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파업평가 이후의 반민영화 투쟁 과제

 

 

1. 철도파업을 종결한 ‘12월 30일 합의’를 어떻게 볼 것인가?

파업투쟁 평가의 핵심은 그것이 애초 설정한 파업 목표에 얼마나 근접했는가에 달려있다. 그런데 이번 파업은 새누리당과 민주당이라는 자본가정당과의 국회 내 ‘소위위원회’ 구성에 철도노조가 참관하는 3자 합의문이 발표되는 것으로 종결되었다. 다시 말해 자본가정당에게 모든 결과를 맡기는 것으로 끝난 것이다.

그 합의엔 민영화 철회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고 8000여명에 달하는 직위해제, 철도노조에 대한 거액의 손해배상, 철도노조 지도부에 대한 수배에 대한 철회 등 파업 종료 핵심 사안에 대한 어떠한 약속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업종료와 작업 복귀를 선언한 ‘12월 30일 합의’는 분명한 직권조인이며 배신행위이다. 

직권조인은 조합원의 의사를 배반하여 조합지도부가 자의적으로 자본가의 요구에 응해 조합원들의 이익을 팔아넘기는 행위이다. 직권조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 가지 조건 중 하나를 충족해야 한다. 첫째, 파업결의 총회에서 설정한 파업 목표의 달성, 또는 둘째, 파업목표에 미치지 못했으나 조합원 총회 등을 통해 파업의 종료에 대한 조합원들의 민주적 결정. 이번 ‘12월 30일 합의’는 누구의 눈으로 보더라도 이 둘 모두에 반하는 것이었다.

 

2. 노동탄압과 민영화의 주범 중 하나인 민주당에 대한 정치적 환상 문제

다들 알다시피 쌍용자동차를 파국으로 몰아넣은 시초 행위자는 노무현 정부였고, 산업부장관인 정세균이었다. 그래놓고 민주당은 마치 이명박 정권만의 문제인 양 쌍용자동차를 가지고 새누리당을 비난했다. 대표적 노동악법 중 하나인 ‘필수공익근무제도’를 만든 것도 전직 ‘변호인’ 노무현 정권 때였다. 철도를 포함한 공공기관의 민영화 정책의 기초를 놓은 것 역시 민주당 정권 때였다. 이미 김대중과 노무현의 민주당 정권 시기 각종 은행, 한국통신, 포스코, 담배인삼공사, 도로와 지하철 등등 알토란 같은 각종 공공기관과 시설이 민영화되었다. 세계 금융자본의 이해를 보다 쉽게 관철할 기초인 한미FTA 정책을 노동인민의 결사적 반대를 무릅쓰고 추진한 것 역시 노무현 정권이다. 한마디로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은 자본가계급의 양쪽 얼굴인 것이다.

그러나 철도노조 지도부는 지난 대선 때 ‘모두가 빠짐없이 투표하자’라며 실제적으로 문재인을 ‘배타적으로’ 지지했으며, 철도민영화문제를 전적으로 ‘위탁’하는 방식으로 이번 파업을 끝냈다. 그리고 철도지도부는 2만이 넘는 철도노동자 대중의 힘과, 빠르게 확산되고 있던 ‘안녕하십니까’ 운동 그리고 부정대선 규탄 시위와 결합하여 반민영화 반박근혜 항쟁이 정점으로 치닫던 12월 30일, 상승하던 그 불길을 꺼버리는 일을 저질렀다.

요약하자면, 새누리당과 다를 바 없는 민주당에게 민영화문제를 ‘위탁’한 것은 투항에 다름 아니다. 이 정치적 투항에는 지금까지 각종 선거에서 자유주의 부르주아를 지지해 왔던 ‘자주파(NL계열)’나 다함께의 정치적 책임이 크다. 이들은 지난 2012년 대선에서도 민주당의 문재인에게 투표할 것을 호소했었다. 노동계급은 부르주아 계급과 정치적으로 단절해야 한다. 부르주아계급에 대한 어떠한 정치적 환상도 자살행위이다.

 

3. 민주노총 침탈에도 불구하고 전면파업으로 전환하지 않은 문제

파업 전에 철도 지부장들의 회의인 확대간부회의는 파업 형태를 두고 토론했다. 그러다가 위임을 받은 김명환위원장의 결단으로 전면파업이 아닌 ‘필공파업’을 선택했다. 그로 인해 철도노조의 역량 67%는 ‘필공’의 이름으로 묶어두고 30% 정도의 역량만 가동하여 파업에 임했다. 전력을 다해 싸워도 쉽지 않은 상대에게 차/포를 떼어주고 전투에 임한 셈이었다.

그러나 때마침 부정대선 규탄 시위 그리고 ‘안녕하십니까’ 운동 등 순풍이 불고 있었고, 철도조합원들의 투쟁의지는 뜨거웠다. 파업은 ‘마의 7일’이라는 벽을 깨고 20일을 넘겼다. 하지만 자본가계급도 결사적이었다. 파업 시작 며칠 만에 8000명에 달하는 노동자를 직위해제하는가 하면, 100억 원이 넘는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중요 간부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그리고 그 공격의 정점은 5천 여 경찰 병력을 동원한 민주노총 건물 폭력 침탈이었다. 이쯤 되면 ‘악법도 지키자’는 ‘필공파업’을 벗고 전면파업으로 나갈 충분한 명분과 동력은 형성된 것 아니었을까? 

백번 양보해서 기존의 ‘필공파업’으로라도 파업을 이어갔다면, 하나둘씩 다른 사업장에서도 동요가 일고 전면적인 민중항쟁의 분위기가 조성되었을 것이다. 한국 노동자의 영웅적 투쟁을 숨죽이며 바라보던 수많은 세계 노동자들에게도 강렬한 영감을 주었을 것이다.

 

4. 민영화 반대에 대한 대중적 분노를 식혀버린 민주노총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민영화 철회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고 8000여명에 달하는 직위해제, 철도노조에 대한 거액의 손해배상, 철도노조 지도부 수배 철회 등 파업 종료 핵심 사안에 대한 어떠한 약속도 받아내지 못하고 파업종료와 작업 복귀를 선언한 ‘30일 합의’는 분명한 직권조인이며 배신행위였다. 

민영화를 반대하는 2만여 철도노조 조합원들과 28일 운집한 10만여 명의 시위참가자의 분노를 허공에 날려버린 직권조인과 배신에 민주노총도 일정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 30일 직권조인을 할 때 민주노총의 지도부가 어디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궁금하다. 

또한 22일 사상 초유의 민주노총본부 침탈이 있었음에도 이후 민주노총의 대응은 느긋하기 짝이 없다. 2월 25일 ‘국민총파업’까지 이어지는 핵심 투쟁일정은 ‘12월 28일 총파업-1월 8일 총파업결의대회-1월 18일 총파업결의대회’ 등이다. 이렇게 한가한 투쟁일정도 있을까? 이미 철도노동자들은 철도 사상 최장기 파업을 이어오는 중이었고, 민주노총본부에 대한 폭력적 침탈이 있었고, ‘안녕하십니까 운동’ 등 대중적 분노가 결집되고 있는 중이었다. 충분한 사회적 지지가 있는 상황이었고, 또한 투쟁을 상승시킬 계기가 절실하던 시점이었다. 그런데 전면총파업이나, 연속적 연대파업 등이 아니고 하루하루가 중요한 날카로운 투쟁 국면에서 민주노총은 투쟁일정을 이렇게 띄엄띄엄 배치해 놓고 있다. 먼저 22일 본부침탈 뒤의 최초의 대응을 6일이나 뒤인 28일로 잡았다. 이름은 파업이었지만, 집회는 파업에 크게 영향 받지 않는 토요일 오후였다. 

민주노총 침탈은 박근혜정권의 공세에 위기의식을 느끼던 노동인민의 투쟁의지에 불을 당겼다. 10만 여명이 모였다. 투쟁은 상승되었다. 그런데 다수 대중의 투쟁 요구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은 소위 그 ‘총파업’을 그 다음 주로 이어가지 않았다. 그리고는 그 다음 투쟁은 또 한참 뒤인 1월 8일이었고, 그 이름도 이미 28일 ‘총파업’이 있었음에도 ‘총파업결의대회’였다. 그리고 그 다음 ‘결의대회’는 또 열흘 뒤인 1월 18일이고 그 다음은 한 달 뒤인 2월 25일이다. 부글부글 끓고 있는 정국의 불을 줄이고 뚜껑을 열어 식히는 형국이다.

결론적으로 민주노총의 투쟁일정은, 투쟁을 상승시켜 상대를 타격하고 민영화 철회 등 우리의 요구를 관철시키기보다는, 차라리 어떻게 하면 대중의 흥분을 차근차근 가라앉힐 수 있을까를 고민한 결과인 것으로 보일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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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한풀 꺾이긴 했지만, 철도노동자들의 투쟁의지는 여전하다. 민영화 즉, 공공기관 ‘사유화’의 결과가 얼마나 가혹한지를 알기 때문에 계기가 되면 다시 투쟁으로 나서게 될 것이다. 게다가 자본은 우체국, 의료, 가스, 전기, 공항, 수도 등 굵직굵직한 민영화 역시 밀어붙이려 한다. 반민영화 투쟁은 국가적 독점사업을 통해 초과이윤을 확보하려는 국내 국외 자본가계급과 최저 생존선을 방어하려는 노동계급의 싸움이다. 이 싸움에서 밀리면 노동인민은 지금보다도 더욱 처참한 생활조건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기존의 투쟁을 올바르게 평가하고,  우리의 약점을 극복하여 전투에 임해야 한다.

-민주당 등 자본가 정당에 대한 환상을 철저히 배격하자!

-관료적이고 친자본적인 노동조합 지도부를 노동계급의 이익에 끝없이 충실한 혁명적 지도부로 교체하자!

-후진적 대중 의식에 편승하여 자본가계급에 대한 환상을 선동하는 ‘자주파(NL)’와 다함께 등 친자본주의 ‘좌파조직’을 경계하자!


2014년 1월 24일


볼셰비키-레닌주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