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 시대의 노동조합

<차례>

서문: 노동조합의 과거, 현재, 미래

 

제1부 노동조합의 전략과 전술

편집자 서문

제국주의 시대의 노동조합

노동조합 단결의 문제

영국의 노동조합

네덜란드 노동조합 운동에 대한 편지

노동조합과 공장위원회

산업노동조합회의 소속관료와의 대화

 

제2부 공산주의와 조합주의

편집자 서문

공산당문제에 대해 프랑스 조합주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조합주의 동지들과의 필요한 논의

또다시 무정부주의적 조합주의가 머리를 쳐들고 있다

공산주의와 조합주의

조합주의 원칙의 오류들

모나트가 루비콘강을 건너다

노동조합 문제에 대한 공산주의 동맹 우파의 오류

 

 

 

<서문> 노동조합의 과거, 현재, 미래

 

카알 맑스

<1866년 9월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국제노동자협회(제 1 인터내셔널) 창립 대회가 개최되었다. 그리고 대회에 참석한 각국 대의원들에게 행동지침서가 배포되었다. 행동지침서의 일부인 이 글은 맑스에 의해 영어로 초안이 작성된 후 대회에서 통과되어 정식 결의문이 되었다.>

 

(a) 과거

자본은 집중된 사회적 힘이다. 반면 노동자는 처분할 것이 노동력 밖에 없다. 따라서 자본과 노동 사이의 계약은 결코 평등한 조건 속에서 체결될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는 생활과 노동의 물질적 수단(생산수단)의 소유권 그리고 사회 유지에 아주 필수적인 생산력(노동력)이 서로 확연히 구분된다. 이것을 인정하더라도 계약 조건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노동자의 유일한 사회적 힘은 쪽수에 있다. 그러나 이 쪽수의 힘도 노동자들의 분열에 의해 그 힘을 잃는다. 노동자들은 불가피하게 서로 경쟁한다. 바로 이 때문에 노동자의 분열이 발생하고 유지된다.

노동자들은 최소한 노예보다는 나은 수준으로 자신들의 처지를 상승시키기 위해 투쟁해왔다. 그리고 이것을 가능케 하는 계약 조건을 따내기 위해 서로간의 경쟁을 제거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저지하려고 자연발생적으로 투쟁해왔다. 노동조합은 원래 이러한 투쟁을 통해 탄생했다. 따라서 노동조합의 일차적 목적은 생활필수품을 확보하고 끊임없는 자본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 즉 임금과 노동시간의 문제로 제한되었다. 노동조합의 이러한 투쟁은 정당할 뿐 아니라 필요하다. 자본주의 생산체제가 지속하는 한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 투쟁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모든 나라 모든 지역에서 노동조합이 건설되고 통합되는 과정을 통해 노동조합 투쟁은 일반화되어야 한다. 한편 중세의 자치도시와 자치구가 중간계급의 조직 중심이 되었던 것과 똑같이 노동조합은 자기도 모르게 노동계급의 조직 중심을 형성하고 있었다. 자본과 노동 사이의 게릴라식 투쟁(일상적 투쟁)을 위해 노동조합은 필요하다. 그러나 임금노동의 존속과 자본의 지배 자체를 대체하기 위한 조직된 기구로서 노동조합은 더 중요하다.

 

(b) 현재

노동조합은 자본에 대항하여 지역 차원에서만 그리고 당면한 요구들을 걸고 투쟁하는데에만 골몰해왔다. 이 결과 노동조합은 임금노예제 자체에 대항할 수 있는 자신의 힘을 아직까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일반적 차원의 사회운동과 정치운동에 너무 거리를 두었다. 그러나 최근 노동조합은 자신의 위대한 역사적 임무를 어느 정도 자각한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는 노동조합이 최근 정치운동에 참여했으며 미국에서는 노동조합이 자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넓은 시야를 확보했다. 영국 쉐필드에서는 최근 대규모 노동조합 대회가 열려 다음과 같은 결의문을 통과시켰다: "이 대회는 모든 나라의 노동자들을 하나의 계급적 형제애로 공고히 단결시키려는 국제노동자협회의 노력을 전적으로 승인한다. 그리고 이 대회에 대표를 보낸 다양한 노동조합들이 협회에 가입할 것을 충심으로 권고한다. 왜냐하면 협회는 전체 노동계급의 발전과 번영에 필수적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편집자 주: 1866년 7월 17일에서 21일까지 열린 쉐필드 대회에는 영국의 20만 조직 노동자를 대표하는 138명의 대의원들이 참여했다. 1865년부터 1867년까지 영국의 노동조합들은 투표권 확대를 위한 광범위한 운동을 주도하였다. 1861년 초 미국 남부의 노예주들은 미국 연방에서 탈퇴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자 북부 자유주 그리고 자유주와 노예주에 경계를 면하고 있는 모든 주에서 노동조합들은 집회와 시위를 개최하여 연방정부를 지지하고 이 정부에 대한 방어를 촉구하였다. 1861년부터 1865년까지의 남북전쟁 시기에 새로운 노동조합들이 건설되고 8시간 노동제를 쟁취하기 위한 노동조합들의 투쟁이 증대했다.)  

 

(c) 미래

원래의 조직 취지와는 별개로 이제 노동조합들은 노동계급의 완전한 해방이라는 큰 이익을 위해 노동계급의 조직 중심이 되어 의식적으로 투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완전한 해방이라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모든 사회운동과 정치운동을 노동조합들은 지원해야한다. 노동계급 전체의 옹호자로서 그리고 대표로서 자각하고 행동하면서 노동조합들은 미조직 노동자들을 조직하여 이들을 노동조합 대오에 반드시 참여시켜야 한다. 예외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의해 무력화된 농업노동자들과 같이 가장 임금 수준이 열악한 직종의 노동자들의 이익을 노동조합은 면밀히 돌보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협소하고 이기적인 이익은커녕 억압받는 수백만 인민의 해방을 위해 투쟁하고 있음을 노동조합들은 인민 모두에게 확신시켜야 한다.

 

< 제 1부: 노동조합의 전략과 전술>

 

편집자 서문

맑스주의자인 트로츠키는 노동계급을 혁명의 주체로 내세우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 당연히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각국 노동조합의 변화된 모습 그리고 이것이 혁명가들에게 제기하는 전략과 전술의 문제들을 깊이 연구하였다. 사실 1940년 암살될 당시까지 그는 "제국주의 시대의 노동조합"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런 문제들을 탐구하고 있었다.

이 글은 노동조합에서 활동하든 그렇지 않든 모든 맑스주의자들이 반드시 읽어야한다. 그리고 이 글은 트로츠키가 저술한 저술 가운데 가장 뛰어나며 예언적인 글에 속한다. 이 글은 넓은 시야를 가지고 제 2차 제국주의 세계대전 시작 당시 전세계 노동계급이 처한 일반적 상황들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시대 노동조합운동의 핵심 문제 즉 "부르주아 국가에 대한 노동조합의 완전하고도 무조건적인 독자성"의 필요성을 관통하고 있다. 트로츠키가 더 오래 살아 이 글을 완성할 수 있었으면 하는 커다란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같은 주제를 다룬 어떤 글보다도 이 짤막한 미완성 글은 노동조합 문제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그리고 행동할 수 있는 여운을 많이 남기고 있다.

두 번째 글은 1931년 프랑스의 좌익반대파에게 제기된 "노동조합 단결의 문제"에 대한 것이다. 당시 프랑스의 노동조합운동은 서로 경쟁하는 두 전국조직으로 분열되어 있었다. 지금도 계속 등장하고 있는 이 문제에 대한 트로츠키의 답변은 이 글을 쓰도록 만든 특정 상황을 초월하여 지금까지도 이 문제에 대한 지침을 제공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노동조합 단결을 신주 모시듯 절대시하지는 않는다. 노동조합 단결을 성취할 만병통치약을 찾는 것은 우리의 과제가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이 점을 강조했다: "많은 노동자들을 포괄하는 진짜 대중조직에서 반동적 지도부에 대항하는 투쟁을 전개하기 보다 규모도 협소하며 고립된 노동조합에서 다수파가 되기를 원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종파주의자나 관료주의자들의 특징적인 경향이다. 이것은 혁명가들의 노동조합 정책이 결코 될 수 없다." 그는 언제나 그리고 모든 조건 속에서 노동조합의 단결을 주창하지 않았다. 다만 노동계급 전체에게 그리고 특히 혁명가들에게 노동조합의 단결은 대부분의 조건에서는 유리한 상황을 조성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을 뿐이다.

3번째 글 "영국의 노동조합"은 1933년에 쓰여졌다. 이때는 독일에서 히틀러가 집권하고 노동운동이 철저히 학살당하면서 코민테른(제 3 인터내셔널)의 정치적 파산이 이미 드러난 후였다. 이제 좌익반대파는 코민테른의 개혁이 아니라 새로운 인터내셔널의 건설을 도모하기로 결정했다. 이 새로운 노선에 입각하여 좌익반대파는 1933년 8월 27일, 28일 프랑스 빠리에서 열린 국제회의에 참여했다. 사회민주주의 좌파 및 독자적 공산주의 조직들이 참여한 이 회의에서 좌익반대파는 새로운 인터내셔널의 건설을 주창하는 결의안을 제출했다. 이 회의에 참석한 중도주의 조직들 가운데 영국 독립노동당은 이 문제에 대해 어정쩡한 입장을 취했다. 왜냐하면 이 조직은 코민테른을 개혁할 수 있다는 환상을 여전히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환상은 부분적으로는 스탈린주의의 역사를 잘 알지 못한 결과였다.

빠리 회의 직후에 쓴 이 글에서 트로츠키는 영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스탈린주의자들의 재앙적인 노동조합 정책을 설명하고 노동조합 관료들에 대항하는 진정한 혁명가들의 역할 등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영국 독립노동당 회원들을 교육시키고자 했다. 그리고 그는 "노동조합 단계를 건너뛰어 노동운동이 전진할 수는 없을까?" 라는 지금도 유효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트로츠키는 네덜란드의 혁명적사회주의노동자당(RSAP)을 비판하는 편지들을 1936년에서 1938년까지 쓴 바 있다. 이 편지들을 발췌한 내용이 네 번째 글을 구성하고 있다. 혁명적사회주의노동자당은 1933년 빠리 회의에서 새로운 인터내셔널 건설 운동을 지지했으나 이후 심각한 견해 차이를 드러내면서 1938년 제 4 인터내셔널 창립대회 전에 이 운동에서 철수했다.

견해 차이는 스페인 내전, 제 4 인터내셔널의 성격과 조직 운영 등 다양한 지점에서 드러났다. 그러나 이 조직의 노동조합 정책도 문제가 되었다. 이 조직은 소규모의 독자적 노동조합 조직인 전국노동서기국(NAS)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직력을 가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조직의 지도자 헹크 스니블릿은 이 노동조합 조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노동조합 조직은 네덜란드 노동운동의 주류에서 고립되어 독자적인 존재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다섯 번째 글은 제 4 인터내셔널 창립대회에서 채택된 주요 문서인 [자본주의의 최후의 고통과 제 4 인터내셔널의 임무(이행기 강령)]에서 일부 내용을 따온 것이다. 이 글은 기존의 노동조합에서 혁명가들이 투쟁해야할 필요성을 반복하면서 "소규모 '혁명적 노동조합'을 건설하거나 유지하려는 종파주의자들의 시도"를 "노동계급의 지도력을 획득하려는 투쟁의 포기" 라고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이 글은 "조합주의자들의 특징인 노동조합 물신화" 역시 거부하고 있다. 노동조합의 보수적 관료들을 몰아내고 대중의 반(反)자본주의 투쟁에 필요한 적절한 독자적 전투조직을 건설하는 과업 등이 이 글의 주요 내용이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노동조합의 보수적 기구들과의 당면한 단절에 직면하여 물러서거나 떨지 말아야 한다. 종파주의 허깨비를 길러내기 위해 대중 조직을 외면하는 것은 범죄행위이다. 그러나 혁명적 대중운동을 공공연히 반동적이거나 가면을 쓴 보수적('진보적') 관료 파벌들에게 굴복시키는 것도 이와 못지 않은 범죄행위이다. 노동조합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노동계급 혁명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제 1부의 마지막 글은 제 4 인터내셔널이 창립된 직후인 1938년 9월 트로츠키가 미국 산업노동조합회의(CIO)의 관료와 멕시코에서 나눈 대담 내용이다.

 

1969년

 

제국주의 시대의 노동조합(1940년 8월)

 

<이 미완성 글은 1940년 8월 트로츠키의 암살 직후 그의 책상에서 발견되었으며 1941년 2월 [제 4 인터내셔널]지에 처음 실렸다.>        

현대 전세계 노동조합의 발전 아니 좀더 정확히 표현하면 퇴보에 있어서 하나의 공통된 특징적 현상을 주목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노동조합이 국가권력과 유착하거나 함께 성장하는 현상이다. 이 현상은 사회민주주의당, 공산당, "무정부주의" 등 정치세력에 속해 있든 아니든 모든 노동조합에 똑같이 해당된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노동조합이 국가권력에 통합되어 "함께 성장"하는 경향은 노동조합이 표방하는 이러저러한 사상과 무관하며 모든 노동조합에게 공통되는 사회적 조건에 유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독점 자본주의는 경쟁과 개인의 창의성이 아니라 중앙집중적 명령에 기초한다. 막강한 트러스트, 신디케이트, 은행 컨소시엄 등을 관장하는 자본가 지배 분파는 국가권력과 똑같이 아득하게 높은 곳에서 경제생활을 바라보고 명령한다. 그리고 이들은 어떤 조치를 취할 때에도 국가권력의 협조가 필요하다. 이와 같은 논리선상에서 핵심 중추 산업의 노동조합들은 기업간의 경쟁으로부터 자신들이 어부지리를 획득할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이들은 국가권력과 유착된 중앙집중적 자본가를 투쟁 상대로 대면해야한다. 사적 소유를 인정하고 이에 적응해야 한다는 개량주의 노선을 신봉할 경우 노동조합은 부르주아 국가에 적응하고 이의 협력을 구해야 한다.

노동조합 관료들의 눈에 노동조합의 주요한 임무는 다음과 같다: 국가를 자본과의 포옹관계에서 "떼어내고" 독점 트러스트들에 대한 국가의 종속성을 약화시키고 국가를 자기의 편으로 끌어들인다. 이 노선은 제국주의 초과이윤에서 나오는 떡고물을 챙기려는 노동귀족과 노동관료들의 사회적 위치와 완전히 일치한다. 평화시에 그리고 특히 전시에 자기들이 얼마나 믿을만하고 필수 불가결한 국가의 든든한 동료인지를 노동관료들은 "민주" 국가에게 증명하려고 한다. 이들은 말과 행위를 통해 이 점을 증명하려고 최선을 다한다. 노동조합을 국가기구의 일부로 편입시키는 파시즘 정권은 새로운 것을 결코 발명하지 않았다. 생산력이 쇠퇴하는 제국주의 시대에 파시즘 정권은 이 시대에 내재한 경향들이 스스로 최종 결론에 도달하도록 내버려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식민지 반식민지 국가들은 민족자본이 아니라 제국주의 자본에 좌지우지된다. 그러나 이 현상은 식민지 반식민지의 거대 자본가들과 이들에게 종속되는 식민지 반식민지 정부 사이의 직접적, 일상적, 실제적 유대관계를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강화시킨다. 제국주의 자본이 식민지 반식민지에 노동귀족과 노동관료 특권층을 육성하는 한 이들 특권층은 자신의 보호자, 후원자 그리고 때때로 중재자로서 식민지 반식민지 정부의 지지가 필요하다. 노동귀족과 노동관료 특권층은 식민지 그리고 후진국에 흔히 등장하는 보나파르트 또는 반(半)보나파르트 정권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 기반이 된다. (편집자 주: 보나파르트 정권(Bonapartism)은 형태상 독재체제로 보통 "실력자"로 등장하는 개인이 권력의 정점을 형성한다. 원래 사회위기의 시기 또는 양대 적대계급 어느 편도 우위를 점하지 못하는 교착상황에 등장하는 이 정권은 사회계급들 위에 군림하면서 이들로부터 어느 정도 독자성을 획득한다. 1852년에서 1870년까지 프랑스를 지배했던 루이-나뽈레옹 보나파르트 정권이 이 용어의 기원이다.) 또한 이 특권층은 국가에 종속되는 개량주의 노동조합의 기반을 형성한다. 즉 개량주의 노동조합의 지도부인 노동귀족과 노동관료 특권층은 노동자들을 부르주아 국가의 이익을 위해 통제한다. 그리고 이 조건으로 국가는 이 특권층의 사회적 지위를 보호한다.

멕시코에서 노동조합은 법에 의해 반(半)국가기관으로 변모했다. 그리고 매사에 그렇듯이 국가기관이 된 만큼 반(半)독재적이다. 노동법을 기초한 관리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노동조합을 국가기관으로 편입시킨 것은 노동자들의 이익을 위해서이다; 노동조합이 국가기관이 되면 정부와 경제 전반에 노동조합의 영향력이 보장될 것이다. 그러나 제국주의 자본은 이 나라의 국가기구를 지배하고 이 나라 반동세력의 지원을 받아 불안한 민주주의를 노골적인 파시스트 독재체제로 대체할 수 있다. 이런 조건 속에서 노동조합관련 법은 제국주의 독재자들의 무기로 쉽게 이용될 수 있다.

지금까지 말한 것으로 미루어 이렇게 쉽게 결론지을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제국주의 시대에 노동조합은 유용성을 상실했다. 이 시대에 노동조합은 노동자 민주주의를 실현할 여지를 거의 박탈당한 것처럼 보인다. 자유 경쟁과 자유 무역이 지배했던 좋았던 옛날에 노동자 민주주의는 노동자 조직의 내용이 되었었다. 그러나 제국주의 시대인 지금 노동자 민주주의가 없으면 조합원에게 영향을 미치려는 자유로운 투쟁이 노동조합 내부에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혁명가들이 활동할 주요한 영역이 사라지고 없는 셈이다.

그러나 이 입장은 전적으로 잘못되었다. 우리는 입맛에 맞는 활동 영역과 조건을 선택할 수 없다. 민주주의 국가보다는 전체주의 또는 반(半)전체주의 국가에서 노동대중을 혁명강령으로 획득하기 위한 투쟁이 한없이 더 어렵다. 같은 논리가 노동조합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노동조합의 운명은 부르주아 국가의 운명의 변화를 반영한다. 독일의 전체주의 정권이 노동조합 활동을 대단히 어렵게 만든다고 해서 노동자 대중에 대한 혁명활동을 포기할 수는 없다. 똑같은 논리로 파시스트 국가가 수립한 강제적 노동조직 내부의 투쟁을 포기할 수도 없다. 전체주의적 또는 반(半)전체주의적 노동조합들은 직접 간접으로 노동자국가에 종속되었거나 관료집단이 노동조합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가능성을 혁명가들에게서 박탈하고 있다. 그러나 이 단순한 이유로 노동조합 내부의 체계적인 혁명활동을 포기할 수는 없다.

노동계급의 오류 그리고 노동계급 지도자들의 범죄행위 등으로 조성된 모든 구체적인 조건 속에서 투쟁해야한다. 파시스트 또는 반(半)파시스트 국가에서 혁명활동은 지하활동, 불법활동, 음모적 활동이 될 수밖에 없다. 전체주의적 또는 반전체주의적 노동조합에서 음모적 작업방식에 의존하지 않는다면 활동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거의 불가능하다. 모든 나라 노동조합의 구체적 조건에 우리를 적응시켜야한다. 자본가 계급 뿐 아니라 노동조합의 전체주의적 운영 그리고 이 운영을 강제하는 지도자들에 대항해서 대중을 혁명투쟁으로 일으켜 세우려면 다른 방법이 없다. 이 투쟁의 가장 주요한 구호는 이것이다: 자본주의 국가에 대한 노동조합의 완전한 그리고 무조건적인 독자성을 지키자! 이것은 노동조합을 노동귀족의 기구가 아니라 착취당하는 다수 대중의 기구로 변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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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구호는 노동조합의 민주화이다. 이 구호는 첫 번째 구호에서 곧바로 도출된다. 그리고 노동조합이 제국주의 국가이든 식민지 국가이든 국가의 간섭에서 벗어나 완전히 자유를 실현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이 시대의 노동조합은 자유경쟁이 지배하던 시대처럼 단순히 민주주의의 기관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하면서 노동계급의 일상적 필요에 부응하는 것으로 자신을 제한할 수 없다. 노동조합은 더 이상 무정부주의를 주창할 수가 없다. 즉 인민과 계급들의 삶에 미치는 국가의 결정적인 영향력을 무시할 수가 없다. 또한 노동조합은 개량주의 노선을 걸을 수도 없다. 제국주의 시대의 객관적 조건들이 진지한 그리고 지속적인 개량을 허용할 여지를 남겨두지 않기 때문이다. 제국주의 자본의 부차적인 도구가 되어 노동자를 자본의 규율에 종속시키고 혁명을 가로막거나 노동계급 혁명운동의 도구가 되거나 둘 중의 하나를 노동조합은 선택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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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의 정치적 중립성은 자유 부르주아 민주주의 시대와 함께 완전히 그리고 복구할 수 없이 과거의 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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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말한 것으로 다음과 같은 명백한 결론이 도출된다: 노동조합의 계속적인 퇴보와 제국주의 국가와의 유착, 성장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 내부의 혁명활동은 중요성을 잃어버리기는커녕 모든 혁명정당에게 과거와 똑같은 중요성을 갖거나 또는 어떤 의미에서는 더한 중요성을 갖는다. 노동계급에게 영향을 미치기 위해 투쟁하는 것, 바로 여기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 노동조합 활동의 어려움 때문에 그것을 포기하는 입장 즉 핵심적으로 노동계급에게 등을 돌리는 입장을 가진 모든 조직, 모든 정당, 모든 분파는 소멸의 운명에 처한다. 그리고 이들은 망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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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자본가가 아니라 제국주의 자본가가 후진국의 운명을 좌우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민족 자본가 계급은 산업의 발전에 비해서도 훨씬 더 부차적인 사회적 위치를 차지한다. 외국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을 딴 나라에서 수입하지 않고 토착민들을 노동자로 변모시킬 경우 이 나라의 노동계급은 국가의 운명을 가장 결정적으로 좌우하기 시작한다. 이 조건 속에서 이 나라 정부는 외국자본의 횡포에 저항할 경우 노동계급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반면에 외국자본의 이익에 맞추어 행동하는 것이 불가피하고 자기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후진국 정부는 노동운동 조직들을 파괴하고 대동소이하게 전체주의적 노동 통제 정책을 수립한다.

따라서 민족 자본가 계급의 미약한 힘, 자치(self-government) 전통의 결여, 외국자본의 압력, 상대적으로 급격한 노동계급의 성장 등은 안정적 민주주의 체제의 기반을 침식한다. 후진국 즉 식민지 반식민지 나라의 정부들은 대체로 보나파르트 또는 반(半)보나파르트적 성격을 띤다. 이들 중 일부는 민주주의를 실시하여 노동자와 농민의 지지를 구한다. 그리고 일부는 군사-경찰 독재체제와 유사한 정부를 수립한다.

이것은 노동조합의 운명도 결정한다. 노동조합은 국가의 특별한 후원을 받거나 잔인한 탄압을 받는다. 노동조합을 후원할 때 국가는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다. 노동계급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겨 제국주의의 횡포에 저항할 지지기반을 얻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다. 노동자들을 노동관료집단의 통제에 놓아 노동자들을 체제 전복의 길로 나아가지 못하게 막는 것이 두 번째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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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자본주의는 시간이 갈수록 노동조합의 독자성을 허용할 생각이 적어진다. 그래서 독점자본은 자신으로부터 떡고물을 받아먹는 개량주의 관료와 노동귀족에게 이렇게 요구한다: 노동자들이 보는 앞에서 나를 위한 정치경찰이 되어라. 이 요구가 거부될 경우 독점자본은 노동관료집단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파시스트들로 채운다. 그런데 장기적으로 보면 제국주의 하수인이 되려는 노력을 아무리 해도 노동귀족은 결국 제국주의의 눈밖에 날 수밖에 없다.

국내의 계급모순과 국제적 적대관계의 격화는 일정 시점까지 제국주의가 개량주의 노동관료층을 인정하는 상황을 조성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조건이 있다. 노동관료층이 국내 상황과 국제 상황에서 제국주의자들의 적극적인 하위 파트너가 되어 이들의 계획과 정치 프로그램을 수행해야 한다. 자신의 목숨을 연장시키기 위해서는 자칭 사회주의자인 개량주의자들은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제국주의자로 변모해야한다. 그러나 이들의 목숨은 연장될 수 있을 뿐 계속 부지될 수는 없다. 제국주의를 추종하는 길을 걸을 경우 일반적으로 노동관료층에게는 비상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제국주의 시대에는 독자적인 노동조합이 일반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가? 문제를 이렇게 제기하는 것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 개량주의 노동조합의 경우 독자성이나 반(半)독자성은 불가능하다. 제국주의 정책의 파트너가 아닐 뿐 아니라 자본주의 지배의 전복을 당면한 목적으로 하고 있는 혁명적 노동조합은 당연히 존재할 수 있다. 쇠퇴하는 자본주의인 제국주의 시대에 노동조합은 노동계급 혁명의 기관임을 스스로 자각할 때에만 진정한 독자성을 유지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제 4 인터내셔널 세계대회에서 채택된 이행기 강령은 당 활동의 강령일 뿐 아니라 그 핵심에 있어서 노동조합 활동의 강령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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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합발전은 후진국의 특성이다. 다른 말로 하면 제국주의 기술, 경제, 정치의 최신 발명품들은 후진국 고유의 후진성, 원시성과 결합된다. 이 법칙은 식민지 반식민지 나라들의 다양한 영역에서 관찰될 수 있다. 이 법칙은 이들 나라의 노동운동에도 작동한다. 제국주의 자본은 이 영역에서 가장 냉소적이고 노골적인 형태로 작동한다. 인간의 발길이 닫지 않은 처녀지에 제국주의는 자신의 압제를 가장 완성된 방식으로 도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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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기 전세계 노동조합들은 우경화와 내부 민주주의 억압의 길로 나아갔다. 영국에서 평조합원 운동은 소련 관료집단의 배신으로 압살되었다. 현재 노동조합운동 지도자들은 특히 대외정책에서 보수당의 유순한 하수인이 되었다. 프랑스에서는 스탈린주의 노동조합들이 독자적으로 존재할 여지가 없었다. 이들은 주오가 주도하는 소위 무정부주의적-조합주의 노동조합들과 통합했다. 이 결과 노동조합은 일반적으로 좌경화가 아니라 우경화되었다. 노동총연맹(CGT) 지도부는 프랑스 제국주의의 가장 직접적이고 공공연한 하수인이다.

미국의 노동조합운동은 최근 몇 년간 대단히 격렬한 변화의 시기를 경과했다. 산업노동조합회의(CIO)의 등장은 노동대중의 혁명적 경향을 논란의 여지없는 증거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주목할만한 현상이 벌어졌다: 새로운 "좌익" 노동조합은 건설되자마자 제국주의 국가의 족쇄를 받았다. 기존의 노동조합 전국조직과 새로 건설될 전국조직의 우두머리들은 루즈벨트 행정부의 동정과 지원을 얻겠다고 서로 싸우고 있다.

다른 의미에서 미국과 비교해 그 의미심장함이 결코 떨어지지 않는 경우는 스페인 노동조합운동의 발전 또는 퇴보이다. 사회당 산하 노동조합에서 어느 정도나마 노동조합운동의 독자성을 대표하던 세력은 모두 축출되었다. 무정부주의적 조합주의 노동조합들은 부르주아 공화파의 도구가 되었다. 이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보수적인 부르주아 장관들이 되었다. 내전의 상황에서 이런 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은 이 현상의 의의를 조금도 손상시키지 않는다. 전쟁은 똑같은 정책의 연장이다. 전쟁은 정치과정들을 가속화시키고 이것들의 기본 특징들을 드러내며 썩어빠진, 잘못된, 애매한 모든 것들을 파괴시키고 핵심적인 특징들만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노동조합의 우경화는 계급 모순 및 국제 모순들의 격화에 기인한다. 지금이 정부에 반대할 때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노동조합운동 지도자들은 감지하거나 이해했거나 이해되도록 강제되었다. 전시에 노동운동 지도자들이 정부를 반대할 경우 이것은 곧 격렬한 대중운동을 촉발시켜 제국주의 모국의 지배계급에게 난관을 조성할 위험이 있다. 노동조합이 우경화하고 노동조합 내부 민주주의가 억압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전체주의적인 통제체제가 노동조합운동에 가해지는 현상은 전세계 노동운동의 일반현상이다.

네덜란드의 노동운동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개량주의자들과 노동조합운동이 제국주의의 믿을만한 버팀목이 되었을 뿐 아니라 소위 무정부주의적 조합주의 노동조합들이 실제로 제국주의 정부의 통제하에 놓였다. 이 조직의 비서는 스니블릿이다. 제 4 인터내셔널에 대한 추상적인 공감에도 불구하고 그는 네덜란드 의회의 의원이 되어 정부의 분노가 자기 노동조합 조직에 떨어지지 않게 만들려고 혈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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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좌익 관료를 휘하에 두고 있는 노동부가 노동운동을 종속시키는 일을 자신의 임무로 삼고 있다. 그리고 이 임무는 지금까지 어느 정도 성취되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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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의 철도 및 유전 국유화는 당연히 사회주의와 아무런 공통점도 없다. 이것은 후진국 정부가 제국주의와 노동계급의 공세를 막아내려는 국가자본주의적 조치이다. (편집자 주: 1937년과 1938년 멕시코 정부는 철도와 석유산업을 국유화했다. 철도의 운영은 철도노동조합에 의해 임명된 위원회에 일임했다. 석유산업은 석유노동조합의 대표가 포함된 정부 위원회의 소관이 되었다. 이 반(反)제국주의 조치에 대한 트로츠키의 옹호 입장은 "멕시코와 영국 제국주의" 라는 글을 참고하라.) 노동조합이 참여하여 철도, 유전 등을 관리하는 것은 노동자들에 의한 산업의 통제와는 무관하다. 왜냐하면 노동관료층이 관리를 맡고 있는데 이들은 노동 대중으로부터 독립되어 있으면서 부르주아 국가에 완전히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멕시코 지배계급의 국유화 조치는 노동자들을 통제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국가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들이 더 열심히 일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국가의 이익은 겉으로 보기에는 노동계급의 이익과 일치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부르주아 계급의 임무는 계급투쟁의 기관인 노동조합을 완전히 파산시키고 부르주아 국가를 위해 노동자들을 통제하는 노동조합 관료층을 양성하는 데에만 있다.

이 상황에서 혁명 전위의 임무는 노동조합의 완전한 독자성, 철도-석유 산업 등의 관리자로 전화한 노동조합 관료층 대신 노동자에 의한 실질적 산업의 통제를 위해 투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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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이전 마지막 시기의 사건들을 연구하면 무정부주의는 실제로는 민주공화국 내의 평화주의 선전에 지나지 않았음을 명백히 알 수 있다. 이론적으로 보면 무정부주의는 극단적인 지점까지 결론을 끌고 간 자유주의이다. 이것은 민주공화국의 보호가 필요했다. 개인적 테러행위와 같은 것들을 논외로 하면 대중운동과 정치의 체계인 무정부주의는 법의 평화로운 보호 하에 선전물을 제시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사회 위기의 순간에는 무정부주의자들은 평화시에 배운 것과 정반대의 행위를 했다. 이 사실은 빠리 꼬뮌과 관련하여 맑스가 이미 지적한 바 있다. 그리고 이것은 스페인 혁명의 경험을 통해 훨씬 더 거대한 규모로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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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의미로 보자면 민주 노동조합은 다른 경향들이 어느 정도 자유롭게 경쟁하는 그런 노동조합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동조합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국가의 복구가 불가능한 것처럼 노동자 민주주의의 복구는 불가능하다. 전자의 운명은 후자의 운명을 반영한다. 계급적 의미에서 부르주아 국가와 관련시킨 노동조합의 독자성은 지금의 조건 속에서는 완전히 혁명적인 지도부 즉 제 4 인터내셔널의 지도부 하에서만 확보될 수 있다. 이 지도부는 당연히 합리적이어야 하며 합리적일 수 있다. 그리고 지금의 구체적 조건 속에서 생각할 수 있는 최대한의 민주주의를 보장해야하며 보장할 수 있다. 그러나 제 4 인터내셔널의 정치적 지도력이 없는 노동조합의 독자성은 불가능하다.

 

 

노동조합 단결의 문제(1931년 3월 25일)

 

<1931년 극심한 경제위기가 자본주의 세계에 닥쳤다. 이때 스탈린주의를 반대하던 공산주의자들은 코민테른에서 부당하게 제명된 분파로 공개활동을 하고 있었다. 국제좌익반대파(볼세비키-레닌주의)로 조직된 이들은 반혁명적, 관료적 스탈린 일당의 코민테른에 대항하여 레닌 당시의 혁명 노선으로 코민테른을 복원시키기 위해 투쟁했다.

프랑스 노동운동은 1921년에 분열되었다. 당시 사회당 계열 노동총연맹(CGT)을 주도하던 개량주의자들은 좌파가 장악한 산하 노동조합들을 제명하기 시작했다. 제명된 노동조합들은 단일노동총연맹(CGTU)으로 결집했다. 1922년 창립대회에서 단일노동총연맹은 혁명적 조합주의 지도부를 선출했는데 이중에는 공산당원들이 다수 참여했다.

1920년대 말 단일노동총연맹을 주도하고 있던 스탈린주의 세력은 초좌익 모험주의 정책을 채택했다. 자본주의는 제 3기 즉 최후의 시기로 들어섰으며 곧 이어서 세계혁명이 도래할 것이라고 이들은 주장했다. 전세계 공산당들은 개량주의 노동조합에서 탈퇴하고 공산당 지도하에 독자적인 "적색" 노동조합을 조직할 것을 명령받았다.                     

이때 삐에르 모나트의 [조합주의동맹]은 무조건적인 노동조합 통합을 주장하고 있었다. 제 1차 세계대전 직후 이 동맹은 모나트가 1922년까지 편집한 신문 [노동자의 삶]을 중심으로 조직된 조합주의 세력의 일부였다. 이 동맹은 1920년대 초 공산당에 입당했다. 1920년대 중반이 되자 모나트의 조직은 스탈린주의와 결별하였으며 곧이어 공산주의와 아예 결별해버렸다. 이 조직의 발전과정은 이 저서 제 2부에 소개된다.>           

노동자 조직의 단결 문제는 모든 형태의 조직과 모든 조건에 맞는 단 하나의 해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혁명정당은 이 문제를 가장 단호히 해결한다. 타 조직으로부터의 완전한 독자성 확보는 혁명투쟁을 위한 기본 조건이다. 그러나 이 원칙도 다음과 같은 문제에 대해 미리 해답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언제 그리고 어떤 조건 속에서 인접한 정치조직과 분립하거나 통합해야 하는가? 이 문제는 정치적 조건과 정치조직들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을 기초로 해서 개별적으로 해결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노동계급의 조직된 전위인 혁명정당이 명확한 강령에 기초하여 자신의 완전한 독자성을 보존하는 것은 어쨌든 최고의 원칙이다.

그러나 혁명정당에게 해당되는 이 해결책은 다른 노동자 대중조직들 즉 노동조합, 협동조합, 소비에트 등에게는 일반적으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대중조직들은 반드시 다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지금 언급한 대중조직들은 각기 다른 그리고 어떤 한계 내에서는 독립적인 임무와 활동방식을 가지고 있다. 공산당에게 이 대중조직들은 광범위한 노동자들을 혁명적으로 교육시키고 선진노동자들을 당으로 조직시키는 활동공간이다. 따라서 대중이 많이 결집한 조직일수록 혁명 전위에게 더 많은 가능성을 제공한다. 대중조직 분열 책동을 먼저 저지르는 쪽이 일반적으로 공산당이 아니라 개량주의 조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1917년 당시 볼세비키당의 행동과 최근 몇 년 간 자행된 영국 노동조합들의 행동을 비교하면 이 점이 충분히 설명된다. 볼세비키들은 멘세비키들과 함께 같은 노동조합에서 활동했을 뿐 아니라 소비에트에서 다수파가 되었으나 일부 노동조합의 멘세비키 지도부를 용인했다. 이와 반대로 노동당 산하 노동조합들은 공산당원들을 노동당에서 제명시켰을 뿐 아니라 가능하면 노동조합에서도 제명시켰다.

프랑스 노동조합운동의 분열 역시 개량주의자들의 책동이었다. 제명된 후 독자 조직을 수립할 수밖에 없었던 혁명적 노동조합이 자기 이름에 단일 또는 단결이라는 말을 집어넣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지금 우리는 공산당원들에게 개량주의 노동총연맹에서 탈퇴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이와 반대로 개량주의자 주오(Jouhaux)의 노동총연맹 내에 존재하는 혁명 좌파는 강화되어야 한다. 이것만으로도 노동조합의 분열은 우리의 원칙이 전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초좌익 조직들은 모두 노동조합의 단결에 대해 원칙적으로 반대한다. 이들은 이 원칙을 개량주의 노동총연맹 내부의 공산당 활동에 대해서도 적용하면서 공산당을 비난한다. 그러나 현실운동의 감각을 상실하지 않은 모든 혁명가들은 틀림없이 인식하고 있다: 개량주의 노동조합 내부에 공산당 분파를 수립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임무이다. 그리고 이 분파는 개량주의 노동조합 내의 노동자들과 토론하면서 단일노동총연맹을 옹호해야한다. 이것이 이 분파의 임무 가운데 하나이다. 공산주의자들은 노동조합운동의 분열이 아니라 재통합을 위해 언제든지 투쟁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것을 보여주지 않고서는 노동총연맹 조합원들을 올바른 입장으로 설득시킬 수 없다.

혁명 정치를 개량주의 정치와 대립시키기 위해 공산당이 개량주의 노동조합을 분열시켜야 한다고 치자. 그러면 이 노선은 프랑스 뿐 아니라 계급 역관계와 무관하게 독일, 영국, 미국 등에도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개량주의 노동조합에서 탈퇴하고 독자적인 노동조합을 건설할 것을 요구해야한다. 실제 일부 나라들에서 공산당은 이 노선을 택했다. 특수한 경우 개량주의자들은 정말이지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심지어 개량주의자들의 분열 책동에 공산당이 말려드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중조직들에서 개량주의자들과 함께 있을 수 없다는 원칙을 들고 나와 공산당이 노동조합을 분열시킨 경우는 아직까지 없었다.

협동조합의 경우도 지금까지 노동조합에 대해 얘기한 것에서 특별히 따로 언급할 내용이 없다. 그렇다면 이제 소비에트를 예로 들기로 하자. 사회의 모든 문제들이 칼날처럼 날카롭게 제기되는 가장 혁명적인 시기에 소비에트가 등장한다. 그런데 사회민주주의당이 장악한 개량주의 소비에트에 대항하기 위해 공산당이 따로 소비에트를 수립한다면 소비에트의 의미 자체를 없애는 꼴이 될 것이다.

1917년 초 볼세비키는 소비에트에서 정말 별 볼일 없는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한 달이 몇십 년은 아니더라도 몇 년의 가치가 있는 격동의 몇 달 동안 볼세비키당은 공장위원회에서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소비에트 내에서 멘세비키와 사회혁명당의 화해주의 다수파를 용인했다. 혁명 승리 후 국가권력을 장악한 후에도 소비에트 내에서 멘세비키가 노동계급의 일부를 대표하고 있는 한 이들을 용인했다. 소비에트가 멘세비키들을 제명시켰을 때는 이들은 이미 노동계급의 신뢰를 완전히 상실하고 스스로를 고립시켜 하나의 파벌로 전락한 후였다.

스페인에서도 가까운 미래에 소비에트 수립 구호가 등장할 것이다. 이때 공산당의 열정적이고 대담한 주도하에 소비에트(훈타)가 수립되었다고 하자. 그러나 이것은 소비에트 대의원 선출에 대한 방식과 시기 등 세부 사항들에 대해 노동조합, 개량주의 조직 등과 조직적 합의를 이루어야 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대중조직 내에서 개량주의자들과 함께 일할 수 없다는 원칙을 들고 나온다면 이것은 종파주의의 가장 재앙적인 오류가 될 것이다. 조직의 순수성을 지킨다는 미명하에 대중의 혁명적 진출을 가로막고 대중의 권력기관인 소비에트를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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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량주의는 제국주의 부르주아 계급의 좌익적 외피라고 우리는 인식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인식과 개량주의자 주도의 대중조직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어떻게 화해시킬 수 있는가? 이 모순은 형식적인 모순이 아니라 변증법적인 모순이다. 즉 계급투쟁의 과정 그 자체에서 도출되는 모순이다. 노동계급의 상당수 그리고 일부 국가에서 다수의 노동자들은 개량주의에 대한 우리의 정치적 인식을 거부한다. 어떤 나라들의 경우 노동자들은 이 문제에 접근도 못할 정도로 후진성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과의 공동투쟁 경험을 통해 이들을 혁명적 결론으로 인도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임무이다. 공산당원이 아니거나 공산당을 반대하는 노동자들에게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배신자로 보고 있는 개량주의 지도자들을 여러분들은 여전히 신뢰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견해를 여러분들에게 강요할 수도 없고 그럴 의사도 없다. 그렇다면 함께 투쟁한 후 이 투쟁의 방식과 결과를 평가하자." 이것은 규율이 모든 조합원에게 적용되는 노동조합 내에서 정치조직들이 완전한 정치적 자유를 누릴 경우 우리가 취할 노선이다.

이와 다른 어떤 원칙적 입장도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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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좌익반대파인 공산주의동맹 집행위원회는 공동전선의 문제를 지금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이것은 전적으로 올바른 노선이다. 개량주의자들 그리고 특히 이들의 좌파 하수인인 모나트 일당은 계급투쟁의 실제 과제를 단결이라는 형식적인 구호와 대립시키고 있다. 이 책동을 파탄시키는 유일한 수단이 바로 공동전선이다. (편집자 주: 공동전선에 대한 결의문은 1921년 12월 코민테른 집행위원회 회의에서 채택되었다. 이로부터 1년 후인 1922년 11월-12월에 코민테른 제 4차 세계대회가 개최되었다. 이 대회에서 채택된 전술에 대한 결의문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부르주아 계급에 대항하여 당면한 기본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노동대중은 공동으로 투쟁하고 있다. 이에 공산당은 다른 정당이나 정치조직에 속한 노동자들 그리고 무당파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할 것을 제안한다. ... 노동자들에게 혁명의 불가피성과 공산주의의 역사적 의의를 확신시킬 수 있는 길은 바로 공동투쟁의 경험이다." 그러나 이 결의문은 이렇게 조건을 달았다: "공동전선을 모든 노동자 정당들의 조직적 통합으로 해석하려는 제 2 인터내셔널의 시도는 단호히 배격되어야 한다.") 공산당 지도자 알베르 바싸르는 무미건조한 공산당의 공식 노선에 대항해 지역 노동조합들과의 공동전선을 제안했다. 문제를 이렇게 제기하는 것은 올바르다. 왜냐하면 지역 차원의 파업투쟁에서도 지역의 노동조합들 뿐 아니라 전국 단위의 연맹들과 함께 투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개량주의 관료기구의 하부 단위는 노동자들의 압력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그의 생각도 올바르다. 그러나 지역 차원에서 기회주의자들과 공동투쟁에 합의하는 것을 전국 차원의 합의와 원칙적으로 구별하는 것은 오류이다. 모든 것은 순간적 상황, 투쟁을 요구하는 대중의 압력, 일정에 올라있는 투쟁 과제의 성격에 달려있다.

구체적인 공동투쟁의 문제에 대해 지역 또는 중앙 차원에서 개량주의자들과 합의하는 것은 투쟁의 필수 불가결한 전제조건이 아니다. 이것은 자명하다. 개량주의자들이 아니라 객관적 상황 그리고 대중의 정서에 기초하여 전술을 세워야 한다. 투쟁 요구들도 마찬가지의 원칙이 적용된다. 개량주의자들의 조건 즉 최소 요구를 기초로 사전에 공동전선에 합의하는 것은 치명적인 오류이다. 노동 대중은 비현실적인 요구들을 위해 투쟁하지 않는다. 투쟁 요구들이 너무 협소할 경우 노동자들은, "겨우 이것 때문에 투쟁을 한다니 웃기는군."이라고 생각한다.

개량주의자들에게 형식적으로 공동전선을 제안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가능한 정도까지 상황에 맞는 조건들을 받아들이도록 강제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이다. 이 모든 것은 적극적인 전략, 전술을 요구한다. 이것을 통해서만 단일노동총연맹은 대중이 두 노동조합으로 분열되어 있는 해악을 어느 정도 최소화시킬 수 있다. 그리고 분열의 책임을 진짜 책임이 있는 개량주의자들에게 돌리고 자신의 전투적인 입장들을 제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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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노동조합 연맹은 오랫동안 독자적인 존재를 유지해왔다. 이것이 프랑스 노동운동의 특수한 상황이다. 최근 몇 년의 투쟁 침체기를 거치면서 이 분열은 익숙한 것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너무 자주 이 사실 자체가 잊혀지고 있다. 그러나 대중투쟁의 상승과 함께 노동조합의 단결 구호는 불가피하게 다시 등장할 것이다. 프랑스 노동계급의 10분의 9 이상은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면 운동의 상승과 함께 미조직 노동자들의 압력이 증대할 것은 자명하다. 이 압력의 첫 결과의 하나로 단결의 구호가 제시될 것이다. 올바른 정책을 구사할 경우 대중의 투쟁 압력은 공산당과 단일노동총연맹에게 유리할 것이다.

다음 시기에 적극적인 공동전선 정책은 프랑스 공산당의 노동조합 전략의 주요한 방식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정책을 노동조합의 단결 정책과 대립시키는 것은 아주 잘못이다.

노동계급의 진정한 단결이 혁명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공동전선 정책은 노동자들을 개량주의자들의 영향력으로부터 해방시키는 하나의 수단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분석하면 노동계급의 진정한 단결을 촉진시키는 하나의 방법이다. 이 맑스주의적 진실을 끊임없이 선진노동자들에게 설명해야한다. 그러나 가장 올바른 역사적 전망도 대중의 실제 경험을 대체할 수는 없다. 혁명정당은 노동계급의 전위이다. 그러나 특히 노동조합에서 이 전위는 후진적 부위에게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 노동조합 단결 투쟁에 노동자들과 함께 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전위는 한번, 두 번 그리고 필요하면 열 번이라도 후진적 부위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 활동 무대에서 맑스주의 전략의 핵심 원칙 즉 개량 투쟁을 혁명 투쟁과 결합시킨다는 원칙에 충실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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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 단결 문제에 대해 두 연맹은 현재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는가? 다수 노동자들은 두 연맹의 태도가 완전히 같다고 볼 것이다. 사실 두 연맹의 집행부는 조직 통합이 조직의 원칙에 기초해 "아래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고 똑같이 선언해왔다. 개량주의 노동총연맹은 아래로부터의 단결 구호를 단일노동총연맹에서 빌려와 자신을 위장하고 있다. 그리고 노동계급의 희미한 기억과 신세대의 무지를 활용하고 있다. 신세대는 주오, 뒤물렝 일당의 조직 분열 책동을 전혀 모른다. 동시에 모나트 일당은 노동운동의 투쟁 과제를 노동조합 단결이라는 단 하나의 구호로 바꿔치기 하면서 주오 일당을 돕고 있다. 정직한 단결 브로커인 모나트 일당은 될 수 있으면 많은 수의 노동조합들을 단일노동총연맹에서 탈퇴시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동을 통해 자기 주위로 탈퇴한 노동조합들을 결집시킨 후 대등한 입장에서 노동총연맹과 지분 협상에 나서려고 한다.

지금 가지고 있는 자료에 의하면 바싸르는 두 연맹의 통합대회 개최를 구호로 제출할 것을 공산당에게 촉구했다. 그러나 이 제안은 단호히 거부되었다. 그리고 바싸르 자신은 모나트의 입장으로 넘어갔다고 비난받고 있다. 정보 부족 때문에 나는 이 문제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제시할 수 없다. 그러나 프랑스 공산당은 통합대회 개최 구호를 기각할 이유가 없으므로 이 구호를 채택해야한다.

모나트 일당은 이렇게 말한다: "두 연맹 모두 똑같이 분열주의자들이다. 우리만 통합을 주창하고 있다. 노동자 여러분, 우리를 지지해야 한다." 이에 대해 개량주의 노동총연맹은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는 아래로부터의 단결을 주창하고 있다. 즉 단일노동총연맹 노동자들이 우리 조직에 다시 가입할 경우 관대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그렇다면 혁명적 단일노동총연맹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우리가 조직 이름을 단일노동총연맹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바로 오늘이라도 우리는 통합을 성사시킬 준비가 되어있다. 그러나 산하에 노동조합도 없으면서 마치 곪은 상처에 달라붙은 구더기처럼 탈퇴하는 노동조합들로 연명하는 단결 브로커들은 필요 없다. 명시된 준비 기간을 거친 후 노동조합 민주주의에 기초하여 통합대회를 개최할 것을 제안한다."

이러한 대응은 노동계급 대오 내에 커다란 혼란만을 부추기는 모나트 일당의 입지를 즉시 축소시킬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단결 브로커들을 제거하는 것은 너무 비용이 크다고 일부는 반대할 지도 모른다: "개량주의자들이 통합대회 개최에 동의하면 결국 공산당은 통합조직 내에서 소수가 될 것이다. 결국 단일노동총연맹은 노동총연맹에 굴복하는 셈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방식은 운동 전체의 임무와 전망을 상실한 채 자신의 "독자성"만을 추구하는 노동조합 관료 좌파에게나 어울린다. 당분간 혁명 세력이 소수로 남아 있더라도 두 노동조합의 통합은 공산당에게만 이익이 될 것이다. 이 사실은 곧 명백히 드러날 것이다. 두 노동조합이 통합되면 새로운 조합원들이 대거 조직될 것이다. 이 덕분에 경제위기의 영향은 좀더 깊고 결정적으로 노동조합 내에 반영될 것이다. 그러면 투쟁의 새로운 상승과 함께 노동조합 좌파는 통합 조직의 장악을 위한 결정적인 투쟁을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 광범위한 대중을 포괄한 진정한 대중조직에서 개량주의 지도부에 반대하는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협소하고 고립된 노동조합에서 다수가 되기를 원하는 태도는 노동계급 혁명가가 아니라 종파주의자나 관료에게나 어울린다.

이론적 준비나 혁명활동의 경험도 없는 몽무쏘, 쎄마르 등은 1922년 자신들이 단일노동총연맹의 "주인"임을 즉시 선언했다. 그리고 코민테른의 지도자 로조프스키, 마누일스키 등의 명령을 받아 이 조직을 잘못된 정책의 실험대상으로 삼을 가능성을 부여받았다. 이런 요인이 일부 작용해서 이 조직의 지도부는 조직에게 엄청난 해악을 끼쳤다. 이것은 생각이 있는 맑스주의자에게는 자명한 사실이다. 만약 개량주의자들이 연맹을 분열시키지 않았다면 몽무쏘 일당은 더 광범위한 대중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점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이 사실만으로도 이들의 관료주의적 모험주의는 제지당했을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연맹의 통합은 단점보다 장점이 비교할 수 없이 크다. 약 1백만의 노동자들을 포괄하는 통합 연맹에서 혁명 세력이 한두 해 소수파로 머물러 있다고 치자. 그러나 공산당 노동조합원 뿐 아니라 공산당 전체를 위해서 이 기간은 끊임없이 약화되는 단일노동총연맹에서 5년 동안 "독자적인" 좌충우돌을 반복하는 것보다 훨씬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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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의 단결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우리가 아니라 바로 개량주의자들이다.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이들이 통합 대회에 동의할 경우 프랑스 노동운동은 막다른 골목에서 빠져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개량주의자들은 통합 대회에 동의할 생각이 없다.

사회 위기의 상황은 가장 주요하게 노동조합에서 개량주의자들에게 큰 난관들을 제기한다. 이들이 자신의 좌파 뒤로 몸을 숨기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하는 자들은 바로 단결 브로커인 모나트 일당이다.

개량주의자들의 노동조합 분열 책동과 모나트 일당의 기생충 같은 정체를 폭로하는 것이 현재 가장 중요하고 필수 불가결한 임무이다. 통합 대회 구호는 이 임무의 달성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모나트 일당은 노동조합 단결을 외치면서 공산당을 공격하고 있다. 단일노동총연맹이 통합을 제안하면 모나트 일당은 치명타를 입을 것이고 개량주의자들은 약화될 것이다. 이것은 너무 명백하다.

개량주의자들의 저항 때문에 노동조합 단결의 구호는 진짜 통합이 성사될 경우 나타날 대단한 결과들처럼 효과를 발휘하기가 힘들다. 이 점을 우리는 미리 알고 있다. 그러나 공산당이 올바른 정책을 구사한다면 좀더 제한적이나마 뚜렷한 성과가 있을 것이다. 이것은 전혀 의심할 수 없다. 광범위한 노동자 대중은 누가 진짜 단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누가 단결에 반대하고 있는 지를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단결 브로커 일당의 도움이 필요 없다고 확신하게 될 것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모나트 일당은 산지 사방으로 흩어질 것이고 단일노동총연맹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그리고 노동총연맹은 반드시 더 약화되고 흔들릴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이 정책은 효과적인 노동조합 단결을 성취하기보다는 책략에 지나지 않는다고 반대하는 의견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반대의 목소리는 우리를 겁주지 못한다. 개량주의자들은 우리의 공동전선 정책 전체를 하나의 책략으로만 평가한다. 자기들이 투쟁을 주도할 생각이 없기 때문에 개량주의자들은 우리의 제안이 책략에 지나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공동전선 정책과 노동조합의 단결 정책을 원칙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완전한 오류이다. 당내에서 노동조합의 공산당 분파에서 그리고 정책 전반에 대해서 공산당이 독자성을 보존한다면 노동조합 연맹의 통합은 공동전선 정책의 한 형태이며 좀더 확대되고 광범위한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의 제안을 거부하면서 개량주의자들은 이 제안을 "책략"으로 변모시키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것은 정당하고 필수 불가결한 "책략"이다. 노동 대중을 훈련시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책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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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맹들이 통합될 때까지 노동자들의 공동투쟁이 연기될 수는 없다고 공산주의동맹 집행위원회는 시급히 반복해서 외치고 있다. 이것은 전적으로 옳다. 이 생각은 전에도 그랬듯이 발전되고 설명되고 실제로 적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올바른 사고가 명확하고 잘 선택된 순간에 두 연맹 그리고 심지어는 여타 노동조합 조직들의 통합 문제를 대담하게 제기해야할 우리의 임무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공산당 지도부가 이 대담한 전술을 성사시킬 능력을 가지고 있는 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미래는 공산당 지도부의 능력 또는 무능력을 드러낼 것이다. 그러나 지금 공산당과 단일노동총연맹 지도부는 공산주의동맹의 충고를 따르지 않을 개연성이 크다. 그러나 어쩌면 내일은 이 충고를 따라야만 할 것이다. 우리가 노동조합 단결을 신주 모시듯 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통합이 될 때까지 투쟁을 연기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만병통치약을 찾는 것이 아니다. 과거의 일을 잊어버렸거나 알지 못하는 노동자들을 구체적이고 중요한 사안을 통해 혁명적으로 교육시키는 것이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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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대회 참가에 대한 어떤 원칙상의 조건도 우리는 내걸지 않는다.

값싼 말을 떠벌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단결 브로커들은 통합 연맹이 계급 투쟁의 원칙 등에 기초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들은 기회주의자들의 이익을 위해 말재주를 부리고 있을 뿐이다. 마치 이들은 통합의 이름으로 주오 일당에게 계급투쟁의 길을 갈 것을 촉구하는 진지한 인간들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주오와 같은 개량주의자들은 이미 부르주아 계급과의 단결이라는 이름 하에 계급투쟁의 길을 의도적으로 팽개친 지 오래되었다. 그리고 모나트, 지롬스키, 뒤물렝 등과 같은 단결 브로커들이 "계급투쟁"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것이 있을까? 우리는 언제든지 노동조합 단결을 위해 투쟁할 준비가 되어있다. 그러나 약장수의 엉터리 약을 가지고 자본의 하수인들을 "교정"시키기 위해서 투쟁하지는 않는다. 아니다, 이들의 배신적인 영향으로부터 노동자들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노선을 고수한다. 우리가 내거는 유일한 조건은 노동조합 민주주의의 실천을 위한 조직적 보장뿐이다. 노동조합 내의 소수파는 노동조합의 규율을 당연히 준수하는 조건하에 무엇보다도 비판의 자유를 보장받아야 한다. 우리는 이것 이외에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으며 아무 것도 더 약속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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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공산당이 우리의 충고를 따른다고 생각해보자.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가? 우선 당내에서 투쟁 계획을 면밀히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지방 노동조합들의 조건을 고려하면서 노동조합의 공산당 분파들 전부와 이 계획을 논의해야한다. 또한 노동조합 단결의 구호가 위와 아래에서 동시에 제출되도록 지휘해야한다. 면밀한 준비와 정성스런 작업으로 당 대오 내에 모든 의심과 오해를 제거해야 한다. 이 작업이 끝난 후 단일노동총연맹 지도부는 구체적으로 입안된 제안을 개량주의 연맹 지도부에 제시해야한다. 그리고 두 연맹 대표들이 동수로 참여하는 위원회를 구성하여 예를 들어 2달 내에 전국의 모든 노동조합들이 의무적으로 가입하는 통합 대회를 준비해야 한다. 동시에 각 지역의 단일노동총연맹들은 엄밀함과 구체성이 녹아든 똑같은 제안을 같은 지역의 노동총연맹 조직들에게 제시해야 한다.

공산당은 프랑스 전역에 광범위한 선동작업을 전개하여 단일노동총연맹의 제안을 지지하고 설명해야한다. 가장 광범위한 노동 대중 그리고 특히 노동총연맹 노동자들의 관심은 즉시 노동조합 조직의 통합을 성취하자는 공산당의 제안에 일정 기간 집중되어야 한다. 개량주의자들이 어떤 태도와 어떤 술책을 부리든 공산당은 이 투쟁에서 이익을 볼 것이다. 이 첫 제안을 통해 노동조합 단결에 대한 공산당의 태도가 대중에게 인식되는 것만도 성과일 것이다.

이 기간에 공동전선의 이름으로 전개하는 투쟁은 단 한 순간도 중지되어서는 안된다. 공산당은 계속해서 지방과 중앙에서 개량주의자들을 공격하고 노동자들의 증대하는 투쟁에 기초하고 공동전선 정책의 기초를 통해 투쟁을 새롭게 해야한다. 그리고 개량주의자들의 정체를 폭로하고 자신의 대오를 강화시키는 등의 투쟁을 전개해야한다. 그리고 6개월, 1년 또는 2년 후에 공산당은 노동조합 통합 제안을 반복하면서 개량주의자들을 첫 번째 시도의 경우보다 더 어려운 지경에 몰아넣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볼세비키 정책의 진면목이다. 전술을 구사하면서도 대담하게 공세로 나와야 한다. 운동의 정체를 막고 기생충 같은 조직들을 정화시키고 혁명을 향한 노동계급의 전진을 가속화시킬 수 있는 길은 이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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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노동총연맹과 공산당이 이 투쟁의 주도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위에서 제시한 교훈들은 의미가 없고 투쟁도 성공할 수 없다. 따라서 공산주의동맹의 임무는 통합 대회의 구호를 독자적으로 제출하면서 자신을 노동총연맹 뿐 아니라 단일노동총연맹과 대립시키는 것이 아니다. 동맹의 임무는 공산당과 단일노동총연맹을 대담한 공동전선 정책의 길로 압박하고 이 정책에 기초하여 유리한 순간에 노동조합 조직의 통합을 위한 결정적인 공세를 취하는 데에 있다. 유리한 순간들은 앞으로 많이 올 것이다.

공산당에 대한 자신의 과업을 수행하기 위한 동맹의 첫 임무는 자신의 대오를 노동조합운동의 전선에 정렬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미룰 수 없는 임무이다. 이 임무는 성취되어야만 하고 성취될 것이다.

 

 

 

 

영국의 노동조합(1933년 9월 4일)

 

<트로츠키가 "노동조합 단결의 문제"를 저술한 지 2년이 지나 1933년 초가 되었다. 이때 독일에서는 파시즘이 승리하여 노동운동을 괴멸시켰다. 코민테른이 입안한 독일공산당의 종파주의 정책이 이 엄청난 재앙을 가져왔다. 이 현상을 트로츠키는 이렇게 설명했다:

"코민테른의 전략적 사고는 처음부터 잘못 되었다. 사민당과 파시즘은 서로 분업을 통해 같은 목적을 추구하고 있으며 이들의 이해관계는 동일하지는 않더라도 유사하다는 것이 독일공산당의 기본 사고였다. 공산당의 주요 라이벌 사민당과 공산당의 철천지원수 파시즘 사이의 불화를 조장하는 대신 코민테른은 개량주의자들과 파시스트들이 쌍둥이라고 확신했다.(...) 지도부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지역 노동자 정당방위 통합위원회가 건설되었다. 그러나 이 때마다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은 공산당 대표들을 제명시키겠다고 위협하면서 이 위원회에서 철수하도록 강요했다. (...) 개량주의자들의 투항은 공산당이 아니라 파시즘의 이익을 증진시켰다. 사민당 노동자들은 사민당 지도자들을 그대로 따랐다. 공산당 노동자들은 자신과 지도부에 대한 신념을 상실했다."

파시즘 승리 이후 몇 달 간 코민테른은 독일에서 노동운동이 승리했다고 떠벌렸다. 이로써 코민테른은 자신의 재앙적인 정책을 스스로 교정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그러자 트로츠키와 국제좌익반대파는 코민테른의 퇴보가 역전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이제 새로운 혁명적 인터내셔널의 수립이 요구되었다.

"영국의 노동조합"은 트로츠키의 "영국독립노동당과 새로운 인터내셔널"에서 발췌한 글이다.>

대다수의 오랜 자본주의 국가들 뿐 아니라 영국에서도 노동조합의 문제는 노동계급 정책의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이 분야에서 코민테른이 저지른 오류들은 무수히 많다. 이것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노동계급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없는 당의 무능력은 노동조합운동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다룰 필요성을 필자가 생각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노동조합은 자본주의가 성장하고 발전한 시기에 형성되었다. 노동조합의 임무는 노동계급의 물질적 문화적 수준을 높이고 정치적 권리를 확대시키는 것이었다. 노동조합의 이러한 투쟁은 영국의 경우 100년이 넘게 지속되었다. 이 결과 노동조합의 권위는 막강했다.

그러나 제국주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세계자본주의체제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쇠퇴한 영국의 자본주의는 노동조합이 개량 투쟁을 할 수 있는 기반을 갉아먹었다. 노동계급의 생활수준을 하락시키는 것을 통해서만 자본주의는 유지될 수 있다. 이 상황에서 노동조합은 혁명을 위한 조직이 되지 않으면 더욱 가혹한 노동 착취를 돕는 자본의 하수인이 되어야 한다. 노동조합 관료층은 자본이 남겨준 떡고물로 자신의 사회적 문제를 만족스럽게 해결했기 때문에 후자의 길을 택했다. 이들은 노동조합의 축적된 권위를 전부 동원하여 사회주의 혁명을 저지했고 자본과 반동의 공격에 대한 노동자들의 투쟁도 가로막았다.

이때부터 노동조합 관료층의 반동적인 영향력으로부터 노동 대중을 해방시키는 것이 혁명정당의 가장 중요한 임무가 되었다. 이 결정적인 투쟁에서 코민테른의 완벽한 무능력이 드러났다. 1926년과 1927년 광부들의 대대적인 파업과 총파업이 일어났다. 이때 영국 노총의 관료들은 노동 대중을 철저하게 배신하는 엄청난 범죄를 자행했다. 이때 코민테른은 이들 직책 높은 파업파괴자들에게 비열하게 아양을 떨었을 뿐 아니라 노동대중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권위를 이들에게 빌려주어 이들을 보호해주었다. 이 결과 가증스러운 배신자들은 축출되지 않은 채 그대로 노동조합 기구를 조종하는 위치를 유지했다. (편집자 주: 1926년 5월 1일 영국의 광부들이 파업에 돌입했다. 이들을 방어하기 위한 총파업이 5월 4일 시작되었다. 그러나 총파업은 5월 12일 노총 지도부에 의해 철회되었다. 그리고 6개월 후 광부들의 파업은 패배로 끝났다.) 이로 인해 평조합원 운동(Minority Movement)은 치명타를 입었다.

자기가 저지른 일의 결과를 보고 코민테른 관료들은 공포에 질렸다. 이제 이들은 초좌익 정책으로 돌아섰다. 노동조합운동에서 소수에 불과한 공산당이 마치 다수를 획득한 것처럼 착각했기 때문에 "제 3기"의 치명적 정책이 나왔다. 노동계급으로부터 더욱 고립되자 공산당은 수백만 노동자들 포괄하는 노동조합에 자신의 "적색" 노동조합을 대립시켰다. 후자는 코민테른에 철저히 복종했으나 노동계급과는 철저히 단절되어 있었다. 노동조합 관료들을 위해 이처럼 좋은 정책은 따로 없었다. 영국 지배계급의 상징인 가터 훈장을 수여할 권한이 노동조합 관료들에게 있었다면 코민테른과 프로핀테른(적색노동조합 인터내셔널) 지도자들 모두는 이 훈장을 가슴에 달았을 것이다.

이미 말했듯이 이제 노동조합은 진보적이 아닌 반동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나 여전히 수백만 노동자들을 포괄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눈이 멀어 노동조합의 역할이 바뀐 현실을 모른다고 생각하면 잘못이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하는가? 공식 공산당의 좌충우돌과 모험주의 정책으로 혁명의 대의는 좌파 노동자들의 눈앞에서 심각하게 손상 당했다. 노동자들을 이렇게 말한다: 노동조합은 썩었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없으면 더 손해가 될지도 모른다. 이것이 바로 막다른 골목에 처한 사람의 심리이다. 한편 노동조합 관료들은 노동조합에서 활동하는 혁명적 노동자들을 더욱 대담하게 탄압하고 더욱 안하무인으로 노동조합 민주주의를 자신들의 독재로 대체한다. 이 결과 자본주의의 생산력이 쇠퇴하는 제국주의 시대에 노동조합은 노동자 포로수용소로 바뀐다.

이 상황에서 퍼뜩 이런 생각이 든다: 노동조합을 빼고 혁명투쟁을 하는 방법은 없을까? 혁명적 노동조합, 직장위원회, 소비에트 등 신선하고 오염되지 않은 대중조직으로 노동조합을 대체할 수는 없을까? 그러나 이 생각은 근본적으로 틀렸다. 노동조합 관료들의 영향력으로부터 대중을 해방시킬 방법을 찾는 중대한 임무를 조직 형태를 실험하는 문제로 바꿔치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 가입할 조직의 주소가 아니다. 대중이 있는 곳에서 이들을 혁명으로 지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노동조합 관료들은 조직의 기구를 이용하여 자기 이익만 챙긴다. 그리고 "부패 선거구" 시절에 의회의 극소수 파벌들이 하던 식으로 가장 비열한 술책, 탄압, 노골적인 속임수 등을 구사한다. (편집자 주: 1832년 영국에서 의회 개혁이 실시되어 중세 이후 처음으로 의회 선거구가 조정되었다. "부패 선거구" 시절은 의회 개혁이 실시되기 전을 의미한다. 부패 선거구에는 선거구민이 거의 없었다. 따라서 돈 많은 자들이 의석을 돈주고 살 수 있었다.)  따라서 노동조합을 혁명의 길로 획득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참을성 없는 좌익들이 말한다. 도대체 시간과 정력을 노동조합 투쟁에 낭비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노동조합 관료들의 부패를 변명으로 대중을 획득하는 투쟁을 포기하겠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주장이 더 발전되면 이렇게 된다: 부르주아 정부의 관료들이 가하는 탄압과 도발이 문제이므로 아예 혁명투쟁을 포기하자. 이 두 주장은 원칙적으로 똑같다. 왜냐하면 현재 노동조합 관료는 확실히 부르주아 경제기구와 정부기구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관료들의 도움이나 동의만으로 이들에 대항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웃기는 얘기이다. 이들이 탄압, 폭력, 축출을 자행하고 빈번하게 정부당국의 도움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방어하는 한 노동조합 내부에서 주도면밀하게 활동하는 방법을 배워야한다. 대중과 통할 수 있는 공통의 언어를 찾아내고 관료들에게 우리의 정체를 미리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 노동조합의 개량주의 관료들이 자본의 경제 경찰로 바뀐 바로 이때 지혜롭고 체계적으로 수행된 노동조합 활동은 비교적 짧은 시간에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그렇다고 혁명정당이 노동조합을 완전히 사회주의 혁명의 편으로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노동조합 기구는 대중으로부터 커다란 독자성을 확보했다. 대중이 자기들에게 등을 돌린 후 한참이 지날 때까지 관료집단은 직위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대중의 견해를 거짓 대변하고 새로운 선거를 방해할 바로 이때가 직장위원회, 노동자 소비에트 등을 수립할 가장 유리한 때이다. 강력한 영국의 노동조합과는 달리 러시아에는 노동조합의 전통이 없었다. 그리고 10월 혁명 당시 멘세비키들이 노동조합을 압도적으로 장악하고 있었다. 대중의 신뢰를 상실한 이들은 노동자 혁명을 방해할 수는 없었으나 노동조합 선거를 방해할 힘을 여전히 가지고 있었다.

격동의 순간에 보수적 노동조합 기구를 대체할 직장위원회와 노동자 소비에트를 수립해야 한다. 이것의 필요성을 선진노동자들에게 인식시키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노동조합 내의 미진한 영향력을 위로하기 위해 직장 소비에트 등의 구호를 "장난처럼 제출하는 것"은 커다란 오류가 될 것이다. 지금 존재하는 노동조합에 노동자 소비에트라는 추상적 아이디어를 대립시키는 것은 관료집단 뿐 아니라 대중마저 적으로 만들게 될 것이다. 이 결과 노동자 소비에트를 수립할 기초마저 사전에 박탈당하게 될 것이다.   

코민테른은 이런 오류를 적지 않게 범했다: 복종 잘하는 공산당원들만의 노동조합을 수립한 후 이것을 적대적 방식으로 대중적 노동조합과 대립시킨 후 완전히 무기력증을 드러냈다. 독일공산당이 무너진 가장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내가 알고 있기로 영국공산당은 지금 상황에서 노동자 소비에트 구호를 제출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피상적으로는 영국공산당이 상황을 현실적으로 보는 것 같다. 그러나 실제로 이 정당은 더 황당한 모험주의 정책을 위해 덜 황당한 정책을 거부하고 있는 것뿐이다. 사회파시즘 이론과 실천, 공동전선 반대는 노동조합 활동의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이다. 왜냐하면 노동조합은 그 성격상 혁명정당이 개량주의 대중이나 무당파 대중과 계속 공동전선을 수립하는 활동 무대이기 때문이다. (편집자 주: 1930년대 초 스탈린주의 공산당들은 사민당과 산하 노동조합을 사회 파시스트라고 불렀다. 사민당과 파시즘 세력은 서로 적대적이기는커녕 "쌍둥이"라고 이들은 주장했다. 파시즘에 대항해 노동계급의 이익을 방어하거나 노동계급의 다른 목적을 위해 사민당 조직을 공동전선에 합류하도록 압박하는 정책을 이들은 반대했다.) 영국공산당은 독일의 비극으로부터 뭔가를 배우고 자신을 새로 무장할 능력이 없다. 따라서 최근에야 혁명을 배우는 단계에 들어선 독립노동당마저 함께 물 속으로 끌고 들어갈 수 있다.

물론 사이비 공산주의자들은 바로 지난 번 개최된 노동조합 대회를 가리킬 것이다. 이 대회는 파시즘에 대항해서 공산당과 공동전선을 수립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이 판단을 역사의 최종적 판결로 받아들인다면 아주 어리석은 짓이 될 것이다. 파시즘이나 공산주의에 의해 당장 위협을 받지 않고 있기 때문에 노동조합 관료들은 공동전선이 필요 없다고 뻐길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머리를 깨부수기 위해 파시즘의 망치가 치켜올려지고 혁명정당이 올바른 정책을 가지고 있다면 노동 대중은 혁명 세력과 연합하려는 억제할 수 없는 충동을 보이면서 노동조합 관료기구의 일부도 이 반(反)파시즘 투쟁으로 끌어들일 것이다. 이와 반대로 공산주의가 결정적인 세력이 되어 노총 관료들의 직책, 명예, 수입 등을 위협하면 이들 씨트린 일당은 의심의 여지없이 모즐리 파시스트 일당과 연합하여 공산주의자들에게 대항할 것이다.

이에 대한 역사적인 예가 있다. 1917년 8월 러시아의 멘세비키와 사회혁명당은 볼세비키와 연합하여 반동의 기수인 코르닐로프 장군을 격퇴시켰다. 이로부터 2개월 후인 10월에 이들은 코르닐로프 일당과 손을 잡고 볼세비키에 대항하여 혁명을 패배시키려고 기도했다. 그리고 1917년 첫 몇 달간 위세를 부릴 당시 개량주의자들은 씨트린 일당처럼 코방귀를 끼면서 우익이나 좌익 독재와의 연합을 거부했다.

노동계급 혁명정당은 자신의 역사적 임무를 명확히 인식하면서 결집되어야한다. 이것은 과학에 입각한 강령을 전제로 한다. 동시에 혁명정당은 계급 대중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기회주의적 흐릿함이나 종파주의적 초연함과 똑같이 거리를 둔 혁명적 현실주의를 전제로 한다. 이 두 밀접히 연관된 조건들로 판단하면 독립노동당은 노동계급의 모든 다른 조직과 경향은 물론 코민테른과의 관계도 새로 검토해야한다. 이것은 무엇보다 독립노동당의 운명이 걸린 문제이다.

 

 

 

네덜란드 노동조합운동에 대한 편지(1936년 - 1938년)

<이하의 글들은 트로츠키가 쓴 세 통의 편지를 발췌한 것이다. 첫 번째 글은 네덜란드 혁명적사회주의노동자당(RSAP) 중앙위원회에 보낸 편지이다. 두 번째 글은 이 조직의 지도자 헹크 스니블릿에게 보낸 편지이다. 그는 소규모 좌익 노동조합연맹인 전국노동서기국(NAS)의 지도자이기도 했다. 세 번째 글은 제 4 인터내셔널 운동의 지도기구인 국제서기국에 보낸 편지이다. 이 글들의 전문은 "네덜란드 지부와 인터내셔널"이란 논문에 실려있다.>

 

혁명적사회주의노동자당 중앙위원회, 1936년 7월 16일

노동조합 문제에 대해서도 나는 네덜란드 형제당의 정책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글을 통해서 그리고 특히 말로 직접 표현한 적이 자주 있었습니다. 전국노동서기국에 대한 당의 정책은 계속해서 관성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정책에 대한 좀더 깊은 전략적 동기가 없습니다. 현재 프랑스와 같이 네덜란드도 사회주의 혁명 아니면 파시즘 둘 중의 하나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길을 택하든 전국노동서기국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없습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네덜란드에서 거대한 파업의 물결이 일어날 개연성은 매우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럴 경우 개량주의 노동조합은 크게 성장할 것이며 새로운 분자들을 흡수하게 될 것입니다. 이때 대중은 전국노동서기국을 이유 없이 개량주의 노동조합을 탈퇴한 소규모 조직으로 이해할 것입니다. 이 결과 대중은 혁명적사회주의노동자당의 올바른 구호와 전국노동서기국 지도부에 대해 이렇다할 반응을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의 당원들과 서기국 최상의 분자들이 개량주의 노동조합 안에서 활동한다면 곧 임박한 투쟁의 격동기에 이들은 좌파의 구심이 될 수 있으며 나중에 노동운동의 결정적인 세력이 될 수 있습니다. 나는 아주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체계적이고 면밀히 준비된 선동을 개량주의 노동조합 안에서 수행하는 것만이 혁명적사회주의노동자당을 진정한 독자정당으로 보존시킬 뿐 아니라 이 정당의 권력 장악을 가능하게 만들 유일한 길입니다. 혁명정당은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국가권력을 장악할 경우에만 그 가치가 있습니다. 독자적으로 조직을 유지하는 것 자체는 의미가 없습니다.

개연성이 훨씬 적은 상황을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네덜란드가 혁명적 격동기를 경과하지 않고 곧바로 반동적인 군사관료 정권으로 이행하다가 파시스트들이 권력을 잡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될 것입니다. 이 경우에도 결론은 마찬가지입니다: 전국노동서기국의 정책은 당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불가피합니다. 반동의 첫 공세가 이미 전국노동서기국에 타격을 가했으며 이로 인해 이 조직의 반은 와해되었습니다. (편집자 주: 1934년 네덜란드 정부는 암스테르담의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전국노동서기국에 가입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두 번째 공세는 이 조직을 완전히 와해시킬 것입니다. 그러면 이 조직의 뛰어난 노동자들은 뿔뿔이 흩어진 채 개량주의 노동조합으로 들어가는 길을 찾거나 아예 수동적으로 무관심하게 사태를 관망할 것입니다. 노동조합은 대중조직이므로 정당처럼 비합법으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전국노동서기국의 와해는 당에게 큰 타격을 가할 것입니다. 비합법 혁명정당은 합법 또는 반(半)합법 대중조직을 외피로 가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정당의 조직원 상당수가 개량주의 노동조합 안에서 활동하고 있다면 노동조합은 이들에게 은신처가 되면서 동시에 활동 무대가 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와 뜻을 같이하는 노동자들의 응집력은 보존될 것입니다. 이외의 다른 모든 사항들은 정세와 당의 정책에 달려있습니다.

 

헹크 스니블릿에게, 1937년 12월 2일

우리 국제 운동의 어느 누구도 지금 네덜란드 당의 절대적으로 비정상적인 상황을 더 이상 용인할 수 없습니다. 이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혁명적사회주의노동자당은 제 4 인터내셔널의 깃발로 자신을 감싸고 있으나 인터내셔널의 원칙과 결정사항에 완전히 모순되는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전국노동서기국은 이제 당의 목에 매달려 있는 돌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돌은 당을 강바닥까지 끌고 들어갈 것입니다. 대중적인 노동조합에서 활동하지 않는 정당은 혁명정당이 아닙니다. 전국노동서기국은 현재 부르주아 정부의 용인과 재정 지원으로만 존재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전국노동서기국을 비롯한 노동조합들은 정부에서 보낸 실업수당을 실직 노동자들에게 분배했다.) 이 재정 지원은 당의 정치적 태도에 달려있습니다. 귀하의 당이 우리의 진지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강령을 명시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리고 네덜란드 의회의 의원인 귀하가 국내외에서 선전의 가치를 가질 진정한 혁명 연설을 하지 않은 이유도 이것입니다. 귀하의 활동은 외교에만 치중할 뿐 혁명과는 무관합니다. 귀하는 잘못된 노선에 의해 손과 발이 묶여 있습니다. 노동서기국은 대중을 획득하는 수단이 아니라 대중의 접근을 막는 장벽입니다.

다른 나라에서 잘못된 노동조합 노선을 비판하면 이들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당신의 네덜란드 조직은 우리와 노선이 같다." ... 진지한 혁명조직은 이러한 상황을 무한정 용인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매우 참을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운동의 기본적인 이익을 희생시킬 수는 없습니다.

 

국제서기국에게, 1938년 1월 21일

스니블릿에 대해 그리고 그에 반대해서 국제서기국이 제출한 모든 글들은 완전히 옳았으며 지금도 옳습니다. 그가 정치적 논쟁으로 결코 응수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전혀 인정될 수도 없고 정당하지도 않은 폭언을 평소의 습관대로 그가 사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스니블릿은 맑스주의 이론과 일반적 지향에 대해 조금도 관심이 없습니다. 그의 관심사는 아주 소규모의 관료 기구이자 그의 의원 신분을 지탱시켜주는 전국노동서기국 뿐입니다. 그는 자신의 기회주의적 활동을 치장하기 위해 제 4 인터내셔널의 깃발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전국노동서기국이 재정을 전적으로 정부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스니블릿은 정확한 정치 즉 맑스주의 정치를 전부 회피해 왔습니다. 이것은 전국노동서기국에 대한 정부의 응징을 자초하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혁명적사회주의노동자당은 전국노동서기국의 정치적 부속물에 지나지 않았으며 지금도 그렇습니다. 전국노동서기국은 생존 가능성이 없습니다. 지난 몇 해에 걸쳐 이 노동조합의 회원은 2만5천에서 1만2천 미만으로 떨어졌습니다.     

 

 

 

 

노동조합과 공장위원회 (1938년 4월)

<노동조합과 공장위원회에 대한 이 글은 "자본주의의 단말마적 고통과 제 4 인터내셔널의 임무" 즉 이행기 강령에서 발췌한 것이다. 이 결의문은 1938년 제 4 인터내셔널 창립대회에서 채택되었다.>

이행기의 노동조합

부분적인 요구들 그리고 이행기 요구들을 쟁취하는 투쟁에서 노동자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특히 지금 대표적 대중조직인 노동조합이 필요하다. 프랑스와 미국의 노동조합운동은 강력하게 성장하고 있다. 노동조합이 이미 "과거의 유물이 되었다"는 초좌익 공론가들의 설교를 이 현상은 가장 확실하고 논박하고 있다.

볼세비키-레닌주의자는 모든 투쟁의 선두에 선다. 노동계급의 가장 사소한 물질적 이익과 민주적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노동조합을 강화시키고 그 전투성을 고양시키기 위해 그는 적극적으로 대중적 노동조합에 참여한다. 그리고 파시스트 국가나 "민주적" 국가 할 것 없이 노동조합을 부르주아 국가에 종속시키고 '의무적 중재'와 모든 형태의 경찰 보호조치로 노동계급을 통제하려는 어떠한 시도에 대해서도 비타협적으로 투쟁한다. 이와 같은 작업을 기반으로 해서만 스탈린주의자들과 개량주의자들이 장악하고 있는 노동조합에서 올바로 투쟁할 수 있다. 소규모의 "혁명적 노동조합"을 당의 하부조직으로 건설하거나 보존하려는 종파주의적 시도는 실제로는 노동계급의 지도력을 확립하려는 투쟁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이 확고한 규칙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대중적 노동조합으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투항적 노선은 혁명을 배반하는 것과 같다; 이 노선으로는 제 4 인터내셔널에 가입할 수 없다.

노동조합원들과 조합주의자들은 똑같이 노동조합을 신주 모시듯 한다. 이러한 태도 역시 제 4 인터내셔널은 결연히 거부하고 비난한다.

(ㄱ) 노동조합은 완성된 혁명 강령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리고 스스로 설정한 임무, 구성원, 회원 모집 방식 때문에 완성된 혁명 강령을 제공할 수도 없다. 따라서 노동조합은 당을 대신할 수 없다. 제 4 인터내셔널의 지부인 각국 혁명정당의 건설은 이행기의 중심적 임무이다.

(ㄴ) 아무리 강력한 노동조합 전국조직도 노동계급의 20%에서 25% 이상을 포괄할 수 없다. 더욱이 숙련된 그리고 봉급 수준이 높은 부위만을 압도적으로 포괄한다. 더욱 착취당하는 열악한 조건의 대다수 노동자들은 노동운동의 예외적인 상승기에 간헐적으로만 투쟁에 이끌린다. 이러한 순간에 투쟁하는 대중 전체를 포괄하는 파업위원회, 공장위원회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비에트 등 특별 조직들을 건설할 필요가 있다.

(ㄷ) 스페인의 무정부주의적 조합주의 계열 노동조합을 포함해서 모든 노동조합은 노동계급의 최상부위를 표현하는 조직이다. 이것은 과거의 경험이 증명하는 바이다. 따라서 노동조합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권과 타협하는 강력한 경향을 보여주었다. 첨예한 계급투쟁의 시기에 노동조합의 지도적 기구들은 대중운동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이 운동을 주도하려고 한다. 이것은 단순한 파업 특히 부르주아의 사적 소유를 뒤흔드는 대중의 점거 파업에서 이미 드러나고 있다. 부르주아 계급이 대단한 곤경에 처하는 전쟁이나 혁명의 시기에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보통 부르주아 정권의 장관이 된다.

따라서 각국의 제 4 인터내셔널 지부들은 노동조합의 최상층 지도부를 갈아치우려고 애써야 한다. 그리고 이들 붙박이 관료들과 출세주의자들을 대체할 새로운 전투적 지도자들을 중요한 시기에 대담하고 결연하게 내세워야 한다. 또한 대중투쟁의 임무에 좀더 걸맞는 독립적 전투조직들을 가능한 모든 경우에 건설해야 한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노동조합의 보수적 기구들과 즉시 결별해야할 상황에서 움츠러들지 말아야 한다. 종파주의적 허구를 위해 대중조직에 등을 돌리는 것은 범죄행위이다. 혁명적 대중운동이 공공연히 반동적이거나 위장된 보수적("진보적") 관료 파벌들에 의해 장악되는 것을 수동적으로 용인하는 것도 같은 정도의 범죄행위이다. 노동조합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다. 노동계급 혁명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공장위원회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넘어가는 이행기에 노동자운동은 체계와 안정성을 갖추지 못한 채 열병에 걸린 것 같은 폭발적인 특성을 보인다. 조직 형태 뿐 아니라 구호 역시 운동의 이러한 특성에 맞게 설정되어야 한다. 혐오스러운 물건을 다루듯이 판에 박힌 방식으로 대중투쟁에 대응하는 것을 경계해야한다. 지도자들은 대중의 자발적 투쟁에 민감하게 반응해야한다.

이런 자발성은 최근 점거 파업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것은 "정상적인" 자본주의의 한계를 넘어선다. 파업 노동자들의 요구와는 별개로 공장을 일시적으로 점거하는 행위는 신성불가침으로 인식되었던 부르주아 소유체제에 타격을 가한다. 모든 점거 파업은 공장의 진짜 주인이 자본가인지 노동자인지를 묻는다.

이 질문을 점거 파업이 간헐적으로 제기한다면 공장위원회는 조직적으로 제기한다. 공장 종업원 모두에 의해 선출되는 공장위원회는 경영진의 의지에 대항하는 구심을 즉시 형성한다.

개량주의자들은 "인정이 있는", "민주적" 착취자를 포드와 같은 "돈만 아는" 착취자와 구별한다. 그리고 후자에 대해서 비난을 퍼붓는다. 그러나 우리는 두 종류의 착취자 모두에 대항하는 투쟁 구심으로 공장위원회를 구호로 내세운다. (편집자 주: 자유주의자들과 스탈린주의자들은 노골적인 노동 탄압으로 악명이 높은 자동차 왕 헨리 포드를 "돈만 아는" 자본가라고 불렀다.)

대중을 투쟁의 길로 내세우는 모든 대담한 조치들에 대해 노동조합 관료들은 사사건건 훼방을 놓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들은 일반적으로 공장위원회 건설에 대해서도 훼방을 놓으려고 한다.

그러나 대중운동의 위력이 강할수록 이 방해 책동은 그만큼 더 손쉽게 제압할 수 있다. "계급투쟁이 가라앉은 평화로운" 시기에 이미 모든 종업원이 노동조합원이 되는 관행이 정착된 경우에 공장위원회는 노동조합의 기구와 형식적으로는 일치할 것이다. 그러나 조직의 기구를 책임지는 임원을 갈아치우고 조직의 기능도 그 범위를 넓힌다. 노동조합이 보통의 경우 투쟁으로 끌어들일 수 없는 노동계급의 부위를 위한 전투사령부가 공장위원회이다. 이것이 공장위원회의 가장 중요한 의의이다. 자신을 가장 많이 희생시키면서 투쟁에 나서는 혁명의 군대는 바로 이들 더욱 착취당하는 열악한 처지의 노동자들에서 나온다.

공장위원회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공장에는 실질적으로 이중권력이 성립한다. 공장위원회는 핵심 성격상 이행기를 대표한다. 왜냐하면 공장위원회는 자신 속에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두 화해할 수 없는 체제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장위원회는 직접 혁명기 또는 준혁명기로 나아가는 문을 열어준다. 즉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준다. 공장위원회의 기본적인 의의는 바로 여기에 있다. 여러 나라에서 퍼지고 있는 점거 파업의 물결은 공장위원회 사상의 확산이 시기상조도 아니며 인위적인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풍부히 증명한다. 가까운 미래에 이런 유형의 물결은 불가피할 것이다. 공장위원회 수립을 위한 운동을 제때에 시작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전혀 준비도 되어있지 않은 상황에서 투쟁의 폭발에 의해 놀라자빠지는 꼴을 당할 것이다.                 

 

 

 

 

산업노동조합회의(CIO) 소속 관료와의 대화(1938년 9월 29일)

<트로츠키는 멕시코의 자택에서 애이브러햄 플랏킨(Abraham Plotkin, 1892-1988)과 두 번의 대담을 가졌다. 플랏킨은 당시 산업노동조합회의(CIO) 산하 국제봉제여성노동자조합 중서부지구 대표였다. 이 글은 이 두 번의 대담을 정리한 것이다.>

 

플: 완전 실업을 막는 것이 우리 노동조합의 목적이다. 시간당 임금이 삭감되지 않은 채 모든 조합원이 일을 분배받는다.

트: 그러면 전에 받았던 봉급의 몇 퍼센트를 지금 조합원들이 받고 있는가?

플: 약 40 퍼센트이다.

트: 말도 안되는 액수이다. 시간당 임금이 삭감되지 않은 노동시간 연동제를 따냈다는 것인가? 그렇지만 실업의 모든 부담을 노동자들이 고스란히 떠 안은 셈이 아닌가. 노동자 각자가 전체 임금의 5분의 3을 희생한 덕분에 자본가들은 실업자 구제를 위해 자기 돈을 쓸 필요가 없게 되었다.

플: 그 말에는 일말의 진실이 있다. 그러나 다른 뾰쪽한 수가 있는가?

트: 일말의 진실이 아니라 진실 그 자체이다! 미국 자본주의는 고질적인 불치병에 걸려있다. 지금의 위기가 일시적이며 새로운 번영의 시대가 멀지 않았다고 노동자들을 위로할 수 있는가?

플: 개인적으로 나는 그런 환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 조직의 많은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쇠퇴기에 들어섰다고 이해하고 있다.

트: 내일 노동자들은 전에 받았던 봉급의 30%를 받을 것이고 그 다음날은 25%를 받을 것이다. 상황은 이런 식으로 계속될 것이다. 간헐적인 경기 개선은 가능하며 불가피하다. 이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반적인 경기 곡선은 하강, 침체, 궁핍으로 향하고 있다. 심지어 맑스와 엥겔스도 [공산당선언]에서 이것을 예측했다. 귀하가 대표하는 노동조합과 전체 산업노동조합회의의 강령은 무엇인가?

플: 유감스럽게도 귀하는 미국 노동자들의 심리를 모른다. 이들은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버릇이 있다. 이들은 하나에만 관심이 있다: 지금 즉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물론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일부는 우리를 위협하는 요인들을 명확히 고려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도 대중의 심리를 단 한번에 바꿀 수 없다. 미국 노동자들은 습관, 전통, 견해들에 의해 속박되어 있으며 자신들의 성취 수준을 제한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하룻밤 사이에 바뀔 수는 없다.

트: 역사가 몇 년의 준비 기간을 우리에게 허용할 것이라고 확신하는가? 미국 자본주의의 위기는 "미국식" 템포와 규모를 가지고 있다. 병에 걸려본 적이 없는 유기체도 한 순간에 아주 급격하게 상태가 악화되기 시작한다. 자본주의의 붕괴는 동시에 민주주의에 직접 그리고 즉시 위협을 가한다. 민주주의 없이는 노동조합이 존재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뉴저지주(州) 저지시(市)의 시장 헤이그는 노동자 조직에 대해서 순전히 파시스트적 조치를 취했다. 그의 경우가 단지 우연이라고 생각하는가?

플: 아니다,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주제에 대해 나는 최근 노동조합 간부들과 자주 논의한 적이 있다. 지금 모든 주의 파시스트 조직들은 전미(全美) 파시스트 운동의 기반이 될 수 있다. 15, 20년이 아니라 3, 4년이면 파시즘이 우리를 정복할 수 있다.

트: 그렇다면 파시즘에 대항하는 귀하의 강령은 무엇인가?

플: 귀하의 질문을 이해한다. 어려운 상황이다. 어떤 주요 조치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필요한 역량이나 지도자가 주위에 보이지 않는다.

트: 그렇다면 싸우지도 않고 항복하자는 것인가?

플: 어려운 상황이다. 대다수 노동조합 활동가들은 위험을 보지 못하거나 보려고 하지 않는다. 귀하도 알다시피 우리 노동조합은 짧은 시간 내에 급속히 성장했다. 산업노동조합회의 지도자들이 행복감에 젖어있는 것도 당연하다. 이들은 난관을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다. 정부는 이들의 의중을 파악하면서 이들을 가지고 놀고 있다. 이들은 과거 경험으로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 이들의 머리가 약간 어지러운 것도 당연하다. 이들은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오늘의 즐거움을 맛보고 있다.

트: 옳은 말씀이다. 귀하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산업노동조합회의의 성공은 일시적이다. 이것은 미국 노동계급이 투쟁하기 시작했으며 일상의 틀에서 벗어나 멸망으로부터 자신을 구하기 위해 새로운 길을 찾고 있는 징후에 불과하다. 만약 귀하의 노동조합이 새로운 길을 찾지 못하면 이들은 산산이 흩어질 것이다. 파시스트 시장 헤이그는 노동조합 지도자 루이스보다 더 막강하다. 헤이그는 제한적인 상황에서나마 자기가 원하는 것을 알고 있는 반면 루이스는 알지 못하고 있다. "즐거운 어지러움"에서 깨어나 자신들이 노동자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다는 것을 지도자들이 알게 될지도 모른다.

플: 무제한적인 기회와 개인주의 때문에 미국의 역사는 우리 노동자들에게 사회 전체를 파악할 눈을 주지 않았다. 전체 노동조합원의 15%만이 노동조합 집회에 참여한다. 이 사실 하나로도 문제를 충분히 인식할 것이다. 이것은 정말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트: 85%의 조합원들이 집회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것은 집회 연사의 얘기에 알맹이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플: 음, 어느 정도 맞는 얘기이다. 경제 상황 때문에 우리는 노동자 투쟁에 브레이크를 걸고 후퇴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을 노동자들이 좋아할 리 없다.

트: 그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문제는 노동자들이 아니라 지도자들이다. 자본주의의 진보적 시기에조차 노동조합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후퇴하고 조합원의 일부를 상실하고 예비기금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때에는 다음 호황 때에는 손실이 보상되고 더 많은 이익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확신이 조금도 없다. 노동조합은 한 걸음 한 걸음 붕괴의 길을 가고 있다. 귀하의 산업노동조합회의는 급격히 성장한 만큼이나 급격히 붕괴할 수도 있다.

플: 어떻게 해야 하는가?

트: 무엇보다 대중에게 진실을 있는 그대로 얘기해야한다. 숨바꼭질은 통하지 않는다. 물론 귀하는 미국 노동자들을 나보다 더 잘 안다. 그러나 귀하는 낡은 틀로 이들을 바라보고 있음이 틀림없다. 대중은 지도자들보다 비할 수 없이 더 훌륭하고 대담하고 결연하다. 제 1차 제국주의 세계대전 후 닥친 끔찍한 경제 위기 특히 지난 10년 동안의 경제위기 때문에 미국 노동자들은 급격하게 변화했다. 산업노동조합회의의 급성장이 이것을 말해주고 있다. 좀더 전투적인 노동조합을 건설하려는 주도력을 귀하가 조금 보이자마자 노동자들은 즉시 응답하여 귀하에게 유례없는 지지를 보여주었다. 귀하는 대중에 대해 불평할 것이 하나도 없다.

그리고 소위 점거 파업은 어떠한가? 이것을 생각한 것은 지도자가 아니라 바로 노동자들이었다. 이것은 미국 노동자들이 좀더 결정적인 투쟁 방식을 원한다는 것을 의심의 여지없이 보여주는 징후이다. 파시스트 시장 헤이그는 점거 파업의 직접적 산물이다. 아쉽게도 노동조합의 최상층 지도자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계급투쟁의 격화로부터 반동 세력만큼 대담한 결론을 끌어내지 못했다. 현재 상황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자본의 지도자들은 노동계급의 지도자들보다 훨씬 더 확고하고 일관되고 대담하게 생각하고 행동한다. 노동계급의 지도자들은 회의적이고 사고가 판에 박힌 관료들로서 대중의 투쟁 의지를 질식시키고 있다. 바로 이것이 아주 짧은 기간에 파시즘이 승리할 위험성을 증대시키고 있다.

노동자들은 관료들이 내건 강령의 비효율성, 내용의 결여, 생기의 결여, 노골적인 거짓 등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다. 이들이 귀하의 집회에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재앙이 곧 머리통을 때릴 것이라고 모든 노동자들이 느끼는 그 순간에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뻔한 말이나 지껄이고 있다. 썩어가고 있는 자본주의의 현실에 맞는 언어를 찾아내야 한다. 관료들의 환상으로는 절대로 대중을 투쟁으로 이끌 수 없다.

플: 내 눈에는 지도자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이미 말한 바 있다. 대중이 투쟁을 원한다는 귀하의 말에 동의하지만 고립된 그룹, 종파들 이외에 노동자들을 단결시킬 수 있는 진정한 지도자를 찾을 수 없다.

트: 문제는 지도자가 아니라 강령이다. 올바른 강령은 대중을 투쟁으로 불러일으키고 단결시킬 뿐 아니라 지도자들을 훈련시키기도 한다.

플: 귀하가 말하는 올바른 강령의 내용은 무엇인가?

트: 내가 맑스주의자 더 정확히 말하면 볼세비키라는 것을 귀하는 알고 있다. 나의 강령은 아주 짧고 간단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즉 사회주의 혁명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운동 지도자들이 즉시 제 4 인터내셔널의 강령을 채택하라는 것은 아니다. 이들이 자신의 활동과 상황으로부터 결론을 이끌 것을 나는 요구한다. 또한 자신과 대중을 위해서 두 가지 질문에 대답할 것을 요구한다: (1) 산업노동조합회의를 파산과 파괴로부터 구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2) 미국의 노동자와 인민을 파시즘의 위협으로부터 구할 방법은 무엇인가?

플: 귀하가 지금 미국의 노동조합 조직가라면 무엇을 하겠는가?

트: 무엇보다도 노동조합은 실업과 임금 문제를 중심에 놓아야 한다. 귀하가 시행하고 있는 노동시간 연동제는 올바르다. 누구나 일자리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노동시간 연동제는 임금 연동제로 보완되어야 한다. 노동계급은 자신의 생활수준이 계속 하락하도록 허용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곧 인간 문화의 파괴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1929년 세계대공황 직전의 가장 높은 임금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노동자들이 창조한 막강한 생산력은 사라지거나 파괴되지 않았으며 지금 바로 우리 눈앞에 존재하고 있다. 이 생산력을 소유하고 통제하는 자들에게 실업에 대한 책임이 있다. 노동자들은 일하는 방법을 알고 있으며 일하기를 원한다. 일은 모든 노동자들 사이에 나누어져야 한다. 노동자 각자의 일주일 임금은 과거에 달성한 최고치보다 적으면 안된다. 이것이 자연스럽고 필요하고 연기할 수 없는 노동조합의 요구 사항이다. 이것이 아니라면 노동조합은 역사의 물결에 의해 사라질 것이다.

플: 이 강령은 실현될 수 있는가? 이것은 자본가들을 확실히 파멸시킬 것이다. 이 강령 자체가 파시즘의 성장을 재촉할지도 모른다.

트: 물론 이 강령은 투항이 아닌 투쟁을 의미한다. 노동조합이 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 뿐이다. 첫째는 자본가들의 "분노"와 반동의 "도발"을 피해 이리저리 술책을 부리고 앞으로 가다가 뒤로 가고 후퇴하고 눈을 감고 조금씩 굴복하는 것이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사민당과 노동조합 관료들이 파시즘으로부터 자기 목숨을 구하기 위해 선택한 길이 바로 이 길이었다. 결과는 귀하도 알고 있다: 이들은 자기 목을 잘렸다. 둘째는 현재 사회위기의 가차없는 성격을 이해하고 대중을 공세로 지도해 내는 것이다.

플: 그러나 귀하는 아직도 파시즘의 문제에 대해 대답하지 않았다. 급진적인 요구들을 내걸면 노동조합은 파시즘이라는 직접적 위험을 스스로 자초한다.

트: 그 문제를 나는 잠시도 잊어버리지 않았다. 급진적인 요구들을 내걸기 전에 이미 파시즘은 우리에게 위험으로 다가왔다. 파시즘은 자본주의의 쇠퇴와 해체로부터 나온다. 노동조합의 급진적 강령에 의해 파시즘이 잠시 강화된다고 치자. 그렇다면 이것의 위험을 노동자들에게 공개적으로 경고해야 한다.

바로 지금 실제적인 방식으로 특별 방어조직을 건설해야 한다. 다른 방법이 없다. 외교문서로 기병대의 공격을 막을 수 없듯이 민주적인 법, 결의문, 선언문 등으로 파시즘을 막을 수 없다. 자본이 고용한 파시스트 깡패와 도적들에 대항해 손에 무기를 들고 자신의 목숨과 미래를 방어하도록 노동자들을 교육시켜야 한다. 폭력행위에 대한 응징이 없는 분위기에서 파시즘은 급속히 성장한다. 파시스트 일개 부대가 나타나면 노동자들은 두 개, 세 개, 네 개의 부대를 보내 응징할 태세가 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시켜야 한다. 그러면 파시스트 영웅들은 꼬리를 두 다리 사이로 감추고 겁에 질려 도망갈 것이다. 이 점은 잠시도 의심할 수 없다. 노동자 조직을 방어할 뿐 아니라 파시스트 폭력의 희생자를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 자기방어 조직을 제때에 강력히 수립하는 길 밖에 없다. 부끄럽게 파멸 당하지 않으려면 노동조합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바로 이것이 되어야 한다. 노동계급은 노동자 민병대가 필요하다!                   

플: 그렇다면 이후의 전망은 무엇인가? 그러한 투쟁 방식이 노동조합을 결국 어디로 인도할 것인가?

트: 노동시간 연동제와 노동자 자기방어조직 수립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이것은 당연하다. 이것들은 노동자들을 기아나 파시스트의 칼에 죽지 않게 보호하는데 필요한 첫 번째 조치에 불과하다. 이것들은 자기방어의 시급하고 필요한 수단이다. 그러나 이것들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을 위한 좀더 나은 경제체제, 생산력의 활용을 위한 좀더 정당하고 합리적이고 품위 있는 기초를 세우는 것이 우리의 기본적 임무이다.

이것은 노동조합의 일상적이고 "정상적이고" 판에 박힌 방식으로는 성취될 수 없다. 나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본주의가 쇠퇴하는 시기에 고립된 노동조합들은 노동자의 상태가 더욱 악화되는 것을 막을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좀더 단호하고 심도 깊은 방식들이 필요하다. 생산수단과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자본가 계급은 경제를 완전히 가망 없는 무질서 상태로 이끌었다. 자본가 계급의 무능력을 선언하고 경제를 생기 있고 정직한 손 즉 노동자들의 손으로 이전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을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 첫 번째 조치는 명백하다: 모든 노동조합들은 단결하여 자신의 노동당을 건설해야한다. 루즈벨트나 라가디아의 노동당도 아니고 이름뿐인 노동당도 아닌 진정 독자적인 노동계급의 정치조직을 건설해야한다. (편집자 주: 이름뿐인 노동당은 미국노동당, American Labor Party, 을 가리키는데 이 정당은 뉴욕주에서 1936년 창당되었다. 이 정당은 사회주의 지향을 가진 노동자들의 표를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루즈벨트 그리고 공화당의 뉴욕시 시장 라가디아에게 몰아주기 위해 활동했다.)  이러한 정당만이 파산한 농민, 소규모 수공업자, 상점 주인들을 당 주위로 결집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은행, 트러스트, 독점기업 등과 이들의 정치 하수인인 공화당과 민주당에 대해 비타협적으로 투쟁해야한다. 노동당의 임무는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경제를 정돈시키는 일이다. 이것은 경제 전체를 단일한 합리적 계획에 따라 조직하는 것이다. 이것의 목표는 한줌 밖에 안되는 착취자들의 이윤이 아니라 1억3천만 미국인 전체의 물질적 정신적 이익이다.

플: 우리 활동가들의 많은 수는 정치발전의 과정이 노동당으로 향하고 있다고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루즈벨트의 인기는 여전히 대단하다. 그가 3번째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로 결정하면 노동당 문제는 4년 더 연기된다고 생각해야한다.

트: 지도자 양반들이 자기 밑에 있는 노동자들이 아니라 자기 위에 있는 부르주아 정치인들을 지향하는 것이 비극이다. 임박한 전쟁, 미국 자본주의의 쇠퇴, 실업과 빈곤의 증대, 이 모든 기본적 현상들은 수억 수백만 인민의 운명을 결정한다. 그런데 이들의 운명이 고작 루즈벨트의 출마나 "인기"에 달려있다는 말인가? 그는 실직 노동자들보다 보수를 많이 받는 산업노동조합회의 관료들에게 훨씬 더 인기가 있다. 이 점은 내가 보장한다. 그런데 노동조합은 관료들이 아니라 노동자들을 위해서 존재한다.

산업노동조합회의라는 노동조합 조직을 수립하자는 사고가 일정 기간 수백만 노동자들을 고무시켰다. 그렇다면 경제적 혼란, 실업, 불행 등을 끝장내고 인민과 그 문화를 구하는 목표를 가진 전투적 노동당에 대한 사고는 수천만 노동자들을 고무시킬 수 있다. 물론 노동당을 선동하는 활동가들은 즉시 말과 행동으로 자신들이 루즈벨트, 라가디아 등 부르주아 정치인들의 하수인이 아니라 착취당하는 대중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 진정한 투사임을 즉시 보여주어야 한다.

집회의 연사가 백악관의 하수인이 아닌 진정한 노동운동 지도자의 언어로 말한다면 노동조합원의 85%가 집회에 참가할 것이고 15%의 보수적 노인네들, 노동자 귀족들, 출세주의자들은 집회에 불참할 것이다. 대중은 지도자들보다 더 우수하고 더 대담하고 더 결연하다. 대중은 투쟁을 원한다. 투쟁에 브레이크를 거는 자들이 바로 지도자들이다. 이들은 대중보다 사태를 더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의 우유부단, 보수적 성향, 부르주아적 편견 등은 대중의 후진성이라는 핑계로 위장되어 있다. 이것이 현 상황이다.

플: 귀하의 생각에는 많은 진실이 들어있다. 그러나 이것들에 대해서는 다음에 얘기하기로 하자.            

 

     

              

       

<제 2부: 공산주의와 조합주의>

 

편집자 서문

본서 제 2부의 논문들을 통해 트로츠키는 계급투쟁의 현실 속에서 공산주의와 조합주의를 대비시키고 있다. 이 글들은 프랑스 조합주의 지도자 모나트의 정치적 궤적을 추적하고 있다. 모나트는 한때 볼세비키 혁명가였으나 잘못된 노선으로 혁명운동에 해악을 끼쳤다.

트로츠키는 공산주의와 조합주의의 문제를 역사적 전망 속에서 파악한다. 최근의 조합주의는 부분적으로 혁명노선을 걸었던 초기의 조합주의 경향이 정체되고 퇴보된 결과이다. 초기의 조합주의는 노동조합을 자본가의 이익에 종속시키는 정책에 반대해 투쟁한 혁명정당의 씨앗이었다. 그러나 국가의 성격 및 노동자 권력의 문제와 관련하여 이 경향은 당의 역할을 잘못 파악하였다. 바로 여기에서 이 경향의 전술적 오류가 파생되었다. 예를 들어 이들은 총파업을 사회개조의 중심 도구로 보는 잘못을 범하였다.

공산주의운동의 발전과 함께 혁명적 조합주의도 하나의 정치경향으로 발전, 완성되었다. 레닌과 트로츠키가 주도한 볼세비키당은 1917년 러시아에서 노동자 권력 투쟁을 지도하여 공산주의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러시아 노동자들은 혁명정당을 통해 강령, 조직, 전술을 통일시키고 국가권력 장악에 성공했다.

혁명정당의 핵심적 역할을 다룬 논문에서 트로츠키는 국가권력 문제에 대한 조합주의자들의 잘못된 사고를 비판한다. 그는 이 글에서 노동운동 내의 다양한 관료주의 현상들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노동조합 관료들의 반동적 성격을 설명하면서 트로츠키는 노동조합의 정치적 "독자성"이 노동조합 관료들이 주창하는 논리라는 진실을 밝힌다.

제 2부의 논문들은 맑스주의에 입각한 논쟁의 대가인 트로츠키가 1923년부터 1931년까지 쓴 것들이다. 이 때는 스탈린주의가 등장하던 시기였는데 좌익반대파의 지도자 트로츠키는 스탈린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공산주의자들의 노동조합 정책을 설명하고 있다. 물론 당시의 구체적 상황에 입각한 글들이기는 하지만 이 논문들이 제시한 기본 개념들은 지금도 그 유효성을 그대로 간직한 채 혁명적 노동자들의 중요한 지침이 되고 있다.

1923년의 두 논문은 삐에르 모나트의 혁명적 조합주의 그룹이 프랑스공산당에 입당한 직후 쓰여졌다. 1929년의 두 논문은 모나트가 과거의 노선으로 돌아가 공산주의에서 이탈할 시점에 쓰여졌다. [루비콘강을 건넌 모나트]는 조합주의자들이 노동조합의 개량주의 분파와 동맹을 맺은 후 1930년에 쓰여졌다. 이 논문은 조합주의자들과의 논쟁을 결산하고 있다. 마지막 논문은 1931년에 쓰여졌는데 맑스주의 노동조합 정책에 대해 당시 국제좌익반대파의 프랑스 지부가 논의했던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1969년

 

 

 

공산당 문제에 대해 프랑스 조합주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1920년 7월 31일)

 

<이 편지는 조합주의 신문 [노동자의 삶]의 편집자 삐에르 모나트에게 보낸 것이며 내용 전부가 이 신문에 실렸다. 모나트는 알프레드 로스메와 함께 제 1차 세계대전 중 국제주의 혁명운동을 이끌었다. 모나트와 로스메의 경향은 러시아 혁명을 성공시킨 볼세비키당과 제 3 인터내셔널(코민테른)에 대해 1920년 강한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로스메는 모스크바에 가서 코민테른 제 2차 세계대회 준비를 도왔다.

이 편지는 제 2차 세계대회 기간에 쓰여졌다. 이때 코민테른 지도부와 5개국 이상의 조합주의 대표들이 함께 모여 중요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 논의가 끝난 후 조합주의 대표들 대부분은 코민테른을 지지했다.

모나트를 비롯한 일부 지도적 프랑스 혁명가들은 이 대회에 참가하지 못했다. 이들은 1920년 5월의 대규모 파업투쟁을 주도하였다. 이 때문에 이들은 "무정부주의 음모"와 국가질서를 위협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재판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나트 동지에게,

동지는 지금 코민테른의 정치 및 조직 노선을 크게 의심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조합주의 운동이 정당에 종속될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견해를 밝히겠습니다.

우선 프랑스 조합주의 운동은 이미 정당에 완전히 종속되어 있습니다. 노동총연맹 위원장 주오나 그의 측근 뒤물렝, 메렝 등은 국회의원도 아니며 정당의 당원도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은 분업에 불과합니다. 사실 주오의 노동조합 정책은 부르주아 계급에 봉사하고 있습니다. 사회당의 지도자 르노델-롱게 등이 국회에서 하는 역할과 똑같습니다. 프랑스사회당 집행위원회가 부르주아 계급으로부터 이런 요청을 받는다고 합시다: 노동총연맹의 강령을 제정하고 연맹의 주요 간부들을 임명하시오. 당연히 이들은 주오-뒤물렝-메렝의 강령을 승인하고 이 신사양반들의 직책을 계속 유지시킬 것입니다. 주오 일당이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르노델-롱게가 노동총연맹의 대표가 되어도 프랑스의 정세나 프랑스 노동계급의 운명은 하나도 바뀌지 않습니다.

문제는 의회주의 또는 반(反)의회주의가 아닙니다. 그리고 공식 당원 문제도 아닙니다. 그 동안 우리가 쓰던 말들은 낡아빠져서 새로운 상황에 맞지 않습니다. 주오의 반의회주의는 르노델의 골수 의회주의와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노동조합운동은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 공식적으로 정당과의 관련을 부인할 지 모릅니다. 그러나 프랑스 부르주아 정당들은 주오 보다 더 맘에 드는 노동조합 대표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르노델-롱게 보다 더 좋은 "사회당" 국회의원들도 없을 것입니다. 물론 자본가들은 이들을 열심히 비난합니다. 그래야 노동운동 내에서 이들의 지위가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노동계급의 혁명적 목표

문제의 핵심은 의회주의나 조합주의가 아닙니다. 이것은 형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노동계급의 전위가 의회와 노동조합을 통해 수행하는 정책의 본질입니다. 부르주아의 계급 지배와 국가를 타도하는 것이 공산당 정책의 본질입니다. 그렇다면 파고들 수 있는 노동계급의 모든 생활 영역, 조직, 기구 즉 노동조합, 대중집회, 신문, 공산당 조직, 군대 내의 봉기를 준비하는 비밀 혁명조직 그리고 (선진노동자들이 진정 혁명적 대표를 선출할 경우) 의회 연단에서 이 정책들이 혁명적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부르주아 계급을 국가권력에서 몰아내고 이 계급의 폭력 및 억압기구들을 해체한 후 자기의 계급독재를 수립하는 것이 노동계급의 임무입니다. 부르주아 계급의 저항을 분쇄하고 가능한 한 빨리 공산주의 정신에 입각하여 모든 사회관계들을 개조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무정부주의를 들먹이면서 이 임무를 인정하지 않는 자들은 혁명가가 아니라 소부르주아 불평꾼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런 자들을 우리 대오에서 몰아내야 합니다. 이 문제는 잠시 후 다시 논의하기로 합시다.

노동계급의 임무는 혁명적 독재를 수단으로 부르주아 질서를 억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지도 알다시피 노동계급 내부의 계급의식은 다양한 편차를 보이고 있습니다. 노동계급의 가장 선진적인 소수 혁명분자들만이 공산주의 혁명의 임무를 올바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 소수가 더욱 확고하고 비타협적으로 행동하면 할수록 다수의 후진적 노동 대중으로부터 더욱더 많은 지지를 받습니다. 바로 여기에 소수 혁명분자들의 힘이 있습니다. 이들은 언제나 노동계급의 혁명 강령에 충성하며 노동계급의 대의를 위해 언제든지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계급의식이 가장 투철한 최상위 분자들입니다. 문제는 이들에 의해 노동 대중이 삶의 모든 측면에서 지도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자본주의, 교회, 민주주의 등의 수렁에 빠진 수백만 노동자들이 길을 잃지 않고 완전한 해방이라는 자신의 소망을 진정으로 실현할 수 있습니다.

 

공산당의 필요성

광범위한 노동대중을 포괄하는 노동조합만으로는 혁명을 성공시킬 수 없습니다. 대중을 교육하고 이들에게 구체적 상황마다 명확한 행동강령을 제시할 적극적 소수분자들이 필요합니다. 동지와 프랑스의 혁명적 조합주의자들은 이 올바른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이 적극적 소수분자들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이들은 지역이나 노동조합에 근거할 수 없습니다. 이 점은 명확합니다. 문제는 선진적인 금속노동자, 철도노동자, 목공노동자가 아니라 나라 전체의 가장 선진적인 노동자입니다. 이들은 하나의 조직으로 통일되어 명확한 행동강령을 수립해야 합니다. 자신들의 단결을 확고한 내부규율로 강화시키고 노동계급의 모든 투쟁, 모든 조직 특히 노동조합에 대한 지도력을 확보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동지는 공산주의 강령으로 통일되어 있으며 노동계급을 지도하여 자본의 요새를 공격할 준비가 된 이 적극적 소수분자들을 무엇이라고 부를 것입니까? 우리는 이들을 공산당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동지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정당은 지금의 프랑스사회당과는 공통점이 하나도 없다." 동지의 생각은 무조건 옳습니다. 우리가 사회당이 아니라 공산당을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동지는 지금 여전히 정당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나는 정당을 말하고 있습니다. 정당이란 말이 의회주의자, 전문직 수다쟁이, 소부르주아 약장수 등에 의해 크게 훼손되어 왔다는 것은 증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정당에게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노동조합도 그 지도자들이 전쟁 당시 그리고 지금 수행하고 있는 부끄러운 역할에 의해 그 이름이 심각히 훼손되었습니다. 이점은 누구나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노동조합이란 이름을 부인할 이유는 없습니다. 문제는 이름이 아니라 실체입니다. 공산당은 노동계급 독재와 공산주의 혁명의 강령으로 단결한 노동계급의 전위입니다.     

정치노선과 정당을 반대하는 주장은 무정부주의 경향을 은근히 위장하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무정부주의는 계급투쟁에서 국가의 역할을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프루동은 작업장이 국가를 없앨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미래 사회가 모든 국가적 요소들로부터 해방된 거대한 공장이 될 것이라는 의미에서만 올바릅니다. 왜냐하면 국가는 계급지배를 위한 억압 조직이기 때문이며 공산주의 사회에서 계급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문제는 이것입니다: 어떤 경로를 거쳐 공산주의에 도달할 것인가? 작업장들이 단결한다면 이것들이 서서히 자본주의와 국가를 대체할 것이라는 것이 프루동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이 생각은 순전히 공상이었음이 드러났습니다. 작업장은 강력한 생산력을 갖춘 대규모 공장으로 바뀌었고 이 대규모 공장은 다시 독점 트러스트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한편 프랑스의 조합주의자들은 노동조합이 모든 자본주의 소유관계와 부르주아 국가를 철폐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일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생각은 틀렸습니다. 총파업의 수단과 방법은 노동조합 조직의 수단이나 방법과 일치합니다. 따라서 노동조합은 총파업 상황에서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그러나 파업이 총파업으로 발전하려면 적극적 소수분자들이 대중에게 매일 매시간 혁명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물론 이 소수분자들은 특정 직종 노동조합의 틀이 아니라 명확한 노동계급 혁명 강령의 틀로 결집되어야 합니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이것이 바로 공산당입니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없이 총파업이 발생한 경우도 있습니다. 1905년 러시아의 10월 파업이 그랬습니다. 반면 1919년 7월과 1920년 5월 프랑스 노동조합들은 총파업을 조직했지만 실패했습니다. 프랑스에 혁명을 지도하는 조직 즉 공산당이 없기 때문입니다. 공산당은 노동계급의 봉기를 체계적으로 매일 매일 준비할 것입니다. 노동조합처럼 이따금 상징적 대중시위를 즉흥적으로 준비하는 짓은 하지 않습니다.

 

노동조합 투쟁방식의 한계

그러나 노동조합 조직으로 가장 잘 수행될 수 있는 총파업만으로는 부르주아 질서를 타도할 수 없습니다. 총파업은 공격의 수단이 아니라 방어의 수단입니다. 우리는 부르주아 질서를 타도해 국가기구를 자본가들 손에서 빼앗아야 합니다. 부르주아 계급은 국가를 통해 군대의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노동계급이 군대와 맞서면서 이 군대의 가장 선진적인 부위를 혁명의 편으로 끌어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반혁명 분자들을 잔인하게 공격하는 공개적인 봉기에 들어가야 합니다. 이를 통해서만 노동계급은 혁명 상황을 장악하는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봉기는 선동, 조직, 기술의 측면에서 정열적이고 치밀한 준비를 필요로 합니다. 삶의 모든 측면에서 자행되는 부르주아 계급의 범죄와 죄상이 매일 폭로, 비판되어야 합니다. 식민지에 대한 잔혹한 억압을 자행하는 대외정책, 자본주의 과두제의 폭력 정치를 자행하는 국내 정책, 부르주아 언론의 야비함 등 모두가 진정한 혁명적 비판의 대상이 되어 혁명적 결론을 이끄는데 도움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주제들은 노동조합 조직의 틀과 임무를 넘어섭니다.

이와 함께 노동계급의 봉기를 지원할 조직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노동조합 지부, 공장, 작업장마다 공통의 사상으로 밀접히 조직되어 결정적인 순간에 단결된 힘으로 대중을 이끌 노동자 그룹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올바른 길을 제시하고 오류로부터 이들을 보호하고 승리를 보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군대에 침투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연대에 긴밀히 결합된 혁명적 병사 그룹이 조직되어 격전의 순간에 인민의 편으로 넘어갈 준비와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또한 전체 연대를 이끌 수 있어야 합니다. 공통의 사상으로 조직되고 결집된 이들 혁명적 노동자 그룹은 중앙 집중화된 공산당의 세포로 존재할 때만 완벽히 성공할 수 있습니다.

군대 및 정부의 각급 조직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들, 모든 지배 파벌의 계획과 음모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는 공개적 비공개적 동지들이 있어야 합니다. 이들이 수집한 정보는 당연히 우리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같은 방식으로 공산주의 혁명에 진실로 충성하며 우리 당의 합법 비합법 조직과 밀접히 결합하여 활동하는 노동자들, 당의 규율에 절대적으로 복종하여 부르주아 정치 본부의 하나인 의회에서 혁명적 노동자의 대표로 언제든지 의회 연단을 혁명의 바리케이드로 바꿀 노동자들이 있다면 우리의 입지는 크게 강화될 것입니다.

물론 르노델, 상바, 바렌느는 이 역할을 맡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카알 리프크네히트가 있습니다. 그 역시 의원이었습니다. 자본가들과 사회애국주의 일당들은 그의 목소리를 죽이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독일 압제자들의 머리 위로 그가 던진 몇 마디의 비난과 호소는 수십만 독일 노동자들의 계급의식과 양심을 일깨웠습니다. 그는 의회에서 포츠담 광장으로 나아가 노동 대중이 공개적으로 투쟁에 나설 것을 호소했습니다. 포츠담 광장에서 그는 감옥으로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바로 혁명의 바리케이드로 나갔습니다. 소비에트 권력과 노동계급 독재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그는 독일 제헌의회 선거에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는 공산당 병사들을 조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혁명을 수행하면서 죽음을 맞았습니다.

카알 리프크네히트는 어떤 인물이었습니까? 조합주의자? 의회주의자? 기자? 아닙니다. 그는 혁명적 공산주의자였습니다. 모든 장애물을 돌파하여 노동자들에게 다가가는 길을 아는 동지였습니다. 그는 노동조합의 각성을 촉구하며 주오나 메렝 같은 관료들을 비난했습니다. 그는 병사들 사이에서 당 활동을 수행하면서 봉기를 준비했습니다. 그는 합법적 비합법적 혁명 신문과 호소문을 제작했습니다. 그리고 비밀리에 수행했던 임무를 의회에서는 공개적으로 수행했습니다.

 

노동계급 독재의 기관들

프랑스 노동계급의 최우수 분자들이 중앙 집중화된 것이 프랑스 공산당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국가권력을 장악할 수 없습니다. 부르주아 경찰과 군대 그리고 생산수단의 사적소유체제 역시 제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조치들이 없으면 작업장은 결코 국가를 대체할 수 없습니다. 러시아 혁명이 성공한 지금 이 점을 확실히 파악하지 못한 사람들은 혁명가가 될 가망이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노동계급이 봉기를 성공시켜 국가권력을 장악했다 하더라도 행정력을 노동조합으로 전이시키면 부르주아 국가기구를 즉시 청산할 수 없습니다. 노동계급 상층 부위를 업종과 산업별로 조직한 것이 노동조합입니다. 노동계급의 국가권력은 노동계급 전체의 혁명적 이해와 요구를 대변해야 합니다. 노동계급 독재의 기관이 노동조합이 아니라 소비에트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소비에트는 모든 노동자들에 의해 선출됩니다. 이중에는 노동조합에 속할 행운을 누려본 적이 없으며 혁명으로 처음 운동에 눈을 뜬 수백만 노동자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소비에트를 건설하는 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소비에트는 명확한 혁명 정책을 구현해야 합니다. 적과 동지도 명확히 구별해야 합니다. 필요에 따라 단호하고 무자비한 조치들을 취할 수 있어야 합니다. 헝가리, 바바리아, 러시아의 혁명이 보여주듯이 부르주아 계급은 한번의 패배로 무기를 내려놓지 않습니다.(편집자 주: 1919년 봄 헝가리와 독일 바바리아주에 수립되었던 노동자 병사 소비에트 혁명 공화국은 몇 개월 내로 타도되었다. 러시아 소비에트 공화국은 1918년부터 1920년까지 내전에 직면했고 열 개가 넘는 국가들의 무력 개입을 당했다.) 이와 정반대로 어느 정도의 손실을 당한 지를 알기 시작하면 절망감이 이 계급의 힘을 두 배 세 배 증가시킵니다. 소비에트 체제는 국내외 반혁명에 대항하여 가혹하게 투쟁하는 체제입니다. 다양한 편차의 계급의식을 가진 노동자들이 선출한 소비에트에게 누가 명확하고 결연한 행동강령을 제시할 수 있습니까? 혼란스럽고 엉클어진 국제정세에서 소비에트가 올바른 노선을 걷도록 지원할 수 있는 이들이 누구입니까?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동질적인 강령으로 결집되었으며 계급의식이 가장 투철하고 경험이 가장 풍부하며 가장 선진적인 노동자들이 바로 이들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공산당으로 조직되어 있습니다.

일부 단순한 자들 아니면 교활한 자들이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러시아에서 공산당이 소비에트와 노동조합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다". 어떤 조합주의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프랑스 노동조합은 독자성을 요구한다. 그리고 어떤 정당이든 노동조합에게 지시를 내릴 수 없다." 그런데 모나트 동지, 프랑스와 미국 자본가들의 직계 하수인인 주오가 내리는 지시를 프랑스 노동조합들이 받아들이고 있지 않습니까? 프랑스 노동조합이 형식적 독자성을 가진들 부르주아 계급의 지시를 거부할 방법이 없습니다. 러시아 노동조합은 이렇게 이름뿐인 독자성을 포기했습니다. 이들은 부르주아 계급을 타도하고 러시아의 주오, 메렝, 뒤물렝 등을 대오에서 쫓아내고 대신 충성스럽고 경험이 풍부하며 믿을만한 투사인 공산당원들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들은 부르주아 계급에 대한 독자성과 승리를 모두 확보했습니다.

우리 당이 노동조합과 소비에트를 지도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면 언제나 이랬습니까? 아닙니다. 우리 당은 후진적이고 무원칙한 분자들 뿐 아니라 멘세비키, 사회혁명당 등 소부르주아 정당들과의 무자비한 투쟁을 통해 지도적 위치를 획득했습니다. 우리가 타도한 멘세비키들은 우리가 "무력으로" 다수를 획득했다고 주장합니다. 국가의 무장력을 쥐고 있던 짜르, 부르주아 계급, 연립정부 등을 타도한 노동자 대중이 어떻게 소비에트를 지도하는 공산당의 "강제력"을 인정합니까? 더욱이 이들이 어떻게 공산당에 갈수록 무더기로 가입합니까? 이 현상에 대한 설명은 이것 밖에 없습니다: 지난 수년간 러시아 노동자들은 거대한 경험과 실천을 통해 다양한 정당, 그룹, 파벌 등의 정책을 확인하고 이들의 말과 행동을 비교하며 최종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입니다. 즉 난관과 성공 등 혁명의 모든 순간에 자신들에게 진실했던 유일한 정당은 공산당이었으며 지금도 그렇다는 결론을 노동자들은 받아들였습니다. 노동자들의 선거 집회와 노동조합 회의 때마다 대중들이 공산당원들을 가장 책임이 무거운 직책에 선출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이것이 바로 공산당의 지도적 역할입니다.

 

혁명적 단결

현재 모나트 동지와 로스메 등 혁명적 조합주의자들 좀더 정확히 말하면 공산주의자들은 노동조합 내에서 소수파에 불과합니다. 이들은 개량주의 즉 순전히 부르주아 노선을 추종하는 다수파의 책략을 비판하고 비난하는 반대파입니다. 소부르주아 개량주의를 지지하는 프랑스 사회당 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공산주의자들도 같은 입장에 있습니다.

모나트 동지와 주오가 같은 조합주의 노선을 추구하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이들은 서로 적입니다. 한쪽은 노동계급의 대의에 충실하며 또 한쪽은 위장된 형태로 부르주아 노선을 추종하고 있습니다. 로리오와 르노델-롱게가 같은 노선을 추구합니까? 아닙니다. 한쪽은 노동계급을 혁명적 독재의 길로 인도하고 있으며 또 한쪽은 노동대중을 민족적 부르주아 민주주의로 종속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면 모나트 동지의 노선은 로리오 동지의 노선과 어떻게 다릅니까?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모나트 동지는 노동조합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로리오 동지는 주로 정치조직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분업에 불과합니다. 진정한 혁명적 조합주의자는 진정한 혁명적 사회주의자와 마찬가지로 공산당을 통해 단결해야 합니다. 이들은 이질적인 다른 조직 내에서 서로 반대하는 위치에 설 수 없습니다. 코민테른의 깃발 아래 모인 독립적 조직으로서 이들은 광범위한 대중에게 얼굴을 향하고 이들의 모든 문제들에 대해 명확하고 정확한 해답을 제시하며 이들의 투쟁 전체를 지도하고 이들을 공산주의 혁명의 길로 인도해야 합니다.

노동조합, 협동조합, 정치조직, 신문사, 군대의 비합법 써클, 의회 연단, 지방의회 등등은 조직, 실천적 방식, 지지의 다양한 형식들에 불과합니다. 투쟁의 내용은 같되 활동 분야가 다를 뿐입니다. 이 투쟁은 노동 대중의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지도 전위는 공산당입니다. 공산당 내에서 진정 혁명적인 조합주의자들이 명예로운 자리를 차지해야 합니다.

 

                   경의를 표하며, 레온 트로츠키 

 

 

조합주의 동지들과의 필요한 논의(1923년 3월 23일)

 

<1920년 12월 뚜르에서 열린 프랑스사회당 전당대회는 표결로 코민테른 가입을 결정하고 당명을 프랑스공산당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당내 소수파는 대회장에서 퇴장하여 새로 사회당을 창당했다. 그러나 공산당의 지도자 다수는 코민테른의 정치적 조직적 사상을 완전히 승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후 당내 투쟁이 가열되었다. 1922년 말 열린 코민테른 제 4차 세계대회는 프랑스공산당에 대한 3개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에 반대하여 프랑스공산당 총서기 루이-오스카 프로싸르 등 당지도부 우파 다수가 탈당했다.

동시에 기관지 [노동자의 삶]으로 결집한 혁명적 조합주의자들과 공산당 사이에는 더 광범위한 합의가 도출되었다. 그러나 단일노동총연맹이 적색노동조합인터내셔널에 가입할 것을 권유하는 공산당의 방침을 이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적색노동조합인터내셔널은 1921년 7월 코민테른의 지도하에 창립되었다. 적색노동조합인터내셔널이 대표를 코민테른 집행위원회에 출석시키고 동시에 코민테른 대표를 자신의 지도기구에 포함시킨 것에 대해서 특히 혁명적 조합주의자들은 반대했다. 이들에 의하면 이러한 조치는 노동조합을 정당에 종속시키는 행위라는 것이었다. 이 견해를 주창한 인물 가운데 로베르 루종이 있었다. 그는 공산당 지도자였으며 동시에 [노동자의 삶]의 기고자였다.

1922년 11월과 12월에 열린 세계대회에서 적색노동조합인터내셔널은 조직적으로 코민테른과 관계를 맺지 않기로 결정했다. 단일노동총연맹과 다른 조합주의 조직들 간의 통합을 막는 불필요한 장애물을 제거하려는 양보조치였다. 그러자 단일노동총연맹은 적색노동조합 인터내셔널에 가입했다.>

 

이 글은 루종 동지의 주장에 대한 답변으로 코민테른 제 4차 세계대회가 끝난 직후 작성되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사회당 우파 즉 베르푀이, 프로싸르 등에 대한 투쟁에 더 많은 관심이 집중되었다. 이 투쟁에서 우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조합주의자들과 단결하였다. 따라서 나는 그때 이 논문의 출판을 연기하는 선택을 했다.

혁명적 조합주의자들과의 깊은 교감은 계속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우리의 오랜 친구인 모나트가 공산당에 가입한 것은 커다란 경사였다. 혁명은 그와 같은 동지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혼란스러운 사상과 화해하는 것은 올바르지 못하다. 최근 몇 달간 프랑스공산당은 정화되고 강화되었다. 따라서 이제 조합주의 동지들과 조용하고 동지애 어린 논의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동지들과 우리는 할 일이 많으며 같이 투쟁할 날이 많을 것이다.

일련의 논문과 개인적 설명들을 통해 루종 동지는 당과 노동조합의 관계에 대한 근본 문제에 대해 코민테른이나 맑스주의의 관점과는 근본적으로 벗어난 견해들을 제출하였다. 일부 프랑스 동지들의 견해를 나는 습관적으로 존중한다. 이 동지들은 노동계급에 대한 루종 동지의 헌신 그리고 그의 인물에 대해 커다란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 중요한 문제에 대한 그의 오류들을 정정하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 루종 동지는 노동조합의 완벽하고도 무제한적인 독자성을 옹호한다. 그런데 노동조합의 독자성이란 무엇에 대한 독자성을 의미하는가? 물론 일부 세력의 공격에 대한 독자성을 의미할 것이다. 그런데 이 일부 세력이란 무엇인가? 다름이 아닌 정당이다. 논란의 여지없이 필요한 노동조합의 독자성을 루종 동지는 절대적이고 거의 신비에 가까운 경지에 올려놓고 있다. 그리고 이 아주 잘못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는 다름이 아닌 맑스를 인용하고 있다.

노동조합은 "노동계급 전체"를 대표하지만 정당은 정당에 불과하다고 이 동지는 주장한다. 따라서 노동계급 전체는 정당에 종속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주장에 의하면 노동조합과 정당은 동등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노동계급은 그 자체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정당은 노동계급에게 봉사하거나 종속되어야 한다. 따라서 정당은 노동계급을 "종속"시킬 수 없다. 지난 모스크바 세계대회까지 코민테른과 적색노동조합인터내셔널은 각자의 주요 기구에 대표들을 파견했다. 그런데 이 상호 대표성은 이 동지의 견해에 따르면 당과 계급을 실제로 동등한 위치에 올려놓고 있기 때문에 틀렸다. 현재 이 상호 대표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정당은 다시 원래의 부차적 지위로 돌아갔다. 루종 동지는 이 점에 찬동한다. 그는 이것이 또한 맑스의 견해라고 생각한다. 정당 인터내셔널과 노동조합 인터내셔널 사이의 상호 대표성을 종식시킨 것은 라쌀레(!)와 사민주의자(!)들의 오류를 정정하고 맑스주의의 원칙으로 돌아간 것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지금까지 소개한 루종 동지의 견해는 [노동자의 삶] 12월 15일자에 실린 논문의 핵심 내용이다. 그런데 이 논문과 루종 동지가 그 동안 작성한 다른 논문들에는 놀라운 사실이 있다: 프랑스의 현실에 대해 그는 의식적으로 눈을 감고 있다. 특히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논문은 어느 별나라에서 작성한 것처럼 느껴진다. 노동조합이 "노동계급 전체"를 대표한다는데 그는 어느 나라를 말하고 있는가? 우리가 알고 있기로는 프랑스의 경우 노동조합은 노동계급의 절반도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 무정부주의자들 일부의 지원을 받은 개량주의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프랑스 노동조합 조직을 분열시키는 범죄행위를 저질렀다. 현재 노동조합의 두 연맹 어느 쪽도 조합원이 30만 명을 넘지 못한다. 두 연맹을 다 합쳐도 노동계급의 적은 부분만이 포괄되므로 노동조합이 노동계급 전체를 대표한다고 주장할 권리가 없다. 더욱이 두 연맹의 정책은 서로 다르다. 개량주의 연맹은 부르주아 계급과 협조하고 있으나 다행스럽게 단일노동총연맹은 혁명 노선을 견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 혁명적 연맹에서 루종 동지는 하나의 분파를 대표하고 있을 뿐이다.

루종 동지는 노동조합과 노동계급을 하나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노동계급이 자체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그의 주장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프랑스 노동계급은 누구의 도움으로 어떻게 이 목표를 실현하고 있는가? 주오의 도움으로? 물론 아니다. 단일노동총연맹의 도움으로? 이 연맹은 노동계급의 이익에 이미 크게 기여해왔다. 그러나 아직도 노동계급 전체의 이익에 기여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왕 말한 것 전부 따져보기로 하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단일노동총연맹은 "조약파" 무정부주의 조합주의자들에 의해 장악되었었다.(편집자 주: 프랑스 노동조합운동의 지도부에서 공산주의자들을 배제시키려는 비밀조약이 1921년 2월에 18명의 무정부주의자들과 조합주의자들에 의해 조인되었다. 이들은 당시 노동총연맹의 분열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음 해에 이 비밀조약이 공개되었고 1922년 6월 단일노동총연맹의 창립대회에서 공산주의자들의 지원을 받은 혁명적 조합주의자들이 다수파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 주도권이 조합주의적 공산주의자들의 손으로 넘어갔다. 누가 지도부에 있을 때 노동계급의 이익이 가장 잘 대표되었는가? 그리고 이것을 누가 판단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우리 당의 국제적 경험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루종 동지에게는 죽을죄에 해당된다. 왜냐하면 노동계급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정책을 당이 판단하도록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당을 노동계급보다 우위에 두는 행위이다. 그런데 노동계급 전체의 도움을 구하려고 하는데 이들은 분열되어 있고 무기력하며 말도 못하는 벙어리가 아닌가? 다른 연맹으로 조직되어 있고 같은 연맹 안에서도 다른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어 있고 같은 노동조합 안에서도 각기 다른 그룹으로 조직된 노동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각자 다른 해답을 내놓을 것이다. 그리고 두 연맹에도 소속되지 못한 절대 다수의 노동자들은 어떤 해답도 제시하지 못할 것이다.

노동조합이 노동계급 전체를 포괄하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일부 나라에서는 노동조합이 최소한 노동계급의 다수를 조직하고 있다. 물론 프랑스는 이 경우에 속하지 않는다.

루종 동지에 의하면 당은 노동계급을 "종속시키면" 안된다. 이것은 무슨 의미인가? 그리고 조합주의에게 노동계급을 종속시킬 권리를 부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는 이렇게 말할 지도 모른다: "우리 노동조합 조직은 허약하다. 그러나 이 조직의 미래와 최후의 승리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는다." 여기에 대해서 우리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물론 우리도 그 확신에 공감한다. 그러나 당 역시 노동계급 절대 다수의 무제한적인 신임을 확실히 획득할 것이다."

당이든 노동조합이든 노동계급을 "종속"시키는 것은 문제될 것이 없다. 혁명에 반대하는 자들이 사용하는 말을 루종 동지가 사용하는 것은 올바르지 못하다. 문제는 노동계급의 신뢰를 획득하는 것이다. 그런데 경험으로 확인된 올바른 전술들을 통해서만 노동계급의 신뢰를 획득할 수 있다. 그렇다면 누가 이 전술들을 의식적으로 면밀하게 준비하는가? 누가 노동계급에게 이 전술들을 제안하는가? 물론 이 전술들은 하늘에서 저절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노동계급 전체 "자신들이" 이것들을 가르쳐 주지도 않는다. 루종 동지는 이 문제를 한번도 겪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노동계급은 자신만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신비로운 가식을 걷어치운다면 이 문장의 뜻은 이렇다: 노동계급의 역사적 임무는 생산, 사회, 국가 내에서 이 계급이 처해 있는 사회적 위치에 의해서 결정된다. 이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러나 이 진리는 지금 우리에게 제시된 문제에 대해 해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자신의 객관적 위치에 의해 제기되는 역사적 임무를 노동계급이 어떻게 주관적으로 꿰뚫어 파악할 것인가? 노동계급 전체가 자신의 역사적 임무를 즉시 파악할 수 있다면 당이나 노동조합은 필요 없을 것이다. 그리고 혁명은 노동계급의 탄생과 함께 저절로 완수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이다. 노동계급이 자신의 역사적 임무를 통찰하는 과정은 시간이 대단히 오래 걸릴 뿐 아니라 고통과 내적 모순들로 가득 차있다.

노동계급의 최우수 분자인 전위가 혁명에 기여하는 올바른 투쟁방식을 통찰하려면 오랜 투쟁, 혹독한 시련, 수많은 동요, 상당한 경험을 거쳐야한다. 이것은 당이건 노동조합이건 마찬가지이다. 노동조합 역시 처음에는 적극적인 노동자들로 구성된 소규모 그룹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투쟁경험이 축적되면서 대중의 신뢰를 획득할 능력을 보유하고 서서히 세력을 확대한다. 그러나 혁명 조직이 노동계급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분투하는 동안 부르주아 선전꾼들은 "노동계급 전체"를 노동자 정당 뿐 아니라 노동조합에도 대치시킨다. 그리고 이 조직들이 노동계급을 "종속"시키려고 음모를 꾸민다고 비난한다. 파업이 있을 때마다 부르주아 일간지 [시대]는 이러한 내용의 논조를 편다. 다른 말로 하면 부르주아 선전꾼들은 즉자적인 노동계급을 대자적인 노동계급과 대치시킨다. 왜냐하면 노동계급이 서서히 역사의 주인이 되는 과정은 계급의식이 투철한 소수분자들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루종 동지가 노동계급을 지도하겠다는 당의 "부당한 주장"에 대해 가하는 비판은 노동조합의 "부당한 주장"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그렇다. 왜냐하면 다시 반복하지만 프랑스 조합주의의 조직과 이론은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당과 같다. 프랑스 조합주의가 그 전성기(1905-7)에 "노동계급 집단" 이론이 아니라 "적극적 소수 분자" 이론을 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왜냐하면 사상의 통일로 결집된 적극적 소수분자는 당 이외에 다른 무엇일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투철한 계급의식을 가진 적극적 소수분자가 없는 노동조합 대중조직은 순전히 껍데기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프랑스 조합주의는 그 대오 내에 견해 차이들이 존재하자마자 분열되었다. 이 사실은 이 경향이 당이라는 점을 충분히 증명한다. 그러나 프랑스 노동계급은 정당에 대해서 혐오감을 가지고 있다. 혁명적 조합주의 당이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따라서 당이라는 이름을 갖지 않은 채 불완전한 조직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 경향은 조직원을 노동조합에 침투시키거나 최소한 노동조합을 방패 삼아 그 뒤에서 모습을 숨기는 정당이다. 따라서 노동조합들이 조합주의 경향, 분파, 파벌에 의해 실제로 장악된 현상이 이로써 충분히 설명된다. 조약파 역시 같은 방식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이 파는 노동조합 조직 내에 둥지를 튼 당의 비밀결사 형태이다. 그리고 이의 역도 성립한다. 노동총연맹의 조직 분열은 프랑스 노동조합운동이 조합주의 정당들로 변모한 형태이다. 이 현상을 코민테른은 극렬 반대한 바 있었다. 노동계급 전체의 역사적 임무 그리고 노동계급이 이 임무를 완수하는 데에 노동조합이 가지고 있는 지대한 독자적 의의에 대해 코민테른은 깊은 관심을 두고 있었다. 이런 측면에서 코민테른은 창립 당시부터 맑스주의 정신에 입각하여 노동조합의 실제적 독자성을 옹호해왔다.

프랑스의 혁명적 조합주의는 많은 측면에서 공산당의 전신이었다. 이 경향은 공개적으로 당이 되지 않았지만 정당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따라서 노동조합이 전체 노동계급의 조직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광범위한 대중의 조직이 되는 것을 막았다. 사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전체 노동계급을 포괄하는 조직은 존재할 수 없다.

공산주의자들은 당이라는 이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당은 다른 정당들과 공통점도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당은 부르주아 정당이 아니다. 노동계급의 적극적이며 계급의식이 투철한 소수분자들로서 노동계급의 혁명전위이다. 따라서 이론이나 조직에서 노동조합을 방패 삼아 숨을 이유가 없다. 이들은 밀실 음모를 꾸미면서 노동조합을 이용하지 않는다. 이들은 노동조합 내에서 소수파일지라도 조직을 분열시키지 않는다. 그리고 노동조합의 독자적 발전에 장애를 초래하지 않는다. 이들은 모든 힘을 다해 노동조합 투쟁을 지원한다.

그러나 동시에 공산당은 노동조합 문제를 포함해 노동계급 운동의 모든 문제들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표명할 권리를 갖는다. 또한 노동조합의 전술을 비판하고 명확한 제안을 제출할 권리도 갖는다. 물론 이러한 비판과 제안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것은 노동조합의 자유이다. 당은 노동계급 특히 노동조합으로 결집된 부위의 신뢰를 획득하려고 노력한다.

루종 동지가 인용한 맑스의 말은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노동자 정당이 노동조합으로부터 탄생할 것이라고 맑스는 1868년 어느 글에서 밝혔다. 그러나 이 글을 쓸 때 그는 주로 영국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당시 영국은 유일한 자본주의 선진국이었으며 노동조합이 상당수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때로부터 이미 50년이 지났다. 영국에 관한 맑스의 예언은 올바르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영국노동당은 노동조합의 기반 위에 탄생했다. 그러나 헨더슨과 클라인즈 같은 개량주의자들이 주도하는 지금의 영국노동당이 노동계급 전체의 이익을 대표하고 있다고 루종 동지는 진정 믿고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영국의 노동조합은 다른 어떤 나라에 비해서도 노동계급을 많이 포괄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조합 관료들과 똑같이 노동당은 영국 노동계급의 이익을 배신하고 있다.

한편 노동조합에서 탄생한 영국노동당 내에서 공산주의의 영향력은 증대할 것이다. 배신적인 관료층이 노동조합으로부터 완전히 축출되고 노동당이 완전히 변모하고 재생될 때까지 노동조합 내에서 대중과 관료적 지도자들간의 투쟁은 격화될 것이다. 이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제 3 인터내셔널은 소규모의 영국공산당을 산하에 두고 있다. 그리고 노동조합에서 탄생한 영국노동당을 거느린 제 2 인터내셔널에 대항해 투쟁하고 있다. 이 조직에 루종 동지와 우리가 같이 소속되어 있다.

자본주의 발전의 법칙으로 보아 러시아는 영국의 정반대였다. 이 나라에서 과거 사회민주주의당으로 활동했던 공산당은 노동조합보다 먼저 창립되어 노동조합을 건설했다. 현재 노동조합과 노동자국가는 완전히 공산당의 지도를 받고 있다. 루종 동지는 러시아가 맑스주의 원리를 위반하면서 발전했다고 주장할 것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더 간단하다: 노동조합에서 정당이 탄생한다는 맑스의 주장은 영국에서 올바른 것으로 증명되었다. 물론 이 경우에도 그의 주장이 100% 맞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가 한때 "초역사적" 원리라고 경멸적으로 말한 법칙을 세울 의사가 그에게는 조금도 없었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들은 이 문제와 관련하여 모두 영국과 러시아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일부 나라에서 노동조합은 정당보다 더 오래되었고 이와 반대의 경우도 있다. 그러나 영국 그리고 부분적으로 벨기에를 제외한 어느 나라에서도 노동자 정당이 노동조합에서 탄생한 경우는 없다. 어쨌든 노동조합에서 유기적으로 성장한 공산당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코민테른 소속 정당 모두가 후레자식(서자)은 아니다.

영국 노동조합들은 보수당과 자유당을 돌아가면서 지지하여 어느 정도 이들의 종속물이 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독일 노동자들의 정치조직이 민주당의 좌파에 지나지 않았을 때도 있었다. 또한 라쌀레와 아이제나하의 추종자들이 서로 싸우던 때가 있었다.(편집자 주: 독일이 통일되어 부르주아 혁명을 완성시킬 1800년대 중반부에 독일의 노동자 조직들은 민주당의 좌파였다. 아이제나하는 1869년 맑스의 지지자들이 독일사회민주노동자당을 창당한 독일의 도시이다. 이의 대항 조직인 독일노동자총연맹은 페르디난트 라쌀레의 지지자들이었다. 이 두 조직은 1875년 고타에서 통합대회를 열고 독일사회민주주의당을 창당했다.) 이때 맑스는 노동조합이 모든 정당들로부터 독자성을 유지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모든 부르주아 정당들과 노동자 조직들을 대치시키고 이 조직들이 사회주의 종파들과 너무 가까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이 주장이 나왔을 뿐이었다.

또한 맑스가 제 1 인터내셔널을 창립했다는 사실을 루종 동지는 아마 기억할 것이다. 이 조직의 목적은 각국 노동자운동을 모든 측면에서 지도하여 운동의 결실을 맺는 것이었다. 이 역사적 사건은 1864년에 일어났으며 맑스가 창립한 인터내셔널은 정당이었다. 그는 노동조합으로부터 노동계급의 국제정당이 탄생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다만 최선을 다해 노동조합 내에 과학적 사회주의 사상의 영향력을 강화시키려고 애썼을 뿐이었다. 물론 이 사상은 1847년 발표된 공산당 선언에 처음 표현되었다.

부르주아 및 소부르주아 정당과 종파들로부터 완전히 독립할 것을 맑스는 노동조합에게 요구했다. 과학적 사회주의 사상이 노동조합의 지배적 사상이 되도록 하는 것이 그의 목적이었다. 당시 의회주의 민주주의 정당들은 과학적 사회주의 정당이 아니라고 맑스는 판단했다. 그에게 인터내셔널은 노동계급 내에서 계급의식이 투철한 소수 전위를 의미했다.

루종 동지의 노동조합 사상과 맑스에 대한 해석이 일관성을 가지려면 그는 이렇게 말해야한다: "지금의 공산당을 버리고 노동조합으로부터 새로운 정당이 탄생할 때까지 기다리자." 그러나 이런 식의 논리는 정당 뿐 아니라 노동조합에게도 치명적이다. 계급의식이 투철한 최우수 분자들이 노동계급의 혁명적 전위로 결집하여 공산당이 조직될 때만 프랑스 노동조합은 단결을 회복하고 대중에 대해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맑스는 정당과 노동조합의 관계에 대해 최종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이 관계는 상황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당과 노동조합 연맹이 서로의 중앙위원회에 대표를 파견하든 필요에 따라 합동위원회를 조직하든 이것은 결정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조직 형식은 달라질 수 있으나 정당의 근본 역할은 언제나 같다. 이름에 걸 맞는 정당은 노동계급 전위를 포괄하여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영향력을 노동운동의 모든 분야에 행사해야 한다. 그리고 이름에 걸 맞는 노동조합은 증대하는 노동자 대중 그리고 이들 가운데 후진적 부위들을 포괄해야한다. 그러나 이 조직은 확고한 원칙에 의해 의식적으로 지도될 때만 자신의 임무를 다할 수 있다. 그리고 최우수 분자들이 노동계급 혁명정당에 결집될 때만 이 지도력은 행사될 수 있다.

최근 프랑스공산당은 자기 정화를 통해 불평하는 소부르주아 분자, 응접실의 영웅, 우유부단한 정치분자, 구역질나는 출세주의자들을 모두 몰아내고 혁명적 조합주의자들과 화해했다. 이것은 노동조합 조직과 정치조직 사이의 올바른 관계설정을 위한 거대한 진전이다. 그리고 이것은 혁명을 위한 거대한 진전이기도 하다.        

 

또다시 무정부주의적 조합주의가 머리를 쳐들고 있다!(1923년 5월 8일)

<이 논문은 로베르 루종이 쓴 "노동조합과 정당"에 대한 응답으로 쓰여졌다. 두 논문은 모두 1923년 6월 14일 [국제 서신]이라는 이름의 잡지에 실렸다.>

 

루종 동지의 새 논문은 이전 논문들보다 더 많은 오류들을 가지고 있다. 다만 이 논문은 그 논조가 이전의 것들과는 사뭇 다를 뿐이다.

노동조합이 "노동계급 전체"를 대표하고 있다는 전제가 이전 논문들의 출발점이었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필자는 이렇게 시작했다: 루종 동지는 어느 별나라에서 글을 쓰고 있다. 그러자 최근 논문에서 그는 자신의 보편법칙을 던져버리고 프랑스 조합주의라는 일국적 원리를 제시했다. 이제 그는 인정한다: 프랑스 노동조합은 노동계급의 전체가 아니라 적극적 소수만을 대표하고 있다. 즉 루종 동지는 노동조합이 일종의 혁명정당이라고 인정한다. 그러나 이 조합주의 정당은 그 구성인원이 순전히 노동계급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점에서 이 정당은 공산당에 비해 대단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장점이 하나 더 있다: 조합주의 정당은 부르주아 국가기구를 단연코 거부한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인정하지" 않으며 의회에서의 투쟁을 거부한다.

루종 동지는 자신이 프랑스 사회발전의 특수성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있다고 지치지 않고 반복한다. 광범위한 일반화를 시도하면서 그는 맑스를 조합주의자로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영국, 러시아, 독일을 별개로 취급하고 있다. 영국의 노동조합과 노동당이 가입해 있는 제 2 인터내셔널이 아니라 소규모의 영국공산당이 소속된 코민테른에 프랑스공산당과 자신이 가입한 이유를 묻자 그는 대답이 없다. 그는 모든 나라에 해당되는 초역사적 법칙으로 시작해 프랑스에 작용하는 예외적인 법칙을 주장하면서 글을 마친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새로운 논문에서 그의 이론은 프랑스라는 일국의 시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것뿐이 아니다. 그의 글은 인터내셔널의 성립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다. 이렇게 그가 우리와 기본 전제를 공유하지 않고 있는데 어떻게 공통의 전술을 말할 수 있는가? 루종 동지가 인터내셔널에 가입한 이유는 무엇인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가 프랑스공산당에 가입한 이유도 이에 못지 않게 이해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공산당의 장점을 다 갖추고 있으면서 단점은 하나도 없는 정당이 프랑스에 있기 때문이다.

루종 동지는 일국적 분석을 위해 국제적 분석을 포기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의 전번 논문이 그에게 제시한 "일국적" 질문 즉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노동총연맹의 역할에 대한 질문에 그는 체계적으로 답변을 회피하고 있다. 이 당시 주오나 르노델이나 배신적이고 경멸스러운 역할을 하기는 매 한가지였다. 차이가 있다면 사회애국주의 정당인 사회당은 자신의 견해와 행동을 나름의 체계에 따라 펼친 것에 비해 조합주의자들의 애국적 노선은 순전히 경험에 의거하여 자신들의 행동을 초라하고 어리석은 즉흥으로 위장했다. 노동계급에 대한 애국주의 배신행위를 들자면 명확한 성격을 가진 사회당은 그 반만 명확한 조합주의 정당을 능가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주오와 르노델은 다른 것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어떤가? 루종은 두 노동총연맹의 통합을 바라고 있는가? 우리는 통합을 바란다. 코민테른은 이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통합된 연맹이 주오를 다수파의 우두머리로 만들더라도 우리는 놀라지 않을 것이다. 주오, 뒤물렝, 메렝 등이 주도하는 조합주의 조직이 노동자 조직의 가장 순수한 형태이며 "노동계급 전체"를 대표한다는 등 루종 동지가 했던 말을 반복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그의 말들은 사실과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더 많은 노동대중이 집중되어 있는 더 규모 큰 노동조합이 공산주의 사상과 전술을 전파하는 혁명투쟁의 더 넓은 장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혁명의 대의를 위해서 더 큰 이익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선 필요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공산주의의 사상과 전술은 공중에 붕 뜬 허상이 아니라 정당의 형태로 조직되어야 한다.

루종 동지는 자신의 생각을 끝까지 추구하지 않고 있다. 그의 논리적 결론은 정당 대신 "적극적 소수"의 노동조합 조직이다. 이 논리의 불가피한 결과는 정당과 노동조합의 대용품이다. 왜냐하면 루종 동지가 원하는 노동조합은 정당이 되기에는 경계가 너무 불분명하고 노동조합이 되기에는 너무 경계가 협소하기 때문이다.

루종 동지는 이렇게 주장한다: 노동조합이 부르주아 민주주의 기관과 접촉하여 손을 더럽히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무정부주의의 희미한 메아리에 지나지 않는다. 단일노동총연맹 노동자들의 다수는 선거에서 공산당에게 표를 던질 것이다. 이러한 가정은 가능하다. 루종 동지가 공산당원이므로 노동자들에게 그렇게 하도록 촉구하기를 희망한다. 반면 개량주의 노동총연맹의 다수 노동자들은 블룸-르노델의 사회당에 표를 던질 것이다. 조직 형태로 보면 노동조합은 의회 투쟁에 적합하지 않다. 그러나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들은 의원을 뽑을 것이다. 의회 내에서의 정치활동은 같은 계급의 기반 위에 이루어지는 분업에 불과하다.

혹시 의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프랑스 노동자에게 무관심한 일이 아닐까? 그러나 노동자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노동조합은 빈번히 의회의 입법활동에 반응을 보여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제국주의 "민주주의"가 가하는 폭력과 공격에 맞서 의회의 공산당 의원들이 혁명적 노동조합과 협조하여 함께 투쟁한다면 이것은 당연히 도움이 되지 해가 되지는 않는다. 프랑스인들은 의원들이 사기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공산당은 모든 잘못된 관례들을 깨려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건설되었다. 만약 공산당 의원이 계급의 이익을 옹호하는 투쟁에서 물러선다면 그는 당장 당에서 쫓겨날 것이다. 우리 프랑스공산당은 이런 원칙적인 활동방식을 배웠다. 따라서 이 정당에 대한 불신은 전혀 근거가 없다.

루종 동지는 공산당이 소부르주아 지식인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고 불평한다. 그렇다. 그러나 코민테른 제 4차 세계대회는 이 문제를 인정하고 결의문들을 채택했다. 그리고 결의문들은 나름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당의 노동계급적 성격을 확립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루종 동지의 자기모순적인 형이상학이 아니라 노동조합을 비롯한 모든 노동계급 투쟁의 영역에서 체계적으로 당 활동을 수행하면서 이 목적을 달성할 것이다. 프랑스공산당 중앙위원회에는 이미 상당수의 노동자들이 있다. 이것은 당 전체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의회와 지방자치단체 선거에 대한 제 4차 세계대회의 결의문들에도 똑같은 경향이 관철되고 있다. 이렇게 해서 당은 혁명적 노동계급의 신뢰를 획득할 것이다. 이 결과 우리 당은 가장 중요하고 책임 있는 혁명적 직책에 진정 능력 있고 책임 있는 노동자들을 더 많이 보유하게 될 것이다. 루종 동지의 견해가 프랑스 노동계급 전위의 발전을 지체시킬 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필자는 가지고 있다. 그러나 다른 모든 장애물들과 마찬가지로 이 장애물도 공산당은 극복할 것이다. 필자는 이 점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공산주의와 조합주의(1929년 10월 14일)

(논의를 위한 서론)

<소련공산당의 트로츠키와 좌익반대파를 지지한 삐에르 모나트와 알프레드 로즈메는 1924년 프랑스공산당에서 제명되었다. 이들은 [노동자 혁명]이라는 이름의 신문을 창간하여 프랑스공산당 내부에서 관료주의에 반대하는 세력을 결집시켰다. 이 가운데는 로스메처럼 공산주의자도 있었으며 모나트와 같이 순수 조합주의로 회귀한 인사들도 있었다. 1926년 조합주의자들은 계급투쟁과 노동조합의 독자성이라는 기치로 [조합주의 동맹]을 결성했다. 그리고 노동총연맹과 단일노동총연맹의 통합을 조직의 목표라고 선언했다.

1928년과 1929년 공산당 지도부는 초좌익 노선에 기초하여 강압적으로 단일노동총연맹에 개입했다. 이 결과 연맹의 조합원수가 뚜렷이 감소하면서 상당한 세력이 당의 정책에 반대하였다. 1929년 9월에 열린 연맹 선거에서 [조합주의 동맹]의 영향을 받은 소수파는 209표 연맹 지도부는 1364표를 얻었다. 이때 [조합주의 동맹]과 가까운 세력이 항만노조, 식품노조, 인쇄노조 등에 기초하여 [노동조합의 독자성을 옹호하는 위원회]를 건설했다.>

 

노동조합은 노동운동 따라서 좌익반대파의 가장 중요한 문제들 가운데 하나이다. 노동조합에 대한 명확한 입장이 없을 경우 좌익반대파는 노동계급에게 진정한 영향을 미칠 수 없을 것이다. 논의를 위해 이 문제에 대한 몇 가지 생각들을 제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당과 노동조합

1. 공산당은 노동계급 전위의 전투조직으로 노동계급 혁명투쟁의 기본적인 무기이다. 따라서 공산당은 노동계급의 모든 투쟁 영역 특히 노동조합 분야에서 지도력을 행사해야 한다.  

2. 원칙적으로 노동조합의 독자성을 공산당의 지도력에 대치시키는 자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노동계급의 가장 후진적인 부위를 전위에 대치시키며 당면한 요구 투쟁을 노동계급의 완전한 해방 투쟁에 대치시킨다. 그리고 개량주의를 공산주의에 기회주의를 혁명적 맑스주의에 대치시킨다.

 

혁명적 조합주의와 공산주의

3. 전쟁 이전 프랑스 조합주의는 상승과 팽창의 시기에 노동조합의 독자성을 위해 투쟁하였다. 그리고 실제로는 부르주아 정부와 정당 특히 개량주의-의회주의 사회당으로부터 자신의 독자성을 위해 투쟁했다. 이것은 기회주의에 반대하고 혁명노선을 옹호하는 투쟁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혁명적 조합주의는 대중조직의 독자성을 절대시하지 않았다. 이와 반대로 노동계급 내부의 모순, 후진성, 약점 등을 반영하고 있는 대중조직과의 관계에서 혁명적 소수의 지도적 역할을 이해하고 설교했다.

4. 적극적 소수 이론은 핵심적으로 말하면 노동자 정당 이론의 불완전한 형태였다. 모든 실천적 의미에서 혁명적 조합주의는 기회주의에 대항하는 혁명정당의 씨앗이었다. 즉 혁명적 공산주의의 뚜렷한 초기 형태였다.

5. 그 전성기에조차 무정부주의적 조합주의는 올바른 이론적 기초를 결여했으며 이 결과 국가의 성격과 계급투쟁에서 국가의 역할을 잘못 이해하였다. 즉 이 경향은 혁명적 소수 즉 정당에 대한 불완전하고 충분히 전개되지 않은 잘못된 인식을 약점으로 가지고 있었다. 이 결과 총파업을 절대시하고 봉기와 국가권력 장악과의 관계를 무시하였다.

6. 전쟁이 끝난 후 프랑스 조합주의는 자신의 사상이 틀렸음을 확인했을 뿐 아니라 공산주의를 통해 자신을 발전시키고 완성시켰다. 따라서 지금 혁명적 조합주의를 소생시키려는 시도는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반동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조합주의의 아류들

7. 조합주의의 아류들은 부르주아 정당과 개량주의 사회당에 대한 노동조합의 독자성을 공산당을 포함한 모든 정당들로부터의 일반적 즉 절대적 독자성으로 변모시켰다.

팽창의 시기에 조합주의는 자신을 전위로 간주하고 후진 대중들 사이에서 전위적 소수의 지도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투쟁했다. 그러나 현재 조합주의의 아류들은 공산당 전위의 지도적 역할에 대항하면서 노동계급 후위의 낮은 계급의식과 편견에 영합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 시도는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8. 부르주아 계급으로부터 독자성을 지키는 것은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다. 부르주아 계급에 대항하는 투쟁 즉 정치행위를 통해서만 이 독자성은 표현될 수 있다. 이 투쟁은 명확한 강령을 통해서 영감을 부여받을 수 있다. 이 강령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조직과 전술이 요구된다. 정당은 강령, 조직, 전술의 통일이다. 노동계급이 혁명 정당의 지도를 받으며 투쟁하지 않는다면 부르주아 국가로부터 노동계급의 진정한 독자성은 실현될 수 없다.

9. 조합주의의 아류들은 노동조합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믿게 만든다. 이론적으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이 사고는 실천적으로는 혁명 전위를 후진 대중 즉 노동조합으로 해소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조합은 많은 대중을 포괄하면 할수록 자신의 임무를 더 잘 수행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노동계급 정당은 이론적 동질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행동의 통일과 조직의 규율에 의해 강고히 묶여있을 때에만 임무를 다할 수 있다. 노동계급이 사회의 "다수"이므로 노동조합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하는 것은 노동계급에게 아양을 떠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계급의 현실과 가능성을 잘못 인식시키는 행위이다. 자본주의는 엄청난 수의 노동자들을 무지와 후진성으로 몰아넣으며 노동계급의 전위에게만 모든 난관을 돌파하고 노동계급의 임무 전체를 명확히 인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당의 지도적 역할은 노동조합의 진정한 독자성을 훼손하지 않는다

10. 공산당은 노동계급 내에서 정치적 지도력을 행사하기 위해 투쟁한다. 이 투쟁은 추상적이 아닌 진정한 노동조합의 독자성을 조금도 훼손하거나 감소시키지 않는다. 노동조합의 모든 성원들은 필요하고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되는 대표를 선출할 권리를 갖는다. 공산주의자들도 모든 다른 조합원들과 마찬가지로 조합원으로서 이 권리를 갖는다.

노동조합의 독자성 즉 자치의 원칙을 정확히 준수하면서 공산주의자들은 노동조합의 주요기구에서 다수파가 되려는 투쟁을 전개한다. 반면 어떤 노동조합의 규약도 노동총연맹 총서기가 당의 중앙위원회에 선출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왜냐하면 당도 노동조합과 마찬가지로 조직의 독자성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11. 노동조합 내에서 어떤 직책을 맡든 공산주의자들은 당의 규율에 복종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노동조합의 규약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당은 노동조합 다수 성원들의 심적 상태나 견해에 충돌되는 어떤 행위도 공산주의자 조합원들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노동조합의 반동적 결정에 공산주의자들을 복종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당이 판단하는 대단히 예외적인 경우가 있다. 이때 당은 노동조합 직책으로부터의 해임 또는 노동조합원 자격 상실 등의 불가피성을 이들에게 공개적으로 설명한다.

독자성은 순전히 규약상의 문제이다. 그러나 규약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문제의 핵심은 노동조합의 정책에 있다. 올바른 정책을 잘못된 정책과 대비시켜 노동조합의 진정한 독자성을 옹호해야한다.

 

당의 지도력은 상황에 의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12. 당의 지도적 역할은 해당 국가의 일반적 조건에 따라 그 방식과 형태를 대단히 달리할 수 있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공산당은 국가기구의 물리력과 같은 강제 수단을 동원할 수 없다. 따라서 노동조합의 평회원이나 상근직 직원으로 공산당원이 활동할 때만 공산당은 지도력을 행사할 수 있다.

노동조합의 주요 직책을 차지하고 있는 공산당원의 수는 당의 영향력을 측정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에 불과하다. 가장 중요한 기준은 노동조합 전체에서 차지하는 공산주의자들의 비율이다. 그러나 노동계급 내에 당이 미치는 일반적인 영향력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요건이다. 이것은 공산당 신문의 발행 부수, 당이 주관하는 회의 참석자 수, 선거에서 공산당원이 획득하는 득표수, 그리고 특히 중요하게 당의 투쟁 촉구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노동자들의 숫자 등에 의해서 측정되어진다.

13. 노동조합을 포함한 대중조직에 대한 공산당의 영향력은 상황이 혁명적일수록 커진다. 이 점은 너무도 명확하다.

이러한 상황들을 통해 추상적이 아닌 진정한 노동조합의 독자성의 정도와 형태를 측정할 수 있다. "평화" 시에 노동조합의 전투적 투쟁은 고립된 경제적 파업의 형태를 띤다. 이때 노동조합 내에서 당의 직접적 역할은 부차적일 수밖에 없다. 당은 자신의 정치적 경제적 정보와 충고를 통해 파업의 효과적 수행을 도와준다. 그리고 선동 등 여타 행동을 통해 파업을 지원한다. 이때 파업을 지휘하는 쪽은 노동조합이지 당이 아니다.

그러나 운동이 총파업에 돌입하거나 국가권력에 직접 도전할 때에는 상황이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이런 조건에서 당의 지도적 역할은 완벽할 정도로 직접성, 공개성, 시급성을 띠게 된다. 바리케이드의 반대쪽으로 넘어가는 노동조합을 제외하면 노동조합은 당의 투쟁기구가 된다. 이때 당은 노동계급 전체가 보는 앞에서 혁명 지도자로 나서면서 투쟁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진다.

부분적 경제파업과 혁명적 봉기 사이에서 당과 노동조합의 상호관계는 가능한 모든 형태의 다양성을 띤다. 그리고 당의 직접적 즉각적 지도력 역시 대단히 다양한 양태를 보이면서 행사된다.        

그러나 어떤 조건에서도 노동조합은 진정한 독자성을 가지며 당에 조직적으로 "복종하지" 않는다. 당은 여러 상황에 맞추어 노동조합에 대해 일반적 지도력을 행사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노동조합의 정치적 독자성은 미신이다

14. 사실을 말하자면 정치적으로 "독자적인" 노동조합은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해본 적도 없다. 그리고 경험과 이론에 의하면 미래에도 없을 것이다. 미국의 노동조합은 부르주아 기업과 부르주아 정당의 총사령부에 직접 묶여있다. 영국의 노동조합은 과거 주로 자유당을 지지했는데 지금은 노동당의 물질적 기반이다. 독일의 노동조합은 사민당의 깃발 아래에서 행진한다. 소련에서 노동조합의 지도부는 볼세비키들이다. 프랑스에서 두 개의 노동조합연맹 중 하나는 사회당 또 하나는 공산당을 따르고 있다. 핀란드의 노동조합운동도 최근 분열되어 각각 사민당과 공산당의 지도를 받고 있다. 모든 곳에서 사정은 매 한가지이다.

노동조합운동의 "독자성"을 주장하는 이론가들은 아직까지도 다음 질문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들의 독자성 구호는 왜 전혀 실현되지 못하고 있으며 반대로 노동조합이 당의 지도에 의존하는 정도가 예외 없이 모든 곳에서 더욱 명백하고 공공연하게 드러났는가? 이러한 현상은 제국주의 시대의 성격에 완전히 일치하고 있다. 제국주의 시대는 모든 계급관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으며 노동계급 내부에서도 노동귀족과 가장 착취 받는 노동자 계층 사이의 모순을 격화시키고 있다.

 

[조합주의 동맹] -- 당의 씨앗

15. 소위 [조합주의 동맹]은 낡아빠진 조합주의의 완성된 표현이다. 이 조직은 노동조합운동을 장악하려는 정치조직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조합주의 동맹]은 노동조합의 원칙이 아니라 정치그룹의 원칙에 따라 회원을 모집한다. 이 조직은 강령은 아닐지라도 활동원칙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을 신문을 통해 옹호하고 있다. 또한 노동조합운동 내에서 나름의 독자적 규율을 가지고 있다. 노동조합 연맹들의 대회에서 이 조직은 공산당 분파와 똑같이 분파로 모여 활동하고 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이 경향은 두 노동총연맹을 사회당과 공산당에서 떼어내고 모나트 그룹으로 결집시키려고 투쟁하고 있다.

[조합주의 동맹]은 선진 소수가 후진 대중에게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할 투쟁의 권리와 필요성을 공공연히 주장하지는 않는다. 대신 소위 노동조합의 "독자성"을 가면으로 내세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이 경향은 사회당과 유사하다. 사회당 역시 "노동조합운동의 독자성"을 내세우며 자신의 지도력을 행사한다. 반면 공산당은 공공연히 노동계급에게 이렇게 말한다: 여기 우리의 강령, 전술, 정책이 있으며 이것들을 투쟁의 무기로 노동조합에게 제안한다.

노동계급은 어떤 것도 맹목적으로 믿으면 안된다. 모든 정당과 조직의 활동을 보고 이들을 판단해야 한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가면을 쓰고 몰래 활동하면서 지도력을 가장하는 자들, 노동계급에게 지도부가 필요 없다고 믿게 만드는 자들을 이중 삼중으로 의심해야 한다.               

 

노동계급은 노동조합의 독자성이 아니라 올바른 지도력을 요구해야 한다.

16. 노동조합에게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권리를 정당은 가지고 있다. 이 권리는 부인되기보다 이렇게 제기되어야 한다: 어떤 강령과 전술을 가지고 있는가? 이 관점에서 보면 [조합주의 동맹]은 신뢰할 수 없다. 이 조직의 강령과 전술은 대단히 모호하며 사안에 따라 대응한다. 노동계급 혁명과 심지어는 노동계급 독재를 인정하면서도 이 조직은 당을 무시하고 공산당 지도력에 대항한다. 공산당의 지도력이 없는 노동계급 혁명은 공문구에 지나지 않을 위험을 언제나 가지고 있다.

17. 노동조합의 독자성 사상은 노동계급의 사상 및 정서와 공통점이 없다. 정당이 지도력을 행사하여 노동조합에서 올바르고 명확하고 확고한 정책을 펼칠 능력이 있다면 당의 지도력에 대항할 노동자는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볼세비키당의 역사적 경험이 이것을 증명해왔다.

프랑스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선거에서 프랑스공산당은 1백2십만 표를 얻었다. 그러나 공산당이 장악한 단일노동총연맹의 회원수는 득표수의 3분의 1이나 4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노동조합의 독자성이라는 추상적 구호를 대중이 주창하지 않았음이 명백하다. 노동조합 관료층은 또 다른 문제이다. 이들은 당의 관료집단을 경쟁세력으로 보고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을 노동계급 전위의 통제력 밖에 두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노동조합 독자성의 구호는 관료들이 제창한 것으로 계급적 구호가 될 수 없다.

 

노동조합 단결의 절대화

18. "독자성"을 절대화한 후 [조합주의 동맹]은 노동조합 단결의 문제도 절대화시키고 있다.

노동조합의 단결은 노동계급의 일상적 투쟁과 공산당의 대중적 영향력 확대의 관점에서 보면 엄청난 장점이 된다. 이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노동조합 내에서 혁명적 분파가 최초로 뿌리를 내린 이래 기회주의자들은 의도적으로 조직을 분열시키려고 애를 써왔다. 부르주아 계급과의 평화가 노동계급의 단결보다 이들에게는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제 1차 세계대전 후의 경험은 이 점을 의심의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노동조합 분열의 책임은 전적으로 사회당에 있다. 공산당은 모든 수단을 통해 노동자들에게 이 사실을 증명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노동계급의 혁명적 임무보다 단결이라는 공허한 구호가 더 중요하지는 않다.

19. 프랑스에서 노동조합이 분열된 후 8년이 흘렀다. 이 기간동안 두 연맹조직은 서로를 원수로 여기고 있는 정당들 즉 사회당, 공산당과 확실한 유대를 맺었다. 이 상황에서 단결을 단순히 설교하는 것으로 노동조합운동을 단결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두 노동조합 조직의 통합이 없이는 노동자 혁명 뿐 아니라 진지한 계급투쟁도 불가능하다고 선언하는 것은 노동조합 내 부패한 개량주의 파벌들에게 혁명의 미래를 저당 잡히는 것과 같다.

사실 혁명의 미래는 두 노동조합 조직의 통합이 아니라 혁명적 구호와 투쟁방식으로 노동계급 다수를 결집시키는 것에 달려있다.

현재 노동계급의 단결은 정당과 노동조합의 계급협조주의자들에 대항해 투쟁하는 것을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

20. 노동계급의 혁명적 단결은 혁명적 단일노동총연맹의 확대-발전 그리고 개량주의 노동총연맹의 약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혁명의 순간에도 두 노동총연맹은 통합을 이루지 못했을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 하나는 대중의 지지를 받고 있을 것이며 또 하나는 노동귀족과 관료층의 지지를 받고 있을 것이다.

 

노동조합 반대파의 성격

21. 새로운 노동조합 반대파는 조합주의는 물론이고 일반적 의미의 정당도 원치 않는 것 같다. 이것은 이 경향이 이데올로기적으로 자신을 무장해제 시켜 직종별 노동조합주의의 수준으로 퇴보했음을 의미할 뿐이다.

22. 전체적으로 노동조합 반대파는 그 내부 구성이 아주 다양하다. 그러나 구성원의 일반적 특성은 좌익반대파에 스스로를 근접시키기보다는 대치시키고 있다.

노동조합 반대파는 공산당 지도부의 생각이 얕은 행동과 잘못된 투쟁방식에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계급에 대한 공산당의 영향력 자체에 반대하고 있다.

이 경향은 공산당의 초좌익적 현실인식과 투쟁에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혁명적 전망 일반에 반대하고 있다.

이 경향은 반전주의의 우스꽝스러운 방식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주의를 주창하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이 경향은 확실히 개량주의로 나아가고 있다.

23. 독일, 체코슬로바키아 그리고 다른 나라들에서 최근 혁명진영 내에 우파가 등장했다. 프랑스는 그렇지 않다고 단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틀리다. 공산주의 혁명노선을 거부하고 있는 우익반대파는 프랑스에서 노동운동의 전통에 따라 노동조합의 외양을 띠면서 자신의 정치적 색깔을 숨기고 있다. 본질적으로 노동조합 반대파 다수는 독일의 브란틀러파 그리고 분열 후 명확히 개량주의 등으로 나아간 체코 노동조합들처럼 우파적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       

 

공산당의 정책

24. 지금까지 말한 것은 공산당이 올바른 정책을 가지고 있을 경우에만 합당하다고 반대할 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반대는 근거가 없다. 노동계급의 당위를 대표하는 당과 노동계급의 현실을 표현하는 노동조합의 관계는 혁명적 맑스주의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다. 현재 공산당은 주관적 객관적 이유들로 인해 노동조합과 여타 분야에서 잘못된 정책을 펴고 있다. 그러나 이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한 유일한 원칙적 해답을 거부하는 것은 진정 자살행위가 될 것이다. 잘못된 정책에 대해서는 올바른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이 목적을 위해 좌익반대파는 분파를 구성하여 활동해왔다. 프랑스공산당이 전체적으로 전혀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다른 당이 건설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사실도 당과 계급의 문제를 조금도 바꿀 수는 없다. 공산당 또는 그 내부의 분파는 다른 특성들을 논외로 하면 노동계급의 이데올로기적 발전과정의 중심무대이다. 노동조합운동이 올바른 길로 나아가고 올바른 구호들을 제출하는데 영향을 미치고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공산당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이 좌익반대파의 입장이다.

25. 공산당의 임무는 노동조합에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에 있을 뿐 아니라 노동조합을 통해서 노동계급 다수에 영향을 미치는 데에 있다. 이것은 노동조합의 성격과 임무에 걸맞는 정책을 공산당이 펼 경우에만 가능하다. 노동조합이 조직적으로 성장하고 조합원의 수가 증가하면서 가장 광범위한 대중에게 노동조합이 영향력을 증대시켜야 한다. 이것이 공산당 노동조합 정책의 올바름을 입증하는 객관적 잣대이다. 노동조합의 규모를 축소시키고 내부에 분파투쟁을 촉발시키면서 당의 일시적인 목적을 위해 노동조합을 당의 부속물로 만들 경우 노동조합은 진정한 대중조직이 되지 못한다. 노동조합에 대한 당의 영향력 확대가 이런 결과를 가져온다면 당과 계급의 관계는 잘못된 것이다. 현 상황의 원인들을 논의하는 것은 지금 이 글에서는 불필요하다. 이러한 논의들은 매일 전개되고 있다. 현재 공산당은 연극, 기발한 방식, 피상적인 선동 등을 통해 가장 짧은 시간 내에 노동계급의 지도력을 확보하려고 모험주의 정책을 펴고 있다. 그러나 이 정책은 바뀌어야 하고 바뀔 수 있다.

그러나 현 상황을 타개하는 길은 당 또는 당내 분파를 노동조합에 대치시키는 데에 있지 않다. 이 길은 노동조합과 당의 잘못된 정책을 바꾸기 위해 비타협적 투쟁을 전개하는 데에 있다.

 

좌익반대파의 임무          

26. 좌익반대파는 노동조합운동의 문제들을 노동계급 정치투쟁의 문제들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아야 한다. 그리고 프랑스 노동운동의 현재 발전단계를 구체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현재의 파업운동과 이것이 프랑스 경제발전의 전망과 맺는 관계를 질적인 측면은 물론 양적인 측면으로도 평가해야 한다.

자본주의가 수십 년간 평화와 안정을 누릴 것이라는 전망을 우리는 절대적으로 거부한다. 지금은 혁명의 시대이다. 필연적으로 도래할 급박한 상황변화에 직면하여 노동계급 전위를 때맞게 준비시킬 필요성, 이것이 좌익반대파의 출발점이다. 현재 중도주의 관료집단은 혁명적 언사를 남발하면서 초좌익 정책을 펴고 있다. 그리고 현재의 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채 오늘을 어제 또는 내일과 혼동하는 정치 히스테리를 범하고 있다. 이 정책에 대해 좌익반대파는 더욱 확고하고 비타협적으로 투쟁해야한다. 또한 우파 분자들은 혁명적 맑스주의로 자신의 노선을 치장하기 위해 공산당의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이들에 대해서도 좌익반대파는 더욱 확고한 결의로 반대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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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활동 영역에 대한 새로운 규정? 새로운 논쟁? 새로운 분열? 이것이 의도는 좋으나 심신이 지친 자들의 한탄이다. 이들은 "좌익" 혁명가의 이름을 그대로 유지한 채 위대한 임무로부터 물러나 평온히 쉴 수 있는 수도원으로 좌익반대파를 변모시키려는 자들이다. 아니다. 우리는 이들 지친 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같은 길을 가지 않을 것이다. 작은 오류들이 하나로 모인다고 진실이 되지는 않는다. 서로를 구별시키려는 조그만 보수적 그룹들이 한데 모여서 혁명 조직이 된 적도 없었다. 혁명 경향이 노동운동 내의 극소수로 남아있는 시기가 있다. 그러나 이 시기는 소규모 그룹들이 서로의 죄를 덮어주면서 협잡을 부리는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진정한 맑스주의에 입각하여 올바른 전망을 수립하고 중핵들을 교육시키는 두 배나 비타협적인 투쟁을 요구한다. 이 길을 통해서만 승리가 가능하다.

28. 필자가 소련에서 추방당할 당시 모나트 그룹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입장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 입장은 너무 낙관적이었으므로 틀렸다. 이 점을 필자는 인정해야만 한다. 몇 년간 필자는 이 그룹의 활동을 면밀히 추적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오직 오랜 기억에 의존했을 뿐이었다. 이 그룹의 일탈은 생각보다 더 심각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최근의 사태들을 통해 조합주의 노선과 명확한 선을 긋지 않고서는 프랑스의 좌익반대파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되었다. 이 글에 제시된 테제는 이러한 분리선의 첫걸음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까쉥, 몽무쏘의 일당이 보여주고 있는 혁명적 헛소리와 기회주의적 본질에 대항하는 성공적인 투쟁의 서막이 될 것이다.

 

 

 

조합주의 원칙의 오류들 (1929년 10월 21일) 

<모나트 및 그의 동료들과 진행 중인 토론에 일조하기 위하여>

 

1914년 10월 프랑스에 도착했을 때 나는 프랑스의 사회주의 및 노동조합 운동이 국수주의에 의해 최악의 침체에 빠져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손에 촛불을 들고 나는 혁명가들을 찾아 헤맸다. 그리고 모나트와 로스메를 만났다. 이들이 국수주의에 굴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의 우정은 시작되었다. 모나트는 스스로를 무정부주의적 조합주의자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정치적으로는 게드파보다는 비교할 수 없이 나와 가까웠다. 게드파는 애처롭고 부끄러운 짓을 하고 있었다.(편집자 주: 주울 게드(1845-1922)는 프랑스 노동운동의 맑스주의 분파 지도자였으며 사회당의 창립자였다. 그는 1914년 제 1차 세계대전이 터질 때 프랑스 제국주의자들의 전쟁을 지지하는 국수주의에 경도 되어 정부의 장관이 되었다.) 그때 까쉥파는 프랑스 제 3 공화국의 장관직과 동맹국의 대사직을 차지하고자 권력자들의 처소를 거지처럼 기웃거리고 있었다. 1915년 모나트는 전쟁을 지지한 노동총연맹의 중앙위원직을 사임하고 조직을 나왔다. 그러나 이것은 실제로는 조직 분립 행위였다. 이때 모나트는 올바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노동계급의 역사적 근본 임무는 국수주의자들 및 제국주의 하수인들과 조직적 단결을 유지하는 것보다 더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모나트가 혁명적 조합주의의 최상의 전통에 서있던 때가 바로 이때였다.      

모나트는 10월 혁명을 지지한 최초의 인물들 가운데 하나였다. 로스메와는 달리 그가 오랫동안 10월 혁명에 거리를 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의 성격 때문이었다고 나는 나중에 확신하였다. 그는 방관하고 기다리고 비판하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이러한 태도는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런 태도가 기본 행동으로 굳어질 경우 일종의 종파주의가 된다. 그리고 프루동주의(무정부주의)와는 가깝되 맑스주의와는 공통점이 없는 그런 노선이 된다.   

프랑스사회당이 당명을 공산당으로 바꾸었을 때 공산당 지도자들의 의심스러운 전력에 대해 나는 레닌과 자주 논의하였다. 이들은 코민테른에게는 거추장스러운 짐이었다. 까쉥, 프로싸르 등은 인권동맹, 프리메이슨, 의회주의자, 출세주의자, 허풍장이 등의 영웅이었다. 이미 출판된 내용이지만 레닌과 나눈 대화 가운데 이런 것도 있었다:

 

레닌 -- 이 변덕꾸러기들을 모두 몰아내고 혁명적 조합주의자, 전투적 노동자, 노동계급의 대의에 진짜 헌신하는 사람들로 빈자리를 채우면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모나트는 어떻습니까?

트로츠키 -- 물론 모나트는 까쉥 같은 작자보다 10배나 훌륭합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의회주의 뿐 아니라 당의 의의마저 거부하고 있습니다.

레닌(놀라서) -- 그럴 리가 있습니까! 10월 혁명이 성공했는데도 당의 의의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니 아주 답답합니다.

 

나는 모나트와 계속 편지를 주고받으며 그를 모스크바로 초대했다. 그러나 그는 이 초대를 피하는 듯 했다. 성격에 걸맞게 그는 이 경우에도 방관하며 기다리기를 원했다. 그리고 공산당은 그에게 맞지가 않았다. 이 점에서 그의 생각은 옳았다. 그는 공산당을 변화시키기 보다 기다리는 쪽을 택했다. 코민테른 제 4차 세계대회는 프랑스공산당에서 프리메이슨, 평화주의자, 출세주의자 등을 몰아내는 첫 조치를 취했다. 이제 모나트는 입당했다. 그러나 그가 맑스주의를 수용한 것은 물론 아니었다.

1923년 3월 23일 나는 [프라우다]지에 이런 내용의 글을 실었다: "오랜 동지 모나트가 공산당에 입당한 것은 커다란 경사이다. 혁명은 이런 동지들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혼동된 사상과 화해하는 것은 틀린 생각이다." 이 글에서 나는 계급, 노동조합, 정당의 관계에 대한 루종의 스콜라주의적 사고를 비판했다. 특히 전쟁 이전의 조합주의는 공산당의 씨앗이었는데 이 씨앗이 곧 아이가 되었다; 이 아이가 홍역이나 구루병을 앓고 있으면 병도 치료하고 잘 길러야 한다; 그러나 이 아이가 다시 엄마의 자궁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1923년의 이 글은 몽무쏘를 비롯한 트로츠키주의의 적대자들에 둘러 싸여있는 모나트를 공격하는 주요한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나는 감히 말하고자 한다.

모나트는 공산당에 입당했으나 께드쟝마쁘에 있는 자신의 작업장보다 비교할 수 없이 규모가 거대한 이 집을 둘러보고 적응할 시간이 없었다. 곧 코민테른 내부에서 쿠데타가 터져 그를 압도했기 때문이었다. 레닌은 신병으로인해 정치무대에서 퇴장했으며 "트로츠키주의"에 반대하는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지노비에프판 "볼세비키화"도 시작되었다.(편집자 주: 코민테른 산하 각국 공산당의 "볼세비키화"는 1924년 코민테른 제 5차 세계대회의 중심 주제였다. 당시 코민테른 의장 지노비에프는 이 운동을 통해 공산당에 대해 관료적 조직운영을 강요했다. 이 움직임은 1923년 초 레닌의 정치활동 중단 직후 본격화되었다. "볼세비키화"의 기치 아래 스탈린과 지노비에프는 트로츠키와 좌익반대파에 대한 공격을 주도했다. 이 공격은 소련공산당에서 시작되어 코민테른 전체로 확산되었다.) 이제 출세주의자들은 레닌주의의 아류들인 소련공산당 지도부에 빌붙어 무제한적인 자원을 유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음모와 비방을 통해 관료적 행태를 계속했다. 모나트는 이들에게 굴복할 수 없었다.

그는 곧 당에서 제명되었다. 이 사건은 중요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사건에 지나지 않았다. 다른 수많은 혁명가들도 같은 또는 더한 고초를 당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모나트의 정치적 궤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짧은 당 활동이 그에게 당 일반에 대한 무정부주의적 조합주의 편견을 올바른 것으로 완전히 확인시켰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제 다시 자신이 버렸던 과거의 노선으로 끈질기게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는 다시 아미엥 규약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을 위해 그는 과거로 얼굴을 돌려야 했다. 전쟁, 러시아 혁명, 노동조합의 국제운동 등은 그의 뇌리에서 까맣게 잊혀진 채 조금의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다시 모나트는 방관하며 때를 기다렸다. 무엇을 위해서? 새로운 아미엥 총회를 위해서였다. 불행하게도 지난 몇 년간 나는 모나트의 뒷걸음질을 추적할 수 없었다. 러시아의 좌익반대파는 외부세계로부터 완전히 봉쇄되어 있었다.

세계노동계급 운동의 귀중한 이론과 실천으로부터 모나트는 두 가지 생각만 추출했다: 노동조합의 독자성과 조직적 단결. 그는 이 두 가지 원칙을 죄 많은 현실보다 더 높이 위치시켰다. 그가 신문을 창간하고 [조합주의 동맹]을 창설한 두 가지 원칙은 바로 이것이었다. 불행하게도 이 원칙들은 공허해서 마치 반지의 손가락 구멍과 같았다. 반지가 쇠든, 은이든, 금이든 그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반지는 언제나 노동조합 활동을 방해한다. 그는 노동조합의 독자성이라는 손가락 구멍에만 관심이 있다.

노동조합의 조직적 단결이라는 성스러운 원칙도 공허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 원칙의 이름으로 그는 영-러 노동조합 위원회의 해체에 반대했다. 1926년 영국 총파업을 영국 노동조합총연맹이 배신한 것은 그에게 문제되지 않았다. 스탈린, 부하린, 까쉥, 몽무쏘 등이 이들 파업파괴자들과 동맹을 맺다가 이들에 의해 발로 차이는 배신을 당한 사실도 모나트의 오류를 전혀 감해주지 않는다. 나는 해외에 도착한 후 [노동계급 혁명]지의 독자들에게 이 동맹의 범죄적 성격을 설명하려고 글을 썼다. 이 죄악의 결과는 지금도 노동운동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모나트는 나의 글을 실으려고 하지 않았다.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모든 모순을 화해시킨다고 그가 생각하는 노동조합의 조직적 단결, 이 성스러운 원칙을 내가 공격했으니 그가 달리 행동할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파업노동자들이 파업파괴자 일당을 만나면 당장 이들을 쓸어버린다. 그리고 한방을 날리는 것도 잊지 않는다. 만약 파업파괴자들이 노동조합원이면 이들은 즉시 쫓겨난다. 여기서 단결의 성스러운 원칙은 중요하지 않다. 모나트도 이 점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노동조합 관료집단과 이들의 지도자들은 전혀 다르다. 노동총연맹의 지도부는 굶주리고 후진적인 파업파괴자들이 아니다. 이들은 잘 먹어서 살도 찌고 경험도 많은 배신자들이다. 이들은 한때 총파업에 앞장서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하면 가장 빨리 그리고 확실히 총파업을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정부, 고용주, 교회와 손을 잡았다. 노동총연맹과 정치적 동맹을 맺고 있었던 러시아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즉시 공개적으로 그리고 무자비하게 이들과 단절해야 했다. 그리고 이 동맹에 의해 속고 배신당한 대중이 똑똑히 볼 수 있도록 단절을 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모나트는 맹렬하게 반대한다: 노동조합의 조직적 단결을 해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이 놀라운 행동은 그가 과거에 했던 행동을 까맣게 잊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자신도 1915년 프랑스의 노동총연맹이 보인 국수주의 노선에 반대하여 동지들과 함께 조직을 나가면서 노동조합의 조직적 단결을 해쳤다. 1915년과 1929년의 모나트는 서로 확연히 다르다. 그 자신은 스스로에게 충실한 것처럼 보인다. 형식적으로는 어느 정도 그렇다. 그는 몇 가지 오래된 원칙들을 반복한다. 그러나 그는 인류 역사 전체보다 더 풍부하고 값진 지난 15년의 경험을 완전히 무시한다. 그는 혁명적이었던 자신의 과거 노선이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제 어떤 문제가 제기되어도 모나트는 과거를 바라본다. 당과 국가의 문제에서 이 점은 가장 극명히 드러난다.

얼마 전에 내가 국가권력의 "위험들"을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그는 비난했다.([노동계급 혁명] 제 79호, 1929년 5월 1일, 제 2쪽) 이 비난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바쿠닌이 맑스에 대항할 때 벌써 이 비난은 시작되었다. 그의 주장은 잘못되고 모순된 것으로 국가에 대한 비(非)노동계급적 사고를 보여준다.

러시아를 제외한 모든 나라에서 권력은 부르주아 계급의 손아귀에 있다. 바로 이 때문에 노동계급에게는 국가권력이 위험하다. 이 대단히 강력한 억압의 도구를 부르주아 계급의 손에서 빼앗는 것이 노동계급의 역사적 임무이다. 노동계급의 독재가 가져올 위험과 난관을 공산주의자들은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사실이 노동계급의 국가권력 장악의 필요성을 조금이라도 감소시키는가? 만약 노동계급 전체가 거부할 수 없는 힘에 의해 권력장악의 길에 들어섰거나 실제로 권력을 장악했을 경우 엄격히 말해서 조합주의자들의 이러저러한 경고를 이해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이미 알려져 있듯이 레닌도 그의 유서에서 혁명권력의 남용을 경고했다.(편집자 주: 레닌의 "유서"는 러시아공산당 제 12차 대회에 보낸 편지이다. 그는 이 편지를 1922년 12월말에서 1923년 1월초까지 구술시켜 작성했다. 이 편지에서 그는 당의 노동계급적 성격을 강화하고 스탈린으로 대표되는 점증하는 관료화에 대항할 조치들을 마련할 것을 제안했다. 이 편지는 스탈린과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서 비밀에 붙여졌다. 1956년 스탈린 격화운동이 시작되면서 이 편지는 공개되어 모스크바 프로그레스 출판사가 1966년 간행한 [레닌 전집] 제 36권의 593쪽에서 611쪽에 걸쳐 실렸다.) 노동계급 독재의 왜곡에 대항한 투쟁은 좌익반대파가 결성되면서부터 진행되었다. 따라서 이 점에 대해 무정부주의의 도움을 받을 필요는 전혀 없다.

그러나 부르주아 국가에서 노동계급의 절대 다수는 당연히 알아야할 부르주아 국가의 위험성을 알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대단히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의도야 그렇지 않지만 조합주의자들은 노동자들을 자본주의 국가에 수동적으로 화해시키고 있다. 부르주아 국가에 의해 억압당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노동자국가의 위험성을 계속 외치는 것은 순전히 반동적인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부르주아 계급은 노동자들에게 즉시 이렇게 반복하여 말할 것이다: "국가를 건드릴 생각은 말아라. 이것은 당신들에게 아주 위험한 물건이다." 공산주의자는 노동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노동계급이 권력 장악 후 겪게될 어려움과 위험은 경험을 통해 극복될 것이다. 그러나 계급의 적이 권력의 칼자루를 쥐고 우리에게 칼끝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이 지금은 가장 위험하다."

지금 사회에서 권력을 잡을 능력이 있는 계급은 자본가 계급과 혁명적 노동계급뿐이다. 소부르주아 계급은 현대사회의 운명을 걸머질 경제적 가능성을 이미 오래 전에 상실하였다. 이따금 이 계급은 손에 무기를 쥐고 필사적인 발작을 일으키며 권력 장악 투쟁에 나선다. 이런 일은 이탈리아, 폴란드 그리고 여타 나라들에서 벌어졌다. 그러나 파시스트들의 봉기는 더욱 노골적이고 폭력적인 금융자본의 권력을 가져올 뿐이다. 소부르주아 계급의 가장 충실한 대변인들이 국가권력 자체를 두려워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대부르주아 계급이 국가권력을 장악하면 이들은 소부르주아 계급을 목조이고 파산시킨다. 따라서 이들은 권력을 두려워한다. 노동계급이 권력을 장악해도 이 계급은 무서워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생활방식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모든 조건들을 노동자 권력이 파괴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 계급은 권력이 자기 손에 떨어지는 것도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무기력한 손에서 권력이 금융자본이나 노동계급의 손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정부주의자들은 국가권력 그리고 이것의 역사적 역할 등과 관련된 혁명의 문제들을 보지 못하고 오직 국가권력의 "위험"만을 본다. 따라서 반(反)국가주의적 무정부주의자들은 역사의 막다른 골목에 도달한 소부르주아 계급의 가장 논리적이며 가장 가망이 없는 대변자들이다.

그렇다, 노동계급의 독재에서도 국가권력의 위험성은 존재한다. 그러나 이 위험성의 진짜 내용은 이 권력이 다시 부르주아 계급의 손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가장 명백한 국가의 위험은 관료주의이다. 그러나 이것의 핵심은 무엇인가? 만약 계몽된 노동자 관료집단이 이 사회를 사회주의 즉 국가의 사멸로 인도할 수 있다면 이런 관료집단을 인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집단은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나가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노동계급 대중으로부터 단절되어 이들 위에 군림하면서 이 관료집단은 소부르주아 계급의 영향력 하에 들어간다. 그리고 이를 통해 권력이 다시 자본가 계급의 손으로 넘어가는 것을 촉진시킨다. 결국 최종적으로 분석하면 노동계급 독재의 권력이 노동자들에게 가하는 국가적 위험은 권력이 다시 자본가 계급으로 넘어가는 데에 있을 뿐이다. 이 관료주의적 위험의 근원을 파악하는 문제도 위의 논의만큼 중요하다. 관료주의가 노동계급의 권력장악을 통해서만 등장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이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가장 험상궂은 관료주의 형태는 바로 노동조합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미국, 영국, 독일만 보아도 이 점은 이해될 것이다. 암스테르담 인터내셔널은 노동조합 관료들의 가장 강력한 국제조직이다. 특히 유럽 그리고 특히 영국에서 자본주의 체제가 제대로 유지되는 이유는 바로 이 조직 때문이다.

노동조합 관료집단이 없다면 경찰, 군대, 법정, 상원, 군주제 등은 노동계급 대중 앞에 늘어선 가련하고 우스꽝스러운 장난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노동조합 관료주의는 영국 제국주의의 대들보이다. 제국주의 본국 뿐 아니라 인도, 이집트 그리고 기타 식민지에서 부르주아 계급이 지배자로 존재하는 수단은 바로 이 관료주의이다.

영국 노동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면 그는 완전히 눈먼 사람일 것이다: "권력 장악에 대해서 경계하라. 그리고 노동조합은 국가의 위험으로부터 당신들을 구해주는 해독제이다." 맑스주의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노동조합 관료집단은 부르주아 국가가 당신들을 억압하는데 이용하는 가장 주요한 도구이다. 국가권력을 부르주아 계급의 손에서 빼앗아야 한다. 그리고 국가기구의 가장 주요한 하수인인 노동조합 관료집단을 타도해야 한다." 곁들여 말하자면 스탈린이 파업파괴자들과 동맹을 맺은 것이 범죄행위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노동조합과 국가를 마치 두 가지의 다른 원칙인 것처럼 대치시키는 것이 얼마나 황당한 논리인지는 영국의 경우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다른 어떤 곳보다 영국에서 국가는 인구의 절대 다수인 노동계급의 등에 올라타 있다. 노동조합 관료기구라는 매개를 통해 관료집단은 직접적으로 국가는 간접적으로 노동자들의 등에 올라타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노동당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이 정당은 노동조합이 번창하는 고전적인 나라인 영국에서 노동조합 관료집단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정치적 도구이다. 똑같은 관료들이 지도자로 나서서 노동조합을 주도하고 총파업을 배신하고 선거를 주도하고 정부의 각료로 행세한다. 노동당과 노동조합은 두 원칙이 아니라 두 축이 되어 기술적으로 분업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 두 축은 영국 부르주아 계급 지배의 대들보 역할을 하고 있다. 노동당 관료집단을 타도하지 않고서는 부르주아 계급을 타도할 수 없다. 노동조합을 국가와 대치시켜서는 부르주아 계급을 타도할 수 없다. 사회생활의 모든 영역 즉 노동조합, 파업투쟁, 선거유세, 의회, 국가권력 등에서 노동당 관료집단에 대항하여 공산주의자들이 적극적으로 투쟁할 때만 부르주아 계급은 타도될 수 있다.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와 미조직 노동자 대중의 선두에 서서 부르주아 계급으로부터 국가권력을 빼앗고 "국가주의의 위험"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는 것이 진정한 노동계급 정당의 가장 주요한 임무이다.

 

 

 

모나트가 루비콘강을 건너다(1930년 12월 15일)

<1930년 말 삐에르 모나트를 주위로 결집된 세력은 노동조합의 단결, 계급투쟁, "정당, 정당의 분파, 종파의 간섭이 없는" 노동조합의 독자성을 촉구하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이 선언문은 1906년 아미엥에서 발표된 조합주의 헌장에 기초하고 있었다. 노동총연맹과 단일노동총연맹에 소속된 22명의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이 선언문에 서명했다.

노동총연맹의 관료인 조르주 뒤물렝도 서명자의 한 사람이었다. 제 1차 세계대전 초기에 그와 알퐁스 메렝은 노동총연맹 내에서 지도부의 국수주의 노선에 대항하는 세력을 이끌었다. 1917년 전쟁에 대한 대중적 저항이 상승하자 노동총연맹의 다수파 지도부는 대중의 압력에 굴복하여 정부의 전쟁 정책을 비판했다. 이때 메렝과 뒤물렝은 노동총연맹 최고 임원들과 동맹을 맺어 평화협상과 미국 대통령 우드로우 윌슨이 제창한 전쟁 목적을 지지하였다.>

 

[조합주의 동맹] 또는 [노동조합 독자성을 옹호하는 위원회]와 공동투쟁을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을 뿐더러 적절하지도 않다. 모나트는 이제 루비콘강을 건넜다. 그는 뒤물렝과 연합하여 공산주의, 10월 혁명, 노동계급 혁명 일반에 대항하고 있다. 왜냐하면 뒤물렝은 특히 위험하고 배신적인 노동계급 혁명의 적대 진영에 가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것을 행동으로 그것도 가장 혐오스러운 방식으로 증명했다. 오랫동안 그는 좌익의 주위를 어슬렁대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자본의 가장 비굴하며 가장 부패한 하수인인 주오에게 빌붙었다.    

프랑스에는 노동계급에 대한 배신행위가 보복 받지 않은 채 수없이 자행되고 있다. 여기서 정직한 혁명가의 임무는 다음과 같다: (1) 노동자들에게 과거의 경험을 상기시키고 청년들을 자본주의에 대한 비타협 정신으로 훈련시킨다; (2) 제 2 인터내셔널과 프랑스 조합주의가 걸어온 배신의 역사를 지치지 않고 설명한다; (3) 주오 일당 뿐 아니라 메렝과 뒤물렝 같은 "좌익" 조합주의자들의 부끄러운 배신행위들을 폭로한다. 노동계급의 신세대에 대한 이 기본 임무를 수행하지 않는 자는 영원히 혁명적 신뢰를 받지 못할 것이다. 프랑스 조합주의자들은 다시 한번 "반전주의자"가 되어 늙은 광대 세바스티앙 포레의 역을 연기하고 있다. 그는 평화시에는 평화주의 언사를 팔아먹다가 전쟁이 시작되자 프랑스 증권거래소의 이익을 옹호하는 말비의 품에 몸을 던져 전쟁을 지지했다. (편집자 주: 1915년 1월 세바스티앙 포레(1858-1942)는 제 1차 세계대전에 반대하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이 호소문은 프랑스 병사들을 포함하여 사회에 널리 배포되었다. 당시 내무장관이었던 루이 말비(1875-1949)가 포레와 만나는 병사들을 기소하겠다고 위협하자 포레는 말비와 합의해 반전 선동을 철회했다.) 이렇게 줏대가 없는 프랑스 무정부주의자들에게 조금이라도 신뢰를 보낼 수 있겠는가? 이런 사실들을 망각의 외투 속으로 감추고 정치적 배신자들을 사면하는 자들은 누구든지 개선의 여지가 없는 계급의 적으로 간주될 것이다.

모나트는 루비콘강을 건넜다. 우리의 불확실한 동지였다가 일단 주춤하는 적으로 변화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확실한 적이 되었다. 우리는 노동자들에게 이 사실을 명확히 큰 소리로 아끼지 말고 말해야 한다.

순진한 사람들 그리고 순진한 체하는 악한들에게 우리의 판단은 과장되고 "정당하지 못한" 것으로 보일지 모른다. 이들은 이렇게 외친다: 노동조합운동의 단결을 다시 이루기 위해서만 모나트는 뒤물렝과 연합했다; 노동조합은 정당이나 "종파"가 아니다; 노동조합은 노동계급 전부와 이 내부의 모든 정치적 경향들을 포괄해야 한다; 따라서 뒤물렝의 과거나 미래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은 채 그와 함께 노동조합 분야에서 일할 수 있다. 프랑스 조합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은 이런 종류의 생각들로 묘기부리는 것을 좋아한다. 더러운 배신행위를 숨기려고 할 때 이들은 꼭 이런 술책을 동원한다.

프랑스 노동조합이 통일되었을 경우 혁명가들은 배신자, 변절자, 제국주의의 허가를 받은 하수인들이 내부에 있다고 해서 노동조합을 떠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즉 혁명가들이 앞장서서 조직의 분열을 유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신 모든 노력을 다하여 대중 앞에 배신자들을 폭로하고 대중의 경험에 비추어 이들을 배신자로 낙인찍었을 것이다. 또한 이들을 고립시키고 이들이 누리던 신뢰를 박탈하여 대중이 이들을 조직에서 쫓아내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이것만이 개량주의 노동조합에서 혁명가의 활동을 정당화시킬 수 있다.

볼세비키들은 노동조합에서 멘세비키와 함께 활동하면서 이들에 대항하는 체계적인 투쟁을 수행했다. 그러나 모나트는 뒤물렝과 함께 노동조합에서 동지가 되어 공동의 노선으로 정치적 분파나 "종파"를 구성하였다. 그리고 노동조합운동을 장악하는 정치투쟁을 개시하기 위하여 조합주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는 뒤물렝을 자기 파에 포섭한 후 대중 앞에서 자기를 그의 선생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공산주의자, 적색노동조합인터내셔널, 10월 혁명 그리고 결과적으로 노동계급 혁명 일반에 반대하여 뒤물렝과 함께 투쟁할 수 있다고 노동자들에게 말한다. 이것이 노동 대중에게 우리가 큰 소리로 말해야 하는 진실 그 자체이다.

우리는 한때 모나트를 우경화하고 있는 중도주의자로 규정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샹벨랑은 전적으로 올바른 이 과학적 규정을 신문 문예란의 농담으로 변질시키고 우리가 중도주의자라고 반격했다. 마치 축구선수가 공을 머리로 받아 패스하는 것과 같다.(편집자 주: 1930년 초 샹벨랑은 편지를 통해 좌익반대파가 노동조합의 독자성을 옹호하는 조합주의 경향과 단일노동총연맹 지도부 사이에서 동요하는 중도주의 세력이라고 주장했다.) 불행한 것은 이렇게 하다보면 머리가 가끔 아플 것이다! 그렇다, 모나트는 중도주의자였다. 그리고 그의 중도주의에는 지금 명백히 드러나고 있는 기회주의의 모든 요소들이 들어있었다.

올해 봄 인도차이나 혁명가들의 처형에 대해 모나트는 다음과 같은 투쟁 계획을 간접적으로 피력했다: (편집자 주: 인도차이나의 프랑스 식민 지배에 항거하여 1930년 2월 봉기가 일어났다. 이에 대해 프랑스 식민지 정부는 대대적인 체포와 마을에 대한 폭탄 투척을 자행했다. 월남 민족주의 지도자 13명은 1930년 6월 17일 처형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당과 조직들이 필요한 수단을 동원하여 즉시 현장을 조사하도록 의원들과 기자들을 왜 보내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 공산당의 십 여명 의원들과 사회당 백 명 의원들로 구성된 조사단을 보내 식민지 당국이 한발 물러서고 사형선고를 받은 지도자들이 구명되도록 캠페인을 벌어야 한다. 이 운동을 조직할 자료들을 현장에서 찾아내어 프랑스로 귀국하게 하면 될 것이 아닌가?" ([노동계급 혁명] 제 104호)

학급 반장의 거만한 꾸지람처럼 모나트는 공산당과 사회당에게 "식민주의자들"에 대항할 방법을 충고했다. 그가 보기에는 사회애국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은 6개월 전까지도 같은 진영에 있었으며 올바른 정책을 추구하기 위해서 그의 충고만 받아들이면 되었다. 식민지 정책의 옹호자요 실제적인 수행자인 사회애국주의자들이 어떻게 "식민주의자들"에 대항할 수 있는 가에 대해 모나트는 조금의 의문도 갖지 않았다. 혐오스러운 식민지 억압에서 자신들을 해방시키려는 혁명 전사들을 총으로 쏘아 죽이지 않고 민족, 부족, 인종 등으로 구성된 식민지를 통치할 수 있는가? 사회당 지도자 장 지롬스키와 그의 일당은 좋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식민지 당국의 "잔혹행위"에 대해 응접실에서 신사적으로 항의했다. 그렇다고 이 행위가 그들의 사회식민주의 노선을 막은 것은 아니었다. 전쟁 기간에 프랑스 노동자들을 국수주의 노선으로 몰아붙이는 이들의 정당은 프랑스 부르주아 계급의 이윤을 위해 식민지를 확대하고 유지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정책으로 삼고 있다.

모나트는 이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있다. 서양과 동양의 여러 나라에서 거대한 혁명적 사건들이 터졌으며 여러 정치 경향들은 이러한 사건들에 의해서 영향을 받았으며 이들의 정치적 성격은 경험에 의해 폭로되었다. 이 모든 것이 전혀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모나트는 생각하고 있다. 6개월 전 모나트는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는 체 했다. 이 기간동안 역사는 그를 우롱했다. 영국 노동당 당수이자 수상인 맥도널드는 프랑스 조합주의자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그에게 루종은 최근 비교할 수 없이 우수한 조언을 했다. 그런 맥도널드가 식민지 해방을 위한 조사위원회가 아니라 군대를 인도에 보내고 식민주의자 커즌도 생각할 수 없는 혐오스러운 방식으로 힌두교도들을 악랄하게 억압하고 있다. 그리고 영국 노동조합운동의 악당들은 하나같이 이 학살자의 행위를 지지한다. 이것이 우연의 일치인가? (편집자 주: 1930년 3월 인도 독립투쟁의 지도자 모한다스 간디는 영국 식민지 당국이 소금에 대해 부과하는 세금에 저항하는 대대적인 시민불복종 운동을 시작했다. 제임스 램지 맥도널드가 수상으로 있는 노동당 정부는 이 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여 6만명이 넘는 사람들을 감옥에 가두었다. 철도노조 총서기인 제임스 토머스는 맥도널드 내각의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다. 조오지 커즌(1859-1925)은 1899년에서 1905년까지 인도 총독이었으며 1919년부터 1924년까지 영국 정부의 외무장관을 지냈다.)

새로운 교훈을 얻어 위선적인 "중립"과 "독자성"을 벗어던지는 대신 모나트는 새로운 노선을 걸었다. 이 노선은 결정적이었다: 그는 프랑스의 맥도널드와 토머스들의 품속으로 뛰어들었다. 더 이상 그에 대해서는 논의할 것이 없다.

"독자성" 조합주의자들이 부르주아의 하수인을 자임하는 노동총연맹 개량주의자들과 동맹을 맺은 것은 커다란 징후적 의의를 가지고 있다. 속물들에게는 두 진영의 대표들이 단결, 형제간 분쟁의 종식, 미사여구의 이름으로 진일보하여 서로 가까이 다가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말들보다도 더 혐오스럽고 잘못된 것은 없을 것이다. 이 두 진영의 동맹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노동관료집단의 파벌들과 노동자 써클 내에서 모나트는 지난 10년에서 12년 사이의 경험을 통해 한때 혁명에 접근했으나 희망을 접은 분자들을 대표한다. 혁명은 너무도 복잡하고 당혹스러운 길을 디디면서 내부의 분쟁과 언제나 새로운 분열을 가져오며 한발을 앞으로 내디딘 후 반보 또는 어떤 때에는 일보 후퇴한다. 혁명은 가망이 없어 보인다.

부르주아 계급이 안정을 되찾고 혁명의 파도가 가라앉은 지난 몇 년은 노동계급의 일부에게 절망, 피로, 기회주의적 분위기만을 던져주었다. 이 모든 부정적 정서가 모나트 그룹 내에서 성숙하였다. 이 그룹은 혁명 진영에서 기회주의 진영으로 전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도중에 모나트는 루이 셀리에를 만났다. 후자는 지방자치제의 감투를 무더기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혁명에 등을 돌릴 이유들을 가지고 있었다. 모나트와 셀리에는 함께 혁명의 꿈을 접었다. 이들의 모임에 뒤물렝이 등장했다. 모나트가 좌에서 우로 이동할 때 뒤물렝은 자신이 우에서 좌로 이동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이것은 어떻게 설명이 가능할까? 중도주의자는 언제나 경험주의자인데 모나트가 바로 그랬다. 그는 자본주의 안정기의 정서를 표현했는데 이제 이 정서를 낳은 시기가 훨씬 덜 평온하고 훨씬 덜 안정적인 다른 시기로 막 변모하기 시작했다.

세계적 차원의 위기는 대대적인 규모를 띠었는데 이 위기는 더 깊어지고 있다. 어느 누구도 언제 이 위기가 멈출 것이며 어떤 정치적 결과를 가져올 지 예상할 수 없다. 독일의 상황은 대단히 긴장되어 있다. 독일의 선거는 국내 정세 뿐 아니라 국제 정세에도 격심한 요동을 가져왔다. 그리고 베르사이유 체제의 기초가 얼마나 허약한지를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편집자 주: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체결된 베르사이유 조약은 패전국 독일에게 엄청난 배상금을 부과시켰다. 1929년 독일 극우정당들은 배상금 지불과 관련된 협상을 기화로 민족주의 정서를 자극했다. 1930년 선거에서 나찌당은 득표율을 6배나 증대시켜 의석을 거의 100석이나 차지했다. 새 의회가 개원되는 날 유태인을 반대하는 시위가 베를린에서 조직되었다.)

독일의 경제위기는 프랑스 국경을 뒤덮어 이제 오랜만에 프랑스에도 실업의 징후가 보이기 시작했다. 상대적 번영기에 프랑스 노동계급은 노동총연맹 관료들의 배신적 정책으로 고통을 당했다. 위기가 닥치면 노동대중은 그간 노동총연맹이 자행한 배신적 범죄행위들을 연맹 지도부에게 상기시킬 것이다. 주오는 바늘방석에 앉은 느낌일 것이다. 자신이 노동계급의 이익을 위해 일한다는 환상을 유포하기 위해 그는 반드시 좌파를 필요로 할 것이다. 이 필요는 사회당 지도자 블룸보다 그에게 더 시급하다. 그렇다면 뒤물렝을 어디에 활용할 것인가? 모든 것이 피아노의 건반처럼 조율되고 대화를 통해 조정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이것은 불필요하다. 이들은 모두 서로를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각자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의 폭을 서로 잘 알고 있다. 좌경화해도 자신과 보스들에게 해가 가지 않는 지점을 알고 있다.

노동총연맹 관료집단은 뒤물렝을 주시하면서 그를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적대적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그러나 위에서 한 말은 결코 틀리지 않는다. 개량주의자들은 조심하면서 뒤물렝을 주시해야 한다. 개량주의자들이 그에게 맡긴 일이 미리 정해진 각본의 한도를 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뒤물렝이 각본에 있는 과격한 투쟁에 도취하여 통제력을 상실하면 안된다.

뒤물렝은 주오의 좌파로 행세하며 행진한다. 바로 이때 끊임없이 우경화하는 모나트가 루비콘강을 건너기로 결심했다. 모나트의 도움을 얻고 개량주의자로서의 명성을 훼손하면서 뒤물렝은 자신의 좌파적 명성을 최소한 약간만이라도 개선해야 한다. 뒤물렝이 모나트를 더럽힐 때 주오는 이것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 이렇게 모든 것이 맞아 떨어져 간다: 노동총연맹 관료들이 무방비의 왼쪽을 보완할 필요를 느낄 때 모나트는 좌익과 결별한다.

지금 우리는 한때 우리의 친구였던 모나트 그리고 도저히 화해할 수 없는 적이라고 오래 전에 판단했던 뒤물렝의 개인적 변화를 분석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흥미를 끄는 것은 이 개인적 행보가 가지는 징후적 의의이다. 이것은 노동 대중 내부의 훨씬 깊은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2년 전에 이미 제기되었던 대중의 급진화 현상은 논란의 여지없이 지금 드러나고 있다. 확실히 늦기는 했지만 경제위기가 프랑스에 도래했다. 독일에 비해 경제위기의 정도가 경미할 수도 있다. 이것은 경험만이 입증할 수 있다. 소위 급진화 시기에 존재했던 노동계급의 균형 잡힌 수동성은 아주 빨리 활발한 투쟁과 전투적 기상으로 바뀔 것이다. 혁명가들이 주목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새로운 시기이다.

새로운 시기가 도래하는 길목에서 모나트는 지치고 환멸을 느끼고 녹초가 된 분자들을 끌어모아 주오의 진영으로 안내한다. 이것은 모나트에게는 더 없는 불행이지만 혁명을 위해서는 더 없는 행운이다!

우리 앞에 펼쳐질 시기는 노동조합의 거짓 독자성이 성장하는 시기가 아니라 반대로 노동운동 내에서 공산주의 진지가 강화되는 시기이다. 거대한 임무가 좌익반대파 앞에 떨어졌다. 확실한 성공이 기다리고 있는 지금 좌익반대파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다른 것이 없다. 자신에게 충실하기만 하면 된다. 이 점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시 논의하기로 하자.

 

 

 

 

공산주의동맹 우파의 오류(1931년 1월 4일)

<논의를 촉발하기 위한 나의 견해> 

<1929년 10월 단일노동총연맹 산하 교사노동조합연맹 지도부는 단일노동총연맹의 공산당 지도부와 모나트가 주도하는 [노동조합의 독자성을 옹호하는 위원회] 모두를 반대하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선언문은 공산당이 "모든 오류와 약점에도 불구하고 노동계급의 유일한 혁명정당" 임을 지적했다. 1930년 4월 좌익반대파 지부인 공산주의동맹 지도부는 교사노동조합연맹과 협력하여 단일노동총연맹 내에 단일반대파(Unitary Opposition)를 결성했다.

그러나 1931년 초 공산주의동맹의 다수는 단일반대파가 프랑스 노동조합운동의 전진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고 이미 결론을 내렸다. 이 글에서 트로츠키는 공산주의동맹의 노동위원장 삐에르 구르게의 정책을 반대했다. 구르게는 단일반대파를 계속 지지할 것을 주장했다.>   

 

1.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의 이론 구조는 물질로 변한 노동이 곧 가치라는 노동가치론에 기초하고 있다. 반면 맑스주의 혁명정책은 노동계급의 전위인 당 개념에 기초하고 있다.

기회주의적 오류와 편향의 사회계급적 원천과 정치적 원인이 무엇이든 항상 이러한 오류와 편향은 이데올로기적으로 분석하면 혁명정당에 대한 잘못된 이해 그리고 혁명정당과 기타 노동계급 조직 및 계급 전체의 관계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집약될 수 있다.

2. 노동계급 전위로서의 당 개념은 당의 모든 조직들로부터의 완전하고도 무조건적인 독자성을 전제로 한다. 계급투쟁의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다양한 합의(블록, 연합, 타협)는 다음과 같은 조건에서만 인정될 수 있다: 당은 언제나 계급에게 향하고 이 계급의 깃발 아래 행진하며 계급의 이름으로 투쟁하며 대중에게 합의의 목적과 한계를 명확히 설명한다.

3. 코민테른 지도부의 모든 동요와 오류의 기초는 당의 성격과 그 임무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있다. "두 계급 정당"이라는 스탈린주의 이론은 맑스주의의 기본과 모순된다. (편집자 주: 1924년에 처음 제출한 스탈린의 "두 계급 노동자 농민 정당" 이론은 후진국에서 "중국 국민당과 유사한 단일한 노동자 농민 정당"의 형태로 "노동자와 소부르주아지의 혁명적 동맹"을 수립할 것을 촉구했다. 이 말을 인용하면서 1928년 트로츠키는 이렇게 논평했다: "스탈린의 이론은 국민당과 같은 부르주아 정당을 위장시키기 위해 특별히 고안된 것 같다.") 코민테른은 공식적으로 이 이론을 수년간 인정했을 뿐 아니라 지금도 확고히 이 이론을 비난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코민테른 노선의 오류를 가장 명확히 보여주는 증거이다.

4. 소련의 중도주의 관료집단이 저지른 근본 죄악은 당에 대한 이들의 틀린 입장에 있다. 스탈린주의 분파는 당의 대오 내로 행정적으로 노동계급 전체를 포괄하려고 시도한다. 당은 더 이상 전위 즉 가장 선진적이며 가장 의식적이며 가장 헌신적이며 가장 적극적인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결사체가 아니다. 당은 계급대중 자체와 결합하여 관료기구에 저항할 힘을 잃는다. 반면 브란틀러파를 비롯한 중도주의 관료집단의 기생자들은 러시아 노동계급의 "교양의 부족"을 속물처럼 말하면서 스탈린주의 당 운영 방식을 정당화시킨다. 이를 통해 이들은 당과 계급을 동일시한다. 그리고 스탈린이 실제로 당을 청산시키듯이 이론적으로 당을 청산시킨다.

5. 중국에 대한 코민테른의 재앙적 정책의 근본은 당의 독자성에 대한 포기에 있었다. 일정 기간 국민당과의 실제적인 합의는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공산당이 국민당으로 들어간 것은 치명적인 오류였다. 이 오류는 역사상 가장 커다란 범죄가 되었다. 중국공산당은 자신의 권위를 국민당에게 전가시키기 위해서 창립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노동계급의 전위에서 부르주아 계급의 꼬리로 변했다.

6. 영-러 노동조합 위원회의 재앙적 실험은 영국공산당의 독자성을 짓밟았다. 소련의 노동조합은 국가의 이익을 위해 파업파괴자 집단인 영국노총과 동맹을 유지하려 했다. 이때 영국공산당은 모든 독자성을 박탈당해야 했다. 이것은 당을 소위 평조합원운동 즉 노동조합 내 좌파로 해소시키는 것을 통해 이루어졌다.

7. 영-러 노동조합 위원회의 경험은 심지어 좌익반대파 내에서도 불행하게도 가장 이해되지 못하고 있다. 파업파괴자 집단인 영국노총과 단절할 것을 요구하는 움직임은 우리 대오 내의 일부에게조차 종파주의로 보였다. 특히 모나트를 뒤물렝의 품속으로 뛰어들게 만든 원죄는 이 영-러 노동조합 위원회 문제에서 가장 명확히 드러났다. 이 문제는 대단히 중요하다: 1925-26년 영국 총파업 과정을 명확히 이해하지 않고는 공산주의운동 일반 특히 좌익반대파는 혁명을 승리로 이끌 수 없을 것이다.

8. 최소한 초기에 공동의 노선이 드러났던 이 문제에서 스탈린, 부하린, 지노비에프 등은 허약한 영국공산당을 "더 광범위한 조류"로 대체하려했다. 물론 이 조류의 선두에는 당원이 아니라 "친구들", 거의 공산주의자에 가까운 자들, 어쨌든 성격 좋은 자들이 있어야 했다. 물론 좋은 친구들인 "확고한 지도자들"은 소규모의 허약한 공산당 지도부에 복종하려 하지 않았다. 이것은 이들의 완벽한 권리였다. 당은 어느 누구에게도 복종하라고 강요할 수 없다. 공산당과 노동조합 "좌파" (퍼쓸, 힉스, 쿡) 사이의 합의는 노동조합운동의 부분적 임무에 기초하고 있었다. 이것은 물론 가능하고 어떤 경우에는 아주 필요하다. 그러나 한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공산당은 노동조합 내에서조차 완벽한 독자성을 유지해야 한다; 모든 원칙적 문제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행동해야한다; 필요할 때마다 "좌파" 동맹자들을 비난해야한다; 이것을 통해 서서히 대중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그러나 이 유일하게 가능한 길은 코민테른 관료들에게는 너무 멀고 불확실하게 보였다. 이들은 퍼쓸, 힉스, 쿡에 대한 개인적 친분을 이용하고 밀실에서 이들과 협상하고 편지를 보내고 회식 자리를 만들고 우정어린 모습으로 이들의 등을 두드리고 부드럽게 권유를 해서 서서히 이들 좌파("광범위한 조류")를 코민테른의 침실로 서서히 그리고 이들 자신도 모르게 끌어들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더 확실히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들 친애하는 친구들(퍼쓸, 힉스, 쿡)을 사소한 속임수, 시기 적절하지 못한 비판, 종파적인 비타협성 등으로 화나게 만들면 안되었다. 그러나 공산당의 임무 중의 하나가 모든 중도주의 및 반(半)중도주의 세력의 평화를 뒤집고 경고를 보내는 것에 있는 만큼 영국공산당을 평조합원운동에 종속시키는 급진적인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노동조합운동 내에서는 이 운동의 지도자들만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중에게 영국공산당은 존재하지 않았다.

9. 이 문제에 대해서 러시아 좌익반대파는 무엇을 요구했는가? 우선, 노동조합 내에서 영국공산당의 완벽한 독자성을 다시 확립할 것을 요구했다. 당의 독자적인 구호와 공개적인 비판을 통해서만 평조합원운동은 수립될 수 있으며 자신의 임무를 좀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으며 자신의 지도자를 교체할 수 있으며 공산주의의 진지를 강화시키면서 노동조합 내에 자신을 강력히 구축할 수 있다는 입장을 우리는 명확히 제출했다.

이에 대해 스탈린, 부하린, 로조프스키 일당은 이런 반응을 보였다: "당신네들은 영국공산당을 종파주의의 길로 몰고 가려한다. 또한 퍼쓸, 힉스, 쿡을 적의 진영으로 몰아가고 평조합원운동과 단절하려고 한다."

좌익반대파는 이렇게 응수했다: "퍼쓸과 힉스가 우리와 단절하는 것은 우리가 그들에게 즉시 공산주의자가 되라고 요구해서가 아니다. 어느 누구도 이런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공산주의자로서의 역할을 다하려고 하기 때문에 이들이 우리와 단절하는 것이다. 퍼쓸 일당은 우리와의 단절을 통해 우리의 친구가 아니라 친구로 위장한 적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이들이 자신의 정체를 더 빨리 드러낼수록 대중에게는 더 이익이 된다. 우리는 평조합원운동과 단절할 의사가 전혀 없다. 이와 반대로 우리는 이 운동에 대해 가장 커다란 관심을 집중해야한다. 대중 또는 그 일부와의 가장 적은 전진이 지식인 써클의 열 몇 개 추상적 강령보다 더 가치가 있다. 그러나 대중에 대한 관심은 이들의 일시적 지도자들에게 굴복하는 것과는 아무런 공통점도 없다. 대중에게는 올바른 노선과 구호가 필요하다. 모든 이론과 화해나 하고 대중의 후진성을 악용하는 혼란주의자들을 모두 보호해서는 이런 것들이 제공될 수 없다."

10. 스탈린의 영국 실험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 거의 일 백만 노동자를 포괄했던 평조합원운동은 아주 희망적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 운동은 그 자체에 파괴의 씨앗을 안고 있었다. 대중은 운동의 지도자로 퍼쓸, 힉스, 쿡만을 알고 있었다. 더욱이 이들의 지도력을 모스크바는 보증까지 서주었다. 이 "좌파" 친구들은 첫 중대한 테스트에서 노동계급을 비겁하게도 배반했다. 그러자 혁명적 노동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그리고 운동 자체에 실망하고 이 실망감을 자연스럽게 영국공산당에게로 확대시켰다. 영국공산당은 이 배신과 사기극의 전 과정에서 수동적인 방관자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말이었다. 평조합원운동은 붕괴했다. 공산당은 별 볼일 없는 종파로 전락했다. 이렇게 코민테른의 근본적으로 잘못된 당 이론 때문에 총파업까지 상승한 영국 노동계급의 가장 거대한 운동은 반동적 노조 관료집단의 기구에 전혀 도전하지 못했다. 이와 반대로 관료기구를 강화시키고 상당히 오랜 기간 영국 공산주의 운동에 해악을 끼쳤다.

11. 피상적인 조급성, 당의 영향력이 서서히 성장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결여, 조직의 술수나 개인적 외교술을 통해 대중을 획득하려는 욕구 등이 기회주의의 심리이다. 이로부터 밀실협상, 침묵, 입막음, 자기정체성 포기, 다른 정당의 사상과 구호의 차용 등의 정책이 나온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정책은 기회주의 노선으로 귀결된다. 중국에서 국민당에 공산당을 종속시키고 인도에서 노동자-농민당을 건설하자고 촉구하고 영국에서 당을 평조합원운동에 종속시키는 등등의 정책은 피상적인 혁명적 조급성으로 시작되어 기회주의적 배신으로 끝나는 관료적 협잡의 현상이다. (저자 주: 미국 공산주의동맹의 일부 동지들이 "대중활동"의 이름 하에 러브스튼 그룹과 연합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고 이 동맹의 주요 동지들이 전하고 있다. 이 주장보다 더 황당하고, 부적절하며 무의미한 것은 생각하기 힘들 것이다. 이 동지들은 최소한 볼세비키당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가? 이들은 레닌의 저작들을 읽어보았는가? 맑스와 엥겔스의 편지들은 알고 있는가? 혁명운동의 역사가 흔적도 남기지 않고 이들의 눈앞에서 사라졌다는 말인가? 다행스럽게도 이 동맹의 절대 다수는 이러한 주장과 무관하다.)

지난 몇 년간 위에서 인용한 코민테른 전략의 예들이 갖는 엄청난 교육적 중요성을 우리가 끊임없이 주장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예들은 새로운 경험이 있을 때마다 연구되고 다시 확인되어야 한다. 역사상의 오류와 범죄행위들을 사실에 입각하여 비난하기 위해서 뿐이 아니다. 유사한 오류들이 새로운 상황에서 나타날 경우 교정이 가능할 때 이것들을 감지하기 위해서 이다.

12.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야한다: 노동조합 문제에 대한 일부 프랑스 동지들의 오류는 한심스러운 영국의 실험과 아주 유사한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오류의 규모는 훨씬 작다. 그리고 대중운동의 기반 속에 전개되지도 않았다. 이 때문에 일부 동지들은 이러한 오류를 간과하거나 원칙상 이 오류들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의 공산주의동맹이 노쇠한 지도부 다수가 채택한 노선을 계속 내버려둔다면 프랑스에서 좌익반대파의 사상과 깃발은 상당한 시일에 걸쳐 훼손될 것이다.

이 문제에 눈을 감는 것은 범죄이다. 나는 이 오류들이 드러난 초기에 개인적 충고와 경고 등으로 수정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그렇다면 집단적인 노력으로 이 정책을 교정시키기 위해서 오류들 하나 하나와 그 입안자들을 공개하는 일만이 남아있다.

13. 1930년 4월에 시작하여 공산주의동맹은 단일반대파를 수립하기 위하여 노동조합에서의 독자적 작업을 실제적으로 포기했다. 단일반대파는 자신의 강령, 지도부, 정책을 갖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한계 내에서 보면 이 실험은 영국의 평조합원운동과 상당히 유사하다. 그러나 프랑스의 경우는 시초부터 이 실험을 더 위험하게 만드는 특징들이 있다. 영국에서 평조합원운동은 전반적으로 노동조합 공식 지도부보다 더 좌에 위치하고 있었다. 단일반대파도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아니다. 후자의 대오 내에는 명백히 우익반대파 즉 개량주의로 나아가고 있는 분자들이 존재한다.

단일반대파의 주요 세력은 교사노동조합연맹이다. 프랑스에서 교사들은 언제나 사회주의, 조합주의, 공산주의 세력 내에서 중대한 역할을 해왔다. 교사들 가운데에 우리는 많은 동지들을 찾아낼 것이다. 그러나 이 연맹은 구성분자들의 측면에서 노동계급적이지 못하다. 구성원들의 우수한 자질로 인해 교사노동조합연맹은 아주 훌륭한 선동가, 기자, 개인적 혁명가들을 제공할 수 있지만 노동조합운동의 기반이 될 수는 없다. 이 연맹의 모든 문서들은 정치적 사고가 불명확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 연맹의 회원들이 공식 공산당 노선, 좌익반대파 노선, 우익반대파 노선 사이에 동요하고 있음을 이 연맹의 마르세이유 총회가 증명했다. 이들의 오류, 동요, 정확성의 결여 등을 숨긴다면 우리는 전체 노동계급 운동 뿐 아니라 연맹의 회원들에게도 가장 지독한 해악을 끼치게 될 것이다. 불행하게도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것이 [진실]지 편집위원회의 정책이었다. 침묵의 정책인 셈인데 이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14. "그렇다면 당신은 단일반대파와 결별하기를 원합니까?" 이렇게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이 문제제기를 통해 공산주의자들이 진정한 공산주의자가 되려면 단일반대파 건설 작업에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사태가 이렇다면 단일반대파는 공산주의에 대한 위장된 적들의 조직이라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사태는 그렇지 않다. 전체적으로 단일반대파는 공산주의 조직도 반공주의 조직도 아니다. 구성원들이 이질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연맹에 대한 작업에서 이 이질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맑스주의로 나아가는 그룹이나 개인들에 대해 가장 커다란 관심을 기울여야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도 한가지 조건이 있다: 노동조합 소속 노동자들 앞에 나설 때 공산주의동맹의 이름으로 활동하되 노동조합과 관련된 행위에 대해서는 동맹의 어떠한 검열도 없음을 명확히 한다.(공산주의 대오가 다시 통일될 경우에는 당으로부터의 어떠한 검열도 인정하지 않는다.)

15. 단일 반대파 대오 내에는 동맹의 회원이 아니면서 좌익반대파에 강하게 공감을 갖는 분자들이 당연히 있을 것이다. 이들을 우리 깃발로 끌어 들여야한다. 그리고 모든 힘을 다해 우리와 불명확한 관계를 유지하려는 분자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강령"으로 변모시키려한다. 이 분자들과는 명확한 기초 위에 전술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 그리고 상호비판의 자유를 완벽하게 유지한다. 마지막으로 단일반대파 대오 내에는 우연히 대오 속으로 기어 들어온 적대 분자들 또는 개량주의의 하수인으로 회원들을 포섭하려고 침투한 분자들이 있다. 이들은 단일반대파의 붕괴를 가져오기 위해 이름을 숨기고 있다. 이들의 정체가 일찍 폭로되고 제거되면 될수록 단일반대파의 미래를 위해서는 더 좋은 일이 될 것이다.

16. 그러나 우리는 노동조합 내에서 정치적 철학적 견해와 관계없이 모든 노동자들과 협력하기를 당연히 원한다. 그러나 단일반대파는 노동조합이 아니라 노동조합운동에 영향을 미치려는 정치분파이다. 모나트와 그의 친구들인 노동자농민당이 가면을 쓰고 활동하도록 내버려두자. 혁명가들은 노동자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활동한다.(편집자 주: 노동자농민당은 1929년 말 프랑스공산당에서 제명된 루이 셀리에 등에 의해 결성되었다. 이들은 니콜라이 부하린의 지지자들이었다. 모나트가 이끈 조합주의자들은 [노동조합 독자성을 옹호하는 위원회]를 주도했는데 노동자농민당과 동맹을 맺어 단일노동총연맹 내에서 활동했다.) 단일반대파 내에서 우리와 길을 끝까지 가지는 않지만 같은 방향으로 가는 노동자들과 우리는 함께 일할 수 있다.

17. 공산당은 무엇보다도 기계적인 수단이 아니라 사상을 통해서 노동조합 내에서 영향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일부 동지들은 주장한다. 이 생각은 반박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빈번하게 공염불로 변해버린다. 중도주의 관료집단 역시 자신의 임무가 사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지 기계적인 압력을 넣는 일이 아니라고 아주 빈번히 그리고 아주 진지하게 선언한다.

최종적으로 분석하면 모든 문제는 정치적 경제적 노선, 구호, 행동강령으로 집약된다. 만약 노선이 올바르다면 그리고 구호가 상황의 필요에 적절하다면 노동조합의 대중들은 어떠한 "압력"도 느끼지 못한다. 반면 노선이 틀리고 정치적 퇴조기에 혁명적 상승기의 정책이 선언되고 정치적 상승기에 퇴조기의 정책이 선언되면 대중은 이것을 당연히 자신에 대한 기계적인 압력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다. 결국 문제는 좌익반대파의 이론적 전제들이 충분히 진지하고 심오한 것인가, 좌익반대파의 중핵들이 충분히 교육을 받아서 상황을 올바르게 평가하고 상황에 적절한 구호를 제출하는 가로 집약된다. 이 모든 것은 실천에 의해서 검증되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 뿐 아니라 일시적 동맹자들의 죄악과 오류를 침묵을 지킨 채 넘겨버리거나 과소평가하는 것은 더욱더 허용될 수 없다.

18. 공산주의동맹의 일부 회원들은 단일반대파를 동맹에 종속시키려는 어떤 동지의 의도에 대해 저항하고 있다. 이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

이들은 실감하지 못한 채 모나트가 공산주의 전체에 반대하여 사용했던 형편없는 주장에 기반하고 있다. 실제로 이 주장의 핵심은 노동조합에서 활동하고 있는 일부 동지들 자신이 동맹으로부터 완전히 독자성을 얻자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술수, 충고, 개인적인 재치 등을 통해 동맹이 집단적으로 성취할 수 없는 것을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신문에서도 이와 비슷한 독자성을 요구하는 일부 동지들은 이러한 주장들을 환영한다. 그렇다면 문제가 있다: 이 동지들은 공산주의동맹을 신뢰하지 않으면서 왜 회원이 되었는가?

19. 단일반대파를 "종속"시키는 것과 관련하여 상황은 진짜 어떤가? 그러나 이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다. 동맹의 회원은 동맹에 종속된다. 단일반대파의 다수가 동맹 회원이 아닌 이상 설득, 타협, 블록 등의 문제일 뿐 종속은 말도 되지 않는다. 사실 단일반대파를 동맹에 종속시키는 것에 반대하는 자들은 동맹이 단일반대파에 종속되기를 요구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지금까지의 상황이었다. 가장 중요한 노동조합 활동에서 동맹은 단일반대파에 종속되었다. 단일반대파의 이익을 위해 동맹은 모든 독자성을 버렸다. 맑스주의자는 이러한 정책을 단 하루도 인정할 수 없다.

20. 어제까지 굴복의 정책을 끈질기게 실천에 옮겼던 일부 지도적 동지들은 오늘은 이렇게 선언한다: 단일반대파를 블록으로 변모시킬 필요성에 대해서 "완전하게 합의했다." 사실 이들은 단일반대파의 이름을 바꾸는 것에 만족하고자 한다. 이들은 맑스주의적 비판을 재빨리 "수용"하면서 실제로는 기존의 잘못된 정책을 그대로 고수하려는 투쟁을 더 강하게 전개한다. 이들은 기존 정책을 은폐하기 위해서만 맑스주의 비판의 언사들을 활용하려한다. 이 방식들은 전혀 새롭지 않다. 그렇다고 시간이 이 방식들을 더 매력 있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기회주의 정책이 혁명적 언사로 위장하는 것을 혁명조직이 인정하면 영원히는 아니더라도 거짓과 사기의 독에 의해 오랫동안 혁명조직은 오염될 것이다. 프랑스의 공산주의동맹이 이것을 허용하지 않기를 확고히 희망하자.

-끝-

Trade Unions in the Epoch of Imperialist Decay    Leon Trotsk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