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츠키의 프랑스 인민전선 비판 선집

<차례>

편집자 서문

제 1 2 6 일 사건의 영향

편집자 서문

저자 서문

프랑스는 어디로 ?

 

제 2 부 프랑스 혁명을 위한 강령

편집자 서문

다시 한번 프랑스는 어디로?

인민전선이 아닌 투쟁위원회를 건설하자

전환기의 프랑스

 

제 3 부 1936년 6월의 격동

편집자 서문

결정적 단계

프랑스 혁명은 시작되었다

제2단계 투쟁을 앞두고

새로운 혁명적 격동과 제4인터내셔널의 임무

인민전선의 문제

 

4 : 맑스주의와 중도주의

편집자 서문

프랑스의 정세가 제기한 문제에 대해

결정적인 순간

노동자농민사회당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

프랑스의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중도주의와 제 4 인터내셔널

" 트로츠키주의 " 와 노동자농민사회당

용어 해설

 

 

편집자 서문

 

1934년 프랑스 사회는 격심한 위기에 직면했다. 일년 전 독일에서는 파시즘이 정권을 장악하더니 이제 프랑스마저 위협하고 있었다. 독일 노동계급의 참담한 패배를 프랑스 노동계급이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정치적 행동은 무엇이었을까?

이 문제에 대해 프랑스 공산당과 사회당은 모두 인민전선(People's Front)을 해답으로 내놓았다. 이것은 자유 부르주아 계급과의 동맹에 노동운동을 종속시키는 전략이었다. 당시 프랑스에서 자유부르주아지의 정치적 이해는 급진당(Radical Party)에 의해 대표되고 있었다. 이 정당과의 동맹을 위해 프랑스 노동계급의 손발을 묶는 것이 공산당과 사회당의 술책이었다.

본 저서는 기회주의 노선인 인민전선에 대한 트로츠키의 답변이다. 이 저서에는 당시 프랑스 정세와 관련된 트로츠키의 주요한 논문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가운데에는 1934년 10월에 저술한 [프랑스는 어디로?]가 있다. 당시 프랑스 공산당은 급진당과의 공식 동맹을 위한 첫 발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그가 1939년 7월에 쓴 논문은 이 저서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다. 이 논문은 제 2차 제국주의 세계대전의 발발과 제 3 공화국의 붕괴 직전에 작성되었다.

트로츠키의 논문들은 최근의 국제적 사건들을 보아도 그 유의미성이 입증된다. 예를 들어 포르투갈에서는 공산당과 사회당이 인민전선을 수립하여 안토니오 데 스피놀라(Antonio de Spínola) 장군의 연립정권을 지지하였다. 프랑스에서는 좌익동맹이 이 계급협조주의 노선을 채택하여 부르주아 정당들의 지지를 구했다. 좌익동맹의 대통령 후보 프랑수아 미테랑(François Mitterrand)은 1974년 선거에서 간발을 차로 패배했다.

그러나 인민전선을 논의의 초점으로 부각시킨 가장 중요한 최근의 사태는 칠레에서 일어났다. 살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의 인민연합 정부는 1973년 군사 쿠데타로 전복되었다. 이 결과 피노체트(Pinochet) 독재정권에 의한 악랄한 탄압이 자행되어 수많은 좌익인사들과 노동자, 농민이 살육당했다.

러시아를 제외하면 트로츠키가 정세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던 나라는 프랑스였다. 프랑스의 정세는 그의 정치적 지평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그는 때때로 프랑스 혁명운동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트로츠키와 프랑스의 이러한 인연은 이 저서의 중요한 배경을 형성하고 있다.

 

첫 프랑스 방문

1898년 20세가 채 되기도 전에 트로츠키는 남러시아 노동자동맹을 조직한 혐의로 오데사에서 체포되어 시베리아로 유형당했다. 이로부터 4년 반이 지난 후 그는 시베리아를 탈출하여 1902년 가을 영국의 런던에 도착했다. 망명 혁명기관지 [이스크라]의 기고가로서 그리고 이 기관지의 입장을 옹호하는 연사로서 레닌과 함께 일한 그는 여러번 프랑스의 수도 빠리를 방문했다.

그러나 트로츠키는 당시 러시아 망명자 사회 내에서만 주로 활동했기 때문에 프랑스의 정치생활에 편입될 수도 없었으며 그 자세한 내용을 알 수도 없었다. 그러나 당시 프랑스 사회주의운동을 양분하고 있던 정통 맑스주의 조류와 수정주의 조류 사이의 근본 차이를 직접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쟝 조레(Jean Jaurès)가 주도하고 있던 수정주의 조류는 사회당의 밀레랑(Millerand)이 발데크-루쏘(Waldeck-Rousseau)의 내각에 들어가는 것을 찬성했다. 한편 프랑스 사회주의 운동권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 중의 하나였던 주울 게드(Jules Guesde)는 이 계급협조주의적 경향에 반대하는 맑스주의 조류를 지도하고 있었다. 트로츠키는 당시의 경험을 이렇게 적고 있다: “게드가 지도하는 데모대에 끼어서 밀레랑에 대한 온갖 비판성 구호들을 함께 열심히 외쳤다.”([나의 생애])

러시아의 1905년 혁명은 그의 첫 망명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는 러시아로 돌아가 뻬쩨르부르크 소비에트 의장으로 혁명의 중심에 있다가 다시 짜르 경찰에 체포되었다.

 

제 1차 세계대전 시기의 트로츠키와 프랑스 좌익

뻬쩨르부르크의 재판, 시베리아 유형 판결, 천신만고 끝의 두번째 탈출, 핀란드와 독일을 경유한 수년간의 오스트리아 체류, 제 1차 세계대전의 발발, 1914년 11월 프랑스 잠입, 프랑스 정치생활과의 재회 등이 두번째 망명생활의 경로였다. 그는 정치신문 [키에프 사상]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여 프랑스의 전쟁 통신원이 되었다. 그러나 빠리에 도착하자 그는 멘셰비키 좌파 지도자 율리우스 마르토프(Julius Martov)가 편집인으로 있던 정치신문 [목소리]에도 참여하였다. 이 신문은 곧 [우리 세계]로 개명되었다.

당시 프랑스 사회주의 운동권은 지리멸렬했다. 전쟁 그리고 저명한 지도자들의 투항으로 조직은 파괴되고 구성원들은 침체에 빠져있었다. 주울 게드마저 부르주아 전시 내각에 참여하여 신성동맹(sacred union)이라는 미명하에 프랑스 노동계급을 살육의 전장으로 내몰고 있었다. 프랑스 좌익에게 몰아친 사회애국주의의 거센 파도에 저항했던 혁명가들은 극소수였으며 대중으로부터 고립되어 있었다.

당시 트로츠키가 접촉하고 있던 그룹 중에는 맑스주의에 가까운 혁명적 조합주의 그룹이 있었다. 이 그룹의 지도자 알프레드 로즈메(Alfred Rosmer)와 삐에르 모나트(Pierre Monatte)는 나중에 공산당 지도자가 되었으며 이후 스탈린주의 노선에 반기를 들었다. 당시 로즈메가 남긴 회상기는 [레온 트로츠키: 그의 인품과 활약상](1969년 패스파인더 출판사)에 포함되어 있는데 당시 트로츠키를 연구하는데 없어서 안될 1차 자료이다.

그의 회상기에 따르면 전쟁 통신원 트로츠키는 전쟁의 파괴에 찢긴 프랑스 전국을 돌면서 전선의 소식을 직접 전했으며 사기가 떨어진 프랑스 병사들을 인터뷰했다. 그는 이러한 경험을 통해 전쟁을 지지한 제 2 인터내셔널이 혁명적 제 3 인터내셔널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굳게 믿게 되었다. 사회애국주의자들에 대항해 결연히 투쟁할 용기와 의지가 없었던 마르토프는 트로츠키 그리고 [우리 세계]과 결별하였다.

1915년 스위스 찌머발트(Zimmerwald)에서는 지리멸렬한 노동운동을 재결집하고자 하는 국제회의가 소집되었다. 트로츠키는 소규모 프랑스 대표단의 일원으로 이 회의에 참석하였다. 그는 전쟁에 반대하는 “찌머발트 선언”의 초안을 작성하였다. 이 문서는 회의에서 공식 승인되었다. 찌머발트 회의에서 돌아온 후 트로츠키는 노동자 정당들 간에 연락망을 다시 구축하고자 결성된 [국제관계 재개를 위한 빠리 위원회]에서 주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암약하던 짜르의 첩자들이 [우리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던 트로츠키를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이들은 프랑스의 파시스트들과 연합하여 러시아 병사들이 마르세이유에서 프랑스군 대령한명을 저격한 사건에 트로츠키가 관련되었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1916년 초가을 프랑스의 내무장관 루이 말비(Louis Malvy)는 트로츠키를 프랑스에서 “영원히” 추방하는 명령서에 서명했다. 스위스가 그의 망명신청을 거부하고 영국이 그의 노르웨이 망명을 막았기 때문에 트로츠키는 스페인으로 추방당했다.

 

코민테른의 프랑스통이 되다

1917년 2월 혁명 직후 트로츠키는 러시아로 귀환했다. 그리고 곧 볼셰비키당에 입당했다. 그리고 일부 고참 볼셰비키들과 멘셰비키들이 부르주아 임시정부를 지지하는 노선에 대항하며 레닌과 함께 사회주의 혁명을 지도했다.

10월 혁명의 승리 직후 트로츠키는 적군의 총사령관이 되어 내전을 승리로 이끄는 일에 몰두하였다. 그러나 1919년 코민테른이 창립되면서 그는 중요한 외교적 역할을 담당해야 했다. 그는 볼셰비키 지도자들 가운데 프랑스 정세를 가장 잘 아는 사람으로 인정되었다. 따라서 코민테른의 프랑스 지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필요에 따라 지도하는 역할을 부여받았다.

러시아 혁명의 영향을 받아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 노동운동은 크게 고양되었다. 이에 프랑스 사회당 다수파는 1920년 말 뚜르(Tours)에서 개최되었던 당대회에서 코민테른 가입안을 표결로 통과시켰다. 그리고 당명은 프랑스 공산당으로 개명되었다. 그러나 소수파는 여전히 사회당이란 이름으로 정치생명을 유지했다.

그러나 프랑스 공산당은 태생적 한계인 사민주의 경향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코민테른 가입도 이 경향을 근본적으로 극복하지 못했다. 공산당의 가장 계급투쟁적 분파는 이 당을 혁명적으로 탈바꿈시키는 임무를 수행해야 했으며 코민테른 지도부 특히 트로츠키의 지도력에 의존했다. 이런 배경 하에 트로츠키는 1919년에서 1923년 사이에 프랑스 사회주의 운동의 당면 문제들에 대해 많은 저작을 남겼다. 이 저작의 많은 부분은 [코민테른의 첫 5년](The First Five Years of the Communist International)에 실려있다.

프랑스 제 3 공화국은 기회주의 조류들이 번성할 유리한 조건들을 제공하고 있었다. 공산당 대오 내에서도 개량주의 사회당 및 부르주아 급진당과 의회 내에서 지속적인 합의를 체결하려는 압력이 도사리고 있었다. 이러한 “좌익 동맹(Left Bloc)”에 대해 트로츠키는 노동자 공동전선(workers' united front)을 주창했다.

“‘좌익 동맹’ 즉 노동계급이 부르주아 일 분파와 동맹하여 부르주아 지배분파에 대항해야 된다는 사고, 이 사고를 노동계급 대오 내에서 분쇄할 수 있는 가장 믿을만한 방법 중의 하나는 노동계급 전체의 동맹을 통해 부르주아 계급 전체에 대항해야 한다 는 사고를 지속적으로 결연히 주창하는 것이다.” ([코민테른의 첫 5년], 뉴욕: 패스파인더 출판사, 1972년, 제 2권, 103-104쪽)    

노동자 공동전선의 주창은 프랑스에서 특히 그 의미가 있었다. 보수적 노동조합의 지도자 레옹 주오(Léon Jouhaux)가 노동계급의 분열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노동총연맹(General Confederation of Labor, CGT)으로부터 공산당 주도의 좌파 독립노동조합인 단일노동총연맹(Unitary General Confederation of Labor, CGTU)의 분리를 조장했다. (1936년 이 두 노동조직은 다시 통합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계급의 여론을 압박수단으로 삼고 이 여론 앞에 동요하고 투쟁을 회피하는 개량주의자들의 조치들을 폭로하기 위해”(같은 책, 101쪽) 노동자 공동전선을 주창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프랑스 공산당은 볼셰비키당이 결코 아니었다. 최고 지도부는 노동자 공동전선을 거부했다. 이때 트로츠키는 다른 문제점들도 같이 지적했다. 사회당에서 그대로 가지고 온 정치신문 [인류](L'Humanité)의 기회주의적 논조, 당기구의 무규율과 우유부단 등이 이것이었다. 사실 당기구의 요직은 사회당 간부들로 대부분 채워진 상태였다.

이들 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루이 프로싸르(Louis Frossard)였다. 그는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사회애국주의자였다가 “오해로 인해” 혁명가가 되었다. 그는 공산당 당수가 된 후에도 프리메이슨 회원 자격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었다. 그의 정치적 혼란은 이 점으로도 확인될 수 있었다.

프로싸르는 1922년 공산당을 탈당하여 우익세력과 합류하였다. 그러나 [인류]의 편집자 마르쎌 까쉥(Marcel Cachin)과 같은 출세주의자들은 당에 잔류하면서 프랑스 노동자들의 정치의식 상승과 볼셰비키 혁명전통 수용에 장애물이 되었다.

1923년 독일혁명이 실패로 끝나면서 세계혁명의 전망은 흐려졌다. 내전 기간에 소련 인민이 겪은 참담한 궁핍과 고통은 국제 혁명의 실망스러운 결과와 결합되면서 소련 사회를 압박하였다. 그리고 소부르주아 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관료집단의 등장을 초래했다. 이 기생적 정치집단은 노동자 국제주의를 저버리고 자신들의 협소한 이익을 구하였다. 정치 권력을 장악한 관료집단의 대표는 스탈린이었다. 그는 “일국사회주의”를 제창했다. 그러나 이 슬로건은 코민테른의 창립 원칙과는 완전히 모순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트로츠키는 노동자 국제주의와 노동자 민주주의의 부활을 위해 투쟁하였다. 이 투쟁은 세계혁명운동사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그가 대표하는 혁명세력의 투쟁도 소련과 다른 나라에서 스탈린주의가 득세하는 흐름을 역전시킬 수 없었다. 프랑스의 경우 까쉥과 여타 기회주의자들은 스탈린의 보수적 노선에 재빨리 영합했다. 1924년 말 경에는 모나트, 로스메, 수바린(Souvarine) 등 반대파 인사들이 공산당에서 제명되었다. 이러한 관료적 보복조치들을 동원하여 스탈린은 프랑스 공산당을 신속하게 자신의 지배 하에 두었다.

 

좌익반대파와의 연락

트로츠키는 소련 공산당은 물론 코민테른에서도 축출되었다. 1924년 레닌이 사망한 후부터 그는 스탈린주의의 확산을 저지하는 효과적인 투쟁을 조직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터어키로 추방된 1929년이 되어서야 그는 국제적인 접촉을 재개하고 국제좌익반대파를 조직하는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결국 이 작업의 결과 1930년 빠리 회의에서 국제좌익반대파가 결성되었다. 

코민테른에서 스탈린주의자들을 몰아내고 혁명적 맑스주의자들이 지도적 직위를 차지할 경우 코민테른은 다시 혁명적으로 변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좌익반대파는 확신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을 코민테른의 축출된 분파로 간주하고 코민테른의 대체가 아니라 개혁을 위해서 투쟁했다.

프랑스의 경우 좌익반대파는 노동운동 경험이 없는 젊은 활동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로스메 정도만이 널리 알려진 혁명 지도자였다. 그러나 그마저 트로츠키와 견해를 달리 하면서 1930년 투쟁 일선에서 물러나 버렸다. (이들은 1936년에서야 화해를 하고 같이 활동하였다.)

트로츠키는 프랑스 좌익반대파가 직면한 정치적 문제들의 해결을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다. 이를 위해 편지가 오갔으며 활동가들이 터어키의 프린키포섬으로 트로츠키를 찾았다. 이런 방식을 통해 트로츠키는 이들에게 지도력을 행사하였다. 특히 1929년에서 1933년 사이에 그는 프랑스의 조직적 정치적 문제들에 대해 많은 논문과 편지를 썼다.

그는 1929년 [계급투쟁](Lutte de classes) 그룹에게 공개서한을 보냈다. 이 편지에서 그는 이 그룹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정치활동을 전개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그리고 특히 좌익반대파의 공식 기관지를 창간하는 것 등을 통해 구체적인 정치투쟁을 벌일 것을 촉구했다. 1929년 이 그룹의 기관지 [진실](La Vérité)이 발간되고 1930년 [국제좌익반대파]의 일원으로 [공산주의 동맹](Communist League)이 결성되면서 프랑스 혁명운동은 올바른 길을 나아가게 되었다.

 

1933년: 세계정세의 변화

1930년대가 시작되었을 때 프랑스는 트로츠키의 정세 전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나라는 아니었다. 그의 관심은 온통 독일에 쏠려 있었다. 독일은 경제적 혼란에 휩싸여 있었고 이 와중에 히틀러는 마비상태에 빠진 것처럼 보이는 좌익에 대해서 공세를 취하고 있었다.

트로츠키는 많은 논문들을 통해 파시즘의 정권 장악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사실을 경고했다. 이때 독일공산당은 스탈린의 초좌익 노선인 “제 3기” 이론에 갇혀 있었다. 이 결과 파시즘의 위험을 경시하고 반파시즘 투쟁의 중요성을 간과하였다. 스탈린주의 “제 3기” 노선은 이 기간동안 전세계 사회주의 운동의 승리를 예견하였다. 따라서 당면 정세가 요구하는 투쟁 즉 노동계급의 방어전술과 단결투쟁이 거부되었다.

결국 히틀러는 독일에서 정권을 잡았다. 이 사건은 국제 정세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이로부터 1년 이상 코민테른은 이 엄청난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나찌 정권이 독일공산당을 물리적으로 괴멸시키고 난 후에도 코민테른은 대재앙을 초래한 “제 3기” 전략을 고수하였다. 이 결과 트로츠키와 국제좌익반대파는 1933년 새로운 인터내셔널의 창립을 촉구하고 이 과업을 완수하기 위해 [국제공산주의동맹](International Communist League)을 결성했다.

트로츠키 개인에게도 1933년은 커다란 변화의 해였다. 프랑스 정부가 자신의 망명을 허가했다는 소식을 프린키포섬에서 접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급진당 소속 에두아르 달라디에(Edouard Daladier) 수상이 트로츠키의 국외 추방을 명한 1916년 포고령을 폐기하자 파시스트 조직, 러시아 백군 망명자 조직, 스탈린주의자 등이 1933년 7월 트로츠키의 마르세이유 도착에 맞추어 항의 행동에 돌입했다. 그는 마르세이유에 도착한 후 로양(Royan) 근처의 소읍 쎙빨레(Saint-Palais)에서 잠시 거처를 정하였다. 그리고 이해 11월이 되어서야 그는 빠리에서 몇시간 내에 있는 바비종(Barbizon)에 정착할 수 있었다. 

 

3번째의 프랑스 체류:1933년에서 1935년까지

1934년 2월 6일 프랑스 극우 파시스트 세력과 왕당파 무리들이 격렬한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이 사건은 프랑스의 정세를 뒤흔들었다. 의사당에 난입하고 정권을 전복하려던 무장 시위대의 폭력은 경찰의 진압으로 수포로 돌아갔다. 그러나 쿠데타 기도는 무위로 돌아갔지만 애초의 목적을 상당히 달성하였다. 달라디에는 사임했으며 우익 정치인 가스똥 두메르그(Gaston Doumergue)가 2월 7일 수상이 되었다.

프랑스 망명의 허용 조건으로 트로츠키는 처음부터 몇가지 권리를 포기해야만 했다. 익명을 유지할 것과 프랑스 정치에 관여하지 말 것 등이었다. 이를 위해 프랑스 정부는 지방 당국에도 트로츠키의 거처를 알리지 않았다. 그러나 4월 그의 신분이 탄로나자 커다란 파문이 일었다.

정부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기 위해 우익 언론은 다시 트로츠키를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4월 22일자 우익 일간지 [아침](Le Matin)은 “프랑스 혼란의 배후에는 트로츠키가 있다 --- 그는 세계혁명의 야욕을 버리지 않았다”라는 제하의 기사를 실었다. 파시스트 언론은 매일 그를 공격했다. 공산당 기관지 [인류] 역시 트로츠키를 격렬히 비난하면서 그가 달라디에의 소련 침공을 돕기 위해 프랑스에 왔다고 주장했다. (이때에도 스탈린의 “제 3기” 노선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그러나 몇 달이 되지 않아 공산당은 기존 노선을 180도 전환하여 소위 “급진적 파시스트” 달라디에와의 연합을 지지하였다.)

좌익반대파 기관지 [진실]은 트로츠키의 망명권을 옹호하는 투쟁을 활발하게 전개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탄압은 노동계급 전체에 대한 탄압을 겨냥한 것”이라고 폭로했다. 그러나 두메르그 정권은 이 민주적 권리가 정권 유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트로츠키를 추방하는 명령서가 새로이 입안되었으나 이 명령은 일년 이상 실행될 수 없었다. 그를 받아줄 나라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7개월간 트로츠키와 그의 동반자 나탈리아 세도바는 도망자의 신세였다. 그들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때마다 거처를 옮겨야 했다. 이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트로츠키는 프랑스 노동계급이 정치적 위기에 올바로 대응하도록 최선을 다했다. 정세를 면밀히 추적했으며 그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했을 뿐만 아니라 공산주의동맹이 가장 효과적으로 정세에 개입하는 방법에 대해 조언을 했다. 특히 사회당 당원들이 위기 상황에서 동요하며 좌선회하고 있는 상황을 파악하고 대중으로부터 고립된 공산주의동맹을 해체하고 사회당에 들어갈 것을 제안했다. 사회당 내부의 혁명적 분자들과 결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문제와 관련해 그는 1934년에서 1935년까지 여러 저작들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개진하였다. 1934년 8월 공산주의동맹 전국회의는 그의 제안을 승인했다. 즉 [진실]을 기관지로 하고 조직명을 볼셰비키-레닌주의 그룹으로 정한 후 사회당에 입당할 것을 표결로 통과시켰다. “프랑스 전환”이라고 명명된 이 전술은 국제공산주의동맹의 다른 나라 지부에서도 적용되었다.

7월 트로츠키는 알프스 이제르(Isère)주의 소읍 도메느(Domène)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트로츠키 부부는 프랑스 체류의 나머지 11개월을 은신하였다. 이때 프랑스에는 거대한 정치적 격동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상대적 고립의 시기였다. 그러나 그는 익명을 유지하면서도 타인을 통해 정치활동을 계속했다. 당시 그는 도메느의 노동운동가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고 이들을 통해 프랑스 노동운동과 사회당에 개입하였다. 이 사실은 프랑스 역사가 삐에르 브루에(Pierre Broué)의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1934년과 35년의 저작과 관련된 그의 부록을 참조할 것)

본 서의 제 1부에 포함된 “프랑스는 어디로(Whither France?)”는 프랑스 노동운동에 대한 트로츠키의 공헌을 가장 잘 보여주는 중요한 논문이다. 볼셰비키-레닌주의 그룹을 정치적으로 무장시키기 위해 그는 1934년 10월 이 논문을 완성하였다. 이 논문은 특별위원회의 보고서 형식으로 [진실]에 발표되었다. 프랑스 정부에게 탄압의 빌미를 제공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프랑스 저작: 1934년과 1935년

트로츠키는 2월 6일의 사건을 연구하였다. 그리고 이 사건이 유발시킨 프랑스 사회의 심대한 위기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려 하였다. 이 위기의 직접적인 결과로 가스똥 두메르그가 정치무대에 등장했다. 비록 은퇴한 이 전직 대통령이 극우세력에게 어필하기는 했지만 그의 주요한 정치 기반은 정치권력을 놓고 서로 경합을 벌이고 있는 정당이나 대중운동이 아니라 국가기구와 군부의 관료집단에 있었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트로츠키는 그를 보나파르트적(Bonapartist) 인물로 분류했다. 보나파르트적 인물이란 사회가 적대 계급들로 양극화되고 있으나 어느 계급도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하지 못하고 계급 역관계가 불안한 균형를 유지할 때 권력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 등장한다.

그러나 두메르그가 이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애쓰는 동안 제 3 공화국은 그의 발 밑에서 붕괴하고 있었다. 위기의 정도가 너무 심각해 생존능력이 있는 보나파르트 체제를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1930년대 초반 히틀러에 앞서 정권을 잡았던 브뤼닝(Brüning), 폰 파펀(von Papen), 슐라이허(Schleicher) 정권 등과 같이 두메르그 정권은 트로츠키가 명명한 바 노쇠한 보나파르트 체제였다.(그러나 프랑스 파시즘은 급진당의 정치 기반을 잠식하여 소부르주아 계급을 대중적 기반으로 채 확보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 때문에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보다 프랑스 제 3 공화국의 보나파르트 체제가 더 오래 갈 것이라고 트로츠키는 판단했다.)

2월 6일 사건의 또다른 결과는 프랑스 부르주아 계급의 일부가 파시즘의 정권 장악을 체제 유지의 대안으로 진지하게 고려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이 대안은 독일 파시즘의 승리로 더욱 현실성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트로츠키는 2월 6일 직후 발표한 투쟁 촉구문에서 이 사실을 지적했다: “금융자본은 파시스트 도당들을 조직하고 무장시키고 있다. 무쏠리니는 이탈리아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 세계적 현상이다. 부패한 야만적 반동이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퍼지고 있다. 프랑스는 다음 차례이다. 2월 6일 사건은 파시스트 도적행위의 첫 번째 리허설이었다.” (1934-35년 저작 238쪽)

그러나 2월 위기는 프랑스 노동계급의 급진화를 가속화시키고 이들을 공식 지도자들보다 더 좌경화시켰다. 사상 유례없는 혁명적 기회와 거대한 책임이 이제 공산주의동맹의 어깨에 놓여있었다.

공산주의동맹은 독일의 거대한 패배가 가르쳐준 교훈을 투쟁의 무기로 삼았다. 당시 독일의 트로츠키주의 조직만이 반파시즘 공동전선 전술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었다. 이러한 정황으로 공산주의동맹은 조직의 심대한 왜소성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기회를 맞이하고 있었다. 파시스트 깡패집단들로부터 노동계급을 방어하고 노동계급의 단결을 도모하는 투쟁 전술이 노동운동 내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트로츠키는 “노동자 민병대야말로 파시스트 깡패집단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투쟁의 무기이다. 파시스트들은 조만간 경찰조직의 지원을 받아 노동계급을 물리력으로 제압하려들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같은 책, 243쪽)

공동전선에 대한 트로츠키의 사상은 혁명의 만조기였던 10여년 이전에 그와 레닌이 코민테른을 위해 입안한 정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공산당과 사회당은 공동전설 구호를 왜곡하여 자신들의 관료적 이해에 종속시키려 하였다. 스탈린주의자들은 1934년 7월 “공동전선” 협상을 개시하였다. 즉 사회당 지도부에게 반파시즘 투쟁을 전개할 공동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이 제안서에는 1.시민적 자유의 확대 2.전쟁준비 반대 3.파시스트 집단의 테러행위에 대한 노동계급의 투쟁 조직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혁명적인 것처럼 보이는 이 프로그램에는 중요한 단서가 있었다:“공산당과 사회당은 서로에 대한 정치적 공격과 비판을 자제한다.”

이 단서는 기존의 공동전선 정책으로부터 판이하게 빗나간 것이었다. 각기 다른 강령을 가지고 있는 조직들이 특정 행동이나 투쟁을 여전히 지지하기 때문에 공동전선은 가능하다. 이것은 행동의 도구이다. 시민적 자유를 옹호하고 파업을 지지하고 제국주의 전쟁을 반대하여 노동계급을 투쟁의 전선으로 인도하는 그런 투쟁의 도구인 것이다. 계급 갈등이 좀더 격화되는 시기에는 노동자 민병대나 노동자 병사 소비에트를 건설하기 위해 공동전선 투쟁이 필요하다.

그러나 비판을 금지하는 단서는 반대 효과를 가져올 뿐이다. 이것은 행동의 통일을 저해한다. 왜냐하면 먼저 강령상의 차이가 없다고 선언한 조직이나 개인들만 공동행동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료들의 기회주의적 정책에 대한 혁명적 비판을 봉쇄할 뿐인 단서는 오직 관료들에게만 이익이 된다.

1934년 10월 공산당은 급진당에게 공동전선에 참여할 것을 촉구했다. 이를 통해 계급협조주의 역사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 인민전선이 정치 현실로 드러났다. 이 재앙적인 정책은 1935년 7월 공식 출범하였다.       

공산당의 이 제안은 급진당이 수락했든 아니든 노동운동에게는 위험한 덫이었다. “적이 아군의 진지를 공격하면서 기동전을 준비하는 동안 진지전 전략을 구사하여 노동계급을 소부르주아 계급에 종속시키는 행위”([진실], 1934년 11월 2일)라고 비판하며 처음부터 볼셰비키-레닌주의 그룹은 인민전선에 대해 투쟁했다.

프랑스 노동계급은 지도부의 쓰디쓴 배신을 이미 여러차례 당한 적이 있었다. 예를 들어 밀레랑은 대중을 배반하고 제 1차 세계대전 중 부르주아 지배계급과 신성동맹을 맺었다. 그렇다면 배신의 경험으로부터 정치적 교훈을 얻은 대중에게 개량주의 지도자들이 인민전선을 선전하고 팔아먹은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소련의 스탈린주의 관료기구는 인민전선의 장점을 선전하였다. 따라서 많은 노동자의 생각 속에 이 정책은 10월 혁명의 권위를 위임받은 것처럼 비춰졌다. 이에 대해 트로츠키와 그의 동지들은 인민전선이 러시아 혁명 당시 멘셰비키의 자유부르주아 임시정부 지지 정책의 최신판에 지나지 않음을 증명했다. 사실 멘셰비키의 당시 노선에 대해서 볼셰비키들은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대항했었다. 10월 혁명의 절정이었던 무장봉기도 바로 임시정부 지지 정책에 반대해 투쟁한 하나의 예에 지나지 않았다.

마누일스키(Manuilsky)와 같은 코민테른 지도자들은 인민전선이 전쟁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하는 투쟁을 성공적으로 전개할 기회는 1914년 전쟁 전야 때보다 지금이 더 크다. ... 소련에 의존하고 자본주의 국가들 간의 적대관계를 이용할 경우 지금 세계 노동계급은 광범위한 반전 인민전선을 구축할 절호의 기회를 맞이할 것이다....”

이에 대해 트로츠키는 이렇게 주장했다: “제국주의 부르주아 계급은 자국 인민의 실제 이익을 옹호할 능력이 결코 없으며 그럴 의사도 전혀 없다. 이 진실을 우리 맑스주의자들은 항상 주장해왔다. 그런데 어떻게 갑자기 지금 이들이 소련의 진정한 이익을 옹호할 능력이 있다고 믿겠는가?”(같은 책, 307쪽)   

소련과의 유리한 무역 및 외교 관계를 촉진하기 위해 부르주아 정부를 지지하는 전략은 노동자 국제주의를 붕괴시키고 제국주의를 강화시킬 뿐이다. 제 2차 세계대전은 이 전략의 결과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인민전선이 노동계급의 단결에 소부르주아 계급의 단결을 가미했기 때문에 기존의 공동전선을 개선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었다.

이 견해에 대해서 트로츠키는 중간계급을 획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단호한 노동계급의 지도력이 증명될 때 뿐이라고 지적했다. 의회에서 소부르주아 계급을 대표하는 급진당을 지지하는 것은 일종의 자살행위였다. 더욱더 불안감을 느끼고 있던 중간계급 내부에 파시즘의 영향력을 확대할 뿐이기 때문이었다.

스탈린주의자들은 노동자들이 급진당에 모든 운을 걸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이때 소부르주아 계급은 사회적 위기가 의회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선을 이미 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따라서 자신의 의회 대표인 급진당을 더 이상 신임하지 않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계급이 급진당을 지지할 경우 투쟁 동력이 낭비될 뿐이었다. 노동계급이 무기력증을 보일 경우 소부르주아 계급은 파시스트 깡패들을 지지할 것이었다.

인민전선은 제 3 공화국의 민주주의 전통에 지지를 보낼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이런 전통을 방패 삼아 파시스트 깡패들은 무장을 시작하고 있었다. 따라서 사회주의와 파시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소부르주아 계급 대중의 유일한 길이라고 트로츠키는 강조했다.

트로츠키는 그의 저작들에서 프랑스 정세의 새로운 현상들을 설명하면서 동시에 중요한 강령적 개념들을 포함시켰다. 1934년 6월에 작성된 “프랑스의 행동 프로그램”에 이것이 가장 잘 표현되어 있다. 이 프로그램에 포함된 여러 요구들과 제안들은 오직 혁명적 맑스주의 지도부만이 1930년대의 사회적 혼란으로 가장 많은 피해를 보고 있던 사회 계층 즉 여성, 청년, 외국 및 식민지 노동자, 농민, 군인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결론내렸다.

이 프로그램에 제창된 요구들과 제안들은 본 서의 제 2부에 포함된 “다시 한번, 프랑스는 어디로?”에서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강령적 내용들은 다음의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맑스주의적 실천은 이행기적 투쟁 방식(transitional approach)과 분리될 수 없다. 이 방식은 노동계급과 이들의 잠재적 동맹세력들의 시급한 요구들을 제시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투쟁방식은 [자본주의의 단말마적 고통과 제 4 인터내셔널] 즉 이행기 강령에 가장 명확히 표현되어 있다. 이 강령은 트로츠키가 작성하고 1938년 9월 제 4 인터내셔널의 창립 회의에서 채택되었다.)

 

노르웨이에서 멕시코로: 제 3 공화국의 몰락을 주시하다

1935년 6월 트로츠키는 새로 집권한 노르웨이 노동당 정부로부터 입국 허가를 받아 지체없이 프랑스를 떠났다. 동시에 프랑스 사회당 지도부는 총회를 개최하여 인민전선을 승인했다. 그리고 당내에서 세를 확대하고 있는 볼셰비키-레닌주의 그룹이 사회당과 공산당의 인민전선 동맹을 방해할 경우 즉시 출당 처분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그룹이 인민전선 정책에 협조할 의사를 보이지 않자 사회당 지도부는 이 그룹을 1935년 11월 출당 조치해 버렸다. (출당조치와 이것으로 야기된 이 그룹 내부의 분쟁에 대한 트로츠키의 편지들은 [프랑스 지부의 위기, 1935-36]에 실려있다.)

레옹 블룸(Léon Blum)의 인민전선 정부는 노동자 투쟁의 분출기인 1936년 5,6월에 집권하였으나 프랑스 노동자들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여 실권하였다. 그리고 이 결과 프랑스 지배계급을 위해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를 땜질하는 기능도 동시에 상실했다. 이러한 정세의 추이를 트로츠키는 노르웨이 망명지에서 면밀히 관찰했다. 이 인민전선 정부의 등장과 몰락의 과정은 본 서의 제 3부에 소개된 트로츠키의 저작들에 잘 분석되어 있다.

1937년 6월 블룸 정부의 붕괴에 이어 급진당은 의회의 주요 정당으로서의 역할을 되찾았다. 블룸이 다시 수상이 되었던 1938년 봄의 짧은 기간을 제외하면 급진당은 1940년 제 3 공화국이 끝날 때까지 정부의 요직을 장악했다.

그러나 1938년 쯤 이 정당은 자유주의적 인도적 외양을 전부 벗어 던졌다. 사실 급진당 내 좌파의 대표이자 인민전선의 최고 대변인 달라디에는 과거 지지자들의 도움을 구했을 뿐 노동계급은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그리고 프랑스 사회의 군사화를 증대시키고 1938년 8월의 스탈린-히틀러 독소(獨蘇)조약 직후 프랑스 공산당을 불법화시켰다.

물가 및 임금과 관련된 포고령을 통해 달라디에는 프랑스 노동자들을 더 큰 이윤과 더 높은 생산성 추구를 위한 산업 농노로 격하시키려 했다. 1938년 11월 30일 총파업의 붕괴는 인민전선이 노동계급의 투쟁의지 마비와 사기저하 만을 초래했음을 자명하게 보여주었다. 이 계급협조적 실험의 유일한 수혜자는 부르주아 계급이었다. 경제적 혼란의 와중에도 이들의 정치적 입지는 더욱 강화되었다.

현재 지도부로는 자신들의 투쟁이 노동자국가 건설이라는 궁극적 혁명적 결론으로 나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프랑스 노동자들은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다 떨어져 나간 인민전선이라는 우산 밑에서 자신의 이익을 보호받기 위해서 웅크리고 있는 관료집단에 도전하는 정당은 하나도 없었다.

다른 나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프랑스에서도 트로츠키주의 운동은 미미한 영향력 때문에 사태의 전개에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었다. 이해 9월 개최된 제 4 인터내셔널 창립회의에서 대중정당의 건설, 혁명 중핵의 양성이 핵심 과제로 명시되었다. 그렇다면 프랑스의 제 4 인터내셔널 지부인 국제주의노동자당(POI)이 혁명적 대중 지도부를 건설할 정도로 강화되고 선전에서 선동으로 노선을 전환할 방안은 무엇이었을까?

1938년 말에서 1939년에 걸쳐 프랑스는 독일과 전쟁에 돌입할 직전에 있었다. 이때 트로츠키는 제 4 인터내셔널이 표방한 핵심적 과업을 해결하기 위해 백방의 노력을 경주했다. 1938년 6월 노동자농민사회당(PSOP)이 결성되었다. 이 조직의 지도부는 중도주의자들이었으나 두 주요 대중정당인 공산당과 사회당의 인민전선 정책과 기회주의를 거부했다. 그리고 이 정당은 국제주의노동자당보다 훨씬 규모가 컸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주의노동자당의 일부는 대중적 혁명정당 건설의 한 방안으로 노동자농민사회당과의 통합을 제안했다. 처음에는 주저했으나 트로츠키는 이 제안을 지지했으며 멕시코에서 노동자농민사회당의 지도부가 이 제안을 지지할 것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그러나 이 당의 지도부는 통합에 반대했으며 다만 국제주의노동자당 당원들이 개인 자격으로 입당하는 것을 허용할 용의를 보였다. 결국 국제주의노동자당의 일부는 노동자농민사회당에 들어가 이 당의 강력한 좌파와 결합했다. 그러나 곧 노동자농민사회당 지도부는 국제주의노동자당의 입당을 후회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몇주 전까지 트로츠키는 중도주의에 대한 가장 신랄한 비판을 편지와 논문들을 통해 펼치게 된다. 이 편지와 논문은 본 서의 마지막 부분을 장식하고 있다. 전쟁이 터지자 노동자농민사회당은 곧 붕괴해 버렸다. 이제 전시 상황이라는 엄혹한 조건 속에서 혁명정당을 건설할 과업은 제 4 인터내셔널의 어깨에 달려있었다.

1940년 독일은 프랑스 전역을 점령하고 비쉬(Vichy)에서 뻬뗑 원수(Marshal Pétain)의 친나찌 보나파르트 정권을 수립시켰다. 독일의 지배와 뻬뗑 독재정권에 대해서 프랑스 노동계급은 무기력으로 일관했다.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트로츠키는 프랑스에 대한 마지막 미완성 논문 “보나파르트 체제, 파시즘, 전쟁”을 저술했다. 그는 인민전선의 재앙적 해악을 그 주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프랑스에는 진정한 의미의 파시즘이 존재하지 않는다. 노회한 뻬뗑 정권은 제국주의 쇠퇴기에 등장한 노회한 보나파르트 체제에 불과하다. 1936년 6월 총파업이라는 거대한 투쟁이 분출하면서 노동계급이 급진화되었고 이 격동이 오래 지속되었으나 투쟁은 혁명의 성공으로 귀결되지 못했다. 이 결과 뻬뗑 정권이 탄생했다. 공산당, 사회당에 의한 ‘인민전선’ 반동 정치극 등으로 노동계급은 전망을 상실하고 극도의 사기저하에 빠졌다. 인민전선 주창자들은 민주주의와 집단적 안보의 결합을 주창하는 선전공세를 5년간이나 퍼부었다. 이 상황에서 스탈린이 갑자기 히틀러와 동맹을 체결했다. 이 결과 프랑스 노동계급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사태 전개에 넋이 빠져버렸다. 전쟁은 이 혼란을 극단으로 몰고갔으며 수동적 패배주의 아니 좀더 정확히 표현해서 전망상실로 인한 무관심증이 노동계급 가슴 속에 깊숙히 스며들었다. 프랑스의 유례없는 군사적 대패와 가증스러운 뻬뗑 정권의 출현은 그간의 사태 전개에 따른 논리적 귀결이다.” ([1939년-1940년 저작], 417쪽)

인민전선은 1930년대에 프랑스 노동자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치면서 파시즘과 전쟁을 피할 수 있다는 환상을 유포했다. 대중적 독자행동을 취할 능력을 보유한 사회계급답게 자신의 힘에 의존해야 한다고 교육시키는 대신 동요하는 우익 동맹세력에게 의존할 것을 주문하면서 노동계급을 잘못된 길로 인도했다. 결국 필연적인 실망감을 맛본 노동계급에게 “전망을 상실한 무관심증”이 찾아들었다.

이 시기 트로츠키의 저작들은 불가피한 하나의 결론에 도달한다: 혁명적 사회주의 정당의 지도를 받는 노동계급의 혁명적 공세가 없이는 인류의 의미있는 진보가 불가능하다. 노동자 혁명 정당은 인민전선의 정체를 폭로하고 제 3 공화국을 사회주의 사회로 대체하는 길을 열었을 것이다. 사회의 근본을 뒤흔드는 혁명적 요인들이 모두 존재했으나 결의에 찬 혁명 지도부의 결여가 결국 가장 결정적인 결함이었다.

1930년대 혁명운동의 발전을 위해서는 맑스주의적 관점에서 정세를 명확히 분석할 필요가 있었다. 이 목적을 위해 저술된 그의 저작들은 현대 맑스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이론적 결실에 속한다. 본 서는 트로츠키가 1934년부터 1936년까지 저술했던 모든 저작들을 망라하였으며 영어 번역은 잔 라이트(John G. Wright)와 해럴드 아이작스(Harold R. Isaacs)가 맡았다. 본 서의 저작들은 1936년 [프랑스는 어디로?]라는 제목으로 미국에서 출판될 예정이었다. 본 서에는 그가 1935년부터 1939년까지 저술한 10개 논문도 포함되어있다.

데이빗 샐너(David Salner)

1977년 6월

 

제 1부 2월 6일 사건의 영향

 

편집자 서문

 

1929년에 시작된 세계 경제 대공황(the Great Depression)은 프랑스 제 3 공화국의 경제를 파괴하면서 경제적 정치적 혼란을 증대시켰다. 예를 들어 1932년 5월에서 1933년 9월까지 수상이 5번이나 바뀌었다.

이 혼란스러운 기간의 첫 수상은 에두아르 에리오(Edouard Herriot)였다. 그는 급진당 당수였으나 갈수록 영향력을 상실하고 있었다. 그 다음에 뽈-봉꾸르(Paul-Boncour), 달라디에(Daladier), 싸로(Sarraut), 쇼땅(Chautemps)이 뒤를 이었으며 이들도 모두 급진당 소속이었다.

급진당 또는 급진사회당(The Radical or Radical Socialist Party) . 프랑스의 가장 주요한 부르주아 정당으로 “급진적이지도 사회주의적이지도 않았다. 이 정당의 모토는 ‘반동도 안되고 혁명도 안된다!’였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의 전통에 영감을 받았으며 교회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다.‘심정적으로는 좌익이면서도 실제로는 우익의 풍요한 생활을 누리는 사람들’의 지지를 얻었다. 이 정당에는 두 분파가 당의 주도권을 다투었다. 우파는 까미유 쇼땅이 좌파는 에두아르 달라디에가 이끌었다. 이 정당은 농민, 중소사업가, 독립 수공업자의 절대다수를 대표했다. 이들은 프랑스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1931년 프랑스 전체 기업의 거의 3분의 2는 노동자를 전혀 고용하지 않았고 3분의 1은 10인 미만의 노동자를 고용했다. 전체 기업의 0.5%만이 100명 이상의 노동자들을 고용했다.”([인터내셔널의 역사], 율리우스 브론탈 저, 프래거 출판사, 1967년 제 2권 417쪽)

자유주의자 달라디에는 1933년 내내 수상이었으며 1934년 초에 다시 수상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당내 우파의 압력도 점점 증대하고 있었다. 급진당의 정치 기반이었던 소부르주아 계급은 경제 위기로 가장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이 계급의 일부는 의회가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보고 다른 대안을 찾고 있었다.

극우동맹(The leagues) . 이들 친파시스트, 친왕당파 조직들은 현실에 염증을 느낀 인민이 우경화했기 때문에 세력이 증대되었다. 까지미르 들라로끄(Casimir de la Rocque) 대령에 의해 예비군 단체로 시작된 [불십자가](Croix de Feu)는 회원 수가 70만명이 넘었다. 이외에도 [왕궁](Camelots du Roi), [프랑스 행동](Action Française), [청년 애국자](Jeunes Patriotes), [프랑스 연대](Solidarité Française) 등의 조직도 있었다.

극우세력의 증대에 유리한 정치적 환경을 조성한 또 하나의 요인은 스타비스키(Stavisky) 스캔들이었다. 급진당이 사기꾼 금융인 세르쥬 알렉쌍드르 스타비스키를 보호했다고 극우동맹은 비난을 퍼부었다. 스타비스키의 사망 후 며칠이 지나자 경찰은 그가 자살했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우익과 좌익 모두 이 결론에 이의를 제기하고 그의 정치적 친구들을 은폐하기 위해 경찰이 그를 살해했다고 비난했다. 여러 급진당 관료들이 그의 재판을 여러 차례 연기시킨 사실이 드러났다. 1934년 1월 쇼땅 수상의 사임을 불러온 사건이 바로 이 스캔들이었다.

극우세력은 “의회의 도둑놈들”에게 항의하기 위해 1934년 2월 6일 연합시위를 감행할 것을 촉구했다. 신임 수상 달라디에가 강경 반동 경찰총감 쟝 쉬아프(Jean Chiappe)를 경질하자 이들은 시위의 구실을 하나 더 갖게 되었다. 수천명의 무장 우익 군중이 경찰과 충돌하고 국회의사당으로 행진하기 위해서 시위에 참여했다. 이것은 마치 엉성하게 계획된 쿠데타 같았다. 이 시위는 14명 사망 1300명 부상이라는 폭력사태를 불렀는데 결국 달라디에가 수상직을 사임하고 두메르그가 그의 뒤를 잇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이 사건은 오스트리아의 돌푸스 정권이 노동운동을 분쇄하고 있던 당시 그리고 히틀러가 독일에서 승리한 지 1년이 지난 시점에 발생했다.

4월 신임 수상 두메르그는 정부부문 고용 노동자의 수를 10% 감축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같은 달 그는 철도 노동자들의 임금을 삭감하기 위해 철도산업의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 조치들은 강력한 국가 행정력을 확립한다는 미명 하에 진행되었으며 전년에 비해 실업률이 25% 급등하는 결과에 일조했다.

좌익(The left) . 프랑스 노동자들은 2월 6일 사건이 불러온 위기의 시급성을 이해하고 있었다. 노동총연맹(CGT)은 2월 12일 총파업을 호소하였고 사회당도 이에 합류했다. 이 총파업 호소에 대해 빠리 지역에서만 백만명이 넘는 노동자가 행동으로 응답했다. 사실 2월 12일 총파업은 전체 노동계급의 실질적 공동전선이었다. 그런데도 공산당은 이 거대한 투쟁을 그 전날 밤이 되어서야 지지했다.

사회당을 진짜 파시스트들보다 더 위험한 “사회 파시스트”로 규정한 채 공산당은 일관되게 공동전선을 거부했었다. (이 뒤틀린 논리의 결과 2월 6일 시위에 공산당 소속 예비군들은 파시스트 예비군들과 함께 참여했다.) 공산당은 최후 순간에 2월 12일 총파업을 지지했으나 이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꾼 것은 아니었다. 모리스 토레즈(Maurice Thorez)를 비롯한 공산당 지도부는 평당원들의 단체 행동을 전날 밤에 지지한 것 뿐이었다. 공산당 소속 노동자들은 사회당과 노동총연맹 소속 노동자들과 총파업 대열에 참여했다. 그러나 공산당 지도부의 돌연한 태도 변화는 나중에 이들이 보일 작태를 미리 선보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결국 코민테른은 초좌익 노선을 180도 뒤바꾸고 우익 개량주의 노선을 걷게 된다.

스탈린주의자들의 기형적인 “제 3기” 노선은 다른 요인들과 결합하여 프랑스 공산당의 세력을 급감시켰다. 1921년 뚜르(Tours) 당대회 후 공산당의 당원 수는 사회당 당원 수의 2배였다. 그러나 1932년 이 수치는 크게 역전되었다. 13만7천 대 3만2천으로 사회당의 당원 수는 공산당 당원 수를 크게 앞질렀다.

사회당의 우파 지도자 레옹 블룸(Léon Blum)과 뽈 포레(Paul Fauré)는 세가 증대하고 있는 좌파로부터 상당한 압박을 받고 있었다. 좌파의 주요 지도자인 쟝 지롬스키(Jean Zyromsky)와 마르쏘 삐베르(Marceau Pivert)는 트로츠키주의 노선과는 크게 거리를 두었으나 공동전선을 지지하였다.

공산당 내부에서 이 노선을 지지한 유일한 지도자는 자크 도리오(Jacques Doriot)였다. 그는 가장 인기를 누리던 대중 지도자 중 하나였을 뿐 아니라 빠리 노동자 지구 쎙-드니(Saint-Denis)의 시장이었다. 그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도리오는 이 논쟁 때문에 규율을 위반했다는 죄목으로 당에서 제명되었다.

1934년 6월 프랑스 공산당은 노선 재주넘기를 감행한다. 도리오를 축출한 이브리(Ivry) 회의에서 스탈린주의자들은 사회당에 반파시즘 공동전선을 제안했다. 한달 후에 사회당은 이 제안을 수락했다.

스탈린은 소련의 국제연맹 가입을 원했으며 1934년 9월 가입을 성사시켰다. 제국주의 세력과의 긴밀한 협력관계를 예상하고 그는 각국 코민테른 지부들에게 개량주의 정당들과 접촉할 것을 명령했다. 이 조치는 부르주아 정당들의 지지를 구하기 위해 취해진 것이었다.

프랑스는 그가 노선 전환을 실험한 첫 나라였다. 7월 공산당과 사회당 사이에 공동전선이 체결되자 10월 공산당 지도자 토레즈는 부르주아 급진당에게 인민전선 정부를 수립하자고 제안했다.

저자 서문

 

이 팜플렛은 지난 2년 반 동안 쓰여진 여러 논문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1934년 2월 6일 파시스트-보나파르트-왕당파 극우동맹의 등장에서 시작하여 1936년 5-6월의 거대한 대중파업에 이르는 기간에 쓰여진 글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그간의 정세는 얼마나 변화무쌍했던가! 물론 인민전선 지도자들은 대중의 급진화를 예상하고 정책을 바꾼 자신들의 선견지명을 칭찬하고 싶어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생각은 실제 사실과 다르다. 사회당, 공산당, 급진당의 인민전선은 정치 위기의 상황 전개에 있어서 부차적인 요인 밖에 되지 못했다. 이들은 아무 것도 예측하거나 지도해내지 못했다. 거대한 정치적 사건들은 이들의 머리 위에서 폭발했다. 1934년 2월 6일의 예상치 못한 충격은 이들로 하여금 기존의 구호와 사상을 벗어 던지고 서로 연합을 하면서 살길을 모색하도록 만들었다. 1936년 5-6월의 파업 역시 이 의회 연합세력에게 결코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가했다. 표면적으로는 인민전선의 전성기로 보였던 현상이 실제로는 인민전선의 임종을 앞둔 고통에 불과했다.

이 팜플렛에 나오는 글들은 각기 다른 때에 쓰여졌고 프랑스가 겪고 있던 위기의 각 단계를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독자들은 글들이 서로 중복된 내용을 담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중복을 없애는 것은 개개의 글들이 가지고 있는 논리 구조들을 허물고 그 역동적 성격을 거세할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중복된 내용들을 그대로 두었다. 이것들이 독자 여러분에게 무의미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의 대중 지도자들이 맑스주의를 청산하는 그런 시대를 우리는 경과하고 있다. 가장 조잡한 편견들이 프랑스 노동계급 지도자들의 공식 입장이 되고 있다. 반대로 혁명적 리얼리즘의 목소리는 노동관료들에게 “종파주의”인 것처럼 들리는 모양이다. 따라서 선진노동자들에게 진정한 맑스주의의 기본 원칙들을 다시 또 다시 반복하는 것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이 팜플렛의 내용과 기타 필자의 저작들에서 독자들은 여기 저기에서 모순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 역시 없앨 생각이 없다. 정세의 개개 단계에서 발생하는 똑같은 현상의 각기 다른 측면에 강조를 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크게 보아서 이 팜플렛은 실제 사건들의 검증을 거쳤으므로 이 사건들을 좀더 쉽게 이해하는 일을 도울 것이다.

거대한 파업의 시기는 의심의 여지없이 노동계급 단체들이 풍기는 곰팡내 나는 썩은 공기를 일소시킬 것이다. 그래서 개량주의, 애국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조합주의”의 독기가 제거될 것이다. 확실히 이런 종류의 일은 한꺼번에 저절로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다. 가혹한 계급투쟁에 기초한 엄혹하고 끈질긴 사상투쟁의 험한 길이 우리 앞에 놓여있다. 그러나 이후 전개될 위기의 전 과정은 오직 맑스주의만이 사건들의 인과관계를 제때에 분석하며 사건들의 전개과정을 제 때에 예측한다는 사실을 보여줄 것이다.

1934년 2월은 반동세력이 진지하게 연합하여 공세를 취한 최초의 순간이었다. 반면 1936년 5-6월은 노동자 혁명의 첫 번째 강력한 파도였다. 이 두 이정표적 사건들은 우리에게 미리 미래의 두가지 가능한 길을 보여주고 있다: 이탈리아의 파시즘 아니면 러시아의 사회주의 혁명 만이 우리에게 가능할 뿐이다. 현재 블룸 정권은 의회민주주의를 보호한다는 미명 하에 그 존재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 정권은 이 두가지 길 한가운데에서 가루가 되어 흩어질 것이다. 앞으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낼 위기의 각 단계들이 어떤 구체적인 모습을 보이든 일시적인 연합과 동맹, 부분적인 공격과 후퇴, 전술적인 에피소드들이 등장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앞에 파시즘과 노동자 혁명이라는 기로만이 놓여 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바로 이것이 이 팜플렛의 의의이다.

레온 트로츠키

1936년 6월 10일

 

프랑스는 어디로? 1934년 10월

 

이 저작을 통해 우리는 앞으로 다가올 프랑스의 운명을 선진노동자들에게 설명하고자 한다. 우리에게 프랑스는 증권거래소, 은행, 독점기업, 정부, 국가, 교회 등 그 어느 것도 아니다. 이것들은 전부 프랑스의 억압기구일 뿐이다. 우리에게 프랑스는 노동계급과 착취받는 농민이다.

 

1.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붕괴

제 1차 세계대전 후 러시아,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그리고 나중에 스페인에서 혁명들이 승승장구하며 일어났다. 그러나 오직 러시아에서만 노동계급은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착취자들의 생산수단을 몰수했으며 노동자국가를 창조하고 유지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러시아 이외의 모든 곳에서는 노동계급이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도부의 오류 때문에 혁명을 철저히 완수하지 못했다. 이 결과 국가권력은 노동계급의 손에서 벗어나 좌익으로부터 우익으로 이동하더니 결국 파시즘의 손에 장악되고 말았다. 다른 나라들에서는 국가권력이 군사독재자의 수중에 들어갔다. 어느 곳에서도 의회는 계급 갈등을 화해시키고 평화를 확보하는데 실패했다. 결국 갈등은 무력에 의해 해결되었다.

오랫동안 프랑스 인민은 파시즘이 자신들과 무관하다고 생각했다. 공평히 참정권을 누리는 인민에 의해 모든 문제가 처리되는 공화국에 이들은 살고 있었다. 그러나 1934년 2월 6일 권총, 곤봉, 면도칼 등으로 무장한 수 천명의 파시스트, 왕당파 도당들이 두메르그 정권의 등장을 강요했다. 그리고 이 정권의 보호 아래 파시스트 도당들은 계속 세를 확장하고 무장하고 있다. 그러면 내일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영국, 벨기에, 네덜란드, 스위스, 스칸디나비아 제국과 마찬가지로 프랑스에도 물론 의회, 선거, 민주적 자유, 또는 이것들의 부스러기가 남아있다. 그러나 지금 예를 든 나라들에서는 이탈리아와 독일의 경우와 같은 계급투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프랑스는 독일과 다르다”는 말로 자신을 위로하는 자는 전혀 가망이 없다. 자본주의 체제의 쇠퇴라는 똑같은 법칙은 모든 곳에서 작동하고 있다. 생산수단이 소수 자본가들 손에 있는 이상 사회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그리고 이 위기에서 저 위기로 궁핍에서 처참으로 갈수록 나빠질 뿐이다. 각 나라마다 자본주의의 노쇠와 붕괴는 다양한 형태와 독특한 리듬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 과정의 기본 특징은 어디에나 똑같다. 부르주아계급은 이 사회를 완전한 파산상태로 몰아가고 있다. 인민에게 빵도 평화도 확보해줄 수 없다. 민주 질서를 더 이상 인정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결국 노동자들에게 폭력을 휘두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노동자와 농민의 불만은 경찰의 폭력 행사로 해결되지 않는다. 더욱이 인민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의 행진을 강요하는 것도 종종 불가능하다. 먼저 군대는 붕괴하다가 나중에는 많은 병사들이 인민의 편으로 넘어간다. 금융자본이 노동자들과 싸우도록 훈련된 특별 무장대를 조직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마치 개들이 사냥감을 쫓기 위해 훈련을 받는 것과 같다. 자본가들이 통치력을 상실해서 민주적 제도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노동계급을 분쇄하고 이들의 조직을 파괴하고 정치적 자유를 억압하는 데에 파시즘의 역사적 역할이 있다.

파시스트들은 주로 소부르주아 계급으로부터 인적 자원을 구한다. 이 계급은 대자본에 의해서 완전히 파멸 당했다. 지금 같은 사회 체제는 이 계급에게 해결책을 마련해 줄 수 없다. 그러나 다른 방법이 없다. 이 계급의 불만, 분노, 절망은 파시즘에 의해 대자본으로 향하지 않고 대신 노동계급에게 향하고 있다. 가장 잔악한 적의 손에 소부르주아 계급이 농락당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파시즘이다. 파시즘을 통해 대자본은 중간계급들을 파멸에 빠뜨리고 절망에 빠진 이들이 노동계급과 대적하도록 부추긴다. 이 살인적인 방식을 통해서만 부르주아 체제는 유지될 수 있다. 그러나 얼마나 오래 이런 사기극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인가? 노동계급의 혁명이 이 체제를 전복하는 순간까지 이 사기행각은 계속될 것이다.

 

2.프랑스 보나파르트 체제의 시작

프랑스에서 민주주의로부터 파시즘으로의 전환은 그 첫 단계를 지나고 있을 뿐이다. 의회는 존재하지만 기존의 위세를 상실했으며 이것을 다시 회복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2월 6일 사건 이후 완전히 겁에 질린 의회 다수파는 두메르그를 구원자, 해결사로 생각하고 그에게 국가권력을 넘겼다. 이 결과 두메르그 정권은 의회 위에 군림하고 있다. 이 정권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다수파가 아니라 관료집단, 경찰, 군대 등에 직접 의존하고 있다. 두메르그가 공무원 또는 좀더 일반적으로 국영 부문 노동자들에게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고분하고 규율에 복종하는 관료기구를 필요로 한다. 이 토대 위에서만 그는 실각할 위험이 없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 파시즘 세력과 기타 극우 떨거지들이 모인 “공통 전선(common front)”에 대해 공포를 가지고 있는 의회 다수파는 두메르그 앞에 머리를 조아릴 수 밖에 없다.

임박한 헌정 질서 “개혁”, 의회 해산권 등에 대해서 지금 많은 글들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이런 모든 문제들은 법적인 흥미 밖에 없다. 정치적 의미에서는 문제가 이미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베르사이유궁의 정부를 거치지도 않고 개혁은 성취되었다. 무장한 파시스트 도당들의 등장으로 금융자본은 의회 위에 군림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 프랑스 헌정 질서의 핵심이 있다. 이외의 모든 것은 환상, 말장난, 의식적인 기만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 두메르그의 역할은 새로운 것이 하나도 없다. 뻬뗑 원수(Marshal Pétain)나 따르뒤(Tardieu) 같은 인물이 그의 뒤를 잇더라도 마찬가지이다. 나폴레옹 1세나 3세가 했던 역할과 유사할 뿐이다. 보나파르트 체제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두 적대 진영의 분쟁을 토대로 관료적-군사적 독재 체제를 구축하여 “나라”를 “구원한다”. 나폴레옹 1세는 부르주아 계급의 격정적인 청년기에 보나파르트 체제를 대표했다. 나폴레옹 3세의 보나파르트 체제는 부르주아 계급이 나이를 먹어 약간 머리가 벗겨질 때 등장했다. 자본주의의 쇠퇴기에 등장한 노쇠한 보나파르트 체제의 인격화가 곧 두메르그이다.

의회 체제가 보나파르트 체제로 첫 발을 내디딜 때 두메르그 정권이 등장했다. 권력을 지탱하기 위해 그는 오른쪽에 그를 권좌로 밀어 올린 파시스트 및 극우 도당들을 필요로 한다. [청년 애국자], [불 십자가], [왕의 궁전] 등 극우조직들을 서류상으로가 아니라 실제로 해산시키라고 그에게 요구하는 것은 그가 몸을 지탱하기 위해 붙잡고 있는 나무를 자르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

물론 정권이 좌로 또는 우로 일시적으로 동요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래서 때 이른 파시스트 공세는 정부 상층의 “좌”경화를 촉발할 수 있다. 정권은 일시적으로 두메르그의 손에서 따르뒤가 아니라 에리오의 손으로 넘어갈 수는 있다. 그러나 우선 어느 누구도 파시스트 도당들이 때 이른 쿠데타를 감행할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둘째로 정권의 상층이 일시적으로 좌로 선회한다 할지라도 사태의 일반적 경로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다만 양대 계급 사이의 최후 결전이 잠시 미뤄질 수 있을 뿐이다.

평온한 민주주의 체제로 복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태는 불가피하게 노동계급과 파시즘 간의 충돌을 불러올 것이다.

 

3.보나파르트 체제는 오래 버틸것인가?

지금의 이행기적 보나파르트 체제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다시 말해서 결정적인 전투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노동계급에게 얼마나 남아있을까? 당연히 답을 정확히 얘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세가 전개되는 속도를 가늠하기 위해 몇몇 요인들이 분석될 수는 있다. 이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무어니 해도 가까운 미래에 급진당이 겪게될 운명이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지금 보나파르트 정권의 등장 자체가 노동계급과 파시즘 사이의 내전이 시작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보나파르트 정권은 경찰과 군대를 자신의 주요한 물적 토대로 삼고 있다. 그러나 또한 왼쪽 세력 즉 급진당의 지지도 얻고 있다. 대중 정당인 급진당의 정치 기반은 도시와 농촌의 소부르주아 계급이다. 이 정당의 지도부는 도시와 농촌 대부르주아 계급의 “민주적” 하수인들로 채워져 있다. 이들은 인민에게 조그만 개량들과 민주적 미사여구들을 간간이 선사하면서 말로만 반동세력과 교회의 위협으로부터 인민을 일상적으로 보호해왔다. 그러나 모든 중요한 문제들에 있어서 이들은 대부르주아 계급을 위한 정책만을 시행해 왔다.

파시즘 그리고 특히 노동계급의 위협에 직면하자 급진당은 의회 “민주주의” 진영에서 보나파르트 진영으로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낙타가 기수의 채찍을 맞고 무릎을 꿇는 것과 같이 급진당은 네 무릎을 꿇고 자본주의 반동세력이 자신의 등에 올라타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급진당의 정치적 지지가 없을 경우 두메르그 정권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프랑스를 독일과 비교한다면 두메르그 정권과 이후 등장할 가능성이 있는 후계 정권은 브뤼닝, 폰 파펀, 슐라이허 정권과 일치할 것이다. 이 독일의 정권들은 바이마르 공화정과 히틀러 독재 사이에 존재하였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엄청난 차이가 존재하기는 한다. 독일의 보나파르트 체제는 민주적 정당들이 붕괴하고 나찌당이 엄청난 속도로 세를 불리고 있을 때 등장했다. 독일의 세 보나파르트 정권들은 정치적 기반이 취약했다. 따라서 자기 발 아래에 절벽을 보면서 노동계급과 파시즘이 걸어 놓은 줄 위에서 곡예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세 정권들은 모두 재빨리 사라졌다. 한편 노동계급 진영은 올바른 투쟁을 하기에는 분열되어 있었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게다가 지도부의 연막술, 사기극, 배신극에 농락당했다. 그래서 파시스트 나찌당은 전투 한번 치르지 않고 승리하여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다.

이에 반해 프랑스 파시즘은 아직도 대중적 위세를 얻지 못하고 있다. 반면에 보나파르트 체제는 확실하거나 안정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급진당을 통해 대중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이 두 사실 사이에는 내적인 연관이 존재한다. 정치적 기반의 사회적 성격으로 보면 급진당은 소부르주아 정당이다. 파시즘은 소부르주아 계급을 정복해야만 대중적 위세를 누릴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파시즘은 급진당을 희생시켜야 대중적 위세를 확보할 수 있다. 이미 이 과정은 진행 중이다. 다만 초기 단계에 있을 뿐이다.  

 

4.급진당의 역할

지난번 지방 선거에서는 예상했던 결과가 나왔다. 파시즘과 노동계급은 득표율이 상승했으며 가운데 끼인 급진당의 득표율은 하락했다. 그러나 서로의 승패를 가리기에는 득표차가 미미하다. 선거 자체만을 중시한다면 투표 결과는 정치적으로 더 큰 의미를 띠었을 것이다. 그러나 급진당의 득표율 하락은 그 자체보다는 대중의 의식 변화를 나타내는 징후로만 그 의미가 있을 뿐이다.

즉 급진당의 득표율 하락은 소부르주아 계급의 중심이 두 극단 진영으로 나누어졌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지금 남아있는 의회 통치 체제가 더욱더 잠식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파시즘과 노동계급 세력은 더욱 성장할 것이다. 이 두 진영은 불가피하게 곧 충돌할 것이다. 이것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소부르주아 계급은 상황이 점진적으로 그리고 평화로이 개선될 것이라고 희망한다. 대부르주아 계급은 급진당을 통해 이 희망을 유지시키고 있다. 그러나 급진당의 이러한 역할은 소부르주아 계급의 경제 상황이 유지 가능하고 견딜만하며 이들의 대대적 파멸이 모면될 때 가능했다. 그리고 이 계급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간직하고 있을 때까지만 가능했다. 물론 급진당의 강령은 언제나 문서로만 존재했다. 급진당은 노동 대중을 위한 어떠한 진지한 사회 개량도 이룬 적이 없으며 그렇게 할 능력도 없었다. 대부르주아 계급이 이것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은행, 증권시장, 언론, 고위관료층, 주요 외교관, 군총참모부 등 권력의 요새들이 대부르주아 계급의 손 안에 있기 때문이다.  

때때로 급진당은 자신을 따르는 대중에게 특히 옹색한 지방적 차원에서 시혜를 베풀면서 이들의 환상을 유지시켰다. 그러나 최근의 경제 위기는 이것조차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전쟁 이전에 간간이 닥쳤으나 금방 끝나는 보통 정도의 위기가 아니라 체제 전체를 위협하는 위기가 닥쳤다는 것이 가장 후진적인 농민에게도 명백해졌다. 거대한 사회적 위기는 대담하고 단호한 조치들을 필요로 한다. 그렇다면 어떤 조치들을 취해야 할까? 물론 농민들은 알지 못한다. 어느 누구도 이들에게 응당 이런 것들을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생산수단의 수준을 너무 높여 놓았다. 따라서 자본주의 자체 때문에 파멸한 대중이 처참한 생존 상태에 빠질 경우 생산수단 자체가 마비되어 버린다. 이 결과 사회 전체가 쇠퇴하고 분해되고 썩기 시작하였다. 자본주의는 노동 대중에게 새로운 개량 조치들을 취해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조그만 떡고물조차 쥐어줄 수 없다. 한때 주었던 것을 빼앗아야 할 상황에 놓여있다. 유럽 전역은 경제적 정치적 반동의 시기에 들어섰다. 대중을 약탈하고 질식시키는 정책은 반동 세력의 변덕이 아닌 자본주의 체제의 붕괴 때문에 발생한다. 공허한 정치적 말장난에 속지 않기 위해서 모든 노동자들은 이 기본적 사실을 이해하고 숙지해야 한다.

민주적 개량주의 정당들이 유럽 전역에서 붕괴하고 정치적 위세를 상실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프랑스 급진당에게도 똑같은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 반동세력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한 달라디에의 항복과 에리오의 배신이 우연한 또는 일시적인 원인 탓이거나 이 두 한심한 지도자의 근성 부족 탓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바보에 지나지 않는다. 거대한 정치 현상은 항상 심오한 사회적 원인들을 가지고 있다. 민주적 정당들의 쇠퇴는 보편적인 현상으로 그 원인이 자본주의 자체의 붕괴에 있다. 대부르주아 계급은 급진당에게 이렇게 말한다: “지금은 농담할 때가 아니오. 사회당과 눈이 맞아 산을 옮기고 기적을 이룩하겠다는 약속을 수줍게 하고 있는데 그만두시오. 그렇지 않으면 파시스트 도당들을 불러 당신들을 쫓아내겠소. 2월 6일은 첫 경고에 불과하오.” 이 협박조의 말에 급진당 낙타는 네 무릎을 꿇고 조용히 처분만을 기다린다.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급진당은 이렇게 할 경우 자신의 목숨을 부지할 수 없다. 자신을 지지하는 대중이 보는 앞에서 자기 운명을 반동 세력의 운명에 속박시킬 경우 급진당은 자신의 파멸을 재촉할 수 밖에 없다. 지역구 선거에서 표를 잃고 대표권을 상실하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급진당의 붕괴는 점점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불가피한 현상은 노동계급 혁명을 가져올 것인가 아니면 파시즘의 승리를 가져올 것인가?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혁명적 사회주의와 파시즘 반동 중 누가 제일 먼저 중간 계급에게 가장 설득력 있는 강령을 제시할 것인가? 그리고 더 나은 미래로 가는 길에 나타날 모든 장애물을 분쇄할 능력을 말과 행동으로 증명하면서 가장 중요한 정치적 신뢰를 이들로부터 획득할 것인가?

바로 이 문제에 앞으로 수십 년 간 프랑스 사회의 운명이 달려있다. 그리고 프랑스의 운명 만이 아니다. 유럽의 운명이 달려있다. 그리고 유럽의 운명 만이 아니다. 전세계의 운명이 달려 있다.

 

5.“중간 계급”, 급진당, 파시즘

독일에서 나찌당이 승리하면서 프랑스 “좌익” 정당들과 그룹들 사이에서는 파시즘의 승리를 막기 위해 “중간 계급”과 밀착해야 한다는 얘기가 많이 나왔다. 르노델이 이끄는 분파는 급진당과 밀착하겠다는 특별한 목적으로 사회당을 탈당했다. 그러나 르노델의 사상은 1848년에나 유효했던 사상이다. 그가 에리오에게 두 손을 내밀었을 때 에리오는 이미 두 손을 극우 지도자 따르뒤와 루이 마랭에게 맡긴 후였다.

그러나 소부르주아 계급이 자신의 운명에 따라 파멸하도록 노동계급이 내버려 두어서는 안된다. 절대로 안된다. 권력 장악을 위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파시즘에 대항해 승리하려면 농민과 도시의 소부르주아 계급을 우리 쪽으로 끌어 당겨야 한다. 이것은 성공의 필요조건이다. 문제는 반드시 명확하고 올바르게 제기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중간 계급”의 성격을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반적 공식을 이것의 사회적 내용을 검토하지 않고 반복하는 것은 특히 결정적인 시기에 정치 행동을 위해서는 가장 위험하다.

현대 사회에는 세 계급이 있다: 대부르주아 계급, 노동계급, “중간 계급” 즉 소부르주아 계급. 최종적으로 분석하면 이 세 계급 사이의 관계가 정세를 결정한다. 대부르주아 계급과 노동계급이 기본 계급이다. 이 두 계급만이 명확하고 일관되고 독자적인 정책을 가질 수 있다. 소부르주아 계급은 이 두 계급에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으며 이 계급 내부에는 온갖 잡다한 요소들이 뒤섞여 있다. 이 계급의 최상층은 대부르주아 계급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 최하층은 노동계급과 일치하고 심지어는 룸펜노동자의 지위와 맞닿는다. 따라서 소부르주아 계급은 독자적 정책을 가질 수 없다. 항상 대자본가 계급과 노동계급 사이에서 동요할 뿐이다. 최상층은 이 계급을 우로 밀치고 최하층의 억압받고 착취받는 층은 특정 상황에서 좌로 급선회할 수 있다. “중간 계급”의 각 층위들 간의 이러한 모순적 관계때문에 급진당의 정책은 항상 혼란스럽고 철저히 파산적이다. 정치적 기반인 대중을 안심시키기 위해 사회당과 연합하기도 하고 부르주아 계급을 구하기 위해 반동 세력과 전국적으로 연합하는 등 항상 동요한다. 대부르주아 계급 역시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급진당의 동요를 더 이상 허용할 수 없을 때 급진당의 사망이 시작된다.

도시와 농촌에서 파산한 소부르주아 대중은 참을성을 상실하기 시작한다. 자기 계급의 최상층에 대해서 더욱더 적대적이 되면서 자기 정치 지도부의 파산과 배신을 확신한다. 생활방식이나 사고방식에서 대부르주아 계급과 다름이 없는 에리오, 달라디에, 쇼땅 등 시장, 변호사, 정치 사업가들과 자기 사이에 깊고 깊은 계곡이 가로 놓여 있다는 사실을 가난에 찌든 농민, 수공업자, 소상인들이 확신하게 된다. 파시즘 세력이 이용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소부르주아 계급의 환멸, 초조함, 절망이다. 파시스트 선동가들은 의회 민주주의를 비방하고 욕한다. 민주주의는 출세주의자들과 축재 정치인들을 부양하지만 노동 대중에게는 아무 것도 가져다 주지 않는다! 이 선동가들은 은행가, 대상인, 자본가들에게 주먹을 흔들어 보인다. 이들의 말과 행동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소부르주아 대중의 감정과 일치한다. 파시스트 도당들은 대담성을 과시하고 거리에서 경찰을 공격하고 힘으로 의회 의원들을 몰아내려고 한다. 이것이 절망에 빠진 소부르주아 계급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다. 그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기꾼들이 너무 많은 급진당은 우리를 은행가들에게 팔아 넘겼다. 사회당은 착취를 끝장내겠다고 오랫동안 약속했으나 말에서 행동으로 결코 나가지 않는다. 공산당은 전혀 이해할 수가 없다. 오늘은 이렇게 행동하고 내일은 저렇게 행동한다. 파시스트들이 우리를 구원할 수 없는지 봐야겠다.”

 

6.“중간 계급”은 파시즘 진영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는가?

소부르주아 계급은 무엇보다도 민주주의에 집착한다고 르노델이나 프로싸르 같은 인물들은 상상한다. 그러니 급진당의 꽁무니에 바짝 붙어 있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대단한 혼동인가! 민주주의는 정치 형태에 불과하다. 소부르주아 계급은 껍데기가 아니라 속살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즉 자신을 고통과 파멸로부터 보호하고 싶을 뿐이다. 만약 민주주의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 민주주의를 악마에게 주어버려라! 소부르주아 대중 모두는 이렇게 생각한다.

파시즘의 주요한 사회적 정치적 기반은 소부르주아 계급 하층의 반항심에 있다. 이들은 시, 지역, 국회에서 행세하는 “교육받은” 소부르주아 상층에 반감을 점점 크게 느끼고 있다. 여기에 경제 위기로 파멸한 지식인 청년들의 변호사, 의원, 벼락출세한 장관들에 대한 증오심이 부가되어야 한다. 소부르주아 하층에 속한 지식인들 역시 자기들 위에 군림하는 지식인들에 대해서 반항심을 품고 있다.

그렇다면 소부르주아 계급이 파시즘으로 넘어가는 것은 불가피하단 말인가? 그렇지 않다. 만약 이런 식으로 결론을 내린다면 부끄러운 숙명주의가 될 것이다.

정말 불가피한 것은 급진당의 몰락 그리고 급진당의 운명에 목을 걸고 있는 정치 집단들의 몰락일 것이다.

자본주의 쇠퇴기에는 민주적 개량과 “평온한” 진보를 추구하는 정당이 설 자리가 더 이상 없다. 프랑스의 정세가 어느 쪽으로 나아가든지 급진당은 소멸할 것이다. 소부르주아 대중이 이 정당을 거부하고 불신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대접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급진당이 이들을 확실히 배신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예측이 현실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모든 의식 있는 노동자는 확신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선거가 있을 때마다 급진당은 패배할 것이다. 당의 기반인 대중과 상층의 겁먹은 출세주의자들 모두 흩어질 것이다. 탈당, 분열, 배신 등이 계속 이어질 것이다. 어떤 술수나 동맹도 이 정당을 구할 수 없다. 그리고 르노델과 데아 일당이 이끄는 “당” 역시 지옥으로 끌려 들어갈 것이다. 소위 민주적 방법으로는 부르주아 사회가 자신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없다. 이 사실로 인해 급진당의 파멸은 불가피하다. 소부르주아 계급 하층과 상층 사이의 분열은 피할 수 없다.

그렇다고 급진당 대중이 어쩔 수 없이 파시즘에 희망을 걸어야 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물론 이 계급의 가장 절망감에 빠지고 가장 탈계급화한 그리고 가장 열렬한 청년들이 이미 파시즘을 선택했다. 그리고 바로 이들로부터 파시스트 도당들이 주로 형성이 된다. 그러나 도시와 농촌의 기본 대중들은 아직도 선택을 하지 않았다. 이들은 커다란 선택을 앞두고 주저하고 있다. 바로 이 주저 때문에 이들은 급진당을 신뢰하지 않지만 선거 때가 되면 계속 이 정당에게 표를 던지고 있다. 그러나 이 주저와 우유부단의 상황은 몇 년이 아니라 몇 달 밖에 지속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전개될 정세는 열병에 걸린 것 같은 격렬한 리듬을 탈 것이다. 소부르주아 계급은 다른 대안에 대해 확신을 가질 때에만 파시즘의 참주선동을 거부할 것이다. 이 대안은 곧 노동계급 혁명의 길이다.

 

7.소부르주아 계급이 혁명을 두려워하는 것이 사실인가?

사람들의 속성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의회 백치병 환자들이 있다. 이들은 이렇게 반복해서 외치는 것을 좋아한다: “혁명으로 중간 계급을 무섭게 만들어서는 안된다. 이들은 극단적인 것들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이 확신은 전적으로 잘못되었다. 소자산가들은 지금 사업이 잘되고 내일은 더 좋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는 이상 기존 질서를 선호한다.

그러나 이 희망이 없어지면 그는 쉽게 분노하고 가장 극단적인 조치들을 위해 몸을 던질 준비가 되어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가 어떻게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민주 국가를 전복시키고 파시즘을 권력에 앉혔겠는가? 절망한 소부르주아 계급은 파시즘이 대자본에 대항하는 전투적인 세력이라고 생각한다. 말만 앞세우는 노동계급 정당들과는 달리 파시즘은 무력을 사용하여 더 많은 “정의”를 구현할 것이라고 이들은 믿는다. 농민과 수공업자들은 생활 방식이 현실적이다. 이들은 무력을 배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극단 조치들”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소부르주아 계급이 노동계급 쪽으로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은 틀려도 완전히 틀린 생각이다. 이와 정반대로 소부르주아 하층 대중들은 노동계급 정당들이 의회에만 의존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노동계급 정당들이 투쟁을 끝까지 밀고 가기 위한 힘, 능력, 준비 등을 갖추지 못했다고 믿는다.

사실이 이렇다면 급진당 대신 노동계급 정당 소속의 급진당 의원 친구들을 의회에 불러들일 필요가 어디 있을까? 반 정도 재산을 몰수당하고 파산해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소자산가들이 계산하고 느끼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사회 위기로부터 나오는 농민, 수공업자, 고용인, 하위 관료 등의 심리를 이해하지 않고는 올바른 정책을 입안할 수 없다. 소부르주아 계급은 경제적으로는 종속되어 있고 정치적으로는 원자화되어 있다. 이들이 독자적 정책을 수행할 수가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이들에게는 자신감을 불어 넣어줄 “지도자”가 필요하다. 이 개인적 또는 집단적 지도력은 개인이 되었든 정당이 되었든 대부르주아나 노동계급 중 하나만이 제시할 수 있다. 파시즘은 흩어진 대중을 단결시키고 무장시킨다. 모래알 인간들을 전투부대로 조직한다. 따라서 파시즘은 소부르주아 계급에게 자신이 독자적 세력이라는 환상을 불어 넣는다. 소부르주아 계급은 자신이 실제로 국가를 장악할 것이라고 상상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환상과 희망이 소부르주아 계급의 머리를 돌게 만든다. 이것은 전혀 놀라운 현상이 아니다.

그러나 이 계급은 노동계급에게서도 지도자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사실은 러시아에서 그리고 부분적으로 스페인에서 증명되었다. 스페인, 독일, 오스트리아에서 소부르주아 계급은 이 방향으로 나아갔다. 아쉽게도 노동계급 정당들이 주어진 역사적 과업을 완수할 단계에 이르지 못했을 뿐이다.

소부르주아 계급을 자기 편으로 만들기 위해 노동계급은 이들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그리고 이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자신의 힘에 대한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명확한 행동 강령을 가지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권력 장악을 위한 투쟁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혁명 정당에 의해 결정적이고 가차없는 투쟁을 수행할 준비를 마친 노동계급은 농민과 도시의 소부르주아 계급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권력을 잡기 위해 투쟁하고 있소. 여기 우리의 강령이 있소. 우리는 여러분들과 이 강령의 내용을 논의할 준비가 되어 있소. 대자본가와 그 하수인들에게만 우리는 폭력을 행사할 것이오. 그러나 여러분들과는 우리 강령에 기초한 연합을 원하오.” 농민들은 이런 말을 이해할 것이다. 노동계급이 권력을 장악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신뢰만 하면 이들은 노동계급의 편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신뢰감을 불어 넣기 위해서는 모든 애매모호함, 우유부단함, 공허한 미사여구 등을 공동전선에서 전부 몰아내야 한다. 상황을 이해하고 진지하게 혁명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8.급진당과의 연합은 중간계급에 반대하는 연합이 될 것이다

급진당과의 연합은 “중간 계급”과의 연합이므로 파시즘에 대항하는 장벽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르노델, 프로싸르 등이 진지하게 상상한다. 그러나 이들은 의회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작자들이다. 이들은 대중의 진정한 변화는 무시하고 급진당의 꽁무니를 따라가고 있다. 그런데 급진당은 이미 자기 역할을 다한 지 오래되어 대중에게 등을 돌리고 있다. 거대한 사회 위기의 시대에 투쟁 계급들 간의 연합이, 낡아빠지고 소멸될 운명에 처한 의회 파벌들 간의 동맹으로 대체될 수 있다고 이들은 믿는다. 노동계급과 중간계급의 진정한 연합은 의회에서의 계산 문제가 아니고 혁명적 동력의 문제이다.

이 계급간 연합은 투쟁 속에서 맺어지고 단련되어야 한다. 절망에 빠진 소부르주아 계급이 의회의 족쇄에서 그리고 “급진당”의 보수적 파벌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시작하고 있다. 급진당 파벌은 항상 인민을 속여 왔으며 지금은 명확히 배신했다. 이것이 현 정세의 진정한 성격이다. 이런 상황에서 급진당과의 연합은 대중의 경멸을 자초하여 소부르주아 계급을 유일한 구세주인 파시즘에게 안기게 만들 뿐이다. 노동계급 정당은 파산한 정치꾼 정당을 구하려는 가망 없는 노력에 정신을 쏟아서는 안된다. 이와 반대로 모든 힘을 다해 대중이 급진당의 영향력으로부터 해방되는 과정을 가속화시켜야 한다. 이 일에 더 많은 열성과 대담함으로 달려들면 들수록 노동계급과 소부르주아 계급의 진정한 연합을 더 확실히 더 빨리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움직이고 있는 계급들에게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들의 꽁무니가 아니라 머리에 자신을 위치시킬 필요가 있다. 역사는 빨리 움직인다. 뒤처지는 자에게 우환이 있을 지어다!

사회당이 급진당의 정체를 폭로하고 영향력을 약화시켜 붕괴를 촉진시킬 권리가 없다고 프로싸르는 말한다. 그는 사회당 지도자가 아니라 보수 급진당 지도자로 자처하고 있다. 자신의 강령을 믿고 인민 전체를 자신의 깃발로 결집시키려고 노력을 집중하는 당만이 존재할 권리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당이 아니라 의회의 족벌, 출세주의자들의 파벌에 지나지 않는다. 노동대중을 부르주아 계급의 치명적인 영향력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은 노동계급 정당의 권리이자 기본적 의무이다. 이 역사적 임무는 특히 지금 그 중요성이 크다. 급진당이 반동세력을 은폐시키고 인민을 속여 파시즘의 승리를 준비하려고 광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급진당 좌파는 어떤가? 이들은 에리오가 따르뒤에게 투항하는 것처럼 에리오에게 투항하고 있다.

사회당과 급진당 연합이 “좌익” 정부를 구성하여 파시스트 조직들을 해산시키고 공화국을 구원하는 것이 프로싸르의 계획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환상과 경찰의 냉소주의가 이렇게 기괴하게 결합된 예를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중에 좀더 자세하게 말하겠지만 노동자 민병대가 지금 필요하다 고 우리가 말할 때 프로싸르와 그의 참모들은 이렇게 반대한다: “물리력이 아닌 이데올로기 수단으로 파시즘에 싸워야 한다.” 급진당에 대한 투쟁을 통해서만 대중의 대담한 투쟁이 가능하며 대중의 대담한 투쟁을 통해서만 파시즘의 기반을 침식할 수 있다고 우리가 말하면 이 신사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아니오, 달라디에-프로싸르의 경찰정부만이 우리를 구할 수 있소.”

얼마나 불쌍한 잡담인가! 왜냐하면 급진당은 그동안 정권을 장악해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급진당이 비록 두메르그에게 자발적으로 권력을 넘겨준 그 이유는 프로싸르의 도움을 받지 않아서가 아니라 파시즘을 무서워했기 때문이었다. 즉 왕당파의 면도칼로 위협하는 대부르주아 계급을 무서워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노동계급을 더 무서워했기 때문이었다. 노동계급은 파시즘에 대항해서 전열을 가다듬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프로싸르 자신은 급진당의 경고에 놀라서 달라디에에게 항복하라고 조언했다. 

여기서 잠시 가능성이 거의 없는 가정을 해보자. 급진당이 두메르그와의 동맹관계를 끊고 프로싸르와 동맹하기로 동의했다 치자. 그러면 이번에는 경찰의 직접 도움을 받은 파시스트 도당들이 그 수가 세배나 늘어난 채 거리로 나섰을 것이다. 그리고 프로싸르와 함께 급진당은 즉시 탁자 밑으로 기어 들어가거나 내각 화장실에 숨었을 것이다.

그러면 더 황당한 가정을 하나 더 해보자. 달라디에-프로싸르 정권의 경찰이 “파시스트 도당들을 무장 해제시킨다” 치자. 그러면 문제는 해결되는 것일까? 그리고 누가 경찰을 무장 해제시킬 것인가? 경찰은 왼손으로 파시스트들에게 빼앗은 것을 오른손으로 되돌려 주게 마련이므로 이들도 무장 해제시켜야 한다. 경찰이 파시스트들을 무장 해제시키는 코메디는 파시스트들의 권위를 강화시키기만 했을 것이다. 자본주의 국가에 대항하는 자들이라고 비춰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파시스트 도당들이 정치적으로 고립될 때만 이들에 대한 타격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한편 우리의 가정 속에 존재하는 달라디에-프로싸르 정권은 노동계급이나 소부르주아 계급에게 아무 것도 주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적 소유의 기초를 공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은행, 거대 기업, 산업과 수송의 주요 분야 등을 몰수하고 외국 무역을 독점하고 다른 심오한 조치들이 연이어 실행되지 않는 한 농민, 수공업자, 소상인들을 도울 방법이 없다. 달라디에-프로싸르 정권은 수동성, 무능력, 거짓 등을 통해 소부르주아 계급의 항의 태풍을 몰고올 것이고 이로써 이 계급은 파시즘을 지지하는 쪽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이 정권이 성립 가능하면 말이다. 그러나 프로싸르는 홀몸이 아니다. 이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회당의 온건파 지롬스키가 10월 24일 [인민]지에 기업연합(cartel)을 부흥시키려는 프로싸르의 시도에 반대하는 글을 실었다. 같은 날에 까쉥은 [인류]지에 급진당과의 동맹을 옹호하는 글을 실었다. 급진당이 “파시스트의 무장 해제”를 지지한다고 선언했다는 사실을 까쉥은 열성적으로 반겼다. 

물론 급진당은 모든 세력의 무장 해제를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모든 세력에는 노동자 조직들도 포함되어 있다. 당연히 보나파르트 국가는 특히 노동계급에 적대적으로 이 조치들을 시행할 것이다. 물론 “무장 해제된” 파시스트들은 다음날 경찰의 도움으로 두 배나 더 많은 무기를 다시 받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엄중한 현실들을 자꾸 생각하면서 골치를 썩일 필요가 어디에 있겠는가. 모두 뭔가 희망이 필요하다. 그래서 까쉥은 독일의 웰스와 오스트리아의 오토 바우어 뒤를 따르고 있다. 지금 얘기하고 있는 두 신사양반들도 브뤼닝 정권과 돌푸스 정권의 경찰이 무장 해제 조치를 취했을 때 구원의 손길을 느꼈다.

최근 노선을 180도 전환하여 까쉥은 급진당을 중간 계급과 동일시하고 있다. 그는 급진당을 통해 억압받는 농민들을 본다. 마침내 소자산가들의 신뢰를 상실하기 시작한 의회 출세주의적 급진당 의원들과 동맹만 하면 소자산가들과 동맹을 맺는 것과 같다고 그는 생각한다.

까쉥은 “민주적” 착취자들에 대한 농민과 수공업자들의 떠오르는 반발을 길러주고 북돋워 주면서 이 반발을 노동계급과의 동맹으로 인도해야 한다. 이 대신 그는 “공동 전선”의 권위를 빌어 파산한 급진당을 지지하고 이를 통해 가장 착취받는 소부르주아 세력의 반발을 파시즘 확대 쪽으로 인도할 준비를 하고 있다.    

혁명 정치에서 엉성한 이론은 언제나 잔혹한 복수를 하게 마련이다. 스탈린주의자들에게 “반파시즘”은 파시즘처럼 구체적인 개념이 아니라 커다란 빈 자루에 불과하다. 이 속에 이들은 손에 잡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잡아 넣는다. 이들에게는 달라디에가 좀 전에 파시스트 였던 것과 똑같이 지금 두메르그는 파시스트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두메르그는 소부르주아 계급의 파시스트 분파를 자본주의적으로 착취한다. 마치 에리오가 급진당의 소부르주아 대중을 착취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지금 이 두 착취체제는 보나파르트 체제 속에 결합되어 있다. 두메르그 역시 나름대로 “반파시스트”이다. 결과가 불투명한 내전 대신 대자본가 계급에 의한 군사적 경찰 독재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파시즘도 두려워하지만 노동계급을 더 두려워 하기 때문에 “반파시스트” 달라디에는 두메르그와 동맹을 맺는다. 그러나 두메르그 정권은 파시스트 도당들이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 따라서 기초적인 맑스주의 이론에 의하면 노동계급 정당이 파시즘에 반대하여 급진당과 동맹을 맺는 것은 전적으로 부질없는 짓이다!

프로싸르와 까쉥의 정치적 몽상이 얼마나 황당하고 반동적인 지를 급진당 자신이 행동을 통해 여실히 보여줄 것이다.

 

9.노동자 민병대와 그 반대자들

투쟁하기 위해서는 조직, 신문, 회의 등 투쟁 도구와 수단들을 보존하고 강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파시즘은 이 모든 것들을 직접 그리고 즉시 위협한다. 파시즘은 직접 권력을 장악하기에는 아직도 허약하다. 그러나 노동계급의 조직을 하나 하나 깨부수고 자신의 조직 하나 하나를 단련시켜 노동계급 대오 내에 절망감과 사기저하를 확산시킬 정도로 강력하다.

따라서 “물리적 투쟁”은 인정될 수 없거나 가망이 없다고 말하면서 두메르그 정권에게 그의 파시스트 근위대를 해산시키라고 요구하는 것은 모두 무의식적으로 파시스트들을 돕는 것이다. 특히 지금 노동계급의 잘못된 희망은 사탕발림이 되어있는 독처럼 위험하다. 노동계급 조직들이 “흐물흐물한 평화주의”를 표방하면 할수록 그만큼 파시스트들은 기고만장해진다. 사태를 관망하며 우물쭈물하는 것, 수동성, 투쟁의지의 결여는 노동계급에 대한 중간 계급의 신뢰를 가장 크게 파괴한다.         

[인민]지와 특히 [인류]지는 매일 이렇게 말한다: “공동전선은 파시즘에 대항하는 방파제이다.”; “공동전선은 ...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파시스트들은 감히 준동하지 못할 것이다.” 등등. 그러나 이런 말들은 허풍에 불과하다. 노동자, 사회당원, 공산당원들에게 이렇게 똑부러지게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 피상적이고 무책임한 언론인이나 웅변가들의 허풍을 듣고 안심하면 안된다. 우리의 목숨과 사회주의의 미래가 걸려있다. 우리가 공동전선의 중요성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당 공산당 지도자들이 이것을 거부했을 때 우리는 이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공동전선은 다양한 가능성들을 열어줄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공동전선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 것도 결정하지 못한다. 오직 대중의 투쟁만이 결정할 뿐이다. [인민]지와 [인류]지를 파시스트들이 공격할 때 공산당 전투부대와 사회당 전투부대가 서로를 도와 줄 경우 공동전선은 그 가치를 드러낼 것이다. 그러나 이 행동을 위해서 노동계급의 전투부대가 조직되어 훈련받고 무장되어야 한다. [인민]지와 [인류]지는 공동전선의 전능함에 대해서 원하는 만큼 많은 기사를 쓸 수 있다. 그러나 방어조직인 노동자 민병대가 없다면 두 신문은 잘 준비된 파시스트 도당의 공격을 방어할 수 없다.

그래서 노동자 민병대 창설을 부정하는 자들의 “주장”과 “이론”을 비판적으로 연구할 것을 우리는 제안한다. 그런데 이런 자들은 노동계급 정당인 사회당과 공산당에 많이 있을 뿐더러 커다란 영향력까지 행사하고 있다.

“대중의 자기방어 조직이 필요하지 민병대는 필요하지 않다.”고 누가 말한다. 그러나 전투부대가 없고 전문화된 중핵이 없고 무기가 없는 “대중의 자기방어”는 무엇인가? 파시즘에 대한 방어 임무를 준비되지 않은 대중에게 넘기는 것은 유다를 사주한 로마 총독 빌라도의 위선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저열한 행위이다. 민병대의 역할을 부인하는 것은 전위의 역할을 부인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당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 대중의 지지 없는 민병대는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그러나 조직된 전투부대 없이는 가장 영웅적인 대중조차 파시스트 도당들에 의해 하나 하나 분쇄될 것이다. 민병대를 자기방어와 대비시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민병대는 자기방어 기구이기 때문이다.

“민병대 조직을 촉구하면 파시스트들이 자극받는다.”고 어떤 자들은 말한다. 당연히 가장 부정직하고 가장 진지하지 못한 자들임에 틀림없다. 이것은 주장이 아니라 모욕이다. 전체 상황으로부터 노동자 조직들을 방어할 필요성이 나온다면 어떻게 민병대 창설을 촉구하지 않을 수 있는가? 아마도 이들은 민병대 창설이 파시스트들의 공격과 정부의 탄압을 “자극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이야말로 절대적으로 반동적인 주장이다. 계급투쟁이 반동을 “부른다”고 자유주의자들은 언제나 노동자들에게 말해왔다.

개량주의자들은 맑스주의자들에게 멘셰비키는 볼셰비키에게 이 비난을 반복했다. 최종적으로 환원하자면 이들의 주장은 이러하다: 억압당하는 자들이 저항하지 않는다면 억압자들이 이들을 구태여 때리기까지 하겠느냐. 참으로 심오한 사상이다. 이 사상은 톨스토이와 간디의 철학일 뿐 맑스와 레닌의 철학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인류]지가 “악에 대한 비폭력 저항” 사상을 발전시키기 원한다면 10월 혁명의 상징인 망치와 낫 대신 간디에게 우유를 제공한 경건한 염소를 상징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 무장은 혁명적 상황에서는 좋지만 지금은 혁명적 상황이 아니다.”라고 누군가 주장한다. 이 심오한 주장은 혁명적 상황이 올 때까지 노동자들이 파시스트들에게 도살되도록 몸을 드러내 놓아야 한다는 주장과 같다. 어제까지만 해도 “제 3기”를 설교했던 자들이 지금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보지 않으려 한다. “평화적”, “정상적”, “민주적” 상황들이 격렬하고 엄중하고 불안정한 상황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무장 문제가 등장한 것이다. 그리고 이 상황은 혁명적 또는 반혁명적 상황으로 바뀔 수 있다.

선진 노동자들이 파시스트들에 의해 무고하게 공격당하고 하나 하나 분쇄된다면 반혁명적 상황이 온다. 반면에 하나의 공격에 두 번의 공격으로 저항하고 억압당하고 있는 자들에게 용기를 불어넣고 이들을 자기 주위로 결집시킨다면 혁명적 상황이 온다. 혁명적 상황은 하늘에서 거저 떨어지지 않는다. 혁명 계급과 그 정당이 적극적으로 계급투쟁에 참여하는 것을 통해서 조성된다.

지금 프랑스의 스탈린주의자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민병대가 독일 노동계급의 패배를 막아주지 못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들은 독일에서의 패배를 전면 부인했으며 독일 공산당의 정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옳았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지금 이들은 패배의 모든 책임이 독일 노동자 민병대(적색 전선)에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이들은 하나의 극악한 오류에서 정반대의 극악한 오류로 나아간다. 민병대 자체가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올바른 정책이 필요하다 . 한편 “최고의 적은 사회 파시즘” 노선, 노동조합의 분열, 민족주의와 폭동주의와의 장난질 등 독일 스탈린주의자들의 정책은 노동계급 전위의 고립과 붕괴를 가져왔다. 완전히 무가치한 전략을 가지고 있는데 민병대가 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

민병대 조직 자체가 모험주의 행위를 가져오고 적을 자극하고 물리적 투쟁을 정치적 투쟁에 대신한다는 등의 주장은 넌센스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주장들에는 정치적 비겁만이 배어 있을 뿐이다.

전위의 강력한 조직인 민병대는 모험주의, 개인적 테러주의, 유혈낭자한 자발적 투쟁의 폭발 등에 대한 아주 확실한 대비책이다.

동시에 민병대는 파시즘이 노동계급에게 강요하는 내전을 최소화시키는 유일한 진지한 방법이다. “혁명적 상황”이 아니더라도 노동자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조국의 소년”이라는 파시스트 애국자들을 종종 교정시킨다면 새로운 파시스트 도당의 모집은 비교할 수 없이 더 어려워질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자신의 논리에 뒤엉킨 전략가들은 더 바보같은 주장들을 가지고 나온다. 10월 23일자 [인류]지의 내용을 문장 그대로 옮긴다: “파시스트들의 권총 발사를 우리의 권총발사로 대응한다면 파시즘이 자본주의 체제의 산물이며 반파시즘 투쟁을 통해 우리가 자본주의 체제 전체에 대항한다는 사실을 잊게 된다.” 몇 줄 안되는 말로 이보다 더 커다란 혼란과 이보다 더 많은 오류들을 집합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파시스트들의 공격에 대해서 우리를 방어하는 것은 어렵다. 왜냐하면 이들은 ... “자본주의 체제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투쟁 자체를 포기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존재하는 모든 사회악들은 “자본주의 체제의 산물들”이기 때문이다.

파시스트들이 혁명가를 살해하고 노동계급 신문사 건물에 불을 지를 때 노동자들은 한숨을 쉬면서 철학자 신세가 되어야 한다: “아 슬프다! 살인과 방화는 자본주의 체제의 산물들이다.” 그리고 평온한 마음으로 집으로 가야한다. 숙명주의적 무기력이 맑스의 전투적 이론을 대신한다. 그리고 이것은 오직 계급의 적들에게만 유리할 뿐이다. 물론 소부르주아 계급의 몰락은 자본주의 체제의 산물이다. 한편 파시즘의 성장은 소부르주아 계급의 몰락의 산물이다. 반면에 노동계급의 고통의 증대와 반발 역시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그리고 한편 민병대는 계급투쟁 격화의 산물이다. 그렇다면 [인류]지의 맑스주의자들에게 파시스트 도당들은 자본주의 체제의 합당한 산물이며 노동자 민병대는 ... 트로츠키주의자들의 합당한 산물이군? 앞뒤를 분간하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체제 전부를 다루어야 한다.”고 그들은 말한다. 그러면 어떻게? 인간의 머리 위에서? 여러 나라의 파시스트들은 권총으로 시작하여 노동자 조직 “체제” 전부를 파괴시켰다. 나중에 우리 차례가 되어 공격을 하기 위해서 무기를 들고 방어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적들의 무장 공격을 제지할 수 있는가?

[인류]지는 말로는 방어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 “대중의 자기방어” 형태만을 고집한다. 민병대는 해롭다. 왜냐하면 전투부대와 대중을 갈라놓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파시스트 무장 도당들은 왜 반동적 대중으로부터 고립되지 않고 반대로 잘 조직된 공격을 통해 대중에게 용기를 불어넣고 이들이 대담해지도록 만드는가? 혹시 노동계급 대중이 탈계급화한 소부르주아 대중보다 전투성이 떨어지는가?

가망없이 논리가 뒤엉키자 [인류]지는 마침내 주저하기 시작한다: 대중의 자기방어는 특별 “자기방어 그룹”의 창설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보인다. 거부당한 민병대 대신 특별 그룹이나 부대가 제안된다. 처음 보기에는 이름 차이 뿐인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인류]지가 제안한 이름은 아무 의미도 없다. “대중의 자기방어”는 말할 수 있어도 “자기방어 그룹”은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룹의 목표는 자기방어가 아니라 노동자 조직의 방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론 이름의 문제가 아니다. [인류]지에 의하면 “자기방어 그룹”은 “폭동주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무기 사용을 포기해야 한다. 이 현자들은 노동계급을 아기 취급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손에 면도칼을 들고 있으면 안된다. 더욱이 면도칼은 파시스트 그룹 [왕의 궁전]의 전유물이다. 그리고 이 그룹은 합당한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그리고 면도칼의 도움으로 민주주의 “체제”를 전복시켰다. 그건 그렇고 “자기방어 그룹”은 파시스트의 권총 앞에 어떻게 자기방어를 할 것인가? 물론 “이념적으로” 방어할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숨는 것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손으로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없으니 발로라도 “자기방어”를 추구해야만 할 것이다. 한편 파시스트들은 아무 대가도 치르지 않고 노동자 조직들을 공격할 것이다. 그러나 노동계급이 무지막지한 패배를 당한다 할지라도 어쨌든 “폭동주의”의 죄는 피할 것이다. “볼셰비키주의”의 깃발 아래 행해지는 이 거짓 잡담은 구역질과 혐오감만을 가져온다.

지금도 행복하게 기억되는 “제 3기” 동안 [인류]지의 전략가들은 바리케이드 열병에 걸려 매일 거리를 “정복했고” 자신들의 굉장한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전부 “사회 파시스트”라고 낙인찍었다. 이때 우리는 이렇게 예언했다: “이 신사양반들은 손가락 끝을 불에 데이면 곧 최악의 기회주의자가 될 것이다.” 이 예언은 지금 완전히 올바른 것으로 확인되었다. 사회당 내부에서 민병대를 지지하는 움직임이 커지며 힘을 얻고 있는 이 순간 소위 공산당 지도자들은 자신들을 전투부대로 조직하려는 선진노동자들의 열망을 식히기 위해 고무호스를 찾아 뛰어간다. 이것보다 더 사기를 저하시키고 더 천벌받을 일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10.노동자 민병대는 조직되어야 한다

사회당 대오 내에 이렇게 반대하는 소리가 있다: “민병대는 조직되어야 하지만 그 일에 대해서 고함지를 필요는 없다.” 일의 실제적인 측면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보호하고자 하는 동지들에 대해서 축하를 드릴 뿐이다. 그러나 민병대가 사방이 둘러싸인 곳에서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은 채 조직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 것 같다. 지금은 수만의 그리고 나중에는 수십만의 전투 부대원들이 필요하다. 수백만의 남성 여성 노동자들과 농민들이 민병대의 필요성을 이해하고 지원자들 주위에 열정적인 공감과 적극적인 지지의 분위기를 조성해야 전투 부대원들이 모일 것이다.

일이 새어나가지 않게 배려하는 것은 일의 기술적인 측면에 지나지 않는다. 이 일을 위한 정치적 캠페인은 모임, 공장, 거리, 광장 등에서 공공연하게 벌어져야 한다.

민병대의 기간요원들은 노동현장에 따라 조직된 공장노동자들이 되어야 한다. 이들은 서로를 잘 알며 가장 수준 높은 관료들보다 적들의 도발에 맞서서 자신들의 전투 부대를 더 잘 보호할 수 있다. 대중의 공개적인 참여 없이는 음모적인 총참모부는 위험한 순간에 허공에 매달려 무기력에 빠질 것이다. 모든 노동계급 조직들은 민병대 조직에 몰두해야 한다. 이 문제에 관해서 노동계급 정당과 노동조합의 경계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손에 손을 잡고 이들은 대중을 추동시켜야 한다. 그러면 인민 민병대의 성공은 확실히 보장될 것이다.

“그렇지만 노동자들이 어디서 무기를 구할 것입니까?”라고 냉정한 “현실주의자” 즉 공포에 질린 속물이 반대한다. “적들은 소총, 대포, 탱크, 독가스, 비행기를 가지고 있지만 노동자들은 기껏해야 몇백 정도의 권총과 주머니칼을 가지고 있을 뿐이오.”

이 반대의 말 속에는 노동자들을 겁주기 위한 모든 생각이 모여 있다. 그리고 이들 현명한 양반들은 파시스트 도당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를 국가가 가지고 있는 병기와 동일시한다. 그리고 이들은 국가에 대해서 파시스트 도당들을 무장 해제시키라고 요구한다. 놀라운 논리가 아닌가! 이들의 논리는 두가지 모두 틀렸다. 프랑스에서 파시스트들은 국가를 장악하려면 한참 멀었다. 2월 6일 이들은 국가경찰과 무력으로 충돌했다. 따라서 파시스트들에 대한 직접적 무장 투쟁의 문제가 제기된 마당에 대포와 탱크를 말하는 것이 틀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파시스트들은 우리보다 돈이 많다. 이들이 무기를 구입하는 것은 우리보다 더 쉽다. 그러나 확고한 혁명적 지도력을 인식하고 있을 경우 노동자들은 쪽수, 헌신성, 결의 등의 면에서 더욱 우월하다.

다른 채널을 활용하면서 동시에 노동자들은 체계적으로 파시스트들을 무장 해제시키면서 스스로 무장할 수 있다.

이것은 파시즘에 대한 투쟁의 가장 진지한 형태 가운데 하나이다. 노동자의 무기고가 파시스트들의 무기고를 희생시켜 무기로 채워지기 시작하면 은행과 트러스트들은 파시스트들에게 무기 자금을 제공할 때 신중해질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경우에만 놀란 당국은 노동자들에게 무기 제공처를 더 많이 제공하지 않기 위해 파시스트들을 무장시키는 일을 막기 시작할 것이다. 오직 혁명적 전술만이 부산물로 정부에 의한 “개량”이나 양보조치를 이끌어 낸다는 것을 우리는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떻게 파시스트들을 무장 해제시킬 것인가? 신문만으로는 안된다. 전투부대가 창설되어야 한다. 정보기구가 설립되어야 한다. 우리가 본격적으로 진지하게 일을 착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수천명의 밀고자들과 우호적인 조수들이 모든 곳에서 자원하여 나타날 것이다. 노동계급의 행동에는 의지가 필요하다.(필자 주: 10월 30일자 [인류]지에서 베이양-꾸뛰리에가 적절하게 증명하고 있다. 즉 정부가 파시스트의 무장해제를 요구하는 일은 무의미하며 오직 대중운동만이 이들의 무장 해제를 가져올 수 있다는 말이다. 이 문제는 당연히 “이념적” 문제가 아니라 물리적인 무장 해제의 문제인 이상 [인류]지가 노동자 민병대의 필요성을 인정하리라고 우리는 믿는다. 스탈린주의자들이 취하는 모든 올바른 행동에 대해서 우리는 언제나 진심으로 환영할 준비가 되어있다. ... 그러나 슬프게도 11월 1일 베이양-꾸뛰리에가 확실히 뒷걸음치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파시스트들은 공동전선이 아니라 공동전선의 압력과 통제 하에 두메르그 정권의 경찰에 의해서 무장 해제될 것이다.” 놀라운 아이디어이다. 혁명이 아니라 “이념적” 압력만을 통해서 보나파르트 경찰을 노동계급의 집행기관으로 변모시킬 수 있다니! 평화적 방법으로 가능하다면 누가 무장봉기를 통해 권력을 장악하려고 할까? 공동전선의 “압력과 통제 하에” 제르멩-마르뗑이 은행을 국유화하고 마르샹도는 동료 따르뒤를 필두로 하여 반동 음모자들을 감옥에 처넣는다. 혁명적 투쟁 대신 “압력과 통제”를 행사한다는 생각은 베이양-꾸뛰리에의 발명품이 아니다. 오토 바우어, 힐퍼딩, 러시아 멘셰비키 단 등에게서 그가 빌려온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생각의 목적은 노동자들을 혁명적 투쟁에서 떨어져 나가게 하려는 것이다. 사실 적대적인 경찰의 손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손으로 파시스트들을 무장 해제시키는 것이 100배나 더 손쉬운 일이다. 그리고 공동전선이 충분히 강력해져서 권력 장악 전이 아니라 후에 국가기구를 “통제”하면 공동전선은 부르주아 경찰을 몰아내고 대신 노동자 민병대를 수립할 것이다.)

그러나 물론 파시스트들의 무기가 유일한 원천은 아니다. 프랑스의 경우 조직 노동자는 백만이 넘는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이 숫자는 적다. 그러나 노동자 민병대 조직을 위해서는 완벽히 충분한 숫자이다. 정당과 노동조합이 회원의 10분의 1만 무장시킨다 하더라도 이미 10만 병력이 된다. 노동자 민병대에 대한 “공동전선” 호소가 나간 이후 앞으로 나설 지원자의 수는 이 숫자를 훨씬 넘어설 것이다. 이 점은 조금도 의심할 수 없다. 정당과 노동조합의 기부금, 모금, 자발적인 후원금 등은 한 두 달 내로 10만에서 20만의 노동계급 전투원들을 확실히 무장시킬 것이다. 그러면 파시스트 오합지졸들은 즉시 꼬리를 다리 사이에 감추고 전의를 상실할 것이다. 그러면 이후 정세는 비교할 수 없이 더욱 우리에게 유리할 것이다.

무기 부족을 비롯한 다른 객관적인 이유들을 들면서 지금까지 민병대 창설을 위한 시도가 없었다고 설명하는 것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속이는 행위이다. 주요한 장애물 아니 유일한 장애물은 노동자 조직의 지도자들이 가지고 있는 보수적이고 수동적인 태도이다. 지도자들이 회의론자가 되어 노동계급의 힘을 믿지 않는다. 이들은 대중의 혁명적 에네르기가 아래에서 끓어오르고 있는 마당에 이 에네르기에 출구를 제공하는 대신 모든 종류의 기적에 희망을 두고 있다. 사회당 노동자들은 지도자들이 즉시 정신을 차려 노동자 민병대 창설에 나서도록 강제해야 된다. 아니면 이들이 좀더 젊고 패기에 찬 신진 세력에게 지도자의 자리를 넘겨줄 것을 강요해야 한다.

 

11.노동계급의 무장

선전 선동 없는 파업은 생각할 수도 없다. 그리고 될 수 있는 한 설득하되 어쩔 수 없을 경우에는 폭력을 사용하는 파업방위대(pickets) 없는 파업 역시 생각할 수 없다. 파업은 계급투쟁의 가장 초보적인 형태로 언제나 “이데올로기적” 방식과 물리적 방식을 적절히 배합한다. 기본적으로 파시즘에 저항하는 투쟁은 파업이 파업방위대를 필요로 하듯이 민병대를 필요로 하는 정치투쟁이다. 파업방위대는 노동자 민병대의 맹아이다. “물리적인” 투쟁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는 모든 투쟁을 포기해야 한다. 왜냐하면 정신은 육체가 없이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위대한 전쟁이론가 클라우제비츠의 멋진 말을 그대로 옮기면 전쟁은 다른 수단을 가지고 하는 정치행위이다. 이 정의는 내전에도 완벽하게 적용된다. 물리적 투쟁은 정치투쟁의 “다른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두 투쟁 형태를 대치시키는 것은 인정될 수 없다. 왜냐하면 내적 논리에 의해 정치투쟁이 물리적 투쟁으로 변모할 때 이것을 우리 마음대로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혁명정당의 의무는 정치가 공공연한 무장 충돌로 변모할 수 밖에 없음을 제 시간에 예견하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지배계급이 준비하는 것과 같이 이 순간을 준비하는 것이다.

파시즘의 폭력에 대한 자기 방어로 노동자 민병대를 창설하는 것은 노동계급을 무장시키는 첫 조치이지 마지막 조치가 아니다. 노동계급과 혁명적 농민을 무장시켜라! 이것이 우리의 구호이다.    

최종적으로 노동자 민병대는 모든 근로인민을 포괄해야한다. 이 강령은 노동자국가에서만 그 완벽한 실현이 가능할 것이다. 모든 생산수단 그리고 결과적으로 모든 파괴수단 즉 모든 무기와 무기공장들이 노동자국가의 수중에 들어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빈손으로 노동자국가를 건설할 수는 없다. 르노델 같은 정치 환자들만 사회주의로의 평화적 합헌적 길을 말할 수 있다. 합헌적 길은 파시스트 도당들이 점령하고 있는 참호들 때문에 차단되어 있다. 우리 앞에는 많은 참호들이 놓여있다. 부르주아 계급은 노동계급의 권력장악을 저지하기 위해 경찰과 군대의 도움을 받아 열번 이상의 쿠데타를 기꺼이 기도할 것이다. 사회주의 노동자국가는 승리한 혁명에 의해서만 수립될 수 있다.

모든 혁명은 경제적 정치적 상황의 전개와 함께 준비된다. 그러나 결국 적대 계급들 간의 공공연한 무장 충돌로 승리 여부가 판가름났다. 혁명의 승리는 오랜 정치선동, 대중에 대한 오랜 교육과 조직의 결과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리고 무장 충돌 역시 이미 오래 전에 준비되어야 한다.

목숨을 걸고 투쟁하고 이 투쟁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것을 선진노동자들은 알아야 한다. 그리고 자기 해방을 보증하는 무기를 들기 위해 손을 뻗어야 한다.

지금처럼 중요한 시기에 혁명정당은 노동자들에게 자기무장의 필요성을 쉬지 않고 설교하고 최소한 노동자 전위의 무장을 확보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이것이 없이는 승리할 수 없다.

최근 영국노동당의 선거 승리도 지금까지 말한 내용을 전혀 무의미하게 만들지 않는다. 다음 의회 선거가 노동당을 절대 다수당으로 만든다 치더라도 아니 더 나아가 지금은 개연성이 전혀 없지만 이 정당이 사회주의 혁명의 길로 나아간다 치더라도 즉시 상원, 왕, 은행, 주식시장, 관료집단, 언론 등의 격렬한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그러면 이 정당의 대오는 두 조각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좀더 급진적 분파인 좌파는 의회에서 소수가 될 것이다. 이와 동시에 파시스트운동은 유례없는 세를 얻게 될 것이다. 지방의회 선거 결과에 놀라 영국 부르주아 계급은 이미 적극적으로 의회 바깥에서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한편 노동당 지도자들은 의회의 성공으로 노동계급의 걱정을 잠재운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영국의 사태들을 장 롱게(Jean Longuet)의 장미빛 안경으로 볼 수 밖에 없다. 사실 노동당 지도자들이 준비가 덜 되어있으면 있을수록 영국 부르주아 계급은 내전을 더욱더 잔인하게 노동계급의 어깨 위에 부담시킬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계급 전부를 무장시킬 무기를 어디서 구한다는 말이요?”라고 다시 한번 자신의 내적 무기력을 객관적 불가능으로 착각하는 회의론자 양반들이 반대를 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했던 질문이 역사상 모든 혁명 전야에 제기되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그리고 다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승리한 혁명은 인류 발전의 중요한 단계들을 구분한다.

노동계급은 무기를 생산, 수송하고 무기고를 세우며 이 건물을 방어하고 군대에 들어가 군대의 모든 장비들을 만든다. 노동계급을 무기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은 자물통이나 벽이 아니라 복종의 습관, 계급지배의 최면, 민족주의적 해악 등일 뿐이다.

이러한 심리적 벽들만 파괴시키면 어떤 돌담도 노동계급을 막지 못한다. 노동계급이 무기를 원하기만 하면 무기는 나온다. 혁명정당의 임무는 이 욕망을 일깨우고 이 욕망의 실현을 촉진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프로싸르와 수백명의 공포에 질린 의회주의자, 신문기자, 노동조합 관료 등이 자신들의 마지막이자 가장 심중한 주장을 내세운다: “최근 오스트리아와 스페인의 비극적인 경험들을 보았을 때 일반적으로 진지한 사람들이 물리적 투쟁의 성공에 희망을 걸 수 있습니까? 오늘날의 기술, 탱크, 독가스, 비행기 등을 생각해보시오” 몇몇의 “진지한 사람들”이 아무 것도 배우기를 원치 않으며 공포에 질린 나머지 자기들이 그동안 배웠던 것도 까먹고 있다는 사실을 이 주장은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나라 뿐 아니라 계급 관계들이 제기하는 근본 문제들은 물리적 힘으로 해결된다는 사실을 지난 20년의 역사는 특히 명쾌하게 입증하고 있다. 군사기술의 발전은 전쟁을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라고 오랫동안 평화주의자들은 희망해왔다. 그리고 속물들은 지난 수십 년간 군사기술의 발전은 혁명을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라고 계속 외쳐왔다. 그러나 전쟁과 혁명은 계속된다. 군사기술의 모든 힘을 발견한 지난 번 전쟁 즉 제 1차 세계대전 이래로 승리한 혁명을 포함해 계속 혁명들이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이 이어졌다.

프로싸르와 그의 동료들은 낡아빠진 말들을 최근에 발견한 사실인 것처럼 들이민다. 자동소총과 기관총 대신 이번에는 탱크와 폭격기의 가공할 위력을 말한다. 여기에 대해서 우리는 이렇게 대답한다: 각각의 군사기계 뒤에는 기술적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인간들이 존재한다. 역사발전이 사회 앞에 생사의 문제로 도저히 그 성취를 지연시킬 수 없는 혁명적 과업을 제기할 때, 그 승리가 사회의 구원과 직결된 진보적 계급이 존재할 때, 이때에 정치투쟁의 발전은 혁명적 계급 앞에 아주 다양한 가능성들을 열어 놓는다. 최소한 부분적으로나마 적의 군사력을 마비시키고 이들을 혁명의 편으로 획득할 그런 가능성들 말이다. 속물들의 생각에는 이러한 가능성들은 결코 반복될 수 없는 “운좋은 우연”인 것처럼 보일 뿐이다. 사실 가장 예상하지 못한 가운데 그리고 기본적으로 필연적인 결합 가운데 모든 종류의 가능성들이 모든 위대한 즉 진정으로 대중적인 혁명에서 열린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승리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유리한 가능성을 활용하려면 혁명적 의지, 승리하고자 하는 강철같은 결의, 대담하고 명민한 지도부 등을 보유해야 한다. [인류]지는 말로는 “노동자 무장”에 찬성하면서 행동으로는 포기하고 있다. 이 신문에 의하면 “완전한 혁명적 위기”에만 가능한 구호를 지금 제출하는 것은 인정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냥감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소총에 총알을 장전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너무 신중한” 사냥꾼이 말한다. 그러나 사냥감이 나타났을 때 장전하면 너무 늦다. “완전한 혁명적 위기”에 아무 준비도 없이 노동계급을 동원시키고 무장시킬 수 있다고 [인류]지의 전략가들은 정말 생각하고 있는가? 많은 무기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무기가 수중에 있어야 한다. 군사적 중핵들이 필요하다. 무기를 확보하겠다는 대중의 꺾을 수 없는 욕망이 필요하다. 학교 뿐 아니라 대중의 일상적 투쟁에서도 끊을 수 없는 유대를 위한 부단한 준비작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즉시 민병대를 창설하고 동시에 혁명적 노동자 농민 전체의 무장을 주장하는 선전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

 

12.그러나 오스트리아와 스페인에서 패배했는데...

자본주의 체제 전체가 위기에 처해 있는 지금 의회주의 체제는 무기력에 빠져있다. 이 현상은 너무 명백해서 노동운동 내부의 속류 민주주의자들 즉 르노델, 프로싸르와 이들의 모방자들은 자신들의 화석화된 주장들을 입증하는 단 하나의 현상도 찾아낼 수 없다. 그러자 더욱더 적극적으로 과거 혁명 과정의 모든 패배와 실패를 들춘다. 이들의 사고방식은 이렇다: 순수 의회주의도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무장투쟁 역시 마찬가지이다. 오스트리아와 스페인 노동자 봉기의 패배는 이제 이들이 아끼고 아끼는 주장이 되었다. 혁명적 방식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속류 민주주의자들의 이론적 정치적 파산은 쇠퇴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방식을 옹호하는 경우보다 더 뚜렷하게 그 모습이 드러난다.

혁명적 방식이 자동적으로 승리를 보장한다고 주장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결정적인 것은 방법 자체가 아니라 이 방법의 정확한 적용 즉 사건의 와중에 제시되는 맑스주의 노선, 강력한 조직, 오랜 경험을 통해 획득된 대중의 자신감, 명민하고 대담한 지도부 등이다. 모든 투쟁의 이슈는 투쟁의 순간과 상태 그리고 계급 역관계에 의존한다. 무장 충돌이 유일한 혁명적 방식이거나 모든 조건에서 효력을 발생하는 만병통치약이라고 생각하는 것 만큼 맑스주의로부터 멀리 떨어진 것은 없을 것이다. 맑스주의는 의회주의적이든 봉기든 어떤 것도 신성시하지 않는다. 모든 것에는 시간과 장소가 있다. 우선 해야 할 말 한마디가 있다:

의회주의의 길을 가면 사회주의적 노동계급은 갈 곳이 없으며 권력을 장악해본 적도 없고 그 근처에 가까이 가본 적도 없다.

샤이데만, 허먼 뮐러, 맥다널드 등의 정부는 사회주의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자본주의의 적들에 대항해서 이 체제를 지키라는 하나의 조건으로만 부르주아 계급은 사민주의자들과 노동당의 정권을 허용했다. 그런데 이들은 이 조건을 꼼꼼하게 충족시켰다. 순수하게 의회적이며 반혁명적 사회주의는 사회주의 내각을 성립시킨 적이 단 한번도 없다. 다만 노동자 정당을 이용하여 장관 자리나 차지하는 구역질 나는 배신자들인 밀레랑, 브리앙, 비비아니, 라발, 폴-봉꾸르, 마르께 등을 배출했을 뿐이다.

반면에 혁명적 방식으로 노동계급이 권력을 장악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역사적 경험들이 있다. 1917년 러시아, 1918년 독일과 오스트리아, 1930년 스페인 등이 그 경우이다. 러시아에서는 강력한 볼셰비키당이 있었는데 이 당은 오랜 기간동안 혁명을 준비했으며 권력을 어떻게 장악하는 지를 확실히 알고 있었다.

독일, 오스트리아, 스페인의 개량주의 정당들은 혁명을 준비하지도 지도하지도 않았다. 다만 혁명의 격동에 시달렸을 뿐이다.

자신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권력이 자기들 손에 쥐어지자 놀라자빠진 이들은 이 권력을 마음씨 좋게 부르주아 계급에게 다시 넘겼다. 이렇게 이들은 노동계급의 자신감을 파괴시켰으며 더욱이 노동계급에 대한 소부르주아 계급의 신뢰감을 파괴시켰다. 이들은 파시스트 세력의 성장에 필요한 조건을 준비해 주고 결국 파시즘에 잡아먹혔다.

클라우제비츠의 말을 우리가 인용했듯이 내전은 정치의 계속이되 다른 수단을 통한 정치의 계속이다. 내전의 결과는 10분의 1은 말할 것도 없고 4분의 1은 내전 자체의 발전, 내전의 기술적 수단, 순수한 군사적 지도력에 달려 있으며 10분의 9는 아닐지라도 4분의 3은 정치적 준비에 달려있다.

이 정치적 준비의 내용은 무엇인가? 대중의 혁명적 응집력, “민주적 노예소유주들”이 자신들에 대해서 관용, 은혜, 신뢰 등을 보일 것이라는 굴종적인 희망에서 대중이 해방되는 것, 공식 여론을 거부하며 부르주아 계급이 근로인민에게 드러내는 비타협적 적대의 10분의 1이라도 부르주아 계급에게 보일 수 있는 법을 아는 혁명적 중핵의 교육 등이 정치적 준비의 내용이다. 이러한 준비와 단련이 없이는 언제나 우리에게 강제로 닥치는 내전은 노동계급에게 가장 불리한 조건 속에서 닥칠 것이고 많은 불투명한 요인들에 우리를 내던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군사적 승리를 쟁취하더라도 권력 장악에 실패할 수도 있다. 계급투쟁이 불가피하게 무장 충돌로 나아간다는 사실을 미리 알지 못하는 자는 누구든지 눈뜬 장님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무장 충돌과 이 결과를 통해 투쟁하고 있는 적대 계급들의 과거 정책들을 전체적으로 보지 못하는 사람 역시 눈 뜬 장님이다.

오스트리아에서 패배한 것은 봉기의 방법이 아니라 오스트리아-맑스주의이다. 그리고 스페인의 경우는 무원칙한 의회 개량주의이다.

1918년 오스트리아 사회 민주주의는 노동계급이 획득한 권력을 노동계급의 등 뒤에서 부르주아 계급에게 넘겨주었다. 1927년 이 개량주의자들은 승리의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었던 노동자 봉기를 비겁하게 외면했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 방위대가 봉기대중을 진압하게 만들었다. 이 결과 이 개량주의자들은 파시스트 돌푸스의 승리를 자초했다. 바우어와 그 동료들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평화적인 발전을 원하지만 적이 이성을 상실하여 우리를 공격하면 그때는...”

이러한 사고는 아주 “지혜롭고” 아주 “현실적인”것처럼 보였다. 불행하게도 마르쏘 삐베르가 기대고 있는 모델이 바로 이 오스트리아-맑스주의자들이다. “만약에... 한다면, 그렇다면.” 사실 이런 방식의 사고는 노동자들에게는 하나의 덫이다. 이들을 안심하게 만들고 속이기 때문이다. “만약에”라고 생각하는 것은 투쟁 형태가 부르주아 계급의 선의에 따르며 계급 이해의 비타협성에 따르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만약에”에는 “만약에” 우리가 지혜롭고 신중하고 화해적이라면 부르주아 계급 역시 우리에게 진심을 보일 것이며 모든 것이 다 평화롭게 풀릴 것이라는 사고가 깔려있다.

“만약에”라는 유령을 뒤쫓다가 오토 바우어와 여타 오스트리아 사민주의 지도자들은 수동적으로 반동에 대해 후퇴했다. 그리고 진지를 하나 하나 내주고 대중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다시 후퇴했다. 결국 이들은 막다른 골목에 몰렸다. 마지막 보루에서 결국 이들은 싸움을 인정하고 싸웠으나 패배했다.

스페인의 경우는 오스트리아와 달랐다. 그러나 패배의 원인은 기본적으로 같았다. 러시아 사회혁명당이나 멘셰비키처럼 스페인 사회당은 공화파 부르주아 계급과 권력을 나누어 가졌다. 노동자와 농민의 혁명을 막기 위해서였다. 2년 동안 권력을 잡은 사회당은 민족적, 사회적, 농업적 개량주의 조치라는 빵가루를 통해 부르주아 계급이 대중의 눈에서 체면을 차리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가장 혁명적 분자들을 탄압했다.

결과는 두가지로 나타났다. 노동자 정당이 올바른 정책을 폈을 경우 혁명의 열화 속에서 눈처럼 녹았을 무정부주의적 조합주의(anarcho-syndicalism)가 강화되었고 노동계급의 전투적 부위가 이 세력 주위로 모였다. 한편 사회-카톨릭 세력의 선동이 부르주아-사회주의 정부에 대한 대중의 불만을 능숙하게 이용하였다.

사회당의 세력이 충분히 잠식되자 부르주아 계급은 전자를 권력에서 몰아내고 전체 전선에서 공세로 돌입했다. 사회당은 가장 불리한 상황 속에서 스스로를 방어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이러한 상황은 사회당의 이전 정책의 결과였다. 부르주아 계급은 이미 우익 쪽에서 대중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무정부적 조합주의 지도자들은 혁명 과정 동안 전문적 혼동주의자들이 저지를 수 있는 모든 전형적인 오류들을 이미 저질렀다. 그런데 이들은 배신자 “정치인들”이 주도하는 봉기를 지지하지 않았다. 이 운동은 일반적인 성격을 띠지 못하고 이곳 저곳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났다. 정부는 흩어진 노동자 대오 하나 하나에 공격을 가했다. 반동 세력이 강요했던 내전은 결국 노동계급의 패배로 끝났다.

부르주아 정부에 사회주의자들이 참여해서는 안된다는 정치적 결론을 스페인은 충분히 보여주었다. 이 결론 자체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전혀 충분치 못하다. 오스트리아-맑스주의가 가지고 있다고 주장된 “과격주의”는 스페인에서 사회주의자들이 내각에 참여하는 정책과 나은 것이 하나도 없다. 두 경향 사이의 차이는 기술적인 것이지 정치적인 것이 아니다. 두 경향 모두 부르주아 계급이 자신들의 “충심”에 대해 “충심”으로 보답하기를 기다렸다. 두 경향 모두 노동계급을 재앙으로 내몰았다.

오스트리아나 스페인이나 패배한 것은 혁명적 방법이 아니다. 혁명적 상황에서 기회주의적 방법이 패배한 것이었다. 이 두가지는 전혀 다르다!

여기서 오스트리아와 스페인에서 코민테른의 정책에 대해서 거론하지는 않겠다. [진실]지 신문철과 최근 몇년 동안에 나온 일련의 팜플렛들을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것으로 그치고자 한다. 예외적으로 유리한 상황에서 오스트리아와 스페인 공산당들은 “제 3기”와 “사회파시즘” 등 황당한 이론으로 족쇄가 채워져서 대중으로부터 완전히 고립당했다. 혁명의 방법들을 “모스크바”의 권위로 파괴하면서 이들은 진정으로 맑스주의적이며 진정으로 볼세비키적인 정책을 봉쇄하였다. 혁명의 근본적 기능은 모든 이론과 방법들을 신속하며 무자비한 검토의 도마 위에 올려놓는 일이다. 따라서 잘못된 이론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순간 곧 형벌이 따른다.

독일, 오스트리아, 스페인 노동계급의 패배에 대해서 코민테른은 측정할 수 없는 엄청난 책임을 지고 있다. “혁명적” 정책을 말로 수행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올바른 정책이 필요하다. 이외의 다른 비결을 어느 누구도 아직 찾지 못했다. 

 

13.공동전선과 권력 쟁취를 위한 투쟁

사회당과 공산당의 공동전선은 엄청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이미 말한바 있다. 진지하게 이것을 원하기만 한다면 공산당은 내일 프랑스의 주인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주오와 일반적으로 노동총동맹의 관료들이 공동전선 밖에 머물면서 “독자성”을 지키고 있는 사실은 우리가 하는 말과 모순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겉으로 보기에만 그렇다. 대중을 투쟁의 장으로 불러 일으키는 거대한 과업과 거대한 위험의 시대에는 노동계급의 정치조직과 노동조합 조직 사이의 벽은 사라진다. 실업과 파시즘으로부터 자신의 생존을 도모하는 법을 노동자들은 알고 싶어한다. 그리고 자본으로부터 독립하는 법을 알고 싶어한다. 주오가 노동자 정책으로부터 “독립”하는 문제에 대해서 이들은 전혀 관심이 없다. 그런데 슬프게도 주오는 부르주아 정책에 대해서는 아주 비독립적이다. 공동전선에서 구성된 노동자 전위가 올바르게 투쟁의 길을 간다면 노동조합 관료들이 설치해 놓은 모든 장애물들은 노동계급의 살아있는 급류에 의해 전부 떠내려갈 것이다. 지금 상황의 열쇠는 공동전선이 쥐고 있다. 만약 이 열쇠가 제대로 활용되지 않는다면 1917년 볼셰비키당이 막지 않았을 경우 러시아에서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이 체결한 공동전선이 했던 그런 통탄할 역할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지금 사회당과 공산당에 대해서 특별히 말하지는 않겠다. 공동전선을 위해 두 정당이 독자성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두 노동자 정당은 과거 날카롭게 경쟁했었는데 이들이 상호비방과 당원을 서로 빼앗아 가려는 시도를 포기한 것만으로도 독자적인 정당이 아니라는 점을 증명하고 있다. 지금 존재하는 “원칙의 차이들”을 언급하더라도 사태가 바뀌지는 않는다. 원칙의 차이들이 공공연히 적극적으로 표출되지 않는 한 지금처럼 양 정당에 책임이 막중한 순간에는 원칙의 차이들은 정치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이것들은 마치 대양의 맨 밑에 가라앉아 있는 보물과도 같은 것이다. 공동전선이 두 당의 통합을 가져올 지는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 프랑스의 운명에 아주 중요한 시기에 공동전선은 연방주의 원칙으로 창립된 불완전한 정당처럼 움직인다.

공동전선은 무엇을 원하는가? 지금까지 공동전선은 대중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하지 않았다. 파시즘에 반대하는 투쟁이 공동전선의 목표인가? 그러나 지금까지 공동전선은 파시즘에 대항해서 어떻게 싸울 것인지를 설명한 적이 없다. 이외에도 파시즘에 대항하는 순수하게 방어적인 블럭은 두 정당이 다른 모든 일에서 완전한 독자성을 보존할 경우에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다르다. 두 정당의 공적인 활동을 전부 포괄하는 그리고 노동계급의 다수를 획득하려는 두 정당의 상호 경쟁적 투쟁이 배제된 그런 공동전선이 존재하고 있다. 이 상황으로부터 모든 결과들이 유추되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사항은 권력 쟁취를 위한 투쟁이다. 공동전선의 목표는 공동전선 정부 즉 사회당-공산당 정부, 블룸-까쉥 정부가 될 수 있을 뿐이다.

이 점을 공개적으로 말해야 한다. 만약 공동전선을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그리고 대중이 공동전선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유일한 조건이 이것이라면 권력 쟁취 구호를 생략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떤 수단으로 권력을 장악할 것인가? 이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되는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공동전선은 의회투쟁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다만 의회의 무기력을 폭로하기 위해 의회를 활용한다. 그리고 대중에게 현 정부가 의회 바깥에 정치기반을 가지고 있으며 강력한 대중운동을 통해서만 전복될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만 의회가 이용될 수 있다.

권력 쟁취를 위한 투쟁은 반(半)의회적 보나파르트 정권이 제공하는 모든 가능성들을 활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혁명적 방식으로 이 정권을 전복시키고 부르주아 국가를 노동자국가로 대체해야 한다.

지난 지방의회 선거에서 사회당과 특히 공산당의 득표율이 증대되었다. 그러나 이 자체로는 아무 것도 달라지는 것이 없다. 붕괴되기 직전 독일공산당도 득표율이 지금보다 훨씬 크게 상승했다. 극좌 또는 극우 정당들의 정책과는 무관하게 새로운 광범위한 피억압 대중이 전체 상황에 의해서 좌로 움직인다. 프랑스 공산당은 표를 더 얻었다. 지금의 보수적 정책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으로 “극좌”이기 때문이다. 사회당과 공산당에 더 많은 표를 던지는 것을 통해 대중은 노동계급 정당들이 좌로 움직이도록 원동력을 제공했다. 왜냐하면 대중은 자신들의 정당들보다 훨씬 더 왼쪽에 있기 때문이다. 이 경향에 대해서 더욱더 웅변적으로 말해주는 현상이 있다. 사회당 청년들이다. 청년은 계급 전체 그리고 이 계급의 전위가 보이고 있는 상태를 민감하게 측정하는 풍향계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만약 공동전선이 수동성으로 인해 수립되지 못하거나 설상가상으로 급진당과 쓸데없는 연애에 돌입한다면 공동전선보다 “좌”에 있는 무정부주의, 무정부적 조합주의 또는 기타 정치적 해체를 상징하는 그룹들이 그 세력을 강화할 것이다. 동시에 재앙의 전조인 대중의 무기력과 무관심이 활개를 칠 것이다.

반면 공동전선이 파시스트 도당들의 공격에 대해 후위와 좌우위를 확신시키면서 권력 장악을 구호로 내세우며 넓은 정치적 공세의 길로 나설 경우 너무도 강력한 반향을 불러 일으켜 가장 낙관적인 예상조차도 상회할 상황을 가져올 것이다.

거대한 대중운동이 몇겹으로 봉해진 책인 것처럼 생각하는 공허한 사기꾼만이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14.수동성의 강령이 아닌 혁명의 강령을

대중의 상태가 더 이상 악화되는 것을 막으려면 자본주의적 소유권을 혁명적으로 침해해야 한다. 권력 장악을 위한 투쟁은 이 기본 사고에서 출발해야 한다. 공동전선의 정치투쟁은 잘 짜여진 이행기 강령(transitional program) 에 기초해야 한다. 노동자 농민 정부가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이행을 보장할 그런 조치들의 체계가 바로 이행기 강령이다.

지금 강령은 양심을 편하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혁명적 행동을 지도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죽은 문자에 불과하다면 강령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예를 들어 벨기에 노동자당은 모든 “국유화” 조치들을 담고 있는 드만(de Man)의 휘황찬란한 계획을 채택했다. 그러나 당 강령의 실현을 위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는데 이 강령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파시스트들의 강령은 황당하고 거짓이며 선동적이다. 그러나 파시즘은 권력을 잡기 위해 치열한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사회주의는 가장 과학적인 강령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노동계급의 전위가 국가를 장악하기 위해 대담한 투쟁을 전개하지 않는다면 이 강령의 가치는 꽝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사회 위기는 정치적으로 표현하면 권력의 위기이다. 사회의 옛 주인은 파산했다. 새로운 주인이 필요하다.

만약 혁명적 노동계급이 권력을 잡지 않는다면 파시즘이 불가피하게 권력을 손에 넣을 것이다!

“중간 계급들”을 위한 이행기 요구들이 실린 강령은 중간 계급의 진정한 요구에 부응하며 또 한편 사회주의를 향한 발전의 요구에 부응한다면 자연스럽게 중요하게 부각될 것이다.(필자 주: [해방된 학교]에서 쎄라 동지는 농민 각 층의 경제 상황과 이들의 정치 경향을 묘사하는 흥미있는 설문지를 실었다. 공립학교 교사들은 농촌에서 공동전선의 대체될 수 없는 인자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다가올 시기에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껍질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소규모의 실험과 소규모의 실험실을 운용하기에 지금 시기는 너무도 불리하다. 혁명적 교사들은 사회당에 들어가 그 혁명적 분파를 강화시키고 이 분파를 농민 대중과 연결시켜야 한다.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범죄행위를 저지르는 것과 같다.) 그러나 다시 한번 말하건데 무게 중심은 특별한 강령에 있지 않다. 중간 계급은 많은 강령들을 보아왔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강령이 실현될 것이라는 자신감이다. “이번에는 노동계급 정당들이 뒤로 물러설 것 같지 않군”이라고 농민들이 말하는 순간 사회주의 대의는 승리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되기 위해서 모든 장애물을 분쇄할 준비가 확실히 되어 있음을 행동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

투쟁의 수단들은 발명될 필요가 없다. 세계 노동계급 운동의 전체 역사가 이것들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똑같은 주제를 반복해서 부각시키는 노동계급 언론의 집중된 캠페인, 유약한 의회 의원들이 아니라 인민의 지도자들에 의한 의회에서의 진정 사회주의적 연설, 혁명적 목적을 위한 모든 선거 투쟁 활용, 대중들이 연설하는 연사의 말을 들을 뿐만 아니라 그 순간 필요한 구호와 지시사항들을 전달받는 반복되는 모임, 노동자 민병대의 창설과 강화, 반동 파시스트 도당들을 거리에서 몰아내는 잘 조직된 시위, 항의 파업, 결의에 찬 계급투쟁의 깃발 아래 노동조합 평회원의 단결과 세력 증대, 군대를 인민의 대의로 획득하는 끈질기고 면밀하게 계산된 활동, 더 광범위한 파업, 좀더 강력한 시위, 도시와 농촌의 근로 대중에 의한 총파업, 보나파르트 정권에 대한 전면적인 공세, 노동자 농민 권력 쟁취를 위한 투쟁 등이 이런 수단들이다.

승리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은 아직도 있다. 파시즘은 아직 대중운동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급진당의 불가피한 붕괴는 보나파르트 정권의 대중기반이 협소해지고 있으며 두 극단 진영이 성장하고 있으며 이 두 진영에 의한 결전의 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의미한다. 결전은 몇년의 문제가 아니라 몇달의 문제이다. 이 기간의 길이는 어느 누구에 의해서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세력들 간의 투쟁에 달려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노동계급과 그 공동전선에 달려있다.

혁명의 잠재 역량은 파시즘과 전체 반동의 연합 세력보다 훨씬 더 크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회의론자들을 노동자 대오로부터 가차없이 추방해야 한다. 대중의 깊은 마음 한 가운데에서 하나 하나의 대담한 말, 하나 하나의 진정한 혁명적 구호에 대한 활기있는 메아리가 울리고 있다. 대중은 투쟁을 원하고 있다.

현재 역사에서 가장 진보적인 단 하나의 요인이 있다면 그것은 의회주의자들과 신문기자들 사이의 연합 정신이 아니라 억압자에 대한 피억압 인민의 합당하며 창조적인 증오심이다. 대중 특히 그 가장 깊은 부위로 우리의 관심을 돌릴 필요가 있다. 이들의 열정과 이성에 호소하는 것이 필요하다. 비겁의 동의어이며 거대한 역사적 전환기에 배신에 해당되는 거짓 “신중론”을 거부하는 것이 필요하다. 노동자 공동전선은 프랑스 혁명가 당통(Danton)의 생각을 모토로 삼아야 한다: 대담해야한다, 언제나 대담해야한다, 그리고 더 많이 대담해야한다. 지금의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고 대담하고 두려움없이 끝까지 이것으로부터 모든 실천적인 결론들을 끌어내는 것, 이것이야말로 사회주의의 승리를 보장하는 길이다.     

 

 

제 2부 프랑스 혁명을 위한 강령

 

편집자 서문

두메르그에서 플랑뎅으로 노동자들은 두메르그 정권에 대해 높은 불만을 나타내었다. 따라서 두메르그 정권은 노동자들에 대한 강력한 통제 정책을 시행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11월 급진당은 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고 에리오를 필두로 여러 장관들이 사임했다. 결국 두메르그 내각은 붕괴했으며 급진당의 에띠엔 플랑뎅이 새로운 수상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두메르그와 마찬가지로 우익적 정책을 시행하려고 했으나 전임 정권보다 입지가 더 약한 상태였다.

급진당이 두메르그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플랑뎅을 내세웠을 때 의회 내의 사회당 지도자들은 공산당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새 정권을 지지하기로 합의했다. 독일에 대항해서 부르조아 동맹국을 찾던 스탈린은 소련을 9월 국제연맹에 가입시키고 특히 프랑스와 외교 채널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외무장관 루이 바르뚜 역시 히틀러의 재무장 정책에 대항해서 동맹국을 찾고 있었다. 1934년 10월 마르세이유에서 크로아티아 민족주의자가 유고슬라비아의 알렉산더 국왕과 바르뚜를 암살하자 프랑스와 소련의 외교관계는 보수 공화파이자 전 사회당 출신 삐에르 라발에 의해서 수행되었다.

한편 공산당과 사회당은 급진당과 동맹을 맺고자 했다. 그래서 파시스트들의 위협에 대해서 진정으로 투쟁하기보다는 급진당 정권에게 반파시스트 정책을 펴도록 호소하는 정책을 취했다. 이들이 플랑뎅에게 파시스트 동맹들을 해체할 것을 요청하자 트로츠키는 자신의 일기에서 이렇게 지적했다:“‘허약한’ 플랑뎅 정권에게 까쉥과 블룸은 파시스트 동맹들을 해체할 것을 요구했다. 이를 통해 이들은 노동자 운동에 대한 정권의 입지만 강화시켜 주었다.”

1935년 2월 파시스트 도당들이 의회를 공격한 지 1주년이 되자 사회당 당수 블룸은 제 3공화국이 아직도 건재하며 “파시즘은 아직도 승리하지 않았다”고 기뻐했다. 이렇게 잘못된 안도의 분위기 속에서 노동총연맹은 산업구조조정 “계획”을 제출했다. 이것은 벨기에 개량주의자 앙리 드 만의 청사진과 내용이 비슷했다.

전투적인 노동계급 정책에는 훨씬 못미쳤지만 이 계획은 혁명적 선전 공간을 제공했다. 그러나 3월 10일 트로츠키는 자신의 일기에 이렇게 적고 있다: “자신들의 계획을 실현시키기 위해 이 개량주의자들은 노동자들에게 호소하는 대신 고용주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자신들의 계획이 근본적으로 보수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시키기 위해서이다.”

한편 이 동안 트로츠키는 소련에서 일어난 중요한 변화에 대응했다. 1934년 12월 소련 공산당 정치국원 세르게이 키로프가 암살되자 스탈린은 이것을 소련과 코민테른에 대한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삼았다. 트로츠키는 공산당의 대대적인 당원 제명조치, 카메네프와 지노비에프에 대한 조작 재판, 트로츠키주의에 대한 강화된 탄압 등 일련의 정치 사건들을 설명하는 논문들을 저술했다. (1934-35, 1935-36년의 저작집을 참고하시오)

라발의 외교 스탈린을 대신하여 블라디미르 포템킨과 삐에르 라발은 1935년 5월 불소 상호지원 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을 통해 스탈린은 프랑스 자본주의의 재무장 정책을 명확히 지지했다. 이로부터 1년 후 공식 코민테른 정책은 초좌익주의에서 공공연한 계급협조주의로 선회했다.

프랑스의 스탈린주의자 바이양-꾸뛰리예, 까쉥, 토레즈 등은 새로운 노선을 정당화하기 위해 크게 노력했다. 새로운 노선으로 인해 이들은 극우 민족주의자들과 같이 국수주의적 안보정책을 주창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프랑스와 소련의 조약은 이 시기 라발의 가장 성공적인 외교 성과였으며 그의 외교적 성공은 계속되었다. 조약이 체결되기 한달 전 즉 1935년 4월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는 독일 재무장에 대한 공동전선을 구축하기 위해 스트레자 회의를 개최했다. 그러나 이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이 회의의 실패로 득을 본 사람은 무쏠리니였다. 그의 이디오피아 합병 계획은 이 회의의 실패로 암묵적인 승인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프랑스의 공산당과 사회당 지도자들은 이디오피아에 대한 이탈리아의 제국주의적 침략에 항의했다. 그러나 급진당 정권과의 결별은 고려하지도 않았다.

인민전선 정책의 공식화 1935년 5월과 6월의 지방의회 선거에서 사회당, 특히 공산당은 더 많은 득표를 했다. 이 결과 급진당은 이 두 개량주의 정당들과 선거연합을 공식화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플랑뎅 정권은 붕괴되었다. 그리고 부이쏭 정권이 뒤를 이었으나 곧 무너지고 6월 7일 라발이 수상으로 임명되었다.

이로부터 이틀 후 사회당은 뮐루즈에서 당대회를 개최했다. 주요 의제는 곧 성립될 인민전선 정부의 사회당 참여를 승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내 분파인 볼셰비키-레닌주의 그룹 대의원들 역시 주목대상이 되었다. 볼셰비키-레닌주의 그룹은 1934년 입당한 후 세력이 상당히 커져있었다. 지도부의 정책을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놀 경우 제명조치가 내려질 것이라는 경고가 이 그룹 대의원들에게 내려졌다.

1935년 7월 14일 1만명의 대의원이 참석한 당대회에서 인민전선이 공식 정책으로 채택되었다. 그리고 블룸, 달라디에, 토레즈 등이 주도하는 거대한 바스띠유의 날 시위가 이어졌다. 이 시위에서 부르조아 공화주의의 상징이 프랑스 노동운동에서 환영받았다. 붉은 기와 함께 삼색기가 휘날렸고 애국가인 “마르세이예즈”가 국제노동계급의 노래 “인터내셔날”과 함께 불려졌다.

7년간의 지연 끝에 제 7차이자 마지막 코민테른 세계대회가 1935년 7월 말에 열렸다. 코민테른의 집행위원장 게오르규 디미트로프는 반파시즘 “공동전선”을 수립할 필요성에 대해 보고했다. 그러나 그의 보고 내용 가운데에서 실제로 승인된 사항은 프랑스의 모델을 따라 계급협조주의적인 인민전선을 수립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보고는 파시즘에 대항하기 위한 “행동위원회” 구성 역시  주창했다. 이 점을 트로츠키는 주목하였다. 트로츠키는 디미트로프의 제안을 프랑스에서 맹아적인 소비에트 조직형태를 수립하기 위한 투쟁에 접목시켰다.(“인민전선이 아니라 행동위원회를 수립하자”를 보시오)


 

다시 한번, 프랑스는 어디로 1935년 3월 28일

 

플랑뎅이 두메르그의 뒤를 이어 수상이 될 즈음 우리는 노동계급 전위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프랑스는 어디로 가고있는가?” 이로부터 4개월 반의 시간이 지났으나 근본적인 것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의 분석이나 전망은 조금도 그 타당성을 손상받지 않았다.

프랑스 인민은 기로에 서있다: 한쪽 길은 사회주의 혁명으로 인도한다. 나머지 한쪽 길은 파시즘의 승리라는 재앙으로 인도한다. 어느 길을 선택할 것인가는 노동계급에게 달려있다. 노동계급의 선두에는 조직된 전위가 있다. 우리는 다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한다: “노동계급 전위는 프랑스를 어느 길로 인도할 것인가?”

 

코민테른의 진단은 틀렸을 뿐만 아니라 재앙을 불러올 뿐이다

1월 사회당 중앙집행위원회는 권력 장악을 위한 투쟁, 부르조아 국가기구의 파괴, 노동자 농민 민주주의의 수립, 은행과 중공업의 몰수 등의 내용을 담은 강령을 제정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사회당은 이 강령을 대중 앞에 한번도 제시하지 않았다. 한편 공산당은 권력 장악을 위한 투쟁을 완전히 거부했다.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은 혁명적 상황이 아니다.” 이것이 그들이 제시하는 이유이다.

노동자 민병대? 노동자 무장화? 노동자에 의한 생산의 통제? 국유화 계획? 이것들은 불가능하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지금은 혁명적 상황이 아니다.” 이것이 이들이 내세우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성직자들과 함께 대정부 청원을 무게있게 시도하고 급진당과 함께 공허한 웅변시합이나 한다? 그리고 기다린다? 그렇다면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려야 하는가? 저절로 혁명적 상황이 올 때까지라고 코민테른의 관료들은 주장한다. 이 현학자들은 역사라는 할머니의 혓바닥 밑에 온도계를 갖다 댄다. 그리고 혁명적 온도를 한치의 오차도 없이 결정한다. 그러나 이들은 온도계의 온도를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는다.

우리는 주장한다: 코민테른의 진단은 완전히 잘못되었다. 노동계급 정당들의 비혁명적 정책에도 불구하고 지금만큼 혁명적 상황이 무르익은 때는 없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지금은 준혁명적 상황이다. 최고조의 혁명적 상황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사회주의의 이름으로 권력 장악의 구호 하에 대중을 투쟁으로 즉시 가차없이 추동시켜야 한다. 준혁명적 상황을 혁명적 상황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렇게 해야한다. 반면에 우리가 계속 시간이나 재면서 시기를 놓칠 경우 준혁명적 상황은 불가피하게 반혁명적 상황으로 변화하고 파시즘이 승리할 것이다.

지금은 “혁명적 상황이 아니다”라는 경건한 망발은 노동자들의 정신을 짓밟고 이들의 투쟁 의지를 마비시키고 이들을 계급 적들에게 넘길 뿐이다. 이러한 망발을 통해 보수주의, 게으름, 어리석음, 비겁함 등이 노동계급의 지도력을 대신한다. 그리고 독일과 마찬가지로 프랑스에서도 대재앙이 닥칠 것이다.

 

이 논문의 임무와 목적

이하에서 우리 볼셰비키-레닌주의자들은 코민테른의 분석과 예상을 자세하게 맑스주의에 입각해 비판할 것이다.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책의 근본적인 오류들 을 보여주기 위해 가끔 우리는 여러 사회당 지도자들의 관점을 언급할 것이다. 스탈린주의자들의 고함과 모욕에 대해서 우리는 사실과 주장을 대비시킬 것이다.

물론 우리는 단순히 부정적 비판으로만 일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잘못된 관점과 구호에 대해서 우리는 맑스와 레닌의 창조적인 사고와 방법들을 대비시킬 것이다.

우리는 독자들이 이 논문에 깊은 관심을 보일 것을 요청한다. 단도직입적이고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우리는 프랑스 노동자들의 생명에 관련된 논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계급의 운명이 걸린 이런 중대한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일에서 계급의식이 투철한 노동자는 어느 누구도 수동성을 보일 권리가 없다. 

 

1.혁명적 상황은 어떻게 발생하는가

사회주의 혁명의 경제적 전제 조건

혁명적 상황의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은 생산력과 소유관계 사이의 극히 날카로운 모순이다. 나라는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 경제의 정지 심지어 후퇴는 자본주의 생산체제가 확실히 자신의 힘을 소진했으며 사회주의 체제에 길을 내주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의 위기는 모든 나라를 휘감아 경제 수준을 수십년 후퇴시키고 있으며 부르조아 체제를 확실히 어불성설의 상태로 추락시켰다. 자본주의 여명기에 무지하고 굶주린 노동자들이 기계를 파괴했다면 지금 기계와 공장을 파괴하는 자들은 바로 자본가들이다.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권을 더 존속시킬 경우 인류는 쇠퇴와 야만으로 위협받을 뿐이다.

사회의 토대는 경제이다. 이 토대는 이중의 의미에서 사회주의를 실현시킬 정도로 무르익었다. 즉 현대의 기술은 모든 나라와 인류에게 높은 생활수준을 보장할 정도로 발전했으나 이미 명을 다한 자본주의 소유체제는 대중을 더욱더 빈곤과 고통의 상태로 묶어두고 있을 뿐이다.

사회주의의 기본적 전제 조건 즉 경제적 전제 조건이 존재한 지 이미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자동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마감하지 않는다. 오직 노동계급만이 생산력을 착취자들의 족쇄에서 해방시킬 수 있다. 역사는 이 임무를 바로 우리 앞에 제시하고 있다. 만약 노동계급이 어떤 이유로든 부르조아 계급을 패배시키고 권력을 장악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예를 들어 자신의 정당과 노동조합에 의해서 마비되어 버린다면 경제와 문명은 계속 쇠퇴할 것이며 재앙에 재앙이 이어질 것이며 절망과 무기력이 대중을 지배할 것이다. 그리고 무너지고 쇠퇴하고 썩어가고 있는 자본주의는 더욱더 큰 힘으로 인민의 목을 졸라 이들을 새로운 전쟁의 지옥 속으로 떨어뜨릴 것이다. 사회주의 혁명 이외에는 탈출구가 없다.

 

지금이 자본주의 최후의 위기인가?

우선 코민테른 집행위원회는 1929년에 시작된 경제 위기가 자본주의 최후의 위기임을 설명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2년이 지난 후 스탈린은 지금의 위기가 “진정으로 이해할 경우” 아직도 최후의 위기는 아니라고 선언했다. 사회당 진영에서도 똑같은 예언을 시도하고 있다: “이 위기는 최후의 위기인가 아닌가?”

1935년 2월 23일자 [인민]지에 블룸은 이런 내용의 글을 실었다: “지금의 위기가 자본주의의 최후의 경련이자 최후의 단말마적 고통이라고 말하는 것은 신중하지 못하다.” 2월 26일 뮐루즈에서 그렁바하는 똑같이 이렇게 말했다: “어떤 사람은 지금의 위기가 일과성이라고 또 어떤 사람들은 최후의 위기라고 말한다. 우리는 여기에 대해서 명확한 입장을 감히 내놓지 못하고 있다.”

문제를 이런 식으로 제기하는 데에는 두가지 가장 중대한 오류가 도사리고 있다: 우선 경기순환적 위기자본주의 체제 전체의 역사적 위기 와 혼동하고 있다. 둘째로 계급들의 의식적인 활동과는 무관하게 위기가 그 자체로 “최후의” 위기가 될 수 있다고 가정한다.   

자유경쟁 시대에 경제를 지배했던 산업자본 하에서 호황은 위기를 훨씬 추월했다. 따라서 호황은 “정상적인 상태”였으며 위기는 “예외적인 경우”였다. 자본주의는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발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제 1차 제국주의 대전 이후 독점 금융자본이 경제를 지배하자 위기는 호황을 훨씬 추월하고 있다. 이제는 위기가 “정상적인 상태”이며 호황이 “예외적인 경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경제발전 정도는 하락할 뿐 상승하지 않고 있다.

경기 상승과 하강이라는 요동은 불가피하다. 그리고 쇠퇴하는 자본주의 하에서 이 요동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노동계급의 사회주의 혁명이 성취될 때까지 자본주의는 계속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지금 위기가 자본주의 최후의 위기인가?”에 대한 유일한 올바른 답이다.

 

숙명주의와 맑스주의

맑스주의는 노동계급 혁명의 유일한 과학적 이론이다. 이 이론은 “최후의” 위기라는 식의 숙명주의적 소망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무엇보다도 혁명적 노동자들은 이 점을 이해해야 한다. 맑스주의의 핵심 내용은 혁명적 행동을 위한 한 세트의 지도방침이다. 맑스주의는 의지와 용기를 경시하지 않으며 다만 이것들이 올바른 길을 찾는데 도움을 준다.

그 자체로 자본주의에 치명적인 위기는 없다. 경기의 요동은 노동계급이 자본주의를 타도하기에 좀더 쉽거나 좀더 어려운 상황을 조성할 뿐이다. 부르조아 사회에서 사회주의 사회로의 이행은 자신의 역사를 창조하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행동을 전제로 한다. 이들은 우연히 또는 자신들의 변덕에 따라 역사를 만들지 않는다. 오직 객관적으로 결정된 원인들의 영향 속에서 역사를 창조할 뿐이다. 그러나 이들의 행동 즉 이들의 주도성, 과감성, 헌신성, 어리석음, 비겁함 등이 모두 역사 발전의 필연적 고리가 된다.

자본주의의 위기는 그 수가 한정되어 있지도 않을 뿐더러 어느 위기가 “최후의” 위기인지 미리 제시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 전체와 무엇보다도 현재의 위기는 노동계급에게 엄숙하게 명령하고 있다: “권력을 잡아라!” 그러나 만약 유리한 상황 속에서도 노동계급 정당이 노동계급 대중을 권력 장악의 길로 인도할 능력이 없을 경우 이 사회는 반드시 자본주의적 토대 하에서 그 삶을 부지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어서 새로운 위기, 새로운 전쟁이 이어지면서 마침내 유럽 문명의 완전한 붕괴가 다가올 것이다.

 

“최후의” 위기와 “최후의” 전쟁

1914년에서 1918년까지 벌어졌던 제국주의 전쟁 역시 자본주의 생애에 있어서 “위기”였다. 그리고 진정으로 모든 가능한 위기들 가운데 가장 끔찍한 위기였다. 이 전쟁이 자본주의 최후의 피비린내 나는 어리석은 행위가 될 것인지를 예상한 서적은 하나도 없었다. 러시아의 경험은 이 전쟁이 자본주의의 종말 일 수도 있었음 을 보여주었다. 1918년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부르조아 사회의 운명은 전적으로 사회민주주의 세력에게 달려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자본주의의 시녀임을 스스로 입증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노동계급은 종전 후 권력을 장악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노동계급에게는 자신을 지도하는 혁명정당이 없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전쟁 당시 제 2 인터내셔널이 부르조아 애국주의를 위해 사회주의 대의를 배신하지 않았다면 유럽과 인류의 역사 전체는 완전히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확실히 과거는 돌이킬 수 없다. 그러나 과거의 교훈들을 배울 수는 있으며 반드시 배워야 한다.

현재 노동계급은 자본주의의 쇠퇴에 의해 이미 오래 전에 부과된 사회혁명의 임무를 달성하지 못하고 비극적으로 늑장을 부리고 있다. 바로 파시즘의 정치적 성장이 이 사실을 의문의 여지없이 증거하고 있다.

“지금은 아직도 ‘최후의’ 위기가 아니다”는 말은 오직 한가지 의미 밖에 없다: 전쟁과 전후 사회적 격동이 가져온 교훈에도 불구하고 노동계급 정당들이 자신과 노동계급을 권력장악의 길로 준비시키지 못하고 있다; 더 나쁜 것은 이 정당들의 지도자들은 자기에게 부과된 임무를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이 임무를 자신과 자신이 속한 정당과 자신이 속한 계급의 이익에 반해 거부하고 있다. 그리고 이 임무를 “역사 발전 과정”에 떠넘기고 있다. 이들의 숙명주의는 맑스주의 이론에 대한 배반이며 노동계급에 대한 정치적 배신이다. 즉 새로운 “최후의” 전쟁에 새로이 투항할 준비를 위한 정당화일 뿐이다.

 

코민테른은 사회민주주의적 숙명주의로 투항했다. 

사회민주주의의 이론인 숙명주의는 전쟁 이전의 유산이다. 그때는 자본주의가 거의 멈추지 않고 전진하고 있었으며 노동자의 수, 당원의 수, 선거의 득표율, 의원의 수 등이 증대하고 있었다. 이렇게 자동적으로 모든 것이 상승했기 때문에 과거의 방식대로 선전, 선거활동, 조직 등에만 치중하면 승리가 저절로 성취될 것이라는 개량주의 환상이 조금씩 생겨났다.

당연히 전쟁은 이 자동적인 발전에 제동을 걸었다. 그러나 전쟁은 “예외적인” 현상이었다. 제네바에서 평화협정을 맺으면 더 이상 새 전쟁은 없을 것이며 모든 것이 정상으로 되돌아올 것이고 자동적인 발전은 다시 정착될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이런 사고를 그대로 유지할 경우 “지금 위기는 ‘최후의’ 위기가 아니다”는 다음을 의미한다: “5년, 10년 또는 20년이 지나면 우리는 더 높은 득표율, 더 많은 의원 수를 자랑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권력을 잡을 것이라고 희망할 수 있다.”(뽈 포레의 논문과 강연 내용들을 참조하시오) 이 낙관적 숙명주의는 지난 25년간은 설득력이 있었지만 지금은 무덤의 귀신들이 외치는 소리만큼이나 황당하게 들린다. 미래에 위기가 닥치면 노동계급이 지금보다 더욱 강력한 힘을 가질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 자본주의가 쇠퇴할수록 불가피하게 노동계급은 성장, 강화되지 못하고 대신 해체된다. 그리고 실업자와 빈민 노동계급의 숫자를 더욱 증대시킬 것이다. 한편 소부르조아 계급은 탈계급화되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시간을 지체하면 할수록 노동계급 혁명이 아니라 파시즘이 힘을 얻을 뿐이다.

골수까지 관료화된 코민테른은 혁명적 행동의 이론을 숙명주의 종교로 대체했다. “혁명적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투쟁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혁명적 상황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오직 계급투쟁을 통해서 현실로 드러날 뿐이다. 노동계급 정당은 혁명적 상황의 전개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적 요인이다. 만약 이 정당이 혁명적 임무에 등을 돌리고 노동자들을 잠재우고 이들이 청원서나 제출하고 급진당과 동맹을 체결하도록 한다면 혁명적 상황이 아니라 반혁명적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부르조아 계급은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생산력의 대단히 높은 수준과 자본주의의 쇠퇴 는 사회주의 혁명의 전제 조건이다. 이 조건 속에서 계급투쟁 이 전개된다. 혁명적 상황 은 계급들의 살아있는 투쟁을 통해 전개되고 성숙한다.

현대 사회의 주인인 대부르조아 계급은 지금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이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1934년 2월 6일 사건은 노동계급과 소부르조아 계급에게만 의외의 사건이었다. 금융자본의 주요한 조직들은 이 계략을 오랜 시간동안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폭력을 통해 의회체제를 “개인의” 통치에 기초한 보나파르트 체제로 대체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즉 은행, 트러스트, 군부, 자본주의 언론 등은 혁명의 위험이 너무 가깝고 임박했다고 믿어서 “조그마한” 쿠데타를 통해 혁명에 대한 대비를 서둘렀다.

이 사실로부터 두가지 중요한 결론이 나온다: (1) 1934년 초 자본가들은 혁명적 상황이 도래했다고 믿었다; (2) 이들은 상황의 진행을 수동적으로 기다리다가 마지막 순간에 “법적” 대응을 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자기 깡패들을 거리로 보내 상황을 주도하였다. 대부르조아 계급은 계급 전쟁의 전략에 있어서 아주 소중한 교훈을 노동자들에게 가르쳤다.

[인류]지는 “공동전선”이 두메르그를 퇴진시켰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공허한 허풍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 반대로 금융자본은 두메르그를 플랑뎅으로 대체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공동전선이 즉각적인 혁명적 위험이 되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정권이 바뀐 정확한 이유이다. “프랑스의 폭발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코민테른의 대단한 지도자들이 투쟁을 준비하지 않고 두려움에 떨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파시즘 카드를 내놓기 전에 잠시 시간을 벌었다. 사건들을 재촉하고 급진당을 너무 일찍 허약하게 만들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에게 아직도 급진당이 필요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상황을 진짜 손안에 주물럭거리는 실세들이 한 말이 바로 이것이다. 이들은 거국 내각과 이 내각의 보나파르트적 포고령들을 지지했다. 이들은 의회를 테러로 벌벌 떨게 만들고 두메르그가 집에서 잠이나 자게 만들었다. 이렇게 부르조아 계급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첫번째 분석 내용에 어느 정도의 수정을 가했다. 그리고 상황이 즉각적인 혁명적 상황이라기 보다는 준혁명적 상황이라고 인정했다.

이것은 계급 전쟁 전략의 두번째 대단한 교훈이다! 이 사실은 사회 전체를 손안에 쥐고 있는 금융자본조차도 정치 상황의 정확한 실태를 단 한번 훑어보고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투쟁을 전개한다. 그리고 투쟁이 전개되면서 투쟁을 통해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처음의 분석 내용을 수정하고 좀더 정확하게 다듬는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이 방식이 정치적 문제에 있어서 방향을 정확히 잡으면서 적극적으로 투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렇다면 코민테른의 지도자들은 어떻게 했는가? 프랑스 노동계급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모스크바에서 정보도 제대로 갖고 있지 못한 별 볼 일 없는 관료들이 자기들만 가지고 있는 온도계를 가지고 정확한 진단을 했다고 이렇게 선언한다: “지금 상황은 혁명적 상황이 아니다.” 그런데 이들의 대다수는 프랑스어를 읽을 줄도 모른다.

그리고 프랑스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상황으로부터 눈과 귀를 멀리 한 채 모스크바 관료들의 진단을 공허하게 반복하지 않을 수 없다. 코민테른이 제시하는 길은 지옥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급진당의 굴복이 내포하는 의미

급진당은 소부르조아 계급의 전통과 편견에 가장 잘 적응된 대부르조아 계급의 정치적 도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자본의 채찍질을 당하자 급진당의 가장 책임있는 지도자들은 애초에 자기들에게 겨냥해서 준비된 2월 6일 쿠데타 앞에 겸허하게 머리를 조아렸다. 왜냐하면 계급투쟁의 상황이 “나라 전체” 즉 부르조아 계급의 기본적인 이익을 위협하고 있다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회에서 자기 당의 이익을 희생할 수 밖에 없다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파시스트들의 총과 칼 앞에서 가장 강력한 의회 정당이 굴복했다는 사실은 나라의 정치적 균형이 완전히 깨졌다 는 것을 외적으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것은 지금 상황이 혁명적 아니 좀더 정확히 얘기하면 준혁명적 상황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필자 주: 소부르조아적 성향을 가진 겁에 질린 노동계급 관료들 특히 스탈린주의자들의 특성이 아주 잘 드러난 사건이 있다. 급진당이 파시즘에 대항할 능력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드러낸 후 “파시즘에 대항하는 투쟁”을 위해 이들은 급진당과 동맹을 맺었다. 급진당과 의회에서 동맹을 체결한 행위는 노동계급의 역사적 이해에 비추면 범죄 행위에 해당되는데 이것은 의회라는 제한된 영역에서 보면 최소한이나마 실제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파시즘에 대항해 의회 밖에서 급진당과 동맹을 맺는 것은 범죄 행위일 뿐만 아니라 바보 행위이다.)

 

소부르조아 계급과 준혁명적 상황

소부르조아 대중에게 일어나고 있는 사태는 정치 상황을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하다. 나라의 정치적 위기는 무엇보다도 소부르조아 대중이 그동안 전통적으로 따르던 정당들과 지도자들을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소부르조아 계급의 불만, 초조함, 불안, 동요 등은 준혁명적 상황의 아주 중요한 특징이다. 열에 시달리고 있는 환자가 좌우로 몸을 뒤틀듯이 열에 시달리고 있는 소부르조아 계급은 좌로 또는 우로 급선회할 수 있다. 앞으로 다가올 시기에 수백만의 프랑스 농민, 수공업자, 소상인, 하급관리들이 어느 쪽으로 선회하느냐가 현재의 준혁명적 상황이 혁명적 상황으로 아니면 반혁명적 상황으로 나아갈 지를 결정할 것이다.

경제 위기의 완화는 소부르조아 계급이 우로 또는 좌로 선회하는 것을 멈출 수는 없어도 당분간 어느 정도 둔화시킬 수 있다. 반면에 위기가 심화되면 급진당과 모든 의회 정당들의 파산은 배가된 속도로 진행될 것이다.

 

파시스트 쿠데타는 프랑스에서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 파시즘이 강력한 의회 정당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독일에서는 그랬지만 이탈리아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소부르조아 계급이 기존의 “민주적” 정당들과 미리 결별해야 파시즘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소부르조아 대중이 이러한 정당들을 더이상 신뢰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 불안하게 이리저리 둘러보기만 해도 파시즘은 성공할 수 있다.

다음 시의회 선거에서 농민과 도시 중간계급의 신뢰를 얻는 새로운 정당이 없을 경우 소부르조아 계급은 여전히 많은 표를 급진당과 유사 정당에 던질 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부르조아 계급의 원조를 받는 파시스트들의 군사 쿠데타는 선거가 끝난 지 몇달 만에 감행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폭력 행위는 소부르조아 계급 가운데 가장 절망에 빠진 층들의 공감을 살 수도 있다.

따라서 파시스트의 깃발이 지방과 농촌에서 인기가 없다는 생각에 위로를 받는다면 이것은 심각한 환상이다. 기존 정당들의 공식 의회 정치에서 벗어난 소부르조아 계급의 반(反)의회적 경향은 금융자본의 안전을 위해서 필요할 때 감행된 군사 쿠데타를 금방 지지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 수 있다. 이러한 행동 양식은 프랑스의 전통과 기질에 가장 근접해 있다.(필자 주: 맑스주의는 전통과 민족적 기질 등과 같은 요인을 결코 무시하지 않는다. 이 점을 지나가는 김에 말할 필요가 있다. 물론 역사 발전의 기본 방향은 계급투쟁의 발전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러나 이 발전의 형태, 리듬 등은 민족의 기질과 전통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민족의 기질과 전통 역시 과거 계급투쟁의 발전에 영향을 받아 형성된다.) 물론 선거 결과는 대중의 징후를 판독하는데 중요하다. 그러나 이 지수 에만 의존하면 의회 백치병에 걸린다. 우리는 지금 훨씬 더 깊은 과정들을 말하고 있다. 이 과정들은 어느 날씨 좋은 날 우리 의회주의자 친구들을 깜짝 놀라게 할 것이다. 다른 경우에도 마찬가지지만 이 경우에도 문제는 산술에 의해서가 아니라 투쟁의 역동성에 의해서 결정된다. 대부르조아 계급은 수동적으로 중간 계급의 역동적 변화를 기록하는데 머물지 않고 좋은 기회에 이들 고통받고 절망하는 대중들을 휘어잡을 강철로 된 촉수를 준비하고 있다.

 

변증법과 형이상학

맑스주의적 사고는 변증법적이다. 맑스주의는 모든 현상의 발전 그리고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의 전화를 고려한다. 보수주의적 소부르조아의 사고는 형이상학적이다. 이들의 사고는 고정되어 있어서 움직이지 않는다. 이들은 현상들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간격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혁명적 상황을 비혁명적 상황과 확연히 대비시키는 것이 형이상학적 사고의 전형적인 예이다. 격언에 의하면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존재한다. 그리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두가지 중 어느 것도 아닌 것은 악마에게나 주어버려라.

역사에는 전혀 비혁명적인 안정된 상황들이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명백히 혁명적인 상황도 존재한다. 그리고 반혁명적 상황도 있다.(이것을 망각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쇠퇴하는 자본주의 시기에서 가장 뚜렷한 특징은 중간적이며 이행기적인 특징들이다. 즉 비혁명적 상황과 준혁명적 상황 사이의 상황들, 준혁명적 상황과 혁명적 상황 또는 ... 반혁명적 상황 사이의 상황들이 있다. 정치 전략의 관점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이행기적 단계들이다.

스펙트럼에서 오직 반대되는 두가지 색깔만 구별할 수 있는 화가에 대해서 우리는 무어라고 말할 것인가? 그가 색 감각이 없다 또는 반 정도 눈이 멀었다 또는 그가 아예 그림 그리는 것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할 것이다. “혁명적” 그리고 “비혁명적” 상황만 구별할 수 있는 정치 전략가에 대해서 우리는 무어라고 말할까? 그는 맑스주의자가 아니고 스탈린주의자이다. 좋은 관료는 될 수 있어도 노동계급의 지도자는 결코 될 수 없다고 말할 것이다.    

객관적 주관적 요인들의 상호작용으로 혁명적 상황이 도래한다. 노동계급 정당이 준혁명적 상황의 경향들을 제 시간에 분석할 수 없다면 반드시 반혁명적 상황이 도래할 것이다. 프랑스 노동계급은 지금 이 위험에 처해있다 . 특히 공동전선의 우익이 된 스탈린주의자들의 근시안적이고 수동적이고 기회주의적 공동전선 정책은 프랑스 노동계급 혁명의 길에 존재하는 가장 주요한 장애물이다 .

 

2. 직접적 요구들과 권력 장악 투쟁

 

공동전선의 침체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생산수단의 국유화 투쟁을 거부한다. 부르조아 국가의 존재와 배치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동자국가 건설을 위한 권력 장악 투쟁도 마찬가지로 거부한다. 이러한 투쟁들을 “직접적인 요구들”을 쟁취하기 위한 강령과 배치 시킨다.

사실 공동전선은 현재 강령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동시에 “직접적인 요구들”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도 대단히 불행한 성질의 것이 되었다. 파업을 통해 자본주의를 타파할 필요성에 대한 모든 연설, 논문, 결의 등은 지금까지 전혀 또는 거의 전혀 이렇다할 결과를 가지고 오지 못했다. 더욱더 격화되고 있는 나라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노동계급은 위험한 침체 상태에 놓여있다.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이 침체에 대한 책임을 자기를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돌리고 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싸잡아 비난할 생각이 없다. 우리의 입장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바로 지금 혁명적 투쟁의 발전에 주요한 장애물 은 일면적인 거의 광적인 “직접적인 요구들” 쟁취 강령에 있다고 믿는다. 이 강령은 상황 전체와 모순을 일으키고 있다. 우리는 지금 충분한 시간을 갖고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사고와 주장을 분석하고자 한다. 중앙위원회의 주장들은 진지하거나 깊이가 있다기 보다는 형편없이 수준이 낮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프랑스 노동계급의 운명이 걸린 문제에 봉착해 있다.

 

“직접적 요구들”에 대한 중앙위원회의 결의문

“직접적인 요구들”에 대한 가장 권위있는 문서는 중앙위원회 명의의 강령적 결의문이다.(2월 24일자 [인류]지를 보시오) 이 문서를 검토해보자.

직접적인 요구들에 대한 개요는 애매모호한 일반적인 용어로 구성되어 있다: 임금 삭감 반대, 사회보험의 증대, 단체협상지지, “인플레 반대” 등이다. 지금의 위기 상황에서 이러한 요구들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 가져야할 성격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다. 그러나 2백만명의 노동자가 부분적으로 또는 완전히 실업자가 된 상태에서 단체협상을 위한 일상적인 노동조합투쟁은 유토피아에 불과하다는 것을 모든 노동자들은 알고 있다. 지금 상황에서 자본가들이 중요한 양보를 하도록 강제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의지를 꺽어야 한다. 이것은 오직 혁명적 공세를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 그러나 한 계급을 다른 계급과 대치시키는 혁명적 공세는 경제적 성격의 부분적 요구들을 구호로 내세우는 한에서는 전개될 수 없다. 여기에 악순환 이 존재한다. 공동전선이 침체 상태에 있는 가장 주요한 원인이 바로 이것이다.

자본주의가 쇠퇴하는 시대에는 “사회 개량은 혁명적 투쟁의 부산물일 뿐이다”라는 일반적인 맑스주의 테제가 가장 직접적이고 피부에 와닿는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모든 것 을 잃을 위험에 의해 위협받고 있을 때에만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에게 뭔가 를 양보할 수 있다.

그러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지금의 자본주의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양보조치들”도 대중의 고통과 사회위기의 깊은 정도에 비교하면 전혀 무의미하다. 모든 요구들 가운데 가장 직접적 요구들이 자본가 계급의 자산 몰수, 생산수단의 국유화(사회화) 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 요구들은 자본가 계급의 지배 하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물론 그렇다. 우리가 권력을 잡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대중이 공산당의 호소에 반응을 보이지 않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중앙위원회의 결의문은 지나가면서 이 점을 인정한다: “자본주의의 공세에 대한 저항을 조직하고 확대하는데 당은 아직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공산당과 산하 노동조합연맹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방어적인 경제적 요구 투쟁의 성공이 완전히 무의미한 점에 대해서 결의문은 전혀 문제삼지 않고 있다. 수백만명의 노동자들과 봉급 생활자들은 2월 12일 총파업에 참가했다. 그러나 이 파업에서 “직접적인 요구들”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반면에 지금까지 이 숫자의 아주 일부분만이 자본주의 공세에 대한 방어투쟁에 참여했다. 이 놀랍고도 명백한 사실이 공산당 “지도자” 양반들에게 어떤 결론을 내리는데 도움을 주지 않는가? 수백만 노동자들이 거리에서 격렬한 시위를 벌이고 파시스트 도당들과의 전투를 치루면서 총파업에 참여했지만 순전히 경제적 성격의 파업에는 참여하기를 거부했는가? 그 이유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결의문은 이렇게 말한다: “노동자들을 행동으로 분기시키는 감정들을 이해해야만 한다.” 이해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 결의문의 주인공 자신들은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노동자들이 직접적인 요구들에 대한 일반적인 얘기에 대해서는 완전한 무관심을 보이지만 명확하고 정확한 혁명적 구호들에 대해서는 공감을 보인다는 것을 노동자 집회에 가본 사람들은 우리만큼 잘 알고 있다. 이러한 반응의 차이야말로 지금의 정치 상황을 가장 명확하게 특징짓고 있다.

결의문은 느닷없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금 시기에 경제투쟁은 노동자들의 많은 희생 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결의문은 이렇게 덧붙여야 한다: 이 많은 희생들이 긍정적인 결과를 약속하는 경우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 뿐이다. 직접적 요구 투쟁은 노동자의 열악한 상태를 완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 경제투쟁을 투쟁의 우선 순위에 놓고 이를 위해 혁명적 구호를 거부하는 것을 통해 스탈린주의자들은 부분적 경제투쟁이 많은 대중을 가장 많이 투쟁으로 일으켜 세울 것이라고 믿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진실은 이들의 생각과 정반대이다: 대중은 순수한 경제적 차원에서는 파업에 대한 호소에 거의 귀기울이지 않는다. 정치에서는 있는 사실을 외면하기가 불가능하다.

경제위기와 실업의 현 상황에서 부분적 경제투쟁은 대단히 많은 희생을 요구하지만 결과는 미미하다는 것을 대중은 이해하거나 느끼고 있다. 대중은 다른 좀더 효과적인 투쟁방법이 제시되기를 기다리고 요구한다. 전략가 양반들, 대중에게 배우세요. 대중은 확실한 혁명적 본능에 의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경제위기와 파업투쟁

레닌의 말을 제대로 이해도 못하면서 스탈린주의자들은 그의 생각을 추종하는 것처럼 이렇게 반복한다: “파업투쟁은 경제위기에서도 가능하다.” 이들은 경제위기가 꼬리를 물면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본주의가 상승하던 시대에는 격심한 경제위기 하에서도 자본가와 노동자는 다음에 있을 호황을 고대했다. 그러나 지금의 위기는 예외가 아니라 일상적인 현상이다 . 순전히 경제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노동계급은 경제 붕괴의 엄청난 압력 때문에 무질서하게 후퇴한 상태에 있다. 반면에 자본주의의 쇠퇴는 모든 무게를 다하여 노동계급을 정치 권력 장악을 위한 혁명적 대중투쟁의 길로 밀어붙인다. 그러나 공산당 지도부는 모든 힘을 다해 이 길을 막으려 한다. 따라서 스탈린주의자들의 손에 “직접적인 요구” 강령은 노동계급의 혼란과 와해의 도구가 되고 있다. 그러나 적극적인 정당방위대(민병대)를 갖춘 권력 장악을 위한 정치공세 는 즉시 계급 역관계를 변화시키고 동시에 노동계급의 가장 후진적 부위에 대해서도 성공적인 경제투쟁 의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다. 

 

경기회복의 가능성

우리가 알고 있다시피 죽음을 앞두고 숨이 막 넘어가려는 자본주의 역시 경제 주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주기는 쇠퇴하고 병든 주기이다. 오직 노동계급에 의한 혁명만이 자본주의의 위기를 끝장낼 수 있다. 전쟁이나 혁명이 개입되지 않을 경우 경제 주기의 한 부분인 위기 다음에는 불가피하게 새로운 그리고 기간이 짧은 경기 상승이 있을 것이다.

경기가 회복될 경우 파업투쟁은 의심의 여지없이 좀더 넓은 투쟁의 가능성들을 내포할 것이다. 주오와 같은 기상 전문가 양반들에게 굴복할 필요는 없다. 다만 필요한 순간에 자본가를 압박하는 노동자 투쟁에 실제적인 도움을 주면서  무역과 산업 동향 특히 고용의 변화를 면밀히 주시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광범위한 파업투쟁이 존재할 경우에도 이 투쟁들을 부분적인 경제적 요구에만 국한시키는 것은 범죄행위이다. 경기회복 정도는 미미하고 그 기간도 짧다. 왜냐하면 구제할 수 없이 중병에 걸린 자본주의 경기이기 때문이다. 잠깐의 경기회복 후 새로운 위기가 더욱 강력한 파괴력으로 다가올 것이다. 모든 근본 문제들이 배가된 힘과 강도로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시간을 허비할 경우 파시즘은 저항할 수 없는 대세가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경기회복은 가설에 불과하다. 지금 위기는 더 깊어지고 있으며 의무 군복무 기간은 2년으로 연장되었다. 독일은 재무장하고 있으며 전쟁의 위험은 우리 앞에 다가와 있다.

이 현실이 투쟁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혁명 강령이 아닌 개량주의 떡고물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강령적 결의문의 마지막 주장은 격에 맞게 전체 기조를 절정으로 장식하고 있다. 문자 그대로 인용해보자: “자본주의 체제가 근로대중에게 가하는 고통에 대항해 매일 투쟁하면서도 공산주의자들은 최종적인 해방이 자본주의의 철폐와 노동계급 독재의 수립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 사회민주주의가 태동하던 50년전이나 그 이전 같으면 이 표현은 그렇게 나쁘게 들리지 않았다. 당시 사회민주주의는 소위 “최소강령”이라는 직접적인 요구들과 부분적 개량투쟁으로 노동자들을 이끌었고 어느 정도 성공도 했다. 그리고 언제나 노동계급의 최종적 해방은 혁명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당시 사회주의의 “최종적 목표”는 먼 미래의 일로 생각되어졌다.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예상외로 글자 하나 바꾸지 않고 끌고 들어온 것은 바로 이 생각이다. 그리고  이 생각은 전쟁이 시작될 무렵 완전히 낡아빠진 것이 되었다. 그런데 이런 자들이 맑스와 레닌의 이름을 들먹이고 있다!

이들이 “최종적인 해방”은 자본주의 체제의 철폐로 가능하다고 “강조”할 때 이들은 노동자들을 기만하기 위해 이 초보적인 진리를 이용한다. 왜냐하면 현 체제의 틀 내에서 노동자들의 고통이 어느 정도 심지어는 상당히 완화될 수 있다는 생각을 노동자들에게 심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기들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가 건강하고 상승하던 자본주의를 묘사했던 것과 똑같이 썩어가고 쇠퇴하고 있는 자본주의를 묘사한다. 사실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스탈린주의자들은 개량주의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맑스주의 정치 테제는 다음과 같아야 한다: “썩어가는 자본주의는 노동자들의 상황을 개선하거나 지금의 고통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여력도 없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설명한다; 사회주의 혁명의 임무를 지금의 시급한 임무로 대중 앞에 제시한다; 노동자들을 권력 장악으로 분기시킨다; 노동자 민병대의 도움으로 노동자 조직들을 방어한다; 그리고 동시에 공산주의자(또는 사회주의자)는 적으로부터 이러저러한 부분적 양보를 한 순간도 허비하지 않고 잡아챈다; 또는 최소한 노동자의 생활수준이 더 하락하는 것을 막는다.”

이 테제를 위에서 인용한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결의문과 비교해 보아라. 차이점은 명확하다. 하나는 스탈린주의 이고 또 하나는 레닌주의 이다. 이 둘 사이에는 심연이 가로놓여 있다.

 

실업에 대한 확실한 해결책

더 많은 임금, 단체협상, 인플레 반대 ... 그런데 실업에 대해서는 어떤가? 중앙위원회의 결의문은 이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에게 도움을 제공한다. 인용해보자: “공산당은 공공사업을 시작할 것을 요구한다. 이 목적을 위해 공산당은 각 지역의 구체적인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자세한 제안서를 마련했다. 그리고 이 사업들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는 방법들도 명시했다(자본세, 정부 융자 등...).”

놀랍지 않은가? 이 돌팔이 약장수의 처방은 주오의 말을 하나도 빼먹지 않고 복제했다: 스탈린주의자들은 그의 “계획” 가운데에서 진보적인 요구들은 거부하고 가장 황당하고 비현실적인 부분만 채택했다.

사회의 가장 주요한 생산력이 위기에 의해서 마비되거나 반 정도 마비되어있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기계를 앞에 두고 망연자실하고 있다. 이에 대해 우리의 구세주인 중앙위원회는 이렇게 제안한다: 실물 자본주의 경제 밖에서 그것과 함께 “공공사업”의 기초 하에 또 다른 자본주의 경제를 창조할 것이다.

임시 방책을 말하지 말자. 지금의 실업은 일시적이지 않다. 경기순환에 따른 실업일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쇠퇴의 가장 치명적 표현인 구조적 실업이다. 이것을 없애기 위해 중앙위원회는 공공사업 체계를 제안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공공사업은 자본주의의 무질서한 금융질서와 함께 특별한 금융체제의 도움으로 각 지역의 특성에 맞게 시행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자본주의의 장소를 바꾸자고 제안하고 있을 뿐이다. 권력 장악을 위한 투쟁과 국유화 강령을 배척하고 제안된 것이 바로 이 “계획”이다. 겁에 질린 모험주의자들보다 더 지독한 기회주의자는 없다.

공공사업, 자본세, 정부 융자 등을 시행하는 문제에 대해 이 결의문은 한마디도 말하지 않는다. 물론 ... 청원의 도움으로 마련하겠다는 것일 것이다. 이것은 가장 시류에 적절하고 효과적인 행동 방법이다. 위기, 파시즘, 군국주의 등 어느 것도 청원에 대해서는 대항할 수 없다. 더욱이 청원은 종이산업을 다시 살려 실업을 감소시킬 것이다. 주목하자: 토레즈 일당에 의하면 청원 캠페인이 공공사업 체계의 기본이다.

이 양반들은 누구를 놀리고 있는가? 자신들 아니면 노동계급을?

 

공산당은 걸림돌이다!

“100년이 넘게 계급투쟁을 벌인 후 이러한 궁핍과 테러를 노동계급이 견디어 내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가 자신의 서재에서 이 고상한 명구를 뱉어내는 것을 우리는 매번 듣는다. 저항이 불충분한가? 비난은 노동계급에게 가해진다. 마치 정당과 노동조합이 노동계급의 투쟁기구가 아니고 이들로부터 초연한 존재인 것처럼 말이다! 100년이 넘는 투쟁의 결과 노동계급은 자신의 정치조직과 노동조합 조직을 창조했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노동계급은 정당과 노동조합이 없이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투쟁을 수행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투쟁의 주요한 도구로 건설된 것이 이제는 투쟁의 걸림돌과 브레이크가 되어버렸다.

모든 것들을 바꾸기 위해서는 혁명적 행동이 필요하다. 지금의 상황은 노동자들로 하여금 이 생각을 갖게 하였다. 그러나 수백만의 노동자들을 움직이는 결정적인 투쟁이라는 바로 이 문제 때문에 당연히 투쟁의 주도권은 투쟁지도기관 인 노동계급 정당과 공동전선에 달려있다. 이 투쟁기관으로부터 명확한 강령, 구호, 투쟁을 위한 조직방안 등이 마련되어야 한다. 대중을 투쟁으로 불러 일으키기 위해서는 정당들 자신이 불러 일으켜져야 하며 이들이야말로 전국 차원에서 격렬한 혁명투쟁을 개시해야한다. 그러나 공산당을 포함한 투쟁지도기관들은 용기가 없다. 공산당은 자심의 임무와 책임을 대중에게 떠넘기고 있다. 혁명지도부 없이 수백만의 노동자들이 부분적 요구를 쟁취하기 위해 고립된 투쟁을 수행하라고 공산당은 주문하고 있다. 그리고 대중이 회의적인 관료들에게 투쟁을 할 준비가 되어있음을 보여주기를 원하고 있다. 어쩌면 대중의 투쟁의지를 확인하고 나서야 대장님들이 공격을 명령할 태세인 모양이다. 대중을 지도 하는 대신 중앙위원회 관료들은 대중을 검토 하고 옆에 서서 팔짱만 끼고 있으면서 자신의 기회주의와 비겁을 정당화한다.             

 

“레닌에 의하면”이 해답이다

1929년부터 1933년까지 프랑스의 경제 및 정치 상황이 상대적으로 안정화되었을 때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제 3기”를 제창한 후 바리케이드를 치고 거리를 장악하지 않는 어떤 투쟁도 무의미한 것으로 간주했다. 그런데 지금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위기의 시기에 바로 이 중앙위원회는 “직접적 요구들”의 온건한 강령으로 만족하고 있다. 이 황당한 모순은 많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과거의 오류에 대한 두려움, 대중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의 결여, 대중에게 명령을 하달하는 관료적 습성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없이 그동안 자행된 좌충우돌, 날조, 거짓말, 탄압 등으로 발생한 지적 혼란 등의 결과이다.

새 강령의 주요 작성자는 물론 코민테른의 지금 “지도자” 벨라 쿤이다. 그는 매일 매일 모험주의에서 기회주의로 더 깊이 미끄러지고 있다. 레닌의 저서를 통해 특정 조건 하에서 볼셰비키들은 파업을 지지하고 멘셰비키들은 반대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이 발견에 기초하여 눈깜짝할 사이에 벨라 쿤은 “현실적인” 정책을 수립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는 레닌의 저서 가운데 ... 정말 필요한 부분은 읽지 않았다.

특정 시기 러시아 노동계급의 투쟁에서 순수 경제파업은 정말이지 커다란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당시 러시아 자본주의는 썩어가기는커녕 급격히 성장하고 있었다. 러시아의 노동계급은 막 태어난 계급이었으며 이들에게 파업은 각성과 투쟁의 첫 형태였다. 마지막으로 파업의 광범위한 확산은 매번 경기의 상승과 일치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조건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프랑스에는 없다. 프랑스 노동계급은 혁명, 노동조합, 의회 투쟁 등 풍부한 경험들을 이미 가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이 경기 상승기에조차 자연발생적으로 파업의 물결을 일으키리라고 기대하기는 정말 어렵다. 더욱이 쇠퇴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온갖 고통을 드러내고 있는 경제 위기의 한가운데에는 더욱 그렇다.

이 문제의 다른 측면도 역시 같은 정도로 중요하다. 러시아에서 파업의 물결이 처음 몰아쳤을 때 이 투쟁을 부분적 경제적 요구들로 한정하려는 분파는 러시아사회민주주의에서 단 하나 밖에 없었다. “경제주의자들”이라고 불리웠던 그룹이 바로 이들이었다. 이들의 견해에 따르면 “혁명적 상황”을 거부하는 것이 필요했다. 레닌은 이들이 형편없는 기회주의자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파업의 물결 가운데에서도 혁명적 상황은 적극적으로 준비되어야 함을 보여주었다.

일반적으로 러시아 혁명운동의 각 단계들과 일화들을 프랑스에 기계적으로 대입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러나 벨라 쿤처럼 하는 것은 더 어리석은 짓이다. 그는 러시아, 프랑스, 맑스주의 어느 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레닌을 배우는 자라면 투쟁의 방법 을 배워야 한다. 레닌주의를 모든 경우에도 들어맞는 인용, 해답으로 바꿔치기 하려들면 안된다.

    

“평화, 빵, 자유”

스탈린주의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프랑스의 상황은 혁명적이지 않다. 이들의 분석에 따르면 혁명적 구호는 전혀 상황에 맞지 않는다. 대신 모든 관심을 경제파업과 부분적 요구들에 집중해야 한다. 이것이 강령이다. 기회주의적이고 생기가 없지만 여전히 강령은 강령이다.

그러나 이와 함께 또 다른 강령이 존재한다. [인류]지는 매일 3가지 구호를 반복한다: “평화, 빵, 자유!” 이 신문에 의하면 볼셰비키들이 1917에 승리한 것은 바로 이 구호 때문이었다. 쥐스트(Just) 역시 같은 말을 반복한다. 좋다. 그러나 1917년 러시아에는 아주 악명높은 혁명적 상황이 있었다. 그렇다면 비혁명적 상황에서 “직접적 요구들”과 함께 이 구호 즉 노동계급 혁명을 성공시킨 이 구호가 쓸모 있을까? [인류]지의 현명한 양반들이 우리 어리석은 인간들에게 이 신비로운 의문을 풀어주어야 한다.

우리 생각으로는 “직접적 요구들”이 위에서 얘기한 혁명적 구호의 위력을 강화시켰음을 기억한다.

“평화를 쟁취하자!”는 구호는 1917년의 전쟁 상황에서 왕당파부터 멘셰비키까지 애국주의 정당들에 대한 투쟁을 의미했다. 그리고 비밀조약의 공개, 전쟁 지도부에 대한 병사들의 혁명적 투쟁, 전선에서 적대국 병사들과의 동맹 등을 의미했다. 이 구호는 오스트리아, 독일 등 적국 뿐만 아니라 연합군의 군국주의에 대한 거부를 의미했다. 따라서 볼셰비키들의 이 구호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과감하고 혁명적인 정책이었다.

그러나 1935년의 평화 쟁취 “투쟁”은 에리오, 부르조아 평화주의자들(즉 위선적인 제국주의자들)과 함께 지금의 상황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현상 유지는 지금 프랑스 부르조아 계급이 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구호는 국제연맹의 거짓말인 “군비축소”와 “불가침 조약”에 대한 환상을 노동자들에게 유포시켜 이들을 잠재우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한편 프랑스 부르조아 계급이나 적대국들이 현상 유지를 뒤집으려고 하는 순간 노동계급 정당을 이들의 뜻에 따르게 준비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빵을 쟁취하자!”는 구호는 1917년의 볼셰비키들에게 지주들과 투기업자들의 토지와 곡물창고를 몰수하고 곡물거래의 독점을 노동자 농민 정부의 손에 맡기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다면 1935년 프랑스에서 이 구호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단순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자유를 쟁취하자!”는 구호를 통해 볼셰비키들은 대중에게 학교, 언론, 집회장 등이 부르조아 계급의 손에 있는 한 자유는 환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 구호는 소비에트에 의한 권력 장악, 지주의 토지 몰수, 노동자에 의한 생산의 통제 등을 의미했다.

한편 에리오, 인권동맹의 선남선녀들과 동맹한 공산당에게 이 구호는 반(半)보나파르트적 반(半)의회적 정부에 대한 지지를 의미할 뿐이다. 지금 부르조아 계급에게는 들라로크 깡패집단 뿐 아니라 에리오의 “좌익적” 명성도 필요하다. 스탈린주의자들은 지금 “인민전선”이라는 가면극의 도움으로 에리오의 좌익적 명성을 회복시키고 있는 중이다. 1935년에 10월 혁명의 구호들이 등장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용과 벼룩

새로운 모습으로 치장한 “현실적” 정책의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결의문은 비예주이프의 실업자들이 파시스트 단체 [불십자가]가 마련한 스프를 들면서 “들 라 로크와 함께 불십자가를 지자!”라고 고함지른 사실을 언급한다. 그런데 이 결의문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스프를 먹었으며 몇번이나 이렇게 고함질렀는 지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스탈린주의자들은 숫자에는 아주 깡통이다. 그러나 이것은 지금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강령적 내용을 담은 결의문에서 파시스트들의 자선행위를 통해 굶주림을 면할 수 밖에 없는 지치고 허기진 노동자들의 무기력한 고함이외에 다른 어떠한 노동계급적 정책의 예를 제시할 수 없다면 그 혁명정당은 도대체 어느 정도 타락한 것일까? 그런데 이 지도자들은 모욕감이나 수치심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

제자들 중의 누군가를 언급하는 과정에서 한 때 맑스는 하이네의 말을 인용한 적이 있다: “용의 씨를 뿌렸는데 벼룩이 나오다니.” 애석하게도 제3 인터내셔널의 창시자들은 이 말을 되뇌어야만 할 것 같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는 벼룩이 아니라 용이 필요하다.      

 


3.반파시즘 투쟁과 총파업

 

코민테른 강령과 파시즘

이론적 쇠퇴를 보이던 코민테른은 1928년 강령을 제정했다. 그 강령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제국주의 시대는 죽음 직전의 고통을 겪고 있는 자본주의 시대이다.” 이 명제는 오래 전에 레닌이 말한 것이다. 이 명제는 그 자체로 보면 논란의 여지가 없으며 이 시대 노동계급의 정책을 수립하는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코민테른의 강령 제정자들은 죽음 직전의 고통을 겪고 있으며 쇠퇴 일로에 있는 자본주의를 다루는 이 테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기계적으로 채택했을 뿐이다. 이 이해 부족은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인 파시즘에 관해서 특히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 주제에 대해서 코민테른의 강령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노동계급을 목조이고 계급의 적에 대한 노동계급의 경계심을 해이하게 만들면서 부르조아 계급을 도와주고 있는 사회민주주의와 나란히 파시즘이 등장한다.” 파시즘의 임무는 사회민주주의와 함께 나란히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개량주의 조직을 포함한 모든 노동자 조직을 파괴하는 데에 있다. 이 사실을 코민테른은 이해하지 못했다. 이 강령에 의하면 파시즘의 임무는 “노동계급 내부의 공산당 지지자와 중핵을 전멸시키는 것이다.” 이 강령에 따르면 사회민주주의와 개량주의 노동조합에게 파시즘은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 이와 반대로 사회민주주의 자신이 더욱더 “파시즘”의 역할을 떠맡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민주주의와 함께 나란히 ” 기능하는 것을 통해 파시즘은 개량주의의 노고를 완성시키는 역할을 맡을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고비마다 모순을 일으키고 있는 토레즈나 뒤끌로의 글이 아니라 코민테른의 기본 문서인 강령을 인용하고 있다.(“자본주의의 위기와 파시즘”을 참조하시오) 우리는 지금 사회파시즘 이론의 기본 내용을 직접 마주하고 있다. 쇠퇴 일로에 있는 자본주의는 자신에게 가장 온건하게 행동하며 굴종하는 사회민주주의를 여당이 되었든 야당이 되었든 더 이상 수용할 수 없다. 이 사실을 코민테른 지도자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사회민주주의와 함께 나란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민주주의를 괴멸시키고 그 시체 위에 군림하는 것이 파시즘이다. 바로 이 사실로부터 사회민주주의와 공동전선을 수립할 가능성, 필요, 시급성이 도출된다. 그러나 한심한 코민테른 지도자들은 공동전선을 실천할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다. 사회민주주의가 공동전선을 인정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만 이것을 주장했다. 그리고 사회민주주의가 난관에 봉착하여 그 입지가 흔들리는 순간 공동전선을 거부했다. 이 양반들은 여름에는 외투를 걸치면서 겨울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애처로운 습성을 가지고 있다!

소중한 교훈을 가르쳐준 이탈리아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코민테른은 자신의 깃발 위에 스탈린의 천재적인 경구 “사회민주주의와 파시즘은 대립물이 아니라 쌍둥이다”를 새겼다. 독일 노동계급이 패배한 주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코민테른이 공동전선에 대한 입장을 180도 바꾼 것은 사실이다. 강령보다 현실이 더 강하다는 진실이 입증되었다. 그러나 코민테른의 강령은 철회되거나 수정되지 않았다. 그리고 코민테른의 근본 오류들이 노동자들에게 설명되지 않았다. 자신감을 상실한 코민테른 지도자들은 전혀 그럴 필요가 없음이 뻔함에도 불구하고 “사회파시즘” 노선으로 다시 후퇴할 길을 터놓고 있다. 공동전선 정책에 자신의 무원칙하고 외교술수적이며 불안정한 성격을 부여했을 뿐이다.

 

스탈린주의자들의 개량주의적 환상

“죽음 직전의 고통을 겪고 있는 자본주의”에 대한 레닌의 테제를 이해하지 못하는 프랑스 공산당은 개량주의적 환상을 가미하여 시끄러운 말이나 늘어 놓으며 무력한 자신의 존재를 부지하고 있다. 파시즘이 자본주의 쇠퇴의 유기적 산물임에도 불구하고 스탈린주의자들은 갑자기 환상에 빠져있다. 즉 부르조아 사회의 기초를 건드리지도 않고 파시즘을 끝장낼 가능성을 믿고 있다.

3월 6일 토레즈는 [인류]지에 100번째 이렇게 말했다: “파시즘의 결정적 패배를 확보하기 위해 당면한 요구들을 방어하는 공동 행동을 사회당에 거듭 제안한다...”

계급의식이 투철한 모든 노동자는 이 “강령적” 문구를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파시즘은 중간계급의 절망과 대자본의 테러 정책이 결합된 결과이다. “당면한 요구들”은 자본주의의 틀을 극복하지 못하는 요구들이다. 그렇다면 쇠퇴하고 있는 자본주의를 그대로 두고파시즘의 “결정적(!) 패배를 확보”할 수 있는가?

경제 위기를 끝장내어 파시즘을 패퇴시키겠다고 주오가 말했을 때 (말이 실천보다 쉽다!) 그는 최소한 자신에게 충실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는 늘 그렇듯이 자본주의의 소생과 회춘에 대한 소망의 감시꾼 역할을 또 다시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스탈린주의자들도 자본주의의 누진적 쇠퇴의 필연성을 말로는 인정한다. 그렇다면 파시즘을 결정적으로 패퇴시켜 정치적 상부구조를 건강하게 유지하면서 동시에 사회의 쇠퇴하는 경제적 하부구조를 그대로 놓아둘 수 있다고 약속할 수 있는가?

대자본이 역사의 수레바퀴를 마음 먹은대로 뒤로 돌리고 다시 양보와 “개혁”의 길을 택할 능력이 있다고 이들은 생각하고 있는가? “당면한 요구들”을 통해 소부르조아 계급이 점증하는 파멸과 탈계급화 그리고 절망으로부터 구원될 수 있다고 이들은 생각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러한 노동조합적이고 개량주의적 환상들을 죽음 직전의 고통을 겪고 있는 자본주의에 대한 테제와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

이론적 측면에서 코민테른의 입장은 우리가 보아왔듯이 아주 완벽한 황당무계에 황당무계를 덧붙일 뿐이다. 이 입장이 실제 투쟁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이는 지를 보기로 하자.

 

파시즘과 당면한 요구 투쟁

2월 28일 토레즈는 현재 공산당 정책의 가장 중심적이며 근본적으로 잘못된 생각들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파시즘을 결정적으로 패퇴시키기 위해서는 근로 대중의 생활수준에 대한 자본주의의 공세를 확실하게 막아야 한다.”

그렇다면 노동자 민병대는 무슨 필요가 있는가? 파시즘에 대한 직접적인 투쟁은 무슨 필요가 있는가? 대중의 생활수준을 높이려고 노력해야만 한다. 그러면 파시즘은 마치 마술을 건 것처럼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이 노선을 따르면 당면 투쟁의 전망 전체가 완전히 왜곡된다. 그리고 실제 계급 역관계는 뒤죽박죽이 된다. 자본가들은 자신의 변덕 때문이 아니라 필요 때문에 파시즘을 수용한다. 이들은 노동자를 공격하고 억압을 강화하고 주위에 고통과 절망의 씨를 뿌리는 것을 통해서만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체제를 보존할 수 있다. 동시에 자본가들은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노동자의 저항을 두려워하며 깡패들을 동원한다. 노동계급이 경제 위기를 악화시키고 연장시키고 있다고 비난하며 소부르조아 계급이 노동계급과 대항하도록 부추긴다. 그리고 노동계급을 궤멸시키도록 파시스트 깡패들에게 자금을 제공한다.

자본의 공세에 대한 노동자의 저항이 증대하고 파업이 좀더 빈번해지고 중대성을 띨 경우 파시즘은 토레즈의 말과는 반대로 지리멸렬하기는커녕 배가된 힘으로 세력이 증대될 것이다. 파업이 증대하면 파업파괴자들이 동원될 것이다. 온갖 종류의 “애국적” 깡패들이 이 일을 위해 모여들 것이다. 노동자에 대한 일상적 테러공격이 다반사가 될 것이다. 이 현실을 애써 못본 채 할 경우 확실한 패배만이 우리를 기다릴 것이다.

토레즈와 그의 동료들은 이렇게 물을 것이다: “그렇다면 저항하지 말라는 것입니까?” (그리고 이들은 판에 박힌 모욕의 말을 퍼부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시궁창을 피해 가듯이 피해 갈 것이다.) 아니다. 저항해야 한다.

우리는 침묵, 후퇴, 항복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종파의 신도가 아니다. “적을 자극하지 말라!” “자기 방어를 말아라!” “무장하지 말라!” “배를 까뒤집고 죽은 체 해라!” 이런 종파의 이론가들은 바로 [인류]지의 편집자들 중에 있다! 궤멸을 원치 않는다면 노동자는 저항해야 한다. 그렇다면 개량주의적 평화주의적 환상은 수용될 수 없다. 투쟁은 치열할 것이다. 저항의 불가피한 결과를 예상하고 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의 공세를 통해 부르조아 계급은 쇠퇴일로의 자본주의 경제와 사회에 새로우며 측정할 수 없이 더욱 격렬한 성격을 부여하고 있다. 이와 똑같이 노동자들 역시 계급의 적에 대항하여 방어 투쟁에 새로운 성격을 부여해야 한다. 자본의 경제적 공세에 대항해 우리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자본에 고용된 깡패들에 대항해 우리 조직을 방어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노동자 민병대 만이 이 필요에 부응할 수 있다. [인류]지가 주장, 고함질, 모욕 등을 아무리 쏟아내도 이 결론은 유효하다.

특히 노동조합에 대해서 이렇게 말해야 한다: 동지들, 노동조합 정당방위대 (“노동조합 민병대”)를 즉시 조직해야한다; 투쟁 없이는 파시즘에게 단 한치의 후퇴도 안길 수 없다; 이것을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으면 여러분의 지부와 출판물은 약탈당할 것이고 여러분의 조직은 산산조각날 것이다.

 

총파업은 숨바꼭질이 아니다

같은 글(2월 28일)에서 토레즈는 이렇게 한탄한다: “더욱 강력하게 시행 중인 포고령에 저항하여 파업 을 포함한 광범위한 투쟁을 감행하자는 우리의 제안을 사회당은 수용하지 않고 있다.”

파업을 포함해서? 무슨 파업 말인가? 포고령의 철폐에 대한 것이므로 토레즈는 부분적 경제파업이 아니라 총파업 즉 정치파업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오랫동안 제기해온 우리의 제안을 반복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고 그는 “총파업”이란 말을 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동요와 모순을 숨기기 위해서 이 불쌍한 인간들은 치사한 사기술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러한 행위는 체계를 가지고 진행된다. 3월 12일자 공개서한에서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 파업 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2년 군복무제를 반대하는 결정적인 투쟁을 시작할 것을 사회당에 제안했다. 똑같은 신비로운 방식이 다시 동원되었다! 중앙위원회는 파업을 정치투쟁의 수단 즉 혁명적 무기로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총파업” 대신 “파업”이라는 말만 되뇌이는가? 중앙위원회는 누구와 숨바꼭질 하고 있는가? 노동계급하고?

 

총파업 준비

그러나 그 잘난 “권위”를 유지하려는 엉성한 술책은 그렇다 치자.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두메르그-플랑뎅 정권의 입법에 대항하는 투쟁의 무기로 총파업을 제안하고 있다. 이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이 제안에 대해 우리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현재의 조건 속에서 총파업의 의미와 이에 대한 확실한 준비 내용을 노동계급 조직 지도자들 자신이 먼저 이해하고 대중들에게 설명할 것을 우리는 요구한다.

일반적으로 보통의 경제파업조차 전투조직 특히 파업방위대 를 필요로 한다. 지금의 격화된 계급투쟁의 조건 속에서 파시스트의 도발과 테러행위에 직면하여 진정한 파업방위대 조직은 모든 중요한 경제투쟁의 필수 요건이다. 그러나 일부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이렇게 주장한다 치자: “ 파업방위대 는 필요없다. 이것은 일종의 도발행위가 될 것이다. 파업 노동자들에게는 자기방어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노동자들은 이러한 “지도자”에게 온화하게 충고할 것이다: 정신병원에 직행하지는 않더라도 병원에는 꼭 가보시오. 사실 파업방위대는 파업 노동자들의 자기방어를 위한 가장 중요한 조직이다.

총파업과 관련된 논리를 좀더 자세하게 살펴보자. 지금 우리가 염두에 두는 것은 보통 정도의 시위, 한시간 또는 24시간의 상징적 파업도 아니다. 계급의 적이 항복하도록 계급전쟁의 전술을 구사하는 것이다. 지금 상황 속에서 총파업은 계급투쟁을 얼마나 대규모로 격화시킬 것인가! 이 점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우후죽순처럼 파시스트 깡패조직들이 생겨날 것이며 이들은 모든 힘을 다해 파업노동자 대오 내에 혼란, 도발, 사기 침체를 가져오려고 애쓸 것이다. 군사적이며 엄한 규율의 노동자 부대가 아니라면 어떻게 필요없는 희생과 심지어는 완벽한 궤멸로부터 총파업을 지켜낼 수 있겠는가? 총파업은 개별 파업을 일반적 현상으로 확대한 것이다. 노동자 민병대는 파업방위대를 일반적 현상으로 확대한 것이다. 지금 상황 속에서 총파업을 생각하면서 노동자 민병대 조직과 같은 끈기가 필요한 작업을 거부하는 자는 한심한 허풍장이들 뿐이다!

 

“비혁명적 상황”의 총파업

그러나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한심한 자들은 여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모든 맑스주의자들이 알고 있듯이 총파업은 가장 혁명적 투쟁방식에 속한다. 계급투쟁이 특정 직종에 제한된 요구를 넘고 모든 직종과 지역의 경계를 넘어 노동조합과 정당, 합법과 비합법의 경계를 무너드리고 노동계급 대다수를 부르조아 계급과 국가에 대한 적극적 반대투쟁으로 동원할 때만 총파업은 가능하다. 총파업보다 더 높은 수위의 계급투쟁은 무장봉기 밖에 없다. 모든 총파업은 그 구호가 무엇이든 공공연한 혁명적 격돌, 직접적 권력장악 투쟁으로 변모하는 내적인 경향을 지니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총파업은 극단적인 정치적 갈등 속에서만 가능하다. 총파업이 혁명적 상황을 논란의 여지없이 표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노동계급 운동의 전체 역사가 이것을 증거하고 있다. 그렇다면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지금은 혁명적 상황이 아니다!”라고 진단하면서 어떻게 총파업을 제안할 수 있는가?

토레즈는 진짜 총파업이 아니라 조그마해서 아주 평화로우며 [인류]지의 편집자들에게 아주 구미에 맞는 그런 파업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반박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는 이렇게 분별있게 덧붙일지도 모른다: 사회당 지도자들의 거부를 예상하며 나는 이들에게 총파업을 한번 제안해본 것 뿐이다. 그러나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우리가 빠리의 반동 경찰청장 쉬아페, 스페인의 전 국왕 알폰소 13세 그리고 교황과 음모를 벌이고 있다고 단순히 비방하는 것으로 그가 반박을 대신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 반박이야말로 토레즈에게 가장 잘 어울릴 것이다!

그러나 생각이 있는 모든 공산당 노동자들은 자기 당의 이 한심한 지도자들의 너무도 명백한 모순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 혁명적 상황이 아니므로 노동자 민병대를 조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노동계급의 무장 즉 노동자들을 미래의 혁명적 상황에 대해 준비시키는 것을 옹호하는 선전도 불가능하다. 그러나 지금은 혁명적 상황이 아니지만 노동자들에게 총파업을 촉구하는 것이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진실을 말하자면 모든 현기증과 황당무계의 경계가 완전히 초월된 무아지경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모든 곳에 소비에트를 수립하라”

모든 모임에서 공산당은 “제 3기”에서 물려받은 구호 “모든 곳에 소비에트를 수립하라”를 반복하고 있다. 이 구호는 진지하게 받아들일 경우 깊은 혁명적 내용을 담고 있다. 이것은 너무도 명확하다. 부르조아 계급에 대한 무장봉기를 통해서만 소비에트 권력을 수립할 수 있다. 그러나 무장 봉기를 위해서는 노동계급의 손에 무기 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모든 곳에 소비에트를 수립하라”는 구호와 “노동자를 무장시켜라”는 구호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런데 왜 전자의 구호는 스탈린주의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외쳐지면서 후자의 구호는 “트로츠키주의자들의 도발”로 선언되고 있는가?

우리의 당혹감은 더욱더 합당하다. 왜냐하면 노동계급 무장화 구호는 현 정치 상황과 노동계급의 심리상태에 가장 적절하기 때문이다. 소비에트 수립 구호는 그 성격의 핵심상 공세적이며 승리한 혁명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지금 노동계급은 수세에 놓여있다. 파시즘은 노동계급을 물리적으로 궤멸시키려는 직접적 위협을 가하고 있다. 손에 무기가 있다 하더라도 방어의 필요성은 혁명적 공세 노선보다 더욱더 포괄적이며 광범위한 대중이 이해하기가 더 쉽다. 따라서 무장화 구호는 지금의 단계에서 소비에트 구호보다 더 힘있고 광범위한 호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노동계급 정당이 이렇게 예외적으로 좋은 기회를 지나치면서 노동계급 무장 사상을 열렬하게 대중화시키기는 커녕 그 의미를 이렇게 부정직하게 훼손할 수 있는가? 이것이 혁명에 대한 배신행위가 아니면 무엇인가?

지금 이 질문이 우리의 “반혁명적” 성격 특히 군사적 간섭을 도발하고자 하는 우리의 소망에 의해 제기되었다고 인정할 용의가 있다. 우리의 질문을 통해 일본의 천황과 히틀러가 벨라 쿤과 토레즈가 돌대가리라는 사실을 확신하는 순간 이들은 소련에게 선전포고를 할 것이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모든 것은 뒤끌로가 논란의 여지없이 증명했으므로 더 이상의 증거가 필요없다. 그러나 어쨌든 질문에 대답하라. 무장봉기 없이 어떻게 소비에트 권력을 수립할 수 있는가? 노동자들을 무장시키지 않고 어떻게 무장봉기를 일으킬 수 있는가? 무기 없이 어떻게 파시즘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가? 그리고 이 구호를 선전하지 않고 어떻게 부분적으로나마 노동계급을 무장시킬 수 있는가?

그러나 가까운 미래에 총파업을 감행할 수 있을까? 이런 종류의 질문에 대해 미리 준비된 해답이 있을 수 없다.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질문하는 법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 누구에게 질문을 던질 것인가? 대중에게 던져야 한다. 이들에게 어떻게 질문을 던질 수 있나? 선동을 통해서이다.

선동은 대중에게 이러저러한 구호를 전달하고 대중의 행동을 촉구하는 등의 목적을 위해 동원하는 수단이다. 또한 선동은 대중에게 귀를 기울이고 이들의 정서와 생각을 파악하고 이 결과 이러저러한 결정을 내리는 수단이기도 하다. 오직 스탈린주의자들만이 선동을 시끄러운 독백으로 변질시켰다. 맑스주의자와 레닌주의자에게 선동은 언제나 대중과 나누는 대화이다 .

그러나 이 대화가 필요한 결과를 가져오려면 당은 일반 정세를 올바르게 파악하고 당면 투쟁의 일반적 경로를 확정해야 한다. 선동을 통해 대중을 파악함으로서 당은 자신의 노선 특히 운동의 리듬과 주요한 투쟁의 일정 에 관련된 모든 사항 가운데 필요한 부분은 수정하여 정확성을 기해야 한다.

나라의 상황은 위에서 이미 설명되었다. 노동계급의 지도자들은 혁명을 지도할 능력이 없으며 준혁명적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노동계급의 정책이 혁명적 상황 전개의 주요한 요인이므로 노동계급 지도자들의 비혁명적 성격은 준혁명적 상황의 혁명적 상황으로의 전개를 가로 막고 있다. 바로 이것 때문에 반혁명적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

물론 실제 현실에서 정치과정의 단계들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한 단계는 다음 단계와 중첩되며 이 결과 여러 가지 모순들을 드러낸다. 이러한 모순들은 물론 정확한 정세의 진단과 전망을 어렵게 한다. 그러나 이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프랑스 노동계급의 활력은 전혀 소진되지 않은 채 과거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보면 파시즘은 아직도 소부르조아 대중에게 정치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 그러나 의회주의자들이 보는 것보다는 훨씬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아주 중요한 이 두가지 정치적 사실을 통해 우리는 확고한 신념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혁명적 요인들은 아직 하나도 소실되지 않았으며 준혁명적 상황을 혁명적 상황으로 발전시킬 가능성은 여전히 많다.

그러나 프랑스와 같은 자본주의 나라의 경우 총파업 없는 혁명 투쟁은 있을 수 없다. 결정적인 시기에 남녀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일한다면 누가 싸움을 수행할 것인가? 따라서 총파업은 지금 일정에 올라있다.

그러나 총파업을 감행할 시간 은 대중의 투쟁 준비 정도와 노동계급 조직들의 투쟁 지도력에 달려있다.

 

대중은 투쟁을 원하는가?

그러나 혁명적 상황의 전개를 가로막는 요인이 혁명 지도부의 부재 뿐인가? 노동계급 내부에 투쟁을 회피하는 강력한 보수적 경향이 존재하고 있지는 않을까? 이러한 의문의 목소리가 여러 곳에서 들리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하등 놀라운 일이 아니다! 혁명적 위기가 다가오면 책임지기를 두려워하는 많은 지도자들이 대중의 보수적 경향 뒤로 숨어버린다. 그러나 대중의 투쟁회피적 경향이라는 것은 거짓말에 지나지 않는다. 10월 무장봉기 몇주일 전 심지어는 며칠 전에 지노비에프, 카메네프, 라이코프( 로조프스키, 마누일스키 등은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등 출중한 지도자들조차 대중이 지쳐있으며 투쟁을 원치 않는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것은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교훈이다. 그러나 혁명가의 등급으로 치자면 지노비에프, 카메네프, 라이코프 등은 까쉥, 토레즈, 몽무쏘 등과 비교하면 거인에 속한다.

노동계급이 혁명 투쟁을 원치않거나 벌일 능력이 없다고 선언하는 자들은 모두 거짓을 퍼뜨리는 자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나약함과 비겁함을 근로 대중에게 전가시킨다. 지금까지 빠리나 지방에서 대중이 지도부의 투쟁 요구를 거부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이 점과 관련된 가장 대표적인 예는 1934년 2월 12일의 총파업이다. 이 당시 지도부는 완전히 분열되어 있었고 투쟁을 위한 진지한 준비는 전혀 없었다. 대중의 투쟁을 전적으로 회피만 할 수 없자 노동총연맹 지도부는 투쟁을 최소한의 수준으로 제한하려고 끈질기게 노력했다. 그러나 총파업은 주어진 조건 속에서 최대의 성공을 거두었다. 대중은 투쟁을 원한다. 이것은 명확하다. 주오와 같은 작자가 잠시 투쟁에 나설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래로부터의 압력이 얼마나 강력했는 지를 알 수 있다. 이 점을 계급의식이 투철한 노동자들은 전부 의식 속에 각인해야 한다. 사실 이 투쟁은 말 그대로의 총파업이 아니라 24시간짜리 시위에 불과했다. 그러나 24시간으로 투쟁이 제한되기를 강요한 쪽은 대중이 아니라 지도부 였다.     

올해 2월 10일 공화국 광장의 시위 역시 바로 이 결론을 입증할 뿐이다. 투쟁 지도부가 준비한 것이라고는 뻔한 내용의 성명서 뿐이었다. 대중의 귀에 들린 구호는 “쉬, 조용히! 쉬, 조용히!”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위대의 숫자는 모두의 예상을 뒤집었다. 지방의 경우 지난 1년이나 지금이나 상황은 변함이 없다. 지도부는 투쟁을 원했으나 대중이 거부했다는 주장은 입증이 불가능했다. 언제나 모든 곳에서 이와 정반대의 상황이 전개되었다. 지금도 이 상황은 여전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대중은 투쟁을 원하는 반면 지도부는 브레이크를 건다. 가장 위험한 요인은 바로 여기에 있다. 어쩌면 지금의 상황이 재앙으로 끝날 지도 모른다 .

 

평당원와 당지도부

이러한 관계는 당내에서도 발견된다. 사회당 평당원들은 프로싸르를 전혀 지지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과거 그대로이기를 바라는 의원들과 시장들만 그를 지지한다. 반면 마르쏘 삐베르는 더욱더 명확하고 결연한 그의 입장 때문에 평당원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인물 중의 하나가 되었다. 우리는 이 점을 즉각 인정한다. 왜냐하면 과거 삐베르의 노선에 동의하지 않았을 때 우리는 이것을 공개적으로 말해왔기 때문이다. 미래에도 이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사실의 중요성은 프로싸르와 삐베르의 개성 문제를 훨씬 넘어선다. 공산당처럼 사회당도 평당원들은 상층부보다 더 좌측에 있으며 더 혁명적이고 더 대담하다. 이들이 좌파 지도자들에게만 신뢰를 보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것만이 아니다. 이들은 진지한 사회당원들을 언제나 그리고 더욱더 좌로 몰고간다. 왜 평당원들은 급진적일까? 대중 자신들과 이들의 고통, 저항, 증오를 직접 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의심할 여지없는 징후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신뢰할 수 있다.

 

“직접적 요구들”과 대중의 급진화

공산당 지도자들은 대중이 자신들의 투쟁 호소에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것은 거짓이 아니다. 그러나 이 사실은 우리의 분석을 부인하기보다는 확증하고 있다. 근로 대중은 “지도자들”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다. 즉 아주 거대한 사회 위기 속에서 그 자체만도 엄청난 노력과 대단한 희생을 요구하는 부분적 경제투쟁만으로는 이렇다할 성과가 없다는 것을 대중은 알고 있다. 더 나쁜 것은 이러한 투쟁이 노동계급을 약화시키고 지치게 만든다는 점이다. 노동자들은 투쟁적 시위는 물론 총파업 조차 가담할 준비가 되어있다. 그러나 아무런 전망도 없는 소모적인 파업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르다. [인류]지에 실린 호소문, 선언문, 논문에도 불구하고 공산당 선동가들은 “부분적 당면 요구들”의 이름으로 대중 앞에 파업을 선동하지는 않는다. 이들은 지도부의 관료적 투쟁 계획들이 객관적 상황이나 대중의 정서와 전혀 부합되지 않는다는 점을 감지하고 있다. 확실한 전망이 없을 경우 대중은 투쟁을 시작할 수도 없고 시작하려 하지도 않는다. [인류]지의 정책은 인위적이고 거짓 “현실주의” 정책이다. 노동총연맹이 부분적 파업을 호소했으나 대중이 이를 따르지 않은 것은 사회 위기의 심도와 노동자 지구의 도덕적 긴장을 간접적이지만 아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대중이 자동적으로 급진화된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노동자들은 조직이 투쟁을 주도할 때까지 기다린다. 그리고 기대가 충족되지 않았다고 결론내릴 경우 의기소침, 냉담, 고립분산적인 분노의 폭발이 급진화 대신 이들에게 찾아든다. 지금이 아마 이와 같은 상황일 것이다. 노동계급의 주변부에 존재하는 무정부주의 경향이 파시스트 경향과 중첩된다. 포도주가 식초로 변한다.

대중의 정치적 정서 변화에 대해서는 가능한한 가장 면밀하게 주의를 기울여야한다. 모든 단계에서 이 살아있는 변증법을 탐지하는 것, 바로 이것이 선동의 임무이다. 지금까지 공동전선은 사회위기와 대중의 정서에 대해 너무초연했다. 이것은 일종의 범죄행위에 해당된다. 잃어버린 시간을 만회할 수는 있다. 그러나 시간을 더 이상 허비해서는 안된다. 지금의 역사는 몇년 단위가 아니라 몇달과 몇주 단위로 탐지되어야 한다.

 

총파업 강령

대중의 총파업 투쟁에 대한 준비 정도를 파악하고 동시에 대중의 전투적 정서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이들에게 혁명적 투쟁 강령을 제시해야 한다. 보나파르트 정권의 포고령과 2년 군복무제를 철폐하는 등의 부분적 요구를 담은 구호들은 당연히 이 강령의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들만 가지고는 확실히 부족하다.

우리 시대의 모든 임무와 부분적 요구들 위에는 국가권력의 문제 가 있다. 1934년 2월 6일 이래 국가권력의 문제는 무력투쟁의 문제로 확연히 제기되었다. 지방자치 선거와 의회 선거는 계급 역관계를 파악하는 중요한 잣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이상은 아니다. 모든 문제는 두 적대 진영 사이의 공공연한 투쟁을 통해 해결될 것이다. 두메르그-플랑뎅 유형의 정권은 결정적인 순간 이전까지만 존속할 것이다. 그 다음에는 파시즘 세력이나 노동계급 중 하나가 프랑스를 통치하게 될 것이다.

과도적 성격의 현 정권이 대단히 취약하다는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총파업은 아주 커다란 부분적 성공을 거둘 수 있다 . 이 경우 정부는 보나파르트적 포고령이나 2년 군복무제 등의 문제에 대해 양보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성공이 자체로는 대단히 가치있고 중요하지만 과거의 평화로운 “민주주의”를 부활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금융자본은 파시즘 세력에게 배로 지원금을 늘려 줄 것이고 국가권력의 문제는 잠시 잠복한 후 배가된 힘으로 다시 제기될 것이다.

총파업이 거둘 수 있는 부분적 성공과는 별개로 총파업의 근본적 중요성은 혁명적 방식으로 권력의 문제를 제기한다는 사실에 있다. 공장, 수송수단, 통신수단, 발전소 등은 총파업으로 전부 마비된다. 이 투쟁을 통해 노동계급은 생산 뿐만 아니라 정부도 마비시킨다. 국가권력은 허공에 붕 뜬 상태가 된다. 따라서 기근과 무력을 통해 노동계급을 굴복시키고 부르조아 국가를 다시 가동시키거나 노동계급에게 굴복하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총파업의 구호와 동기가 무엇이건 이것이 진정 대중을 포괄하고 대중의 투쟁의지가 결연할 경우 총파업은 사회의 모든 계급에게 다음의 문제를 제기할 수 밖에 없다: 누가 사회의 주인이 될 것인가?

아마추어나 모험가가 아니고 진정으로 노동계급의 지도자가 되려면 이러한 총파업의 내적 논리를 이해해야 한다. 노동계급 지도자들은 대중 앞에 혁명적 권력장악의 임무를 계속 제기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총파업의 정치적 의미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들은 총파업에 대해서 감히 입도 뻥끗하면 안된다. 총파업을 투쟁의 수단으로 인정하기 않는 것은 곧 혁명 투쟁을 부인하는 것이며 이것은 곧 노동계급을 파시즘 세력에게 팔아넘기는 범죄행위가 된다.

완전한 항복 아니면 권력장악을 위한 혁명 투쟁 --- 이것이 지금 위기에 놓인 사회를 구하기 위한 대안이다. 이 대안을 이해하지 못할 경우 노동계급 진영 내에서 할 일이 전혀 없다.

 

총파업과 노동총연맹

노동총연맹은 자신이 총파업 독점권을 가지고 있다고 선언한다. 이 사실은 총파업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다. 총파업이 노동계급 정당들과 전혀 무관하다는 논리가 도출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주 놀라운 일이 눈앞에 전개된다. 즉 일부 사회당 의원들이 이 주장이 올바르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들은 총파업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기를 원할 뿐이다.

이름 자체가 말하고 있듯이 총파업은 가능한 한 노동계급 전체를 투쟁에 동참시키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노동총연맹은 전체 노동계급의 5% 에서 8% 정도만 포괄하고 있을 것이다. 노동총연맹의 영향력은 노동계급 정당들의 노선과 일치하지 않는 문제들에 관한 한 노동조합 바깥에서는 절대적으로 무의미하다. 예를 들어 노동총연맹의 신문 [인민]지의 영향력이 사회당 기관지 [대중]지 또는 공산당 기관지 [인류]지의 영향력과 비교될 수 있겠는가?

사상 내용과 투쟁 방식에 있어서 노동총연맹 지도부는 노동계급 정당의 지도부보다 지금 시기의 임무를 달성하는데 훨씬 더 부족하다. 노동조합의 상층부에서 평조합원 대오로 내려올수록 주오와 그의 지도그룹에 대한 신뢰도는 더 떨어진다. 신뢰도의 결여는 더욱더 공공연한 혐오감으로 바뀐다. 현재 노동총연맹의 보수적인 조직 지도자들은 혁명이 발생할 경우 존재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핵심 성격상 총파업은 정치 행동이다. 노동계급 전체를 부르조아 국가와 대항시킨다. 노동조합원과 비조합원, 사회당 노동자와 공산당 노동자, 무당파 노동자들을 함께 투쟁으로 결집시킨다. 그리고 노동총연맹 혼자로는 제공할 수 없는 신문과 선동가들의 조직을 필요로 한다.

총파업은 노동계급에 의한 권력 장악의 문제를 직접 제기한다. 노동총연맹은 이 임무에 등을 돌려왔으며 지금도 등을 돌리고 있다(노동총연맹 지도자들은 부르주아 권력을 향해 얼굴을 돌리고 있다). 총파업에 대한 지도력은 자신들의 힘을 벗어나 있다는 사실을 노동총연맹 지도자들은 알고 있다. 그런데도 이들이 지도력 독점을 선언하는 이유는 총파업이 시작되기도 전에 총파업의 목을 졸라 죽이기를 희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1934년 2월 12일의 총파업은 어떠했는가? 이것은 사회당과 공산당 노동자들이 노동총연맹에 강요한 짤막한 평화 시위에 불과했다. 이것이 혁명적 총파업으로 전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오직 이것을 위해 주오와 그의 동료들은 이 시위의 명목상 지도력을 장악했다.

소속 선전가들에게 내린 지시사항을 통해 노동총연맹은 이렇게 말했다: “2월 6일 직후 근로 대중과 모든 민주 세력 은 노동총연맹의 호소에 호응하여 분파주의자들 의 기도를 저지할 확고한 의지를 보였다.” 노동총연맹은 사회당이나 공산당 노동자들은 언급하지 않고 “민주세력”만 언급했다. 이 단 하나의 어휘를 통해 주오는 자신의 정체를 확연히 드러냈다. 혁명 투쟁이 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문제에서 주오에게 신뢰를 보내는 것이 범죄행위가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총파업 과정에서 노동조합은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총파업에 대한 독점을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계급 정당들과 함께 투쟁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 혁명적 관점에서 보면 노동조합 지부 들의 조직적 독자성을 당연히 조금도 훼손시키지 않고 이들과 긴밀히 협력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노동총연맹의 경우 “민주세력”과 단절하는 것을 통해 노동계급 공동전선에 일조하거나 투쟁전선에서 물러나 있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이들과 함께 투쟁해야 하는가? 그렇다. 총파업의 시간과 방법을 공동으로 결정할 것인가? 그렇다. 혁명 운동을 목조르는 주오의 독점권을 인정할 것인가? 결코 그럴 수 없다!

 

 

4. 사회주의와 무장투쟁

 

1935년 2월 6일 사건의 커다란 교훈

1935년 2월 6일 파시스트 동맹은 콩코드 광장의 시위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것에 대해서 공동전선 특히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빠리 노동자들에게 같은 장소와 시간에 파시스트들과 똑같이 시위를 벌일 것을 촉구했다. 그렇다면 혹시 파시스트들이 당시에 비무장으로 시위를 계획하고 있었는가? 그렇지 않았다. 지난 일년에 비해서 이들의 무장력은 두배로 증가했다. 그렇다면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정당방위대의 무장을 제대로 제안했는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폭동주의”와 “물리적 투쟁”에 반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신을 방어할 무기도 없는 수만명의 노동자들을 훈련과 무장 정도가 높으며 혁명적 노동계급에게 살의를 느끼고 있는 파시스트들에게 내맡기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는가?

중앙위원회는 노동자들을 파시스트들의 총칼 앞에 노출시키기를 원치 않았다? 단지 플랑뎅에게 파시스트들의 시위를 금지할 명분을 주려고 했을 뿐이다? 이런 식의 허튼 소리는 필요없다. 더 악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노동자들의 목숨을 걸고 도박을 했던 셈이다. 그리고 이 도박의 결과는 완전히 플랑뎅에게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쉬아페 경향의 반동 경찰청장에게 달려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만약 이 좋은 기회에 파시스트들을 동원하여 혁명적 노동자들에게 한 수 가르쳐 주면서 학살의 모든 책임을 공동전선의 탓으로 돌리기로 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결과는 너무 뻔하다! 피비린내 나는 학살은 없었지만 똑같은 정책을 공산당이 반복한다면 다음 번에는 유혈사태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폭동주의”와 모험주의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행동은 관료적 모험주의의 가장 순수한 형태이다. 기회주의와 모험주의는 동전의 양면 이라고 맑스주의자들은 항상 말해왔다. 2월 6일 사건은 이 동전이 얼마나 쉽게 뒤집힐 수 있는 지를 아주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우리는 폭동주의, 봉기주의에 반대한다!”고 오토 바우어는 매년 반복했다. 그리고 1918년 혁명의 유산인 노동자 민병대를 해체시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강력한 오스트리아 사회민주주의는 비겁하게 후퇴하며 부르조아 계급에 영합했다. 그리고 다시 후퇴하며 어리석은 “청원서”나 제출하고 플랑뎅과 정치적 성격이 똑같은 돌푸스에게 희망을 걸었다. 이렇게 하면서 힘들게 얻은 진지들을 하나하나 적에게 넘겨주더니 결국 나락에 떨어지자 “노동자 여러분, 구해주세요!”라고 애원했다. 노동계급의 최선진 분자들은 대중과의 접촉을 상실당한 채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적에게 압도되고 속았다. 그리고 무작정 투쟁으로 뛰어들다가 당연히 패배했다. 그러자 오토 바우어와 율리우스 도이치는 이렇게 선언했다: “ 우리는 진정한 혁명가처럼 행동했다. 그러나 노동계급 이 우리를 지지하지 않았다.”

스페인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사민당 지도자들은 힘들게 얻은 혁명 성과들을 부르조아 계급에게 헌납하고 후퇴정책으로 대중의 투쟁 동력을 소진시켰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봉기를 촉구했다. “폭동주의를 반대하는” 이 교수 양반들은 “폭동”과 유사한 상황을 스스로 조성하면서 급작스럽게 무장 방어를 촉구했다. 결국 스스로 “폭동”을 자초했다.

2월 6일 사건과 같은 경우는 오스트리아와 스페인에서도  있었다. 여러 달 동안 스탈린주의자들은 노동자들의 투쟁의지를 약화시키고 사기를 저하시켰다. 그리고 노동자 민병대 창설 구호를 비웃고 물리적 투쟁을 “거부했다”. 그리고 갑자기 아무 준비도 없이 노동계급에게 명령했다, “콩코드 광장으로! 앞으로 전진!” 이번에는 사람좋은 경찰청장 랑그롱이 노동자들을 구원했다. 그러나 다음에 분위기가 더욱 격해지면 파시스트 깡패들은 노동계급 지도자 다수를 암살하고 [인류]지를 불살라 버릴 것이다.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누가 단언할 수 있는가. 지혜로운 중앙위원회는 반드시 이렇게 외칠 것이다: “노동자 여러분, 무기를 듭시다.” 그리고 집단수용소에 갇히고 나서 또는 운이 좋아 런던 거리를 행진할 경우 이들은 거만하게 선언할 것이다: “봉기를 촉구했으나 노동자들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앞일을 예측하고 준비해야한다

성공의 비결은 물론 “물리적 투쟁”이 아니라 올바른 정책에 있다. 시간과 장소에 합당한 정책을 올바른 정책이라고 한다. 노동자 민병대 자체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노동자 민병대는 시간과 장소에 맞는 정책의 일부이며 필요한 부분 이다. 투표함에 총질을 하는 것은 어리석다. 그러나 투표를 통해 파시스트 깡패들에 대한 자기방어를 시도하는 것은 더 어리석은 행위이다.

노동자 민병대의 초창기 중핵들은 어쩔 수 없이 허약하고 대중으로부터 고립될 것이며 경험도 부족할 것이다. 현학자들과 회의주의자들은 경멸감에 고개를 젓는다. 철강위원회(Comite des Forges) 소속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냉소주의자들은 부끄러움이 없이 노동자 민병대에 대해 농담을 해댈 것이다. 이렇게 해서 집단수용소 신세를 면할 수 있다고 이들이 생각한다면 자기기만이 될 것이다. 제국주의는 이런 저런 지도자들이 자기 앞에서 아양떠는 것을 달가와하지 않는다. 제국주의는 적대 계급을 전멸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게드와 라파르그가 청년기에 맑스주의를 선동하기 시작했을 때 지혜로운 속물들은 이들을 무기력하고 대중으로부터 고립되어 있으며 순진하기만한 몽상가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들이야말로 수많은 의회주의자들을 거느린 운동에 물꼬를 터주었다. 문필, 노동조합, 협동조합의 분야에서 노동계급 운동의 첫발은 허약하고 불안하고 불확실했다. 그러나 개인으로는 빈곤하지만 노동계급은 쪽수와 자기희생 정신을 통해 막강한 조직들을 탄생시켰다.

노동계급 무장조직 은 지금 파시즘의 공격에 대해 거의 자기방어 에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 조직의 투쟁은 계급투쟁의 새로운 영역이다. 이 영역의 첫발 역시 경험 미숙과 엉성함을 드러낼 것이다. 그러나 오류는 있기 마련이다. 적의 도발에 전혀 넘어가지 않고 완전하게 대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핵의 양성은 서서히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 노동자들이 서로를 잘 알고 있는 공장 가까이에 노동자 민병대가 탄생하면 할수록 중핵의 양성은 더욱 확실하고 탄탄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계획은 위에서 나와야 한다. 당은 초창기 중핵을 마련할 수 있으며 마련해야 한다 . 노동조합 역시 이와 똑같은 길을 걸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은 반드시 이 길을 걸을 것이다. 중핵들이 노동자 조직 내에서 그리고 나중에는 근로인민 대중 내에서 공감과 지지를 더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중핵들은 더욱 빨리 통합되고 강화될 것이다.

겉으로는 공감과 지지를 보내는 척하면서 노동계급의 자기방어 조직을 비방하고 빈정거리는 자들이 있다. 그리고 이들은 계급의 적에게 이 조직이 “봉기”와 “폭동”을 일으키기 위한 조직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자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할까? 특히 “맑스주의(!) 전투(?)”라는 말을 보자. 러시아 멘셰비키들은 자청해서 주오의 부관 역할을 앞장서고 있다. 이들 재치있기도 하고 재치없기도 한 자들은 노동자 민병대의 첫발을 악의에 차서 빈정거린다. 이런 자들에게는 노동계급 혁명의 확실한 적들이라는 말 외에 달리 붙여줄 말이 없다.

 

노동자 민병대와 노동자 군대

그러나 여기서 보수적 관례주의자들은 마지막 논리를 동원한다:“무장이 빈약한 민병대로 권력을 장악할 수 있는가? 현대적 기술(탱크! 비행기! 독가스!!)로 무장한 군대에 대해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 주장만큼 공허하고 진부한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더욱이 이 주장은 이론과 역사적 사실에 의해 골백번이나 격퇴당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은 “현실적” 사고의 최후의 시도로 매번 제기되고 있다.

민병대가 내일 있을 권력 장악에는 역부족이라는 점을 잠시 인정한다 치자. 그러나 노동자 조직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필요하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노동총연맹 지도자들은 모든 형태의 권력투쟁을 거부한다. 그렇다고 파시스트들이 노동총연맹을 가만두지는 않는다. 제때에 방어 조치들을 취하지 않는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정치노선과는 별도로 노동조합에 대해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여기서 평화주의자들의 가장 주요한 논리를 좀더 자세하게 살펴보자: “노동자 무장조직은 현대식 군대와 대결하면 무기력하다.” 이 “논리”는 근본적으로 접근하면 민병대 창설에 대한 반대 주장이 아니라 노동계급 혁명 자체에 대한 반대 주장이다. 철저히 무장한 군대가 어떤 경우에도 자본의 편이라고 잠시라도 인정한다면 노동자 민병대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의미에서 사회주의 자체도 포기해야한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는 영원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노동계급 혁명은 도시와 농촌에서 계급투쟁이 극도로 격화된 상황을 전제로 한다. 그렇다면 군대라고 예외일 수 없다. 군대의 핵심부를 획득하거나 최소한 중립화시키지 않고는 혁명은 승리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승리는 즉흥적으로 마련되지 않는다. 철저히 준비되어야 한다.

이 지점에서 평화주의자들은 (말로는) 우리 주장에 동의하기 위해서 우리 말을 막을 것이다. 이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물론 꾸준한 선전을 통해 군대를 우리 편으로 획득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다. 병영의 높은 사망률, 2년 의무 복무제, 전쟁 등에 반대하여 우리는 투쟁하고 있다. 이 투쟁이 성공하면 노동자들이 구태어 무장될 필요가 없다.”

이 말은 사실인가? 그렇지 않다. 근본적으로 틀렸다. 군대를 평화적으로 정복하는 것은 평화적으로 의회의 다수당이 되는 것보다 더 가능성이 없다. 병영의 높은 사망률과 2년 의무 복무제에 대한 온건한 투쟁 그 자체는 이미 의심의 여지없이 파시스트 조직과 반동적 장교들에 대한 이해로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노골적 음모와 이들에 대한 금융자본의 지원금의 배가로 나아가고 있다. 노동자 무장을 반대하는 선동이 성공하면 할수록 파시스트들의 위협은 더욱더 급격하게 커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계급투쟁의 허구적 논리가 아닌 실제 변증법이다. 선전과 혁명 준비의 과정 그 자체에서 우리는 무기를 손에 들고 우리 자신을 방어하고 더욱더 활발하게 방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결론이다.

 

혁명의 한가운데에서

혁명이 한창 진행 중일 때에는 군대가 동요를 보일 수밖에 없으며 내부 투쟁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노동자들이 싸우기를 원하며 승리할 수 있다 는 점을 자기 눈으로 보지 않으면 아무리 선진적인 부위도 공개적으로 적극적으로 노동자의 편으로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파시스트 깡패집단의 임무는 혁명적 노동계급과 군대의 화해를 막는 데에 있다. 군대의 최선진 부위가 봉기를 일으킨 노동자들을 지지할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게 애초에 노동자들의 봉기를 박살내려고 파시스트들은 애쓸 것이다. 동시에 이들은 군대의 반동적인 부위를 도와 가장 혁명적이며 따라서 가장 “믿을 수 없는” 연대들을 무장해제시킬 것이다.         

이 경우 우리의 임무는 무엇인가?

특정 국가에서 진행될 혁명의 구체적 경로를 미리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세계 혁명운동의 역사를 전부 고려해보면 확실히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어느 나라의 어떤 경우든 봉기가 단순히 노동자 민병대와 군대 사이의 단순한 대결로 귀결되지 않는다. 역관계는 훨씬 더 복잡하고 노동계급에게 비할 수 없이 유리할 것이다. 무장의 정도로가 아니라 계급의식과 영웅성에 의해서 노동자 민병대는 혁명의 전위가 될 것이다. 반면 파시즘은 반혁명의 전위이다. 노동계급 전체와 모든 근로인민의 공감을 얻는 노동자 민병대가 반동 깡패집단인 파시스트들을 분쇄하고 무장을 해제시키고 공포에 떨게 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군대와의 혁명적 연대 를 이룰 수 있는 길을 노동자들에게 열어주어야만 할 것이다. 노동자와 병사의 동맹은 반혁명 세력을 제압할 것이다. 이것을 통해서 혁명의 승리가 확보될 것이다.

회의하는 자들은 경멸의 몸짓으로 우리의 생각에 대해서 어깨를 으쓱한다. 그러나 혁명이 승리하기 전날 매번 이들은 똑같은 몸짓을 보여왔다. 혁명이 시작되기 전에 이들에게 현장을 벗어나라고 노동자들이 충고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귀머거리에게 음악을, 맹인에게 색깔을, 회의론자들에게 혁명을 설명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                 

 

 

5. 노동계급, 농민, 군대, 여성, 청년

 

노동총연맹의 계획과 공동전선

주오는 드만으로부터 “계획”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빌렸다. 이 두 양반은 모두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다: 노동계급을 혁명으로부터 떼어 놓기 위해 최종적인 개량주의의 파산을 위장하고 노동계급에게 새로운 희망을 불어 넣는다.

드만이나 주오가 “계획”을 발명한 것은 아니다. 이들은 은행과 기간산업의 국유화 등 맑스주의의 이행기 강령 요구들을 채용하면서 대신 계급투쟁은 폐기했다. 그래서 자본가들의 생산수단을 혁명적으로 몰수하는 대신 구입하겠다는 계획을 생각해냈다.

이들에 의하면 국가권력은 이전처럼 “인민” 즉 부르조아 계급의 손에 있어야 한다. 다만 국가는 (정확히 공표된 적은 없지만) 가장 중요한 산업부문을 소유주들로부터 구입한다. 이 결과 소유주들은 두세 세대 동안 기생적인 채권 소유자가 된다. 순수하고 명확한 개별 자본의 착취 대신 국가 자본을 통한 간접적인 착취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 거세된 국유화 강령조차도 혁명투쟁 없이는 실현될 수 없다. 이것을 주오는 잘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미리 그는 이렇게 선언한다: 지금 유행하고 있는 계획경제를 모방한 나의 “계획”을 의회를 통한 개량이라는 잔돈으로 바꿀 용의가 있다. 주오의 이상적인 계획은 이렇다. 밀실 협상을 통해 국유화 시행 폭을 대폭 축소한다. 그래서 권한은 없지만 수고비를 상당히 받는 경제 산업 이사에 노동조합 관료들을 앉힌다.

문서상의 “계획”으로 위장된 그의 진짜 계획이 신(新)사회주의자들과 심지어는 에리오의 지지를 받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러나 노동계급 대중이 노예가 되기를 자청하지 않는 이상 “독립” 노동조합운동이라는 그의 건전한 이상은 실현될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있다. 자본주의 경제가 계속 쇠퇴하면 어떻게 되는가? 그러면 노동자들을 혁명이라는 “불순한 사상”으로부터 분리시키기 위해서 고안된 그의 계획은 혁명운동의 깃발 즉 강령이 될 수 있다.

벨기에의 경우 이 위험은 실제하고 있다. 벨기에 노동당은 드만의 계획을 지지하는 선동을 수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동자들이 그의 계획을 아주 진지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계획의 깃발 아래 특히 청년당원들을 중심으로 좌파가 결집되기 시작했다. 가면 갈수록 이론 사기꾼 드만은 귀신을 불러 냈지만 다시 돌려보낼 수 없는 무당 신세가 되고 있다. 벨기에의 볼셰비키-레닌주의자들이 이 계획을 맑스주의적 관점을 통해 비판하면서 대중운동을 발전시키려는 계획 아래 드만의 계획을 지지하는 대중운동 속으로 들어간 것은 아주 올바르다. 벨기에의 상황이 자기 나라에도 재현되지 않을까 하고 명백히 공포를 느낀 주오는 기존 계획을 성급히 후퇴시켰다. 3월 중순에 열릴 노동총연맹 전국위원회의 가장 중요한 의제는 이 계획을 지지하는 선전 활동이었다. 그런데 이 의제는 슬그머니 철회되었다. 만약 이 술책이 어느 정도라도 성공한다면 그 책임은 순전히 공동전선 지도부에 있다.

노동총연맹 지도부는 혁명 정당들과의 경쟁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자신들의 “계획”을 제출했다. 이를 통해 주오는 한가지 사실을 증명했다: 그가 숭배하는 부르조아 계급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지금 상황을 (넓은 의미로) 혁명적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혁명정당은 등장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위험천만한 자신의 계획을 더 이상 밀고 나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그는 지금 자신의 계획에서 후퇴하여 시간을 벌고 있다.

1월 사회당 중앙위원회는 은행과 중공업의 국유화 구호 하에 권력장악 투쟁을 공동으로 벌일 것을 공산당에 제안했다. 공산당 중앙위원회에 혁명가들이 있었다면 이들은 이 제안을 움켜 잡았을 것이다. 권력장악을 위한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여 사회당 내에 혁명 투쟁을 가속화시켰을 것이다. 동시에 주오가 “계획” 지지 선동을 수행하도록 강제했을 것이다. 이렇게 했다면 노동총연맹은 공동전선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프랑스 노동계급의 사회적 비중도 크게 커졌을 것이다.

그러나 공산당 중앙위원들은 혁명가가 아니라 관료들이다. 배꼽을 쓸어 내리면서 이들은 대답했다:“지금은 혁명적 상황이 아니다.” 그러자 사회당의 개량주의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위험은 이제 넘겼다! 주오는 자기 계획의 선전 활동 문제를 의제에서 성급히 철회시켜 버렸다. 결국 노동계급은 아무런 강령도 없이 거대한 사회위기에 휩싸여 있다. 다시 한번 코민테른은 반동적 역할을 수행했다.

 

농민과의 혁명적 동맹

현재 농업 위기는 보나파르트 및 파시스트 정치세력들에게 으뜸가는 인적 자원을 제공하고 있다. 불행이 목을 조를 때 농민은 가장 예상치 못한 곡예를 할 수 있다. 그는 민주주의에 대해서 가면 갈수록 불신을 보낸다.

몽무쏘는 이렇게 말했다: “민주적 권리를 방어하자는 구호는 농민의 정서에 딱 들어맞는다.” (1934년 9월 1일, [볼셰비즘 노트] 1017쪽) 이 대단한 주장은 그가 노동조합 문제는 물론 농민 문제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농민은 “좌익” 정당들로부터 등을 돌리기 시작하고 있다. “민주주의 방어”에 대해 입에 거품을 무는 것 이외에 다른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직접적 요구” 강령도 농촌에서는 진지한 효과를 전혀 기대할 수 없다. 노동계급은 농민에게 혁명의 언어로 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서로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없다. 노동자들은 농민과 함께 농업의 회생을 위한 혁명 조치들을 담은 강령을 작성해야 한다.

농민들은 전쟁을 무엇보다도 두려워한다. 혹시 라발과 리트비노프가 하듯이 국제연맹과 “군비축소”에 대한 희망으로 이들을 환상에 빠지게 할 것인가? 자국의 부르조아 계급을 타도하고 유럽 노동자 농민 공화 합중국을 위해 투쟁하자고 선동하는 것이 전쟁을 피하는 유일한 길이다. 혁명 이외에는 전쟁을 피할 방법이 없다.     

근로 농민들은 부채에 대한 고리대금 수준의 이자에 할 말을 잃고 있다. 이 상황을 타개하는 길은 단 하나 뿐이다. 은행을 몰수하여 노동자국가의 통제하에 고리대금업자들을 희생시켜 소농민과 특히 농민 조합에 신용대부를 제공해야 한다. 농민들에게 신용대부를 제공하는 은행은 농민이 통제해야한다.

농민들은 비료와 곡물 트러스트의 착취를 당하고 있다. 비료 트러스트와 대규모 제분 기업들을 국유화하고 이들을 농민과 소비자의 이해에 완전히 종속시키는 것 이외에 다른 해결책은 없다.

임대농과 소작농 같은 농민의 다양한 계층들은 거대 지주들의 착취에 의해 질식당하고 있다. 노동자 농민 정부가 통제하는 농민위원회가 지주 고리대금업자들의 재산을 몰수하는 것만이 지주 고리대금제에 대한 진정한 투쟁 방법이다.

부르조아 계급이 통치하는 한 이러한 조치들은 실현될 수 없다. 몇푼 안되는 자선은 농민을 구할 수 없다. 이들에게 임시방편은 아무 소용이 없다. 대담한 혁명 조치들이 필요하다. 권력 장악을 위해 함께 투쟁하자는 노동자들의 진지한 제안을 농민들은 이해하고 지지할 것이다.

소부르조아 계급이 스스로 이런 문제들에 대해 결정을 내릴 때까지 기다려서는 안된다. 이 계급의 견해를 형성시켜주고 이 계급의 의지를 강화시켜주어야 한다. 이것이 노동자 정당의 임무이다. 노동자와 농민의 연대는 오직 이 방식으로만 성취될 수 있다.

 

군대

군대 장교들 다수의 정서는 지배계급의 반동적 정서를 훨씬 더 응축된 형태로 반영한다. 병사 대중의 정서는 노동자와 농민의 정서를 훨씬 약한 형태로 반영한다. 노동계급과 병사들보다 부르조아 계급과 장교들이 연락을 주고 받는 방법을 훨씬 더 잘 안다.

파시즘은 장교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다. 파시즘은 강한 결의를 보이고 있으며 권총과 기관총으로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할 준비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현역 뿐만 아니라 예비역 장교들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파시스트 조직과 군대와의 유착에 대해 우리는 상당한 정도의 단편적인 보고를 접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진행되고 있는 일의 극히 일부분만이 알려지고 있다. 현재 군대 내에서 하사관들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이들을 통해 반동 세력은 상당수의 인적 보강을 기할 것이다. 총사령부의 보호를 받고 있는 군대 내의 파시스트 중핵은 활개를 치고 세력을 넓히고 있다.

병영의 젊고 계급의식이 투철한 노동자들은 사기를 저하시키는 파시즘의 영향력에 대해 성공적으로 저항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자신이 정치적으로 무장되지 않은 것이 커다란 불행이다. 이들에게는 강령이 없다. 청년 실업자 그리고 소농, 소상인, 하급 관료의 자식들은 자기 계층의 사회적 불만을 군대로 가지고 온다. 병영의 공산주의자들이 이들에게, “지금은 혁명적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할 것인가? 파시스트들은 맑스주의 강령을 도둑질하여 일부를 선동의 도구로 변모시키는데 성공했다. 사실을 말하자면 “공산주의자들”(?)은 자신의 강령을 던져버리고 대신 썩어빠진 개량주의 쓰레기를 집어들고 있다. 이보더 더 기만적인 파산을 생각할 수 있는가?

[인류]지는 병사들의 “직접적 요구들”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이것도 필요하지만 강령의 100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은 과거 어느 때보다 군대가 정치적이다. 모든 사회위기는 필연적으로 군대의 위기를 부른다. 프랑스 병사들은 명확한 해답을 기다리고 찾고 있다. 사회주의 강령만큼 사회위기와 파시스트들의 참주선동에 대한 더 좋은 대답은 있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다. 이 강령을 대담하게 전국으로 퍼뜨리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면 이것은 천개의 통로를 통해 군대 내로 침투할 것이다!

 

여성

온갖 재앙을 낳고 있는 사회위기는 근로 여성에게 가장 무거운 짐을 강요한다. 이들은 소유계급과 가족으로부터 모두 억압받고 있으므로 이중 억압에 시달리고 있다.

교회가 여성에게 행사하는 영향력 때문에 여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회주의자들”이 있다. 다음 시기 수백만 노동자 농민의 도덕적 사회적 정치적 지위가 아니라 1935년 “좌익” 지방자치 단체 몇몇에 의해서 인민의 운명이 좌우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모든 혁명적 위기에는 근로 계급 여성들의 가장 훌륭한 자질 즉 이들의 열정, 영웅성, 헌신성 등이 발휘된다. 교회의 영향력은 “자유주의자”의 무기력한 합리주의, 프리메이슨의 미적지근한 편협성이 아니라 인류 따라서 무엇보다도 근로여성의 해방을 위한 혁명적 투쟁에 의해 일소될 것이다.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강령은 우리 시대 노동계급 여성들의 활력소가 되어 널리 울려 퍼져야 한다!

 

청년

노동계급의 정치조직과 노동조합 조직 지도부에게 가해지는 가장 끔찍한 비난은 청년 조직의 허약함이다. 자선활동, 오락, 스포츠 등의 분야에서 부르조아 계급과 교회는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이 강력하다. 오직 사회주의 강령과 혁명적 행동을 통해서만 노동계급 청년들을 이들의 영향력으로부터 떼어낼 수 있다.

노동계급의 청년 세대에게는 성가신 감시인이 아니라 정치적 지도력이 필요하다. 보수적 관료주의는 청년들을 옥죄고 이들의 거부감을 불러 일으킨다. 1848년에 공산당 청년동맹이 있었다면 빠리의 거리에서 청년들이 방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수동성과 보신주의 정책은 특히 청년 중핵들에게 그 해악을 끼친다. 청년 관료들은 때도 되기 전에 늙은이가 된다. 이들은 모든 종류의 밀실 술수를 통달하지만 맑스주의는 기초도 모른다. 이들은 술수의 필요에 따라 “아무 신념”이나 끌어안는다. 사회당 청년조직 세느동맹의 지난 번 총회에서 우리 동지들 일부는 이런 유형의 인물들을 많이 보았다.

노동계급 청년에게 혁명의 문제를 전부 확실히 제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청년 세대에게 다가감에 있어서 이들의 대담성과 용기에 호소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대담성과 용기가 없이는 역사상 위대한 성취는 달성된 적이 없다. 혁명은 청년에게 대문을 활짝 열어 재낄 것이다. 청년들은 혁명을 지지할 수밖에 없다!

 


6. 왜 제 4 인터내셔널인가?

 

코민테른의 실패

사회당 전국위원회에 보낸 편지에서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두 당의 통합 조건을 제시했다: “코민테른의 강령을 채택해야 한다. 이 강령은 소련에서 사회주의의 승리를 가져왔다. 반면 제 2 인터내셔널의 강령은 제 1차 세계대전이라는 비극적 시험을 견딜 수 없었다. 그리고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파시즘의 승리라는 재앙을 불렀다.”

1914년 8월 혁명적 맑스주의자들은 제 2 인터내셔널의 파산을 선언했다. 이후의 사건들은 이 선언의 올바름을 확인시켰을 뿐이다. 그러나 독일/오스트리아 사민주의의 논란의 여지없는 파산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스탈린주의자들은 하나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을 잊어버렸다: 코민테른의 독일과 오스트리아 지부는 어떻게 되었는가? 독일 공산당은 독일 사민당 만큼이나 역사의 시험 앞에서 비참하게 실패했다. 이유는 무엇일까 ? 독일 노동자들은 투쟁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모스크바”가 자신들의 투쟁을 지도할 것이라고 믿었다. 이들은 서서히 좌로 나아가고 있었다. 독일 공산당은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었다. 베를린에서는 사민당보다 당원 수가 더 많았다. 그러나 시험의 순간이 다가오기도 전에 공산당은 내부로부터 파괴되었다. 당의 숨막히는 분위기, 설득보다는 명령, 좌충우돌 정책, 낙하산식 당직 임명, 대중에 대한 체계적인 거짓과 기만 등이 당의 척수까지 미치면서 당원들의 사기를 죽였다. 외부의 위험이 닥쳤을 때 당은 이미 시체에 지나지 않았다. 이 사실을 역사에서 지워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독일에서 코민테른이 파시즘에 굴욕적으로 항복한 후 볼셰비키-레닌주의자들은 한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이렇게 선언했다: 제 3 인터내셔널은 죽었다! 이때 모든 나라에서 스탈린주의자들이 우리에게 퍼부은 모욕은 회상할 필요조차 없다. 히틀러의 승리가 확정된 후에도 [인류]지는 매호마다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독일에서 패배하지 않았다”; “오직 배신자들만이 패배를 말한다”; “독일공산당은 매시간 성장하고 있다”; “텔만의 당은 국가권력 장악을 준비하고 있다.” 가장 커다란 역사적 패배 앞에서 이렇게 범죄적으로 거짓을 퍼붓는 행위가 코민테른 다른 지부들의 사기를 더욱 저하시킨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자신의 패배로부터 교훈을 도출할 능력을 상실한 코민테른의 운명은 돌이킬 수 없이 끝장났다.

 

자아르 지방의 교훈

이 증거는 곧 드러났다. 자아르주 주민투표는 제 2 인터내셔널과 제 3 인터내셔널에 대한 독일 노동계급의 신뢰도를 보여주기 위해 고안된 것이 명백한 실험이었다. 투표의 결과는 이미 알려져 있다: 승리한 히틀러의 폭력과 정치적으로 파산한 노동계급 정당들의 썩어 문드러진 무기력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 이 투표에서 대중은 히틀러에게 90%의 지지를 보냈다. 그리고 유태인 부르조아, 일부 관심있는 사업가, 평화주의자 등을 제외한다면 노동계급의 7% 정도만이 제 2 인터내셔널과 제 3 인터내셔널의 공동전선에 표를 던졌다. 이것이야말로 개량주의와 스탈린주의의 통합 대차대조표이다. 이 교훈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자들에게 재앙이 있을지어다!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노동 대중은 히틀러에게 표를 던졌다. 수십년 동안 사회주의의 이름으로 자기들을 투쟁으로 일으키고 조직한 정당들이 자기들을 속이고 배신했다. 이것이 노동자들이 내린 대체적인 결론이다. 사회주의 혁명의 깃발이 프랑스에서 높이 올라갔다면 자아르 지방의 노동계급은 프랑스로 눈을 돌려 계급적 단결을 민족적 단결보다 우선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프랑스의 수탉은 자아르 지방의 인민에게 혁명의 새벽을 알려주지 않았다. 프랑스에서는 공동전선의 미명하에 노동자 정당 지도자들이 비겁, 우유부단, 시간끌기를 자행했고 이 결과 대중의 사기가 땅에 떨어졌다. 결국 독일 노동계급의 대의가 발휘되지 못했다. 자아르 주민투표가 독일의 재앙에 대한 시험이면서 동시에 프랑스 노동계급에 대한 엄중한 경고 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들 노동자정당 지도자들은 사태의 표면만을 보고 말로만 자신을 위로하고 기적을 바란다. 그리고 계급의 적이 방해받지 않고 조직하고 무장하고 유리한 진지를 차지하고 결정적인 타격을 가할 가장 유리한 순간을 결정하게 만든다. 이런 정당에게는 재앙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이것이 자아르 지방이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이다.

 

코민테른의 강령

많은 개량주의자들과 (개량주의와 혁명 노선 사이에서 주저하고 있는) 중도주의자들은 좌로 나아가면서 코민테른에게 다가가려고 애를 쓰고 있다: 이들 중 일부 특히 노동자들은 현재 소련공산당의 강령에 10월 혁명의 정신이 반영되어 있기를 진정으로 희망하고 있다. 다른 자들 특히 관료들은 소련의 강력한 관료집단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려고만 한다. 출세주의자들의 운명은 우리가 관여할 사항이 아니다. 그러나 코민테른으로부터 혁명 정신을 수혈받기를 진정으로 희망하는 사회주의자들에게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여러분들은 확실히 속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코민테른의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조직은 지난 10년간 오류, 재앙, 굴복, 관료적 타락의 역사를 걸어왔습니다.

코민테른의 현재 강령은 스탈린이 1928년 레닌주의 분파를 제거한 후 개최된 코민테른 제 6차 세계대회에서 채택되었다. 지금 강령과 1917년 볼셰비키당의 강령 사이에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다. 10월 혁명의 운명은 국제혁명의 운명과 분리될 수 없다. 이것이 볼셰비키당 강령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1928년 강령은 “국제주의적” 미사여구만 있을 뿐 소련의 독자적 사회주의 건설을 출발점으로 하고 있다. 레닌의 강령은 이렇게 선언하고 있다: “서방과 동방의 혁명이 성공하지 않으면 우리는 패배한다.” 핵심 성격에 있어서 이 강령은 소련의 이익을 위해서 세계노동계급운동의 이익을 희생시킬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다. 그러나 코민테른의 강령은 바로 이것을 의미한다: 프랑스 노동계급의 혁명은 소련의 이익 (좀더 엄밀히 말하면, 소련 관료집단의 외교적 흥정)을 위해서 희생될 수 있고 희생되어야 한다. 레닌의 강령은 이렇게 경고한다: 소련 관료집단은 사회주의의 가장 나쁜 적이다. 관료집단은 부르조아의 압력을 반영하기 때문에 부르조아 계급의 복귀를 가져올 수 있다. 유럽과 세계 노동계급의 승리를 통해서만 관료주의의 해악이 제거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코민테른의 현재 강령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회주의는 세계노동계급 운동의 성공이나 패배와는 무관하다; 전능하며 오류를 저지를 수 없는 소련 관료집단의 지도 하에 사회주의는 건설될 수 있다; 오류를 저지를 수 없는 관료집단에 반대하는 어떤 세력도 반혁명 세력이므로 제거되어야 한다.    

물론 지금 코민테른의 강령에는 레닌의 강령에서 빌려온 표현이나 미사여구 등이 허다하게 널려있다. (프랑스의 테르미도르 반동 관료들과 통령정부도 같은 방식으로 자코뱅의 용어들을 사용했다.) 그러나 근본에 있어서 두 강령은 서로 배척된다. 사실 소련 관료집단은 실천을 통해 이미 오래 전부터 국제노동계급의 혁명 강령을 소비에트 국내 개량의 강령으로 대체했다. 코민테른은 기회주의와 모험주의의 정책을 통해 세계 노동계급을 약화시키고 혼란시켜왔다. 이를 통해 소련의 기본 이익마저 해치고 있다. 우리는 소련을 옹호한다. 그러나 노동계급의 손에서 국가권력을 찬탈한 관료집단과 이것의 맹목적 도구인 코민테른을 배격한다.

 

벨라 쿤, 코민테른의 우두머리

코민테른의 우두머리였던 마누일스키는 “제 3기”가 되자 (미관말직으로 강등되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대신 명백한 이유도 없이 벨라 쿤이 그의 자리를 차지했다. 이 새 우두머리에 대해서 몇마디 하는 것이 필요하다. 헝가리 군대에서 복무하다가 러시아군대의 전쟁포로가 된 그는 러시아에서 감옥생활을 했다. 그리고 10월 혁명과 함께 그는 다른 수많은 전쟁포로들처럼 공산주의자가 되었다. 헝가리로 환송된 후 그는 소규모 정당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카롤리 백작의 헝가리 정부가 연합국에 항복하자 노동자 정당들의 동의로 혁명도 없이 권력이양이 평화적으로 이루어졌다. 벨라 쿤의 공산당은 서둘러 사민당과 통합했다. 그러나 헝가리 소비에트 공화국 창설의 주역인 벨라 쿤은 특히 농민 문제와 관련하여 정치적으로 완전한 꽝이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이 결과 소비에트는 갑자기 붕괴했다. 소련에 망명한 그는 미관말직에 앉혀졌다. 레닌이 그를 정치적으로 전혀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코민테른 제 3차 세계대회가 열리기 전날 밤 코민테른 집행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레닌은 아주 격렬한 어조로 연설했다. 연설 거의 모든 대목마다 “벨라 쿤의 어리석은 행동”이 거론되었다. 코민테른 지도부에 대한 나의 소책자에는 벨라 쿤에 대한 자신의 격렬한 공격에 대해 레닌이 “사람들이 그를 신뢰하지 않도록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말한 내용이 실려있다. 이때 이후 벨라 쿤은 아무 것도 배운 것이 없을 뿐 아니라 레닌에게 그나마 배운 것까지 다 까먹었다. 코민테른 특히 프랑스 노동계급의 우두머리 역으로 그가 얼마나 부적격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유기적 단결

공산당 지도부의 말마따나 지금 이 순간에도 공산당의 세력이 증대하고 있다고 인정한다 치자. 그러나 이것도 공산당의 정책때문이 아니다. 공산당의 정책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이다. 정치 상황은 노동자들을 좌로 나아가게 만들고 있다. 현재의 기회주의 정책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에게 공산당은 “극좌”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공산당원의 증가가 미래에도 계속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전에 말했듯이 독일공산당은 파시즘에 굴복할 시점까지 당원수가 더욱 급속히 증대했다.

어쨌든 두 노동자 정당의 존재는 공동의 위험에 직면하여 두 당이 공동전선을 수립할 것을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이 사실은 노동자들이 조직적 단결을 이루고 싶어하는 열망을 설명하는데 충분하다. 프랑스에 진정한 혁명정당이 존재한다면 기회주의 정당과의 통합에 우리는 적극적으로 반대할 것이다. 격화된 사회위기의 순간에 개량주의에 대해 투쟁하는 혁명정당은 의심의 여지없이 노동자 대다수를 자신의 깃발 아래로 결집시킬 것이다. 계급투쟁의 각기 다른 단계를 대표하는 모든 조직들을 기계적으로 통합하는 것이 중요하지는 않다. 투쟁하고 있으며 투쟁하고자 하는 노동계급을 결집시키는 것이 우리가 안고 있는 역사적 과제이다. 두 경우는 전혀 다르며 심지어는 서로 모순적인 문제들이다.

그러나 프랑스에 혁명정당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내부 토론은 조금도 없이 공산당이 “사회파시즘”노선을 버리고 쉽게 급진사회당과 동맹을 맺고 “직접적 요구투쟁”을 위해 혁명적 임무를 기각한 현상은 당조직이 냉소주의자로 꽉 차 있으며 평당원들이 방향감각을 상실하여 사고할 능력이 없음을 증명한다. 공산당은 병들어 있다.

그동안 우리는 공개적으로 사회당의 노선을 비판해왔다. 따라서 여기서 다시 반복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사회당의 혁명 좌파는 서서히 노동자 투쟁의 구호과 방법이 시연되는 실험실이 되고 있다. 이것은 의심의 여지 없는 사실이다. 만약 이 그룹이 강화되고 정착되면 공산당 노동자들을 혁명투쟁으로 분기시킬 결정적인 요인이 될 수 있다. 이것을 통해서만 현 상황은 타개될 수 있다. 반면 이 그룹이 코민테른의 수렁 속으로 빠지면 돌이킬 수 없는 파멸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코민테른은 혁명 투쟁의 척추와 특성을 파괴하고 사고력을 분쇄하며 맹목적 복종만을 가르친다. 따라서 혁명가들을 훈련시키는 수단으로서는 완전히 꽝이다.

일부 동지들은 화를 내며 우리에게 이렇게 물을 것이다: “당신은 유기적 단결을 반대하는 것이요?”

그렇지 않다. 다만 물신주의, 미신, 맹목성에 반대할 뿐이다. 단결 자체는 아무런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다. 오스트리아 사민당은 노동계급의 거의 전부를 단결시켰으나 이들을 파멸로 몰아넣었을 뿐이다. 벨기에 노동당은 자신을 노동계급 유일당이라고 칭할 권리가 있으나 계속 적들에게 굴복만 해왔다. 가망없이 단순한 사람들만이 영국 노동계급을 완전히 꽉잡고 있는 노동당이 혁명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고 믿는다. 결정적인 것은 단결 자체가 아니라 단결의 실제적 내용이다.

사회당이 바로 오늘 공산당과 통합한다 하더라도 노동계급의 승리는 보장되지 않는다. 공동전선도 마찬가지이다. 오직 올바른 혁명 정책만이 승리를 보장할 수 있다. 다만 현 상황 속에서 두 정당 속에 흩어져 있는 혁명분자들이 두 당의 통합을 통해 다시 뭉치고 조직될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다. 두 당의 통합이 전진적인 의미를 갖는다면 바로 이것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두 정당의 통합으로 인해 기회주의에 대한 투쟁이 코민테른의 손아귀 속으로 들어간다면 통합은 후퇴 정도가 아니라 지옥으로 떨어지는 비극이 될 것이다. 이 점은 명확히 해야 한다.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은 승리한 혁명을 말아먹는 능력은 있지만 새로운 혁명의 승리를 확보하는 능력은 본질적으로 없다. 이들은 속속들이 보수적이다. 다시 한번 반복하자: 통령정부와 총재정부가 자코뱅주의와 갖는 유사성만큼 소련 관료집단은 구볼셰비키당과 유사하다.

환상, 맹목, 노골적인 기만 등이 분쇄되지 않으면 두 정당의 통합은 운동을 전진시킬 수 없다. 코민테른이 전염시키는 질병에 걸리지 않으려면 사회당의 혁명 좌파는 레닌주의 백신으로 확실히 접종되어야 한다. 혁명 좌파의 진전 과정을 우리가 치밀하게 그리고 비판적으로 추적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일부는 우리의 태도에 화를 낸다. 그러나 혁명 과업에 있어서 책임의 규칙은 에티켓의 규칙보다 비교할 수 없이 더 중요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감상적 관점이 아닌 혁명적 관점에서 우리에게 겨냥된 비판은 받아들일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

일련의 글들을 통해 지롬스키는 미래 통합당의 기본원칙들을 드러내려 시도했다. 이것은 르바가 하는 식으로 일반적인 얘기만 반복하는 경우보다는 훨씬 진지한 시도이다. 불행하게도 지롬스키는 그의 글에서 레닌주의가 아니라 관료적 중도주의(스탈린주의)로 가는 개량주의적 중도주의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곧 알게 되겠지만 프롤레타리아 독재 문제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어떤 이유이든 지롬스키는 일련의 글들 전체를 통해 (더욱이 스탈린이 제일 먼저 말했다고 하면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그 자체가 목표로서 간주되어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힘주어 반복한다. 마치 어딘 가에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그 자체로 목표”라고 생각한 미친 이론가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상한 반복에는 어떤 생각이 들어있다: 지롬스키 자신이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한 변명을 미리 노동자들에게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독재에 대해 사과부터 하려 들면 독재가 확립이 되겠는가!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더 이상한 것은 다음과 같은 그의 생각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사회주의 건설의 진전에 비례하여 노동자 민주주의로 변모되어야 한다.” 이 몇줄 안되는 문장에 이미 두가지 근본적인 원칙상의 오류가 숨어있다. 즉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노동자 민주주의와 대비시키고 있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그 핵심 성격상 노동자 민주주의의 최고 표현이 될 수 있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 거대한 사회혁명을 성취하기 위해서 노동계급의 역량은 최고조로 발휘되어야 한다. 즉 노동계급은 적들을 제거하기 위한 바로 그 목적으로 민주적으로 조직되어야 한다. 레닌의 말에 따르면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모든 요리사에게 국가를 경영하는 법을 가르친다.” 독재의 무서운 힘은 계급의 적들에게 가해진다. 독재의 기초는 노동자 민주주의이다.

지롬스키에 의하면 노동자 민주주의는 “사회주의 건설의 진전에 비례하여”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대체할 것이란다. 이것은 무조건 잘못된 생각이다. 부르조아 사회가 사회주의 사회로 변모하는 정도에 비례하여 노동자 민주주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함께 사멸할 것이다. 왜냐하면 국가 자체가 사멸할 것이기 때문이다. 첫째로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자 민주주의”가 존재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노동계급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국가의 억압이 불필요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사회의 발전이 독재의 민주주의로의 전화가 아니라 이것들이 모두 사회주의 사회의 경제적 문화적 조직으로 해소될 것이기 때문이다.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에 대한 추종

이 오류가 순전히 이론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면 이것에 대해서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이 오류 뒤에는 전체주의적인 정치노선이 버티고 있다. 지롬스키는 (그에 의하면 단에게서 빌린) 프롤레타리아 독재 이론을 현재 소련 관료집단에 적용시키려 한다. 더욱이 그는 의도적으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회피하고 있다: 소련의 엄청난 경제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왜 도대체 노동계급 독재는 민주주의 방향으로가 아니라 명확히 개인 숭배의 성격을 띠고 있는 괴물같은 관료주의로 발전했는가? “사회주의 건설의 발전에 비례하여” 당, 소비에트, 노동조합은 왜 질식당하고 있는가? 스탈린주의에 대한 결정적인 비판없이 이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 질문은 지롬스키가 모든 수단을 써서라도 피하고자 하는 질문이다.

전혀 통제받지 않고 있는 독자적인 관료집단은 노동계급 혁명의 사회주의적 성과들을 옹호하는 투쟁을 방기해왔다. 이 사실은 혼자 내버려 두면 “노동자 민주주의”의 발전이 아니라 소련의 완전한 붕괴를 가져올 병들고 퇴보하고 있는 독재체제가 등장했음을 증거하고 있다.

오직 서방의 혁명만이 10월 혁명의 패배를 막을 수 있다. “일국사회주의” 이론은 완전히 틀렸다. 코민테른의 강령도 마찬가지이다. 이 강령을 채택하는 것은 혁명의 기차를 절벽 밑으로 떨어뜨리는 것과 같다. 프랑스 노동계급의 혁명 성공을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이 계급의 전위가 민족주의적이고 보수적인 소련 관료집단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는 것이다. 코민테른의 강령을 통합의 기초로 공산당이 제시할 권리는 물론 있다. 다른 강령을 제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계급의 운명에 대한 책임을 인식하고 있는 혁명적 맑스주의자들은 부하린-스탈린이 작성한 이 강령을 가차없이 비판해야 한다. 단결은 좋은 일이지만 썩어 문드러진 기초 위에서는 안된다. 맑스와 레닌의 국제주의 강령에 기초하여 사회당과 공산당 노동자들을 결집시키는 것이 진보적 과업이다. 소련의 이익 뿐 아니라 세계노동계급의 이익(이 둘은 다른 것이 아닌데)은 개량주의에 대한 투쟁 뿐 아니라 스탈린주의에 대해서도 똑같은 투쟁을 요구하고 있다.

 

제 4 인터내셔널

제 2 인터내셔널 뿐 아니라 제 3 인터내셔널 역시 뼛속까지 썩어있다. 역사의 증거는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 중국, 영국, 독일, 오스트리아, 스페인 등지에서 벌어진 거대한 사건들은 이미 이 문제에 대해서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자아르 지방의 주민투표로 확인이 되었으므로 더 이상 왈가왈부할 것이 없다. 지난 10년의 비극적인 교훈에 기초하여 새로운 인터내셔널을 준비하는 일이 일정에 올라있다. 이 거대한 임무는 노동계급의 투쟁 과정 전체 특히 프랑스에서 파시즘에 대한 투쟁과 긴밀히 결부되어 있다. 적을 정복하기 위해 노동계급 전위는 기회주의나 스탈린주의와는 양립할 수 없는 혁명적 맑스주의를 체득해야한다. 이 임무를 완수하는데 우리가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엥겔스는 한때 이렇게 말했다: “프랑스인들은 전투가 다가오면 늘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우리의 위대한 선생님의 추측을 완전히 올바른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희망하자. 그러나 프랑스 노동계급의 승리는 투쟁의 불길 속에서 새로운 인터내셔널의 초석이 될 진정한 혁명정당이 등장할 때에만 가능하다. 이 길은 국제혁명을 위해서 가장 짧고 가장 유리하고 가장 효과적인 길이다.

성공이 확보되었다고 말한다면 어리석을 것이다. 승리가 가능하다면 패배 역시 불행하지만 배제되지 않는다. 공동전선의 현 정책은 두 노동조합 조직의 정책과 같이 승리를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망치고 있다. 프랑스 노동계급이 전멸하면 두 정당 역시 확실히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은 너무도 확연하다. 그렇다면 새로운 기초 하에 새로운 인터내셔널이 창건되어야 할 필요성은 모든 노동자에게 명백해질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파시즘이 승리할 경우 제 4 인터내셔널의 건설은 천개의 장애물을 만나 지극히 느리게 진행될 것이며 모든 점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혁명운동 전체의 중심은 확실히 미국으로 이전될 것이다.         

따라서 두 역사적 선택인 프랑스 노동계급의 승리 혹은 패배는 비록 리듬은 다를지라도 똑같이 제 4 인터내셔널의 길로 인도할 것이다. 볼셰비키-레닌주의자들이 표현하는 것이 바로 이 역사적 경향이다. 우리는 어떤 형태의 모험주의에도 낯선 사람들이다. 제 4 인터내셔널의 존재를 인위적으로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의 존재를 체계적으로 준비해야한다. 현존하는 두 인터내셔널의 강령과 투쟁방법은 노동계급 혁명에 극복할 수 없는 모순을 일으키고 있다. 이 모순은 적어지기는커녕 계속 증대할 것이다. 사태의 진행을 분석하면서 이것을 선진노동자들에게 증명해야 한다. 이 분석으로부터 유일하게 가능한 일반 노선이 나온다: 이론적 실천적으로 우리는 제 4 인터내셔널을 준비해야 한다.

 

자크 도리오 즉 날이 없는 칼

2월에 제 2 인터내셔널이나 제 3 인터내셔널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여러 조직들( 네덜란드의 두 정당, 독일 사회주의노동자당, 영국 독립노동자당 등)에 의해 국제회의가 개최되었다. 혁명적 맑스주의 노선을 견지하고 있던 네덜란드 정당들을 제외한 모든 참가 조직들은 각기 다른 정치 경향을 대표하고 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중도주의 중에도 보수적인 부류들이었다. 이 회의에 참가했던 자크 도리오는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표현했다: “자본주의의 위기가 맑스주의 이론을 확연히 증명하고 있는 마당에 ... 제 2 인터내셔널이든 제 3 인터내셔널이든 맑스주의의 이름으로 탄생한 정당들은 자신들에게 부여된 임무를 수행하는데 전부 실패했다.” 좌익 반대파에 대한 지난 10년간의 투쟁을 통해 자크 도리오는 지금과 같은 코민테른의 타락상을 불러오는데 일조했다. 이점에 대해서 길게 물고 늘어질 생각은 없다. 특히 중국 혁명과 관련한 그의 서글픈 역할을 회상하기 위해 시간을 허비하지는 않겠다. 다만 1935년 2월 도리오는 제 2, 제 3 인터내셔널의 실패를 이해했고 인정했다는 사실만이 지금 우리의 관심사일 뿐이다. 그렇다면 그는 새로운 인터내셔널 창설이 준비될 필요가 있다고 결론내리고 있는가? 누가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중도주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일 것이다. 새로운 인터내셔널 창설 문제에 대해서 도리오는 이렇게 적고 있다: “이 트로츠키주의적 사고는 회의에서 공식적인 비난받았다.” “공식적인 비난”이라고 말하면서 도리오는 회의의 전반적인 분위기에 휩쓸리는 것을 스스로 허용하고 있다. 이 회의는 두 네덜란드 대표의 생각에 반대해서 제 4 인터내셔널 창설 제안을 거부했다. 그렇다면 이 회의의 진짜 강령은 무엇인가? 무강령이 강령이다. 일상 활동에서 회의 참석자들은 노동계급 혁명의 임무를 밀쳐두고 거의 생각조차 않고 있다. 그러나 거의 매년 이들은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회의를 열고는 이렇게 말한다: “제 2 제 3 인터내셔널은 실패했다.” 머리를 슬프게 젓고 이들은 해산한다. 이 “조직”을 “제 2 제 3 인터내셔널 연중 장례 위원회”라고 부르는 것이 나을 것이다.

이 존경스러운 양반들은 자신들이 “현실주의자” “전술가” 심지어는 “맑스주의자”라고 믿고 있다. 이들은 그저 격언들을 확산시키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사태를 미리 짐작해서는 안된다...” “대중은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등등. 그렇다면 왜 두 인터내셔널의 파산을 선언하면서 이들은 사태를 미리 짐작하고 있는가? “대중”이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그런데 당신네들의 도움이 없이 사태를 이해한 대중은 ... 자아르 지방에서는 히틀러에게 표를 던지고 있다. 당신네들은 제 4 인터내셔널 창건을 위한 준비를 “역사 과정”에 종속시키고 있다. 그러나 당신네들은 이 과정의 일부가 아닌가? 맑스주의자들은 언제나 역사 과정의 선두에 서있어야 한다. 당신네들이 대표하는 것은 과정의 어느 부분인가?

“대중은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대중은 동질적이지 않다. 새로운 사상은 먼저 선진 분자들에 의해서 체화된다. 그리고 이들을 통해 대중 속으로 파고든다. 고상하고 지혜로운 당신들이 제 4 인터내셔널 창설의 필연성을 이해한다면 대중에게 이 결론을 숨길 권리가 있는가? 그리고 더 큰 잘못이 있다. 기존 인터내셔널의 실패를 인정하고 나서 새 인터내셔널 창설의 사상을 “비난하다(!!!)”니. 그렇다면 도리오는 혁명 전위에게 어떤 구체적 전망을 제시하고 있는가? 아무 것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혼란, 곤란, 사기저하를 초래할 뿐이다.

이것이 중도주의의 본질이다. 중도주의의 본질을 그 뿌리까지 이해해야 한다. 사회위기라는 급격한 상황의 압력에 의해 중도주의는 분석, 평가, 비판을 철저히 수행한다. 이 부문에서 독일 사회주의노동자당 지도자들은 이 회의를 주도했는데 진실하게 볼셰비키-레닌주의자들이 2년 3년 아니 10년 전에 말했던 것들을 반복했다. 그러나 중도주의자들은 혁명적 결론을 내릴 지점에 와서는 멈추어 버린다. 코민테른의 장례식을 가족들이 모여서 기념한다? 나쁠 것이 없지 않은가? 그러나 새로운 인터내셔널을 위한 준비는? 정말 안될 말이다. 트로츠키주의를 “비난하는 것”이 훨씬 좋다.

도리오는 입장이 없다. 그리고 그는 어떤 입장도 원치 않는다. 코민테른 관료들과 결별한 후 그는 진보적이고 중대한 역할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는 이 역할의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그는 혁명적 임무를 방기한다. 대신 독일 사회주의노동자당 지도자들을 스승으로 모셨다. 중도주의 클럽의 종신회원이 되고자 하는가? 중도주의는 날이 서있지 않은 칼이라는 것을 그에게 이해시켜야 한다.

 


7. 결론

 

계급 역관계

“기다려”, “참을성이 있어야지”, “시간을 벌어” --- 이것이 바로 개량주의자, 평화주의자, 노동조합주의자, 스탈린주의자들의 구호이다. 시간은 우리 편이다가 정책의 근거이다. 이 근거는 실제하는가? 아니다,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 준혁명적 상황에서 혁명적 정책을 실현시키지 않는다면 시간은 우리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공동전선을 칭송하는 공허한 찬송가가 울려 퍼지고 있으나 계급 역관계는 지난 1년동안 노동계급에게 해로운 쪽으로 변화했다. 왜 그럴까? “모든 것이 힘들게 되어가고 있다”([인민]지 1935년 3월 18일)는 그의 논문에서 마르쏘 삐베르는 이 문제에 대해 올바로 대답했다. 금융자본의 배후조종을 받아 반동세력은 공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이 결과 이들은 새로운 진지를 점령하고 강화시키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공업, 농업, 학교, 언론, 법정, 군대). 노동계급에게는 공세를 취하자는 류의 공허한 말만 들리고 있다. 사실 방어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진지는 강화되기는커녕 전투도 없이 적들에게 넘겨지고 있거나 투항이 준비되고 있다.

정치적 계급 역관계는 객관적 요인들 (생산과정에서의 역할, 수적인 우세 등) 뿐만 아니라 주관적 요인들에 의해서도 결정된다. 우세에 대한 의식실제 우세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하루 하루 파시즘은 탈계급화한 소부르조아 계급에게 자신감을 고양시키고 있다. 반면 공동전선의 지도 그룹들은 노동계급의 의지를 약화시키고 있다. 맑스와 레닌의 제자가 아니라 부처와 간디의 제자인 평화주의자들만이 폭력, 무장, 물리적 투쟁 등을 반대한다. 스탈린주의자들은 기본적으로 똑같은 내용을 설교하고 있다. 단지 “혁명적 상황이 아니다”라고 상기시키고 있다. 모든 종류의 파시스트와 평화주의자들 사이에 분업 체계가 성립되었다. 전자는 반동진영을 강화시키고 후자는 혁명진영을 약화시킨다. 이것이 적나라한 진실이다!

 

그렇다면 가망이 없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두가지 중요한 요인이 개량주의자들과 스탈린주의자들의 생각과 반대로 돌아가고 있다. 첫 번째로 독일, 오스트리아, 스페인의 신선한 교훈들이 모든 사람의 눈 앞에 생생하게 드러나고 있다. 노동계급 대중은 놀라고 있으며 개량주의자들과 스탈린주의자들은 당혹해 하고 있다. 둘째로 맑스주의자들은 노동계급 전위 앞에 제때에 혁명의 문제를 제시하는데 성공했다.

우리 볼셰비키-레닌주의자들은 수치를 부풀리려는 욕망에 결코 사로잡혀 있지 않다. 우리의 구호가 갖는 힘은 현재 준혁명 상황의 논리를 반영하는데에 있다. 각 단계마다 사태의 전개는 우리의 분석과 비판이 올바르다는 것을 확증하고 있다. 사회당 좌파는 성장하고 있다. 공산당 내에서 비판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질식되고 있다. 그러나 사회당 혁명 분파의 성장은 스탈린주의자들의 치명적인 관료적 규율에 구멍을 낼 수 밖에 없다. 두 정당의 혁명가들은 공동투쟁을 통해 서로의 손을 맞잡을 것이다.

우리의 규칙은 언제나 같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라. 혁명의 대의를 위해서 이것만큼 소용되는 것은 없다. 노동계급의 역량은 아직 소진되지 않았다. 소부르조아 계급은 아직도 선택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많은 시간을 허비했으나 아직 시간은 남아있다.

승리는 가능하다! 이것만이 아니다, 승리는 확실하다 --- 승리가 미리 확실해질 수 있다면 말이다. 우리가 승리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말이다. 우리는 승리를 열망해야하며 온갖 장애물을 극복해야 하며 적을 압도해 완전히 패배시켜야 한다. 그리고 적의 가슴을 우리의 무릎으로 짓눌러야한다.

동지들, 친구들, 형제들, 자매 여러분들! 볼셰비키-레닌주의자들은 투쟁과 승리의 길로 여러분을 부르고자 한다!


 

인민전선이 아닌 투쟁위원회를 건설하자 (1935년 11월 26일)

 

“인민전선”은 급진당 또는 규모는 더 작지만 이와 유사한 정당에 의해서 대표되는 제국주의 부르조아지와 노동계급의 연합이다. 이 연합은 의회 그리고 의회 밖의 영역으로 확대된다. 이 두 영역에서 급진당 자신은 완벽한 행동의 자유를 누리면서 노동계급의 투쟁에는 지극히 엄격한 제한을 가한다.

급진당은 현재 세력이 쇠퇴하고 있다. 선거가 있을 때마다 급진당 지지자들은 좌로 또는 우로 옮겨간다. 반면 진정한 혁명정당이 없기 때문에 사회당과 공산당의 지지자는 더 늘어나고 있다. 소부르조아 계급을 비롯한 근로대중은 일반적으로 확실히 좌로 나아가고 있다. 반면 노동자 정당 지도자들의 노선은 자명하게 우로 나아가고 있다. 투표행위와 투쟁을 통해 대중은 급진당의 영향에서 벗어나려 애쓰고 있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공동전선 지도자들은 급진당을 구하려고 애쓰고 있다. “사회주의” 강령을 내세워 대중의 신뢰를 획득한 후 노동자 정당 지도자들은 이 신뢰의 대부분을 급진당에게 헌납하고 있다. 대중은 급진당을 전혀 신뢰하지 않고 있는데 말이다.

지금의 “인민전선”은 노동자 민주주의 뿐 아니라 형식적 부르조아 민주주의마저도 부끄러움 없이 짓밟고 있다. 급진당에 표를 주고 있는 다수의 사람들은 근로인민의 투쟁이나 인민전선의 투쟁에 동참하지 않는다. 그러나 급진당은 인민전선에서 동등한 지위가 아니라 특권적 지위를 점하고 있다. 이 결과 노동자 정당들은 급진당의 강령에 의해 활동을 제한받고 있다. [인류]지의 냉소주의자들은 이것이 정상이라고 가장 열렬하게 주장하고 있다.

최근의 상원의원 선거는 인민전선 내에서 급진당의 특권적 지위를 아주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노동자들이 안겨준 상원 의석을 비노동자 정당에게 넘겨준다고 공산당 지도자들은 공공연히 자랑했다. 이것은 부분적으로나마 부르조아 계급이 설정해 놓은 상원의원의 재산 자격조건을 공동전선이 다시 도입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원래 “전선”은 직접 당면한 투쟁을 수행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투쟁에 있어서 1명의 노동자는 인민전선을 추종하는 10명의 부르조아만큼 가치가 있다. 전선의 혁명적 투쟁 역량의 관점에서 보면 상원 의석은 급진당의 부르조아가 아니라 노동자들에게 넘겨져야 했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특권이 아니다. 인민전선이 “민주주의”를 방어하기 위해 수립이 되었는가? 그렇다면 인민전선 내부에 먼저 이 의도가 관철되어야 한다. 이것은 인민전선의 지도자들이 투쟁하는 대중의 의지를 직접 즉시 반영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아주 간단하다. 선거를 통해서 하면 된다. 파시즘, 라발의 보나파르트 정권, 제국주의자들의 전쟁음모, 그밖에 모든 형태의 억압과 폭력에 대항하는데 있어서 노동계급은 함께 투쟁할 수 있는 권리를 어느 누구로부터도 박탈하지 않는다. 계급의식이 투철한 노동자들이 실제의 그리고 잠재적 동맹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하나밖에 없다. 즉 투쟁을 행동으로 하라는 것이다. 투쟁의 주어진 단계에서 정말로 동참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공동의 규율을 준수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은 인민전선의 지도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

특정 도시, 지구, 공장, 병영, 마을에서 인민전선을 지지하는 200명, 500명, 1000명 단위의 시민들은 투쟁의 순간에 지구 투쟁위원회에 대표를 보내야 한다. 투쟁에 참여하는 모두는 공동의 규율에 종속된다.

코민테른의 마지막 세계대회는 디미트로프의 보고서를 통해 인민전선의 대중적 지지기반으로 투쟁위원회가 대중의 선출에 의해서 수립되어야 한다고 천명했다. 이것은 아마도 코민테른의 전체 결의문 가운데 유일하게 진보적인 내용이다. 그러나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스탈린주의자들은 이것을 실천하는 조치를 하나도 내오지 않고 있다. 부르조아 계급과의 협력관계에 금이 갈 것을 두려워하여 이들은 감히 이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투쟁위원회의 선거에는 노동자 뿐만 아니라 공무원, 관료, 퇴역군인, 수공업자, 소상인, 소농민 등이 참여할 것이다. 따라서 소부르조아 계급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노동계급의 투쟁 임무와 투쟁위원회는 아주 밀접하게 조화를 이룬다. 그러나 노동관료들과 부르조아 계급 사이의 협조에 대해서는 극단적으로 일을 복잡하게 만든다. 한편 현재의 인민전선은 노동계급의 정치적 착취자인 개량주의자와 스탈린주의자 그리고 소부르조아 계급의 정치적 착취자인 급진당 사이에 체결된 계급협조주의 기관에 지나지 않는다. 투쟁위원회의 진정한 대중적 선출은 인민전선의 대오로부터 자동적으로 부르조아 거간꾼인 급진당을 솎아내어 스탈린의 범죄적 정책을 박살낼 것이다.

그러나 주어진 법규에 의거하여 주어진 날과 시간에 투쟁위원회를 선출하도록 대중을 소집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류가 될 것이다. 이러한 접근 태도는 지극히 관료적이고 따라서 공허한 것이 될 것이다. 특정 형태의 투쟁에 참여하여 혁명적 지도력의 필요성을 느낄 경우에만 노동자들은 투쟁위원회를 선출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모든 대중의 형식민주주의적 대표성이 아니라 투쟁하는 대중의 혁명적 대표성이다. 투쟁위원회는 투쟁기관이다. 근로인민의 어떤 부위가 투쟁위원회의 수립에 관심을 보일 지를 정확히 미리 추측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투쟁하는 대중의 선진부위와 후진부위를 가르는 분리선은 투쟁 과정에서 그어질 것이다.

프랑스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대중의 혁명적 에너지가 뚤롱, 브레스트, 리모쥬 등의 고립분산적인 폭발로 분산 소진되고 결국 대중의 냉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오직 의식적인 배반자들과 가망없는 바보들이나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인민전선 정부에 의해서 축복을 받을 그 순간까지 대중이 투쟁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지금 시점에서 가능하다. 지금 상황에서 파업, 항의 시위, 가두 전투, 직접 봉기 등은 전적으로 불가피하다. 노동자 정당의 임무는 이 운동들을 저지하고 마비시키는 것이 아니라 통일시키고 가능한 선에서 가장 강력하게 만드는 것이다.

개량주의자들과 스탈린주의자들은 급진당을 두렵게 만드는 것을 무엇보다도 두려워 한다. 인민전선은 산발적인 대중 투쟁의 방해자 역할을 의식적으로 맡고 있다. 마르쏘 삐베르 유형의 “좌파”는 대중이 인민전선에 대해서 분노를 갖지 않게 만드는 방패막이 되고 있다. 대중이 투쟁 과정에서 투쟁의 요구에 필요한 새로운 투쟁기구를 만드는 일에 도움을 받을 때만 상황은 유리하게 전개될 수 있다. 투쟁위원회는 바로 이 목적을 가지고 있다. 뚤롱과 브레스트의 투쟁에서 노동자들은 이러한 기구를 수립할 것을 촉구받기만 했어도 어떠한 주저함도 없이 이렇게 했을 것이다. 리모쥬의 학살 바로 다음날 노동자와 소부르조아 계급의 상당 부분은 학살을 조사하고 이것의 재발을 막을 투쟁위원회를 선출할 의지를 반드시 드러냈을 것이다. 올해 여름 병영에서 군복무 기간 연장에 반대하는 병사들의 투쟁이 터졌을 때 투쟁 방향이 제시만 되었다면 병사들은 즉시 대대, 연대, 주둔부대 차원의 투쟁위원회를 수립했을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지방 차원 뿐만 아니라 전국 차원에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투쟁의 단계마다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일어날 것이다. 우리의 임무는 이런 상황에서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이다. 노동자 정당과 노동조합 기구의 반혁명적 저항을 분쇄할 유일한 수단인 투쟁위원회의 중요성을 명확히 이해하는 것, 바로 이것이 우리의 임무를 다하는 첫번째 조건이다.     

그렇다면 투쟁위원회가 노동자 정당과 노동조합의 대용품인가? 이렇게 문제를 제기한다면 어리석을 것이다. 대중은 자신의 생각, 전통, 그룹, 조직 등을 가지고 투쟁에 돌입한다. 노동자 정당들은 계속 존재하고 투쟁한다. 투쟁위원회 선거에서 각 정당은 자기 당원들을 선출하려고 당연히 애쓸 것이다. 정당과 분파로부터 완전하게 독립되어 있다면 투쟁위원회는 다수결로 매사를 결정할 것이다. 노동자 정당에 비해 투쟁위원회는 혁명 의회라고 할 수 있다. 투쟁에서 정당들은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전제되어 있다. 이들은 투쟁을 통해 시험받고 대중은 썩어빠진 정당들로부터 자신을 단절하는 법을 배운다.

그렇다면 투쟁위원회는 소비에트인가? 특정 조건에서는 투쟁위원회가 소비에트로 전화할 수 있다. 그러나 투쟁위원회를 소비에트라고 부르는 것은 정확하지 못할 것이다. 1935년이 된 지금 대중은 소비에트를 국가권력을 장악한 상태와 연관시키는데 익숙해 있다. 그러나 현재 프랑스의 운동 상황은 노동계급의 국가권력 장악과는 한참 떨어져 있다. 초기 단계에서 러시아의 소비에트는 노동자위원회 또는 파업위원회로 불렸다. 지금 단계에서 투쟁위원회는 방어적 투쟁을 하고 있는 프랑스의 인민대중을 단결시키는 임무를 띠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공세적 투쟁에 대비해 대중이 스스로의 힘을 의식하도록 만드는 임무를 띠고 있다. 이 조직이 진정한 소비에트가 될 지는 지금의 상황이 궁극적으로 혁명적 상황에 도달하는 가에 달려있다. 물론 이것은 혁명적 전위의 의지 뿐만 아니라 다양한 객관적 조건에 달려있다. 어쨌든 인민전선이라는 장애물을 만난 대중운동은 투쟁위원회가 없이는 전진할 수 없을 것이다.

투쟁하는 대중이 관료들의 장난 때문에 자신의 임무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노동자 민병대 수립, 노동자 무장, 총파업 준비 등과 같은 임무는 실제적이기 보다 계획으로만 존재할 것이다. 오직 투쟁 과정에서 탄생한 투쟁위원회를 통해서만 수천이 아니라 수만으로 구성된 진짜 노동자 민병대가 탄생할 것이다. 나라의 가장 중요한 중심부를 포괄하는 투쟁위원회만이 좀더 결정적인 투쟁 국면으로 이행할 순간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때 이 투쟁의 지도력은 당연히 투쟁위원회가 행사할 것이다.

지금까지 얘기한 제안으로부터 노동계급 혁명투사들의 정치활동과 관련된 결론이 도출된다. 아주 중요한 결론은 소위 [혁명 좌파] 그룹과 관련되어 있다. 이 그룹은 혁명 대중운동의 법칙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중도주의자들이 말로는 아무리 “대중”을 외쳐도 이들은 언제나 개량주의 조직에게 이끌린다. 이런 저런 혁명 구호를 반복하면서 마르쏘 삐베르는 이 구호를 “조직적 단결”이라는 추상적인 원칙에 종속시킨다. 그런데 이것은 실제로는 애국주의자들과 혁명가들이 단결하자는 것이다. 사회애국주의 조직들의 저항을 분쇄하는 것이 대중에게 죽고 사는 문제가 되는 바로 그 순간에 좌파 중도주의자들에게는 이 조직들의 “단결”이 혁명 투쟁의 이익을 초월하는 절대적인 “선” 이다.

대중을 사회애국주의자들의 배신적 지도력으로부터 떼어낼 필요성을 철저히 이해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투쟁위원회는 수립될 것이다. 그러나 삐베르는 지롬스키를 꼭 붙잡고 지롬스키는 블룸을 꼭 붙잡고 블룸은 다시 토레즈와 함께 에리오를 꼭 붙잡고 이들은 다시 라발을 꼭 붙잡는다. 삐베르는 인민전선에 가입한다. 지난번 전국위원회 회의에서 그가 블룸의 뻔뻔스러운 결의문에 찬성표를 던진 것이 공연한 행위가 아니었다. 그리고 인민전선은 라발 보나파르트 정권의 한 부속물로 가입한다. 보나파르트 정권의 몰락은 불가피하다. 에리오-블룸-까쉥-토레즈-지롬스키-삐베르의 인민전선 지도부가 다가올 결정적인 투쟁국면에도 계속 그 세력을 유지한다면 보나파르트 정권은 불가피하게 파시즘에게 길을 내어줄 것이다. 노동계급 승리의 조건은 현재 지도부의 청산에 있다. 이런 조건 속에서 “단결” 구호는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죄악이다. 프랑스 제국주의와 국제연맹의 앞잡이와는 단결할 수 없다. 이들의 배신적인 지도부에 대항해 혁명적 투쟁위원회를 수립해야한다. 마르쏘 삐베르가 우두머리로 있는 소위 [혁명 좌파] 그룹의 반혁명적 정책을 가차없이 폭로하는 것을 통해서만 이러한 투쟁위원회는 수립될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 대오 내에 환상과 의구심이 존재할 여유가 없다.

   

 

전환기의 프랑스 1 936년 3월 28일

(출전: [프랑스는 어디로]. 이 논문은 [테러주의와 공산주의] 1936년 판 서문으로 작성되었다.)

 

본 저서 [테러주의와 공산주의]는 우리 시대 노동계급혁명 정책의 방법론을 설명하기 위해 쓰여졌다. 저서의 내용은 혁명정책과 마찬가지로 논쟁적이다. 대중이 우리의 노선으로 획득되면 지배계급에 대한 논쟁은 어느 단계에서 혁명으로 전화한다.

혁명정책의 이론적 기초는 현대 사회, 그 국가와 법, 이데올로기의 계급적 성격을 명확히 이해하는 데에 있다. 부르조아 계급은 부르조아 정치의 착취적 성격을 은폐하기 위해 “민족”, “조국”, “민주주의” 등 추상적 용어를 동원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부패한 신문 가운데 하나인 [시대]지는 매일 프랑스 인민에게 애국과 애타심에 대해 웅변을 늘어 놓는다. 한편 [시대]지의 애타심 역시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정해진 가격에 국제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이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혁명 정치의 첫 걸음은 대중의 의식을 좀먹는 부르조아 계급의 거짓 선전을 폭로하는 것이다. 이러한 거짓 선전들은 “사회주의”, “혁명” 등의 사상과 결합될 경우 특히 해악적 성격을 지닌다. 과거 어느 때보다 프랑스 노동자 조직의 어조는 이러한 결합을 조장하는 자들에 의해서 결정되고 있다.

이 저서의 초판은 프랑스공산당의 형성 단계에 어느 정도 역할을 했다. 이 사실에 대한 상당한 근거가 당시 필자에 의해 인식되었으며 이것의 흔적을 1924년까지의 [인류]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그로부터 12년이 지나면서 열병에 걸린 듯한 좌충우돌 끝에 코민테른은 급격하게 성격이 변하였다. 본 저서가 지금 코민테른에 의해서 금서목록에 올라있다는 사실을 언급하는 것으로 이 사실은 충분히 설명될 것이다. 사상과 활동 방법에 있어서 (진짜는 전혀 공산주의적이지 않은) 프랑스공산당 현 지도부는 카우츠키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원래 본 저서는 카우츠키를 겨냥한 것이었다. 다만 현 공산당 지도부는 카우츠키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무식하고 냉소적이다. 까쉥과 그 동료들이 개량주의와 애국주의로 복귀한 사실이 이 저서의 신판 발간에 충분한 정당성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좀더 심각한 동기가 존재한다. 이 동기는 제 3 공화국을 뒤흔들고 있는 심도 깊은 준혁명적 위기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테러주의와 공산주의]가 나온지 18년이 되던 1933년에서 1935년까지 필자는 프랑스에 있었다. 물론 경찰의 끊임없는 감시를 받으며 지방에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필자가 머문 이제르 군(郡)에서는 사소하고 아주 뻔한 에피소드가 벌어졌다. 그러나 이 에피소드는 프랑스 정치 상황을 단번에 인식할 수 있는 열쇠를 제공한다. 철강협회가 운영하는 병원에 어느 청년 노동자가 막 중대한 수술을 받을 참이었다. 그런데 그는 우연히 혁명운동의 신문(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가 순진하게 혁명운동의 신문이라고 생각한 [인류]지)를 구독하기로 했다. 그러자 병원 측은 이 부주의한 환자와 나중에 그와 동조한 네명의 환자들에게 최후통첩을 보냈다: 이 불순한 신문을 계속 구독할 경우 즉시 퇴원시킬 것이다. 병원 내에 교회를 비롯한 반동 세력의 선전이 아주 공공연히 이루어 지고 있다고 이들이 항의한들 별 수 없었다. 의원직도 없고 장관직도 없으며 오직 자신들의 소중한 건강과 생명 밖에 돌볼 것이 없는 이들 보통 노동자들에게 최후통첩은 소용이 없었다. 수술 일정이 잡힌 한명을 포함해 5명의 환자들은 병원에서 쫓겨났다. 당시 그르노블은 사회당의 마뗑이 시장으로 있었다. 사회당의 주류이며 레옹 블룸으로 대표되는 보수적 부르조아 정치인 가운데 한명이 바로 그였다. 퇴원 조치된 노동자들은 시장의 도움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모든 호소와 편지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시장과 면담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그러자 이들은 이 지역 좌익 신문 [드뻬슈]지를 찾았다. 이 신문은 급진당과 사회당이 비밀 카르텔을 구성해 운영하고 있었다. 이 일이 철강협회 소유의 병원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자 신문사 대표는 개입하기를 딱 잘라 거절했다. 이 강력한 조직에 대한 처신을 잘못해서 이 신문은 철강협회 산하 기업과 관련된 어떤 광고도 싣지 못해 2만 프랑의 손해를 본 적이 있었다. 노동자들과는 달리 시장이나 “좌익” 신문 대표는 조심하지 않으면 손해를 볼 처지에 있었다. 따라서 이들은 게임이 되지 않는 싸움에 끼어들기를 거절하고 노동자들이 병에 걸린 장과 콩팥을 운명에 맡기도록 내버려 두었다.

일주일에 한두번 이 사회당 소속 시장님은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연설을 통해 천명한다. 그리고 자기 젊은 시절의 기억을 희미하게나마 되살린다. 선거 때가 되면 [데뻬슈]지는 시장과 사회당을 지지한다. 모든 일이 질서정연하게 이루어진다. 철강협회는 자본주의의 물질적 이해에 전혀 해가 되지 않는 이런 종류의 사회주의를 자유주의적 관용으로 못본 체 한다. 일년에 2만 프랑 상당의 광고를 통해 중공업과 은행의 봉건주의자들은 거대한 신문 카르텔을 완전히 지배한다. 그리고 신문 뿐이 아니다. 철강협회는 직접 간접적 주장을 펼친다. 그런데 이것은 사회주의자들을 포함한 모든 시장, 상원의원, 하원의원들에게는 가볍게 다루어져서는 안된다. 프랑스의 공직사회 전체가 금융자본의 독재 하에 놓여있다. 라루쓰 사전은 이 정치체제를 “민주공화국”이라고 부른다.

이제르 군 뿐만 아니라 프랑스 전역의 좌익 하원의원들과 기자 양반들에게 자본주의 반동세력과의 동거는 끝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들은 잘못 알고 있었다. 오랫동안 부패하고 녹이 슬더니 민주주의는 갑자기 자기 정수리에 총이 겨누어져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히틀러의 재무장이 피할수 없는 물리적 현실로 드러나면서 국가 간의 관계가 위기에 처했다. 이로서 소위 “국제법”의 허황되고 환상적인 성격이 폭로되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들라로크 대령의 파시스트 깡패집단이 무장을 완료했다. 이 사건은 프랑스의 국내 세력관계를 위기로 몰아넣고 예외없이 모든 정당들의 개혁과 재편을 강요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민주공화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는 소유관계를 방어하기 위한 무장부대이다; 모든 국가의 행위는 이 사실을 위장하고 장식하기 위해 존재할 뿐이다. 에리오나 블룸 같은 “법”의 당당한 수호자들은 국가의 역할에 대한 이 냉소적인 견해에 분노했다. 그러나 히틀러와 들라로크는 각자의 영역에서 다시 한번 엥겔스의 말이 옳다는 것을 증명했다.

1934년 초 달라디에는 보통, 평등, 직접, 비밀 투표를 통해 수상이 되었다. 그는 주머니에 손수건과 국가주권을 넣고 다녔다. 그러나 들라로크와 모라의 파시스트 깡패집단이 경찰이 타는 말의 다리 근육을 칼로 잘라버리고 총격을 감행하자 달라디에는 수상직을 사임하고 무장 깡패집단의 두목들이 지명한 허수아비들에게 이 자리를 넘겨주었다. 이 사실은 모든 선거 관련 통계수치보다 더욱 중요하다. 그리고 최근 프랑스 역사의 장에서 지워질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사실은 미래를 예시하기 때문이다.

물론 정치과정이 권총을 든 모든 집단에 의해 언제나 바뀔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정 조건하에서 특정 계급의 기관인 무장대만이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들라로크 대령과 그의 똘마니들은 사회 위기의 상황에서 “법과 질서”를 구하려 한다. 그리고 프랑스의 법과 질서가 중소 부르조아에 대한 금융자본의 지배를 의미하고 노동계급과 이 계급에 근접한 사회계층에 대한 부르조아 계급의 지배를 의미하는 한 들라로크의 깡패집단은 금융자본의 무장대에 지나지 않는다.

이 생각은 전혀 새롭지 않다. 심지어 [인민]지와 [인류]지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물론 이 신문들이 처음 이런 생각을 표방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신문들은 진실의 반만을 얘기하고 있다. 다른 똑같이 중요한 진실의 반은 추종자를 대동한 에리오와 달라디에도 금융자본의 똘만이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급진당이 수십년동안 프랑스의 집권당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숨바꼭질을 할 생각이 없다면 우리는 명확히 이렇게 말해야 한다: 들라로크도 달라디에도 모두 똑같은 주인을 모시고 있다. 그렇다고 이 둘이 같은 족속이며 같은 통치방식을 쓴다는 것은 아니다. 이와 정반대이다. 이들은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이다. 마치 나름대로 구원의 비결을 가지고 있는 전문적인 무당과 같다. 달라디에는 삼색기 민주주의를 통해 질서를 유지할 것을 약속한다. 들라로크는 수명을 다한 의회제도는 싹쓸어버리고 공공연한 군사-경찰 독재 체제를 도입할 것을 주장한다. 이들의 정치 방식은 서로 적대적이지만 정치 목표는 똑같다.

들라로크와 달라디에로 대표되는 두 세력 간의 적대관계는 자본주의의 쇠퇴와 부패, 이 체제의 불치병인 위기에 그 역사적 근거를 두고 있다. 끊임없는 기술의 발전과 개별산업의 폭발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자본주의는 생산력 발전의 브레이크로 작용하고 있으며 사회 및 국제 관계에서 극단적인 불안정을 야기하고 있다. 의회 민주주의는 자유경쟁 및 자유무역 시대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생산력이 상승곡선을 그리고 상품시장이 확대되고 대중의 생활수준이 부분적으로나마 높아지고 자본주의 국가들이 살아남을 수 있고 살아남을 수 있도록 서로 인정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파업, 결사, 언론의 자유를 인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소련을 제외한다면 제국주의 시대는 국민소득의 정체와 하락, 고질적인 농업위기, 구조적 실업 등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통풍과 동맥경화가 특정 연령에 나타나는 것처럼 현 자본주의 단계의 특징이다. 세계경제의 혼란을 지난번 세계대전의 결과라고 설명하는 것은 까이요, 스포르자 백작 등의 가망 없는 피상적 지식을 드러낼 뿐이다. 세계대전은 자본주의 국가들이 이미 임박한 경제적 파국의 모순을 적대국의 등짝에 쏟아 붓는 시도에 지나지 않았다. 이 시도는 실패했으며 파국의 정도를 깊게 했을 뿐이다. 이 결과 새로운 전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프랑스의 경제 관련 통계수치들이 믿을 수 없고 계급 모순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지만 사회 붕괴의 현상들은 은폐할 수가 없다. 국민소득의 일반적 하락 속에서 그리고 진정으로 끔찍스러운 농민의 소득 하락 그리고 도시 서민의 파산과 실업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일년 매출액이 1억에서 2억 프랑인 거대기업들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 그야말로 프랑스의 금융자본은 프랑스 인민의 피를 빨아먹고 있다. “국민적 단결”의 이데올로기 및 정치의 사회적 배경이 바로 여기에 있다.

경제가 쇠퇴하는 과정 속에서도 위기의 완화와 일시적인 호황은 가능하며 또 불가피하다. 그러나 이것들은 순전히 일시적일 뿐이다. 다른 나라들의 뒤를 이어 우리 시대의 일반적 경향은 프랑스를 다음과 같은 대안으로 가차없이 몰아가고 있다: 노동계급이 전적으로 노쇠한 부르조아 질서를 타도하지 않으면 자본주의는 자기보호를 위해 의회 민주주의를 파시즘으로 대체해야 한다. 파시즘은 얼마나 지속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무쏠리니와 히틀러의 운명이 말해줄 것이다.

1934년 2월 6일 파시스트들은 증권시장, 은행, 트러스트의 직접 명령을 받고 총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바로 이 금융자본의 핵심부가 달라디에의 사임과 두메르그의 집권을 명령했다. 그리고 급진당의 일반적 성격에 걸맞게 급진당 수상이 겁에 질려 굴복했다면 이것은 들라로크 일당을 배후에서 지휘하는 자가 바로 자기 주인이라는 것을 그가 알았기 때문이었다. 다른 말로 하면 [데뻬슈]지의 대표와 그르노블 시장이 철강위원회의 구역질나는 잔혹함을 폭로하지 않은 것과 같은 이유로 달라디에는 두메르그에게 권력을 양도하였을 뿐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서 파시즘으로의 이행은 사회 격동이라는 위험을 안고 있다. 바로 이점 때문에 부르조아 계급의 지도부 내부에는 전술적 동요와 이견이 존재한다. 자본의 총수들은 파시스트 무장대를 더욱 강화시키는 데에 의견이 일치한다. 위험의 순간에 안전판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이 무장대에게 어떤 수위의 역할을 부여할 것인가? 즉시 공세를 취하게 명령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의 협박수단으로 활용하는 예비 병력으로 묶어둘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다.

금융자본은 급진당의 소부르조아 대중 장악력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노동계급을 “민주적” 규율의 틀 속에 가두어 두기 위한 소부르조아 대중의 압력이 힘을 잃고 있다고 이들은 믿고 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이들은 파시스트들이 상황을 장악할 능력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 파시즘이 권력을 장악하고 확고한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대중적 기반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시스트 조직의 배후 세력은 의원들의 웅변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격렬한 분노, 총파업 그리고 나중에는 뚤롱과 브레스트 지방 등의 봉기를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에 박혀 있었다. 물론 총파업은 시초부터 주오로 대표되는 노동조합 관료들에 의해 교살되었다. 그래서 파시스트 조직은 활동을 약간 절제할 것을 명령받았으며 이 결과 급진당은 그나마 약간 숨돌릴 여유를 가졌다. [시대]지는 많은 기사를 통해 “청년 세대”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겠다고 이미 제안한 바 있었다. 그런데 이 신문은 프랑스 인민의 천재성과 가장 조화를 이루는 자유주의 정권의 우월한 장점들을 새로이 발견했다. 이래서 불안정하고 일시적인 사생아 정권이 등장했는데 이것은 프랑스 인민의 천재성과 조화를 이룬 것이 아니라 쇠퇴해가는 제 3 공화국과 조화를 이루었다. 이 정권의 가장 두드러진 점은 보나파르트적 특성이다. 정당들과 강령들로부터의 독자성 획득, 긴급조치 등을 통한 의회 입법의 청산, 전국의 투쟁하는 진영들 위에 군림하여 “중재자”로 행세하는 정권 등이 바로 이러한 특성이다. 권위가 훼손되고 스타일이 구겨진 급진당이 언제나 연정에 참여한 두메르그, 플랑뎅, 라발 정권 등은 같은 현상에 약간 변화를 준 것에 지나지 않았다.

싸로 정권이 취임식을 갖자마자 3차원이 아닌 2차원 정도의 지혜 밖에 갖지 못한 레옹 블룸은 이렇게 선언했다: “2월 6일에 벌어진 파시스트 쿠데타의 최종적인 영향은 의회정치 차원에서 전부 불식되었다” ([인민]지, 1936년 2월 2일자) 빗자루 그림자로 마차 그림자를 지운다고 흔히들 말하는데 그의 발언이 바로 이에 해당된다. “의회 정치의 차원에서” 금융자본이 육성하는 파시스트 무장대의 압력을 일소하는 것이 가능한 것처럼 그는 말하고 있다! 마치 싸로가 이 압력을 벗어나 두려움에 떨지 않는 것이 가능한 것처럼 말이다! 사실 싸로-플랑뎅 정권은 반(半)의회주의적 “보나파르트 체제”의 또다른 변종이고 약간 “좌로” 기운 정권에 지나지 않는다. 자의적인 조치에 의존한다는 비난에 대해 싸로 자신은 하원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최상의 발언을 했다: “나의 조치가 자의적이라면 그것은 내가 중재자가 되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경구가 나폴레옹 3세의 입에서 나왔다면 그리 나쁘게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의회정치의 룰에 따르는 어느 집권 정당이나 정당연합의 대표가 아니라 보나파르트 체제의 룰에 따라 존재하여 계급과 정당 위에 군림하는 중재자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

계급투쟁의 격화 그리고 특히 반동 무장대의 공공연한 등장은 노동자 조직에서도 이와 비슷한 소동을 일으켰다. 사회당은 제 3 공화국의 다섯 번째 바퀴의 역할을 평화스럽게 수행해 왔는데 카르텔 전통의 절반을 부정하고 특히 당 우파인 신사회당 파벌과 단절할 것을 강요받았다. 동시에 공산당은 바로 정반대의 방향에서 그러나 훨씬 더 광범위한 규모로 변화하였다. 지난 몇년 동안 이들은 바리케이드 수립, 거리 점령 등의 말을 미친 듯이 해대었다. 물론 이들의 미친 것 같은 말은 그 성격상 말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1934년 2월 6일 사건 이후 사태가 심각해졌음을 깨닫고 바리케이드 수립의 전문가들은 재빨리 우선회했다. 성스러운 언사를 남발했던 자들의 정상적인 반사행동은 소련의 새로운 국제 노선과 아주 행복하게 일치했다.

히틀러의 위협을 받자 소련은 프랑스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국제관계의 현상유지는 곧 프랑스 국내정치의 현상유지로 표현되었다! 사회혁명에 대한 희망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소련 지도부는 프랑스공산당을 대체로 경멸하기만 하였다. 사태가 악화되지 않도록 현상을 유지해야 한다. 프랑스의 의회민주주의는 급진당 없이는 불가능하다. 사회당이 이들을 지지해야 한다. 블룸과 에리오의 연합을 공산당이 방해하지 말 것이며 가능하면 공산당도 이 연합에 합류해야 한다. 사회혼란이나 위협은 금물이다! 이것이 소련 지도부의 프랑스 정책이다.

스탈린이 세계혁명을 포기하더라도 프랑스의 부르조아 정당들은 그를 믿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쓸데없는 조심이다! 정치에서는 맹목적인 신뢰는 물론 대단한 미덕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맹목적인 불신도 더 나을 것은 없다. 말과 행동을 비교하여 사태의 일반적 경향을 파악해야 한다. 소련 특권 관료집단의 이익에 의해 결정되는 스탈린의 정치는 철저히 보수적이 되었다. 프랑스 부르조아 계급은 스탈린을 신뢰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따라서 프랑스 노동계급은 그만큼 더 스탈린을 불신해야 한다.

툴루즈의 노동조합 단결 대회에서 “공산주의자” 라까몽은 인민전선의 진정한 불멸의 정식을 제시했다: “급진당의 소심함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노동계급에 대한 부르조아 계급의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아주 단순하다: 무시무시한 혁명가들은 이빨 사이에 문 칼을 내던지고 머리에 포마드를 발라야 한다. 그리고 가장 멋진 궁정 창녀의 미소를 흉내내야 한다. 이 결과는 최신 모델 바이양-꾸뛰리에이다. 모든 힘을 다해 좌선회하는 사회당을 우선회하게 만든 포마드 바른 “공산주의자들”의 출현으로 블룸은 다시 한번 노선을 바꾸어야 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평상시 노선을 따르면 되었다. 이 결과 인민전선이 등장했다. 노동계급 조직의 자산으로 급진당 파산자들을 구제하는 단체가 바로 인민전선이다.

급진당 사상은 프리메이슨 사상과 분리될 수 없다. 이렇게 말하면 모든 것을 말한 셈이다. 파시스트 동맹들에 대한 하원 토론에서 자비에 발라는 트로츠키가 프랑스 공산당원들이 프리메이슨 회원이 되는 것을 “막은” 적이 있다고 회상했다. 프리메이슨 분야의 지도적 전문가인 야미 슈미트씨는 이것을 전제적인 볼셰비키주의와 “자유정신” 사이의 화해 불가능성으로 즉시 설명해버렸다. 여기서 급진당 의원님과 토론을 하지는 않겠다. 다만 계급화해를 주장하는 따분한 프리메이슨 컬트 속에서 영감이나 위안을 찾는 노동운동의 대표는 조금도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회당원 상당수가 프리메이슨 회원이면서 자본주의를 수호하는 인민전선에 힘을 실어주는 현상은 전혀 우연이 아니다. 참회하는 공산당원들도 이제 치마를 입을 때가 왔다. 새로 개종한 이들이 치마를 입으면 나이든 주인들을 더 잘 섬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민전선은 부르조아 정치연합이 아니라 대중운동이라고 말하면서 화를 내는 자들이 있다. 물론 거창하게 정의내리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들이 사물의 본성을 바꾸지는 못한다. 부르조아 정치연합의 목표는 대중운동에 브레이크를 걸고 이것을 계급화해 쪽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인민전선의 목표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이 둘 사이의 차이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의회 민주주의의 상대적으로 평화적이고 안정된 시대에 기존의 정치연합이 등장했다. 그러나 대중이 폭발적으로 투쟁할 때에는 “공산당”이 참여하는 좀더 확실한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통합 회의, 가두행진, 선서, 베르사이유기와 꼬뮌기의 동시 등장, 소음, 혼란, 참주선동 이 모든 것들은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진행된다: 대중운동을 저지하고 그 기를 죽여라.

국회 회기 중 우파에게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시키면서 싸로는 이렇게 선언했다: 인민전선에 대한 자신의 양보는 정권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판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솔직하게 말하는 것은 신중하지 못한 행동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극좌 의원들이 앉아 있는 쪽에서 열렬한 박수갈채가 터져나왔다. 따라서 싸로는 수줍어할 이유가 없었다. 어쨌든 그는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으나 인민전선에 대한 고전적인 정의 즉 대중운동에 대한 안전판을 명확히 표현했다. 싸로 씨는 모든 면에서 경구를 제때에 터뜨리는 행운을 지녔다!

대외정책은 국내정책의 연속이다. 노동계급의 관점을 완전히 버린 블룸, 까쉥 일당은 “집단 안보”와 “국제법”이라는 미명 하에 민족적 제국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이들은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부르조아 계급에 대해서 채택했던 바로 그 아양 정책을 지금도 시행할 준비를 하고 있다. 다만 “소련 방어를 위하여”라는 구호를 덧붙인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1918년에서 1923년 사이에 소련이 외교 노선을 상당히 변경하여 부르조아 국가들과 많은 조약들을 체결했을 때조차 코민테른 지부들은 자국 부르조아 국가와 동맹을 맺는 것을 감히 생각하지 못했다! 이 사실 하나만 하더라도 스탈린이 세계혁명 노선을 기각했음을 아주 정확하게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현재 코민테른 지도자들은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고통을 겪고 있을 때 이 체제의 젖꼭지를 빨았다. 이와 똑같은 정치적 동기로 인해 이들은 국제연맹이 파괴와 죽음의 살무사로 변모하고 있을 때에도 그것을 평화의 화신으로 여겼다. 이 결과 급진당과 소련 사이에 외교 공동노선이 수립되었다. 인민전선의 국내 강령은 제네바 협정만큼이나 일반적인 관념으로 가득 차 있어서 어떤 식으로 해석해도 관계가 없다. 이 강령의 일반적 의미는 모든 것을 그대로 내버려 두자는 것이다. 한편 대중은 더 이상 현상 유지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여기에 정치적 위기의 핵심이 있다.

정치적으로 노동계급을 무장해제 시키면서 블룸, 뽈 뽀레, 까쉥, 토레즈 일당은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무장하는 것을 가장 무서워하고 있다. 이 신사양반들의 선동 내용은 도덕적 원리의 우월성을 설교하는 전도사의 선동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엥겔스는 국가권력은 지배계급의 이익을 방어하는 무장부대라고 말했다. 맑스는 봉기를 노동계급이 연마해야할 기예로 바라보았다. 인민전선의 하원의원, 상원의원, 시장들은 맑스와 엥겔스를 중세의 야만인으로 본다. 백번도 더 넘게 [인민]지는 벌거벗은 노동자를 등장시키고 “우리 맨주먹이 너희들의 곤봉 전부보다 더 단단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라는 표제의 만화를 싣고 있다. 군사기술에 대한 참으로 대단한 경멸이 아닐 수 없다! 이디오피아의 황제 셀라시에조차 이 문제에 대해서 [인민]지보다 더 진보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이 양반들에게는 이탈리아, 독일, 오스트리아의 격동이 존재하지 않는 모양이다. 들라로크의 수갑이 이들을 채우면 이들은 “맨주먹” 찬가를 멈출까? 대중이 없이 이 지도자 양반들만 이러한 경험을 한다면 좋을텐데 참으로 아쉽다!

부르조아 체제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 인민전선은 대자본의 관심과 아량을 얻고자 급진당과 파시즘이 경쟁을 하면서 발생한 하나의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는다. 사회당, 공산당과 우습게 동맹을 맺으면서 급진당은 자신의 주인인 대자본에게 정치상황이 우익 생각만큼 그리 나쁜 것은 아니라고 증명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혁명이 일어날 가능성도 크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한다. 그리고 공산당 창립지도자 바이양-꾸뛰리예조차 칼을 내놓고 대신 개목걸이를 선택했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한다. 그리고 순하게 길들여진 “혁명가들”을 통해 노동 대중을 통제하여 결국 의회체제를 구원할 수 있다고 증명하고자 한다.

그러나 급진당 양반들 전부가 이 전술을 효과적이라고 믿지는 않는다. 에리오가 주도하는 가장 확고하고 영향력이 있는 그룹은 관망세를 선호한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분석하면 이들은 다른 대안을 제시할 수 없다. 의회체제의 위기는 무엇보다도 급진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신뢰의 위기이다. 자본주의를 회춘시키는 방법이 발견될 때까지 급진당을 구원할 묘약은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다. 급진당은 정치적 파멸의 두 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다가올 선거에서 이 정당이 상대적으로 성공하더라도 정치적 붕괴를 피하거나 오래 지연시킬 수는 없다.

사회당 지도자들은 프랑스에서 가장 자유분방한 정치인들이다. 이들은 인민전선의 사회학을 연구하는 부담을 스스로 지지 않는다. 레옹 블룸의 끝없는 독백으로부터 배울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부르조아 계급과의 계급협조 노선을 주창한 주도권을 행사한 것에 대해서 공산당은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인민전선을 노동계급과 중간계급 사이의 동맹이라고 본다. 맑스주의에 대한 대단한 희화가 아닐 수 없다! 급진당은 소부르조아 계급의 정당이 결코 아니다. 그리고 [프라우다]지의 백치같은 정의처럼 “중간 부르조아 계급과 소부르조아 계급의 동맹”도 결코 아니다. 중간 부르조아 계급은 경제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소부르조아 계급을 착취한다. 그리고 금융자본의 하수인이다. 착취에 기초한 위계적 정치질서에 중립적 성격의 이름인 “동맹”을 갖다 붙이는 것은 현실을 희롱하는 것이다. 말을 타고 있는 사람은 사람과 말의 동맹이 아니다. 에리오-달라디에의 정당이 소부르조아 계급 깊숙히 그리고 노동계급의 일부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이유는 자본주의 질서의 이익을 위해 이들을 속이고 환각시키기 위해서 이다. 급진당은 프랑스 제국주의의 민주 정당이다. 이 정당에 대한 다른 어떤 정의도 거짓말에 지나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위기는 급진당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소부르조아 계급을 환각시키는 이들의 전통적 도구들을 못쓰게 만들기 때문이다. 조그마한 개혁으로는 상황을 역전시킬 수 없으며 과감하게 기존체제를 쓸어버려야 한다는 것을 “중간 계급”은 이해는 못해도 감지하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급진당과 과감성은 물과 불처럼 양립할 수 없는 존재이다. 급진당에 대한 소부르조아 계급의 신뢰가 더욱더 옅어지면서 역으로 파시즘은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 프랑스의 정치적 운명은 급진당이 청산되는 방식 즉 소부르조아 대중에 대한 급진당의 영향력을 파시즘 아니면 노동계급 중 누가 물려받을 것인가에 달려있다. 이것은 과장이 아니다.

맑스주의의 초보적 명제에 의하면 노동계급과 도시 농촌 소부르조아 계급 사이의 동맹은 소부르조아 계급의 전통적 의회 대의제에 대한 화해할 수 없는 투쟁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 농민을 노동자 편으로 끌어들이려면 농민을 금융자본의 이익에 종속시키는 급진당 정치인의 손아귀에서 농민을 탈출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이와는 반대로 노동관료와 중간계급의 최악의 착취자 사이의 음모인 인민전선은 혁명적 길에 대한 대중의 믿음을 없애고 이들을 파시스트 반혁명 세력의 품으로 끌고가는 역할 밖에 할 수 없다.

믿을 수 없겠지만 일부 냉소주의자들은 레닌의 글을 인용하여 인민전선 정책을 정당화하려고 한다. “타협” 없이 특히 다른 정당들과 합의를 도출하지 않은 채 정치에 성공할 수 없다고 증명한 사람이 바로 레닌이라는 것이다. 현재 코민테른 지도자들에게는 레닌을 모욕하는 것이 확고한 규칙이 되어버렸다. 이들은 볼셰비키당의 창시자 레닌의 모든 가르침을 짓밟고는 모스크바로 가서 그의 묘에 무릎을 꿇는다.

레닌은 짜르체제의 러시아에서 혁명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러시아에는 노동계급, 농민, 지식인 뿐만 아니라 부르조아 계급의 광범위한 계층도 짜르체제에 반대하고 있었다. 인민전선 정책이 조금이라도 정당하다면 무엇보다도 아직도 부르조아 혁명을 달성하지 못한 나라에서나 그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볼셰비키당이 어떤 단계 그리고 어떤 조건 속에서 인민전선과 비슷한 것을 러시아에서 추구했는 지를 지적한다면 이들 날조를 일삼는 양반들에게 좋은 일일 것이다. 이들이 상상력을 최대로 확장하여 역사 문서를 뒤지도록 내버려두자!

예를 들어 볼셰비키당은 혁명서적을 불법으로 공동 수송하기 위해 또는 흑백인조 깡패들을 분쇄하기 위해 혁명적 소부르조아 조직들과 실제적인 합의를 도출한 적이 있다. 두마 선거에서 볼셰비키당은 특정 조건 속에서 2차 투표의 경우 멘셰비키나 사회혁명당과 선거연합을 이루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였다. 공동의 “강령”, 공동의 영구적인 조직, 일시적인 동맹세력에 대한 비판의 포기 등은 전혀 없었다. 이러한 일시적인 합의와 타협은 엄격히 실제적인 목적을 위해서만 체결되었으며 레닌은 다른 종류의 합의와 타협에 대해서는 말한 적이 한번도 없다. 이러한 것은 인민전선과 공통점이 하나도 없다. 인민전선은 이질적인 조직들의 융합, 다른 계급 간의 장기적 연합 즉 전체 시기 동안의 공동 강령과 공동 정책 즉 행진과 고함과 연막술의 정책을 의미한다. 인민전선은 첫 중대한 시련에 산산조각이 나고 깊은 분열이 모든 구성 조직들 내부에 일어날 것이다. 인민전선 정책은 배신의 정책이다.

연합에 대한 볼셰비키당의 규칙은 행진은 따로 하되 공동으로 타격하라! 이다. 그런데 현지 코민테른 지도자들의 규칙은 각개 격파되기 위해 함께 행진하라! 이다. 이 신사 양반들은 스탈린과 디미트로프에게 매달려도 좋다. 그러나 레닌만은 제발 평화롭게 쉬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

이들 허풍선 지도자들은 인민전선이 프랑스를 파시즘으로부터 “구원했다”고 주장한다. 분노없이 이들의 선언문을 읽기는 불가능하다. 사실은 인민전선으로 공포에 질린 영웅들이 자신들의 과장된 두려움에서 “구원되었다”고 말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얼마나 오랫동안? 히틀러가 처음 봉기를 일으키고 집권하는데 10년이 흘렀고 이 사이에 정세는 밀물과 썰물을 빈번하게 경험했다. 당시 독일의 블룸과 까쉥은 한번 이상 자신들이 나찌에게 “승리”했다고 선언하곤 했다. 그때 우리는 이들의 말을 믿지 않았고 이것은 전혀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 경험은 프랑스의 웰스와 텔만에게 아무 것도 가르치지 않았다. 물론 독일에서 공산당은 인민전선에 참여하지 않았다. 당시 인민전선은 사민당, 부르조아 좌파, 가톨릭 중앙파가 가담했다(“노동계급과 중간 계급의 연합”). 당시 코민테른은 파시즘에 대항하기 위한 노동계급 조직들 사이의 투쟁연합도 거부했다. 이 결과는 잘 알려져 있다. 나찌 사형집행인들의 포로가 된 텔만에게 심심한 동정을 보낸다. 그러나 그의 정책 아니 스탈린의 정책이 히틀러 자신의 정책보다 히틀러의 승리에 더 많이 공헌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완전히 겉과 속이 뒤집힌 코민테른은 프랑스에서 독일 사민당의 아주 낯익은 정책을 반복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결과를 예상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울까?

다가올 의회선거는 결과야 어떻든 그 자체만으로는 지금의 상황에 심각한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다. 최종적으로 분석하면 유권자들은 라발 아니면 에리오-달라디에 중 하나를 중재자로 선택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에리오가 라발과 평화적으로 협력했고 달라디에가 이 둘을 모두 지지한만큼 이 두 유형 사이의 차이는 역사적 과제의 저울로 보면 전혀 의미가 없다.           

에리오-달라디에가 프랑스를 지배하고 있는 “200대 대기업 그룹”과의 전쟁을 선포할 수 있는 체하는 것은 뻔뻔스럽게 인민을 기만하는 행위일 뿐이다. 200대 대기업 그룹은 공중에 붕 뜬 것이 아니고 금융자본이 지배하는 사회체제의 정점이다. 이들 그룹을 처리하려면 지금의 경제적 정치적 지배체제를 타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에리오와 달라디에에게는 플랑뎅이나 들라로크와 똑같이 이 체제의 유지가 자신들의 이익을 보존하는데 필요하다. 여기서 쟁점은 [인류]지가 묘사하듯이 몇몇 대기업 그룹에 대한 “나라” 전체의 투쟁이 아니고 노동계급과 부르조아 계급 사이의 투쟁이다. 이것은 계급투쟁의 문제로서 오직 혁명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인민전선의 파업파괴 음모는 혁명으로 가는 길에 등장한 최대의 장애물이다.

반(半)의회적인 그리고 반(半)보나파르트적인 체제가 프랑스에서 내각을 바꾸어 가면서 얼마나 오랫동안 유지될 지 그리고 다음 시기에 이 나라가 어떤 구체적인 단계를 경과할 지 미리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것은 세계경제, 프랑스 경제의 경기순환, 이탈리아와 독일 파시즘의 안정도, 스페인 정세의 진전과정,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러나 아주 중요한 요인으로 프랑스 노동계급 선진부대의 계급의식과 투쟁에 달려 있다. 이 결말은 프랑화의 요동에 의해서 재촉될 수 있다. 프랑스와 영국의 좀더 긴밀한 협조는 이 결말을 지연시킬 수 있다. 어쨌든 프랑스 “민주주의”의 죽음의 고통은 파시즘 이전 시기였던 독일의 브뤼닝-파펀-슐라이허 시기보다 훨씬 더 오래 끌 수도 있다. 그렇다고 죽음의 고통이 아닌 것은 아니다. 부르조아 민주주의는 일소될 것이다. 문제는 누구에 의해서 인가에 있다.

“200대 대기업”, 파시즘, 전쟁 등을 반대하는 투쟁 그리고 평화, 빵, 자유 그밖에 다른 좋은 것들을 위한 투쟁은 거짓말이거나 아니면 자본주의 타도 투쟁이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프랑스 근로인민은 혁명적 국가권력 쟁취를 먼 목표가 아니라 다가올 시기의 과제로 직면하고 있다. 한편 사회당과 공산당 지도자들은 노동계급의 혁명 투쟁을 포기할 뿐만 아니라 모든 힘을 다해 혁명적 발전 상황에 저항하고 있다. 부르조아 계급과 협력하면서 이들은 볼셰비키들을 박해하고 추방한다. 이들은 혁명을 너무나 증오하고 두려워한다! 이런 상황에서 마르쏘 삐베르와 같은 가짜 혁명가들이 등장하여 부르조아 계급을 타도하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오직 레옹 블룸의 허락을 받아서 그렇게 하겠단다! 지난 12년간의 프랑스 노동운동은 새로운 혁명정당 수립의 과제를 일정에 올려놓았다.

앞으로 발생할 사건들이 혁명정당 건설에 필요한 “충분한”시간을 허락할 것인가에 대한 추측은 가장 소득없는 일일 것이다. 각기 다른 변종, 역사적 형태, 단계, 가속화와 둔화 등의 영역에서 역사는 무한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파시즘은 섣불리 나서다가 패배를 당할 수도 있다. 따라서 오랜 기간 혁명과 민주주의 사이의 과도기가 지속될 수도 있다. 이는 역으로 혁명조직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어서 혁명적 상황의 유리한 기회들이 증대될 수도 있다. 파시즘이 전면에 나서기 전에 인민전선은 자신의 모순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파멸할 수도 있다. 이것은 노동계급 정당들 내부에 재편과 분리의 시기를 그리고 혁명적 전위의 급격한 통합을 가져올 수도 있다. 뚤롱과 브레스트의 경우와 같은 자발적 대중운동이 그 범위를 크게 넓혀 혁명의 지렛대에게 든든한 받침돌을 제공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이론적 가능성으로 배제될 수 없는 프랑스 파시즘의 승리조차 히틀러가 공언하는 것처럼 천년을 갈 수는 없다. 아니면 무쏠리니만큼 안정성을 누릴 것이라는 보장도 없을 것이다.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시작한 파시즘의 여명은 곧 프랑스로 퍼질 수도 있다. 이 상황에서 혁명정당을 건설하는 일은 대단히 불리할 것이다. 그러나 노동계급에 의한 복수의 시간은 더 가까울 것이다. “조건이 아직 성숙하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지연시킬 수 없는 역사적 과업을 회피하는 현명한 양반들은 자신들이야말로 아직 성숙하지 않았음을 보일 뿐이다.

전세계 뿐 아니라 프랑스의 맑스주의자들은 어떤 의미에서 처음 투쟁을 시작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선배들보다는 한없이 높은 역사적 수준에서 시작한다. 1914년 사민주의의 붕괴보다도 더 악명높은 코민테른의 붕괴에 의해 혁명 투쟁의 진전은 처음에는 대단히 어려울 수 밖에 없다. 노동계급 내부의 반동적 그리고 애국적 관료집단의 공동전선에 대항한 잔혹한 투쟁 과정에서 새로운 중핵들은 서서히 결집되고 있다. 반면에 바로 이러한 난관들은 우연히 노동계급에게 발생한 것이 아닌 바 새로운 혁명정당 및 새로운 인터내셔널의 선두 부대를 구성할 인자들을 올바로 선택하고 탄탄하게 훈련시킬 중요한 조건이다.

코민테른 중핵의 아주 적은 부분만이 10월 혁명 전 전쟁 초기에 혁명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이들은 거의 예외 없이 지금 코민테른에 남아있지 않다. 이들 다음으로 나이가 많은 중핵들이 10월 혁명 후 당에 들어왔다. 이것은 훨씬 쉬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 두 번째 중핵들 가운데 아주 극소수만이 지금 남아있다. 현재 코민테른 중핵의 절대 다수는 볼셰비키 강령과 혁명의 기치가 아니라 소련 관료집단에 가담했다. 이들은 투사가 아니라 길들여진 실무자, 부관, 심부름꾼이다. 위대한 혁명적 가능성들이 너무도 풍부한 역사적 상황에서 제 3 인터내셔널이 그렇게 악명높이 화석화된 것은 바로 이 이유 때문이다.

제 4 인터내셔널은 이전 인터내셔널들의 성과 위에 서 있다. 그리고 앞, 옆, 뒤 할것없이 모든 방향에서 공격을 받고 있다. 출세주의자, 겁장이, 속물 등은 우리 대오에서 결코 찾을 수가 없다. 초기에 있을 수밖에 없는 종파주의자, 모험주의자들은 운동의 성장과정에서 솎아져 나갔다. “작은” 신문을 발행하여 전세계에 도전하는 “작은” 조직에 대해서 현학자들과 회의주의자들은 어깨를 들썩거린다. 진지한 혁명가들은 이들에게 경멸의 눈빛을 보내고 이들을 무시할 뿐이다. 10월 혁명 역시 강보에서 시작되었다...

입헌민주당과 “인민전선”을 수립했던 막강한 사회혁명당과 멘셰비키들은 볼셰비키당 “몇몇 광신도들”의 공격을 받아 몇달 만에 먼지로 변해 버렸다. 곧 이어 독일사민당, 독일공산당, 오스트리아 사민당 등은 파시즘의 공세에 대항하지도 못하고 치졸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유럽 인민에게 다가오고 있는 혁명의 시대는 노동계급으로부터 애매모호와 썩어빠진 것들을 흔적도 없이 일소해 버릴 것이다. 주오, 씨트린, 블룸, 까쉥, 반더벨드, 까발레로스 등은 모두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제 2 제 3 인터내셔널의 지부들은 흔적도 없이 무대에서 하나 하나 사라질 것이다. 노동계급 대오의 새로운 재편은 불가피하다. 젊은 혁명 중핵들은 피와 살을 얻을 것이다. 승리는 볼셰비키당의 투쟁방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 논문은 볼셰비즘의 방어에 바쳐질 것이다.  

           

제 3부: 1936년 6월의 격동

 

편집자 서문

라발은 이제 더욱더 정치적 압력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탈리아의 이디오피아 침공을 지지했기 때문이었다. 좌익의 지지를 구할 최후의 수단으로 그는 1935년 12월 파시스트와 왕당파 정치그룹들을 불법화시켰다. 그러나 이 조치는 전혀 효과가 없었다. 이들은 합법정당들에 입당, 스스로를 재조직하였으며 동시에 준(準)군사 활동을 계속했다.

1936년 1월 라발이 수상직을 사임하자 급진당의 영향력 있는 출판업자 알베르 싸로가 임시수상이 되었다. 이 기간동안 인민전선 내부에서 이 정부를 의회 결선투표에서 지지하려는 협상이 진행되었다. 최초로 사회당과 공산당은 부르조아 후보들의 당선을 위해 자기 당 후보들을 사퇴시켰다. 

그러나 최초의 인민전선 정부는 프랑스가 아니라 스페인에서 탄생했다. 1936년 2월 선거에서 무정부주의 정당 그리고 이전에 트로츠키주의자였던 인사들을 많이 포괄한 맑스주의통일노동자당의 지지를 얻어 스페인에서 인민전선 정부가 수립되었다.

3월 7일 히틀러의 군대가 라인지방에 진주했다. 이 지방은 1925년 로카르노 협정으로 비무장지대로 지정된 프랑스 국경에 접한 지방이었다. 그러나 이때쯤 프랑스는 거의 함락 불가능하다고 생각된 진지망 마지노 선을 거의 완성해 놓은 상태에 있었다.

인민전선 정부와 6월 투쟁 4월말과 5월초에 의회선거가 실시되어 인민전선 정당들의 완승으로 끝났다. 사회당은 21%의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하원의석을 기존의 97석에서 147석으로 늘렸다. 공산당은 15%를 득표하여 의석이 10석에서 72석으로 늘었다. 급진사회당은 기존의 159석에서 줄어든 116석을 차지하였다. 하원의 총 598개 의석 가운데 인민전선 정당들은 378석을 획득했다.

1936년 6월 4일 블룸은 프랑스 최초로 사회당 출신 수상이 되었다. 그는 공산당과 노동총연맹에게 장관직을 제의했다. 그러나 이 조직들은 정부 밖에서 인민전선에 더 잘 봉사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이 제의를 사양했다.

그러나 사회당 수상이 취임식을 하기도 전에 파리 지역의 금속 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갔다. 이것은 뚤루즈, 르아브르, 리옹 노동자들의 공장 점거 물결에 연이어 일어난 투쟁이었다. 6월 초 프랑스 전체 노동자의 4분의 1인 2백만 노동자가 파업에 가담하였다. 이 투쟁은 1871년 빠리 꼬뮌과 1968년 5월 투쟁 사이에 벌어진 최대의 투쟁이었다.

이때 선보인 새로운 투쟁전술인 공장점거 파업은 특히 자본가들을 경악시켰다. 블룸은 “공공의 안전”을 촉구하며 자신의 집무실이 있는 마띠농 호텔에 고용주들을 초대하여 협상에 들어갔다. 전통적으로 단체협상을 거부했던 프랑스 고용주들에게 이 사건은 정책의 대전환에 해당하였다. 자본가들이 받아들인 협상내용은 이 투쟁의 강도를 짐작하게 한다: 7%에서 15%에 이르는 임금인상,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기존의 주당 48시간에서 40시간), 2주의 유급 휴가, 단체협약의 원칙 인정 등이 자본가들이 양보한 내용이었다.

마띠농 협약은 프랑스 좌익 전체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파업물결의 와중에 조직된 소규모의 트로츠키 조직인 국제주의노동자당(POI)은 이 협약에 반대했다. 그러나 인민전선 정부는 이 조직을 즉시 탄압하여 체포와 검열을 자행했다. 사회당 지도자들 가운데 가장 전투적이었던 마르쏘 삐베르조차 블룸의 협상을 지지하여 그의 참모가 되었다. 그의 지지로 인민전선 정부는 아주 소중한 좌익적 외피를 쓰게 되었다. 이 투쟁이 혁명으로 상승하는 것을 막기위해 공산당 역시 지도자들을 동원하였다. 공산당 지도자 토레즈는 6월 11일 이렇게 선언했다:“파업을 끝낼 시점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

노동조합 및 주요 노동자정당들과 협약을 체결하자 이제 자본가들은 강공으로 돌아섰다. 개량주의 정부와 개량정책은 일시적인 편의에 따른 것이라는 점이 명백해졌다. 프랑스 트로츠키주의자들에게 보낸 6월 21일자 편지에서 트로츠키는 적의 도발을 경고하면서 총파업을 면밀히 준비할 것을 촉구했다. 이 편지는 중요한 “뉘앙스”를 담고 있었다: “인민전선 정부에 대한 우리의 절대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제국주의 적들과의 싸움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전선에 참여할 것이라는 사실을 반복해야 합니다. ... 바로 이런 의미에서 두번째 총파업을 준비하는 체계적인 선전활동이 수행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정부를 타도하는 투쟁이 아니라 정부 타도 앞에 놓인 장애물을 제거하는 투쟁입니다.”([프랑스 지부의 위기, 1935-1936] 150쪽) 이제 반동의 도발에 대한 조직의 방어가 시급한 활동 목표가 되었다. 블룸 정권에 대한 투쟁은 조직 방어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1917년 코르닐로프 반동의 위협이 닥쳤을 때 케렌스키 정권을 방어하는 바로 그 전술과 동일했다.

이해 7월 파업물결이 잠잠해졌을 때 쓴 글 “제 2 단계에 앞서서”에서 트로츠키는 러시아 혁명과의 상황을 더욱 자세히 비교하였다. 그러나 격동은 계속되었으며 급진화되고 있던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으로 몰려들었다. 이제 단일노동총연맹(CGTU)과 통합한 노동총연맹(CGT)은 조합원수가 1936년 3월 당시 백만에서 거의 5백만으로 불어났다.

인민전선 내부에서 공산당은 결정적인 세력으로 부상했다.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노동자 기반 때문이었다. 1934년말에서 1938년까지 공산당원의 수는 5만에서 35만으로 급증했다. 그러나 공산당의 스탈린주의자들은 이 증대되는 영향력을 급진당을 지지하는데 사용하고 있었다. 이제 급진당은 자신의 좌와 우의 정당들에게 정치적 힘을 빼앗겼다.

6월 투쟁은 빠리에서 1936년 7월 29일에서 31일까지 개최된 제 4인터내셔널 창건을 위한 첫 회의의 초점이었다. 이 회의의 주요한 결의문인 “새로운 혁명적 격동과 제 4인터내셔널의 임무”는 이 저서에 포함되어 있다. 이 글은 제 3부의 다른 글들과 마찬가지로 트로츠키에 의해 노르웨이 망명 당시에 쓰여졌다.

결정적 단계 (1936년 6월 5일)

 

프랑스 사태는 그 전개 속도가 급속히 빨라졌다. 지금까지 상황의 준혁명적 성격은 이론적 분석과 파편적인 정치적 징후들을 통해서만 평가될 수 있었다. 이제는 사실들 자체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프랑스에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혁명적 위기의 심도를 보고 이해하지 못하거나 보기를 거부하는 지도자들이 있는 정당이 딱 두개 있다. 이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바로 “사회당”과 “공산당”이다. 물론 “자주적” 노동조합 지도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노동대중은 직접 행동에 나서서 혁명적 상황을 조성하고 있다. 부르조아 계급은 사태 전개에 극단적인 공포심을 보이고 있으며 새 정권의 비호 하에 자신을 방어하고 노동대중을 속이고 압살하여 피비린내 나는 복수를 감행하고자 한다. “사회당”과 “공산당” 지도자들만이 계속해서 인민전선에 대해 떠들고 있다. 이들의 경멸스러운 사상누각이 계급투쟁에 의해 무너지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블룸은 이렇게 말한다: “국민은 인민전선에게 대표권을 위임했으며 우리는 이 대표권의 한계를 넘어서서는 안된다.” 그는 지금 자기 당을 기만하고 있으며 노동대중을 기만하고자 한다. 자신들을 아직도 “공산주의자”라고 부르고 있는 스탈린주의자들은 그의 기도를 돕고 있다. 사실 사회당과 공산당은 선거라는 기만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부르조아 급진당과의 연합을 위해 근로대중의 이해를 배반해왔다. 인민이 급진당과 제 3공화국에 구역질을 느끼고 있다 는 사실에 정치위기의 본질이 있다. 파시스트들은 이 상황을 이용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나 사회당과 공산당 지도자들이 한 일이 무엇인가? 이들은 인민 앞에서 급진당 수호자가 되었다. 이들은 급진당을 죄없이 비방당하는 당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들은 노동자와 농민에게 완전한 구원은 바로 ... 달라디에 내각이라고 확신시키고 있다. 이것이 바로 선거운동 기간의 주제였다. 이에 대한 대중의 응답은 무엇이었는가? 공산당을 철저한 좌익으로 인정하고 이 정당에게 엄청난 표와 의석을 선사한 것이었다. 대중은 공산당이 소련 외교의 앞잡이라는 사실과 이들이 구사하고 있는 온갖 기만술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공산당을 평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중은 행동을 통해서만 배운다, 이들에게는 이론적인 연구를 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1백5십만 유권자들이 공산당에게 표를 던질 때 이들의 대다수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러시아의 볼셰비키들이 1917년 10월에 했던 것과 똑같은 것을 당신들이 프랑스에서 해주기를 바란다.” 이것이 바로 인민의 가장 적극적인 부위의 진정한 뜻이다. 그리고 이들이야말로 프랑스의 미래를 위해 투쟁하고 미래를 보장할 능력이 있는 부위이다. 바로 이것이 선거의 첫번째 교훈이다.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던 우파의 탈당에도 불구하고 사회당은 기존의 득표율을 거의 그대로 유지했다. 이 문제에 있어서도 대중은 사회당 “지도자들”에게 의미심장한 교훈을 남겼다. 우파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공화국”의 구원과 번영의 미명 하에 부르조아 계급과 연합하기를 원했다. 이들은 바로 이 때문에 탈당했으며 사회당의 경쟁상대로 나섰다. 그러나 유권자는 이들에게 등을 돌리고 참패를 안겨주었다. 2년 전에 우리는 이렇게 예상했다: 이후의 사태 전개는 급진당으로 쏠리는 모든 소규모 그룹들을 파산시킬 것이다. 사회당의 좌파와 우파의 싸움에서 대중은 부르조아 계급과 연합할 것을 가장 철저하고 결연하게 외친 그룹을 비난하고 내버렸다. 이것이 선거의 두 번째 교훈이다.

사회당은 정책이나 정치적 기반으로 보았을 때 노동자 정당이 결코 아니다. 이 당은 관료나 공무원 등 신중간층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소부르조아 계급과 노동귀족의 당이다. 선거의 통계를 면밀히 살펴보면 사회당은 공산당에게 노동자와 농민 표의 상당수를 넘겨주었고 대신 중간 계급의 표를 상당수 급진당으로부터 빼앗았음을 의심의 여지없이 알 수 있다. 이것은 소부르조아 계급이 급진당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좌로 움직이면서 사회당과 공산당을 지지하고 있으며 중부르조아와 대부르조아 계급은 급진당을 멀리하고 우로 향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지지기반의 변동은 계급을 축으로 하고 있으며 인위적인 “인민전선”을 축으로 하지 않고 있다. 정치적 관계의 급격한 양극화, 바로 이것이 위기의 혁명적 성격을 특징짓고 있다. 이것이 선거의 세번째 근본적인 교훈이다.

따라서 의회체제라는 족쇄 하에서 할 수 있는 한 유권자는 인민전선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한다는 자신의 의사를 선거를 통해 표현했다. 물론 결선투표에서 사회당과 공산당은 부르조아 급진당을 위해 자기 후보들을 사퇴시켜 대중의 의지를 왜곡했다. 그러나 이러한 술수에도 불구하고 급진당은 갈비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은 채 의석의 3분의 1을 잃었다. [시대]지는 이렇게 말한다: “혁명 분자들과 연합했으니까 그랬지.” 달라디에는 이에 대해 이렇게 대꾸한다: “인민전선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더 많은 표를 잃었을 것이다.” 달라디에가 당연히 옳다. 만약 공산당과 사회당이 계급에 기초한 정책을 펴서 썩어빠진 급진당에 속한 부위를 포함하여 부르조아 계급 전체에 대항해 도시와 농촌의 노동자와 반(半)노동자들 간의 연합정책을 구사했다면 훨씬 더 많은 표를 얻었을 것이다. 그리고 급진당은 정치적으로 무의미한 집단이 되었을 것이다.

프랑스의 사회적 관계나 대중의 정치적 분위기 어느 것도 인민전선의 기반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을 모든 정치적 사실들이 증명하고 있다. 인민전선 정책은 급진당 내의 부르조아 계급, 사회당의 사업가와 출세주의자, 소련의 외교관, 이들의 “공산당” 하수인 등에 의해 위에서 강요된 것이다. 이들은 담합하여 정치적으로 대중을 속이고 강탈하여 이들의 진정한 정치적 의사를 왜곡시키기 위해서 모든 선거 체제 가운데 가장 사기적인 수단을 동원하여 할 수 있는 모든 짓을 다했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 속에서도 대중은 자신의 욕구를 이렇게 표현할 수 있었다: 급진당과의 연합이 아니라 부르조아 계급 전체에 대항하여 근로대중의 단결을!

급진당을 위해 사회당과 공산당이 자신들의 후보를 사퇴시킨 결선투표의 지역구에서 혁명적 노동계급의 후보가 출마했다면 의심의 여지없이 이들은 상당한 표를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전술을 구사할 조직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 불행일 뿐이다. 이 사실은 빠리와 지방의 혁명그룹들이 사태의 전개에 뒤처져서 시류에나 호응하고 행동이 정작 필요할 때마다 이 기회를 회피하기를 선호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애석한 일이다. 그러나 대중의 일반적인 정치적 경향은 아주 명백하다.

사회당과 공산당은 있는 힘을 다하여 에리오 또는 더 나쁘게 달라디에 내각을 성립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대중은 어떻게 나왔는가? 이들은 이 정당들에게 블룸 내각을 강요했다 . 이것이 인민전선에 반대하는 직접적인 투표행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에 대한 더 많은 증거가 필요한가? 빠리꼬뮌 당시 희생된 꼬뮈나르들을 추도하는 시위는 올해 있었던 빠리의 시위 가운데 가장 규모가 컸다. 그러나 급진당은 어떤 방식으로든 이 시위에 자신을 연관시킬 수도 없었고 그렇게 하지도 않았다. 빠리의 근로대중은 어느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정치적 본능을 가지고 자신들의 지도자들과 부르조아 착취자들이 구역질나게 연합하는 것을 참아줄 필요가 없을 때마다 배가된 힘으로 자신들의 의지를 표현해왔다. 5월 24일의 강력한 시위는 빠리의 노동계급이 인민전선 정책을 거부한다는 것을 의심의 여지없이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인민전선이 없는 의회 그리고 사회당과 공산당이 다수를 차지하지 않는 의회는 아무 소용도 없는 허깨비일 것이다,” 그리고 급진당은 인민전선에 포함되지 않는다면 “반동세력의 품”으로 떠밀릴 것이다? 참으로 끔찍한 논리이다! 이런 논리는 사회당 공산당 우두머리들의 비겁한 속물근성에나 잘 어울릴 뿐이다. 현재 의회의 무기력한 모습은 현 정치위기의 혁명적 성격의 불가피한 결과이다. 지금까지는 일련의 정치적 사기술로 어느 정도 이 무기력을 감추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내일이면 이 사기술은 폭로될 수 밖에 없다. 골수까지 반동인 급진당을 “반동세력의 품”으로 떠밀지 않기 위해서 급진당과 연합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을 위해서? 자본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바로 이것만이 인민전선의 임무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이 임무가 달성되는 것을 저지한다.

지금 의회가 허깨비에 지나지 않는 것은 지금의 위기가 의회적 방식으로는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프랑스의 근로대중은 자신을 특징짓는 뛰어난 혁명적 본능으로 이 주요한 특성을 지금 상황에서 똑똑히 발휘하였다. 뚤롱과 브레스트에서 이들은 첫번째 경고신호를 보냈다. 군복무 기간을 늘리는 법에 대한 병사들의 항의는 부르조아 질서에 대한 가장 위험한 직접적 대중행동의 형태를 의미했다. 마지막으로 허풍장이 마르쏘 삐베르와 함께 사회당 대회가 만장일치로 “인민전선”의 대표권을 인정하고 이 대표권을 레옹 블룸에게 위임했을 때, 블룸이 모든 방향을 거울로 비추어 본 후 집권을 준비하는 제스처와 선언을 남발하고 노동계급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으면서 블룸에 대해서는 엄청나게 보도하는 기사를 통해 이것들에 논평을 가할 때, 바로 이때 프랑스 전역에서 봄날 눈녹은 물이 홍수를 이루듯이 거대한 파업의 물결이 넘실거렸다. 자신들의 지도자를 찾지 못하자 스스로의 힘으로 노동자들은 대담하고 확신에 차 공장의 일을 중단하고 공장을 점거하였다.

블룸 내각의 내무장관으로 새롭게 자본주의 경찰이 된 쌀랑그로는 집무를 시작할 시간도 없이 에리오, 라발, 따르뒤에, 들라로크가 했던 것과 똑같이 “사회혼란에 맞서 질서”를 보호하겠다고 서둘러 선언했다. 물론 질서는 이 양반이 자본주의적 혼란에 붙이는 이름이다. 그리고 그는 사회주의적 질서를 수립하고자 하는 투쟁에 대해서 사회혼란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러나 조용히 공장을 점거하는 것을 통해 대중은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 노예에 지나지 않았던 이 건물에서 우리는 주인이 되고자 한다.”

혼비백산한 레옹 블룸은 노동자들을 겁주려고 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케렌스키가 아니오; 그리고 프랑스에서 레닌이 아닌 다른 사람이 케렌스키를 밀어낼 것이오.” 마치 러시아의 케렌스키가 레닌의 정책을 이해했거나 그의 등장을 예견한 것처럼 그는 말한다. 사실을 말하자면 블룸 자신과 하나도 다르지 않게 케렌스키 역시 자신이 몰락하면 볼세비키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정권을 잡을 것이라고 노동자들에게 확인시키곤 했었다. 블룸이 자신을 케렌스키와 구별하려고 할 바로 그때 그를 노예처럼 가장 잘 모방한다. 그러나 블룸 자신에 관한 한 그가 노동계급이 아니라 파시즘에 진정 길을 내주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상황에서 가장 범죄적이며 악명 높은 것은 공산당의 행동이다. 블룸 내각에 입각하지도 않으면서 흔들리지 않는 지지를 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까쉥과 토레즈같은 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너무 무시무시한 혁명가들이어서 급진당 동료들을 공포에 질려 죽게 만들 지도 모른다. 따라서 우리가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 밀실에서 장관 자리를 흥정하는 것은 공개적으로 하는 것보다 10배나 더 사악한 짓이다. 사실 공산당은 노동대중을 인민전선 즉 자본주의의 질서에 더 단단히 속박시키기 위해서 겉으로는 독립적인 외양을 갖추려 한다. 그러나 이러한 술책을 구사하는 데에도 계급투쟁이 방해거리가 된다. 단순 정직한 대중파업이 인민전선의 신비와 비밀을 무자비하게 파괴했다. 이제 인민전선은 죽음의 일격을 당했다. 지금부터는 서서히 죽음의 길로 들어가는 것만 남았다.

의회를 통해서는 위기에 대한 해결책이 나올 수 없다. 블룸은 화약이 무서워서 이것을 발명하려 하지 않는다. 인민전선의 더 이상의 술책은 의회주의의 고통스럽게 넘어가는 숨을 연장시킬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들라로크에게 새롭고 더 심각한 일격을 준비할 시간을 줄 뿐이다. 만약 ... 혁명가들이 그를 막지 않는다면 말이다.

1934년 2월 6일 사건 직후 일부 참을성 없는 동지들은 결전이 “내일” 일어날 것이므로 뭔가 기적이라도 부리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한 “정책”은 혁명정당의 성장을 극도로 지체시킬 모험과 좌충우돌만을 낳을 것이다. 이미 허비한 시간을 만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오늘도 우리는 혁명 봉기의 시간을 설정할 작업에 들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거대한 파업의 물결이 일어난 후 사태는 혁명 아니면 파시즘 둘 중의 하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지금의 파업 물결을 통해 대중적 기반을 마련하고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튼튼히 결합할 수 없는 조직에게는 혁명조직이라는 이름이 아까울 것이다. 이런 조직의 성원들은 실업자 보호소나 (마르쏘 삐베르의 보호 하에) 프리메이슨 숙소로 들어가는 것이 나을 것이다!

프랑스에는 집안에 틀어박혀 벌어지는 사건들에 대한 인상을 서로 교환하고 자신들의 계몽된 참여가 시작되기에는 아직 때가 이르다고 생각하면서 그룹 또는 파벌로 존재를 유지하고 있는 구(舊)공산주의자, 구사회주의자, 구조합주의자 양반들이 남녀 구별없이 상당수 존재한다. “아직 때가 너무 이르다.” 그러나 들라로크와 같은 파시스트들이 전면에 등장하면 이들은 이렇게 말하게 마련이다: “때가 너무 늦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양반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교원노동조합의 좌파에는 특히 그렇다. 이런 신사양반들에게 조금의 시간이라도 낭비하는 것은 거대한 범죄가 될 것이다. 죽은 자들이 죽은 자들을 매장하게 내버려두라!

프랑스의 운명은 의회, 개량주의자들과 스탈린주의자들의 계급협조적 신문 편집실, 회의주의자, 울보, 허풍장이 등의 써클 등지에서는 결코 결정되지 않는다. 자본주의적 혼란에 대한 탈출구가 행동을 통해서 제시된 공장에서만 결정된다. 혁명가들이 있어야할 곳은 바로 공장이다!

지난 번의 코민테른 대회는 온갖 것을 짬뽕시키듯이 급진당과의 연합을 대중행동위원회 즉 맹아적 소비에트의 수립과 나란히 임무로서 설정했다. 디미트로프와 그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자들 모두 계급협조와 계급투쟁, 부르조아 계급과의 연합과 노동계급의 권력 쟁취 투쟁, 달라디에와의 우호관계와 소비에트 건설 등을 결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진지하게 상상하고 있다. 프랑스의 스탈린주의자들은 행동위원회를 “인민전선위원회”로 개명했다. 이렇게 하면 혁명투쟁을 부르조아 민주주의 수호와 화해시킬 수 있다고 상상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파업물결은 이 형편없는 환상을 뿌리째 뽑고 있다. 급진당은 파업을 무서워하고 있다. 사회당은 급진당이 무서워할까 무서워하고 있다. 공산당은 두 정당이 무서워할까 무서워하고 있다. 행동위원회 구호는 대중의 대의와 투쟁에 결연하게 헌신하는 진정한 혁명조직에 의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

다시 한번 프랑스 노동자들은 자신들에 대한 역사적 평판에 걸맞음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이들에 대해 신념을 가져야 한다. 소비에트는 언제나 파업을 통해 탄생해왔다. 대중파업은 노동계급 혁명의 자연스러운 요소이다. 행동위원회는 지금 공장을 점거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위원회가 될 수 밖에 없다. 산업과 산업, 공장과 공장, 노동자지구와 노동자지구, 도시와 도시를 통해 행동위원회는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야 한다. 이들은 개별 도시, 지역의 개별 생산단위 등에서 모여 결국 프랑스 전역의 모든 위원회를 대표하는 대회를 구성해야 한다. 이것은 지금 존재하는 자본주의적 혼란을 대체하는 새로운 질서가 될 것이다.

 

프랑스 혁명은 시작되었다(1936년 6월 9일)

 

요즘처럼 라디오가 소중하게 보인 적은 없었다. 노르웨이의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 프랑스 혁명의 박동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좀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장관님들, 노동조합 서기님들 그리고 여타 지독하게 공포에 질린 지도자님들의 생각과 목소리를 통해서 혁명의 박동을 느낄 수 있다.

“프랑스 혁명”이라고 말하는 것이 과장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혁명이 탄생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혁명은 다른 방식으로는 탄생할 수 없다. 프랑스 혁명은 시작되었다.

확실히 레옹 블룸의 꽁무니를 따르고 있는 레옹 주오는 부르조아 계급에게 지금의 격동은 법의 엄격한 범위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순전히 경제적인 운동이라고 확신시키고 있다. 진정으로 파업노동자들은 파업기간 내내 공장을 점거하면서 경영주와 직원들을 장악하고 있다. 이 유감스러운 “세부 사항”에 대해 눈을 감을 수는 있다. 대체로 이것들은 ... “정치 파업이 아니라 직종별 파업입니다.”라고 지도자 양반들은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정치적” 파업의 영향 하에 나라의 정치상황 전체가 급격하게 바뀌고 있다. 정부는 서둘러 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한다. 이것은 전날 밤에는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 블룸이 하는 말에 따르면 정말이지 진정한 힘은 참을성에 있다! 정부의 조치에 대해 자본가들은 예상 외로 잘따르고 있다. 반혁명 세력 전부는 블룸과 주오의 등 뒤에 숨어서 시간을 벌고 있다. 그런데 이 기적같은 일이 바로 ... “직종별 파업”에 의해서 발생했다. 그렇다면 파업이 정치성을 띠었더라면 정말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나 그렇지 않다. 지도자들은 진실을 말하고 있지 않다. 직종별 노동조합은 단 하나의 다른 직종과 구별되는 직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을 포괄하고 있다. 노동조합주의와 반동적 생디칼리즘은 모든 노력을 다해 노동계급 운동을 직종의 범위 안에 가두려한다. 사실 바로 여기에 노동계급에 대한 노동조합 관료의 독재가 기초하고 있다. 이것은 모든 독재 가운데서 가장 지독한 독재이다! 반면에 주오-라까몽 파벌은 노예처럼 부르조아 국가에 빌붙고 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운동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운동은 노동조합, 직종, 지역의 한계를 깨부수고 전체 노동계급의 요구, 희망, 의지를 내세우고 있다. 이 운동은 유행병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이 전염병은 이 공장에서 저 공장으로 이 직종에서 저 직종으로 이 지구에서 저 지구로 퍼지고 있다. 노동계급의 모든 부위가 출석 체크에 응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금속노동자들이 시작한다. 이들은 전위이다. 그러나 이 전위 바로 뒤에 가장 후진적인 직종에 종사하여 후위를 구성하면서 주중에 의회주의자 양반들과 노동조합 지도자 양반들에게 완전히 잊혀지는 노동자들을 포함하여 계급 대중이 빽빽히 모여있다는 사실, 바로 이 사실에 지금 운동의 힘이 존재한다. [인민]지가 공개적으로 이렇게 자백하는 것도 당연하다: 빠리 인구 가운데에서 특히 저임금을 받는 일부 노동자 부위가 파업에 등장한 것은 완전히 “놀라 자빠질 일”이다. 그러나 바로 이 가장 억압받는 부위 깊숙히 열성, 애타심, 용기의 마르지 않는 샘이 숨어있다. 이들이 계급의식으로 각성하고 있다는 바로 이 사실이 거대한 혁명의 해일이 닥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이다. 무슨 수단을 써서든 이 부위에게 다가가는 것이 필요하다!

직종과 지역의 틀을 무너뜨리고 있는 파업운동은 부르조아 사회에게 뿐만 아니라 노동자 자신의 의회 및 노동조합 지도자들에게도 공포스러운 일이 되었다. 이들은 현실에 눈을 감는 일에 주로 연연하고 있다. 역사상의 전설에 의하면 루이 16세가 “이것이 반란인가?”라고 묻자 신하 중의 하나가 “아닙니다, 폐하. 혁명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제 부르조아 계급이 “이것이 반란인가?”라고 묻자 이 계급의 신하들은, “아닙니다. 직종별 파업에 지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자본가들을 이렇게 위안하면서 블룸과 주오 역시 자신들을 위안하고 있다. 그러나 말만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론 지금 필자가 쓰고 있는 글이 신문에 나올 때 쯤이면 파업의 첫 물결이 잠잠해졌을 것이다. 겉으로 보면 삶은 예전의 모습을 되찾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사태를 바꾸는 것은 아니다. 이 파업들은 직종별 파업이 아니다. 그리고 단순한 파업도 아니다. 이것은 강력한 타격 이다. 이것은 억압자에 대한 피억압자의 공격 개시이다. 이것은 고전적인 혁명의 시작인 것이다.

노동계급의 과거 경험이 전부 --- 착취, 고통, 투쟁, 패배의 역사가 --- 사태의 충격으로 생생하게 살아나고 모든 노동계급 심지어는 가장 후진적인 부위에게도 계급의식이 상승하고 이들은 공동의 투쟁대오로 이끌린다. 계급 전체가 운동하고 있다. 이 거대한 덩어리는 말로 제지되지 않는다. 이 투쟁은 가장 위대한 승리 또는 가장 끔찍한 패배 중 하나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

[시대]지는 이 파업을 “혁명의 기동 연습”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블룸이나 주오가 말하고 있는 것보다는 한없이 훨씬 진지하다. 그러나 [시대]지의 규정도 부정확하다. 왜냐하면 어떤 의미로 보면 과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동 연습은 지휘부, 참모부, 계획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파업에서는 이것들이 없다. 공산당을 비롯해서 노동계급 조직의 주요 수뇌부는 이 사태를 예상도 못하고 맞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파업이 자신들의 청사진을 망치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다. 라디오는 마르쎌 까쉥의 놀라운 발언을 전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파업이라는 사실에 직면하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파업은 우리의 공동의 불행이라는 것이다. 이런 말과 함께 이 상원 의원은 자본가들에게 사태를 악화시키지 않기 위해 양보할 것을 설득한다. 노동자 정당의 의원들과 노동조합 서기들은 파업을 될수록 빨리 진화하기 위해 대오 바깥에서 파업에 적응하고 있는데 허공에 붕뜬 상태에 있다. 발과 머리 중 어느 것을 먼저 땅에 댈지 이들은 알지 못하고 있다. 각성된 대중은 아직도 혁명 지도부를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

한편 지배계급은 진짜 지도부를 보유하고 있다. 이 지도부는 블룸 정부가 아니라 이 정부를 아주 솜씨 있게 이용하고 있는 배후세력이다. 자본주의 반동세력은 엄청난 것이 걸려 있는 위험한 게임을 하고 있으나 용의주도하게 게임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이들은 “패자가 승리”하는 게임을 하고 있다. “지금은 블룸, 주오, 달라디에가 만장일치로 찬성하는 불쾌한 요구사항들을 다 들어주자. 그러나 원칙을 인정하는 것과 원칙을 행동을 통해 실현시키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하원, 상원, 대법원 등이 있으며 이것들은 노동자들의 요구사항이 실현되는 것을 방해하는 기구들이다. 대중은 참을성을 상실하고 더 커다란 압력을 가하려고 나설 것이다. 달라디에는 블룸과 결별하고 토레즈는 좌로 뒷걸음칠 것이다. 블룸과 주오는 대중과 결별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지금의 양보조치를 이자까지 합쳐서 만회할 것이다.” 이것이 반동세력의 지휘부를 구성하는 그 유명한 “200대 족벌”과 이들의 고용된 전략가들이 가지고 있는 논리이다. 이들은 계획에 의거하여 행동하고 있다. 이들의 계획이 근거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경솔한 짓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 블룸, 주오, 까쉥 등의 도움을 받아 반동세력은 자신의 목표를 달성 할 수 있다 .

비록 임기응변이기는 해도 대중운동이 이렇게 거대한 수위에 이르고 거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은 파업물결의 심대하게 유기적이고 진정 혁명적인 성격을 가장 잘 보여준다. 이것은 운동의 지속성, 끈질김 그리고 더욱 상승하는 일련의 파업물결이 불가피함을 보증한다. 이것이 없으면 승리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충분히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200대 족벌”의 지휘부와 계획에 맞서 노동계급 혁명의 지휘부와 계획이 있어야 한다. 지금은 이중 어느 것도 존재하지 않으나 만들어낼 수는 있다. 대중이 새로이 투쟁으로 결집될 모든 전제조건과 요인들은 지금 존재한다.

인민전선 정부에 대한 “기대” 때문에 파업 물결이 몰아치고 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진실의 4분의 1에 지나지 않거나 그보다 더 적다. 기대 에만 모든 것이 달려 있다면 노동자들은 투쟁을 감행할 위험을 감수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정부가 난관을 극복하고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시켜줄 능력이 전혀 없다는 노동자들의 생각이 파업으로 표현되었다. 노동자들은 정부를 “돕기를 원한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방식대로 돕고자 한다. 물론 이들은 자신의 힘에 대해서 완전히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대중이 블룸 정권에 대한 경건한 “기대”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사태를 묘사하는 것은 대단한 왜곡이 아닐 수 없다. 가능하면 빨리 자신들을 옛날의 노예상태와 따분한 일상으로 돌려보내려고 애를 쓰는 기존의 지도자들에게 묶여있는 한 이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명쾌하게 갖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프랑스 노동자들은 햇병아리가 아니다. 언제나 모든 곳에서 파업은 가장 생각이 깊고 대담한 노동자들을 선두로 내세웠다. 이들에게 주도권이 있다. 이들은 아직도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고 있다. 노동자의 전위부대는 고립을 피하기 위해 성급히 앞으로 나서기를 주저하고 있다. 이들의 주도에 대한 가장 후위 노동자들의 메아리와 재차 메아리는 이들에게 새로운 용기를 불어 넣어준다. 노동계급에 대한 출석 체크는 동원 연습이 되었다. 노동계급이야말로 자신의 힘을 과시할 필요가 가장 컸다. 아무리 위태로울지라도 투쟁의 실제적 성공은 대중의 자신감 특히 가장 후진적이고 억압받는 부위의 자신감을 크게 높일 수밖에 없다.

첫 파업물결의 최상의 성과는 투쟁 지도자들이 공장에서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지방과 지역의 투쟁지도부가 어느 정도 창출되었다. 대중은 이들을 알고 지도자들은 대중을 안다. 진정한 혁명가들은 이들 공장의 새로운 투쟁 지도자들과 접촉을 시도할 것이다. 이로써 대중의 첫번째 투쟁참여는 혁명 지도부의 최초의 분자들을 솎아내고 탄생시켰다. 파업은 거대한 계급유기체 전체를 뒤흔들고 생기를 불어넣고 재생시켰다. 기존의 조직적 외피는 결코 탈각되지 않았다. 이와 반대로 이 외피는 아직도 끈질기게 붙어있다. 그러나 그 밑에 새로운 피부가 이미 보이고 있다.

사태 전개의 리듬에 대해서 지금 얘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속도가 붙을 것이다. 이 측면에 대해서는 예상과 추측만이 현재 가능할 뿐이다. 두번째 파업의 물결, 그 지속성, 범위, 강도는 의심의 여지없이 첫번째의 경우보다 훨씬 더 구체적인 예상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점은 이미 분명하다: 두번째 파업의 물결은 평화스럽고 거의 성격이 좋은 샘물과 같은 첫번째 파업의 성격을 띠지는 않을 것이다. 좀더 성숙하고 좀더 완고하고 거친 성격을 띨 것이다. 왜냐하면 인민전선 정책과 자신들의 투쟁의 실제적 결과에 대한 대중의 실망으로부터 파업이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의회 다수당 내부에서 뿐만 아니라 정부 내에서도 분화의 과정이 일어날 것이다. 반동세력은 즉시 더욱 자신감을 갖고 대담해질 것이다. 더 이상 쉬운 성과를 대중은 기대할 수 없다. 이미 성취한 것을 잃을지도 모르는 위험과 적의 점점 커지는 저항 그리고 공식 지도부의 혼란과 우유부단에 직면하여 대중은 강령, 조직, 계획, 지휘부의 필요성에 목마를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는 자신과 선진노동자들을 준비시켜야 한다. 혁명의 분위기 속에서는 대중은 급속히 재교육을 받고 혁명 중핵은 급속히 선정되고 단련된다.

혁명 지도부는 상층의 연합으로 탄생되지 않는다. 지금 프랑스에 혁명적 대중정당이 존재한다 할지라도 투쟁조직은 당과 같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혁명운동은 당에 비할 바 없이 넓은 범위를 갖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조직은 노동조합과도 같지 않다. 왜냐하면 노동조합은 계급대중의 극히 적은 부위만 포괄하며 초반동적인 관료집단이 우두머리로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조직은 운동 자체의 성격과 조응할 수 밖에 없다. 투쟁대중을 반영하고 이들의 점증하는 정치적 의지를 표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혁명 계급을 직접 대변하는 문제이다. 여기서 새로운 조직 형태를 발명할 필요는 없다. 역사적 선례가 이미 존재한다. 각 산업과 공장은 함께 모여 투쟁계획을 입안하고 지도력을 제공할 대표들을 선출할 것이다. 이러한 조직의 이름도 발명할 필요가 없다.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 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혁명적 노동자의 주요한 부위는 현재 공산당을 따르고 있다. 이들은 과거에 한번 이상 “모든 곳에 소비에트를 수립하라!”는 구호를 외친 바 있다. 의심의 여지없이 이들의 대다수는 이 구호를 정직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우리가 이 구호를 시기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급변했다. 동요하고 시간을 허비하는 자는 배신자이다. 역사상 모든 승리 가운데 가장 커다란 승리와 패배, 이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승리를 준비해야 한다. “모든 곳에 소비에트를 수립하라”? 동의한다. 지금은 말을 행동으로 옮길 때이다.

 

제 2단계 투쟁을 앞두고 (1936년 7월 9일)

 

빠리의 [시대]지나 런던의 [타임즈]지와 같은 진지한 자본주의 언론은 프랑스와 벨기에의 6월 사건들의 의미를 인민전선의 언론보다 훨씬 더 정확하고 심도있게 평가했다. 이 사실을 여기서 다시 한번 반복해야 한다. 블룸의 꽁무니를 쫒아다니는 사회당과 공산당의 공식 기관지들은 “프랑스 사회의 평화로운 변모”의 시작을 말하고 있는 반면에 보수언론은 프랑스에서 혁명이 시작되었으며 이것은 다음 단계들에서는 폭력적인 형태를 띨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전망을 오직 또는 주로 유산자들을 공포에 몰아넣기 위해 의도된 것이라고 보는 것은 오류가 될 것이다. 대자본의 대표들은 사회투쟁을 매우 현실적으로 분석할 능력을 지니고 있다. 반면에 소부르조아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소망을 현실로 즉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금융자본과 노동계급이라는 주요 계급들 사이에 선 “개혁주의자” 양반들은 인민전선의 참모부에서 공들여 작성했지만 자기들끼리도 해석을 달리하는 중간의 길을 걸을 것을 두 반대 세력에게 제안한다. 그러나 특히 사회위기 한 가운데에서 정부 활동보다 사설을 통해 계급갈등을 화해시키는 것이 훨씬 쉬운 일이라는 것을 곧 확신하게 될 것이다.

의회에서 아이러니컬한 비판이 블룸에게 가해졌다. 즉 그가 파업노동자들의 요구사항들을 “200대 족벌”의 대표들과 협상했다는 것이다. 이 비판에 대해서 수상은 이렇게 재치있게 대답했다: “그러면 다른 누구하고 협상을 합니까?” 사실 부르조아 계급과 협상을 하려면 스스로 결정할 능력이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명령을 할 수 있는 진짜 주인들을 선택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럴 경우 이들에 대해 그리도 시끄럽게 전쟁을 선언하는 것은 의미없는 일이었다! 부르조아의 법과 틀 내에서는 “200대 족벌” 하나 하나가 블룸 정부보다 비교할 수 없이 더 강력하다. 금융족벌들은 프랑스 부르조아 체제의 최우량 부위를 대표한다. 반면 블룸 정부는 선거 승리에도 불구하고 두 적대 진영 사이의 짧은 휴전을 통해서만 사회의 “정점”에 서 있을 뿐이다.

7월 전반부인 현재 표면상으로는 모든 것이 다소간 정상으로 돌아온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사실 지배계급의 최상부 뿐 아니라 노동계급의 깊숙한 곳에서도 새로운 싸움에 대한 거의 자동적인 준비가 지금 진행 중이다. 문제의 핵심은 이렇다. 6월에 자본가들과 노동운동 지도자들 사이에 체결된 개혁 조치들은 실제로는 대단히 미진하면서도 계속 유지될 수가 없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이미 쇠퇴하는 자본주의의 능력을 이미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금융과두 세력은 경제위기가 한창일 때에도 부동산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주당 40시간의 노동제, 유급 휴가 등을 물론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수십만의 중소 사업가들은 금융자본의 버팀대가 되면서 블룸정부와 체결한 양보조치의 짐을 전가받는 대상인데, 이들은 조용히 파산을 당하던가 사회개혁의 비용을 소비자인 노동자와 농민에게 전가시키든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물론 블룸은 두 번 이상 의회와 언론에 전반적인 경기상승과 급속히 확장되는 거래량의 매혹적인 전망에 대해서 장황하게 설명한 바 있다. 그의 전망이 현실화된다면 전반적인 생산비용이 상당히 감소될 것이고 상품가격의 상승 없이 노동력에 대한 지출을 증대시킬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러한 복합적인 경제상황은 과거에도 빈번했다. 생산력이 상승하는 단계의 자본주의 시기 전체가 바로 이러한 경우였다. 블룸의 전망에 단 하나의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그가 돌이킬 수 없이 과거지사가 된 것을 미래의 상황으로 투영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사고와 행동의 정치인들이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니 공산주의자라고 부를 수는 있다. 그러나 이들의 시야는 미래가 아니라 과거에 고정되어 있으며 따라서 사회발전에 브레이크 역할을 할 뿐이다.

농업과 공업 사이의 그 유명한 “균형”으로 이름난 프랑스 자본주의는 이탈리아나 독일보다 늦게 쇠퇴의 단계에 들어섰다. 그러나 이 경향에 저항할 수 없기는 두 나라와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혁명적 선언문의 문구가 아니라 논란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프랑스의 생산력은 사적 소유와 국가의 틀을 초월했다. 자본주의 체제의 토대에 대한 정부의 개입은 체제 쇠퇴의 비용성 지출을 한 계급으로부터 다른 계급으로 옮기는 데에만 도움이 될 뿐이다. 그러면 어떤 계급에게 지출이 전가되는가? 사회당 수상이 국민소득의 “좀더 공정한” 분배에 대한 협상을 수행해야만 할 때, 그는 이미 우리가 알고 있듯이 “200대 족벌”의 대표들보다 더 가치가 있는 사람을 찾을 수 없다. 산업, 신용, 상업 등 모든 기본 지렛대를 손에 쥐고 있는 금융계 거물들은 노사합의의 비용을 “중간계급”에게 전가하여 이들이 바로 이 이유 때문에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하도록 강제할 뿐이다. 바로 여기에 상황의 핵심이 존재한다.

제조업자들과 상인들은 장부를 장관들에게 보이면서, “우리는 할 수 없소.”라고 말한다. 정부는 정치경제학의 낡은 교과서 내용을 상기시키면서 대답한다, “생산비용을 줄일 필요가 있습니다.”그러나 이것은 말하기는 쉬워도 실행하기는 어렵다. 더욱이 주어진 상황하에서 기술의 개선은 실업의 증대와 궁극적으로 위기의 심화를 의미한다. 한편 노동자들은 첫 가격인상이 자신들의 투쟁성과를 집어삼킨다는 사실에 항의하고 있다. 정부는 산하 행정관들에게 높은 생계비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시작하라고 명령 내린다. 그러나 행정관들은 오랜 경험을 통해 고기값을 내리는 것보다 야당신문의 논조를 낮추는 것이 훨씬 쉽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물가폭등의 물결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영세 제조업자, 상인 그리고 나름대로 농민들은 인민전선에 대해 더욱더 실망하게 될 것이다. 노동자들보다 이들은 훨씬 더 직접적으로 그리고 순진하게 인민전선으로부터 즉시 구원의 손길이 자신들에게 닿기를 기대했다. 중용을 지침으로 하는 정치인들이 선두에 서서 중간 계급을 “겁주기”를 두려워하여 기존 사회체제 즉 역사적인 막다른 골목의 틀을 넘어서지 않는다. 바로 여기에 인민전선의 근본적인 정치적 모순이 존재한다. 한편 소위 중간계급의 최상부가 아니라 하층 부위는 온갖 곳에 막다른 골목이 있음을 감지하고 대담한 행동을 불사하면서 자신들의 목에 드리워진 올가미의 제거를 요구한다. 권력을 잡은 현학자들은 계속 이렇게 반복한다, “우리에게 기적을 기대하지 마시오.” 그러나 “기적”, 영웅적인 결정, 소유관계의 완전한 전복, 국가의 손에 집중된 은행제도, 기본 산업부문, 외국무역 등이 없이는 도시와 농촌의 소부르조아 계급에게는 구원이 있을 수 없다. 바로 이 사실에 사태의 핵심이 존재한다. 특히 “중간 계급”의 이름으로 인민전선이 수립되었는데 이 계급이 좌익에게서 혁명적 대담성을 찾지 못한다면 이들은 우익에게서 이것을 찾을 것이다. 이 계급은 열병에 걸려있으며 불가피하게 몸을 뒤척일 것이다. 한편 대자본가들은 자신감을 가지고 파시즘의 등장을 주시하고 있다. 이제 파시즘은 부르조아를 아버지로 두고 자동차와 비행기를 가지고 노는 철부지 애들의 반(半)군사적 조직일 뿐만 아니라 진정한 대중운동이 될 것이다.

6월에 노동자들은 지배계급에게 엄청난 압박을 가했다. 그러나 이들은 이 투쟁을 결론으로 이끌지 못했다. 혁명적 위력 뿐만 아니라 강령과 지도부의 결여라는 약점도 동시에 드러내었다.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버팀대와 이 사회의 치유되지 않은 궤양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이제 좌익 선동가들에 대한 탄압, 우익 선동가들의 더욱더 독이 오른 선동, 실험적 물가폭등, 대대적 공장폐쇄를 위한 제조업자들의 동원 등 반격이 준비되는 시기가 전개되고 있다. 파업물결 전까지만 해도 조합원이 백만을 넘지 못했던 프랑스의 노동조합은 이제 5백만에 가까운 조합원을 보유하고 있다. 노동조합에 대한 이 유례없는 대중의 유입은 노동대중을 움직이는 정서의 정도를 나타낸다. 투쟁의 성과가 비용으로 고스란히 자신들의 등짝에 전가되는 것을 투쟁 한번 없이 이들이 순순히 수용할 것이라는 예상은 말이 되지 않는다.

장관들과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정부가 문제를 해결하는 동안 산업평화를 유지하고 정부를 방해하지 말라고 쉬지않고 노동자들에게 촉구한다. 그러나 정부가 어떤 문제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한, 6월의 양보조치가 파업에 의한 것일 뿐 노동자들이 조용히 기다려서 얻어진 것이 아닌 이상, 자본의 반격에 직면하여 정부의 무능이 하루 하루 드러나는 이상 이러한 단조로운 호소는 힘을 잃게 될 것이다. 6월의 승리 아니 좀더 정확히 표현해서 이 승리의 반(半)허구성으로부터 나오는 논리는 도전을 받아들이고 다시 한번 투쟁의 길로 나서도록 노동자 대중을 강제하고 있다. 이 전망에 겁을 먹고 정부는 우로 경사하고 있다. 급진당의 압력 하에 그러나 최종적으로 분석하면 “200대 족벌”의 요구 하에 사회당 출신 내무장관은 상원에서 파업 노동자들에 의한 더 이상의 공장, 상점, 농장의 점거는 눈감아줄 수 없다고 선언했다. 이런 종류의 경고는 물론 투쟁을 멈출 수 없다. 다만 투쟁을 한없이 더 단호하고 격렬하게 만들 수 있을 뿐이다.

새로운 사회 투쟁이 양측 모두에 의해 준비되고 있다. 그리고 이 투쟁은 거의 기계적 불가피성과 함께 터질 것이다. 이 결론은 사실로부터 도출되는 절대적으로 객관적 분석에서 도출될 뿐 우리의 소망에 의한 창조물이 결코 아니다. 사실은 지금도 이 투쟁의 일반적 성격을 규정하기가 어렵지 않다. 역사상 모든 혁명적 시기에는 서로 긴밀히 연관된 두 단계가 등장한다. 우선 “원초적인 거침없는” 대중 운동이 폭발한다. 이 투쟁은 적대세력을 놀라 자빠지게 하면서 중대한 양보조치나 약속을 강제해 낸다. 그리고는 지배계급은 자신의 통치기반이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고 복수를 준비한다. 반 정도만 승리한 대중은 참을성을 잃기 시작한다. 적대세력과 함께 투쟁에 놀란 기존 좌익 지도자들은 화해적인 언사를 통해 상황을 구출하려 하지만 대중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할 뿐이다. 대중은 거의 지도부도 없이, 명확한 강령도 없이  그리고 앞에 놓인 난관을 이해하지 못한 채 새로운 투쟁에 이끌린다. 최초의 반 정도만의 승리로부터 어쩔 수 없이 도출되는 이러한 투쟁은 종종 이들의 패배 또는 반 정도의 패배를 가져왔다. 이러한 규칙의 예외는 혁명의 역사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이 규칙으로부터 차이가 있다면 적은 차이는 아닌데 때때로 패배가 완전한 패망 의 성격을 띤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1848년 프랑스의 6월이 그러했는데 이 패배는 혁명에 완전히 종지부를 찍었다. 그러나 다른 경우에는 반 정도의 패배가 승리를 준비하는 단계 에 지나지 않음이 드러난다. 1917년 7월 뻬쩨르부르그 노동자와 병사들의 패배가 바로 이런 경우였다. 볼셰비키의 상승을 가속화시킨 것은 바로 이 7월의 패배였다. 이들은 어떠한 환상이나 가식이 없이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실패, 희생, 탄압으로 점철된 가장 어려운 때에 대중과 유리되지 않았다.

그렇다. 보수언론은 상황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있다. 정치 및 군사기구를 보조수단으로 보유한 프랑스의 자본가 계급은 싸늘하게 복수를 준비하고 있다. 인민전선의 최상부에는 혼란과 내부분란만 난무할 뿐이다. 좌익 신문들은 도덕적 설교만 수없이 난발할 뿐이다. 지도자들이라는 인간들은 말만 나불대다가 목이 메인다. 장관들은 증권시장에 자기야말로 성숙한 정치인이라고 서로 경쟁적으로 아우성친다. 이 모든 것들이 노동계급이 6월처럼 기존 조직의 지도자 없이 그리고 이번에는 이들에 반대하여 곧 투쟁에 나설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모두가 인정하는 새로운 지도자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투쟁이 즉시 승리하리라는 예상을 전혀 할 수 없다. 1848년 6월이나 1917년 7월 상황이 재현될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상당히 오랜 세월에 걸쳐 헤어나지 못할 완전한 패망와 함께 파시스트 반동의 불가피한 승리 아니면 패배를 통한 전략에 대한 엄중한 교훈을 얻어 노동계급이 성숙하고 지도부를 교체하고 미래의 승리를 준비하는 것 중 하나를 예상할 수 있다.

프랑스 노동계급은 어린애가 아니다. 시대를 연 수많은 투쟁 전통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 새로운 세대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배워야만 한다. 그러나 이들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 아니며 비록 속성 강좌를 통해서나마 모든 것을 새로 배우는 것도 아니다. 위대한 전통이 노동자의 골수에 스며들어 투쟁의 경로를 설정하는데 도움을 준다. 심지어 6월에도 각성된 계급의 이름없는 지도자들은 훌륭한 혁명적 감각으로 투쟁 방법과 형태들을 찾아냈다. 대중의 의식은 지금 단 한시간도 정지되지 않은 채 분자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가능하게 한다: 새로운 지도자들은 멀지 않은 시기에 도래할 불가피한 투쟁에 대중과 충실히 함께 할 뿐 아니라 불충분하게 준비된 군대를 완전한 패배 이전에 전투로부터 후퇴시킬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의 혁명가들이 투쟁을 촉진시키거나 “인위적으로” 자극하는데에 관심이 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오직 가장 멍청한 경찰이나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맑스주의 혁명가들은 현실을 명확하게 직시하고 사물을 본성 그대로 이름부르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알고 있다. 투쟁 제 2단계의 전망에 관해 객관적 상황으로부터 제때 결론을 도출해야 선진노동자들이 준비된 채 상황에 대비할 수 있을 것이며 투쟁하는 대중의 의식 속에 가능한한 투명한 명확성을 제공할 수 있다. 현재 진지한 정치적 지도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새로운 혁명적 격동과 제 4인터내셔널의 임무 (1936년 7월)

 

1. 6월 파업은 프랑스와 벨기에의 정세에 새로운 시기를 열고 있다. 의심의 여지없이 이들 나라에서 계급투쟁의 격화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적절한 시기에 영국을 포함한 유럽의 상당한 지역에 그리고 어쩌면 유럽 바깥에도 대중운동의 상승을 가져올 것이다. 이 결과 스페인 혁명은 현재 고립상태에서 벗어나 있다.

2. 위기와 반동의 시기에 도시와 농촌의 노동계급 대중이 겉으로는 수동성을 보인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상당한 분노와 투쟁에 대한 적극성을 축적해왔음을 가를 6월 파업은 보여주었다. 이 파업은 노동자 투쟁에 대한 도시 소부르조아 계급과 농민 다수의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마지막으로 체제 전체의 극단적인 불안정, 지배계급의 자신감 결여, 레옹 블룸과 파시스트 들라로크 사이에서 보인 이들의 동요 역시 드러내 주었다. 전체 노동계급의 투쟁 적극성, 소부르조아 계급 하층부의 격렬한 불만, 금융자본 진영 내부의 혼란 등 세가지 조건은 노동계급 혁명의 전제조건 을 충족시키고 있다. 

3. 대중의 전투적 공세는 이번에도 역시 총파업 의 특성을 띠고 있다. 부분적 노동조합적 요구는 그 자체로 중요하지만 노동자들에게는 부르조아 계급과 그 국가에 대항하여 가능한 한 많은 노동자들을 분기시키고 단결시키는 필요한 수단이었다. 총파업은 혁명투쟁의 시기를 열면서 부분적 노동조합적 요구들을 아직 명확히 표현되지 않은 계급 전체의 임무와 결합시킬 수밖에 없다. 바로 이 결합에 총파업의 위력이 있으며 전위와 폭넓은 계급대중의 결합이 보장된다.

4. 우리 조직의 프랑스 지부는 최근 몇 년 동안 총파업을 선전의 중심에 놓아왔다. 노동계급의 이름을 걸고 존재하는 다른 정당이나 그룹과는 달리 프랑스의 볼셰비키-레닌주의 그룹은 제때에 상황을 준혁명적이라고 평가하고, 브레스트와 뚤롱에서 터져나온 파업이 내포하는 징후적 의미를 올바로 이해했다. 그리고 기회주의 및 사회애국주의 세력(사회당, 공산당, 노동총연맹)의 끊임없는 공격과 마르쏘 삐베르 등 중도주의 세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선동을 통해 총파업을 준비했다. 비옥한 토양에서는 한줌의 씨가 큰 수확을 올린다. 따라서 사회 위기와 대중의 분노의 조건 속에서 물리적 자원은 빈약하나 올바른 구호로 무장한 소규모 그룹은 혁명의 경로에 의심의 여지없는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볼셰비키-레닌주의 그룹에 대한 자본가 계급 전체, 사회당, 공산당, 노동조합 등이 보유한 언론의 맹렬한 비난과 레옹 블룸의 경찰과 판사들의 탄압은 이 진실을 외부적으로 확인시키고 있다.

5. 프랑스와 벨기에의 어느 공식 노동자 조직도 이 투쟁을 원하지 않았다. 파업은 노동조합과 양대 정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터져나왔다. 이미 성취된 사실에 직면해서야 공식 지도자들은 즉시 파업을 압살하기 위해 파업을 “인정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부분적 요구를 건 구호 하에 비교적 “평화로운” 운동의 문제만 존재했다. 그러나 권력을 향한 공공연한 투쟁이 전개되는 때가 되면 1917년 러시아의 사회혁명당과 멘셰비키들이 그랬던 것처럼 제 2 제 3 인터내셔널의 기구들이 노동계급에 반대하여 부르조아 계급의 하수인이 될 것이다. 이 점은 한순간도 의심할 수 없다. 프랑스와 벨기에의 사태는 다시 한번 논란의 여지없이 노동계급 혁명의 세계정당인 새로운 인터내셔널의 필요성을 증명하고 있다.

6. 그러나 거대한 6월 파업의 물결이 가져온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결과는 기존 노동자 조직들의 예외적으로 급격한 성장이다. 이 사실은 역사적 예를 보더라도 완벽히 이해될 수 있다. 1917년 2월 혁명 후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은 열병에 걸린 것처럼 급성장했다. 이들 사회애국주의 조직들은 이 혁명이 전쟁기간에 터져 나오기를 원치 않았었다. 그리고 독일사민당은 1918년 11월 혁명 직후 급격하게 성장했다. 이 정당 역시 혁명을 반대했었다. 노동계급 전체 앞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파산을 폭로시키기 전 이들 기회주의 정당들은 잠시 폭넓은 대중의 피난처가 된다. 프랑스의 사회당 특히 “공산당”의 급격한 성장은 이 나라 혁명 위기의 확실한 징후이며 동시에 제 2 제 3 인터내셔널의 사망을 예비하고 있다.

프랑스 노동조합의 유례없는 급격한 성장 역시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겉으로는 개량주의-스탈린주의 노동조합 지도부(주오, 라카몽 등)의 비중과 중요성을 증대시키지만 수백만 노동자들의 새로운 유입은 보수적 노동조합 기구의 토대 자체를 침식한다.

7. 거대한 대중운동은 이론과 강령에 대한 최상의 시험대이다. 6월 파업은 초좌익, 종파주의 이론들이 얼마나 잘못되었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 이론들은 노동조합이 유효성을 “넘겨 생존”하고 있으며 다른 조직들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기존의 보수적 노동조합에 대항해 새로운 “진정한” 노동조합을 건설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사실 혁명기에는 경제적 요구와 사회개혁 입법을 위한 투쟁은 소멸되기는커녕 유례없는 정도로 폭발한다. 노동조합으로 몰려드는 수십, 수백만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의 일상적 활동을 파괴하고 보수적인 기구를 뒤흔든다. 그리고 혁명정당으로 하여금 노동조합에 자신의 분파를 건설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며 노동조합의 지도적 역할을 위한 투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조건을 조성한다. 기존의 노동조합에서 체계적이며 성공적인 작업을 수행할 능력이 없는 혁명정당은 자신의 노동조합을 수립할 능력도 없다. 이 모든 시도들은 실패로 끝나게 마련이다.

8. 제 2 제 3 인터내셔널 지도자들의 주장과는 반대로 지금 자본주의는 모든 노동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노동자의 생활수준을 올릴 능력을 이미 상실했다. 금융자본은 물가상승, 공개적 비공개적 인플레, 세금 등으로 사회개혁의 비용을 노동자와 소부르조아 계급에게 전가시킨다. “민주” 또는 파시스트 국가에서 지금 시행되고 있는 “경제개입정책”의 핵심은 인민의 생활과 문화 수준을 낮추면서 썩어빠진 자본주의를 살리는 데에 있다. 사적 소유체제의 틀 내에서는 다른 어떤 방법도 불가능하다. 프랑스 및 스페인의 인민전선 정권과 벨기에 연립정권의 정책은 의도적인 기만술과 신기루에 지나지 않으며 노동대중에게 새로운 절망을 예비할 뿐이다.

9. 썩어가고 있는 자본주의하에서 소부르조아 계급의 완전한 절망적 위치는 다음을 의미한다: 레옹 블룸, 반더벨드, 디미트로프, 까쉥 등의 창피스러운 “사회적 조화” 이론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로도 불안정하고 기만적인 노동계급을 위한 사회개혁은 도시와 농촌의 소부르조아 계급의 파멸을 가속화시키고 이들을 파시즘의 품으로 밀어넣는다. 노동계급과 소부르조아 대중의 진지하고 심오하며 영속적인 단결은 소부르조아 대중을 착취하는 급진당과의 의회연합과는 반대로 혁명 강령 즉 노동계급에 의한 국가권력 장악 그리고 모든 근로대중을 위한 소유관계의 혁명으로만 가능하다. 부르조아 계급과의 연합인 “인민전선”은 혁명을 저지하고 제국주의에게 안전판을 제공하는 장치일 뿐이다.

10. 소부르조아 계급과 노동계급의 연합을 위한 첫번째 조치는 프랑스와 스페인의 부르조아 급진당, 벨기에 카톨릭 정당과 자유당 등과의 연합을 파기하는 것이다. 사회당과 공산당의 모든 노동자에게 경험에 의거하여 이 진리를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지금 이 순간의 가장 중심적 임무이다. 개량주의와 스탈린주의에 대항하는 투쟁은 지금 단계에서 무엇보다도 부르조아 계급과의 연합을 파기시키는 투쟁이다. 착취자와의 사기적인 연합에 반대하여 노동자들의 진실된 단결을! 부르조아 정당은 인민전선에서 꺼져라! 자본주의 정당 출신의 장관들을 몰아내자!

11. 지금은 다가올 혁명의 전개 속도를 추측만 할 수 있다. 전쟁의 패배, 농민 문제, 볼셰비키 정당 등 예외적인 상황 덕분에 러시아 혁명은 8개월만에 절대주의의 타도에서 노동계급에 의한 권력장악까지 혁명적 상승을 마무리지었다. 그러나 이 짧은 시기도 4월 무장 시위, 7월 뻬쩨르부르그의 패배, 8월 코르닐로프의 반혁명 쿠데타 시도 등의 사건이 있었다. 스페인 혁명은 이미 5년동안 밀물과 썰물을 겪으면서 계속되고 있다. 이 기간동안 스페인 노동자와 빈농은 그렇게도 멋진 정치적 본능을 보여주었으며 거대한 투쟁 에네르기, 헌신, 영웅적 행위를 전개하여 지도부가 조금만이라도 정치상황과 노동계급의 전투적 투쟁에 부응했더라면 국가권력은 이미 오래 전에 노동계급의 손에 들어갔을 것이다. 스페인 자본주의의 진정한 구원자는 자모라, 아자냐, 길 로블레스가 아니라 사회당, 공산당, 무정부주의 조직의 지도자들이었으며 지금도 그렇다.

12. 프랑스와 벨기에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레옹 블룸의 정당이 진짜 사회당이라면 총파업에 기반하여 내전 없이 최소한의 혼란과 희생으로 6월에 이미 부르조아 계급을 타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블룸의 정당은 썩어빠진 급진당의 동생 격인 부르조아 정당이다. 또한 “공산”당이 공산주의와 공통점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파업의 첫날부터 자신의 범죄적인 오류를 교정하고 급진당과의 치명적인 연합을 파기하고 노동자들에게 공장위원회와 소비에트 수립을 촉구했을 것이다. 이 결과 노동계급 독재로 나아가는 가장 짧고도 가장 확실한 가교인 이중권력 상황을 전국에 조성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공산당은 프랑스 제국주의의 도구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스페인, 프랑스, 벨기에의 운명의 열쇠는 혁명적 지도력 에 있다.

13. 똑같은 결론이 국제정책의 교훈 특히 소위 “반전투쟁”으로부터 도출된다. 사회애국주의자들, 중도주의자들 그것도 특히 프랑스의 양반들은 국제연맹에 머리를 조아리는 자신들을 합리화한다. 대중이 투쟁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특히 이디오피아에 대한 이탈리아의 강도적 침략에 대항하여 대중이 무역금수 조치에 동참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를 대면서 말이다. 맥스튼 같은 평화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무기력을 숨기기 위해 이와 똑같은 주장을 한다. 6월 상황에 비추어 보았을 때 대중이 자기 조직의 지도자들에 의해 속거나, 최면상태에 빠지거나 지체되거나 마비되고 사기저하가 되었기 때문에, 오직 이 이유 때문에 제국주의자들의 국제적 도발에 대응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특히 명확해진다. 만약 소련의 노동조합들이 이탈리아에 대한 무역금수에 제때 동참하는 모범을 보였다면 이 운동은 마치 요원의 불길처럼 피할 수 없는 힘으로 유럽 전체와 세계를 뒤덮었을 것이고 단번에 모든 제국주의자들에게 위협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소련의 관료집단은 모든 혁명적 주도력을 금지하고 억압하여 에리오, 레옹 블룸, 국제연맹 앞에 코민테른이 쓰러져 항복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노동계급의 국내정책과 똑같이 국제정책의 문제도 혁명적 지도력 의 문제이다.

14. 진정한 대중운동은 모두 폭풍처럼 혼탁한 대기를 정화시키고 동시에 모든 종류의 허구와 애매함을 파괴시켜 버린다. 6월 상황에 비추어 노동계급의 이해를 배신하는데 이미 충분히 단합된 힘을 보인 두 인터내셔널을 “통합하자”는 구호는 애처롭고 경멸스러울 뿐이다. 그리고 언제나 동요하다가 가장 최악의 정책만을 택하는 런던사무국(2.5 인터내셔널)의 동종요법도 마찬가지이다.

동시에 6월 사태는 무정부주의 그리고 소위 “혁명적 조합주의(revolutionary syndicalism)”의 완벽한 파산도 폭로시켰다. 이 두 경향 모두 사태를 예측하거나 준비하지 못했다. 총파업, 공장위원회, 노동자에 의한 생산의 통제 등에 대한 선전은 전적으로 하나의 정치조직 즉 정당에 의해서 수행되어져 왔다. 달리 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확고하게 결집된 전위에 의해 고무되거나 지도되지 않는다면 노동계급의 대중조직은 무기력, 우유부단, 방향상실 등에 빠질 뿐이다. 혁명정당의 필요성은 새로운 힘으로 증명되고 있다.

15. 따라서 혁명투쟁의 모든 임무는 하나의 임무로 필연적으로 집약된다. 우리 시대의 임무와 가능성들을 실현시킬 수 있는 새로운 진정으로 혁명적인 지도부의 건설이 바로 이것이다. 대중운동에 대한 직접적 개입, 명확한 결론으로 이끄는 대담한 계급적 구호, 독립적인 깃발, 타협주의자들에 대한 단호한 거부, 배신자들에 대한 무자비함 --- 바로 여기에 제 4 인터내셔널의 길이 있다. 이 새로운 인터내셔널을 “창립할” 시간이 되었는 지에 대한 논의는 흥미로우면서도 동시에 황당하다. 인터내셔널은 무슨 조합처럼 “창립되는 것”이 아니라 투쟁을 통해 건설되는 것이다. 6월 사태는 이것의 “시기적절함”을 논의하는 현학자들에 대한 대답이다. 더 이상 논의할 여지가 없다.

16. 부르조아 계급은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다. 새로운 사회적 투쟁이 지금 의도적으로 대자본의 사령부에 의해 준비되고 있다. 이것은 처음부터 노동자에 대한 대대적인 도발이나 일련의 도발의 성격을 띨 것이다. 동시에 “해체된” 파시스트 조직들이 맹렬한 준비를 하고 있다. 프랑스, 벨기에, 스페인에서 자본과 노동 두 진영의 충돌은 절대적으로 불가피하다. 인민전선의 지도자들이 계급 갈등을 “화해시키고” 혁명투쟁에 찬물을 끼얹으면 끼얹을수록 두 진영의 충돌은 가까운 미래에 더 폭발적이고 격동적일 것이며 더 많은 희생을 야기시킬 것이며 그만큼 노동계급은 파시즘에 대항해서 방어할 능력이 없어질 것이다.

17. 제 4 인터내셔널의 지부들은 이 위험을 명확하게 직시하고 있다. 이들은 공개적으로 노동계급에게 이 위험을 경고한다. 이들은 전위에게 스스로를 조직하고 투쟁에 대비하도록 가르친다. 동시에 이들은 책임을 완전히 회피하는 술수를 경멸적으로 거부한다. 앞으로 다가올 수개월과 수년간 자신들에게 가해질 타격이 아무리 심하다 할지라도 이들은 투쟁 대중과 자신의 운명을 동일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들은 모든 투쟁에 최대의 명확성과 조직력을 부여하기 위해 모든 투쟁에 참여한다. 이들은 지치지 않고 공장위원회와 소비에트를 촉구한다. 이들은 운동에 의해서 배출된 최량의 지도적 노동자들과 결합하여 이들과 손을 맞잡고 새로운 혁명적 지도부를 건설한다.

모범과 비판을 통해 이들은 기존의 정당 내부에 혁명 분파의 성립을 촉진하며 이 분파를 투쟁과정에서 더욱 가깝게 견인하며 제 4 인터내셔널의 길로 추진시킨다.

전선의 맨 앞에서 살아있는 투쟁에 참여하고 노동조합 내부에서 투쟁하며 정당을 건설하는 것, 이 모든 것은 동시에 진행되며 서로를 보충한다. 노동자에 의한 생산 통제, 노동자 민병대, 노동자 무장, 노동자 농민 정부, 생산수단의 사회화 등 모든 투쟁 구호는 노동자, 농민, 병사 소비에트의 수립과 불가분 연관되어 있다.

18. 대중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 이 순간 프랑스의 볼셰비키-레닌주의 그룹이 즉시 계급 적들의 관심과 증오심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이와 반대로 이것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 모든 종류의 속물들에게 종파주의로 비추어지는 볼셰비키주의는 대중운동에 대해 이데올로기적 비타협성과 최대의 예민성을 결합시키고 있다. 이데올로기적 비타협성은 선진노동자의 의식으로부터 상투성, 관성, 우유부단 등을 제거하여 최대의 대담성으로 전위를 교육시키고 이들을 무자비한 대중투쟁에 개입하도록 준비시키는 것에 다름아니다.

19. 제 4 인터내셔널의 조직만큼 가혹한 압박을 받는 조직은 세계혁명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다. 맑스와 엥겔스의 [공산당선언]은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교황과 짜르 ... 프랑스 급진파와 독일 경찰”등의 세력에 대해 언급하였다. 그러나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은 전제 짜르보다 세계혁명의 길에서 훨씬 더 위협적이고 배신적인 장애물이다. 코민테른은 10월 혁명의 권위와 레닌의 깃발로 자신의 사회애국주의 및 멘셰비키주의 정책을 감추고 있다. 소련 비밀경찰이라는 세계조직은 “우방” 제국주의 국가들의 경찰과 손을 맞잡고 제 4 인터내셔널 파괴공작을 이미 진행하고 있다. 전쟁이 발발할 경우 호엔쫄른 왕가의 장군들이 사회민주주의 도살자들과 함께 당시 룩셈부르크, 리이프크네히트와 이들의 지지자들에 대해 가한 맹렬한 탄압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극악한 탄압을 제국주의와 스탈린주의 연합세력이 혁명적 국제주의자들에게 가할 것이다.

20. 제 4 인터내셔널 지부들은 수행해야할 임무의 거대함, 적들의 명렬한 증오심, 수의 왜소함에 기죽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투쟁하는 대중들은 아직 스스로 의식은 못해도 자신들의 공식 지도자들보다 우리에게 훨씬 더 가까이 있다. 다가올 격동이 노동자 운동에 충격을 가해 더욱 급격하고 심대한 조직 재편이 이루어질 것이다. 프랑스 사회당은 노동계급의 대오로부터 축출될 것이다. 공산당의 연이은 조직 분열사태가 확실히 예견되고 있다. 노동조합에는 볼셰비키주의의 구호에 귀를 기울이는 강력한 좌파운동이 수립될 것이다. 형태는 다르지만 같은 과정들이 혁명적 위기에 돌입한 다른 나라에서도 일어날 것이다. 혁명적 전위 조직의 고립은 해소될 것이다. 볼셰비키주의의 구호는 대중의 구호가 될 것이다. 다가올 시대는 제 4 인터내셔널의 시대가 될 것이다.              

후기

“프랑스, 벨기에, 스페인에서 자본과 노동 두 진영의 충돌은 절대적으로 불가피하다. 인민전선의 지도자들이 계급 갈등을 ‘화해시키고’ 혁명투쟁에 찬물을 끼얹으면 끼얹을수록 두 진영의 충돌은 가까운 미래에 더 폭발적이고 격동적일 것이며 더 많은 희생을 야기시킬 것이며 그만큼 노동계급은 파시즘에 대항해서 방어할 능력이 없어질 것이다.”(윗 글의 제 16 단락) 그간에 전개된 사태는 이 테제들이 출판되기도 전에 이 예측의 올바름을 입증시켰다.

스페인의 7월은 프랑스의 6월이 제시한 교훈들을 예외적으로 강력한 힘으로 심화시키고 보충하고 있다. 지난 5년간 벌써 두번째로 부르조아 급진당과 노동자 정당들 사이의 연합은 혁명을 나락의 가장자리까지 끌고갔다. 인민전선은 혁명에 의해서 제기된 임무 가운데 단 하나도 해결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 모든 임무들은 단 하나의 임무 즉 부르조아 계급의 제거로 귀착되기 때문이다. 결국 인민전선은 부르조아 민주주의 체제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이를 통해 파시스트의 쿠데타를 자극하고 있다. 노동자와 농민에게 의회적 환상을 달콤하게 유포시키고 이들의 투쟁력을 마비시켜 인민전선은 파시즘의 승리를 위한 좋은 조건을 만들고 있다. 부르조아 계급과의 연합정책은 수십년의 파시스트 테러통치는 아닐지라도 수년 간의 고통과 희생을 노동계급에게 강요할 것이다.

인민전선 정부는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완벽한 무능력을 드러내고 있다. 부르조아 급진당이 무장한 파시스트들보다 무장한 노동자들을 더 두려워하기 때문에 내각이 위기를 연이어 맞고 있다. 내전은 계속 질질 끌고 있다. 스페인 내전의 직접적인 결과가 무엇이든 그것은 프랑스와 다른 나라의 인민전선에 대해 죽음의 타격을 가하고 있다. 급진당과의 연합은 전쟁부 장관 달라디에의 엄호 하에 프랑스 총사령부의 군사쿠데타를 합법적으로 준비시킬 것이다. 이 점을 프랑스 노동자들은 모두 명확하게 인식하게 될 것이다.

부르조아 국가기구가 유지되고 있는 한 파시스트 도당들의 행정적 해체 조치는 스페인의 예가 보여주고 있듯이 거짓이며 사기이다. 오직 무장 노동자들만이 파시즘에 저항할 수 있다. 노동계급에 의한 국가권력의 장악은 부르조아 국가기구에 대한 무장봉기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 기구를 분쇄하고 노동자, 농민, 병사 소비에트가 이것을 대체하는 것은 사회주의 혁명 강령 실현의 필요조건이다. 이러한 임무를 수행하지 않으면 노동계급과 소부르조아 계급은 고통과 결핍 그리고 새로 터질 전쟁으로부터 구출될 수 없을 것이다.

 

인민전선의 문제 (1936년 7월 27일)

 

동지들,

스페인의 상황이 어떻게 결말이 나든 (그리고 나는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결말이 날 것을 기대하고 있는데) 프랑스 뿐 아니라 모든 곳에서 제 4 인터내셔널의 발전을 위해 역사적 중요성을 가질 것입니다.

인민전선의 문제는 지금 모든 노동자들 앞에 아주 명확하게 제기되었습니다. 프랑스 사회당의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이렇게 묻습니다( 예를 들어 형편없는 양반인 모리스 빠즈가 [인민]지에 실은 글을 읽어보십시오): “2월부터 정권을 잡고 있는 스페인의 인민전선 정부의 지도자들은 도대체 왜 반동적 군대를 처리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까? 참 멍청한 실수로군!” 등등. 그러나 이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문제는 “실수”의 문제가 아니라 전적으로 계급적 이해관계의 문제입니다. 부르조아 계급이 자신의 좌파와 노동자 조직들 간의 연합을 체결하지 않을 수 없을 때 과거 어느 때보다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장교단을 필요로 합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 즉 소유관계를 보호하는 문제가 제기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실수란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스페인 인민전선 정부는 정부가 아니라 단순히 내각에 불과합니다. 진짜 정부는 총사령부, 은행 등에 있었습니다. 프랑스 급진당은 노동자들이 장교단을 그대로 유지하도록 허용한다는 조건 하에서 연합을 체결하도록 허가받았습니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요구를 제시하면서 계속 투쟁하면 궁극적으로는 국가기구 전체가 노동자들을 압살할 것입니다. 독일사회주의노동자당 양반들은 인민전선을 노동계급 전술의 풍부한 한 형태라고 봅니다. 이들이 인민전선의 계급적 성격을 파악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들이 아무 쓸모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급진당은 단순히 인민전선의 우익으로 간주되고 있으나 사실 이 정당은 지배계급을 대표하여 인민전선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정당을 통해서 금융자본은 인민전선과 노동계급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이 문제가 스페인의 경우보다 더 명확하고 날카롭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달라디에는 군대를 자기의 통제하에 유지하고 있습니다. 파시스트 건달 장교 몇 명을 직위 해제시키는 문제가 아니라 장교단 전체가 노동계급에 대해서 철저히 적대적입니다. 이들을 직위 해제시키려면 “군대를 해체하는 것이다.” 그러나 히틀러가 바로 가까이 침략을 준비하고 있다! 급진당을 포함하여 부르조아 계급은 어느 누구도 장교단을 직위 해제시키도록 허용할 수 없습니다. “공산당” 역시 이런 사태가 일어나기를 원치 않습니다. 이들이 소련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 장교단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일 바로 이 장교단이 인민전선 즉 무엇보다도 노동계급을 공격할 것입니다. 그리고 군사독재를 실시하여 소련에 반대하여 히틀러와 동맹을 맺을 것입니다. 재앙으로 가득한 지금 시기에 사태가 전개될 때마다 기회주의 정치의 범죄적 결과는 10배나 증대되어 나타납니다!

오늘 우리는 올해 초에 맑스주의통일노동자당 지도자 마우린과 닌이 자행한 범죄의 정도를 더욱 명확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생각이 있는 노동자는 누구든지 이런 양반들에게 이렇게 물을 수 있고 물을 것입니다: “당신네들은 아무 것도 예상하지 못했습니까? 어떻게 인민전선 강령에 서명하고 우리가 아자냐와 그의 동료들에게 신뢰를 보내도록할 수 있었습니까? 우리에게 급진당 부르조아들에 대한 가장 커다란 불신을 주입시켜야 했던 것 아닙니까? 이제 우리는 당신들의 오류 때문에 피를 흘려야 합니다.” 노동자들은 닌과 그의 친구들에게 특히 강한 분노를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몇년 전만해도 인민전선 정치를 정확하게 분석하여 인민전선을 매 단계마다 구체성과 명확성으로 폭로하는 경향에 속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닌 자신은 무지로 오류를 범했다고 핑계를 댈 수 없습니다. 이것은 지도자로서는 궁색한 핑계에 지나지 않을뿐더러 그 자신이 서명한 문서들을 최소한 한번 이상 읽어보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스페인의 사태는 중도주의 조직들을 희생시켜 다른 모든 곳처럼 스페인과 프랑스에서 제 4 인터내셔널에게 새롭고 거대한 가능성들을 열어줄 것입니다. 런던사무국이 지금의 조건 속에서 충분한 힘을 보유하여 11월 “평화 대회”에 자기 회원들만 부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우리는 의심할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대회에 참여하겠다고 약속하여 결코 열리지 않을 지도 모르는 이 쓸모없는 인간들의 대회에 어떤 권위를 부여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우리는 거대한 대중에게로 얼굴을 돌려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대가를 치루거나 무슨 수단을 사용해서라도 보수주의 관성에 의해 영향을 받거나 마비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은 채 대중조직들에게 침투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들 대중 앞에서 우리는 조직의 독자성을 유지하고 허황된 중도주의자들과 어떠한 타협도 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이들과 우리 사이에 경계선을 명확히 하여 한마디로 어떤 범죄적 화해도 범해서는 안됩니다.

동지애를 보내며,

레온 트로츠키

 

 

제 4부: 맑스주의와 중도주의

 

편집자 서문

“불간섭” 프랑스에서 1936년 7월은 대중투쟁이 잠잠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스페인에서는 내전이 막 터질 참이었다. 7월 17일 파시스트 프랑코 장군이 무장봉기를 시작했다. 곧 다음과 같은 문제가 제기되었다: “프랑스의 인민전선 정부가 스페인의 인민전선 정부를 지원할 것인가?”

사회당과 공산당 평당원들은 스페인의 반파시즘 투쟁을 지원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스페인 공화국 정부에 대해서 대단한 공감을 보내며 지원을 약속하던 블룸은 “불간섭” 정책을 채택했다. 이 정책은 8월 15일 유럽의 강대국들에 의해 채택되었다. 그러나 “불간섭”이라는 가면을 쓴 채 무쏠리니와 히틀러는 파시스트들에 대한 대대적인 군사적 지원을 자행했다. 반면 프랑코에 저항하던 스페인 노동자들에 대한 무기공급이 봉쇄당했다.

1936년 가을이 되자 블룸은 스페인 정책으로 빈번히 공격받게 되었다. “불간섭” 정책의 주창자로서 그는 히틀러 정권의 금융부처와 협상하여 독일 식민지의 반환에 대해 독일 대표로서 영국과 협상할 것을 합의했다. 공산당 당수 토레즈는 자본주의 정부의 수반으로서 그가 수행하지 않을 수 없었던 조야한 술수에 대해 종종 비난을 퍼부었으나 결국 다른 공산당 지도자들과 함께 블룸 정부의 스페인 정책을 지지했다.

1936년 가을의 국내 상황도 국외 상황만큼이나 블룸 정권을 괴롭혔다. 9월 블룸 정권은 프랑화를 약 25%나 평가절하했으며 자신이 약속했던 개혁의 이행을 중단했다. 노령연금액 인상과 물가임금연동제를 연기시켰으며 공공사업에 대한 지출을 줄였다.

스탈린이 지배를 강화하다. 1936년 9월 스페인 사회당의 좌파 지도자 라르고 카발레로가 스페인 인민전선 정부의 수상이 되었으며 공산당을 내각에 참여시켰다. 맑스주의통일노동자당의 지도자이자 과거 트로츠키주의자였던 안드레스 닌은 카탈로니아의 법무장관이 되었다. 그러나 맑스주의통일노동자당은 11월 정부에서 쫒겨났다.

스페인의 군사적 생산적 자원들이 노동자와 농민의 손에 있었다면 프랑코의 공세는 저지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될 경우 노동자국가의 수립과 사회주의 혁명이 초래되었을 것이다. 반면 스탈린의 정책은 사적소유권을 주장하고 인민전선 정부의 반(反)노동자적 정책을 고무시키는 것을 통해 혁명세력의 패배를 보장하였다.

스탈린은 스페인 뿐만 아니라 소련에서 반대세력에 대한 공격의 수위를 한층 높이고 있었다. 1936년 8월 고참 볼셰비키 지도자 카메네프와 지노비에프는 제 1차 모스크바 조작 재판 후 처형되었다. 1937년 1월과 1938년 3월에 각각 제 2차 제 3차 재판이 열려 더많은 고참 볼셰비키들이 조작 재판에 의해 총살당했다. 스페인과 소련에서 자행된 혁명가들에 대한 스탈린의 범죄행각은 당연히 혁명대오에 비관주의와 사기침체를 증폭시켰다. 이미 프랑스의 선진노동자들은 프랑스 인민전선 정부의 정책에 실망하고 있었다.

인민전선의 붕괴. 개혁 대신 탄압이 계속 강화되자 블룸에 대한 대중의 지지도가 계속 떨어졌다. 1937년 3월 끌리쉬에서 반파시스트 노동자 시위대에 경찰이 발포하여 4명이 살해당했다. 6월 중순 블룸은 강대국 정부들에게 심화되고 있는 금융위기에 대한 해결책을 호소했다. 그러나 이 호소가 거부되자 그는 수상직을 사임했다. 급진당의 까미유 쇼땅이 후임으로 선택되었다.

그러나 그 역시 경제를 회복시키거나 산업생산의 급락을 해결할 수 없었다. 또 다른 파업의 물결이 빠리 지역의 산업과 수송 그리고 공공 서비스 전부를 사실상 마비시키자 1938년 1월 그 역시 사임했다.

파업의 물결은 굿리치 타이어 공장을 점거하고 있던 파업노동자들에 대한 경찰의 진입으로 시작되었다. 곧 3만명의 노동자가 결집하여 파업노동자들에 대한 자발적인 연대를 표시하며 경찰을 애워쌌다.

인민전선의 붕괴가 계속되자 급진당의 인민전선 내부의 비중이 점점 높아졌다. 1월부터 3월까지 지속된 쇼땅의 새 내각에서 사회당은 협의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그러자 블룸이 잠시 수상직을 다시 맡게 되었다. 그러나 이때 이미 히틀러는 오스트리아를 침략하여 합병해버렸다. 이 사태 역시 국내 위기를 촉발시켜 프랑스 자본가들은 노동강도의 강화와 산업의 군사화를 촉진시키는 핑계로 이 사태를 이용하려했다. 이에 대해 노동자들은 주로 항공과 자동차 공업분야에서 다시 반격에 나섰다.

이때 블룸의 보좌관 직을 사임한 마르쏘 삐베르와 같은 좀더 전투적인 지도자들에 의해 노동계급에 대한 공산당의 영향력은 도전받고 있었다. 사회당은 삐베르의 당직을 정지시키고 그의 분파를 금지시켰다.

전쟁의 위협과 1938년 총파업. 프랑스 부르조아 계급은 제 1차 세계대전 후에 누렸던 유럽의 헤게모니를 계속 유지하고자 했으나 그 소망을 전혀 실현시킬 수 없었다. 독일 군비강화의 악령이 지배계급을 공포에 빠뜨렸다. 그러나 달라디에는 독일의 군사적 우위 이외에 걱정거리가 또 있었다. 1930년대 내내 프랑스 노동자들은 전쟁이 강요하는 희생보다 더 적은 희생에 대해서 거듭 전투적으로 반대하며 나셨다.

나찌가 체코의 독일인 지역인 슈데텐 지역을 침공할 준비를 하자 프랑스 정부는 영국 수상 챔벌린의 화급한 외교 노력을 지지하였다. 이 노력은 뮌헨에서 열린 4대 강대국 회의로 절정에 도달했다. 1938년 9월 30일 달라디에, 챔벌린, 히틀러, 무쏠리니는 뮌헨협정에 서명했다. 이 협정에서 독일의 슈데텐 점령이 승인되었다. (이 회담이 열리기 전 트로츠키는 이렇게 예상했다: 프랑스와 영국이 체코를 독일에 넘길 경우 스탈린은 히틀러와 강화조약을 맺을 것이다. 그의 예상대로 1939년 8월 23일 독소 강화조약이 조인되었다.)

7월 달라디에는 이미 “전시국가조직”에 대한 새로운 계획을 제시한 바 있었다. 11월 뮌헨 조약 이후 그는 이렇게 경고했다: 탄약제조산업에서 주당 44시간 노동제를 강제하려는 시도는 국가에 대한 범죄행위로 간주될 것이다; 반전 논의를 자행하는 노동자들은 2년 징역형에 처한다; 핵심산업의 노동자들은 전근되거나 다른 형태의 군복무에 종사해야 한다.

이에 대한 노동자의 예상된 반격은 드렝 무기공장의 점거파업으로 시작되어 자연발생적으로 자동차, 금속, 광산 분야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노동계급의 저항은 노동총연맹 지도부에 의해 효과적으로 차단되었으며 이 범죄행위는 공산당과 사회당의 지지를 받았다.

공장위원회의 선동과 조직에 기초한 총파업을 촉구하는 대신에 노동총연맹은 상징적 1일 파업 그것도 시위나 점거가 없는 파업을 촉구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파업 종결 후 모든 선동과 조직을 중지하라고 촉구했다.

약 2백만 노동자가 11월 30일 파업을 준수했으나 수송과 통신분야는 정상근무에 들어갔다. 공산당이 투쟁의 승리를 선언했으나 투쟁의 상승세를 이어갈 모든 가능성은 아무 것도 없었던 1일 휴업으로 사그러들었다. 고용주들만이 이 기회를 이용하여 수많은 노동자 활동가들을 해고하거나 투쟁에 연루시켜 처벌했다.

프랑스 노동자운동은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까지는 1938년 11월 30일의 패배로부터 일어서지 못했다. 이 패배를 상징하듯 1937년 5백만 가까이 자랑하던 노동조합원 총수가 1939년 전쟁 발발 시에는 2백만으로 줄었다.

스페인 혁명의 결말. 1939년 2월 프랑스와 영국은 스페인 공화파 세력이 스페인의 3분의 1을 점령하고 있었으나 프랑코 파시스트 정권을 승인했다. 6년 전 독일 파시즘의 승리는 파시즘의 위협에 대해 프랑스 노동자들에게 경계심을 각인시키고 이들의 급진화를 증폭시키면서 투쟁에 대한 준비를 시켰다. 그러나 스페인 파시즘의 승리는 스페인 노동자와 농민의 영웅적 투쟁을 자신의 투쟁으로 간주했던 프랑스 노동자들을 낙담으로 몰고갔다.

노동자농민사회당. 11월 30일의 패배 이후 반동의 득세와 혁명운동의 쇠퇴가 명확해졌다. 그러나 멀리 멕시코에서 트로츠키는 프랑스 혁명세력을 강화시킬 방안을 계속 모색했다. 사회당이 혁명좌파 경향을 축출하면서 1938년 6월 노동자농민사회당(PSOP)이 창당되었다. 트로츠키는 이 정당의 혁명 세력화 가능성을 모색했다. 새 정당은 마르쏘 삐베르가 주도했으며 잘 알려진 지식인 다니엘 게렝도 참여하고 있었다. 삐베르는 혁명좌파 세력을 전부 재결집시킬 수 없었으나 새 정당은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뮌헨 회의로 인한 위기로 당원의 반을 잃었으나 그 수는 아직도 7천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정당의 구성원은 다양했으나 노동계급의 비중이 충분하여 혁명 중핵을 양성하기 위한 중요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 중핵은 높은 수준의 정치적 훈련과 노선을 제공받을 경우 새로운 노동자 전위의 기초를 제공할 수 있었다.

제 4 인터내셔널의 지부인 국제주의노동자당(POI)내에서 장 루가 주도하던 일파는 두 정당이 통합할 것을 제안했다. 트로츠키는 이 제안을 지지했으나 새 정당의 두 지도자들을 설득시키는데 실패했다. 그러나 노동자농민사회당 지도부는 루 그룹 성원들의 개인 자격 입당을 인정해 주었다. 이 부분적 통합으로 게렝이 주도하던 당내 좌파는 강화되었다. 이에 대해 다수파 지도자 삐베르는 사회당 관료들이 1935년 볼셰비키-레닌주의 그룹을 축출하고 1938년 삐베르 분파를 축출하던 당시와 똑같은 경고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축출 사태 직전에 제 2차 세계대전이 먼저 발발하면서 노동자농민사회당은 공중분해되었다.

이로써 프랑스 혁명운동에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던 트로츠키의 마지막 노력은 끝이 났다. 이로부터 약 1년 후 그는 스탈린 비밀경찰의 자객에 의해 멕시코에서 암살당했다. 프랑스 혁명운동에 대한 트로츠키의 노력은 실망스러운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이 시기 그가 남긴 저작들은 오늘날까지 프랑스와 전세계 혁명가들을 교육시키고 고무시켜왔다.

 

프랑스의 정세가 제기한 문제에 대해서(1938년 12월 8일)

 

제국주의 프랑스는 확실히 위기에 돌입했다. 의회체제는 명백하게 운을 다했다. 프랑스는 파시스트 독재 아니면 사회주의 공화국 둘 중의 하나로 전환될 수 밖에 없다. 제 3의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1936년 프랑스 노동자들의 혁명운동은 거대한 절정에 도달했다. 백치들은 파업운동이 “인민전선”의 활동 결과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였다: 대중의 점증하는 투쟁과 이에 기인한 혁명의 “위험”이 스페인처럼 인민전선의 성립을 자극했다.

여러 번의 혁명을 경험했던 나라에서도 혁명은 순진한 환상과 단순한 자신감으로 시작된다: 새로운 세대는 모든 것을 다시 배워야 한다. 1917년 2월 러시아의 입헌민주당, 멘셰비키, 사회혁명당의 소위 “연립정권”과 마찬가지로 프랑스의 인민전선은 첫단계에 돌입한 혁명의 움직임을 제지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차이점이 있다면 프랑스의 개량주의 관료집단들 즉 사회당, 공산당,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1917년 러시아의 경우보다 비교할 수 없이 더 막강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스탈린은 러시아의 인민전선을 제압했던 10월 혁명의 이름으로 프랑스의 인민전선을 지원했다. 마지막으로 프랑스의 혁명정당은 러시아의 경우보다 비교할 수 없이 허약했다.

이러한 조건 때문에 프랑스의 인민전선 연합정권은 1936년의 혁명운동을 둔화시키고 어느 정도 기를 죽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얼마나 확실히 그리고 어느 시점까지? 미리 여기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확실하게 오랜 시간동안이라면 이미 가망없이 균열을 보이고 있는 인민전선은 확실히 파기되고 반동세력의 독재가 프랑스의 권좌에 오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확고하게 예측할 수 있듯이 인민전선에 의해서 일시적으로 억압되고 있는 운동이 스스로 활로를 찾는다면 사회주의의 승리를 실현시킬 수 있고 실현시킬 것이다. 제 3의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노동계급의 공식 지도자이자 인민전선의 수립자인 주오, 레옹 블룸, 토레즈와 그의 동료들은 의회민주주의의 무덤을 파는 진짜 인부들이다. 현재 이들 완전히 썩어빠진 제 3공화국의 “기둥들”만큼 파시즘의 승리를 돕는 자들은 없다. 제국주의 민주주의의 “위험”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너무 늦다. 이것은 이미 운이 다했고 쓰레기통에 버려질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 노동계급은 지금 아주 위험한 상황에 놓여있다.

이 위험을 사소하게 보아 넘기는 것은 범죄 행위이다. 그러나 프랑스 노동계급의 힘, 그 투쟁전통, 그 혁명적 임기응변의 능력을 사소하게 보아 넘기는 것 역시 이와 못지 않은 범죄 행위이다. 수백만의 혁명분자들이 노동계급 내부 깊숙히 퍼져있다. 제 4인터내셔널의 프랑스 지부는 진지한 중핵들을 교육시키는데 성공을 거두었다. 임박한 위험은 노동계급 한 부위 한 부위를 차례로 좌로 나아가게 만들 것이다. 제 4 인터내셔널 대회는 혁명 강령을 진보적 분자들에게 제시했다. 이들이 결여한 것은 공동 연결망, 중앙집중적 조직, 기술적 물질적 수단 등이다.

프랑스의 혁명적 노동자들을 국제적 공감과 적극적 지지의 분위기로 감싸는 것이 필요하다. 파시즘은 내전을 준비하고 있다. 모든 전쟁에서 하나의 중요한 신경은 자금이다. 제 4 인터내셔널 프랑스 지부에 자금지원이 필요하다. 자유와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모든 우호세력은 프랑스의 진보적 노동자들을 지원할 의무가 있다.

너무 늦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다, 모든 것이 아직 늦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에는 강력한 파시스트 정당이 없다. 프랑스에서 파시즘은 권력을 잡은 후에도 히틀러만큼 큰 조직을 거느리지 못할 것이다. 프랑스의 전통과 풍습이 이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훨씬 더 적은 조직이 프랑스에서 절망적이며 기죽은 소부르조아 대중을 반동 쿠데타로 이끌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현재 프랑스 파시즘의 조직적 허약성은 혁명정당의 손에 주어진 대단히 중요한 카드이다. 파시스트 쿠데타를 기도할 시간이 확실히 무르익기 전 몇 개월 아니면 1년 어쩌면 2년의 시간이 우리에게 있을 수밖에 없다.

이 시간동안 나이 어린 혁명정당조차 기적을 이룰 수 있다. 경고를 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프랑스에 임박한 파시즘의 재앙에 대해 국제 캠페인을 조직할 필요가 있다. 독일과 마찬가지로 이 재앙이 제 2 그리고 제 3 인터내셔널 정당들에 의해 준비되고 있다고 이해하고 이것을 대중에게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프랑스의 혁명전위에게 용기, 대담성, 주도성을 불어넣는 것이 필요하다. 미래를 내다보면서 다가오는 위험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필요하다. 프랑스에서 미국 노동계급을 포함한 세계 노동계급의 운명이 결정되고 있다. 단 하루도 허비하지 않고 모든 노력을 다할 필요가 있다. 영웅적 행위는 영웅적 수단을 요구한다!

 

결정적인 순간(1938년 12월 14일)

 

원하든 원치 않든 지구가 계속 축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매일 확인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계급투쟁의 법칙들은 우리가 인식하든 않든 독립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인민전선의 정치에도 불구하고 작동하고 있다. 계급투쟁은 인민전선을 자신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체코의 경험 후 이제 프랑스의 차례가 왔다: 가장 둔하고 후진적인 사람들도 뭔가를 배울 새로운 기회를 가지고 있다.

인민전선은 정당들의 연합이다. 모든 연합은 즉 모든 지속적인 정치연합은 필요상 연합 정당들 가운데에서 좀더 온건한 강령을 가지고 있다. 프랑스 인민전선은 애초부터 사회당과 공산당이 급진당의 통제하에 놓여 있음을 보여주었다. 프랑스 급진당은 제국주의 부르조아 계급의 좌익을 대표하고 있다. 급진당의 깃발에는 “애국”과 “민주주의”가 새겨져 있다. “애국”은 프랑스 제국의 방어를 의미한다. “민주주의”는 아무 의미도 없지만 소부르조아 계급을 제국주의의 전차에 결박시키는 데에 소용이 있을 뿐이다. 약탈적 제국주의를 말로만의 민주주의로 단합시키고 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급진당은 다른 어떤 정당보다 대중에게 거짓말과 배신을 선사할 수밖에 없다.

에리오-달라디에의 정당이 프랑스의 모든 정당들 가운데 가장 부패했으며 출세주의자, 돈에 쉽게 매수되는 개인, 증권시장의 증권 조작꾼 그리고 일반적으로 모든 종류의 모험주의자들의 온상이라고 과장없이 말할 수 있다. 인민전선의 정당들이 급진당의 강령적 내용을 넘어설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은 실제로는 노동자와 농민을 부르조아 계급 가운데 가장 부패한 집단의 제국주의 강령에 종속시키는 것을 의미했다. 인민전선의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해 노동계급과 소부르조아 계급과의 연합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 지독한 거짓말을 상상하기는 불가능하다! 급진당은 소부르조아가 아니라 대부르조아 계급의 이해를 표현하고 있다. 이 정당의 핵심적 특징은 제국주의에 의한 소부르조아 계급의 착취를 시행하는 정치기구라는 것이다. 급진당과의 연합은 결과적으로 소부르조아 계급이 아닌 이 계급의 착취자와의 연합이다. 소부르조아 계급에게 급진당으로부터 해방되는 법, 급진당의 멍에를 영원히 벗어던지는 법을 가르치는 것만이 노동자와 농민의 진정한 연합을 달성하는 길이다. 한편 인민전선은 이와 정반대의 방식으로 나가고 있다: 이 “전선”에 참여하면서 사회당과 공산당은 급진당을 책임지고 대중에 대한 이 정당의 착취와 배신행위를 도와주고 있다.

1936년 사회당, 공산당, 무정부적조합주의 조직은 강력한 혁명운동을 둔화시키고 해산시키는 것을 통해 급진당을 도와주었다. 대자본은 지난 2년 반동안 당시의 공포로부터 약간 회복되었다. 혁명의 브레이크 기능을 수행했기 때문에 인민전선은 이제 부르조아 계급에게는 거추장스러운 물건에 지나지 않는다. 프랑스 제국주의는 자신의 국제정책에 있어서도 방향을 바꾸었다. 소련과의 연합은 가치가 거의 없는 큰 도박이라고 인정되고 독일과의 연합은 필요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급진당은 금융자본의 명령을 받았다: 사회당, 공산당과의 연합을 파기하라. 항상 그렇듯이 이들은 아무런 주저 없이 이 명령을 실행에 옮겼다.

이렇게 노선을 바꿀 때 급진당 내부에 아무런 반대의 움직임도 없었다는 사실은 다시 한번 이 정당이 핵심은 제국주의적이되 말로만 “민주적”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급진당 정권은 “민주주의 국가들과의 공동전선”에 대한 코민테른의 모든 교훈들을 거부하고 파시스트 독일과 화해했으며 지나가는 길에 1936년 운동의 부산물인 모든 “사회입법”을 되가져가 버렸다. 이 모든 것은 계급투쟁의 엄격한 법칙에 따라 일어났으며 이 사태가 예상될 수 있었고 실제로 예상되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소부르조아 맹인들에 지나지 않는 사회당, 공산당 지도자들은 이러한 사태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무엇이라고?”라는 공허한 외침으로 자신들의 혼란을 은폐했을 따름이었다. 기존 체제를 도와 노동운동을 저지하여 “공화국” 즉 제국주의 부르조아 계급에게 막대한 기여를 한 이들 애국자들과 민주주의자들은 이제 아무런 예식도 없이 쫒겨났다! 이들이 쫒겨난 이유는 부르조아 계급에게 모든 서비스를 다 했다는 그 자체 때문이다. 계급투쟁에서 고마움은 요인이 된 적이 전혀 없다.

배반당한 대중의 불만은 현재 엄청나다. 이번 일로 자신들의 신용을 확실히 잃는 일을 막기 위해서 주오, 블룸, 토레즈는 뭔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에 대해 주오는 “총파업” 그리고 “팔짱낀” 항의를 선언한다. 합법적이고 평화적이며 완전히 거부감이 없는 항의를 말이다! “이것도 24시간 짜리에 불과합니다”라고 그는 부르조아 계급을 향해 공손한 미소를 지으면서 설명한다. 질서는 위배되지 않을 것이며 노동자들은 “존엄한” 평정을 유지할 것이며 지배계급의 머리에서 머리카락 하나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오는 이렇게 보증한다: “은행가, 기업가, 장군 여러분들 나를 모릅니까? 내가 1914-1918년 전쟁에서 당신들을 구해준 사실을 잊고 있습니까?” 이에 대해 블룸과 토레즈는 노동총연맹의 말을 재청한다: “오직 평화적이며 소규모의 지배계급에 공감하는 애국적 항의에 불과합니다!”

한편 중요한 산업분야의 노동자들을 군대로 편제시키고 군대를 준비시킨다. 팔짱낀 항의에 돌입한 노동계급에 대해 부르조아 계급은 인민전선 덕분에 공포에서 탈출한 뒤이므로 팔짱낀 채 복수할 결심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인민전선에 의해서 조성된 노동계급 대중의 사기저하를 활용하여 결정적인 타격을 가할 의도를 가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파업은 패배를 가져올 뿐이다.

프랑스 노동계급은 최근에 공장점거를 포함한 열화와 같은 파업물결을 이루어 내었다. 이들에게 있어서 다음 단계는 국가권력 장악을 의제로 제기하는 진정한 혁명적 파업 이외에 다른 것일 수 없다. 국내적 위기 그리고 임박한 파시즘과 전쟁 앞에서 이들에게 다른 길을 어느 누가 제시할 수 있겠는가. “팔짱 낀” 24시간 짜리 희극적 파업이 지나면 상황이 호전되는 것이 아니라 악화될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이 있는 노동자들은 누구나 알고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부위의 노동자들은 실업, 벌금, 징역 등으로 이에 대한 값비싼 대가를 치루어야 하는 위험을 앞두고 있다. 무엇을 위해서? 질서는 결코 위반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오는 맹세한다. 빈곤, 민주주의, 식민지 그리고 이들과 함께 고통, 높은 생활비, 반동, 전쟁의 위협 등 모든 것이 예전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대중은 커다란 희생을 감내할 능력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희생을 통해 이루려는 목표, 투쟁 방식, 적과 아군 등을 명확히 알고 싶어한다. 그러나 노동자 조직의 지도자들은 대중을 오도하고 혼란시키기 위해서 모든 짓을 다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급진당은 진보, 민주주의, 평화 등의 대표로서 인민전선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미화되었다. 급진당에 대한 노동자들의 신뢰는 크지 않았다. 이 점은 당연하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사회당, 공산당, 노동조합 조직들에 대해서 신뢰를 보인 한도 내에서 급진당에게도 신뢰를 주었다 . 그런데 항상 그렇듯이 전혀 예상도 하지 못한 채 급진당과의 연합이 이루어진 상층부에서 균열이 발생했다. 대중은 마지막 순간까지 무지를 강요받았다. 더 나쁜 것은 부르조아 계급이 노동계급 대중을 기습하도록 대중에게 거짓정보가 주어진 것이었다. 그런데도 대중은 투쟁 준비를 했다. 자신이 쳐놓은 그물에 갇힌 채 “지도자들은” 대중에게 --- 웃지마세요! --- “총파업”을 촉구했다. 누구에 대항해서? 어제의 “아군”을 위해서. 무엇을 위해? 아무도 모른다. 기회주의는 언제나 모험주의라는 괴상망칙한 탈을 쓴다. 핵심 성격상 총파업은 혁명투쟁의 무기이다. 총파업에서 노동계급은 하나의 계급으로서 계급의 적에 대항해서 결집한다. 총파업의 사용은 인민전선의 정치와는 전혀 상극이다. 왜냐하면 인민전선은 부르조아 계급과의 연합 즉 노동계급을 부르조아 계급에 종속시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노동조합 뿐만 아니라 사회당과 공산당의 빌어먹을 관료들은 노동대중을 부르조아 계급과의 밀실협상의 단순한 보충적 도구로만 바라본다. 이들은 결정적인 투쟁의 문제일 때에만 의미를 갖는 희생을 단순한 시위를 위해 감내하라고 제안한다. 마치 의회 내의 연합을 위해 대중이 자기들 멋대로 좌로 우로 움직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결론적으로 주오, 블룸, 토레즈는 파업의 패배를 보증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짓을 다했다. 이들 자신이 부르조아 계급만큼이나 파업을 두려워한다. 동시에 이들은 대중 앞에 알리바이를 제시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개량주의자들의 습관적 전술이다: 대중투쟁이 패배하도록 꾸민 후에 이들은 패배를 대중의 탓으로 돌리거나 거두지도 않은 승리를 자신들의 탓으로 돌린다. 모험주의라는 동종요법으로 보강된 이 기회주의가 노동자에게 패배와 모욕감만을 가져다 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1936년 6월 9일 우리는 “프랑스 혁명이 시작되었다”라고 말했다. 그 이후의 사건들이 이 진단을 틀린 것으로 증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문제는 좀더 복잡하다. 프랑스의 객관적 상황은 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혁명적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조금의 의심도 할 수 없다. 프랑스 제국주의의 국제적 상황이 위기를 맞고 있다. 이와 함께 국내적 차원에서 프랑스 자본주의 역시 그러하다. 국가의 금융 위기에다 민주주의의 정치적 위기 그리고 부르조아 계급의 극단적 혼란상태는 과거의 방식으로는 해소될 수 없다.

그러나 이미 1905년 레닌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혁명은 모든 혁명적 상황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객관적 변화에 주관적 변화가 결합되어야한다. 즉 위기의 시기에 저절로 ‘붕괴’하지 않는 기존의 정부를 ‘붕괴하도록’ 제압할 수 있는 정도의 강력한 위력으로 혁명적 대중행동을 수행할 수 있는 혁명적 계급의 능력에 달려있다.” 그렇다. 혁명은 모든 혁명적 상황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주관적 요인 즉 혁명계급의 혁명적 공세가 제때에 객관적 요인을 돕지 않는다면 혁명적 상황은 반혁명적으로 변한다. 최근의 역사는 이 사실을 비극적인 일련의 예들을 통해서 확증했다.

1936년의 거대한 파업은 프랑스 노동계급이 혁명투쟁을 할 준비가 되어있으며 이미 투쟁의 길에 들어섰음을 증명했다. 이런 의미에서 “혁명이 시작되었다.”고 선언할 권리가 충분히 있었다. 그리고 “혁명이 모든 혁명적 상황으로부터 나오지 않듯이”, 모든 혁명의 시작 이 이후의 중단없는 발전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젊은 세대를 투쟁의 장으로 던져올리는 혁명의 시작은 언제나 환상, 순진한 희망과 믿음으로 채색되어있다. 좀더 결정적인 전진을 이루기 위해 혁명에게는 반동세력의 가혹한 타격이 필요하다.

블룸, 주오, 토레즈 등이 돕지 않아 필연적으로 프랑스 부르조아 계급이 시위와 점거파업에 대해 경찰과 군사적 조치로 대응했더라면 혁명운동은 좀더 빨리 더 높은 수준에 도달했을 것이다. 그리고 국가권력 장악을 위한 투쟁이 의심의 여지없이 일정에 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부르조아 계급은 인민전선의 도움을 받아 파업노동자들의 공세에 블룸 정권으로 대응했다. 그런데 이 정권이 노동자들에게는 자신의 또는 거의 자신의 정권인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노동총연맹과 코민테른은 이 배신행위를 모든 힘을 다해 지원했다.

국가권력 장악 투쟁을 지도하려면 지배계급을 명확히 파악해야 한다. 노동자들은 적이 아군으로 위장했기 때문에 적을 알아보지 못했다. 더욱이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정당, 노동조합, 소비에트 등 투쟁의 도구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노동자들로부터 이런 도구들이 강탈당했다. 노동자 조직의 지도자들이 부르조아 권력을 에워싸서 벽을 구축하여 이 권력을 위장하고 알아볼 수 없으며 난공불락의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시작된 혁명은 저지당하고 사기침체를 겪었다.

이때 이후 2년 반 동안의 시간은 차례로 인민전선의 무기력, 허구, 공허함을 드러냈다. 노동대중에게 “인민”정부로 보였던 것이 단순히 제국주의 부르조아 계급의 가면이었음이 드러났다. 이제 이 가면은 폐기되었다. 부르조아 계급은 노동계급이 충분히 현혹 당했고 약화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혁명의 임박한 위험은 지났다고 생각하고 있다. 달라디에 정부는 부르조아 계급의 계획에 따르면 좀더 강력하고 좀더 실제적인 제국주의 독재정부로 나아가는 피할 수 없는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부르조아 계급의 이러한 진단은 옳은가? 자신에 대한 직접적인 위험은 지났는가? 다시 표현하면 혁명은 정말로 기약 없는 먼 미래로 미루어졌는가? 그러나 어떤 것도 이 점을 증명하지 못한다. 이런 유형의 주장은 기껏해야 서두름과 서투름일 뿐이다. 현재 의 위기가 끝났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어쨌든 부르조아 계급의 이익에 낙관적인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투쟁의 전선에 제일 먼저 나서고 제일 나중 물러서는 혁명정당의 도리가 아니다.

이제 부르조아 “민주주의”는 가장 강력하고 가장 부유한 착취국과 노예보유국의 특권이 되었다. 프랑스가 이 나라들에 속하지만 이 나라들 가운데에서 가장 허약한 고리이기도하다. 이 나라의 허약한 경제적 비중은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이 나라의 세계적 지위와 어울리지 않는다. 피할 수 없는 역사의 타격을 제국주의 프랑스가 지금 받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2, 3년간 혁명적 상황의 근본 요인들은 사라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반대로 크게 강화되었다. 이 나라의 국내외 상황은 악화되었다. 전쟁의 위험은 가까이 있다. 혁명에 대한 부르조아 계급의 두려움이 적어지기는 했으나 위기를 해결할 방도가 없다는 일반적인 의식은 증대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관적 요인” 즉 노동계급의 투쟁하려는 의지에 대해서는 어떻게 볼 것인가? 이 문제는 객관적인 영역이 아니라 주관적인 영역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정확한 선험적인 조사로 해결될 수 없다. 결국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살아있는 행동 즉 투쟁의 실제 경로이다. 그러나 “주관적인 요인”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정말이지 존재하기는 한다. 비록 필자가 프랑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만 지난번 “총파업”의 경험으로부터 유추할 수 있다.

    불행하게도 11월 후반부와 12월 초순에 있었던 프랑스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금 자세히 분석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심지어는 가장 일반적인 자료조차 우리의 관심을 끄는 문제를 연구하는데 충분하다. 최소한 서류상으로 5백만 노동자를 보유하고 있는 노동총연맹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2백만 정도의 노동자가 시위용 파업에 참가한 것은 패배이다. 그러나 이미 제시한 정치적 상황과 무엇보다도 파업의 주도적 “조직가들”이 동시에 주요한 파업파괴자들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2백만의 숫자는 프랑스 노동자들의 투쟁정신을 증명한다. 바로 전에 있었던 일들, 예를 들어, 열화와 같은 모임과 시위, 군대 및 경찰과의 대치, 파업, 11월 17일에 시작되어 공산당, 사회당, 노동조합 평회원들의 적극적 참가와 함께 증가하는 경향이 있었던 공장점거 등에 의해 이 결론은 더욱 명백해진다. 노동총연맹은 확실히 사태에 대한 장악력을 잃고 있다. 11월 25일 노동조합 관료들은 11월 30일 즉 5일 뒤에 “비정치적” 평화 파업을 촉구했다.

다른 말로 하면 더욱더 투쟁성을 강화한 진정한 운동을 발전시키고 확대시키고 일반화시킨 대신 주오 일당은 이 혁명운동을 전혀 소득이 없는 항의행동으로 맞바꾸었다 . 자연발생적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부르조아 계급만큼이나 자신들이 그렇게 두려워했던 운동을 당국과의 말이 필요없는 협조관계를 이루면서 마비시키고 청소시키기 위해 하루가 한달과 같은 순간에 관료들에게는 5일간의 지연이 필요했다. 주오 일당이 운동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지 않았다면 달라디에의 경찰 및 군사적 조치들은 이렇다할 효과가 없었을 것이다. 철도, 군수, 금속 그리고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노동계급 선진부위의 “총파업” 불참 또는 낮은 참여는 이들의 무관심 때문이 결코 아니었다. 파업 전 2주일동안 이 분야 노동자들은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러나 특히 달라디에의 조치들이 있은 후에 바로 이 분야의 노동자들은 다른 노동자들보다 시위나 소득 없는 항의 정도가 아니라 권력 장악이 문제의 핵심이란 사실을 이해했다. 반면에 가장 후진적인 또는 사회적 관점에서 덜 중요한 부위의 노동자들이 시위-파업에 참여한 것은 나라의 심대한 위기와 함께 근로대중에게는 수년간의 허약한 인민전선 정책에도 불구하고 혁명적 에네르기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혁명의 결정적이고 확실한 패배 이후에도 가장 후진적 노동자들이 공세를 취한 반면 철도와 금속 등의 노동자들이 수동적인 상태로 머물렀다는 것을 물론 역사는 보여주었다. 이와 같은 예는 러시아에서 1905년 10월 봉기가 진압된 후 일어났다. 그러나 이 상황은 노동자 선진부위가 파업, 직장폐쇄, 시위, 경찰 및 군대와의 대치, 봉기 등 10월 이전에 있었던 오랜 동안의 투쟁으로 기력을 소진한 결과였다. 그러나 프랑스 노동자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1936년 운동은 노동자 전위의 역량을 어떤 정도든 소진시키지 않았다. 인민전선의 기만술이 물론 특정 부위 노동자들의 일시적 사기저하를 초래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이 상황은 다른 부위 노동자들의 저항과 참을성 상실의 증대에 의해 균형이 이루어졌다. 동시에 1938년 뿐 아니라 1936년의 운동도 노동계급 전체에게 아주 소중한 경험을 제공했으며 공식 조합 관료들과는 독립적인 수 천명의 지역 노동자 지도자들을 양성했다. 이 지도자들에게 접근하는 방법을 이해하고 이들을 다른 지도자들과 연결시키고 이들을 혁명적 강령으로 무장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투쟁현장에서 대중의 맥박을 우리보다 훨씬 더 잘 느낄 수 있는 프랑스의 동지들에게 멀리서 전술에 대한 조언을 할 의도는 조금도 없다. 다만 대중의 투쟁 의지를 포함한 계급역관계에 대한 유일하고 진지하며 확실한 척도는 행동 이라는 사실이 과거 어느 때보다 모든 혁명적 맑스주의자들에게 명백해졌다. 제 2, 제 3 인터내셔널에 대한 가차없는 비판은 전위의 직접적 개입을 추동하는데 도움을 주는 한에서만 혁명적 가치가 있다. 전위 추동의 근본 구호들은 제 4 인터내셔널의 강령 안에 있다. 이 구호들은 다른 어느 곳에 비해서 프랑스에서 더욱 그 적합성을 가지고 있다. 프랑스 동지들에게는 엄청난 정치적 책임이 부과되어 있다. 모든 역량과 도덕적 물질적 수단을 다하여 제 4 인터내셔널의 프랑스 지부를 돕는 것이 국제혁명전위에게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임무이다.

 

노동자농민사회당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1938년 12월 22일)

 

삐베르 동지,

이 편지를 쓰겠다고 결심하기 전에 어느 정도 주저했음을 고백합니다. 우리 사이의 정치적 견해가 결코 동일하지 않다는 것 뿐 아니라 무엇보다 먼 곳에서 프랑스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 프랑스의 정치적 투사에게 편지를 보낸다는 것이 격에 맞지 않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의구심들을 배격했습니다. 정세는 너무도 엄중합니다. 프랑스와 유럽 전체 노동자들의 운명 뿐 아니라 상당한 정도로 전세계 노동자 전체의 운명이 프랑스의 사태 전개에 달려있습니다. 그리고 비록 먼 곳에서지만 상황의 기본 요소들은 너무도 명확해 보입니다. 그래서 나는 혁명 상황이 패배로 완전히 종결되지 않은 지금 동지에게 나의 입장을 설명하려고 시도해야 한다고 봅니다.

내가 [프랑스는 어디로]라는 팜플렛을 작성했던 1934-35년에 예상했던 것보다 지난 3, 4년간의 프랑스의 정세는 훨씬 느리게 진행되었습니다. 실제 현실은 이론적인 예상보다 가능성, 우여곡절, 복잡성에 있어서 언제나 더 풍부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사태의 일반적 경로는 우리의 생각과 근본적으로 같았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 지금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내가 최근에 쓴 글 [결정적인 순간]이 바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이 곧 불어로 출판되기를 희망합니다(어쨌든, 이 편지와 함께 이 글 한 부를 동봉합니다). 확실히 사태는 결전으로 가까이 가고 있습니다. 이 결전은 파시스트 독재 또는 초기에는 보나파르트 군사독재를 가져오거나 노동계급의 승리를 가져오거나 둘 중에 하나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 우리 사이에 이견이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더욱이 일정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상당한 세월동안 되돌릴 수 없는 “결정적인” 투쟁이 1년 후 길어봐야 2년 후에 있을 것입니다. 상황을 명확히 이해하고 “사회당”, “공산당”, “무정부주의적 조합주의 조직” 등 부르조아 또는 소부르조아 여론과 명확히 단절하고 끝까지 갈 준비가 되어 있는 수천명 정도의 진정한 혁명전위의 수립만이 프랑스의 상황을 구출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전위는 대중에게 다가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10년, 15년동안 거대한 사건의 힘 앞에 거대한 기존 정당들과 그룹들이 마치 한줌의 먼지처럼 산지사방으로 흩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무쇠가 없는) 무쇠전선, (인민이 없는) 인민전선 등이 이런 것들입니다. 명확하고, 정확하고, 비타협적인 혁명 사상 에 의해서 결집된 인자들만이 먼지로 화하거나 깨지지 않습니다.

동지의 정당이 하는 활동들에 대해 나는 면밀히 관찰할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당의 내부 구성에 대해서도 알지 못합니다. 판단을 유보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1년이 훨씬 넘게 존속해온 런던 사무국 산하 다른 정당들에 대해서는 알고 있습니다. 동지의 정당이 페너 브락웨이, 월커, 스니블릿, 브란틀러 그리고 그밖의 고귀하신 병자들과 손을 잡고 막중한 사회적 임무를 달성할 수 있습니까? 이들은 혁명적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임무를 달성할 능력을 증명하는데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반대로 대단히 자주 혁명투쟁을 수행할 능력이 없음을 완벽하게 증명했습니다. 그리고 이후에도 자신들의 오류가 무엇인지를 아는 능력이 전혀 없음을 증명했습니다. 이들 가운데 최상의 그룹은 맑스주의통일노동자당이었습니다. 그러나 제 2, 제 3 인터내셔널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정부주의라는 소부르조아 여론에 대한 이 정당의 두려움이 스페인혁명 붕괴의 가장 주요한 원인 중의 하나라는 사실이 이제 명백해지지 않았습니까?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블룸, 토레즈, 주오 일당에 의해서 배신당하고 허약해진 프랑스 노동계급이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슬로바키아 노동계급처럼 기습을 당해 저항 한번 못하고 압살되는 것이 하나의 가능성입니다. 그러나 노예와 같은 굴종은 어떠한 전략도 필요로 하지 않으므로 이 가능성에 대해서 이리저리 계산해 보는 것은 의미없는 일입니다. 또 하나의 가능성은 남아있는 기간동안 프랑스 노동계급의 전위가 다시 머리를 들고 대중을 주위로 결집시키면서 방어적 저항능력 뿐 아니라 공세를 취할 능력 역시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가능성은 대중이 다시 힘을 얻고 자신의 역량과 열정, 적에 대한 증오심 등을 다시 살리는 것을 가정합니다. 그러려면 노동계급은 비열하고, 평범하고, 조야한 모든 것들을 바람에 날리듯이 날려버려야 합니다. 끝까지 갈 의지를 가지고 있는 혁명가들만이 진정한 대중 봉기를 지도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대중은 동요와 결연한 정신을 쉽게 구별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중이 봉기하는 데에는 확고한 지도부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봉기 없이는 재앙은 불가피합니다. 그리고 조금만 머뭇거려도 재앙은 곧 다가옵니다.    

동지의 정당과 제 4 인터내셔널 프랑스 지부의 통합을 통한 즉각적인 혁명전위의 수립 이외의 다른 방도가 없다고 봅니다. 두 조직이 통합을 위한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나는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그 과정에 개입하거나 구체적인 조언을 제시할 생각은 없습니다. 나는 이 문제를 좀더 일반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고자 합니다. 협상이 오랜 시간을 끌면서 지지부진한 사실은 지극히 우려가 됩니다. 이것은 객관적 상황과 노동계급의 가장 선진적인 부위라는 인자들이 가지고 있는 심적인 상태(state of mind) 사이에 존재하는 불일치의 징후입니다. 내 생각이 틀렸으면 참 좋겠습니다.

삐베르 동지는 커다란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스페인혁명의 첫 몇년동안 안드레스 닌에게 지워졌던 책임과 아주 유사합니다. 동지는 정세를 크게 전진시킬 수 있는 활력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 사태발전을 저지시키는 치명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첨예한 정치위기의 순간에는 개인의 주동성이 사태의 경로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한가지만 확고하게 결정하면 됩니다: 우리는 혁명을 끝까지 밀고 나간다!

이 편지를 쓰는 나의 진정한 동기를 이해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따뜻한 마음으로 동지가 노동계급 혁명의 길에 성공하기를 기원합니다.

레온 트로츠키


프랑스의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1939년 2월 14일)

 

친애하는 친구,

노동자농민사회당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는 당신의 1월 24일자 편지에 대해 이렇게 급하게 답장을 합니다. 마르쏘 삐베르가 당신과 대화를 나누던 중 제기한 몇 가지에 대해 평가가 필요합니다.

그는 프랑스의 전반적 상황을 평가하는 데에 있어서 나와 “완벽한 일치”한다고 선언했습니다. 말할 나위도 없이 나는 이러한 선언을 따뜻한 마음으로 환영합니다. 그러나 불충분합니다. 이후 함께 작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기 위해 상황 평가 에 대한 통일 뿐만 아니라 실천적인 결론 최소한 가장 핵심적인 실천적인 결론에 대한 일치가 있어야 합니다. 1936년 6월에 대해서 삐베르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가능하다.” 이것은 아주 멋진 표현입니다. 이것의 의미는 이렇습니다: 노동계급과 함께 우리는 혁명을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다; 즉 국가권력 장악으로 직접 나아갈 수 있다. 당시에 또는 약간 뒤에 나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프랑스 혁명은 시작되었다.” 이렇게 우리는 삐베르와 같은 전제를 공유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것 때문에 나는 그가 어떻게 블룸에 대해서 조건적이고 제한적인 정치적 반(半)신뢰를 보낼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블룸과 같은 부르조아 체제의 엉성한 수호자, 머리부터 발끝까지 노동계급의 배신자가 노동계급을 패배와 모욕감으로 인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당시에는 너무도 명백했었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과거를 자꾸 캐묻지는 맙시다. 지금 상황을 가지고 얘기합시다. 내 생각으로는 프리메이슨(Freemasonry) 문제는 엄청난 정치적 징후적 중요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프랑스의 심오한 혁명적 위기의 시대에, 노동계급 앞에 아주 날카로운 방식으로 권력장악을 위한 투쟁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시대에, 혁명 지도자들이 결정적 순간에 언제나 노동계급에 반대할 부르조아 급진당과 공식 “사회당”의 배신적인 지도자들과 모든 정치적 도덕적 관계를 끊는 것이 기본적이면서도 시급한 임무입니다.

나는 달라디에가 프리메이슨인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쑈땅과 다른 각료들은 프리메이슨입니다. 인민전선 즉 노동계급을 급진당 부르조아 계급에게 종속시키는 빌어먹을 정책에 진지하게 반대하면서 동시에 이들 지도자들과 “도덕적” 유대를 유지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 지를 나는 묻습니다. 이 악당들은 프리메이슨으로써 인류의 “도덕적” 부활의 임무를 자임하고 있습니다. 이런 노골적인 모순 앞에서 모든 노동자는 이렇게 말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 사회주의자들은 사회주의혁명을 신봉하지 않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자기들 말로는 혁명적 타도의 대상인 계급의 지도자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지 않을 것이다!”

행인지 불행인지 모를 상황 덕분에 나는 이제르에 체류하고 있는 동안 프리메이슨을 직접 접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나는 프리메이슨 회원의 집에 머물고 있었는데 집에 초대받은 손님들 대부분 역시 프리메이슨 회원이었습니다. 나의 젊은 친구들 가운데에는 최근 프리메이슨과 결별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자체로 논란의 여지가 전혀 없는 일반적인 고찰로서 뿐 아니라 프랑스의 지방 정치생활에 있어서 프리메이슨의 역할을 생생히 관찰한 결과 나의 의견을 제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프리메이슨의 상층부는 급진당 또는 “사회당” 소속 변호사, 하원의원, 출세주의자, 냉소주의자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에게 프리메이슨 조직은 선거용 조직에 불과합니다. 그르노블의 프리메이슨 지부에는 노동자는 하나도 없는 반면 공장의 하위 경영자들이 중요한 직책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나는 공장의 반장 한 명을 알고 있었으며 또 다른 한명에 대한 흥미로운 보고를 받았습니다. 이들의 주요한 관심사는 노동자들로부터 떨어져 “품위있는 상류사회”에 속해서 “교육받은” 사람들의 말을 듣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인도주의적”이고 “평화주의적”인 뻔한 말들을 늘어놓는 변호사와 교수들을 아주 공손하게 존경했습니다. 프리메이슨 지부의 책임자들은 그르노블의 정치생활에 일부 역할을 했는데 프리메이슨 의식의 도움으로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소부르조아 고객들과 반(半)노동자적 귀족의 극히 일부를 조직에 끌어들였습니다. 이 신사양반들의 일부는 조직에 가입하지 않고 뒤에서 조직을 조종했습니다. 프리메이슨에는 현재의 제 2 제 3 인터내셔널에 아주 혐오스러운 외관을 부여하는 온갖 종류의 기생충같은 인간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사민주의와 코민테른과 결별하면서 동시에 이 두 조직의 최악의 분자들로 긴밀히 구성되어 있는 프리메이슨에 가담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혁명은 한 인간으로부터 완전한 헌신을 요구합니다. 자신의 정치적 도덕적 만족감을 혁명적 노동자정당에서 찾지 못하고 부르조아 급진당 분자들의 사교회에서 뭔가 “더 좋고” “더 고상한” 것을 찾는 혁명가들은 아주 의심스럽습니다. 이들이 찾는 것이 정확히 무엇입니까? 노동자들에게 이들이 스스로를 해명하도록 합시다! ... 지금 프랑스가 경과하고 있는 시대에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것은 부르조아 여론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고 이것과 내적으로 단절하며 이 여론의 온갖 비방과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동시에 이 여론의 칭송과 아첨을 경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조건 하에서만 필요한 행동의 자유를 확보할 수 있으며 대중의 혁명적 목소리를 제때에 경청할 능력을 갖출 수 있으며 결정적인 공세에 자신을 선두에 내세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프리메이슨은 그 핵심 특성상 혁명적 경향들을 뽑아내는 안전밸브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조직에 있는 정직한 이상주의자들 몇몇은 이 조직의 위험성을 증대시킬 뿐입니다.

마르쏘 삐베르가 자신의 혁명적 전제로부터 필요한 결론을 이끌어 내지 못했다고 내가 믿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혁명의 시대에 가장 위험한 것입니다. 맑스주의통일노동자당의 머리가 깨진 것도 바로 필요한 실천적 결론을 도출할 수 없는 무능력 때문이었습니다. 불행한 것은 지금까지 상황에 대한 자신의 급진적 분석에 만족하면서도 이 분석으로부터 논리적으로 도출되는 혁명적 임무 앞에 삐베르가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지금 말한 것과 연관되는 것인데 그가 바로 전에 노동자농민사회당에 입당한 제 4 인터내셔널 프랑스 지부 국제주의노동자당 당원들에 대해서 비난과 비방을 퍼부은 것에 대해서 나는 아주 불안한 마음으로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가 한 말에 따르면 국제주의노동자당 당원들은 “잔인한 공격”을 감행하며 “부정확한 논조”를 사용하고 있으며 “날카로움”이 특징입니다. 내가 알고 있지도 못하며 이 먼 곳에서 알 수도 없는 개별적인 사건들에 대해 분석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조직원들이 개별 상황에서 매끈하게 처신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점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혁명가에게 정치적으로 그리 중요합니까? 노동운동이 시작된 이래 부적절한 논조를 사용했다, 너무 날카롭다, 재치가 부족하다 등의 비난은 노동운동 내 좌파(맑스, 엥겔스, 레닌, 로자 룩셈부르크, 카알 리이프크네히트)에 대해 언제나 가해졌습니다. 이 현상은 한편으로 부르조아 여론의 편견으로부터 완전히 단절하지 못했으며 자신의 상황이 애매함을 느끼는 사회주의자들이 비판을 전혀 반기지 않는 사실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심리적 법칙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지배적인 정당들에 대한 필사적인 투쟁 한가운데에서 불굴의 혁명사상의 영감을 받은 인자들이 지금과 같은 결정적으로 중요한 상황에서 주저하고 기다리고 회피하고 시간을 낭비하는 중도주의 분자들에 대해 언제나 참을성을 상실하고 지나치게 주장하고 거부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습니다. 혁명운동의 역사 전체는 이 두 분자들 간의 논쟁적인 대화를 특징으로 하고 있습니다.

당내 민주주의에 호소하면서 동시에 “논조”에 대해서 불평하는 것은 그리 설득력이 있어보이지 않습니다. 민주주의 중앙집중주의 즉 행동통일의 필요성에 의해서 제한됩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것은 오류입니다: 민주주의가 존재하기 때문에 감히 입을 너무 넓게 열거나 나를 불쾌하게 만드는 논조로 말하지는 말지어다. 그리고 레옹 블룸같은 인간에 대해서 일부가 부드럽고, 화해조로 호소하는 듯이 말하는 것은 혁명가들에게는 더욱 불쾌스러운 일입니다. 이 두 경우 모두에 있어서 논조는 정치적 내용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논의해야할 것은 바로 이 내용 인 것입니다.     

만약 일부 국제주의노동자당 당원들이 규율을 어겼다면 나는 그 당원들에 대한 비난 뿐 아니라 출당처분이 있을 것으로 이해합니다. 모든 조직은 자신의 규율을 유지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갑 또는 을이 자신의 생각을 너무 오만하게 방어해서 두 “아주 소중한” 동지들이 조직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는 비난을 들을 때 나는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자기 사상을 날카롭게 비판했다고 당을 떠나는 혁명가가 얼마나 가치가 있겠습니까? 당이 살롱, 친목회, 프리메이슨 지부 정도로 간주하는 소부르조아 동조자는 혁명의 시대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날카로운 비판의 말을 견딜 수 없다면 속이 텅 비어있다는 것을 보일 뿐입니다. 이런 사람은 바리케이드에서 도망갈 이유를 찾을 뿐입니다.

비록 날카롭기는 해도 자신의 생각을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혁명가는 노동자농민사회당에게 위험한 존재가 아닙니다. 원칙없이 음모나 꾸미고 자신의 진심을 위장하고 아무런 사상으로 자신을 치장하고 오늘은 이것을 방어하다가 내일은 저것을 방어하고 이념투쟁이 아니라 밀실의 음모를 통해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레이몽 몰리니에 유형의 모험주의자들이야말로 당에게 위험한 존재들입니다. 또한 당을 자신의 허풍이나 들어주는 청중 정도로만 이해하는 벨기에의 베레켄 유형의 자기중심적이며 완벽히 무미건조한 종파주의자들 역시 위험한 분자들입니다. 제 4 인터내셔널의 우월성은 이러한 분자들이 체계적으로 청소된 것에 있습니다. 노동자농민사회당도 이렇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여기서 맑스주의통일노동자당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이 정당의 문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이 정당에 대한 우리의 비판에 답해야 합니다. 일어난 사태는 이 정당에 대한 우리의 비판이 올바름을 확증했습니다. 영국의 독립노동당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맥스튼 일당에 비교하면 지금은 고인이 된 멘셰비키 지도자 마르토프는 진정한 혁명가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마르토프가 레닌으로부터 배우기를 원합니다. 마르쏘 삐베르, 그렇지 않습니까? 

노동자농민사회당은 기회주의정당으로부터 좌선회하여 막중한 책임을 지고 아주 결정적인 때에 조직을 분립했습니다. 내가 알기로는 노동자농민사회당은 대체로 노동자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두 사실은 당이 혁명적으로 발전할 가능성 을 아주 중요하게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 가능성을 현실로 전화시키기 위해서 노동자농민사회당은 가장 광범위하고 대담한 토론의 단계를 거쳐서 어떠한 외적 또는 부차적 고려에 의해 제지받지 말아야 합니다. 문제는 비판의 논조 가 아니라 내용 입니다. 그리고 문제는 개인적 자부심이 아니라 프랑스 노동계급의 운명입니다. 다음 몇개월 또는 몇주는 이 정당이 맑스주의, 볼셰비키주의의 길로 들어설 수 있고 들어설 것인지를 보여줄 것입니다. 우리 시대에 이 두 사상은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레온 트로츠키 

    

중도주의와 제 4 인터내셔널(1939년 3월 10일)

 

게렝 동지,

마르쏘 삐베르의 공식적인 편지와 동시에 동지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동지가 예상한대로 나는 동지와 견해를 같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동지의 개인적 견해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할 의무를 크게 느낍니다.

 

“심각한 견해 차이”가 존재하는가?

삐베르와 달리 동지는 우리 사이에 “심각한 견해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동지의 당에는 다양한 경향들이 존재하며 일부는 제 4 인터내셔널의 원칙들에 아주 가깝다는 점을 나는 전적으로 인정합니다. 그러나 당 지도부를 장악하고 있으며 삐베르가 표현하고 있는 경향은 비록 심연을 사이에 두고 있는 것은 아닐지라도 우리와 많이 떨어져 있습니다. 바로 삐베르의 지난번 편지를 받고 나는 이 점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조직의 정치적 성격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이 조직의 국내정책의 연장인 국제정책을 검토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이 측면부터 말하고자 합니다. 삐베르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동지의 당이 지난 몇년 간의 경험 특히 전적으로 새로운 경험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반대하여 영국의 독립노동당(ILP), 스페인의 맑스주의통일노동자당(POUM) 그리고 다른 유사 조직들과 정치적 동맹을 유지하고 있는 것에 대한 나의 놀라움을 표현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삐베르는 우리에 대항해서 월커와 정치적 동맹을 맺었습니다. 동지의 당은 새로운 당입니다. 그래서 여전히 모양을 갖추어야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다행스럽게 명확한 성격을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국 독립노동당은 십수년간 존재해왔습니다. 이 정당의 진화과정은 우리가 보는 앞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이 정당에 대한 모든 것이 제때 파악되고 분석되고 대체로 예상되었습니다. 맑스주의통일노동자당은 엄청난 혁명을 경험하면서 자신의 본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이 두 경우는 모두 모습을 갖추어가는 당이 아니라 경험에 의해서 이미 입증된 오랜 조직입니다.

 

영국 독립노동당

영국 독립노동당에 대해서 자세히 말할 가치가 있습니다. 아주 최근의 사실 하나만 상기시키겠습니다. 이 당의 지도자인 맥스튼은 뮌헨협정이 체결된 후 의회에서 수상 챔벌린에게 감사의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말에 놀란 세상사람들에 대해서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챔벌린은 그의 정책을 통해서 평화를 구했다. 정말 그는 평화를 구원했다. 나는 챔벌린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진심으로’ 전쟁에 대항했으며 ‘진심으로’ 평화를 구원했다.” 등등. 이 단 하나의 예는 맥스튼과 그의 당에 대해서 결론적으로 그리고 더 좋은 것은 아주 확실히 성격을 드러냈습니다. 혁명적 노동계급은 챔벌린의 전쟁과 마찬가지로 그의 “평화”를 거부합니다. 그의 “평화”는 인도와 다른 식민지들에 대한 폭력의 연장 그리고 영국의 노예소유주들에게 더 좋은 조건 속에서 전쟁을 준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챔벌린의 “평화” 정책에 대해서 조금의 책임이라도 스스로 지는 것은 사회주의자, 혁명가에게는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오직 제국주의의 평화주의적 하수인에게나 가능한 일입니다. 맥스튼과 같은 지도자 그리고 공개적으로 노예소유주 챔벌린에게 연대를 표시하는 것과 같은 행동들을 인정하는 정당은 사회주의 정당이 아니라 빌어먹을 평화주의 파벌에 지나지 않습니다.

 

맑스주의통일노동자당

맑스주의통일노동자당은 어떻습니까? 삐베르의 말에 따르면 동지의 당은 모두 힘을 합하여 이 정당에 대한 우리의 비판에 대해 이 정당을 “만장일치로” 방어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만장일치”의 문제는 재껴놓기로 합시다. 동지 조직의 성원들이 스페인 혁명의 역사, 혁명 한가운데에서 다양한 정치 경향들이 보인 투쟁의 역사, 특히 스페인 혁명이 제기하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서 제 4 인터내셔널을 대표하는 투사들이 기여한 비판적인 작업 등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고 있는 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그러나 동지가 속한 정당의 지도부 중도주의적, 비혁명적, 비맑스주의적 성격에서 나오는 맑스주의통일노동자당의 치명적인 오류들에 대해서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어쨌든 확실합니다.

스페인 혁명이 시작된 이래 나는 일부 투사들 특히 안드레스 닌과 아주 밀접한 연락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우리는 수백통의 편지를 주고 받았습니다. 혁명의 대의에 대해 정직하고 헌신적인 닌이 맑스주의자가 아니라 중도주의자이며 기껏해야 스페인의 마르토프 즉 멘셰비키 좌파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은 몇 개월이 지난 뒤였습니다. 삐베르는 혁명에서 멘셰비키주의와 볼셰비키주의의 차이를 구별하지 않습니다.

맑스주의통일노동자당 지도자들은 단 하루도 독립적인 역할을 하는 체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대중 조직 지도자들의 훌륭한 “좌파” 친구이자 조언가로 남아있기 위해 모든 일을 다했습니다.(저자 주: 아주 오랜 기간동안 마르쏘 삐베르가 블룸 일당의 좌파 친구이자 조언자로 머물러 있기 위해 모든 일을 다한 것과 똑같이 블룸이 이념적인 적대자가 아니라 부정직한 계급의 적이라는 사실을 지금도 삐베르와 그의 아주 가까운 이념적 친구들이 이해하지 못했을까 크게 두렵습니다.) 이 정책은 이 정당이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의 사상에 대해서 자신감이 결여되었기 때문에 나왔습니다. 이 결과 이 정당은 기만과 거짓 논조 그리고 계급투쟁의 수위와 날카로운 모순을 빚은 계속적인 동요의 운명 속에 빠졌습니다. 이 정당의 지도자들은 반동세력과 무정부주의적 관료들을 포함한 비열한 하수인들에 대항해서 혁명적 전위를 추동시키는 대신 배신적인 지도자들에게 겉으로만 혁명적인 설교를 하면서 “대중”이 좀더 결연한 정책을 이해할 능력이 없다고 자기변명을 늘어놓았습니다.

특히 혁명적 상황 하에서는 중도주의 좌파는 말로는 사회주의 혁명의 강령을 언제나 받아들이면서 웅변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치명적인 중도주의의 질병은 자신의 일반적인 원칙으로부터 전술적 조직적 결론들을 용기있게 도출하지 못합니다. 이 결론들에 대해서는 언제나 “성급하다”, “대중이 여기에 대해서 준비되어 있지 못하다”,고 보면서 이중성, 기만, 외교 등의 술책에 의존합니다. 더욱이 습관적으로 유지해왔던 우익세력 친구들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끊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대신 개인적인 견해들을 “존중합니다”. 모든 공격과 비난을 ... 좌파에 대해 가하면서 자신의 위세를 진지한 여론을 통해 높이려고 노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마르쏘 삐베르의 정치 심리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동요하는 분자들에 대해서 혁명의 기본 문제들을 가혹하게 제기하고 맹렬한 논쟁을 수행하는 행위가 우리 시대 계급투쟁의 화해할 수 없으며 잔인한 성격을 필연적으로 이념적 교육적 측면에서 반영한다는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이것들이 모두 “종파주의”, 타인의 개성에 대한 존중의 결여 등으로 보입니다. 즉 그는 전적으로 소부르조아 도덕론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들이 “심각한 견해차이”입니까? 그렇습니다. 노동운동 내에서 이보다 더 심각한 견해 차이를 상상할 수 없습니다. 블룸과 그의 동료들에 대해서 우리는 단순히 “견해 차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리케이드에서 그들의 반대편에 서 있을 뿐입니다.         

 

스페인 혁명 패배의 원인

모든 기회주의자, 중도주의자와 마찬가지로 마르쏘 삐베르는 스페인 노동계급의 혁명 패배를 프랑스와 영국 제국주의자들 그리고 크렘린궁 일당의 나쁜 행동 탓으로 설명합니다. 이것은 혁명 승리가 언제나 모든 곳에서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스페인 노동자들의 투쟁보다 더 거대한 규모, 더 거대한 인내력, 더 거대한 영웅주의를 예상할 수도 없고 요구할 수도 없습니다. 제국주의 “민주주의국가들”과 제 2 제 3 인터내셔널의 용병부대는 언제든지 스페인 혁명에 대해서 보인 모습을 모든 곳에서 보일 것입니다. 우리가 이들로부터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혁명적인 또는 겉으로만 혁명적인 조직들의 파산한 정책을 분석하는 대신 부르조아 계급과 이들의 하수인들의 더러운 행위를 자꾸 끄집어내는 자는 노동계급에 대해 범죄행위를 저지르는 것과 같습니다. 올바른 정책은 바로 이들 실패한 조직들을 반대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스페인의 비극에 대한 엄청난 책임은 맑스주의통일노동자당의 몫입니다. 이렇게 말할 권리가 나에게는 너무도 많습니다. 1931년 이래 안드레스 닌에게 보내는 편지들에서 나는 중도주의의 재앙적 정책이 가져올 필연적인 결과들에 대해서 예측을 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좌파적인” 정책들을 통해 이 정당의 지도자들은 스페인에 혁명정당이 존재한다는 환상을 유포했으며 진정으로 노동계급적이며 비타협적 경향이 등장하는 것을 막았습니다. 동시에 모든 형태의 개량주의에 영합하는 것을 통해 이들은 무정부주의 조직, 사회당, 공산당 등 배신자들의 가장 훌륭한 보충병이 되었습니다. 이 정당의 수많은 노동자들이 보인 개인적인 정직성과 영웅주의적 행위는 당연히 우리의 공감을 자아냅니다. 반동세력과 스탈린주의 도당들에 대항해서 우리는 이들을 최대한 방어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감상적인 생각으로 특정 정당의 진정한 본질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 혁명가는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맑스주의통일노동자당은 언제나 최소 저항선을 찾았으며 시류에 영합했으며 몸을 사렸으며 혁명과 숨바꼭질을 했습니다. 우선 카탈로니아에만 활동을 한정하면서 스페인 전역의 계급역관계에 눈을 감았습니다. 카탈로니아 노동계급의 진지는 무정부주의자들에 의해 점령당했습니다. 이 정당은 모든 경고에도 불구하고 스탈린주의자들의 위험성을 무시하더니 무정부주의 관료들에게 영합했습니다. “부차적인” 어려움들을 자초하지 않기 위해 이 정당의 지도자들은 무정부주의 관료들도 다른 개량주의자들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으며 단지 말만 달리 구사하고 있다는 사실에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그리고 무정부주의자들이 장악한 전국노동총연맹(CNT)으로 침투하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이 조직의 상층부와의 관계를 깰까 두려웠기 때문이며 이들의 조언자 역할을 계속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르토프의 입장입니다. 그러나 마르토프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 말하자면 그는 카탈로니아 정부에 참여하는 것과 같은 조야하고 부끄러운 오류들을 피하는 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공공연히 그리고 엄숙하게 노동계급 진영에서 부르조아 진영으로 넘어가다니! 마르쏘 삐베르는 이러한 “상세한 사실들”로부터 눈을 감고 있습니다.

혁명 와중에 부르조아 계급에 대한 계급적 증오심의 모든 힘을 투쟁에 집중시키는 노동자들에게 “혁명” 지도자가 부르조아 정부에 참여하는 것은 엄청나게 중요한 사실입니다. 이 사실은 이들을 혼란시키고 이들의 사기를 저하시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맑스주의통일노동자당의 정책이 가져온 필연적인 고리였습니다. 이 정당의 지도자들은 부르조아 혁명에 대한 사회주의 혁명의 장점들에 대해서 대단한 웅변조의 연설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사회주의 혁명을 준비하기 위해 어떠한 진지한 행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준비는 무정부주의 조직, 사회당, 공산당의 노동자들이 가차없이 대담하게 비타협적인 정신을 가진 채 이들의 지도자들에게 대항하도록 추동시키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배신적 지도자들로부터 결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에 의해 박해를 받더라도 혁명 초기에는 “종파”가 되어 정확하고 명확한 구호를 내세우고 내일을 예측하고 전개되는 사태에 기초하여 공식 지도자들의 배신을 폭로하고 이들을 직책에서 쫒아내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8개월 동안 소그룹이었던 볼셰비키들은 사태를 결정하는 세력이 되었습니다. 스페인 노동자들의 활력과 영웅적 투쟁은 맑스주의통일노동자당에게 준비할 시간을 몇년이나 주었습니다. 이 정당은 두세번 강보에서 벗어나 진정한 어른이 될 시간이 있었습니다. 사태가 그렇게 되지 않았다면 이것은 “민주적” 제국주의국가들과 모스크바 관료집단의 잘못이 결코 아닙니다. 다만 내적인 원인의 결과일 뿐입니다. 이 정당 지도자들은 어디로 가야할 지 어떤 길을 택해야 할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이 정당에게는 엄청난 역사적 책임이 지워져 있습니다. 이 정당이 무정부주의자들의 꽁무니를 쫓아다니지 않았다면 그리고 “인민전선”과 연대하지 않고 대신 비타협적 혁명정책을 구사했다면 1937년 5월 그리고 훨씬 더 일찍 대중의 선두에 서서 승리를 확보했을 것입니다. 마르쏘 삐베르의 당은 혁명정당이 아니라 혁명의 파도에 실린 중도주의 정당에 불과했습니다. 이 두 가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삐베르는 지금도 이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자신이 골수 중도주의자이기 때문입니다.

 

숨바꼭질

삐베르 자신은 1936년 6월의 상황과 교훈을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의 몰이해는 맑스주의통일노동자당 문제에서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마르토프는 1905년 혁명을 경험했으나 그 교훈을 전혀 소화하지 못했습니다. 이 점은 1917년 혁명에서 그의 노선으로 드러났습니다. 안드레스 닌은 수십번 나에게 보낸 편지에서 아주 진지하게 자신이 나와 “ 원칙 에 있어서는” 동의하지만 “전술”과 “템포”에 있어서는 견해를 달리한다고 말했습니다. 더욱이 불행하게 그는 죽기 바로 전까지도 나와 정확히 어느 것에 대해서 견해를 같이하고 달리하는 지를 명확하고 정확하게 말하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자신에게 그렇게 말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삐베르는 자신의 편지에서 그와 우리의 유일한 차이점은 운동의 “템포”에 대한 평가라고 말하면서 덧붙여 1935년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유사한 견해차이를 언급합니다. 그러나 몇달이 지나지 않아 1936년 6월에 거대한 사건이 전개되면서 템포의 문제에 있어서 삐베르의 오류가 무엇인지 완전히 드러났습니다. 그는 이 거대한 사태에 놀라자빠졌습니다. 계급의 적을 위해 일하는 가장 나쁜 하수인 레옹 블룸에게 “좌파” 친구로 붙어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태의 템포는 중도주의자의 우유부단에 맞추어 주질 않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중도주의자들은 언제나 자신들의 정책과 혁명 정책 사이의 차이를 “템포”, “형태”, “논조” 등을 말하면서 덮어버립니다. 혁명운동의 역사 전체는 중도주의자들이 이렇게 사실들과 사상들을 가지고 숨바꼭질하는 행태를 풍부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 몇 년간 가장 중요한 문제였던 스페인 혁명의 문제에 대해서 제 4 인터내셔널은 매 단계를 맑스주의적으로 분석했으며 노동운동 조직들 그 중에 특히 맑스주의통일노동자당의 정책을 비판하고 예상되는 결과를 제시했습니다. 그렇다면 삐베르가 우리의 평가 내용을 자신의 분석과 대비시키면서 단 한번이라도 비판한 적이 있습니까?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이런 식의 진지한 행동을 중도주의자들은 결코 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본능적으로 과학적인 분석을 두려워합니다. 이들은 사물의 전반적인 인상을 통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사상에 대한 흐릿한 교정을 통해 생활합니다. 자신의 몸을 던지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이들은 역사의 흐름 가운데에서 숨바꼭질을 할뿐입니다.

나는 동지의 당에 대해서 어떤 특별한 요구를 할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사민주의로부터 떨어져 나간지 얼마되지 않았으며 아직 사민주의 외에 다른 정치적 경향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심오한 체제 위기 한 가운데에서 좌로 선회하며 떨어져 나갔습니다. 바로 이점 때문에 동지의 당은 혁명적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상당히 열어놓고 있습니다. 이것이 나의 출발점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마르쏘 삐베르에게 편지를 보낼 이유가 조금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나의 편지에 대한 답장에서 슬프게도 계속 숨바꼭질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당내 실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국제적 위기가 진행되었던 9월에 당이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했다고 그는 편지에서 말합니다. 이 평가가 올바르기를 나는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그러나 지금 이 평가는 너무 성급한 것처럼 보입니다. 전쟁은 없었습니다. 대중은 기정사실을 앞에 놓고있지 않습니다.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 노동계급과 소부르조아 계급을 사로잡았습니다. 동지의 당이 추상적인 국제주의 구호를 제출한 때는 바로 이 전쟁이 있기 이었습니다. 1914년 최초의 포성이 울리기 바로 전까지 독일과 프랑스의 사민주의 정당들은 아주 “국제주의적”이면서 아주 “비타협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잊으면 안됩니다. 독일사민당 기관지 [전진]지는 8월 4일 갑자기 입장을 바꾸어 독일 제국주의의 전쟁 노력을 지지했습니다. 레닌은 이 신문이 독일 총사령부의 조작이 아닐까 의문을 가졌을 정도였습니다. 물론 동지의 당이 9월에 국수주의 입장을 취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환영할 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부정적인 의미의 장점에 지나지 않습니다. 동지의 당이 혁명적 국제주의의 시험을 통과했다고 확신하는 것은 너무 적은 것에 만족하는 것과 같습니다. 전쟁이 터질 경우 부르조아 여론, 사회애국주의, 공산국수주의가 개시할 맹렬한 공세를 예측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당을 앞으로 닥칠 시련에 대비시키기 위해서는 당의 계급의식을 다시 벼리고 비타협적 성향을 강화시키고 모든 사상을 논리의 끝까지 전개시키며 배신하는 친구들을 용서해서는 안됩니다. 우선 모두가 애국주의자들인 프리메이슨과 맥스튼 유형의 평화주의자들과 결별하고 제 4 인터내셔널로 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즉시 제 4 인터내셔널의 깃발 밑으로 오라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누구도 이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다만 노동계급 혁명의 근본 문제들을 허심탄회하게 검토하라는 것입니다.

세계의 모든 반동세력과 무엇보다도 이들의 스탈린주의 하수인들 모두가 모든 재앙을 “트로츠키주의” 탓으로 돌리고 여기에 그들의 주요한 화력을 집중시키는 이유는 바로 전쟁이 임박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경향들도 “트로츠키주의자”라고 인정받으면서 이 과정에서 타격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연한 현상이 아닙니다. 정치 지형이 양극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동세력과 이들의 하수인들에게는 “트로츠키주의”는 국제적으로 사회주의 혁명을 성사시킬 위험한 사상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다양한 색조를 가진 중도주의 조직들은 “민주주의”-스탈린주의 연합 반동의 압박에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매 순간마다 심한 동요를 보이며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트로츠키주의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제 4 인터내셔널에 반대합니다,” “생각보다 우리는 괜찮은 노선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숨바꼭질을 하고 있습니다. 친애하는 게렝 동지, 이 무가치한 게임을 끝내야 합니다!

 

개인적 감수성과 이념적 비타협성

삐베르는 우리 죄 많은 사람들과는 반대로 자기와 자기 친구들은 개인의 성격이나 정치적 경향에 대해 크게 고려하지 않는다고 상당히 거만하게 말합니다. 이 말은 놀랍지 않습니까? 어떻게 개인적이고 “경향의” 원칙적 성격들이 같은 수준에 위치될 수 있습니까? 개인적인 선입견이나 불평들은 소부르조아 반(半)혁명가, 프리메이슨, 일반적으로 모든 중도주의자들 사이에는 커다란 역할을 합니다. 이들은 자기 확신이 없기 때문에 거만하고 변덕스럽습니다. 그러나 “경향”에 대한 고려는 정치적 강령, 방식, 깃발의 문제입니다. 우리 시대가 다른 무엇보다 명확성, 대담성, 비타협성을 요구하는데 이념적 비타협성이 우리 시대에 “걸맞지 않는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습니까? 프리메이슨에는 다종다양한 계급, 정당, 관심사, 개인적 목표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있습니다. 프리메이슨에서 모든 지도력의 기예는 “민주주의”와 “인류”의 이해 즉 지배계급의 이해를 위해 각기 다른 경향들을 중립화시키고 각기 다른 그룹과 파벌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들을 순화시키는 데에 있습니다. 때문에 핵심적인 문제들을 제외한 모든 것에 대해서 큰소리치는 관행이 커집니다. 이 거짓된 위선적인 오염된 도덕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프랑스의 공식 노동운동 지도자들 다수를 물들입니다. 삐베르 자신도 이 도덕에 물들어 있습니다. 불쾌한 사실을 큰소리로 말하는 것이 그에게는 예의범절에 어긋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노동계급 투쟁의 중요한 사실들에 대해 침묵을 지키는 것은 범죄적인 행위라고 우리는 판단합니다. 우리의 도덕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게렝 동지, 귀하는 노동자들에게 명확하고 솔직하게 다음 질문에 답할 수 있습니까: 삐베르와 프리메이슨을 연결시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동지에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말합니다: 그를 제 4 인터내셔널과 분리시키는 것 즉 소부르조아의 감상적 우유부단, 공식 여론에의 의존증이 바로 이것이다. 유물론자이며 동시에 일요일에 성당 미사에 참여한다고 누가 말하면 나는 그의 유물론은 거짓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관용이 없으며 예절이 부족하며 자기의 “개성” 등을 공격하고 있다고 그가 아우성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의 아우성은 나를 감동시키지 못합니다. 혁명적 사회주의를 프리메이슨과 결합시키는 것은 유물론과 카톨릭 교리를 결합시키는 것만큼이나 웃기는 것입니다. 혁명가는 정치적 거처를 두 곳에 둘 수 없습니다. 영혼을 위해 부르조아 거처에 있다가 현실 정치를 위해 노동자 거처에 있을 수 없습니다. 이중성은 노동자 혁명과는 양립할 수 없습니다. 이중성은 내적 안정을 깨면서 예민성, 취약성, 지적 비겁을 낳습니다. 게렝 동지, 이중성을 타도합시다!

 

종파주의

삐베르가 우리의 “종파주의”를 얘기합니다. 우리 대오에 종파주의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경향에 대항하여 우리는 투쟁합니다. 그는 또한 우리가 대중으로부터 고립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그의 견해는 그가 지금 시대와 지금 시대에서 자신의 역할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대중으로부터 고립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에 의해서입니까? 개량주의, 스탈린주의, 애국주의, 평화주의 등의 조직들 때문입니다. 이 조직들에는 때때로 대단히 간접적이고 복잡한 형태로 쇠퇴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자기방어적 본능이 표현되고 있습니다. 삐베르 자신은 어떤 노동자 그룹이 자신들의 생각을 논리의 끝까지 밀고나가는 것을 막고 이를 통해 이 노동자들이 맑스주의로부터 고립되게 만듭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대중으로부터 고립되어 있다고 욕합니다. 이렇게 우리를 대중으로부터 고립시키는 조직 중의 하나는 중도주의 조직입니다. 그리고 이 조직의 적극적 분자가 삐베르입니다. 우리의 임무는 정확히 이렇게 “고립시키는 인자들” 을 제거하고 그 중 일부를 혁명의 대의로 설득하고 획득하며 다른 자들의 정체를 폭로하고 이들을 제거하는 것에 정확히 있습니다. 삐베르는 평화주의자, 혼동을 유포하는 자, 프리메이슨과 가까이 지내면서 심각한 문제들을 한없는 미래로 미루고, 틀린 “템포”와 나쁜 “논조”를 상기시키면서 한마디로 노동운동과 혁명적 맑스주의가 결합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혁명가들의 고립 상태에 두려움을 가질 뿐입니다.             

지금 일정에 올라있는 근본 문제들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는 우리 조직의 중핵들을 낮게 평가합니다. 우리가 꼬치꼬치 따지는 것에 열중하고 있는 것처럼 그에게 보입니다. 그러나 그는 크게 잘못 알고 있습니다. 수술의사가 수술칼을 정확하게 놀리기 위해서 조직 하나 하나 신경 하나 하나를 구별하는 법을 배워야하는 것처럼 혁명 투사들은 모든 문제들을 꼼꼼하게 세심하게 검토해서 이 작업으로부터 궁극적인 결론들을 도출해야 합니다. 삐베르는 존재하지도 않는 종파주의를 보고 있습니다.

스니블릿, 베레켄 등 모든 진짜 종파주의적 유형들이 런던 사무국, 맑스주의통일노동자당, 삐베르 주위로 모이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수수께끼는 단순합니다: 종파주의자는 자신의 기회주의를 두려워하는 기회주의자입니다. 이들이 서로 모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종파주의자는 대중을 자기 뒤에 둘 수가 없습니다. 중도주의자는 어느 한 순간을 제외하고는 대중의 선두에 설 수 없습니다. 오직 혁명적 맑스주의자만이 대중에게 길을 인도할 수 있습니다.

 

제 4 인터내셔널

제 4 인터내셔널의 필요성을 먼저 “대중에게 설득시키고” 나서야 그것을 선포할 수 있다는 너무도 자주 듣는 얘기를 동지는 반복합니다. 제 4 인터내셔널에 대한 이러한 반대에는 어떤 진지한 내용도 없습니다. 명확한 강령을 지지하고 명확한 깃발을 지지하는 혁명가들은 대중을 획득하기 위해 국제적으로 결집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해왔던 일입니다. 운동의 경험으로 우리는 대중을 교육시킬 것입니다. 동지는 이들을 “예비적으로” 교육시키기를 원합니다. 어떤 방법으로 할 것입니까? 제국주의 하수인 맥스튼 아니면 중도주의 전도사 페너 브락웨이 아니면 프리메이슨 친구들과 동맹을 맺어서 말입니까? 이 사람들이 제 4 인터내셔널을 위해 대중을 교육시킬 것이라고 진지하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오직 냉소할 뿐입니다. 잘 알려진 저속한 사민주의자 제이콥 왈처는 오랫동안 삐베르에게 제 4 인터내셔널은 “시기상조”라고 가르쳐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는 자기 거처가 있는 제 2 인터내셔널로 이사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대중이 아직 성숙하지 않았다고 기회주의자들이 말할 때 보통의 경우 이들은 자신의 미성숙성을 감추기 위해서 그런 말을 할 뿐입니다. 전체적으로 대중은 자본주의 하에서는 결코 성숙하지 못할 것입니다. 다양한 부위의 대중은 각각 다른 시기에 성숙합니다. 대중의 “성숙”을 위한 투쟁은 소수, “종파”, 전위로부터 시작됩니다. 역사에서 이와 다른 예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념, 혁명적 전통, 명확한 강령, 대중 등을 아직 확보하지 못했으면서도 동지는 대담하게 새로운 정당 창립을 선언했습니다. 무슨 권리로 그렇게 했습니까? 동지의 사상이 대중을 획득할 동지의 권리를 부여한다고 믿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왜 똑같은 기준을 제 4 인터내셔널에 대해서는 적용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이유는 단순합니다. 국제적 관점으로 자신을 상승시킬 방법을 동지가 모르기 때문입니다. 추진 조직의 형태나마 일국적 차원의 정당은 동지에게 아주 필요합니다. 그러나 국제 정당은 사치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서두를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이것은 아주 나쁜 논리입니다, 게렝 동지!

 

정직한 통합을 위해

삐베르는 조직의 통합 대신 “공동전선”을 제안합니다. 이 제안은 엄숙한 느낌을 자아내지만 진짜 내용은 허깨비입니다. “공동전선”은 대중 조직들 간의 문제일때만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경우가 아닙니다. 조직을 따로 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 두 가지 계기에 일시적으로 견해가 일치하는 것은 물론 불가피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관심을 끄는 것은 개별적 경우가 아니라 정책 전반입니다. 우리의 중심적 임무는 노동조합 내부 활동, 사회당 공산당 침투 활동입니다. 이 임무는 두 연약한 조직의 외교 게임인 “공동전선”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통합된 힘으로 대중에게 침투하기 위해서 명확한 강령에 기초하여 역량을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템포”는 상실됩니다. 시간이 거의 없습니다.

삐베르와는 달리 동지는 통합이 필요하고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짜 정직한 통합이 되어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습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비판의 포기? 서로 죄를 용서하는 것? 우리 프랑스 지부는 명확한 강령과 명확한 투쟁방식으로 통합의 사상을 선전하기 위한 투쟁을 수행합니다. 이 사상을 위해 동지와 투쟁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 사상을 위해 동지의 당내에서 투쟁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건강한 노동자 조직이 보장하는 방법으로 말입니다. 이것이 정직한 통합의 내용입니다.

삐베르의 정직한 통합에 대한 생각이 무엇입니까? “내 프리메이슨에 대해 간섭하지 마시오, 이것은 내 개인적인 일입니다.” “맥스튼이나 페너 브락웨이와의 친분에 대해서 간섭하지 마시오.” 제발, 프리메이슨은 계급의 적들이 운영하는 조직입니다, 맥스튼은 제국주의의 평화주의적 하수인입니다. 이들에 대해서 투쟁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이 신사양반들과의 정치적 우정은 배신으로 가는 열린 문이라는 사실을 당원 모두에게 어떻게 설명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러나 삐베르에게는 맥스튼에 대한 비판이 당에 대한 불충 또는 ... “부차적인” 일인 것 같습니다. 왜 이런 과도한 걱정이냐고요? 우리도 살고 딴 사람도 살게 관용이 있어야 합니다. 정치적 충성의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는 마르쏘 삐베르와는 정반대가 아니더라도 아주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 점이 공개적으로 인정되어야 합니다.

삐베르에게 편지를 보냈을 때 나는 커다란 환상은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와 화해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삐베르의 답장은 그가 골수의 중도주의자로서 혁명적 상황 하에서는 좌가 아니라 우로 선회할 인물임을 보여주었습니다. 내가 잘못 알고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단계에서 나는 낙관적인 판단을 허용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결론이 무엇이냐고 물을 것입니다. 나는 삐베르와 동지의 조직이 동일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동지의 조직과의 통합은 가능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통합의 기술적인 문제는 나와는 무관하며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동지들의 몫입니다. 나는 위에서 말한 의미의 정직한 통합을 지지합니다. 즉 혁명정책에 대한 모든 문제를 두 조직 성원들 전부에게 명확하고 솔직하게 공개하는 것 말입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진심을 맹세하면서 상대방의 술수에 대해서 불평할 권리가 없습니다. 그것은 노동계급의 운명에 대한 문제입니다. 개별 인사들의 좋은 의도가 아니라 당의 일관된 정책에 기초해야 합니다. 내 희망대로 통합이 성사된다면 그리고 통합이 진지한 논의를 촉발시킨다면 나의 편지는 논의를 위해 멀리서 내가 기여한 바 정도로 생각해 주기를 간청합니다.

진정어린 인사를 보내며,

레온 트로츠키

후기

여기서 잠시 언급하자면 동지 정당의 이름은 맑스주의 관점에서 보면 기이한 인상을 풍깁니다. 정당은 노동자적이면서 동시에 농민적일 수 없습니다. 농민은 사회학적인 의미에서는 소부르조아 계급입니다. 노동계급 소부르조아 계급의 정당은 소부르조아 정당입니다. 혁명적 사회당은 노동계급 정당 밖에 될 수 없습니다. 노동계급의 관점을 수용하는 한에서만 농민과 일반 개인들이 대오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혁명 정부에서는 물론 농민조직과 동맹하여 노동자 농민 정부를 구성할 수 있습니다. 다만 지도부는 노동계급에게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정당은 동맹이 아닙니다. 동시에 노동자적이며 농민적일 수는 없습니다. 당의 이름은 깃발입니다. 이름에서 오류가 발생하면 위험합니다. 맑스주의와 완전히 결별하면서 몇년 전에 스탈린은 “동양 국가들의 노동자 농민 정당”을 지지하는 설교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 기회주의에 대해서 좌익 반대파는 결연히 반대했습니다. 동양의 나라건 서양의 나라건 지금 우리의 계급적 관점을 기각할 이유가 없습니다.       

 


“트로츠키주의”와 노동자농민사회당(1939년 7월 15일)

 

1939년 6월 9일자 노동자농민사회당 신문에는 마르쏘 삐베르의 글, “노동자농민사회당과 트로츠키주의”가 있었다. 나는 이 글을 정말 흥미롭게 읽었다. 자신과 제 4 인터내셔널의 노선 차이를 구체적으로 분석한 글을 그가 마침내 제출한 것으로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글의 첫 줄부터 나는 실망했다. 그는 맑스주의 이론과 계급 정치 분야에 과감히 뛰어들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트로츠키주의”에 대한 그의 비판은 전부 심리, 설교, 예의범절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는 노동운동의 근본적 문제들에 대한 어떠한 진지한 논의도 확실히 피하고 있다. 나는 강령적 주제를 담고 있는 그의 글에 내포되어 있는 모든 사상과 뉘앙스를 끈기있는 분석으로 증명해보일 것이다.

 

“헤게모니에 대한 욕심”

“트로츠키주의”가 “헤게모니”를 장악하겠다는 모든 욕심을 버리고 “사회애국주의, 일국적 공산주의와 용감하게 결별한 모든 분자들과 믿음있는 협력”의 길을 간다면 삐베르는 “트로츠키주의”와 협력할 준비가 되어 있다. 협력과 “헤게모니에 대한 욕심”을 대비시키는 것 자체가 의심을 자아낼 만하다. 당내에 각기 다른 경향들이 참여한다는 것은 서로를 설득하고 서로 배울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의심의 여지없이 전제하고 있다. 비록 견해 차이가 드러날지라도 자신의 견해에 대해서 자신이 있는 모든 경향은 당내에서 다수를 획득하려고 애쓰기 마련이다. 바로 이것이 당내 민주주의이다. 자신의 견해로 당의 다수를 획득하는 것을 제외하고 다른 어떤 “헤게모니”가 민주적 정당에서 가능할 것인가? 1939년 5월에 있었던 노동자농민사회당의 지난번 대회에서 삐베르와 그의 친구들은 다수를 획득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그것을 획득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당내에 자신들의 “헤게모니”를 장악하지 않았는가? 이것이 그들을 폄하하는 현상인가? 그는 자기 경향의 “헤게모니”는 정상이고 법칙이며 다른 경향이 다수를 장악하려는 시도는 정상에 대한 침해이고 범죄이며 더 나쁜 것은 --- 트로츠키주의라고 그가 생각하고 있음을 그의 주장은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는 어디에 있는가?

 

“분파적 방식”

당내에서 자기가 권력을 독점하는 것을 “헤게모니”라고 이렇게 선언한 후 그는 트로츠키주의자들이 “분파적 방식을 포기”할 것을 요구한다. 이 요구는 여러번 되풀이 되는데 희한하게도 자기 조직의 민주적 성격을 끊임없이 강조하는 정치인의 펜대에서 나오고 있다. 분파가 무엇인가? 가능하면 가장 짧은 시간 내에 자신들의 올바름을 당에 설득시키려는 목적으로 당내에 생각이 가장 가까운 자들이 일시적으로 규약없이 자발적으로 모인 그룹이다. 새로운 부위에 대한 영향력의 확대, 새로운 문제들의 등장, 상황의 급격한 변화, 지도부의 오류 등으로 분파의 등장은 가장 성숙되고 조화로운 당에서조차 피할 수 없다. 완벽한 통일의 관점에서는 분파투쟁이 “해악”이다. 그러나 이것은 불가피한 해악이며 어쨌든 분파의 금지보다는 훨씬 덜 해악적인 현상이다. 물론 정치적 미성숙, 개인적 야망, 출세주의 등의 결과 올바른 원칙이 결여된 분파가 특히 신생 정당에서는 흔히 형성된다. 이 모든 경우에 관료적 경찰적 조치에 의존하지 않고 이러한 기도의 공허함을 폭로하고 이렇게 해서 당원들 앞에 이들의 기도를 욕되게 하는 것이 지도부의 임무이다. 오직 이 방법을 통해서만 아무리 날카롭더라도 일시적인 갈등이 당의 단합을 위협하지 않고 당에 대한 깊은 애착심을 조성할 수가 있다. 분파의 존재는 원래 성격상 갈등을 야기하고 정치적 에네르기를 소모시킨다. 그러나 이것은 민주적 체제의 불가피한 경상비용이다. 능력이 있으며 권위를 가진 지도부는 분파적 갈등을 최소화시키려고 애쓴다. 이것은 집단적 경험에 의해 확인된 올바른 정책, 반대파에 대한 애정, 지도부의 서서히 커가는 권위 등으로 달성된다. 분파를 금지시키는 조치는 당의 단결을 위한 투쟁에 반드시 위선적이고 해악적인 성격을 부여한다. 따라서 이 조치는 결코 분파적 갈등을 최소화시키는 방법이 되어서는 안된다. 분파를 금지시키는 자는 누구든지 당내 민주주의를 청산하고 독재체제로의 첫발을 내디딘다 .

 

“세포” 건설

삐베르는 이어서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외부에서 명령받는 세포를 건설하는 일”을 포기하라고 요구한다. 이러한 “요구” 자체가 가능한 것은 개념상의 대단한 혼돈이 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 내에서 노동자 다수를 획득하기 위해서 노동자농민사회당원 전부가 노동조합 내에서 세포를 조직하는 것을 임무로 삼아야 한다고 삐베르 자신도 확신하고 있다. 이러한 세포들이 주오 일당, 스탈린의 스파이들, 국가안보국에 의해 공격받는 한 이 세포들은 비밀리에 활동할 수밖에 없다. 정당으로서 노동자농민사회당은 이러한 세포들에 대한 지도를 “외부에서” 유지한다. 노동조합, 블룸의 정당, 스탈린의 정당 등에서 이러한 투쟁방식을 포기한다면 이 정당은 노동계급에 대한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한 투쟁 즉 혁명적 임무를 포기하는 셈이 된다. 이것이 아니기를 희망한다! 그렇다면 차이는 어디에 있는가? 문제의 핵심을 성찰하지도 않은 채 삐베르는 볼셰비키의 “세포” 조직방식의 귀신을 불러 자기도 공포에 떨고 당도 공포에 떨게 만든다.

어쩌면 이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농민사회당 내에 존재하는 “트로츠키주의” 세포가 문제인가? 그렇다면 분파주의에 대한 비난에 대해서 다시 한번 언급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 경우 분파를 조직한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맞지않다. 공개적으로 서로 협조하고 있는 문제이며 당내 두 경향 사이의 공개적인 투쟁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념투쟁이 관료적 탄압으로 대체된다면 “트로츠키주의자들”은 비밀 세포활동에 종사하는 것이 정당할 뿐만 아니라 의무가 된다. 싸움은 싸움답게! 그러나 이럴 경우 비밀 세포의 존재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전제적 관료집단에게 있다.         

    

“외부에서 명령받는”

“외부에서 명령받는”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여기서도 삐베르는 사람, 조직, 관련 사실 등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어쩌면 예절을 차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마 “트로츠키에 의해 명령받는”이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진지한 논쟁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식의 암시를 해왔다. 그런데 이 경우에 “명령”이라는 말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스탈린 관료집단은 권력과 돈으로 명령한다. 블룸의 당은 부르조아 계급과의 연합을 통해 명령한다. 그러나 트로츠키주의자들은 돈, 비밀경찰, 부르조아 계급과의 연합 등 어떤 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면 어떻게 “명령을 내린”다? 이 문제는 근본 문제들에 대한 연대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암시를 하는가?

그렇다고 “외부에서”라는 말이 더 듣기 좋은 것도 아니다. 이것이 당 바깥의 사람들을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외국인? 이 외부인들은 어떤 죄를 범했는가? 자신의 견해를 말하거나 조언을 한 죄? 심각한 투쟁이 혁명정당 내에서 벌어지면 이것은 불가피하게 국제적인 파장을 만든다. 각국에 존재하는 같은 경향들은 당연히 서로를 지원하고자 한다. 이 행위가 악독하거나 범죄적인 점이 어디에 있는가? 이와 반대로 이것은 국제주의를 확증하는 현상이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을 비난하는 대신 이들로부터 배워야한다!

 

“동지적인” 논조의 한 예

또한 삐베르는 트로츠키주의자들에게 “압박(?)수단 또는 부패(??) 또는 체계적인 비하 ...”를 버리라고 요구한다. “압박수단”은 무엇인가? 당기구는 삐베르의 손에 있으며 이것이 인정하는 압박수단은 결코 삐베르와 무관하지 않다. 한편 반대파는 사상 이외에 다른 수단이 없다. 그러면 그는 이데올로기적 압박의 사용을 금지하기를 원하는가? “부패”라는 말은 정치에서는 뇌물주기, 출세주의 등의 명확한 의미가 있다. 내 생각으로는 제 4 인터내셔널은 이런 죄를 범할 집단이 결코 아니다. 이제 “체계적인 비하”가 남았다. 어느 정치인의 견해가 애매모호하면 할수록 그리고 그가 남의 비판을 참는 능력이 적으면 적을수록 그에게는 날카로운 논쟁이 “비하하는 발언”인 것처럼 보인다. 지나친 예민함은 내적인 자신감 부족의 증상이다. 당지도자로서 삐베르는 “신뢰에 찬 협조”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러나 그는 “부패”를 들먹인다. 그의 펜이 실수로 못할 말을 쓴 것으로 생각하고 그 자신이 스스로 이것을 교정하기를 희망하자.

 

볼셰비키주의와 분파

당내에서 반대파가 다수를 획득(“헤게모니”)하기 위해 투쟁할 권리를 거부한 후 그리고 분파를 금지하여 민주주의의 기본적 원리를 짓밟은 후 삐베르는 신중치 못하게 노동자농민사회당의 민주주의를 볼셰비키 중앙집중주의와 대비시키고 있다. 아주 위험한 대비가 아닐 수 없다! 볼셰비키의 역사 전체는 경향과 분파의 투쟁의 역사였다. 보이코트주의자, “청산주의자”, 최후통첩주의자, 화해주의자, “노동계급 문화”주의자, 10월 무장 봉기주의자, 브레스트-리토프스키주의자, 좌파공산주의자, 공식군사정책주의자 등등에 대한 찬성파와 반대파들 사이의 투쟁이 점철되었다. 반대파가 중앙위원회의 정책이 틀렸다고 주장했을 경우 볼셰비키 중앙위원회는 반대파가 “분파적 방식을 포기”하라고 요구할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반대파에 대한 참을성과 애정은 레닌 이하 지도부의 가장 중요한 장점 가운데 하나였다.

1921년 3월 소련의 생존이 풍전등화에 있을 때 열린 10차 당대회에서 볼셰비키당은 분파를 금지시켰다. 이것은 사실이다. 이 입장이 옳았다 틀렸다 주장할 수는 있다. 어쨌든 이후 이 금지조치가 당의 퇴보의 시발점이 되었음이 증명되었다. 관료집단은 곧 “분파”라는 귀신을 들먹이며 당이 생각하거나 숨쉬는 것도 막아버렸다. 이로써 볼셰비키주의를 죽인 전제주의가 성립했다. 민주주의, 비판의 자유 등등을 그렇게도 말하기 좋아하는 삐베르가 젊은 볼셰비키주의의 활력 넘치고 열정적이며 창조적인 민주주의가 아니라 퇴보한 볼셰비키주의의 분파에 대한 공포를 차용하다니 놀라운 일이 아닌가?

     

행동의 규율

분파투쟁에 대한 해결책은 행동의 규율 이다. 혁명정당은 사교클럽이 아니라 전투조직이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이 행동의 규율을 어겼다고 말했다면 그것은 진지한 주장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그런 주장을 하지 않는 것을 보니 이 경우는 아니다.

 

삐베르의 분파

“분파적 방식을 그만두라”는 요구는 더욱더 인정될 수 없다. 그 자신이 “헤게모니”를 전부 장악하고 있으며 자신의 분파와 비밀모임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트로츠키주의에 대한 투쟁 등의 사안과 관련되어서 말이다. “트로츠키주의”는 우파에 대해서 공격을 하고 있고 삐베르는 좌파에 대해서 공격하고 있는 것이 유일한 차이이다.

 

제 4 인터내셔널과 분파

현실과는 전혀 다르게 삐베르는 제 4 인터내셔널의 운영원리를 전체주의적이며 맹목적인 복종을 강요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보다 더 황당하고 더 파렴치한 왜곡은 발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제 4 인터내셔널은 분파를 금지한 적이 한번도 없으며 그렇게 할 의도도 없다. 분파는 그동안 존재해왔고 지금도 정말 존재하고 있다. 논란은 언제나 각 분파의 사상적 내용과 관련하여 일어날 뿐 분파로서 존재할 권리 자체에 대해서 일어나지는 않는다. 볼셰비키의 당내 민주주의 사상의 관점에서 보면 소수파와 문제의 핵심에 대해서 논쟁을 하는 대신 “분파적” 방식을 구사한다고 비난하는 것은 정말이지 당혹스러운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견해 차이가 심각한 것이라면 분파적 방식은 정당하다. 그렇지 않다면 반대파는 자신의 이미지를 실추시킬 것이다. 분파투쟁은 좀더 원칙에 입각한 통합이나 조직분립을 가져올 수 있을 뿐이다. 전체주의 체제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이와 다른 어떤 대안을 제시해본 적이 없다.  

    

구체적인 문제의 확인

예를 들어 노동자농민사회당에 입당하는 문제에 대해서 “전체주의”나 “맹목적인 복종” 같은 것은 “트로츠키주의자들” 사이에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도 없었다. 오랫동안 프랑스의 동지들은 이 문제에 대해 논쟁을 벌였으며 결국 조직분립이 일어났다. 이 문제에 대한 나의 개인적 입장은 무엇이었는가?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주저했다. 몇달 전에 나는 개인적인 편지에서 이 전술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그러나 루 동지가 지도하는 영향력 있는 분파는 입당했다. 이들의 전술이 올바른 것으로 증명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프랑스 지부의 일부 동지들은 조직적 보수주의와 종파주의의 오류를 범한 것이 명백해졌다. 지금과 같은 정치상황에서 박해받고 있는 극좌 진영 내부에 이런 경향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대단히 놀라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제 4 인터내셔널이 종파주의에 대해서 투쟁하며 더욱더 많은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사실을 논란의 여지없이 증명하는 사실들이 존재한다. 물론 조직분립은 유감스러운 사건이지만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 노동자농민사회당이 우리가 열망하는 바대로 계속해서 혁명적 방향으로 발전한다면 당내에 다수파에 반대하는 “트로츠키주의자”들을 다수파 쪽으로 유인할 것이다. 그러나 부르조아 계급, 사회애국주의자, 스탈린주의자 등의 압력에 견디지 못해 노동자농민사회당이 “트로츠키주의자들”을 출당처분한다면 당 바깥에서 이들이 다시 결합할 것이다.

 

“지도자-정당”

당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일반화하여 삐베르는 이렇게 그의 글에서 말하고 있다: “음모를 통해 소위(?) 혁명적 행동을 준비하는 일종의 중앙집중화된 그룹이라는 지도자-정당의 사고보다 진정한 대중운동에 당의 문을 활짝 열고 혁명전위에게 도시 농촌 노동자의 가능한 한 가장 넓은 부위들과 직접 접촉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들을 제공한다는 사고를 우리는 선호한다.” 항상 그렇듯이 삐베르는 추상과 애매모호한 사고의 영역에 머물러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지도자-정당”은 무엇인가? 과거의 볼셰비키당을 말하는가? 그렇다면 왜 이 사실을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는가? 말하고자 하는 사물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노동자들을 교육시키는 것이 가능한가? 더욱이 이러한 암시는 골수까지 잘못되었다. 대중에게 접근하는데 있어서 볼셰비키당 만큼 각성되고 대담하며 융통성을 발휘한 심오한 당내 민주주의의 정당은 역사상 존재해본 적이 없다. 볼셰비키당은 승리를 위해 수백만 투쟁대중을 단결시켰으나 삐베르는 “가능한 가장 넓은 대중의 부위들”과 접촉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삐베르가 비밀 “음모”라고 그렇게 경멸조로 말하는 실체는 무엇인가? 어쩌면 10월 봉기의 준비를 말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것은 자유주의자, 멘셰비키, 사회혁명당 등이 항상 주장해왔던 것을 그가 반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볼셰비키주의만이 혁명정당을 건설했다

물론 조직관은 독립적인 성격을 갖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것을 통해서만 강령적 전술적 입장이 온전히 표현된다. 과거 빠리 [대중]지의 아마추어들과 이들과 유사한 유형들에게 조직문제는 조그만 잡지에 대한 “헤게모니”를 확보하고 자신들을 불쾌한 비판으로부터 보호하는 것 이상이 아니었다. 사민주의 조직은 과거나 지금이나 전적으로 선거에 목표가 맞추어져 있다. 지금까지 볼셰비키만이 국가권력 장악을 위한 혁명투쟁에 적합한 조직형태를 찾아낼 수 있었다. 혁명투쟁의 경험은 전혀 없으면서 상투적인 말로 볼셰비키주의를 무시하는 것은 인정될 수도 없는 천박하고 저열한 행위이다. 노동자들을 이런 식으로는 교육시킬 수 없다!

 

로자 룩셈부르크

자신의 조직관 아니 정확히 말해서 조직관 부재를 지탱하기 위해 삐베르는 물론 로자 룩셈부르크를 인용한다. 그러나 별 효과는 없다. 로자로부터 배울 것은 많다. 그러나 그녀의 조직관은 그녀의 입장 가운데 가장 취약한 부분이다. 이론과 정치 영역에서 범한 그녀의 오류가 조직관에 집약되어 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그녀는 혁명정당이나 분파를 수립하지 못했다. 1918-1919년 독일혁명이 좌초한 이유 중의 하나가 이것이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우리 말]지에 실린 발터 헬트의 글을 보면 된다.) 그녀의 폴란드당은 혁명의 영향을 받아 볼셰비키 모델에 따라 당을 재구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역사적 사실은 그녀의 글을 여기저기서 인용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1904년의 “트로츠키주의”

1904년 나는 [우리의 정치적 임무]라는 팸플릿을 출판했다. 여기에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조직관과 아주 가까운 조직관이 개진되었다. (자신의 스탈린 전기에서 수바린은 이 팸플릿을 공감을 가지고 인용했다.) 그러나 이후의 사건들은 이 문제에 관해 로자 룩셈부르크와 나는 틀렸으며 레닌이 올바랐음을 나에게 증명했다. 삐베르는 1939년의 “트로츠키주의”를 1904년의 그것에 대비시킨다. 그러나 이 기간 사이에 러시아에서만 세번의 혁명이 일어났다. 이 35년동안 정말 우리는 하나도 배운 것이 없을까?           

  

“자유의지론적” 약속

자신의 민주주의 정신을 더 잘 권장하기 위해 삐베르는 자신의 “사회주의 건설 방식은 권위주의적이 아니라 자유의지론적이다”라고 약속한다. 이 거만하고 애매모호한 말에 대해서는 서글픈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다. “자유의지론적” 사회주의는 무정부주의 즉 노동계급의 독재에 대한 거부를 의미하는가? 그러나 삐베르 자신은 프루동이나 바쿠닌이 아니라 맑스를 추종한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 노동계급의 독재는 그 핵심 성격상 “권위주의적”이다. 그렇지 않다면 독재가 아닐 것이다. “권위주의”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즉 독재체제 내에도 견해 차이들이 존재한다. 독재의 기관으로서 소비에트를 지향하며 가능하면 가장 넓은 당내 민주주의를 유지하겠다고 말하고자 한다면 그는 1923년 이래 “트로츠키주의자들”이 투쟁해온 목표를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의 약속이 좀더 신빙성을 획득하려면 레옹 블룸과 폴 포레처럼 당내 민주주의를 짓밟고 소수파에게 가장 정당한 권리를 부여하지 않고 반대 분파를 금지시키고 자기 분파의 “헤게모니” 독점만 보호해서는 안될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짜르 시대의 지하활동과 소비에트 정권 첫 몇년간 볼셰비키당의 특징이었던 그 민주주의의 최소한 10분의 1이라도 확립해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무한정한 미래의 “자유의지적” 혜택의 약속은 거의 가치가 없다. 이 세상의 고통을 저 세상에서 보상해주겠다는 종교의 약속을 어느 정도 상기시킬 뿐이다.

삐베르의 조직관은 당내 민주주의와의 결별, 민주집중제를 관료적 집중제로 대체하는 것 즉 사상에 대한 당기구의 헤게모니를 의미한다. 사상, 강령, 정치의 영역에서도 그는 마찬가지로 별 볼일이 없다.

 

일방적 요구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그는 사회애국주의와 일국적 공산주의에 “용기있게” 결별한 모든 분자들이 “진실된” 협조관계를 유지할 것을 요구한다. 원칙적으로 우리는 그의 요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자신이 이 요구를 깨고 있으며 그것도 노골적으로 깨고 있다. 볼셰비키당은 노동자농민사회당보다 25년 전에 이미 애국주의의 모든 변종들과 결별했다. 그러나 삐베르는 볼셰비키주의에 대해서 “진실된” 태도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오랜 투쟁과 수많은 희생을 치루면서 국제주의의 혁명적 성격을 증명했던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의무적으로 삐베르를 신뢰해야한다. 그러나 그는 이들을 전혀 신뢰할 의무가 없다. 우파는 신뢰하되 좌파는 위협하고 탄압하는 것이 그의 정책이다. 이것은 레옹 블룸의 정책이 몇도 기울어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사회애국주의와의 단절

국제주의는 의심의 여지없이 협조의 기본전제이다. 노동자농민사회당이 블룸의 사회애국주의 정당과 결별한 사실을 우리 프랑스의 동지들은 아주 진지하게 평가해왔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 정당에 입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화석화된 정당과 결별하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결별 이후에 혁명 강령을 정식화하고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정당의 지도자들은 아직도 이렇게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사회당과의 탯줄을 완전히 끊어버리는 일은 결코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며 갈 길이 아직도 멀기 때문이다.

 

프리메이슨

노동자농민사회당 지도자들에게 있어서 불행한 일은 이들이 제국주의 애국주의의 중요한 집합체인 프리메이슨과 결별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회애국주의에 “용감하게” 결별한 것은 아직 아니라는 사실이다. 전날 나는 삐에르 바이유가 작성한 훌륭한 팜플렛 [그렇다, 프리메이슨은 위험하다]를 받았다. 이 팸플릿의 저자는 프리메이슨의 심리학적 철학적 쓰레기를 모두 거부한 후에 이 문제를 맑스주의적 방식 즉 계급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사실 프리메이슨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과학이나 철학에 기여한 바가 전혀 없다. 프리메이슨의 문서들에 바탕을 두고 그는 이것의 제국주의적 반동적 그리고 노동자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역할을 논란의 여지없이 증명했다. (저자 주: 오해를 피하기 위해 프리메이슨이 각기 다른 시대와 나라에서 각기 다른 정치적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나 지금 나는 화석화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프랑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지금 프랑스 사회에서 프리메이슨은 철저히 반동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다른 모든 분파나 그룹과 달리 우리 동지들이야말로 노동계급 혁명가로서 복잡한 문제에 접근하는 법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바이유의 팸플릿은 가장 훌륭하게 증명하고 있다. 부르조아 감상으로 치장된 채 내용 없는 니콜리치의 팸플릿이 훌륭하게 제작된 반면 바이유의 진지한 이 팸플릿이 등사판으로 제작되었다는 사소한 사실조차 중도주의와 혁명주의 사상의 사회적 지위를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

 

사회애국주의

아니다. 삐베르는 사회애국주의 그리고 이 변종인 사회평화주의와 전혀 “용감하게” 결별하지 못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우리에게 대항하여 영국독립노동당의 지도자 맥스튼과 동맹을 맺지 않았을 것이다. 혁명적 맑스주의와 맥스튼의 제국주의 평화주의 사이에는 심연이 가로놓여 있다. 페너 브락웨이는 맥스튼보다 약간 좌에 있다. 그러나 이 정당의 그간 경험이 말해주듯이 결정적인 순간마다 맥스튼은 사임하겠다고 위협하고 페너 브락웨이는 즉시 그 앞에 무릎을 꿇는다. 이것을 모른 채 해도 사실은 의연히 남아있는 것이다. 제 4 인터내셔널에 반대하여 맥스튼과 동맹을 맺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삐베르는 노동자들에게 설명해야 한다. “당신의 친구가 누구인지를 말하면 당신에 대해서 말해주겠소.”

 

스니블릿

삐베르는 스니블릿과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최근 몇년간 후자의 정치 전체는 신의 도움으로 네덜란드 정부의 화를 돋구지 않고 자신의 종파주의적 노동조합들이 정부의 지원금을 박탈당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수십 번 우리는 스니블릿의 정당에게 강령을 명확히 밝히고 의회 의원인 자신이 전투적 구호를 내걸고 대중선동이 혁명정신에 입각해 이루어질 것을 그에게 요구했다. 그러나 그는 보수적 정부와 결별하지 않기 위해 체계적으로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했다. 이 민주주의자가 젊은 동지들과 나눈 논쟁의 “논조”를 회상하지 않는 것이 최상이다. 제 4 인터내셔널의 회의가 마침내 개최되어 네덜란드 지부의 문제에 대해서 논의하자 스니블릿은 우리 조직을 나가서 자연스럽게 우리의 나쁜 “방식”에 대해서 불평하기 시작했다. 의심의 여지없이 삐베르의 방식은 훨씬 낫다: 그는 스니블릿의 투항적 정치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자신의 공격을 “트로츠키주의자들”에게 가한다. 

 

맑스주의통일노동자당

안드레스 닌에 대한 저열한 비방에 대해 삐베르는 그에 대한 자신의 개인적 추억을 방어하려고 애쓴다. 물론 이것은 좋다. 그러나 그가 닌의 정치를 혁명의 모범으로 묘사한다면 그것은 인정될 수 없다. 닌의 정책은 노동계급에 대한 범죄행위라고 규정되어야한다. 두 계급 간의 혁명전쟁이 한창일 때 닌은 노동자 정부의 기초인 노동자 평의회를 파괴할 목적을 가진 부르조아 정부에 입각했다. 그리고 부르조아 정부가 노동자 평의회의 수립을 파괴하여 애초의 목적을 달성하자 닌은 이 정부로부터 쫓겨났다. 엄청난 이 오류를 인정하는 대신 닌의 정당은 부르조아 계급과의 연합이 다시 이루어질 것을 요구했다. 이 사실을 삐베르가 감히 부인할 수 있을까? 사태를 결정짓는 것은 말이 아니라 사실이다. 맑스주의통일노동자당의 정치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부르조아 계급에게 투항한 사실에 의해서 결정될 뿐 닌의 글이나 연설의 인용문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주의 혁명의 시기에 부르조아 계급과 연합을 맺는 것보다 더 커다란 범죄행위는 없다 .

이 치명적인 정책을 무자비하게 폭로하는 대신 삐베르는 이 정책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쿠르트 란다우의 낡은 글들을 전부 다시 출판하고 있다. 닌처럼 란다우 역시 소련 비밀경찰에 의해 살해되었다. 스탈린의 살인자들에게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이 아무리 강해도 노동자에게 진실을 말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 닌처럼 란다우 역시 멘셰비즘 좌파의 변종을 대표하였으며 레닌이 아니라 마르토프의 제자였을 뿐이다. 닌의 오류에 대한 우리의 비판이 아니라 닌의 오류들을 지지하는 것을 통해 란다우는 빅토로 세르쥬, 스니블릿, 삐베르 자신처럼 스페인 혁명에서 유감스런 역할을 했다. 지금 맑스주의통일노동자당 내부에는 소수 좌파가 비판의 고개를 들고 있다.호세 레불과 그의 친구들이 이 비판으로부터 최종적인 결론들을 이끌어내도록 돕는 것이 맑스주의자의 의무이다. 그러나 삐베르는 이 정당의 고르킨 처럼 최악의 보수주의자들을 지지하고 있다. 아니다, 삐베르는 블룸과 결별한 것에 대한 결론을 아직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실제적인 결과물들”

그는 트로츠키주의가 이룩한 “실제적인 결과물들”이 너무나 보잘 것 없기 때문에 자신의 관점을 바꾸기를 강요당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것은 도가 지나친 경멸일 뿐이다. 반동이 보편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이 시기에 어떻게 혁명정당이 대중운동이 될 수 있는가? 현재 두 인터내셔널의 명백한 파산으로 혁명가들에게 상황은 더 좋아지고 있다. 블룸의 사회당으로부터 노동자농민사회당이 분립한 것이 이러한 징후의 하나이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전부터 우리는 투쟁해왔다. 만약 삐베르가 비판적 방식으로 생각한다면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오랜 준비작업이 없었다면 아마 자신이 블룸과 아직 결별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이해할 것이다. 역사적인 안목을 넓게 잡으면 노동자농민사회당은 전체적으로 트로츠키주의의 투쟁의 부산물일 뿐이다 . 이 “실제적인 결과물”을 삐베르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반동과 “트로츠키주의”

부르조아 경찰 뿐만 아니라 스탈린주의자들 역시 모든 좌파적 경향을 트로츠키주의라고 낙인찍는다. 최종적으로 분석하면 이 사실은 세계 반동세력 전부가 제 4 인터내셔널을 공격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소련 비밀경찰은 간첩행위, 조작, 살해 뿐만 아니라 우리 대오에 갈등과 분열을 자극하기 위해 대규모의 인력을 동원하고 있다. 우리와 같은 지독한 탄압을 받는 혁명적 경향은 역사상 존재해본 적이 없다. 위험세력은 제 4 인터내셔널이라는 것을 반동세력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오직 제 4 인터내셔널의 무자비한 비판과 선전 때문에 중도주의자들은 들끓기 시작했고 중도주의 좌파는 우파로부터 분리되었으며 후자는 사회애국주의자들로부터 자신을 구별했다. 몇 년 전에 삐베르 자신은 트로츠키주의에 대한 투쟁은 반동의 확실한 징후라고 올바르게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슬프게도 이 반동세력이 그를 자기 대오로 끌어들이고 있다.

 

제 4 인터내셔널의 내적 역량

우리 조직보다 훨씬 강력한 것처럼 보였던 브란틀러, 러브스튼 등의 국제조직은 먼지로 변해버렸다. 왈처, 노르웨이노동당, 삐베르 자신의 연합은 파편처럼 흩어져버렸다. 런던 사무국은 사망했다. 그러나 모든 난관과 위기에도 불구하고 제 4 인터내셔널은 중단없이 성장했으며 20여개가 넘는 나라에서 조직을 보유하고 있으며 소련 비밀경찰의 테러행위로 클레멘트가 살해되는 등 가장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세계대회를 개최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강령을 정식화했는데 어느 누구도 이에 버금가는 대안을 내세우지 못했다. 이론적 수준에 있어서 [새로운 인터내셔널], [열쇠], [우리의 말] 등 제 4 인터내셔널의 기관지들과 동류에 놓을 수 있는 맑스주의 출판물들을 삐베르가 열거해보기를 바란다.

런던 사무국과 그 근처에서 움직이는 모든 좌파 그룹들은 공동의 강령도 없는 과거 조직들의 파편들로서 노쇠한 상투적인 활동과 치유할 수 없는 질병을 특징으로 하고 있을 뿐이다. 전적으로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성장하여 끊임없이 확인받고 더욱더 정교해진 공동의 강령 에 기초한 제 4 인터내셔널은 새롭고 신선한 분자들의 집단으로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중핵을 선발함에 있어서 제 4 인터내셔널은 제 3 인터내셔널에 비해 커다란 강점을 가지고 있다. 이 강점들은 반동의 시기가 제기하는 어려운 투쟁조건 자체에서 나온다. 제 3 인터내셔널은 많은 “좌익들”이 손쉽게 즉시 승리한 혁명에 추종했기 때문에 급속하게 수립되었다. 반면에 제 4 인터내셔널은 패배와 박해의 타격 속에서 형성되고 있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조성된 이념적 유대는 대단히 강고하다. 그러나 이 조직의 성장 속도는 어쨌든 초기에는 완만하다.

 

아마추어의 기준

빅토르 세르쥬는 이렇게 말한다: “소원한다고 해서 이름에 값하는 노동자 인터내셔널을 수립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얼마나 점잔빼면서도 공허한 말인가! 마치 세르쥬 자신이 바지 뒤 호주머니에 바지의 치수를 재듯이 인터내셔널을 잴 수 있는 자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름에 값하는” 일국적 차원의 혁명정당이 “소원한다고 해서” 건설될 수 있는가? 예를 들어 노동자농민사회당은 세르쥬의 자에 들어맞는가? 이 문제를 이렇게 피상적인 기준으로 접근하는 사람은 인터내셔널이 사원처럼 엄숙하고 거창한 기관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 장엄한 건물이 세워지면 이들은 아아치 밑으로 입장할 것이다. 그런데 누가 어떻게 이 건물을 세울까? 우리는 이 문제를 다르게 접근한다. 우리에게 인터내셔널은 일국적 차원의 혁명정당과 같이 노동계급의 없어서는 안되는 투쟁의 도구이다. 이 도구는 수립되고 개선되고 더 정교해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다. 우리 이외의 다른 사람이 우리 대신 이 일을 하도록 기다리지 않는다. 우리는 모든 혁명가들에게 바로 지금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이 과업에 참여할 것을 촉구한다. 제 4 인터내셔널이 문필가, 아마추어, 회의주의자 양반들의 눈에 “이름에 값하는” 것이 되면 가입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세르쥬 같은 양반이 이에 대한 책을 써서 낭만적 정서와 눈물로써 증명할 것이다: 제 4 인터내셔널의 가장 훌륭하고 영웅적인 시기는 미약한 세력을 가지고 소부르조아 회의주의자들을 포함한 수많은 적들에 대해서 투쟁을 감행한 때였다.

 

제 4 인터내셔널의 미국 지부

삐베르는 성급한 결론을 조심해야 할 것이다! 노동자농민사회당은 아직도 대중정당이 되려면 멀었다. 그리고 제국주의의 압력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을 시험하지 못했다. 반면 우리의 각국 조직들은 생존능력을 증명했을 뿐만 아니라 대중투쟁의 장에도 진입했다. 자본주의 세계의 최강국 미국에서 상당한 기간동안 선전써클로 머물렀던 사회주의노동자당은 우리의 눈앞에서 노동계급 정치의 전투적 인자로 변모하고 있다. 제 4 인터내셔널의 이 미국 지부는 파시즘과 전쟁에 대항하는 투쟁의 선두에 서 있다. 주요한 파시스트 선동가 중의 하나인 쿠플런 신부는 최근 라디오 방송의 연설 가운데 하나에서 우리 미국 지부와 이 지부의 노동자 정방대를 수립하려는 투쟁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회주의노동자당은 노동조합에서 진지한 작업을 하고 있으며 일주일에 두번 나오는 아주 훌륭한 신문과 진지한 월간지 그리고 한달에 두번 나오는 청년신문 등을 출간하고 있으며 다른 나라의 지부들에게 중요한 이념적 물질적 지원을 행하고 있다.

   

벨기에

조직구성이 거의 노동자 계급인 우리의 벨기에 지부는 지난 선거에서 약 7천표를 얻었다. 지금처럼 반동과 국수주의가 판치는 상황에서 하나의 득표는 개량주의 정당이 얻은 백표의 가치가 있다. 삐베르는 우리 조직에 대한 평가를 서둘러서는 안된다! 플레누에서 선출된 우리 벨기에 동지들이 발표한 성명서를 주의깊게 그는 읽어보아야 한다. 그러나 슬프게도 벨기에혁명사회당과 관계를 맺으려고 애쓰는 대신 그는 정치적 파산자들과 종파주의자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있다. 대중에게 향하는 대로를 낼 사람이 스니블릿, 빅토르 세르쥬와 함께 한 베레켄인가?

 

사이공의 목소리

올해 4월 30일에 열린 식민지의회 선거에 대해서 인도차이나의 사이공에서 활약하고 있는 볼셰비키-레닌주의 그룹이 나에게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내왔다: “스탈린주의자들과 모든 색조의 부르조아 정치집단 사이의 악명높은 연합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빛나는 승리를 이룩했습니다. ‘10월’이라는 중도주의 그룹의 짙은 안개같은 선전으로 유권자들의 생각이 혼란에 빠졌다는 점에서 이번 선거 승리는 더욱 힘들게 얻은 것입니다.... 우리는 제 4 인터내셔널의 깃발을 펄럭인 채 투쟁으로 나아갔습니다. ... 과거 어느 때보다 오늘 우리는 제 4 인터내셔널 강령의 의의 뿐만 아니라 일국사회주의론과 실천에 대항한 1925년, 1926년, 1927년 투쟁의 의의와 반제동맹과 다른 허풍스러운 전시용 위원회, 암스테르담-플레옐 국제회의 등에 대한 투쟁의 의의 역시 이해하고 있습니다.”

사이공의 혁명적 노동자들의 이 목소리는 런던 사무국과 사이비-“맑스주의 쎈터들”의 목소리를 합친 것보다 한없이 더 중요하다. 억압받는 식민지 나라들의 선진노동자들은 탄압받는 인터내셔널을 지지한다. 자신들의 투쟁경험을 통해서 이들은 우리 강령을 이해하게 되었고 이 강령을 옹호하는 법을 알게 될 것이다. 1925년부터 1928년까지 좌익반대파가 수행했던 투쟁의 의미를 선진노동자들이 이해한다는 선언은 특히 소중하고 중요하다. 오직 사상의 계승만이 혁명전통을 창조한다. 이것이 없이는 혁명정당은 바람에 나부끼는 갈대처럼 갈팡지팡한다.

 

영국과 프랑스에서

오래된 식민지 모국인 영국과 프랑스에서 식민지의 초과이윤에 직접적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노동관료 집단은 세계 다른 어떤 곳에서보다 더 강력하고 보수적이다. 그래서 이 나라들의 혁명적 대중은 자신들의 고개를 처드는 것이 더욱 어렵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이 나라들에서 제 4 인터내셔널의 지부들이 지극히 느리게 성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혁명가들이 이곳에서 앞으로 몇개월 동안 배신과 사기술의 장벽에 심각한 균열을 일으키는데 성공할 수 있을 지는 노동자농민사회당의 진전에 크게 달려있다. 그러나 이 측면에서 사태가 어떻게 전개되든 일반적인 사태 전개의 방향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영국과 프랑스의 가장 억압받는 부위들이 표면으로 분출하면 이들은 어정쩡한 노선에 머물지 않고 사회모순의 심오함과 날카로움에 해답을 제시하는 제 4 인터내셔널의 강령을 받아들일 것이다.

 

“교조”

우리의 불굴의 힘이 우리의 이론적 철저함과 비타협성에 있다는 것을 삐베르는 이해하기를 거부하거나 아니면 이해할 능력이 없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그는 그의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코민테른의 첫 4차 대회에서 정식화된 원칙들의 체계를 교조(?)로서 그리고 결과적으로 토론없이(?) 받아들이는 성원들만을 트로츠키는 자기 조직에 받아들인다. 당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이와 전혀 다르다.” 모든 종류의 의심스러운 영향력 속에 놓인 삐베르는 제 4 인터내셔널 운동을 한명의 개인으로 환원시키려고 한다: “트로츠키는 자기 조직에 ...을 받아들인다.” 애초부터 좌익반대파는 볼셰비키당의 최우수 분자들을 포옹했다: 비합활동으로 단련된 혁명가들, 내전의 영웅들, 청년세대의 최상의 대표들. 이들 수만명의 모범적인 맑스주의자들은 어느 당에도 명예를 가져다 주었을 것이다. 이 사실을 삐베르는 아마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수만명의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서서히 죽어갔다. 이것이 오직 “트로츠키가 받아들여서” 아니면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인가? 이러한 무의미한 말은 브란틀러, 왈처, 러브스튼, 스니블릿, 기타 냉소주의자들에게 해야한다.... 그러면 “교조”에 대해서 말해보자.

코민테른의 첫 4차 대회들의 결정사항들은 “좌익반대파”의 미래 지도자들의 가장 직접적 참여를 통해 정식화되었다. 그러나 제 4 차 대회 이후 볼셰비키당에서는 견해 차이들이 발생하였다. 제 5차 대회는 기회주의로 급선회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혁명전통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첫 4차 대회들을 출발점 이상으로 삼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 대회들에만 우리들의 정치적 내용을 한정한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관찰했고 연구했고 토론했고 비판했고 구호를 제출했고 앞으로 전진했다. 지난 15년간 출판되었던 우리의 이론잡지, 내부회보, 수많은 강령적 서적들과 팸플릿들을 나는 증거로 제시하고자 한다. 혹시 삐베르는 우리가 비판하지 않은 반대자들의 진지한 비판적 저술들을 단 하나라도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와 그의 친구들은 첫 4차 대회들의 결정사항들에 대해서 비판했는데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을까? 이들의 논쟁적 저작들은 어디에 있는가?

바로 같은 글에서 삐베르는 트로츠키주의자들에게 요구한다: “이들이 노동자농민사회당의 당헌, 당기구, 규약, 다수파의 결정사항들을 인정하고 오차없이 이것들을 실천에 옮겨야한다.” 이 요구는 그 자체로는 정당하다. 그렇다면 이 정당의 당헌, 당기구, 규약 등이 “교조”라는 말인가? 아니면 첫 4차 대회들의 강령적 결정사항들이 “교조”라는 것인가?

 

속임수

삐베르는 다음과 같이 논리를 전개한다: 스탈린주의가 등장하면서 공격한 고전적 볼셰비키주의의 특성들과 결함들을 발견하고 끄집어내고 거부해야한다. 이 논리는 형식적이고 무미건조하다. 스탈린주의가 볼셰비키주의의 가장 나쁜 특성들을 공식적으로 공격한 적은 한번도 없다. 자기희생은 혁명가가 보유한 훌륭한 자질이다. 모스크바 조작재판의 일부 피고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자기희생의 정신으로 인도되었다. 즉 “소련의 수호”를 위해 자신들의 목숨과 명성을 버렸다. 그렇다면 이것은 자기희생 대신에 이기심을 주입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암시하는가? 이것에 대해서 “비판적 통찰력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대답은 너무 뻔하다. 볼셰비키들이 이들 최근의 비판자들보다 비판적 통찰력이 더 적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객관적 역사적 상황이 주관적 상황보다 더 강력할 뿐이다. 고립되고 후진적인 나라의 새로운 관료집단이 혁명 계급 위에 군림하여 그 전위를 압살한다. 이 때 필요에 의해 이 관료집단은 볼셰비키주의의 정식, 전통, 특성, 방식들을 활용하되 이것들에 정반대의 사회적 내용들을 채워넣는다. 사회주의의 첫 단계들에서는 불평등의 요소들이 불가피하게 존재할 수 밖에 없다고 맑스가 가르쳤고 레닌도 이것을 따랐다. 관료집단은 이 사상을 자신들의 깡패적 특권을 정당화하는데 사용했다. 그러면 우리는 바로 이것 때문에 맑스의 올바른 사상을 무조건 거부해야 하는가?

전체 역사상 계급투쟁의 변증법은 이와 유사한 변형, 대체, 기형 등을 경험했다. 기독교, 개신교, 민주주의 등도 이와 같은 운명을 걸었다. 특히 프리메이슨의 운명도 그러했다. 이 사상은 부패하고 있던 자본주의적 개인주의 정신에 대항해서 17세기에 소부르조아 계급이 창조했다. 그리고 길드 “형제애”라는 이상화된 도덕을 부활시키려했다. 나중에 계급투쟁의 과정에서 이것은 소부르조아 계급을 종속시키고 규율을 강제하기 위해서 부르조아 계급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채용한 도구가 되었다. 사회현실 그리고 이 사회현실을 지지하는 계급들 바깥에서 사상과 원칙들을 접근하는 것은 인정될 수 없다.

빅토르 세르쥬와 다른 사람들을 뒤이어 삐베르가 발명한 볼셰비키주의에 대한 비판은 맑스주의적 요소를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다. 유물론적 분석을 속임수 게임으로 대체하고 있을 뿐이다.

 

과학적 사상의 헤게모니를 위해

결정적인 시기에 당이 내리게 될 중대한 결정들을 예상하는 진지한 혁명가는 준비기에 자신의 책임을 통감하고 애써서 꼼꼼하게 개개의 사실, 개념, 경향을 분석한다. 이 점에서 혁명가는 외과의사와 비슷하다. 외과의사는 자신의 수술칼로 조금의 실수도 하지 않기 위해 해부학에 대한 뻔한 지식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뼈, 근육, 신경, 힘줄의 위치와 이것들의 상호연결 상태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오류 투성이의 다른 견해들을 유화적으로 지지하기 위해서 과학적 개념들과 정식들을 좀더 정교하게 만드는 것에 대해 건축가, 의사, 화학자 등은 격렬하게 반대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역학, 생리학, 화학 법칙들의 “헤게모니”에 반대하는 어떤 제안도 거부할 것이다. 그러나 삐베르가 바로 이 짓을 하고 있다. 강령적 견해차이들의 핵심을 탐구하지 않은 채 그는 어느 한 경향이 “모든 진리를 그 내부에 체계화했다고 주장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뻔한 말을 반복하고 있다. 그의 결론은 “내버려 두어라”이다. 이런 유형의 격언들은 선진노동자에게 가치있는 어떤 것도 가르칠 수 없다. 용기와 책임의식 대신 이런 상투적인 격언들은 무관심과 나약함을 주입시킬 뿐이다. 제 4 인터내셔널은 돌팔이주의에 대항하여 노동계급 정치의 문제들에 대한 과학적 태도를 위해 투쟁한다.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에서 드러나는 혁명적 열정은 진리를 위한 투쟁에서 드러나는 지적 열정과 분리될 수 없다.

 

볼셰비키주의인가 아니면 멘셰비키주의인가?

삐베르에 의하면 우리는 교조주의와 상투적 사고의 대표인 반면 자신은 비판적 사고의 주창자인 모양이다. 사실 “트로츠키주의”에 대한 비판에서 그는 자신의 독창적인 생각을 하나도 덧붙이지 않고 단순히 멘셰비키들의 백발이 성성한 오래된 정식들을 반복할 뿐이다. 그러나 멘셰비키주의 역시 엄청난 시험에 놓였다. 볼셰비키당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혁명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러나 고립된 채 적대 세력이 가하는 압력에 저항할 수 없었다. 다른 말로 하면 러시아의 볼셰비키주의는 자신이 국제노동계급을 대신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반면 멘셰비키주의는 굴종과 배신 이외에 혁명에 기여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마르토프로 인격화된 멘셰비키주의 좌파는 완벽한 혼돈과 무기력을 나타내었다. 10월 혁명이 제기한 역사적 과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투쟁에 결부된 기본 세력은 동일하다. 선택은 “트로츠키주의”와 노동자농민사회당이 아니라 볼셰비키주의와 멘셰비키주의에 있다. 볼셰비키주의를 출발점으로 해서 우리는 앞으로 전진할 준비가 되어있다. 우리는 뒤로 기어가기를 거부한다.

 

제 4 인터내셔널의 강령

1939년 6월에서야 삐베르는 “코민테른의 첫 4차 대회들”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인식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훨씬 앞으로 전진하는데 성공했다. 1년전 가을 우리 조직의 국제회의는 우리 시대의 임무에 조응하는 이행기 요구 강령을 채택했다. 삐베르는 이 강령을 알고 있는가? 이것에 대한 그의 태도는 무엇인가? 우리는 비판을 원할 뿐이다. 어떤 “논조”든 상관없으며 문제의 핵심에 다가가는 비판말이다!

“외부로 부터” 구체적인 제안을 하고자 한다: 즉시 토론으로 들어가 노동계급의 국제적 강령을 정식화하며 이 문제에 대해서 국제적 토론을 위한 특별 출판물을 제작한다. 이 토론의 기초로서 제 4 인터내셔널의 강령 [자본주의의 단말마적 고통과 제 4 인터내셔널의 임무]를 제안한다. 그러나 토론의 기초자료로써 다른 초안이 가능하다면 그것을 우리 인터내셔널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삐베르와 그의 친구들이 어쩌면 이 제안을 받아들일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것은 의문의 여지없이 커다란 진전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일부 사람들에게는 피상적이고 피곤하게 보일 정도로 꼼꼼하게 삐베르의 글을 분석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논조”가 다시 한번 너무 신랄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확하고 명확한 세세한 설명이 위협과 넌짓한 암시로 보충된 외교적인 애매모호함보다 협조의 희망을 더욱 강하게 증거한다고 나는 믿는다. 마르쏘 삐베르 뿐만 아니라 다니엘 게렝 역시 이 점을 심사숙고하기를 희망한다. 어제의 공허한 내용을 반추하는 것을 그만둘 필요가 있다. 새로운 인터내셔널의 강령과 전략에 대한 진지하고 정직한 토론의 길을 가는 것이 필요하다.

-끝-

 

용어 해설

인물, 신문, 조직, 사건 등은 명시하지 않는 한 프랑스어 철자로 되어 있다. 순서 역시 마찬가지이다.

Alcala Zamora, Niceto(1877-1949, 알칼라 자모라, 니세토): 대지주, 진보당 당수, 자유주의 카톨릭 신자; 1931년 4월 최초로 수립된 스페인 공화국 정부의 수상; 1931-36년 대통령 역임.

Alfonso 13th(1886-1941, 알폰소 13세): 스페인 국왕; 1931년 스페인 공화국의 수립과 함께 폐위 당함.

Amsterdam-Pleyel(암스테르담-플레옐): 부르조아 및 소부르조아 평화주의자들의 협조 하에 스탈린주의자들이 개최한 두 국제대회. 전쟁에 반대하는 첫 대회는 1932년 6월 암스테르담에서 개최되었다. 파시즘에 반대하는 두번째 대회는 1933년 빠리의 플레옐 강당에서 개최되었다.

Anti-Imperialist League(반제동맹): 1927년에서 1928년까지 코민테른이 개최한 국제대회.

Azana y Diaz, Manuel(1880-1940, 아자냐 이 디아즈, 마누엘): 1931년 6월부터 1936년까지 스페인 공화국 정부의 수상; 1936년 5월부터 1939년까지 대통령 역임.

Bakunin, Mikhail(1814-1876, 바쿠닌, 미카엘): 무정부주의 창시자; 제 1 인터내셔널에서 맑스의 노선에 반대함; 무정부 자치공동체 연맹에 기초한 이론을 제창.

Barthou, Louis(1862-1934, 바르뚜, 루이): 두메르그 정부의 외무장관. “집단안보”의 주창자; 유고슬라비아 국왕과 함께 마르세이유에서 암살당함.

Bataille Socialist(사회주의 전투): 1927년부터 1940년까지 존재했던 프랑스사회당의 좌파 그룹. 이 그룹의 기관지 역시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Bauer, Otto(1882-1939, 바우어, 오토): 오스트리아 맑스주의의 주요 이론가이자 오스트리아사회당의 지도자.

Black Hundreds(흑백인조): 유태인과 좌익 노동자들에 대한 학살을 자행했으며 짜르 정부의 지원을 받았던 폭력 우익 및 반유태인 깡패 집단.

Blum, Leon(1872-1950, 블룸, 레옹): 1930년대 프랑스사회당의 당수이자 1936년 최초의 프랑스 인민전선 정부의 수상.

Bolsheviks(볼셰비키당): 1903년 당대회 이후 러시아사회민주주의당의 다수파; 1912년 독자 정당을 수립. 레닌의 지도 하에 국가권력 장악을 위한 민주집중적 조직이 되었으며 10월 혁명을 주도하였다.

Bonaparte, Napoleon 1st (1769-1821, 보나빠르뜨, 나뽈레옹): 1804년부터 1815년까지 프랑스의 황제; 프랑스 대혁명 이후 대중의 저항을 억압했으며 군사정복 전쟁을 벌임.

Bonaparte, Louis Napoleon 3rd(1808-1873, 보나빠르뜨, 루이 나뽈레옹): 나뽈레옹 1세의 조카; 1852년부터 1870년까지 프랑스의 황제.

Bonapartism(보나빠르뜨주의): 의회주의 정당이나 대중운동보다는 군사적, 경찰적, 국가적 관료집단에 주로 기초한 정치체제.

Brandler, Heinrich(1881-1967, 브란틀러, 하인리히): 독일공산당 창시자; 1923년 독일의 혁명적 위기 당시 독일공산당이 국가권력 장악에 실패하자 스탈린에 의해 희생양이 되었다. 부하린의 우익반대파에 속했으며 1929년 출당처분을 당했다.

Brest-Litovsk(브레스트-리토프스크): 러시아와 폴란드 국경선의 마을. 1918년 3월 3일 트로츠키가 단장으로 있던 소비에트 대표단에 의해 러시아와 독일의 전쟁을 끝내는 조약 협상이 진행되었던 곳. 조약의 조건은 소비에트 정권에게 불리했다.

Brian, Aristide(1862-1932, 브리앙, 아리스띠드): 끌레망쏘 내각의 직책을 수락하여 프랑스사회당에서 출당처분을 당함; 1915-17년 전시 연립내각의 수상; 1925-32년 국제연맹의 프랑스 대표.

Brockway, Fenner(1890-   , 브락웨이, 페너): 영국노동당 지도자이자 런던 사무국의 의장; 제 4 인터내셔널에 적극 반대했다.

Bruning, Heinrich(1885-1970, 브뤼닝, 하인리히): 독일카톨릭중앙당의 지도자로 1930-32년 수상 역임; 의회에서 다수를 차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행정명령으로 통치했다.

Bukharin, Nikolai(1888-1938, 부하린, 니콜라이): 고참 볼셰비키이자 러시아공산당의 지도자; 1926-29년 코민테른 의장; 우익반대파의 지도자였으며 제 3차 모스크바 조작재판에 의해 처형됨.

Cachin, Marcel(1869-1958, 까쉥, 마르쎌):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열렬한 사회애국주의자; 1920년 프랑스공산당으로 당적을 옮김.

Cadets(Constitutional Democrats, Russia, 러시아입헌민주당): 입헌왕정이나 공화국을 선호했던 러시아의 자유부르조아정당.

Cahiers du Bolchevism(볼셰비키주의 잡지): 프랑스공산당의 이론지

Caillaux, Joseph(1863-1944, 까이요, 조세프): 1911-12년 수상을 지냈던 프랑스 급진당 지도자; 여러번 재무장관을 역임.

Camelots du Roi(왕의 신문팔이): 샤를르 모라의 신문 [프랑스의 행동]지를 중심으로 결집한 왕당파 그룹.

Centrism(중도주의): 개량주의와 맑스주의 사이에서 동요하는 노동운동 내의 정치경향.

CGT(General Confederation of Labor, 노동총연맹): 프랑스의 주요 노동조합 연맹

CGTU(Unitary General Confederation of Labor, 단일노동총연맹): 프랑스공산당이 장악한 노동총연맹 좌파; 1921년 노동총연맹에서 분리하여 독립하였으나 1936년 다시 통합되었음.

Chamberlain, Neville(1869-1940, 챔벌린, 네빌): 영국보수당의 지도자; 1938년 수상이 되어 히틀러와 뮌헨협정에 서명.

Chautemps, Camille(1885-1963, 쇼땅, 까미유): 프리메이슨 회원이자 프랑스 급진당 지도자; 1930, 1933-34년 수상 역임; 금융스캔들에 연루되어 불명예 퇴임; 1937-38년 다시 수상 역임.

Citrine, Walter(1887-   , 씨트린, 월터): 1926-46년 영국노동조합총연맹의 서기; 1935년 영국 자본주의에 기여한 공로로 귀족 작위가 수여됨.

Clausewitz, Karl von(1780-1831, 클라우제위츠, 칼 폰): 프로이센의 장군이자 군사전략가; [전쟁론]의 저자.

Clave(열쇠): 1938-39년 멕시코에서 발간된 트로츠키주의운동의 스페인어 지부 이론지.

CNT(National Confederation of Labor, Spain, 스페인노동총연맹): 무정부주의-조합주의 노동조합연맹.

Comite des Forges(철강협회): 프랑스의 경제와 정치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철, 강철, 석탄 협의회.

Communist(or Third) International(공산주의 또는 제 3 인터내셔널, 코민테른): 제 2 인터내셔널의 혁명적 계승자로 1919년 레닌에 의해 창립됨; 1943년 제 8차 세계대회를 끝으로 스탈린에 의해 해산됨.

Consulate(1799-1804, 집정관정부): 프랑스 혁명 당시 통령정부에 뒤이은 정부형태. 3명의 집정관이 프랑스를 통치하도록 임명됨; 1802년 집정관의 일인이었던 나뽈레옹 보나빠르뜨가 종신 제1 집정관이 되자 전제정치를 호도하기 위해 채택된 정부형태. 1804년 나뽈레옹이 황제가 되자 폐지됨.

Coughlin, Charles(1891-    , 쿠플런, 차알즈): 미국 경제공황기에 독일 나찌당의 숭배자가 된 카톨릭 신부; 초기 미국 파시즘운동의 대변인.

Crox de Feu(불 십자가): 까씨미르 들 라 로크가 주도한 파시스트 준군사조직; 1936년 다른 파시스트 그룹과 통합하여 프랑스사회정당을 결성.

Daladier, Edouard(1884-1970, 달라디에, 에두아르): 1933년 그리고 1934년 잠시동안 프랑스 급진당 지도자로 수상을 역임; 1938년 다시 수상이 되어 뮌헨협정에 서명.

Dan, Feodor(1871-1947, 단, 페오도르): 러시아 멘셰비키 지도자이자 10월 혁명의 반대자.

Danton, Georges Jacques(1759-1794, 당똥, 조르쥬 자크): 프랑스 혁명 당시 저명한 자꼬뱅 지도자.

Deat, Marcel(1894-1955, 데아, 마르쎌): 프랑스사회당 우파 지도자; 1933년 신사회당 그룹과 함께 출당처분을 당함; 1933년 싸로 내각의 항공장관이었으며 친나찌 비쉬 정권 하에서는 국무장관을 지냄.

De la Rocque, Casimir(1886-1946, 들 라 로크, 까시미르): 파시스트 준군사조직 [불 십자가]의 두목; 1936년 프랑스사회정당의 창립자; 1934-37년 파시스트 독재자의 주요 후보로 인정됨.

De Man, Henri(1885-1953, 드만, 앙리): 벨기에노동당 우파 지도자; 경제공황을 종식시키고 생산을 증진시키는 노동계획을 1933년 입안.

Deutsch, Julius(1884-1968, 도이치, 율리우스): 오스트리아사민당 지도자이자 방어동맹의 지도자.

Dimitrov, Georgi(1882-1949, 디미트로프, 게오르기): 불가리아의 공산주의자; 독일로 이주했다가 1933년 나찌당에 의해 독일의회 방화범으로 재판을 받음; 1934-43년 코민테른의 집행위원장; 인민전선 정책의 주요 입안자로 알려짐.

Directory(1795-1799, 통령정부): 프랑스 혁명 당시 5인의 통령과 양원제로 구성된 국가체제; 집정관정부로 대체되었다. 만연한 부패와 대중의 불만으로 점철된 정부였음.

Dollfuss, Engelbert(1892-1934, 돌푸스, 엥겔베르트): 오스트리아 수상으로 1934년 오스트리아 노동운동을 진압했음; 독일 파시즘보다 이탈리아 파시즘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다 나찌당에 의해 암살당함.

Doriot, Jacques(1898-1945, 도리오, 자크): 스탈린주의 지도자이자 빠리 교외 쎙드니의 시장; 1934년 노동자 공동전선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면서 프랑스공산당에 의해 출당처분을 당함. 우익 인사가 되어 1936년 6월 친파시스트 프랑스인민당을 결성함.

Doumergue, Gaston(1863-1937, 두메르그, 가스똥): 1924년 프랑스의 대통령이 됨; 1934년 2월부터 11월까지 수상 역임.

Duclos, Jacques(1896-1975, 뒤끌로, 자크): 프랑스공산당 출신으로 하원의원 역임; 공산당의 정치국원 역임.

Economists(경제주의자): 20세기 초 러시아 사회민주주의 운동 내부의 개량주의 추종자들; 정치 문제에 대한 혁명적 선동을 거부하고 순수 노동조합 문제에만 강조를 둠.

Engels, Frederick(1820-1895, 엥겔스, 프레데릭): 맑스의 평생 조력자이자 맑스주의 기본 저작들의 저자; 말년에 신생 제 2 인터내셔널의 지도적 인사였음.

Entente(연합국): 제 1차 세계대전 중 영국, 프랑스, 러시아, 벨기에, 이탈리아 등의 나라가 성립시킨 동맹체제.

Fascism(파시즘): 노동운동을 압살하고 국가권력을 장악하려는 운동; 격심하고 장기적인 사회위기의 기간에만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를 얻을 수 있음; 소부르조아 계급과 룸펜노동자 계층에 기반을 둔 반동적 정치운동.

Faure, Paul(1878-1960, 포레, 폴): 1920년 프랑스사회당의 코민테른 가입을 반대했던 소수파 지도자; 제 2차 세계대전까지 사회당을 주도했음.

Flandin, Pierre(1889-1958, 플랑뎅, 삐에르): 1934년 11월부터 1935년 5월까지 프랑스 공화국의 좌파 수상 역임; 1935년 외무장관 역임.

Fourth International(제 4 인터내셔널): 트로츠키와 그의 동맹자들의 국제적 혁명운동; 트로츠키는 1936년 7월 빠리에서 열린 국제공산주의자동맹 회의에서 창립되기를 원했으나 지연되어 1938년 9월 창립됨.

Franco, Francisco(1892-1975, 프랑코, 프란치스코): 1936-1939년 스페인 내전의 파시스트 지도자; 1939년 이후 사망까지 스페인의 철권 독재자로 군림.

Freemasonry(프리메이슨): 사회주의 운동과 부르조아 계급 좌파 간의 동맹을 형성한 자유주의 전통의 우호단체; 종교에 반대하지만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이 운동을 트로츠키는 사회주의 운동을 오염시키는 기제로 보았다.

French Revolution(1789, 프랑스 혁명): 봉건체제를 타도하고 부르조아 공화국을 수립한 사회혁명; 1848년에 발발한 혁명은 빠리의 노동계급과 그 자유주의 동맹세력의 봉기로 시작되어 1830년 집권한 루이 필립의 정권을 타도했음.

Frossard, Louis-Olivier(1889-1946, 프로싸르, 루이-올리비에): 프랑스사회당과 공산당의 지도자; 1922년 공산당을 탈당하고 사회당에 입당; 다시 1935년 사회당을 탈당하고 노동장관을 역임.

Gandhi, Mohandas(1869-1948, 간디, 모한다스): 인도 국민회의 지도자; 영국의 식민 통치에 수동적 저항을 조직.

Gauche Revolutionnaire(혁명 좌파): 1935년 삐베르가 조직한 프랑스사회당 좌파 그룹. 트로츠키주의자들이 당내에서 제창한 구호들을 지지했으나 인민전선과 제 4 인터내셔널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입장을 취함.

Gavroche(열혈아): 빠리 거리의 오기가 센 청년들.

Germain-Martin, Louis(1872-1948, 제르맹-마르뗑, 루이): 1928-36년 급진당 하원의원; 두메르그와 플랑뎅 내각의 재무장관 역임.

German Revolution(1923, 독일혁명): 경제위기와 프랑스군의 루르지방 점령으로 촉발됨; 독일공산당과 코민테른의 우유부단으로 실패함.

Gil Robles y Quinones, Jose(1898-   , 질 로블레스 이 퀴뇨네스, 호세): 스페인 카톨릭 지도자; 극우그룹의 연합을 조직.

Gorkin, Julian(고르킨, 줄리안): 스페인 좌익반대파 지도자; 노동자농민연합에 합류하여 이후 맑스주의통일노동자당의 지도자가 됨.

Grumbach, Salomon(1884-1952, 그렁바하, 살로몽): 1928-32년 프랑스 사회당 하원의원; 국제문제 전문 언론인.

Guerin, Daniel(1904-   , 게렝, 다니엘): 1930년 프랑스사회당 입당; 노동계급 혁명 그룹의 중핵과 함께 탈당; 재입당하여 혁명좌파 그룹의 창시자가 됨; 1938년 출당처분을 당하고 노동자농민사회당 창당. 역사와 사회학 관련 서적의 저자.

Guesde, Jules(1845-1922, 게드, 주울): 프랑스 맑스주의 창시자; 프랑스사회당의 맑스주의 분파 지도자; 사회애국주의자로 변신하여 제 1차 세계대전 때 부르조아 연립내각에 입각.

Haile Selassie(1891-1975, 하일리 셀라시): 이디오피아 황제; 1936년 이탈리아의 침략으로 국외 망명; 1941년 귀국하여 군사쿠데타로 축출되기 전까지 황제로 군림.

Heine, Heinrich(1797-1856, 하이네, 하인리히): 혁명에 대한 지지 때문에 망명한 독일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잠시 맑스와 엥겔스의 친구였음.

Held, Walter(1910-1941, 헬트, 발터): 히틀러 집권시 노르웨이로 망명한 독일 트로츠키주의자; 노르웨이 망명 당시 트로츠키의 비서 중의 한명이었으며 소련 비밀경찰에 의해 살해됨.

Herriot, Edouard(1872-1957, 에리오, 에두아르): 프랑스 급진당 지도자; 1924-25, 1926, 1932년 수상 역임; 1936-40년 하원 의장 역임.

Hitler, Adolph(1889-1945, 히틀러, 아돌프): 독일의 국가사회주의당(나찌)의 창시자이자 당수; 1933년 파시즘 정권 수립.

L'Humanite(인류): 프랑스공산당 일간지.

Independent Labour Party(ILP, 독립노동당): 영국노동당 창당에 일조한 그룹; 1932년 탈당하여 독자 창당; 1939년까지 런던사무국에 소속됨.

Iron Front for Resistance Against Fascism(반파시즘 무쇠전선): 1931년 12월 수립된 독일 반파시즘 연합조직; 독일사민당, 노동, 청년, 방어 조직 등으로 구성되었음.

Jacobins(자코벵파): 1789년 프랑스 혁명의 가장 급진적 분파; 1791년 지롱드파의 타도 때부터 1794년 테르미도르 반동기까지 혁명운동을 장악했음.

Jouhaux, Leon(1879-1954, 주오, 레옹): 1909-40년 프랑스 노동총연맹의 총서기; 제 1차 세계대전 때 사회애국주의자가 됨.

Juin 36(36년 6월): 노동자농민사회당의 신문.

July Days(1917년 7월): 러시아 노동자와 병사들의 자발적 시위로 시작하여 혁명의 일시적인 후퇴와 볼셰비키당에 대한 케렌스키 임시정부의 대대적인 탄압으로 끝났다. 당시 멘셰비키들은 임시정부의 이러한 조치를 지지했다.

July Revolution(1830년 7월 혁명): 국왕 샤를르 5세가 축출되고 혁명활동 이력을 가졌던 과거 자코벵파의 루이 필립이 정권을 장악했음.

Just, Claude(1888-1956, 쥐스트, 끌로드): 1935년 이전 프랑스사회당 좌파의 지도자.

Kamenev, Leon(1883-1936, 카메네프, 레온): 고참 볼셰비키로서 1923년 스탈린이 트로츠키주의에 대한 공세를 펴도록 도와줌; 그러나 지노비에프와 연합하여 1926년 트로츠키와 통합반대파를 구성. 1927년 볼셰비키당에서 출당처분 당함. 트로츠키의 추방 이후 스탈린에게 굴복하여 복권되었으나 다시 1932년 출당처분을 당함. 제 1차 대규모 모스크바 조직재판에 의해 처형당함.

Karolyi, Mihaly(1875-1955, 카롤리, 마하일): 1919년 타도될 때까지 새로 수립된 헝가리인민공화국의 대통령이었음.

Kerensky, Alexander(1882-1970, 케렌스키, 알렉산드르): 러시아 사회혁명당 우파 지도자; 볼셰비키당에 의해 타도된 1917년 임시혁명정부의 수반이었음.

Kirov, Sergei(1886-1934, 키로프, 세르게이): 러시아공산당 정치국원으로 레닌그라드 지역당 의장; 그에 대한 암살로 스탈린에 의한 대대적인 숙청이 시작되었다. 모스크바 조작재판과 러시아 혁명 지도부 전체의 제거로 숙청작업은 절정에 달함.

Klement, Rudolf(1910-1938, 클레멘트, 루돌프): 터어키와 프랑스 망명 당시 트로츠키의 비서; 국제서기국의 행정비서; 소련비밀경찰에 의해 암살당함.

Kornilov, Lavr(1870-1918, 코르닐로프, 라브르): 러시아 2월 혁명 이후 임시정부 수반 케렌스키의 총사령관; 나중에 임시정부에 대한 반혁명 군사쿠데타를 기도했으나 실패로 끝남.

Kun, Bela(1885-1939, 쿤, 벨라): 헝가리의 공산주의자; 헝가리 혁명 당시 실질적인 정부수반이었으나 이 정부는 1919년 반혁명에 의해 타도됨; 스탈린에 의해 체포되어 감옥에서 죽기 전까지 코민테른의 지도자였음.

Labour Party(Great Britain, 영국노동당): 1906년 창당됨; 노동조합에 기초를 두었으며 노동조합 관료집단의 보수적 지도부에 의해 장악됨. 제 2 인터내셔널의 일원이었음.

Lafargue, Paul(1842-1911, 라파르그, 폴): 프랑스 노동운동의 저명한 인사로서 맑스의 사위이자 추종자.

Landau, Kurt(1903-1937, 란다우, 쿠르트): 오스트리아공산당의 일원으로 좌익반대파를 지지; 그러나 1931년 트로츠키와 결별했으며 1933년 프랑스로 피신했음; 1936년 스페인에 도착했으나 소련 비밀경찰에 납치되어 살해당함.

Langeron, Roger(1882-1966, 랑제롱, 로제): 1934년 프랑스 두메르그 정권에 의해 경찰청장으로 임명된 후 인민전선 정부의 각료로 참여했음.  

Largo Caballero, Francisco(1869-1946, 라르고 카발레로, 프란씨스코): 스페인사회당 좌파 지도자; 1936년 9월부터 1937년 5월까지 수상 역임.

Laval, Pierre(1883-1945, 라발, 삐에르): 프랑스의 보수 공화파 지도자; 두메르그와 플랑뎅 내각에서 외무장관으로 불소조약을 협상함. 1935-36년 수상, 제 2차 세계대전 중 비쉬정권의 수반; 나찌 협력자로 처형당함.

League of Nations(국제연맹): 제 1차 세계대전을 종결한 베르사이유 평화회의에서 전승국들에 의해 수립됨. 이후 국제연합에 의해 계승됨.

Lebas, Jean-Baptiste(1878-1944, 르바, 쟝-밥티스트): 1932-40년 프랑스사회당 하원의원; 블룸 정부의 장관 역임.

Left Opposition(좌익반대파): 노동자민주주의와 혁명적 국제주의를 위해 1923년 트로츠키에 의해 소련공산당 내부에 결성된 분파; 국제적 차원에서 국제좌익반대파(1930), 국제공산주의자동맹(1933), 제 4 인터내셔널(1938)에 의해 계승됨.

Lenin, V.I.(1870-1924, 레닌, 블라드미르 일리치): 볼셰비키당과 코민테른의 창시자; 러시아 10월 혁명을 주도함.

Liebknecht, Karl(1871-1919, 리이프크네히트, 카알): 독일사민당 좌파 지도자이자 반군국주의자; 1914년 독일 의회에서 전쟁공채 발행에 제일 먼저 반대표를 던짐; 1916-18년 반전활동으로 투옥됨; 스파르타쿠스단 봉기의 지도자; 사민당 정부 병사들에 의해 살해됨.

London Bureau(런던 사무국): 제 2, 제 3 인터내셔널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으며 제 4 인터내셔널의 창립을 반대했던 중도주의 정당들의 느슨한 연합체; 1932-39년에 존재했으며 독일의 사회주의노동자당, 영국의 독립사회당, 스페인의 맑스주의통일노동자당, 프랑스의 노동자농민사회당 등이 참여했음.

Longuet, Jean(1876-1938, 롱게, 쟝): 맑스의 손자, 프랑스사회당 우익 인사로서 [인민]지의 창시자 및 편집자.

Lovestone, Jay(1898-   , 러브스튼, 제이): 1920년대 미국공산당의 지도자; 자신의 국제적 동맹자 부하린의 몰락 직후 1929년 출당처분 당함; 이후 미국 노총 위원장 조지 미니의 냉전 고문 역임.

Lozovsky, Solomon(1878-1952, 로조프스키, 솔로먼): 소비에트 관료이자 국제적색노동조합(프로핀테른)의 대표로서 스탈린의 노동조합 정책을 입안; 1949년 스탈린 비밀경찰에 체포되어 집단수용소에서 사망함.

Luxemburg, Rosa(1871-1919, 룩셈부르크, 로자): 독일사민당 좌파 지도자이자 뛰어난 맑스주의 이론가; 제 1차 세계대전을 반대하여 투옥됨; 스파르타쿠스단 봉기 직후 사민당 정부의 병사들에 의해서 살해당함.

MacDonald, Ramsay(1866-1937, 맥도널드, 램지): 1924년 첫 영국노동당 정부의 수상; 1929-31년 두번째 수상 임기 동안 노동당 탈당; 1931-35년 토리당과 거국내각 구성.

Malvy, Louis(1875-1949, 말비, 루이): 1916년 내무장관이 된 프랑스 급진당 지도자; 트로츠키를 프랑스에서 추방하는 명령서에 서명했으며 나중에 자신도 5년 동안 추방당함.

Manuilsky, Dmitri(1883-1952, 마누일스키, 드미트리): 1917년 볼셰비키당과 통합한 그룹에 트로츠키와 함께 일했음; 1920년대 스탈린을 지지하여 코민테른의 서기를 역임.

Marin, Louis(1871-1960, 마랭, 루이): 프랑스 군소 우익정당의 당수이자 하원의원.

Marquet, Adrien(1884-1955, 마르께, 아드리엥): 프랑스사회당 내 신사회당 분파의 일원이었으며 1934년 두메르그 정부의 노동장관 역임; 신사회당 분파에서 떨어져 나가 우파에 합류.

Martov, Julius(1873-1923, 마르토프, 율리우스): 러시아 사민주의의 창시자로 1903년까지 레닌과 밀접한 협력관계를 가졌음; 이후 멘셰비키 지도자로 10월 혁명을 반대하고 1920년 독일로 이주함.

Marty, Andre(1886-1956, 마르띠, 앙드레): 1919년 소련 내전에 개입한 프랑스 군함 내에서 반란을 주도; 1952년 출당처분 될 때까지 프랑스공산당 지도자였음.

Marx, Karl(1818-1883, 맑스, 카알): 프레데릭 엥겔스와 함께 과학적 사회주의의 창시자; 제 1 인터내셔널의 지도자.

“Marxist Center”(“맑스주의 중앙”): 1939년 런던 사무국을 계승한 조직으로 단명했음.

Masses(대중): 1933-34년 발간된 빠리의 신문; 1935년과 1939년에 간간히 복간되었으며 삐베르의 혁명 좌파 분파와 연결되었음.

Maurras, Charles(1868-1952, 모라, 샤를르): 반동적 문필가로 레옹 도데와 함께 프랑스 왕당파 신문 [프랑스 행동]을 공동 편집했음.

Maxton, James(1885-1946, 맥스튼, 제임스): 1930년대 영국 독립노동당의 지도자; 1938년 뮌헨협정에 서명한 챔벌린을 지지했음.

Mensheviks(멘셰비키): 1903년 러시아사민주의노동당 대회에서 레닌과 볼셰비키에 반대했던 소수파; 마르토프를 비롯한 저명한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지도되었으며 10월 혁명에 반대함.

Mikado(천황): 일본 황제의 칭호로 1926년 즉위한 히로히토를 의미함.

Millerand, Alexandre(1859-1943, 밀레랑, 알렉쌍드르): 부르조아 정부의 각료가 된 최초의 프랑스사회당 지도자; 1914년 출당처분을 당했음; 제 1차 세계대전 시기에 각료가 되었으며 이후 공공연히 우익 및 민족주의 정책을 실천함.

Molinier, Raymond(1904-   , 몰리니에, 레이몽): 1929년 프랑스 좌익반대파 기관지 [진실]지의 공동창시자; 1935년까지 트로츠키와 함께 투쟁함; 규율위반으로 트로츠키 운동에서 추방당함.

Monmousseau, Gaston(1883-1960, 몽무쏘, 가스똥): 프랑스의 혁명적 조합주의자였다가 스탈린주의 노동조합의 관료가 됨.

Muller, Hermann(1876-1931, 뮐러, 헤르만): 1928-30년 히틀러 집권 전까지 최후의 독일사민당 수상.

Mussolini, Benito(1883-1945, 무쏠리니, 베니또): 1919년 이탈리아 파시즘의 창시자; 1922년 파시스트 정권을 수립.

Neo-Socialists(신사회당 분파): 프랑스사회당의 우파 분파; 1933년 11월 공무원의 봉급 삭감을 급진당과 함께 하원에서 찬성하여 규율위반으로 출당처분 당함.

New International(새로운 인터내셔널): 1934년 7월부터 1940년 4월까지 발간된 미국 트로츠키주의 운동의 이론지.

Nin, Andres(1892-1937, 닌, 안드레스): 스페인공산당 창시자이자 국제적색노동조합의 서기; 좌익반대파를 지지하여 1927년 출당처분을 당함; 맑스주의통일노동자당을 창립하여 잠시 카탈로니아 정부의 법무장관이 되었음. 1935년까지 스페인 트로츠키주의 운동의 지도자; 스탈린주의자들에 의해 체포되어 처형당함.

Papen, Franz von(1879-1969, 파펜, 프란츠 폰): 1932년 힌덴부르크에 의해 독일 수상으로 임명됨; 프로이센의 사민당 정부를 해산시켜 히틀러의 집권을 도움; 1932년 11월 수상직에 쫓겨났으나 1933년 히틀러에 의해 부수상으로 임명됨.

Paris Commune(빠리 꼬뮌): 1871년 3월 18일부터 28일까지 존재한 역사상 최초의 노동자 정부; 일련의 유혈 전투 끝에 타도됨.

Paul-Boncour, Joseph(1873-1972, 뽈-봉꾸르, 조세프): 1932-33년 프랑스사회당 출신 수상; 싸로와 블룸 정부 하에서 각료 역임; 국제연맹 프랑스 대표단의 일원.

Petain, Henri Philippe(1856-1951, 뻬뗑, 앙리 필립): 프랑스 장교이자 1940-44년 비쉬 정권의 수상; 나찌 협력자로 유죄 판결을 받음.

Le Peuple(인민): 프랑스 노동총연맹의 신문.

Pivert, Marceau(1895-1958, 삐베르, 마르쏘): 프랑스사회당 좌파 지도자; 1935년 [혁명 좌파] 분파 지도자; 1936년 블룸의 보좌관을 역임했으나 1937년 자신의 분파에 대한 해체명령에 불복하여 탈당; 1938년 노동자농민사회당을 창당했으나 제 2차 세계대전 후 다시 사회당에 입당.

POI(Internationalist Workers Party, 국제주의노동자당): 1936년 두 그룹의 통합으로 성립된 트로츠키주의 운동의 프랑스 지부.

Le Populaire(인민주의자): 프랑스사회당의 신문.

POUM(Workers Party of Marxist Unification, 맑스주의통일노동자당): 안드레스 닌이 거느린 스페인좌익반대파 전 회원들과 마우린이 주도한 노동자농민동맹의 통합으로 1935년 창당됨; 스탈린주의자들에 의해 “트로츠키주의” 조직으로 인정되어 탄압을 당함.

Proudhon, Pierre Joseph(1809-1865, 프루동, 삐에르 조세프): 최초의 무정부주의 이론가로 맑스와 엥겔스의 이론에 반대함; 프랑스 조합주의운동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함.

Provisional Government(임시정부): 1917년 러시아 2월 혁명으로 수립된 정부; 10월 혁명으로 타도됨.

PSOP(Workers and Peasants Socialist Party, 노동자농민사회당): 삐베르가 사회당을 탈당한 1938년 6월 창당됨; 1939년 프랑스 트로츠키주의자들 일부가 이 정당에 가입함; 1939년 5월 마지막 당대회를 끝으로 자체 해산함.

Putschism(폭동주의): 대중의 참여 없이도 소수의 대담한 집단이 국가정권을 잡을 수 있다는 모험주의적 엘리트주의적 사고.

Racamond, Julien(1885-1966, 라까몽, 쥘리엥): 스탈린주의 노동조합 관료; 1923-36년 프랑스 단일노동총연맹의 전국서기들 중의 하나; 후자와 노동총연맹의 통합이 있은 1936년 이후 새 노동총연맹의 부서기.

Radicals(or Radical Socialists, 급진당 또는 급진사회당): 제 1차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의 주요한 부르조아 정당.

Rebull, Jose(1906-   , 레불, 호세): 스페인 내전 중 맑스주의통일노동자당의 좌파 지도자.

Renaudel, Pierre(1871-1935, 르노델, 삐에르): 프랑스사회당 우파 및 1933년 출당처분당한 신사회당 분파의 지도자.

Rosmer, Alfred(1877-1964, 로스메, 알프레드): 정치적 조직적 견해차이로 1930년 사임하기 전까지 프랑스 좌익반대파의 일원이었음; 1936년 트로츠키와 개인적으로 친분을 재개함.

Rote Front(적색전선): 독일공산당 주도의 민병대; 1929년 불법화됨.

Rous, Jean(1908-   , 루, 쟝): 1930년대 프랑스 트로츠키주의 운동의 지도자였으며 1938년 노동자농민사회당으로의 입당전술을 지지했음.

Russian Revolution(러시아 혁명): 1905년 혁명: 노일전쟁의 패배로 인한 대중의 분노로 촉발됨. 짜르의 동궁으로 평화행진을 한 노동자시위대에 경찰이 발포한 1월 5일에 시작되어 붉은 10월 그리고 모스크바 12월 봉기의 진압으로 끝남. 이 혁명의 실패 이후 무자비한 탄압으로 점철된 격심한 반동기가 닥침. 1917년 2월 혁명: 짜르체제를 타도하고 부르조아 임시정부를 수립함; 노동자투쟁의 요구와 짜르의 전쟁 정책에 대한 불만으로 터짐.  1917년 10월 혁명: 볼셰비키당이 지도한 혁명적 봉기로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이 지지한 임시정부를 타도함; 노동자 소비에트에 기초한 노동자 정부를 수립함.

Rykov, Alexei(1881-1938, 라이코프, 알렉세이): 고참 볼셰비키로 레닌에 이어 인민위원회 의장을 역임; 1930년 직책에서 밀려나기까지 볼셰비키당 내에 부하린과 함께 우익반대파를 주도; 제 3차 모스크바 조작 재판때 처형됨.

Saar plebiscite(자아르 지방 주민투표): 제 1차 세계대전 종전 후 프랑스에 의해 점령당한 독일의 석탄산지에서 1935년 1월에 실시된 투표; 독일로의 재편입을 압도적으로 지지함.

Sacred Union(신성동맹): 전시의 계급협조 정책에 대한 프랑스식 표현.

Salengro, Roger(1890-1936, 쌀랑그로, 로제): 프랑스사회당 지도자로 블룸 정부의 내무장관 역임; 노동자들의 공장점거에 반대했으며 국제주의노동자당을 탄압했음.

SAP(German Socialist Workers Party, 독일사회주의노동자당): 1931년 독일사민당의 조직분열로 창당됨. 1933년 국제좌익반대파에 합류하여 새로운 인터내셔널 창립을 지지함. 그러나 급격히 우경화하여 독일의 인민전선을 지지함.

Sarraut, Albert(1872-1962, 싸로, 알베르): 프랑스의 상원의원이자 여러차례 식민지 장관을 역임; 1936년부터 1943년까지 여러 내각의 수상 역임.

Scheidemann, Philipp(1865-1937, 샤이데만, 필립): 독일의 전쟁 노력을 지지했으며 제 1차 세계대전 종전 후 독일 혁명운동을 압살한 독일사민당 우파 지도자.

Schleicher, Kurt von(1882-1934, 슐라이허, 쿠르트 폰): 1932년 힌덴부르크에 의해 독일 수상으로 임명됨; 1934년 나찌당의 대대적인 숙청 때 살해됨.

Schutzbund(공화국 방위대): 반동과 파시즘에 대항하기 위해 1923년 오스트리아사민당에 의해 조직됨; 1934년 2월 돌푸스 정권에 패배했으나 1936년까지 지하활동을 계속함.

Second International(제 2 인터내셔널): 1889년에 수립된 사민당과 노동당들의 느슨한 국제조직; 내부에 혁명적 경향과 개량주의 경향을 모두 포괄하고 있었음; 1914년 주요 지부들이 자국 부르조아 계급의 제 1차 세계대전 노력을 지지하면서 붕괴했음; 1919년 완전히 개량주의 조직으로 재건됨.    

Serge, Victor(1890-1947, 세르쥬, 빅또르): 여러 중요한 역사물과 소설의 저자; 코민테른에서 활동하다가 러시아의 좌익반대파를 지지; 스탈린에 의해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으나 1936년 프랑스 지식인들의 석방 노력으로 풀려났음; 프랑스로 이주한 후 그곳에서 제 4 인터내셔널의 노선에 반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