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연대의 계급전선 교란

정의당 성격 규정을 중심으로

 

지난 총선을 앞두고 제출된 4.13 총선에 대한 볼셰비키그룹의 입장에서, 우리는 노동자연대의 계급협조주의를 비판한 바 있다. 그 비판의 핵심은 이렇다: ‘통합정의당은 계급협조주의 인민전선체인 통합진보당 일부가 자본가 언론과 공안의 도움을 받아 자본가 진영으로 쪼개져 나가며 분립한 자본가 정당이다. 흔적이 조금 남아 있을 뿐 더 이상 노동계급 진영에 속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전 선거에서도 자본가정당을 지지한 상당한 전력을 가지고 있는 노동자연대는 이번에는 자본가정당인 정의당을 노동자정당으로 포장한다.’

4.13 총선이 끝나자, 노동자연대는 정의당이 노동계급의 일부라고 강변하는 글들을 연달아 게재했다.

노동자연대는 계급전선을 자주 이탈하여, 선거 등에서 자본가정당을 정치적으로 지지하거나, 자본가 진영을 노동계급 일부인 것처럼 포장한다. 그 기회주의를 감추기 위해 노동계급의 역사적 실천을 통해 도출해 낸 과학적 결론 즉, 맑스-레닌-트로츠키주의의 정식과 용어를 비틀고 왜곡하고 있다. 이 글은 그렇게 비틀리고 왜곡된 맑스주의 정식과 용어를 되찾고 정의당의 계급적 성격 규정 등 노동자연대로 인해 흐릿해진 계급전선을 선명히 하려는 것이다.

 

‘사회민주주의’와 정의당

노동자연대는 자본가 정당인 정의당 지지를 합리화하기 위해 ‘사회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오른쪽으로 이동시킨다. 최일붕의 「정의당을 아는 기초 이론 : 사회민주주의란 무엇인가?」라는 글은 바로 그러한 시도 중 하나이다. 이 글에 따르면 정의당은 “주류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다.

“사회민주주의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주류 사회민주주의고 다른 하나는 좌파적 사회민주주의다. 주류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의 원리·원칙을 지지하고 그에 근거하지만 다양한 법률과 정책을 통해 시스템의 운영을 개선하려 한다. 그럼으로써 노동계급의 권익을 보호하고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만들려 한다. 전통적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대표적 사례이지만, 정의당도 이 범주에 속한다.(정의당의 개혁주의는 또한 민중주의적이기도 하다.)”

어떤 실천적 의미를 가지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주류 사회민주주의”와 “좌파적 사회민주주의”라는 구분은 오직 자본가정당인 정의당을 어떻게든 ‘사회민주주의 정당’으로 규정하여 자신들의 지지를 합리화하기 위한 것이다.

맑스주의 전통에서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간명한 정의는 ‘노동운동 내의 친자본주의적 경향’이다. 즉, ‘노동계급의 혁명적 이해를 외면하고 자본주의 체제 내적 이해에만 복무하는 정치 경향’을 이르는 것이다. 이를 레닌과 트로츠키는‘부르주아 노동자당’이라고 지칭했다.

 

노동자연대의 정의당 구하기와 정의당의 계급적 성격

그런데 노동자연대도 이 전통적 정의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연대는 정의당이 노동자정당이라고 주장한다. 최일붕의 「이해심을 갖고 정의당 지지자들과 관계 맺을 줄 알아야 한다」(이하 「이해심」)는 그러한 주장을 담은 대표적인 글이다. 이 글의 소제목 ‘정의당 소속 총선 당선인들의 정치적 배경/정의당의 공약은 더민주당보다 왼쪽에 있다/정의당 당원의 사회적 구성/정의당 등장의 구체적 맥락’ 등은 어떤 근거로 정의당을 노동계급의 일부라고 주장하는지를 엿볼 수 있다.

과연 노동자연대의 그 근거들이 올바른 맑스주의 원칙에 입각해 있는지, 정의당이 노동계급 개량 진영 즉, 사민주의 정당이 맞는지 하나씩 따져보자.

(1) 정의당 등장의 역사적 배경

먼저, ‘정의당 등장의 구체적 맥락’부터 살펴보자. 이 글에는 ‘정의당 등장의 구체적 맥락’이라는 소제목이 있지만, 정의당 등장의 역사적 맥락은 전혀 다루지 않는다. 이 글에서는 단지 “일부 노동운동가들을 포함해 급진적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의 열망을 반영”, “한국의 정치 지형 속에서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전진하는 것은 노동자들을 고무하는 효과” 등 자신의 주관적 믿음을 담은 ‘추상적’ 의미만 간신히 지적한다. 소제목이 주는 기대와는 달리, 마치 정의당이 불연속적 시간 속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처럼, “구체적 맥락”을 생략한다.

모든 사물은 변화 발전한다. 따라서 사물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서 그 사물의 변화 발전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처럼 정당의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그 당이 어떤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태어났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2000년 민주노동당이 탄생했다. 민주노동당은 맑스주의 전통에서 말하는 ‘부르주아 노동자당(자본주의적 노동자당)’ 즉,사회민주주의당의 전형이었다.

2007년 대선 직후 그리고 총선 직전인 2008년 2월,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 등(속칭 ‘노심조’) 비당권파는 국가보안법 탄압인 ‘일심회’ 사건에 대해 사법당국과 ‘같은’ 목소리를 내며 당시 당권을 장악하고 있던 NL그룹에 종북주의 딱지를 씌우며 분당해서 진보신당을 창당했다. 이 사건은 노동운동의 투사였던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 등이 자신의 정치적 영달을 위해 자본가 진영과 보조를 같이 한 굵직한 첫 사건이어서 이들의 계급 배신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하다.(「국가보안법과 <전진>의 배신 행위」를 참조할 것)

2011년 11월 민주노동당은 유시민 천호선 등 노무현 정권 관료 출신을 주축으로 하는 명실상부한 자본가정당인 국민참여당과 더불어 ‘두 계급 정당’ 즉, 계급협조주의 인민전선체인 통합진보당을 만들었다. 2008년 분당 이후 고전하던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 등도 진보신당을 탈당하여 이에 합류하였다.

2012년 4월 총선이 끝나자, 일시적으로만 함께 할 수 있는 두 적대 계급은 다시 균열을 일으켰다. 불만스러운 총선 성적표를 받아들고 암울한 장래를 걱정하던 국민참여파가 균열을 주도했다. 그들이 ‘부정선거’ 혐의를 제기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언론과 공안당국이 화답했다. ‘종북 마녀사냥’이 다시 불타올랐다. 자본가계급의 공안몰이와 대대적인 언론 폭격을 동력 삼아 다시 분당하였고,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 등은 또 한 번 그 자본가계급 행 분당에 몸을 실었다.(「2012년 한국의 드레퓌스 사건: ‘통진당 경선 부정 사태’」을 참조할 것)

정리해 보자.

2000년 탄생한 민주노동당은 노동계급의 개량주의 정당이다. 즉, 노동계급의 혁명적 이해를 외면하고 자본주의 체제 내적 이해에만 복무하는 부르주아 노동자당/사회민주주의당이다. 노동계급은 때로 이러한 성격의 정당을 ‘비판적’으로 지지할 수 있다.

그러나 2011년 민주노동당과 자본가진영인 국민참여당이 합쳐서 만든 통합진보당은 ‘두 계급 정당’이다. 즉, 계급협조주의 정당이고 이러한 조직체나 정치행위를 맑스-레닌-트로츠키주의 전통은 인민전선이라고 부른다. 계급배신이고, 그렇기 때문에 노동계급은 비판적 지지를 포함하여 어떠한 형태의 지지도 보낼 수 없다.

2012년 탄생한 정의당은 ‘두 계급 정당’이 자본가 진영으로 쪼개져 나간 분파가 만든 당이다. 그 과정을 거치며 과거의 노동투사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 등은 더욱 오른쪽으로 이동하여 결국 자본가 정치인이 되었다. 이석기 체포동의안 찬성,천안함 위령탑 참배, ‘헌법 준수 서약’ 등 이후의 행보는 자본가계급 앞에서 자신의 계급적 지향 변화를 확인해 준 행위들이다. 앞으로도 이러한 충성서약은 꾸준히 이어질 것이다.

노동자연대는 이러한 역사를 가지고 탄생한 정당을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라고 주장하는 것이고, 그 역사적 맥락을 생략하는 까닭은 2012년 우익적 분당 과정에 자신들도 편승했기 때문이다.

(2) 정의당 당선인들의 정치적 배경

두 번째, 「이해심」은 “정의당 소속 총선 당선인들의 정치적 배경”을 들어 정의당이 노동계급 정당이라고 주장한다. 심상정, 노회찬, 이정미, 추혜선, 윤소하 등이 노동운동 또는 시민운동 출신이라는 것이다. 비례대표 1번으로 당선된 김종대는 부인할 수 없는 민주당 출신자이지만, “사드 배치를 비롯한 한국의 미국 MD(미사일 방어 체계) 협력을 반대한다는 점에서 가장 분명하게 더민주당 정치인들과 구분”되니 문제되지 않는다고 한다. 우선 김종대와 관련해서, 다음 두 기사(「더민주 “기다렸다는 듯 사드배치 협의 시작은 유감”」, 조선, 2016년 2월 7일/ 「더민주 “사드배치 안돼”…외교부 해체 주장도」, 매일경제, 6월 7일)를 보면, 노동자연대가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려고 궁색한 변명을 한다는 것이 바로 드러난다. 「이해심」과 달리, 최소한 사드와 관련해서는, 김종대와 더민주당이 딱히 구별되지 않는다.

노동자연대는 마치 사물의 성격이 고정되어 있는 것처럼, 정치인의 변절을 한 번도 보지 않았다는 것처럼 말한다. 지금 더민주당이나 새누리당 심지어 뉴라이트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수의 정치인들이 과거 노동운동이나 진보진영 출신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른바 ‘노동 또는 진보운동’ 출신 정의당 정치인은 두 차례의 굵직한 계급 배신을 통해 자신의 충성 대상을 바꾸었다.

(3) 정의당의 공약은 더민주당보다 왼쪽에 있다?

셋째, 「이해심」은 “정의당의 공약은 더민주당보다 왼쪽에 있다”라고 말하며 정의당이 노동계급의 일부라고 말한다. 하지만 맑스주의 단체를 자처하는 노동자연대의 계급적 안목은 은퇴한 강단 정치학자보다 허술하다. 노동자연대가 정의당이 노동계급 정당이라고 한사코 주장하는 정의당을, 노학자 최장집은 다음과 같이 질타했다.

“사이즈가 다를 뿐 주류 정당과 별로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누구를 대표하려는 것인지 불분명하고, 이념은 없으며, 전문성 없는 고루한 정당.…최 교수는 정의당을 “작은 포괄정당”으로 규정했다. 포괄정당은 특정 계층이나 집단을 대표하기보다 ‘국민 전체 이익’을 추구하는 정당이다. 하지만 최 교수는 “사회적 약자만을 집중적으로 대표하는 것이 진보정당의 역할”이라고 했다. 대표성 측면에서 정의당은 다른 정당과 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최장집 교수, 정의당 특별강연서 ‘쓴소리’」, 경향, 2016년 6월 7일

(4) 정의당 지지층의 사회적 구성과 당의 계급적 성격

넷째, 「이해심」은 정의당이 “단순한 자본주의당”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일부라는 근거로 “정의당 당원의 사회적 구성”을 이야기한다. “약 3만 5천 명의 당원 가운데 민주노총 조합원이 1만 명, 다른 노동자들이 1만 몇 천 명 가량 된다. 노동자가 다수.”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식이라면 미국의 민주당도 “단순한 자본주의당”이 아니며, 사회민주주의당의 범주에 넣을 것을 고려해야 한다. 자본가정당, 최장집의 말로 “포괄정당”인 미국 민주당은 노동자조직 다수의 공식적 지지를 받고 있다. 미국 노동조합이 후원하는 대선자금 85% 이상이 민주당에게 투여될 정도로 미국 노동조합은 민주당을 ‘거의 배타적으로’ 지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당 내에는 노동운동 경력이 있는 다수의 당원과 정치인이 있다. 그리고 민주당 내 경선 후보 샌더스는 스스로 ‘사회주의자’라고 불리길 원하며 상당히 ‘진보적’인 공약을 제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너무 당연하게도 미국 민주당은 노동계급 정당이 아니다. 공화당과 더불어 민주당은, 탄생부터 지금까지, 미 제국주의 금융자본의 이해를 한 치도 거스르지 않고 온전히 집행해 왔다. 샌더스 역시 그러하겠노라고 공공연히 밝혔거니와, 설령 샌더스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이 기본틀은 변하지 않는다.

노동자연대는 눈치 못 챘는지 모르지만, 정의당은 계급의식으로 채 각성하지 못한 노동자 다수의 지지를 받으나 궁극적으로 자본가의 이해를 대변하는 규모만 작은 “포괄” 정당이다.

 

당의 계급적 성격에 대한 맑스주의적 기준과 정의당이 지지하는 계급

맑스주의, 그리고 노동자연대가 계승한다고 주장하는 트로츠키주의 전통은 그런 기준으로 자본가정당과 노동자정당을 가르지 않는다. 미국 트로츠키주의 운동의 중요 지도자 제임스 캐넌은 이 점에 대해 명쾌한 판단 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당의 계급적 성격은 현재 당을 지지하는 계급이 아니라, 당이 지지하는 계급에 의해 결정된다. 다시 말하자면, 강령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이것이 결정적인 구분선이다.”―「1948년 월리스 캠페인에 대한 제임스 캐넌의 논평」, IBT

현재 당을 지지하는 계급이 아니라, 당이 어느 계급을 지지하는가에 따라, 당의 성격이 결정되는 것이다. 정의당이 어떤 계급을 지지하여 섬기는가 하는 것은 자본가계급과 더불어 ‘종북 마녀사냥’을 하며 노동계급을 배신한 탄생 역사가 분명히 보여주었고, “누구를 대표하려는 것인지 불분명”한 강령이 또한 이미 충분히 확인해 주었으나, 앞으로 점점 더 분명해질 것이다. 다음 세 가지 사실들 역시 정의당이 어떤 계급을 지지하는지를 ‘보충 설명’하는 의미심장한 단초이다.

하나, 4.13총선을 위한 비례대표 선출 과정에서 정의당은 자신들이 어느 계급을 지지하고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당내에서 노동운동을 대표하는 인물로 간주되어온 양경규 후보가 후순위로 밀려나고, 당의 국수주의적, 애국주의적 경향을 대표하는 김종대가 비례대표 투표 1위를 차지한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비례대표 선출에 대해 논평하면서, 노동자연대 역시 ‘아쉬운’ 심정으로 이 당이 노동계급의 의지를 대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후보[즉, 비노동계급적 후보]들이 노동운동의 정치적 대변을 강조한 양경규 후보에게 적게는 수백 표에서 많게는 2천7백여 표나 앞선 것이다. 이는 노동자 운동의 정치적 염원이 정의당 내에서 충분히 반영·대변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정의당 미래정치센터가 당원 1천8백96명을 대상으로 한 ‘당원 정치의식 설문조사’를 보면, 정의당의 우선과제로 ‘노동자의 이해를 더 분명하게 대변해야 한다’고 답한 당원이 20.2퍼센트다(복수 응답). 이 비율은 전체 당원 3만여 명 중 조직노동자 1만여 명을 포함해 노동자 당원이 2만여 명인 당원 구성에 비하면 꽤 낮은 편이다.”―「정의당 비례후보 투표 결과 : 아쉬운 노동운동 홀대」, 2016년3월 16일

둘, 정의당 내에서 이른바 ‘노동’ 부문을 대표하는 분파였던 <노동정치연대(대표 양경규)>가 해산한 것도 정의당이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서 나타난 일화 가운데 하나이다. 해산하면서, 자신들을 홀대하는 당에 섭섭함과 우려를 밝힌 다음과 같은 언급은 노동자연대가 혼란스럽게 만드는 정의당의 정체성과 관련하여 음미할 만하다.

“총선에서의 일정한 성과가 정의당이 부족했던 노동의 결합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당 지도부 등에서 어떤 언급과 평가도 없다…진보정당으로서의 지속가능한 성장전략을 간과하는 경향성을 보였다…단지 선거 전술의 문제가 아니라 당의 전반적 흐름…당 지도부의 노동의 전략적 중요성에 대한 인식 부족…정의당은 노동중심의 대중적 진보정당으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노동 일부가 참여한 진보적 대중정당이거나 착한 민주당에 불과한가.”―「노동정치연대, 조직 해소로 방향 잡아」, 레디앙, 2016년 5월 2일

셋, 총선 이후, 정의당 내에서 시민정치위원회위원장의 발의로 ‘더민주당과의 합당’이 공공연한 주제로 논의되고 상당한 지지를 얻었다. 심지어 5월 30일에는 조택상 전 인천동구청장이 정의당을 탈당하고 더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이러한 사실들은 정의당의 계급적 성격을 뚜렷이 드러내 보이는 것이지만, 노동자연대는 도리질을 하며 부정하고, ‘정의당은 노동계급 진영’이라고 도리어 우리를 가르치려 든다.1)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 문재인을 지지했을 정도로 계급을 넘나들고, 2012년~13년 부정선거파동/내란음모사건/통합진보당 해산 등의 정치국면에서 보였던 기회주의적 태도를 합리화하려 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맹목을 합리화하기 위해 우리의 눈도 흐리려 드는 것이다.

 

개량주의 vs 개혁주의

노동자연대는 ‘사회민주주의’라는 말만 오용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계급의 수많은 희생을 담보로 한 역사적 실천을 통해 얻어낸 정식 가운데 하나인 ‘개량주의’라는 말 역시 혼란시키고 있다.

‘개혁주의’라는 용어는 남한 운동진영 내에서 노동자연대가 유독 즐겨 쓰는 표현 가운데 하나이다. 지난 총선 정국에서 노동자연대는 ‘개혁주의’, 또는 ‘주류 개혁주의’라는 말로 정의당을 수식했다. 이 단어는 이 나라 운동진영에서 ‘개량주의’로 통용되어온 ‘reformism’의 번역어로 추정된다.

‘사회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reformism’ 역시 맑스주의 운동 내에서 ‘노동운동 내의 한 경향’을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맑스주의자는 미국 민주당 같은 정당을 개량주의 정당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러나 독일 사회민주당이나 영국 노동당, 프랑스 사회당을 그렇게 지칭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연대(구 다함께)가 ‘개혁주의’로 지칭하는 대상은 훨씬 광범하다. 이들에 따르면 더민주당도 ‘개혁주의 정당’이다.

“이런 상황에서 치러지는 대선. 좌파라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저는 개혁주의 세력에게 비판적 투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썩 유쾌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극우 정권이 아니라 개혁주의 정권을 원하는 이유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상대하기에 더 편한 적을 선택하려는 이유」, 독자 최지미

“신자유주의가 강화할수록 새정치연합은 세계의 다른 여느 개혁주의 정당처럼 점점 더 실용주의적 ·기회주의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짜증 유발자들―새정치민주연합」, 김지윤

“이런 기회주의적인 행보는 전형적인 개혁주의 정치인으로서 박원순의 한계를 보여 준다.”―「박원순의 괘씸한 배신」, 양효영

“기성 체제는 이것을 ‘국정 운영 능력’이라 부르며, 개혁주의 정치인들에게 이를 입증받길 요구한다. 그래서 대체로 말해, 개혁주의 정치인들은 갈수록 지지 대중의 기대와는 어긋나는 실천을 자주 하게 된다. 참여연대 창립자 박원순 시장의 최근 행보도 그래 보인다.”―「기성체제의 환심을 사려는 박원순 서울시장」, 김문성

“이 과정에서 민주당의 일부와 NGO를 포함한 여러 종류의 개혁주의가 득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대선 결과가 보여 주듯, 경제 위기 반동 시대에 개혁주의는 일관된 대안을 내놓을 수 없다. 그러므로 급진좌파는 개혁주의에 이끌리는 대중 속에 개입하면서 독립적 비판과 대안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박근혜 정부의 성격과 ‘국민불행시대’ 추진의 전망」, 김문성

“우리나라에서는 민주당이라는 포퓰리스트 부르주아 정당이 전통적 개혁주의 세력인데, 민주당이 10년 동안 집권하면서 지지자들을 배신했다는 사실을 새누리당과 박근혜가 십분 활용한 덕분에 민주당은 총선에서 패배했다.…야권 후보가 만약 문재인으로 단일화된다면 민주노총 노동자들은 그를 차악으로 규정하면서 날카로운 비판과 함께, 내키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그에게 투표하는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취할 것 같다.”―「대선 전에 살펴보는 경제 위기와 대선, 대선 이후」, 최일붕

자본주의적 개혁주의 정당인 민주당의 문재인은 ‘독재 정권의 후예이자 재벌 친화 세력인 박근혜와 새누리당만은 막아야 한다’는 노동자와 천대받는 사람들의 위기의식을 이용할 수 있었다. 막판의 광화문 유세에서 문재인은 “쌍용차와 용산의 눈물을 닦아 주겠다”(물론 다소 막연한 말이다)고 약속했다.“―「18대 대선 평가 성명」, 노동자연대다함께,

(이상 「맑시즘 2015 참관기 2: ‘사회주의 전략 전술―공동전선을 중심으로’」에서 재인용, 강조 추가)

이런 점에서 노동자연대가 자본가세력까지 포괄하는 ‘개혁주의’라는 용어는 ‘사회민주주의 또는 체제 내적 진보/개선을 지향하는 태도’를 뜻하는 맑스주의 전통의 ‘개량주의’와 전혀 다른 말이다. 그렇다면 노동자연대는 왜 굳이 ‘개량주의’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몰계급적인 ‘개혁주의’로 대체하려는 것일까? 그 대답은 독자에게 맡기기로 한다.

 

‘계급 대 계급’의 정치를 위하여

「이해심」은 “도로의 중앙선은 자의적으로 긋는 게 아니다. 좌와 우의 한가운데에 긋는 것이다(「이해심」).”라며 우리에게 금 긋는 법을 가르치려 든다. 노동자연대는, ‘개혁’이라는 말버릇처럼, ‘좌와 우’라는 말도 몰계급적으로 사용해 왔다. 즉,새누리당이나 박근혜 정권을 우파라고 지칭하고 나머지를 좌파라고 지칭하곤 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좌와 우의 한가운데”가 계급 전선을 말하는지 의심스러운 것이다. 노동자연대가 그동안 “좌와 우의 한가운데”에 그어 왔다는 중앙선은 계급적 선을 넘어 오른쪽으로 치우친 것이었다. 그 선에 따르면, 자본가 정당도 우리 편이 되고, 민주당에게도 투표해야 했다.

노동계급의 해방은 계급의식의 각성으로 시작된다. 그러므로 이 사회가 계급적대에 기초한 자본가독재 사회임을 드러내는 것은, 이 시대 사회주의 혁명가의 주된 임무이다. “사물의 이름을 올바르게 부르며, 아무리 쓰디쓴 진실도 대중에게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트로츠키, 「이행강령」)” 역시 혁명가가 시종 취해야 할 자세이다. ‘사회민주주의’, ‘개혁주의’, ‘좌와 우’라는 개념을 몰계급적으로 오용하고, 대중의 후진적 환상에 영합하여 노동계급을 부르주아 정치세력에 굴종시키려는 노동자연대의 시도에 현혹당하는 것을 경계하고, 계급적 눈을 부릅떠야 할 필요성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2016년 6월 14일

볼셰비키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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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의당의 노동계급적 성격을 의심’한다는 측면에서 사회변혁노동자당(변혁당)의 그것이 ‘정의당이 노동계급의 일부’라고 가르치는 노동자연대보다 조금 나은 것은 사실이나, 변혁당은 정의당의 성격을 상당히 혼란스럽게 인식한다. 변혁당 정책선전위원장 백종성은 총선을 전후하여 정의당의 성격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하는데 그때마다 같지 않다. 먼저, 3월1일에 그는 “정의당이 제안하는 ‘정권교체를 위한 정치연합’은…자본가 정당과 노동자 정당의 권력분점이 가능하다는 허황된 믿음에 대한 용인”이라며 정의당을 노동계급 정당인 것처럼 말한다. 그런데 총선이 끝난 5월 1일에 그는, 이제 알겠다는 듯이, “정의당은 노동자계급의 오른편에서 점점 자본가계급의 왼편으로 이동하고 있다.”라며 상당히 그럴 듯한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5월 19일 글에서는 “정의당의 노선을 강령상으로 정식화하자면, 제 3의 길이 표방한 사회적 자유주의(유사 사민주의)에 가깝다.”라고 정의당을 노동계급 진영으로 다시 끌어들이면서,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을 오가는 정의당의 정치야말로 통합진보당을 온전히 계승”했다고 평가한다. 특히 마지막 문장은 통합진보당과 정의당 사이에 있었던 ‘부정선거파동’ ‘분당’ ‘내란음모사건’ 등을 모르는 사람처럼 말한다. 사실 언급한 세 글 모두에서, 2012년 이후 노자역관계를 형성한 핵심적 사건들인 ‘부정선거파동’ ‘분당’ ‘내란음모사건’ ‘통합진보당 해산’ 등을 그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