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뉴질랜드 의회선거에 대한 IBT 성명서>

9월 17일 선거에서 무효표를 던지자!

2005년 선거: 신자유주의를 택할 것이냐

               아니면 신자유주의를 택할 것이냐?

<차례>

자본가들에 대항하는 노동계급정당을 건설하자

제 4차 노동당 정부가 복지 국가를 해체하다

계급의 적들과 동침한 연립정부

노동당에게 표를 던질 이유는 조금도 없다

국내외에서 탄압을 가중시키는 노동당

노동당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마오리족과 뉴질랜드 정치 지형

반자본주의 연합: 개량주의와 노동자 공화국 강령의 짬뽕

최소, 최대, 이행 강령들

 

1996년의 선거 참여를 호소하면서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런 구호를 내걸었다: "투표에 참여하지 않으려면 불평도 늘어놓지 말라!" 이에 대해 뉴질랜드 수도 웰링튼의 무정부주의 조직은 대항 구호를 내걸었다: "투표에 참여하려면 불평은 늘어놓지 말라!" 이것은 멋진 대항 구호였다. 그러나 이 두 구호들 어느 것도 노동자들이 자신의 삶과 사회를 통제할 수 있는 전망을 제시하지 못한다.

부르주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운영하는 자본가 계급과 이들의 대표인 부르주아 정치인들은 이렇게 우리를 설득하려한다: 사회와 정치의 기본 문제들은 선거를 통해 해결된다. 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선거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의 폭은 매우 좁다. 특히 지난 20여 년간 뉴질랜드에서는 더욱 그랬다. 양대 정당인 노동당과 국민당에게 가장 큰 문제는 이 두 정당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유권자들을 설득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양대 정당들은 모두 자본주의 특히 자유시장 자본주의인 신자유주의를 유지하는데 철저히 헌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두 정당 가운데 누가 차기 정부를 구성할 것인지의 문제는 정말이지 전혀 흥미롭지 않다.

그러나 동시에 무정부주의자들도 잘못 생각하고 있다. 이들은 자본주의 선거가 노동자들의 이해와 전혀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모든 정부가 악이며 정부 구성을 위한 선거 역시 악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노동계급은 자기 정부가 필요하다. 억압과 착취에 짓눌려 있는 계급들의 이해를 일관되게 옹호하는 강령에 복무하는 혁명 정부가 필요하다. 사실 지금 노동계급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단 하나 있다면 그것은 이 강령을 확정하는 정치토론이 좌익에 의해 수행되는 것이다. 이것은 노동자의 이해에 복무하는 정부의 정책들을 확정하는 행위이다. 정치적 명확성을 확보하기 위한 이 과정은 이 강령을 구현하고 확장시키는 정당 건설의 임무와 분리될 수 없다.

9월 17일 선거가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는 전혀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부르주아 선거는 혁명운동에게 가치 있는 것을 제공할 수 있다. 전국 차원에서 정치토론이 진행되는 선거 시기는 혁명가들이 이 토론에 개입하고 필요하다면 후보를 출마시키는 것을 통해 맑스주의 혁명 강령을 제시할 기회가 될 수 있다.

 

자본가들에 대항하는 노동계급 정당을 건설하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노동계급의 이해를 옹호하는 정당이다. 이 사상은 맑스주의의 근간이다. 계급으로서 노동자들이 자신의 정치적 이해를 의식하고 이 정치적 이해를 촉진하기 위해 조직될 때에만 사회주의는 건설될 수 있다. 그리고 이 계급의식과 조직은 노동계급의 대중적 혁명정당을 통해 실현되고 표현된다.

이번 선거에서 이 정당은 그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혁명정당 건설이라는 기준을 통해 혁명가들은 선거에 뛰어든 정치세력들을 평가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혁명정당에는 못 미치지만 노동계급 이해의 상당 부분을 표현하여 계급투쟁 중의 노동계급을 옹호하는 정당들을 맑스주의자들은 "비판적으로 지지"하고 이들에게 표를 던질 것을 촉구한다. 예를 들어 공산주의인터내셔널(코민테른) 초기에 레닌과 트로츠키는 자유당과 보수당 등 공개적인 부르주아 정당들에 대항해 영국 노동당과 같은 사민주의 노동자정당들을 비판적으로 지지했다.

일관되지 못하고 믿을 수 없는 방식으로나마 영국 노동당은 노동자정당을 자임하며 공공연한 자본가 정당들에 대항해 노동계급 대중을 조직했다. 바로 이 점을 혁명가들은 진정으로 지지할 수 있었다. 노동당의 선거강령은 노동계급의 이해를 옹호하는데 아주 부족했고 이것마저 이 정당은 필연적으로 배신할 것이었다. 그러나 노동계급의 광범위한 부위들은 노동당을 신뢰했고 이 정당이 노동계급을 대표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선거에서 노동당을 비판적으로 지지하는 것을 통해 혁명가들은 노동당의 기반인 노동계급 대중들과 함께 하며 이들에게 미래에 있을 노동당의 배신행위를 경고하고 이들에게 혁명 강령을 알아듣게 설명할 수 있었다.

 

제 4차 노동당 정부가 복지국가를 해체하다

IBT의 뉴질랜드 지부나 이 조직의 선행조직인 연속혁명그룹은 1984년 선거 때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이해 7월의 의회 선거에서 로버트 멀둔의 국민당 정부에 대항한 데이빗 랭의 노동당을 맑스주의자들은 비판적으로 지지할 수 있었다. 이때 노동당이 대표한 계급의식은 과거에 이 정당이 그나마 대표했던 대단히 부족했던 계급의식의 껍데기에 불과했다. 그러나 노동당은 자신의 전통 정치기반인 노동계급과 노동조합에 호소할 수 있었다. 이 선거에서 노동자들은 노동당을 지지했다. 왜냐하면 이들은 노동당이 노동계급을 대표하고 있다고 일반적으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때 노동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는 이 정당이 곧 노동계급을 배신할 것이라는 확실한 경고를 포함했을 것이다. 선거에서 승리하여 집권한 제 4차 노동당 정부는 정말이지 노동자들을 배신했다. 그리고 이 배신은 일반의 상상을 초월한 대대적인 것이었다. 신자유주의의 미명 하에 랭/더글러스 정부는 노동계급이 50년간 처절히 투쟁하여 자본가 계급에게서 강요해낸 성과들을 완전히 해체시켜버렸다.

이때 이후 노동당은 변했다. 당의 극우 분자들은 뉴질랜드행동당(ACT New Zealand)에게 떼어주고 좌파 분자들은 신노동당(New Labour) 그리고 이 정당의 후속타인 연합당(Alliance)에게 떼어 넘겼다. 극렬한 우익정당인 뉴질랜드행동당은 이번 선거에서 단 한 석도 얻지 못할 것 같다. 그리고 연합당은 단 한 석도 못 얻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의 제 3의 길이라는 환상을 선전하면서 사민주의 좌파로 남아 있다. 연합당은 노동당보다 약간 더 급진적인지 모르지만 이 두 정당 모두 자신들의 목표를 똑같은 방식 즉 의회 개혁을 통해 성취하려한다.

 

계급의 적들과 동침한 연립정부

헬런 클라크의 제 5차 노동당 정부는 데이빗 랭의 제 4차 노동당 정부보다 덜 잔인했지만 후자가 해체한 노동계급의 투쟁 성과들을 되돌려 놓지도 않았다. 그리고 비례대표제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의회의 다수를 차지하지 못하자 미래통일당(United Future), 녹색당(Greens), 뉴질랜드제일당(New Zealand First), 마오리족당(Maori Party) 그리고 심지어는 국민당(National)까지도 매수하고 서로 경쟁시켜가며 연립정부를 구성하는데 익숙해져갔다.

겉으로 보기에는 온갖 잡탕들 같지만 노동당과의 연립정부에 합의한 정당들은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다양한 계급을 망라하는 국민정당이 되고자 모두 열망하고 있다. 그리고 자본주의 질서를 유지하는데 헌신하고 있다. 노동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것을 통해 이 정당들은 노동당의 정치기반인 노동대중의 압력을 완화시켜 연립정부가 노동자들을 위한 강력한 조치들을 취하는 것을 막는다.

노동당의 최근 연립 파트너이자 가장 급진적인 동맹자인 녹색당도 부르주아 정당이다. 이 정당은 아마 전 세계 녹색당들 가운데 가장 좌익적이고 이 정당의 의원인 수 브레드포드와 키이쓰 로크는 가장 좌익적인 개인사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2002년 선거에서 사회주의노동자그룹이 했던 것처럼 노동당에게 직접 표를 던지지 않으면서도 노동당이 집권하기를 원하는 조직들은 녹색당에 표를 던진다. 그러나 뉴질랜드 녹색당은 노동계급이나 사회주의 정당으로 자신을 규정하고 정치토양에 뿌리를 내리지는 않았다. 뉴질랜드 자본가 계급과 소자본가 계급 가운데 민족주의와 보호무역주의를 지지하는 분파의 특정 부위들을 대표하는 세력이 녹색당이다.

결국 2005년 선거에서 노동당이 자본주의 정당들에 대항하여 노동계급을 대표한다는 환상은 있을 수 없다. 이 정당의 통치 방식은 부르주아 정당들과 연합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역관계를 상당히 변화시킬 어떤 조치도 전혀 현실성이 없다고 거부할 변명을 할 수 있다.

 

노동당에게 표를 던질 이유는 조금도 없다

자본가들에 대항하여 노동계급 정당이 필요하다는 사상을 노동당이 지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요즈음 전혀 없다. 이 때문에 국민당 당수 브래쉬보다 약간 더 친절한 정부를 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노동당이 유세를 통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선전이다.

그런데 이 점을 오클랜드에서 활동하는 공산주의노동자그룹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 "나중에 자본주의를 타도하기 위해 지금 노동당에게 표를 던지라"고 이 조직은 노동자들에게 촉구한다:

"노동당이 노동자들에게 사회주의를 선사할 수 있다는 환상을 우리 공산주의자들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노동당의 정책이 노동계급의 이해에 부응할 수 있다고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는 노동당을 전술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계급투쟁]지, 제 62호, 2005년 7월-8월)

물론 노동자들 다수는 노동당에게 표를 던질 생각이 있다. 그러나 이 생각에는 열성, 낙관 그리고 노동당이 자본가들에 대항해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표한다는 판단이 전혀 없다. 대신 국민당보다야 낫지 않겠느냐는 식의 생각을 하면서 노동당에게 표를 던질 것이다. 따라서 공산주의노동자그룹은 노동당의 배신자들과 확실히 결별할 의사가 없기 때문에 위와 같은 입장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정치적 결별을 할 수 없는 "공산주의자들"은 "나중에 자본주의를 타도"하는 일에 노동자들을 지도할 가망이 전혀 없다.

공산주의노동자그룹의 생각과는 전혀 달리 뉴질랜드 노동자들은 노동당에 대해 조금의 환상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노동당 당수 클라크가 국민당 당수 브래쉬보다 낫지 않겠느냐는 생각은 환상이다. 국민당과 노동당의 차이는 기본적으로 화장발에 불과하다. 혁명가들은 이 진실을 공개적으로 노동자들에게 말하고 노동당의 기만성을 폭로해야한다. 선거 유세를 시작하면서 클라크는 국민당의 정책을 "신자유주의의 장본인들을 위해 마지막 주사위를 던진 것"([도미니언 포우스트]지, 8월 22일)이라고 공격했다. 그러나 그녀가 언급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장본인들"에는 그녀와 그녀의 친구들인 가프, 칼런 등이 포함되어있다. 왜냐하면 이들이야말로 제 4차 노동당 정부에서 소장급 장관으로 근무하면서 국무회의 탁자 주위에 둘러 앉아 신자유주의 정책을 논의하고 시행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중반에 위기가 닥쳤을 때 복지제도를 가장 대대적으로 파괴한 것은 국민당 정부가 아니라 노동당 정부였다. 그리고 이것이 자본가 계급에게 필요하다면 노동당은 반드시 같은 짓을 반복할 것이다. 현재 뉴질랜드 자본가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기분이 좋아서 미소를 짓는다. 이 경제체제를 1980년대에 구축했으며 지금도 유지하고 있는 책임은 노동당에게 있다. 물론 자본가들은 법인세율 등을 낮추기를 원하고 있으며 클라크 정부가 자기들 가족의 일부로서 이런 조치들을 취해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국내외에서 탄압을 가중시키는 노동당

클라크의 노동당 정부는 자신이 억압을 반대하기는커녕 지지하는 세력이라는 것을 주기적으로 증명해왔다. 2001년 9월 11일 미국의 테러 사건 이후 아들 부시 행정부가 앞장서서 하는 일을 따라 노동당도 시민적 자유를 탄압해왔다. 이 정부는 재판도 거치지 않고 알제리인 망명신청자 아메드 자우이를 2년 동안 감방에 가두었다. 그의 적법한 난민 자격이 난민자격심사국에 의해 공식 인정되었고 꼼꼼하게 문서화된 사실을 노동당 정부는 완전히 무시해버렸다. 최근 노동당의 주도 하에 의회 법사/선거위원회는 피터 엘리스 오심 판정에 대한 왕립 위원회의 재조사 청원을 기각했다. 이로써 노동당은 자신의 반동적 색채를 여지없이 확인시켰다.

노동당의 이러한 입장들은 "범죄"와의 전쟁에 대한 이 정당의 일관된 정책들과 손발이 잘 맞는다. 지난 10년 동안 필 가프와 같은 작자들은 법과 질서에 대해 거품을 물면서 "가장 단호한" 법집행에 있어서 국민당과 뉴질랜드제일당을 추월하려고 애써왔다. 어느 정당이 거리에 경찰을 더 많이 배치하는지 경쟁을 벌이는 늘 보는 꼴불견이 올해도 연출되었다. 올해 예산에 의해 증원된 265명의 신임 경찰관들에 더하여 250명의 "동네 경찰"을 증원하겠다고 노동당은 약속했다.

노사관계에서 노동당은 좋은 날에는 노동조합과 고용주 사이에 서서 자유주의에 입각하여 중재한다고 자처하지만 실제로 자본가들을 노골적으로 편들어왔다. 국민당이 통과시킨 노동법을 2000년에 개혁한답시고 한 것이 파업과 기타 노동계급의 투쟁을 가로 막는 걸림돌들을 모두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동조파업과 정치파업은 아직도 불법이다. 올해 초 뉴질랜드 노총이 5% 밖에 되지 않는 근소한 임금인상을 위해 애처롭게 투쟁했을 때 노동당은 이 투쟁조차 훼방을 놓았다.

노동당의 정책들은 국내와 마찬가지로 국외에서도 반동적이다. 자신의 대외 정책을 인도적이고 진보적으로 포장하는데 노동당은 일부 성공했다. 하급 제국주의 국가인 뉴질랜드는 보어전쟁부터 시작하여 모든 중요한 제국주의 전쟁을 일관되게 지지해왔다. 클라크의 노동당은 "테러대전"이라는 미명하에 미국이 중동에 군사력을 확대한 것을 완벽히 지지하여 아프가니스탄에는 정예 특수부대를 이라크에는 공병대를 페르시아 만에는 군함들을 보냈다.

 

노동당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현재 노동당은 사회민주주의의 맨 가장자리에서 춤을 추고 있다. 자본주의를 유지하고 증진하는 것이 노동당들의 기본 임무이다. 그러나 이들은 공개적인 부르주아 정당들에게 없는 모순 즉 지도부의 친자본주의 정책과 노동계급 기반 사이의 모순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20년에 걸쳐 이 모순은 뉴질랜드 노동당에는 효과적으로 제거되었다. 영국의 블레어가 이끄는 신노동당처럼 클라크의 노동당은 단순히 자유부르주아 정당으로 변신할 가능성을 저울질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노동당의 노동계급적 성격은 다하지 않았다. 노동자들의 투쟁을 덜 위협적인 길로 인도하는 것을 통해 사민주의 정당들은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왔다. 계급투쟁이 상승하는 시기에 클라크, 칼런 등 개량주의 일당의 임무는 친노동자적 수사를 남발하면서 노동계급의 정치적 분노가 노동당을 통해 표현되도록 유도한 후 이것을 목 졸라 죽이는 것이다. 뉴질랜드 자본가 계급을 위한 이 역할을 브래쉬의 국민당은 할 수 없다. 이 역할을 할 수 있는 다른 유일한 사민주의 후보는 연합당의 지쳐빠진 잔당이지만 이 정당은 노동당의 사회적 비중을 전혀 가지고 있지 못하다.

 

마오리족과 뉴질랜드 정치지형

마오리족 문제는 역사, 현대 정치, 혁명 전망 등에서 뉴질랜드의 특징이다. 지금 선거에서 이 문제는 특히 날카롭게 제기되고 있다. 19세기에 마오리족의 영토를 몰수하면서 뉴질랜드 백인 자본가 계급은 자본의 본원적 축적을 달성했다. 그리고 같은 시기 마오리족의 저항 전쟁이 패배하면서 뉴질랜드 백인 국가가 탄생했다. 이후 노동력이 뉴질랜드의 자본주의적 성공에 원동력이 되었는데 이 가운데 상당한 부분은 마오리족 노동력이었다.

마오리족은 1870년대 말 제국주의 영국군에 패배하면서 피억압 민족이 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호주의 원주민처럼 압도적으로 제거되어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나지는 않았으며 뉴질랜드의 사회와 정치의 중요한 요인이 되어왔다. 지난 50년에 걸쳐 이들은 강력한 계급투쟁을 통해 망게레에서 카웨라우 그리고 그 너머까지 파업들을 주도해왔다.

현재 마오리족은 인구의 약 18%를 차지하고 있다. 압도적 다수가 노동자인 이들은 백인에 비해 높은 실업률, 낮은 평균소득, 짧은 수명을 가지고 있다. 사회의 모든 지표들로 보아 이들은 뉴질랜드 사회에서 가장 억압받는 집단에 속한다. 예를 들어 이들과 같은 소득 수준에 있는 백인들과 비교해 보아도 마오리족은 의료 혜택을 더 적게 받고 있다. 사회적으로 마오리족은 백인과 잘 동화되어 있으며 백인들과 결혼하는 비율도 높다. 그리고 이들은 기본적으로 노동당에 표를 던진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를 분리주의 조직들을 통해 표현해왔다.

2003년 뉴질랜드 항소법원은 일부의 경우 마오리족이 해안과 근해 일부에 대해 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 이후 마오리족 분리주의가 등장하여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다. 이 판결에 대한 백인들의 저항에 직면하자 노동당 정부는 이 권리를 소멸시키는 법을 통과시켰다. 이것은 21세기판 노골적 인종주의적 토지 강탈행위이다. 토지 강탈에 대한 마오리족 이전 세대의 전투성을 고려하면 이 조치는 대단히 어리석은 행위였다.

이 악법이 제정된 직후 터져 나온 정치 위기 와중에서 정부의 소장급 장관이었던 타리아나 투리아는 노동당과 의회 의원직을 사임하고 마오리족당을 창당한 후 보궐선거에서 다시 당선되었다. 노동당에 대해 완벽히 정당한 불만을 호소하고는 있지만 마오리족당은 진정한 대안이기는커녕 보수적이면서도 온건한 다계급 정당으로 자신을 정립하고 있다.

이 정당의 성공은 토지 문제의 중요성을 드러내고 있다. 19세기, 20세기, 21세기에 자행된 마오리족에 대한 강도행각과 폭력행위는 합리적으로 보상되어야 한다. 와이탕기 조약(역자 주: 1840년 2월 6일에 체결된 마오리족 일부 부족들과 영국 총독 홉슨 사이의 조약. 이를 통해 마오리족은 토지소유권을 인정받았고 대신 뉴질랜드에 대한 영국의 주권을 인정했다. 이후 이 조약이 영국 식민지 당국에 의해 위반되자 마오리족은 저항전쟁을 벌였으나 패배했다.) 위반에 대한 보상 과정에서 마오리족의 부유 엘리트층이 형성되었지만 마오리족 서민의 실질적인 물질적 삶에서는 변화가 거의 없었다. 그리고 조약 위반에 대한 보상 과정은 마오리족의 평등을 보장하는데 전혀 미흡했다. 이 과정을 정지시키기 위해 정당들이 경쟁적으로 제출하고 있는 반(反)마오리족 제안들을 혁명가들은 반대한다.      

뉴질랜드 사회주의혁명이 성공하려면 이 혁명은 노동자이자 민족인 마오리족의 투쟁을 지지해야한다. 이 혁명은 강탈당한 토지에 대한 보상 등과 같이 마오리족에 특별한 정당한 이해를 옹호해야한다. 그리고 원하는 언어로 교육을 받을 권리 등 특히 마오리족에게 중요한 권리들도 옹호해야한다. 또한 고용, 무상 주택, 무상 교육, 의료 등 마오리족이 백인, 태평양 도서인, 아시아인 그리고 기타 노동자들과 공유하는 이해들을 옹호하기 위해 투쟁해야한다.

미래 뉴질랜드의 사회주의혁명은 마오리족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아야 성공할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마오리족의 민족 해방은 자본주의에 대항해 모든 노동자들과 마오리족이 함께 투쟁해야 성공할 수 있다. 투리아, 피타 샤플즈 그리고 마오리족당이 제시하는 분리주의적 다계급 전략은 반드시 실패한다. 왜냐하면 이 전략은 조약 위반에 대한 보상 과정에서 새로 형성된 마오리족 자본가와 소자본가 계급들과 마오리족 서민들이 연합할 것을 촉구하기 때문이다. 전자는 실업, 빈곤, 병마와 싸우고 있는 마오리족 서민들과는 이해가 매우 다르다. 마오리족이 해방되기 위해서는 모든 민족들의 착취자 계급에 대항하여 백인 노동자, 태평양 도서인 노동자, 아시아인 노동자들이 함께 싸워야 한다.

 

반(反)자본주의연합: 개량주의와 노동자 공화국 강령의 짬뽕

선거 전술을 위해 맑스주의자들은 대규모 조직들의 경우 자본가 정당들에 대항하여 이들이 노동계급 대중을 조직하는 정도를 판단한다. 그리고 대중적 기반이 없는 소규모 조직들의 경우 노동계급의 객관적 이해를 대표하는 강령을 이들이 옹호하는 정도를 파악한다. 반자본주의연합은 소규모 조직으로 이번 선거에서 후보를 내는 경우에 속한다. 이 조직은 [혁명]지를 중심으로 뭉친 크라이스트처치의 그룹과 모택동주의를 신봉하는 노동자당의 통합으로 탄생한 혁명적노동자동맹의 공개 대중 조직이다. 혁명적노동자동맹의 기관지 [불똥]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조직은 맑스, 엥겔스, 레닌의 저작들에 기초한다. 그러나 다른 맑스주의자들의 기여도 인정한다. 국제공산주의운동의 역사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이 존재하지만 이것이 혁명세력의 단결을 막지는 말아야 한다."

이 점에 대해 솔직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다른 해석이란 한편으로는 스탈린과 모택동 사이의 차이(노동자당)에 있으며 또 한편으로는 스탈린주의에 반대하는 경향([혁명]그룹) 사이에 있다. 전자는 소련을 지배했으며 지금도 중국의 기형적 노동자국가를 지배하고 있는 정치적으로 부패한 깡패 관료집단을 대표했다. 스탈린과 모택동의 일국적-관료적 "맑스주의"에 대한 가장 일관된 비판자는 레온 트로츠키였다. 그는 국내의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에 대항하는 노동계급의 정치혁명과 국제혁명 전망을 옹호했다. 그리고 부르주아 정당들과의 연합인 스탈린주의 인민전선에 강력히 반대했다. 또한 그는 노동계급이 직접적이고 일상적인 요구 투쟁을 넘어서서 자본주의 질서 전체에 도전할 수 있도록 지도하기 위한 요구들의 체계인 이행 강령을 주창했다. 반자본주의연합의 선거 유세에서 가장 절실히 빠져있는 것이 바로 이 이행 강령이다. 대신 이들의 강령은 제 1차 세계대전 이전의 국제사회민주주의운동의 고전적인 이분법적 강령 즉 지금 바로 필요한 개혁을 위한 최소강령과 먼 미래를 위한 최대 사회주의강령 등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이 두 강령 사이에 놓인 거대한 정치적 공간 사이에 무엇을 제공할 것이냐 즉 오늘의 직접적 생존권 투쟁을 사회혁명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투쟁으로 어떻게 연결시킬 것이냐에 있다. 지금 절실히 느끼는 요구들에 대한 투쟁이 노동자 국가권력 장악 투쟁으로 이행할 수 있는 가교(다리)를 건설하는 것이 맑스주의자의 임무이다.

"자본주의를 타도하고 이를 대신하여 새로운 그리고 진정으로 사회주의적인 사회를 건설"한다는 반자본주의연합의 목표는 훌륭하다. 그러나 계급의식을 가진 노동자들이 이 조직을 정치적으로 신뢰하여 표를 던지기를 기대하려면 반자본주의연합은 자신의 목표를 성취할 방법에 대해 최소한 뭔가를 말해야한다. 그러나 이들은 이에 대해 할 말이 없다. 이들은 이 목표를 성취하려는 주관적인 의도 그리고 아마 투쟁 의지는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목표를 성취할 수 있게 하는 정치 강령의 시초조차 가지고 있지 못하다.

 

최소, 최대, 이행 강령들

예를 들어 반자본주의연합의 5개조 선거강령은 완벽히 훌륭한 최소 요구를 포함하고 있다: "생활 임금이 보장되고 지금보다 노동시간이 단축된 일자리를 모두에게 마련해달라." 그러나 이 요구를 혁명 투쟁의 맥락에 위치시키지 않는다.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 요구는 노동자의 필요에 부응하며 자본의 이해에 반대 된다: 이 요구는 근본적으로 좀 더 합리적인 생산체제를 위해 투쟁하는 촉매제가 될 수 있으며 반자본주의 투쟁에 일터를 추동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요구도 자동적으로 또는 독자적으로 이렇게 할 수는 없다. 1938년에 트로츠키가 제 4 인터내셔널의 창립 강령으로 작성한 [이행 강령]은 실업을 일소하는 수준으로 노동시간을 줄이는 노동시간 연동제 그리고 인플레에 임금을 연동시키는 물가-임금 연동제를 위해 투쟁할 필요를 설명한다. 그러나 이것뿐이 아니다. 이 요구들을 위해 투쟁할 수단도 설명하고 있다.

이 요구들을 위한 투쟁과 이 요구들을 지지하는 논쟁들은 사회주의 체제의 필요성을 제기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선거나 의회의 틀이 아니라 강력한 계급투쟁을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 계급투쟁 과정에서 노동자 조직들은 파업, 파업방위선, 정당방위대를 투쟁 수단으로 사용할 것이며 노동자 권력을 수립하는 것을 통해 이 투쟁을 절정으로 끌어올릴 것이다.

노동자들의 기본적 무기는 자본가의 이윤을 창출하는 노동력을 거부하는 파업이다. 모든 산업과 직종에 벌어지는 노동시간 연동제와 물가-임금 연동제 쟁취의 진지한 투쟁은 가장 중앙 집중화 되고 가장 효과적인 총파업을 필요로 할 것이다. 전 산업에 걸쳐 노동력을 거부하면서 자본주의의 경제체제를 정지시키는 총파업은 불가피하게 누가 누구의 이해를 위해 이 사회를 통치하는가의 문제를 제기한다. 이 투쟁은 암묵적으로 노동계급의 국가권력 장악을 하나의 가능성으로 설정하고 일정에 올릴 것이다. 이 결과 이 투쟁은 노동운동의 정당 방위대가 그 핵심을 구성할 노동자 군대에 기초한 노동자 정부라는 유령을 불러올 것이다.

이 일련의 투쟁에서 노동시간 연동제와 물가-임금 연동제는 중심적인 요구들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노동자들을 혁명 투쟁으로 추동하기 위해 사회주의자들이 제기하는 이행 강령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이 강령은 질 높은 의료 서비스, 24시간 탁아소, 교육, 주택, 공공 대중교통 등을 모두 무상으로 제공하라고 요구하면서 노동자들의 모든 생활적 필요 전부에 부응해야한다. 이 요구들을 제기하면서 동시에 이행 강령은 사적 이윤의 극대화가 아니라 인간의 필요에 부응하는 생산체제의 필요성을 제기해야한다.

혁명정당의 강령이자 노동자 권력 장악의 강령인 이행 강령은 계급의식을 가진 노동자들을 넘어서서 그리고 심지어는 노동자이지만 이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광범위한 노동자 부위들을 넘어서서 억압을 당하고 있는 더 넓은 계층에게 호소해야한다. 이 강령은 노동자이든 아니든 모든 이주자, 마오리족, 여성, 동성연애자 등의 권리를 옹호해야한다. 왜냐하면 어떠한 억압이나 불평등이나 특권도 노동계급의 이해에 대치되기 때문이다.

이 강령에 기초하여 노동계급과 억압당하고 있는 모든 계층을 투쟁으로 지도하기 위해 노동계급의 대중조직에 뿌리내린 혁명 정당을 건설해야한다. 이 임무를 달성하기 위해 국제볼세비키그룹(IBT)의 동지들은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2005년 9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