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볼셰비키그룹의 5번째 국제회의

혁명지도부 건설을 위한 투쟁

 

국제볼셰비키그룹(IBT)은 2008년 4월에 총 7개 나라에서 모든 지부와 조직 전체를 대표하는 대표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다섯 번째 국제총회를 열었다. 매 3년마다 열리는 국제총회는 해당 시기 사업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모든 국가들의 계급투쟁을 총화하며 해결되지 않은 강령적 문제들을 토의하고 앞으로의 전망에 기초하여 과업을 제출하며 기간 회원들을 교육하고 다음 총회까지 조직을 이끌 새 지도부를 선출한다.

이번 총회가 세계 금융 체제 대붕괴에 몇 달 앞서 개최되었지만, 세계 자본주의는 이미 벼랑 끝에 몰려 있다는 것이 명확한 때였다. 총회에 제출된 <전망과 과제> 문건은 우리의 정치사업의 환경이나 정치적 전망에 커다란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한편으로 “심각한 불균형”의 존재를 가리키며 큰 규모의 경제적 혼란 가능성을 예측했다. 우리는 물론 직접적인 사업 범위를 넘어서 대중사업을 위한 모든 기회를 이용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소규모 조직이라는 점 그리고 영향력이 작다는 사실은 우리의 목표를 크게 달라지지 않게 할 것이다.

“우리의 당면 목표는 혁명가들 재편의 핵심이 되기 위한 국제적 선전그룹을 건설해 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혁명정당의 핵이 될 것이다. 노동운동과 좌익의 모든 경향들은 혁명지도부가 되고자하는 그룹들과 그들이 지닌 강령의 역사적 투쟁의 산물이다. 그 과정을 통해 그들이 근본적으로 러시아혁명역사에 의해 형성되었는지 아니면 당면한 노동조합 운동의 산물인지가 확인되고 있다. 노동계급을 이끌 강령을 확립하려고 한다는 점은 다른 조직들과 구별되는 우리 조직의 고유성이 아니다. 우리의 고유성은 우리 강령이 러시아혁명에서 레닌과 볼셰비키당이 제출하고, 그 이후 계승조직들--가장 최근에는 1970년대말 퇴보하기 전까지의 국제스파르타그룹--에 의해 견지되고 역사적으로 진화되어온, 노동계급의 혁명 강령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총회문건은 IBT가 직면한 과제들에 대해 솔직하게 평가하면서, 국제적으로 ‘극좌’ 내 IBT의 상대적 위치가 점진적으로 향상되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우리는 이 기간 동안 커다란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여전히 작고 허약하며 주로 제국주의 국가들에 제한되고 분산된 조직이다. 출판의 경우 최고 수준의 질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양은 충분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쟁조직들에 대한 우리의 상대적 위치가 개선되었다. 그것은 우리의 전진에 의해서이기도 하지만 주로는 그들의 조직적이고 강령적인 후퇴에 기인한 것이다. 명확하게, 그 후퇴는 21세기에 활동가들에게 주어진 어려운 환경 속에서 뭔가 쉬운 길을 찾으려 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혁명적 맑스주의의 핵심이라고 외치던 핵심적 정치적 내용을 폐기하면서 오른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국제적으로 인터넷 사용자의 증가와 더불어 여러 소위 ‘혁명적’ 좌익들의 우익적 퇴보는 모든 그룹들에게 정통 맑스주의의 전통을 옹호하고 주장할 수 있는 여건을 형성했다. 이미 프랑스, 그리스, 아이슬란드 등의 나라들에서 자본가들이 그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노동계급의 삶의 여건을 더 가혹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시도에 맞선 대중투쟁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정치적 급진화의 새로운 흐름은 그 지도자들이 부르주아 정치체제와 화해해 온 사이비 사회주의 조직들 내에 좌로 향하는 운동을 촉진할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젊은 노동계급 투사들에게 혁명적인 선택을 제공하는, 조직 사이의 상호 비판은 맑스주의 강령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핵심 사업이다.

 

사이비 트로츠키주의의 쇠퇴

1991년 8월에 발생한, 퇴보한 노동자국가 소련의 반혁명은 자본주의 불멸을 외치는 시대를 불러왔다. “공산주의의 죽음”이라는 부르주아지의 공격적 선전은 국제 노동계급의 친사회주의 층의 사기저하와 방향상실을 낳았다. 소련 관료집단과 긴밀히 결합된 스탈린주의 정당들은 특히 급격히 쇠퇴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레닌주의와 10월 혁명에 기초했다고 주장하는 모든 조직들에 그 영향이 미쳤다. 소위 ‘트로츠키주의’ 조직들의 지도자들이 보리스 옐친과 자본주의 복귀세력을 지지했던 사건은 그들이 더 이상 어떠한 혁명적 영향력도 지니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러한 조직들 중 하나는 제4인터내셔널 통합서기국(Usec)이다. 이 조직은 수십 년 동안의 청산주의 움직임 이후 어떠한 점에서 봐도 더 이상 트로츠키주의 조직으로 볼 수 없다. 그 핵심 조직은 프랑스 공산주의혁명동맹(French Ligue Communiste Révolutionnaire)인데, 지난 2월 이들이 ‘새 반(反)자본주의당(New Anti-Capitalist Party--NPA)’으로 해소하기 전부터도 트로츠키주의라는 주장을 포기한 바 있다. 그들이 출판물을 통해 “혁명적 변혁”에 대한 열망을 표현하고 있긴 하지만, NPA의 초점은 개량적 선거주의와 계급협조에 맞춰져 있다(<1917> 30호의 “인민전선 반대! No to Popular Frontism! ”를 볼 것).

1950년대 초반, 미국이 이끄는 제국주의 연합군에 맞서 기형적 노동자국가 북한 방어를 거부하며 트로츠키주의 운동에서 떨어져나간 국제사회주의경향(IST)은 소련 반혁명 이후 성장한 얼마 안 되는 조직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그 핵심조직인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은 최근의 극단적으로 기회주의적인 ‘RESPECT' 조직사업의 파산으로 인해 치욕적인 후퇴를 경험했다(2008년 3월 성명서 “투표와 거리에서의 계급협조 행각”을 볼 것). 그로 인한 조직적 후과가 SWP와 대부분의 다른 나라 자매조직들의 영향력과 활동성 등의 축소로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자본가계급과 함께 하려했던 이 부끄러운 시도로 인해 IST 내에서 심각한 내부 비판(관료적인 희생양 찾기와 별도로)이 있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SWP로부터 가장 큰 규모로 좌선회하며 떨어져 나온 노동자권력(WP)은 첫 십 년간 진지하고 완강한 트로츠키주의 조직으로 자리하려 했다(<Trotskyist Bulletin> 제3호를 볼 것). 그러나 WP는 그 모(母)조직의 스탈린 혐오증과 완전히 단절하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소비에트 블록의 친제국주의 세력을 지지했다. 그들은 1991년 8월 실질적으로 옐친 진영에 있었다. 그때 이후 수치스럽게도 1995년 8-9월의 나토 폭격에 대한 보스니아 세르비아인 방어를 거부하고, 그 후엔 1999년 세르비아에 대한 제국주의 공격 동안 나토의 코소보 지원단체와 연대하는 것으로 나아갔다(<1917> 19호의 “O, What a Tangled Web ,”과<1917> 22호의 “NATO’s ‘Humanitarian’ Terrorism ,”을 볼 것). 2006년 7월 WP의 대부분의 경험 많은 간부들을 포함하는 큰 규모의 소수파가 분립하여 영구혁명(Permanent Revolution) 그룹을 결성하였다. 영구혁명그룹은 주로 노동당 좌파를 향하고 있다. 이제 WP는 무엇이든지 낮은 수준의 젊은 활동가들에게 인기 있어 보이는 것을 정치적으로 수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피터 타피의 영국/웨일즈 사회당이 이끄는 노동자인터내셔널위원회(Committee for a Workers’ International--CWI)의 자본가 국가에 대한 오래된 개량적 관점은 경찰과 간수들을 향한 열망에 잘 반영되어 있다(“ Marxism vs. ‘Militant’ Reformism ”을 볼 것). 1992년 타피 지도부가 노동당에 대한 깊은 입당전술을 지지하지 않자, 조직의 한 덩이가 떨어져 나갔다. 그 소수파는 국제맑스주의그룹(International Marxist Tendency--IMT)을 조직했다. 그들은 주로 사회민주주의 정당(그리고 인기 있는 부르주아 정당)들에 몰두하는 경향 그리고 베네수엘라 보나파르트형(形) 대통령인 우고 차베스에 대한 무비판적 아첨으로 특징지어진다(<1917> 30호의 맑스주의와 볼리바르 혁명: 베네수엘라와 좌익들(NO30, 2008) 을 볼 것).

 

반(反)파블로주의 전통의 정체와 퇴보

1951-3년 제4인터내셔널의 분리 당시 국제위원회(International Committee--IC)에 뿌리를 두고 있는 조직들은 보다 신뢰할 만한 트로츠키주의 주창자들이었다. 중대한 결함에도 불구하고 국제위원회(IC)는 사회주의 혁명의 전제조건으로서 의식적인 맑스주의 지도부의 필요성을 견지하며 마이클 파블로와 어네스트 만델이 주장한 청산주의 노선에 반대했다.

데이빗 노쓰가 이끄는 미국에 기반한 사회주의평등당(Socialist Equality Party--SEP)은 국제위원회의 탕아인 게리 힐리의 전통 위에 있다고 주장한다. SEP는 온라인 선전기구인 세계사회주의 웹사이트(WSWS)를 통해 출판 분야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WSWS에 올라오는 논문들의 양과 상대적으로 괜찮은 질적 수준(날을 세우지 않고 대체로 부드럽게 다듬어져 있긴 하지만)은 실제보다 SEP가 대단히 크고 역동적인 조직이라는 인상을 준다. 데이빗 노쓰의 세계관이 지닌, 근본적으로 수정주의적인 성격은 소비에트 블록(동구권)에서 반혁명 세력 지지와 1949년 혁명으로 수립된 기형적 노동자국가 중국이 줄곧 자본주의였다는 주장을 통해 분명히 드러났다. 제국주의에 맞서 노동자 국가 방어를 거부하는 것은 노동조합은 자본가들의 단순한 도구로 변했다는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 SEP가 이런 노동조합관을 가지게 된 것은 그 핵심 지도부가 연간 수백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미시건 주(州) 인쇄회사 소유주와 임원이기 때문이라는 추론은 일리가 있다(<1917> 30호의 “Being Determines Consciousness”을 볼 것).

점점 더 흔들리고 있는 국제공산주의동맹(International Com-munist League--ICL)의 모체인 스파르타쿠스동맹(Spartacist League/U.S.--SL)은 대체로 1960년대와 70년대 이 조직이 트로츠키주의 강령을 담지한 조직이었다는 점에서 역사적의미가 있다. 오늘날 SL의 퇴보는 더욱 진전되었다. 여러 수준 높은 젊은 투사들이 회원들의 개인숭배적인 행위와 빈번한 알력에 의해 쫓겨난다. 아직은 진지한 청년층에게 매력적인 혁명적 자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렇게 들어온 활동가 대부분은 SL과 ICL의 조직문화 때문에 지쳐 떨어진다.

창립자이며 지도자인 제임스 라벗슨을 중심으로 하는 이 조직의 매우 관료적인 지도부는 종종 우리의 비판 대상이 되었다( 스파르타쿠스동맹(SL)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를 볼 것). 그들의 응답은 정치논쟁 시도 그리고 욕설과 위협 사이를 왔다갔다했다. 전자의 경우에 우리가 어떻게 응대했는지는 사회의 후진성과 종교를 퇴치하는 정책에 대하여(NO27, 2005) 를, 후자의 경우에 대해서는 “로건 인민재판에 대하여(On the Logan Show Trial)”를 보라.

요즘엔 시위현장에서 함께 행진하는 SL회원을 보기 어렵다. 그들은 행인들에게 선전물 파는 데에 더 열중한다. 공식적인 정치 용어로 말하면, SL과 ISL은 종파주의를 향해 나아가고 있으며 아마도 회원들의 충성도를 테스트할 목적으로 개발된 것처럼 보이는 노선을 주장한다. 두드러진 예로는 무고한 시민에게 총질한 경찰들의 투옥을 요구하는 것이 마치 공산주의 원칙을 깨뜨리는 것인 것처럼 말하는 주장이나, 집행기구[예를 들어 대통령, 주지사, 시장 등의 직위--역자]에 혁명적 후보를 출마시키는 전술은 엥겔스, 트로츠키, 제임스 캐넌 등의 통탄할 실수라는 라벗슨의 주장을 들 수 있겠다(<1917> 30호의 “Of Presidents & Principles”를 볼 것)

지금의 SL에 대한 우리 비판의 많은 부분은 뉴욕에 거점을 둔 국제주의자그룹(Internationalist Group--IG)과 그 제4인터내셔널을 위한 동맹(League for the Fourth International--LFI)의 비판들과 궤를 같이 한다. 그 역시 IBT처럼 전(前) 스파르타쿠스동맹 회원들이 창립한 조직이다. 1996년에 SL로부터 쫓겨나온 IG의 중심 간부들은 수많은 경험과 대단한 에너지를 지니고 의심할 여지없는 헌신성을 지닌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SL 퇴보의 뿌리와 그들 자신의 역사를 진지하게 평가하는 것을 지금껏 거부해왔다. 대신에 그들은 그 문제를 마치 없는 문제인 것처럼 옆으로 치워두고 있다. 우리는 여러 사안을 통해 IG에게 과거의 실수를 솔직히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그들을 타협으로 내몰거나, 또는 최소한, 젊은 투사들로 하여금 혁명운동 내에서 강령적 명확성과 역사적 연속성을 이해하기 어렵게 할 것이라는 점을 지적해 왔다. 샌프란시스코 항만노동자들의 반(反)아파르트헤이트[남아공 흑백분리주의] 운송 보이콧에 대한 SL의 불명예스러운 사보타지(이번 호의 잭 헤이맨의 연설을 볼 것)는, 앞으로 분출될 중요한 계급투쟁의 결과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칠 국제 트로츠키주의 조직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IG가 건설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면, IG가 계속해서 씨름해야 하는 종류의 문제일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지도부의 위기

모든 역사적 시기는 사회주의 운동 내에서 그 시기 특유의 중도주의자나 배신자들을 낳았다. 그러나, 총회의 몇 차례 교육용 발표를 통해 설명한 것처럼, 수정주의는 항상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 그 뿌리는 노동계급의 혁명역량에 대한 회의이다. 수정주의는 대중적 영향력을 정치적 지름길을 통해 얻으려는 시도로 보통 표현된다. 그와 대조적으로 볼셰비즘은 노동계급이 사회를 뿌리부터 재건하기 위한 사회적 역량과 객관적인 물질적 이해관계를 모두 가지고 있다는 신념에 기초해 있다.

총회문건은 젊은 회원들이 트로츠키주의의 역사적 강령을 적용하고 방어하는 정치적 능력을 계발시키기 위한 조심스럽고 참을성 있는 작업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예언은 위험한 일이다. 우리는 비약적 발전이나 후퇴를 예언하지 않았다. 한편 아직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늘 도약할 것을 꿈꿔왔다. 지금 역시 그러하다. 지난 시기처럼 앞으로 몇 년 간 우리의 작업은 우선적으로 혁명 강령을 보존하고, 점진적인 원초적 축적을 이루고, 핵심을 양성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느리지만 체계적으로 우리 스스로를 진정한 혁명 정치의 기둥으로 세워내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 또한 우리 지부가 있는 곳이거나 아닌 곳에서 좌선회하는 조직들과의 정치투쟁을 통해 비약할 것을 모색한다.”

그 문건은 다음 시기엔 과거 경험했던 것보다 많은 기회가 있을 것이라며, 관련된 몇 가지 사실들을 지적했다.

“먼저, 우리의 경쟁자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 우익적 퇴보(가끔 우리의 논쟁적 규명에 의해 밝혀지는)는 보다 깊은 퇴보의 방향으로 귀결되는 경쟁자들의 강령적 모호함을 통해 나타나는 경향을 보였다.

“둘째, 우리는 단지 아주 약간 더 효율적인 조직이다. 우리가 지금껏 해온 참을성 있고 점진적이고 조심스러운 작업 그리고 우리가 이뤄낸 증가된 정치적 영향력과 총체적 능력은 미래에 지금까지보다 어느 정도 더 약진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셋째로, 소련 붕괴와 미 제국주의의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커다란 사건 이래로 자본주의 무질서에 대항하는 움직임이 되살아났고 그리하여 보다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었다.

“그리고 넷째로, 인민의 저항 양상과 사회 조건의 변화를 야기할 경제적 요동의 조짐들이 있다. 그것은 혁명가들을 선발하고 훈련하고 시험할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할 것이다….”

이라크 전쟁에 항의하는 미국 서부해안 항만노동자들의 2008년 노동절 조업중단--제국주의 침략에 대항한 미국 역사 최초의 파업--은 조직된 노동자의 잠재된 사회적 힘과 그 힘을 보다 효과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주체적 요소’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점을 생생하게 증명했다. 헌신적이고 정치적으로 각성된 투사들에 의해 수십 년간 준비된 이 소위 ‘불법’ 파업은 계급투쟁의 돌파구를 어떻게 성취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긍정적인 사례였다. 항만노동자들의 용기 있는 행동은 종착역에 다다른 사회체제의 비이성에 맞선 노동계급 투쟁의 부활을 위한 중요한 시사점으로 우뚝 설 것이다.

1930년대의 대공황 시기, 제국주의 전쟁이 보다 가까이 다가 왔을 시기, 인류가 자본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혁명조직이 얼마나 핵심적인 과제인지를 트로츠키는 강조했다.

“바로 다음 시기에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하지 않는다면 인류문화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을 것이다. 이제 노동계급 그리고 특히 노동계급의 혁명적 전위가 나설 차례이다. 인류의 역사적 위기는 혁명 지도력의 위기로 환원된다.”--이행강령

전지구의 사회 격변을 위한 무대는 마련되었다. 사적 이윤을 위한 생산 체제의 광기로 인해 고통 받는 자들의 힘을 결집시키기 위해서는, ‘극좌’ 내에서 분열과 합병의 과정을 통해 국제 레닌주의 당을 건설해야 한다. 그리고 수 천 만 노동 인민 내에서 맑스주의의 영향력을 확대해야 한다. IBT는 볼셰비키-레닌주의 역사적 강령에 기초한 대중적이고 혁명적인 노동자 정당 건설--제 4 인터내셔널의 재건--에 기여하기를 갈망하고 있다.

 

IBT’s Fifth International Conference - The Struggle for Revolutionary Leadership

Published: 1917 No.31 (April 2009)