에 생산수단의 집단적 소유형태에도 불구하고 선진 자본주의보다 낮은 생산력을 보유하고 있다. 한편 기술력의 발전은 생산력을 자동적으로 국경선 너머로 끌고 나간다. 결국 생산력 발전은 국제적 차원에서 해결될 수밖에 없다.

너무 일찍 폐기되었던 도급제 임금체계로 다시 정책을 전환시킨 후 관료집단은 평등 임금체계를 “부농”의 원리라고 말한다. 이것은 정말이지 황당한 주장이다. 이로써 스탈린주의자들은 위선과 거짓의 막다른 골목으로 자신들을 몰아가고 있다. 이들은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평등 임금체계를 너무 빨리 도입했다; 사회주의에 도달하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 아직 너무 빈곤하므로 반(半)자본주의적 즉 부농 방식의 임금체계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다.” 이 표현은 사회주의적 목표와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다만 관료들의 현실 날조와 화해할 수 없는 모순을 일으키고 있을 뿐이다.

도급제로의 후퇴는 후진 경제의 저항에 의해서 필연화되었다. 특히 너무나 과도한 관료적 행정적 대약진이 추진된 농촌 경제에서 이런 식의 후퇴 조치들이 많이 취해질 것이다.

공업화와 집단화는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는 관료집단이 일방적으로 근로대중에게 명령하는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노동조합은 소비와 축적 사이의 관계에 영향을 미칠 모든 수단을 박탈당했다. 농민의 계급 분화도 경제원리가 아니라 행정 조치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계급을 완전히 청산시키려는 관료집단의 사회 조치들은 기본 과정인 생산력의 발달보다 너무 앞서 나가고 있다.

이 결과 기본 공업비용의 증가, 품질 저하, 가격 상승, 소비재 품귀 등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실업이 다시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소련의 경제 성장과 관료집단의 경제정책 사이에 빚어지는 모순 때문에 국내 정치의 격심한 긴장이 초래되고 있다. 관료집단은 경제적 요구에 한없이 처지거나(1923-1928) 이것에 놀란 나머지 도약을 시도하여 순전히 행정 조치들을 통해 허비된 시간을 만회하려고 한다(1928-1932). 여기서도 우편향 좌충우돌은 좌편향 좌충우돌로 역전되고 있다. 이렇게 극단적인 좌충우돌 후에 관료집단은 경제 현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노동자들의 정서와 자신들의 정책이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결과 자신들의 정책이 현실에 뒤지거나 도약하거나 간에 노동자들의 비판을 허용할 수가 없다.

노동자와 농민은 자신의 노동과 장래가 걸린 문제들을 스스로 결정하고 해결할 모든 권리를 완전히 박탈당하고 있다. 관료집단이 이들을 지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이것뿐이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체제의 가장 커다란 위험요인이다! 대중적 저항에 대한 끊임없는 공포심은 관료적 개인적 독재라는 “이중의 족쇄”를 만들고 있다.

그렇다면 공업화와 집단화의 속도를 늦추어야 하는가? 의심의 여지없이 일정 기간 이 조치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이 기간은 짧게 끝날 수도 있다. 노동자 자신이 정치 경제 활동에 참여하고 관료집단을 실제로 통제해야 된다. 상부 단위가 대중에 대해 더 깊은 책임을 느끼면 생산과정이 유리하게 돌아갈 것이다. 이 결과 체제 내부 갈등이 줄어들고 낭비적인 경제적 좌충우돌이 최소한으로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노동력과 장비가 좀더 효율적으로 배분될 것이고 경제성장 계수들은 상승할 것이다. 소비에트 민주주의는 경제 운영에 필수적인 요건이다. 이와 반대로 관료집단의 독재는 비극적이고 경악할 경제적 결과들을 초래할 것이다.

소련의 발전과정에서 스탈린주의 사이비 지도자들이 판을 치던 시기를 개괄하면 쉽게 이런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혁명과 내전에 대한 대중의 염증이 관료화의 기본전제이다. 기근과 유행병이 나라 전체를 휩쓸었다. 정치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나 버렸다. 모두의 생각은 빵 한 조각에 쏠렸다. 전시공산주의 체제에서는 모두 똑같이 기아 수준의 식량을 배급받았다. 신경제정책으로 이행하면서 경제정책이 처음으로 성공하였다.(주 57) 이제 배급품은 좀더 풍부하게 제공되었으며 배급이 필요없는 계층도 생겨났다. 상품경제의 재도입은 기본 비용의 합리적 계산, 초보적 수준의 경영 합리화, 공장의 잉여노동 제거 등의 효과를 거두었다. 상당 기간에 걸쳐 경제적 성공과 실업의 증가가 공존했다.

관료기구의 권한이 실업 때문에 강화되었다는 사실을 단 한순간도 잊어서는 안된다. 몇 년의 기근을 겪으면서 노동자들은 실업 공포에 시달렸다. 독립적이며 비판적인 노동자들은 공장에서 해고되었고 반대파들에 대한 블랙리스트가 작성되었다.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에게 이것은 대중을 통제하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효과적인 무기 중의 하나가 되었다. 이러한 무기를 휘두를 상황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관료집단은 레닌주의 정당을 결코 압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후의 경제적 성공들은 서서히 공업 부문의 실업자들을 없애 나갔다. 그러나 집단화를 통해 은폐된 농촌의 잉여노동력은 여전히 없어지지 않았다. 어쨌든 이제 공업노동자는 실업 공포에서 해방되었다. 일상 경험을 통해 관료집단은 선견지명 및 자기의지 결여가 자신의 임무 수행에 엄청난 장애로 작용하는 것을 알고 있다. 소련의 관변 언론은 불충분한 자유로 노동자의 창발성이 억압되는 개별 기업과 공장들을 폭로하고 있다. 마치 노동계급의 창발성이 공장에서만 억압되는 것 같다. 그리고 당, 소비에트, 노동조합에서 노동계급이 완전히 노예가 되고 있는 가운데 공장만이 산업 민주주의의 오아시스인 것 같다.

현재 노동계급의 심리상태는 1922년 1923년의 경우와는 다르다. 노동계급은 수적으로 문화적으로 성장했다. 경제를 회복시키고 상승시킨 업적을 이미 성취했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자신감은 상승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감의 상승은 관료 체제에 대한 불만으로 바뀌고 있다.

당이 압살되고 개인 독재와 자의적 정치가 판을 치는 상황에서 소비에트 체제 역시 약화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게 된다. 그러나 소비에트 체제는 훨씬 더 강력해 졌으며 이 체제와 관료적 철권통치 사이의 모순은 극단적으로 날카로와졌다. 스탈린 정권은 경제 성공이 자신의 권력을 강화시키는 대신 약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놀란다. 이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나사를 더 세게 조이고 정교한 아첨 이외에 모든 형태의 “자아비판”을 금지해야 했다.

경제발전이 정치 기반과 모순을 일으킨 경우는 이번만이 아니다. 그러나 정치적 조건들 가운데 어떤 것이 불만 요인인지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지금 드러나고 있는 정권 반대의 물결은 사회주의적 과업, 소비에트 정치형태, 공산당에 대한 반대가 결코 아니다. 불만은 통치기구와 이것의 인격체인 스탈린에게 향해있다. 소위 “트로츠키주의 밀수품”에 대한 격렬한 투쟁의 첫 단계가 시작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권 반대세력은 정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완강하다. 적은 모든 곳에 있으면서도 어느 곳에도 있지 않다. 적은 공장과 학교에서 튀어나온다. 그리고 역사학 잡지와 모든 교과서에 침투한다. 역사적 사실과 문서들은 관료집단의 죄를 확정지으면서 이들의 동요와 오류들을 폭로한다. 관료집단은 과거를 평온하게 객관적으로 회상할 수 없게 되었다. 과거를 재구성하고 통치기구와 그 수반의 무오류를 의심할 모든 구석들을 덧칠하여 막아야 한다. 지금 우리는 이성을 상실한 통치집단의 특징들을 모두 목격하고 있다. 야로슬라프스키(주 58)는 믿을 수 없는 인물로 판명이 났다! 이것은 우연한 에피소드나 사소한 일이나 개인적 다툼도 아니다. 첫 단계에서는 관료집단을 강화시킨 경제 성공이 이제 사태의 변증법에 의해 관료집단을 위협하는 상황이 이 사건의 뿌리이다. 지난번 전당대회 즉 스탈린 당기구 회의에서 세 번 네 번 전멸되고 파묻힌 “트로츠키주의”가 “부르조아 반혁명의 전위”라고 선언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어리석고 정치적으로 아주 볼품이 없는 선언은 개인적 보복 차원에서 스탈린이 보유한 아주 “실제적인” 계획들의 정체를 보여주고 있다. 스탈린을 당서기로 임명하는 문제에 대한 레닌의 경고는 정말이지 농담이 아니었다. “이 요리사는 매운 요리만 만들 것입니다.” 이 요리사는 요리솜씨를 아직 다 발휘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론 및 행정 분야에서 나사가 조여졌으나 스탈린 개인 독재는 확실히 황혼을 맞고 있다. 통치기구는 온통 금이 가고 있다. 야로슬라프스키라는 틈은 수백 군데에 널려있다. 자명하고도 논란의 여지없는 소련 경제의 성공, 노동계급의 수적인 증대, 집단농장 초기의 성공 위에 새로운 정치위기가 준비되고 있다. 이 사실은 관료적 절대주의의 청산이 곧 소비에트 체제의 해방, 발전, 개화라는 진리를 증명하고 있다. 사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소비에트 체제는 붕괴의 위험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바로 이 때문에 관료집단의 최후 시기는 수많은 해악을 드러낼 지도 모른다. 이제 이들에게 정치의 중심문제는 권위의 유지이다. 정치적 술수가 부족한 역사학자들은 1917년 당시 스탈린의 업적들을 더 많이 발굴하지 못한 이유만으로 당에서 쫓겨난다. 그렇다면 국민투표로 정당성을 인정받은 이 정권은 1931년 1932년의 오류들을 인정할 수 있을까? 아니면 사회파시즘론을 폐기할 수 있을까? 아니면 파시스트들이 먼저 권력을 잡게 한 후 우리가 정권을 잡겠다는 식으로 독일 상황을 정리한 스탈린의 오류를 없는 것으로 덮어버릴 수 있을까?

독일의 객관적 상황은 그 자체로 너무 중대하다. 따라서 독일 공산당 지도부에게 행동의 자유가 있다면 이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우리 편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자유가 없다. 좌익반대파가 1917년의 승리로 검증 받은 사상과 구호들을 제기할 때 스탈린 파벌은 오락거리를 만들어 보려고 “트로츠키주의”에 반대하는 국제 캠페인을 시작하라는 명령을 전문으로 보낸다. 이 캠페인은 세계 노동계급의 죽고 사는 문제인 독일 혁명의 문제와는 아무 관계도 없다. 다만 이 캠페인은 볼셰비즘의 역사와 관련하여 스탈린의 형편없이 날조된 논문을 기초로 진행된다. 세계 사회주의 혁명 완수라는 이 시대의 중대한 과업과 관료집단의 치졸한 사상적 원천 사이에는 도저히 메울 수 없는 심연이 가로놓여 있다. 코민테른의 노선은 비열, 무가치, 비극의 극치이다.

스탈린주의 정권의 문제와 독일 혁명의 문제는 절대 풀 수 없는 매듭으로 묶여있다. 임박한 사태들은 독일 혁명은 물론 러시아 혁명의 이익을 위해서도 이 매듭을 풀거나 잘라버릴 것이다.

12. 브란틀러 그룹과 스탈린주의 관료집단

국제 노동계급과 소련의 이해 사이에는 모순이 있지도 않으며 있을 수도 없다. 그러나 이 법칙을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에게 적용하는 것은 근본부터 잘못이다. 스탈린 정권은 세계혁명 뿐 아니라 소련의 이해와도 더욱 커다란 모순을 일으키고 있다. 후고 우르반스는 소련 관료집단의 사회적 기초가 노동자국가인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오토 바우어와 함께 우르반스는 모든 계급 위에 기초한 국가의 개념을 설정했다. 그러나 바우어와는 달리 우르반스는 오스트리아가 아니라 현 소비에트 공화국을 그 예로 삼고 있다.

한편 탈하이머는, “소련의 노동계급적(?) 성격과 경제 건설의 사회주의적 성격에 대해 의심하는(?) 트로츠키의 입장”([노동자 정치], 1932년 1월 10일)은 “중도주의”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을 통해 탈하이머는 노동자 국가를 소련 관료집단과 동일시하고 있을 뿐이다. 그는 소련을 국제 노동계급의 관점이 아니라 전적으로 스탈린주의 파벌의 안경으로 볼 것을 요구한다. 다른 말로 하면, 그는 노동계급 혁명의 이론가가 아니라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의 하인으로서 논리를 전개한다. 모욕을 당하고 명예에 손상을 입었으나 그는 여전히 하인이며 스탈린 주인님의 용서를 기다리고 있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그는 스탈린 정권에 “반대”하면서도 감히 관료집단을 큰 소리로 언급조차 못하고 있다. 관료집단은 여호와와 똑같이 이 행위를 용서하지 않는다: “내 이름을 헛되이 부르지 말지어다.”

독일공산당 소수파인 브란틀러 그룹 안에는 양극단이 존재한다. 하나는 나무는 보되 숲을 보지 못하고 또 하나는 숲에 가리어 나무를 볼 수가 없다. 그러나 탈하이머와 우르반스는 서로의 생각이 엇비슷한 것을 알고 소련에 대한 맑스주의적 분석에 대항하는 동맹을 맺는다. 이 행위는 우리의 예상과 전혀 어긋나지 않는다.

옆에 서서 “러시아의 실험”을 의례적으로 “지지”하더라도 부과되는 의무는 전혀 없다. 이 결과 러시아에 대한 지지는 최근 아주 널리 알려진 값싼 상품이 되어버렸다. 온 세상에는 급진적, 반(半)급진적, 인류애적, 평화주의적, “또한 사회주의적” 기자, 관광객, 예술가들이 널려있다. 이들은 브란틀러 그룹과 똑같이 소련과 스탈린을 무조건 지지한다. 레닌과 필자를 격렬하게 비판했던 버너드 쇼는 이제 스탈린의 정책을 흔쾌히 지지하고 있다. 레닌이 살아있던 당시 공산당에 반대했던 막심 고리키도 이제 흔쾌히 스탈린을 지지한다. 프랑스 사민주의자들과 행보를 같이 했던 바뷔스(주 59)도 스탈린을 지지한다. 2류 소자본가 급진주의자들의 월간지 [새로운 대중](New Masses)도 라코프스키에 반대하여 스탈린을 지지한다. 독일의 오시츠키는 파시즘에 대한 필자의 논문에 공감하여 필자의 글을 인용한다. 그는 필자의 스탈린 비판이 불공정하다고 말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고참 사회주의자 레데부어는 이렇게 말한다: “스탈린과 트로츠키의 핵심 논쟁에 대해서 말하자면 사회화는 한 나라에서 시행되어 좋은 결말을 이룰 수 있다. 이 점에서 나는 전적으로 스탈린 편이다.” 이런 논조의 예들은 한없이 나열할 수 있다. 소위 이 소련의 “친구들”은 소련의 사회성격 문제를 방관자로서 동정자로서 그리고 가끔 백수로서 바라본다. 물론 뉴욕 증권시장의 친구가 되는 것보다는 소련 5개년 개발계획의 친구가 되는 것이 더 명예로운 일이다. 그러나 중간계급의 좌익에 대한 이러한 수동적 공감은 볼셰비키주의와는 너무도 동떨어져 있다. 소련이 크게 실패하는 순간 이들 다수는 마치 바람 앞의 먼지처럼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이 소련의 “친구들” 모두와 브란틀러 그룹은 소련에 대한 입장이 다른가? 아마 후자가 진실성이 더 결여되어 있는 점을 제외하고는 차이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종류의 지지는 소비에트 공화국을 위해서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런데 좌익반대파와 러시아 볼셰비키-레닌주의자인 우리에게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한다고 탈하이머는 설교하고 있다. 참으로 혐오스럽다.

라보프스키는 소비에트 혁명의 국경 방어 임무를 직접 맡았다. 그는 소련 경제가 취한 최초의 조치들과 농민에 대한 정책을 세밀하게 입안했다. 우크라이나 빈농위원회의 창설도 주도하였다. 그리고 신경제정책을 독특한 우크라이나 상황에 적용하는 책임을 맡았다. 그는 이 정책의 온갖 우여곡절을 알고 있고 지금도 유배지 바르나울에서 이 정책을 열정을 갖고 주시하고 있다. 그리고 매일 매일 오류에 대해서 경고하고 올바른 방법들을 제안한다. 유배지에서 사망한 오랜 투사 코테 신사제와 스탈린에 의해 총살당한 무랄로프, 카알 그루언스타인, 카스파로바, 노스노프스키, 코시오르, 아우셈, 엘진 부자(父子), 딩겔슈테트, 슘스카야, 솔른체프, 스토팔로프, 포즈난스키, 세르묵스, 블룸킨 그리고 스탈린에 의해 감옥에서 고문으로 죽은 부토프 이외에도 감옥에 갇히고 추방당한 수십, 수백, 수천의 사람들 --- 그렇다, 이들은 10월 혁명과 내전에서 싸웠다. 이들은 모두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전선에서 맡은 바 임무를 기꺼이 수행했던 사회주의 건설의 참여자들이었다. 이들이 학교에 가서 탈하이머에게 노동자국가에 대한 올바른 입장을 배워야 하는가?

스탈린의 진보적 정책들은 이미 좌익반대파가 제창했던 것들이다. 이것들을 관료집단이 자기 것으로 이용해 먹고 있다. 좌익반대파는 계획경제, 더 빠른 공업화, 부농에 대한 투쟁, 보다 광범위한 집단화 등을 제안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가로 수년간의 옥고를 치르고 추방당해 왔다. 그렇다면 브란틀러 그룹을 포함하여 스탈린 정권을 무조건 지지하고 동조하는 친구들이 소련의 경제정책에 대해 기여한 공로는 무엇이었는가? 사실을 말하자면 전혀 없다. 소련에서 진행되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한 막연하고도 무비판적인 지지 뒤에는 미적지근한 동조 밖에 없다. 왜냐하면 어차피 자기 조국의 국경선 너머에서 일들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 브란틀러와 탈하이머는 공공연히 이렇게 말한다: “우리 독일사람들에게 스탈린 정권은 당연히 쓸모가 거의 없다; 그러나 러시아인들에게는 좋은 정권이다!”

개량주의자들은 국제 정세를 각국 정세의 합으로 보고 있다. 반면 맑스주의자는 일국의 정책을 국제 정책의 함수로 보고 있다. 이 핵심 문제에서 브란틀러 그룹은 일국적 개량주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즉 말로는 아니지만 실제 행동으로는 국제주의 원칙과 국내 정책의 전제 조건 등을 거부한다.

탈하이머의 가장 가까운 동지는 로이였다. 그의 중국 및 인도 정책은 전적으로 스탈린의 동양의 “노동자-농민” 정부론에서 나왔다. 상당한 기간 로이는 인도 민족민주당의 창당 선전가로 나섰다. 즉 노동계급 혁명가가 아니라 소자본가 민족민주주의자로 활동했다. 동시에 그는 브란틀러 그룹의 중앙기구 요인으로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저자 주: 로이는 최근 영국 노동당 맥도널드 정부에 의해 장기 징역형을 언도받았다. 코민테른 신문들은 이 조치에 대해 항의할 생각이 없다. 장개석과 긴밀히 동맹을 맺을 수는 있어도 제국주의 도살자들에 대항하여 인도의 브란틀러주의자 로이는 절대로 방어할 수 없는 모양이다.)

브란틀러 그룹의 일국적 기회주의는 소련에 대한 이들의 태도에서 가장 조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들의 말을 빌자면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은 러시아에서는 전혀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똑같은 스탈린주의 분파인 독일공산당 지도부는 독일에게 치명적인 해를 입힌다. 왜 그런가? 다른 나라의 사정에 어두워 스탈린이 개인적으로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명확한 오류의 경향 즉 정치적 성향이다. 스탈린이 러시아에 대해서 그리고 까쉥, 세마르, 토레즈가 프랑스에 대해서 알고 있는 만큼 텔만과 레멜러는 독일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함께 이들은 국제적 분파를 이루면서 각국 정책을 수립한다. 그러나 브란틀러 그룹이 보기에 러시아에서는 비난할 것이 전혀 없는 정책이 다른 모든 나라에서는 혁명을 파멸로 이끌고 있다.

브란틀러의 입장은 소련에 대입시킬 경우 특히 운이 좋지 않다. 왜냐하면 그는 스탈린을 무조건 지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핵심에 있어서 좌익반대파보다는 언제나 브란틀러에게 더 가까웠던 라데크는 스탈린에게 투항했다. 브란틀러 역시 이렇게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투항하자마자 라데크는 브란틀러와 탈하이머를 “사회 파시스트”라고 선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독일에서 스탈린주의 정권을 정신적으로 사모하는 브란틀러 그룹은 이러한 비열한 모순으로부터 감히 기어 나올 시도도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실제 목적은 논평할 것도 없이 자명하다. 브란틀러는 스탈린에게 이렇게 말한다: “독일공산당의 지도자로 나를 앉히면 러시아에 대한 그대의 무오류를 인정하겠소. 물론 독일에 대한 나의 정책을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이런 “혁명가들”을 어떻게 조금이라도 존중할 수 있겠는가?

한편 이들은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의 코민테른 정책을 대단히 일면적이면서도 부정직하게 비판하고 있다. 코민테른 정책의 유일한 해악은 “초좌익 노선”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스탈린이 4년간이나 장개석과 동맹한 것을 어떻게 “초좌익”이라고 비난할 수 있는가? 농민 인터내셔널(주 63)을 초좌익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영국 노총 파업파괴자들과의 동맹을 폭동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가? 아시아에서 노동자-농민당을 그리고 미국에서 농민-노동당을 수립하는 것을 초좌익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더욱이 스탈린의 초좌익 노선의 사회적 성격은 무엇인가? 일시적인 무드인가 아니면 질병의 발작인가? 이론가 탈하이머는 답을 할 수 없다.

한편 이미 오래 전에 좌익반대파는 이 수수께끼를 풀었다. 이 현상은 중도주의의 초좌익적 좌충우돌이다. 그러나 지난 9년간의 정세에 의해서 이미 증명된 이 성격 규정을 브란틀러는 인정할 수 없다. 인정할 경우 자신의 정치생명이 끝나기 때문이다. 그는 스탈린 분파와 함께 우편향 좌충우돌을 늘 범하는 한편 좌편향에 대해서는 반발했다. 이를 통해 그는 자기 그룹이 중도주의 우파 성향임을 증명했다. 그리고 마치 마른 나뭇가지처럼 아름드리 나무에서 떨어져 나왔음을 증명했다 --- 이것은 사물의 본성이다. 격심하게 진화하는 과정에서 중도주의 그룹과 부위들은 좌로 우로 떨려나가게 마련이다.

물론 이들이 모든 일에서 오류를 범했다는 것은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텔만과 레멜러에 대항해서 이들은 많은 측면에서 옳았고 지금도 그렇다. 그렇다고 이것이 특별한 현상인 것은 전혀 아니다. 기회주의자들은 모험주의에 대항하여 올바른 입장을 견지할 수 있다. 그리고 반대로 초좌익 경향도 대중을 전취하는 투쟁에서 권력 장악 투쟁으로 전환하는 순간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1923년 말 초좌익 그룹들은 브란틀러를 비판하면서 옳은 말들을 많이 했다. 그러나 이들은 1924년과 1925년의 심대한 오류들을 피할 수 없었다. 이들은 스탈린의 사기성이 농후한 “제 3기” 정책을 비판하면서 기존의 올바른 입장들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이것이 이들의 입장 전반을 올바르게 만들지는 못했다. 각 그룹의 정책은 여러 단계에 걸쳐 분석되어야 한다: 방어적 투쟁의 시기와 공세적 투쟁의 시기, 밀물기와 썰물기, 대중을 획득하는 투쟁의 조건과 권력 장악 투쟁의 조건 등에 따라 달리 분석되어야 한다.

방어와 공세, 공동전선, 총파업 등의 문제만을 하나 하나 전문적으로 다루는 맑스주의 지도부는 존재할 수 없다. 종합적으로 상황 전체를 평가하는 능력, 살아 움직이는 세력들을 분석하고 단계와 전환을 구분하고 이 분석에 기초하여 현 상황에 부합하며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행동의 체계를 수립하는 능력 등이 있을 때에만 이 모든 방법들을 올바로 적용할 수 있다.

브란틀러와 탈하이머는 “대중 전취 투쟁”의 거의 유일무이한 전문가로 자처한다. 얼굴을 똑바로 세운 후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이 신사양반들은 공동전선에 대한 좌익반대파의 주장 자체가 ... 자신들의 견해를 모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야망을 품을 특권은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한다! 한 번 상상해 보자. 하인츠 노이만에게 곱셈 오류를 설명하고 있는데 어느 용감한 산수 선생이 나타나서 모방하지 말라고 다그친다. 그 선생은 우리가 노이만에게 설명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매년 산수의 신비를 설명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브란틀러 그룹의 허세는 지금처럼 흥미롭지 못한 상황에서 그나마 즐거운 순간을 제공했다. 이 신사 양반들의 전략에 관한 지혜는 코민테른 제 3차 세계대회에서 이미 천명된 바 있다. 당시 필자는 “좌파”에 대항하여 대중 획득의 기본원리들을 옹호하고 있었다. 필자의 새 저서 [신노선](The New Course)은 공동전선 정책을 쉽게 이해시키는데 초점을 두었으며 당시 코민테른에 의해 여러 나라 언어로 발간되었다. 이 책에서 필자는 책의 기본 내용들을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강조하였다. 예를 들어 독일판 제 70쪽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지금까지 소개한 내용은 진지한 혁명 경험의 관점에서 보면 아주 기초적인 진실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대회의 일부 ‘좌파’들은 이 전술이 우편향이라고 생각한다.” ... 지노비에프, 부하린, 라데크, 마슬로우, 텔만 등과 함께 탈하이머 자신도 좌파에 속했다.

그리고 그는 비난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탈하이머의 정신적 재산을 훔친 후에 좌익반대파는 여기에 기회주의적 해석까지 덧붙인 죄를 지은 것처럼 보인다. 이 기이한 현상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토론 과정에서 파시즘 문제를 좀더 명확하게 부각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미리 소개된 팜플렛에서 필자는 이렇게 말했다: 히틀러는 의회 절차를 준수해서는 권력을 잡을 수 없다; 그가 51%의 득표율을 기록해도 경제적 모순의 증대와 정치적 모순의 격화는 그가 정권을 잡기 전에 폭발할 것이다. 이에 대해 브란틀러 그룹은 이렇게 주장한다: “노동계급이 의회를 넘어선 대중행동을 하지 않더라도” 나찌당은 후퇴할 것이라고 트로츠키가 말했다. 이 거짓 주장은 [적기]지의 날조에 비해서 우월한 점이 전혀 없다.

필자는 나찌당이 “평화적으로” 권력을 잡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로부터 히틀러가 정부를 직접 전복시키거나 연립정부를 구성한 후 다시 정부를 전복시키는 방법을 쓸 것이라고 유추했다. 1923년 브란틀러가 취했던 모험주의 정책을 1932년에 히틀러가 채용할 경우에만 파시즘은 남에게 고통을 주지 않고 스스로 청산될 것이다. 과대평가하지 않더라도 나찌당의 전략가들이 브란틀러 파벌보다는 더 멀리 내다보며 더 강인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더욱 심오한 논리는 탈하이머가 제기하는 두 번째 반론이다. 그는 주장한다: 히틀러가 어떤 방식으로 권력을 잡는 가는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노동자 조직의 파괴 위에서만 자신의 지배를 확고히 할 수 있는 파시즘의 “핵심적 성격”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히틀러가 헌법에 입각하여 권력을 잡든 초헌법적으로 권력을 잡든 그 결과의 차이는 사민당 [전진]지 편집진의 연구 과제가 되도록 노동자들은 조용히 물러서 있자.” ([노동자정치], 1월 10일) 가장 선진적인 노동자들이 탈하이머의 충고에 귀기울일 경우 이들은 히틀러에 의해 반드시 목이 잘릴 것이다. 이 현명한 선생에게는 파시즘의 “핵심 성격”만이 중요하다. 그래서 그는 이 “핵심 성격”이 어떻게 현실로 나타나는 지에 대해서는 [전진]지 편집진에게 내버려둔다. 파시즘의 인종 학살적 “핵심 성격”은 이들이 권력에 오른 후에야 감지될 수 있다. 여기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 따라서 우리의 과제는 파시즘이 권력을 절대 장악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적의 전략을 이해하고 이것을 노동자들에게 설명해야 한다. 히틀러는 헌법의 틀 내에서 활동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스스로 “유물론자”로 자처하는 우리 현학자만이 이러한 히틀러의 행동이 대중의 정치의식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히틀러의 헌법 존중 태도는 중도주의자들과 연합할 가능성을 열어두기 위한 포석이다. 그리고 이것뿐이 아니다. 그는 사민주의자들을 속이려는 것이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사민당 지도자들이 노동자들을 속이는 일을 좀더 수월하게 만들기 위해 헌법을 들먹이는 것이다. 만약 히틀러가 헌법을 통해서만 권력을 장악하겠다고 맹세한다면 지금 파시즘의 위험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 명확하다. 어쨌든 모든 종류의 선거를 통해 계급 역관계를 몇 번 더 확인할 시간이 충분히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헌법에 의거하겠다는 전망을 내놓아 자신의 적들을 마취시킨 후 히틀러는 편리한 때에 공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으려고 한다. 아무리 단순해도 이 군사적 술수는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왜냐하면 이 술수는 이 문제를 평화적이고 합법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중간계급 정당 뿐 아니라 대중의 쉽게 속는 약점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이 점이 더욱 위험하다.

더욱이 히틀러의 술수는 양날을 가지고 있다: 그는 자기의 적들 뿐 아니라 지지자들까지 속이고 있다. 전투적 기상은 투쟁 특히 공세적 투쟁에는 필수적이다. 전장에서 대판 전투를 벌이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할 때에만 군대는 전투적 기상을 유지할 수 있다. 그렇다면 히틀러가 바이마르 헌법과 너무 오래 연애를 할 경우 그의 군대는 사기를 잃을 것이 명확하다. 따라서 그는 때가 되면 셔츠 밑에서 칼을 꺼내 헌법을 무시하는 쿠데타를 기도할 것이다.

파시즘의 “핵심 성격”만 이해하는 것은 불충분하다. 파시즘을 살아있는 정치 현상으로 그리고 의식적이고 교묘한 적으로 파악하면서 그 의중을 올바로 평가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탈하이머 선생은 혁명가가 되기에는 너무 “사회학적”이다. 탈하이머의 심오함을 히틀러는 유리한 상황 조성에 이용한다. 이것은 아주 명확하다. 왜냐하면 헌법적 환상을 널리 유포하는 [전진]지의 행태와 이 환상에 기초하여 적의 군사적 술수를 폭로하는 탈하이머의 행위가 하나로 뭉쳐졌을 때 히틀러의 전술은 더욱 빛을 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조직은 그 조직에 포괄되는 대중 때문에 또는 이 조직이 노동운동에 도입할 수 있는 사상적 내용 때문에 의미가 있다. 그러나 브란틀러 그룹은 두 가지 가운데 단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란틀러와 탈하이머는 중도주의의 늪인 독일사회주의노동자당을 과장되게 경멸하고 있다! 사실 이 두 그룹에 비교해서 노동자당은 모든 장점을 다 가지고 있다. 이 당은 늪이 아니라 살아있는 시냇물이다. 현재 이 당은 우에서 좌로 움직이면서 공산주의로 나아가고 있다. 시냇물은 그 안에 쓰레기와 진흙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아직도 늪은 아니다. “늪”은 바로 브란틀러-탈하이머의 조직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조직은 사상적으로 완전히 정체되어 있다.

브란틀러 그룹 내부에는 반대파가 오랫동안 존재해 왔다. 그룹의 지도자들이 객관적 상황이 아니라 소련 스탈린 관료집단의 분위기에 맞추어 조직을 움직이는 것에 대해 반대파는 불만이 많다.

왈커와 프뢸리히(주 64) 등이 주도하는 반대파는 상당한 기간 브란틀러-탈하이머의 정책을 용인해 왔다. 후자는 특히 소련과 관련하여 잘못된 그리고 의도적 위선과 정치적 거짓으로 범벅된 노선을 걸었다. 물론 이 때문에 조직을 분리하여 나온 쪽이 더 좋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왈커-프뢸리히 그룹은 마침내 이 조직의 완전히 절망적 상황을 인정했다. 이 소수파는 힘없는 레멜러에 대항할 것이 아니라 소련과 코민테른의 스탈린주의 노선과 조직운영에 반기를 들면서 독자적이며 적극적인 정책을 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대단히 불충분한 자료에 기초하여 올바르게 해석한다면 이 그룹의 입장은 이 문제에 대한 일보 전진이라고 볼 수 있다. 명백히 죽은 조직에서 분립한 후 소수파는 이제 국내 특히 국제 상황과 관련하여 새로운 노선을 견지해야할 문제에 직면해 있다.

분립한 소수파는 가까운 미래에 독일사회주의노동자당의 좌파에 집중하여 이 정당을 공산주의 노선으로 획득한 후 이 당의 도움으로 독일공산당의 관료적 보수주의를 해체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 계획은 일반적인 논평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소수파가 견지하고 있는 기본 원칙들은 아직도 명확하지 않으며 이 원칙들을 견지하기 위한 투쟁 방법들 역시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강령은 필수적이다! 강령은 판에 박힌 공산주의 교리문답의 내용을 요약한 문서가 아니다. 노동자 혁명의 문제들은 지난 9년간 공산주의 대오를 분열시켰으며 지금도 대단히 중요하다. 이 문제들에 대한 명확하고도 구체적인 해답이 바로 강령이다. 이것이 없을 경우 브란틀러 그룹 소수파는 독일사회주의노동자당 내부에서 분해되어 이 당의 공산주의로 향한 과정을 촉진하기는커녕 가로막을 수밖에 없다.

좌익반대파는 소수파의 발전과정을 관심 깊게 그리고 어떠한 편견도 없이 주시할 것이다. 역사상 여러 번 생명력 없는 조직의 분립은 살아남을 수 있는 부위의 진보적 발전에 원동력이 되었다. 이번 경우 뿐 아니라 앞으로 전개될 소수파의 운명에 대해서도 이 법칙이 확인된다면 우리는 기뻐할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미래 만 알고 있다. 

 

13. 파업 전략

공산당 지도부는 노동조합 정책에서 당을 완전히 혼란에 빠뜨렸다. “제 3기” 정책은 개량주의 노동조합에 대항하여 공산당 산하에 독자 노동조합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대중운동의 파고가 높아지면 기존 개량주의 노동조합들은 파괴되고 이들 내부의 반대파 세력이 혁명적 노동조합 반대파(Revolutionary Trade Union Opposition)를 조직하여 경제투쟁을 주도할 위원회를 건설할 것이다. 이것이 공산당 지도부의 예상이었다. 그러나 이 예상은 빗나갔다. 대중운동이 거세게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봄의 홍수는 농가의 울타리를 싹 걷어가 버린다. 그런데 로조프스키는 이렇게 생각했다: 울타리를 미리 싹 걷어버리면 봄에 홍수가 날 것이다!

그러나 지도부의 예상과는 달리 개량주의 노동조합은 살아남았다. 대신 공장에서 쫓겨난 것은 공산당원들이었다. 그러자 지도부는 노동조합 정책을 일부 수정하기 시작했다. 미조직 노동자들이 개량주의 노동조합에 가입할 것을 촉구하는 행위를 공산당은 거부해왔다. 마찬가지로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탈퇴하는 것에도 반대해왔다. 이제는 공산당 산하 독자 노동조합 조직을 계속하면서 영향력 확대를 위해 개량주의 노동조합 내부에서 투쟁한다는 내용의 구호들을 다시 부활시켰다. 이 새로운 정책은 스스로 사업을 망치는 좋은 본보기가 아닐 수 없다.

[적기]지는 불평한다: 많은 공산당원들은 개량주의 노동조합 내부의 활동을 무의미한 것으로 생각한다. 이들은 선언한다: “왜 우리가 낡은 손수레를 재생시켜야 하는가?” 사실이 그렇다. 왜? 기존 개량주의 노동조합을 장악하고 싶으면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에 가입할 것을 호소해야 한다. 노동조합 좌파에게 지지를 보낼 세력은 바로 이 새로운 노동자 부위가 아닌가. 그러나 이것이 맞다면 공산당은 산하 독자 노동조합을 조직해서는 안된다. 즉 개량주의 노동조합과 경쟁적으로 이들 노동자들을 가입시키는 대항 노동조합을 건설해서는 안된다.

개량주의 노동조합 내부에서의 활동에 관한 공산당 지도부의 정책은 다른 분야의 정책들과 마찬가지로 엉망진창이다. 1월 28일 [적기]지는 뒤셀도르프 금속노동조합의 공산당 노조원들을 비난했다. 이들이 다음과 같은 구호를 내걸었기 때문이었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브뤼닝 정권을 지지하고 내각에 참여하는 행위에 비타협적으로 반대한다.” [적기]지에 따르면 이러한 “기회주의적” 요구들은 허용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요구들은 개량주의자들이 브뤼닝 정부와 이 정부의 긴급포고령을 반대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이지 악성 농담과 같다! [적기]지는 자기가 개량주의 지도자들을 비난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면서 이들이 대중에 의해 정치적으로 시험받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

한편 예외적으로 풍부한 성과를 올릴 수 있는 활동의 장이 바로 노동조합이다. 사민당은 정치적 소동으로 노동자들을 속일 수단들을 아직 가지고 있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마치 전혀 가망 없는 감옥의 벽과 같이 자본주의의 막다른 골목에 직면하고 있다. 공산당 산하 혁명적 노동조합 반대파에 포괄되어 있는 20만 내지 30만의 노동자들은 개량주의 노동조합 내에서 한없이 소중한 혁명의 효모가 될 수 있다.

1월 하순 베를린에서는 독일 전국에 조직된 공장위원회에서 활동하는 공산당 활동가들의 회의가 열렸다. [적기]지는 이렇게 보도했다, “공장위원회는 공산주의 노동자 전선을 구축하고 있다” (1932년 2월 2일). 그러나 회의 참석자들의 소속, 산업분야, 명수 등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노동계급 내부 세력관계의 모든 변화를 면밀히 공개적으로 기록했던 볼셰비키당과는 정반대로 독일 스탈린주의자들은 러시아 스탈린주의자들을 그대로 본받아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사민당이 장악한 공장위원회가 전체의 84%이며 공산당이 장악한 공장위원회는 4%도 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적기]지는 인정하려들지 않는다. 이 세력관계에는 “제 3기” 정책의 결과가 요약되어 있다. 고립된 공산당 세력을 “공산주의 공동전선”이라고 불러 본들 이것이 정말 운동을 전진시키는 데 도움이 되겠는가?

자본주의의 장기화된 위기는 노동계급 내부에 가장 극악하고 위험한 분열 즉 고용 노동자와 실업 노동자 사이의 분열을 초래한다. 현재 개량주의 지도부는 산업 중심부를 장악하고 있으며 공산당은 실업자 운동을 장악하고 있다. 결국 노동계급의 양대 부문 모두가 마비상태에 빠지고 있다. 고용 노동자들은 조금 더 지탱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 반면 실업 노동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참을성을 상실한다. 현재 이들의 참을성은 한계에 다다랐으며 혁명적 성격을 띠고 있다. 고용 노동자와 실업 노동자들을 단결시킬 조직 형태와 구호를 찾아 공산당이 혁명적 해결의 전망을 열지 못할 경우 실업 노동자들의 성급함은 어쩔 수 없이 공산당에 대한 저항으로 바뀔 것이다.

1917년 러시아에서는 볼셰비키당의 올바른 정책으로 혁명은 급속히 진전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악한 상황에 놓여 갈수록 참을성을 상실한 노동계급의 일 부위는 뻬쩨르부르그에서조차 9월과 10월 볼셰비키당을 등지고 조합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들에게 합류했다. 10월 봉기가 제때에 성공하지 않았다면 노동계급의 붕괴는 격심했을 것이고 결국 혁명은 쇠퇴했을 것이다. 현재 독일에는 무정부주의자들이 있을 필요가 없다. 무정부주의적 인민선동에 의식적으로 반동적 정치적 목표들을 결합한 파시스트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노동자들이 파시즘으로부터 영원히 면역되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특히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노동계급과 소자본가 계급이 서로 겹치는 부분이 생긴다. 실업 노동자는 소상인과 행상인이 될 수밖에 없고 파산한 소자본가 계급은 노동계급과 룸펜노동계급을 양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봉급 생활자, 기술 및 행정직 노동자, 관료의 특정 부위는 과거에 사민당의 가장 중요한 지지세력 중의 하나였다. 지금 이들은 나찌당으로 넘어갔거나 넘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들은 노동귀족의 일부를 끌고 들어갈 수도 있다. 어쩌면 이미 이런 상황이 완료되었는 지도 모른다. 이렇게 나찌당은 위에서 노동계급 속으로 침투하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더 위험한 것은 실업 노동자들을 통해 나찌당이 아래에서 침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망과 희망이 없이는 어떤 계급도 오래 지속할 수가 없다. 실업 노동자들은 계급을 대표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은 이미 아주 탄탄한 현실적 사회 세력이다. 이들은 현재 참을 수 없는 생활조건을 탈출하려고 애를 쓰고 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노동자 혁명만이 독일을 붕괴와 쇠퇴로부터 구해낼 수 있다. 특히 독일의 수백만 실업 노동자들에게는 노동자 혁명만이 자신들의 붕괴와 쇠퇴를 막을 수 있다.

공산당은 공장과 노동조합에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당원의 수가 아무리 증가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위기와 모순으로 점철된 나라에서 극좌 정당은 수만의 신입 당원들을 모을 수 있다. 특히 “경쟁”을 통해 당원을 늘리려는 목표 하나로 당기구 전체가 혈안이 되어 있을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모든 것은 당과 계급 대중 사이의 상호 관계에 달려있다. 공장위원회나 노동조합의 운영을 위해 선출된 한 명의 공산당원은 내일 나가기 위해 오늘 들어온 천명의 오합지졸 신입당원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그러나 개개인이 당에 가입하는 상황은 무한정 지속될 수 없다. 개량주의자들을 단번에 전멸시킬 순간이 올 때까지 공산당은 계속 투쟁을 연기하고 있다. 이 상황이 계속되면 언젠가는 사민당이 더 이상 공산당에게 밀리지 않게 될 것이다. 이때가 되어서야 공산당은 확실히 사태를 파악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때쯤 되면 파시스트들은 공산당의 주요 지지기반인 실업 노동자들을 자기 쪽으로 획득할 것이다. 상황이 요구하는 과업을 성취하기 위해 자기 역량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정당은 결코 무사할 수가 없다.

대중투쟁 활성화를 위해 공산당은 산발적인 파업들을 자극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나 이 일은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과거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스탈린주의자들은 자아비판에 열중한다: “아직 우리는 조직 능력이 없다”...“대중 결집 방법을 아직 터득하지 못했다”...“대중 장악력이 아직 부족하다”... 그리고 “우리”라는 대명사는 나중에 반드시 “너희”로 변한다. 소수의 선도적 공세를 통해 노동계급에게 “전기충격을 가하자”는 1921년 3월의 이론이 다시 부활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에게는 “전기충격”이 전혀 필요 없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명확한 전망이다. 그리고 대중운동의 기초를 다지기 위한 도움이 필요할 뿐이다.

마누일스키 또는 로조프스키는 레닌을 군데군데 인용하면서 자기 식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것이 동기가 되어 공산당의 파업 전략이 수립되었음이 명백하다. 사실을 말하면 멘셰비키들은 “파업의 광란”에 반대한 반면 볼셰비키당은 이와 반대로 모든 새로운 파업의 선두에 서서 더욱더 많은 대중을 운동에 가담시켰었다. 이때는 노동계급의 새로운 부위가 각성한 시기였다. 1905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전 몇 년의 호황기, 1917년 2월 혁명 첫 몇 달간 볼셰비키당의 전술이 바로 이러했다.

그러나 혁명 세력과 반혁명 세력의 격돌이 시작된 1917년 7월의 볼셰비키당 전술은 또 달랐다. 이때 볼셰비키들은 파업을 자제하고 억제했다. 왜냐하면 이 때의 모든 파업은 결정적인 대결로 비화하는 경향이 있었고 이 결정적 대결을 준비할 정치적 전제조건은 아직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0월 봉기 이전 몇 개월간에도 볼셰비키당은 모든 파업의 선두에 섰다. 볼셰비키당의 파업 자제 경고에도 불구하고 파업은 섬유나 가죽산업 등에 종사하는 비교적 후진적인 노동자들에 의해 전개되었다.

볼셰비키당은 혁명의 이해를 위해 어떤 때는 과감하게 파업을 자극했으며 또 어떤 때는 파업을 억제시켰다.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미리 정해진 공식은 없다. 그러나 어떤 시기에도 볼셰비키당의 파업 전술은 전반적 상황에 따른 전술의 일부분이었고 선진노동자들에게 부분과 전체의 연관은 언제나 명확하게 이해되었다.

지금 독일의 경우는 어떤가? 고용 노동자들은 실업 노동자들을 의식하여 임금 삭감에 저항하지 않는다. 이것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수백만의 실업자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평상시와 다름없이 조직된 노동조합의 파업은 당연히 효과를 거둘 수 없다. 더욱이 고용 노동자와 실업 노동자들 사이에 정치적 적대감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것은 이중적으로 비효과적이다. 물론 좀더 후진적이고 중앙집중화가 덜된 산업에서 산발적인 파업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산업분야의 노동자들은 개량주의 지도자들의 파업 자제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경향이 많다. 노동계급 내부의 전반적 상황을 변화시키지 않은 채 공산당은 파업을 유도하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이런 식의 전술은 소규모 게릴라식 투쟁만을 촉발시킨다. 투쟁이 성공하더라도 파업은 고립과 분산을 면치 못한다.

[붉은 건설](Der Rote Aufbau)지는 공산당 소속 노동자들의 증언을 싣고 있다. 그런데 이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지금은 개별 산업 차원의 파업은 의미가 없으며 총파업만이 노동자들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다는 식의 말이 공장에서 많이 나돌고 있다. 여기서 “총파업”은 투쟁의 전망을 의미한다. 지금 노동자들은 산발적인 파업에 대해 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국가권력과 직접 대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독점자본은 브뤼닝 정부의 긴급포고령이라는 언어를 통해 자기들의 이해를 노동자에게 설명하고 있다. (저자 주: 이탈리아 보르디가의 그룹과 같은 일부 초좌익들은 경제투쟁에서만 공동전선이 인정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과거 어느 때보다 지금 경제투쟁을 정치투쟁과 분리시킬 경우 노동자들을 설득할 수 없다. 임금합의가 무시되고 행정명령에 의해 임금이 삭감되는 독일의 예는 이 진실을 어린이에게도 이해시킬 수가 있다. 지나가는 김에 스탈린주의자들이 보르디가 그룹 초기의 넌센스를 많이 부활시키고 있음을 덧붙이고자 한다. “프로메테오 그룹”은 그 동안 배운 것이 전혀 없으며 정치적으로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했다. 코민테른이 좌충우돌을 일삼고 있는 지금 이 그룹이 정치적으로 우리보다 스탈린주의에 훨씬 더 가까운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노동운동의 여명기에는 노동자들의 파업 참여를 위해 선동가들이 혁명적 사회주의적 전망을 제시하는 일을 종종 자제했다. 노동자들이 겁에 질려 도망가게 만들면 안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정반대이다. 투쟁의 전반적 전망을 명확하게 이해할 경우에만 독일 노동계급의 선진층은 방어적 경제투쟁을 개시할 수 있다. 지금 이들은 공산당 지도부가 투쟁 전망을 가지고 있다고 느끼지 않는다.

(노동계급 다수를 획득하는 대신 소수에게 “전기충격을 가한다”는) 1921년 3월의 전술에 대해 필자는 코민테른 제 3차 세계대회에서 이렇게 연설한 바 있다: “노동계급의 절대 다수가 운동에 관심이나 공감을 보이지 않고 그 성공을 의심할 때 그리고 노동계급의 소수가 서둘러 기계적으로 노동자들을 파업으로 내몰려고 할 때 --- 이때 당의 허울을 쓴 성급한 소수는 노동계급과 불화를 초래하며 파멸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파업투쟁은 포기해야 하는가? 아니다,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 다만 파업을 위해 필요한 정치적 조직적 전제조건들을 만들어 놓아야 한다. 이 가운데 하나는 노동조합의 단결 회복이다. 물론 개량주의 관료들은 이것을 혐오한다. 노동계급의 분열은 지금까지 최상의 방식으로 관료들의 지위를 보장해 주었다. 그러나 파시즘의 위협이 임박하면 노동조합 내부의 상황이 관료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간다. 단결의 기운이 높아간다. 사민당의 라이파트 파벌이 지금 상황에서 단결의 회복을 막는다면 노동조합에서 공산당은 영향력을 즉시 2배 3배 높이게 될 것이다. 단결의 회복만큼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공산당의 활동 폭이 그만큼 넓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공산당은 과감하게 전술을 180도 전환해야 한다!

물가인상으로 인한 생활비의 앙등과 임금 삭감에 반대하고 노동시간 단축을 주창하는 광범위한 운동이 전개되어야 한다. 고용 노동자와 어깨를 걸고 실업 노동자가 투쟁에 합류해야 한다. 공동전선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공산당의 임기 응변 식 소규모 파업들은 투쟁을 심화 확대시킬 수 없을 것이다.

“파시스트들이 권력을 장악할 경우” 총파업을 감행할 필요가 있다고 사민당 좌파는 말한다. 라이파트가 지금 자기 서재에 앉아서 이런 위협성 발언을 과시하듯이 내뱉고 있는 모양이다. 이에 대해 [적기]지는 그가 룩셈부르크의 편향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것은 위대한 혁명가 룩셈부르크에 대한 비방에 지나지 않는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권력 장악의 문제에서 총파업의 독자적 중요성을 과대평가했다. 그러나 총파업은 자의적으로 선언될 수 없으며 노동운동의 역사와 당 및 노동조합의 정책을 통해 준비되어야 한다는 점을 그녀는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민당 좌파에게 대중파업은 비참한 현실을 은폐하고 스스로를 위안하기 위해 발명된 허구에 더 가깝다.

지난 몇 년간 프랑스 사회당은 전쟁이 발발할 경우 총파업으로 대항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었다. 심지어 1912년 바젤 대회는 혁명적 봉기로 전쟁에 대항하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그러나 봉기는 물론 총파업 운운하는 위협마저 배우들의 연극용 허풍에 지나지 않았다. 여기서 문제는 파업과 봉기를 대비시킨 것이 아니다. 봉기와 파업에 대한 생기 없고 형식적이며 말 잔치에 지나지 않는 태도가 문제이다. 혁명이라는 추상적 수사로 무장한 개량주의자는 제 1차 세계대전 직전 베벨과 같은 사민주의자와 일반적으로 같은 유형에 속한다. 베벨의 옆에는 대단히 우스꽝스럽게 총파업을 감행하겠다고 으름짱 놓는 전후 개량주의자가 서 있다. 참으로 어울리는 한 쌍이다.

물론 공산당 지도자들은 총파업에 대해 훨씬 진지하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서 명확성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명확성은 시급히 확보되어야 한다. 총파업은 아주 중요한 투쟁의 무기이다. 그러나 모든 곳에서 효력을 발생하지는 않는다. 총파업이 당면한 계급의 적들보다 노동자들을 더 약화시키는 상황도 있다. 따라서 파업은 전략 수립의 중요 요인이지만 다른 모든 전략이 그 속에 용해되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총파업은 약자가 강자에 대항할 때 사용하는 투쟁의 무기이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투쟁이 시작될 때 자신을 강자로 보기보다는 약자로 보는 쪽이 사용하는 무기이다. 내가 중요한 무기를 사용할 수 없을 경우 적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내가 대포를 사용할 수 없다면 적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방아쇠라도 제거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총파업 “사상”이다.

언제나 총파업은 철도, 전신, 경찰, 군대 등을 장악한 강고한 국가권력에 대항하는 투쟁의 무기였다. 정부기구를 마비시키면서 총파업은 정부에게 “겁을 주거나” 권력 문제의 혁명적 해결을 위한 전제조건을 만들었다.

대중은 혁명적 분노로만 단결되어 있을 뿐 군사조직과 군사지도부가 없어서 미리 역관계를 추산하거나 행동계획을 마련할 수 없다. 이때 사용하는 가장 효과적인 투쟁 방법이 바로 총파업이다. 그래서 이탈리아의 반파시즘 혁명 역시 한두 번의 부문적 격돌을 시작으로 결국 총파업으로 나아갈 것이다. 오직 이 방법을 통해서만 현재 혼란에 빠진 이탈리아 노동계급이 다시 한 번 자신을 단결된 계급으로 느끼고 타도해야 할 적과 대적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의 경우 파시즘이 이미 권력을 장악하여 국가기구를 확고히 쥐었을 경우에만 총파업은 투쟁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파시즘의 권력장악 기도를 무너뜨리기 위한 수단으로 총파업이 이용되는 것은 낭비일 뿐이다.

러시아 혁명 당시 코르닐로프가 뻬쩨르부르그로 진군하고 있을 때 볼셰비키당은 물론 소비에트 역시 총파업을 선언할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철로에서는 노동자들과 철도 직원들이 혁명군대를 수송하고 코르닐로프 군대를 지체시켰다. 노동자들이 전선으로 강제 배치될 경우에만 공장은 가동을 중단했다. 혁명전선을 지지하는 산업들은 갑절로 일했다.

10월 봉기 당시에도 총파업에 대한 얘기는 전혀 없었다. 봉기 전야에 공장과 군대의 절대 다수는 볼셰비키당이 장악한 소비에트를 따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파업을 촉구하는 것은 적이 아니라 우리를 약화시키는 행위였다. 철도 노동자들은 봉기를 지원하려 했다. 한편 철도 관료들은 중립을 가장한 채 반혁명을 돕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철도 노동자의 총파업은 아무 의미도 없었을 것이다. 이 문제는 관료들을 압도하여 대세를 장악한 노동자들의 숫자로 결정되었다.

파시스트들의 자극으로 독일에서 부문별로 투쟁이 터질 경우 총파업 촉구는 일반적 상황에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총파업이 단행될 경우 도시와 도시, 도시 내 지구와 지구, 공장과 공장 사이에 통신이 두절될 것이다. 그리고 실업 노동자의 결집은 더 어려워질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파시스트들은 중앙집중 지도부 덕분에 대세를 장악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파시스트 대중은 너무 오합지졸이어서 노동계급에 의해 격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예를 들어 철도 통신의 문제는 모두 파업에 참여해야 한다는 “권위”가 아니라 군사적 편의의 관점에서 다루어야 한다: 격돌의 순간 누구를 위해서 누구에 대항해서 통신로가 사용될 것인가?

따라서 지금 독일의 경우 총파업이 아니라 파시스트 격퇴를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모든 곳에서 작전 기지, 돌격대, 예비병력, 지방 지도부, 중앙 지도부, 원활한 통신수단, 병력 동원의 기본적 계획 등이 준비되어야 한다.

촌구석인 브룩살과 클링언탈에서는 개량주의 관료 상층부의 보이코트에도 불구하고 공산당이 사회주의노동자당 그리고 노동조합들과 방어 조직들을 수립했다. 포괄 범위가 좁기는 하지만 이것은 독일 전역에 응용될 모범 사례이다. 최고 지도자들과 전략가들은 브룩살과 클링언탈 노동자들에게 배워야 한다!

독일 노동계급은 강력한 정치 경제 스포츠 조직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브뤼닝 정권”과 “히틀러 정권”의 차이가 있다. 물론 이것은 브뤼닝의 미덕 때문이 아니다. 허약한 관료집단은 미덕이 될 수 없다. 그러나 현실은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가장 주요하며 기본적이며 최상의 사실은 독일 노동계급이 아직까지도 온갖 다양한 조직들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직의 힘이 약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잘못된 조직 운영에 있다. 브룩살과 클링언탈의 모범이 독일 전역으로 확산되기만 하면 독일의 투쟁 전망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지금의 조건 속에서 노동계급은 총파업보다도 훨씬 더 효과적이며 직접적인 투쟁 방식들을 사용해 파시스트 집단을 약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총파업을 이용할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파시스트 집단과 정부 사이의 명확한 상호관계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이럴 경우 공동전선에 기초한 방어위원회 체계는 미리 성공을 예약받은 채 대중파업을 성공시킬 수 있을 것이다.

투쟁은 지금 단계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핵심적으로 말해서 브룩살과 클링언탈의 방어조직은 왜 수립되었는가? 사소한 것에서도 큰 것을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방어조직은 지방 노동자 소비에트이다. 협소한 지방적 시야 때문에 이 방어조직은 자신이 진정 무엇이며 무엇을 느끼고 있는 지를 모른다. 여기서도 양은 질을 결정한다. 이 실험을 베를린으로 옮기면 베를린 노동자 소비에트가 수립된다!    

14. 노동자에 의한 생산의 통제와 소련과의 경제 협력

혁명적 시기에 제출될 구호들을 논의할 때마다 주의할 것이 있다. 즉 혁명적 시기를 너무 협소하게 이해하면 안된다. 소비에트는 혁명적 시기에만 수립될 수 있다. 그러면 이 시기는 언제 시작되는가? 달력을 보고 알 수는 없다. 행동을 통해서만 이 시기가 시작되었는지 감지할 수 있을 뿐이다. 소비에트는 수립될 수 있을 때에 수립되어야 한다. (저자 주: 중국에서는 스탈린주의자들이 혁명적 격동기에 소비에트 수립을 저지했다. 그리고 퇴조기에 광동 봉기를 결정했을 때도 이들은 봉기 당일에야 소비에트 수립을 호소했다.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특히 그리고 일반적으로 노동자에 의한 생산의 통제 구호는 소비에트 수립의 시기와 때를 같이 한다. 그렇다고 이것을 기계적으로 이해하면 안된다. 특별한 경우 대중이 소비에트를 수립하기 훨씬 전에 생산을 통제할 수도 있다.

브란틀러와 그의 좌파적 외피인 우르반스는 정치적 상황과는 무관하게 생산의 통제를 구호로 들고 나왔다. 이것은 구호의 의미를 퇴색시키자는 불순한 의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정치위기가 곧 다가올 지금 대중의 공세가 시작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이 구호를 거부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대중의 공세를 위해서도 구호는 제출될 필요가 있다. 구호가 운동의 전망을 확정해주기 때문이다. 구호가 대중에게 파고들기 이전에 반드시 선전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상황에 따라서는 생산이 아니라 소비의 측면에서 노동자에 의한 생산의 통제 투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 임금 인하와 동시에 가격 인하를 단행하겠다는 브뤼닝 정부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이 문제는 국가 권력 장악을 전혀 생각도 못하는 노동계급 후진층의 관심을 사로잡을 수밖에 없다. 공업 생산에 필요한 지출액과 상업 이윤에 대한 노동자의 통제만이 진정한 의미의 가격 인하 투쟁이 될 수 있다. 대중의 절대 다수가 현실에 불만을 품고 있는 상황에서 마가린 인상 가격을 확인하기 위해 주부들이 참여하는 노동자 물가통제 위원회는 공업생산에 대한 노동자 통제의 아주 구체적인 시작이 될 수 있다. 이것은 하나의 가능한 예에 지나지 않는다. 이 경우 노동자가 생산을 직접 경영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여성 노동자의 사고는 경영권을 행사하는 것으로부터는 한참 떨어져 있다. 그러나 혁명의 일반적 과정에 발맞추어 소비 통제에서 생산 통제로 그리고 직접 경영으로 진전하는 것은 그녀에게 더 수월한 경로이다.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산업에 대한 통제는 가동, 부분가동, 폐쇄 상태의 모든 산업에 대한 통제를 의미한다. 이것은 각 분야의 실업 노동자들이 통제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경제 계획의 청사진을 보유한 공장위원회 지도부의 임무는 가동이 정지된 산업을 다시 가동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곧바로 정부에 의한 산업의 인수 즉 노동자 정부에 의한 자본가 계급의 생산수단 몰수로 나아간다. 그렇다면 노동자에 의한 생산의 통제는 임금 협약이나 사회보험과 같은 장기적인 “정상적” 상황은 아니다. 이것은 계급전쟁이 최고조로 전개되는 상황에서 산업의 혁명적 국유화에 이르는 가교로 이해될 수 있는 이행기적 조치이다.

이와 관련하여 브란틀러 그룹은 좌익반대파를 비난한다. 오랫동안 이 구호에 대해 경멸을 보내더니 어느 날 갑자기 좌익반대파가 자신들로부터 이 구호를 도둑질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비난은 전혀 뜻밖이다! 노동자에 의한 산업 통제 구호는 1917년 볼셰비키당이 광범위하게 처음 제기했다. 뻬쩨르부르그에서는 이 캠페인이 전적으로 뻬쩨르부르그 소비에트의 책임 하에 진행되었다. 필자는 이 캠페인을 직접 보았고 참여까지 하였다. 증인 선서를 하건데 탈하이머-브란틀러는 이 구호를 처음 제창하지도 않았으며 이와 관련된 이들의 이론적 정보를 우리가 이용한 적은 결코 없다. “도둑질” 비난은 신중하지 못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것이 아니다. 두 번째 비난은 훨씬 더 심각하다. 즉 “트로츠키주의자들”은 그 동안 내내 이 구호와 캠페인에 반대하더니 갑자기 지금 이 구호를 들고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브란틀러 그룹은 우리가 일관성을 결여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는 셈이다! 이로서 이들은 이 구호에 구현된 혁명 변증법을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하고 있음을 스스로 폭로했다. 이들은 이 구호의 의미를 “대중을 추동하는” 기술적인 처방 정도로 축소시키고 있다. 혁명적 시기에만 적절한 이 구호를 이들은 수년동안 반복해왔다. 이들은 이 사실을 스스로 인용하면서 스스로를 욕되게 하고 있다. 날이면 날마다 떡갈나무를 쪼는 딱따구리는 도끼로 나무를 찍는 나뭇꾼이 자기 행위를 도둑질해왔다고 확신할 만하다.

산업에서 이중권력 상황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사회주의 체제로 이행하는 시기에 등장한다. 노동자에 의한 생산의 통제 구호는 바로 이 이중권력 상황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탈하이머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반박한다. 즉 그의 주장에 의하면 이중권력은 “생산수단의 소유주들과 노동자들이 평등하다(!)”는 것을 의미하는데도 노동자들은 산업의 완벽한 장악을 위해 투쟁한다는 것이다. 브란틀러 그룹은 혁명적 구호가 (이들의 표현에 의하면) “거세되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 이들에게 “생산에 대한 통제는 곧 노동자에 의한 산업의 경영”을 의미한다“(1932년 1월 17일). 그렇다면 경영(management)을 왜 통제(control)라는 말로 표현하는가? 인류가 그 동안 사용해온 어법에 따르면 통제는 어느 기관의 작업을 다른 기관이 사찰하고 확인하는 것이다. 통제는 적극적인 선에서 그칠 수도 있고 확실히 장악하는 선까지 나아갈 수도 있다. 그러나 통제는 통제이다. 이 구호는 노동자들의 동의 없이는 자본가나 관리자가 어떠한 조치도 취할 수 없는 이행기에 생겨났다. 한편 노동자들은 아직도 국유화에 필요한 정치적 전제조건들을 확보하지도 못했으며 그렇다고 기술적인 측면에서 경영 능력을 갖추지도 못했다. 그리고 경영 행위에 필수적인 기구를 수립하지도 않았다. 산업 경영에는 필요 자금 대출, 공장 관리, 제품 판매, 원자재와 새로운 기계의 조달 등 복잡하고 어려운 행위가 수반된다. 이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자본가 계급을 압박하는 노동계급의 전체적 힘에 의해 공장 내부의 계급 역관계는 결정된다. 일반적으로 통제는 자본가 세력에 대해 노동계급의 정치적 힘이 의심의 여지없이 압도적일 경우에나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혁명에서 모든 문제가 힘에 의해서만 해결되고 해결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노동자들은 적위군의 도움으로 공장을 장악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들이 경영을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법적 행정적 전제조건들이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지식, 기술, 적절한 조직형태가 필요하다. 따라서 일정 기간 노동계급은 경영에 필요한 도제 수업을 받아야 한다. 이 기간에 노동계급은 경험 있는 관리자들에게 경영을 맡기고 대신 이들이 모든 장부들을 공개하도록 강제하고 이들의 유관단체와 행동에 대해서 면밀하게 감독한다.

노동자에 의한 생산의 통제는 개별 공장에서 시작되며 공장위원회가 담당기구가 된다. 산업 분야의 경제적 연관에 따라 이들 기구들은 서로 연합한다. 이 단계에는 아직까지 전체적인 경제계획이 존재하지 않는다. 노동자에 의한 통제는 경제계획에 필요한 요소들을 준비할 뿐이다.

이와 반대로 노동자에 의한 산업 경영은 시작 단계부터 상부에서 진행되는 정도가 강하다. 왜냐하면 국가권력과 전반적 경제계획은 서로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경영기구는 공장위원회가 아니라 중앙집중화된 소비에트이다. 물론 이 경우도 공장위원회는 중요하지만 보조적인 역할을 담당할 뿐이다.

러시아의 경우 자본가 계급과 함께 기술 인텔리 계층도 볼셰비키당의 이 실험이 몇 주 못 갈 것으로 확신하였다. 모든 종류의 태업(sabotage)을 자행했으며 어떠한 합의도 거부했다. 결국 노동자에 의한 생산 통제 단계는 생략되었다. 더욱이 전쟁은 노동자를 병사로 변모시킴으로서 경제체제를 파괴하고 있었다. 그래서 노동자에 의한 생산의 통제는 러시아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 경험은 정반대의 이유로 인해 더욱 소중하다. 즉 러시아라는 후진국에서 적들에게 포위된 젊고 경험 없는 노동계급은 자본가 계급 및 행정-기술 요원들의 태업에도 불구하고 산업을 경영했다. 그렇다면 선진국 독일의 노동계급이 달성할 수 없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미 말한 바 있듯이 노동계급은 사적 자본주의에서 국가 자본주의 그리고 사회주의 체제로 최소한의 경제적 진통과 국부의 낭비를 통해 경제가 이행되기를 원한다. 바로 이 때문에 권력 장악이 임박하거나 심지어 가장 대담하고 결정적인 투쟁으로 권력을 장악한 후에도 노동계급은 기꺼이 공장과 은행에 이행기 기구들을 수립하고자 한다.

혁명기 독일은 러시아의 경우와 다를 수 있을까? 옆에서 관찰하는 필자의 입장에서 이 문제에 대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계급투쟁의 실제 과정은 노동자에 의한 생산의 통제라는 특별한 단계를 허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노동자들이 점점 압박을 가하는 한편 유산계급과 행정 요원들이 태업을 자행하는 투쟁의 극심한 갈등은 심지어 일시적인 합의도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이럴 경우 노동계급은 국가 권력과 함께 산업을 철저히 경영해야만 할 것이다. 현재 산업이 반쯤 마비되고 실업자가 대거 존재하는 독일의 상황에서 이 가능성은 아주 크다.

그러나 한편으로 노동계급의 강대한 조직, 임기응변이 아니라 체계적인 활동의 정신으로 달성된 노동계급의 높은 교육수준, 혁명에 대한 대중의 느린 공감 등은 노동자에 의한 생산의 통제 단계가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을 더 크게 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 구호를 현실성이 없는 것으로 미리부터 거부하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오류가 될 것이다.

어쨌든 러시아보다 더욱 독일에서 통제는 경영과 별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점은 명백하다. 다른 허다한 이행기 요구들과 같이 노동자에 의한 생산의 통제 구호는 그것의 실현 가능성과는 별개로 상당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노동자에 의한 생산의 통제 과정에는 점진적 형태들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형태들을 수립할 용의를 보이면서 노동계급의 전위는 노동계급의 좀더 보수적인 계층들을 혁명의 편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특히 기술, 행정, 은행 요원 등 소자본가 계급의 일부 계층을 중립화시킬 수 있다. 경제 태업을 통해 자본가 계급과 행정직 최상 부위가 노동자의 통제에 전혀 따르지 않을 수 있다. 이 경우 인민은 이로부터 파생되는 극단적인 조치들의 책임이 노동자가 아니라 적대 계급들에게 있다고 판단할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경제적 행정적 의미 이외에 이 구호의 정치적 의의가 바로 여기에 있다.

비혁명적 상황에서 이 구호를 제출하여 이 구호에 순전히 개량주의적 성격을 부여한 자들이 있다(노동자 경영 참가 운동 등). 그런데 이들은 우리가 통제를 경영과 구별하자 이것이 소위 중도주의적 표리부동이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이 사실이야말로 이들의 극단적인 정치적 냉소주의를 웅변하고 있다.

산업 경영이 내포하는 문제들을 이해하는 노동자들은 말에 취하기를 원치도 않을 뿐더러 취할 수도 없다. 이들은 말보다 덜 신축적인 생산 재료들을 공장에서 다루는데 익숙해 있다. 그래서 이들은 개량주의 관료들보다 우리의 생각을 더 잘 이해할 것이다. 진정한 혁명적 사고는 모든 곳에서 그리고 모든 때에 힘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힘 대신 말로만의 열정으로 목을 혹사하는 것도 아니다. 힘이 필요한 경우에는 과감하고 대담하게 완벽히 힘을 써야 한다. 그러나 힘의 한계를 알아야 하며 힘과 술수, 타격과 합의를 언제 적절히 배합해야 하는 지를 알아야 한다. 레닌 서거 기념일에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은 “혁명적 현실주의”와 관련된 달달 외운 구절들을 반복한다. 그리고 나머지 364일 동안 마음대로 이 중요한 원칙을 경멸한다.

개량주의 매춘부 이론가들은 호언쫄런 왕가의 “군사적 사회주의”부터 브뤼닝 정권의 경찰 사회주의에 이르기까지 노동계급의 이해에 반하여 선포된 긴급포고령들에서 사회주의의 미래를 발견한다!

부르조아 좌파 이론가들은 자본주의 계획경제를 꿈꾼다. 그러나 그 동안 자본주의는 계획을 통해서는 생산력을 소진시키는 전쟁 이외에 다른 길이 없다는 사실을 충분한 시간을 갖고 증명해 왔다. 다른 모든 것을 제쳐 두고라도 엄청난 수출입 수치를 통해 드러난 세계시장에 대한 독일의 의존 정도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우리는 독일과 소련의 관계를 통해 이 작업을 시작할 것을 제안한다. 즉 소련의 제 2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과 관련하여 그리고 이와 보완적으로 소련과 독일이 광범위한 경제협력 계획을 상세히 입안하기를 제안한다. 이 계획이 수립되면 가장 규모가 큰 수천 개의 공장들이 완전히 가동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나라 사이의 포괄적인 경제계획을 통해 독일의 실업은 2, 3년 내에 완전히 해결될 것이다.

당연히 독일 자본가들은 이 계획을 입안할 수 없다. 자신들이 사회적으로 완전히 배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일 노동자 조직 특히 노동조합과 독일 기술의 진보적 대표들의 도움으로 소련 정부는 진정으로 거대한 전망을 열어 재낄 완벽히 실현 가능한 계획을 수립할 수 있으며 수립해야 한다. 소련과 독일 경제의 자연적 기술적 조직적 자원들을 결합시킬 경우 엄청난 가능성이 열린다. 이에 비해 전쟁 배상금과 관세로 몇 푼 더 받는 것 등의 모든 “문제들”은 얼마나 사소하게 보이겠는가.

독일 공산당은 소비에트 체제 건설의 성공담들을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이 작업은 필요하다. 그러나 너무 달콤한 칭송으로만 일관하고 있다. 이것은 완전히 피상적이다. 더 나쁜 것은 소비에트 경제의 성공담과 난관들을 독일 노동계급의 직접적 이해 즉 실업, 임금 하락, 경제의 전반적인 교착상태 등과 연관시키지 못하고 있다. 공산당은 소련과 독일의 경제협력 문제를 엄격히 실제적인 그리고 동시에 지극히 혁명적인 관점에서 제기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 동안 그럴 의향도 없었다.

이미 2년도 더 지난 위기의 제 1단계에서 우리는 출판물을 통해 이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자 스탈린주의자들은 우리에게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평화공존을 신봉하고 있으며 자본주의를 구하려 한다는 등의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나 이들은 단 한가지 다음과 같은 사항을 예상하거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노동조합과 공장 회의에서 그리고 각 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사이에서 논의의 주제로 채택되고 생산에 대한 노동자의 통제 및 국가 권력 장악 등의 구호와 연결이 될 경우 구체적인 경제협력 계획은 사회주의 혁명의 아주 강력한 긍정적 요인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국제적 차원에서 계획된 경제협력은 외국무역 독점과 생산수단의 국유화 즉 노동계급의 독재하에서만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방향으로 나아갈 경우 국가 권력 장악을 위한 투쟁으로 수백만의 새로운 비공산당 노동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

타나우 같은 자들은 혁명의 결과 발생하는 산업의 붕괴가 공포스러운 혼란, 기근 등을 초래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독일 노동자들을 무서워 떨게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 자들은 노동계급에게 고통, 난관, 타락 등 해악만 가져다주는 제국주의 전쟁을 지지했다. 호언쫄런 왕가의 깃발 아래 노동계급에게 전쟁의 고통을 전가시킨다? 좋다! 사회주의의 깃발 아래 혁명적 희생은? 아니다, 결코 안된다! 이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우리 독일 노동자들”은 “이러한 희생”을 감내하는데 결코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개량주의자들은 논의를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독일 노동계급에 대한 아첨인 동시에 비방이다. 불행하게도 독일 노동자들은 참을성이 너무 많다. 사회주의 혁명은 호언쫄런-라이파트-웰스 등이 주창한 전쟁이 노동계급에게 강요한 희생의 100분의 일도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15. 가망이 없는 것일까?

단 한 번에 독일 노동계급의 대다수를 공세로 추동해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1919년, 1921년, 1923년의 패배가 있었다. “제3기” 모험주의가 있었다. 여기에다 독일 노동계급은 강력한 보수적 조직들에 의해 수족이 완전히 묶여있다. 이 결과 혁명의 전진을 가로막는 강력한 구심들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또 한편 독일 노동자들의 조직적 단결은 노동계급 대오 내에 파시즘의 침투를 거의 차단시켰다. 따라서 이들은 방어적 투쟁을 벌일 수 있는 가능성을 크게 열어놓았다.

공동전선 정책은 일반적으로 공세보다는 방어에 훨씬 효과적이다.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노동계급의 보수적 또는 후진적 부위일수록 새로운 성과를 얻기 위해 싸우기보다 기존의 것들을 지키는 투쟁에 더 쉽게 나선다.

이런 의미에서 브뤼닝의 긴급포고령과 히틀러의 위협은 공동전선 수립의 “이상적인” 경보음이다. 문제는 문자 그대로 가장 초보적이며 명백한 과거의 투쟁 성과를 방어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동전선은 노동계급의 가장 광범위한 부위들을 포괄할 수 있다. 더욱이 투쟁의 목표는 소자본가 계급의 최하층에서 노동자 거주지구의 노점상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의 공감을 사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어려움과 위험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현 상황은 혁명정당에게 엄청나게 유리하다. 방어적 투쟁에서 공세로 나서는 명확한 전략을 수립하도록 혁명정당에게 강제하기 때문이다. 국가권력 장악이라는 목표를 단 한순간도 포기하지 않은 채 공산당은 즉각적이고 시급한 행동을 위해 방어적 진지를 지킬 수 있다. “계급 대 계급의 싸움!” 이 정식의 진정한 중요성을 회복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자본과 정권의 공세를 노동자들이 물리칠 경우 파시즘은 어쩔 수 없이 공세를 배가할 것이다. 방어를 위한 첫 조치들이 아무리 하찮아도 적의 반응은 즉시 공동전선의 대오를 굳게 다지고 투쟁의 수위를 확대시키며 좀더 과감한 조치들을 강제할 것이다. 그리고 관료들의 반동적 부위를 공동전선에서 몰아낼 것이며 노동자들 사이의 장벽을 약화시켜 공산당의 영향력을 확대할 것이며 결국 방어에서 공세로 전환하는 조건을 준비할 것이다.

올바른 정책을 통해 공산당이 방어 투쟁의 선두에 설 경우 공세로 전환할 시점에는 개량주의 중도주의 관료 상층부의 동의를 전혀 받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대중이야말로 모든 것을 결정할 주체이다. 대중이 개량주의 지도부와 결별하는 순간 공동전선을 위한 모든 합의사항들은 전혀 의미가 없게 된다. 공동전선을 끝까지 유지하는 것은 혁명투쟁의 변증법을 오해하는 것이며 공동전선을 투쟁의 발판에서 투쟁의 장애물로 변모시키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가장 어려운 정치 상황이 가장 쉬운 정치 상황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단 한가지 해결책만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투쟁의 목표가 명확히 표현되면 이 목표는 원칙적으로 이미 달성된 것과 같다. 방어의 이름으로 공동전선을 수립하고 공산주의의 깃발 하에 국가권력을 장악하자. 이것이 우리의 투쟁 목표이다.

물론 상황은 어렵다. 사민당의 개량주의는 공산당 사이비 지도부의 초좌익 최후통첩주의의 지원을 받고 있다. 부르조아 계급의 관료적 독재는 사민당 개량주의의 지원을 받고 있다. 브뤼닝의 관료적 독재는 나라의 경제적 고통을 악화시키면서 파시즘의 위세를 키워가고 있다.

상황은 아주 부담스럽고 위험하지만 가망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10월 혁명의 권위와 물질적 자원을 강탈한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이 아무리 강력해도 전능한 것은 아니다. 계급전쟁의 변증법은 이들보다 더 강력하다. 문제는 이 변증법이 실현되도록 적절한 시기에 행동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좌익”에 속한 많은 자들이 독일의 운명을 비관하고 있다. 이들은 묻는다. 파시즘이 허약하고 공산당이 노동조합과 공장위원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던 1923년에도 노동계급은 승리하지 못했다. 그런데 공산당이 그때보다 약화되고 파시즘이 비교할 수 없이 강대해진 지금 승리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언뜻 보면 이 주장은 항거하기 힘들 정도로 무게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명백히 잘못된 주장이다. 1923년은 투쟁할 단계가 아니었다. 공산당은 파시즘의 유령 앞에서 투쟁을 회피했다. 싸움을 안하고 승리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번에는 파시즘의 위세와 공세가 투쟁을 회피할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다.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독일 노동계급이 투쟁을 시작하면 국가 권력을 정복할 수 있으며 정복해야 한다.

어제만 해도 공산당 최고 지도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파시스트들이 권력을 잡도록 내버려두자. 우리는 두렵지 않다. 이들은 곧 밑천이 거덜날 것이다, 등등.” 이 논리는 공산당 수뇌부를 몇 달 동안 지배했다. 이 노선이 완전히 고착되었다면 히틀러가 노동계급의 목을 자르기 전에 공산당이 이미 노동계급을 클로로포름으로 마취시킨 격이 되었을 것이다. 바로 여기에 가장 커다란 위험이 존재했다. 그러나 지금 이 노선을 되풀이하는 자는 아무도 없다. 따라서 우리는 첫 진지를 이미 차지한 것과 같다. 파시즘이 권력을 장악하기 전에 이들을 깨부수어야 한다는 생각이 노동대중에게 주지되기 시작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아주 소중한 승리이다. 이후 모든 선동에서 이 성과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현재 노동계급의 정서는 지극히 침체되어 있다. 이들은 실업과 빈곤으로 고문당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덧붙여 지도부의 혼란과 전반적인 혼란으로 더욱 고통받고 있다. 히틀러의 권력 장악을 막아야 한다는 것을 노동자들은 알고 있다. 그러나 어떻게? 방법이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고 있다. 지도부는 이 상황을 타개하는데 일조하기는커녕 방해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싸우고 싶어한다.

멀리서 판단하건데 충분히 평가되지 않은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다. 즉 허쉬-둥커의 광부들이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내용의 결의를 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내일 이들이 계급 전체의 투쟁기구인 소비에트를 수립할 준비가 되어있음을 의미한다. 어쩌면 이들은 오늘 당장 이렇게 할 준비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이들에게 이 사항을 물어보기 위해서는 우선 질문자가 제대로 알아야 한다! 대중을 경멸하는 거만한 문필가나 웅변가 양반들의 모든 인상주의적 사태 인식보다도 이 사실은 천 배나 더 중요하고 설득력이 있다.

당기구의 종용에도 불구하고 공산당 대오는 명백하게 수동적으로 나오고 있다. 왜 그런가? 공산당 평당원들은 세포 회의에 참석하기를 더욱 꺼린다. 별 도움이 안되기 때문이다. 상부의 지침은 공장이나 거리에서 거의 쓸모가 없다. 대중과 대면할 때 필요한 것과 당의 공식 기구 회의에서 제시되는 것 사이에는 화해할 수 없는 모순이 있다. 이들은 이것을 알고 있다. 어떠한 모순도 인정하지 않는 허풍 일색의 당기구는 상황과는 전혀 맞지 않는 어색한 인위적 분위기를 조성한다. 평당원들은 이것을 참을 수 없다. 당기구 회의에서 공허함과 딱딱함이 감도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것은 투쟁 회피 분위기와는 다르다. 다만 전지전능의 환상에 빠진 돌대가리 지도부에 대한 무언의 항의이자 정치적 혼란을 나타낼 뿐이다.

노동계급 내의 당혹감은 파시스트들의 사기를 드높인다. 이들의 공세는 강화된다. 위험은 증대한다. 그러나 파시스트들의 위협이 가까울수록 선진 노동자들의 시각과 청각은 지극히 예민해진다. 그리고 명확하고도 단순한 투쟁지침을 원하는 긍정적인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다.

브룬스위크를 예로 들면서 뮌젠베르크는 작년 11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점증하는 파시스트들의 공세와 함께 공동전선은 전역에서 원초적인 활력으로 동시에 수립될 것이다. 이것은 지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중앙집행위원회의 일원인 그는 왜 이 위원회가 공동전선의 대담한 정책 출발점으로 브룬스위크를 택하지 않았는 지를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래도 좋다. 그의 예상은 자신의 무능력을 인정하면서도 올바르게 사태를 관찰한 결과이다.

파시스트들의 위협이 임박할수록 사민당 소속 노동자들과 심지어는 당기구의 상당 부위는 급진화될 수밖에 없다. 사회주의노동자당의 혁명 좌파는 의심의 여지없이 혁명으로 전진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당내의 분열과 조직분리를 무릅쓰고서라도 공산당은 노선을 180도 전환해야 한다. 이것은 더욱 불가피하다. 사태가 정확히 이렇게 전개될 것을 예상하고 준비해야 한다.

스탈린주의자들은 노선을 전환하지 않을 수 없다. 아래로부터의 압력으로 이들은 이미 어쩔 수 없이 여러 증상을 보이고 있다. 어떤 논쟁은 다른 논쟁으로 대체되고 있으며 선택되는 어휘는 더욱더 애매모호하다. 구호 역시 더욱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동시에 중앙집행위원회보다 앞서서 조직의 임무를 이해한 인사들은 모두 당에서 제거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은 당노선이 곧 180도 전환될 것임을 암시하는 증상들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아직까지 증상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

스탈린주의자들은 반혁명적 “트로츠키주의”에 대한 논쟁으로 수백 톤의 신문용지를 허비하더니 갑자기 노선을 180도 전환하여 좌익반대파의 강령들을 실천하고자 했던 적이 과거 에 몇 번 있었다. 물론 전혀 가망 없을 정도로 시간이 지난 후의 뒷북치기에 불과한 경우도 있었다.

중국의 경우 노선이 너무 늦게 전환되었으며 그 내용 역시 너무 형편없었다. 이 결과 혁명은 목이 잘렸다(광동 봉기!). 영국에서는 계급의 배신자인 영국 노총이 전술을 “전환”했다. 스탈린주의자들이 더 이상 필요없게 되자 기존의 합의를 파기해 버렸다. 그러나 1928년 소련에서는 전술이 제때에 전환되어 임박한 파국으로부터 관료 독재체제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지금 열거한 3가지 중요한 사례들의 결과가 각기 달랐던 이유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중국의 경우 젊고 경험이 부족한 공산당이 모스크바의 지도력에 맹목적으로 의존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좌익반대파의 목소리는 먼 중국으로 전달되지 못했다. 영국에서도 거의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반면 소련에서 좌익반대파는 현장에 있었고 부농 정책에 반대해서 끊임없이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중국과 영국의 경우 스탈린 일당은 먼 거리에 도박을 걸었다. 그러나 소련에서는 직접 목이 달아날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함부로 할 수 없었다.

독일의 경우 모든 정치문제들은 공공연히 그리고 시기를 잘 맞추어 제기되고 있다. 한편 코민테른 지도부의 권위는 크게 약화되었다. 맑스주의 좌익반대파는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노동계급 전위 가운데 수천 명은 경험이 풍부하고 비판적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정치적 내용을 대중에게 전달할 능력이 있으며 실제로 전달하기 시작하고 있다. 이런 사항들은 독일 노동계급의 정치적 장점들이다.

독일의 좌익반대파는 수적으로 열세에 있다. 그러나 이들의 정치적 영향력은 격심한 역사의 전환점에서 사태를 결정짓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철도의 전철수(轉轍手)가 전철기(轉轍機)를 제때에 돌려 무거운 기차를 다른 선로에 옮겨놓듯이 소수의 좌익반대파는 사상 전철기를 강력하고 확실하게 돌려 독일공산당 기차를 그리고 독일 노동계급이라는 더 무거운 기차를 다른 방향으로 가도록 강제할 수 있다.

우리 노선의 올바름은 하루하루 지나면서 행동을 통해 입증될 것이다. 머리 위의 천장이 불길로 인해 터질 때는 가장 완고한 관료들조차 위신에 연연할 수 없을 것이다. 골수까지 비밀스러운 관료들조차 속옷을 입은 채 창문 밖으로 뛰어 내려야 할 것이다. 현실의 전개는 우리 노선의 올바름을 입증할 것이다. 현실은 우리를 지원할 것이다. 

과연 독일공산당이 제때에 전술을 전환할 수 있을까? 여기서 제때라는 말은 누구나 쓰는 의례적인 의미 밖에 없을 것이다. “제3기” 광기만 아니었던들 독일 노동계급은 지금 권력을 누리고 있을 것이다. 지난번 의회선거 이후 좌익반대파의 행동 프로그램이 실천되었다면 노동계급의 승리는 보장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확실한 승리를 말할 수 없다. 파시즘의 국가기구 장악 이전에 노동자 투쟁을 촉발할 그런 전술 전환만이 제때에 이루어졌다고 인정될 수 있다.

전술을 전환하려면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공산당 내외의 지도적 부위는 투쟁을 회피하면 안된다. 당내에서 그리고 대중이 보는 앞에서 관료들의 멍청한 최후통첩주의에 대항해서 공개적으로 투쟁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동요하는 당원은, “그것은 규율 위반이요,”라고 말할 것이다. 물론 그것은 스탈린식 규율에 대한 위반일 뿐이다.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면 진지한 혁명가는 형식적으로라도 규율을 위반하지 않는다. 그러나 규율이라는 이름 하에 명백히 해로운 정책을 인정하는 자는 혁명가가 아니라 오합지졸에 불과하다.

공산당의 노선 변화를 위해 진지한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우르반스 일당처럼 공산당을 새로 창당하려는 것은 범죄행위이다. 소규모의 독자 조직을 수립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공산당을 새로 창당하는 일은 거대한 작업이다. 이러한 과업을 수행할 중핵들이 마련되었는가? 만약 마련되었다면 수만의 공산당 노동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 이들은 그 동안 무엇을 했는가? 만약 이 중핵들이 새로운 정당의 필요성을 노동자들에게 설명할 수 있다고 스스로 생각한다면 무엇보다 지금 공산당을 소생시켜 자신들의 능력을 실험해야 한다.

수백만 공산당 노동자들은 지도부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지만 자기보호 본능 때문에 당에 그냥 머물러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새 공산당 창당을 주창하는 것은 거대한 역사적 사회적 문제 해결의 전야에 스스로를 노동자들과 대립시키는 행위이다. 이 수백만 공산당 노동자들이 이해할 공통의 언어를 찾아내야 한다. 관료들의 저주, 비방, 탄압을 무시하면서 노동자들의 의식에 침투할 길을 찾아야 한다. 우리도 노동자들과 같은 것을 원하며 공산당과 다른 이해를 갖지 않고 있으며 우리가 제시하는 노선이 유일한 올바른 노선임을 이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초급진적 노선을 제시하는 투항자들을 가차없이 폭로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해 “지도자들”의 명확한 답변을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나라, 지역, 도시, 구역, 공장에 우리의 해답을 제시해야 한다.

당내에 볼셰비키-레닌주의자 핵심그룹이 수립되어야 한다. 그리고 노선 전환과 당운영 쇄신을 요구해야 한다. 진지한 지지를 얻는 곳에서는 어디든지 비록 소규모나마 공동전선 정책을 실천해야 한다. 당관료들이 우리를 제명하지 않을까? 물론 그럴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이들의 전능함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공산당과 전체 노동계급은 자유로이 토론해야 한다. 집회를 깨뜨리고 거짓 인용을 자행하고 독이 선 비방을 자행하는 행위 등은 사라져야 한다. 노동자 민주주의의 기초 하에 정직한 의견 교환이 있어야 한다. 1917년 내내 우리는 볼셰비키당 내외의 모든 세력들과 토론했다. 광범위한 토론을 통해 당 임시총회를 준비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유일한 토론 주제는,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좌익반대파는 공산당과 사민당 사이에 끼어 있는 단순한 정치세력이 아니라 공산주의 선동가, 선전가, 조직가들이다. 모든 노력을 공산당에 집중시켜야 한다! 우리는 공산당원들에게 설명하고 이들에게 우리 노선의 올바름을 확신시켜야 한다!

공산당이 공동전선 정책을 실천해야 하는 상황이 조성되면 확실히 파시스트들의 공격을 격퇴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파시즘에 대한 단 하나의 의미 있는 승리도 노동계급의 독재로 길을 열어줄 것이다.

그러나 혁명의 주도권을 쥐고 있더라도 공산당 내부에는 많은 모순들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좌익반대파의 소임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소임이 지금 시작된 것에 불과하다. 우선 독일 노동자혁명의 승리는 독일공산당 관료들의 스탈린 일당에 대한 의존관계를 청산시킬 것이다.  

독일 노동계급이 승리한 바로 다음날 아니면 권력 장악의 과정이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코민테른은 붕괴될 것이다. 관료적 중도주의 사상의 공허함, 일국적 한계, 반(反)노동자적 성격 등 모든 것이 독일 혁명의 환한 빛에 의해 한꺼번에 폭로될 것이다. 그리고 독일혁명은 10월혁명보다 비교할 수 없이 밝은 빛을 발할 것이다. 맑스와 레닌의 사상은 독일 노동계급의 지배적인 사상이 될 것이다. 이것은 불가피하다.

결론

어느 소장수가 황소 몇 마리를 도살장에 끌고 갔다. 그러자 백정이 날카로운 칼을 들고 가까이 다가왔다. 이때 황소 한 마리가 제안했다: “어깨를 맞붙이고 이 백정놈을 뿔로 받아올리자.” 그러자 마누일스키가 운영한 학원에서 정치교육을 받은 황소들이 이렇게 대답했다: “몽둥이를 들고 우리를 여기까지 몰고 온 소장수보다 백정이 어떻게 더 나쁜 놈일 수 있느냐?” 그러자 제안했던 황소가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소장수는 나중에도 처치할 수 있어.” 그러자 원칙이 확고한 황소들이 이렇게 대답했다: “어림없는 소리. 너는 우리의 적들을 왼쪽에서 막아주려고 하는군. 너 자신이 사회-백정(social-butcher)이다.” 결국 황소들은 어깨를 붙이고 대항하기를 거부했다.

--- 이솝 우화에서

"제국주의에 의해서 유린되고 있는 다른 나라들의 해방을 제껴두고 베르사이유 조약으로부터의 해방을 절대적으로 우선시하는 것은 카우츠키, 힐퍼딩, 오토 바우어 등에게나 걸맞는 중간계급적 일국주의이며 결코 혁명적 국제주의는 아니다“ (레닌: [좌파 공산주의: 소아병]).

우리는 일국적 공산주의를 완전히 거부해야 한다. “인민혁명”과 “민족해방” 등의 구호를 공개적으로 과감히 청산해야 한다. “베르사이유 조약 타도!”가 아니라 “소비에트 유럽합중국 만세!”가 되어야 한다.

사회주의는 과학기술의 최고의 성과들과 국제적 분업의 기초하에서만 달성될 수 있다.

소련의 사회주의 건설은 자족적인 일국적 과정이 아니라 국제혁명의 한 부분이다.

독일과 유럽 노동계급의 국가권력 장악은 소련 국경 내에서 폐쇄적이며 자족적인 사회를 건설하는 것보다 한없이 더 진정하며 시급한 과업이다.

노동계급 독재에 대한 내외의 적들에 대항하여 첫 노동자국가인 소련을 무조건 방어해야 한다!

그러나 소련 방어는 눈을 가리고 진행될 수 없다. 국제 노동계급이 소련 관료집단을 지배해야 한다. 일국 사회주의 이론을 일반화시키는 일국적 개량주의와 테르미도르 경향들을 가차없이 폭로해야한다.

공산당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첫 4차 코민테른 대회들이 제시한 전략으로 돌아가야 한다.

대중적 노동자 조직에게 최후통첩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공산당의 지도적 지위는 강요될 수 없다; 이것은 획득되어야만 한다.

사민당과 파시즘 모두를 도와주는 사회파시즘론을 거부해야 한다.

(가) 좀더 효과적인 반파시즘 투쟁을 위해서 (나) 사민당 노동자들을 개량주의 지도부와 대립시키기 위해서 사민당과 파시즘 사이의 적대관계를 지속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형식적 민주주의의 원칙이 아니라 노동자 민주주의의 긴요한 이해를 위해 부르조아 계급지배의 정치적 지배형태의 변화를 분석해야 한다.

브뤼닝 정권에 대해서는 어떠한 직접적 또는 간접적 지지도 보내서는 안된다!

파시즘에 대항해서 노동자 조직들을 과감하게 그리고 자기희생적으로 방어해야한다.

“계급 대 계급!” 이것은 모든 노동자 조직들이 부르조아 계급에 대항하여 공동전선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동전선의 실제적 강령은 대중이 환히 지켜보는 가운데 다른 조직들과 이루는 합의에 의해 결정된다. 모든 조직은 자신의 깃발과 지도부에 의해 움직인다. 그리고 모든 조직은 행동을 통해 공동전선의 규율을 준수한다.

“계급 대 계급!” 사민당 조직들과 개량주의 노동조합들이 “무쇠전선”이라는 이름으로 부르조아 계급과 배신적 동맹을 맺고 있다. 이들이 이것을 깨고 공산당을 비롯한 모든 노동자 조직들과 함께 하도록 쉬지 말고 선동해야 한다.

“계급 대 계급!” 노동계급 공동전선의 최고의 형태인 노동자 소비에트를 위해 선전과 조직 영역에서 준비해 나가자.

언제 어떤 조건하에서도 공산당의 완전한 조직적 정치적 독자성을 추구해야 한다.

사회주의 강령을 다른 강령이나 노선과 혼합시켜서는 안된다. 원칙에 위배되는 어떠한 합의도 안된다. 일시적 동맹세력들에 대한 완전한 비판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독일 대통령 후보로 좌익반대파는 당연히 텔만 후보를 지지한다. 공식 공산당 후보 깃발 아래 노동자들을 추동시키는 투쟁에서 볼셰비키-레닌주의 그룹은 선두에 서야 한다.

독일 공산주의자들은 승리한 혁명을 기초로 당기구를 지배한 소련의 현 지도부가 아니라 10월 혁명을 승리로 이끈 당으로부터 영감을 얻어야 한다.

독일공산당 관료지배의 청산은 죽고 사는 문제이다.

당내 민주주의로 복귀해야 한다.

노동자 공산당원들은 무엇보다도 전술과 전략 문제들에 대해 당내에서 정직하고 진지한 토론을 주도해야 한다. 좌익반대파(볼셰비키-레닌주의 그룹)의 목소리가 당원들의 귀에 들어가야 한다.

철저한 토론 후 자유로이 선출된 특별 당대회에서 모든 것이 결정되어야 한다.

지도부의 이중적 성격에 대한 사실에 입각한 가차없는 비판, 지도부 좌파에 대한 관심깊고 동지적이며 밀접한 관계 유지, 실제적인 합의를 맺을 용의 확보, 혁명적 좌파와의 좀더 밀접한 유대 등이 독일사회주의노동자당에 대한 공산당의 올바른 정책이다.

노동조합 정책의 180도 전환; 노동조합의 단결에 기초하여 개량주의 지도부에 대해 투쟁해야 한다.

산업 분야에서 공동전선 정책을 체계적으로 적용시켜야 한다. 명확한 요구들을 내건 강령에 기초하여 개량주의 공장위원회와 합의해야 한다.

가격 인하 투쟁. 임금 삭감에 반대하는 투쟁. 이 투쟁을 생산에 대한 노동자 계급의 통제 투쟁으로 전환시키자.

단일 경제계획을 기초로 소련과 경제협력을 추진한다.

이를 위해 관심 있는 독일 노동계급 조직들의 참여, 소련 내 해당 기구들에 의한 계획 초안 마련 등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계획의 기초 하에 독일을 사회주의 체제로 변모시키는 투쟁을 벌여야 한다.

가망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노동계급 대오 내에서 비관주의자들과 냉소주의자들을 치명적인 감염 매개물로 인정하고 즉시 몰아내야 한다. 독일 노동계급의 내적 잠재력은 한없이 풍부하다. 이들은 스스로 길을 개척해 나갈 것이다.

 

The Struggle Against Fascism in Germany by Leon Trotsk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