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검열과 여성의 권리

 

국제볼셰비키그룹 영국지부의 [마르크스주의 게시판] 제4호, 1997년 10월.

바바라 듀크

 

나는 8월 하순 전국 여성지부회의에 앞서 북런던 여성지부에 다음 결의안을 제출하였다. 불행하게도, 그것은 전국모임이나 다가올 총회에서 더 논의되기 위한 충분한 지지를 얻을 수 없었다. 나는 왜 이 문제들이 여성지부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당 전체를 위해 그리고 우리의 정책을 발전시키기 위해 중요한지를 아래와 같이 주장하였다.

성적 자유

● 사회주의 노동자는 스스로 동의 여부를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의 성적 표현과 성적 선택을 제한하는 것에 반대한다. 우리는 성적 자유를 부정하는 모든 법률제정에 대해 투쟁할 것이다.

● 우리는 성적 소재에 대해, 검열을 포함하는 국가의 모든 간섭에 반대한다. 자본주의는 단지 여성과 게이, 레즈비언 등을 억압하는 법을 강화할 수 있을 뿐이다.

● 우리는--이성애자이든 동성애자이든 간에--모든 성연령법[쌍방의 합의 아래 섹스를 할 수 있다고 정부가 허용하는 나이를 밝힌 법-역주]의 철폐를 요구한다. 그와 같은 법은 국가에 의해 청년들과 그들의 성정체성 계발에 대한 억압과, 피임, 낙태와 산전검사를 제한하는 데에 쓰인다.

● 국가와 사회에서의 자본주의 지배가 계속되는 한, 여성과 아동과 청년을 억압하는 한, 검열과 성연령법 모두 성폭력에 대한 진정한 보호책이 될 수 없다. 성폭력은 자본주의 사회의 가정과 사회적 억압, 여성과 아동 그리고 청소년들을 구속에서 나오는 산물이다.

● 우리는--그들이 다른 사람의 동등한 권리에 대해 똑같이 존중할 것과 동의를 표현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성적 취향 연령 성별 건강과 능력을 불문하고, 간섭받지 않고 성을 표현할 인민의 권리를 위한 운동을 조직한다.

이 결의안에 담긴 쟁점들은 우리의 현재 정책에 반영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그것들은 여성과 청년, 게이와 레즈비언, 사실상 모든 피억압계층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쟁점들이다. 이것들은 또한 계급문제이기도 하다. 우리의 성을 표현하는 것을 누가 결정할 것인가? 즉, 우리 스스로 이런 문제들을 결정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계급적 질서를 공고히 하려는 국가가 성적 규범과 이데올로기를 결정할 것인가의 문제인 것이다.

사회주의자의 대답은 명백하다. 하지만 성적 소재에 대한 검열과 성행위 허용 나이에 대한 결정을 국가에 맡길 것인가 아닌가에 대한 문제는 사회주의 운동권과 우리 당 내에서 매우 논쟁적인 문제이다.

국가검열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보통, 애정관계를 보여주는 '에로물'과 우리사회의 압제적 성격과 여성에 대한 쇼비니즘적 태도를 그리고 있는 '포르노그래피'를 대비시키며, '좋은 것'과 '나쁜' 포르노그래피를 구분한다. 그러나 사실, 그러한 이분법적 구분은 가능하지 않다. 모든 섹스물은 (다른 영상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유포되어 있는 이데올로기에 깊은 영향을 받고 있다.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우리가 이 사회체제를 무너뜨리는 목표를 달성하기 전까지 자본주의 생산관계로부터 벗어날 수 없듯이 말이다.

노동계급의 이해에 따라 움직이는 사회주의 사회에서, 성적 표현은 우리가 성취할 자유를 반영하기 시작할 것이다. 한편, 우리 삶에 대한 제한은 우리 성을 제한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무엇을 할 자격이 있다고 믿는 것 그리고 임금노동, 가족과 피임 같은 실질적 고려사항 모두에 해당될 것이다. 특히 여성은, 생산에서 전면적 역할을 허락하지 않는 사회에서, 아이 부양자의 역할로 제한되고 있다. 포르노그래피에서 타블로이드 신문에 이르기까지 통속 문학이 여성을 부엌과 침실 책임자로 묘사하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것들은 우리 사회의 산물이지 여성억압의 원인은 아니다. 학대를 묘사하는 음란물에 대한 검열은 (아무리 그것이 불쾌한 것으로 생각될지라도) 억압상태를 개선시킬 수 없다. 그리고 누가 그것들을 검열하는가? 누구의 이익을 위해?

사회의 산물로서, 포르노그래피는 또한 사회의 본질을 영존시킨다. 사회주의자들은 어떻게 미디어의 자본주의적 통제가 자본주의 긍정으로 이어지는지 항상 보아왔다. 또한 포르노그래피의 국가통제는, 기껏해야 저임금 노동을 간간이 허용하면서, 자본주의 성관계(여성을 부르주아 가족 구조에 옭아매는 규범)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성과 국가

영국 정부는 성연령법의 노골적 차별(이성애자는 16세, 동성애자는 18세) 등의 수단을 통해 동성애를 억압하고 있다. 검열 권한을 국가의 수중에 넘기는 것은  이와 같은 억압적 정책들을 지지하고 확장하게 할 것이다. 자본주의에 의해 지지되는 가족 규범을 넘어서는 모든 성관계와 노동관계는 그 자체로 자본주의를 위협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 사회에서 새로운 성적 표현이 제 목소리를 내게 된다면, 그것은 강화된 검열에 의해 제지될 것이다.

사회주의 노동자당의 방침은 성연령법의 평등화이다. 우리는 여기서 더 나아가 청소년들의 성적 행위에 대한 국가의 모든 간섭에 반대할 것이다. 성연령법은 독단적으로 성행위를 제한한다. 청소년들은 무시당하며, 합의 섹스를 할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전적으로 무시하며 고려하지 않는다. 더 심각한 것은, 어려서 몰라도 된다고 여겨지는 아이들로 하여금 성보건과 피임에 대해 무지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연령법의 제한보다 약간 어린 청소년들과의 합의 섹스를 한 청소년들에 대한 기소나 기소 위협은 실제로 기소되어 마땅한 성범죄인 실제적 성폭력과 강간을 숨기는 역할만 할 뿐이다. 우리는 피해자의 연령을 막론하고 합의에 기반하지 않은 모든 섹스에 반대한다.

국가가 성을 통제하는 법률제정을 묵인하는 것은 피억압자를 방어하지 않는 것이 될 것이다. 국가의 본질적인 기능은 자본주의 체제를 방어하는 것이다. 그 자본주의 체제는 매일 수백만의 여성과 아동들을 억압하는 체제이다. 입법자나 판사에게서 약간의 선의를 기대하는 것은 이 기능을 무시하는 것이며, 유토피아적 환상에 빠지는 것이기도 하다.

아동에 대한 성폭력과 강간 그리고 아동을 포르노그래피 제작에 강제로 동원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점증하는 병증의 극단적 표현이다. 이러한 현상은 성에 대한 매우 기형적 인식과 더불어 아이들이 자라나는 실제 세계 속에서 지속된다. 이 억압에 진정으로 종지부를 찍기 위해 우리는 이 세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억압의 원인에 대한 투쟁

사회주의노동당은 연령을 불문한 모든 피임과 낙태의 자유, 합당한 최소임금과 동일임금, 급여가 보장되는 출산휴가를 통한 여성의 경제적 독립, 양질의 무상육아, 무상의료와 무상주택과 같은 정책을 통하여 이 문제를 제기한다. 이러한 정책은 아이를 원하는 부모의 출산을 보장하고, 오늘날 영국과 전세계의 기회를 박탈당한 수많은 아이들에게 경제적인 수단을 제공할 것이다.

우리는 또한 폭력의 이미지가 아니라, 실제 성폭력에 대해 투쟁할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할 수 있도록, 무상의료 그리고 다른 노동자와 더불어 투쟁할 수 있게 할 성노동자의 조직화와 결합된 매춘법의 제정을 지지한다. 더불어 마약중독자들이 매춘 말고 다른 방법이 없다고 느끼게 하는 대신에 적절한 의료서비스와 마약중독자에 대한 적절한 처방을 허락할 마약법을 지지한다.

종합적인 육아와 방과 후 관리, 여가활동의 자유, 모든 학교교육에서의 성교육이 아동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

우리는 대부분의 성폭력이 가정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가족은 자본주의의 날카로운 모순으로부터 위안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폭력과 학대로 시달리는 여성과 아동에 대한 경제적 덫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일시적으로는, 여성과 아동에게 더 많은 피난처가 필요하고, 장기적 측면에서는 모든 사람의 재정적 독립을 위해 위에서 제기한 정책들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정책들을 위한 투쟁은 무엇보다도 자본주의 사회는 그러한 정책들을 보증할 수 없고 그러한 체제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내게 될 것이다. 기본권의 요구를 통해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의 근본에 도전할 수 있으며, 오직 사회주의 사회만이 안전과 복지, 미래 세대를 위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음을 명확히 할 수 있다.

 

여성과 사회주의 노동자

사회주의 노동자당은 불행하게도 여성회원의 비율이 낮으며, 여성지부의 성장은 아직 유아적 수준이다. 국내 모든 단위의 여성지부들은 여성동지들에게 당의 다른 여성들과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값진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더 많은 여성을 당으로 오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성지부를 위임해 버리거나 여성 문제에 관한 정책을 고안할 책임을 맡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다. 그렇게 하는 것은 이 문제들을 부차적인 문제로 규정하는 것이 될 것이다. 여성해방을 위한 투쟁은 모든이의 해방을 위한 투쟁과 완전히 연결되어 있다. 만약 우리의 남성동지들이 투쟁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이 투쟁은 패배할 것이다.

페미니스트들과 달리, 여성 사회주의자들은 여성억압이 계급억압의 산물임을 알고 있다. 노동계급의 여성들은 부르주아 여성들이 아니라 가족과 직장의 남성동료와 더 공통점이 많다. 광산과 리버풀 부두에서 생생하게 보여진 근년의 투쟁처럼, 우리가 그들과 함께 싸울 때, 승산은 훨씬 더 크다.

성억압을 사회의 근본적인 분할처럼 묘사하는 (다양한 형태의) 페미니즘은 우리 운동에 실제적인 위험이 된다. 페미니즘과 사회주의는 다른 것이다. 페미니즘을 여성의 권리를 위한 투쟁과 단순히 동일시 할 수 없다. 페미니즘은 서로 다른 계급의 여성들이 같은 기반 위에서 싸울 수 있다는 해로운 이데올로기--이것에 의해 투쟁은 자본주의의 경계를 벗어나지 않는 선으로 자연스럽게 제한될 것이다--를 주입한다.

오늘날의 페미니즘 운동은, 투표권을 위해 끈질기고 용감하게 싸웠지만 여성의 보수적 성향과 여성의 자본주의 사회 안정화 효과를 주장하며 부르주아 여성의 권리에 초점을 맞추었던 에머린 판커스트 주도 하의 여성참정권운동가 같은, 초기 영국 여성주의자들의 직접 계승자이다. 여성 참정권의 확대(처음에는 30세였다가 차차 낮추어져 18세가 됨)는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중요한 성취이다. 차티스트 시대부터 영국 사회주의자들은 민주적 권리 확대를 위해 싸웠다. 우리는 이러한 성취들을 인정하고 방어한다. 그러나 현 체제에서 획득된 그 제한적인 쟁취물은 노동계급 여성의 삶과 교환된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여성참정운동가들의 목표를 일부 공유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전통은 아니다. 그 대신 우리는 실비아 판커스트와 함께한다. 실비아 판커스트는 그녀 어머니[에머린 판커스트-역주]의 부르주아 페미니즘을 거부하고, 투표권뿐만 아니라 이스트엔드 빈곤층 여성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싸웠고, 나아가 모든 억압을 끝장내기 위한 노동계급의 해결책을 국제적으로 찾기 위해 러시아 볼셰비키와 연대한 운동가였다.

 

Marxist Bulletin: Sex, Censorship and Women's Righ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