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권의 '역사 바로 세우기' 공세

--- 부르주아 정치권의 또 다른 진흙탕 개싸움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이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로잡겠다고 나섰다. 친일파를 색출하여 이 사회에서 몰아내거나 민족에 대한 이들의 죄를 인정하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과 그의 똘마니들의 진짜 의도는 친일과 군부독재로 지난 50여 년 간 사회를 좌지우지한 구 지배 세력을 몰아내고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좀더 충실한 척하면서 신자유주의 국제화 시대에 걸맞게 노동자 민중을 좀더 세련되고 강하게 억압하는 새로운 정치질서를 수립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자신의 정권을 강화하고 이후 대권의 행방을 자신의 의도에 맞게 결정하려는 것이다.

이 공세에 대해 한나라당 대표 박근혜는 난감하다. 아버지 박정희가 일본의 만주군관학교를 졸업하고 만주에서 일본군 장교로 독립군 사냥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처음에는 노 정권에게 경제 살리기에 전념하라며 딴전을 피웠다. 그러나 이 문제를 회피할 수 없다고 판단하자 친일파 문제 뿐 아니라 한국전쟁 이후 공산주의를 지지했거나 용인한 인사들의 행적 등을 포함하여 포괄적으로 과거사를 정리하자고 맞불을 놓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리 해도 효녀는 될 수 없는 팔자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일제 때는 일제 군대의 엘리트 장교가 되어 독립투사를 사냥하다가 해방정국에서는 군부 내에서 남노당의 조직책이 되었다. 당시 상황은 사회혁명의 전야였다. 일제가 도망한 후 주인 없이 내버려진 공장이나 농토 등 생산수단을 노동자와 농민이 전국에서 인민위원회를 조직하여 접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 처신을 위해 이리 붙고 저리 붙는 인간이었던 박정희는 당연히 대세에 따라 남노당에 가입하여 군부 내에서 아주 중요한 조직 임무를 맡았다. 여수 순천 군대 봉기 때 주동적인 역할을 했던 그는 결국 동료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그가 이렇게 공산주의자로 변신한 배경에는 그의 형 박상희가 있었다. 형을 몹시 따랐던 박정희는 박상희가 10월 대구 봉기를 총지휘할 정도로 남노당의 거물급이 되자 남노당에 합류했다. 이때 그는 형의 절친한 친구인 황태성과도 교분을 맺었다. 결국 박상희는 경찰에 의해 살해되었고 황태성은 육이오 와중에 월북했다. 하여간 이제 박정희는 반란죄로 동료들과 함께 총살되기 직전에 있었다. 이 때 그의 인간성이 여실히 드러났다. 군부 내 남노당의 조직 체계를 모두 불어 버린 것이다. 이 공로로 유일하게 그 만이 무기징역형에 처해지고 군대 내 그의 남노당 동료들은 모두 총살형에 처해졌다. 이 사건이 있은 후 곧바로 육이오 전쟁이 터져 그는 다시 군대로 복귀하여 살아남았다. 나중에 그가 오일륙 군사 쿠데타의 주역이 되어 정권을 잡았을 때 북한의 김일성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의 의중을 떠보려고 당시 차관을 지내던 황태성을 밀사로 보내 박정희와 접촉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때 박정희가 섬기는 주인은 확실히 바뀌어 있었다. 그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지지가 절실했다. 자신의 공산주의 전력에 의심을 품고 있던 미국을 안심시키기 위해 쿠데타 직후 반공을 제 1의 국시로 선언했던 그는 이제 황태성을 간첩으로 몰아 사형을 언도한 후 제 4대 대통령 취임 며칠 전에 총살시켜버렸다. 친형의 친구인 밀사를 국제적 관례를 무시하고 간첩으로 몰아 죽일 정도로 그는 자기 안위를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그는 가장 기본적인 도덕심도 내팽개치고 자기 권력을 보존하기 위해 무슨 짓이든 마다하지 않았던 북한의 김일성, 중국의 마오쩌둥, 러시아의 스탈린 등과 같은 부류의 인간이었다. 만약 과거사 진상 규명을 위한 조사가 진행된다면 가장 피해를 입을 자는 바로 박정희가 될 것이다. 박정희를 경제발전의 지도자로 떠받들며 신주 모시듯 하는 우익 세력에게 노무현 정권의 공세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공세에 대한 히스테리 반응은 조선 중앙 동아일보 등이 연일 쏟아내는 기사를 통해 확실히 감지할 수 있다.  

여기에 민주당과 민주노동당도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나서면서 이제 부르주아 정치권은 탄핵 정국에 뒤이어 또 다시 진흙탕 개싸움(이전투구)에 돌입하고 있다. 경제난, 민생파탄, 노동운동 탄압, 이라크 파병 등으로 지지율이 급락하고 있는 노 정권은 이 의미심장한 카드를 던지며 정국돌파의 승부수를 던졌다. 이것은 김영삼 정권이 광주특별법으로 그리고 김대중 정권이 남북정상회담으로 정치위기를 돌파하려 한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 공방은 적당한 선에서 구렁이 담 넘어가듯 흐지부지될 것이다. 진실이 파헤쳐질수록 민족의 정통성을 자처하는 부르주아 정치권은 자신의 역사가 노동자 민중에 대한 탄압과 착취는 물론 온갖 더러운 음모와 사기의 난장판이라는 것을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가 적당히 마무리 될 시점이 되면 다시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고 이들 중 누가 새로운 얼굴인양 전면에 등장하여 정치개혁을 외칠 것이다. 부르주아 정치판이 노동자 민중의 조소와 분노를 무마하고 자신의 지배를 유지하는 방식이 바로 이것이다.

사실 민족 정기를 바로잡고 올바른 토대 위에서 민족의 역사를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요구는 남한 부르주아 정권의 초창기부터 있었다. 미군정이 이승만과 친일파를 내세워 남한에 신식민지형 자본주의 체제를 강제로 수립하면서 일제 때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세력은 사회의 주변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민족의 정통성이 훼손되었다는 이들의 주장은 당시 불안한 정세 속에서 계속 반복되었다. 박정희가 군부 쿠데타를 통해 집권하고 강압으로 독재권력을 유지하는 동안 이 주장은 잠시 물밑으로 가라앉았으나 그의 사망 이후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더욱이 노태우 정권과 결탁하여 정권을 장악한 김영삼 "문민" 정권이나 경제위기와 남북관계 돌파구 모색에 정신이 없던 김대중 "국민" 정권도 "정통" 민족주의 세력의 기대와는 달리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이제 노무현 정권이 이 해묵은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서면서 한나라당과 구 지배집단을 압박하고 있다. 그렇다면 역사를 바로잡고 민족 정기를 올바로 세워야 한다는 이 주장이 노동계급에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민족주의와 자본가 지배계급

부르주아 민족국가 형성과 유지의 이데올로기인 민족주의는 자본주의의 발전과 함께 나타난 현상으로 긴 인류 역사를 보면 비교적 최근의 현상이다. 공동의 언어사용을 포함하여 동질적인 문화를 누리는 인구 집단이 특정 지역을 차지하고 이 지역이 하나의 공동시장을 형성할 때 이 집단의 지배분파가 이 시장을 지배하기 위해 건국을 선언한다. 이것이 부르주아 민족국가가 성립되는 과정이다. 서양 역사에서 이 현상은 중세 말기 잉여 생산물의 무역을 통해 상업자본이 축적된 르네상스 시대부터 본격화되었다. 상업자본의 지배가 공업자본의 지배로 바뀌고 상품생산이 일반화된 생산양식이 확고히 정립되었다. 왕조간의 전쟁이 동반된 이 과정을 통해 기존의 왕국이나 제국들이 민족국가로 속속 분화되면서 자본주의 체제가 확립되었다. 자본주의의 진보적 시기가 개막된 것이다. 이 시기에는 신분제를 비롯한 봉건 구습이 타파되면서 생산력과 문화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공업이 사회의 지배적 생산방식으로 발전하면서 공장노동자의 수도 꾸준히 증가하여 노동계급은 자본가 계급과 함께 자본주의 체제의 양대 계급으로 부상했다. 이 시기에는 생산력의 누적적 발전으로 인한 체계적 사회 개량이 가능했기 때문에 노동조합운동이 꾸준히 성장하였고 이에 기초한 사회민주주의 노동자정당이 토대를 확립했다.  

사회의 확고한 지배력을 장악한 자본가 지배계급은 이때부터 자신의 지배적 지위를 합리화하기 위해 민족사 연구에 착수했다. 어느 나라 국사 교과서를 보아도 민족의 기원이 맨 처음 서술된다. 마치 인류의 역사와 함께 민족이 존재해왔던 것 같은 환상이 조성된다. 자본주의 체제가 인류 역사 최고의 완성 형태이자 영구불변의 사회 존재양식이라고 강변되어온 것과 똑같이 민족 역시 영원불멸의 존재로 미화되면서 민족국가의 틀에 기초한 자본가 계급의 사회지배가 정당화된다. 어용 역사학자들은 온갖 신화와 허구를 만들어 내어 국사 교과서의 내용을 채운다. 예를 들어 영국의 국사 교과서에 보면 백년전쟁이 한창이던 1356년 에드워드 3세의 장남인 검은 왕자(Black Prince)가 프랑스 서부의 쁘와띠에(Poitiers) 전투에서 프랑스 국왕 존 2세를 생포했다고 나와있다. 프랑스에서 벌어진 백년전쟁은 영국과 프랑스의 국가 형성에 분기점이 되었기 때문에 두 국가의 부르주아 계급 모두에게는 아주 중요한 민족적 사건이다. 그러나 이 전쟁 기간에 있었던 쁘와띠에 전투는 과학적 역사 고증에 의해 허구임이 최근 밝혀졌다.       

그러나 인류의 생산력과 문화를 발전시키던 자본주의 체제는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독점자본의 등장과 함께 그 진보적 시기를 마감하고 반동적 시기로 들어섰다. 한 국가의 영역 안에서 주로 진행되던 자본의 축적 운동은 이윤율 저하 경향에 의해 한계를 드러냈다.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서구 독점자본은 본격적인 식민지 지배를 통해 이윤율 확보에 나섰다. 자본주의의 시작과 함께 진행된 비유럽 지역에 대한 유럽 국가들의 식민지 강탈과 노예 무역의 참상은 자본의 본원적 축적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국제적 차원의 파괴와 약탈이 이윤율 확보를 위해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 세계 역사는 금융자본이 세계를 지배하는 제국주의 시대로 들어섰다. 서구의 선진 제국주의국가들은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차지하여 이것을 상품판매 시장 및 원료공급지로 삼았다. 자본주의 발전이 비교적 늦은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 후발 제국주의 국가들도 이 싸움에 뒤늦게 뛰어들었다. 1914년에 발발한 제 1차 세계대전은 선발 제국주의 국가들과 후발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의 식민지 쟁탈전이었다. 이 전쟁은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대량 살상과 파괴를 가져왔다. 이제 미증유의 파괴를 통해서만 자신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자본주의의 잔인한 모습이 드러났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전 세계 노동계급에 의한 사회주의 혁명이 일정에 올랐다. 전쟁과 혁명의 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의 승리는 자본주의의 대안이 어떻게 가능한 지를 보여준 단초였다.        

한편 서구 제국주의의 침략과 약탈에 직면한 비유럽 지역의 봉건 왕조국가들은 서양 오랑캐(양이)의 침략에 직면하여 체제 개혁에 나섰으나 개혁의 정도는 너무 미미했고 너무 늦게 진행되었다. 이 국가들의 선진 지배분파는 급속한 자본주의의 도입과 근대 민족국가의 수립을 도모하며 제국주의에 맞섰으나 역부족이었다. 동양에서는 일본만이 유일하게 제국주의 국가로 재빠르게 변신하여 동아시아의 제국주의 맹주로 부상했다. 이제 식민지의 선진 지배분파는 근대 민족국가의 시조가 되어 민족주의를 제창하여 근로대중의 지배자로 변신하려는 계획을 추진했다. 이 시기 이전에는 문화가 다른 인구 집단들이 왕국을 중심으로 하여 서로 경쟁했을 뿐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민족의식은 존재하지 않았다. 한반도의 경우도 고려나 조선은 왕씨의 나라니 이씨의 나라로 불렸지 한민족의 나라로 인식되지 않았다. 한민족이라는 관념은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과 식민지 통치 하에서 민족주의자들이 고대 역사를 연구하면서 만들어낸 지배 이데올로기이다. 신채호는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면서 [조선 상고사] 등의 역사서를 저술하여 까마득한 옛날에 존재했던 고조선과 고구려를 민족의 기원으로 설정하며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일반적으로 식민지의 민족주의와 근대 민족국가 수립 운동은 제국주의의 압제에 대한 구 지배계급 선진분파 일부의 전유물이다.

이 점과 관련하여 최근 중국공산당 정권의 동북공정 캠페인은 역사란 특정 정권의 이해에 맞추어져 창조된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사실 200여 개 이상의 민족국가로 쪼개진 자본주의 체제에서 영토분쟁과 관련된 이런 일들은 허다하게 많다. 일본과 한국 사이에 독도와 동해를 둘러싼 해묵은 다툼은 이것의 한 예에 불과하다. 이런 영토분쟁은 부르주아 계급이 지배 체제에 대한 노동자와 민중의 불만을 딴 곳으로 향하게 하는 중요한 정치적 도구이다.

압록강과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마주하고 있는 북한은 중국의 지배집단에게 지정학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나라이다. 중국의 기형적 노동자국가를 가급적 빨리 붕괴시키고 자본주의로 되돌리는 것이 미 제국주의의 최대 목표이다. 이 목표가 달성될 경우 러시아의 경우처럼 거대한 자원과 인구를 가진 중국은 제국주의 자본에 의해 헐값으로 넘어가면서 미국의 부르주아 계급에게 막대한 이윤을 선사할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은 구일일 테러를 빌미로 삼아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일으켜 중국 서부와 국경을 마주한 나라들을 점령 내지 우호국으로 만들어 중국을 포위, 압박하는 계획을 행동으로 옮겨왔다. 티베트를 비롯한 중국 서부 변방의 소수 민족들을 부추기는 한편 대만에 막대한 무기를 판매하고 필리핀에 '테러대전' 지원을 이유로 군대를 다시 주둔시키면서 이 포위 작전은 북한 점령의 시나리오로 완성을 향해가고 있다. 소위 "북핵" 문제는 이 시나리오의 한 부분이다.

현재 미 제국주의의 계획은 북한을 조기에 붕괴시키거나 점령하여 중국의 붕괴를 촉진하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처럼 북한에 친미정권이 들어서고 미군이 주둔할 경우 중국의 국경은 위협받을 뿐 아니라 중국 내부의 자본주의 복귀 세력이 크게 고무될 것이다. 현재 중국은 서방 자본가들과 1949년 혁명 때 동남아와 대만으로 도망친 중국 자본가들이 사회주의적 집단 경제를 잠식해가고 있으나 금융, 중공업, 에너지 등 경제의 핵심부위와 정치권력은 1949년 혁명의 산물인 공산당에 의해 장악되고 있는 모순적 체제이다. 따라서 미국의 북한 점령은 내부 부르주아 세력을 크게 고무시켜 현 체제를 무너뜨리는데 큰 기여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세계 최대의 안보 위협이라고 떠들면서 급기야 북한을 '악의 축'의 일부라고 선언했다. 설령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이것이 미국 본토에 위협이 될 리는 없다. 러시아 전문가들의 분석에 의하면 북한 핵무기는 개발이 되었다 하더라도 수준이 조야하여 너무 무거워서 이것을 탑재하여 멀리까지 쏘아 보낼만한 미사일 기술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없다. 그리고 7,500기가 넘는 각종 핵무기는 물론 세계 구석구석에 이것을 보낼만한 미사일을 비롯한 각종 군사장비를 구비한 미국에게 북한이 핵공격을 가한다는 것은 곧 북한이 미국 핵 보복 공격에 의해 잿더미가 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북한 김정일이 이것을 원할 리가 만무하다면 미국의 북핵 공세는 중국을 겨냥한 북한 붕괴 작전임이 명백하다. 전 세계 노동계급은 기형적 노동자국가인 북한에 대한 미 제국주의자들의 도발을 저지해야한다. 또한 세계를 핵전쟁의 재앙으로 몰고 갈 핵 강대국들의 핵무기가 해체되지 않는 한 북한 역시 주권 방어를 위해 핵무기를 보유할 권리가 있음을 주장해야한다.

미국의 계획을 모를 리 없는 중국의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은 한국의 민족주의자들이 비난하는 바 "역사 날조"를 통해 고구려가 중국 역사의 일부이고 따라서 북한은 중국 영토라고 선언하며 이후에 발생할 미국의 위협을 미리 제거하려고 한다. 1949년 혁명으로 정권을 장악한 중국의 스탈린주의 정권은 200만의 '자원군'을 북한에 투입시켜 미군이 주축이 된 유엔군을 지금의 휴전선 아래로 밀어내어 당시 유일한 핵보유국 미국을 자기 뒷마당에서 멀찌감치 떼어놓는데 성공했다. 현재 미국의 위협에 직면하여 이들은 또 다시 과거의 성공을 되풀이하려고 한다. 중국과 한국의 노동계급은 자국 지배집단의 민족주의적 다툼에 포로가 되지 말고 계급적 연대를 통해 동아시아의 전쟁을 초래할 자본주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제거해야한다.            

 

한국 자본가 지배계급의 기원

일제의 식민지 지배 이전에 한국에는 근대 민족국가의 지배계급인 자본가 계급이 형성되지 않았다. 임진왜란 이후 그간 발전한 생산력에 기초하여 잉여생산물이 축적되어 무역이 활발해 지면서 소규모 상업자본을 축적한 상인들이 일부 등장했다. 그러나 앞서 서구 자본주의를 받아들여 사회를 급속하게 재편한 일본 자본주의는 이들에게 너무 강력한 상대였다. 1876년 일본의 강압에 의해 문호가 개방된 이래 한국의 토착 상품은 일본 상품에 의해 밀려났으며 토착 부르주아 계급의 형성은 저지되었다. 그리고 일제의 병합 이후 한국은 일제의 병참기지가 되어 강제로 공업화되었다. 농업에 기초했던 한국의 봉건사회는 일본이 서구에서 도입한 최신 기술로 모습이 바뀌었다. 도로와 철도 등 인프라가 구축된 것은 물론이고 압록강의 수풍에는 64만 킬로와트의 전기생산능력을 자랑하는 세계 수준의 수력 발전소가 건립되어 풍부한 지하자원을 이용한 북한 중화학공업의 동력원이 되었다. 트로츠키가 얘기한 불균등 결합 발전(uneven and combined development)의 전형적인 케이스가 이 땅 자본주의의 시초였다. 그리고 이와 함께 노동계급이 형성되어 이 땅에 노동운동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한때 종속이론에 경도된 민족주의자들은 일제의 공업화가 한국의 봉건체제를 온존시켰을 뿐 한국사회의 발전을 가져오지 않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들의 소망과는 반대로 실제 한국에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수립되었다.  

그러나 일본 제국주의의 공업화였기 때문에 한국의 구 지배계급은 제국주의 자본의 하수인에 불과했다. 이들이 그나마 과거에 누리던 사회의 지배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친일파가 되어야했다. 식민지 지배를 위해 구 지배계급의 도움이 절실했던 일제는 친일파를 적극 활용했고 이들이 일본 제국주의의 주역이라는 환상을 심어주었다. 대신 구 지배계급의 극히 일부 분파만이 만주로 무대를 옮겨 독립운동과 민족의식의 고양을 주도했다. 새로 등장한 노동계급에 대한 친일파의 태도는 지주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극렬하게 농민을 착취한 마름의 태도와 같았다. 이들은 일제의 침략 전쟁에 기여할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노동자 민중을 전쟁에 동원시키는데 열성이었을 뿐 아니라 자신들이 조국의 발전을 주도하는 견인차라는 착각에 빠졌다. 현재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일본 문화는 이들의 일제 동화 노력의 일부 결과이다. 따라서 소부르주아 민족주의자들이 주장해온 민족의 정기나 정통성은 지배 분파의 극히 일부분에게만 해당되는 얘기이다. 일반적으로 식민지의 구 지배계급은 제국주의의 하수인이 되어 민족 해방을 위해 투쟁하기는커녕 민족해방의 진정한 동력인 노동자 민중의 적이 되어 제국주의 지배를 영속시키는 도구가 된다. 노동계급만이 제국주의에 정면으로 저항하여 식민지 민중 전체를 지도하면서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그리고 최종적으로 국제혁명의 승리를 통해 진정한 민족해방을 달성할 수 있다.

여기서 러시아 10월 혁명 전야에 레닌과 룩셈부르크가 벌인 민족자결권 논쟁을 간단히 짚어 보자. 당시 짜르의 러시아 제국은 주변의 여러 민족국가들을 식민지로 점령하여 억압한 "소수민족들의 감옥"이었다. 폴란드 역시 짜르 군대에 의해 점령되어 있었다. 룩셈부르크는 폴란드의 민족자결 즉 독립을 러시아 제국 전체 노동계급의 단결을 해친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그녀에게 민족해방운동은 노동계급을 분열시키는 반동적 운동에 불과했다. 그러나 레닌은 생각이 달랐다. 만약 러시아의 맑스주의자들이 폴란드의 독립을 반대한다면 폴란드 민족주의에 갇혀 있던 폴란드 노동자들은 러시아 맑스주의자들을 자국 제국주의를 지지하는 국수주의자로 바라볼 것이 확실했다. 이럴 경우 이들은 맑스주의자들은 물론이고 이들의 노선인 사회주의 국제 혁명도 지지하지 않을 것이었다. 역으로 러시아 맑스주의자들이 폴란드의 독립을 지지할 경우 폴란드 노동자들은 억압당하는 자신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이것의 해결을 촉구하는 맑스주의자들에게 신뢰를 보낼 것이었다. 또한 폴란드가 실제로 독립될 경우 폴란드 노동자들은 자국 민족주의자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계급의 독자적 이해를 위해 투쟁할 수 있을 것이었다. 바로 이 때문에 레닌은 민족자결권을 옹호했다. 레닌에게 중요했던 것은 전 세계 노동계급의 단결이었다. 민족문제가 이 단결의 장애물이라면 제거되어야했다. 이후 혁명적 사회주의 진영은 식민지 민족의 자결권을 옹호하는 노선을 전통으로 간직해왔다. 물론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식민지 대중이 독립을 원하고 실현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할 뿐 이들에게 독립을 바람직한 것으로 촉구하지는 않았다. 큰 나라가 작은 나라들로 쪼개질수록 그만큼 노동계급이 나라별로 분열되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마치 이혼의 권리를 인정하되 실제로 이혼하는 것이 좋다고 종용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결국 러시아 볼세비키당은 러시아 제국 내에서 대러시아 민족에 의해 억압당하던 소수민족들의 지지를 얻어 혁명을 완수했으며 이후 이 소수민족들은 소련사회주의공화국연방(소련) 내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집단적 소유체제에 기초한 통합된 계획경제의 혜택을 누렸다.   

한편 '역사 바로 세우기'와 관련하여 이 땅의 민족주의자들은 프랑스의 예를 든다. 제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에 점령당한 프랑스의 지배계급은 노동자 민중을 동원하여 프랑스 국내에서 친독 비시정권에 대항하여 레지스탕스 운동을 전개하면서 국외에는 드골 망명정권을 세워 나치 독일에 대항했다. 결국 독일의 패퇴로 전쟁이 끝난 후 독일에 협력했던 자들은 모두 법정에서 유죄선고를 받거나 공직에서 도태되었다. 프랑스의 "민족 정기"가 이렇게 확보되어 이후 프랑스는 정치와 문화에서 계속 선진국으로 남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예는 적절하지 않다. 우선 프랑스와 독일은 선진 제국주의 국가로 모두 확고한 민족국가로서 존재해왔기 때문에 프랑스가 일시적으로 독일에 점령당했어도 이에 대항할 지배계급의 경제적 정치적 토대가 존재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일제에 대항할만한 독자적 부르주아 계급이 없었다. 그리고 프랑스야 기껏 몇 년간 점령당했을 뿐이었지만 한국의 경우 거의 40년 즉 두 세대에 걸친 식민지 지배를 당했다. 이쯤 되면 나라의 운명이 끝장났으므로 일제에 충성을 바쳐 일신의 영달을 도모하겠다는 생각이 구 지배계급에게 절로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친일파에게도 나라의 지배권을 확보할 기회가 왔다. 일본이 패망하고 물러나면서 남한에 미군정이 들어섰기 때문이었다. 미 제국주의자들은 일제 식민지 지배세력이 빠져나간 뒤 생긴 통치의 공백을 친일파로 메울 수밖에 없었다. 친일파 출신 세력은 새로운 제국주의 주인의 뜻에 따라 노동자 민중을 탄압할 유일한 도구였기 때문이었다. 미군정은 이들의 도움을 얻어 전국 각지에서 생산수단을 스스로 장악한 노동자 농민의 인민위원회를 제압하고 자신의 지배질서를 구축할 수 있었다. 일부 민족주의자들이 이승만 정권의 미적지근한 친일파 청산 행적을 비판하면서 민족사 왜곡의 주범이 그 인양 비난하지만 이것은 식민지 한국 사회의 태생적 한계를 인식하지 못한 채 모든 문제를 개인의 성향으로 돌리는 주관적 푸념에 불과하다.

그러나 친일파들이 미 제국주의자들의 밑에서 남한 자본주의를 안착시키고 자신의 지배력을 공고히 할 기회는 또 다시 유실되었다. 육이오 전쟁이 터졌기 때문이었다. 남노당의 남한 대중 장악력과 소련 중국의 지원을 믿고 김일성이 도발한 이 전쟁은 그나마 일제가 남기고 간 생산수단을 완전히 파괴해 토착 자본가 계급의 성장을 촉진할 경제적 토대를 제거했다. 전쟁 이후 미국의 원조로 연명한 피폐한 경제 때문에 이승만 정권은 제 발로 설 수가 없었다. 학생을 선두로 한 사일구 반독재 투쟁으로 이승만이 쫓겨나고 장면의 "민주주의" 정권이 성립했으나 정치 기반인 자본가 계급이 없는 허깨비 부르주아 정권에 불과했다. 새 정권이 사회위기를 해결할 능력이 전혀 없다는 것이 금방 드러났다. 사회 위기가 가속화되면서 집단적 경제체제의 북한이 남한 대중을 사로잡을 위험이 커졌다. 그러자 남한을 반공을 보루로 삼아 아시아 공산주의의 물결을 저지해야했던 미국은 군부 독재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자유주의자들은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를 한국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싹부터 자른 독재의 원흉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이 주장 역시 국제 냉전체제의 역학을 인식하지 못한 주관적 푸념에 불과하다.  

사실 미국은 이미 이승만 정권 때부터 사회 내에서 가장 강력한 조직력을 갖추고 있으며 반공 정신에 투철한 군부를 동원하여 철저한 반공주의자였을 뿐 미국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이승만을 제거할 계획(Plan Ever-ready)을 세워놓고 있었다. 그러나 사일구 반독재 투쟁과 박정희의 오일륙 군사 쿠데타로 미국의 계획은 저절로 실현되었다. 이제 미국의 과제는 남한이 반공의 튼튼한 보루가 되도록 사회를 안정시키는 것이었다. 바로 이 때문에 박정희는 미국의 지원 하에 개발독재를 시작할 수 있었다. 미국은 한국 기업들에게 자기 시장을 개방해주고 군부독재의 기업 지원을 용인해주었다. 박 정권은 미국과 일본의 자본을 빌려 인프라를 구축하고 공업화를 추진했다. 국가기구와 연줄이 있는 기업들은 자금 지원을 비롯한 경제적 특혜를 누렸다. 이들의 자본 축적을 가속화시키기 위해 정부는 대대적인 국산품 애용운동을 전개하고 보호무역 정책을 시행했다. 특히 노동운동을 빨갱이 소행으로 몰아 철저히 탄압하여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무자비한 착취질서를 조성했다. "한강의 기적"은 이렇게 탄생했다. 남한 자본주의의 발전은 지금 우익 세력이 말하고 있듯이 박정희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주로 국제 냉전체제의 역학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군부독재 주도의 급속한 공업화를 통해 남한에는 비로소 사회에 대한 지배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본가 계급이 형성되었다. 비록 국가에 의해 길러진 자식이었지만 이들은 이후 독점 재벌로 성장하여 사회의 발전 방향에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다만 제 3 세계의 신식민지 자본가 계급에게 운명처럼 가해진 한계는 있었다. 미일 초국적 자본들의 하위 파트너가 되어 이들이 용인하는 범위 내에서만 남한 사회의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반에 "현실사회주의권"이 붕괴하자 남한은 반공의 보루라는 기존의 의미를 상실했다. 그러자 미국과 일본은 남한에 대한 무역 특혜를 철폐하고 세계무역기구 등을 통해 국가소유 은행의 국내 기업 지원을 무역불공정 행위로 금지시켰다. 이 결과 대우를 비롯하여 남한의 거대 기업들이 몰락했는데 이 현상 역시 단순히 김우중이나 기타 남한 기업가들의 부실경영이나 도덕적 해이 때문이 아니라 제국주의 국제질서의 냉혹한 계산의 결과였다.  

한편 남한 자본가 계급의 자본축적을 가능하게 만든 군부독재 주도의 급속한 공업화는 이 땅의 노동자들에게 죽음과 같은 고통을 가져다 주었다. 기아 임금,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 역시 세계 최악의 산업재해 등으로 "산업역군"이라는 노동자들의 삶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현재 우익은 박정희의 경제 개발로 국민이 그나마 먹고살고 있다고 강변하지만 지금 노동계급이 그나마 누리고 있는 생활수준은 처절한 투쟁의 성과일 뿐 부르주아 국가가 노동계급에게 베푼 선물이 아니다. 파업투쟁이 벌어질 때마다 집단 이기주의니 국가경제 파괴자니 하면서 부르주아 언론은 노동자들을 매도해왔다. 그리고 현재 전체 노동력의 절반이 훨씬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가혹한 현실에 대해 이들은 고임금을 받는 대공장 노동자들의 이기심 때문에 이런 현상이 벌어졌다고 강변하면서 더욱더 가혹한 현실을 노동계급 전체에게 강요하고 있다.   

맑스가 말했듯이 부르주아 국가는 자본가 계급의 조국이지 노동자 계급의 조국은 아니다. 지금 남한의 노동계급에게는 조국이 없다. 노동계급은 민족의식이라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 너머에 존재하고 있는 진정한 계급적 이해관계를 파악하고 독자적으로 국가를 건설할 계획을 가져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계급의 가장 선진적인 분자들이 정치적으로 결집해야한다. 이 정치적 결사체는 부르주아 지배체제의 본질을 폭로하여 노동계급이 진정 자신의 역사적 강령을 가지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 있도록 청사진을 제공해야한다.

현재 노무현 정권이 민족 정기를 바로잡아 국민통합을 달성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것은 극소수 국내외 자본가들의 이윤을 위해 대다수를 희생시키는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의 박근혜 대표는 과거 역사를 모두 검토하여 공산주의에 동조하거나 협조한 자들도 가려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자기야말로 부르주아 체제를 진정으로 옹호하는 정치인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부르주아 정치 세력들이 이렇게 서로 자본주의 체제의 진정한 수호자라고 자임하고 있는 와중에 일하는 사람의 이익을 대변하겠다는 민주노동당도 민족 정통성 수호 싸움에 공헌하겠다고 끼어 들고 있다. 이 정당의 지도부를 장악한 민족주의자들이 '민족의 태양' 김일성과 그 자식 김정일 정권의 소위 민족 정통성에 머리를 조아리는 정도만큼 이들은 노동계급을 노예화시키는 현 체제의 하수인일 뿐 노동자 민중의 진정한 해방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 이 개량주의자들은 부르주아 체제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사회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 민중을 부르주아 체제에 가두는 사회적 역할을 수행한다. 남한 노동계급은 이들이 유포하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의 환상에서 벗어나 진정한 계급적 이해를 추구해야한다.

노동계급은 태생적으로 국제적 계급이다. 현재 자본주의 세계는 200여 개 남짓한 민족국가들로 분열되어 있지만 단 하나의 세계시장을 놓고 수많은 자본가 기업들이 이윤 획득을 위해 서로를 집어삼키며 경쟁하는 단일 경제 체제이다. 각 나라의 정부는 자국 자본가 계급의 집행위원회가 되어 이들이 세계시장에서 최대의 이윤을 추구하도록 모든 정책을 집행한다. 세계화로 인해 민족국가가 죽었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지만 현실은 이들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강대국 정부들은 자국 자본가 계급의 이윤실현을 위해 국가기구를 더욱 강력하게 키우고 있다. 소위 무역전쟁이 이것의 표현이며 자본주의의 역사는 무역전쟁이 진짜 전쟁으로 비화한 예들을 잘 보여주었다. 전쟁은 제국주의 시대 자본의 기본 작동방식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미국의 이라크 점령 전쟁은 미국 석유 재벌과 군수 재벌의 이윤 추구와 미국의 세계지배를 위해 부시 행정부가 일방적으로 감행한 것으로 후세인의 대량살상무기 또는 알카에다 테러조직과의 연계와는 전혀 무관하다는 것이 이미 밝혀졌다. 전쟁을 비롯하여 인간의 온갖 고통을 양산하는 제국주의 체제를 진정 인간의 필요에 부응하는 체제로 바꾸기 위해서는 전 세계 노동계급이 자국 부르주아 계급의 민족주의 족쇄에서 벗어나 노동계급 국제주의로 무장해야한다. 1917년 러시아의 10월 사회주의 혁명은 이 점과 관련하여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레닌과 트로츠키가 지도한 볼세비키당을 통해 러시아 노동계급은 혁명을 달성했다. 그리고 곧바로 무상몰수 무상분배를 통해 인구의 80%에 달하는 농민의 토지 문제를 해결하여 이들을 혁명 노동계급의 지지자로 확보했다. 그러나 곧이어 서방 제국주의 국가들이 서로 힘을 합쳐 러시아 국내 반혁명 세력과 연계하여 사회주의 정권의 와해 공작에 들어갔다. 자본가 계급은 평소에는 서로 경쟁하다가도 공동의 적이 나타나면 이렇게 국제적으로 단결하게 마련이다. 이렇게 시작된 반혁명 내전은 한 때 반혁명 세력에 의해 모스크바와 뻬쩨르부르그가 점령당하기 직전까지 가면서 사회주의 정권을 위협했다. 그러나 영국의 항만 노동자들이 영국 제국주의 정부의 전쟁물자 수송을 거부하는 파업을 일으키는 것을 시작으로 제국주의 본국의 노동계급들이 볼세비키 정권을 지원하는 노동자 국제연대 투쟁을 수행했다. 러시아 사회주의 정권은 결국 내전에서 살아남았으나 선진 자본주의 국가 노동계급의 국제연대 투쟁이 없었다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을 가능성이 많았다.

사실 러시아 노동자들은 이때 독일 노동자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자본주의 국가들 가운데에서 생산력이 가장 발전한 독일에서 혁명이 성공해야 후진국 러시아의 혁명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이들은 잘 알고 있었다. 레닌은 러시아 혁명을 희생시키면서까지 독일 혁명에 대한 지원을 준비하고 있었다. 1918년에서 1923년까지 전개된 독일 혁명이 승리했을 경우 러시아는 제국주의의 포위에서 벗어나 진정한 사회주의체제 건설을 앞당길 수 있었을 것이며 여타 국가들의 노동계급도 독일 노동계급의 뒤를 따랐을 것이다. 그러나 에버트, 노스케 등 사민당 개량주의자들이  자본주의 체제 수호의 앞잡이가 되고 독일공산당이 혁명 노동자들을 제대로 지도하지 못하면서 독일 혁명은 실패로 끝났다. 이후 중국,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등에서 노동계급이 혁명 투쟁을 전개했으나 러시아 볼세비키당과 같은 강력한 혁명정당의 부재로 인해 이들의 시도는 모두 실패로 끝났다. 이로써 제국주의의 포위에서 벗어나지 못한 노동자 국가 러시아는 사회주의 혁명과는 무관한 관료집단의 발호로 집단적 계획경제체제의 토대를 서서히 잠식당하면서 1991년 붕괴했다.

남한의 노동계급이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켜 노동자국가를 수립했다고 가정했을 경우 노동계급의 국제주의는 더욱 그 중요성이 부각될 것이다. 인적 자원 이외에 이렇다할 천연 자원이 없기 때문에 미국, 일본, 중국의 노동자들이 자국 정부의 간섭정책에 반대하여 남한 노동자국가를 방어하지 않을 경우 남한 사회주의 정권은 1년을 버티기 힘들 것이다. 노동계급의 국제적 강령에 기초한 국제연대만이 한 나라의 사회주의 혁명을 국제적으로 확산시켜 제국주의 세계체제를 대체하는 사회주의 세계체제를 가능케 할 것이다.       

     

노동계급의 정치적 독자성

'역사 바로 세우기'를 둘러싸고 부르주아 정치권이 벌이는 진흙탕 개싸움에 대해 노동계급은 부르주아 계급의 어느 정치 분파도 지지하지 말아야 한다. 일부에서는 노무현 정권을 자유주의 분파로 인정하고 이들이 주장하는 바 국제수준의 민주적 권리가 노동자 민중에게 정치투쟁의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므로 탄핵 정국과 같은 부르주아 분파들 간의 싸움에서는 노 정권을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부르주아 지배계급을 수구 반동 분파와 자유주의 분파로 구분하는 것은 추상적인 도식에 불과하다. 현재 국내 재벌들 그리고 이들과 일부 결탁하기도 하면서 이들의 경쟁 상대인 제국주의 자본에게 군부 독재 또는 부르주아적 기본권이 심각하게 제한되는 체제는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억압적 체제를 유지하는 데에는 경상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이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이윤율을 극대화하여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이다. 노무현 정권이 군부독재의 과거를 청산하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실 노무현 정권이야말로 국내외 거대자본들이 원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첨병이다. 노 정권은 이전의 김대중 정권과 마찬가지로 재벌을 비롯한 남한 자본가 계급의 국제 경쟁력을 제고하는 주요한 카드인 북한의 자본주의적 흡수를 도모하고 있다. 한편 노동자 착취에 장애가 되는 모든 규제를 해소하기 위해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기본권을 신장하는 척하면서 체제의 정당성을 더욱 잘 선전하려고 애쓰고 있다. 이것이 지배적 자본가 계급의 이익에 복무한다면 과거 일제와 군부독재 시절에 사회를 지배했던 자들을 희생시키며 국민통합을 소리 높여 외치는 것은 대단히 바람직하다.  

이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민족주의에 사로잡히거나 부르주아 특정 분파를 지지하는 것은 노동운동을 부르주아 정치체제의 들러리로 세우는 계급협조주의에 불과하다. 노동운동의 일차적 과제는 지배계급에 대한 정치적 독자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그리고 부르주아 계급이 해결하지 못하는 사회 위기를 자신의 역사적 이해에 비추어 해결하는 것이 노동운동에게 맡겨진 시대적 요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