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시즘 2015 참관기

 

노동자연대가 주최한 ‘맑시즘’ 행사가 2월 6~8일 고려대학교에서 열렸다. 10년여 동안 지속되며 매 해 상당한 수의 선진활동가들이 참여하는 이 행사는 맑스주의 대중화에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사이사이엔 기회주의가 맑스주의로 포장돼 전달되기 때문에 노동계급을 혼란스럽게 하기도 한다. 소련 등 노동자국가 방어노선 포기를 위해 발명된 ‘국가자본주의론’은 노동자연대와 그 본류인 국제사회주의자(IS) 전통이 지닌 기회주의의 뿌리이다. 기회주의는 총체적이다. ‘국가자본주의론’이라는 후퇴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제국주의론을 왜곡하고, 계급협조주의(‘야권연대’라고 순화되어 불리는 인민전선)를 합리화한다.

노동자연대가 주최하지만, 한국노동계급의 자산이기도 한(이 문제는 다음 참관기에서 더 논한다.) 맑시즘 행사에 우리는 여러 해 동안 참여해 왔고, 그 내용을 문서로 남겨왔다.

 

-‘맑시즘 2013’ 참관기

-‘맑시즘 2012’ 참관기

참관기 1: 혁명가들과 그 고전들 레닌의 < 공산주의에서의 좌익 소아병 >

참관기 2: ‘ 맑시즘 , 페미니즘 그리고 여성해방

참관기 3: ‘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귀환 ? 동아시아는 어디로 ?’

참관기 4: ‘ 오늘날 그리스의 경제 · 정치 위기와 저항

다른 모든 것들이 그렇듯, 노동계급의 정치의식도 오직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을 통해 발전한다. 맑시즘 행사 참가와 참관기를 통해 우리가 제기하는 정치 논쟁이 노동계급의 정치의식의 성장에 그리하여 해방에 기여할 것을 믿는다.

 

2015 참관기 1: ‘중국─사회주의인가 자본주의인가?’

연사의 발제/ 청중 토론/ 연사와 청중발언으로 제기된 몇 가지 쟁점들/ 1. “중국이 모종의 사회주의라면 인민의 필요와 소비 진작을 더 중시했을 것이 아닌가?” 2. “많은 소련 공산당 관료들이 자본가로 변신했으므로 둘 사이에 계급적 차이가 없다.”? 3. “소련의 노동자들이 생산수단을 실질적으로 소유하지 못했다.’”? 4. “노동소외가 사라지지 않으면 자본주의 국가인가?

맑시즘 2015 참관기 2: ‘사회주의 전략 전술―공동전선을 중심으로

공동전선이라는 주제를 선택한 이유/ 연사의 강연/ 동료 Z의 발언/ K의 발언/ 노동자연대 중견회원들의 반박/ 연사의 정리발언/ 노동자연대의, 이견에 대한 적의와 노동자민주주의/ 생각할 거리 몇 가지: 1. 노동자연대의 인민전선 2. 노동자연대의 개혁주의라는 말에 담긴 함의 3. 2012년 노동자연대의 통합진보당 탈당의 의미

 

참관기 1: ‘중국─사회주의인가 자본주의인가?’

 

2015 2월 7일 토요일 오전 11:50~오후 1:10

연사: 이정구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원 소속 연구원

 

연사의 발제

연사는 먼저, 1949년 혁명부터 현재에 이르는 중국 현대사를 개괄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1949년 혁명을 ‘위대한 민족해방혁명’으로 규정했다. 자본주의에서 자본주의로 ‘게걸음’친 것이지만 제국주의에 대항했다는 점은 인정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를 전형적 클리프주의 이론에 따라 ‘일탈한 영구혁명’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권력을 장악한 스탈린주의 공산당의 관료들이 ‘새롭게’ 지배계급으로 전환되었다고 주장했다. 이를 클리프의 ‘군사적 경쟁론’에 따라 중국에 계획 경제가 수립되었지만 ‘외부 압력에 의한 계획은 진정한 계획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통찰력 있는 주장도 있었다. 덩샤오핑 이후 시장화가 진행되면서 중국이 ‘시장경제’가 되었다는 인상적 평가가 흔해졌지만 연사는 여전히 중국 경제는 국가가 강력히 통제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민영화가 많이 진행되기는 했지만 국유기업 자회사를 만들어서 민영화시키는 방식을 취해왔기 때문에 핵심부문은 여전히 국가소유라는 것이다.

중국 현대사를 개괄적으로 설명한 뒤 중국 국가자본주의론을 옹호하기 위한 통계 수치를 제시했다. 시대별로 중국의 중공업과 경공업 비율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경공업보다 중공업의 수치가 압도적으로 높았으며 연사는 이는 대만보다도 중공업 비중이 높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이 모종의 사회주의라면 인민의 필요와 소비 진작을 더 중시했을 것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리고 천안문 항쟁을 언급했다. 중국을 모종의 사회주의라고 본다면 인민항쟁을 모두 CIA의 첩자들이 일으키는 자본주의 반혁명 책동으로 인식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국가자본주의로 봐야 천안문항쟁을 오롯이 지지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천안문항쟁 당시 베이징 노동자자치연합을 폴란드의 연대노조와 비슷한 성격의 독립노조라고 주장하며, 최근의 홍콩 시위를 천안문 항쟁과 비슷한 성격으로 보았다.

 

청중 토론

앞서 몇몇이 발언하고 우리 동지 중 한 명이 발언했다. 요지는 다음과 같다.

“중국의 사회성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맑스주의적 관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생산수단의 국유화는 곧 자본가 계급이 소유한 생산수단의 몰수를 뜻한다. 자본가 계급이 폐지되는 것이다. 때문에 이것은 단순히 형식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노동계급적 소유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1949년 혁명으로 중국에 노동계급 소유, 계획경제 체제가 확립되었다. 이는 진보적 사건이며 세계 부르주아 계급에 대한 심대한 타격이었다. 생산수단의 국유화는 자본주의에서 벌어지는 부분적 국유화, 시장을 성장시키기 위한 국가 개입 따위와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전면적 국유화는 시장을 위한 국유화와 달리 사회의 운영원리 자체를 바꿔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맑스는 소유 형태를 역사를 분석하는 핵심으로 본 것이다.

현재 중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시장화는 자본주의로 이행하기 위한 의도가 아니다. 현재 시장화의 근본적 성격은 공산당 관료들이 통제하는 국유 경제에 선진자본주의 국가의 자본과 기술을 끌어들여 낙후한 생산력을 끌어올리려는 조치이다. 계획경제는 직접 생산자인 노동자들의 통제가 이루어질 때, 노동자 민주주의가 보장될 때 그 효율성도 발휘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의 관료지배층이 노동자 민주주의를 도입할 수는 없기 때문에 부분적인 시장화를 시도한 것이다.

중국의 국가 소유 체제가 아직 살아 남아있다면 이것은 방어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중국의 관료지배층을 타도하는 정치혁명을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제국주의 세력에 대해서는 국가 소유 체제를 방어해야 한다.”

그러자 노동자연대의 한 동지가 나와 국가자본주의론을 옹호했다. 그는 사적소유 철폐는 사회주의가 아니라며, 이 둘을 혼동하면 안 된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그러면서 논거로 소련이 해체된 뒤 많은 공산당 관료들이 자본가로 변신했다는 점을 들어 둘 사이에 계급적 차이가 없다는 주장을 했다.

몇몇이 더 발언 한 후 우리 동지 중 다른 한 명이 발언했다.

“중국 노동계급이 다시 무대의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다가올 격변에서 중국 노동계급이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라는 연사의 문제제기에 동의한다. 과거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앞으로 있을’ 격변에서 노동계급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는 세계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오늘의 주제는 중국이다. 연사는 사회주의 아니면 자본주의라는 이분법을 통해 ‘중국은 자본주의다’라는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노동자연대는 중국만이 아니라, 소련 등 사적 소유가 철폐된 모든 나라들을 자본주의라고 규정했다.

연사는 중국이 자본주의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이러저러한 수치와 사건들을 소개했다. 그러나 사실 중국은, 그런 수치나 사건들 이전에, 노동자연대에게는 무조건 자본주의이어야 한다. 그런 수치나 사건과 직접 관련 없는 소련 동유럽 북한 쿠바 베트남 모두 자본주의이기 때문이다.

소련에서 혁명이 일어나 사적소유가 철폐되었다. 스탈린관료집단이 당과 국가를 장악했지만 사적소유가 부활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노동자연대는 그 소련을 자본주의라고 규정한다. 내전을 거쳐서 자본가를 제압하고, 사적소유를 철폐했는데, ‘자본주의 국가가 수립되었다’라고 주장한다. ‘자본주의’ 국가를 수립하기 위해, 왜 자본주의 국가가 타도되고 국내의 자본가들 그리고 국외의 제국주의자들과 전쟁을 치르고, 왜 사적소유가 철폐되어야 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전혀 하지 않는다. 그저 ‘흠결 하나 없는 완벽한 나라가 아니다. 그러므로 사회주의가 아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이다.’라는 흑백논리만 있다.

북한에 대한 설명도 마찬가지이다. 해방 이후 자본가들은 모두 미국과 남한 정부 편을 들면서 북한 지역에서 사라졌다. 사적소유는 자연스럽게 철폐되었다. 이렇게 자본가들이 사라지고 사적소유가 철폐된 북한 땅에 수립된 국가는 ‘자본주의’ 국가이다. 노동자연대에 따르면 그렇다!

노동자연대 동지들은 이들 나라들 내부의 자본주의 복귀 운동 그리고 미국 일본을 포함한 제국주의와의 갈등에서 위의 나라들을 방어하지 않아왔다. 오히려 후자 편을 들었다. 사실 그러한 태도를 합리화하기 발명된 이론이 바로 국가자본주의론이다. 딱 한 나라 예외가 있었다. 베트남이다. 아시다시피, 그 당시에 베트남 편을 드는 것은 상당한 인기가 있었다. 그때에만 노동자연대 전통은 기존 이론과의 모순에도 불구하고 다른 태도를 취했다.

노동자연대 동지들에게 사적소유 철폐는 사회주의의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대신 ‘노동자의 자기해방이야말로 제1원칙이다!’라고 외친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사적소유 철폐 국가들을 방어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산주의의 진짜 제1원칙은 무엇일까? 맑스-엥겔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공산주의의 명백한 특질은 부르주아적 소유의 폐지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공산주의 이론은 사적소유의 폐지라는 단 하나의 문구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발언 도중 객석의 누군가가 ‘노동자연대 얘기 그만하고 자기 할 말만 해요’하고 고함쳤다. 진행자는 제지하지 않았다.

그 뒤 노동자연대 회원으로 보이는 다른 동지가 나와 ‘실질적 소유’와 ‘법적 소유’를 구분해야 한다며, 소련에서 노동계급이 생산수단을 ‘실질적으로 소유’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한 소련은 노동자들의 ‘소외’가 사라지지 않은 사회이므로 자본주의라고 주장했다.

 

연사와 청중발언으로 제기된 몇 가지 쟁점들

1. “중국이 모종의 사회주의라면 인민의 필요와 소비 진작을 더 중시했을 것이 아닌가?”

참으로 한가한 이야기다. 세계 혁명이 완전히 성공하기 전까지 모든 노동자국가는(그것이 건강한 노동자국가든, 퇴보한/기형적 노동자국가든 간에) 자본주의 국가들과 군사적 경쟁을 벌여야 한다. 당연히 중공업 발전을 경시할 수 없다. 물론 지금 중국이나 북한 등지에 트로츠키주의 정권이 들어서게 된다면 인민의 소비 수준 향상에 좀 더 신경 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계급투쟁의 조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제국주의에 의해 포위된 노동자국가가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마땅히 군비에 막대한 지출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 ‘사회주의는 인민의 생활수준을 끌어올려야 하는 체제이니 군비는 어떤 경우든 조금만 써야 한다.’라고 말한다면, 이는 혁명을 애들 장난쯤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노동자연대의 경제주의적 관점, 미래의 지배계급이 아니라 임금노예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여실히 드러낸다.

노동자국가에서는 소비와 축적 사이에 모순이 존재한다. 권력을 장악한 노동계급은 생산력을 발전시켜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해서 생산수단에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반면 개별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부를 증대시키고 싶어 한다. 축적 수준을 너무 높여 대중의 소비 수준이 지나치게 낮아지면 노동 규율을 무너트려 오히려 생산력의 발전을 저해한다. 반면 대중의 소비 수준을 높이기 위해 축적 수준을 너무 낮추면 생산수단에 대한 투자가 줄어 생산력 발전이 저해된다. 이러한 모순 속에서 사회의 지배계급인 노동계급의 정책은 자본가 계급과의 투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최우선의 목표로 한다. 노동자들의 소비 수준은 이 계급투쟁 상황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특히나 과거 러시아처럼 인구의 다수가 농민이고 노동계급이 소수인 경우에 공업화를 통해 노동계급을 강화하는 것은 사활적 문제였다.

이 흥미로운 문제에 대한 『소련은 왜 자본주의 체제가 아닌가?』[1960년대와 1970년대 미국의 트로츠키주의 혁명조직이었던 스파르타쿠스동맹(SL)이 1977년 4월에 출판한 소책자]의 분석을 들어보자.

“클리프와 섁트먼의 정치노선을 러시아 혁명 당시에 대입한다면 이들은 혁명 초기부터 레닌과 트로츠키의 정책을 반대했을 것이다. 1921년 이들은 조합주의적인 노동자 반대파에 가담하여 레닌과 트로츠키에 대항했을 것이며 1920년대 후반부 스탈린의 정치적 반혁명 이후에는 부하린 분파의 톰스키 파벌에 가담했을 것이다. 클리프의 노선을 견지할 경우 좌익반대파의 경제정책을 지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1920년대 후반부에 부하린의 우익반대파는 트로츠키주의 좌익반대파를 ‘초(超)공업화론자’라고 규정했다. 국가의 경제적 축적을 희생하여 노동자 임금을 극대화시키는 정책을 트로츠키주의자들은 결코 지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927년 스탈린/부하린 정권이 좌익반대파에 대항하는 참주선동적 정책을 펴서 노동일을 8시간에서 7시간으로 줄였을 때 트로츠키와 좌익반대파는 이 조치가 소비에트 경제에 해를 끼친다고 반대했다.

레닌은…소련의 경제적 군사적 역량을 혁명의 국제적 확산에 대치시킨 적이 결코 없었기 때문이다. 이와는 반대로 러시아 노동자국가 초기에 볼셰비키당 내 가장 격렬한 분파투쟁들 그리고 러시아 노동운동 내 볼셰비키당과 다른 경향들 사이의 투쟁들은 중앙 집중화 되고 효율적인 경제기구를 수립하려는 레닌의 일관된 노력 때문에 촉발되었다. 상당한 반대를 무릅쓰고 레닌은 노동자에게 위임된 경영체제를 일인 경영체제로 대체시키고 높은 임금을 받는 부르주아 전문 경영인을 고용하고 도급제를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정책을 위해 투쟁했다.

이 당시 레닌의 가장 우선적인 관심사 가운데 하나는 이것 이었다: 내전과 소비에트 노동자국가의 고립 때문에 소련 산업이 해체되고 이 결과 러시아 노동계급이 소부르주아로 변모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 1922년 코민테른 제 4차 세계대회 때 그가 행한 연설을 들어보자:

“…우리의 중공업은 아직도 대단히 어려운 처지에 있다…종종 대중을 희생시키기는 하지만 우리는 절약해야한다.…우리는 이렇게 해야 한다. 왜냐하면 중공업을 구하고 회복시키지 않는 한 산업을 건설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산업이 없이는 독립국으로 제대로 서지도 못하고 망할 것이라는 점을 우리는 아주 잘 인식하고 있다.

러시아의 구원은 농장의 풍작에만 달려있지 않다. 이것으로는 불충분하다. 경공업의 좋은 상태에 달려있지도 않다. 이것은 농민에게 소비재를 제공할 뿐이다. 이것으로도 불충분하다. 우리는 중공업도 필요하다.” (강조는 인용자)─「러시아 혁명의 5년과 세계혁명의 전망」, [레닌 전집] 제 33권, (1966년 판본)

─『소련은 왜 자본주의 체제가 아닌가?』 중 「5. "국가 자본주의" 이론의 반(反)맑스주의」

이 점에서 클리프주의자들의 주장은 좌익반대파의 공업화 계획이 아니라 부하린의 ‘거북이 걸음으로 사회주의를 건설하자’는 노선에 가깝다(「토니 클리프파의 계보」를 참조할 것).

 

2. “많은 소련 공산당 관료들이 자본가로 변신했으므로 둘 사이에 계급적 차이가 없다.”?

생산양식의 변화를 이런 식으로 부정할 수는 없다. 러시아 혁명 때도 짜르 치하의 많은 관료, 행정가, 기술자, 장교 등이 볼셰비키 정권에 의해 고용되었다. 그렇다고 짜르 치하의 러시아와 소비에트 러시아가 계급적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또한 새롭게 형성된 러시아의 자본가 계급이 소련공산당 서열에 따라 지위를 획득했던 것도 아니다. 그들은 일반 노동자들보다 유리한 지위를 이용해 개별적으로 생존기술을 발휘해 운 좋게 새로운 지배계급에 끼어들었을 뿐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러시아 자본주의 생지옥」(<1917> 24호)이 훌륭히 답하고 있다.

“급조된 부르주아 계급 가운데 상당수는 구 소련의 고위관료 출신들이다. 반면 폴란드나 다른 동유럽 국가들의 경우 이들은 신흥 부르주아 계급의 극소수에 불과하다. 구스타프슨은 모스크바의 사회학자 올가 크리쉬타노프스카야의 연구를 인용하고 있다. 이 연구에 의하면 러시아의 자본가 엘리트 가운데 3분의 2 정도가 소련의 고위 관료 출신이다.…

그러나 몇몇 석유 및 가스 족벌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족벌들은 소련공산당 서열에 따라 지위를 획득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구체제에서 블라디미르 구신스키는 극장 감독이었고 보리스 베레조프스키는 수학자였으며 알파 그룹의 미하일 프리드만은 물리학자였다. 스탈린주의 지배집단 내부의 연줄은 각본에 없는 무질서한 민영화 진흙탕에서 성공하기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었다.…

구 소련의 관리인, 경제전문가, 엔지니어 등이 자본주의 복귀 체제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현상은 짜르 치하의 관료, 행정가, 기술자, 군대의 장교 등 수천 명이 볼세비키 정권 초기에 고용된 현상과 별 차이가 없다.…

한편 고위관료층의 최상부 인자 특히 중앙경제부처 책임자, 이론-선전가, 공산당 조직의 최고위 관료 대부분은 직책이 없어지면서 실업자가 되었다. 옐친의 집권과 함께 구체제의 "경제, 사회, 국가" 운영자들이 계속 권력을 유지했다는 주장을 엘먼과 콘토로비치는 일언지하에 거부한다:

“당과 국가기구 관료들이 국가소유를 자신의 개인 소유로 바꾸기 위하여 구체제를 타도했다는 이론이 요즘 유행한다. 그러나 이 주장을 지지할 증거는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는다. 관료들은 고르바초프를 혐오했지만 체제 방어를 위한 집단행동을 주도할 능력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이들에게는 체제 붕괴를 재촉할 능력도 없었다. 이들이 체제 붕괴 후 자기 자리를 찾았다면 이것은 거대한 음모의 결과가 아니라 개개인의 생존기술 덕분이었다.”

 

3. “소련의 노동자들이 생산수단을 ‘실질적으로 소유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소련의 생산수단은 누가 소유했을까? 클리프주의자들은 겉보기에 소련의 노동자들이 지배 계급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핍박을 받았으므로 이들이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않았다고 ‘인상적으로’ 판단한다. 그럼으로써 자신들이 얼마나 관념론적으로 사고하는지를 드러낸다. 생산수단의 국유화는 그저 형식에 불과한 것이거나 자본가 계급이 언제든지 꺼내 쓸 수 있는 정책이 아니다. 생산수단이 국유화되려면 자본가들이 소유하고 있던 생산수단을 모두 몰수해야 한다. 이를 통해 수립되는 계획경제 체제는 '여러 개의' 자본이 이윤을 놓고 벌이는 생사를 건 투쟁을 철폐한다. 이러한 ‘자본가 계급에 대한 독재’를 노동계급 이외의 어느 계급이 수행할 수 있을까?

클리프주의자들은 소련에는 노동자 민주주의가 없었으므로 소련 노동자들이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이것은 ‘민주주의’라는 상부구조를 통해 사회 성격을 파악하는 카우츠키주의의 방법론이지 맑스주의의 유물론이 아니다.

사노위 내 강령 토론 당시 우리가 제출한 「소련 등 노동자국가 성격에 대한 몇 가지 문제제기에 대한 대답」은 이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엥겔스는 계급내전에서 승리한 프롤레타리아가 먼저 취해야 할 조치로 “민주적 통제”를 말한 적이 결코 없다. 기존의 소유계급으로부터 생산수단을 몰수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엥겔스를 인용[“프롤레타리아트는 국가권력을 잡고 나서는 먼저 생산수단을 국유화한다.”]한 레닌은 무어라 말했을까.

“현재 계급 지배는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가? 지주와 자본가의 소유는 철폐되었다. 승리한 노동계급은 이 소유를 철폐하고 철저히 파괴시켰다. 바로 이 점에서 노동계급의 지배는 표현되고 있으며 존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소유의 문제가 우선이다. 현실에서 소유의 문제가 결정되면 계급 지배는 확보된 것이다….지배 계급들이 서로 뒤바뀌었을 때 이들은 소유관계도 뒤바꾸었다.”─레닌 전집 제 4판, 제 30권, 426-427쪽

그러나 오늘날의 이른바 ‘노동자 민주주의’의 신봉자들은 “무엇보다도 소유의 문제가 우선”이라는 사실을 간단히 무시하고 있다. 소련, 중국, 북한, 쿠바 등을 모종의 자본주의 국가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이들 나라에는 노동자 민주주의/소비에트 민주주의가 없고, 노동자 자주관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본가들의 생산수단을 몰수하는 것을 통하여 사적 소유가 폐기된 이 나라들을 자본주의 국가라고 말한다. 이것은 맑스와 레닌의 정식인가? 아니다. 바로 카우츠키의 정식이다. “노동계급 독재의 핵심 특징은 노동 대중에 의한 정부의 민주적 통제이다.”

물론 “민주적 통제”는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는 노동자 민주주의/소비에트 민주주의를 지지하며,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을 타도하고 노동자의 직접적인 지배체제를 수립하는 정치혁명을 지지해야 한다. 왜냐하면 노동자계급이 스스로의 소유를 남의 간섭 없이 직접 관리, 통제하는 것만이 집산화된 계획경제를 온전하게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선진 자본주의 수준의 생산력과 교육수준을 갖춘 노동자계급이라는 전제 하에서 말이다.) 집산화된 계획경제 하에서 생산은 가치법칙이 아닌 정치적 고려에 따라 이루어지는데, 자신의 모든 정치적 고려가 특권유지에 맞추어진 관료집단에 의해 생산 전반이 통제된다면 그 사회에서의 생산은 인민대중들의 요구를 결코 충족시킬 수 없을 것이며, 스탈린주의 체제 하에서 나타나는 비효율, 부패와 낭비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 또한 당내 민주주의/소비에트 민주주의를 통해서만이 당과 노동자 국가의 건강이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 ‘노동자 민주주의는 매우 탁월한 연장이다.’

이것은 ‘노동자 민주주의’를 그 자체로써 떠받들고 찬미하는 경향, ‘노동자 민주주의’를 자연법 내지는 인권, 기본권의 범주로 승격시키는 경향과는 분명하게 구별되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결코 우리의 목적이 될 수 없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통해 구축되는 노동자 국가의 핵심은 사적 소유의 폐지이다. 민주주의는 어디까지나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 그 주객을 전도하는 것은 소부르주아 민주주의 물신론자들의 것이지 맑스주의가 아니다.

 

4. “노동소외가 사라지지 않으면 자본주의 국가”인가?

클리프주의자들은 이행기 체제의 모순을 이해하지 못한다. 노동계급은 이전의 모든 지배계급과 다른 특성을 가진 계급이다. 사적으로 소유하는 이전의 모든 지배계급과 달리 노동계급 독재에서 노동자들은 집단적으로 생산수단을 소유한다. 사적소유의 철폐로 착취가 사라지고 모든 억압이 일소될 가장 중요한 단초가 마련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억압과 소외가 일시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생산은 사회주의적으로 조직되지만 분배는 아직 부르주아적 규범에 따라 이루어진다. 그리고 국내의 계급투쟁은 거의 종식되지만 국제적 수준의 계급투쟁은 격화된다. 그리하여 폭력적 강제기구인 국가는 아직 살아남는다. 사적소유를 철폐하고 수립된 노동자국가의 억압 정도 그리고 구성원이 겪는 소외의 정도는 일국적 차원의 것이 아니다. 세계경제 속에서 그 사회의 생산력 수준 그리고 국제적 계급투쟁의 역관계라는 물적 토대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노동자국가의 이중적 성격에 대한 트로츠키의 설명을 들어보자.

“가장 발전한 자본주의 사회인 미국에 사회주의 국가가 성립되더라도 모든 사람에게 원하는 만큼의 재화를 즉시 제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에게 가능한 한 많은 재화를 생산하도록 독려할 수밖에 없다. 이 상황에서 독려하는 역할은 자연스럽게 국가의 몫이 된다. 그리고 이 상황은 다시 자본주의에서 확립된 임금노동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물론 다양한 상황에 따라 사정은 달라질 수 있다. 이 의미를 마르크스는 1875 년에 이렇게 표현했다: “부르주아 법은‥‥‥오랜 분만의 고통을 겪은 후 자본주의의 태내에서 탄생하는 공산주의 체제의 초기단계에서 불가피하게 존재한다. 경제체제와 이것에 의해 조건 지워지는 사회의 문화적 발전을 법은 결코 초월할 수 없다.”

마르크스의 이 주목할 만한 견해를 설명하면서 레닌은 이렇게 덧붙였다: “소비재 분배와 관련해 존재하는 부르주아 법은 당연히 부르주아 국가를 전제로 한다. 왜냐하면 규범의 준수를 강제할 수 있는 기구가 없이는 법은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산주의 체제하에서는 당분간 부르주아 법이 존재할 뿐 아니라 부르주아 계급이 없는 부르주아 국가도 존재한다!” 현재 소련의 공식 이론가들에 의해서 완전히 무시되고 있는 이 매우 의미 있는 결론은 소련의 국가 성격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아니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소련이라는 국가를 이해하는 첫걸음을 내딛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사회주의 건설의 임무를 맡고 있는 국가가 강제력을 동원하여 불평등을 옹호할 수밖에 없다면 즉, 소수의 물질적 특권을 옹호할 수밖에 없다면 이 국가는 부르주아 계급이 없는 ‘부르주아’ 국가일 수밖에 없다. 이 주장에는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칭찬이나 비난이 전혀 없다. 다만 사물의 성격을 있는 그대로 부르는 것뿐이다.

부르주아 분배 규범은 물질적 생산력의 성장을 촉진하면서 사회주의 건설의 목적에 봉사해야 한다. 사회주의 국가는 시작부터 곧바로 이중적인 성격을 띤다: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형태를 옹호하는 한 사회주의 국가이다. 그러나 생필품의 분배가 자본주의 가치척도에 따라 이루어지고 이 모든 결과들을 바탕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한, 부르주아 국가이다.’─트로츠키, 『배반당한 혁명』 제3장 사회주의 체제와 국가 중 3. 노동자국가의 이중적 성격

‘소련은 노동의 소외가 사라지지 않은 사회이니 노동자 국가가 아니다’라는 주장은 이행기 체제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2015년 3월 18일

볼셰비키

 

 

참관기 2: 사회주의 전략 전술―공동전선을 중심으로


2 7일 토요일 오후 2:20~3:40

연사: 최영준 노동자연대 운영위원, 연대협력국장

맑시즘 2015’ 두 번째 날이었다. 바깥은 쌀쌀했지만 강의실은 온기가 있었다. 3~40명의 청중이 강의실에 자리했다.


공동전선이라는 주제를 선택한 이유

공동전선은 노동계급의 중요한 전술적 문제이다. 주로 노동계급 진영과의 공동행동을 의미하는 이 공동전선은 자본가계급과의 협조를 의미하는 인민전선과 구별되어 분명히 이해되어야 한다. 그 동안통일전선이라는 말도 널리 쓰였는데 그것은 스탈린주의 진영에서 호전적 자본가계급에 맞선 민족자본가와의 단결을 의미하는 것이고 트로츠키주의 진영에서는 그것을 인민전선이라는 용어로 칭한다. 단지 학술적인 문제가 아니다. 러시아혁명을 비롯하여 혁명은 이 경계에서 피어오르기도 했지만 저물기도 했다. 후자의 경우에는 피비린내를 동반했다.


연사의 강연

연사 말대로, 트로츠키의 독일 반파시즘 투쟁, 프랑스 인민전선 비판을 참고하여 핵심을 정리한 강연이어서인지 강연 내용은 공동전선에 대해 올바로 이해한 내용이었고, 대체로 원칙적이었다.

공동전선은 러시아혁명 이후 레닌과 트로츠키 등에 의해 정식화된 전술이다. 혁명 승리 이후 1921년 열린 코민테른 3, 4차 대회에서 정식화되었고, 레닌의 좌파 공산주의 소아병은 그 내용을 정리한 팸플릿이다. 그 후 1930년대 히틀러와 싸울 때 트로츠키는 공산당과 사민당이 히틀러에 맞서 공동전선을 맺어 싸울 것을 촉구하였으나, 초좌익적 태도에 빠진 공산당으로 말미암아 성사되지 못했고 결국 히틀러의 집권을 허용했다.

공동전선 전술을 구사할 때 경계해야 할 두 가지 극단이 있는데 그것은 기회주의와 종파주의이다. 기회주의는 공동전선을 맺으면, 비판도 삼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혁명조직은 독립성을 유지해야 하고 그것은 공동전선 내 비판의 자유를 유지하는 것으로 표현된다.자본가계급의 압력은 민주당-참여연대-한국진보연대-진보정당-노동조합지도부-노동자연대 등으로 마치 전동벨트처럼 전해져 온다. 그런데, 비판의 자유와 정치적 독립을 잃으면 이러한 압력에 굴복하게 될 것이다. 또 다른 극단은 종파주의이다. 이들은 아래로부터의 공동전선을 최후통첩식으로 제기한다. 1930년대 독일에서 그랬고 그들은 사민당을 주적으로 규정했다. 이들 극좌파는 고립되더라도 배신적 경향과는 결코 타협하지 않는다!’라고 외친다. 공동전선으로서는 목표 예컨대 반자본주의를 내걸 것 등을 제시하며 공동전선의 구성을 방해한다. 이렇게 되면 정치의 주도권을 개혁주의자들에게 빼앗길 것이다.

공동전선은 인민전선과 다르다. 인민전선은 부르주아와의 연합을 포괄하는 계급연합을 의미하는 것이고, 부르주아 정부 구성을 목표로 한다. 또한 내부의 비판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다.


동료 Z 발언

강연이 끝나고 Z가 발언했다.

공동전선 전술의 핵심은 노동계급의 단결을 통해 자본가 계급에 맞서 투쟁하는 것이다. 그래서 혁명정당이던 시절의 코민테른에서는 이를 계급 대 계급이라는 슬로건으로도 표현한 바 있다. 이를 통해서 기회주의 세력의 반 노동자적 행태를 폭로할 수 있다. 반대로 노동자 계급의 단결을 방해하고 노동계급을 자본가 계급에게 종속시키는 인민전선 정책이 있다. 이 둘의 차이를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맑스주의는 계급 투쟁을 위한 이론이다. 기회주의자들은 이것을 곧잘 잊어버린다. 인민전선은 계급적 투쟁 전선을 흐리고 노동계급의 독자성을 파괴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에게는 언제나 해악으로 작용한다. 이는 역사 속에서, 중국, 프랑스, 스페인, 칠레 등지에서 계속해서 입증되어 왔다.

그런데 이 행사를 주관하고 있는 노동자연대는 말로는 인민전선에 반대한다고 하면서도 실천에서는 인민전선을 추종해왔다. 2010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을 지지했고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을 지지했다. 여기에 비판적이라는 수식어를 단다고 할지라도 노동자연대가 노동자들에게 노동계급의 독자적 정치 세력화가 아니라 부르주아 자유주의자들에 대한 환상을 다시금 불어넣는 데 동조한 사실을 바꿀 순 없다. 게다가 노동자연대는 민주노동당이 부르주아 자유주의 세력인 국민참여당과 합당해 통합진보당을 만들었을 때도 이에 참여했다. NL 세력에 대한 마녀사냥이 시작된 뒤에야 이를 피하려고 탈당했다. 말로는 혁명을 주창하지만 실천은 기회주의인 세력을 중도주의라고 한다. 그런 점에서 노동자연대는 중도주의의 전형이다.

역사상 유일하게 제대로 된 노동자 국가를 일구어냈던 볼셰비키의 활동은 이와 전혀 달랐다. 볼셰비키당은 언제나 노동자들에게 진실을 말했다. 2월 혁명 이후 사회혁명당과 멘셰비키가 부르주아들과 연합해 인민전선적 성격의 임시정부를 수립했을 때 레닌의 노선은 임시정부를 타도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회혁명당과 멘셰비키에게 부르주아들과 단절할 것을 요구했고 ‘10명의 자본가 장관을 타도하라!’는 구호로 이를 표현했다. 이것이 10월 혁명의 노선이다.

트로츠키는 (한 때 제4인터내셔널 소속이었던 그룹이 혁명운동을 이탈하여 중도주의 세력과 통합하고 인민전선에 동참함으로써) 스페인에 제4인터내셔널 회원(을 비롯해 인민전선 반대 세력)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도 비타협적으로 인민전선에 맞서 싸울 것을 주장했다. 그때그때 인기 있는 노선을 선택해 온 노동자연대 동지들은 이점을 다시 한 번 생각할 필요가 있다.”


K 발언

두어 명의 청중 발언이 더 있었다. 그 뒤 K가 발언을 했다.

공동전선에 대한 연사의 강연은 크게 무리가 없다. 아마도 연사가 강연을 준비하면서 주로 참고했다고 밝힌 트로츠키의 독일 반파시즘 투쟁 프랑스 인민전선 비판의 도움이 컸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그 두 권의 트로츠키 저작의 한글화와 전자화에 일정한 역할을 했다. 그런데 그 작업이 오늘 연사의 강연을 통해 어느 정도 빛을 발하는 것 같아 상당히 흡족하다. 연사의 말처럼 그 두 권의 책이 절판되긴 했지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위 두 권의 책 제목과 더불어 볼셰비키라고 입력하면 곧바로 트로츠키 저작들이 게시된 사이트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 사이트엔 그 두 권만이 아니라, 트로츠키의 핵심 저작들 예를 들어, 러시아 혁명사, 10월 혁명의 교훈, 맑스주의를 옹호하며, 배반당한 혁명, 이행 강령, 소련의 계급적 성격 등을 접할 수 있다. 노동계급의 미래를 걱정하는 활동가들의 많은 활용 바란다.

앞서 말한 것처럼, 연사의 강연 그 자체는 무난하지만, 앞서 발언한 다른 분의 설명처럼, 실제 노동자연대의 공동전선과 인민전선을 둘러싼 실천은 그렇지 못했다. 맑스-엥겔스-레닌-트로츠키와 같은 선배 혁명가들이 말하는 노동계급 정치의 핵심은 계급 대 계급의 정치이다. 그것을 망각할 때, 스페인이나 칠레와 같은 비극이 발생하는 것이다. 노동계급 일각의 계급협조적 태도에 맞서 계급 대 계급의 전선을 분명히 하고 그로 인해 혁명을 성공시킨 사례는 러시아 10월 혁명에서 볼셰비키의 전술에서 찾을 수 있다. 볼셰비키는 임시정부에 자본가정당과의 단절을 요구하였다. , ‘10명의 자본가장관을 쫓아내어라.’라고 요구했던 것이다. 임시정부는 그를 수용하지 못했고, 노동계급의 지지를 잃었으며, 볼셰비키는 혁명을 성취했던 것이다. 그것이 인민전선과 공동전선의 결정적 차이이다.”


노동자연대 중견회원들의 반박

발언이 끝나자 대기하고 있었다는 듯이 노동자연대 중견간부들의 발언 러시가 이어졌다. , , 양 등 맑시즘 2015의 강연을 하나 이상 맡고 있는 노동자연대의 중견이론가들이었다. 이 셋의 발언은 연사의 강연에 대한 내용이나 자신들이 따로 준비한 것이 아니었고, 오로지 Z K의 발언과 관련하여 노동자연대를 방어하는 내용이었다. 우리가 참석한다는 것을 알고 우리 발언에 대응하기 위해 미리 배치한 중견이론가들일 것이었다. 노동자연대의 주도면밀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물론 주도면밀함 그 자체는 미덕이다.

먼저, 김의 발언

인민전선과 투표는 구별해야 한다. 인민전선이란, 적대계급의 동맹으로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것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것. 투표는 행동 그 자체는 아니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 지지와 대통령선거에서 문재인 지지는 투표였을 뿐 지지였던 것은 아니다. 우리는 다만 다수의 노동계급에게 투표하라. 환상은 갖지 말라고 했던 것뿐이다.

통진당 마녀사냥 피해서 탈당했다고 하는 것은 심각한 왜곡이고 명예훼손이다. 선거부정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태도를 확인하고 탈당한 것이었다.”

온통 문제적 발언의 연속이었다. 한 문장도 허투루 볼 것이 없다. “투표는 행동이 아니다.”라는 것이나, 그러므로 인민전선과 투표를 구별해야 한다.”는 것이나, “인민전선은, 적대계급의 동맹으로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것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것으로 한정해야 한다는 것이나, “투표하라고는 했으되 지지는 아니었다.”라는 것이나, “통진당을 탈당한 것은 마녀사냥을 피해서가 아니라, 선거부정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태도를 확인했기 때문이라는 것 등, 매 문장이 다 문제적이었다.

맑스-레닌-트로츠키주의 전통과 상당히 다른, ‘창의적 언명들이었다. 그런 점에서 김의 발언은 맑스주의자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여럿 던져주고 있다. 이 문제들은 뒤에서 다시 다룰 것이다.

이어서 장의 발언이 이어졌다.

개혁주의를 이해해야 한다. 개혁주의가 얼마나 강한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를 잘 이해해야 한다. 초좌파들은 그것을 허구적 사상이라고만 생각하는 듯. 초좌익들은 자기가 알고 있다고 해서, 노동계급도 그 결론을 따르도록 한다.”

노동자연대에게 초좌파라는 말은 전가의 보도이다. 자신보다 왼쪽에서 오는 비판을 단박에 정리하는 극강의 부적이다. 무엇이 초좌파인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왼쪽에서 오는 비판에 대해서는 그저 다짜고짜 초좌파라고 말하고 레닌의 공산주의 좌파 소아병을 들먹이면 된다. 어리숙한 독자와 청자는 그저 넘어간다.

노동자연대는 계급협조주의 인민전선이라 하더라도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것이 아니라면 즉, ‘전략적 야권연대가 아니라면 부르주아 정당에 대한 지지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는 기준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그런 노동자연대가 보기에 계급의 정치를 이야기하는 자들은 초좌파라고 보일만도 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러한 명명법이 자신들이 계급적 바리케이드를 넘어 오른쪽으로 얼마나 나아갔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일 뿐, 계급 정치의 사상가 맑스-레닌-트로츠키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다음 양의 발언이 이어졌다. 그는 지난 대선 당시 대통령후보로 나선 민주당의 문재인에 투표하라고는 했으나 환상은 없었다.’라는 김의 발언을 반복했다.

*  *  *

견해와 견해가 맞서며 진짜 토론이 진행되었다. 날선 공방이 이어지자 강의실은 바짝 긴장되었고, 다음 발언자는 나서지 않았다. 정적이 흘렀다.

발언권을 다시 신청했다. 발언권을 신청한 사람이 없었으나, 사회자는 좀처럼 발언권을 주려하지 않았다. 발언자 나서라는 사회자의 종용에도 새 발언자가 나서지 않자 마지못해 허용했다.

두 가지를 말하려 한다. 첫째, 맑스주의 전통에서, 체제 내의 진보를 통해 노동계급의 이해를 성취할 수 있다는 정치적 태도를 보통 개량주의라고 부른다. 노동자연대는 개혁주의라는 말을 주로 쓰고, 그 표현을 미는 듯하다. 그런데 개량주의라고 할 때, 그 계급적 내용이 밝혀져야 한다. 맑스주의 전통에서 개량주의란, 부르주아노동자당 즉, 체제내적 강령을 가지고 있지만 노동계급의 지지기반을 가지고 있는 당을 가리키는 것이다. 유럽의 사민당이나 한국의 민주노동당 등이 그 예에 속할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연대는 개혁주의라는 말을 창안해 내어, 그 안에 현 집권 극우당이 아닌 모든 세력 즉, 민주당이나 정의당 등 자본가 정당이 분명한 세력까지 포괄하려 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정동영 등까지 포함하여 자본가 정당은 개량주의 세력으로조차 포괄될 수 없다. 둘째, 투표를 공동전선의 하나라고 말하는데, 맑스주의 레닌 트로츠키 전통에서 자본가당에 투표한 사례가 있는가?”

김이 곧바로 발언권을 얻어 재차 발언했다.

우리가 말하는 것은 노동자운동의 개혁주의이다. 부르주아 정당에 대해서는 개혁주의라고 부르지 않는다. 정동영 같은 당은 부르주아 포퓰리즘이지 개혁주의가 아니다. 노연은 엠엘주의 전통에 따라 노동자 운동 내에서 점진적 진보만을 추구하는 정치적 태도를 개혁주의라고 불렀다. 오해없기를 바란다. 공동전선은 공동의 행동을 말하는 것인데, 투표는 행동 그 자체는 아니므로 공동전선이 아니다. 둘째, 대안 부재의 상황의 경우 즉, 하나는 극악무도한 극우가 있고 하나는 차악일 경우 그 때는 차악이라도 선택해야 한다. 외국에 사례가 없다고 해서 우리가 특정한 행동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독특한 정치 때문에 맑스주의자들이 그 전술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역시 문제투성이다. 특히 마지막 부분이 인상적이다. 김은 여기에서 한국의 독특한 정치 지형을 말한다. “한국의 독특한 정치 지형은 그 동안의 맑스주의 전통과 다른 그래서 다른 나라에도 사례를 찾을 수 없는 독특한 정치 전술을 용인한다는 의미이다. ‘민주주의의 토착화, ‘우리 식대로 살자.’니 하는 구호들이 연상되는 발언이었다.


연사의 정리발언

이어서, 연사의 정리 발언이 이어졌다. 연사는 청중토론의 영향을 받은 것이 틀림없는 듯했다. 본 강연에 없던 인민전선 정의가 추가되었다. , 인민전선은 적대계급의 동맹으로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것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것으로 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아마도, 노동자연대가 최근 만든 신조어 전략적 야권연대라는 말과 통하는 의미일 것이다. 이러한 정의 속에서는 적대계급의 동맹으로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것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면, 가령 부르주아와 정치조직을 같이 하거나 선거에서 부르주아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계급협조주의 인민전선이 아니라는 의미가 된다.


노동자연대의, 이견에 대한 적의와 노동자민주주의

그렇게 워크숍이 끝났다. 청중들은 하나 둘 강연장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우리 역시 나가려 하는 때,중견간부 둘이 다가왔다. 인사를 나누자고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 대뜸 남의 행사 방해하러 왔는가?’라고 물었다. 그리곤 방해하러 온 사람과 무슨 통성명을 하냐는 것이었다. 불쾌감을 느꼈지만 어찌 대응해야 할지 몰라 우물거렸다. 하지만 돌아와 생각할수록 그 불쾌감의 의미가 또렷해졌다. 노동자연대 전체 회원들이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그 둘에게 맑시즘 행사는 자신들만의 것이고 노동자연대를 반박하는 이견을 지닌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사를 방해하러 온 인 것이다.

노동자연대(이전 다함께)는 운동의 대의를 내세워 강연자에게 무료로 강의하게 한다. 각자의 사상을 사적소유하여 상품화하지 않고 함께 나누겠다는 취지일 것이다. 그런 뜻을 다음과 같이 밝힌 바도 있다.

무엇보다 맑시즘 행사는 한국 사회 변혁운동을 전진시키기 위한 토론과 논의를 하는 장이다. 진보적 사회 변화 운동의 일부인 것이다. 그리고 연사들은 이런 운동에 기여한다는 생각으로 맑시즘에서 기꺼이 강의료를 받지 않고 연설해 주셨다.”맑시즘 행사의 강의료 관련 논란에 대해, 2012

위의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맑시즘 행사는 한국 사회 변혁운동을 전진시키기 위한 토론과 논의를 하는 장이며, “진보적 사회 변화 운동의 일부인 것이며 그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사적소유의 계급 부르주아가 아닌 공동소유의 계급 노동자의 문화이며 민주주의인 것이다.

그런데 일정한 비용을 부담하며 행사에 온 사람을, 그리고 주어진 발언시간을 이용하여 토론에 참여한 사람을 이견을 제기한다는 이유만으로 눈을 부라리며 방해하러 왔느냐.’라고 적대적 태도로 대하는 것은, 노동자민주주의에 반하는 태도라고 믿는다. 운동과 행사를 사적소유하려는 태도일 것이다.

부르주아와 달리 노동계급의 정치의식은 사적소유의 문화 속에서는 좀체 자라나지 못한다. 그리고 다른 모든 것과 같이 정치의식도 대립물의 투쟁을 통해서만 성장한다. 논쟁과 토론은 그 정치의식의 성장을 촉진하는 통로이며 이견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지난 10여 년간 치러온 맑시즘 행사는 상당한 기여를 해 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견을 봉쇄하거나 적대시하는 토론과 논의의 장은 그 가치가 반쪽이 된다. “사회 변화 운동의 일부가 아니라, 자신들만의 것으로 소유하려는 태도이다.

자신들의 견해가 옳다면, 이견의 존재는 자신들의 옳은 견해를 더욱 구체화하며 그 진리성을 돋보이게 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만약 자신들의 견해가 옳지 않은 견해일 경우, 이견을 억압한다면 그것은 옳은 견해의 등장을 가로막는 반동적 역할을 수행하는 셈이 된다. 어찌되었건 이견의 봉쇄는 진리에 다가가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노동계급의 당파성을 거역하는 행위이다.

기껏해야 우리는, 맑시즘 행사가 자랑해 마지않는 청중토론에서 주어진 330초를 이용하여 의견을 개진했을 뿐이다. 그것에 대해 방해하러 왔냐?’라고 적의를 드러내는 것으로 대응하는 노동자연대의 노동자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와 도량은 상당히 문제적이며, 걱정스럽다는 생각이다. 우리가 이용한 발언 시간은 총 8분이었다. 그게 그렇게 두려운가? 노동자연대의 정치는 그 정도를 견디지 못하여 방해라고 생각할 만큼, 취약한가? 행사 주최 노동자연대는 연사발언에, 이견자 앞뒤로 배치되는 중견회원들의 반박, 사회자의 협조 게다가 연사의 마무리발언까지, 다양한 기회를 활용할 수 있으면서 왜 그렇게 반민주적이고 속 좁게 행동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견의 존중과 노동자 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 노동자연대에 대한 의구심은 오랫동안 있어왔다. 그런데 특히 근래 있었던 노동자연대(당시 다함께) 내부 이견자들의 분립 과정에서 보여진 모습과 세칭성폭력 사건을 대하는 모습을 통해 그러한 의구심은 더 강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신들이 무오류의 절대 사상을 가지고 있는 양 고슴도치처럼 웅크려, 다른 견해를 진지한 검토도 없이 배격하고 자신들을 과잉 방어하는 태도가 더 강화되고 있는 것 아니냐 하는 의심이 커지고 있다. 노동자연대 구성원들은 이 같은 우려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길 바란다.


생각할 거리 몇 가지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노동자연대 강연자와 중견이론가들의 발언에는 가볍게 흘려들을 수 없는 내용이 많다.


1. 노동자연대의 인민전선

노동자연대가 각종 선거에서 부르주아 후보를 지지해 온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2003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조순, 2011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등 자본가 후보들에 대한 지지 호소가 그 사례들 중 일부이다.

계급협조주의는 자본가계급에 정치적 환상을 불어넣는 행위이다. 트로츠키주의 전통에서 이런 행위를 인민전선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노동계급과 피억압인민의 객관적 이해가 아니라 그때그때의 정서를 더 중요시하는 국제사회주의자(IS) 전통은 이러한 계급협조주의 인민전선 행위를 여러 나라에서 그리고 한국에서도 줄곧 행해 왔다. 바로 이런 행적 때문에 노동자연대는 인민전선의 의미를 수정해야 한다. 그것이 다음과 같은 김의 발언의 의미이다.

투표는 행동이 아니므로 인민전선이 아니다. 인민전선과 투표는 구별해야 한다.” “인민전선이란, 적대계급의 동맹으로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것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것. 투표는 행동 그 자체는 아니다.”

투표는 행동이 아니다.”라는 믿기지 않는 궤변은 논할 가치조차 없을 만큼 딱한 것이다. 노동자연대 공식 입장이 그런 것인지 궁금하다. 거짓말 하나를 숨기기 위해 여러 개의 보조적 거짓말이 필요하고 또 그것은 새로운 거짓말을 부른다는 것인데, 이런 식으로 하나의 기회주의와 궤변은 다른 궤변을 낳는 것이다. 자신들의 계급협조주의 행각을 합리화하려고 인민전선의 의미를 수정하자, 이제 투표의 의미를 수정하고 더 나아가 과연 행동이란 무엇인지를 새로이 논해야 할 지경이 된 것이다.

맑스주의의 요체는 계급 대 계급이다. 이 사회는 화해불가능한 계급 적대에 기초해 있다는 인식이 맑스주의의 핵심이며 과학적 진실이다. 맑스주의는 노동계급이 부르주아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 자신의 계급적 이해를 자각하고 모든 악의 근원인 이 낡은 체제를 파괴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는 사상이다. 소수의 지배계급이 다수 위에 타고 앉아 착취하고 인권을 마음껏 유린하는 것은 오직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하는 피억압 인민이 계급적 자각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민전선은 이 계급 대 계급의 정치를 망각하고 부르주아에 정치적 지지를 보내는 행위이다. 인민전선의 해악은 그것이 계급협조 사상의 구체적 발현물이라는 사실에 있다. 인민전선은 단지, “적대계급의 동맹으로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것,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본가계급과 조직적 정치적 단절이라는 원칙을 저버리고, 계급적 적대를 흐리고 부르주아에 대한 환상을 부추기는 대부분의 계급협조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계급협조주의 인민전선은 정부 구성’(노동자연대가 새로 고안해 낸, ‘전략적 야권연대라는 모호한 신조어가 의미하는 것으로 추측되는)만이 아니라, ‘선거에서 부르주아 후보에 대한 지지’, ‘부르주아 정당과의 조직적 통합 등까지 포괄하는 것이다.

그런데 놀랄만한 것이 더 있다.

사실 노동자연대는 적대계급의 동맹으로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것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것이라는,자신들이 빠져나갈 수 있도록 아주 협소하게 만든 인민전선의 정의마저도, 양보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같은 날 4 10분에 시작된 조셉 추나라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중앙위원의 <유럽의 정치 양극화그리스 시리자에서 파리 공격까지>에서 K는 다음과 같은 질의를 했다.

혁명 도정에서 마지막 장애물 중의 하나는 자본가 정당과의 협조를 의미하는 인민전선 즉,연립정부 구성이다. 지금 그리스에서 바로 그 일이 일어나고 있다. 1930년대 그리스에서도 인민전선 정부가 구성되었고, 그러자 쿠데타가 일어나 좌익이 궤멸되는 재앙을 맞은 바 있다. 인민전선이라는 이 마지막 장애를 극복한 유일한 정당은 러시아 볼셰비키이다. 그 볼셰비키처럼 지금 그리스 노동계급은 자본가정당과의 단절을 제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연사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역시 지체 없이 김이 나섰다.

인민전선은 그리스 노동계급이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인민전선은 스탈린주의 공산당이 주도하여서 적대계급의 정당과 동맹을 맺고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그리스 연립정부는 공산당이 주도한 것이 아니다.”

김은 이제 그 정의를 더욱 좁힌다. “스탈린 공산당이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그리스의 연립정부는 공산당이 주도한 것이 아니므로, (“적대계급의 동맹으로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연립정부를 구성했음에도) 인민전선이 아니라는 것이다.

연사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물론 우리는 그리스 독립당과의 연정을 반대한다. 그러나 자본가 정당과의 단절을 주장하는 것이 그리스 노동계급의 즉각적 요구일지는 의문이다.”

자본가에 대한 정치적 무장을 해제하고 계급협조의 위험을 경시하는 IS전통은 마지막 장애를 넘을 수 없다.


2. 노동자연대의 개혁주의라는 말에 담긴 함의

맑스주의 전통에서 개량주의라는 술어는 노동자 내부의 우파정치를 가리키는 말이다. , 점진적 개선을 통해서 자본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이다. 여러 나라의 노동당 등이나 한국의 옛 민주노동당 등 주로 노동계급에 지지기반을 가지고 있으나 부르주아적 강령을 가지고 있는 정당[레닌에 따르면 부르주아노동자당]’을 일컫는 용어이다. 맑스주의에서 이 개념은 결코 부르주아 정치 진영에까지 확대하지 않는다. 그것은 엄격히 노동운동의 정치경향의 하나를 가리킬 때에만 쓰이는 것이다.

그리고 레닌이 공산주의 좌파 소아병에서 초좌파라고 질타한 것은 바로 이 개량주의 정치조직 즉,노동계급 내부 우파와의 공동행동을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정치경향에 대한 것이었다. 자본가계급과의 공동전선이나, 비판적지지가 아니라.

그런데 노동자연대는 그 동안 그 말의 의미를 은근히 넓혀 왔다. 물론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자신들의 계급협조주의 경향을 무마하기 위해서이다. 그것에 더해 개량주의라는 말에 담긴 비하의 의미를 덜어내기 위해” ‘개혁주의라고 말도 바꾸어 부른다. 그리하여 한나라당이나 새누리당 같은 극우 부르주아 정치진영이 아닐 경우라면 두루 그 개혁주의라는 말로 포괄하는 것이다. 그래야 부르주아 후보에 대한 지지를 합리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문제의식에 대해 김은 무엇이라고 대답했는가?

우리가 말하는 것은 노동자운동의 개혁주의이다. 부르주아 정당에 대해서는 개혁주의라고 부르지 않는다.”

나쁘지 않다. 우리의 정의와 다르지 않다. 맑스주의 전통의 용어법이다. 그런데 진짜? 과연 노동자연대는 개혁주의라는 말을 그렇게 즉, “부르주아 정당에 대해서는 개혁주의라고 부르지 않 노동자운동의 일부를 가리키는 말로만 사용해 왔을까?

다음 인용문들이 그 대답이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치러지는 대선. 좌파라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저는 개혁주의 세력에게 비판적 투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썩 유쾌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극우 정권이 아니라 개혁주의 정권을 원하는 이유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상대하기에 더 편한 적을 선택하려는 이유, 독자 최지미

신자유주의가 강화할수록 새정치연합은 세계의 다른 여느 개혁주의 정당처럼 점점 더 실용주의적 ·기회주의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짜증 유발자들새정치민주연합, 김지윤

이런 기회주의적인 행보는 전형적인 개혁주의 정치인으로서 박원순의 한계를 보여 준다.”박원순의 괘씸한 배신, 양효영

기성 체제는 이것을 국정 운영 능력이라 부르며, 개혁주의 정치인들에게 이를 입증받길 요구한다. 그래서 대체로 말해, 개혁주의 정치인들은 갈수록 지지 대중의 기대와는 어긋나는 실천을 자주 하게 된다. 참여연대 창립자 박원순 시장의 최근 행보도 그래 보인다.”기성체제의 환심을 사려는 박원순 서울시장, 김문성

이 과정에서 민주당의 일부와 NGO를 포함한 여러 종류의 개혁주의가 득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대선 결과가 보여 주듯, 경제 위기 반동 시대에 개혁주의는 일관된 대안을 내놓을 수 없다. 그러므로 급진좌파는 개혁주의에 이끌리는 대중 속에 개입하면서 독립적 비판과 대안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박근혜 정부의 성격과 국민불행시대 추진의 전망, 김문성

우리 나라에서는 민주당이라는 포퓰리스트 부르주아 정당이 전통적 개혁주의 세력인데, 민주당이 10년 동안 집권하면서 지지자들을 배신했다는 사실을 새누리당과 박근혜가 십분 활용한 덕분에 민주당은 총선에서 패배했다.야권 후보가 만약 문재인으로 단일화된다면 민주노총 노동자들은 그를 차악으로 규정하면서 날카로운 비판과 함께, 내키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그에게 투표하는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취할 것 같다.”대선 전에 살펴보는 경제 위기와 대선, 대선 이후, 최일붕

자본주의적 개혁주의 정당인 민주당의 문재인은 독재 정권의 후예이자 재벌 친화 세력인 박근혜와 새누리당만은 막아야 한다는 노동자와 천대받는 사람들의 위기 의식을 이용할 수 있었다. 막판의 광화문 유세에서 문재인은 쌍용차와 용산의 눈물을 닦아 주겠다”(물론 다소 막연한 말이다)고 약속했다.“18대 대선 평가 성명, 노동자연대


3. 2012년 노동자연대의 통합진보당 탈당의 의미

김은 노동자연대가 마녀사냥을 피해서 2012 7월 탈당했다.’라는 것이 날조된 비방이라는 듯이 말한다.

통진당 마녀사냥 피해서 탈당했다고 하는 것은 심각한 왜곡이고 명예훼손이다. 선거부정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태도를 확인하고 탈당한 것이었다.”

알다시피 노동자연대(당시 다함께)는 근 10년가량 몸담고 있던 민주노동당-통합진보당을 2012 7 29일 탈당했다. 스스로도 인민전선이라고 규정한 2011 12월 국민참여당과의 합당에도 참고 견디던 노동자연대였다.

당시는 검찰, 경찰 등 자본가 정부의 모든 기관, 경향신문 한겨레를 비롯한 모든 자본주의 언론기관들, 선거에서 단 한 석도 건지지 못한 좌절감에 사로잡혀 있던 비당권파 유시민 조준호 등이 한 목소리로, 통합진보당의 NL계열, 그 중에서도 경기동부, 그 중에서도 이석기를 향해 서슬 퍼런 독기를 쏟아내던 때였다. 실로 광기 어린 시절이었다. 자본가 세상은 한 목소리로 뭉쳤다. ‘부정경선에 대한 책임을 지고 비례대표로 당선된 이석기와 김재연은 사퇴하라.’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연대는 어떻게 대응했는가? 노동자연대의 다음 탈당성명을 통해 분명하게 대답했다.

“7 26일 통합진보당 의원 총회에서 이석기·김재연 제명안이 부결됐다. 이것은 통합진보당이 심각한 위기에서 벗어나서 제대로 된 혁신을 해 나가길 바라던 선진 노동자들에게 큰 충격과 실망을 안기고 있다. 우리 노동자연대다함께도 마찬가지다.당내 경선 과정에서 대부분의 정파가 연루된 총체적 부정 ·부실이 있었던 것이 이 사태의 시작이었다. 당 지도부와 경쟁 비례대표 후보들이 총사퇴하는 것은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책임지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였다.선거 부정과 중앙위 폭력 사태 등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지우며, 노동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처조차 불가능해진 것이다. 이 당 안에서 진보의 원칙과 정의를 바로 세우기는 어렵다는 것이 분명해졌다.”―「최소한의 혁신마저 불가능해진 통합진보당에서 탈당한다, 2012 7 29, 노동자연대다함께 운영위원회

부정경선을 책임지고 이석기·김재연은 제명되어야 했다.’는 것이 당시 노동자연대다함께의 요구였다.그런데 2012년의 탈당성명만이 아니라 2015년 김의 발언 역시 선거부정에 대한 책임을 운운한다.그 선거부정에 대한 책임을 이석기 등에게 물은 것은 여전히 정당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어떠했는가?

“2012 5 21일 통합진보당 당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언론의 엄호를 받는 공권력의 탄압이 시작되었다. 2012 11 15일 대검 공안부의 발표까지 전국 14개 검찰청에서 총 1735명을 수사해 20명을 구속기소(후보자 3명 포함 21명 구속, 1명 구속적부심으로 석방)하고 442명을 불구속 기소(<이석기·김재연 의원 자격심사통진당 경선의 진실>, 경향신문)”했다.

재미있는 것은, 언론이 십자포화를 퍼부었던 당권파'와 이석기 김재연 비례대표 당선자가 부정선거를 저지른 주범이 아니라, 언론을 뒤에 업고 부정선거 캠페인을 벌였던 자들이 그 주범으로 조사 결과 밝혀졌다는 것이다.”―「2012년 한국의 드레퓌스 사건: 통합진보당 경선부정 사태, 볼셰비키

14개 검찰청을 동원해 근 6개월 동안 1735명을 수사한 결과로도 밝혀내지 못한 이석기 등의 선거부정 혐의를 노동자연대는 여전히 추궁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연대는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할 줄 모른다. 차라리 사실을 꾸짖고 교정하려 든다.

그 뒤엔 어떤 일이 있어 났는가? 이석기 등에게서 선거부정 혐의를 찾지 못하자, 자본가 정부는 1년 뒤 내란음모라는 또 다른 날조를 만들어 결국 이석기 등을 구속한 것이다. 어렵지는 않았다. 자본가 정부의 총공격에 질겁한 소위 진보/좌파 인사들이 NL왕따 만들기에 동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북주의가 마치 진보적 가치인 양 행세하던 자들이 함께 했기 때문이었다.

노동자연대는 반북주의에 찌든 진보연하는 좌파인사들과 함께 묶이는 것이 억울하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소한 탈당성명은 그쪽 진영에 있었다. 노동자연대 구성원들은 지금에라도 그 성명을 회수하길 바란다.

 

2015 4 25

볼셰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